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틱함대가 병원선에 불을 킨게 진짜 골때리는 이유인데 영상에선 지쳐서 켰다고 되어있지만, 사실 당시 국제법으로 병원선은 언제나 등화를 밝혀서 공격을 받지 않게 해야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런 시간에서야 등이 고장났다는 식으로 끄고 등화관제를 해야되는게 맞는데, 러시아가 우직한건지 멍청한건지 FM대로 불을 켜버린거죠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5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신석기시대에 시베리아에서 토기문화를 지니고 이동해온 고아시아·퉁구스 계통의 종족으로 언어학적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일본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야마토 민족) 외에 일본 열도 선주민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족이 있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 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 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도거 뱅크 사건 이라고 발틱함대 출항한지 얼마안되서 러시아 해군이 영국 어선보고 일본배로 오인해서 처쏘다가 혼선까지 겹처서 아군끼리 쏘다가 팀킬한 레전드 사건도 있음 더군다나 러시아 해군의 낮은 숙련도와 포술 덕분에 일례로 전함 오룔(Орёл)은 500발의 포탄을 쏴제꼈음에도 아무것도 못 맞춤 이 사건으로 발틱 함대는 필요한 무연탄 보급을 받지 못하고 피폐하게 쓰시마 해전에 돌입하였고, 이는 러시아 함대의 패전 이후 제대로 도망친 함선이 없고 싸그리 다 노획 당했던 요인이 됨 그냥 자칭 최강함대 호소국 러시아 해군 수준으로는 일본해군이랑 싸워도 뻔하게 털림
오늘 영상은 평범한데~~ 하며 보다, 역시나 후반부 시네모리님의 나레이션으로~~ 감독의 제작의도를 듣게되니,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80년대까지는 2차대전 전쟁세대들이 많이 살아계셔서, 전쟁의 참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보니, 말씀처럼 극우의 공격을 받았지만,일본전체적으로는 많은 공감을 얻었을거 같습니다. 요즘 이런 시각으로 영화제작해서 개봉한다면 ...또 다른 반응이겠지요
음악이좋아 해군 군악대 들어가는 말 들어보면 화씨9.11에서도 해병대 모병관이 흑인한명 잡고 음악할려고 라고 듣고 쉐기독(자메이카 출신 가수/해병대(걸프전 참전)얘기를 꺼냄 해병대 들어와도 음악할수 있다고 꼬시던데 음악좋아하면 군대서도 할수있다고 꼬시는 경우도 있나봅니다.
실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와 일본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다음 러시아가 패배한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은 국가 재정 및 국력이 심각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배상을 요구 했고 러시아가 배상한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와 요동반도 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국력을 회복하기에는 택도 없었습니다
일본이 러시아 본토까지 못건들여서 러시아에서는 자기들이 패전하지 않고 철수했다 생각해서 전쟁 배상금 주지 않음. 일본군이 러시아 땅 밟은 적이 나중에 있었는데 러시아 내전 때 적색군들이랑 싸울 때 밟았죠. 그때 일본군들이 바이칼 호수 점령했는데 거기에 일본군들이 묻혀있다는 얘기를 들은거 같네요
저때 고종이 굿판만 벌이고 아무것도 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당시 대한제국 정부도 일본의 위협이 커짐을 인식고 착실하게 군사력 강화를 준비했습니다. 필요하면 준비된 병력으로 일본과 싸울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익문사와 경의원 등 여러 정보기관들이 일본군, 특히 요코하마에 주둔한 12시단의 동태를 예의주시했고, 일본 공사관이 병력을 동원해 위협하는 등 위기가 커지자, 사실상 준군사조직인 보부상을 모집해 병사를 충원하고 최종적으로 40개 대대 6만 명을으로 늘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소총 7만 정과 탄약 500만 발, 야포 등을 구입해서 무장시킬 예정이었고요. 아쉽게도 러일전쟁이 너무 일찍 터지면서 무기와 장비들을 압류당해 군사력 증강 계획이 실패합니다. 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645110388&referrerCode=0&searchKeyword=%EB%9F%AC%EC%9D%BC%EC%A0%84%EC%9F%81
일본 입장에서는 대륙으로 가기 위한 발판 하나가 마련되었고 러일전쟁을 통해 경제난을 한 차례 이겨내면서 기사회생 했으니 의미가 없다고 보긴 힘들다 생각합니다. 또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동부에 위협이 새로 생겼으니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 힘들고요. 무엇보다 크림전쟁으로 알래스카를 잃은데 이어 사할린을 뺏기면서 미대륙과 완전히 분리되었고 2차대전 독소전쟁 초기에도 동부에 병력이 묶여있어 악전고투 했으니까요. 일본이 침략하지 않는다는게 사실화되면서 시작된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 전투도 결국 동부의 병력이 철도를 탄 후 배로 환승하는 도시라 생긴 전투인데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없다기엔 양 측 모두에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일본이 싫은건 이해합니다만 역사적 사실까지 가리려고 하는건 좋지 않다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독이에요.
그리고 제가 러시아에 14년도에 살 때 느낀점인데 러시아에도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성당 지하무덤도 하나 봤는데 일본군들이 점령하자 그 당시 그 성당 신부님이 군인들의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성당 지하에 숨기면서 생긴곳 이었어요. 그리고 쁘리모스크라이 성당 앞에도 러일전쟁 벽화(한 300미터쯤 됨)가 있고요.
첨언하자면 태평양전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평양전쟁의 미-일 전쟁방향을 크게 보면 중일전쟁과 연관성이 높은 동남아를 제외하면 크게 북태평양전구와 남태평양전구입니다. 미국도 진주만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에 그것만으로 위협을 느꼈다고 보기에 힘들고 2010년도 이후 남중국해 문제가 커지면서 태평양전쟁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진행되며 나온 최신동향을 읽어봐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북태평양에 일부섬을 사할린을 거점으로 공격하면서 일본의 미서부 압박이 커지면서 미국인들이 실생활에서 전쟁을 체감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LA와 인근도시에서는 등화관제가 시행되었고요. 사할린 점령은 러시아로서는 미대륙을 상실하게 만든 계기지만 일본에게는 새로운 주도권을 얻게된 기회입니다.
