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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제갈량의 남만 정벌은 성공적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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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5 ธ.ค. 2023
  • 북벌의 포석, 제갈량의 남만정벌은 성공적이었는지
    탐구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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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정사 #제갈량 #칠종칠금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87

  • @user-ti3qq8ql8m
    @user-ti3qq8ql8m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9

    원래 전쟁은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시작하고, 그 목표를 이뤘으면 끝내는 것이 최고임. 그런 의미에서 이 전쟁은 최고의 성공임. 다들 아는 삼국시대 지도에서 사실 진정으로 중국에 들어간 지역은 60% 정도임. 운남, 하서, 남형주, 교주, 회계 지방은 사실 중국인의 땅이 아니었음. 그런 의미에서 제갈량은 원정의 목적을 2가지로 확실히 정하고 전쟁을 벌임. 바로 촉한 군권의 장악, 그리고 운남지역 호족과 이민족이 힘을 합쳐 파촉의 촉한을 공격하는 것을 막는 거임.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제갈량은 촉의 재상이었으나 군권 장악은 못한 상태였음. 운남 정벌 전만 하더라도 제갈량은 군사한번 다뤄보지 못한 그자 행정과 정치를 잘하는 정치인이었을 뿐임. 하지만 운남정벌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며 군권을 장악했음. 만약 이 원정이 정말로 실패였거나 승패가 모호했다면, 이후 제갈량의 -승리확률이 현저히 적었던- 북벌에 아무도 따라가지 않았을 거임. 또한 2번째 목표인 운남의 안정화도 완벽하게 달성함. 제갈량 원정 이후, 제갈량 사후에서 조차 운남지역의 호족과 이민족은 촉한과 대립하지 않았음. 반대로 오나라가 진나라에 멸망당하기 전까지 끊임 없는 내부 호족과 이민족의 반란에 시달렸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이 원정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명확히 보여줌.

    • @user-hz4pc1hi4w
      @user-hz4pc1hi4w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군사 행정 모두 다 하는 사람이었는데....

  • @user-bm6er1pk2w
    @user-bm6er1pk2w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1

    결국 화양국지가 더 정확했고 제갈공명의 님정은 성공적이었으나 영구적인 성공은 못 되었고 결국 운남성을 완전히 중국의 판도로 만들어버린건 매우 역설적이게도 유목민 왕조였던 몽고 원나라였죠.

  • @minseockkim3518
    @minseockkim3518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성공이 중요한 정벌이 아니었다고 생각함
    낙곡전투든 제갈량이 촉땅을 주목한 이유가 들어오기 험해라고 방어에 용이한게 컸을것임. 이는 국력이나 여러 자원이 국적 위나라 보다 쳐질때 엄청난 중요한 이점이 되는상황. 그런 상황에서 뒤에서 난리가 일어 난다면 그 장점은 퇴색되는것이고 오나라마냥 세병제라 개인의 군공이라는 변수가 없기에 한번 흐려진 물이 끝없이 더럽혀진다는 결과가 나올수도있기에
    필요한 원정이었다고 보고 성공을 둘째치고 필요한 것이다 라는 생각

  • @dontblockme555
    @dontblockme555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5

    진수와 위소가 만났다면 오서가 좀 더 풍족해졌을 거라는 오빠이신 손찬이형님의 마지막 멘트에서 깊은 아쉬움이 느껴지네요ㅎㅎ 저는 촉빠인지라 왕숭의 촉서가 전해져내려오지 않는게 많이 아쉽습니다ㅜㅜ 보통 진수의 삼국지는 특정 인물의 열전에서 해당 인물의 과오는 축소시키고 업적은 극대화 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위서가 더 심하더군요 (예를 들면 무제기의 간략한 적벽전 기록)
    관우의 패전은 위서에 많이 기록되어있는데 촉서가 기록이 적다보니 관우의 업적이 제대로 쓰여지지 않고 다소 편파적인 위서에는 적이었던 관우의 과오가 잘 드러나있어 관우는 거품이 아닌가 이런 얘기가 나오는 듯 합니다. 그런 점에서 왕숭의 촉서가 없다는 것이 많이 아쉽군요ㅠㅠ

