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런 우리 옛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많이 납니다. 조선역사 500년 동안 솔직히 기득권들은 국민을 위해 나라에 인프라가 하나 만들지 않고 지들 자리만 지킬려고 했으니, 결국 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갔죠.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요. 평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말라고 까지 했으니 이 나라 기득권들이 얼마나 강경 했는지 가늠이 갑니다. 모든 나라의 기득권들이 다 그렇겠었지만, 날이면 날마다 국력과 군력이 강해지고 있는 일본을 보고도 우리 나라 선조들은 정치 장난이나 하고 있었으니 결국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 못했고 결국 그 결과는 국민이 고스란이 책임을 져야 했죠. 씁쓸합니다.
해방후 지도자 정말 잘만난거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문제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는거지 ㅋㅋ 더구나 땔감한다고 온 국토 민둥산을 생각하면 지금 자연보호 환경단체는 당시 지도자들의 위대함을 기리고 동상을 세워도 시원치않을테데 지금 하는일은 북한 독재자나 빠는 좌파짓하면서 이상한일이나 하고 은혜도 모름 자기들이 무슨일을 하는지 정체성도 없고 그놈들 전부 북한에 보내봐야 아프리카나 남미엔 자원이 넘쳐나도 여전한데
@@권투-f8m 100년후 지금은 이전 100년전과 다름 ㅋㅋ 지금은 세계와 비교해도 나쁘지않음 문제는 100년전엔 다른나라와 비교하면 너무 미개했던것 지하철이 있을시기에 우리나라는 소타고 다녔으니 일본만 비교해도 답이없고 100년전 일본영상 유튜브에 있으니 비교해도 좋을듯 ㅎㅎ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과 다르고 대한민국이니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끈 지도자들에게 감사해야
배고픔의 해결 인간다움을 만들고 문화 민주주의 꽃피움 조선이 망하고 나서 이승만의 민주주의 도입 박정희의 경제발전등 지도자를 잘만나건 축복 근데 은혜를 모르는 국민들 넘치는게 과한 행운인듯 아프리카 독재자들처럼 국민들 교육도 안시키고 편하게 노예로 부려먹으면 편한데 ㅋ 독재자는 절대 국민들 교육열에 힘쓰지않지 배우면 반골기질이 생기거든 그말은 뭐다? 사교육을 폐지해서 전국민 교육을 편하게 쉽게 부담없이 만들어준 전두환은 절대 독재자가 아니란 소리 차라리 단임하고 내려오지말고 그냥 푸틴처럼 오래 해먹었으면 지금처럼 대우 안받았을텐데 푸티너럼 정적 다 제거하고 ㅋ
본인이 직접 본 자료가 아니지만, 조선시대에 한겨울이 지나고 나면 작은 부락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겨우내 마을 전체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서 말이죠. 몇몇 살아 남은 사람들은 보따리 싸서 다른 고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이죠. 그 시대 사람들에게 겨울이란 언제나 겪는 하나의 계절이 아니라, 생존 하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계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감사하게 살아야하겠습니다...영상을 보노라니...조상들의 艱難辛苦에 가슴이 숙연해 집니다.
조낭님들이 저 삶을 이겨 내시며 번성시킨 후예들이 우리입니다.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어보니 길가의 어르신들만 봐도 정말 대단하신 삶을 살아 오신듯하여 고개가 숙여집니다. 모두들 한 번 태어나 경험하고 돌아가는 삶입니다. 만사에 항시 감사하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문제는 절대 그럴수없다는거 세대 갈라치를 넘어 남녀 갈라치기까지하고 간호사 의사까지 갈라치기는 하는놈듦 아무리 잘못해도 일단 갈라치면 한쪽은 자기들 편을 들테고 그럼 승부는 무지성으로 누가 몰표를 보내주는가가 핵심이 되어버림 그럼 몰표많이 내는 지역정당이 이기는 구조 ㅋ 그리고 조상님이 번성시킨게 아니라 조직은 우두머리의 지도력이 중요함 해방후 지도자를 잘만난거임 그런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는게 한번 쪽박을 차고 고생해봐야할 교훈이긴하지만
요즘 세상 진짜 좋아졌다는걸 알아야합니다. 60-70년대만 해도 지금 처럼 패딩이니 거위털이니 하는 건 서민들에게 없었고 가뜩이나 시골에는 전기도 들어가지 않던 시절입니다. 그 시골이 지금에야 신도시가 된 것이지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삶입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서민들의 삶은 이북과도 같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앞선 세대들의 피땀 스며든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이 살아온 삶과 열정을 본받아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마음이 차갑습니다.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고도로 첨예해져 더 이상 진정한 의미로서의 발전이란 없을것 같은 물질만능, 상대적 가치편향사회에 살아갈 뿐이기에 이들이 주역이 되어야 할 사회도 점차 추워지겠지요. 허나 앞선 세대는 이렇게될 줄 알고 국가의 장래와 미래세대의 세상을 위해 그들의 삶을 헌신해온 것이 아닙니다. 몰라도 그렇게 했어야만 향후 안정된 기반이 보장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사는것 같지 않아도, 삶의 목적 유무를 떠나 한 번 태어나서 눈 떴으면 감성어린 꿈에서 깨어나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갖추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저만큼 추운 겨울을 다시 맞이하기 싫다면 말입니다..
백년전 TV 님 귀한 사진 고맙습니다 ^^* 생각해 보면, 저 어릴 떄도... 어떻게 겨울을 이겨 냈는지........... 파카 잠바 같은 건 물론 없었고... 추우면 안 돌아다니고.... 밖에 나갈 땐 옷이란 옷은 다 껴 입고 나가고..... 그래서, 그 때가 더 추웠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저러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입니다. 5천년 역사에서 만 백성들이 밥을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도 불과 50년 전 정도입니다.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에 수많은 외침으로 점철된 우리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보십시오.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쌍하게 살아왔었던가를... 그러나 지도자들은 오직 내가 속한 당과 가문의 이익만 쫓아서 백성들을 수탈하고... 늘 벌거벗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박정희 같은 혁신적인 지도자가 나오게 되었고 우리는 배불리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아직도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진흙탕 싸움중이겠지요. 친일이고 나발이고 떠나서 한 인간이 만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한 것, 그것 하나로도 박정희 대통령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70년대에는 아침 뉴스가,,, 연탄가스로 사람들이 죽는 일이 흔했다는 것... 그래도 집에는 다 연탄... 참... 보일러 세상이 이렇게 정착될 줄 그 때는 몰랐는데,, 어느날 부터 집에 보일러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니,,, 매일 목욕하게 되더라구요,,,
하여...... 그시절 평균 수명이 40을 넘기기도 힘들었다한다. 빈대와 온갖벌레들.. 거친잠자리 바닥.. 그시절엔 아프리카 흙집과 하나도 다르지.않았을터.. 불과 1970년도 초반만 해도 바닥은 멍석이고 흙벽 그대로 사는 집들도 많았으니.. 아--삶이여.. 아..삶이여.... 삶의 고단함이여...
@@_NakTa / 두들장은 추운 다른 국가에도 많앗슴,, 그리고 전통방식의 구들장과, 형재 쓰는 온돌은 다름 현재쓰는 보일러 난방은,, 미국인이 개발한 방식이고 한국은 구들장인데 구들장 좟같다고 99.99%가 안쓰잔아 그런데 구들장 좋다면서 ㅎ뢍토방 장박불때고 구들,온돌,습식,건식 차이를 모르니까 그냥 바닥이 따뜻하면 모두 온돌로 생각하지 그건 자랑이 아니라 무식임 옥저에서 발명된 전통 구들은 오히려 동북아시아 북방계 민족이 발명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씀 한국은 발명하고ㅓ 갑부들만 잠깐 쓰다 끊겼고,, 다시 부활도니건 300년 정도뿐이 안됨 구들장 온돌집이 좋아? ㅋㅋ 요즘이야 벽체 냉난바잉 잘되서 그렇지 그전에는 겨울에 좌샅앗어,,방바닥만 땃고 이불 밖은 입김 나온게 한옥 구들이야 쪽바리 집안과 똑같지 ㅄ들은 한옥은 따뜻하고, 쪽바리 집은 춥다고 하는데 한옥 벽체는 흙이고, 흙 20~30cm가 무너 난방을해서 따듰해?,, 흙벽 아니면 창홎인데 그게 난방 좋은데 요즘은 ㅄ처럼 시멘트+단여\ㄹ제 사용하나? 그냥 한옥처럼 흙만 바르면,,,따듯한데?ㅋㅋ
일제 식민사관에 찌들었군요. 님이 말한 부끄러운 조선을 그래서 구해준 것이 일본이였다로 결론 지으는 것이 일제와 식민사관의 뉴라이트 주장입니다. 백성은 굶주리고 보릿고개는 연례행사였고, 관리들은 부정부폐, 당파싸움...그래서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거죠. 역사를 다시 공부해보세요.