난 일본이 러일 전쟁에 승리한 것 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 전쟁, 진주만 기습 대략 5년전 부터 스파이를 보내 모든걸 다 치밀하고 상세하게 파악 하였다는 점 임. 일본의 독도 공정 역시 그러한 점이 잘 보이는데, 이는 한국이 철저히 배워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함. 물론 음지에서 활약중인 한국의 수많은 정보원들이 그간 많은 일들을 해내 왔지만..
해군 군악대만 옷이 달랐던 이유는, 1870년에 창설했다 해체해 버린 일본 해병대의 영향 탓이죠. 당시 해병대는 해군의 보병, 포병, 군악, 의장대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6년만에 해병대를 해체하고 전원 해군으로 통폐합했습니다만, 특이하게 군악대만 해병대 시절 복제를 그대로 남겼지요. 러일전쟁 끝난 뒤에는 군악대도 해군 복제를 착용하게 통합됩니다.
이때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인데 영화에서 조선으로 표기된 게 좀 배가 아프다. 이 당시 대한제국은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거의 소수의 수병과 간부로 구성된 채 함선은 사기당해서 바가지수준으로 구매한 고물 함선 한척만 있는 수준이었다. 대한제국 해군은 충무공의 수군 직통계승군였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초라하여 충무공 시절의 신화를 재현하기엔 불가능한 상태였다.
@@아미3-p8n 그래도 중국은 일본보다 먼저 근대식 군함을 운용했고 철도도 있었고 근대식 무기공장도 있었음.. 한반도가 중국대륙보다 1인당소득이 역전하기 시작한건 일제강점기부터였음. 1930년대 자료보면 우리가 3배 정도 더 잘살아서 중국인 쿨리들이 돈벌려고 우리나라에 많이 왔었지. 그때 왕서방 후손들이 오늘날 화교들이고
쓰시마 해전에선 러시아가 개처발렸지만... 의외로 러일전쟁 다 합쳐보면 4:6 정도로 일본이 압승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협상에서도 생각보다 이득이 적었는데, 일본에선 압승이라고 선전해놔서 국민들 사이에선 '군인이 피 흘려가며 이겼는데 외교에서 망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대규모 폭력시위가 무력진압 되면서 또 여럿 죽어나가고;;; 군국주의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합니다.
역시 씨네모리는 일본 영상이 젤 재미 있는 듯! 나래이션도 더 찰 지고 뼈를 때리는 거 같은 사심 아닌 사심 같은 느낌ㅋ 일요일 아침 마다 재밌게 잘 보고 있습니다~~~~😅😅😅😅😅
발틱함대가 병원선에 불을 킨게 진짜 골때리는 이유인데 영상에선 지쳐서 켰다고 되어있지만,
사실 당시 국제법으로 병원선은 언제나 등화를 밝혀서 공격을 받지 않게 해야된다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물론 저런 시간에서야 등이 고장났다는 식으로 끄고 등화관제를 해야되는게 맞는데, 러시아가 우직한건지 멍청한건지 FM대로 불을 켜버린거죠
그렇다면 조선에서 노비는 전체 인구 중 어느 정도나 차지했을까요. "학계에선 조선 인구를 1000만명 정도라고 봤을 때,
대략 40%에 해당하는 400만명 정도가 노비였을 것으로 추산합니다.
조선 전기 유명한 재상이던 한명회는 “공사 노비 중 도망 중인 자가 100만명”이라고 말한 것이 『조선왕조실록』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노비를 잡아들이거나 노비 소송을 전담하는 장예원(掌隸院)이라는 국가기관을 따로 둘 정도였습니다.
성종 때 만들어진 『경국대전(經國大典)』에서는 ‘일천즉천( 一賤則賤 )이 확정됩니다.
즉, 부모 중 한쪽이 노비이면 자녀도 노비가 된다는 것을 법으로 명문화한 것이죠"
서구 연구자들이 조선시대 노비를 노예로 취급하는 근거는 ?
"가장 중요한 근거는 조선시대 노비가 매매, 증여, 상속 됐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이다."
조선왕조는 동족을 노예로 부린 유례를 찾기힘든 국가였다. 선조실록에 보면 임진왜란때 왜군의 반이 조선백성이다라는 기록과
쇄미록에는 백성들이 오히려 왜군을 환영하니 근심이다라는 기록이있다.
이순신 덕분에 조선백성이 400년을 더 노예로 고통받았다.
조선은 19세기 즉 건국후 500년이 지나서야 겨우 13세기 고려의 경제력 및 생산량을 따라잡게 될정도로 노예착취와 사대주의로 연명하던 극빈국이었다.
"천하에 어찌 이처럼 가난한 나라[조선]가 있겠는가. 흡사 여염의 궁핍한 집과 같아 하나의 진보(鎭堡)를 경영하기도 이처럼 쉽지 않다.
내가 보건대 전조[고려]에는 매우 부유하였는데 우리 나라는 어째서 이처럼 가난한 지 알 수가 없다."
『선조실록 38년 9월 28일 기해 』
『한국에서 들어온 일본의 청동기』를 발표한 「스기하라」교수는
" 한국 청동기 사회의 말기에 해당하는 BC 1백년∼AD50년께에 일본에 청동기가 들어왔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야요이 시대에 철기와 청동기가 동시에 전해졌으며, 청동기는 제사용으로만 이용되었으므로 청동기 시대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철기 시대로 직행한 것으로 보인다."
