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예배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는 태도' 라는 말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지금 영상을 보는 이 순간 뿐만 아니라 예배시간 그리고 삶의 모든 시간이 주님께 예배를 드릴 때 저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그 예배가 의식이 아닌 진정한 삶의 예배가 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같습니다. 😀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제물을 드리기 전부터 그의 마음과 제물을 드리는 의도를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거절때문에 악행을 저지른게 아니라 그가 악인이기때문에 악인의 제물을 받으실 수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죄악을 주께서 드러내실 때 회개하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인은 억울해하고 분노합니다. 주님께 거절당했을 때 내 안에 일어나는 것이 회개인지 억울함인지를 분별해보시면 자신이 가인인지 아벨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사랑하셨기에 거절을 통해 그 마음 속의 죄악을 깨달아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으셨다면 가인은 평생 자신이 의로운 줄여기며 회개할 기회조차 없이 죽었을 것이니까요. 오늘도 기도의 거절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들춰내시는 주님의 지독하신 사랑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희생제사가 없는 예배는 받을수 없어요. 하나님이 아담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주고 첫 희생제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벨읔 순종햇지만 가인은 그 희생제사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걸 믿지 않았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제사를 드렸기에 받지 않으신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생각형편으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희생제사인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기뻐하시고 의롭다라고 칭하셨을까? 창세기 4장에는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 이유를 알수 없어 여러 선지자들이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으나, 히브리기자가 그 이유를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히 11장 4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초에 가인과 아벨에게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셨다라는 말씀인데요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하신 것처럼 당시 가인과 아벨의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쫒겨나 고통과 수고의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수 밖에 없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자녀들 가인과 아벨도 역시 그들의 소원은 고통과 수고도 없고 또 사망도 없는 에덴동산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요 히브리기자가 언급했듯이 "믿음은 바라는 것(소원)들의 실상이요" 한 것처럼 바라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바라것을 이룰수 있는 길로 그들에게 양의 피흘림의 제사를 드릴것을 증거하셨는데요 가인은 그 증거를 믿지않고 자기 의견대로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고(농사하는 자 이기때문이 아닌) 아벨은 하나님의 그 증거를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양을 제물로 드림으로 의로운자라는 칭함을 받았지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의로운 믿음이란, 하나님의 증거를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고 아벨처럼, 하나님의 그 증거를 믿지않고 자기 의견대로 행하는 것은 불의한 믿음이 되는 거지요 아브라함도 노아도 모두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도 허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한것이지요 사울왕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자기의견대로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좋고 살찐양을 살려두었으니 선지자에게 꾸짖음을 받아 결국 하나님서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한다 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신것은 장차 어린양의 실체로 등장하실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인데요 그것 을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참예하여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창1장24절에서30절을 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창1장31절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드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라고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어 놓으실때 마음은 심히 좋지 않으셨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 잉태 출산의 고통을 주셨지만 히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때 그마음을 알게하시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손인 아벨은 심히 좋았드라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다스리라 하신것을 아벨은 살생을 한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돌이키시고 아벨의 마음을 상치 안하시게 하시려고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아들인것이라 생각이듭니다. 가엽히 여기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도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신 푸른초장을 집밣는 양을 보고만 있는 가인을 두고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제물은 사람의죄에대한 속죄물을 하나님께바치는 행위로써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제물되심을 아벨은 알고 피를 흘리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양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아벨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물 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무엇을 하실지도 알지못하며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행하지 않기를
가인은 하나님의 믿음이 없고 아벨만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둘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가인 자기생각에 가장 좋은것으로 드리면 된다고 생가해서 정성것 제사를드렸지요.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믿음으로 제사 드렸어요.. 죄사함은 피에 있다고 했습니다. 피가 없음 죄사함이 없습니다. 우리보기에 좋은것이 아니라 주님보시기에 좋고 합당해야 합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으므로 정착해야하고 정착하므로써 자꾸 쟁여놓으려는 탐욕이 있었기에 제사를 지내도 하나님께 거래형식으로 드렸으리라 허나 아벨은 목축업이기때문에 자꾸 옮겨다녀야하는것 때문에 나그네처럼 사는 미니멀이기에 그날 그날 자족하며 탐욕이 없기때문에 제사도 오직 감사함으로 댓가를 바라지않는 온전함으로 드렸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당시 가장천시받은 직업이 목축업이었고 이스라엘백성들도 목축업이 대부분 이렇듯 하나님의 노동자들의 절규 아벨의 피소리에 관심을 가지신다 즉 사회적 약자 약소국 영육간의 가난한자를 구원 하려 하신다
이제껏 교회만 다니면, 스스로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고, 구원받는다고 속아 왔습니다. 이는 앞에 선 지도자가 성경을 성경으로 신령한 것을 신령한 것을 풀어 하나님의 뜻을 진리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 사람의 수준, 본능적으로 아는 것, 문자적/표면적으로만 성경을 본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는 진리 가운데 있지 못해 세상보다 더 타락한,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는 문을 닫고 싶다고 하셨으면, 이러한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진리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태어남 자체가 죄덩어리죠.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 최초의 인간이 아벨과 가인이에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죽음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 하셨고요. 그 죽음을 피하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아벨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죽음에서 자유를 얻게되었어요. 하지만 가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꿰뚫어 보고 계셨죠. 가인이 드린 것은 경쟁과 질투의 마음이었어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 것은 받지 않으신다고 생각한거죠. 진실로 드렸다면 혹시 받지 않으시더라도 더 좋은 것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겠죠. 하지만 가인은 살인을 선택했어요. 심지어 하나님께서 아벨 어딨냐고 물으셨는데 자신이 아벨을 지키는 자 이냐면서 따져묻고 도발했어요. 하나님보다 이미 높아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가인은 죽음에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어요. 짐승들에게 쫓기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만 죽임은 당할 수 없게 되었죠. 가인은 회개하지 않고 지옥을 선택한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가인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거에요. 죽음은 늘 근처에 도사리고 있지만 죽을수는 없는 운명이 되는거죠. 참고로 가인의 족보에는 언제까지 살았다는 나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에 죽이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7배의 벌을, 가인의 후손 라멕에게는 77배의 벌이라고 라멕 스스로 선포하죠. 그 계보는 영원히 죽지 않을 혈통으로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혈통이죠. 큰뱀은 무저갱으로 미혹된 자들은 그와함께 불못으로 가는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가인이 회개 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겁니다. 적그리스도의 후손은 여기저기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우리 피에도 섞여있는지 모르죠.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이며 단번에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 분을 보내주셨습니다. 믿으면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얻어 일하거나 자지 않아도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며 새 예루살렘성에 출입하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가인이 온갖 정성으로 제단을 쌓지 않았다면 동생을 죽이고 거기에 하나님께 대드는 분노를 표출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채식이었던 당시로 먹지도 못하는 양에다가, 아니 양의 고기도 아니고 옷의 용도였던 가치있던 양의 가죽도 아니고 쓰레기였던 양의 지방덩어리로 드렸던 아벨의 제사와, 먹을 수 있는 곡식으로 드렸던 가인의 것 중 누가 더 정성의 제사였을까요? 가인은 "가장 좋은" 곡식으로 드리지 않았다고 목사님들은 우깁니다. 사실 그가 정성으로 드렸는데 자기 제사를 받지 아니한 것에 대한 가인의 정신적 스트레스 즉 자존심에 상처, 형으로서 우월감에 대한 수치, 치우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노 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교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기로 결정한 것도 아벨의 상한 심령이 있었습니다. 가죽옷을 형에게 물물교환해서 곡식을 얻었던 아벨에게는 먹을 음식이 없었기로 먹지 못하는 양으로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던 상한 심령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 동생의 제사의 원인은 가인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도 모르던 욕심많은 형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불쌍한 아벨에 대해 묻습니다.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이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가인이 "내가 어디 동생을 살피는 사람이냐?" 답한 것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인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불쌍한 이웃이 어디 있느냐? 우린 답합니다. 이렇게요. "내가 내 이웃을 살피는 자니이까?"
