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의 홍길동은 두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영상에서 다룬 도적 홍길동 2. 도적이 아닌 서자 홍길동 이 있는데 이 도적이 아닌 홍길동에 대해서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 같지 않을 인물이다."는 식의 짧은 기록만 남은 세조시대(그의 형 홍일동이 세조와 이야기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인물이 존재합니다. 다만 도적 홍길동은 실록 연산군 시대의 정사기록에 나온 실존 인물이고.. 중보해동이적에서 서자이나 누군가의 아래에 있지 않았을 홍길동은 조선전기의 인물이며 정사라 하긴 어려운 기록이라, 홍길동전은 영상의 도적 홍길동과 서자 홍길동을 더해 창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도적 홍길동은 연산군 시대의 도적 홍길동에서, 서자이나 왕으로서의 홍길동은 조선전기의 인물 홍길동에서 각각 차용해 만들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셔요.^^
홍길동을 평가하는게 너무 수준낮음 그 당시시대에서는 엄청는 사회비판적인 작품이였을건데 예로 30년전에 쥐라기공룡이라는 엄청난 공룡영화가 있었는데 지금보면 그래픽도 조악스럽고 형편없는 영화임 홍길동전도 1500년대의 시각에서봐야지 그리고 율도국세웠다고 제국주의논리라는것고 말도안되는게 개인의집단이 나라를 정복한걸 제국주의와 빗대는것 자체가 코미디임 뭔가 비판하고 싶고 그런가본데 아직 소양이 많이 부족해보임
금수저라 할수 없지요 홍길동이 "아버지 를 아버지라 부르지못하고" 말하지요 그말은 홍길동이 "얼자" 라는 뜻 입니다 조선시 아들을 적자,서자,얼자 로 나누는데 적자는 부인이나 후처가 낳은 자식입니다 서자는 첩이나 관계한 기생이 낳은 자식입니다 얼자는 들병이(거리에서 돗자리갈고 술파는여자)남사당,집안에 노비가 낳은 자식 으로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아버지라 부를수 없지요 아마도 홍길동은 노비의 자식인듯 합니다
너무 편협한 지식만 다루고 있네요 허균이 창작 보다는 암기 능력으로 넘사벽 천재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허난설헌이 죽기전에 자신이 지은 창작물들이 다 태우고 죽었지만 이를 이미 암기하고 있던 허균이 책으로 옴겨 적었고 거기에 본가에 있던 허난설헌이 어린 시절 지은 습작을 합쳐 난설헌시집을 내었고 이를 당시 사신들의 접대를 하던 허균이 중국 사신들에게 암송하여 소개하였고~ 사신들이 흥미를 느껴 가져간 난설헌시집이 중국과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사신들 또한 자국의 대표적인 문호들의 시를 모두 외우고 있는 허균의 천재성에 감탄했었던 일화 또한 있고요 그렇게 사신들의 접대를 잘한 허균 때문에 명나라의 원군 파병이 수월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당시 임시왜란중) 그렇게 접대를 잘하는 사람이 괴격했다고요?? 현대에를 이르러서도 괴격한 사람에게 외국 바이어 접대를 맡기는 회사가 있을까요? 과연?? 그리고 허균 정도는 되어야 홍길동젼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은 과격하고 필터링이 없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복형 허봉이 서얼이자 자신의 절친이며 또한 굉장한 천재였던 이달을 허균의 스승으로 두어 허균을 가르쳤으며 또한 허균은 서얼(서자)들과 두루 어울리며 후견인 역활을 많이 했습니다. 허균은 공주 목사로 부임하자 마자 자신의 절친 이자 또 서얼이며 천재 였던 하지만 가난했던 친구 이재영을 초청해 자신의 녹봉 절반을 내어주며 관청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명을 초청해서 부양함) 당시 허균이 친구의 이재영을 평가하기를 자신 보다 10배는 뛰어난 친구라고 표현을 했었죠 자신의 스승과 자신의 절친 이 두명의 천재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이들 보다 한참 부족해 보이는 둔재들이 주요관직을 모두 차지 하고 있고 정작 뛰어난 천재들은 서얼이라는 이유로 정계에 진출을 못하고 생계 걱정을 해야 할 정도 였으니 말이예요 그리고 허균이 세간의 비난을 많이 받았던 것은 괴격함 때문이 아니라 자유분방함 때문이였습니다. 여색을 정말 좋아 했었거든요 또 심지어 그걸 또 글로 기록에 남겼고 여기 저기 떠벌리고 다녔음 지금으로 따지면 카사노바 다이어리 쯤 되겠네요 그리고 사명대사(임진왜란 의병장)하고도 의형제였습니다.