BC100년경 ~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살던 일본에 한국인들이 철기 무기를 들고 상륙하면서 일본에 고대문명이 시작됐다. 일본역사는 한민족의 역사이다
"그동안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 역사적 진실을 첨단 과학이 증명한 셈이다.
즉 한국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고대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일본의 원시시대를 마감하고 고대사회를 여는 야요이 문명의 흔적은 일본 본토 전역에서 나타나지만,
도래인에 의해 규슈 북부지방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연구로 야요이인은 한반도 남부에서 온 사람들의 후손이라는 점이 분명해진 것이다."
"중국 한족은 베트남과 함께 다른 계통에 묶여 한국인과는 유전적으로 차이를 보였다.
O2b : 이 유형은 가히 한국인의 고유 Y염색체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한국인의 37.3%를 점유하고 있으나 중국지역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한반도 이외에 O2b는 주로 일본(31.9%), 만주족(3.8%)등에 분포하므로, O2b는 가히 한국인과 일본인만의 특징적인 유전자라 할만하다."
"우리의 직접적인 조상은 신석기시대에 시베리아에서 토기문화를 지니고 이동해온 고아시아·퉁구스 계통의 종족으로 언어학적으로는 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일본에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 계통의 야요이인(야마토 민족) 외에 일본 열도 선주민 조몬인의 직계 후손인 아이누족이 있다"
한일합방 당시 일본 지배층은 통일했다고 생각했으며 내선일체 정책으로 조선인에게 동등한 권리를 부여했다.
또한 조선근대화를 위해 일본 전체 예산의 30프로나 되는 막대한 금액을 매년 쏟아부었다.
조선600년간 인구증가없이 천만명 수준을 유지하던 인구가 일제시대때 2배로 증가할정도로 조선인들의 삶은 풍족해졌다.
"식민지 기간 동안 조선의 인구는 1,260만 여명이 증가하였는데 그 중 약 69%인 870 만여 명이 한반도 안에 있고 31%가 만주와 일본으로 유출되었다"
위안부는 신문에 위안부 모집광고가 실릴정도로 합법적인 직업이었다. 페이도 일본인 조선인은 동등하게 중국인보다는 많이 지급됐다.
강제징용도 일본인이 훨씬 많았으며 의사보다 페이가 높은 고임금 직업이었다.
“조선인 탄광 노동자 임금은 일본 순사보다 3.7배 많았다”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만주지역에 살던 조선인들은 이들을 마적단이라고 부름)은 중국공산당 산하의 빨치산 세력인 동북항일연군이었다.
한국 독립군과 중국 호로군의 연합체로서 이들중 상당수 한국인은 중국 국적을 취득한 공산주의자들이었으며 이들 중국공산당과 연합한 광복군은 339명 이었다.
반면에 2차대전 말기 조선인 일본군 지원자는 80만 명이 넘었고, 입대 경쟁률이 62:1을 넘었다.당시 조선인들의 일본에대한 인식이 어떠했는지 알수있다
만약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졌으면 고려인들의 강제이주처럼 한국인들은 전부 시베리아로 강제이주되서 지금 벌목하고있을거다.
대만과 동남아국가들은 모두 일본에 감사하고있다.말레이시아 총리는 일본군에게 쫓겨달아나는 영국군을 보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했고
인도네시아는 지금도 매년 일본군전사자들을 추모하고있다.
만리장성 북쪽은 중국땅이 아니다.몽골족 만주족 한국인들이 지배하던 곳이다.진시황이 소위 북방오랑캐를 막겠다고 만리장성을 만든것이다.
이후 중국은 신라인 김함보 후예가 세운 금(金)나라와 몽골에 정복당했고 청나라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300년간 통치한것이다.
청나라 건륭제 때 편찬된 ‘만주원류고’(滿洲源流考) 역시 금나라 시조의 출원지를 신라로 밝히고,
금나라라는 국호도 그의 시조 성씨가 신라 왕의 성 김씨에서 유래함을 밝히고 있다.
"5000년 전에 나타난 고조선문명은 메소포타미아문명(5500년 전)과 이집트문명(5100년 전)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형성된 고대 문명이었다.
그동안 역사에 묻혀 잃어버렸던 고조선문명의 기원과 탄생, 사회경제적 토대와 문화적 특성, 고대국가 건국과 발전·해체를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빙하기가 끝난 약 1만2000년 전 북위 40도선 이하의 고(古)한반도에서 농경을 시작한 사람들은 세계 최초로 단립벼 쌀과 콩의 재배에 성공했다.
신석기시대 농업혁명의 결과로 남한강·금강 유역에 살던 무리의 수가 크게 늘어났고 그들 가운데 일부가 점차 농경이 가능해진 북방으로 이주했다.
요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람들은 호랑이가 토템인 예족(濊族)이 됐고, 요하 서쪽으로 건너간 사람들은 곰이 토템인 맥족(族)이 됐다.
고조선은 1000년 뒤 요동으로 수도를 옮겨 예족을 흡수했고, 동서쪽으로 영토를 확장하여 한반도·만주·연해주에 걸치는 고대연방국가를 건설했다는 것이 신 교수의 주장이다.
