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픈 기억을 소환하게 되네요. 제가 그 사고 당시 이리(지금의 익산)역에서 직선거리로 500m 거리에 있는 하숙집이자 독서실에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 재수를 하던 해였는데 11월이면 고입 시험(그 당시 이리는 시험으로 선발)이 있는데 그 날 밤 이란하고 축구경기가 있었고 독서실 재수(이리 대일학원)생들은 대다수가 축구보러 밖으로 나갔는데 나는 시험공부한다고 독서실에서 과목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발음이 들리면서 독서실(2~3층 건물) 건물이 흔들리면서 창문이 와장창 깨지고 칸막이 책상이 나딩굴고 하는 와중에 순간 북한에서 미사일 쏜걸로 직감하고 책상 밑으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지요. 순식간에 2~3번 연이어서 폭발음(정확히 기억안남)이 들리고 주택가가 아수라장이 되어 일단 건물에서 빠져 나와야 압사하지 않을것 같아서 불도 다 꺼진 건물을 더듬거리며 나왔고 상가 샤시가 풍압으로 안으로 들어 가 있었음(축구경기 때문에 가게들이 일찍 셔터를 내린경우가 많았음). 옆집은 tv보고 있는데 기차 바퀴가 날라와서 지붕을 뚫고 방안에 떨러졌는데 시뻘건 바퀴가 열기가 가득한채 그대로 있었는데 그집 가족은 한사람도 안죽었다는 말을 뒤로한채 왜 기차바퀴가 날라온지 영문도 모르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리역에서 또 터진다고 하자 몇천명이 역에서 멀어 지는 방향(동이리역, 원광고 방면)으로 뛰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서 뛰기 시작하였음...이리역 거리에는 유리조각으로 덮여서(그 당시 유리 공장이 수급조절에 안되어 도시 재건하는데 주문이 밀려있었다고 함) 뛰는데 바스락바스락 거리며 뛰고 또 뛰었음. 어디까지 뛰었는지 모르고 뛰고 있는데 어느 의원 앞에는 남성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피가 보도블럭에 흐를정도로 ... 그 걸 못도와주고 지나쳤던게 한동안 머리에서 죄책감으로 지워지질 않았음(죽었을것 같음) 새벽 4시쯤 독서실로 돌아 오는데 방향을 잡지 못해 아침 7시되서야 밝아지면서 겨우 방향잡고 찼아왔고 이란 축구보러 나간 독서실 학생도 1명 죽었다는 소리 들었음, 그 다음날 시골 어머니가 철도 교통편은 아예 끊기고 일반 버스편도 그 영향으로 원할히 안되었는데 물어물어 빙 돌아서 하숙집을 찿아 오셔서(휴대폰도 없던 때라 주소 하나가지고..) 아들의 생사를 확인 하셨습니다. 영상 들어보니 다른거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철도역에서 급행료를 받는 시절이 있었다는걸 처음 들었고, 그 급행료로 인해 열차 출발지연 및 그 사고의 빌미를 가져다 준 사거이라는것도 처음 알았네요..축구보러 나갔다면 지금 이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jefflee887 이미일어난일은 어쩔수없는거고 그나마 복구와 피해가족들의 지원을위해 그당시에도 엄청나게컷던 한화그룹의 회장이 거의전재산을털었는거에 사람들이 용서와인정을하는거지 그리고 에초에 한화는안망함 그때 당시에 화약이 많이필요했는데(고속도로,공장 많이 만들어서)화약을 만들수있는곳이 한화밖에없어서 박정희도 이사태때문에 걱정했으니
그 당시 회장님이 거의 전재산 다 내놓고 사고 스트레스로 돌아가셨죠. 현 김승연 회장이 그 당시 20대였는데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갑자기 물려받게되고.. 무기 만드는 일반에게는 알려지지않은 회사에서 지금의 한화로 변신시켰는데.. 이렇게 회사를 키우신건 정말 능력있는 2세 경영인인거 같긴한데.. 뉴스 사회면에 종종 등장하시고.. 드라마에서 무서운 (?) 회장님의 모델로도 활약하시고.. 이제 그집 아드님도 대를 이어 활약하시고..ㅎㅎ 암튼 오늘날의 한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폭행사건 조사받으러 검찰 소환 됐을때 검사한테 복싱 제스처를 취하면서 검사님 주먹질좀 하실 줄 아십니까? 이러고 나중에는 제가 경호원들 데려다가 빠따 몇대 돌렸습니다 라는 레전드 발언을 하셨음. 그런데 그 처맞은 양아치 종업원 새끼들이 처음부터 양주값 뻥튀기해서 시비를 먼저 걸고 심지어 김승연 아들은 실명직전까지 가도록 존나 맞음. 아들이 실명위기까지 올 정도로 개처럼 쳐맞고 들어왔는데 어떤아버지가 가만히 있겠음? 내가 김승연이어도 경호원 데려다가 피떡갈비 만들고 진작에 반병신 만들어놨음.
