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데 그것도 작작해야 한다는 말이 잇죠. 그러니까 어느 정도 규모로 하느냐 어느만큼 하느냐가 중요한데 조예는 엄청 많이 자주 해버렷죠. 수양제도 그 문제가 잇엇으니까... 처음에 하다가도 나라의 상태를 고려해서 완급 조절도 하던 수문제의 경우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잇음. 그래서 조예 경우는 이거 문제로 당시 비판을 많이 받앗던거고. 그래서 조예에 대한 이런 상소들 내용의 대부분이 그거 지으신 지 얼마나 된다고 또 다른 걸 지으세요... 돈 안넘친다고요! 이랫으니까요 ㅋㅋㅋ
조예를 조조, 유비에 비견하는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은데 조조와 유비가 창업군주로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높은자리에 간것은 맞지만 손찬님 말씀대로 실책도 종종 있었고 조조는 자식과 전위를 잃거나 하는 실수를 유비도 이릉에서의 패배등 나름 뼈아픈 실수들이 있었죠 물론 조예가 단명하였고 틀이 잡힌 국가를 이끈거 말고 뭐가 낫냐고 하실수도 있지만 당태종 이세민의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고 또 영상에서의 내용대로 조예의 즉위당시는 상당한 어려움과 위험이 있었습니다 내부로는 어린상태에서 즉위하여 강력한 대신들과의 알력다툼을 국력손실없이 조화롭게해야겠고 촉과 오의 공격과 협공을 막아야했습니다 촉은 여러차례의 북벌과 군재가 엄청나진 않다는 평이지만 어쨋든 경험많은 제갈량을 막아야했고 오는 육손과 역시 평은 안좋지만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손권을 막아야했습니다 이러한 산재되어있는 문제들은 물흐르듯이 처리하여 별거아닌것 같지만 평범한 군주였다면 한건한건이 나라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중대한 것들이었고 사후의 상황 조율이 아쉬웠던것이 최대의 실수지만 단명한것을 염두에 두면 미처 대비를 하지못한부분도 일정 있다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그래서 총평하자면 손찬님의 명석함으로만 놓고 보자면 으뜸이라는 평이 결코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조와 유비보다 뛰어낫다는것은 어렵지만 명석함이라면 충분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가로 위, 촉, 오의 후대 군주라고 하면 위는 조비, 조예 등 촉은 유선 오는 손량, 손휴, 손호가 있는데 이 중에서 조비는 다양한 실책을 저질렀고 오나라는 말할 것도 없으며 유선은 그저 큰 사고 없었다는 부분 만으로도 재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내외부의 문제들을 어린 나이에 부드럽고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점 만으로 명석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4:10 말자상속이라기 보다는 자식들이 어느정도 장성하면 부모의 재산중 일부를 나눠줘서 순서대로 독립시킨다고 합니다. 결국 막내는 부모 곁에서 머물다가 부모가 죽으면 남은 재산을 물려 받죠. 이게 얼핏 보기에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마지막에 다 받다 보니 말자상속처럼 보이기 쉬운데 사실은 균등 배분에 가까우며 족장이나 리더 같은 지도자는 자식들 중 가장 능력있는 아들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삼국지 인물열전 영상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아시는데 불구하고 부연 설명하다 보면 길어질 것 같아서 말자 상속으로 퉁 치신건지 아닌지 잘 몰라서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첨언 합니다. 좋은 컨텐츠 계속 만들어 주세요.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가충: 죽어! 사마소: 너때문에 나 역적 되버렸 잖아!! 가충:일이 크게 일어나 어쩔수 없었습니다 사마부:(슬픈척,슬픈척) 이래놓고 높은 관직은 다 받음 진태:대장군 황제께서 죽다니 일을 일으킨 가충을 죽여야 합니다 사마소:.... 야,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것같다. 성제:왜 나만 죽여!!... 가충: 직접죽인건 내가아니라 너니까.