그는 "한민족으로 이어지는 한·예·맥족이 고조선의 중심을 이루고, 읍루·흉노·돌궐·몽골 등 정복·병합된 유목민족이 주변에 포진했다"
저상황에서 적국영해를 지나가는데 병원선에 불을 킨거면 진짜 멍청한게 맞는듯... 국제법이라는게 통용되는건 중립국 영해나 영토를 통과할때만 적용되는거지 적국을 상대로 ㅋㅋㅋ;;;
도거 뱅크 사건 이라고 발틱함대 출항한지 얼마안되서 러시아 해군이 영국 어선보고 일본배로 오인해서 처쏘다가 혼선까지 겹처서 아군끼리 쏘다가 팀킬한 레전드 사건도 있음
더군다나 러시아 해군의 낮은 숙련도와 포술 덕분에 일례로 전함 오룔(Орёл)은 500발의 포탄을 쏴제꼈음에도 아무것도 못 맞춤
이 사건으로 발틱 함대는 필요한 무연탄 보급을 받지 못하고 피폐하게 쓰시마 해전에 돌입하였고, 이는 러시아 함대의 패전 이후 제대로 도망친 함선이 없고 싸그리 다 노획 당했던 요인이 됨
그냥 자칭 최강함대 호소국 러시아 해군 수준으로는 일본해군이랑 싸워도 뻔하게 털림
지금 석렬이도 하고있음 대형관을 다섯개 한남동 관사 묻었음
안믿어 손에 바닥에 왕짜 쓰고 나와서 TV토론에 나왔지
우직한게 아니라 법상으로는 공격하지 않는게 맞는데 공격한거죠
뭣 이쁜 언니들을 영상 후반에야 잔뜩 보여주다니😢
일본 수병을 애국심 넘치는 모습보다 현실적으로 재현한 것이 인상적이네요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면 다들 무서워하고 하겠지요 또는 정신없이 분주하면서요
오늘 영상은 평범한데~~ 하며 보다, 역시나 후반부 시네모리님의 나레이션으로~~ 감독의 제작의도를 듣게되니, 고개가 끄덕여지네요... 80년대까지는 2차대전 전쟁세대들이 많이 살아계셔서, 전쟁의 참상을 너무 잘 알고 있다보니, 말씀처럼 극우의 공격을 받았지만,일본전체적으로는 많은 공감을 얻었을거 같습니다. 요즘 이런 시각으로 영화제작해서 개봉한다면 ...또 다른 반응이겠지요
그래서 영화 서울의 봄이 대히트를 칠때 한 일본 네티즌이 "한국에서는 '서울의 봄' 같은 작품이 대박을 내며 상영 중인데, 우리나라는 타임슬립한 여고생이 카미카제 특공대원이랑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라니 차이가 너무 커서 괴롭다"라고 댓글을 달았죠
@@kimhunv카미카제대원이랑 여고생 러브스토리는 좀 재밌겠는데
항상 고맙습니다 ❤️ 😊
일요일 아침은~ 모다~?
아침이다~ 새벽이 밝았다 밀물의 숨결이다~
비오니깐, 김치전이나~~
짜파게티 요리사~
스파게티 요리사입니다~
눈이 네리는 일욜 아침
14:20~15:36 쓰시마 해전이 어떤 영화인지 설명해주시는 이 부분이 너무 좋습니다. 씨네모리님의 설명을 듣고 바로 이해했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금일(今日) 영상도 흥미롭게 시청하고 갑니다.
일본 도쿄 옆 요코스카에 갔을때 미카사 함을 봤었죠... 지금은 아예 콘크리트 때려박아 지상 박물관이 되었는데... 관리를 나름 잘하더군요... 우리도 배워야 될것은 배워야된다고 생각합니다. 잘보고갑니다! ㅎㅎ
반대로 한국은 고조선 유적지에 레고랜드나 지었죠. 다시 한번 중국이나 일본이랑 싸운다면 질겁니다.
@@kimhunv레고의민족
그런데 미카사 함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이
체스터 니미츠 원수가 직접 보존에 앞장서서 돈도 모으고 장비도 구해줬다는 것은 진짜......
@@kimhunv 에~ 자세히는 몰라서 그런가 아니면 말을 안하는건가? 빼먹네요? 2018년 당시 도지사가 밀어 붙인거죠 지금 배임 및 여러 사업에서 문제가 있어 수사중에 있으니 언젠가는 결론 나겠죠
원래는 전쟁이 끝나고 미군이 지들 맘대로 나이트클럽으로 개조했었다가 원래상태로 복원했습니다 하지만 원래 쓰던 부품은 찾지를 못해서 ㅜㅜ
영화 되게 잘만들었네. 특수효과도 나쁘지않음. 도고 싱크로율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듯.
음악이좋아 해군 군악대 들어가는 말 들어보면 화씨9.11에서도 해병대 모병관이 흑인한명 잡고 음악할려고 라고 듣고 쉐기독(자메이카 출신 가수/해병대(걸프전 참전)얘기를 꺼냄
해병대 들어와도 음악할수 있다고 꼬시던데 음악좋아하면 군대서도 할수있다고 꼬시는 경우도 있나봅니다.
실제 러일전쟁 당시 러시아와 일본 양측 모두 엄청난 피해를 입었습니다
그 다음 러시아가 패배한 것이 뻔히 보이는 상황에서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은 국가 재정 및 국력이 심각하게 나빠졌기 때문에 절박한 심정으로 배상을 요구 했고 러시아가 배상한 것이 바로 일제강점기와 요동반도 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국력을 회복하기에는 택도 없었습니다
씨네모리님 리뷰는 항상 PTSD와함께합니다😊 진짜 어찌보면 8~90년대 군생활을하셨던 선배님들은 어떻게 버티셨는지 일요일아침 잘보고갑니다 😆👍
편한 곳은 편하고 힘든 곳은 힘들었죠.
85년 벗꽃 흐드러지던 진해항 훈련소 입소군번이다
32개월을 전북함 경북함에서 근무하다 서해출동중 물배타고 전역했다
전투함에서 군생활은 영화에서 보여준 70% 정도 였다
신참시절엔 밤마다 일병이하는 후타실에 집합해서 한따까리 해야만 편히 잘수 있었다
전쟁도 그렇고 다른 무엇도 생각이나 계획은 쉽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그의 곱절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더욱이 목숨까지 걸어야 하는 전쟁을 수행한다는 것이 어떤 스트레스인지 짐작도 안 갑니다.