@노란얼굴 저도 이웃 이야기가 아니고 아벨의 마음과 가인의 마음 상태를 서술한 것입니다. 왜 불쌍한 이웃이었던 동생 아벨을 가인이 전혀 생각해 주지 못한 이기적이고 자존심만 많았던 가인의 영적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다고 쓴 것입니다. 사람의 정성이 없어서 하나님이 제사를 받고 않받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람의 정성은 타 종교의 신인 귀신들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받으시는 분이지 인간의 정성이 가득들어간 뻔질한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유한한 그 잘난 인간의 정성을 요구하신다고 설교하는 목회자는 잘 알지도 못하고 가르치는 종입니다. 물론 상한 심령과 더불은 정성된 제사는 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마치 아벨의 제사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정성의 문제는 가인도 아벨 못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가인도 열납되지 않은 자신의 희생에 하나님과 아벨에 대해 엄청 분노했던 것입니다. 정성의 문제라면... 가인이 생각하길 당시 동생의 쓰레기에 불과했던 양의 지방으로 제단을 쌓은 것보다 먹을 수 있었던 곡식으로 드린 자신의 것이 더 하나님앞에 합당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연히요. 그런데 웬걸??? 그래서 가인은 생각하길 공평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분노의 표출로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정성이 없어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요? 휴~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 에는 언어 유희가 들어 있습니다. 1) 땅의 소산인 곡식들 2) 흙덩이 땅에 불과한 인간의 소산인 자존심, 이기심, 자만심, 우월심, 교만함 등등... 가인이 드린 제사는 2) 인간에게서 나온 소산인 자존심 우월심, 교만함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정성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노란얼굴 열린 마음없이 자기 것에 대한 주장이라면 우리의 말들은 성경이 전한대로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할 허망한 변론이 됩니다. 1) 아벨이 불쌍한 이웃이라는 것은... 당시는 물물교환으로 생계를 꾸렸었습니다. 형은 농사꾼이였고 동생 아벨은 가죽 옷을 만들려는 용도로 양을 키운 목자였습니다. 아벨의 음식은 가인과 물물 교환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때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사는 먹을 것으로 다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 드릴 양식이 없었습니다. 형 가인이 양식을 가죽옷과 바꿀때 충분하게 보상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도 하고 당시 아벨에게 형 가인이 도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벨 그는 하나님께 좋은 것을, 많은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했으나 그리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은 다 드리기를 원하지만 못하는거죠. 마치 과부가 지금의 2000원 정도의 헌금을 드릴 때 옆에 부자가 드리는 헌금을 보며 상한 심령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과부가 부자보다 더 나은 헌물을 드렸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벨의 제물은 동전 두잎이요, 부자의 헌금은 가인의 헌물과 상통 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의 초라했던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5개 드린 것과 같은 심정과 같았습니다. 당시 물고기는 버려지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헬라로 쓰여져 있고 보리떡은 아주 못 사는 사람의 음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들 모두 상한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아벨의 헌물은 그런 상한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2) 가인의 교만함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하여... 땅의 소산에는 2가지 언어유희가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ㄱ) 외적인 것 해석: 땅에서 나는 곡식 ㄴ) 영적인 해석: 흙덩이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 자존심, 우월감, 욕심 이기심 같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 즉 교만이라는 소산들입니다. 가인은 성경에서 언급한 대로 땅의 소산(영적 해석)으로 드렸고 쓰레기에 불과했던 양의 지방으로 드린 아벨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합당한 제사였습니다.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기에 동생의 제사에 도움을 주지 않았지요. 도리어 동생의 제단에 코 웃음을 쳤룰지도 모릅니다. 가인은 꼭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기를 원했음은 자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거인의 분노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분노의 시발점이 바로 땅의 소산에서 드린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소산은 그 기본적 기초가 다 교만함입니다 3)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에 대하여... 아벨이 준비한 제사는 상한 심령으로 드린 것입니다. 나중에 그리스도로 예표된 양을 아벨이 드릴때 자신의 부족함 즉 드리고 싶으나 제대로 다 드리지 못하는 아벨의 상한 마음을 양을 죽일 때 마치 자신과 동일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도 죄인(가인)에 의해 희생제물이 됩니다. 마치 양이 죽임을 당하듯이요. 마치 그릿.도가 죄인ㄷ들에게 죽임을 당했듯이요. 그리스도를 예표한 제사 즉 자신을 드리는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가 어디 있습니까? 4) 피의 제사이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라는 생각에 대하여.. 성경을 연구하면 하나님은 당시 문화, 법, 상식, 관습을 이용하여 당시 시절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었습니다. 시내산의 언약도 근동 지방의 문화 풍습을 이용하여 언약 채결 세레모니를 하셨고요. 님이 잘 아실 터입니다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계명도 당시에 이웃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법으로 사용되었던 법입니다. 지금은 오늘 날 그 법을 이웃 사랑에 쓰지 않지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의미는 그 문자가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뜻에 일점 일획이라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핳례도 아브라함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근동에 이미 있었던 문화입니다. 피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전 부터 계획한 제사일겁니다. 하지만 아벨이 그 미래를 알고 피의 제사를 드린 것은 아닙니다. 피의 제사는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선지자가 드린 제사입니다. 그 때문에 더 나은 제사라고 성경은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를 예시한 사건일 뿐입니다. 피로 드렸기에 더 나은 제사였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꼭 형유만 예수님이 받으시는 예물이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했기에 다른 예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예수님이 받ㅇ.시는 헌물은 오직 향유였어만 되렀다 라고 주장하면 너무 나간 주장이 되듯이 아벨의 피의 재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예표된 제사였을 뿐입니다. 히브리서에 더 나은 제사로 칭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는 상한 마음이라고 시편 51:17에 다윗의 말로 분명하게 언급하십니다.
@노란얼굴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선 성경적 믿음에 대해 층분히 이해하시는지요. 히브리어로 아만이고 형용사 형으로 애무나(신실함이 있는)입니다. 헬라어 믿음, 곧 피스투스는 신실함을 입다 입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믿는다 라는 동사는 관념 동사가 아니고 행동 동사입니다. 그것도 힢일동사로 강조 사역형(수동형)이라고 하는데 믿음은 내 의지로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더 쉽게 이해하시려면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이번 주 설교를 들으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아 유튜브에 보면 류모세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설교 영상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아벨이 믿음으로 드렸다는 말은... 아벨이 하나님께 이러한 말도 안되는 제사를 드릴찌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심령을 통찰하신다면 자신의 제사를 열납해 주실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그 사실을 간파한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과 긍휼이 크신 하나님에 대해 알있고 그 신실함을 의지해서 상한 심령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벨이 어찌 알았냐고 묻는다면... 아담과 하와 아버지 어머니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조만간 우한하고 부서질 나뭇잎 옷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표가 되는 양의 가죽옷으로 직접 해 입혀 주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가죽옷을 만드는 아벨로서는 양을 치며 강렬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드릴 때의 심정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신실하심을 아브라함은 알았고 자신의 상한 심정을 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들을 다시 살게 하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이삭 이야기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시어 부활하시는 것을 예표합니다. 더 이상은 성경이 금하는 허망한 변론이 되므로 제가 님의 글은 더 이상 읽지 않겠습니다. 사람마다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거 연약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의 정도에 따라 받기도 하고 내치기도 하기에 연약한 음식을 소화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딱딱한 음식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린 글을 꼭 카피해 놓으셨다가 후에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제가 님을 대적하며 쳐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각에 뛰어나신 주님의 은혜가 부족한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평안하세요.
