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적으로 대학 개그제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연기를 못했음 코메디를 쉽게보고 방송에 나온건지 어색함과 왠지 선배들과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튀는데 어설픔 대사를 살리지못함 신동엽은 정말 연기나 꽁트를 잘했고 오히려 당시에는 화회탈 남희석 최승경이 더 재미있었고 유재석 김용만 박수홍 그닥이였고 김국진은 후에 완전 수퍼스타가 됐던걸로 기억함
코메디의 전성기 사실상 마지막 프로그램=>유머1번지. 신무협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나에게는 코메디 프로의 역사를 보면 80년대 웃으면 복이와요~쇼비디오자키등 코메디 프로그램은 소오강호 느낌이고 1990년 10월27일까지 유머1번지는 신무협의 절정기 동방불패...90년대후반~2000년대 중반까지 한참 인기 있다고 재미있다고 사람들이 몰려가 표구하기가 어렵다던 개그콘서트는 20년동안 개그프로그램 거의 보지 않았던 시기로 동방불패 2같은 느낌이었지.
감자골 4인방(김국진씨('바구니가 비었다고 낚시대를 자르지 마라' 코너 출연) 박수홍씨('미워도 다시한번' 코너 출연) 등)은 소위 "감자골 사건"(91년 5월 KBS 공채 7기 겸 대학개그제 1기 출신(4기 5기 6기 최고참이 당시 30대였던 것(4기-곽재문씨(86년 6월)('날마다 사표쓰는 남자' 코너 출연) 5기(87년 6월)-오재미씨('어떤 도둑' 코너 출연) 김진호씨('PR광고 25시' 코너 출연) 6기(90년 6월)-최영준씨('부채도사' 코너 출연)) 탓인지 7기부터 대학개그제로 형식 변경)으로 데뷔하신 뒤 '감자골 4인방'으로 불린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씨가 2∼3개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도 코미디언 세계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대한 반발을 느껴 93년 1월 10일 활동 중단을 선언하셨으며 1달 뒤인 MBC 의 게스트(93년 2월 11일 녹화)로 출연을 하자 임하룡씨('추억의 책가방' 코너 출연)를 제외한 3사 소속 선배 개그맨 분들이 "(감자골이) MBC로 이적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버스를 타고 MBC에 와서 방해하셨으며 당시 MC 이경규씨가 3사 소속 선배 개그맨 분들(임하룡씨 제외)를 막으면서 "이적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고별 인사를 하려고 한 것"이라며 3사 소속 개그맨 분들을 말려 간신히 녹화하심) 이후 故 김형곤씨(2006년 3월 11일 돌연사) 등 KBS(TBC에 있었다가 이적한 분들 포함) 중견 개그맨들과 사이가 틀어지셨으며 이 때문에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김국진씨가 빈소에 오지 않으셨고 90년 6월 KBS 공채 6기(배동성씨('PR광고 25시' 코너 출연) 최영준씨('부채도사' 코너 출연) 등이 이 기수 출신)로 데뷔하셨으나 김형곤씨와의 폭행 사건(김형곤씨가 운영해 온 신사동 코미디클럽에서 출연 제의를 요구받으셨지만 수입이 적다는 이유로 거부하신 데다 예정된 녹화시간에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등 불성실한 자세가 보여 91년 12월 6일 밤 김형곤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앞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으심) 이후 슬럼프에 빠져 92년 3월 SBS로 옮기셨으나 대우-배역 비중 문제 때문에 제작진과 잦은 마찰을 일으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신 데다 신동엽(91년 11월 특채) 김경식(92년 4월 공채 1기)씨 등 SBS에서 키운 신인 개그맨들에게 밀려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해 말 그대로 "설상가상" 신세가 되신 서인석씨가 '감자골 사건' 3달 뒤인 93년 5월 KBS로 돌아오셨고 감자골 4인방은 93년 6월 25일 미국행(김국진 김용만씨) 군 입대(박수홍씨) 때문에 활동을 잠정 중단하셨으며 '감자골 사건' 때문에 MBC도 더 큰 피해를 봤는데 89년 3월 3기를 끝으로 TV 개그맨 콘테스트를 개최하지 않아 이렇다할 신인 개그맨 발굴에 어려움을 겪어온 데다 정재환 박미선씨 등 핵심 개그맨 분들의 공백까지 겹쳤고 소위 '감자골 사건'까지 터져 말 그대로 "설상가상" 신세가 되자 '감자골 사건' 2달 뒤인 93년 4월 4기로 TV 개그맨 콘테스트를 재개했으며 서인석씨와 같은 시기(92년 3월) SBS로 옮기신 곽재문씨는 SBS 이적 후 '개밥그릇'으로 인기몰이를 하셨으나 IMF 때문에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구조조정되어 설 자리를 잃으셨고 99년 9월 3일부터 포맷을 정통 콩트 코미디로 변경한 동시에 모든 코너를 물갈이하는 한편 한동안 개인사정 때문에 프로그램을 떠난 최양락 김미화씨를 출연진 형식으로 복귀시킨 KBS 2TV 를 통해 KBS 복귀를 하셨으며 곽재문씨 외에도 87년 6월 KBS 5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셨다가 91년 10월 SBS 이적 뒤 '랄랄라 선생님'으로 주가를 올리셨지만 역시 IMF 때문에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구조조정되어 설 자리를 잃으신 최형만씨가 를 통해 KBS 복귀를 하셨습니다. 이 탓인지 SBS 초창기 공채 개그맨 분들 중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빈소에 온 분들은 윤정수씨(1기) 홍록기씨 (93년 4월 2기) (이상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김구라씨(본명 김현동)(2기)(김형곤씨 돌연사 다음 날) 정도였습니다.