일본애들 이맘때 전쟁 컨텐츠 많네. 옛날에 돈 많을땐 정말 이것저것 잘 만든 영화도 많고 장르도 다양하게 참 내공이 있었던.
‘언덕 위에 뜬 구름’시절이었쟎아요. 연전 연승하던 리즈시절. 한국도 월남전 케산 전투나 한국전 파로호 전투같은 걸로 영화 만들어서 현대 한국도 용감히 싸워 이기기도 했다는 걸 국민들한테 알려야지 원…
맨날 부칸 중공 눈치보는 비리비리한 꼴만 보이고.
@@jambread848만들면 뭐해 재미가 있어야지...
@@jambread848아무래도 베트남전쟁이 한국전에 비해 한국에서 크게 관심가지는 사람이 없어서...
@@jambread848 누가 눈치를 보나?
수익성이 보여야 만들지
@@jmhan4219맨날 눈치보는것도 맞지
15:01 와 진짜 깜짝 놀랐네
의천도룡기 구숙정 처음 보는 느낌이다
안유진 닮았네용
@@robertsaint6495 잠깐 그렇게 보이기도 하네요.
구숙정 닮았다는게 아니고
소소 첫 등장때 너무 예뻤음
오늘 아침에도 영상 잘 보고 갑니다 ~
일요일 아침~~~역시!
잘보고 갑니다요
씨네모리가 점점 주말의 명화처럼 되고있네요 항상 기다립니다 그리고 실제 촬영을 요코즈카 미카사 공원에 있는 미카사에서 한것이 군데군데 보이네요 잘보았습니다
일본이 러시아 본토까지 못건들여서 러시아에서는 자기들이 패전하지 않고 철수했다 생각해서 전쟁 배상금 주지 않음.
일본군이 러시아 땅 밟은 적이 나중에 있었는데 러시아 내전 때 적색군들이랑 싸울 때 밟았죠. 그때 일본군들이 바이칼 호수 점령했는데 거기에 일본군들이 묻혀있다는 얘기를 들은거 같네요
본토 못 밟은걸로 치면 태평양전쟁 소련 숟가락 얹으려 참전한 만주작전도 그럼 일본 본토도 못 간 소련의 승리는 아니네요
@@ssss-v8h 일본이 미국에 항복한 이후에도 소련은 일본과 전쟁중이어서 훗카이도 섬들 점령하려고 상륙병력 보내서 전투했음
@@ssss-v8h 태평양전쟁 숟가락 얹으려 참전한게 아니라, 미국과 얄타회담에서 독일 항복 3개월후 참전한다고 스탈린이 트루먼과 약속하고 참전한것 . 독일 항복 5월 8일, 만주 공격 8월 9일.
@@ssss-v8h 근데 그땐 조선이 일본 땅이었으니까 엄밀히말하면 점령했지
언제나 놀라운 채널!!!!!!!!!!!!!!!!!!!!!!!!!!!!!!!!!!!!!!!!!!!!!!!!!!!!!!!!!!!
러시아 해군이 패할수 밖에 없는 해전임, 범선으로 지구 반대편에서 온다는게 말이 쉽지 오느라고 전병사가 지칠대로 지쳤을텐데 거기다 기습공격을 당하고서 이길수가 없는 해전이지
거기에 영국이 경로상의 영국입김 닫는 항구에 정박 못하게하고 별의별 딴지 걸면서 운하 통행 허가 안내주고 "어제 발트함대 이 항구 지나갔다더라~"하면서 일본한태 다 알려줌 ㅋㅋㅋ
역사적 대해전의 디테일을 볼 수 있어 좋네요...
군기,정신력,애국심,훈련상태,집중력,사전계획,지휘능력에 우수한 무기까지.
일본군이 왜 강했는지, 전쟁에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보여주었네요.
병원선에 불이 켜진 것은 그때 러시아수병 중 한명에게 맹장염이 발생해 수술하려고 불을 켰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때 고종은 무속인의 말 기둥밑에 솥단지를 묻으면 러시아가 승리한다는말듣고 궁중기둥밑에 솥단지를 묻고있었음
그리고 5년후 나라 상납한 조선 최악 의 왕중 하나가됨.ㅋ
ㅋㅋㅋㅋㅋㅋㅋ 제대로 빠가네 ㅋㅋㅋㅋ
저때 고종이 굿판만 벌이고 아무것도 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던데,
당시 대한제국 정부도 일본의 위협이 커짐을 인식고 착실하게 군사력 강화를 준비했습니다.
필요하면 준비된 병력으로 일본과 싸울 생각도 하고 있었습니다.
익문사와 경의원 등 여러 정보기관들이 일본군, 특히 요코하마에 주둔한 12시단의 동태를 예의주시했고, 일본 공사관이 병력을 동원해 위협하는 등 위기가 커지자,
사실상 준군사조직인 보부상을 모집해 병사를 충원하고 최종적으로 40개 대대 6만 명을으로 늘릴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프랑스에서 소총 7만 정과 탄약 500만 발, 야포 등을 구입해서 무장시킬 예정이었고요.
아쉽게도 러일전쟁이 너무 일찍 터지면서 무기와 장비들을 압류당해 군사력 증강 계획이 실패합니다.
m.blog.naver.com/PostView.naver?blogId=kkumi17cs1013&logNo=221645110388&referrerCode=0&searchKeyword=%EB%9F%AC%EC%9D%BC%EC%A0%84%EC%9F%81
영국에서 전함 한 척 사 오려다가 뽀록이 나기도 했지. ㅎ
그 무속인이 접니다
솥단지가 좀 작아서 실패했습니다😢😢😢😢
그 유명한 정로환(러시아를 정벌한 약)이 러일전쟁에서 나온 약입니다
해전에서는 이겼으나 육지전에서는 반자이꼬라박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결국 전쟁배상금 땡전 한푼도 못받고 끝낸 전쟁(그래도 자존심은 얻음)
게다가 러시아는 사실 모스크바까지 올 수 있냐는 비웃음이 섞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사할린 섬 반쪽 떼주는것에 일본도 만족할 수 밖에 없었죠.