(사명대사 비문에 성리학자이지만 형 동생으로 사귀었다 라고 허균을 표현함) 유교 사회인 조선 시대에 자유연예주의자이자 배척해야 할 종교인 불교를 가까이 했으며 신분제 사회 질서에 반하여 서얼 철폐를 주장했으니~~~ 시대를 그저 잘 못 만난 탓이지 허균이 과격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허균이 이이첨과 한배를 탄 이유는 자신과 친구들의 구명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에 관한 가사를 옴겨 적으며 끝내겠습니다. [역사가 꿈틀 논술이 술술] 서얼 출신 친구들 위해 허균은 홍길동전을 썼다 - 조선일보 사설- 허균은 또 반골 기질이 다분한 서얼 친구 일곱 명과 잘 어울렸다. 이들 '칠서(七庶)'는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를 비롯해 심우영, 서양갑, 박치의, 박치인, 이경준, 허홍인 등 명문가의 서얼들이었다. 스스로를 죽림칠현(竹林七賢) 또는 강변칠우(江邊七友)라고 칭한 이들은, 1608년에 서얼금고의 폐지를 주장하는 상소를 연명으로 작성해 광해군에게 올렸다. 하지만 묵살 당했다. 그러자 이들은 1613년부터 여주 남한강 가에 모여 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문경새재에서 상인의 재물을 빼앗다가 근거지가 들통이 나서 박응서 등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대북파의 이이첨 등은 이들이 영창대군을 추대할 음모를 꾸민 것처럼 거짓 자백을 시켜, 인목대비 진영을 초토화시키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 사건을 계축옥사, 또는 '칠서(七庶)의 옥(獄)'이라고 한다. 서얼의 한을 직접 풀고자 했던 칠서들은 결국 역모에 말려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허균은 입조(入朝) 동기 이이첨에게 선처를 호소하며 칠서들의 구명활동을 벌였지만 간신히 자신의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칠서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게 된 허균.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서양갑을 비롯한 칠서들의 넋을 소설에 부활시켰다. 그가 곧 홍길동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홍길동전'은 칠서들의 영혼에 바친 헌정(獻呈) 소설인 셈이다.
홍길동전.... 어짜피 뇌피셜이 대부분인 소설인데 드라마 주인공의 시비선악을 논하는건 할매들이나 어울릴듯 하고... 허균의 인성을 논하자면... 해인사 중들에게 사기치는 모양새를 보면 비판적이고 과격한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조선의 유자들에게 넙치가 되게 줘터지고 산으로 쫓겨 들어간게 불교인데...혐오는.. 정도전이나 이방원이 그렇듯... 총명한 자들은 잔인한면이 있다.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탓이겠다. 이성으로 감성이 말살된것이 사이코패스 아닐까? 흔히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을 잔인하다 여긴다. 그렇게 볼때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것이 심성을 온화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송강 정철도 한 글빨 하지만 정치성향은 상대진영에서 독철이라 불렸을 정도로 흉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균이 사회 비판적이고 과격한 면이 있었다면 허난설헌 또한 한성질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난설헌의 남편이 조금은 억울한 평가를 받는 것일수도 있다. 신사임당의 남편도 그렇듯이... 잘난 마누라 만난 남편들 속내는 시끄러울 수 밖에 없는거다. 일단 말싸움에서 게임이 안되는거다. 뭔가 억울하긴 한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에라... 삐뚫어지자. 그걸보면 한석봉은 대단하다. 엄마 보고싶어 찾아간 아들에게 등불을 훅 꺼버리고.. 배틀을 요구한다.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써라! 결과는..... 할말없지? 안되겠지? 쪽팔리지? 석봉은 곧바로 되돌아 갔댄다. 짜식이.. 어디다 들이대? 들이대기를... 에효... 쯧쯧쯧... 석봉 아빠인들 오죽하면 여북할까. 따지고 보면 지혜와 총명은.... 또다른 의미에 폭력이기도 하다.
