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수원의 옛 모습을 올려 주셔서 감사와 감동 입니다. 복원 되지 않은 북문과 동문의 모습을 보니 새롭네요. 국민학교 부터 고교 때까지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자랐죠. 지금은 복원 됐지만 때로는 폭격 맞은 채로의 옛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었는데.... 서호는 우리 형이 익사한 곳이라 부모님에 의해 저는 출입금지 구역 이었지요. 형의 유해가 묻힌 곳이 숙지산. 국민학교 입학전 경기도청 기공식에 어른 들 손에 이끌려 구경 갔다 축포 소리에 놀라 전쟁 난 줄 알고 무서움에 떨었던 적도.... 화성의 팔달산 부분에서는 영화촬영도 종종 있었는데 초딩 입학전 할머니랑 나물 뜯으러 갔다가 장군복 입고 소리지르는 배우를 보고 무서워 할머니 손을 잡고 빨리 도망가자 했던 기억도 새롭네요. 서호 장면에서 보이는 작은 산 남쪽이 우리 집인데 거기 까진 안나오네요. 현 아우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은 서장대에서 바라본 서호 앞의 작은 동산 앞쪽에 나오네요. 제가 바로 대유평을 가로질러 수성중학교를 다녔지요. 제가 다닐 땐 송록원이란 나무정원이 크게 있었는데 바로 그 소유주가 영복학원을 설립한 송 영복 옹 이었죠. 대학은 서울 농대. 근데 제가 다닐 때의 모습보다는 훨씬 전 같네요. 추억을 새롭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고향이 그리울 때 자주 볼 듯 합니다. 제가 수원을 떠난 지 40년 . 그 때 수원은 작은 도시라 남문 ( 팔달문) 을 나가면 거의 알만한 얼굴들 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너무 낯선 얼굴들과 낯선 거리들이 많아서. 차라리 이 영상에서 제 고향을 만나는 듯 합니다. 감사 합니다.
경찰이 2017년 수원N비뇨기과에서 수사중이라며 의사를 속이고 직원으로 위장하여 저에게 세제주사를 놓았습니다. 2020년 수원 백성병원에서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사가 입원을 유도하여 저에게 링거주사로 세제를 주입했습니다. 수원 새론가정의원에서 경찰이 직원들을 포섭해서 저에게 세제주사를 주입 했습니다. 경찰과 다투거나 항의했거나 경찰과 사이가 안좋은 사람들은 절대 병원에 가지 마세요
와~~ 이런 자료가...... 69년에 수원에서 태어나서 학교다니고 자라고, 지금도 수원근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초등학교(국민학교)때 팔달산 서장대로 소풍 갔었지요..ㅎㅎ 제가 나온 수성중학교 교가에는 '대유평 솔발람에~~' 라고 시작했었는데요, 그 대유평의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어릴때 서호에 놀러 가곤했었습니다. 정말 정말 소중한 자료네요.... 아직 살아계신 어머님(수원에서 80년을 넘게 사셨네요)께 보여드리면, 많이 좋아하실것 같습니다..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장소, 데이트 약속장소로 늘 이용하던 중앙극장 앞.... 이곳이 이렇게 오래된 곳이었군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25년 째 수원토박이 입니다. 매번 행궁동에 가서 성곽들을 만지며 과거의 시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여주시니 너무 신기하네요 너무 익숙한 곳들이 저렇게나 다르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동안 참 많이 변화했구나 싶어요 살면 살수록 너무 매력있는 수원의 모습들을 담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는 수원에서 테어나지는 않았지 만 수원의 옛 모습을 보니 너무나 감 회가 새롭습니다 수원의 여러가지 풍경을 보고 여러가지 관광명소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제 수원이 경기도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고 이제 2022년 1월에 특례 시로되었는데 수원시민 여러분 존 경합니다 그리고 수원시의 발전을 기도합니다 저는 서울토박이입니다 수원시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발 전하는 수원시가 되기를