@@백성윤-w5s 러시아는 이 전쟁으로 니콜라이왕조가 무능하다는게 증명되 나라 뒤집어지는 원인중 하나가 되었죠
일본은 자존심과 국가파산직전의 엄청난 부채(전쟁배상금을 못받아서)를 동시에 얻었고 개돌이 전쟁에서 통한다는 생각이 이때 머리속에 박혀 2차대전종전까지 못고침
일본 입장에서는 대륙으로 가기 위한 발판 하나가 마련되었고 러일전쟁을 통해 경제난을 한 차례 이겨내면서 기사회생 했으니 의미가 없다고 보긴 힘들다 생각합니다.
또한 러시아 입장에서는 동부에 위협이 새로 생겼으니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 힘들고요.
무엇보다 크림전쟁으로 알래스카를 잃은데 이어 사할린을 뺏기면서 미대륙과 완전히 분리되었고
2차대전 독소전쟁 초기에도 동부에 병력이 묶여있어 악전고투 했으니까요.
일본이 침략하지 않는다는게 사실화되면서 시작된 스탈린그라드(볼고그라드) 전투도 결국 동부의 병력이 철도를 탄 후 배로 환승하는 도시라 생긴 전투인데 역사적 맥락에서 의미없다기엔 양 측 모두에 영향이 너무 큽니다.
일본이 싫은건 이해합니다만 역사적 사실까지 가리려고 하는건 좋지 않다 생각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독이에요.
그리고 제가 러시아에 14년도에 살 때 느낀점인데 러시아에도 꽤나 큰 충격이었습니다.
성당 지하무덤도 하나 봤는데 일본군들이 점령하자 그 당시 그 성당 신부님이 군인들의 시체를 훼손하지 못하게 성당 지하에 숨기면서 생긴곳 이었어요.
그리고 쁘리모스크라이 성당 앞에도 러일전쟁 벽화(한 300미터쯤 됨)가 있고요.
첨언하자면 태평양전쟁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평양전쟁의 미-일 전쟁방향을 크게 보면 중일전쟁과 연관성이 높은 동남아를 제외하면 크게 북태평양전구와 남태평양전구입니다.
미국도 진주만이 본토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이기에 그것만으로 위협을 느꼈다고 보기에 힘들고
2010년도 이후 남중국해 문제가 커지면서 태평양전쟁에 대한 연구가 새롭게 진행되며 나온 최신동향을 읽어봐야 좀 더 자세히 알 수 있는데
북태평양에 일부섬을 사할린을 거점으로 공격하면서 일본의 미서부 압박이 커지면서 미국인들이 실생활에서 전쟁을 체감하게 됐다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LA와 인근도시에서는 등화관제가 시행되었고요. 사할린 점령은 러시아로서는 미대륙을 상실하게 만든 계기지만 일본에게는 새로운 주도권을 얻게된 기회입니다.
어릴때 전쟁영화 제일좋아했는데 주말마다 감사합니다ㅋ
구식 함선으로 일본 함대를 치려한 자체가 무모했군요.
물론 일본의 해상전력 화력을 제대로 파악 못했겠지만...
재밌게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씨네모리"!
난 일본이 러일 전쟁에 승리한 것 보다 더 충격적인 일은, 일본이 청일전쟁, 러일 전쟁, 진주만 기습 대략 5년전 부터 스파이를 보내 모든걸 다 치밀하고 상세하게 파악 하였다는 점 임. 일본의 독도 공정 역시 그러한 점이 잘 보이는데, 이는 한국이 철저히 배워야 하는 자세라고 생각함. 물론 음지에서 활약중인 한국의 수많은 정보원들이 그간 많은 일들을 해내 왔지만..
당연한거 아님? 뭐가 충격인데
그 정도 도박하려면 그 정도 정보력은 필수적이지 뭐가 충격적이노?
나는 일본 야마모토 제독의 위치까지 다뚫리는 일본의 보안력이 더 대단한거 같음 😂😂
진주만 공격을 주동한 야마모토 이소로쿠(山本五十六)도 실제 역사에서 쓰시마 해전에 참전했죠.
씨네모리님 소개해주는 영화들 어디가면 볼 수 있는지 링크라도 부탁드립니다. 😅
잘봤습니다~^^
일요일 아침 최고의 선택!! 씨네모리!!
미카사 함 이랑 진짜 비슷한거 같은데 촬영할떄 전방포대근처만 세트로 만든건지 아니면 미카사랑 비슷한 함을 구해서 찍었는지 궁금하네요
아마 미카사공원에 전시중인 실제 미카사함에서 찍었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저 포격 훈련으로 진해 앞 바다 섬 하나가 없어졌다는데 ,,,,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模擬弾(炸薬量を減らした訓練弾)
병원선 불 킨거 때문에 그때 일본 함대가 러시아 함대를 기습해서 승리했다고 배웠는데.. 전혀 달랐군요. 잘 배우고 갑니다.
그 당시 국제법상으로 킬수 밖에 없어서 킨거 일뿐임. 이 유튜버가 몰라서 그냥 말한거임
@@kim_jin_hong 병원선 공격하지 말라고 일본측 에서도 명령해서 그냥 있었는데 그 뒤를 발트함대가 그대로 따라오고 있었는데 이게 화근이지
일본멋지다! 몇안되는 반일감정이 없는 개관적평도 멋집니다!
ㅋㅋㅋㅋ 일본이 핵맞은거 얘기하면 반일 일본이 러시아를 이긴거를 얘기하면 중립적임 ㅋㅋㅋㅋ ㅂㅅ이 따로없노
그런일본을 문재인 정부때 무역전쟁 발라버린 대한민국 멋지다!