저희 할머님께서 저 당시 저쪽에 살았는데 사는곳이 많이 역에서 떨어진 편이었는데도 집에 대문이 갑자기 펑하면서 부셔졌다네요ㄷ 그리고 할머니 친구분들 중에선 저당시에 저기 계셔서 생존했던분이 있는데 그 사고로 다리를 잃으셔서 몇년뒤에 자살 하셨다고 하네요ㅠ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나면 좋겠네요ㅠ
기업 상대로 벌금형을 때릴때는 그 회사의 자산 상황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함 어느 기업에게 50억은 자살을 하게 만들 정도의 금액 이지만 어느 기업에게 50억은 까짓 거 주지 하는 금액 일수 있기 때문에 괜히 탈세 같은거 저질러서 돈 엄청나게 얻고 감옥 한번 다녀오면 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 간의 격차나 지위가 평등하지 못한데
제가 이리역 폭발사고 산 증인인데요 그 때 정확히 저녁 9시 15분 이리역 광장 앞에 있었어요 기관사님 이 신무일 씨구요 날아다니는 파편에 맞아 신고 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어요 저두 오른쪽 다리에 파편이 치고 들어와 다리에 피가 -- --- 신고 안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친지 몰라요 ===== 다이나 마이트가 두번 터졌어요 제입에서 땅에 업드리라고 소리을 치었구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땅에 업드린지 몰라요 제 고함 소리에
현재진행형이죠.... 뇌물은 많이 없어졌다하더라도 '책임감', '성실함' 이런걸 국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기대못하죠. 그런현실도 있는것인데 월급 현실화하자고 하면 입에 거품무는, 생각이 1차원적인 국민들도 반성해야한다고 봅니다. 주는걸 제대로 주고, 책임도 운운해야 하는데 말이죠....
진짜 사고나면 밑에 책임 다 떠넘기고 극히 미비한 처벌받고 땡하는게 당연한게 지금인데 그래도 저 당시 회장이 바로 대국민사과에 지금의 수천억원이 넘는 전재산을 내놓고 직원들도 보너스 반납에 봉급의 일부도 떼서 기금마련하고, 현장에가서 작업도 돕고 했네... 어느 방면에선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에 윗대가리들의 도덕적 책임의식은 반대로 가고 있구나...
저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익산(구 이리) 사람이라 아빠한테랑 들었죠 엄마랑 저때 이리역이면 지금 익산역 엄마 집을 지나가는 기차들이 많았어요 모현동 쪽이라 배산쪽에 살았는데 폭팔음이 엄청 컸었고 그날 기억이 엄마는 4살이었고 큰삼춘은 8살 외할머니한테도 다 들었지만 정말 충격이었다고 합니다.저 날 이후 익산역은 이리는 많은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익산역 근처만 가면 저절로 슬퍼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음 맞습니다. 이리역 언덕 쪽에 창녀촌에 매춘부들과 그날 밤 손님들이 벌거벗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그냥 처리되어서 실지로는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겁니다. 70년대 625끝나고 20년 후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 짧은 시기에 정말 많은 발전했네여.
군대에서 수류탄 훈련할때 조교들이 수류탄 수십발이 든 박스를 들고 수류탄 교장까지 옮기거나 탄(총알) 수백발이 든 탄통을 사격장으로 옮기기도 한다. 솔직히 이것도 엄청 잘못된거지.... 그 모든 현장을 간부나 장교들이 관리할 수 없으니까.. 잘못된걸 알고도 하는 현실이 참...
간혹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어떤 사건 이름이 피해자 중심으로 붙여진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가해자는 누구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리역 폭발 사고”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한국화약 열차 폭발사고”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하춘하쇼가있던 극장은 삼남극장이란 곳인데 자료사진은 삼남극장이 아니군요. 극장 앞엔 버스가 다니지도 않았고, 더구나 사진 찍는 위치는 사고날 때 내가 살던 집의 위치인데 고가가 있을 수가 없죠. 지금도 익산의 이 지역은 그대로 이기때문에 익산사람이라면 이 사진이 틀렸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거에요. 폭발후 사진은 맞네요.
911 테러가 있은 후 아직까지도 뉴욕근교 뉴저지 각 공원마다 그 잔해를 두고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지나가면서 계속 보이는 도로변에 있어서 늘 보게 되고 늘 생각하게 되능걸 보면 우리나라는 어쩌면 사고난 것 부정적 이미지는 빨리 덮어버리고 다시 보지 않으려하는게 있지 않나 싶어지네요.
@@만두-k7v 그것도 이유였고 저 중학생때 익산이 고향인 학교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그당시에 익산은 알게 모르게 안좋은 사건 사고들이 많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크게 터진게 이리역 폭발사고인데 이리 라는게 늑대 라는 뜻도 있어서 이름 때문에 이런 안좋은 일이 생기는게 아닌가 해서 익산으로 바꿨다는 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그 와중에 사고를 막으려고 어떻게든 애쓴 사람들 얘기는 너무 대단해보임ㅠㅠ 법이나 시스템이 제대로 되어서 영웅이 나올 일 없는 나라가 좋은 나라일 텐데 안타깝기도 하고...
아이고 아픈 기억을 소환하게 되네요.