실내온도 영하 20도는 버티는게 불가하고 대체로 수도권 기준 빈가는 최저 영하 5도에서 겨울 연명, 서민 집이라도 가을에 열심히 나무 준비해 놓으면 겨울내 땔감은 있음. 그래도 전체적으로 3/5는 집안에 기침이 끊이지 않는 폐병, 천식, 감기로 고생하고 2/5는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계절이었겠지.
영상 감사합니다. 어디서 보기 힘든 귀한 자료들이네요. 지금이야 어떻게 저렇게 살까 하지만 저 당시는 저게 생활표준이니 다들 그렇게 살았을 것이겠죠. 부자는 아니지만 삼시세끼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집에서 쉬고 따뜻한 물에 목욕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jeonggeunkim6002 지금은 프랑스가 센느강 똥에 거리에 쥐와 똥 오줌냄새에 지하철에도 냄새 쥐가 출몰하기도하고 뉴욕에도 쥐떼로인해 골치를 썪고있는데 우리나라와 역전됬네요 한국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한국만큼 깨끗한 도시가 드물죠 지금은 많은것들이 앞서는 나라가 됬죠 프랑스올림픽과 평창올림픽 보면서 얼마나 한국이 대단하고 우월한지~
조선 일반 백성들이 그나마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낮엔 누비솜옷으로 버티고, 밤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온돌 방바닥에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두고,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누워 밤새도록 방바닥이 식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지요. 70년대 초반 우리 외가 초가도 그랬는데, 아궁이에 불을 한번 땠을 뿐인데 밤새도록 온돌 바닥이 뜨겁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말하자면 온돌 문화가 우리 조상들을 살린겁니다. 온돌 방식 난방 초가를 무조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초라한 모양새와 달리 짚 지붕 덕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과학적구조 형태의 집입니다. 반면에 서구의 벽난로 형식 난방 가옥 형태가 오히려 열손실이 많은 비과학적 구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집안에서조차 춥게들 살았지요. 중세 암흑시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물론 송시열, 대원군, 안동김씨, 민씨일파 같은 꽉막힌 왕족 양반 나부랑이 썩은 족속들 때문에 조선의 개화가 일본보다 많이 늦추어 진 것이 천추의 한이기는 합니다.
@@김진현-h7k7l 전주이씨, 안동김씨, 민씨일가, 흥선, 어리숙한 고종, 그리고 사대부들.....이들 모두가 그들의 조선을 망하게 했지.... 어렵게 삶을 살고 있었던 노비나 일반 양민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겠지요. 오히려 일본에 의해 개화되어 출세 길이 열리게 되어 그들의 삶은 더욱 나아졌을 겁니다.
사극을 보고서 그것이 그당시 모습인양 착각 하면 안됩니다 사극은 너무나 화려한 의상으로 나옵니다 실상은 그당시 비단도 그리 고품질이 아니었고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들이나 노비 및 서민 농민들의 의상은 다떨어지고 헤어진 옷들도 많았습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온 어떤이가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고려시대에는 남녀가 같이 냇가에서 여름에 목욕도 하였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려의 어부들은 연안에서 1킬로 정도도 멀리 가지 않으며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이 아랫도리 바지나 치마 같은 하의는 입지 않았고 웃도리(저고리)만 대충 누더기를 입고서 햇볕만 가린채 고기잡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서해의 인천이나 태안반도 쪽을 둘러봤지만 전국이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사극에는 그런내용 전혀 안나옵니다
조선말에는 그져 남자들은 할일없이 누워 있고 굶주린 사람들도 많았으며 집안에는 조금만 살림살이가 늘어나도 관아에서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시절이라 백성들 대부분은 집안에 쌀이나 콩 보리등의 곡식조차도 그리 많이 비축해 둘수도 없어서 봄만 되면 너도나도 산에 가서 소나무 껎질 벗겨내고 속껍질 뜯어서 먹고 나무가 죽으면 다시 땔감으로 잘라가니 산에 나무들이 없었습니다 깊고 높은 산들 이외에는 그래서 나무를 하려면 한양이나 지방의 도시에서 아주 멀리가야 했습니다 봄되면 너도나도 식량이 없고 그렇다고 조정에서 식량을 나눠주는것도 아니고 착 취만 해가니 굶주린 배를 붙잡고 쑥이며 온갖 풀뿌리와 나물종류를 먹는것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물고기나 산에사는 노루 고라니 토끼 꿩등 온갖 동식물과 조류들및 강과하천의 물고기를 잡아서 굶주림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개구리 메뚜기등도 중요한 양식이었구요
지금 풍족한 삶을 살고 있어 조상님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때는 문화가 뒤떨어 져서 생산력이 최소화 일때고 지금은 문화가 발달되어서 젊은이들은 경제원칙에 따라 경쟁사회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생산력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지금 젊은이들이 일도 훨씬 많이 하고 힘든 세상 입니다.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온돌 난방 때문에 2층 이상의 건물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됨 그 정도로 난방 문화가 아니었으면 살기 힘들 정도의 국토에서 살아 온거임 고래 기름이나 석유의 발견 이전에 산에 땔감 이라도 있어서 사는 거지 다 얼어 죽을 수준임 그러니 전부들 중원이나 베트남 같은 곳을 전부다 탐하다 보니 거기는 매번 전쟁이나 침략으로 나라가 뒤집어 지면서도 풍요함
나이80인데 옛 정취를 느낄수 있군요. 어찌보면 그때가 조금 그립기도 합니다. 저도 기억에 나이롱 양말에 말표 검정 고무신 신고 제대로 된 장갑도 없어 손,발 귀에 동상이 걸려 터져 피가 나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도 외투없이도 잘 뛰어 놀았어요. 교실에는조개탄 난로 위로 도시락을 쌓아 올려 놓았었지요. 덧버선 없이 교실바닥이 얼마나 차가웠겠어요. 그렇게 살아왔지요. 길에는 빙판이 생기면 최고의 놀이터로 미끄럼 타기를 했는데 어른이 흙을 뿌려 놓으면 그렇게 야속하게 보이기도 했고요. 옛날을 회상하며 좋은 사진 고맙게 봤습니다. 감~~사~~~
그시대 어느 나라나 기득권에 의한 착취는 있었음. 그럼 다른 열강들,심지어 일본도 발전해서 열강이 됐는데 조선만 왜 가난했냐?그건 조선의 정치이념때문임. 자본주의 근간인 상업과 교역을 천한것으로 탄압하고 농업에만 몰빵했음.기술발전은 자본주의적 상업과 교역에서 나오는건데 정치이념이 자본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하니 가난할수밖에,기술도 발전 못할수밖에..
유럽은 중세 근대.고대에도 크고 반듯한 돌집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물론 도시에서. 우리는 60년도 후반까지도 도심만 조금벗어나도 초라한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지. 서울도 초가집이 많았고. 새마을 운동이 초라한 초가집을 없애고 슬래트로 지붕을 대신했지.석면덩어리가 발암일급물질인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시간이 좀 흐로고 아파트 공화국시대로 진입.지금은 아파트천국이지비. 그리고 시골부엌에서 저녁때 밥하고 소죽끓일때 두어시간 가마솟에 불때면 아무리추워도 다음날 아침까지 안방이 뜨끈했지. 처음에는 뜨거위서 살갗이 데일정도.
조상님들.. 우리 할배 할매 너무 고생하셔서 불쌍하고 눈물납니다
부디 천국에서 나마 배부르게 드시고 더이상 고생없이 따뜻한 겨울 보내시고
영면 하시길 진심으로 기도 합니다..