어릴 적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에는 조예를 조비의 아들, 조조의 손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참 나이먹고 다시보니 조조에는 못미치지만(조조는 능력면에서는 인류사 역대급 인물이라...) 조비보다는 여러모로 낫고 유능한 인물로 보입니다. 삼국지연의 후반부는 '제갈량 vs 사마의'의 구도로 연출되지만 지금보니 실제로는 '제갈량 vs 조예'의 구도가 맞다 보입니다. 그러면 사마의는 뭐냐고요? 조예의 대촉한전선을 맡은 전선사령관이요. 지금 한국군으로 비유하자면 지금의 제1군단과 제5군단을 예하에 둔 야전군의 사령관 정도의 느낌입니다. (1군단과 5군단 모두 군단치고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 둘을 합쳐놓은 정도면 작은 야전군 정도의 규모는 된다 생각합니다.) 결국 제갈량의 북벌이 실패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는 근본적으로 너무도 현격했던 촉한과 위의 국력차, 그리고 그 다음으로 제갈량이 상대했던 조예가 전략적인 안목이 있는 군사적으로 유능한 군주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갈량 사후 조예가 강력한 적을 잃고 목표의식을 잃고 나태해지고 타락하면서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킨다거나 도교에 심취하며 해괴한 짓을 한다거나 했다고 생각하는데, 토목공사를 벌인 건 왕권강화의 목적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생각하고(어릴 적에는 아버지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는 등 가정적으로는 결코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자기가 살아있을 때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부모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그가 오래살지 못하게 된 큰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위의 군주로서는 아주 큰 실책을 저질렀는데, 바로 후계자 문제입니다. 혈통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고대 중국에서 도대체 누구의 자식인지도 불분명한 조방을 왜 자기 후계자로 지명한 것인지. 친아들이 없다면 양자를 들여 이어도 되었고, 그때는 그 양아들의 출신만 명확하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왜 출신도 불분명한 조방을 자기 후계자로 정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않는 대목입니다.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도 짧은 수명에 아쉬운 인물들이 종종 있지요. 조예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조예가 아무리 토목공사와 궁궐 짓는다고 해서 큰 원성은 아닙니다. 조예가 적어도 60살이상 살았다면 촉나라 입장에서나 오나라 입장에서 조조못지 않은 껄끄러운 상대였을 겁니다. 괜찮은 군주 밑에는 좋은 장군,책사들이 있지요. 위나라 신하들이 이리저리 찢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그림의 떡부분은 꽤 흥미롭게 볼수있는게 저시대에는 명성이 인재를 뽑는데 크게 작용했고 그래서 명사들에게 찾아가 평가받거나 작은공이라도 세워서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게 강했는데 군주가 직접 명성보다는 인재의 능력보고 뽑아야지 ㅉㅉ 이런 말한거라 이게 인재를 가리자는 뜻도 있겠지만 왕권강화를 모색한 발언이 아닌가싶습니다.
궁궐건축이 위엄의 수단이긴해도 조예 정도로 업적을 세운 왕이 했던 사례가 있나 싶긴함 (과거 왕조 지우기 제외) 어리기 때문에 위협을 느꼈거나 그럴 수는 있긴한데 궁궐 건축은 업적 없거나 위기 시에 억지로 하던 왕권 강화 수단이었던 것 같고 조예도 그 강도가 심했음 어린나이부터 촉오 전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천재끼 있던 조예가 번아웃 와서 퍼졌다는게 더 설득력 있긴함
정사가 보급되어 가는 상황에서 서서히 제대로 평가 받고 있는 군주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개인적으로 조예의 인사에 관한 부분은 좀 더 조명 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예가 재임기간에 처낸 인사가 하후현, 하안, 환범 등이였죠. 실속이 없다고. 조예가 말년에 정신줄 놓지 않고 장수했다면 조예 자신이 내친 개거품 하후현, 하안, 환범이 임용되는 일이 없었을테니 조상을 앞세울 필요도 없었고 설령 앞세웠다 해도 정치경력을 기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봅니다. 그리고 이미 조예시기에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던 영천호족들 역시 사마의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킬 이유도, 명분도 없었음. 야망이 컸던걸로 보이는 사마사나 부친의 복수를 원했던 걸로 추측되는 가충이 지지 받지 못하는 반란을 무리하게 강행할 바보도 아니고 ㅋㅋㅋ 궁극적으로는 조예의 통치하에 조상, 사마사형제, 진태 등이 보좌하고 하후유, 곽회 등이 촉한과 손오를 견제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을듯. 결국 조예가 내친 인간들의 삽질로 인해 조씨들의 몰락을 가져온 걸 보면 조예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 봅니다. 특히 전쟁짬밥 넘치는 사마의가 절대 못이긴다고 했던 흥세전투 강행해서 ㅈ망시키고 지 나라 정치상황 파악못하면서 인사권 문제 건드려서 고평릉사변의 원인을 초래했으며, 입으로는 개혁을 떠들었으나 실상은 본인공적 하나 없이 하후씨라서 쉽게 고위직에 오른데다가 평민과는 동석하기를 거부하신 고귀하기 짝이없는 하후현은 곽푸치노를 넘어서는 거품, 쓰레기 그 잡채임. 사마의가 고평릉사변 이후에 조상정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하후현에게도 묻고 참수했어야 옳았다고 봅니다. 조위입장에서 보면 하후현의 ㅄ짓 때문에 강유의 북벌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게 만든 장본인임 ㅋ
거기다 진시황이 불로장생한다면서 수은을 마이 먹어서 오히려 급사했듯. 조예 또한 정력을 늘리기 위한 것인지 동으로 사람을 만들어 거기에 맺힌 이슬에 옥으로 가루를 뿌려 먹었다고. 이러한 것이 건강에 독이 되었을 거.. 조비.조예의 단명이 단지 운이 나빠서인가? 아니라는.. 아버지 조조만 해도 환갑을 넘겼다는.
화려한 궁궐이 왜 왕권강화로 이어지냐는 질문에는 베르사유 궁전이나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을 위해서는 지방에 유력자들에게 "지방의 삶" 보다 "중앙의 삶"이 훨씬 좋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현대 대한민국은 인서울대학이나 땅값등으로 그걸 보여주지만, 근대 이전에는 화려한 궁궐과 왕과 황제의 사치스러운 삶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확인시켜주는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정도가 있으므로 조예는 조금 과한편은 맞습니다.
