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망초님 추억의 영상 잘보았습니다. 저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의 추억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물망초님의 아픔가운데 지나고 보면 소중한 추억들이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과 어려움이었던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열심히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 왔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셨을수 있었을것이며 우리 부모님들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희생은 저희들이 잘모시며 섬겨야할 대상임을 알아야할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물망초님의 영상이 저를 조용하게 회환의 아쉬움으로 옛추억들을 소환하게 합니다. 방문하지 못했지만 항상 도계를 생각하게 만들며 반드시 방문해봐야할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울산에 거주중이며 직장관계상 울진에서 13년정도 거주하면서 태백과 통리, 사북, 철암 그리고 도계가 마음에 남아 지나간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게됩니다. 언제나 건강 잘챙기시고 하시는 모든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길 기도드립니다.
이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앞았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탄광이란 광산촌에서 앞음을 갖인사람이 물망초님뿐이겠습니까 저도 군대 갔다와서 정년까지 도계삼구시택에서 맡이고 떠난지 저도 30년이 흘러 영상을보면서 별 남는것이 없네요 장학금을 준영동책방사장은 제친구 강릉가서도 책방을 하다가 지병으로 떠난지 20년 됬습니다 참 할이야가는 만씁니다 마음이 쓰리네요 우리애들도 다 도겨서 학교다넸습니다 느티나무에서 참 많이 놀았지요 영상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핬는데 나이가 많이 제되로 됬는지?!
그때는 집들도 골목도 얼마나 커 보였는지요...저도 돈벌러 도계로 오신 부모님과 살다가, 불행히도 아버지를 여의고, 2년후 타지로 와 50이 넘도록 살고 있습니다... 제겐 도계가 고향의 그리움과 아버지의 사망이라는 불행. 이 두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남아 있지요... 어느 집이나 어느 누구나 사연은 있는 법, 힘드시겠지만 고향 선배님께서도 너무 슬픈 과거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심포리 구사택 에서 살았었는데...너무 그립네요..심포 국민학교 도계 중학교 도계 고등학교..나의 유년기 시절이 모두 여기에 있었네요...대학 다닐 때 석탄 합리화로 한 명 두 명 떠나던 마을이 이제는 아예 없어졌어요..화면에 나오는 저 동네는 남아 있기나 하니 가서 볼 수도 있고 부럽네요.심포리 는 다 사라졌죠..구사택 도 신사택 도 초등학교도 ....아직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던 모습, 초등학교 건물, 건물 앞에 심어져 있던 향나무들...이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한데....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니 많이 씁쓸합니다.인생의 요람기를 보낸 그곳,같이 놀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그립습니다.......
우리 집도 영상에 나오네요. 까막동네 맞은 편, 길 옆의 '영천청과상회'였던 곳이 우리 집... 철부지였던 시절에 늘 까막동네를 마주하며 살아서, 그 곳 친구와 새까맣던 산으로 봄이면 진달래 보러 올랐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어머니가 살고 계셔서 때때로 아직 들릅니다. 아픈 시간을 보내서 이기도 하겠지만, 영상이 내내 아련한 느낌을 주네요. 보는 내내, 저도 아픕니다.
어릴때 고향을 다소 우울하게 취재하셨네요.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좋았던 시절도 있었겠죠. 어린나이지만 장녀로서 책임도 있었으니 더더욱 낭만적인 유년시절은 아니었겠지만 이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으니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멘트가 너무 가라앉은 목소리라 더욱 숙연해지네요. 가족과 같이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영상 잘 봤습니다. 보는내내 눈물이 고이네요. 흥전 국민학교가 생기기 전 도계국민학교를 다녔는데, 흥전 상사택에서 전두시장을 지나고 도계역을 지나서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봄이면 맞은편 통리재에 빨갛게 물든 진달래와 겨울이면 엄청나게 내리는 눈에서 썰매타던 기억도 나고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곳이지요. 나 역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떠나 왔지만 지금까지도 내내 도계라는 글자만 보면 가슴이 아려 오는 곳입니다. 덕분에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알고말고요. 초중을 거기서 나왔어요. 전두리 거기서 상경전까지 살았고요 주변 지인들의 사고소식도 많이 접했고 심지어 오후 1시까지 함께 했던분이 그날. 저녁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초등학교뒤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엠블린스가. 도착하고 시신을 내리는 순간 그분 아내의. 오열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있네요 남매를 둔 그분은 대전으로 이사가셨고 아 그리운 고향
저도 도계 살았었어요. 다 떠났죠. 물망초님 덕분에 도계 최신 모습볼 수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전 운명적우로 태어난 고향이 아닌 타향인 도계서 살게 되 있었어요. 폐광되묜 더 많이 떠날겁니다. 추억을 소중히ㅠ간직할 수 있겠네요, 거의 다 빈집일겁니다, 당시 깡패많았죠, 징기스칸 나폴레옹 같은거 초등생부터 가덤해서 지가 뭐 되눈 줄 알고 깝쳤죠. 지굼 징기스칸(진시) 나폴레옹 꺙패둘 정치한답시고 선거판세에 뛰어들고..... 도계역은 그대로인거 같은데,,....