에구... 저렇게 겨울을 나셨으니, 오래 사실수가 없었겠네요.. 불과 100년전에..에구.. 감사하면서 살아야겠어요..ㅜㅜ
박정희가 통치하기ㅡ전엔 초가집에 살고 겨울엔 방에서 물이 어는 방에서 잤다
그런 생활을 종식시킨 한반도 유일한 지도자인데
이 분까는 자들은 초가짐에서ㅜ방에 물이ㅡ어는데서 자봐야 댕댕소리를 못하지
오죽하면 환갑입니까? 60세면 오래산 어려운시기 양반이 아닌 사람들은 50세도 넘기기 힘든 시기 였을듯 합니다.
저런 우리 옛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화가 많이 납니다. 조선역사 500년 동안 솔직히 기득권들은 국민을 위해 나라에 인프라가 하나 만들지 않고 지들 자리만 지킬려고 했으니, 결국 이 나라가 일본에 넘어갔죠. 국민이 얼마나 고통을 받았을까요. 평민들에게 한글을 가르치지 말라고 까지 했으니 이 나라 기득권들이 얼마나 강경 했는지 가늠이 갑니다. 모든 나라의 기득권들이 다 그렇겠었지만, 날이면 날마다 국력과 군력이 강해지고 있는 일본을 보고도 우리 나라 선조들은 정치 장난이나 하고 있었으니 결국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 못했고 결국 그 결과는 국민이 고스란이 책임을 져야 했죠. 씁쓸합니다.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역사는 늘 반복 됩니다. 지금도 국민 안위는 생각하지 않는 기득권 정치인들 보면 예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whjjuyuu정확히 말하면 고종이 싼똥을 지금까지 치우고 있는거지.
@@whjjuyuu니애미
조선시대 인구의 상당수가 매매의 대상인 노비(노예)였죠..다른 민족도 아닌 같은 민족을 대규모로 그렇게 세습 노예로 가혹하게 대했던 고대 이후엔 세계사적으로도 드문 케이스일듯요. 중국과 일본에 비해서도 훨씬 가혹한 제도였습니다.
난 목화솜이들어오기전 우리조상들은 얼마나 추위에 고통받았는지 생각하면
맘이 아프네요
그렇죠
나라사랑 문익점
고작 100년전... 지금은 상상할수도 없는 고난속에서 삶을 살아내신 선조들을 생각하면 숙연해집니다.
해방후 지도자 정말 잘만난거 행운이라고 생각해야 문제는 그런 고마움을 모르는 국민들이 많다는거지 ㅋㅋ 더구나 땔감한다고 온 국토 민둥산을 생각하면 지금 자연보호 환경단체는 당시 지도자들의 위대함을 기리고 동상을 세워도 시원치않을테데 지금 하는일은 북한 독재자나 빠는 좌파짓하면서 이상한일이나 하고 은혜도 모름 자기들이 무슨일을 하는지 정체성도 없고 그놈들 전부 북한에 보내봐야 아프리카나 남미엔 자원이 넘쳐나도 여전한데
이래서 시대를 잘 타고나야댑니다.
100년후에도 지금의 모습 보면 똑같은 소리 합니디ㅡ
@@권투-f8m 저때가 좋았지... 할지도...
@@권투-f8m 100년후 지금은 이전 100년전과 다름 ㅋㅋ 지금은 세계와 비교해도 나쁘지않음 문제는 100년전엔 다른나라와 비교하면 너무 미개했던것 지하철이 있을시기에 우리나라는 소타고 다녔으니 일본만 비교해도 답이없고 100년전 일본영상 유튜브에 있으니 비교해도 좋을듯 ㅎㅎ 지금의 대한민국은 조선과 다르고 대한민국이니 대한민국을 건국하고 이끈 지도자들에게 감사해야
몇몇 양반들 외에는 태어난게 저주인 그때의 사람들 ㅜㅜ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습니다.... 지금은 자유라도 있지 그때는 가난에 추위에 배고픔에 말 한마디 편하게 할 수도 없는 억압까지... 정말 상상조차 힘드네요... 이제는 모두 하늘에서 편안하시길...
조상님들이 하늘에서 편안하고 영원히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 조선시대는 산으로 도망가고 싶어도 호랑이 늑대등 산짐승들한테 잡아먹혔죠...그래서 도망도 못갔어요
배고픔의 해결 인간다움을 만들고 문화 민주주의 꽃피움 조선이 망하고 나서 이승만의 민주주의 도입 박정희의 경제발전등 지도자를 잘만나건 축복 근데 은혜를 모르는 국민들 넘치는게 과한 행운인듯 아프리카 독재자들처럼 국민들 교육도 안시키고 편하게 노예로 부려먹으면 편한데 ㅋ 독재자는 절대 국민들 교육열에 힘쓰지않지 배우면 반골기질이 생기거든 그말은 뭐다? 사교육을 폐지해서 전국민 교육을 편하게 쉽게 부담없이 만들어준 전두환은 절대 독재자가 아니란 소리 차라리 단임하고 내려오지말고 그냥 푸틴처럼 오래 해먹었으면 지금처럼 대우 안받았을텐데 푸티너럼 정적 다 제거하고 ㅋ
조선시대는 끔찍하죠.. 국민 대다수가 노예 근대에 이르러서도 자국민을 노예부린 유일국가. 지금 유명한 이이나 이황 정약용마저 노예제 적극찬성. 끔찍한 시대가맞습니다
@@newbee3001정약용도 그렇게 이야기하셨나요? 그래도 천주교 신자였고 깨어난 학자이지 않았나요~? 잘몰라서 여쭤봅니다
우리 조선민족은 중국 대륙의 일부 원시인이었습니다. 현대적인 사회가 된 것은 일본 덕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조상님들 얼마나 추우셨을까 ㅠㅠㅠ
제나이 칠십입니다. 군데 군데 제가 경험했던 모습도
보입니다. 지금의 추위는 봄날입니다.
기나긴 겨울밤..추위와 배고픔..마음이 아려옵니다..
봄날 ㅇㅈㄹ ㅋㅋㅋ
시발라마 위에분 말이 맞 다
@@agn943에휴..
지금사는 세상도 100년후면 저때는 어떻게 저렇게 살았지 할것입니다
@@agn943 니가 인간ㅇㅣ냐?
저렇게 고통의 겨울을 났으니 따스한 봄이 얼마나 반가웠을까ㆍㆍ짠해지네
먹을 것 입을 것 모두 형편 없던 때에도 강인하게 버티고 살아 온 선조들이 참 대단하신 분들이죠
우린 지금 너무 좋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귀한 영상 잘 봤습니다
본인이 직접 본 자료가 아니지만, 조선시대에 한겨울이 지나고 나면 작은 부락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답니다. 겨우내 마을 전체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어서 말이죠. 몇몇 살아 남은 사람들은 보따리 싸서 다른 고장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이죠. 그 시대 사람들에게 겨울이란 언제나 겪는 하나의 계절이 아니라, 생존 하느냐 마느냐 하는 그런 계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늘 감사하게 살아야하겠습니다...영상을 보노라니...조상들의 艱難辛苦에 가슴이 숙연해 집니다.
간난신고
근데 지구입장서보면 저렇게해서 인간이40세이전에 빨리빨리 죽는게 정상인데 지금은 이산화탄소도 높아지고 죽지도않아서 인구80억돌파 ㅋㅋ 기후도이상해지고 ㅋ 순리대로라면 저렇게 얼어죽는게 맞는건데
아..그럴수도 있었겠네요..ㅠ
서울이 이렇게 추운데 북한쪽은 얼마나 추울까요.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진짜 궁금함.
@@이오디나무열매 거의 얼어죽었음..조선시대 평균수명30세정도임...왕도 평균수명이40세가 안되니까
새마을 운동 전의 시골 모습이 구한말과 다를바 없었네요
일제강점기에 6.25까지 겪은나라에 뭘바라는거 ㅋㅋ
@@체페-b2w 일제시기에 그나마 있는거까지 다 뺏기고 625전쟁으로 남은거까지 싹다 초토화
새마을 운동으로 시골이 변한게 아니라 ㅋ
근대화로인해 시골도 영향을 받은 것 ㅋ
새마을 운동과 먼상관
@@시마다이르시아 새마을 노래 가사만 알아도 이런글 안쓸건데
그럼에도 이 나라를 지켜주셔서 고맙습니다!