홍길동의 형님이 단종시절의 김종서 장군을 암살할때 같이 공적을 세웠다는 인물이라고 애기를 하셨는데... 6대 단종에서 10대 연산군이 즉위하기까지 대략 암산으로 계산을 해도 40년이라는 갭차이가 있는데?? 그럼 홍길동은 늙어서 도적질들을 했다는 소리인가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인데요??
홍길동이 관직이 나아갔다는 것이 현실정치에 영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당시는 조선 중기로 아직도 적서의 차별이 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홍길동이 병조판서라는 실세 중에 실세 자리에 얼자가 올랐다는 것은 결국 그 다음에 다른 서얼들이 관직에 진출하기 위한 선례가 되는 겁니다. 이걸 그저 현실에 영합했다면 나중에 굳이 율도국 얘기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겠죠. 그냥 잘먹고 잘살았다고 해피엔딩이면 되는데...
근데 이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 발행되기 전 까지 사건을 다룬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간서치열전 저자는 정조시절 실학자였던 이덕무의 작품인데 간서치는 책덕후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덕무 본인을 뜻한다고 함 그 홍길동전은 아마도 시대는 다르고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 쓴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실존 인물이라는 것에 대한 아무런게 없어 여기 나와있는건 드라만 봐도 알게 된다. .당신 뭐냐?
이건 아닌것 같아
음.. 분석 수준 너무 떨어진다.. 싫어요 누르고 갑니다.
@라임 청화수가 더 좋아요
@라임 근본채널이랑은 비교도하지마세요
삼국시대 설화에 사람들이 실존인물인지 알려주시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요! 예시로 서동 설화나 바보온달 설화 같은거 올려주시면 재밌을 듯!(갠적으로 역사돋보기님은 삼국시대가 젤 재밌으셔서ㅎㅎ)
온달은 실존인물이었으나 바보는 아니었고 서동 설화는 역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이 많아 그냥 설화로 받아들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기록의 홍길동은 두 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1. 영상에서 다룬 도적 홍길동
2. 도적이 아닌 서자 홍길동
이 있는데 이 도적이 아닌 홍길동에 대해서 서자임에도 불구하고 "누군가의 아래에 있는 것 같지 않을 인물이다."는 식의 짧은 기록만 남은 세조시대(그의 형 홍일동이 세조와 이야기 했다는 이야기가 있는) 인물이 존재합니다.
다만 도적 홍길동은 실록 연산군 시대의 정사기록에 나온 실존 인물이고..
중보해동이적에서 서자이나 누군가의 아래에 있지 않았을 홍길동은 조선전기의 인물이며 정사라 하긴 어려운 기록이라, 홍길동전은 영상의 도적 홍길동과 서자 홍길동을 더해 창작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정리하면
도적 홍길동은 연산군 시대의 도적 홍길동에서,
서자이나 왕으로서의 홍길동은 조선전기의 인물 홍길동에서 각각 차용해 만들었을 거라는 의견도 있으니 참고하셔요.^^
홍길동을 평가하는게 너무 수준낮음
그 당시시대에서는 엄청는 사회비판적인 작품이였을건데
예로 30년전에 쥐라기공룡이라는 엄청난 공룡영화가 있었는데 지금보면 그래픽도 조악스럽고 형편없는 영화임
홍길동전도 1500년대의 시각에서봐야지
그리고 율도국세웠다고 제국주의논리라는것고 말도안되는게
개인의집단이 나라를 정복한걸 제국주의와 빗대는것 자체가 코미디임
뭔가 비판하고 싶고 그런가본데 아직 소양이 많이 부족해보임
쥬라기...
지금은 신돈 궁예도 꼼꼼하게 다시 분석하고재평가하는시대인데 악인으로 낙인 찍히지도 않은 허균을 그런식으로 매도하면 안되지요
허균이나 홍길동이나 기록이 부족하므로 평가 보류가 맞다고 봅니다.
유튜버 청화수 님 왈 의적으로 불리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다.