제가 그 사고 당시 이리(지금의 익산)역에서 직선거리로 500m 거리에 있는 하숙집이자 독서실에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 재수를 하던 해였는데 11월이면 고입 시험(그 당시 이리는 시험으로 선발)이
있는데 그 날 밤 이란하고 축구경기가 있었고 독서실 재수(이리 대일학원)생들은 대다수가 축구보러 밖으로 나갔는데
나는 시험공부한다고 독서실에서 과목 정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폭발음이 들리면서 독서실(2~3층 건물)
건물이 흔들리면서 창문이 와장창 깨지고 칸막이 책상이 나딩굴고 하는 와중에 순간 북한에서 미사일 쏜걸로
직감하고 책상 밑으로 거의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지요. 순식간에 2~3번 연이어서 폭발음(정확히 기억안남)이
들리고 주택가가 아수라장이 되어 일단 건물에서 빠져 나와야 압사하지 않을것 같아서 불도 다 꺼진 건물을 더듬거리며
나왔고 상가 샤시가 풍압으로 안으로 들어 가 있었음(축구경기 때문에 가게들이 일찍 셔터를 내린경우가 많았음). 옆집은
tv보고 있는데 기차 바퀴가 날라와서 지붕을 뚫고 방안에 떨러졌는데 시뻘건 바퀴가 열기가 가득한채 그대로 있었는데
그집 가족은 한사람도 안죽었다는 말을 뒤로한채 왜 기차바퀴가 날라온지 영문도 모르고 우왕좌왕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이리역에서 또 터진다고 하자 몇천명이 역에서 멀어 지는 방향(동이리역, 원광고 방면)으로 뛰고 있었고 나도 덩달아서
뛰기 시작하였음...이리역 거리에는 유리조각으로 덮여서(그 당시 유리 공장이 수급조절에 안되어 도시 재건하는데 주문이 밀려있었다고 함)
뛰는데 바스락바스락 거리며 뛰고 또 뛰었음.
어디까지 뛰었는지 모르고 뛰고 있는데 어느 의원 앞에는 남성하나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데 피가 보도블럭에 흐를정도로 ...
그 걸 못도와주고 지나쳤던게 한동안 머리에서 죄책감으로 지워지질 않았음(죽었을것 같음)
새벽 4시쯤 독서실로 돌아 오는데 방향을 잡지 못해 아침 7시되서야 밝아지면서 겨우 방향잡고 찼아왔고 이란 축구보러 나간 독서실
학생도 1명 죽었다는 소리 들었음, 그 다음날 시골 어머니가 철도 교통편은 아예 끊기고 일반 버스편도 그 영향으로 원할히 안되었는데
물어물어 빙 돌아서 하숙집을 찿아 오셔서(휴대폰도 없던 때라 주소 하나가지고..) 아들의 생사를 확인 하셨습니다.
영상 들어보니 다른거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인데... 철도역에서 급행료를 받는 시절이 있었다는걸 처음 들었고, 그 급행료로 인해
열차 출발지연 및 그 사고의 빌미를 가져다 준 사거이라는것도 처음 알았네요..축구보러 나갔다면 지금 이세상에 없을지도 모르는
사람이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모두들 건강하세요..
9:16 아니 처벌이 거꾸로 된 거 아니냐고. 부당한 작업을 요구받아 수행한 직원은 10년이고, 부당한 뇌물을 요구한 놈은 1년?
근데 그 수행한 직원이 지극히 비상식적인 행동으로 (양초) 모두를 위험에 빠트린거 자체는 사실임
근데 뇌물 요구한놈은.. 음...
저렇게 많은 사람 죽는데 일조하고눈 제대로 살았을리 없기를.. 법으로 벌을 안받아도 눈감는 매순간마다 고통스러운 삶을 아직까지도 살고 있기를 바래봅니다
술쳐먹고 양초키고 달아나기까지 한거면 개새끼 맞지
지금 상식으로도 이해가 안되지만 지금도 법적으론 비슷하게 줄거같네요 뇌물을 요구해서 지체 시킨게 폭발의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다보니...
전라도잖아~ ㅋㅋ
저 당시 김종희 회장 대처가 그나마 좋았다고 한다.. 거의 전재산 내서
지금가치로 5000억
@@이성애-f7v 금마는 아들
그럴거면 애시당초 안전을 생각 하지 뭘 대처를 잘한것인지. 돈주면 죽은 사람 돌아 옵니까?
@@jefflee887 이미일어난일은 어쩔수없는거고 그나마 복구와 피해가족들의 지원을위해 그당시에도 엄청나게컷던 한화그룹의 회장이 거의전재산을털었는거에 사람들이 용서와인정을하는거지 그리고 에초에 한화는안망함
그때 당시에 화약이 많이필요했는데(고속도로,공장 많이 만들어서)화약을 만들수있는곳이 한화밖에없어서 박정희도 이사태때문에 걱정했으니
@@jefflee887 그리고 한화보단 기차운전사가 잘못한부분이 큰데 탓안하고 사건터지자마자 바로 대국민사과한것도 큼
한국화약 = 한화
그 당시 한화 회장은 사고직후 대국민 사과를하고 재난복구에 거의 본인의 전재산을 기부했다
아헐..그렇구나... 대표로서 질 수 있는 책임은 다 한 것 같네요 안타깝지만..