진짜 안쓰럽고 불쌍해요
조상님들 너무 고생하셨네요
우리는 많은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내 삶을 감사하게 만드는 가슴 아프지만 꼭 필요한 영상이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저도 어릴적에 집에 오면 제일먼저 부엌 "아궁이" 이나 "화로"에 발부터 녹였습니다. 50년 지난 지금은 행복하죠.~~👌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것이 얼마나 편하고 행복한 삶인지 깨닫는 영상이네요.... 우리 부모님들 정말 힘들게 사셨네요.....부모님께 말로만 듣던 옛날 이야기를 영상으로 보니 마음이 아픕니다..
예전 우리의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강한 대한민국, 잘사는 대한민국을 세워나가야되지요. 다시는 짓밟히지말아야하지요. 우뚝 서 나가야합니다. 세계 최고를 향해 !!!!
짓밟히지 말아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위만 조선 이후로 한반도는 단 1번을 제외하면 중국의 제후국이 아닌 적이 없어. 그 기간 마저도 왕조의 정체성을 의존하고 있었니까 얼마나 비참하고 저등한 민족인거야.
짓 밟히다니요? 고종이 지구상의 모든 왕족들보다도 해마다 더많은 돈을 받는 조건으로 나라를 팔아쳐먹엇는데요?
돈주고 물건사면,,,자영업자들을 짓밟는건가요?
세계최고 인구절벽
우리나라 정말 우린복받은세대입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지금 중국공산세력이 한국 점령함
지금 온난화에 아파트에 살아도 춥다춥다 그러는데, 그당시 정말로 오리털이있는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두꺼운 옷이 있는것도 아니고, 영상보는내내 우리 선조님들 정말로 대단함을 다시한번 느낍니다. 제대로된 옷과 신발도없이 한세월 보내신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영상 잘보고 갑니다.
술 퍼마시고 맨날 자빠져 잠이나자니 발전이 없었던거지.
그 가난을 박정희대통령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x7h 여대생 끼고 놀다가 총 맞고 대가리 깨진 새끼 말함??
@@HJL-ty6rq 지금처럼 일거리가 널린 줄 아는가보네... 할 일이 있어야 일을 하지....
@@Ovweloop그당시 조선도 지금만큼 추웠습니다. 더군다나 온돌? 모든집에 있었던게 아닙니다. 중산층 집
이상에나 온돌이 있었고 그이하 백성들은 판자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온돌 없었습니다. 표범, 담비가죽? 나무도 없어서 땔감도 못떼는데 무슨 놈의 표범가죽을 입어요?
저 사진 꼬라지좀 보세요 저게 근대국가인가 아님 신석기시대 부족국가인가
와..옛날에 비하면 지금은 진짜천국이구만...
지금시대는 돈벌 마음만 있으면 여러가지
먹고싶은거사먹고 각종옷신발 스마트폰 차
냉난방장치있는집 등등 본인한테 필요한거를 자유롭게 가질수있는 옛시대보다
억수로~ 풍족한시대라고 봅니다..
제가 사회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억수로
많이받을때면 주말내내 과음하기도 했었는데 조상님들께서 극한자체인 인생을 견뎌내셨던것을보고 깨우치며 반성하게 됬습니다...
올해 33살인데 조금이라도 젋을때 정신력을
훨씬 강하게 잡아나가야겠습니다
좋은영상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젊은 시절에 이런 생각 자체만으로 이미 훌륭하십니다.
지금이 우리민족 5천 년 역사상 가장 부유한 시절입니다.
@@채송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동물은 풍요롭지만 다른 동물들이 고통을 당하지. 소돼지닭오리개고양이를 헐값에 하도 잡아쳐먹고 음식낭비하고 해서
지금의 서민 가정이 조선 왕들보다 훨씬 더 호화롭게 살죠 ㅎㅎ 기술의 발전이란...
@@채송산 222 조선 반도 역사에서 최고 부흥기가 이명박 시절부터 지금까지임.
조낭님들이 저 삶을 이겨 내시며 번성시킨 후예들이 우리입니다. 나이가 50대 중반이 되어보니 길가의 어르신들만 봐도 정말 대단하신 삶을 살아 오신듯하여 고개가 숙여집니다. 모두들 한 번 태어나 경험하고 돌아가는 삶입니다. 만사에 항시 감사하며 서로 도와가며 살아가는 그런 사회가 되었음 좋겠습니다. 영상 고맙습니다♥
50대 중반 복받은 세대입니다.
네 저도 50중반인데 젊은 시절 복 받은 세대인지 모르고 나이만 먹었네요.나름 힘든 시대적 조류도 있었습니다. 님은 어느 세대인지요?@@MBC817지령-fb6ul
@@MBC817지령-fb6ul 먼 개소리야 ㅋ
문제는 절대 그럴수없다는거 세대 갈라치를 넘어 남녀 갈라치기까지하고 간호사 의사까지 갈라치기는 하는놈듦 아무리 잘못해도 일단 갈라치면 한쪽은 자기들 편을 들테고 그럼 승부는 무지성으로 누가 몰표를 보내주는가가 핵심이 되어버림 그럼 몰표많이 내는 지역정당이 이기는 구조 ㅋ 그리고 조상님이 번성시킨게 아니라 조직은 우두머리의 지도력이 중요함 해방후 지도자를 잘만난거임 그런 은혜도 모르는 인간들이 많다는게 한번 쪽박을 차고 고생해봐야할 교훈이긴하지만
인성이 참 바르십니다
저 시대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보고 있다는 상상도 못하겠지 50년 뒤에는 얼마나 변할까요..
요즘 세상 진짜 좋아졌다는걸 알아야합니다. 60-70년대만 해도 지금 처럼 패딩이니 거위털이니 하는 건 서민들에게 없었고 가뜩이나 시골에는 전기도 들어가지 않던 시절입니다. 그 시골이 지금에야 신도시가 된 것이지 당시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삶입니다. 경제발전과 민주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지금도 서민들의 삶은 이북과도 같았을지 모를 일입니다. 앞선 세대들의 피땀 스며든 노고에 감사하고 그들이 살아온 삶과 열정을 본받아서 살아가야 하겠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마음이 차갑습니다. 세상은 학교에서 배운대로 돌아가지 않으며 고도로 첨예해져 더 이상 진정한 의미로서의 발전이란 없을것 같은 물질만능, 상대적 가치편향사회에 살아갈 뿐이기에 이들이 주역이 되어야 할 사회도 점차 추워지겠지요. 허나 앞선 세대는 이렇게될 줄 알고 국가의 장래와 미래세대의 세상을 위해 그들의 삶을 헌신해온 것이 아닙니다. 몰라도 그렇게 했어야만 향후 안정된 기반이 보장되기 때문이었습니다. 피곤하고 사는것 같지 않아도, 삶의 목적 유무를 떠나 한 번 태어나서 눈 떴으면 감성어린 꿈에서 깨어나 시야를 넓히고 안목을 갖추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저만큼 추운 겨울을 다시 맞이하기 싫다면 말입니다..
박정희가 얼마나 우리민족에게 빛과 같은 존재였는지 다시한번 느끼게 됩니다
@@drg8646지랄도 풍년이네. 박씨 찬양하는거 보니 살날 얼마 안남은것 같ㄴ데 남은 날짜나 보다 알차게 살 생각이나 해라
필력 예술이네요!
그놈의 박정희 지겹네요 역사는 그당시 쿠테타가없었으면 더발전할지 더 못할지 모르겠지만 우리국민들이 이룬거라 말하면 동감하겠지만 박정희라 당신들 큰일하기위서는 친구들 때려죽이고 가족들 죽여도 상관없죠
@@drg8646 그분덕에 한국인의 기본적인 삶이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독재다 뭐다 해도 기본적인 의식주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요.