근거는 하나도 없고 전부 추론으로만 구성했으면서 역사돋보기라고 타이틀을 만들었네요
이건 뭐하는 사이트인지 모르겠네요.
매번 잘 듣고 보고 갑니다 기분좋은 하루 즐겁게 잘 보내세요 ^^ 감사합니다 ^^
실제홍길동의 이야기말고 혀균에 대해서는 쫌만 더 알아보심이..
누가보면 허균이 실제홍길동의 이야기를 일부러 미화했다 라고 한것같아서요
허균에 대해 이야기한것도 다큐나 책에서하는 평가랑 다르게 말씀하시는것 같내요
밑에
공상티비 - 뇌피셜쟁이
금수저라 할수 없지요
홍길동이 "아버지 를 아버지라 부르지못하고" 말하지요
그말은 홍길동이 "얼자" 라는 뜻 입니다
조선시 아들을 적자,서자,얼자 로 나누는데
적자는 부인이나 후처가 낳은 자식입니다
서자는 첩이나 관계한 기생이 낳은 자식입니다
얼자는 들병이(거리에서 돗자리갈고 술파는여자)남사당,집안에 노비가 낳은 자식 으로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으니 아버지라 부를수 없지요
아마도 홍길동은 노비의 자식인듯 합니다
대마도에있는 홍가와라가 홍길동이라는걸 본거같은데
제일 중요한걸 놓쳤네 실제의 홍길동도 서자신분이라서 과거응시 못한거고 그래서 도적이 된거지
중종실록보면 홍길동이 붙잡히고도 몇십년동안 주 활동지인 충청도가 회복이 안되었다고 나옴. 도적도 상도적에 최악의 정치깡패
차이나?
답 안하면 신고 감
에라 ㅋㅋ
연산군시절 최고의욕이 홍길동같은놈이란 소리였음...
조선 팔도 3대 도적인 홍길동, 임꺽정, 장길산 중에 한명이죠... 왕의 외척이었던 완벽한 집안 사람이 왜 도적질을 했는지 좀 이해가 안되기는 하네요..
정치깡패
너무 편협한 지식만 다루고 있네요 허균이 창작 보다는 암기 능력으로 넘사벽 천재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허난설헌이 죽기전에 자신이 지은 창작물들이 다 태우고 죽었지만
이를 이미 암기하고 있던 허균이 책으로 옴겨 적었고 거기에 본가에 있던 허난설헌이 어린 시절 지은 습작을 합쳐 난설헌시집을 내었고
이를 당시 사신들의 접대를 하던 허균이 중국 사신들에게 암송하여 소개하였고~ 사신들이 흥미를 느껴 가져간 난설헌시집이 중국과 일본에서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사신들 또한 자국의 대표적인 문호들의 시를 모두 외우고 있는 허균의 천재성에 감탄했었던 일화 또한 있고요 그렇게 사신들의 접대를 잘한 허균 때문에
명나라의 원군 파병이 수월했다는 평가도 있었습니다. (당시 임시왜란중)
그렇게 접대를 잘하는 사람이 괴격했다고요??
현대에를 이르러서도 괴격한 사람에게 외국 바이어 접대를 맡기는 회사가 있을까요? 과연??
그리고 허균 정도는 되어야 홍길동젼을 지을 수 있다는 말은 과격하고 필터링이 없는 성격 때문이 아니라
그의 이복형 허봉이 서얼이자 자신의 절친이며 또한 굉장한 천재였던 이달을 허균의 스승으로 두어 허균을 가르쳤으며
또한 허균은 서얼(서자)들과 두루 어울리며 후견인 역활을 많이 했습니다.
