삼별초 이후로 우리나라는 자주권을 잃었다... 사대주의 유교가 들어오면서 왕조정치에 기반하여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문화의 바탕은 철저하게 삼별초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바뀌었다... 삼별초는 사실상 마지막 순수한 한반도인이라고 보야..
맞는말이긴 한데요 강화천도 안하고 항쟁 안했으면 고려는 원나라에 먹히고 몽골 몰락 이후에도 고려가 다시 건국되었을까요? 원종이 나타나 쿠빌라이를 만나도록 무신정권이 운명처럼 버텼기 때문에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겠죠 아님 지금 우리 대통령은 시진핑이고 우리는 지금 중국어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무신정권이 다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ㅋ
국뽕 및 삼별초 미화하시는 분들 때문에 적습니다. 삼별초는 무신정권밑에서 최고의 혜택을 받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군벌정권이 그렇듯이 외부세력이랑 전쟁이 터지면 세력이 많이 약회됩니다. 무신정권도 그렇게 점점 약해지고 결국 고려조정으로 힘이 넘어가게 됩니다. 왕도 칸의 사위가 되고요. 그 과정에서 고려조정이 삼별초를 해제하고 능력검증해서 재편성 한다고 했고 이에 빡친 삼별초가 난을 일으킨겁니다. 왕족 데려가서 왕으로 세운건 고려 정통성의 명분용이고요
이 안타까운새끼야 그렇게 밖에 생각이 되고 이해가 안되냐 다른 나라에서 너나라를 처먹을라하는데 정치권 새끼들은 모든걸 받아처들이고 노예 조센징 정신처나오는데 정예 군단 이란 사람들이 즉 해병대 나나 유디티 등 사람들이 북이나 짱게새끼들 나라에 대가리 쪼이면서 귀속되겠냐고
Great resisence for indiependence.Sambelcho !!! You are great and must remember your independent spirit.Since you lleft, Korea was not ever become a independent cointry
Sambyeolcho was just a private army of the military government(at the time, Goryeo had been overthrown by a military coup and seized by Choi clan). the government was so corrupt that they fled to an island(Ganghwado) and held parties frequently whilst the mainland was sufferring from the Mongol invasion. they knew when they submit to Mongol, they would lose their power. that's why they resisted to the end.
려몽전쟁때의 강도로 천도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국가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제작하였고 고려 귀족들은 강도에 절을 12개를 건설하였다. 그만큼 군사력외엔 부유하고 국력이 있었다고 한다. 불도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 했음. 강도 천도시절부터 항복할때까지 고려의 군세는 정병20만명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우리 강화도엔 큰절이 전등사외엔 흔적이 없고 정병 20만명이 있기엔 비좁다. 실지로 성을 쌓은 흔적도 없고 내륙의 대군을 막기에도 허술한 전략지인것 같은데. 실지로 사서에서는 주력이 기마병인 몽골군이 접근할수없는 상당이 넓은지역이 강과 늪으로 되어있는 지역이라 접근시 전멸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항복할때까지 어쩌지 못했다고한다. 지금의 강화도는 그때의 강도가 절대아니었다고 본다. 조선말기에 흥선대원군이 궁궐을 일부 신축하였을때 나라가 흔들렸다고 한다. 그런대 국난기에 귀족들이 12개의 절을 세울정도로 고려가 부유했었고 힘도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강도 이남은 침입을 받지않았지만 고려 본토인 개경과 노른자 땅이 대부분 몽골군에게 침략을 당했고 고려의 상당수의 지방호족들이 몽골과 고려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 무신으로 이룬 조정의 힘이 미약해졌으며 왕은 어차피 무신들의 꼭두각시 입장이라 이래두 저래두 상관치 않아 몽골 휘하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별초의 집단의 놀라운 전투력에 대해서는 마땅히 후세사람들이 배워야 하겠지만 몽고군에 항복한 이후의 삼별초와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삼별초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판으로 자기 세력의 집권에만 전력을 다했던 세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려의 강화도 회군이후 전국토가 원나라에게 유린당하고 민초들의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삼별초는 자신의 세력이 줄어들것을 우려하여 출정을 불허 하였다. 