공감이갑니다. 정말 깡패천지였지요 ㅠㅠ 이유없이 두드려 맞은 기억들😢 저희때에도 야생마,돌산 등등 잡다한 패거리들이 도계를 살벌하게 한 주범들이 많았지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리 좋은 기억은 없답니다💦 모쪼록 잿빚기억은 다 지우고 지금 현재를 즐기며 살자구요! 포근한 밤 되세요✨️🧘♀️✨️
저도 도계하고도 늑구리라는곳에서 살았어요ᆢ옛날 생각하면 가슴아려오네요ᆢ동영상올리신분 아버님을 잃고 어린나이에 많이 힘들었겠어요ㆍ가슴이 먹먹해 집니다ᆢ😂
@@김태희-p6c2b 영상 함께해주시고 위로도 주셔서 감사합니다 ~^^
심포리의 전설
옛날 심포리에 아주 이쁜처녀가 살았다해요
하루는 처녀가 개울가에 나와 빨래를 하는데. 백룡과 훅용이 서로 처녀를 차지하겠다고 싸웠는데. 흑룡이 저서
땅에 떨어졌는더 그 주위땅이 온통 검은흙. 석탄 이였다고 합니다
전설 일뿐입니다
좋은하루되세요. ^^
아~전설이 재밌네요^^
방문 감사드려요
아름다워요❤
물망초님 추억의 영상 잘보았습니다. 저도 이젠 나이가 많이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예전의 추억들이 새롭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합니다. 물망초님의 아픔가운데 지나고 보면 소중한 추억들이 우리가 살았던 시대의 아픔과 어려움이었던것 같습니다. 이러한 어려움들을 열심히 노력하고 치열하게 살아 왔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선진국에 들어셨을수 있었을것이며 우리 부모님들의 자녀들의 미래를 위한 희생은 저희들이 잘모시며 섬겨야할 대상임을 알아야할것으로 믿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물망초님의 영상이 저를 조용하게 회환의 아쉬움으로 옛추억들을 소환하게 합니다. 방문하지 못했지만 항상 도계를 생각하게 만들며 반드시 방문해봐야할곳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울산에 거주중이며 직장관계상 울진에서 13년정도 거주하면서 태백과 통리, 사북, 철암 그리고 도계가 마음에 남아 지나간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게됩니다. 언제나 건강 잘챙기시고 하시는 모든일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하길 기도드립니다.
@@서광식-g1j 감사합니다 ㆍ늘 좋은날 되세요ㆍ
저도 흥전,도계중을 다녔는데 추억이 새롭네요.
같은 추억을 가지셨네요ㆍ^^
이렇게 라도 고향을 볼수있어서 감사합니다
이영상을 보면서 마음이 앞았습니다 먹고 살기위해 탄광이란 광산촌에서 앞음을 갖인사람이 물망초님뿐이겠습니까 저도 군대 갔다와서 정년까지 도계삼구시택에서 맡이고 떠난지 저도 30년이 흘러 영상을보면서 별 남는것이 없네요
장학금을 준영동책방사장은 제친구 강릉가서도 책방을 하다가 지병으로 떠난지
20년 됬습니다 참 할이야가는 만씁니다 마음이 쓰리네요 우리애들도 다 도겨서
학교다넸습니다 느티나무에서 참 많이 놀았지요 영상을 보면서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구독 좋아요핬는데 나이가 많이 제되로 됬는지?!