5:25 1940년에 제작된 수업료라는 최인규감독 영화를 보면 수원 화성지역 화서문, 방화수류정 화홍문(수문)등이 나오는데 이때 이미 성곽 주변에 작은 크기의 1칸 초가 집을 많이 지어 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야외수업씬, 붕어장수씬, 화홍문주변 빨래터씬, 월세받으러 온 집주인씬등에 이미지속의 초가 집이 많이 보입니다. 당시 영화를 거의 수원 화성주변에서 찍어서 30년대말 40년대초의 수원을 볼 수 있는 귀한 영화죠. 물론 이 영화에서는 이 주변에 집이 없었지만(문예봉 등장씬이 바로 이곳) 그당시는 서슬퍼렇던 일정시대였고 해방이후 행정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무허가로 초가를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수원 세류동출생 - 수원남창 24회 - 삼일중학교 - 삼일상고 - 고려대를 나왔습니다. 영상들이 전부 낯설지가 않네요. 나의살던고향 수원. 지금도 시간이날때면 팔달산에 올라가 시민회관-중앙도서관을 거쳐 홍난파선생의 고향의봄 노래비앞에 서서 시내를 내려보며 옛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수원에 2000년대 초반부터 십여년 살았던 사람이고 지금은 떠나있지만 다시 언젠가 수원으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반 수원인입니다. ㅋ 이 영상을 보니 제가 있을때의 수원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련~해지는 감정이 드네요. 이런 좋은 자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구독 누르고 갑니다.
근 50년 수원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정조대왕께서 만드신 화성이 정조 사후 150년 만에 전쟁통에 다 부서져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다시 잘 복원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야겠습니다.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아버지께서 어린시절 수원에서 자라셨을때 어땠을까 상상해봤습니다. 논밭에서 메뚜기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고 하셨겠지요. 몇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저도 수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20년전부터 다른 곳에 살게 되었지요. 20년전 30년전과 너무나 다른 수원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잠시나마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상상해봤습니다. 제게는 그런 수원이니 다른 분들도 수원에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덧붙이자면,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둘레를 산루리(팔단산 둘레)라 불렸답니다. 현재 향교로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식 기관과 신사 학교등이 있었고 수원역 방향으로는 수 많은 일본인 지주들이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수원의 부자들도 많이 살았는데 그 분들중 상당수는 독립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다만 수 많은 사람들이 6.25 전쟁중에 이념의 문제로 돌아가신 가슴 아픈 동네예요.. 썰풀면 한시간인데..
경찰이 2017년 수원N비뇨기과에서 수사중이라며 의사를 속이고 직원으로 위장하여 저에게 세제주사를 놓았습니다. 2020년 수원 백성병원에서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사가 입원을 유도하여 저에게 링거주사로 세제를 주입했습니다. 수원 새론가정의원에서 경찰이 직원들을 포섭해서 저에게 세제주사를 주입 했습니다. 경찰과 다투거나 항의했거나 경찰과 사이가 안좋은 사람들은 절대 병원에 가지 마세요
1:25 20번 국도는 현재는 42번 국도입니다. 현재나 이전에 쓰던 로마자 표기법이 아니라 뭔가 싶었는데, 금양장(용인읍내)보고 알았습니다. Ichon, Yuju는 이촌, 유주가 아니라 이천, 여주겠고요. 10:26 선경도서관 주변에 있던 건물은 법원 건물일 듯 싶습니다.