목화솜 들어 오기전에는 추위에 떨며 고생은 말도 못하겠죠. 우리 조상님들 천국에서 만납시다~ 거기다가 다른나라 침략 때문에 조상님들 감사합니다. 우리 어릴 때 70년 초반에도 연탄 불로 구들 아랫목 따뜻 한곳은 아기 차지, 웃목에 얼음이 얼어 있었습니다 ~
저도 겨울만 되면 드는 생각 💡
추가로 지금의 북한 사람들은 올겨울 추위를 어찌 견디지? 이런생각도 들구요
조선시대 가난한사람처럼 혹한의 겨울을 버티는 사람들이 바로 지금 북한사람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ㅠㅠ
참으로 우리 조상님들 가난하게 살았네요 얇은 옷하나와 짚신 하나로 그 추운 겨울을 견뎌냈다니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우리의 선조들께 감사의 절 올립니다 👏👏
백문이 불여일견. 현세대는 정말 복된 세대란 것을 느끼게 해 준 영상이네요. 기아와 추위로 부터 대다수의 인류가 벗어난 것은 최근 몇 십년이지요. 감사하게 생각해야 되겠습니다. 저런 추위와 배고픔을 보릿고개를 겪은 윗세대를 제외하고 현세대는 감당하지 못할 겁니다.
저때 영국에는 지하철 다녔다..
짚신 신을때 유럽은 피겨하고 있고..
고종 커피마신날 잠수함 탄생했다..
조선은 너무 고립주의로 간게 아닌가..
일본은 하멜 표류기에 보면 임진왜란 전부터 유럽에 유학생을 보내 총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서양과 교류했지요. 전혀 자랑스럽지 않은 조선 역사.
확실한건 유교사상은 절대 칭찬할 건덕지가 1도 없음. 세종이 글 만들고 장영실 발굴 해낸거 빼고 다른 왕들은 업적이라 할것도 없고..
@@곰돌이핑핑유교사상 자체는 좋은데, 그거에만 목매달고 500년동안 산 나라가 문제임
@@미와수타 유교 사상이 간단히 말하면 선한 영향력 내지 어른 공경.. 그것 때문에 문제여서 나라가 문제지 뭔 나라 타령을 하시나요
@@곰돌이핑핑 유교사상 가르침만 보면 참 좋은데 과몰입이 문제라니까
불과 30년전만해도 거위털은 거의 없었고 오리털파카도 입고다니는 사람 별로 없었다. 물질이 이렇게 풍요로워진게 불과 20~ 30년 전쯤이다.
엄살좀 작작부려라
세상물정을 알기나하니
저런 시대에도 참고 고난을 헤쳐 살아남았는데 지금에와서 힘들고 돈 많이들어 애 안낳고 산다는 사람들은
반성을 해야한다 ㅠ
엥? 저 30년전에 집근처 브렌따노 같은데서 오리털패딩 3만원대라서 사입었던 기억나는데요? 1993년쯤이요
@@시노모세키이런 늙은이들이 나라 망침 ㅋㅋㅋ 먹는것도 입는것도 없는 노비집 자식으로 태어나서 함 살아봐야 정신차림?
뭔 말같지도 않은소릴....
눈물난다 고달프고슬펐던 우리 조상들 우리할머니할아버지들
강해서 살아 남은 것이 아니라 살아 남아서 강한 것입니다.
영상만 봐도 추위가 뼈속까지 얼리는 느낌 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기억이 날 겁니다. 산엔 나무가 없고, 청년들이 봄부터 땔감을 준비하고요.
연탄이 공급되기 전까지 그냥 몸으로 버틴 시간이 많았죠. 화덕이라고 방에서 피우던 난로가 집마다 있어구요. 안죽은게 다행.
조선은 기득권층의 사리사욕과 임금의 무능으로 망했음. 그 고통을 서민들이 고스란히 물려받음.
지금도 바꾸지 않으면 그 꼴 날 수도 있다
지금도 같음
산에 나무 심고 일반 국민들 먹고 살 길 닦은 박정희 대통령은 위대한 지도자 였음.
지금도 같음요. 뭐 대단히 변한거라 착각마시길.
모두가 알지만 누구도 고치기 힘든 우리 민족의 문제였죠 그걸 그나마 솔선 수범으로 국민 의식 개조 한게 박정희 대통령 이었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제가 존경하지요
굶지않고 원하는 음식 먹을수있고 더우면 시원하게 , 추우면 따뜻하게 지낼수잀는걸 감사하면서 살자
메이커 따지고 보다 좋은걸 갈망하기보다 모두가 힘든 주위를 돌보며 살아갔음한다
선조님들의 고생에 가슴이 아프네요,,,항상 감사하며 살자,,.
비단 80년대 이전만해도 서민들은 추웠습니다.
그런데 진짜 아무것도없고 인간취급 못받던 저시절 백성들은 얼마나 춥고 배고프고 힘든 겨울을 보냈을지 상상조차 못하겠네요.
백년전 TV 님 귀한 사진 고맙습니다 ^^*
생각해 보면, 저 어릴 떄도... 어떻게 겨울을 이겨 냈는지...........
파카 잠바 같은 건 물론 없었고... 추우면 안 돌아다니고.... 밖에 나갈 땐 옷이란 옷은 다 껴 입고 나가고.....
그래서, 그 때가 더 추웠던 것으로 기억되는 것 같습니다 ^^;;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와.. 진짜 어떻게 견뎠는지..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와..이런 영상, 사진 매우 희귀 할텐데 고화질로 보여지는 사진들.. 정말 큰 문화적 유산이네요 안쓰러운 우리 옛 조상님들.. ㅠㅠ 타임머신이라도 있으면 그냥 집집마다 겨울 용품 떨궈 놓고 오고 싶네요
계절마다 몸이 견디느라 수명이 길지 못했던것 아닐까 생각이 듦.
맞아 저도글케생각했어요 ㅜㅜ
먹는물도 안좋고 영양습관,환경,의료시설x,샤워목욕x
@@로코-m6s 의료시설 없고 허준 있었을걸요 ㅋㅋ
맞습니다
에스키모 평균 수명
40세
물은 좋지 않음?? 오염물질이 없었는데...그리고 음식은 다 자연식으로만 먹고..
추위에조심히 다니세요.너무 잘 보았습니다.현재도 국민은 배 고픕니다.춥습니다. 😢😢😢😂가여운 사람들 많이 있습니다.😂
특히 김씨일가가 불법점령하고 있는 윗 동네가 처참하죠.
안타까운 우리 조상의 모습... 어째든 지금 우리는 살아남은 자의 후손.
100년만에 저런 빈민국 풍경에서 지금은 세계 어느도시와 비교해도 꿀리지않는 서울의 화려함을 보면 대단하디 진짜
박장군님 안계셨으면 이런날이 왔을까요?
@@우주율지는보물 헤드샷 맞고 저세상 간 딸뻘 여대생들 매일 따먹은 다까끼 마사오 말이죠? ㅅㅂ
70년대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에 교실에 솔방울과 석탄때는 난로가 있었는데 1년에 10번도 난로를 피우지 않은 기억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전교생이 솔방울 한자루씩을 내야했네요. 지금 겨울난방 시스템 너무 감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불과 100여년 전만 해도 저러한 삶을 살아왔던 우리의 모습입니다.
5천년 역사에서 만 백성들이 밥을 제대로 먹기 시작한 것도 불과 50년 전 정도입니다.
지지리도 못사는 나라에 수많은 외침으로 점철된 우리의 슬픈 역사를 들여다보십시오.
우리 조상님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불쌍하게 살아왔었던가를...
그러나 지도자들은 오직 내가 속한 당과 가문의 이익만 쫓아서 백성들을 수탈하고...
늘 벌거벗고 살았지요.
그러다가 박정희 같은 혁신적인 지도자가 나오게 되었고
우리는 배불리 밥을 먹게 되었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아직도 아무에게도 이익이 되지 않는 진흙탕 싸움중이겠지요.
친일이고 나발이고 떠나서 한 인간이 만 백성을 배불리 먹게 한 것, 그것 하나로도
박정희 대통령은 5천년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지도자라고 생각합니다.
옳으신 말씀입니다~
박정희 희대의 명군 성군
위대한 지도자
푸틴마져도 롤모델인 박정희대통령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합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의 겨울풍경!!!!
혹독한 추위가 그대로 느껴지네요ㅜㅠ
지금은 풍족하다 못해 넘치는데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정신력이 약한데 이 영상을 보니 정신줄을 더 업그레이드 시켜야겠습니다
세상에.. 보는 내내 손발을 웅크리게 되네요... 동상에 걸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잃더라도
저많은 식구들을 위해 몸사리지않았던..