또한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항몽전에 뛰어들어 승리한 전투 조차 자기공으로 돌리기 위해 민병대를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둘째. 고려가 원에 항복하자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는데 이는 왕온의 자발적인 협력관계가 아닌 협박을 통한 회유관계로 보는것이 맞다 따라서 이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함이지 항몽을 위한것이라고 볼수없다 셋째. 제주도로 후퇴하여 항전할때 같은 민족인 제주, 전라 지역을 약탈하는등 만행을 저질렀다 넷째 원종이 국권을 회복하고 원나라와 표면적으로나마 대등한 동맹 관계가 되었는데도 항전을 멈추지 않았으며 삼별초의 전투는 대부분 원과의 전투가 아닌 고려군과의 전투였다 삼별초가 항쟁군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건 일제 강점기 에서 독립 후에 고려 무인의 조국 독립을 지키기 위한 민족 항쟁으로 기록되면서 부터 입니다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회복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부추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사례였을테죠
박현구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으로 온갖 특권을 누리고 백성들을 감시하고 탄압한 쓰레기집단입니다. 그러다 무신정권이 무너지니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이건 항쟁이 아니라 반란입니다. 차라리 구한말 구식군인들이 자기들 월급 빼돌린 민겸호를 척살한 임오군란이야 말로 진정한 항쟁입니다.
삼별초가 대몽항쟁을 한 건 맞지만 그게 과연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였을까?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산물이었고 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고 철권통치를 했던 무신정권으로서 몽골의 침입으로 정권의 존립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에.. 즉 몽골에게 항복하는건 자신들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초래할것이 확실하므로 저항한 것이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원인이다.
41:27 몽고의 최종 목표가 일본이었다고요?ㅎㄷㄷ 부실한 점이 너무 많아서 안 보느니만 못하는 다큐네요.ㅎㄷㄷ 영상 내내 아무 말이나 막 떠드네요.ㅎㄷㄷ
강적에 굽히고 어부하여 자기를키우는 것은 약자의 본능이다.삼별초항쟁정신과 최영의료동정별은 너무나닮은점이 많다.민족과 국가의 존엄을위해싸운 한산의 영웅들의 피어린 역사는 만고에 길이빛나리!
전쟁이 장기화되니 강화도 외의 도읍지로 진도와 제주도를 정하고 미리 기초 공사를 해두었던 것으로 보인다.
삼별초 이후로 우리나라는 자주권을 잃었다... 사대주의 유교가 들어오면서 왕조정치에 기반하여 강자에게 굴복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사상을 갖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상이나 문화의 바탕은 철저하게 삼별초를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으로 바뀌었다... 삼별초는 사실상 마지막 순수한 한반도인이라고 보야..
맞는말이긴 한데요 강화천도 안하고 항쟁 안했으면 고려는 원나라에 먹히고 몽골 몰락 이후에도 고려가 다시 건국되었을까요? 원종이 나타나 쿠빌라이를 만나도록 무신정권이 운명처럼 버텼기 때문에 고려에서 조선으로 이어졌겠죠 아님 지금 우리 대통령은 시진핑이고 우리는 지금 중국어 쓰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무신정권이 다 잘했다는건 아닙니다 ㅋ
동감합니다 시키는데로 말잘들으면
당연하다는뜻이 더시킴 삼별초이후
중국에게 사대하는나라가되어버림
그게 500년갓으니 뻐속부터 중국인들이 우릴밑사람으로보는경향있음
@@flytb77백성들은 버리고 즈덜만의 천도 즈덜만을 위한 항쟁이었지요 천도를 하고 항쟁을 하던 천도를 히지않고 항쟁을 하던 백성을 지키기 위함 이었으면 원나라는 없었을것
저렇게 강한 군대를 강화도에 쳐 박아두기만 하면서 사병으로 쓰기만 하지말고 40년 항쟁기 중간 중간에 몽골이랑 전쟁때 내보냈으면 진작에 몽골 물리쳤을꺼 아니냐;;;
ㅋ최씨정권이 무너질까봐 강화도에서 최씨가문경호만 했었던 노예병들임.