저도 수원 토박이 입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팔달문 근처 번화가가 그때는 제일 핫한 거리였죠!😂
70년을 넘게 살고있는 수원토박이 입니다~^
이렇게 귀한자료 영상올려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화홍문 방화수류정에서 친구들과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습니다~^ 화홍문 앞 초가지붕 우리집도 보이는 것같고 행궁바로옆 신풍국민학교 다닐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름니다 ~^
도시락 대신 학교에서 강냉이죽 덩어리우유 배급주는것 받아먹고 끼니를 때웠지요 그때 그시절 추억이 그립습니다~^
내 고향 수원의 옛 모습을 올려 주셔서 감사와 감동 입니다. 복원 되지 않은 북문과 동문의 모습을 보니 새롭네요. 국민학교 부터 고교 때까지 무너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자랐죠. 지금은 복원 됐지만 때로는 폭격 맞은 채로의 옛모습이 그리울 때도 있었는데.... 서호는 우리 형이 익사한 곳이라 부모님에 의해 저는 출입금지 구역 이었지요. 형의 유해가 묻힌 곳이 숙지산. 국민학교 입학전 경기도청 기공식에 어른 들 손에 이끌려 구경 갔다 축포 소리에 놀라 전쟁 난 줄 알고 무서움에 떨었던 적도.... 화성의 팔달산 부분에서는 영화촬영도 종종 있었는데 초딩 입학전 할머니랑 나물 뜯으러 갔다가 장군복 입고 소리지르는 배우를 보고 무서워 할머니 손을 잡고 빨리 도망가자 했던 기억도 새롭네요. 서호 장면에서 보이는 작은 산 남쪽이 우리 집인데 거기 까진 안나오네요. 현 아우가 살고 있는 아버지 집은 서장대에서 바라본 서호 앞의 작은 동산 앞쪽에 나오네요. 제가 바로 대유평을 가로질러 수성중학교를 다녔지요. 제가 다닐 땐 송록원이란 나무정원이 크게 있었는데 바로 그 소유주가 영복학원을 설립한 송 영복 옹 이었죠. 대학은 서울 농대. 근데 제가 다닐 때의 모습보다는 훨씬 전 같네요. 추억을 새롭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고향이 그리울 때 자주 볼 듯 합니다. 제가 수원을 떠난 지 40년 . 그 때 수원은 작은 도시라 남문 ( 팔달문) 을 나가면 거의 알만한 얼굴들 이었습니다. 근데 지금은 너무 낯선 얼굴들과 낯선 거리들이 많아서. 차라리 이 영상에서 제 고향을 만나는 듯 합니다. 감사 합니다.
고향은 서울이지만요
수원35년째거주
변두리서울보다
교통도좋고
동서남북
올림픽공원
효원공원
매탄공원
나혜석거리
월화원ㅡ
광교호수공원
일월호수공원
서호저수지
대장금촬영소ㅡ화성행궁
화성ㅡ유네스코문화재
남문ㅡ리틀
인사동거리비슷ᆢ
화홍문
리틀청계천
ㆍ
산책로
신분당선
분당선
KTXㅡ
GTX개통예정
서울
강남
잠실
사당
교통도좋고
문화시설좋고
Good입니다
댓글 보니 수원 고향 분들 의 이야기가 정감 이 갑니다. 낫고 자라고 늘 걷던 길들이 보여 감회새롭네요.
와 이건 진짜 대박이네요. 어디서 이런 귀한 자료를 구하는지 와 … 익숙한 수원의 옛모습을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수원토박이 입니다. 얼마전에도 팔달문앞에 놀러갔었는데 이렇게 옛모습을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팔달문처럼 큰 랜드마크가있으니 그걸 기준으로 기억될수있어 참 좋네요. 수원에살고있어 자랑스럽습니다
도시에 이런 랜드마크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죠.
아무래도 팔달문 부근이 중심지고 남문이다 보니 사진도 가장 많이 남아있더군요.
팔달문 사진만 가지고 영상 하나 만들어볼까 궁리중입니다^^
수원을 거꾸로 하면 원수
@@맥동날등 뭔소리여
@@pengsubottle 원수는 자고로 대나무다리에서 만나는 법이지요..
경찰이 2017년 수원N비뇨기과에서 수사중이라며 의사를 속이고 직원으로 위장하여 저에게 세제주사를 놓았습니다. 2020년 수원 백성병원에서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사가 입원을 유도하여 저에게 링거주사로 세제를 주입했습니다. 수원 새론가정의원에서 경찰이 직원들을 포섭해서 저에게 세제주사를 주입 했습니다. 경찰과 다투거나 항의했거나 경찰과 사이가 안좋은 사람들은 절대 병원에 가지 마세요
수원 토박이 입니다.
