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는 우리나라에서 1000년 동안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한국의 불교사 총정리 통합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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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21 ต.ค.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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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불교사 총정리 몰아보기 통합본
    그럼 역사돋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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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사합니다 :)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63

  • @agm1144
    @agm114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중세시대 '종교'시설은 단순히 신앙의 장소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문화, 학문, 교육, 의료 및 각종 복지 기관이였고 치안과 지방 행정까지 담당하던 지방자치 기관이기도 했습니다. 고려의 불교 사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고려시대 불교 사찰은 승시라 불리던 시장과 공방이 있어 각종 공산품을 만들고 유통시키던 기업이였고, 자본을 운용하는 금융 기관이였으며, 학문을 연구하고 책을 인쇄 출판하며, 젊은 학생들을 가르치던 학교였으며, 지방 향리나 호족들이 모여 지역 주요 안건을 논의하던 지자체 의회당이였고, 빈민 구휼과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의료 복지 시설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심지어 사찰을 지키던 승병들은 그 지역의 치안도 담당했기에 도적이 많은 곳에 사찰을 지어 치안 문제를 해결하기도 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는 지방의 호족, 혹은 귀족들과 결탁하여 사찰을 중심으로 하는 지방자치체를 구성했던 겁니다. 각 지방 사회들이 불교 사찰을 구심점으로 뭉쳐서 중앙 정부에 의존하지 않는 자립적인 자치체를 구성했으니, 중앙집권을 원하는 중앙 정부로선 이는 상당히 거슬리는 일이였지요.
    그래서 조선왕조에 이르러 억불정책을 결행한 겁니다. 전국의 사찰 수십여개만 남기고 나머지 사찰은 모두 폐사조치 함으로서 사찰을 중심으로 형성된 지자체는 붕괴되었습니다.
    그로인해 보다 강력한 중앙집권체제를 이루었으나 불교에 의해 유지되던 지방의 인프라는 괴멸했습니다.
    사찰이 사라지면서 사찰의 시장과 공방도 사라졌고, 이를 위한 유통망 역시 사라졌습니다. 또한 사찰에서 하던 의료 복지 서비스도 사라졌습니다. 특히 사찰에서 제공한 목욕 시설이 소멸됨으로서 조선의 목욕문화 자체가 퇴행해버렸지요.
    고려의 주요 도로마다 사찰이 위치하여 가난한 여행자와 상인들에게 식사와 숙박 그리고 목욕 서비를 제공해주었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원'이라는 숙박시설까지 운영되었지만 억불 정책으로 이것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원은 조정에서 직접 운용하는 국영 시설만이 남았고 그나마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결국 이마저도 사라졋습니다. 조선의 여행자들은 노숙과 걸식으로 위태로운 모험을 해야 했고 이는 지방간의 인적 물적 교류도 마비시켰습니다. 오직 수운에 의존한 교통로만이 존속할 수 있었습니다.
    고려의 번영과 이를 계승한 조선의 궁핍함이라는 미스테리는 고려말 불교의 역할을 그저 부패와 타락으로만 규정하는 것에서 비롯된 모순입니다.
    불교는 지방의 각종 인프라를 제공하며 사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으나 중앙 집권을 원하는 유교 정권은 이를 부정적으로 보고 불교와 불교가 제공한 인프라까지 다 파괴했습니다.
    그로 인해 지방 지자체가 괴멸하고 중앙 정부가 정치, 경제, 사회 모든 면에서 지방을 압도하며 중앙 집권적인 체제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나 지방의 괴멸은 곧 중앙의 궁핍으로 이어졌습니다.

  • @livingus5625
    @livingus5625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아주 좋소😊

  • @slentando
    @slentando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깊이있는내용에 썸네일 뉴진스님 미쳤네요.

  • @HS-qb4vw
    @HS-qb4vw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1:18 " 한반도 " 에서 최초로 불교를 공인한 국가는 고구려이고
    28:06 조계종은 " 도의 " 를 종조로 모시고 있죠

  • @차크라바르틴-y3l
    @차크라바르틴-y3l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불교신자로서 재밌고 유익하게 봤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것이있는데 광복후에 있었던 통합교단은 방한암 스님을 초대종정으로 하는 한국불교조계종이었고 비구승과 대처승의 대립이 끝내 대법원에서 한국불교 모든 유형무형의 재산이 비구승에게 권한이있다고 판결이 난후에 만들어진것이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지금까지 이어진 조계종입니다. 그 후에 대처승들을 중심으로1970년에 한국불교태고종이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조계종과 태고종이 분열되던 시기의 조계종 승려도 상당수 자녀가 있는 분이있었고 태고종 승려중에도 독신으로 수행하는승려가있어서 비구승대처승의 분열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실제로 대한불교조계종이 출범할때 독신의 비구승은 약 300명 정도밖에 없었다고도 합니다. 조계종의 총본산인 조계사도 1960년경까진 태고사였습니다.

  • @jbsoo12280
    @jbsoo12280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잘하네..

