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 Intro / Pre entering 유료전시장 입장 전 1:32 The 1st opening 입장후 첫 셋션 2:21 The 2nd section - 한국의 역사 Korean History 5:11 The 3rd section - 한국 드라마와 영화 K-drama & K-cinema 9:57 The 4th section - 케이팝 K-pop 14:15 The 5th section - 케이뷰티와 패션 K-beauty & K-fashion 15:51 HALLYU! exhibition real reviews 해외관객 반응 / 인터뷰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으로써 정말 행복하게 만든 영상입니다. 즐겁게 시청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제 인스타에도 놀러오셔서 런던 구경 하세요~ 아이디: londonkiki_lg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 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Kpop, kdrama, kmovie 등의 한류열풍, 일본 의 무역보복에 대한 대처능력, 코로나에 대한 대처능력, G8 국가로의 진입 가능성까지 타진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우리 겨레가 갑자기 뛰어난 나라와 겨레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모습이 이제야 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고조선의 모습이고 고구려의 기질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내몽골 쪽에서 발견 되었는데 그 문명이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시아 문명의 근원이 중국의 황하 문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약 3천년이나 앞선 문명이 있었고 그 문명이 중국에 전해져서 황하 문명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 문명을 홍산 문화 또는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하 문명이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빛살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 고인돌 처럼 돌로 만든 무덤 등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인데 요하 문명에서도 이러한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우리의 조상들은 아시아 문명의 근원을 일구었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아시아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것입니다. (홍익인간의 뜻도 우리가 문명을 주변 민족들에게 전해줘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나라가 그렇게도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했으나 살수대첩에 의해 무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당 태종 이세민이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고구려 원정을 단행했던 이유는 우리 겨레를 꺾지 않으면 아시아의 진정한 패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를 방치했다가는 중화패권주의를 이룰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나라도 전쟁에서 패하여 우리 겨레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우리 겨레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멸망으로 인해 그 위상을 잃어갔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에 대한 사대, 일제시대에는 식민사관에 의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잊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 식민사관에 의한 왜곡된 역사를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의 모습을 망각한채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DNA가 다시 우리의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시간이라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모습, 고구려 기질을 발휘할 때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중화사대사관과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우리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며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00:00 Intro / Pre entering 유료전시장 입장 전
1:32 The 1st opening 입장후 첫 셋션
2:21 The 2nd section - 한국의 역사 Korean History
5:11 The 3rd section - 한국 드라마와 영화 K-drama & K-cinema
9:57 The 4th section - 케이팝 K-pop
14:15 The 5th section - 케이뷰티와 패션 K-beauty & K-fashion
15:51 HALLYU! exhibition real reviews 해외관객 반응 / 인터뷰
해외에 살고 있는 한국사람으로써 정말 행복하게 만든 영상입니다. 즐겁게 시청하셨다면 ★구독과 좋아요★ 잊지 말아주세요! 감사합니다!
제 인스타에도 놀러오셔서 런던 구경 하세요~ 아이디: londonkiki_lg
잘보고갑니다 한번 오셔서 음악 듣고가세요^^
늘~ 보고싶은 걸 보내게 해주시는 런던키키님👍 시간 없어 아직 못 갔는데 아쉬움을 이렇게 달래주시네요. 반가운 마음에 댓글 먼저 남기고 시간 내서 꼼꼼히 다시 시청하렵니다.
늘 멋진 영상 고마워요❤️
늘 감사해요 언니~ 런던에 계시니 꼭 가보세요 잊고있던거를 마구 발견하실거에요 😊
영상이 너무 알차요! 마치 제가 런던에 있는 전시회에 다녀온 듯..^^
계속해서 멋진 영상&정보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 리즈님……. 😉❤️❤️
좋은 내용 감사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즐시청 하셨길요… 또 놀러오세요 😊
어마어마하네요...
네 그쵸 한국사람으로써 너무 뿌듯하고 기분 좋았답니다 😊
패션에 고 앙드레김 님의 작품이 없는게 아쉽네요. 고 마이클잭슨 님이 맞춤옷 제작 요청으로 엄청 입었는데
런던 키키님, 저 오늘 런던에 왔어요~~ 3년만에 오니 너무 반갑고 좋네요. 그런데, 저 한국인인데, 여기 가야할까요? ㅎㅎㅎ
어머어머 Welcome 제이드님!! 요즘 조금 싸늘하지만 그래도 햇살 좋은 가을 날씨이라 잘 오신듯요! 한국인이니 여기 꼭 반드시 더 가셔야할듯요! ㅋㅋ 언제까지 계시나요? 시간 되시면 카톡으로 연락주세요 (id: luckyuhee) 🙂
마치 현장에 다녀 온 것 같아요. 서울올림픽 자원 봉사자 한복의상이 이렇게 예뻤네요~ (화면 보면서 저는 옛날 사람이라는 걸 수차례 확인 했어요😂)
저도 올림픽 자원 봉사자 한복 색감과 디자인이 너무 예뻐 한참 쳐다봤었어요 💙 옛날 사람 여기에도 있습니다 🙋🏻♀️ “난 알아요” 듣고 눈물날뻔 했어요
와 한류가 대단하긴 하네요!
