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43 아공 1.에고를 내려놓고 참나를 찾아라.- 자신의 (생각,감정,느낌,오온) 무상,고,무아 라는 것을 알고 내려놓고 법공 2. 참나 입장에서 만법을 재규정함. - 만법이 무아,고,무아 이지만 이또한 참나의 작용이므로 이들을 끌어안고 재규정함. 다만 참나의 눈으로. 1의 이유는 우리는 현상계의 에고로서 에고의 현상인 (생각,감정,오감)으로 알아채며 이로서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그리고 에고로서 지내므로 에고로서는 참나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에고를 내려놓으면 참나를 찾게된다. 2의 이유는 법(생각,의지,감정,느낌)도 무상이나 참나로서 이들을 다시 관하여 만법이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무상하나 사실은 그 무상함 또한 참나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다시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참나를 알게된 후(견성) 참나의 작용으로 다시 관하여 세상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이다. 초기 불교-> 대승 불교로 갈 수 있는 까닭은 초기 불교 자체는 무아로서 열반(참나)에 도달하면 끝이지만 이러한 열반 후에 세상에 대승보살도를 펼치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체가 무상하면 세상은 그 자체가 무상하기 때문에 열반에 안주할 뿐, 만법을 끌어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만법이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된다면 법공이나 그 법 역시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되므로 무상하나 실체로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대승의 법공 사상은 제법무아가 아니다. 법공이란 만법(오온, 육근)은 참나의 작용인 바 참나와 분리된 독자적인 실체가 아니다라는 것. 펜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펜이 여러 요소로 구성된 것이니까 실체가 없다는 것은 법공이 아니다. 만법은 곧 열반이다. 만법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무상 고 무아도 참나의 작용이다.
제가 많이 아는것은 아니지만 짧은 생각으로는 삼라만상이 공이면, 공에 십계가 있어 자비가 있듯,우주에 십계가 있기에 그안에 자비가 있기에 우주에서 나온 나에게도 우주와같은 만법이 내안에 존재하고 십계도 똑같이 있는것이고 그 십계안에 자비가 있는것이아니가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비로인해 지금 나도 존재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주에 자비가 있기에 내가 우주에 존재하듯 그 감사함에 다시 우주가 존재하고 우주가 이로워지듯. 내안에서 자비를 키운다는건 감사함을 키우는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나를 이롭게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로써 타인을 이롭게하며 나를 이롭게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즉우주 우주즉아이기에 모두를 나와같이 해야되는것이 아닌가생각합니다.
지금 지구별에 오로지 박산 윤홍식대표님만이 자명한 공의 진리를 말씀하십니다.대표님과 어깨를 견줄 분이 계시다면 좋으련만...그러면 대표님도 무게가 가벼워질 것을...❣️
들으면힘이나는 대표님강의
먼가시들해질때 보약같은 강의~!!
큰 가르침을 주는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드립니다
짱!입니다
일요대담~
오~늘~ 감사합니다~
드디어 아공, 법공을 이해~
그렇다고 아직 깨달은 건 아니고 ~
만법은 참나의 작용이라 독자적인 실체가 없다!
사이다~ 맞아요 ^^ 감사합니다
늘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명한 말씀 감사합니다 🙏
아공 법공 조금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에고 차원에서는 진정한 근원적인 나라는 존재가 될만한 요소가 하나도 없다라는 그 말씀이 단순히 자명한 지식이나 이해로 다가오는게 아니라 엄청난 깨달음으로 가슴에 사무치게 다가오는건 정말 눈물나는 일입니다...
아주 자명한 가르침 감사합니다
다시들어도~~너무시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단순하고 자명하고 직관적이네요.
감사합니다.
자명한 설명에 전율을 느낍니다. 늘 감사합니다
법공을 배웁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다녀갑니다
아공 법공에 대한 명쾌한 말씀 감사합니다~
🙏🏻
아공설명 너무자명하시네요.