  • @JKJ0509
    @JKJ0509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삼국유사의 기록에 따르면 서기 42년에 가락국을 건국한 김수로왕은 서기 48년에 아유타국의 공주인 허황옥과 결혼합니다 그리고 둘 사이에서 태어난 큰 아들은 김해 김씨가 되어서 가락국의 2대 왕인 거등왕이 되고 둘째와 셋째 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라 허씨가 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김해 김씨와 허씨는 서로 결혼하지 않았습니다 허황옥이 가져왔다는 파사석탑은 돌의 재질이 우리 나라의 돌과 다릅니다 따라서 허황옥이 타지에서 온 사람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줍니다
    김해 일대에서 구전되는 이야기에 따르면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은 불교의 승려인데 가야의 토착인들은 불교를 못받아들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허황옥은 아유타국에서 같이 온 사람들과 불교를 신앙했다고 합니다 파사석탑은 불교 의식을 치를때 사용했던 탑이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김수로왕과 허황옥 사이에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넷째부터 열째 아들은 불가에 귀의했다고 전해집니다 지리산의 쌍계사에 있는 칠불암은 김수로왕의 일곱 아들이 불가에 귀의한것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고 합니다
    김해에 있는 명월사 사적비문의 기록에 의하면 명월사는 김수로왕때 지어졌는데 임진왜란때 불에 탔다고 합니다 그래서 광해군때 중건했고 숙종 32년(1706년)에도 중건했는데 이때 담장 밑에서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 내용은 ‘건강 원년(서기 144년) 3월에 장유화상이 서역에서 불법을 가져왔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우리 나라에 불교가 들어온 시기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빨랐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고구려는 소수림왕때, 백제는 침류왕때, 신라는 법흥왕때 불교를 공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구려에서는 중국의 전진에서 온 승려가, 백제에서는 인도에서 온 승려가 궁궐로 초대되어 왕을 알현했고, 그 후에 불교가 공인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나 궁궐로 초대되어 왕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불교라는 종교가 이미 그 전부터 귀족들과 백성들에게 많이 알려져서 그리 낯설지 않은 종교였기 때문에 외국의 종교인이 궁궐로 초대되어 왕을 만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현재 코로나 때문에 신천지라는 종교가 사람들에게 많이 회자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천지 교인들이 중국의 우한에서 포교 활동을 하다가 코로나가 국내로 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의 시진핑이 신천지 교주인 이만희를 만나려고 초청하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신천지라는 종교를 공인하기 위해 이만희를 청와대로 초청하는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당연히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면 중국과 인도에서 온 불교의 승려가 소수림왕과 침류왕의 초청에 의해 궁궐로 갔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불교가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어서 거부감이 없었던 것입니다
    아마도 아유타국에서 가야로 온 허황옥과 장유화상에 의해 불교가 처음 이땅에 들어왔고 백제와 고구려까지 전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가 이미 일반적으로 인정을 받게 된 상태에서 공인이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밟기 위해 외국의 승려를 초청했던 것입니다

  • @agm1144
    @agm114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화랑은 전사 집단이 아닙니다. 화랑과 이를 따르는 낭도들이 모여 함께 모여서 놀던 집단입니다. 모여서 축국(축구)을 하거나 산과 들을 유람하였다고 합니다. 다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당시 귀족 남성들에게 무예는 필수 교양이였고 화랑과 낭도들은 개별적으로 무예를 어느정도 익힌 자들이였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발발하면 화랑이 낭도들을 거느리고 직접 전쟁에 나가는 경우가 있었던거 뿐이죠.
    화랑도는 귀족 남성들간의 끈끈한 인맥을 형성하는 시스템입니다. 화랑이 된 고위 귀족 자제들은 무리를 이끄는 리더쉽을 익히고, 낭도들은 고위 귀족 자제인 화랑을 주군으로 섬기며 성인이 되어서도 그의 지지자가 되는 구조였습니다.

  • @김성훈-w6p1e
    @김성훈-w6p1e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원효대사 해골물은 어느기록에도 없습니다

  • @agm1144
    @agm114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5

    일제시대 미륵사지 석탑에 시멘트를 사용한 보수작업은 당시로선 최신 기술을 사용한 최선의 복원 방법이였습니다. 그거라도 하지 않았으면 미륵사지 탑은 결국 무너져 더 심각하게 훼손되 오늘날엔 그 원형조차 알 수 없게 되었을 겁니다. 똑같은 이유로 석굴암 보수도 당시로선 그게 최선이였다는건 인정해야지요. 미륵사지 석탑이나 석굴암이나 일제시대엔 오래전에 버려져 관리 보수가 되지 않아 붕괴 직전 상태였습니다. 수백년간 지속된 숭유억불 정책의 폐해입니다.

    • @KHS-gg3it
      @KHS-gg3it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당시에 그게 최선의 복원이었으면,그게 일본에서도 그랬었ㅈ나요?