    • @zse260
      @zse260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redmoon596 관우, 장비의 초창기 기록이 너무 부실한 것도 한 몫하겠죠. 다만 그 기록 여부 이전에 당시 관우를 활용해 봤던 사람들 평가 보면 답이 나오는거 아닐지. 조조는 안량을 깨는데 관우, 장료 투톱으로 놓았고 결국 안량은 원턴킬 ㅋ 주유는 강릉전투에서 관우, 장비를 잠시 활용해보면서 '이 두명이면 북벌 ㅆㄱㄴ '이라고 단언했었죠. 그리고 관우가 용맹만 믿는 근육뇌였다면 우금, 조인의 군세는 박살낸거, 그 서황의 1차구원 막아낸것도 다 우연의 일치가 되어야함ㅋㅋ

  • @hanasong4027
    @hanasong4027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3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보고 있는 채널입니다. 오늘도 재밌게 보고 갑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xm9jq5xc3s
      @user-xm9jq5xc3s 28 วันที่ผ่านมา

      저는 가장은 아니고 한 50번째 정도로 재밌게 보는 채널

  • @wolfwind1741
    @wolfwind1741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1

    제갈량이 이후 북벌을 진행했다는 것부터가 성공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뒤를 깨끗이 하기 위한 남정이었는데 이후 남쪽이 불안했다면 제갈량이 북벌을 나설 수 없었겠지요

  • @user-qf6us8pr8o
    @user-qf6us8pr8o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개인적으로 삼국지에 대한 깊이 개뿔 없으나 진수삼국지는 화양국지에 비해 확실히 객관성이 떨어진다 느껴지네요. 화양국지 기반으로 기록을 정리해보면 기존 삼국지가 새롭게 재해석될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무튼 이런 귀한 채널 발견해서 이런 좋은 영상들 볼 수 있어 너무 감사합니다!

  • @user-id7gn2of6x
    @user-id7gn2of6x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저번, 이번 영상 보면서 화양국지 내용도 새로 알게 되네요 맛나게 먹고 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

    • @손찬이형
      @손찬이형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입맛에 맞으셨기를!!

  • @OhzWizard
    @OhzWizard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올려주시는 영상, 모두 항상 잘 보았으며
    알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고, 모르던 내용을 알 수 있으며, 손찬이형님의 의견도 그럴 수 있구나 하면서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다만, 손찬이형이라 하시면 공손찬 팬(?)이시거나 성이 공가일 것 같은데,
    손찬이형이라 하신 이유가 있을까요?(어디 있는데 제가 못 본 것인지..ㅠ) 공손찬에 대해서도 다루어 주세요~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일단, 최근 유행하던 밈이고요, 서울 북쪽에 살아서 제 별명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젊은 조운을 만나려고 공손찬을 플레이했었던 추억..ㅋㅋ

    • @OhzWizard
      @OhzWizard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손찬이형 밈 찾아보니 설민석 님이 손찬 형님이라 한 것이 있네요. 우리나라에 성이 공손씨는 못 보고 공 씨는 봤어서, 공씨 성을 가지신 줄 알았는데.. 답변 감사합니다! ㅋㅋㅋ 좋은 영상 보여주시어 감사합니다, 손찬이형.

  • @cpt_doodle
    @cpt_doodle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오 파촉문명에 관한 내용이 흥미롭군요~ 제 지인 중 한 명이 라오스에 거주중이라 그런지 남만 파촉의 알려지지 않은 고대사가 문득 궁금해지던 때가 많았거든요ㅎ 남만정벌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와 논외로 제갈량이 그 시기에 남만 정벌을 실행한 것 자체에 대한 의의에 대한 평가도 궁금해집니다.

  • @sseung1954
    @sseung1954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그니까 사실 정사고 나발이고 비판주의자들이 유비 촉을 일부러 폄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가 익히 알고있는 연의가 큰 틀로 보자면 대체적으로 맞기 때문에 중국 본토에서조차 연의 위주로 역사를 스토리텔링 한게 아닐까?