대단하즁~~ 뿌듯한 마음 안고 보면서도 믿기지 않음요 🙂
저 책을 제가 사서 보고싶어여..........!!!!!!!!!!!!!!!!!!!!!!!!!!!!!!!! 나도 한류의 역사가 궁금해 ㅠㅠㅠㅠ
안녕하세요! 저 책 무거운만큼 정말 정보 빠방해요! 무게만 아니면 하나 보내드리고 싶네요 😢 대신 제 영상 보며 마음 달래시길... 또 놀러와주세요 ❤️
한류 현상에 대해 이제는 어리둥절해 하거나 믿기 힘들다는 인식에서 탈피해야 합니다. 우리 민족의 원래 모습이 발현되고 있다고 인식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일제 식민 사관과 중화 사대 사관에 의해 우리 민족의 역사가 한반도를 벗어나지 않았다고 배웠기 때문에 한류열풍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의 역사는 대륙사와 해양사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좁은 반도에 갇힌채 외세의 침략만 당한 것이 아니라 넓은 대륙과 바다를 지배했습니다.
고조선의 강역은 중국의 동부 지역, 내몽골 지역, 발해만 지역, 만주 지역, 한반도를 포괄했습니다. 고조선의 유물인 고인돌과 비파형 동검의 분포 범위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가 만주 지역과 내몽골, 발해만 지역을, 백제가 중국의 동부지역과 남부지역, 한반도의 서쪽 지역, 일본을 장악했습니다.
[삼국사기] [고구려 모본왕 본기] 2년(49)
[후한서] [광무제 본기] 25년(49)
[후한서] [동이열전]
[삼국사기] [고구려 태조왕 본기] 3년(55)
고구려 1대 태왕 추모왕(주몽)의 연호는 ‘다물’입니다. 다물은 옛 땅을 되찾는것을 뜻하는 ‘다시 무르다, 되물리다’입니다. 즉 고구려는 고조선의 땅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서쪽을 공략했습니다.
모본왕때 고구려가 후한을 공격한 지역은 북경을 포함한 화북 지역입니다. 그런데 요동태수가 화친을 청했다는 것은 후한이 전쟁에서 지고 항복한 것을 뜻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동태수입니다.
고구려가 후한의 화북 지역을 공격했을때 고구려의 맞상대가 요동태수였다는 것은 그 지역이 요동지역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즉 고대의 요동은 북경 인근 지역이었던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인식하는 요동은 요나라때부터 굳어진 것입니다.
따라서 고구려는 모본왕때 후한의 요동을 공격해서 요서 지역까지 차지했고, 태조왕때 요서에 10개의 성을 쌓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고구려는 요동 지역을 두고 중국과 1진 1퇴를 반복하다가 광개토태왕때 요동을 완전히 장악합니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했을때 수당군이 집결한 지역은 북경 근처의 탁군입니다. 그런데 왜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만약 한국 군대가 북한으로 처들어간다면 어디서 군대가 집결하겠습니까? 당연히 휴전선 근처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겠죠? 하지만 목포나 부산에서 집결해서 북한으로 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 당시 고구려와 수당과의 국경이 북경 근처였기 때문에 수당군이 탁군에서 집결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고대 요동의 위치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역과 달라집니다. 북경 근처에 요동과 요서 지역이 있었던 것입니다.
[삼국사기] [최치원 열전]
[삼국사기] [백제 동성왕 본기] 10년(488)
[자치통감] 영명 6년(488)
[남제서]
[남제서] [백제전]에 의하면 백제 장군들이 북위와 싸워 승리한 후 남제가 광양, 조선, 대방, 광릉, 청하, 성양의 태수직을 백제 장군들에게 제수했다. 물론 실제로는 동성왕이 제수한 후 남제에 통보한 것이다. 광양은 현재의 하북성 융화로서 난하 상류 유역이고, 광릉은 현재의 강소성 양주 지역이며, 청하는 현재 산동성 익도이다. 그리고 하남성에는 아직도 백제라는 지명이 여러 곳에 존재한다.
[남제서] [백제전]
동성왕이 위나라(북위) 군사를 물리치는데 공을 세운 백제 장수들에게 관직을 수여하고 이를 남제에 통보한 국서가 나온다. 그 중 한 구절은 라는 것이다. 면중왕에서 도한왕으로 승진시켰다는 것으로 백제 황제 수하에 서열에 따른 여러 왕이 있었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로 승진시켰다고 [남제서]는 말하고 있다.