감자골 4인방 솔직히 재미도 없고 별로 였음 당시 방송사들이 대학생 젊은 개그맨 뛰어 줄려고 하는 분위기속에 인지도 쌓고 지들이 무슨 스타나 되는냥 깜냥도 안되는 애들이 나댔음 김국진은 아이엠에프 당시 조성모스타일 포텐이 터지면서 그냥 말하면 유행어가 되고 대스타가 됐고 유재석은 정말 연기를 재미없게 못해서 초반 케비에스가 밀어줬는데 뜨질 못함오랜 무명끝에 서세원쇼에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강호동이 키워줬지요 ㅎㅎ
40:16 고려 태조 왕건 남희석 등장
썸네일 정명재 ㅋㅋㅋ
저는 코미디세상만사 보고싶네요 처음부터 끝까지 보고싶네요 기다릴께요
27:37 술 마시는 남자의 전신코너
가족오락관 1034회 올려주세요. (2005.03.05)
life 님의 생각은요?
저는 가족오락관 1081회 (2006.02.25),1082회 (2006.03.04)를 보고싶습니다. 1081회에서는 개그맨 이용식씨가 깍두기로 1082회에서는 가수 김흥국씨가 깍두기로 출연했습니다.
저는 윤지영 아나운서 첫방송 보고싶네요 월요일날 수요일날 변우영 아나운서 마지막 방송 보여주세요 재미있어요 기다릴께요
92년 3월 총선때문에 선거가지고 한 코너가 많았었네요 재미있게 잘 봤어요
이 회차 이미 올린 것을 중복으로 올렸네요.
일요일은 유머 1번지 요리사
워터마크 없으니까 더 좋네요..
결정적으로 대학 개그제 출신들이 공통적으로 연기를 못했음 코메디를 쉽게보고 방송에 나온건지 어색함과 왠지 선배들과 녹아들어가지 못하는 튀는데 어설픔 대사를 살리지못함 신동엽은 정말 연기나 꽁트를 잘했고 오히려 당시에는 화회탈 남희석 최승경이 더 재미있었고 유재석 김용만 박수홍 그닥이였고 김국진은 후에 완전 수퍼스타가 됐던걸로 기억함
이렇게해서 유머 1번지 438회, 439회, 440회,
441회 차례대로 생겼습니다.
정명재 취객 연기가 ㄷㄷㄷ
나에게 동작그만 없는 유머1번지는 팥이나 앙꼬없는 겉이 잘 구워진 달달한 맛있는 단팥빵이거나 소보루의 겉표면이 없는 잘 구워진 빵 😅
코메디의 전성기 사실상 마지막 프로그램=>유머1번지.
신무협으로 굳이 비교하자면 나에게는 코메디 프로의 역사를 보면 80년대 웃으면 복이와요~쇼비디오자키등 코메디 프로그램은 소오강호 느낌이고 1990년 10월27일까지 유머1번지는 신무협의 절정기 동방불패...90년대후반~2000년대 중반까지 한참 인기 있다고 재미있다고 사람들이 몰려가 표구하기가 어렵다던 개그콘서트는 20년동안 개그프로그램 거의 보지 않았던 시기로 동방불패 2같은 느낌이었지.