  • @001_1
    @001_1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남만정벌이 성공적이라고 생각하는이유가 결국 북벌은 이루어졌고 실패로 끝나지만 북벌을 할 수라도 있게 만든게 제갈량의 남만정벌이라고 생각해요 진수의 정사가 엄청난 역사서는 맞지만 북벌로 위나라를 괴롭힌 제갈량을 완전히 객관적으로 쓰기는 힘든 상황이라 약간의 폄하는 들어갔을거고

  • @user-uq7fo7tm4r
    @user-uq7fo7tm4r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노오력이 돋보이네요.
    잘보고있습니다😊

  • @itarr2229
    @itarr2229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남만정벌이 성공적이었냐 보다 어느게 더 가치있는 사료냐는거에 포커스 맞춰진 영상이네요.. 쪼금 아쉽😂😂 그럼에도 너무 잘보고 있습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네, 여기서는 이렇다는데 저기선 이렇다 하네? 뭐가 맞는거야.. 라는 물음표... 가 영상의 포커스입니다. 그래도 잘 보고 계셨다니 만족!

  • @user-md4kh2ef7k
    @user-md4kh2ef7k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거의 사학과 수준으로 논하시네요 ㄷㄷ 사관의 행적과 출신 이력까지 근거로 사서의 신뢰성까지 논하는걸 유튜브 삼국지 주제로 볼줄은 몰랐습니다.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우~와~아아아아)

  • @user-mp7nh7mb7s
    @user-mp7nh7mb7s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촉과 위의 국력 차이를 대비하면 남만 정벌이 실패라 평해질 정도면 제갈량이 북벌에 그렇게 총력을 기울이기는 어려웠을거란 생각이 드네요... 굳이 생각하자면 진수가 진식의 아들이라는 썰이라든지, 혹은 위진 시절을 통틀어 사마씨들에게 가장 골치아팠던 인물인 제갈량, 강유이라서인지 두 사람의 업적을 조금이라도 축소시키려는 흔적이 없다고는 할수없을듯 합니다...

  • @hoyoungjung9768
    @hoyoungjung9768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ㅋㅋㅋㅋ 저거 썸네일에 끽연하는 제갈량 뭔가요 ㅋㅋㅋㅋㅋㅋ 연기는 동남풍 타고 잘 날아가고있는지 궁금합니다.

  • @user-yf4sz6dj6k
    @user-yf4sz6dj6k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단순히 후방에서 다시 반란이 있었냐 없었냐만으로 성공 실패를 논할 순 없을 것 같아요. 제갈량의 남만 정벌은 후방 안정의 목적도 있지만, 북벌을 위한 재정확보 목적도 있었고, 적어도 이 측면은 성공한 것으로 보이니까요.

  • @zse260
    @zse260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정벌에 나서려면 후방이 깨끗해야죠. 1차 북벌기준 20만 군이 전선으로 나아가는건데 이 문제는 당연히 조치가 취해졌어야 했던 일. 거기에 옹개가 반란일으켰던 문제도 있고. 다만 촉한멸망전 때 이야기를 보면 남만은 이후에는 아예 손을대지 않았던거 같기도 하죠.

  • @speedaaab
    @speedaaab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잘봤습니다. 공손연, 공손도하고 유표도 보고싶네요

  • @user-jy8xb1um8u
    @user-jy8xb1um8u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잘봤어요

  • @에그시
    @에그시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촉서가 발굴되면 정사 삼국지 대비 촉 내용의 가치는 어떤게 진실에 가까울지?

  • @wanlee4259
    @wanlee4259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워낙에 부실한 촉서를 보완하려면 화양국지의 내용 보충이 꼭 필요해 보이네요. 삼국지 저자 진수가 제법 실력있는 역사가인건 분명하지만 촉출신으로 망국후 서진의 관료로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인지 촉에 대한 티꺼운 시선이 행간에서 읽히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내용도 너무 부실하구요. 오늘도 좋은 내용 고맙습니다~^^

  • @WhythisGGoraji
    @WhythisGGoraji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화양국지는 처음 들어보는데 촉 한정 정사보다 신빙성 있는 사료라니!