태어나고 자라고 50대 중반 아직까지 수원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 너무 고마운 영상이네요.
와~~ 이런 자료가......
69년에 수원에서 태어나서 학교다니고 자라고, 지금도 수원근처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초등학교(국민학교)때 팔달산 서장대로 소풍 갔었지요..ㅎㅎ 제가 나온 수성중학교 교가에는 '대유평 솔발람에~~' 라고 시작했었는데요, 그 대유평의 모습을 볼 수가 있네요. 어릴때 서호에 놀러 가곤했었습니다. 정말 정말 소중한 자료네요.... 아직 살아계신 어머님(수원에서 80년을 넘게 사셨네요)께 보여드리면, 많이 좋아하실것 같습니다..학창시절 친구들을 만나는 약속장소, 데이트 약속장소로 늘 이용하던 중앙극장 앞.... 이곳이 이렇게 오래된 곳이었군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저는 고양골 맑은정기~ 현재 대유평공원 앞 고양삼거리 등 고양골 지명이 교가에 나왔네요.
옛날 수성중고 다닐때는 1층에 검정기와건물 이었는데 지금도 눈에 아른거리네요
중학교 삼년 후배시네요. 교기기 고등학교도 같아서 육년 불렀어요.
대유평~ 솔바람에~ 기세 좋게 날리는~
진실, 용기, 협동에 뚜렷한 깃발~
오~ 오~ 수성 수성 수성아~
나의 모교여~
졸업한지 30년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반갑습니다
저는 북중과 농고를 졸업한 토박이입니다 ㅡ
와~~ 제가 태어나서 20년간 살았던 고향 마을을 보니 마음이 뭉클하네요.
그 옛날 거리 모습과 남문, 북문, 방화수류정, 화홍문등이 눈에 선하네요.
지금 70이 넘은 나이에 고향 모습을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네요.
너무 감사합니다.~~
옛날 수원을 보니 온통 논밭이었네요... 제 기억에도 밭이 많았습니다.. 70년대 기억이 있는 수원사람..입니다.
감사합니다..
수원에서 태어나오늘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소중하고 귀한모습자료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25년 째 수원토박이 입니다.
매번 행궁동에 가서 성곽들을 만지며 과거의 시대가 궁금했는데 이렇게 자세히 보여주시니 너무 신기하네요
너무 익숙한 곳들이 저렇게나 다르다는 것도 신기하고
그동안 참 많이 변화했구나 싶어요
살면 살수록 너무 매력있는 수원의 모습들을 담아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수원 옛모습 보니 정겹네요 .
소중한 영상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수원에서 나고 자라, 지역에 대한 어떠한 뽐냄이나 자부심을 부리려는 마음이 아니라, 그저 제가 태어나 어울리고 거닐던 도시를 아끼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제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의 정취를 느끼고 알 수 있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수원에서 3년간 고등학교를 다녔고 결혼해서 1년산곳이라 특별히 정이 많이갑니다 1972ㅡ1975 년 감사합니다.
수원 화성이 너무 멋져요
저도 수원 화성 주위에서 살았는데, 참으로 역사지식이 박학하신 것 같습니다. 역사자료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수원
장안문 재건축 할때 저희 할아버지가 대목수였습니다.
화홍문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어요.
수원사람입니다. 전쟁으로 부서진 화성을 복구하고 유네스코에 등재까지 했으니 정말 대단해요. 기록문화와 화성의궤를 남겨준 조상에 늘 감사하고 잇어요
수원은 사랑입니다 제 심장이에요❤
이당시 수원 교동에서 살았읍니다. 이 영상을 보니 너무 감격 스럽습니다 매산국민 학교를 다녔읍니다. 터키 고아원 출신 고아들은~~지금쯤은~~1947년생~~
춘추가 많으시네요. 교동, 매산 국민학교면 시 중심부에서 사셨네요.