박정희 독재정권시절이니 그랬을수도. 밉보이면 회사 망하는건 일도 아니였으니
정확히는 한양화학이랑 한국화학이 합병해서 한화가 된거긴 함
한화로 개명하기 전에 합병해서 상관없긴 하지만
@@삼묘당 ㄴㄴ 한화그때당시 건설할건많은데 화약만들수있는회사가 한화밖에없어서 오히려 박정희가 걱정할정도였음
그래도 똥싸고 치웠네요
장항준 감독님 역시 꼬꼬무 짬밥이.. 사건 설명 진짜 잘하신다
그 당시 회장님이 거의 전재산 다 내놓고 사고 스트레스로 돌아가셨죠.
현 김승연 회장이 그 당시 20대였는데
빈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갑자기 물려받게되고..
무기 만드는 일반에게는 알려지지않은 회사에서 지금의 한화로 변신시켰는데..
이렇게 회사를 키우신건 정말 능력있는 2세 경영인인거 같긴한데..
뉴스 사회면에 종종 등장하시고..
드라마에서 무서운 (?) 회장님의 모델로도 활약하시고..
이제 그집 아드님도 대를 이어 활약하시고..ㅎㅎ
암튼 오늘날의 한화가 만들어진 계기가 된 사건입니다.
그렇게 하시고 사고치고 다니는 아들 김동선 뚜까팬 깡패 새끼들 눈탱이를 직접 치시는 폭발력을 보여주셨죠. 역시 폭발력 지리는 상남잡니다.
복싱 좋아 하시죠.
폭행사건 조사받으러 검찰 소환 됐을때 검사한테 복싱 제스처를 취하면서 검사님 주먹질좀 하실 줄 아십니까? 이러고 나중에는 제가 경호원들 데려다가 빠따 몇대 돌렸습니다 라는 레전드 발언을 하셨음. 그런데 그 처맞은 양아치 종업원 새끼들이 처음부터 양주값 뻥튀기해서 시비를 먼저 걸고 심지어 김승연 아들은 실명직전까지 가도록 존나 맞음. 아들이 실명위기까지 올 정도로 개처럼 쳐맞고 들어왔는데 어떤아버지가 가만히 있겠음? 내가 김승연이어도 경호원 데려다가 피떡갈비 만들고 진작에 반병신 만들어놨음.
@@jeongted8246 ㅇㅈ 우리 아빠가 저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으면 너무 실망할듯
@@hanbangsabjill 그쵸 첫째 김동관씨는 초엘리트에 겸손하고 인성도 좋다고 얘기 많았죠. 군대에 있을 때 1년이 다되가도록 아무도 한화가 장남인걸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77년인데 북한소행이라고 안하고 사고라고 인정한게 더 신기하네요.
저땐 간첩도 맨날 만들던 시절인데...
처음엔 북한 소행 나왔음ㅋ ㅋ
아무리 그래도 어느정도 적당했어야 덮는데 너무 일이 커서 그런가봅니다
북괴 소행 맞ㅇ습니다
진짜 북한 소행만 북한소행이라고 한거일수도 ㅋㅋ 전라도자네
16:07 추모비가 이런데 있으면 어떻게 찾냐
시민들이 오가며 보고 추모하고 안전에 대한 인식을 깨우자는 의미아님?
진짜 생각없다...아니 진심이 없는건가
실제로 가보면 엄청 잘보여요 열차에서 내리자마자 추모비가 보입니다
사람 익산사람입니다 추모비는 이 영상에서 처음 봤습니다
익산에 할머니집 있어서 일년에 한두번씩 왔다리갔다리했는데 추모비 있는건 오늘 처음앎...
삼풍백화점 추모비는 아예 다른곳에 세웠는데 그게 더 생각없는거 아님?
익산에서 수십년 살았는데 추모비가 있었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았네요. 화면 보니까 역 안쪽이어서 기차 타는 사람들만 볼수 있게 되있네요
이때 저희 아버지가 그래도 다른동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공부하고있었는데 창문이 깨질정도로 엄청난 폭발이였다고 하셨음 진짜 너무 놀랐다고 하시더라구요ㅠㅠ
저때 생존자중 한사람으로써 다시는 저런 참사가 일어나지를 않기를 바랍니다
열차 붙잡고 있었던 역무원은 무슨 산적이냐 통행료 받고ㄷㄷㄷ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비유적절
여기 패널분들은 표정도 되게 흥미롭고 집중한거같아서 ㅈㄴ 흥미진진함 특히 박지선 교수님👍👍👍
유족 어머니가 놓은 꽃을 챙겨간 사람은 어떤 쓰레기 일까?
꽃가져간 년놈 재수 옴붙어라. 할짓이 없어서 추모꽃을 가져가냐?
사람이라뇨 저런 놈은 사람 아닙니다
저기 공원 관리하고 청소하시는분이 치우셨을거 같아요. 보통 사람은 저기 갈일도 없죠.
저희 어머니 친구분의 아버지가 여기서 일하셨는데 이날 돌아 가셨대요.태어난지 1년도 안된 아기를 두고요.그 이야기를 듣고 참 슬펐어요.