님 글 보고 아이디어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가인의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의 답은 창세기 1-3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덴에서 아담을 쫓아내실때 아담으로 인해 땅은 저주 받았고 평생 일해야만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생육 번성 땅에 충만 땅 정복 생물 다스리는 업무를 주셨습니다.(창세기1장) 반면 지면의 씨와 열매 나무를 먹을거리로 거저 주셨습니다. 심지어 풀은 새와 짐승들 것이고요. 정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생물을 다스리고 생물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 생물들 먹이가 풀이고요. 3장 23절을 보면 동산에서 내보내고 땅을 갈게 하셨다는 구절이있어서 농사를 지었을걸로 착각하게 하는 부분인데 영어성경을 보면 아담의 근원이 되는 땅의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원래는 에덴을 지키는 일이 임무였는데 등급이 떨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한 다른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을 자세히 보시고 아담이 3일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계셔야 합니다) 종합해보면 땅의 소산물은 노동 값으로 거저 주신 것이고 노동은 땅의 짐승 가축 등 생물을 다스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양을 치는 일을 한 것이고 그 첫 것들을 하나님께 드려서 순전한 제사를 드린 것이지만, 가인은 순종하지도 제대로 일하지 않고 거저 주신 것들 즉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거둬 그대로 하나님께 드린것입니다. 한마디로 성의가 없죠. 사람이 다스리는 것을 드린게 아닌 생물이 다스리거나 먹을 풀떼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보다 하나님을 낮춘거라 악하게 보신 것입니다.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천사라던지. 하는 방식으로요. 그래봤자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 중 가장 “간교”하며 땅으로 쫓겨와 배로 땅을 기어야 하는 짐승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짐승, 평생 흙을 먹는 미혹의 영일 뿐이죠. 주의 일을 한다면서 사실은 주의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일삼는 가인과 같지는 않았는지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 그 자체에 순종하는 아벨과 같이 되어 죄에서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는 생명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을 드렸더니 받았고 가인은 땅의소산을 드렸더니 받지않았다 해석 양의첫새끼되신..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것/땅의소산은 육체이고 땅을 이미저주함 그니깐 안받음 즉 노력으로 천국가는것이 아닌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것(죄사함을 믿고)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함께가는것입니다 수고와댓가가 아닌 은혜로 가는것입니다 그 밖에 모든예화를 보세요 야곱과에서 가인과아벨 노아의방주등 두가지씩 예화가많습니다 결국 행위로가는것이아닌 은혜로주신것을 믿는 믿음으로가는것입니다
아주 좋은 설교 먼저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과 불가침하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고 남한과 북한이 수교하고 북한이 싫어하는 짓을 남한이 하지 말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북한을 저주하고 북한을 욕하고 이런 짓보다 북한은 정식 UN가입국가임에도 적국으로 전쟁당사자로 보는 것이야말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과 수교하는 것 상호 불가침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것
유한한 인간의 믿음과 정성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걸까요? 그람 그 믿음의 원천이 어디일까요? 사람에게서 난 믿음일까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믿음일까요? 하나님께서가 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오직 정성만 사람에게서 난 것을 하나님께서는 예외적으로 받으시는 것일까요? 그 정성은 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그 분안에서의 믿음이지요. 요즘 모르는 목사들이 사람의 믿음과 사람의 정성을 가르치는데... 그들은 그날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처벌에 대해 전혀 감을 못잡거나 나는 아니겠지?.. 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귀에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말만 합니다.
비유가 잘못되었네요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 우리를 위해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희생재물을 이미 그때부터 준비하셨으니 아벨의 양 재물을 기뻐 받으신겁니다.하나님은 인격이 있으신 분으로 무엇을 좋아하던 인간이 그분의 판단을 탓할수는 없는데 질투가난 가인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벨을 죽였어요 자기 기준 선악으로 죄를 저지른 아벨
하나님을 품는다는것은 어떤것인가요 하나님을 품는 마음을 어떠한 잣대와 기준으로 삼나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무엇으로 알수있나요 하나님은 끊임 없이 행동으로 보이고 보여주시라는데 왜 자칭선지자들의말로만믿으라고 하나요 요점은 왜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딱부러지게 정의내리지를 못하시나요 하나님을 믿는다는것을 믿으라는것인가요 ㅋㅋ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거짓선지자들은 땅의것을 보며 말하고 믿으라하며 나를사칭하며하늘의진실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못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기에 하나님의 말의 뜻을 알지 못하니 지상의것을 보고 말하니 이를 잘구분하여 너희가 진실로 진실로 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싶거든 하늘의 뜻과 하늘의세상 을 만드는자를 믿고따르라 그리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리라. 동학을 하세요 하늘의 뜻과 하나님을 뵐수있는 길로 나아갈수있는 진실의길인 참하나님의 축복된 세상을만나볼수가 있어요. 동경대전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다면 왜? 회당에서 길거리에서 남에게 보여지는 기도를 하는 외식하는 자들의 것을 배우지 말고 자신만의 독방에 들어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곳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따르지 않는것인가요? 하나님께서 회당에서의 단체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모세에게도 민족과함께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시고 선택하신 자들만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한 목소리로 외치는 단체의 소리를 들으시는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온전히 혼자일때 그들이 스스로의 믿음과 말씀을 향할때 그 개개인의 것을 듣고 계신게 아니겠습니까? 이 댓글은 곧 지워지겠죠. 다른 목사님들 또한 다들 지우시듯이요.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들었을때 그것을 무시하고 남들이 들어보지도 못하게 하는것 또한 외식하는 자들의 그것과 하나 다를것은 없을것입니다. 저는 저를 미쳤다 비난할 이들의 댓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저 삭제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1)늘 경청하는자
2)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사랑의 제물
3)기꺼이 순종하는자
이런사람 좋아하는건 하나님맘과 똑같은것같아요
아멘!
제가 가인 이었습니다.
삶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
4:10 예배란 '하나님이 내 인생의 중심에 있다는 태도' 라는 말이 참 마음에 와닿습니다. 지금 영상을 보는 이 순간 뿐만 아니라 예배시간 그리고 삶의 모든 시간이 주님께 예배를 드릴 때 저의 마음이 항상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갈 때 그 예배가 의식이 아닌 진정한 삶의 예배가 됨을 다시 한번 깨닫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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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제물을 받으신다는 말씀
저자신을 온전히 드리기에 힘쓰겠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소망합니다. 정말 새로운 배움이네요. 가인과 아벨 이야기를 참 많이 들어왔는데 오늘 설교는 넘 신기해요. 감사합니다. 실천합니다. ㅠㅠ
말씀에 대한 통찰력이 정말 뛰어나십니다.
목사님이 되어 주셔서 참 감사합니다
핵심을 찌르는 설교입니다 감사해요.! 어느 장소에 있으나 오직 예수님 안에 머무르는 하루하루를 소망합니다. 💚
그런 의미였군요...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말씀에 제가 마침 첫째인지라 마음에 은근히 상처가 되었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바로 알게 됐습니다 -너무나 유치한 생각이었죠- 요즘들어 특히 이 부분이 많이 궁금했었어요.
명쾌한 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귀한 말씀을 통해 깨닫는 시간이 되어 하나님께 감사하고ㅠ 목사님 너무 귀하세요!!
정말 참 깨닫게 하시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목사님 주옥같은 말씀 감사합니다. 저에게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말씀입니다. 핵심중의 핵심내용이라고 생각됩니다.