아~!젊은날에 그리 많이 오가던 팔달문^^ 익숙한 지명들이 나와 너무 반갑네요 옛일을 추억하게 해줘서 감사합니다~
이 영상이 곧 미래에 수원의 문화유산이 되겠네요. 화성 만큼 소중한 영상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수원에서 테어나지는 않았지
만 수원의 옛 모습을 보니 너무나 감
회가 새롭습니다 수원의 여러가지
풍경을 보고 여러가지 관광명소가
있는 것을 보고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제 수원이 경기도의 중심도시로
발전하고 이제 2022년 1월에 특례
시로되었는데 수원시민 여러분 존
경합니다 그리고 수원시의 발전을
기도합니다 저는 서울토박이입니다
수원시여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발
전하는 수원시가 되기를
저도 서울토박이요.
집안이 그런거지만 그래서 여름방학에 고향 큰집 간다고 하면
부러웠었죠
정말 훌륭한 수원 영상 감사드립니다
5:25 1940년에 제작된 수업료라는 최인규감독 영화를 보면 수원 화성지역 화서문, 방화수류정 화홍문(수문)등이 나오는데
이때 이미 성곽 주변에 작은 크기의 1칸 초가 집을 많이 지어 살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야외수업씬, 붕어장수씬, 화홍문주변 빨래터씬,
월세받으러 온 집주인씬등에 이미지속의 초가 집이 많이 보입니다. 당시 영화를 거의 수원 화성주변에서 찍어서 30년대말 40년대초의
수원을 볼 수 있는 귀한 영화죠.
물론 이 영화에서는 이 주변에 집이 없었지만(문예봉 등장씬이 바로 이곳) 그당시는 서슬퍼렇던 일정시대였고 해방이후 행정력이
느슨해진 틈을 타 무허가로 초가를 지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해 봅니다.
영화 링크 좀...
영화 '수업료' 링크입니다. 간간이 옛 수원의 모습이 나오네요.
th-cam.com/video/XRMI02EXmN4/w-d-xo.html
저희 아버지께서 10:25 관공서같은 건물은 법원과 등기소였다고 하시네요. 제가 태어나고 살아가고 있는 수원의 옛모습을 보니 정말 반갑고 신기하네요. 부모님께도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셨습니다.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선경도서관 자리는 원래 법원이 있던 자리 맞습니다!
와 이렇게도 집단지성이 ㅎㅎ
법원 생각나네...가물가물 했는데...
1967년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수원에 놀러와 팔달문과 달리 문루가 없던
북문(그때는) 석조물 위에 올아가 사진를 찍고 화홍문 방화수류정 그때 그모습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한 사료 잘 봤읍니다.
수원 세류동출생 - 수원남창 24회 - 삼일중학교 - 삼일상고 - 고려대를 나왔습니다. 영상들이 전부 낯설지가 않네요. 나의살던고향 수원. 지금도 시간이날때면 팔달산에 올라가 시민회관-중앙도서관을 거쳐 홍난파선생의 고향의봄 노래비앞에 서서 시내를 내려보며 옛추억에 잠기곤 합니다.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세류동 세류초 삼일중 삼일화공과~~반갑습니다
저는 세류국민학교
삼일중 동창 같네요. 81년 1학년
계산해보니 동창이네요. 반갑네요~~
@@이남희-b4w 중3때 귀신 반이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소중한 자료, 제가 태어나기 이전 자료이며 수원40년 고향인데 새롭기만합니다.
설명이 확실하네요! 많은 노력을하셨군요!
감사합니다^^
영상 잘봤습니다 수원에서 50여년을 살았는데 사진보니깐 위치를 알겠네요...오래전 수원사진 정말 귀중한 자료네요
100년 뒤의 수원도 또다른 모습이겠거니
상상해봅니다^^
너무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설명까지 같이 들으니 훨씬 좋습니다 잘보고 가요
화면을 보니 문득 어렸을적 흥얼거렸던 구전 동요가 생각나네요.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셔지고.....