    • @agm1144
      @agm114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네 일본의 여러 유적들도 시멘트로 복원했습니다. 오사카성도 시멘트로 복원했지요.

    • @취성어
      @취성어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수천년 잘버틴게 몇십년 안했다고 무너지냐? ㅋㅋㅋㅋ 생각좀

    • @킴키류
      @킴키류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agm1144 오사카성은 히데요리가 죽을때 다타서 새로 지은거 아닌가요? 중간에 복구할려다 못해서 일제시대때 철근공구리로 다시 만들고 폭격당해서 또 새로 만든걸로 아는데

    • @agm1144
      @agm114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킴키류
      사실은 여러 번 재건과 파괴가 반복되었습니다.
      에도 막부시절 오사카가 주요 상업 도시로 성장하자 토요토미가의 흔적을 완전히 지울 생각으로 오사카 성터에 새로운 형태로 성을 재건했지만 이것도 화재로 다시 소실되기도 했지요.
      지금 오사카성은 토요토미가의 형태와 에도 막부 시절 형태를 혼합한 형태로 재건되어 있습니다.

  • @김정원-d8o
    @김정원-d8o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한국종교 이것 저것 할것엄시 사업이지
    정상인가? 걸려들어 한평생 속느니 그냥 편히 살아라.
    속은줄 알면 이미 늦었고 후회해도 소용엄따.

  • @이강엽-t3k
    @이강엽-t3k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차돈의 성씨는 박씨 또는 김씨라 함 김씨라 단정지을 수 없답니다

  • @neoleft5064
    @neoleft506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9:17 일본이 서탑을 복원한 방식은 비록 전통적이지 않을지언정 더이상 탑이 무너지지 않게 보강했던 방식이라면.... 동답은 근거도 부족하고 복원이라고도 할 수 없는 가짜 같은 느낌.....일본 보다 한국이 더 무식하게 복원한거 같아 안타깝네요

  • @도상권
    @도상권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과거의 불교는 과거의 일일 뿐 과거를 아무리 미사어구로 포장을 한다 하더라도 현재를 감출 수가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불교를 진정한 종교라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그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확실한 광신도라 불리워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 @user-pl5pu6it5x
      @user-pl5pu6it5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종교’라는 단어가 원래 불교를 의미하는 단어로 만들어진건데 뭔소리신지

  • @박강열-q6i
    @박강열-q6i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때도 특정종교를 강요하진 않았죠 그러고보면 지금이 더 종교적으로 야만의 시대인거죠

  • @YounChulShin
    @YounChulShin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0:39 지도는 문제가 있습니다. 낙랑군의 위치, 3한의 위치 모두 문제입니다. 전형적인 식민사학의 영향으로 보인데요. 대한제국이 삼한에서 유래했고, 대한민국이 이를 계승했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영토의 역사적 근거가 사라집니다. 또한 진수의 삼국지의 기록에 따라 볼 때, 공손연이 요동과 낙랑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위, 오와 사신을 왕래하고, 동맹을 교섭했다는 삼국지 서술과 대치합니다.

    • @폴라리스-x3x
      @폴라리스-x3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매번 환빠들 때문에 영상보기 짜증나네

    • @YounChulShin
      @YounChulShin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폴라리스-x3x그럼 보지 마 ㅋ

    • @폴라리스-x3x
      @폴라리스-x3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YounChulShin 본인이 보지 말아야지

    • @YounChulShin
      @YounChulShin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폴라리스-x3x 짜증은, 역사적 근거가 전혀 없는 조선사편수회 주작짓을 신앙처럼 받드는 너 깉은 매국노가 나고 있잖아.

    • @YounChulShin
      @YounChulShin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폴라리스-x3x 짜증은, 이무런 역사적 근거도 없는 조선사편수회의 주작질을 신앙으로 받드는 매국노 너가 나고 있잖아 ㅋ

  • @굥탄핵
    @굥탄핵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9:03 뭐가 끔직한짓임? 애초에 일제가 석탑에 끔직한 짓을 할거면 시멘트를 붇는게 아니가 폭탄으로 터트려야 하는게 아님?

    • @user-pl5pu6it5x
      @user-pl5pu6it5x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현직 건설엔지니어입니다만, 문화재 복원에 기존 방식이 아닌 공구리를 부은건 끔찍한 짓 맞습니다.

  • @중추석
    @중추석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오직 구원은 예수님뿐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 @mongle07
      @mongle07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기독교 안티인가 왜 지식적인 내용에 이런걸 남겨놓나요? 이러니까 다들 기독교 하면 치를떨지

    • @중추석
      @중추석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mongle07 복음 입니다

    • @이팝플웰
      @이팝플웰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중추석사이비종굪믿지마시고 그돈과 시간으로 가족을 바라보세요 당신이 광신도가 될 때 가족은 지옥에서 살게됩니다

    • @pu2207
      @pu2207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지옥에는 그대나 가시오ᆢ이러니 기독교가 욕먹는거요

    • @금소이
      @금소이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성불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