모리형 너무 재밌네요
다키스트아워영상은 사라졌나요?
일요일 아침식사와 함께하는 씨네모리 채널!
당시 세계 패권국인 영국해군의 대리전쟁 러일전쟁 해전은 당시 최신기술인 함포 포격술을 준 영국해군 도움으로 일본은 러일전쟁의 승자가 되고 전리품으로 조선을 가지는 발판이 됩니다.
요코스카 항 가면 저 미카사 해변공원에 전시 되어있습니다 들어가볼수 있는데 1층인가 지하1층인가 조선 침락에 도음 되어있다고 설명 해놨어여
참 거서기 하네요
재밌게 잘봤습니다 . 그런데 1905년이 맞습니까? 저 당시 조선은 갓쓰고 말타고 다닐때인데... 정말 대단하네요.
일본도 60년대와 80년대 사회 분위기가 달랐던 건가요?😮
엄청나게 달랐죠.
당연히 거의 모든 나라들이 다...
왜 국민들이랑 한마디 상의도 없이 2차대전 일으켰냐는 불만과, 2차대전 끝난 직후 국민들의 은행계좌를 압류한 사건 때문에 지금과는 국민정서가 달랐다고 전해지네요
조선인들이 죽창들고 의병활동할때 일본의 군대는 완전 현대병기네..
역시 제복은 심플한게 멋져
중국이 유럽한테 유린당할때 일본은 러일해전 이기고 조선땅, 만주땅까지 점령하고 태평양 재해권도 잡을뻔한 엄청난 대국이었구나
대국이라기보다는 영국과 미국에게 줄을 잘 섰죠.
@@truth1472 당시 외교가 대국으로 가는 발판
러일전쟁 이긴게 실력이지 줄을 잘 선거래 ㅋㅋㅋ
@@박찬수-u2m
영국과 미국의 도움이 없는 일본은 러시아에 비교하여 약소국이지.
@@박찬수-u2m줄 잘 선거 맞는데? 일본이 기습 뒷통수 아니고서 이긴 전쟁이 없음
역시 양쪽에서 욕먹는 중립적 시각에서 뽑아내는 전쟁영화가 참 재미난거 같아요. 정치색이 들어가면 결국 프로파간다가 되어버리니..
2차 대전 야마토나 제로전투기를 앞세운 일본 발전상은 잘 알고 있었지만 1905년에도 일본은 상당한 공업 발전을 이루었음을 엿볼 수 있네요. 당시 농경사회였던 조선시대와도 격차가 너무 컸던 것 같습니다.
첩혈고성 리뷰해주세요.
중일전쟁 배경의 영화입니다.
12:47 13:48 사실 이장면의 배는 미카사가 아니라 러시아 배임. 잘보면 함수에 러시아 쌍두독수리가 달려있음.
12:54 13:53 이게 미카사임.
14:09 얘도 일본장교임.
해군 군악대만 옷이 달랐던 이유는, 1870년에 창설했다 해체해 버린 일본 해병대의 영향 탓이죠. 당시 해병대는 해군의 보병, 포병, 군악, 의장대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6년만에 해병대를 해체하고 전원 해군으로 통폐합했습니다만, 특이하게 군악대만 해병대 시절 복제를 그대로 남겼지요. 러일전쟁 끝난 뒤에는 군악대도 해군 복제를 착용하게 통합됩니다.
두 합대가 합류하기 전에 러시아 태평양 함대를 격멸하죠
그것때문에 203고지 공략해달라고 육군에게 압력을 가한거고 노기의 3군은 녹아버렸고
진해에서 이거보고있는데 내가 사는데가 일본해군 항구였구만 ㄷㄷㄷ
구한말 일본이 들락날락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군항으로 만들어져서 지금까지 군항으로 사용되죠
역시 미카사는 부조리와 뺑뺑이 좋아해 해군님
잘보았습니다 ❤
재미있군요,
발틱함대 상대하기전에 희망봉 뺑 둘러서 오는 러시아애들 지치게 하려고 일본 대기업들은 각 항구에서 함대 원료나 식자재등 싹쓰리해서 없애거나 보급을 원천 차단시키고 지칠대로 지치게 한다음 기습한거죠 심리전으로 이미 우위를 점한 상태에서 한판 붙은거죵
이때는 조선이 아니라 대한제국인데 영화에서 조선으로 표기된 게 좀 배가 아프다.
이 당시 대한제국은 해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거의 소수의 수병과 간부로 구성된 채 함선은 사기당해서 바가지수준으로 구매한 고물 함선 한척만 있는 수준이었다.
대한제국 해군은 충무공의 수군 직통계승군였지만 실상은 너무나도 초라하여 충무공 시절의 신화를 재현하기엔 불가능한 상태였다.
3:15 지들 입으로 "조선해협"이라고 부르고 있고만...14:21 응? 니들이 조선해협이라며?
씨네모리가 12만명밖에 안됐나요? ㅠㅠ
지구반바퀴돌아온 발트함대는 스시마해협에 도착했을땐 기진맥진한 상태.
정작 나중에 미국에게 다 망한 일본 패망 직전에 숟가락 얹으려고 참전한 소련 ㅋㅋㅋㅋ
오
영상 해설
늘
감사하옵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아관파천으로 러시아에 기대려다 쫄딱 망한 전철을 밟지 말자.