아마 제 또래의 수원 출신들은 한번 쯤 들어 봤겠지요.ㅎㅎ
수원에 2000년대 초반부터 십여년 살았던 사람이고
지금은 떠나있지만 다시 언젠가 수원으로 돌아갈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는 반 수원인입니다. ㅋ
이 영상을 보니 제가 있을때의 수원 모습과 오버랩되면서 아련~해지는 감정이 드네요.
이런 좋은 자료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하고 구독 누르고 갑니다.
저는 저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왜 저 시절이 그리운걸까요
어릴적 생각이 나내요.. 눈가가 촉촉해지내요
중앙극장 너무 그립네요
수원에 30년 넘게 살면서 초중고를 다 다녔는데 제가 못 봤던 수원을 모습을 볼 수 있네요 영상 감사 합니다
근 50년 수원에 사는 사람으로서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정조대왕께서 만드신 화성이 정조 사후 150년 만에 전쟁통에 다 부서져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그래도 다시 잘 복원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까지 등록되어 참으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잘 보존하고 지켜나가야겠습니다. 소중한 영상 감사합니다.
수원 사람입니다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고 뭉클하네요 ㅠ
진짜 귀한 사진들이네요~~~
수원 신풍초등학교 교정이 안보이는게 아쉽네요..... 참 귀한 자료입니다... 감사합니다.
지금의 선경도서관 자리라고 잘못 설명한 벽돌건물들이 신풍초교 같은데요.
@@iuplv233 법원자리에요...그건 제 친구 어머니께서 법원에서 식당을 하셔서 두어번 가봤어요...
아주아주 오래전이네요...화령전 바로 옆이 신풍국민학교 후문이거든요...
수원토박이인데 진짜 재밌게 보고 갑니다. 영상 감사드려요!
제가 17년간 살았던 수원 본가는 지금도 수원이지요..너무나 감사한 자료 감사합니다.
물어본사람?
돌아가신 아버지와 서호에서 낚시하던 때가 생각 납니다. 옛날 서호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소나무도로는이목리나의고향옛날이 그리워지네요
43년째 토박이고 어머니부터면 70년째 토박이입니다...같은 신풍초입니다 귀한자료 감사합니다
수원토박이로서 . 영상잘보구갑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
지리는 영상이다.
좋아요 구독하고 갑니다~
좋은 자료네요.
20여년째 수원과 인연이 있는 부산 출신 사람이지만 예전의 수원 모습을 보니 참 신기하네요. 화성이 전쟁 중에 많이 파손되어서 복원이 된 거였군요. 잘봤습니다
아주 귀한 자료, 영상 잘 봤습니다.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네요
아버지께서 어린시절 수원에서 자라셨을때 어땠을까 상상해봤습니다. 논밭에서 메뚜기도 잡고 미꾸라지도 잡고 하셨겠지요. 몇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께는 항상 미안한 마음 뿐 입니다. 저도 수원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20년전부터 다른 곳에 살게 되었지요. 20년전 30년전과 너무나 다른 수원의 모습에 서운한 마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상을 보면서 잠시나마 아버지의 어린시절을 상상해봤습니다. 제게는 그런 수원이니 다른 분들도 수원에서 행복하셨으면 합니다.
귀한 사진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가 수원 토박이입니다.
선경도서관 자리는 법원이었을겁니다 제가 어렸을때 거기 살았었는데
구 법원이라고 불렀거든요 ㅎ
돌아가신 저희 아버지가 화서문쪽에 움막짓고 사셨다고 그러셨었는데
사진을 보니 정말 맞네요
수원법원이 현 선경도서관자리로 옮긴 때는 1972년9월 입니다.(옮기기전에는 현 아이파크미술관뒤 신풍동221-3에 있었죠)그러다 1984년12월에 원천동으로 다시 이사갔습니다.