  • @user-yr9zr5kf9h
    @user-yr9zr5kf9h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실패가맞죠 애초에 현장에서 발로뛰는 지휘관스타일도 아니고 내정goat였으니 졌지만 잘싸웠다 정도

  • @user-mr8bu5eu1o
    @user-mr8bu5eu1o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운남 고원지대에서 낮아지는 지역으로 가면 임창 보이 서쌍판납을 거쳐 라오스 버마로 연결됩니다 청나라 이후 국경이 고정되어보이지만 19세기 이후에도 서울시 몇개의 넓이의 땅이 라오스 베트남을로 넘어갔습니다. 제갈량은 보이나 서쌍팡납은 못가고 임창까지 내려왔다고 합니다 웃긴건 그동네 소수민족이 중국에 차문화를 전파시킨건 잊고 제갈량 군대가 우리지역까지와서 중앙문물을 전해뒀다고 제갈량을 우상화하는 겁니다

  • @hodokwaja
    @hodokwaja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성공적이라는게 어떻게 보느냐에 따랏지만.. 정벌이란건 몰라도, 어쨌든 북벌에 필요한 물자와 병사들을 엄청 뽑아낸 것은, 성공적이었던듯 하네요.

  • @charleslee5880
    @charleslee5880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칠종칠금은 연의적인 미화라고 생각하지만, 칠종칠금에 대한 근거가 될만한 사건은 있을법하다라는 생각이 드네요

  • @whitewriter8568
    @whitewriter8568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형 오늘도 맛있었씁니다 ㅜㅜ 오늘 국물이 진한게 구수하네요 딥한 내용 파헤쳐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런 딥한 구수함으로 오나라 하나더 기대해도될련지요?ㅎㅎ 오나라 지식이 전무해서 기대됩니다 ㅋㅋ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당연하죠! 오나라꺼 하나 만들어놓은거 있어요. 아마 빠르면 다음주 올라갑니다!

  • @santasanta9934
    @santasanta9934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어짜피 문화가 다른 지역은 계속 반란이 일어나기 마련이니~ 투자 대비 삥을 많이 뜯어 왔으면 성공이죠.

  • @user-rq3oy3zz9f
    @user-rq3oy3zz9f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無學의 입장으로 제갈양이 남정이 성공적이지 않아서 계속 목뒤가 시려웠다면 북벌하지 않았을겁니다. 그러니 남정은 성공쪽에 가까웠을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 @user-de2vb1yx1f
    @user-de2vb1yx1f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전 제갈량이 살아있을 땐 성공이라고 봅니다. 안 그랬으면 신중주의자 제갈량이 그렇게 북벌 못 했을거라 생각되서

  • @user-tv5ul9mm1b
    @user-tv5ul9mm1b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저의 생각으로는 진수는 당시 진의 사관이었고 당시 진과 그 전이었던 위는 정통성이 꽤나 있던 계한과 주적이었으니 계한의 정통성을 줄이거나 없애기 위해 촉서를 창렬하게 만든 게 아닐까 싶네요.
    실제 관우, 장비, 황충 등 군수뇌부의 열전조차 기록이 창렬하고 오의, 오반, 비관, 왕모, 뇌공, 은례, 구부, 유은 등 열전이 있을 위치의 장수들이 기록조차 없는 걸보면 진짜 느낌이 셰합니다.
    그리고 위요편 보고 말하는 건데요.
    실제 오의는 오일로 피휘된 걸로 보이는데 정작 동소, 장소, 주소, 손소 등은 피휘를 하지 않았는데 오의만 피휘를 한 이유도 계한의 정통성을 줄이고자 그랬다는 설도 있습니다

  • @cwSLTz
    @cwSLTz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갈량이형을 파헤치는 손찬이형 ㅋㅋ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ㅋㅋㅋㅋ 갈량이형ㅋㅋㅋ

  • @user-gd2qo1cr5l
    @user-gd2qo1cr5l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복귀할때 제사 음식으로 만두를 만들었다는 썰이 있는데ㅋㅋ 그 자체로 성공적

  • @user-lk4ty8yw9o
    @user-lk4ty8yw9o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기후는 계속 변하므로 지금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됨
    몽골도 큰강이 흐른 흔적이 있는데
    지금은 없어요.
    고려시대에는 산둥반도를 세로를 가르는 물길이 있었음
    지금보다 해수면이 낮아서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가뜩이나 안전제일주의자인 제갈량이 남만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갔을거란 생각은 들질 않습니다.. 안정만 시켰으면 모든 목적 달성한겁니다

  • @piekim-w2e
    @piekim-w2e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삼성퇴문명을 참작하시면 파촉문명은 중원문명과 다름이 보일듯...

