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일전에.. 아주 잠깐 신앙생활.. 을 하던 중에 그런 글.. 을 봤습니다 ㅡ 아사셀 숫염소 관련한 글인데. 그렇게 음란한 '아사셀 숫염소'.. 를 모든 이스라엘의 죄.. 를 인수하여 광야에 보내.. '무인지경' 에서 떠돌다 굶어 죽게? 만들었는데 그건...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셧듯, 세상 말미에는 그 예수님께서 대속하셧던 모든 죄를 '악마' 로 표상되어지는 단 한 사람.. 에게 떠넘겨? 하는 걸 의미한다.. 라는 식으로요.. 하여 오늘 문득 그게 생각나 검색하던 중 듣게 됐고.. 여튼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보니 두 마리 명칭이 다 아사셀.. 은 아녔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한 마리는 야훼를 위하여 또 한 마리는 아사셀.. 을 위하여.. 하는 걸로 봐서도 그때 내가 들엇엇던 그 이론..? ㅡ 세상 모든 죄를 예수님 한 분께서 대속하셧듯, 세상 말미에 마귀.. 로 표상되는 어느 한 사람.. 에게 세상 모든 죄를 다 인수하여.. 하는 의미, 상징이다.. 라고 하던 ㅡ 도 어느 정도는 납득.. 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만..
더구나 실.. 에덴.. 에사 아담과 화와.. 를 유혹했던 뱀, 마귀.. 사탄도.. 하나, 한 마리.. 였엇을 것이다.. 라는 걸 생각자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하는 것도 성부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와 마찬가지로 어느 '하나' 인 건 아닌지?? ㅡ 무튼 생각하고 파고들수록이 어렵군요~~~
광야가 상징하는 바는, 선(사랑)의 결핍에 따른 진리(믿음)의 혼돈 상태, 그러기에 부분적인 지옥, 유혹과 시험의 상태를 뜻합니다. 출애굽한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었듯이,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역시 광야를 통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광야.. 는 모세 선지자도, 예수님도.. (그 분들이야 이미 하나님.. 을 알고? 계신 분들이엇겠지만..) 그냥.. 악마가 있는 곳? 일런가도 모르겠지만.. 경에 이른 바와 같이 그 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ㅡ 예. 그곳,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어주심.. 을 받(게 되)는 것(곳)입니다.
희생제(동물 제사)에 사용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3동물은, 소-염소-양입니다. 이 세 동물이 주축이 된 이유는 천국이 3층의 구조로 되어있고, 사람 역시 작은 천국이기게 3층의 구조로 되어 있고,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성막이었으며, 그러기에 성막도 3층의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가장 외적인 부분은 소, 그 안쪽이 염소, 가장 내적인 부분이 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위기16:7-10에 염소가 사용된 것은 바로 2nd 층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혼육이 구조로 설명하자면, 1st 층은 육적 도덕 수준이라면, 2nd 층은 혼적 믿음 수준, 3nd 영적 사랑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야는 “무질서와 혼돈”을 의미한다는 것은 해석사 속에 추가된 의미이지 레위기 16장이나 관련된 그 어느 본문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본문 안에 있지도 않은 사항으로 해석을 하려고 하고 추론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여호와를 위하여”와 평행구 속에서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자꾸 해석을 하려 들지만 평행구로 봐야만 하는 게 유일한 가능성이 아니고, 또 전치사 레는 “...로(서)"(영어의 as)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레아자젤은 ”아자젤로서“라고 해석될 수 있고, 이 경우 이 해석은 아자젤을 에즈+아잘의 합성어로 봐서 ”떠나가는 염소“로 보는 전통적 해석과도 잘 맞습니다. 또 이렇게 볼 경우 본문 내의 모든 내용과 잘 상응합니다. 물론 학자들의 입장이라는 게 관성이 있어서 이런 해석에 동조하지 않으려는 학자들도 많겠지만 이 해석이 본문의 내용 및 구약의 이방신들이나 악령의 존재에 대한 시각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사셀을 ‘떠나가는 염소’라고 본다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동어반복이 아닌가요? 또한 아사셀을 이방신이나 악한 존재로 본다는 것도 처음에 지적하신 ‘해석사 속에서 추가된 이미지’입니다. 저는 레위기라는 제의 문서를 작성한 제사장 집단들이 대속죄일이란 큰 명절에 ‘악한 존재를 위한 제사 과정’을 넣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전 목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아사셀을 위한 제물은 고대근동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의미가 아닌 그 형태가 대속죄일 제사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미가 아닌 제사 형태가 고대 근동에서 전승되어온 것의 증거는 레위기 본문에 아사셀이란 이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함)과 레위기 전반에 대속죄일 제사뿐 아니라 다른 본문에서도 고대근동의 전승, 전통과 연관된 본문이 많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 목사님은 개인적인 심증과 추측이 아니라 최대한 합리적이고 신앙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에 본 비판은 조금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 있다고 봅니다.