와....소름...송석준 역무원에서 먼저 소름...그 다음 급행료 요구했던 사람이 1년이라는것에 더욱 소름...
거짓말 아님.. 진짜로 선생들이 돈받고 경찰이 돈받던 시절이 02년 월드컵 전까지 입니다... 당시 극단의 조취로 걸리면 실명 얼굴 공개하고 사실상 매장 시켜버렸죠...
지역차이도 있지만 2000녀도까지 그렇다고 생각됨 사립은 더 심했고
맞아요. 고딩때 담임선생이 학생들 앞에서 대놓고 돈 받았다고 얘기했었죠. 학부모 상담하고 자기는 서랍열어 놓고 그 자리 뜬다면서 천절하게 봉투 받는 법까지 알려주고...
그때당시 공부 못하던 애들이 할거 없으면 하는게 공무원이었으니까요 ㄹㅇ 9급 공무원 한다그러면 진짜 무시받던 시절
이때 근처에서 공연중이던 하춘화씨가 이주일씨 덕분에 목숨을 건져서 생명의 은인이 된 건 유명한 일화이지요
아뉘 화약위에 왜 양초를… 그것도 모잘라서 잠들고 그리고 불 붙으니깐 도망치네?
안전사고는 대부분 무지에서 일어나는법이니까요.
근데 그때 피해입은 시민들이 선처호소하고
면회도 자주간거로알고있음 그당시 우리아버지는 익산 어머니는 군산에 살면서 직접 보고경험하신분들인데 그때 선처에 자주찾아간이유가 그폭발로 역앞에서 깽판치던 뒷골목양아치들이 거의사라지고
몇몇은 착해지기까지했어서라고..
@@E푸른-n4b 저희 할머니랑 엄마도 군산에서 살았는데 일단 엄마는 79년생이니 빼고 할머니가 익산 폭발 때 선처파와 관련된 사람을 사형하자는 파로 나뉘었다고 하네요.
결국엔 한화가 나섰고.
저희 할머님께서 저 당시 저쪽에 살았는데 사는곳이 많이 역에서 떨어진 편이었는데도 집에 대문이 갑자기 펑하면서 부셔졌다네요ㄷ 그리고 할머니 친구분들 중에선 저당시에 저기 계셔서 생존했던분이 있는데 그 사고로 다리를 잃으셔서 몇년뒤에 자살 하셨다고 하네요ㅠㅠ 다시는 이런 사고가 안 일어나면 좋겠네요ㅠ
기업 상대로 벌금형을 때릴때는 그 회사의 자산 상황에 따라서 해야 한다고 생각함
어느 기업에게 50억은 자살을 하게 만들 정도의 금액 이지만
어느 기업에게 50억은 까짓 거 주지 하는 금액 일수 있기 때문에
괜히 탈세 같은거 저질러서 돈 엄청나게 얻고 감옥 한번 다녀오면 됨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님
법은 만인에게 평등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람 간의 격차나 지위가 평등하지 못한데
근데 저 사건에서는 기업에게 책임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담당자만 처벌하고 끝난거라 배상 아니고 보상한거래요.(기업은 잘못 한거 없어서 책임을 안 져도 됐지만 도의상 기부)
이 사건에서 한화가 잘못한 것은 없습니다만
애초에 대부분의 안전사고는 작업자의 부주의로 나는게 대부분임 자기 불편하다고 안전모안쓰고 안전고리안하고.. 영상에 나온것처럼 저런 소수의 경우만 내보내고 기업을 죄다 쓰레기로 만드는게 참 한심함ㅋㅋ 이제 벌금이 올랐으니 조금만 이상한사람이면 작업자로도 안부르겠네ㅋㅋ 왜? 이상한새끼가 이상한짓하다 뒈지면 회사망하는데 누가뽑냐 차라리 공기 늘리고말지ㅋ
@@유유-q6z6f 당시 저 회사 회장은 전재산 몽땅털었다 뭘 더하냐?
@@moyksh 관리 감독 소홀인데 뭐가 잘못한게 없다는거야. 그때는 법이 없었으니 처벌은 안 받은거뿐이지.책임과 잘못은 한화의 본체에 있던게 맞지
이리역 앞에 살던 친할머니 할아버지 많은 피해 안받아서 다행이에요 할아버지 등에 있는 상처 모두 할머니와 아빠 에게 떨어지는 유리조각 다 대신 맞으시고 할아버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멋지네요
저정도 폭발물 양이면 소형 전술 핵무기를 터뜨린 급인데... 세상에...
제가 이리역 폭발사고 산 증인인데요 그 때 정확히 저녁 9시 15분 이리역 광장 앞에 있었어요
기관사님 이 신무일 씨구요 날아다니는 파편에 맞아 신고 하지 않은 사람도 많았어요
저두 오른쪽 다리에 파편이 치고 들어와 다리에 피가 -- --- 신고 안했어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친지 몰라요 =====
다이나 마이트가 두번 터졌어요
제입에서 땅에 업드리라고 소리을 치었구요
얼마나 많은
분들이 땅에 업드린지 몰라요 제 고함 소리에
송석준 역무원님 존경합니다.