“삶이 뒷받침되지 않는 예배는 예배가 아니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17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1-2
아멘 🙏🏻
정말 핵심을 콕 찌른 설교입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이 제물을 드리기 전부터 그의 마음과 제물을 드리는 의도를 알고 계셨으리라 생각됩니다.
가인이
하나님의 거절때문에 악행을 저지른게 아니라 그가 악인이기때문에 악인의 제물을 받으실 수 없었던 것이죠.
자신의 죄악을 주께서 드러내실 때
회개하하는 사람이 의인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인은 억울해하고 분노합니다.
주님께 거절당했을 때
내 안에 일어나는 것이 회개인지
억울함인지를 분별해보시면
자신이 가인인지
아벨인지 알 수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가인을 사랑하셨기에 거절을 통해
그 마음 속의 죄악을 깨달아 돌이키기를 원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가인과 가인의 제물을 받으셨다면
가인은 평생 자신이 의로운 줄여기며 회개할 기회조차 없이 죽었을 것이니까요.
오늘도 기도의 거절을 통해
우리의 죄악을 들춰내시는 주님의 지독하신 사랑에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사람과 제물을 함께 받으신다!'
'삶과 예물은 분리되지 않는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우리의 중심 전체가 하나님을 향해 있는 예배자 되길 기도합니다.
성경읽으면서 이해되지못했던 부분이었습니다..이제 깊은 뜻을 알게되었습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목사님~~
귀한말씀감사합니다~~♡
아벨과 가인의 제사의 상징 대조는 핵심은 피흘림에 있습니다.
피흘림만이 죄사함이 있다는 말씀의 계시이며,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언하는 계시의 말씀이 태초에 계획된 하나님의 계획임을 증명하십니다.♡ 아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왕성한 생명력의 본성이 절제안에 다스려지지 않았을때에 태초부터 탐심 즉 모든 죄의 근원이 되며 죄의 종이 됨을 계시하는 말씀
아멘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시옵소서
오래전 예배중 너가 은혜받는게 문제가 아니고 내가 너의 예배를 안받으면 어쩔래?하시는 주님음성으로 예배가 확 바꿨읍니다 그시간부터 불평과 불만은 싹 사라졌읍니다
정말 섬찟한 기억입니다
우리주님
깨닫는지혜를 주니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오늘도 승리하게 도와 주시옵소서
믿음으로 내가 살길 원합니다
하나님 받으시는 예배하게 인도하소서
믿음,소망,사랑:이웃관계와진리안에서
믿음으로 예배하자 말씀을 먹자 아멘
예배의 의미
다시 한번 깨닫고 상기시켜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소망합니다 ~~
아멘 🙏
목사님께서 주시는.영적 양식에 늘 감사드립니다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내 안에서 함께 먹고~(주님의 살)
내 안에서 함께 마시며~(주님의 피)
언약의 말씀과 순종으로 예배 드리며
늘 함께 사시길 원하시는 주님"을 묵상합니다!!~♡
저는가장 첫번째가 되는 제물을 드리지 않았던 가인의 이야기로, 십일조에 대한 말씀으로만 늘 기억하고 있었어요. 오늘 목사님을 통해 내 삶과 마음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시는 기쁨의 말씀으로 확장하여 가르쳐주시네요. 감사해요.🌼
예배의 의미와 본질. 아멘!
성경을 잘게 잘 발라서 성도님들에게 먹여주는 것 같습니다. 먹어서 잘 소화해야되는것은 우리 삶의 몫입니다.
@@진리의성읍 그대 마음에 악한것이 느껴집니다 ㅡ ㅡ
조목사님 입술에서 나오는 소리는 하나 같이 사돌바올 같도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말씀을 하시니 진리로다. 거룩하시도다. 아멘
주님 용서해 주세요.
용서해 주세요.
아멘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아멘만 하는것이 중요한것이 아니라 진리안에 그영안에 사는것이 중요 합니다
감사합니다
궁굼증이 풀려서 감사합니다
말씀한절ㅡ임팩트ㅡ넘좋아요
아멘!
주여 용서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너무 좋습니다
아멘🙏🌻🔥
내주.
무릇.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받는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로8:14
이런 편집본 너무 좋습니다ㅠㅠ 공유각♡
할렐루야 아멘!
주여! 회개합니다.
하나님이 안 받으셨다면 그게 바로 답이다. 억울하다 하면 하나님께 물었어야지
희생제사가 없는 예배는 받을수 없어요. 하나님이 아담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주고 첫 희생제사를 보여주셨습니다. 아벨읔 순종햇지만 가인은 그 희생제사가 그리스도를 예표한다는걸 믿지 않았고 자기가 원하는대로 제사를 드렸기에 받지 않으신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우리생각형편으로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주신 희생제사인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드리는 예배입니다.
믿음으로 헌금해야겠내
그 제물에대해 증언하느니라
칭3:15, 창3:21 하나님의 언약을 확인 하는 제사 이것을 믿느냐 아니냐가 key 아닐까요
레위기의 흠없는 생축 전가 죽음 드려짐 받으심
야살의책에 보면 아벨과는 다르게 가인은 최고의 곡식이 아닌 질떨어지는 곡식을 드렸다고하네요.
중심을 보시는 천주시니 당연히 안받으셨고요.
형제 여러분 염전 노예피해자들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아벨은 피가 죄를 속한다는 믿음이 있었고 가인은 자기정성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의 중심에 악함을 보시고 안 받으신 거라고 성경구절에 나옴니다 ㅡ 그들의 소산을 아시고 준비하라 하셨으니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는 마음이던지 그 마음(중심) 잘못된 것입니다 ㅡㅡ
요일3:12
자식들이 예배드릴 때 부모된 아담과 이브는 어디에 있었을까?선악과 사건 이후에 아담과 이브는 어떻게 예배 드렸을까? 아담과 하와의 예배에관한 이야기는 찾을수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왜 가인의 제사를 받지 않으시고
아벨의 제사를 기뻐하시고 의롭다라고 칭하셨을까?
창세기 4장에는 아무리 읽어보아도 그 이유를 알수 없어
여러 선지자들이 다르게 해석을 하고 있으나,
히브리기자가 그 이유를 설명해 놓으셨습니다
히 11장 4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초에 가인과 아벨에게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셨다라는 말씀인데요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라고 하신 것처럼
당시 가인과 아벨의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에덴동산에서 쫒겨나 고통과 수고의 삶을 살다가 결국 죽을수 밖에 없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 자녀들 가인과 아벨도 역시 그들의 소원은 고통과 수고도 없고 또 사망도 없는
에덴동산에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요
히브리기자가 언급했듯이 "믿음은 바라는 것(소원)들의 실상이요" 한 것처럼 바라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바라것을 이룰수 있는 길로 그들에게 양의 피흘림의 제사를 드릴것을 증거하셨는데요
가인은 그 증거를 믿지않고 자기 의견대로 농산물로 제사를 드렸고(농사하는 자 이기때문이 아닌)
아벨은 하나님의 그 증거를 믿고 믿음으로 순종하여 양을 제물로 드림으로 의로운자라는 칭함을 받았지요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의로운 믿음이란,
하나님의 증거를 믿고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고 아벨처럼,
하나님의 그 증거를 믿지않고 자기 의견대로 행하는 것은 불의한 믿음이 되는 거지요
아브라함도 노아도 모두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것도
허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한것이지요
사울왕도 그대로 순종하지 못하고 자기의견대로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좋고 살찐양을 살려두었으니 선지자에게 꾸짖음을 받아
결국 하나님서 사울을 왕 세운 것을 후회한다 하셨습니다.