아사셀 곧 사람의 타고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죽어지지 않습니다. 곧 지옥의 쓴맛을 눈물 흘리며 경험하고, 유혹을 받고 고생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이것은 반복되면서... 충분히 아사셀이 죽을 때, 그 때가 이르면 요단강을 건너 비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상징적으로 40일간 광야의 시험을 거치셨고, 온 일생에 걸쳐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시고자 아사셀의 삶을 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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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저헌테는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라는 의견이 설득력 있네요. 모세를 죽이려던 하나님과도 관련 있지 않을까 싶네요. 아사셀 염소, 궁금했는데 좋은 의견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단어군요
그런데.. 두 개 중에 하나는 야훼를 위하여 또 하나는 아사셀을 위하여.. 라고 했는데..
아사셀을 위한 건 광야고 보냈다고 치고.. 야훼를 위한 건 어떻게 한 건가요?
두 마리 다 광야로 보낸 건지? 아님.. 야훼를 위한 건 혹.. 피.. 를 흘리게 했는지??
제가 일전에.. 아주 잠깐 신앙생활.. 을 하던 중에 그런 글.. 을 봤습니다 ㅡ 아사셀 숫염소 관련한 글인데.
그렇게 음란한 '아사셀 숫염소'.. 를 모든 이스라엘의 죄.. 를 인수하여 광야에 보내.. '무인지경' 에서 떠돌다 굶어 죽게? 만들었는데 그건... 예수님께서 세상 모든 죄를 대속하여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셧듯, 세상 말미에는 그 예수님께서 대속하셧던 모든 죄를 '악마' 로 표상되어지는 단 한 사람.. 에게 떠넘겨? 하는 걸 의미한다.. 라는 식으로요..
하여 오늘 문득 그게 생각나 검색하던 중 듣게 됐고.. 여튼 좋은 말씀 잘 듣고 갑니다.
보니 두 마리 명칭이 다 아사셀.. 은 아녔던 거 같은데 그렇게 한 마리는 야훼를 위하여 또 한 마리는 아사셀.. 을 위하여.. 하는 걸로 봐서도 그때 내가 들엇엇던 그 이론..? ㅡ 세상 모든 죄를 예수님 한 분께서 대속하셧듯, 세상 말미에 마귀.. 로 표상되는 어느 한 사람.. 에게 세상 모든 죄를 다 인수하여.. 하는 의미, 상징이다.. 라고 하던 ㅡ 도 어느 정도는 납득.. 이 되는 것도 같습니다만..
더구나 실.. 에덴.. 에사 아담과 화와.. 를 유혹했던 뱀, 마귀.. 사탄도.. 하나, 한 마리.. 였엇을 것이다.. 라는 걸 생각자면... 용과 짐승과 거짓 선지자.. 하는 것도 성부와 성자, 성령.. 성삼위일체.. 와 마찬가지로 어느 '하나' 인 건 아닌지?? ㅡ 무튼 생각하고 파고들수록이 어렵군요~~~
속죄제로 드린 염소와 안수하고 아사셀로 광야에 보낸 염소는 둘로 설명하고 있으나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바쳐짐으로 참된 진리의 자유를 줌을 말씀하고 있지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레위기 16장 본문에 두 염소를 지칭할 때 사용하는 ‘속죄제물’이란 단어는 복수가 아닌 단수이기 때문에 염소에 대함 처리과정만 다를뿐 둘 다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봅니다.
두 마리가 상징하는 바는, 사람이 거듭나는 과정(육적인 사람이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에는 두 성향 곧 영적인 추구하는 것과 육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이 삶속에 혼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상징하는 바는, 선(사랑)의 결핍에 따른 진리(믿음)의 혼돈 상태, 그러기에 부분적인 지옥, 유혹과 시험의 상태를 뜻합니다. 출애굽한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를 거치지 않고서는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없었듯이,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역시 광야를 통과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광야.. 는 모세 선지자도, 예수님도.. (그 분들이야 이미 하나님.. 을 알고? 계신 분들이엇겠지만..)