중간중간 전쟁때 내보내긴함
국뽕 및 삼별초 미화하시는 분들 때문에 적습니다.
삼별초는 무신정권밑에서 최고의 혜택을 받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군벌정권이 그렇듯이 외부세력이랑 전쟁이 터지면 세력이 많이 약회됩니다. 무신정권도 그렇게 점점 약해지고 결국 고려조정으로 힘이 넘어가게 됩니다. 왕도 칸의 사위가 되고요. 그 과정에서 고려조정이 삼별초를 해제하고 능력검증해서 재편성 한다고 했고 이에 빡친 삼별초가 난을 일으킨겁니다. 왕족 데려가서 왕으로 세운건 고려 정통성의 명분용이고요
이 안타까운새끼야
그렇게 밖에 생각이 되고 이해가 안되냐
다른 나라에서 너나라를 처먹을라하는데
정치권 새끼들은 모든걸 받아처들이고
노예 조센징 정신처나오는데
정예 군단 이란 사람들이 즉 해병대 나나
유디티 등 사람들이 북이나 짱게새끼들
나라에 대가리 쪼이면서 귀속되겠냐고
Great resisence for indiependence.Sambelcho !!! You are great and must remember your independent spirit.Since you lleft, Korea was not ever become a independent cointry
Sambyeolcho was just a private army of the military government(at the time, Goryeo had been overthrown by a military coup and seized by Choi clan). the government was so corrupt that they fled to an island(Ganghwado) and held parties frequently whilst the mainland was sufferring from the Mongol invasion. they knew when they submit to Mongol, they would lose their power. that's why they resisted to the end.
려몽전쟁때의 강도로 천도하여 전쟁을 수행하였는데 국가에서는 팔만대장경을 제작하였고 고려 귀족들은 강도에 절을 12개를 건설하였다. 그만큼 군사력외엔 부유하고 국력이 있었다고 한다. 불도의 힘으로 국난을 극복하려 했음. 강도 천도시절부터 항복할때까지 고려의 군세는 정병20만명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우리 강화도엔 큰절이 전등사외엔 흔적이 없고 정병 20만명이 있기엔 비좁다. 실지로 성을 쌓은 흔적도 없고 내륙의 대군을 막기에도 허술한 전략지인것 같은데. 실지로 사서에서는 주력이 기마병인 몽골군이 접근할수없는 상당이 넓은지역이 강과 늪으로 되어있는 지역이라 접근시 전멸을 각오해야 하기 때문에 항복할때까지 어쩌지 못했다고한다. 지금의 강화도는 그때의 강도가 절대아니었다고 본다. 조선말기에 흥선대원군이 궁궐을 일부 신축하였을때 나라가 흔들렸다고 한다. 그런대 국난기에 귀족들이 12개의 절을 세울정도로 고려가 부유했었고 힘도 있었던것이다. 그런데 강도 이남은 침입을 받지않았지만 고려 본토인 개경과 노른자 땅이 대부분 몽골군에게 침략을 당했고 고려의 상당수의 지방호족들이 몽골과 고려에 양다리를 걸치고 있어 무신으로 이룬 조정의 힘이 미약해졌으며 왕은 어차피 무신들의 꼭두각시 입장이라 이래두 저래두 상관치 않아 몽골 휘하에 들어갔다고 봅니다.
역사의 옳고그름은 시대의흐름과 변화에따라 그 후손들이 재해석해야하는것임.
별초의 집단의 놀라운 전투력에 대해서는 마땅히 후세사람들이 배워야 하겠지만
몽고군에 항복한 이후의 삼별초와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삼별초는 놀라운 전투력을 발판으로 자기 세력의 집권에만 전력을 다했던 세력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고려의 강화도 회군이후 전국토가 원나라에게 유린당하고 민초들의 고통이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었으나
삼별초는 자신의 세력이 줄어들것을 우려하여 출정을 불허 하였다.
또한 민초들이 자발적으로 항몽전에 뛰어들어 승리한 전투 조차 자기공으로 돌리기 위해 민병대를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둘째.