진짜 나 사고낼거요. 상태였네
지금도 어머니살고계시는 우리집이 이리역에서 딱 1.4키로 떨어져있었죠.....저 1살때라 기억은안나고 어머니께 여쭤보니 다행히 창문만좀 깨졌다네요...... 우리 장인장모님은 결혼식장 벽이무너져서 무너진벽 천막으로 가리고 결혼식하셨다고 하시네요..
저렇게 안전불감증이 심한데도 아직도 고쳐지지가 않네요...ㅠ 가장 최근엔 광주 빌딩 붕괴사건도 있고...ㅠㅠ
90억 내기로 했다는 신문 기사만 있을 뿐... 저 시절이면 실제 얼마 내고 얼마가 누구의 주머니에 들어갔으며 이재민한테 쓰인 돈은 얼마인지는 하늘만 알겠지
저희아버지가 하춘하씨보려고 삼남극장에 잇다가 살아오셨습니다😅
오늘도 갔다 온 역인데...이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네...
저 송석준 역무원님 뿐만아니라 불 끄려고 했던 일곱분도 뭐가 있어야 하는거 아닌가 ㅋㅋ
부모님이 77년 당시 현 익산에서 사셨는데 지금도 잘 살고 계십니다
다시는 이런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당시 급행료가 있었던 것은 공무원들 월급이 워낙 저렴하다보니 정부가 소소한 부패를 눈감아 주었던 것이지요 - 고려와 조선시대 아니 전근대시대 모든 국가들 마인드 -
그러다 삼풍 사고 등을 겪으면서 이게 문제가 되어 공무원 월급이 현실화 되자 사라지기 시작했죠
현재진행형이죠....
뇌물은 많이 없어졌다하더라도 '책임감', '성실함' 이런걸 국가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기대못하죠.
그런현실도 있는것인데 월급 현실화하자고 하면 입에 거품무는, 생각이 1차원적인 국민들도 반성해야한다고 봅니다.
주는걸 제대로 주고, 책임도 운운해야 하는데 말이죠....
저때 아버지 익산역에서 근무중이었는데 휴무날 철길 건너시고 집에 오시자마자 씻으시는데 폭발 하셨다고 그러시더라구요 창문 유리랑 다 깨지고 난리 셨다고 ..
이리역 폭발 사고는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진짜 화재만 났을때 여객열차 못들어오게 막은거랑
유조탱크 열차 대피시킨거 존나 다행 ㅋㅋㅋㅋ
그리고 2020년에는 베이루트에서 골때리는 폭발사건이 일어나죠.
필자는 당시에 경북상주에서 벼베기를 하고 있었는데 쿵쿵하는 소리와 함께 미세하게 땅이 흔들리는걸 느꼈습니다
진짜 사고나면 밑에 책임 다 떠넘기고 극히 미비한 처벌받고 땡하는게 당연한게 지금인데
그래도 저 당시 회장이 바로 대국민사과에 지금의 수천억원이 넘는 전재산을 내놓고
직원들도 보너스 반납에 봉급의 일부도 떼서 기금마련하고, 현장에가서 작업도 돕고 했네...
어느 방면에선 점점 나아지고 있는 반면에 윗대가리들의 도덕적 책임의식은 반대로 가고 있구나...
저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익산(구 이리) 사람이라 아빠한테랑 들었죠 엄마랑 저때 이리역이면 지금 익산역 엄마 집을 지나가는 기차들이 많았어요 모현동 쪽이라 배산쪽에 살았는데 폭팔음이 엄청 컸었고 그날 기억이 엄마는 4살이었고 큰삼춘은 8살 외할머니한테도 다 들었지만 정말 충격이었다고 합니다.저 날 이후 익산역은 이리는 많은게 바뀌었지만 아직도 익산역 근처만 가면 저절로 슬퍼지고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
사망자 59명보다 더 많다던데... 당시 역 주변에 집창촌있었는데 거기 초토화 된 뒤에 매춘부들 시체들은 그냥 신원 확인도 제대로 안하고 처리했다고 하더만
음 맞습니다. 이리역 언덕 쪽에 창녀촌에 매춘부들과 그날 밤 손님들이 벌거벗은 시체로 발견되었는데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그냥 처리되어서 실지로는 더 많은 희생자가 있었을 겁니다. 70년대 625끝나고 20년 후 아닙니까? 그러고 보면 우리 나라 짧은 시기에 정말 많은 발전했네여.
군산도 흔들릴 정도였음
저때가 만약 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이였더면..... 사상자가 수십배가..... 사고가 안일어나는게 제일좋지만 그나마 사람이 적은 밤에 사고가 일어나서 다행이네요....
화약에 양초를 올려놨어? 그리고 잔다고?
와 설명 기다리다가 숨 넘어갈 듯
사람이 죽어야 개선이되는 이런일들이 앞으로 없기를...
이런 1인 이상 사망사고에는 5년 이상 50억이상!!!! '이상'으로 왜?? 안만드나요??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대표한다고 하면서
실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국세를 받아먹고 있습니까??????
그 당시 한국화약은 지금의 한화그룹입니다.