감자골 4인방(김국진씨('바구니가 비었다고 낚시대를 자르지 마라' 코너 출연) 박수홍씨('미워도 다시한번' 코너 출연) 등)은 소위 "감자골 사건"(91년 5월 KBS 공채 7기 겸 대학개그제 1기 출신(4기 5기 6기 최고참이 당시 30대였던 것(4기-곽재문씨(86년 6월)('날마다 사표쓰는 남자' 코너 출연) 5기(87년 6월)-오재미씨('어떤 도둑' 코너 출연) 김진호씨('PR광고 25시' 코너 출연) 6기(90년 6월)-최영준씨('부채도사' 코너 출연)) 탓인지 7기부터 대학개그제로 형식 변경)으로 데뷔하신 뒤 '감자골 4인방'으로 불린 김국진 김수용 김용만 박수홍씨가 2∼3개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해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외에도 코미디언 세계의 엄격한 위계질서에 대한 반발을 느껴 93년 1월 10일 활동 중단을 선언하셨으며 1달 뒤인 MBC 의 게스트(93년 2월 11일 녹화)로 출연을 하자 임하룡씨('추억의 책가방' 코너 출연)를 제외한 3사 소속 선배 개그맨 분들이 "(감자골이) MBC로 이적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버스를 타고 MBC에 와서 방해하셨으며 당시 MC 이경규씨가 3사 소속 선배 개그맨 분들(임하룡씨 제외)를 막으면서 "이적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고별 인사를 하려고 한 것"이라며 3사 소속 개그맨 분들을 말려 간신히 녹화하심) 이후 故 김형곤씨(2006년 3월 11일 돌연사) 등 KBS(TBC에 있었다가 이적한 분들 포함) 중견 개그맨들과 사이가 틀어지셨으며 이 때문에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김국진씨가 빈소에 오지 않으셨고 90년 6월 KBS 공채 6기(배동성씨('PR광고 25시' 코너 출연) 최영준씨('부채도사' 코너 출연) 등이 이 기수 출신)로 데뷔하셨으나 김형곤씨와의 폭행 사건(김형곤씨가 운영해 온 신사동 코미디클럽에서 출연 제의를 요구받으셨지만 수입이 적다는 이유로 거부하신 데다 예정된 녹화시간에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등 불성실한 자세가 보여 91년 12월 6일 밤 김형곤씨로부터 폭행을 당해 앞니가 부러지는 등 전치 4주의 상처를 입으심) 이후 슬럼프에 빠져 92년 3월 SBS로 옮기셨으나 대우-배역 비중 문제 때문에 제작진과 잦은 마찰을 일으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하신 데다 신동엽(91년 11월 특채) 김경식(92년 4월 공채 1기)씨 등 SBS에서 키운 신인 개그맨들에게 밀려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해 말 그대로 "설상가상" 신세가 되신 서인석씨가 '감자골 사건' 3달 뒤인 93년 5월 KBS로 돌아오셨고 감자골 4인방은 93년 6월 25일 미국행(김국진 김용만씨) 군 입대(박수홍씨) 때문에 활동을 잠정 중단하셨으며 '감자골 사건' 때문에 MBC도 더 큰 피해를 봤는데 89년 3월 3기를 끝으로 TV 개그맨 콘테스트를 개최하지 않아 이렇다할 신인 개그맨 발굴에 어려움을 겪어온 데다 정재환 박미선씨 등 핵심 개그맨 분들의 공백까지 겹쳤고 소위 '감자골 사건'까지 터져 말 그대로 "설상가상" 신세가 되자 '감자골 사건' 2달 뒤인 93년 4월 4기로 TV 개그맨 콘테스트를 재개했으며 서인석씨와 같은 시기(92년 3월) SBS로 옮기신 곽재문씨는 SBS 이적 후 '개밥그릇'으로 인기몰이를 하셨으나 IMF 때문에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구조조정되어 설 자리를 잃으셨고 99년 9월 3일부터 포맷을 정통 콩트 코미디로 변경한 동시에 모든 코너를 물갈이하는 한편 한동안 개인사정 때문에 프로그램을 떠난 최양락 김미화씨를 출연진 형식으로 복귀시킨 KBS 2TV 를 통해 KBS 복귀를 하셨으며 곽재문씨 외에도 87년 6월 KBS 5기 개그맨으로 데뷔하셨다가 91년 10월 SBS 이적 뒤 '랄랄라 선생님'으로 주가를 올리셨지만 역시 IMF 때문에 SBS의 코미디 프로그램이 구조조정되어 설 자리를 잃으신 최형만씨가 를 통해 KBS 복귀를 하셨습니다.
이 탓인지 SBS 초창기 공채 개그맨 분들 중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빈소에 온 분들은 윤정수씨(1기) 홍록기씨 (93년 4월 2기) (이상 김형곤씨 돌연사 당시) 김구라씨(본명 김현동)(2기)(김형곤씨 돌연사 다음 날) 정도였습니다.
가족오락관 1004회 (2004.07.24) 올려주세요.
찬성입니다.
감자골 4인방 솔직히 재미도 없고 별로 였음 당시 방송사들이 대학생 젊은 개그맨 뛰어 줄려고 하는 분위기속에 인지도 쌓고 지들이 무슨 스타나 되는냥 깜냥도 안되는 애들이 나댔음 김국진은 아이엠에프 당시 조성모스타일 포텐이 터지면서 그냥 말하면 유행어가 되고 대스타가 됐고 유재석은 정말 연기를 재미없게 못해서 초반 케비에스가 밀어줬는데 뜨질 못함오랜 무명끝에 서세원쇼에서 가능성을 확인하고 강호동이 키워줬지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