  • @jinhyuk7668
    @jinhyuk7668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관우뢰 궁금해요 관우편도 해주세요

  • @user-to8vs7nc1i
    @user-to8vs7nc1i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 영상을 보니 장억 일대기도 궁금해 집니다

  • @EnjoyFruit
    @EnjoyFruit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다 재쳐주고도 이후 북벌이 시작됐고 그 북벌이 물자조달의 문제로 번번히 걸렸다는 얘기가 없는거로 봐서는 어느정도 성공했지만 그건 제갈량의 카리스마로 유지된것이다 그렇게 볼수 있지 않을까요 ㅎ

  • @postrockful
    @postrockful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쉽게 판단하기 힘든 문제네요ㅎㅎ
    진수의 정사가 당대에 쓰여졌다면, 당연히 당대의 인물들이 생존해 있었겠지만 동시에 적성국에 대한 적의도 잔존했을 것이기에 왜곡의 소지가 있고,
    화양국지가 파촉전문지라고는 해도 100년뒤의 집필인데, 100년이면 100년까지의 있던 사실도 소실되거나 잊혀질 수 있는 시간입니다.
    (대표적으로 일제 때 바뀌고 왜곡된 우리 나라의 지명이 상당수 복원되지 못하고, 심지어 잊혀지기까지 했지요.)
    일제 시대 때 약탈/반달리즘처럼, 역사에 대한 개인의 기록들도 유실되거나 의도적 파괴 왜곡이 있을 수 있는 시기이니, 어느 한 쪽에 완전히 무게를 두기 힘든 난제 같습니다ㅎㅎ

  • @user-eh3qn7xy5g
    @user-eh3qn7xy5g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손찬이형 상 줘야함

  • @user-ye1kv5bd1z
    @user-ye1kv5bd1z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근데 당시의 남만이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이런 완전 열대 남방 이였나요 어니면 그냥 배투남 보다 위, 쓰촨성 바로 아래 남쪽 지역을 말하던거였나요?

  • @user-vs3jj8vi7c
    @user-vs3jj8vi7c 6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어쨌든 항복을 받아냈으니 반쪽짜리 성공이 맞다고 봅니다. 실패는 아닌거 같음.

  • @user-tk1xj3ev4n
    @user-tk1xj3ev4n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갈량의 남정정벌은 없었다
    마충 휘하의 장억이 무마를 했고 그 장억이 죽자 그들은 장억의 사당을 짓고 예를 다해 제를 올렸다
    이 건 정사에 나와 있다

  • @user-jv8iv5xo1n
    @user-jv8iv5xo1n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북벌물자의 상당수를 남만에서 뺏은걸로 보충함

  • @Sh-lj3ft
    @Sh-lj3ft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오빠들은 주유 여몽 육손을 기다립니다

    • @손찬이형
      @손찬이형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감히 컨텐츠 만들다가 뒤집고 삭제하고 다시 만들길 몇 번 째인지.. 언젠가 나옵니다..

  • @user-is1xk9zv5k
    @user-is1xk9zv5k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신삼국에서 아예 스킵했으니까..

  • @user-yl7vb7xc8l
    @user-yl7vb7xc8l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유비 사후의 주인공격이라 제갈량의 인기가 높지만 냉정하게 보면 식민지 약탈

    • @user-ry2jx6bi3o
      @user-ry2jx6bi3o 2 วันที่ผ่านมา

      ㅋㅋ 18세기 기준으로 2세기를 보노

  • @mayli5206
    @mayli5206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손찬이 형인데 공손찬 내용은 하나도 없네요. 다음에는 공손찬 부탁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공손찬 최후가 목베이는거라 차마..ㅠㅠ 언젠가 준비하겠습니다 ㅠㅠ