미카사가 그래도 어떻게든 침몰은 면하고 돌아갔는데, 귀환 후 탄약고 폭팔로 항구애서 침몰했다ㄱ(…)
역사를 알게되었네요 진해가 고향인데 진해가 왜 일본해군의 요충지가 되었는지 알게되었습니다
도고제독역 배우가 미드웨이 영화(1976) 야마모토 이소로쿠 역 동일인 맞나뇨? 같은 얼굴 같은데
당시 미카사 급은 당시 영국이 내놓은
최신 전함이라 주포를 정면으로 되돌리지않고 장전하는 신기능을 탑재한 끝판 전함이라 천황 용돈까지 털어샀다. 그로 인해 해전에서 이겼는데 몇년 지나니 영국이 드레드노트급을 내놓으며 개흑우가 되어버림
필승을위한강도높은만전의준비훈련이성공적해전으로빛을내는군요
일요일엔 씨네모리❤
저당신 좋앗겠지만 결국엔 함대결전주의 그리고 야마토라는 거함거포주의로 결국엔 골로 가버린~~
아따메 군악대장역에 이토 시로(伊東四朗) 아저씨 아니신가. 풍채 좋으셨네~~
아케치님 영상 언제 올리실거에요 ㅜㅜ
@@비비지맙시다 아... 일베 일빠 쉑히들한테 마상 입어서 쉬고 있습니다.
다음달 중에는 다시 달려보려구요.
@@halmi3517 아...ㅜㅜ
@@halmi3517 뭣도 모르고 뽕에 취한것들 보면 무지한것들이 너무 많아서 하기도 싫으시겠지만 저는 아케치님이 다시 오셔서 영상업로드하는걸 바래요 제가 님 덕분에 일본에 대해 많이 알게됐거든요 ㅎ 다시 오시길 바래요
몇년전에 대마도 놀러 갔더니 무슨 기념식(?)같은 것을 많은 사람들이 하길래 물어 보니 러시아해군을 물리친 기념식이라고..
시네모리님 엔딩음악 알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자꾸 귀에서 멤도네요
Sir Cubworth - Adventure Theme 네요 ㅋㅋ 구글에서 허밍햇더니 나오네오
미카사 전함.. 전드레드노트급으로 천황의 비자금까지 영끌해서 건조하고 발트함대를 수장시킨 수훈함이지만 그 말로는 끔찍한 함생을 살았던..
미군들의 나이트 클럽행 ㅋㅋㅋ
조선은 가마를 이고 소달구지가 다니던때 이웃나라는 저랬구나
조선이 중앙 집권 국가라서 그렇죠.
왕은 지방의 누군가가 큰 부자가 생기면 왕권 도전자가 생기니까 무역을 막고 경제를 경직을 시켜서 그래요.
중국도 마찬가지 ㅋ
@@아미3-p8n 그래도 중국은 일본보다 먼저 근대식 군함을 운용했고 철도도 있었고 근대식 무기공장도 있었음.. 한반도가 중국대륙보다 1인당소득이 역전하기 시작한건 일제강점기부터였음. 1930년대 자료보면 우리가 3배 정도 더 잘살아서 중국인 쿨리들이 돈벌려고 우리나라에 많이 왔었지. 그때 왕서방 후손들이 오늘날 화교들이고
@@truth1472 프랑스도 중압집권국가인데 조선처럼 멍청하진 않았는데 뭔 소리지 ? ㅋㅋㅋㅋㅋㅋㅋ
@@압-d2b근데 지금은 중국보다 못사는 나라로 전락
과거의 전쟁에서 우리는 이길 수 있는 전술 전략을 배워야 할 것이다 누구 편을 드느니 하는 것 보다는 전술 전략을 배워야 한다 이순신 장군 시대 때와는 모든 상황이 바뀌었다 과거의 교과서 대로와 전혀 다른 무기들로 바뀌었다
1904년 해군 ㄷㄷ 얼마나 빡셌을까 ㄷㄷ
'아주 좋은 아침 유튜브 영상'
기함 미카사는 45년종전이후 소련이 러일전 치욕이라고 없애자해서 없어질뻔한 일화가 있죠
일요일 점심은 씨네모리!
일본이 쓰시마 해전에서 패전했다면, 간이 배밖에 나와서 미국에 덤비지도 않았을테고 그랬다면 일본제국이 그렇게 패망하지 않았을수도 있었겠죠. 역사란 참 아이러니
감독이 보여주려는게 뭔지 알거같네요
저때 러시아가 승리했어면 조선은 러시아 식민지가 됐겠네
스빠시빠!
7:38 강해상
일본은 우리의 적이었지만 배울 부분은 확실이 존재하는듯
뭘 배움? ㅋㅋㅋ 배울게하나도 없는데
쓰시마 해전에선 러시아가 개처발렸지만... 의외로 러일전쟁 다 합쳐보면 4:6 정도로 일본이 압승하진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협상에서도 생각보다 이득이 적었는데, 일본에선 압승이라고 선전해놔서 국민들 사이에선 '군인이 피 흘려가며 이겼는데 외교에서 망쳤다'는 얘기가 나오고
대규모 폭력시위가 무력진압 되면서 또 여럿 죽어나가고;;; 군국주의 성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합니다.
역시 시네모리
이런 거작은 한달에 한번 .KBS가 일요일 오전에 틀어줘야함
11:42 아시아와 세계 침략의 상징 제국해군기가 펄럭입니다.
좌빨의 쇄뇌 교육의 페해
世界侵略😅
동물농장, 서프라이즈, 씨네모리 레츠고
진격의거인 미카사 아커만의 미카사는 미카사 함에서 따온 이름 입니다 그냥 TMI입니다
일본함대가 우리나라 진해에서 출항했는데 지상에서 벌어지는 장면도 일본이 아니라 진해라고 보는게 맞을 겁니다.
대한해협이라고 말하네요.
5:51 이거 오스트리아 헝가리 군가아님ㅋㅋㅋ?
2:50 & 3:15 쓰시마 해협이라고 하지 않고 조선해협이라도 하네요.
오늘도 지가 엑스트라로 참가 했다는 트롤이 나올건지 내기하실분?
I am
어디에서볼수있죠..
러일전쟁 일본 이기면서 조선이 일본한테 뺏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