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10세이상의 초등학생들이 지금은 70세가 넘은 우리 부모님들이네요.. 부모님은 항상 어른인줄알았고 당연히 날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그들도 저렇게 해맑고 연약한 어린아이였음을.. 그리고 너무나 힘든 시절을 버텨내고 어른이 되어 날 낳고 키우며 악착같이 버텨내고 버텨왔음을.. 엄마 아빠.. 못나고 무뚝뚝한 아들은 여기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요. 키워줘서 고마웠어요 사랑해.
엄마가 55년생, 아빠가 51년생이신데 영상속 어린아이들 모습이 엄마아빠 모습이었겠네요 ㅎㅎ 우리 엄마아빠가 저렇게 뛰어놀며 컸겠구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저렇게 입고 저렇게 일하며 우리 엄마아빠 키우셨겠구나 싶어져서 기분이 참 묘하네요^^ㅎㅎ 출근길에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어요. 신기하고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70년대 초 제가 다니던 지방 군 소재 국민학교에도 굶고 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 1964년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남들 도시락 먹을 때 운동장 한쪽 구석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네요. 도시락을 나눠주어도 한사코 안 먹겠다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창피했었던 것 같고. 친구들아,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기를...
와 내 아주 어렸을때네 다는 기억못하지만 저떄의 분위기 기억난다 난 대흥동 과 노고산동 (이대반대편)에서 살아서 서강대와 숭문중고쪽이 기억에 파편처럼 남아있다 정말 좋은 시절 ..맑은공기 순박한 사람들 널찍널찍한 모든것 한산한 거리 그리고 흙길 .... 나를 장손이라고 그리 아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 10년도 넘게전 돌아가신 불효만해 죄송한아버지 그리고 지금 90대의 아프신어머니와 모두함께 그옜날 4이 같이 살던 대흥동의 낡은 판자집이 눈물겹게 그립네 .... 감사합니다
그때도 인정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약간 미화된 것 같아요.. 저때는 신분제 없어진지 70년 정도 지난 때라 돈 없고 걸인이면 무시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그리고 한국이 일어선건 한국인이 손과 발이 된건 맞지만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불가능했죠.. 그리고 초기 1대 기업인들과 박정희 대통령 등...
요즘 북한 거리 영상 같은데, 다른 점은 대부분 사람들이나 거리에서 그래도 긍정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미소 품은 어린 모습, 뭉클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의 한편, 주인공 못지 않은 엑스트라도 많으시겠지요.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무고하게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66년식입니다..어릴 때 부산집에서 고무신,병들을 모아서 드리고 엿바꿔 먹었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엿치기,구슬치기,딱지치기,다망구,오징어,구멍치기,술래잡기..아침에 나가서 어둑어둑 해질무렵 집에 오면 밥도 안묵고 댕긴다고 꾸중들었네요..초등학교 들어가서도 글자를 몰라서 손바닥도 많이 맞아봤네요.. 그러다가 친구들따라 만화방에 갔다가 너무 재밌어서 겨우 한글을 뗏네요 ㅎㅎ...겨울에는 줄마타기도 재밌었고, 동전치기, 짤짤이,팽이치기,축구,야구 등등.. 어릴 적 친구들이 그립네요..😅
필리핀이 한국보다 잘 살던 시절은 1950.60년대초였구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성공으로 경제가 1960년대 후반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74년도 아시안게임을 개최할려고 하였지만 유류파동과 재정문제로 포기하였고 1974년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죠 1969년대부터 북한경제를 앞서기 시작하고 이제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정권은 1970년대 초 주도적으로 남북통일문제등을 북한에 제의하던 시기이도 합니다 1971.2.3년도에 경제발전으로 중산층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1975년도에는 백색가전( 흑백tv.선풍기.