감사합니다.
가르침으로 삐뚤어진 형상이 맟쳐지는 느낌 이것도 오온의작용이지만 이또한 사랑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41:43
아공
1.에고를 내려놓고 참나를 찾아라.- 자신의 (생각,감정,느낌,오온) 무상,고,무아 라는 것을 알고 내려놓고
법공
2. 참나 입장에서 만법을 재규정함. - 만법이 무아,고,무아 이지만 이또한 참나의 작용이므로 이들을 끌어안고 재규정함. 다만 참나의 눈으로.
1의 이유는 우리는 현상계의 에고로서 에고의 현상인 (생각,감정,오감)으로 알아채며 이로서 우리 자신을 규정한다. 그리고 에고로서 지내므로 에고로서는 참나를 찾을 수 없다. 따라서 에고를 내려놓으면 참나를 찾게된다.
2의 이유는 법(생각,의지,감정,느낌)도 무상이나 참나로서 이들을 다시 관하여 만법이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된다. 따라서 모든 것이 무상하나 사실은 그 무상함 또한 참나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 것이므로 다시 이 세상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참나를 알게된 후(견성) 참나의 작용으로 다시 관하여 세상의 실체를 알아가는 것이다.
초기 불교-> 대승 불교로 갈 수 있는 까닭은
초기 불교 자체는 무아로서 열반(참나)에 도달하면 끝이지만 이러한 열반 후에 세상에 대승보살도를 펼치는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체가 무상하면 세상은 그 자체가 무상하기 때문에 열반에 안주할 뿐, 만법을 끌어안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만법이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된다면 법공이나
그 법 역시 참나의 작용임을 알게되므로 무상하나 실체로서 알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감사 드립니다.
탐진치가 올라올 때마다 무상 고 무아로 요격한다....^^. 감사합니다
대승의 법공 사상은 제법무아가 아니다. 법공이란 만법(오온, 육근)은 참나의 작용인 바 참나와 분리된 독자적인 실체가 아니다라는 것. 펜이 객관적으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펜이 여러 요소로 구성된 것이니까 실체가 없다는 것은 법공이 아니다. 만법은 곧 열반이다. 만법은 마음이 만든 것이다. 무상 고 무아도 참나의 작용이다.
도넛 먹을 때도 잠시 참나를 만나게 됩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아...오늘에서야 불교가 그러거였구나 하고 어렴풋이나마 알게됬네요...감사합니다~ 꾸벅
제가 많이 아는것은 아니지만 짧은 생각으로는 삼라만상이 공이면, 공에 십계가 있어 자비가 있듯,우주에 십계가 있기에 그안에 자비가 있기에 우주에서 나온 나에게도 우주와같은 만법이 내안에 존재하고 십계도 똑같이 있는것이고 그 십계안에 자비가 있는것이아니가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자비로인해 지금 나도 존재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주에 자비가 있기에 내가 우주에 존재하듯 그 감사함에 다시 우주가 존재하고 우주가 이로워지듯. 내안에서 자비를 키운다는건 감사함을 키우는것이고, 그것이 결국은 나를 이롭게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로써 타인을 이롭게하며 나를 이롭게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즉우주 우주즉아이기에 모두를 나와같이 해야되는것이 아닌가생각합니다.
일체가 나의 작용
모든게 내책임이다
만법은 공하니 실체가 없다
진공을 알아차리는 자리가 공이다
무상ᆞ고ᆞ무아도 참나에서 나온다
탐진치도 참나에서 나와서
순수하기때문에 싸우지않는다~
이렇게 저렇게 돌려서 생각해도
이해는 됩니다 더욱 자명하기위해
실천을 해야겠어요~
공부할께 은근많아 배우는 재미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손잡이 없는 주전자(그자리)
그 자명했던 부처님의 법이 이젠 왜? 인도에선 사라져가나요?
30:48
31:43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