그냥.. 악마가 있는 곳? 일런가도 모르겠지만.. 경에 이른 바와 같이
그 분들이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게 되는 그런 곳입니다.
ㅡ 예. 그곳, 광야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시며, 하나님께로부터 기름부어주심.. 을 받(게 되)는 것(곳)입니다.
아사셀 염소는 당연히 사단을 상징하지요.
@@gyusikkim7553 야야
@@gyusikkim7553 야 븅시나 니채널에 글남겼으니까 걸로와^^
희생제(동물 제사)에 사용되었던 가장 대표적인 3동물은, 소-염소-양입니다. 이 세 동물이 주축이 된 이유는 천국이 3층의 구조로 되어있고, 사람 역시 작은 천국이기게 3층의 구조로 되어 있고,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이 성막이었으며, 그러기에 성막도 3층의 구조로 되어있었습니다. 가장 외적인 부분은 소, 그 안쪽이 염소, 가장 내적인 부분이 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레위기16:7-10에 염소가 사용된 것은 바로 2nd 층에서의 일을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영혼육이 구조로 설명하자면, 1st 층은 육적 도덕 수준이라면, 2nd 층은 혼적 믿음 수준, 3nd 영적 사랑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야는 “무질서와 혼돈”을 의미한다는 것은
해석사 속에 추가된 의미이지
레위기 16장이나 관련된 그 어느 본문에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본문 안에 있지도 않은 사항으로
해석을 하려고 하고 추론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그리고 “여호와를 위하여”와 평행구 속에서 “아사셀을 위하여”라고 번역해야 한다는
전제 속에서 자꾸 해석을 하려 들지만
평행구로 봐야만 하는 게 유일한 가능성이 아니고,
또 전치사 레는 “...로(서)"(영어의 as)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레아자젤은 ”아자젤로서“라고 해석될 수 있고,
이 경우 이 해석은 아자젤을 에즈+아잘의 합성어로 봐서 ”떠나가는 염소“로 보는 전통적 해석과도 잘 맞습니다.
또 이렇게 볼 경우 본문 내의 모든 내용과 잘 상응합니다.
물론 학자들의 입장이라는 게 관성이 있어서
이런 해석에 동조하지 않으려는 학자들도 많겠지만
이 해석이 본문의 내용 및 구약의 이방신들이나 악령의 존재에 대한 시각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아사셀을 ‘떠나가는 염소’라고 본다면 ‘아사셀을 위한 염소’는 동어반복이 아닌가요?
또한 아사셀을 이방신이나 악한 존재로 본다는 것도 처음에 지적하신 ‘해석사 속에서 추가된 이미지’입니다.
저는 레위기라는 제의 문서를 작성한 제사장 집단들이 대속죄일이란 큰 명절에 ‘악한 존재를 위한 제사 과정’을 넣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 전 목사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아사셀을 위한 제물은 고대근동에서 넘어온 것이라고 봅니다. 그렇기에 의미가 아닌 그 형태가 대속죄일 제사에 포함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의미가 아닌 제사 형태가 고대 근동에서 전승되어온 것의 증거는 레위기 본문에 아사셀이란 이름에 대한 설명이 없다는 것(의미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함)과 레위기 전반에 대속죄일 제사뿐 아니라 다른 본문에서도 고대근동의 전승, 전통과 연관된 본문이 많다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제가 보기엔 전 목사님은 개인적인 심증과 추측이 아니라 최대한 합리적이고 신앙적인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였기 때문에 본 비판은 조금 개인적인 감정이 드러나 있다고 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의미는? 세상임금이 쫒겨나는거고~ 껍질이 벗겨지는거고~ 저주가 물러나는거고~ 예수가 쫒겨나야 알맹이 진리의 그리스도로 부활 거듭남이 되는거다. 예수를 찌른 자만이 진리를 얻는거다.
아사셀 곧 사람의 타고난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주의는 광야를 통과하지 않으면 죽어지지 않습니다. 곧 지옥의 쓴맛을 눈물 흘리며 경험하고, 유혹을 받고 고생하고, 시험을 통과하고,.... 이것은 반복되면서... 충분히 아사셀이 죽을 때, 그 때가 이르면 요단강을 건너 비로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주님께서도 상징적으로 40일간 광야의 시험을 거치셨고, 온 일생에 걸쳐 인류의 죄악을 담당하시고자 아사셀의 삶을 사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사셀이 상징하는 바는, 여호와 하나님이 선하심과 진실하심에 반대되는 사람 고유의 악과 거짓 곧 태어날 때 부터 지니고 있는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성향과 기질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