냉장고)이 대중화 됩니다 그리고 1977년도 수출100억달러 국민소득1000달러를 달성홤으로써 중진국 상위권으로 도약합니다 이미 필리핀하고는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76년도에 뉴스위크지에 한국과 한국인이 몰려온다 제목으로 표지에 실렸습니다 75년도에는 아시아 4마리용(호랑이)불렸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박정희정권은 60년대말 포기했던 아시안 게임과 올리픽개최권을 얻기위해 79년도 올림픽개최권 경쟁에 뛰어듭니다 81년 바덴의 기적으로 선진국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는 계기를 만듭니다 1970년대 후반 80년대중반의 한국의 나라별 gdp규모는 22위에서 16위정도였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되었기에 올림픽개최할 역량이 되었던 것입니다 팩트 필리핀은 한국보다 잘 살았던것은 1960년초였고 그 차이는 없었다 70년대부터 필리핀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1:18 남산 야외음악당건물(구조물) 무대위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면 소리가 메가폰처럼 앞쪽으로 크게 들리는 구조물 비슷한 형태의 야외음악당이 1973년 개장한 어린이대공원에도 있었죠. 8:56 실제의 거리는 저렇게 어둡지 않았겠죠. 네온사인이나 형광등 조도가 상당히 높은데 쇼윈도우 형광등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잘안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영상을 촬영한 카메라의 렌즈가 어두운 렌즈(아마도 F값이 높은)였을 것이고 사용한 필름도 감도가 주간용 ASA100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야간용(저조도용 고감도 필름) ASA200이상을 사용했다면 저 보다는 밝게 나왔겠죠. 사진전공이나 입문해 보신분들은 금방 알아차리셨을 듯. 요즘 디지털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의 이미지센서(필름에 해당) 감도를 수동으로 ISO를 100 - 18000 원하는 데로 조정할 수 있지만 저시절 필름 촬영기는 미리 필름감도를 선택해 카메라에 장착해야 했고 그나마 ASA100 - 400범위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ASA100이상은 일반인들이 구하기도 힘들었죠. 낮(DAYLIGHT)에 ASA100으로 거리를 찍다가 남겨진 필름으로 밤에 찍어서 저런 실제보다 많이 어두운 영상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네온사인의 광고로 미루어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가는길 왼편에 있던 큰 네온사인이었던것 같고 나머지는 명동 충무로 일대로 보입니다.
@@qodjwmdjakdkwk2192 실제 옛날 가로등이 좀 더 밝은 느낌이 있긴 합니다. LED 등의 특성때문인지 요즘 가로등은 밝긴 한데 주변 광량은 오히려 좀 어두운 듯한 느낌이 있더군요. 아마 필름 감도랑 렌즈 조리개 값 등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어둡게 찍힌 걸 겁니다.
저때 아이들은 하나같이 코찔찔이들,,요즘은 없는걸보면 영양이 부족해서 그랬을거같네..그시절 어른들은고생이 심하셨고 덕분에 요즘은 배부르게 살게 되었네요 이 좋은세상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이 좀 더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정적인 부분에만 몰입애서 좋은것을 알까 ,,고마워할까싶네요
남산야외 음악당 대학재학시 시간나면 돈은 없고 돈이 없으니 갈곳이 없지 음악당 가서 돌아다니다가 서울역 남대눈쪽 으로 돌다가 밤에 서울역 건너에 노상에 카바이트불켜놓고 길에 죽늘어놓고 파는 책들 구경하다가 늦게 하숙집 들어왔던 생각이 새삼 나네요 그땐 형편이 어려운 집집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그땐 고생인줄 몰랐지요
세계 최 빈국에서 지금이니 얼만나 죽어라 일했겠나~~ 그래서 지금이 있지만~~ 뭐 ~~ 그시대에 자란 자식들은 어찌보면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자란 자식들이 별로 없을것이다~~ 돈벌기 바빠서 아침일찍 출근 저녁 늦게 퇴근~~ 일만 하다간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난해도 그래도 그 때는 정말 정이 있었는데~~~
저기 10세이상의 초등학생들이 지금은 70세가 넘은 우리 부모님들이네요.. 부모님은 항상 어른인줄알았고 당연히 날 위해서 희생해야만 하는 존재인줄 알았는데.. 그들도 저렇게 해맑고 연약한 어린아이였음을.. 그리고 너무나 힘든 시절을 버텨내고 어른이 되어 날 낳고 키우며 악착같이 버텨내고 버텨왔음을.. 엄마 아빠.. 못나고 무뚝뚝한 아들은 여기서 사랑한다고 말하고 가요. 키워줘서 고마웠어요 사랑해.