강인함이 느껴져요
타임머신 있다면 따뜻한 옷과, 현재의 모든 먹거리 가지고 저 사진 시대로 돌아가 저분들께 매일 전해 드리고 싶어요.
이런 영상 보면
나 선조가 얼마나 힘든 인생을 살았을지 가늠도 안된다...
열심히 살아야지
지금 이 상황에 감사하면서
옛날 조상님들의 삶을 보며 지금 이렇게 살아가는 하루하루에 감사와 겸손의 마음을 새겨야겠습니다
내일 당장 전쟁이라도 나면 다시 저때로 돌아갈 수도 있습니다
요즘 시국이 하도 뒤숭숭하니 심란하네요....
역사적 사료적 으로 잘한거 보다 못한것이더 많고 민중들에게 고통을준.. 조선왕조 500년은 한반도 5천년 역사중 최악의 왕조 였습니다 조선왕조가 멸망하지 않았다면 물론 힘든분도 있으시지만 지금의 풍요는 없을것입니다
지금 다시 옛 부귀영화 왕조 복원 운동 한다고 하더라고요 ㅠㅠ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혀서ㅜ
또다시 국민과 나라를 통째 말아 처 드실려고 하나봐요 ㅠㅜ
한글의 발명만으로도 그렇게 깔수는 없음..
@@ytw1118
상놈들은 글도 못배우게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나?
맞습니다. 조선은 생기지 말아야 할 나라였습니다. 조선을 건국한 악마들도 저세상에서 천벌을 받고 지낼겁니다!
@@Fleet_UED 조선시대 자체는 병신 왕조가 맞지만 그나마 한글이라는것도 조선시대 왕이 없었으면 창제 못됐음
더운여름에도 선풍기 냉장고 하나없이ㅠ 추운겨울 먹거리도 온전치 못하고
저 시대분들이 가엾고 송구스럽네요
현대는 아무리 힘들다해도 먹고 누리고
복지에 너무 감사합니다 😢
모두 행복하세요 그곳에서도요♡♡♡
보고도 믿기지않는..
전쟁나면 철든다고 했던가
하루하루 감사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고생을 하다보니 철이 들더군요..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저 영상하고 전쟁 하고 무슨 상관?
더 기가 막힌 것은 70년대에는 아침 뉴스가,,, 연탄가스로 사람들이 죽는 일이 흔했다는 것... 그래도 집에는 다 연탄... 참... 보일러 세상이 이렇게 정착될 줄 그 때는 몰랐는데,, 어느날 부터 집에 보일러에서 따뜻한 물이 나오니,,, 매일 목욕하게 되더라구요,,,
갑자기 드는 생각인데 조선 후기도 저 정도인데 목화솜도 없고 온돌도 안되던 고려 이전 시대에는 얼마나 추웠을까요 😢 어떻게 살아남은건지 참 안쓰럽고 가슴아픕니다
우리 조선민족은 중국 대륙의 일부 원시인이었습니다. 현대적인 사회가 된 것은 일본 덕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高松満-x8s 그런데 왜 우리는 부끄러움을 알고, 중국은 부끄러움을 모를까요?
@@高松満-x8s조선족이 여기 있기 또 있네..ㅋㅋ..중국대륙은 역사 이래로 우리 한민족(동이족)의 역사였다. 기다려...우리 역사를 조만간 되찾을거야..
@@高松満-x8sㅂㅅ
@@kimyoungbeom673
맞아요 중국은 피지배층
중국은 이민족이 지배한역사죠
거의 지배당한 역사 운좋게 청나라 무너지면서 지금 중공이 된거져
하여...... 그시절 평균 수명이 40을 넘기기도
힘들었다한다.
빈대와 온갖벌레들..
거친잠자리 바닥..
그시절엔 아프리카 흙집과 하나도 다르지.않았을터..
불과 1970년도 초반만 해도 바닥은 멍석이고
흙벽 그대로 사는 집들도 많았으니..
아--삶이여..
아..삶이여....
삶의 고단함이여...
흙집과 다른건 구들장 1개 ㄷㄷㄷ
@@cory-gd3nc 대신 아프리카는 안춥잔여 ㅡㅡ;
@@_NakTa / 두들장은 추운 다른 국가에도 많앗슴,, 그리고 전통방식의 구들장과, 형재 쓰는 온돌은 다름
현재쓰는 보일러 난방은,,
미국인이 개발한 방식이고
한국은 구들장인데 구들장 좟같다고 99.99%가 안쓰잔아
그런데 구들장 좋다면서 ㅎ뢍토방 장박불때고
구들,온돌,습식,건식 차이를 모르니까
그냥 바닥이 따뜻하면 모두 온돌로 생각하지
그건 자랑이 아니라 무식임
옥저에서 발명된 전통 구들은 오히려 동북아시아 북방계 민족이 발명부터 지금까지 똑같이 씀
한국은 발명하고ㅓ 갑부들만 잠깐 쓰다 끊겼고,, 다시 부활도니건 300년 정도뿐이 안됨
구들장 온돌집이 좋아? ㅋㅋ
요즘이야 벽체 냉난바잉 잘되서 그렇지
그전에는 겨울에 좌샅앗어,,방바닥만 땃고 이불 밖은 입김 나온게 한옥 구들이야
쪽바리 집안과 똑같지
ㅄ들은 한옥은 따뜻하고,
쪽바리 집은 춥다고 하는데
한옥 벽체는 흙이고, 흙 20~30cm가 무너 난방을해서 따듰해?,, 흙벽 아니면 창홎인데
그게 난방 좋은데
요즘은 ㅄ처럼 시멘트+단여\ㄹ제 사용하나?
그냥 한옥처럼 흙만 바르면,,,따듯한데?ㅋㅋ
1907년에 태어나 104살로 돌아가신 할머니가 하신말씀이 요즘 진짜 좋은 세상이라고 하셨는데 영상보니 맞는듯해요... 할머니도 저생활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을테니요.
촬영 하신분 정말 대단하고 존경합니다
화면에서 강취위가 느껴지네요
동사한 사람도 많았겠네요
현재는 참 살기좋아졌네요 지금은 옷들이 넘쳐나서 의류함이 미어터지고 쓰레기가 사회문제가 되고있죠
지금은 모두가 편하게 핸드폰으로 저분들의 삶을 보지만 저분들은 상상조차 했을까 같은 사람으로 태어났지만 시대를 다르게 태어남에 따라 삶의 질이 이렇게나 다르니,,
지금도마찬가지입니다. 어느시대 뿐만 아니라 어디서태어나는가. 지금 팔레스타인에 태어났으면 우리처럼 공부하고 사업도해보고 취미도 해보고 주체적으로 살 수 없죠.우리는 운이좋은겁니다.감사해야합니다
@@hdhdjiejsjr 맞습니다. 어찌보면 이시대에 이나라에 태어난것도 누군가에 비하면 운이 좋은겁니다.대한민국안에서도 좋은 집안 좋은 머리 인내력 공부할 수 있는 환경 등을 타고나는 것도 운이좋은거니 항상 겸손하고 감사하고 돕는 마음으 로 살면 좋겠습니다~
나라를 잃고 해방이 되고 6.25전쟁--그후에도 가난은 늘 우리들 곁에 있었다. 그런데 박정희는 그 가난이라는 글자를 말끔하게 지웠다. 전 세계적으로 살펴보아도 그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대단한 사람이 아닐 수 없다.
허 참 .. 저런 환경을 어떻게 이겨 냈을까. ?
무능했던 조선의 왕과 양반들에게 화가 나네요... !!
지지리도 가난한 나라, 조선왕조 600년동안 굶주림과 추위로 얼마나 많은 백성이 죽어나갔을까요. 국민의 반이상이 노예로 유지됐던 나라, 그 나라가 조선입니다. 너무 부끄럽습니다.
일제 식민사관에 찌들었군요.
님이 말한 부끄러운 조선을 그래서 구해준 것이 일본이였다로 결론 지으는 것이 일제와 식민사관의 뉴라이트 주장입니다.
백성은 굶주리고 보릿고개는 연례행사였고, 관리들은 부정부폐, 당파싸움...그래서 조선은 망할 수 밖에 없다라고 주장하는거죠.
역사를 다시 공부해보세요.