수원살기 10년째인데 흥미있게 잘봤어요.
수원 참 살기 좋은곳이죠.
수원 사람들이라면 이 영상 감동받았을듯
수고하셨습니다..😁
경기도청을 수원으로 데리고 온게 신의 한수네요~
할머니 할아버지때부터 수원에 사는 20대 수원 토박이인데 저 당시에 저기 사셨던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어머니가 대단하다고 느껴지네요...할머니는 수원비행장에서 세탁소 하셨고 할아버지는 기차기관사셨다고 했는데...
전쟁통에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졌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딱 맞네요 ~~ 고맙고 반가운 마음에 구독 누릅니다.
저도 그말 토시하나 틀림없이 기억합니다ᆢ많은세월 격으셨으라 짐작되네요 좋은영상 공감합니다
저도 어릴때 할머니께 들었던기억이있어요~~ 그말이 무슨말인가 했는데~영상을보니 알겠네요~^^
북문 반쪽 날아가고 동문 모자 벗겨짐 ㅜㅜ
수원사는 사람이라 관심있게 봤네요
귀하고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세류동에서 태어난 창현고 3회 졸업생입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창현고 11회 졸업생입니다.
헐 6회 입니다. ㅎㅎ 세류동에도 오래 살았네요
제가 태어나기도전 새롭네요.팔달문 남아 있어서 다행이네요
중앙극장... 나 초딩때까지도 영화보러 갔었는데... 초딩때 서울로 이사갔다가 제대하고 수원 돌아와보니 지금은 미용실 있더라.
중동사거리 사는데 옛날 모습 정말 신기하네요.
올해 수원을 떠나 옆도시로 이사 왔지만 고향수원은 언제나 사랑입니다❤
수원에서 태어나서 예전 모습을 보니 너무 좋네요
덧붙이자면, 수원 화성을 중심으로 둘레를 산루리(팔단산 둘레)라 불렸답니다. 현재 향교로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식 기관과 신사 학교등이 있었고 수원역 방향으로는 수 많은 일본인 지주들이 살았습니다. 그 와중에 수원의 부자들도 많이 살았는데 그 분들중 상당수는 독립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다만 수 많은 사람들이 6.25 전쟁중에 이념의 문제로 돌아가신 가슴 아픈 동네예요.. 썰풀면 한시간인데..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 서문은 서있고
동문은 도망가고, 수원에 성 사대문을 6.25 전쟁후
전해지고있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쓴글과 상태가 같았읍니다.
수원 토박이로서 수원역사의 현장을 보여주셔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희귀영상 감사합니다
소중하고 그리운 기억입니다 ~~
90년대 남문 중앙극장 앞에 사람들 미팅 많이 했었고 최신영화 개봉은 모두 중앙극장에서 했었지
그때는 남문만 나가면 사람들 바글바글했는데..
수원에서 30년 이상 산 사람으로서 그냥 이영상자체가 감사하네요
38년 수원 토박이 입니다. 팔달문이랑 장안문 빼고는 다 달라졌네요 ... 현수원사람이 봐도 저때랑은 너무 바꼈네요 ..
1968년부터 그나마 지금의 수원이랑 비슷해지기 시작했네요 ...
제 어머니께서 어린 시절에 수원 화서동과 세류동,권선동 일대로 이사하신 이후 외할머니께서 종종 옛 수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지만 모두 80년대 이야기였습니다. 이제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수원 토박이로서 상상도 못할 옛날 모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넘나 잘 보고 갑니더
감사합니다. 아버님이 좋아하시겠네요..
감사합니다. 혹시 아버님께 예전 수원에 대한 이야기 들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장안공원 공사 할 때 거기서 흙장난하던 인간이 전데요. 당시 사진을 보니까 감회가 새롭습니다 ㅎㅎ
저도수원에서태어나신풍초등하교다녀는데넘감격스럽네요
전쟁으로 수원성이 많이 파괴되었었군요.. 옛 그림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합니다
수원 토박이입니다 ,, 어느정도 공감가고 집안에서 들었던 이야기네요 ㅠㅠ
허 헐 이런 영상이 있을꺼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감사 감사...