고려가 원에 항복하자 왕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삼별초의 난을 일으켰는데 이는 왕온의 자발적인 협력관계가 아닌 협박을 통한 회유관계로 보는것이 맞다
따라서 이는 자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함이지 항몽을 위한것이라고 볼수없다
셋째.
제주도로 후퇴하여 항전할때 같은 민족인 제주, 전라 지역을 약탈하는등 만행을 저질렀다
넷째
원종이 국권을 회복하고 원나라와 표면적으로나마 대등한 동맹 관계가 되었는데도 항전을 멈추지 않았으며
삼별초의 전투는 대부분 원과의 전투가 아닌 고려군과의 전투였다
삼별초가 항쟁군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건 일제 강점기 에서 독립 후에 고려 무인의 조국 독립을 지키기 위한 민족 항쟁으로 기록되면서 부터 입니다
일제의 탄압으로부터 회복한지 얼마되지 않은 시점에서 민족의 자긍심을 부추기기에는 더 없이 좋은 사례였을테죠
ㄱ ㅅ ㄹ 하고 있네 몽고에 항복한 왕을 따라 다 죽어란 말인가? 그당시 는전시 였다 배신하고 항복하는 국민을 강제로 정비할수밖에 없었다. 그시대를 입장에 따라 함부로 욕하지 마라 이순신이 왕의 명령에 따르지 않았어니 이순신 난이가?
최씨 무신정권의 사병으로서 강화에서 개경 환도 시 삼별초의 명단 제출에 불만을 품고 항몽이라기보다 그들의 이권을 위해 진도행을 택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군대 세계 최강
???삼별초가?
40년 항쟁기라... 그 기간 어떤 싸움을하며 어떤 전과가 있었는지는? 정예부대가 맨날 근거지 철수하고 도망만 다니며 지 살길만 찾아다녔던거 아냐?
오키나와로 가서 류쿠 왕국 건설한 얘기가 빠져서 50점짜리 리포트~
삼별초는 그냥 엘리트 군인집단의 권력욕에 대한 반란군이지 무슨 ㅋㅋㅋ
삼별초도 최씨 무신집단의 가병이었지만 그것도 역사이니 알아야 하지만..충신들의 군대로 미화하는 건 후손에게 쪽팔리지 않나요
▶삼별초는 왜 대하사극이나 영화가 없나?
왜 역사관광지(수학여행)등등으로 하지 못하나?
쓸데없는 10대 소녀용 소설 퓨전사극이나 나오고 말이지
이나라는 신라의기준대로 관광패키지가 많이 있어요.경주 보문만 봐도 답 나옵니다.
다까지마사오
일단 님 닉네임에서 정치 성향이 보이네요..
@혁명가이성계 미 친당 잔꾄 때문
역사적 기록에는 반란군집단 밖에 내세울게 없으니.. 억지사지 소설로 근거없이 미화시켜버린다면 웃끼지 않겠슴
육군사관학교 시험에 하얀 종이에 생길 제게 서 쓰라 시험문제
아 역사배우느라 알아보는데 진짜 하나도 모르겠네.....
제주에서 패퇴한 삼별초는 그 후 지금의 오키나와로 진출하였다. 오키나와에 축조된 성들과 여러 고려유물들 출토!
배중손장군을본받자
여몽연합군ㅡ즉 몽고군이지 왜고려군과몽고연합군이 왜삼별초 배중손장군을 죽이나
매월6,15일에
진도
삼별초가 왜 오키나와로 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고려가 중국대륙에 동쪽에 자리잡은 나라였기에
삼별초의 역사기록이 어디에서가 있을것만 같은데 발굴탐색단이라도 있나.
어떻게 고려가 나중인데 신라시대 문화재가 더 많이 남아 있는거 같음
착각인가 ?
왜냐면 고려 수도는 개경, 지금의 북한이니까 그럼.
좀 그렇네 대몽항쟁을 한거냐? 새로운국가를 만들려고 한거냐? 걍 항쟁만 하면되지 왕이 있는데도 왕족하나를 또다른 왕으로 새우면 걍 나라를 만들려한거 아냐?