유럽은 안그랬는줄아네 ㅋㅋ
ㅋㅋㅋㅋ 딴나라는 안그랬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나라랑 비교할 필요 없습니다. 본 댓글 말대로 인구의 50프로 이상이 인간취급 못 받는 노비였다는 건 사실이에요.
사업 혁명 시기 유럽도 귀족 중산층만 좋았어요 너무 우리나라 비하할거 없어요
그래도 눈망울은 상당히 똘망똘망 했군요.
그런 정신으로 이 나라를 여기까지 발전시킨거 같네요.
지금보다 열악한 환경의 과거..
겨울은 불이라도 땔수 있으니 어찌저찌 버텼겠지만 무더위는 진짜 어떻게 견뎠을까요ㅠㅠ현시대에 에어컨 없다고 생각하면 진짜 끔찍할거 같네요..
조선의 역사를 미화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왕조실록 때문에 특히나 궁궐에서 왕족들 벼슬아치들 지들끼리 지지고 볶는걸 TV로 너무 틀어댔죠
나라가 아니죠..
그렇다고 그걸 친일파들을 합리화 논리로 지껄이는 넘들은 효수를 시켜야합니다.
친일파는 조선왕조를 무너뜨린자들로 되려 백성들이 고마운거죠. 백정들도 사람구실을 하게됐으니.. 교사도 할수있고 우체국에서도 일할수있고. 학교도 다니고. 신여성이 될수있었고. 조선시대? 감히 하찮은 백정따위가 머슴따위 종노릇하던 년넘따위가 하던게 조선시대인데 이걸 무너뜨린게 친일세력인데 되려 백성들이 고마운거죠. 지금도 머슴들의 무덤조차 찾아볼수가 없죠. 무덤이 없이 합장해서 그냥 묻어버리니까. 나이연배가 궁금하긴한데 깨어나길 바랍니다.
저는 한 때 잘몰랐을때 깨어나지못했던때에 열혈애국청년단원이었던 한사람이었습니다.
@@user-qv8ew3ys9q일베쉑 일본 순사한테 쳐맞고 사무라이한테 칼맞아야 정신차리지
배고프니 더욱 추웠겠죠
가슴 아픈 영상이네요
늘 궁금 했는데 그냥 버틴거내요 감사합니다 잘보고갑니다
실내온도 영하 20도는 버티는게 불가하고 대체로 수도권 기준 빈가는 최저 영하 5도에서 겨울 연명, 서민 집이라도 가을에 열심히 나무 준비해 놓으면 겨울내 땔감은 있음. 그래도 전체적으로 3/5는 집안에 기침이 끊이지 않는 폐병, 천식, 감기로 고생하고 2/5는 심장병으로 고생하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던 계절이었겠지.
정치인 기득권세력각종혜택 없애라 민초들만 개고생 전쟁도 민초들이 승리 돈있는 정치인시키는 도망가기바빴자나
사극 보면 백성은 한낱 무지렁이에 지나지 않는다는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저 당시 생활상을 보면 그런 표현이 맞는 듯 나라 걱정 보다 하루 하루 어떻게 사는지가 더 걱정되는 삶으로 보임
딱 지금의 북한이네.. 그래서 이름도 조선인민민주공화국이고 우리는 자유가 있는 자유대한민국 감사할뿐이다.
80년대초반까지도 여기저기하수구공사햇엇던게 기억이나네여
영상 감사합니다. 어디서 보기 힘든 귀한 자료들이네요. 지금이야 어떻게 저렇게 살까 하지만 저 당시는 저게 생활표준이니 다들 그렇게 살았을 것이겠죠. 부자는 아니지만 삼시세끼 배부르게 먹고 따뜻한 집에서 쉬고 따뜻한 물에 목욕할 수 있는 현실에 감사해야겠다는 생각이듭니다.
요즘 고려사 보니 조선은 참 망할만 한 나라같습니다 처음부터 명에 숙이고 기득권유지에만 급급한 나라
조선이 망할만했다? 고려사는 비굴한 굴욕과 비참함을 말로 표현 하기 힘들었습니다 어느나라던 자국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역사왜곡에 힘을 쓰듯 우리나라도 왜곡은 정말 심합니다
조선이 고려보다 발달한 나라임
그때는 모르겠고 70년 전은 기억이 어렴풋이 기억 속에 남아있다.
사타구니 갈라 놓은 상하 내복 하나만 입었던..
손은 갈라져 거북이 등 같았고, 여하튼 엄청 추웠다고 생각은 나지 않는다.
눈은 지금보다 많이 왔었지 그 시절 시골 겨울 풍경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60년대까지 서부 경남 합천 겨울에 많은 눈이 왔고, 추웠씁니다. 물론 옷도 부실했지요.
목욕은 명절 전에 한번 했지요. 그런 것 보면, 몇년 전 중국과 같았씁니다. 귀한 영상 잘 시청했습니다
🌻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jeonggeunkim6002
지금은 프랑스가 센느강 똥에 거리에 쥐와 똥 오줌냄새에 지하철에도 냄새
쥐가 출몰하기도하고 뉴욕에도 쥐떼로인해 골치를 썪고있는데 우리나라와 역전됬네요 한국은 눈부시게 성장했고 한국만큼 깨끗한 도시가 드물죠 지금은 많은것들이 앞서는 나라가 됬죠
프랑스올림픽과 평창올림픽 보면서 얼마나 한국이 대단하고 우월한지~
조선 일반 백성들이 그나마 혹독한 추위를 견딜 수 있었던 것은 낮엔 누비솜옷으로 버티고, 밤엔 아궁이에 불을 때서 온돌 방바닥에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두고, 온 가족이 옹기종기 모여누워 밤새도록 방바닥이 식지 않게 하는 방법이었지요. 70년대 초반 우리 외가 초가도 그랬는데, 아궁이에 불을 한번 땠을 뿐인데 밤새도록 온돌 바닥이 뜨겁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도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말하자면 온돌 문화가 우리 조상들을 살린겁니다. 온돌 방식 난방 초가를 무조건 무시할 수 없습니다. 초라한 모양새와 달리 짚 지붕 덕에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과학적구조 형태의 집입니다. 반면에 서구의 벽난로 형식 난방 가옥 형태가 오히려 열손실이 많은 비과학적 구조라고 합니다. 그래서 얼마전 전까지만 해도 서양인들은 집안에서조차 춥게들 살았지요. 중세 암흑시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고요. 물론 송시열, 대원군, 안동김씨, 민씨일파 같은 꽉막힌 왕족 양반 나부랑이 썩은 족속들 때문에 조선의 개화가 일본보다 많이 늦추어 진 것이 천추의 한이기는 합니다.
조선시대에 집집마다 솜 이불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하시네요. 6-70년대에나 통하는 말씀입니다.
솜이불도 사치입니다. 천민, 상민보다 나은 대부분의 선비들조차 냉골에 덜덜 떨며 지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학자인 이덕무는 방안에 책을 빙둘러쌓아 그나마 추위를 덜하려했는데 방안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렸다고 그의 글에 적혀 있습니다.
전주이씨 이놈들이 문제 였지요
@@김진현-h7k7l 전주이씨, 안동김씨, 민씨일가, 흥선, 어리숙한 고종, 그리고 사대부들.....이들 모두가 그들의 조선을 망하게 했지....
어렵게 삶을 살고 있었던 노비나 일반 양민들은 아무 의미가 없었겠지요. 오히려 일본에 의해 개화되어 출세 길이 열리게 되어 그들의
삶은 더욱 나아졌을 겁니다.
김옥균에게 돌 던지던 백성도 다르지 않다
짚신에 버선이면 다 젖어서
그냥 맨발로 버틴 거랑 별 차이 없을 듯 합니다.
그때는 그게 당연하게 생각하고 사셨을 텐데ㅠ
그래서 옛날 사람들의 수명이
그리 길지 않았나 봅니다.
어떻게 추위를 견뎠을까?