허균은 공주 목사로 부임하자 마자
자신의 절친 이자 또 서얼이며 천재 였던 하지만 가난했던 친구 이재영을 초청해 자신의 녹봉 절반을 내어주며 관청에서 같이 살았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명을 초청해서 부양함)
당시 허균이 친구의 이재영을 평가하기를 자신 보다 10배는 뛰어난 친구라고 표현을 했었죠
자신의 스승과 자신의 절친 이 두명의 천재를 보며 얼마나 안타까웠을까요? 이들 보다 한참 부족해 보이는 둔재들이 주요관직을 모두 차지 하고 있고
정작 뛰어난 천재들은 서얼이라는 이유로 정계에 진출을 못하고 생계 걱정을 해야 할 정도 였으니 말이예요
그리고 허균이 세간의 비난을 많이 받았던 것은 괴격함 때문이 아니라 자유분방함 때문이였습니다. 여색을 정말 좋아 했었거든요
또 심지어 그걸 또 글로 기록에 남겼고 여기 저기 떠벌리고 다녔음 지금으로 따지면 카사노바 다이어리 쯤 되겠네요
그리고 사명대사(임진왜란 의병장)하고도 의형제였습니다.(사명대사 비문에 성리학자이지만 형 동생으로 사귀었다 라고 허균을 표현함)
유교 사회인 조선 시대에 자유연예주의자이자 배척해야 할 종교인 불교를 가까이 했으며
신분제 사회 질서에 반하여 서얼 철폐를 주장했으니~~~ 시대를 그저 잘 못 만난 탓이지 허균이 과격한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허균이 이이첨과 한배를 탄 이유는 자신과 친구들의 구명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에 관한 가사를 옴겨 적으며 끝내겠습니다.
[역사가 꿈틀 논술이 술술] 서얼 출신 친구들 위해 허균은 홍길동전을 썼다 - 조선일보 사설-
허균은 또 반골 기질이 다분한 서얼 친구 일곱 명과 잘 어울렸다. 이들 '칠서(七庶)'는 영의정 박순의 서자 박응서를 비롯해 심우영, 서양갑, 박치의, 박치인, 이경준, 허홍인 등 명문가의 서얼들이었다. 스스로를 죽림칠현(竹林七賢) 또는 강변칠우(江邊七友)라고 칭한 이들은, 1608년에 서얼금고의 폐지를 주장하는 상소를 연명으로 작성해 광해군에게 올렸다. 하지만 묵살 당했다. 그러자 이들은 1613년부터 여주 남한강 가에 모여 살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러나 문경새재에서 상인의 재물을 빼앗다가 근거지가 들통이 나서 박응서 등이 체포되고 말았다. 이때, 대북파의 이이첨 등은 이들이 영창대군을 추대할 음모를 꾸민 것처럼 거짓 자백을 시켜, 인목대비 진영을 초토화시키고 정권을 장악한다. 이 사건을 계축옥사, 또는 '칠서(七庶)의 옥(獄)'이라고 한다.
서얼의 한을 직접 풀고자 했던 칠서들은 결국 역모에 말려들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허균은 입조(入朝) 동기 이이첨에게 선처를 호소하며 칠서들의 구명활동을 벌였지만 간신히 자신의 목숨만 건질 수 있었다. 칠서들에게 씻을 수 없는 마음의 빚을 지게 된 허균. 그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서양갑을 비롯한 칠서들의 넋을 소설에 부활시켰다. 그가 곧 홍길동이다. 그런 점에서 결국 '홍길동전'은 칠서들의 영혼에 바친 헌정(獻呈) 소설인 셈이다.
맞아요 황현필 선생님 영상보면 님의 설명과 비슷하고 안타까운 천재로 알고 았는데 여기서 허균을 과격하고 권력욕에 취한 사람처럼만 말해버리니 나만 먼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나 했는데 잘 설명해주셔셔 감사합니다.
아 사이다네요, 보면서 답답햇느데 정리 잘해주셨네요
허균에 대해서 조금만 봤어도 저런영상 안만들었을텐데 아쉽네요..
홍길동전....
어짜피 뇌피셜이 대부분인 소설인데
드라마 주인공의 시비선악을 논하는건
할매들이나 어울릴듯 하고...
허균의 인성을 논하자면...
해인사 중들에게 사기치는 모양새를 보면
비판적이고 과격한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조선의 유자들에게 넙치가 되게 줘터지고
산으로 쫓겨 들어간게 불교인데...혐오는..
정도전이나 이방원이 그렇듯...
총명한 자들은 잔인한면이 있다.
감성보다 이성이 발달한 탓이겠다.
이성으로 감성이 말살된것이
사이코패스 아닐까?
흔히들 목적을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것을 잔인하다 여긴다.