아 영동 서적
좋은일을 하신 사장님이신데 좋은곳으로 가셨을겁니다
제가 79년 도계국민학교 졸업했어요 도계중 졸업하고 타지로 깄지요. 지성병원 앞에 중국집에 살았죠 도계보니 가슴이 먹먹하네요
반갑습니다ㆍ우리가 75년 졸업이니까 후배시네요ㆍ^^
10여년전 돌아가신 아버님이 생각나는 영상 잘봤습니다 ~
감사합니다 ^^
같은 동네에 살았던 누님이네요. 저희 큰누님과 비슷한 연배이신듯~
저도 오랜시간이 지나고 찾아가봤는데 미니어처를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네ㆍ감사합니다
광부의 아들인 저로서는
제 원적지인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영상이 반갑네요 ^^
57세 입니다 ~😊
80년에 도계여중졸업생입니다~~참 그렇군요 ~~도계만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하니 말입니다~~
내동생과 동창이네요ㆍ하늘나라로 먼저떠난 동생이 그립네요~
동생이 도계여중에서 말썽깨나 피웠는데 아실거예요ㆍ
도계역건너편.전두리나의어린시졀초등학교졸업때까지살던곳아련한추억.영상감사합니다😂
어린시절 도계내고향을생각하면 늘 왜 슬픈건지~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지만 부모님사시던 빈집은 한번씩 들려봅니다
쓸쓸하고 슬프지만 그래도 늘 고향이 그립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ㆍ저역시 도계는 아픈추억의 고향 이랍니다ㆍ
2022년에 도계초등학교 졸업한 중학생입니다 다른지역으로 이사왔는데 오랜만에 도계보니까 좋네요😊
네~반갑고 감사합니다 ㆍ^^ 좋은하루 보내세요
폐광소식이 있던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안타까운 일이네요ㆍ
여기 우리집이 있었는데 까막동네라 하는군요
더 있을땐 그 이름이 없엇는데~`
우리가 살때도 그이름 없었는데 요즘가보니 있더라구요ㆍ
안녕하세요 현제 도계에 살고있는 시청자입니다 오늘 처음 이영상을 봤는데 어릴적 아픈 기억을 담고 계시지만서도 다시금 찾아와 이렇게 영상을 남겨주신거에 감사드려요 늘보는 지역 거리이지만 영상으로 다시보니 새롭게 느껴지네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도계라는 단어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답니다.추억의 일부분이어서 일겁니다.영상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때는 집들도 골목도 얼마나 커 보였는지요...저도 돈벌러 도계로 오신 부모님과 살다가, 불행히도 아버지를 여의고, 2년후 타지로 와 50이 넘도록 살고 있습니다... 제겐 도계가 고향의 그리움과 아버지의 사망이라는 불행. 이 두가지 감정이 복합적으로 남아 있지요...
어느 집이나 어느 누구나 사연은 있는 법, 힘드시겠지만 고향 선배님께서도 너무 슬픈 과거로만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좋은산천님께서도 저와 같은일을 겪으셨군요ㆍ
지금은 추억으로만 남아있답니다ㆍ행복한 하루 되세요ㆍ^^
흥전 초~~ 오랜만에 들어보는 단어입니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곳,, 감회가 새롭네요 덕분에 잠시 유년시절에 빠져봅니다
유년시절 같은곳에서 자란분이시군요ㆍ흥초다닌친구들도 꽤 있답니다~^^
심포리 구사택 에서 살았었는데...너무 그립네요..심포 국민학교 도계 중학교 도계 고등학교..나의 유년기 시절이 모두 여기에 있었네요...대학 다닐 때 석탄 합리화로 한 명 두 명 떠나던 마을이 이제는 아예 없어졌어요..화면에 나오는 저 동네는 남아 있기나 하니 가서 볼 수도 있고 부럽네요.심포리 는 다 사라졌죠..구사택 도 신사택 도 초등학교도 ....아직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 놀던 모습, 초등학교 건물, 건물 앞에 심어져 있던 향나무들...이 모든 것들이 눈에 선한데....이제,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니 많이 씁쓸합니다.인생의 요람기를 보낸 그곳,같이 놀던 친구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모든 것이 그립습니다.......