가인과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고자 하신것은
장차 어린양의 실체로 등장하실 그리스도의 희생의 피로
우리가 바라는 소망인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인데요
그것 을 그대로 믿고 행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에 참예하여 죄사함을 얻고
영원한 소망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다 믿음입니다
🙏
창1장24절에서30절을 읽고 묵상해 보았습니다
창1장31절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드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라고 또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에서 내어 놓으실때 마음은 심히 좋지 않으셨을거라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생명 잉태 출산의 고통을 주셨지만 히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때 그마음을 알게하시려는 마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 후손인 아벨은 심히 좋았드라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한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다스리라 하신것을 아벨은 살생을 한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돌이키시고 아벨의 마음을 상치 안하시게 하시려고 그의 제사를 기쁘게 받아들인것이라 생각이듭니다. 가엽히 여기고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도 사랑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신 푸른초장을 집밣는 양을 보고만 있는 가인을 두고 보실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죄사함 = 피흘림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도 없느니라" < 히브리서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요한복음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를 보고 마음이 상하셨다 하신적이 없습니다. 성경을 자체 해석하면 안됩니다. 성령님 도움으로 성경을 읽으면 진리를 알게 하십니다. 성령을 구하십시오.
제물은 사람의죄에대한 속죄물을 하나님께바치는 행위로써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죄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제물되심을 아벨은 알고 피를 흘리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양을 드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아벨은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피의 재물 입니다
가인은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무엇을 하실지도 알지못하며 하나님을 위한답시고 행하지 않기를
속죄물은 그이후의 얘기고 아벨과 가인은 하나님께서 본인을 향한 두사람의 마음(중심을) 보시려고 제물을 올리라 한것입니다 ㅡ 가인은 그 중심이 악한 것을 보시고 안받은 겁니다 ㅡ
주여
질투심으로 사람을 죽일수 있는 사람이라면 제사가 문제가 아니라 가인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거같습니다 그런 사람믜 제사를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을거 같습니다
아벨의 제사를 받은 이유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피 언약으로 순종하고 드렸기 때문 아닐가요 ?
가죽옷을 잊혀주셨을 때 이미 피 언약에 대해 말씀 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이 받고 싶어하시는 제사가 피제사를 원하신다걸 이미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제물을 준비하면서 잘못했든 가인의 중심에 악함을 보시고 안 받으신 겁니다 ㅡ 이미 그들의 소산을 아시고 제물을 준비하라셨으니 제물의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준비하는 마음이던지 하나님께서 가인의 악함을 보시고 안 받으셨다고 성경구절에 나옴니다 ㅡ
맞습니다.
히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욱 뛰어난 희생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자기가 의롭다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그의 예물들에 대하여 증언하시느니라. 그가 죽었으나 믿음으로 여전히 말하고 있느니라.
👍
가인과 아벨 애니메이션 링크 걸어둠요~
아벨로 살바에 가인으로 사는게 낫다
아벨은 비참하게 죽어서 허무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가인은 적어도 자신의 몸은 보호했다 하나님께 평생 유랑하는 저주를 받았지만
아내와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후손들을 보았다
조정민 목사님 메세지 잘듣고 있는데 이부분 해석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가인은 하나님의 믿음이 없고 아벨만 하나님을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둘다 하나님을 믿었지만 가인 자기생각에 가장 좋은것으로 드리면 된다고 생가해서 정성것 제사를드렸지요. 하지만 아벨은 하나님의 법을 따라 믿음으로 제사 드렸어요.. 죄사함은 피에 있다고 했습니다. 피가 없음 죄사함이 없습니다. 우리보기에 좋은것이 아니라 주님보시기에 좋고 합당해야 합니다.
가인은 농사를 지으므로 정착해야하고 정착하므로써 자꾸 쟁여놓으려는 탐욕이 있었기에 제사를 지내도 하나님께 거래형식으로 드렸으리라 허나 아벨은 목축업이기때문에 자꾸 옮겨다녀야하는것 때문에 나그네처럼 사는 미니멀이기에 그날 그날 자족하며 탐욕이 없기때문에 제사도 오직 감사함으로 댓가를 바라지않는 온전함으로 드렸기 때문일것이다 그리고 당시 가장천시받은 직업이 목축업이었고 이스라엘백성들도 목축업이 대부분 이렇듯 하나님의 노동자들의 절규 아벨의 피소리에 관심을 가지신다 즉 사회적 약자 약소국 영육간의 가난한자를 구원 하려 하신다
대박!!!🍒
이제껏 교회만 다니면, 스스로 하나님, 예수님을 믿는다고 생각하면 그것이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라고, 구원받는다고 속아 왔습니다. 이는 앞에 선 지도자가 성경을 성경으로 신령한 것을 신령한 것을 풀어 하나님의 뜻을 진리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사람의 생각, 사람의 수준, 본능적으로 아는 것, 문자적/표면적으로만 성경을 본 결과입니다. 그래서 지금 기독교는 진리 가운데 있지 못해 세상보다 더 타락한, 어두움 가운데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교회는 문을 닫고 싶다고 하셨으면, 이러한 예배는 받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반드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진리대로 알아야만 합니다.
교회에 바치는 수많은 복채(?)들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믿음ㅕㅕㅕㅕ
어떤이는 농업국가 이집트와 같은 나라가 아닌, 유목민족을 들어 사용한다는 추측도하기도함
가인은 동생 아벨의.제사를.받은것을 죽이기까지 질투한것을 생각해볼때 가인은 하나님에대한 믿음과 사랑이있었다. 요즘 성도들에게 예배에대한 열정과 하나님에대한 헌신을 최선으로 드리려하며 으뜸으로 하려는자가 있는가 가인은 믿음의 사람이었고 그렇기에 가인은 하나님의 신판보다는 그를 보호하시고 후손들을 축복하였듬
왜 성경엔.카인의 제물부분만 나오고 믿음과 삶에.대한 부분은 나오지 않나요? 아담과 이브의 죄악은 낱낱이 자세히도 나오는데 카인의 죄가 무엇이고 태도가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건가요?
태어남 자체가 죄덩어리죠.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태어난 최초의 인간이 아벨과 가인이에요. 선과 악을 아는 지식은 죽음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 하셨고요. 그 죽음을 피하려면 진정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데 아벨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셔서 죽음에서 자유를 얻게되었어요. 하지만 가인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꿰뚫어 보고 계셨죠. 가인이 드린 것은 경쟁과 질투의 마음이었어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내 것은 받지 않으신다고 생각한거죠. 진실로 드렸다면 혹시 받지 않으시더라도 더 좋은 것을 드리기 위해 노력했겠죠. 하지만 가인은 살인을 선택했어요. 심지어 하나님께서 아벨 어딨냐고 물으셨는데 자신이 아벨을 지키는 자 이냐면서 따져묻고 도발했어요. 하나님보다 이미 높아진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죠. 그래서 가인은 죽음에서 더 이상 자유로울 수 없어요. 짐승들에게 쫓기며 죽음의 공포를 느끼지만 죽임은 당할 수 없게 되었죠. 가인은 회개하지 않고 지옥을 선택한겁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가인과 같은 결말을 맞이하게 될거에요. 죽음은 늘 근처에 도사리고 있지만 죽을수는 없는 운명이 되는거죠. 참고로 가인의 족보에는 언제까지 살았다는 나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에 죽이는 자가 있으면 그 사람은 7배의 벌을, 가인의 후손 라멕에게는 77배의 벌이라고 라멕 스스로 선포하죠. 그 계보는 영원히 죽지 않을 혈통으로 정해져 있다는 겁니다. 바로 적그리스도의 혈통이죠. 큰뱀은 무저갱으로 미혹된 자들은 그와함께 불못으로 가는 결말이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가인이 회개 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겁니다. 적그리스도의 후손은 여기저기 우리들 곁에 있습니다. 우리 피에도 섞여있는지 모르죠. 그러나 우리에겐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대제사장이며 단번에 모든 죄를 대속하신 그 분을 보내주셨습니다. 믿으면 영원한 죽음을 피할 수 있게되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신령한 몸을 얻어 일하거나 자지 않아도 피로함을 느끼지 않으며 새 예루살렘성에 출입하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어떤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이 말씀 풀영상 보길 원합니다.