일단 조예 대에서 눈에 띌만한 큰 반란이 없었다는것에 좀 주목해봐야 합니다. 어린 황제가 즉위했는데도 촉오의 북벌시도 외에는 딱히 큰 위기 없이 안정되게 수성을 했다는건 만으로도 점수를 후하게 줄만 합니다. 더구나 친족과 권신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건 꽤나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헌제mk.2 되는건 순식간이거든요. 다만 명군이라 하기엔 그 수명이 짧았으며, 설령 오래 살았다 한들 천하통일을 했을 그릇은 아니었을겁니다.
젊어서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킨게 광해군과 비슷하네요. 심리적측면에서 일종의 도파민 중독비슷한 증세가 아닌듯. 어린 나이에 큰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엄청난 희열을 느끼면 또 똑같은 희열을 느끼기 원하게 되고 그 방법이 또 정복전쟁을 일의키거나 이게 여의치 않으면 대규모 토목건축을 일으키는거 아닐까요? 토목공사도 군사작전과 유사합니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서 체계적 인력관리를 해야하고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성공하면 큰 위세를 떨칠수 있죠 보고 있으면 마음 뿌듯하고.
조예는 급작스레 맛탱이 가는 바람에,, 지 사후 처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지... 꼭 조예만의 잘못도 아닌 게... 윗대인 조비대부터 손이 귀했으니.. 어쨌든 마무리가 좋지 않았기에 조조, 유비랑 같은 급으로 까지는 조금 오버라 보임.. 재위기간이 길고 후사처리를 잘 했다면 조조, 유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인물임..
통계청도 신문사도 없는 전근대 시대에 궁궐 건축은 강력한 국력을 증명해보이는 외교적 수단이자 군주의 권력이 건재함을 확인하는 재신임 투표와 마찬가지 였을 것...
황실의 위엄이라는 게 진짜 위력을 발휘하던 시대
근데 그것도 작작해야 한다는 말이 잇죠. 그러니까 어느 정도 규모로 하느냐 어느만큼 하느냐가 중요한데 조예는 엄청 많이 자주 해버렷죠. 수양제도 그 문제가 잇엇으니까... 처음에 하다가도 나라의 상태를 고려해서 완급 조절도 하던 수문제의 경우를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잇음. 그래서 조예 경우는 이거 문제로 당시 비판을 많이 받앗던거고. 그래서 조예에 대한 이런 상소들 내용의 대부분이 그거 지으신 지 얼마나 된다고 또 다른 걸 지으세요... 돈 안넘친다고요! 이랫으니까요 ㅋㅋㅋ
같은 일 한 흥선대원군과 광해군은 존나 까면서 우리랑 상관없는 조예는 칭찬하니 웃김
걍 우리랑 상관 없으면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한거임
@@jungrylls7495 위나라는 조선과 달리 돈이 많았으니까
@@izumiaco5079
심심하면 민란 터졌다던 조선시대에 광해군 시절은 민란이 없었음
마찬가지로 대원군시기 1차 경복궁 중건때는 모두가 합심해서 궁궐지었음 근데 불나서 다시지을때 비판받았던거고
근데 다 도매급으로 싸잡아서 비난하잖아
조예를 조조, 유비에 비견하는것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은것 같은데 조조와 유비가 창업군주로서 무에서 유를 만들어 높은자리에 간것은 맞지만 손찬님 말씀대로 실책도 종종 있었고 조조는 자식과 전위를 잃거나 하는 실수를 유비도 이릉에서의 패배등 나름 뼈아픈 실수들이 있었죠
물론 조예가 단명하였고 틀이 잡힌 국가를 이끈거 말고 뭐가 낫냐고 하실수도 있지만
당태종 이세민의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말이 있고 또 영상에서의 내용대로 조예의 즉위당시는 상당한 어려움과 위험이 있었습니다
내부로는 어린상태에서 즉위하여 강력한 대신들과의 알력다툼을 국력손실없이 조화롭게해야겠고
촉과 오의 공격과 협공을 막아야했습니다
촉은 여러차례의 북벌과 군재가 엄청나진 않다는 평이지만 어쨋든 경험많은 제갈량을 막아야했고
오는 육손과 역시 평은 안좋지만 나름 산전수전을 겪은 손권을 막아야했습니다
이러한 산재되어있는 문제들은 물흐르듯이 처리하여 별거아닌것 같지만 평범한 군주였다면 한건한건이 나라가 뒤집어질지도 모르는 중대한 것들이었고 사후의 상황 조율이 아쉬웠던것이 최대의 실수지만 단명한것을 염두에 두면 미처 대비를 하지못한부분도 일정 있다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그래서 총평하자면 손찬님의 명석함으로만 놓고 보자면 으뜸이라는 평이 결코 무리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조와 유비보다 뛰어낫다는것은 어렵지만 명석함이라면 충분한 평가가 아닌가 싶습니다.