박현구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사병집단으로 온갖 특권을 누리고 백성들을 감시하고 탄압한 쓰레기집단입니다. 그러다 무신정권이 무너지니까 보복을 당할까 두려워 반란을 일으킨 겁니다. 이건 항쟁이 아니라 반란입니다. 차라리 구한말 구식군인들이 자기들 월급 빼돌린 민겸호를 척살한 임오군란이야 말로 진정한 항쟁입니다.
박성현 그게 아니라 조정이 너무 세력 커지니까 강제 해산시키려해서 그런겁니다
다들 아셔야겠는게 삼별초(신의군)가 쿠테타로 최의 축출한겁니다..
고려의 화려한 부활을 꿈꿨다니... 아직도 이런 방송이 만들어지나 ㄷㄷ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다보면 삼별초의 항쟁을 많이 볼 수 있다.
gg를 선언하지 않고 맵 구석구석에가 건물지어놓고 도망가고 건물지어놓고 도망가고 .
물론 삼별초의 항쟁에서의 애국정신은 높히산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나도있었다. 도망가는것도 실력이다.
삼별초는 과대포장된것임.
최씨집안의 가병들일뿐.
그들이 충성을한곳은 최씨집안임.
두명을이기려면
ㅡ두명이 무장하여 달아나거나 반항한다ㆍ
일곱명이 무장한군인이바다를상대주민상대 밤침투조행동시ㅡ빨리군부대전화해라
점호때 1번분대장2번우리나라3번말년병장 근데 한달빨리온 같은 이등병이 우리나라잘못 다고자질함
내가 옹이댈 상인가?
별초들의 지휘관 도령은 장군급
거꾸로는 아닐까?
확실한건 오직 죽음후가 영원하다는거 ᆢ예수가
아니 삼별초가 잘 못한 건 맞는데.... 역사잖아요. 좀 더 다양한 시선에서 역사를 바라보는건 어떨까요^^
ㅋ최씨가병집단이 삼별초아님?
ㅋ몽골이 침략하니깐 왕과함께 강화도로 도망가서는 전국토가 도륙나는데도 강화도에서 꿈쩍도 않던 무신정권끄나플들임.
저기 나온. 최충헌 일가들이 고려를 지키려는 항쟁했다 라고 운운하는 몇몇 학자들 교수들은 뭐 하는 분들이지요?? 최츙헌 자손들인가요
여기 성터 체험학습으로 갔다왔는데....
참나 소설들을 쓰시네 , 하긴 보조금 받고 사기치는 것이나. 돈받고 사람죽이는 것을 청부살인이라고 하나요? 나는 진도사람이요
삼별초가 대몽항쟁을 한 건 맞지만 그게 과연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였을까?
삼별초는 무신정권의 산물이었고 왕을 시해하고 정권을 잡고 철권통치를 했던 무신정권으로서 몽골의 침입으로 정권의 존립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에.. 즉
몽골에게 항복하는건 자신들 정권이 무너지는 결과를초래할것이 확실하므로 저항한 것이다.
그게 가장 현실적인 원인이다.
대몽항쟁?몽골에 까불다가 잡혀죽을까 도망신세 삼별초.
정권 유지에만 관심 있었던 역적인 군부 세력을 두둔하는 이유는 혹시 닦깎이 마사오의 군사반란을 정당화시켜 주려는 의도가 아닐까?
역성혁명 그거암? 저말이 팩트임 고려무신정권이 그냥 백성들버리고 자기들만의 안위를 위해서 들어가서 버티면서 거기에 뱃길으로 백성들을 세금명목으로 수탈하면서 강화도에서는 배뚜둘기면서 잘지냈다는거 그사이에 백성들은 몽고군이랑 싸워야됬고 세금까지내라고 강요까지 당했음
🤗
제주도 같는소리 하네.오키나와야! ㅈ종착지가! 삼별초를 좋게안보지만 지금으로 따지면 맹목적으로 충성한거야!
삼별초?
역사왜곡방송이네ᆢ
고려의 자존심?
최씨의 경비부대였겠지ᆢ
삼별초 무인시대 막장들이잖아 백성들은 안중에 없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