그렇게 볼때 문학이나 예술을 하는것이
심성을 온화하게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송강 정철도 한 글빨 하지만 정치성향은
상대진영에서 독철이라 불렸을 정도로
흉폭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허균이 사회 비판적이고 과격한 면이
있었다면 허난설헌 또한 한성질 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어쩌면 난설헌의
남편이 조금은 억울한 평가를 받는
것일수도 있다.
신사임당의 남편도 그렇듯이...
잘난 마누라 만난 남편들 속내는 시끄러울
수 밖에 없는거다. 일단 말싸움에서 게임이
안되는거다. 뭔가 억울하긴 한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에라... 삐뚫어지자.
그걸보면 한석봉은 대단하다.
엄마 보고싶어 찾아간 아들에게 등불을
훅 꺼버리고.. 배틀을 요구한다.
나는 떡을 썰테니 너는 글을써라!
결과는.....
할말없지? 안되겠지? 쪽팔리지?
석봉은 곧바로 되돌아 갔댄다.
짜식이.. 어디다 들이대? 들이대기를...
에효... 쯧쯧쯧...
석봉 아빠인들 오죽하면 여북할까.
따지고 보면 지혜와 총명은....
또다른 의미에 폭력이기도 하다.
@@이도연-m3u 허균이 드라마주인공인가요..? 뭐에대해 이야기중인지 다시읽어보시길;;
@@른른e 홍길동을 드라마 주인공이라
한거고 허균의 인성은 논해볼만 하다.
그렇게 서두를 뗀건데요?
홍길동의 형님이 단종시절의 김종서 장군을 암살할때 같이 공적을 세웠다는 인물이라고 애기를 하셨는데...
6대 단종에서 10대 연산군이 즉위하기까지 대략 암산으로 계산을 해도 40년이라는 갭차이가 있는데?? 그럼 홍길동은 늙어서 도적질들을 했다는 소리인가요??
뭔가 앞뒤가 안 맞는 느낌인데요??
홍길동은 서자출신이었고 형이 둘있었는데 실제로 둘째형은 계유정난에 참가했었고 공신이 됐었다고 합니다. 아마 나이차이가 많이 나는 형제였겠죠.
아버지가 살아있었죠 불끈
@윤석열 개호로쉑휘 휘바휘바~
홍길동이 이름이 아니고 사람이 부르는 명칭이나 별명이였다면...
@@도깨비-f3w 윤이 왜 나오냐 ㅋㅋ
홍길동전은 영웅 시해서의적이라 생각해습니다
홍길동이 관직이 나아갔다는 것이 현실정치에 영합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지만, 당시는 조선 중기로 아직도 적서의 차별이 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홍길동이 병조판서라는 실세 중에 실세 자리에 얼자가 올랐다는 것은 결국 그 다음에 다른 서얼들이 관직에 진출하기 위한 선례가 되는 겁니다. 이걸 그저 현실에 영합했다면 나중에 굳이 율도국 얘기까지 나올 필요가 없었겠죠. 그냥 잘먹고 잘살았다고 해피엔딩이면 되는데...
머.. 연산군때면.....
역사는 승자에의한 거라....
연산군시점으로 보면...
그렇다고...
머 암튼.... 홍길동은...
의적이였든 도적이든..
정치는 안했네여...
의의라는게 중요하죠 신라의통일은 반쪽짜리 통일이다 맞나? 한잔했더니ㅎ
우리 역사를 공부하면서 의의가 참 많이 강조했었던거같은데
홍길동전 아들한테 권해줘야할지 좀 고민이됩니다ㅎㅎ역사돋보기님 구독한지 얼마안됐는데 정말 유익한정보 잘보고있고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실제 홍길동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홍길동이 19세기 후반에 씌어졌다는 증거가 혹시 있을까요?
하성군의 3대 망나니
임해군, 정원군, 순화군
이정도에 해당하나?
이건 싫어요 눌러야지. 뇌피셜이 심해서
사실만을 말씀하셨다면 좋았을텐데, 근거없는 추론과 뇌피셜 그리고 1500년도 일을 2000년대 잣대로 평가는 아쉽네요.