추가로 위, 촉, 오의 후대 군주라고 하면 위는 조비, 조예 등 촉은 유선 오는 손량, 손휴, 손호가 있는데 이 중에서 조비는 다양한 실책을 저질렀고 오나라는 말할 것도 없으며 유선은 그저 큰 사고 없었다는 부분 만으로도 재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다는 점에서 내외부의 문제들을 어린 나이에 부드럽고 깔끔하게 처리했다는 점 만으로 명석함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손찬이형 분석에 동의를 할때도 아닌때도 있지만 항상 본인만의 신선한 해석을 시도하는 느낌이라 재밌게 보고 있습니다
이렇게보니 조비보다 조예가 훨씬 더 대단했었네요
항상 잘 보고 갑니당
6:28 제갈량 이 짤은 ㄹㅇ 명짤임 ㅋㅋㅋ
하... 방통도 없고 법정도 없고...
@@물은답을알고있다
마량도 없고 마속은 x신이고 ㅠ
ㅋㅋㅋ 하 x같다 라는 표정이 그냥 나옴 ㅋㅋㅋ
이릉이릉
@@옼케발위연은 그냥 싫고 ㅋㅋㅋㅋ
앗 제가 요청드렸는데 꼭 그 때문은 아니겠지만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올려주신거 보니 단명이 유일한 단점인 군주네요. 단명만 아니었어도 말년의 통치행위는 할애비의 동작대 건설정도로 남았을거다 라는 비유가 정말 좋습니다.
결국 모든 승부는 수명에서......
손권은..어쩔..ㅋㅋ;;
@@postrockful 자신은 뭐 하고싶은것 다 하고 천수를 누리다 갔으니..ㅋㅋㅋㅋ
일본에도 비슷한 예가 있죠. 히데요시가 천하를 통일했지만, 이에야스가 더 오래 살아서 꿀꺽ㅋㅋ
@@postrockful너무 오래 살아서 노망나버려서 오나라 멸망의 단초가 되어버린 ㅋㅋㅋㅋ😂😂😂😂
오늘도 재밌게 잘봤습니다
자식들이 일찍 다 단명해버리니 오래 살수가 없었겠죠 딸 한 명만 장성해서 시집 갔다고 하죠
조예는 유비 손권 손책-손권 창업군주들 제외 2~3세대 군주들 중 제일 뛰어남. 일단 창업군주들 제외 ‘군재’를 보여주는건 조예뿐임. 선대에 남긴 공신도 나름 컨트롤 잘했고..더 살았으면 위나라가 어떻게 되었을지 궁금함.
정말 위대합니다 선생!
"개인적으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 손찬이형 영상 최대 꿀잼 포인트
삼국지 중드 처음 접했을때 공통적으로 조예가 대단히 영민하고 정치력이 좋은 캐릭터로 나오는게 신선했던 기억이 나네요
조예 오석산 수은 중독설은 어떻케 생각하시나요
혹시 하후돈 가능할까요?? 어느 순간부터 행보관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서 ㅎㅎ
원래 행보관이었는대
한쪽시력이 맛 간 상태에선 그게 최선이였음
전쟁에서 행보관이 1순위로 중요한 직책인데
조예가 오래 살았다면 사마의가 고평릉 사변같은 일은 꿈에도 못 꿨을텐데
대군주 쓰마이에서 폐급으로 나오길래
조예 똘똘해보이는구만 뭐가 아쉬워 저렇게 무리수를 남발하나 했었는데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군요
개추 드립니다 ㅎㅎ
대군사 사마의에서도 뜬금 사마의를 너무 견제하는 악역으로 나오지만 거기서도 정치력 하나만큼은 개지리는 군주로 나오긴 하죠 ㅋㅋ 사실상 퓨전사극이라 그냥 편하게 봤습니다.
그 사극도 허구가 많긴 합니다만 저는 사극에서의 조예도 폐급보다는 젊고 유능한데다 권모술수에 강하고 책임감 있는 최고의 군주로 봤는데 이런 관점도 존재함에 놀랐습니다😮😮😮
조예가 205년생이고 사마사가 208년생인데, 조예가 사마사만큼만 살았으면 어땠을지 궁금하네요. 사마사가 조예를 꺾기는 쉽지 않았을텐데요.
잘보고있습니다
대군사 사마의에서 조예 조비를 처음보고 생긴 이미지가 너무 강해서 영상을 보고 새로 하나 배웠습니다 ㅋㅋ 드라마속 이미지와 역사 속 조비 조예가 서로 바뀐것 같네요
물론 드라마는 재밌었고요
9:49 ㅋㅋㅋㅋㅋㅋㅋ
4:10 말자상속이라기 보다는 자식들이 어느정도 장성하면 부모의 재산중 일부를 나눠줘서 순서대로 독립시킨다고 합니다. 결국 막내는 부모 곁에서 머물다가 부모가 죽으면 남은 재산을 물려 받죠. 이게 얼핏 보기에 막내가 부모의 재산을 마지막에 다 받다 보니 말자상속처럼 보이기 쉬운데 사실은 균등 배분에 가까우며 족장이나 리더 같은 지도자는 자식들 중 가장 능력있는 아들에게 돌아간다고 합니다.