종규님 반갑습니다ㆍ제친구들중 심포초 다니던 애들이 몇명 있었는데~
이번에 도계 다시 가보았습니다ㆍ
영상 또 올려 볼께요ㆍ
우리 집도 영상에 나오네요. 까막동네 맞은 편, 길 옆의 '영천청과상회'였던 곳이 우리 집...
철부지였던 시절에 늘 까막동네를 마주하며 살아서, 그 곳 친구와 새까맣던 산으로 봄이면 진달래 보러 올랐던 기억이 나네요.
저는 어머니가 살고 계셔서 때때로 아직 들릅니다.
아픈 시간을 보내서 이기도 하겠지만, 영상이 내내 아련한 느낌을 주네요. 보는 내내, 저도 아픕니다.
같은추억을 가진거로도 서로 위안을 받습니다ㆍ댓글 감사드려요 ㆍ
나에 살던 고향
그냥 가슴이 멍 합니다
화자님 반갑습니다.저도 도계를 떠올리면 가슴이 아려 온답니다.
제2의고향 도계가 그립습니다
저도 초등학교는 도계에서 나왔는데 까막동네는 잘 모르겠네요~
전두시장 지나서 흥전가는길에 철길건너 동네 랍니다ㆍ
어릴때 고향을 다소 우울하게 취재하셨네요. 힘든 기억을 떠올리게 해서 그런가 봅니다. 하지만 친구들과 좋았던 시절도 있었겠죠. 어린나이지만 장녀로서 책임도 있었으니 더더욱 낭만적인 유년시절은 아니었겠지만 이젠 훌륭한 사회인으로 성장(?)하였으니 여유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멘트가 너무 가라앉은 목소리라 더욱 숙연해지네요. 가족과 같이 모두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영상 잘 봤습니다. 보는내내 눈물이 고이네요. 흥전 국민학교가 생기기 전 도계국민학교를 다녔는데, 흥전 상사택에서 전두시장을 지나고 도계역을 지나서 걸어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봄이면 맞은편 통리재에 빨갛게 물든 진달래와 겨울이면 엄청나게 내리는 눈에서 썰매타던 기억도 나고 나의 어린 시절을 아름답게 만들어 주었던 곳이지요. 나 역시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시는 바람에 떠나 왔지만 지금까지도 내내 도계라는 글자만 보면 가슴이 아려 오는 곳입니다. 덕분에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감사합니다.
그러게요ㆍ저랑 비슷한 처지셨네요ㆍ저도 도계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아려온답니다ㆍ
상사택에서 도계초를 다녔으면 진짜 않이 걸어다니셨네요!
전두 출렁다리건너 살았던 우리들도 멀다고 투덜거리며 다녔는데 등,하교 하시느라 진짜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립네요ㅠ내고향
그냥 도계 소리만들어도 마음한구석이 먹 먹해지네요
흥전국민학교 도계여중 졸업하고 객지로 나왔어요
화자님 반갑습니다 ㆍ
내동생친구도 화자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슬프고 아픈 추억이겠네요... 하지만... 고향이 잖아요... 마음을 보다듬으세요....저도 유년 15년간 도계 도원동..에서 살았네요.... 지금도 년 1회 방문 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ㆍ
도원동에도 친구들이 많이 살았었는데~
저와 비슷하게 살았었네요ㆍ
저도도계초등학교3학년다니다가도계를터났다가85년에석탄공사 나한갱5년하고대구에 살고있스ㅂ니다
알고말고요. 초중을 거기서 나왔어요. 전두리
거기서 상경전까지 살았고요
주변 지인들의 사고소식도 많이 접했고
심지어 오후 1시까지 함께 했던분이 그날. 저녁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초등학교뒤 병원으로 달려갔는데
엠블린스가. 도착하고 시신을 내리는 순간 그분 아내의. 오열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고있네요
남매를 둔 그분은 대전으로 이사가셨고
아 그리운 고향
도계 ~~ 어린적 초등학교때 까지살았어요
음력8월초 벌초하러 갑니다 ~ 이젠 많이 깨끗해 졌어요...