영상 올려줄수있나요?
저 파란색 성경이 너무 멋있는데 판본을 알수가 없다
피의 제사는 언약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이기에 가인의 길은 잘못된 것이다
회개합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가인은 악인에게속했다고 증언합니다.
제사에는 곡식도받으시는데 제물문제보다는 사단을따르던 가인의신앙심이 거부당한것입니다
가인은악한자에속해서 하나님이안받으신것입니다
아벨은 믿음으로 드렸다고 하셨는데 아벨은 뭘 믿었나요??
아벨은 어린양되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십자가에 흘리신 피로 인간에 모든죄를 없애고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앞에 설 때는 예수님을 내놓아야됩니다
어린양의 피로 죄 용서 받고 의롭게 된다는 믿음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 받고 구원 얻는다는 믿음.
토요일을 주일예배로 드리는 교회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물론 주일예배도 드리고있어요
가인은 왜 믿음이 없이 드렸던걸까요...?
가인이 거부 당한 이유는 그가 히브리 민족(목동)을 그토록 핍박했던 농부였기 때문이죠.
글쎄요. 좋은 말씀인듯하다가도, 결국은 가정법이네요. '가인은 아벨이 제사 지내러 가니까 따라왔다. 곳간에 있는 거 대충 챙겨서 왔을지도 모르겠다.'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자기 생각대로 설교하고, 자기 생각대로 예배하고.
저런걸 *가인의 길* 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가인의 중심에 악함을 보시고 안 받으신 겁니다 ㅡ 그들의 소산을 익히 알고 준비하라하셨으니 종류가 문제가 아니라 드리는 마음을 보신 겁니다 ㅡ 그들의 중심을 보시려하신 겁니다 ㅡㅡ
1983년!
오는 세대에게 증거하는 대속의 진리의 유무를 말씀하셔야 되지않습니까?
어떠한 믿음? 뭘 믿음으로 드린다는 것인지..
이런 댓글이 복음을 깨달은 자의 반문이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피로 죄 용서(의롭게 된다는) 받는다는 믿음- 어린양의 피로 하나님께 나아갈수 있다는 믿음.
근데 이설교에는 희생물. 피흘림. 죄용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없다.
제사의 희생물이 없는건 기독교에 예수님이 없는거와 같다.
도대체 뭘 믿고? 이설교대로 라면 제사 제도를 왜? 만들었는지 ? ㅎ
앙꼬없는 찐0
아멘
베이직교회 설교말씀 유튜브 동영상에서는
댓글을 쓸 수가 없어서 여기에 씁니다.
요근래에 설교말씀 동영상을 보는 중간중간에
광고영상이 너무 많아서..ㅠㅠ
말씀을 듣는데에 너무 방해가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
처음에 보시기 전에 스크롤을 영상 맨~ 뒤로 한번 밀어놓으시면 끝나는 화면 나오거든요? 그리고 나서 다시 재생 해보셔요
(참고로 이건 핸드폰에서 보실 때를 말씀드려보는 겁니다^^)
@@christineluna7312
답글 감사합니다♡
가인이 온갖 정성으로 제단을 쌓지 않았다면 동생을 죽이고 거기에 하나님께 대드는 분노를 표출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채식이었던 당시로 먹지도 못하는 양에다가, 아니 양의 고기도 아니고 옷의 용도였던 가치있던 양의 가죽도 아니고 쓰레기였던 양의 지방덩어리로 드렸던 아벨의 제사와, 먹을 수 있는 곡식으로 드렸던 가인의 것 중 누가 더 정성의 제사였을까요?
가인은 "가장 좋은" 곡식으로 드리지 않았다고 목사님들은 우깁니다.
사실 그가 정성으로 드렸는데 자기 제사를 받지 아니한 것에 대한 가인의 정신적 스트레스 즉 자존심에 상처, 형으로서 우월감에 대한 수치, 치우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분노 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교만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기로 결정한 것도 아벨의 상한 심령이 있었습니다. 가죽옷을 형에게 물물교환해서 곡식을 얻었던 아벨에게는 먹을 음식이 없었기로 먹지 못하는 양으로 제사를 드릴 수 밖에 없었던 상한 심령으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런 동생의 제사의 원인은 가인에게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도 모르던 욕심많은 형 가인에게, 하나님께서 불쌍한 아벨에 대해 묻습니다. "네 동생이 어디 있느냐?" 물었을 때 이 싸가지 없고 이기적인 가인이 "내가 어디 동생을 살피는 사람이냐?" 답한 것입니다.
오늘 날 하나님께서는 이기적인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불쌍한 이웃이 어디 있느냐? 우린 답합니다. 이렇게요. "내가 내 이웃을 살피는 자니이까?"
@노란얼굴 저는 단한 번도 카톨릭교회에서 한 설교를 단 1초도 들어 본적이 없습니다.
@노란얼굴 저도 이웃 이야기가 아니고 아벨의 마음과 가인의 마음 상태를 서술한 것입니다.
왜 불쌍한 이웃이었던 동생 아벨을 가인이 전혀 생각해 주지 못한 이기적이고 자존심만 많았던 가인의 영적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제사를 하나님께서 받지 않았다고 쓴 것입니다.
사람의 정성이 없어서 하나님이 제사를 받고 않받고 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사람의 정성은 타 종교의 신인 귀신들이 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받으시는 분이지 인간의 정성이 가득들어간 뻔질한 제사를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유한한 그 잘난 인간의 정성을 요구하신다고 설교하는 목회자는 잘 알지도 못하고 가르치는 종입니다.
물론 상한 심령과 더불은 정성된 제사는 더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 마치 아벨의 제사가 그랬듯이요.
하지만 정성의 문제는 가인도 아벨 못지 않았습니다. 그랬기에 가인도 열납되지 않은 자신의 희생에 하나님과 아벨에 대해 엄청 분노했던 것입니다.
정성의 문제라면...
가인이 생각하길 당시 동생의 쓰레기에 불과했던 양의 지방으로 제단을 쌓은 것보다 먹을 수 있었던 곡식으로 드린 자신의 것이 더 하나님앞에 합당하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연히요. 그런데 웬걸??? 그래서 가인은 생각하길 공평하지 않은 하나님에 대해 분노의 표출로 동생을 죽인 것입니다.
정성이 없어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고요? 휴~
가인이 드린 "땅의 소산" 에는 언어 유희가 들어 있습니다.
1) 땅의 소산인 곡식들
2) 흙덩이 땅에 불과한 인간의 소산인 자존심, 이기심, 자만심, 우월심, 교만함 등등...
가인이 드린 제사는 2) 인간에게서 나온 소산인 자존심 우월심, 교만함으로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정성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노란얼굴 열린 마음없이 자기 것에 대한 주장이라면 우리의 말들은 성경이 전한대로 그리스도인이 피해야 할 허망한 변론이 됩니다.
1) 아벨이 불쌍한 이웃이라는 것은...
당시는 물물교환으로 생계를 꾸렸었습니다. 형은 농사꾼이였고 동생 아벨은 가죽 옷을 만들려는 용도로 양을 키운 목자였습니다.