삼국지 인물열전 영상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아시는데 불구하고 부연 설명하다 보면 길어질 것 같아서 말자 상속으로 퉁 치신건지 아닌지 잘 몰라서 제가 알고 있는 짧은 지식으로 첨언 합니다. 좋은 컨텐츠 계속 만들어 주세요. 정말 잘보고 있습니다.
항상 재밌게 보고있습니다! 고순도 보고 싶네요!
정사만을보면 조예는 결코 무능한 황제가 아니였었죠
만약에 진짜로 조예가 좀만더 오래 살아서 제위를 유지했다면 사마의와 사마씨들도 조상이랑은 으르렁거려도 고평릉사변의 참사는 안일어났었겠죠??? 참 역사란 다시금 오래살아남아야 승자가 되는게 아닌가 싶네요 ㅎㅎ
매회 레전드.. 좋아요를 안누를수가 없다
삼국지 후반에도 재미있는 일화가 많네요
강유 or 등애 부탁드려도 될까요 차애캐들이라...(최애는 감녕)
아 존나 재밌음.......... 떡상해라...
개인적으로 가장 안타까운 위나라 황제는 조모라고 생각합니다. 능력은 있으나 상황이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없어 어떻게든 바꾸려고 했다가 끔살당한 황제...좀 더 일찍 태어났거나 황실권위가 괜찮았으면 위나라도 그리 허무하게 안 망했을거라 생각합니다..
가충: 죽어!
사마소: 너때문에 나 역적 되버렸 잖아!!
가충:일이 크게 일어나 어쩔수 없었습니다
사마부:(슬픈척,슬픈척) 이래놓고 높은 관직은 다 받음
진태:대장군 황제께서 죽다니 일을 일으킨 가충을 죽여야 합니다
사마소:.... 야, 생각해 봤는데 그건 아닌것같다.
성제:왜 나만 죽여!!...
가충: 직접죽인건 내가아니라 너니까.
사마사, 사마소 형제도 다뤄주세요!
소중한 후원 감사합니다! 사마사와 사마소 빠른 시일 내에 준비해 보겠습니다. :)
조예에대해 조예깊게 살펴볼까요^^
너무조아요
근데 주치는 메르키트족 칠게르의 자식이라고 하긴 좀 애매하지 않나요? ㅎㅎ
어릴 적 삼국지연의를 읽을 때에는 조예를 조비의 아들, 조조의 손자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한참 나이먹고 다시보니 조조에는 못미치지만(조조는 능력면에서는 인류사 역대급 인물이라...) 조비보다는 여러모로 낫고 유능한 인물로 보입니다.
삼국지연의 후반부는 '제갈량 vs 사마의'의 구도로 연출되지만 지금보니 실제로는 '제갈량 vs 조예'의 구도가 맞다 보입니다. 그러면 사마의는 뭐냐고요? 조예의 대촉한전선을 맡은 전선사령관이요. 지금 한국군으로 비유하자면 지금의 제1군단과 제5군단을 예하에 둔 야전군의 사령관 정도의 느낌입니다.
(1군단과 5군단 모두 군단치고는 상당히 크기 때문에 이 둘을 합쳐놓은 정도면 작은 야전군 정도의 규모는 된다 생각합니다.)
결국 제갈량의 북벌이 실패하게 되었는데 가장 큰 요인으로는 근본적으로 너무도 현격했던 촉한과 위의 국력차, 그리고 그 다음으로 제갈량이 상대했던 조예가 전략적인 안목이 있는 군사적으로 유능한 군주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제갈량 사후 조예가 강력한 적을 잃고 목표의식을 잃고 나태해지고 타락하면서 무리한 토목공사를 일으킨다거나 도교에 심취하며 해괴한 짓을 한다거나 했다고 생각하는데, 토목공사를 벌인 건 왕권강화의 목적도 있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는 참 불행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 생각하고(어릴 적에는 아버지에게서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했고, 어머니의 비극적인 죽음을 겪는 등 가정적으로는 결코 안정적인 환경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자식이 여럿 있었지만 대부분 자기가 살아있을 때 어린 나이에 죽었습니다. 부모로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을 겁니다.), 그것이 그가 오래살지 못하게 된 큰 요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조위의 군주로서는 아주 큰 실책을 저질렀는데, 바로 후계자 문제입니다. 혈통을 무엇보다 중시하던 고대 중국에서 도대체 누구의 자식인지도 불분명한 조방을 왜 자기 후계자로 지명한 것인지. 친아들이 없다면 양자를 들여 이어도 되었고, 그때는 그 양아들의 출신만 명확하면 괜찮았습니다. 그런데도 하필이면 왜 출신도 불분명한 조방을 자기 후계자로 정한 것인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않는 대목입니다.
조예를 조조 유비같은 창업군주보다 낫다는 의견에는 동의하진 않지만 똑똑한 군주인건 맞죠. 볼때마다 조선의 문종이 생각나는건 기분탓일까요
진짜 그림의 떡이란 표현이 여기서부터 시작된건가요 ㄷㄷ
대군사 사마의에서도 조예가 꽤 명석하게 나오죠. 작중 묘사로는 조비보다 뛰어나보임ㅋㅋㅋ
아름다운 미남자 황제
조조가 사랑한 손자
조예 좋은 황제였죠 잘봤습니다
조예해줬으면 좋겠다했는데 바로 올라오네 다음은 조모...