조상님들~
곧 추워져요~
감기조심 하세요~
사극을 보고서 그것이 그당시 모습인양 착각 하면 안됩니다 사극은 너무나 화려한 의상으로 나옵니다 실상은 그당시 비단도 그리 고품질이 아니었고
화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백성들이나 노비 및 서민 농민들의 의상은 다떨어지고 헤어진 옷들도 많았습니다 송나라 사신으로 온 어떤이가 많은 기록을
남겼는데 고려시대에는 남녀가 같이 냇가에서 여름에 목욕도 하였고 특히 인상적인 것은 고려의 어부들은 연안에서 1킬로 정도도 멀리 가지 않으며
연안에서 고기잡이를 하였지만 거의 대부분이 아랫도리 바지나 치마 같은 하의는 입지 않았고 웃도리(저고리)만 대충 누더기를 입고서 햇볕만 가린채
고기잡이를 하였다고 합니다 서해의 인천이나 태안반도 쪽을 둘러봤지만 전국이 거의 비슷했다고 합니다 사극에는 그런내용 전혀 안나옵니다
조선말에는 그져 남자들은 할일없이 누워 있고 굶주린 사람들도 많았으며 집안에는 조금만 살림살이가 늘어나도 관아에서 빼앗아 가버릴 정도로
부정부패가 극에 달한 시절이라 백성들 대부분은 집안에 쌀이나 콩 보리등의 곡식조차도 그리 많이 비축해 둘수도 없어서 봄만 되면 너도나도 산에
가서 소나무 껎질 벗겨내고 속껍질 뜯어서 먹고 나무가 죽으면 다시 땔감으로 잘라가니 산에 나무들이 없었습니다 깊고 높은 산들 이외에는 그래서
나무를 하려면 한양이나 지방의 도시에서 아주 멀리가야 했습니다 봄되면 너도나도 식량이 없고 그렇다고 조정에서 식량을 나눠주는것도 아니고 착
취만 해가니 굶주린 배를 붙잡고 쑥이며 온갖 풀뿌리와 나물종류를 먹는것이 살아가는 방식이었고 물고기나 산에사는 노루 고라니 토끼 꿩등 온갖
동식물과 조류들및 강과하천의 물고기를 잡아서 굶주림을 해결해야 했습니다 개구리 메뚜기등도 중요한 양식이었구요
지금 풍족한 삶을 살고 있어 조상님들에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저때는 문화가 뒤떨어 져서 생산력이 최소화 일때고 지금은 문화가 발달되어서 젊은이들은 경제원칙에 따라 경쟁사회에서 최소의 비용으로 생산력을 끌어 올려야 하기 때문에 지금 젊은이들이 일도 훨씬 많이 하고 힘든 세상 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감사합니다
저시대에 이미 프랑스 파리나 런던은 화려한 현대적 도시였으며 뉴욕 같은곳은 초고층 빌딩들이 수두룩 하였습니다 1900년을 전후로 하여 ..
외국 선교사들은 말합니다 조선의 한양은 아프리카의 도시보다 못하다고 이렇게 가난하고 볼품없는 도시는 보지 못했다고 ...학교라고는 초
가집 서당들이 전국에 널려 있었고 그나마도 양반들 자녀들이 다닐수 있는곳이었으며 서당을 떼면 서원에가서 공부했죠 2000년전에 죽은
공자나 맹자가 얼마나 많이 알았다고 신처럼 떠받들며 허구헌날 공자왈 맹자왈 그들의 말의 기록을 종교의 교리처럼 따르고 저마다 해석하며
이게 맞네 저게 맞네 하면서 지식층은 세월을 보냈습니다 한양 조차도 길거리에 사람똥 소똥 개똥이 넘쳐나던곳 .. 실제로 한양은 화장실 있는
집은 전체 가구중 20%도 안되었다는 것이 선교사들의 기록입니다 길거리에 풀숲에 똥사는 것은 기본.. 집에서 똥싸서 낮은 돌담이나 울타리
너머 밖으로 던져버림 .. 외국인들이 시장에 가보니 정말 살게 없었고 집으로 만든 집신 새끼 갓과 삿갓 참빗 비녀 사기그릇 닭과 오리 같은 상품
과 배추 무우 같은 것이 주요상품이었고 봄과 여름에는 쑥이나 각종나물 땔감 등 산에서 나는것들이 유일한 상품이었고 삼베 모시 드물게 비단
등이 주요 상품이었습니다 교량도 대부분 징검다리라 불리는 돌을 놓아 만든것과 나무로 만들어 흙으로 덮은 다리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애달픈 영상이네요
얼마나 춥고 힘드셨을까요
다 저러고 사니 당연한 거라 여기며 버티셨겠죠
온돌 난방 때문에 2층 이상의 건물이 별로 없었다고 생각됨 그 정도로 난방 문화가 아니었으면 살기 힘들 정도의 국토에서 살아 온거임 고래 기름이나 석유의 발견 이전에 산에 땔감 이라도 있어서 사는 거지 다 얼어 죽을 수준임 그러니 전부들 중원이나 베트남 같은 곳을 전부다 탐하다 보니 거기는 매번 전쟁이나 침략으로 나라가 뒤집어 지면서도 풍요함
나이80인데 옛 정취를 느낄수 있군요. 어찌보면 그때가 조금 그립기도 합니다. 저도 기억에 나이롱 양말에 말표 검정 고무신 신고 제대로 된 장갑도 없어 손,발 귀에 동상이 걸려 터져 피가 나오고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그래도 외투없이도 잘 뛰어 놀았어요. 교실에는조개탄 난로 위로 도시락을 쌓아 올려 놓았었지요. 덧버선 없이 교실바닥이 얼마나 차가웠겠어요. 그렇게
살아왔지요. 길에는 빙판이 생기면 최고의 놀이터로 미끄럼 타기를 했는데 어른이 흙을 뿌려 놓으면 그렇게 야속하게 보이기도 했고요. 옛날을 회상하며 좋은 사진 고맙게 봤습니다. 감~~사~~~
어르신 필력 굿!
민속촌 같은 곳 가서 체험하면 잠깐도 엄청 춥던데 어떻게 사셨을지 참...ㅜㅗㅜ
불과 100년전... 무었을 어떻게 생각하고 정리해야할지 모르겠네요.
귀한영상 감사합니다.
보일러 틀어놓은 따듯한 집에서 춥다고 징징대는 내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졌다..
체온 자체가 난방이네
참 모질다
이런 극악한 조선은 망해도 쌌다.
그시대 어느 나라나 기득권에 의한 착취는 있었음. 그럼 다른 열강들,심지어 일본도 발전해서 열강이 됐는데 조선만 왜 가난했냐?그건 조선의 정치이념때문임. 자본주의 근간인 상업과 교역을 천한것으로 탄압하고 농업에만 몰빵했음.기술발전은 자본주의적 상업과 교역에서 나오는건데 정치이념이 자본주의를 이단으로 규정하니 가난할수밖에,기술도 발전 못할수밖에..
제목을 보고 뭔가 방법이 있었을까 했는데 결국 버텼다는 것이 답이네요
유럽은 중세 근대.고대에도 크고 반듯한 돌집 아파트에서
살았는데. 물론 도시에서.
우리는 60년도 후반까지도 도심만 조금벗어나도
초라한 초가집이 대부분이었지.
서울도 초가집이 많았고.
새마을 운동이 초라한 초가집을 없애고
슬래트로 지붕을 대신했지.석면덩어리가 발암일급물질인지도 모르고.
그러다가 시간이 좀 흐로고 아파트 공화국시대로 진입.지금은 아파트천국이지비.
그리고 시골부엌에서 저녁때 밥하고 소죽끓일때 두어시간 가마솟에 불때면
아무리추워도 다음날 아침까지 안방이 뜨끈했지. 처음에는 뜨거위서 살갗이 데일정도.
조선은 5백년간 저 모양이었음. 유럽은 그 5백년간 건축양식이 시대별로 뚜렷한데
유럽도 일반 빈민층은 열악하기가 별반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유럽도 산업혁명시대에는 서민들 개고생햇어요,,,
오히려 조선보다 더힘들게 살앗을걸요?,, 어린아이도 공장에서 14~16시간 일햇으니까
특히 할머니들, 어머니들이 더 고생하신 것으로 생각합니다 겨울에 잿물 등을 이용해 차가운 물로 빨래를 하셨으니 ᆢ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 주부들의 가사 노동은 그냥 집에서 탱자탱자 노는 거임.
조선ㅡ우린 수원화성을 지을때 무려 거중기라는 최신기기를 썼습니다요!
영국ㅡ지하철
미국ㅡ증기기관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