아벨의 음식은 가인과 물물 교환으로 얻은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할때 먹을 양식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제사는 먹을 것으로 다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하나님께 드릴 양식이 없었습니다. 형 가인이 양식을 가죽옷과 바꿀때 충분하게 보상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도 하고 당시 아벨에게 형 가인이 도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벨 그는 하나님께 좋은 것을, 많은 것을 주님께 드리기를 원했으나 그리 되지 못한 것에 대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자기 마음은 다 드리기를 원하지만 못하는거죠. 마치 과부가 지금의 2000원 정도의 헌금을 드릴 때 옆에 부자가 드리는 헌금을 보며 상한 심령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과부가 부자보다 더 나은 헌물을 드렸다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에벨의 제물은 동전 두잎이요, 부자의 헌금은 가인의 헌물과 상통 됩니다.
마치 어린 아이의 초라했던 물고기 두마리와 보리떡 5개 드린 것과 같은 심정과 같았습니다. 당시 물고기는 버려지는 물고기라는 의미로 헬라로 쓰여져 있고 보리떡은 아주 못 사는 사람의 음식이었습니다.
이렇게 그들 모두 상한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아벨의 헌물은 그런 상한 마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2) 가인의 교만함은 어떻게 알 수 있는지에 대하여...
땅의 소산에는 2가지 언어유희가 있다고 설명 드렸습니다.
ㄱ) 외적인 것 해석: 땅에서 나는 곡식
ㄴ) 영적인 해석: 흙덩이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인 자존심, 우월감, 욕심 이기심 같은 인간의 연약한 마음 즉 교만이라는 소산들입니다.
가인은 성경에서 언급한 대로 땅의 소산(영적 해석)으로 드렸고 쓰레기에 불과했던 양의 지방으로 드린 아벨과 비교해 보면 너무나 합당한 제사였습니다. 스스로도 그리 생각했기에 동생의 제사에 도움을 주지 않았지요. 도리어 동생의 제단에 코 웃음을 쳤룰지도 모릅니다.
가인은 꼭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기를 원했음은 자명합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거인의 분노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분노의 시발점이 바로 땅의 소산에서 드린 제사였다는 것입니다. 땅의 모든 소산은 그 기본적 기초가 다 교만함입니다
3) 더 나은 제사를 드린 아벨에 대하여...
아벨이 준비한 제사는 상한 심령으로 드린 것입니다. 나중에 그리스도로 예표된 양을 아벨이 드릴때 자신의 부족함 즉 드리고 싶으나 제대로 다 드리지 못하는 아벨의 상한 마음을 양을 죽일 때 마치 자신과 동일하게 여긴 것입니다. 그 결과 자신도 죄인(가인)에 의해 희생제물이 됩니다. 마치 양이 죽임을 당하듯이요. 마치 그릿.도가 죄인ㄷ들에게 죽임을 당했듯이요.
그리스도를 예표한 제사 즉 자신을 드리는 제사보다 더 나은 제사가 어디 있습니까?
4) 피의 제사이기 때문에 받은 것이다 라는 생각에 대하여..
성경을 연구하면 하나님은 당시 문화, 법, 상식, 관습을 이용하여 당시 시절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었습니다.
시내산의 언약도 근동 지방의 문화 풍습을 이용하여 언약 채결 세레모니를 하셨고요.
님이 잘 아실 터입니다만,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라는 계명도 당시에 이웃을 보호하고 사랑하는 법으로 사용되었던 법입니다. 지금은 오늘 날 그 법을 이웃 사랑에 쓰지 않지요. 시대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획도 변함이 없다는 의미는 그 문자가 그렇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뜻에 일점 일획이라도 변화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핳례도 아브라함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닙니다. 근동에 이미 있었던 문화입니다.
피의 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미 하나님께서 창세전 부터 계획한 제사일겁니다. 하지만 아벨이 그 미래를 알고 피의 제사를 드린 것은 아닙니다.
피의 제사는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선지자가 드린 제사입니다. 그 때문에 더 나은 제사라고 성경은 언급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의 피의 제사를 예시한 사건일 뿐입니다.
피로 드렸기에 더 나은 제사였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마치 마리아가 향유를 부었을 때 꼭 형유만 예수님이 받으시는 예물이었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시했기에 다른 예물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예수님이 받ㅇ.시는 헌물은 오직 향유였어만 되렀다 라고 주장하면 너무 나간 주장이 되듯이 아벨의 피의 재사도 마찬 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이 예표된 제사였을 뿐입니다. 히브리서에 더 나은 제사로 칭함을 받은 것은 하나님이 원하는 제사는 상한 마음이라고 시편 51:17에 다윗의 말로 분명하게 언급하십니다.
@노란얼굴 마지막으로 드리는 말씀입니다.
우선 성경적 믿음에 대해 층분히 이해하시는지요.
히브리어로 아만이고 형용사 형으로 애무나(신실함이 있는)입니다. 헬라어 믿음, 곧 피스투스는 신실함을 입다 입니다. 관념이 아닙니다.
히브리어 믿는다 라는 동사는 관념 동사가 아니고 행동 동사입니다. 그것도 힢일동사로 강조 사역형(수동형)이라고 하는데 믿음은 내 의지로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로 이루어지는 것임을 선포합니다.
더 쉽게 이해하시려면 분당 우리교회 이찬수 목사님의 이번 주 설교를 들으시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아 유튜브에 보면 류모세 목사님의 믿음에 대한 설교 영상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래서 아벨이 믿음으로 드렸다는 말은...
아벨이 하나님께 이러한 말도 안되는 제사를 드릴찌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상한 심령을 통찰하신다면 자신의 제사를 열납해 주실 것임을 분명히 알았다는 것입니다.
아벨은 변함없으신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알았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 기자는 그 사실을 간파한 것입니다.
상한 심령을 무시하지 않으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사랑과 긍휼이 크신 하나님에 대해 알있고 그 신실함을 의지해서 상한 심령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아벨이 어찌 알았냐고 묻는다면...
아담과 하와 아버지 어머니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실 때 조만간 우한하고 부서질 나뭇잎 옷 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예표가 되는 양의 가죽옷으로 직접 해 입혀 주신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을 가죽옷을 만드는 아벨로서는 양을 치며 강렬하게 느꼈을 것입니다.
마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아들 이삭을 드릴 때의 심정과 동일합니다.
하나님의 변함없으신 신실하심을 아브라함은 알았고 자신의 상한 심정을 아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들을 다시 살게 하실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 아브라함의 이삭 이야기는 예수님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 나시어 부활하시는 것을 예표합니다.
더 이상은 성경이 금하는 허망한 변론이 되므로 제가 님의 글은 더 이상 읽지 않겠습니다.
사람마다 딱딱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거 연약하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해의 정도에 따라 받기도 하고 내치기도 하기에 연약한 음식을 소화할 수 밖에 없는 사람에게 딱딱한 음식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드린 글을 꼭 카피해 놓으셨다가 후에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제가 님을 대적하며 쳐 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지각에 뛰어나신 주님의 은혜가 부족한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원합니다.
평안하세요.