  • @jambava
    @jambava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이렇게 서로 배치되는 내용의 경우가 진짜 판단하기 어렵죠. 이러면 단순 교차 검증을 넘어 사료의 신빙성을 아주 세세하게 쪼개가며 비교해야 하는데 진수의 정사삼국지가 국가에서 직접 시행한 사서이긴 하지만 실제 있었던 사건 중 빠진 것들도 있고, 위서임에도 후기에 잘못된 내용이었던 것으로 판별난 부분들도 있죠. 그래서 특히 촉서나 오서의 경우 정사삼국지를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user-id7gn2of6x
    @user-id7gn2of6x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그렇게 행정에 빡빡하고 북벌도 최대한 안정적인 전략을 짜는 제갈량이 남만정벌 실패하고 북벌을? 전혀 말이 안됨 북벌을 안할 지언정 남쪽을 안정시키긴 했을듯 ㅇㅇ

  • @user-bp5tr8wb2e
    @user-bp5tr8wb2e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장비가 그렇게 5툴이라던뎅 장비일화도 소개해줘잉

    • @손찬이형
      @손찬이형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장비 관련 영상 두 편이 이르면 차주에 올라갑니다. :)

  • @user-cm8dd5vy7u
    @user-cm8dd5vy7u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제갈량 담배피는 짤 실제임?

    • @ukmdf
      @ukmdf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신삼국 제갈량 배우 비하인드 짤일걸요

  • @snjnkm1588
    @snjnkm1588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썸네일 쩌네

  • @user-pq1xp4zu9p
    @user-pq1xp4zu9p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썸네일보소ㅋㅋㅋㅋㅋㅋ

  • @user-vv5zj5dc8z
    @user-vv5zj5dc8z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실패가 맞다고 봅니다 강유가 북벌할때 병력의 제약(비의 1만제외) 있다고 생각한게 반란이 많은 지역이였으니 적지않은병력이 주둔했을거라봅니다

    • @dodge90
      @dodge90 7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제갈량의 남정과 강유의 북벌은 시기차이가 상당히 길어서 같이 놓고 얘기하는게 아닌것 같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제갈량의 남정이 영구적인 성공은 못되었고, 중국사에서 운남의 영구적 정벌은 1천년이 지난 후 몽골이 이곳에 있던 대리국을 멸망시킨 이후부터 입니다.
      제갈량의 남정 성공 기준을 어떻게 보느냐 시각차이도 성공이냐 실패냐 의견이 다를 수 있겠네요

  • @user-tr9ve7us1z
    @user-tr9ve7us1z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삼국지 원톱해설

  • @user-lx6we5jo7n
    @user-lx6we5jo7n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진수가 좀 찌질했다고 느껴지네요 그나저나 마속은 왜 산으로 갔을지.... 남만정벌 전에 마음을 복속하라고 계책을 냈다고 알고 있는데... 제가 볼 땐 완전 무능력한 인물은 아닌 것 같아서요

    • @Nocturnal_Cries_Of_Agony
      @Nocturnal_Cries_Of_Agony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제 생각에 제갈량은 마속에게 (농서 털고 올때까지) 버티기를 주문했는데 마속의 첫 지휘라 공명심 때문에 리스크 있는 군대배치를 하고, 결국 장합한테 쳐맞은 거 같습니다.

    • @user-fv7tq1fd9h
      @user-fv7tq1fd9h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최소한 군사적으로는 일류에 못미쳤던 제갈량의 무리한 임무 부여 탓이라고 봐야죠

    • @user-yr9zr5kf9h
      @user-yr9zr5kf9h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마속이 산을오른이유는 그당시 그지역 계절특색을 간과한 점도있어요

    • @jaeminryou9831
      @jaeminryou9831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사실 마속만 욕할 순 없던게 맞습니다. 가정을 실사로 보니 석축을 쌓는다고 절대 대부대를 막을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거기에 물이 많은 형주와 다른 지형까지요. 왕평이 철저히 잘 막아내서 돋보이게 된 것도 있지만 마속에게 너무 어려운 미션이었습니다.
      장합의 개 빠른 판단력 + 제갈량 본대가 기한 내로 농서를 먹는데 실패한 게 패인이죠.

  • @user-yw2wz3zv2e
    @user-yw2wz3zv2e 8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동이를 무시한 재갈량 따위를 왜 우리가
    신경쓰야 할까요?
    역사도 왜곡하는 서공 오랑캐인데!

  • @hunjoosuk8446
    @hunjoosuk8446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조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