뇌물 받으려고 열차를 40시간넘게 정차시켰다니 진짜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온다... 무슨 후진국에서나 생길법한
한국 정서가 나쁜건 빨리잊고 좋은건 내세우는... 대구 지하철 사고도 대구 시민만 기억함... 뭐든 유가족만 기억하지 아닌사람은 그때야 어떻게~ 하지 시간지나면 잊혀짐 먹고살기 바빠서
한국만 그런게 아닐텐데...참
당사자가 아닌 제 3자는 대부분 그렇습니다
한국만 그런게 아니라 사람이라면 대부분 자기의 일이 아니라면 그렇게 됩니다
제대로 된 책임자 처벌로 사람들 눈에 보이게 메세지를 줘야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되서 그럼.
위령탑 추모비 저거 이해되는 부분이네요
성수대교 붕괴 추모비도 구석진 곳에 있는 거 보고 좀 씁쓸하단 생각이 들었어요
초산암모니아가 뭔지 찾아보니까 질산암모늄이네요 베이루트에서 폭발한 그 물질이에요
조선시대 역관들이 하던 관행이 저때까지 남았었구나...
지역이그지역
뭔가 엄격한 법이 만들어져 봤자 일선 현장에선 어떻게든 편법 써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차암 알흠다븐 현실....
사람 고쳐쓰는 거 아이듯이, 한 집단, 나라 사회 또한 고쳐쓰는 거 아이다....
그래도 한화가 사고후에는 전재산 기부에 복구 지원 노력한거는, 지금도 귀감이 된다. 회장님이 어찌하든 천안함 폭침 후 지금까지도 유가족들 적극적으로 도와주지 않나.
16:50 아니 그 와중에 저 꽃을 가져가는 미친새낀 뭐야??!
군대에서 수류탄 훈련할때 조교들이 수류탄 수십발이 든 박스를 들고 수류탄 교장까지 옮기거나 탄(총알) 수백발이 든 탄통을 사격장으로 옮기기도 한다. 솔직히 이것도 엄청 잘못된거지.... 그 모든 현장을 간부나 장교들이 관리할 수 없으니까.. 잘못된걸 알고도 하는 현실이 참...
그당시. 익산은. 물론이고 전주. 군산 김제 까지. 모든. 유리란. 유리는. 다. 깨졌었대요 창 문이. 다. 깨져서. 엄청. 추운. 날씨였는데두. 유리가 없어서 엄청. 벌벌. 떨었다는. 후문이~
이 폭발사고를 이제알았습니다 ㅠㅠ
저희 어머니 이야기 술을마시고 양초를켜놓고 자다가 불이 붙었는데 기관사가 놀래서 조치도 없이 도망갔다더라고요
급행료 부분하고 화약류 취급 부주의는 다르죠...
급행료 요구한 자는 양형이 이해가 가지만...
화약류 취급 부주의 즉 운반 책임자의 관리는
엄격했어야 하죠...
화약류 취급 관리원칙을 철저하게 탁송 완료시까지
지켰어야 했는데...
어이없죠...불켜놓고 자다니...
그 사람은 도망^^* 살았어요?
ㅎㅎㅎ 어의가 뺌을 치네요 ㅎㅎㅎ
쿠팡은 뭔가요? 회장은 그날 사표내고....
이놈의나라는
누가하나죽어야.......
저런 미친 시대의 인간들이 지금도 현명한 어른인양 거들먹 거리며 살고있다.
? 그럼 저 시대의 사람들은 모두 미친사람인건가? 머지?
우리나라는 왜 추모 이런걸 잊으려하고 숨기려 하는지....... 이러니 같은 사고 매번 일어나지...
그것 또한 돈 때문이죠 위령비 추모비 새우면 그근방 동네는 집값 땅값 떨어진다고 그러니까요
저희아버지가 저때이리(익산)역 5분거리에서 사셨는데 대한민국 국가대표 축구보시고 주무셨는데 갑자기 폭발소리랑같이 유리창이다깨지고 옆집에는 기차바퀴가날라와서 집이무너졌다고하네요 사람들은 전쟁난줄알고 다들짐싸서 나오셨다고하네요 ㅠㅠ
그 사건 터졌던 당시 고3이셨던 아빠 회상에 따르면 폭발음이 이리역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창리에까지 들렸을 정도였었다는데.. 흠
아버지가 익산 왕궁살고계셨는데 저날 꽝 하고 집이 흔들렸다고 하셨어요. ㄷㄷㄷ
20년동안 양재에서 살았는데 한번도 못봤어요 그 위령비 시민의 숲 안가본곳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간혹 드는 생각은 우리나라의 어떤 사건 이름이 피해자 중심으로 붙여진다는 것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가해자는 누구인지 시간이 지나면서 잊혀지고 피해자는 시간이 지나도 계속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리역 폭발 사고”라고 부를 것이 아니라 “한국화약 열차 폭발사고”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화약입장에서도 역에서 급행료 요구안했으면 사고가 일어나지도않았을거임
하춘하쇼가있던 극장은 삼남극장이란 곳인데 자료사진은 삼남극장이 아니군요. 극장 앞엔 버스가 다니지도 않았고, 더구나 사진 찍는 위치는 사고날 때 내가 살던 집의 위치인데 고가가 있을 수가 없죠. 지금도 익산의 이 지역은 그대로 이기때문에 익산사람이라면 이 사진이 틀렸다는 것을 누구라도 알거에요. 폭발후 사진은 맞네요.