네~
도계에 가시는군요ㆍ
최근에 가봤는데 깨끗 했어요 ㆍ^^
저도 도계 살았었어요. 다 떠났죠.
물망초님 덕분에 도계 최신 모습볼 수 있었네요. 고맙습니다.
전 운명적우로 태어난 고향이 아닌 타향인 도계서 살게 되 있었어요.
폐광되묜 더 많이 떠날겁니다. 추억을 소중히ㅠ간직할 수 있겠네요,
거의 다 빈집일겁니다,
당시 깡패많았죠, 징기스칸 나폴레옹 같은거 초등생부터 가덤해서 지가 뭐 되눈 줄 알고 깝쳤죠.
지굼 징기스칸(진시) 나폴레옹 꺙패둘 정치한답시고 선거판세에 뛰어들고.....
도계역은 그대로인거 같은데,,....
공감이갑니다.
정말 깡패천지였지요 ㅠㅠ
이유없이 두드려 맞은 기억들😢
저희때에도 야생마,돌산 등등 잡다한 패거리들이
도계를 살벌하게 한 주범들이 많았지요.
사실 고등학교 졸업때까지
그리 좋은 기억은 없답니다💦
모쪼록 잿빚기억은 다 지우고 지금 현재를 즐기며 살자구요!
포근한 밤 되세요✨️🧘♀️✨️
야생마를 야씨라고 불렀죠
윗대는 모르겠지만 이제 60대가 다들 넘었네요 ㅎㅎ
저도 도계가 고향인데요 흥전동에 살았어요 언니는 흥전유치원 다녓구요
반가워요 ㆍ도계의 추억을 공유한 분들이 많이 계셔서 외롭진 않네요ㆍ~^^
요즘에 유튜브에 도계가 많이 나오네여
어릴적 동네와 살던 집이 아직도 남아있네요.. 슬픔도 기쁨도 추억할수 있으니 얼마나 조을까요
도계국민학교 16회 졸업생 입니다.떠나온지가 어언 50여년이 되었네요 가수 김씨네(김효원) 와 유치원 부터 국민학교6년을 같이 했구요 인생살이 한평생 잠깐 이네요.덕분에 잘 보았습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78세된 노인 입니다.
영상 봐주셔서 감사드립니다ㆍ저도 60대가 되었습니다 ㆍ
지나고 보니 정말 잠깐인듯합니다ㆍ~
김씨네 김효원형님과는 서울북아현동에서 고등학교시절이웃에서 같이살았읍니다 저희사촌형과친구시고 전 효원형님동생 원 이보다일년선배고요
그당시 효원형님네 도계집이아직도 머리에남아있네요 굴다리밑 큰집 그집형제들이름재미있어아직도기억하네요 ㅎ 억원 만원 효원 길원 원이
대선배시네요.저는 25회졸업했습니다 ^^
물탱크를보니 추억이생각나네요도계떠난지 56년 도계역은 내놀이터
저희때도 놀이터였어요.학생들 모여서 청소하기도 했구요.^^
도계고등학교생기기전 바로전해 도계중학교졸업생입니다 부득히 서울로유학가는바람에 생이별 중3때남여합반이었는데 김연희라는친구가보고싶네
@@광섭송-g9k 반갑습니다 ㆍ친구분 꼭 연락되시길~~
도계의 기본 화면은 항상
통리재 넘어오는 장면부터 시작
기차도 거꾸로 가던 고개
오십천 줄기따라 80리길
중고둥학교까지 다 촬용해줬으면 좋았을 텐데요.
전 흥전 초등학교를 졸업했어요...감사합니다...잊고있던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나네요
아 그러시네요~저도 추억여행 이었어요
몇회인가요 ,혹 순희를 알고 게신지요 ,순희야
도원동 늘 그립죠
도원동 사셨군요.학교다닐때 도원동성결교회다녔었는데~~친구들이 그립네요.
반가워요. 저도 성결교회 다녔습니다.^^@@fmn27
@@전찬진-e7o 그러시군요.저도 반갑네요.
저두도원동 성결교회기억이나네요.
저도까막동네출신입니다
그러시네요ㆍ~^^
저희와 비슷한 시기였을까요?