근데 이 허균이 쓴 홍길동전이 발행되기 전 까지 사건을 다룬 작품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간서치열전
저자는 정조시절 실학자였던 이덕무의 작품인데 간서치는 책덕후를 뜻한다고 하는데 이덕무 본인을 뜻한다고 함
그 홍길동전은 아마도 시대는 다르고
이름만 같은 동명이인이 쓴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듬
정권에 줄 닿아있는 조폭이네 그냥
바로 사도세자가 그런자
정치깡패 이정재의 조상님은 홍길동이였네
그냥 조선 역사 자체가 판타지임
ㄹㅇㅋㅋ
ㅋㅋ ㅂㅅ 역사공부 제대로 안하는애들이 꼭 이런 말하더라
고길동은ㅠㅠ
김철수 이후에는 김영희 아닌가요??
김미영 팀장이지
마피아였누 ㄷㄷ
홍길동 소설 이잖아요
실제로 홍길동은 무자비한 살인마였음
대체 어디서 그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나요?
세상은 그런 곳이니 포기하고 살라는 건지 아니면 대체 무슨 생각으로
드라마에서나 재미로 나오는 것을 실제라고 단정적으로 말을하는지.
근거를 밝혀 주세요.
개같은 세상.. 피 맺히는 음악..ㄹ
욱해서 들어왓다가😈조용히 발취만 남김여 💝
ㅜㅜ
그냥 도둑놈이었을듯
롱길동
오키나와 지도가 이상하군요
정치깡패.... 이정재의 전신
자, 홍길동을 나쁘다고 평한건 연산군 산하 당시 관보(정부 언론)이었고, 홍길동을 의적으로 평한 건 당시 유튜브 언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소설이다. 관보 기록만으로 홍길동을 역적으로 평하는 게 얼마나 신빙성 있을까요??
그럼 홍길동 뒤봐주던 당상관 엄귀손이 당대 최고의 탐관오리고 엄귀손의 행실 대부분과 함께한게 홍길동인데다 심심하면 지 질녀하고 인수대비한테 뇌물찌르고 충청도 개박살내논게 의적임? 얼마나 도적질했으면 붙잡히고도 20년이 넘게 충청도가 회복이 안되었을까요?
@@이동길-x5n 20년 넘게 회복이 안됐다는 건 충청도 사람들이 대거 지역을 이탈했다는 말로 해석하는 게 맞겠죠. 결국 gdp는 노동생산성과 자본생산성의 함수이고, 당시 농업이 주산업이 었던 지역이니 자본은 땅이라 사라지지 않았죠.
홍킬동
조선판 민주당 행동대장이었네 ㅋㅋㅋㅋ 민주노총인가
경북괴 베츙이인가?ㅋㅋㅋㅋㅋ조선판 태극기 틀딱부대지 ㅋㅋ
여기서까지 정치드립 치는 니들이 ㅈ병신들이다 틀딱들아
@@leeadrian7382 니애미는?
@@leeadrian7382 더듬어 만진당 전용 오나홀?
@@성이름-m7t1y 니 애미가 왜?ㅋ
왠일? 반일 반미에 미친
현대판 홍길동=재명이!!!ㅉㅉㅉㅉ
윤석엿 아님?ㅋㅋㅋㅋㅋㅋㅋㅋ윤석엿과 장모 마누라 온갖 범죄를 저지르고 죄의식 없이 뻔뻔하게 나대고 있던데 ㅋㅋㅋㅋ
@라임 응 경북괴 틀
@라임 딱 일베
@라임 츙아 ㅋ화첝대유로부터 돈받아쳐먹은 것들은 죄다 미통구이 국혐당이지 ㅋ
@라임 윤셕엿 졸개들인 검찰이 온갖 가혹수사로 자살하게 만든 게 팩트 ㅋ한명은 조사받고 나오다 심장마비로 급사 ㄷㄷ
홍길동전 작가가 역적이라며 능지처참 당할만큼 홍길동의 악행은 그야말로 장난없군요.
영상 8분47초밖에 안되고, 5:00에 바로 그 이야기는 거짓이라고 나온다 제발좀
@@hlukhong 씹덕능지수준임 이게 ㅋㅋ
어휴 십덕 진짜 개패버릴라
한문으로 써진 홍길동전 한문번역해서 써진게 지금의 홍길동전이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