어릴적에 흑인미군에게 give me chocolate !!하였는데.... 웃으며 주던기억이 나는데....
지금 살고 있는 수원의 근대사를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달픈 시절 어떻게 지내오셧는지요 선조님들
내고향 수원
어린시절 생각이 새록새록
26년 전 제가 수원에서 태어나고 지금도 살고 있는데 11:54 이 부분은 진짜 소름 돋네요!! 제가 숙지산 근처에 살고 있는 데 예전에는 온통 논 밭이었군요 ㄷㄷ 90년대 수원도 보고 싶어요 어른들 말씀으로는 제가 사는 동네는 그때도 논밭이었다는데 ㅎㅎ
수원화성 답사를 몇번 갔었는데 그때는 주변 모습을 보면서 그냥 수원시내려니 했지요.
화서문밖이 허허벌판이었다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사진으로 보니 정말 엄청나게 변했네요.
그리고 지금도 변화중^^
경찰이 2017년 수원N비뇨기과에서 수사중이라며 의사를 속이고 직원으로 위장하여 저에게 세제주사를 놓았습니다. 2020년 수원 백성병원에서 경찰의 지시를 받은 의사가 입원을 유도하여 저에게 링거주사로 세제를 주입했습니다. 수원 새론가정의원에서 경찰이 직원들을 포섭해서 저에게 세제주사를 주입 했습니다. 경찰과 다투거나 항의했거나 경찰과 사이가 안좋은 사람들은 절대 병원에 가지 마세요
삼일공고 출신 입니다 옛날 생각 나네요
중앙극장 앞이 데이트 하는 연인들 만남의 장소 였는데 ^^♡
05년생 수원토박이인 사람으로서
수원의 역사 잘 알아갑니다~~
그냥 여기가 어디다가 아니라 수원사람에게는 익숙한 화성을 기준으로 설명하니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확 체감됨
수원여고를 거쳐 아주대 나온 미국 아줌마 입니다. 남문옆에서 오랜동안 살았던.... 다기억나는 사진이네요.
남문이면 백내과 진흠이형 수흠이형 아시나여
이안과 정연이 아시나여
수원여고 정모임 아시나여?
@@박데니스-e5q 아뇨. 30년 됩니다 한국 에서 떠난게
헬로우?
1:25 20번 국도는 현재는 42번 국도입니다. 현재나 이전에 쓰던 로마자 표기법이 아니라 뭔가 싶었는데, 금양장(용인읍내)보고 알았습니다. Ichon, Yuju는 이촌, 유주가 아니라 이천, 여주겠고요.
10:26 선경도서관 주변에 있던 건물은 법원 건물일 듯 싶습니다.
지금은 서문(장안문) 주변이 정비도 되고 한때는 갈비 축제도 열고 그랬죠
불과 90년대초까지만 해도 서문 주변에 주택도 많았고 주변이 정신 없었는데
이렇게 소중한 자료를 보니 유네스코 문화 유산에 등재된 화성이 너무 자랑스럽네요 ^^
저는 신풍동 토박이~
현재 선경 도서관은 . 법원이었어요
저희집 옥상에서 보면 법원 내에 있는 화약고? 와 테니기스장이 보였었어요~~
행사일엔 서장대에서 불꽃놀이 하면 저희집 마당위에 쏟아지듯 멋졌었죠~~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요~
오.. 팔달문 회전교차로가 저때부터 있었구나..
버스 모양도 예쁘네요
수원에서 1980년부터 40여년을 살고 있는데, 감회가 새롭습니다. 남문 제화점에서 구두 맞췄던 기억도 나는군요... 미당 서정주님과 또래 친척인 국어/한문 선생님에게 검정고시할 때 배운 기억도 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