제친구도 까먹동네 살았었는데 아픈기억이 있지요 ㅜㅜ
철길건너 왼쪽이 탄바가지에 탄내리는곳이었고 까막동네 뒷쪽산이 도계탄광 이었지요
산을쳐다보먼 구루마다니는 작은 철길이 보였구요~~
태극체육관 명예의전당에 이름올렸던 한 사람입니다.
'67~'70 흥전국교 입학해서 다니다 전학...
흥초 친구들도 많이 알아요ㆍ모임도 했었어요ㆍ^^
감사합니다
잠시 추억에 젖어 유년을생각 합니다
참고로 저는 구사리에
살았습니다
네~반갑습니다 ㆍ혹시 고사리 아닐까요?고사리 사는 친구들도 꽤 있었거든요ㆍ~
도원동 지나 마교리지나 점리들어가는길 지나서 고사리일겁니다.
신리 가는길에 구사리 라는 동네가 있습니다.
영도님.도계를 아시는군요ㆍ
제영상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ㆍ
@@beat19006 네ㆍ그러시군요
인구가 많이 줄어서요
저도 살았던 도계 ^^
무척오랜시간속.전두리
어머님이 진짜 고생이 엄청 나셨겠어요.
님이 맏이였고 5학년이었다면... 광산촌에선 딱히 생계를 유지할것도 없었을거 같은데.....
미망인들도 광산에 선탄부로 취직하긴 했다고 하던데...
먼저댓글 감사드립니다.엄마가 고생이 많으셨죠.
도계초등학교를1974년 정도에졸업했습니다그때밴드부 활동을 했지요지금모두어디에서인생의여정의황혼을맞이하며준비하는지보고들싶네
@@가수김동하반갑습니다 ㆍ74년이면 한해 선배인듯 하네요ㆍ나이가 들수록 그시절이 그리워 집니다ㆍ^^
도계국민학교 출신이레요~~
반갑습니다 ㆍ동문 이시네요^^
몇회신가요?
@@PETERSAXOPHONECLUB 저는 31회 입니다ㆍ선생님께서는?
27회 인가? 아무튼 마이 방가우야~~?
야%~~~ 우타하다 도계출신을 다 만나나~~~ 차암 ~~ 메레이 음네야~~~~
웅장히 서있는 배움에 일터~~~~ㅋㅋㅋ
저도 고향이네요
토닥토닥..
물망초님 영상 잘 봤습니다 나도 도계를 떠나온지 약49년 정도....
혹시 여러분중에 75년도 도계초등학교 당시 5학년 성강현 (남)이라고 아시나요 강현이 형이름은 주현...강현이네는 당시 전두시장안에 시장식육식당(정육점)했었는데 그친구를 찾고 싶었어 강현이랑 추운겨울 새벽에 스게이트 타러 흥전동 산중턱 논에서 스게이트를 타곤 했죠
강현이도 보고싶고 그 동생들도 이제 모두50이 넘었는데...아시는분 댓글 바랍니다
친구분 꼭 찾으시길 바랍니다 ㆍ
저는 75년 졸업을 했네요ㆍ~^^
탄광촌에서 아버지 잃으신분들이 좀 계신가봐요. 라디오 사연에서 여러번 들었네요. 제가 벌써 50줄에 들었는데 우리네 부모님 시절은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도계국민학교6년졸업했던곳
아십지만 지금 흥전초등학교 전교새 수는 24명 입니다
어무나!
아름다운 곳이죠
신기한게 뭐냐면 유튜브에 도계 영상은 찍는 사람도 우울했던과거 슬픈과거 ㅋㅋㅋㅋ 댓글에도 전부 우울했던 과거이야기 ㅋㅋㅋㅋㅋ
그시절의 생활사가 어려웠던 탓
때문 일겁니다ㆍ50~60년대시절~~
죄송하지만 도계고등학교 생기기전 마지막 도계중학교 졸업생인데 몇회인지기억이안나서요 아시는분알려주세요 67년에졸업한거같아요
저희가 국민학교졸업이 75년 이니까 한침 선배 이시겠네요ㆍ^^
배성애 이젠 할머니가 되었겠지 어떻게들 살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