급행료가 문제네 ㅋㅋㅋㅋ에휴
저 이후로 각 지역마다 철도 기관사 승무 사업소에 숙소가 생긴걸로 압니다
철도 뿐만아니라 고속버스 기사님들 숙소도 생겼죠
급행통행료.......... 하... 그 놈이 원인이네요...
징역 1년........ 거기다 담당직원.......
911 테러가 있은 후 아직까지도 뉴욕근교 뉴저지 각 공원마다 그 잔해를 두고 추모비가 세워져있다. 지나가면서 계속 보이는 도로변에 있어서 늘 보게 되고 늘 생각하게 되능걸 보면 우리나라는 어쩌면 사고난 것 부정적 이미지는 빨리 덮어버리고 다시 보지 않으려하는게 있지 않나 싶어지네요.
대한민국이 아니라 어디 인도같음
이리에 원래 지명은 익산이고 일제강점기때 일본이 이리로 바꿔 불렀어요 익산역이라 부르는게 맞습니다
그게 아니고 이리시하고 익산군 통합된거 아님?? 그리 알고 있는데..
속리 > 솜리 > 이리 > 익산으로 이름이 변해 왔어요
예전엔 속리라고 불렸었고요.
나중엔 솜리가 되었는데 솜리라는 지명이 일제시대때 이리(뜻이 속리)로 바뀌게되었어요.
그래서 일제잔재를 없애기 위해 이리시와 익산군를 통합하여 익산시가 된거입니다.
이리시가 있었고 익산군이 있었어요 그리고 두 지역이 통합된 겁니다
@@만두-k7v 그것도 이유였고 저 중학생때 익산이 고향인 학교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로는 그당시에 익산은 알게 모르게 안좋은 사건 사고들이 많았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크게 터진게 이리역 폭발사고인데 이리 라는게 늑대 라는 뜻도 있어서 이름 때문에 이런 안좋은 일이 생기는게 아닌가 해서 익산으로 바꿨다는 썰도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급행료.. 그 역무원은 솜방망이.. 두다리 뻗고 잘자고 잘 먹고 잘 살았으려나요.
아주 자랑스럽게도 법안이 통과되자마자
바로 1호로, 즉 첫번째로 처벌받는
기업이 생겼죠 안전에 대해서 대충대충 하는
인간들 아주 자랑스럽네요?? 미친것들
덮어서 잊혀짐으로 해결하는건 일본의 방식이다 그것만으로도 최악이지
익산 사는 사람!!!
헐 대박 뒤에 배경 대탈출 적송교도소당
나 지금 익산 사는데 원래 익산 토박이가 아니고 안양 살다 익산 내려온 거라 이리역 폭발사고란 게 있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큰 사고인 줄은 몰랐네
진정한 파국의 완성이 다가온다..
존나 술먹고 대리부르면 15000으로 집가는데
15000아낄려고 단속걸려서 징역사는거랑 뭐가다르냐
광주 붕괴사고는 어제... 아직도 후진국형 사고
당시 90억이면 지금 일이조는 족히 될 듯
앞에 미리보기가 너무 길어용 ㅠㅠ
아~~ 이주일 하춘화 사건은 알고 잇엇는데 그게 이리역 사고엿군요...
고 이주일씨... 그립네요..
저당시 61억이면 지금이면 도대체 얼마야..2000억정도될라나ㅠㅜ
열받으니 불질러 놓고 구라친거지..
저 당시 다이너마이트 열차폭발사고로 故 이주일 선생님이 가수 하춘화씨를 살렸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사고로 인해 이리에서 익산으로 지역명이 바뀌었죠
제가 저 사건 때 어머니 뱃속에 있었고 이리시에서 성장기를 보냈는데요, 이리시는 계속 있었어요. 90년대에 익산군하고 합쳐지면서 이리시가 익산시로 바뀐 겁니다.
@@chimny1648 아... 지역명 변경이 그랬군요 ㅎ 제가 아는 상식이 짧아서 죄송하고요 고맙습니다^^
아직도 의문이죠 이리시가 익산군보다 큰 지역인데 익산시로 바뀐게ㅋㅋㅋㅋ
12:40에서 그 내용이 나오네요
@@잉유나-u3b 이리라는 무서운동물 이름때문이라는 썰 과 이리라는 이름이 일제부터 불렸던 이름이라 고치려했다는 썰이 있습니다
신모씨=신무일 입니다
초록물고기 다시보러갑니다
항상고향갔다오면 빽차숨어있다 돈달라고 어마어마했지요
‘보상’ 맞는 거 같은데...?
솜리(이리)역은 4480년전 거대한 대륙을 다스렸을때 수도로 삼았던 곳이다
화약통위에 양초를 켰다고?
이런 사건은 처음알았네..
한국화약이면 한화??
ㅇㅇ 한화
지금 한화는 오너가 다 깡패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