님 글 보고 아이디어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것을 기쁘게 받으시고 가인의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 것의 답은 창세기 1-3장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에덴에서 아담을 쫓아내실때 아담으로 인해 땅은 저주 받았고 평생 일해야만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6일에 사람을 창조하실 때 생육 번성 땅에 충만 땅 정복 생물 다스리는 업무를 주셨습니다.(창세기1장) 반면 지면의 씨와 열매 나무를 먹을거리로 거저 주셨습니다. 심지어 풀은 새와 짐승들 것이고요. 정리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셨고 사람은 생물을 다스리고 생물은 열매를 맺게 합니다. 그 생물들 먹이가 풀이고요. 3장 23절을 보면 동산에서 내보내고 땅을 갈게 하셨다는 구절이있어서 농사를 지었을걸로 착각하게 하는 부분인데 영어성경을 보면 아담의 근원이 되는 땅의 일을 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원래는 에덴을 지키는 일이 임무였는데 등급이 떨어져 하나님의 형상을 한 다른 사람들이 하던 일을 하게 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은 성경을 자세히 보시고 아담이 3일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계셔야 합니다) 종합해보면 땅의 소산물은 노동 값으로 거저 주신 것이고 노동은 땅의 짐승 가축 등 생물을 다스리는 일이었습니다. 아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양을 치는 일을 한 것이고 그 첫 것들을 하나님께 드려서 순전한 제사를 드린 것이지만, 가인은 순종하지도 제대로 일하지 않고 거저 주신 것들 즉 하나님이 주신 것들을 거둬 그대로 하나님께 드린것입니다. 한마디로 성의가 없죠. 사람이 다스리는 것을 드린게 아닌 생물이 다스리거나 먹을 풀떼기를 하나님께 드린 것이니, 하나님이 지으신 생물보다 하나님을 낮춘거라 악하게 보신 것입니다. 사탄은 여전히 하나님을 낮추고 자신을 높이는 교만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타락한 천사라던지. 하는 방식으로요. 그래봤자 하나님이 지으신 “짐승” 중 가장 “간교”하며 땅으로 쫓겨와 배로 땅을 기어야 하는 짐승 중에서도 가장 낮은 짐승, 평생 흙을 먹는 미혹의 영일 뿐이죠. 주의 일을 한다면서 사실은 주의 일을 하지 않고 오히려 악을 일삼는 가인과 같지는 않았는지 경계하고 하나님의 뜻 그 자체에 순종하는 아벨과 같이 되어 죄에서 죽음에서 자유로워지는 생명이 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목사님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가인이 악한자들의 소속..즉 마귀소속이라 안받으신겁니다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을 드렸더니 받았고 가인은 땅의소산을 드렸더니 받지않았다
해석 양의첫새끼되신..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의미하는것/땅의소산은 육체이고 땅을 이미저주함 그니깐 안받음
즉 노력으로 천국가는것이 아닌 예수님이 이루어놓으신것(죄사함을 믿고)을 믿고 그 믿음으로 함께가는것입니다
수고와댓가가 아닌 은혜로 가는것입니다
그 밖에 모든예화를 보세요 야곱과에서 가인과아벨 노아의방주등 두가지씩 예화가많습니다 결국 행위로가는것이아닌 은혜로주신것을 믿는 믿음으로가는것입니다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않으신 이유는 여전히 이해되지 않네요. 제물의 종류의 차이때문에? 한낱 피조물인 제가 어찌 창조주의 뜻을.....
하나님의 전적인 전권이므로.....
동물의 피를 통한 대신 벌받음, 대속 개념을 알려주시려고 동물 제사만 받으신 겁니다. 나중에 예수님의 보혈로 인한 죄사함 보면 깨달으라고요. 그래서 곡식은 받지 않으신거에요. 피로 인한 대속, 죄사함을 배울 수 가 없어서.
죄사함 = 피흘림
"피 흘림이 없은 즉, 죄 사함도 없느니라" < 히브리서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요한복음
하나님은 처음부터 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그양은 예수님의 표상이였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할수 있기 때문에 양으로 제사를 드리라고 했습니다.
김북한목사 강의중에서
가축, 어린 양을 제물로 제사하라고 하나님께서 가인 이전에 성경 어디에 말씀하셨나요? 저는 못찾겠네요.
여전히 ?입니다.
@@tsk2290 무언가를 줘보라고 시킨 뒤 에 하나는 받고, 다른 하나는 안받으면, 그거 자체가 교육... 아닌가요?^^;;
아주 좋은 설교
먼저 북한과 화해하고
북한과 불가침하고
미국과 북한이 수교하고
남한과 북한이 수교하고
북한이 싫어하는 짓을 남한이 하지 말고
이게 하나님의 뜻이다.
북한을 저주하고
북한을 욕하고
이런 짓보다
북한은 정식 UN가입국가임에도 적국으로 전쟁당사자로 보는 것이야말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
북한을 사랑하고 북한과 수교하는 것
상호 불가침 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가운데 있는 것
유한한 인간의 믿음과 정성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걸까요? 그람 그 믿음의 원천이 어디일까요? 사람에게서 난 믿음일까요? 하나님에게서 나온 믿음일까요? 하나님께서가 답이 아니겠습니까? 그럼 오직 정성만 사람에게서 난 것을 하나님께서는 예외적으로 받으시는 것일까요?
그 정성은 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고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됩니다. 그 분안에서의 믿음이지요.
요즘 모르는 목사들이 사람의 믿음과 사람의 정성을 가르치는데...
그들은 그날 알지도 못하면서 가르치는 것에 대한 처벌에 대해 전혀 감을 못잡거나 나는 아니겠지?.. 합니다.
그러니 사람의 귀에 보암직하고 먹음직스러운 말만 합니다.
복음이 없네요 예수님위 십자가가 말씀에 없네요
복음이 어디에 없을까요… 저는 예수님의 말씀이 다 들리는걸요..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삶, 믿음에 대한 설교인데 그것이 복음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비유가 잘못되었네요 목사님
하나님께서는 죄지은 아담과 하와의 자손 우리를 위해 어린양이신 예수님을 희생재물을 이미 그때부터 준비하셨으니 아벨의 양 재물을 기뻐 받으신겁니다.하나님은 인격이 있으신 분으로 무엇을 좋아하던 인간이 그분의 판단을 탓할수는 없는데 질투가난 가인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아벨을 죽였어요 자기 기준 선악으로 죄를 저지른 아벨
하나님을 품는다는것은
어떤것인가요 하나님을
품는 마음을 어떠한 잣대와 기준으로 삼나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무엇으로
알수있나요 하나님은
끊임 없이 행동으로 보이고 보여주시라는데 왜 자칭선지자들의말로만믿으라고 하나요 요점은 왜
하나님의 진실한 마음이
무엇인지를 딱부러지게 정의내리지를 못하시나요
하나님을 믿는다는것을 믿으라는것인가요 ㅋㅋ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거짓선지자들은 땅의것을
보며 말하고 믿으라하며
나를사칭하며하늘의진실의 뜻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못하기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기에 하나님의 말의 뜻을 알지 못하니 지상의것을 보고 말하니
이를 잘구분하여 너희가
진실로 진실로 나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싶거든
하늘의 뜻과 하늘의세상
을 만드는자를 믿고따르라 그리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리라. 동학을 하세요
하늘의 뜻과 하나님을 뵐수있는 길로 나아갈수있는 진실의길인
참하나님의 축복된 세상을만나볼수가 있어요. 동경대전
하나님의 말씀, 예수님의 말씀이 중심에 있다면 왜? 회당에서 길거리에서 남에게 보여지는 기도를 하는 외식하는 자들의 것을 배우지 말고 자신만의 독방에 들어가 아무도 보이지 않는곳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따르지 않는것인가요? 하나님께서 회당에서의 단체기도를 들어주신다고 하신적이 없습니다. 모세에게도 민족과함께 산에 오르지 못하게 하시고 선택하신 자들만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오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한 목소리로 외치는 단체의 소리를 들으시는것이 아닙니다. 개개인이 온전히 혼자일때 그들이 스스로의 믿음과 말씀을 향할때 그 개개인의 것을 듣고 계신게 아니겠습니까? 이 댓글은 곧 지워지겠죠. 다른 목사님들 또한 다들 지우시듯이요.나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들었을때 그것을 무시하고 남들이 들어보지도 못하게 하는것 또한 외식하는 자들의 그것과 하나 다를것은 없을것입니다. 저는 저를 미쳤다 비난할 이들의 댓글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저 삭제하지 않아 주셨으면 합니다.
4장 5절까지 성경 본문으로만 해석하기엔 난해한 문구.
유목민족 우월 사상?
가인은 악하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