개인적으로 조조 조비 조예 황금 라인업 이라 생각합니다 조비가 싸이코짓을 많이 하긴했지만 그래도 말아먹을 정도 까지는 아니였으니 조예는 정말 단명한게 많이 아쉬운 군주입니다
삼국지 인물들 중에서도 짧은 수명에 아쉬운 인물들이 종종 있지요. 조예도 거기에 포함된다고 봅니다. 조예가 아무리 토목공사와 궁궐 짓는다고 해서 큰 원성은 아닙니다. 조예가 적어도 60살이상 살았다면 촉나라 입장에서나 오나라 입장에서 조조못지 않은 껄끄러운 상대였을 겁니다. 괜찮은 군주 밑에는 좋은 장군,책사들이 있지요. 위나라 신하들이 이리저리 찢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와씨 업로드 45초만에!! 선생님 항상 잘 보고있습니다
그림의 떡부분은 꽤 흥미롭게 볼수있는게 저시대에는 명성이 인재를 뽑는데 크게 작용했고 그래서 명사들에게 찾아가 평가받거나 작은공이라도 세워서 자신을 알리려고 하는게 강했는데 군주가 직접 명성보다는 인재의 능력보고 뽑아야지 ㅉㅉ 이런 말한거라 이게 인재를 가리자는 뜻도 있겠지만 왕권강화를 모색한 발언이 아닌가싶습니다.
저는 조예의 최대 문제점이 단명한거랑 후사를 이상하게 한거라 봅니다
토목공사는 할수 있는겁니다
위나라가 전혀휘청이지도 않았구요
위나라는 조조가 죽으면서 끝나것 같네요. 조조 다음 군주들이 다 단명해서 멸망했고 진짜 아까운 인물들이 많네요.
위나라 아들들 업로드 중이시군요~ 혹시 이통 요청드려도 될까요?? 삼국지 게임 열전 보면 용맹이 으뜸이라고 하기도 하고 (무력은 80대 초반이지만??) 창천항로에서도 멋있게 나오더라구요 ㅋㅋ
진수의 이스터에그 ㅋㅋㅋㅋ
원희 아들이면 조예 군재가 그리 뛰어날리가 없지
역사에 만약에라는건 없지만 조예도 오래 살았으면 어찌됐을지 모르겠네
조비나 조예나 다 괜찮은 군주들이었다고 봅니다. 막장 군주들이 없었는데도, 조위가
급격하게 무너진걸 보면 지배층이나 백성들 사이에서 황제로서의 정통성 같은게
약했던것 같습니다. 대의명분이 겉으론 부질없이 보여도 의외로 중요합니다
조예는 조방을 어디서 어떻게 데려오고 여자 누구와의 사이에서 본 자식인가에대한 궁금함은 삼국지 내 유명한 수수께끼 중 하나죠. 다음편은 혹시 출생의 비밀 조방인가요?
궁궐건축이 위엄의 수단이긴해도 조예 정도로 업적을 세운 왕이 했던 사례가 있나 싶긴함 (과거 왕조 지우기 제외) 어리기 때문에 위협을 느꼈거나 그럴 수는 있긴한데 궁궐 건축은 업적 없거나 위기 시에 억지로 하던 왕권 강화 수단이었던 것 같고 조예도 그 강도가 심했음
어린나이부터 촉오 전쟁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천재끼 있던 조예가 번아웃 와서 퍼졌다는게 더 설득력 있긴함
조비보다 훨씬 부하들 부리기 어려운 입장이었을텐데도 그들을 부드러움으로 지휘했다는거 자체가 대단한거같네요. 오래살았으면 위나라가 진나라에 그맇게 쉽게 무너지진않았을것같고. 근데 왜 저도그렇고 조예를 어린 망나니군주로 알고있었을까요...이상하네...
아버지 조비보다 능력도 좋았고.
할아버지 조조도 조예를 좋아했다고함
올라왔다 내 도파민
여포는 유목민족이랑 관련 있는거 같기함
말잘타고 활잘쏘고 쌈잘하고
유목민족이 강한놈에게 붙는데
여포는 아비가 4명이죠.
그런 가설을 적극 차용해서 만든게 만화 창천항로의 여포죠 ㅎㅎ 나름 괜찮게 보긴했는데 정사나 기록같은걸 보면 아쉽?게도 오리지날 스탠다드 한족이라네요...ㅎ
손찬이형 새 영상 드가자~
정사가 보급되어 가는 상황에서 서서히 제대로 평가 받고 있는 군주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개인적으로 조예의 인사에 관한 부분은 좀 더 조명 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조예가 재임기간에 처낸 인사가 하후현, 하안, 환범 등이였죠. 실속이 없다고.