[송서] [백제전]
[송서]에는 백제 개로왕 여경이 송나라에 라고 요청했다는 기사가 있다. 그러나 요청했다는 것은 윤색이고, 사실은 통보한 것이다. 흉노는 황제인 대칸이 중앙을 다스리고, 우현왕과 좌현왕이 좌우 강역을 다스렸는데, 대륙과 반도와 해양에 걸친 대제국 백제도 넓은 강역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서 백제 임금 아래 우현왕과 좌현왕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사실은 중국에도 알려져 있어서 [양서] [백제 열전]에 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또한 [구당서] [백제전]에는 라고 해서 백제왕이 거주하는 왕성이 둘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동왕성은 한반도, 서왕성은 대륙에 있었을 것이다. 백제는 요서와 일본은 물론 각지에 담로(후국)를 갖고 있던 황제국이었다.
[통전] [백제전]
요서군과 진평군이 오늘날의 유성, 북평(북경) 사이라고 위치까지 표시해 놓음
[양서] [백제전]
여기에서 백제가 도읍을 대륙에서 반도로 옮긴 것인지는 연구가 필요해 보임
[북사] [백제전]에는 라고 되어있고, [주서] [백제전]에는 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반도 백제 본국이 중국의 왼쪽에 있을 수 없으므로 중국 내부에 백제의 영토가 있었다는 증거이다.
[수서]에는 라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백제가 동아시아 국제 해상 교역의 중심으로 성장한 것이 분명하다. 또한 중국 북부 요서 지방과 남부 광서성 장족 자치구에는 라는 지명과 한반도 관련 유물들이 존재한다.
베트남 인접 지역 광서성 장족 자치주 옹영현에는 이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그리고 전라도에서만 보이는 맷돌, 외다리 방아, 서낭당 등이 있다. 안에는 가 있다. 라는 지명은 과거 군사적 목적의 성이 있었다는 증거이며 이곳에 백제성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광서성 장족 자치주 남령으로부터 3시간이나 걸리는 산촌에는 라는 지명이 아직도 사용된다. 그런데 그 곳 주민들은 를 가 아니라 로 발음한다. 즉 백제는 고조선의 영토를 되찾기 위해 중국 대륙의 북부 요서부터 동부와 남부 광서성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에서 담로국을 설치한 것이다. 고구려에는 다물(담울=담으로 친 울타리, 즉 고구려 성을 뜻함) 정신이 있었다면 백제에는 담로가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리나라 소개를 항상 식민시대부터 시작 하는지 모르겠어요 현대의 한류나 경제발전은 천오백년이 넘는 시대의 문화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는데 말이죠 그 소개가 없으면 그냥 못살던 민족으로 각인될텐데..
Kpop, kdrama, kmovie 등의 한류열풍, 일본
의 무역보복에 대한 대처능력, 코로나에 대한 대처능력, G8 국가로의 진입 가능성까지 타진되고 있는 일련의 상황에 대해 어리둥절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와 우리 겨레가 갑자기 뛰어난 나라와 겨레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우리의 모습이 이제야 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고조선의 모습이고 고구려의 기질입니다
세계 4대 문명이라고 불리는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더스, 황하 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내몽골 쪽에서 발견 되었는데 그 문명이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아시아 문명의 근원이 중국의 황하 문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보다 약 3천년이나 앞선 문명이 있었고 그 문명이 중국에 전해져서 황하 문명이 탄생했던 것입니다 그 문명을 홍산 문화 또는 요하 문명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하 문명이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과 같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신석기 시대의 빛살무늬 토기, 청동기 시대의 비파형 동검, 고인돌 처럼 돌로 만든 무덤 등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문명인데 요하 문명에서도 이러한 유물과 유적들이 발견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우리의 조상들은 아시아 문명의 근원을 일구었고 고조선과 고구려는 아시아의 종주국이자 세계 최강국으로서의 위상을 가졌던 것입니다. (홍익인간의 뜻도 우리가 문명을 주변 민족들에게 전해줘서 세상을 널리 이롭게 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중국의 수나라가 그렇게도 고구려를 멸망시키려 했으나 살수대첩에 의해 무참하게 실패했는데도 불구하고 당 태종 이세민이 내부의 반대를 무릅쓰면서까지 고구려 원정을 단행했던 이유는 우리 겨레를 꺾지 않으면 아시아의 진정한 패자가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겨레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매우 뛰어났기 때문에 중국의 입장에서는 이 상태를 방치했다가는 중화패권주의를 이룰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당나라도 전쟁에서 패하여 우리 겨레에게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고 우리 겨레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가지고 아시아의 패자로 군림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고구려와 대진국(발해)의 멸망으로 인해 그 위상을 잃어갔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중국에 대한 사대, 일제시대에는 식민사관에 의해 우리의 원래 모습을 잊고 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해방 후에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결과 식민사관에 의한 왜곡된 역사를 배워왔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의 모습을 망각한채 살아왔던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 DNA가 다시 우리의 몸속에서 꿈틀대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 우리의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갈 시간이라고 일깨우고 있습니다 고조선의 모습, 고구려 기질을 발휘할 때라고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으로 중화사대사관과 일제식민사관에 의해 왜곡된 우리 역사를 바로 잡아서 우리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현재 일어나는 상황에 대한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며 미래를 제대로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