조예가 말년에 정신줄 놓지 않고 장수했다면 조예 자신이 내친 개거품 하후현, 하안, 환범이 임용되는 일이 없었을테니 조상을 앞세울 필요도 없었고 설령 앞세웠다 해도 정치경력을 기를 시간이 충분히 있었다 봅니다. 그리고 이미 조예시기에 상당한 권력을 쥐고 있던 영천호족들 역시 사마의를 앞세워 반란을 일으킬 이유도, 명분도 없었음. 야망이 컸던걸로 보이는 사마사나 부친의 복수를 원했던 걸로 추측되는 가충이 지지 받지 못하는 반란을 무리하게 강행할 바보도 아니고 ㅋㅋㅋ
궁극적으로는 조예의 통치하에 조상, 사마사형제, 진태 등이 보좌하고 하후유, 곽회 등이 촉한과 손오를 견제하는 역할을 그대로 했을듯. 결국 조예가 내친 인간들의 삽질로 인해 조씨들의 몰락을 가져온 걸 보면 조예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 봅니다.
특히 전쟁짬밥 넘치는 사마의가 절대 못이긴다고 했던 흥세전투 강행해서 ㅈ망시키고 지 나라 정치상황 파악못하면서 인사권 문제 건드려서 고평릉사변의 원인을 초래했으며, 입으로는 개혁을 떠들었으나 실상은 본인공적 하나 없이 하후씨라서 쉽게 고위직에 오른데다가 평민과는 동석하기를 거부하신 고귀하기 짝이없는 하후현은 곽푸치노를 넘어서는 거품, 쓰레기 그 잡채임. 사마의가 고평릉사변 이후에 조상정권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하후현에게도 묻고 참수했어야 옳았다고 봅니다. 조위입장에서 보면 하후현의 ㅄ짓 때문에 강유의 북벌에 대해 수세적인 입장을 취하게 만든 장본인임 ㅋ
조예는 ㄹㅇ 개지림 개인적으로 조조, 조비, 조예가 100년은 잘 다스렸으면 진작 위나라 천통 이뤄지고 태평성대 가능했을듯
거기다 진시황이 불로장생한다면서 수은을 마이 먹어서 오히려 급사했듯. 조예 또한 정력을 늘리기 위한 것인지 동으로 사람을 만들어 거기에 맺힌 이슬에 옥으로 가루를 뿌려 먹었다고.
이러한 것이 건강에 독이 되었을 거.. 조비.조예의 단명이 단지 운이 나빠서인가? 아니라는.. 아버지 조조만 해도 환갑을 넘겼다는.
삼국지 후반 강캐 문앙 vs 관우 여포
이민족 담당 최고 전예
소개 요청드립니다.
그렇다고 쳐도 과연 그 타이밍이 궁권건설에 맞는지 여부와 적합한 왕권강화책이였는지는 역시 따져보는게 맞는듯 하지 않나 생각 될 때가 있음
화려한 궁궐이 왜 왕권강화로 이어지냐는 질문에는 베르사유 궁전이나 경복궁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면 됩니다.
강력한 중앙집권을 위해서는 지방에 유력자들에게 "지방의 삶" 보다 "중앙의 삶"이 훨씬 좋다는걸 보여줘야 합니다.
현대 대한민국은 인서울대학이나 땅값등으로 그걸 보여주지만, 근대 이전에는 화려한 궁궐과 왕과 황제의 사치스러운 삶을 보여주면서 그것을 확인시켜주는겁니다.
그러나 언제나 정도가 있으므로 조예는 조금 과한편은 맞습니다.
10년만 오래 살았어도 사마씨한테 나라 털리지 않았을텐데....5년이라도....
일단 조예 대에서 눈에 띌만한 큰 반란이 없었다는것에 좀 주목해봐야 합니다. 어린 황제가 즉위했는데도 촉오의 북벌시도 외에는 딱히 큰 위기 없이 안정되게 수성을 했다는건 만으로도 점수를 후하게 줄만 합니다. 더구나 친족과 권신들 사이에서 밸런스를 유지하는건 꽤나 어렵습니다. 자칫하면 헌제mk.2 되는건 순식간이거든요.
다만 명군이라 하기엔 그 수명이 짧았으며, 설령 오래 살았다 한들 천하통일을 했을 그릇은 아니었을겁니다.
수성형 군주같아보이네요.
위기대처능력이나 판단력도 좋아보이고
참을성도 있는 군주였던거같아요.
@@tv-talmo 무엇보다 난세에서 반란이 별로 없었다는건 안정된 통치와 인망을 기반으로 깔고가는거 같아요. 특히 저시대는 조예 재위시절 빼면 앞뒤로 반란천국시대라...
@@dongwonrhee8300 유선도 그렇고
조예도 그렇고 인품이 나쁘지않았던거같아요.
왕권이 약하면 반란이 일어날 확률도
높은데 나름 카리스마가 있거나
신하들간의 분쟁조절을 잘 하거나
정치력이 둘다 있었던 군주 아닐까싶어요.
조예는 조방을 태자로삼아 위가 망하고..사마염은 사마충을 태자로 삼아 진이 망하고. 왕조들이 단명할 운명이었던듯
애기 낳아보면 자기 자식인지 아닌지 알아요 자기의 신체적 특징이 몇가지 반영되거든요. 원희의 자식은 아닐 거 같습니다.
10년만 더 살았어도 사마씨한태서 위나라 지켰을듯
유선과 조예가 바뀌었다면 역사가 뒤바뀌었겠군요. ㅋㅋ
조조만큼 자식농사성공한 사람은 없다고 보는게 맞겠죠. 사마의 자식도 있긴하지만 병크터뜨리는 분도 계셨으니.......근데 조조자식들은 누가 키운걸까?
조예가 오래살았다면 사마씨는 정권을 잡지못했겠네요
조예가 살았을때는 사마의도 경거망동 하지 못했는데
하지만 조예가 주색에 심취했고 사치를 크게 부렸으며 백성들을 마구 부역에 동원했다는. 전형적 암군이기도 했다는. 이러한 주색 심취는 조예의 단명으로 이어졌고.
조예가 거느린 여자가 수천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
진수 입장에서 조예 좋게안쓰면 죽으니까 올려치기 개 한듯
조예가 10년만 더 살았더라면 사마의는 결코 권력을 잡지 못했을것
조조의 후손들이 다 요절하고 결과적으로 사마씨에게 잡아먹힌 건 무슨 저주같은 거 아니었을까 싶다.
제 주관적으로 위나라 역사 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 Top3가 조예의 죽음, 조진의 죽음, 적벽 에서의 대패를 꼽습니다.
근데 조예는 조비처럼 방탕하지도 않았는데 왜 단명했을까. 조조는 꽤 오래살았는데.
독살인가?
한국사에서 공민왕 내려치기하는거랑 비슷한 케이스인듯
다만 공민왕은 사람쓰는게 원소처럼 더러웠지만
조비나 조예가 단명안했으면 위가 망하지 않고 통일 했을려나?
조비는 좀더 일찍 죽었어야...
조비는 너무 고평가됨. 코에이에서 밀어주기도 많이하고.
손찬이형은 개추먹엉👍
강유, 종회, 사마패, 등애 기다리겠습니다.
하후패 말씀하시는건가영
아니근데 궁궐짓는다고 왕권이 강화됨? 군권하고는 다른문제아닌가
자기는 능력 있는거 역사에 증명하고, 증오스러운 아버지가 찬탈해서 세운 위나라를 안에서 부수겠다 이런 생각이었을 수도
조조는 그 전장에서 ㅈㄴ게 구르고 전국을 돌아다녀도 60대까지 살았는데 평생 편하게 산 자식이랑 손자는 단명한게 진짜 아이러니하네..
군주는 오래사는 거도 능력임. 난 원소와 조조도 가장 결정 적인 차이는 수명이라고 봄. 기본적으로 전근대 군주는 오래살고 안정된 통치만 해도 명군 취급 받음
손권은 명군이구나...!
@@ajvk9028 너무 오래 살아서 문제인 케이스....
조예의 단점은 솔직히 단명한게 너무 큰거같음
조방의 출신이니 탁고대신 문제니 결국 얘만 조조나이까지만 살았어도 서진이란 나라는 없었을듯
손찬이형 재밌게 보긴하는데. 핵심소재보단 옆길로 빠지는 얘기가 절반인듯;; 스토리텔링이 너무 중구난방인 느낌 (tmi 좋아하시는 분들은 호일듯)
조예가 제일 잘생김… 일본 썸녀로 히미코 있음
짱허!스러! ㅠㅠㅠ
조예가 20년만 더 살았어도
삼국지 잘난놈들 특 수명이 짧다...매우 짧다. 많이 짧다. 뭔가 좀 해보려고 기반 다지고 보면 사망 했다.
젊어서 어려운 전쟁에서 승리하고 대규모 토목공사를 일으킨게 광해군과 비슷하네요. 심리적측면에서 일종의 도파민 중독비슷한 증세가 아닌듯. 어린 나이에 큰전쟁에서 승리해서 그 엄청난 희열을 느끼면 또 똑같은 희열을 느끼기 원하게 되고 그 방법이 또 정복전쟁을 일의키거나 이게 여의치 않으면 대규모 토목건축을 일으키는거 아닐까요? 토목공사도 군사작전과 유사합니다. 대규모 인력을 동원해서 체계적 인력관리를 해야하고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고 성공하면 큰 위세를 떨칠수 있죠 보고 있으면 마음 뿌듯하고.
조예가 똑똑하고 능력있긴했지만, 조조 유비랑 비교하는건 무리수..
ㅇㅈ합니다
여몽여몽여몽여몽
조예는 급작스레 맛탱이 가는 바람에,, 지 사후 처리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지...
꼭 조예만의 잘못도 아닌 게... 윗대인 조비대부터 손이 귀했으니..
어쨌든 마무리가 좋지 않았기에 조조, 유비랑 같은 급으로 까지는 조금 오버라 보임..
재위기간이 길고 후사처리를 잘 했다면 조조, 유비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았을지도 모를 인물임..
조예는 토목공사만 빼면 영리한 군주였던것 같은데..조비 조예가 둘다 단명해서 위나라가 금방 끝나버린
유비 고자썰
안타깝다
조예 자는 원중 위 명제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