굶기을밥먹듯이할때네요,3일을굶어던니세상이노라겧보이네
70대들은 그딱 고생 안했습니다. 80대,90대들이 고생했죠. 빡세게,악착같이...일하고,재산을 만들고만 사셨기에...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성장할수없었던 세대들... 자녀들 굶주림에서 벗어나게는 했지만...정신적으로 이렇다할 자산을 남겨줄수없었던 세대들이였고.... 그 부작용을 지금 우리와..우리의 자손들이... 겪고있습니다.
@@air5210전쟁 치른 분들은 당연히 고생하셨고
60~70대들도
고생하셨습니다.
수출의 역군은 그냥 된게 아닙니다.
공장에서 일하면서 여공들이 돈을 아끼려고 매일 라면만 먹다가 위에 구멍난 뉴스는 안보셨나보네요~
@@air5210
무슨 부작용?
너무 풍족해서 일하기 싫어?
@@air5210
부모세대가 직접 몸으로 보여준 근검절약 정신도 큰
정신적 자산입니다.
행색은 누추하지만 모두들 눈빛이 살아있네요. 힘들고 모진 세월 어렵게 헤쳐나가시던 어르신들께 감사드립니다.
↑🏆
화질이 엄청 좋네요. 어제 일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선명..어른들은 고난스러워도 지금보다 훨씬 순수했던 아이들의 미소가 마음을 녹이네요.
영상 보면서 옛날을 추억합니다. 당시 8살,9살 이었던 나 와 친구들 . 지금은다 어디서 무얼허는지? 해외살면서 그때가 잠시 그립습니다.
엄마가 55년생, 아빠가 51년생이신데 영상속 어린아이들 모습이 엄마아빠 모습이었겠네요 ㅎㅎ 우리 엄마아빠가 저렇게 뛰어놀며 컸겠구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저렇게 입고 저렇게 일하며 우리 엄마아빠 키우셨겠구나 싶어져서 기분이 참 묘하네요^^ㅎㅎ 출근길에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르겠어요. 신기하고 귀한 자료 감사합니다~
64년,,9살 국민학생(초등생)이었습니다 ,,,
지금은 70을 바라보는 촌로,,,,
아련한 기억 속에 그 날을 보니
강물처럼 흐른 세월이 ,,,
살과 같았음을
이제 겨우 알 나이가 됩니다!!!
귀한 영상 ,고맙습니다!!!
저 국민학교 1학년 때 서울이 저랬군요. 저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서울에 갔었지요. 그때 전화기를 받을 줄 몰라 거꾸로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저도 64년생입니다. 귀한 영상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월이면 제가 태어나기 한 달전입니다.^^❤
70년대 초 제가 다니던 지방 군 소재 국민학교에도 굶고 다니는 애들이 많았는데, 1964년은 얼마나 더 힘들었을까요. 남들 도시락 먹을 때 운동장 한쪽 구석에 모여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네요. 도시락을 나눠주어도 한사코 안 먹겠다던 아이들이 있었는데, 어린 마음에도 그게 창피했었던 것 같고. 친구들아, 지금은 다들 잘 살고 있기를...
70년대 말에도 굶고 다니고 점심도시락도 못 싸오는 친구들 많았어요..벽지깡촌시골 골짜깊문명의 혜택도 옳게 덛자못하고...올굴엔,못먹어 깡마르고 버짐이 가득...ㅠㅠ
한국은 88 올림픽이후로 점심 굶는 학생들이 없어졌습니다.
쉰김치만 싸주는 엄마 때문에...위장병에 걸렸지...
와 내 아주 어렸을때네 다는 기억못하지만 저떄의 분위기 기억난다
난 대흥동 과 노고산동 (이대반대편)에서 살아서 서강대와 숭문중고쪽이 기억에 파편처럼 남아있다
정말 좋은 시절 ..맑은공기 순박한 사람들 널찍널찍한 모든것 한산한 거리 그리고 흙길 ....
나를 장손이라고 그리 아끼시던 돌아가신 할머니 10년도 넘게전 돌아가신 불효만해 죄송한아버지 그리고 지금 90대의
아프신어머니와 모두함께 그옜날 4이 같이 살던 대흥동의 낡은 판자집이 눈물겹게 그립네 ....
감사합니다
60년대생입니다. 부모님, 선배님들의 노고에 감사합니다. 지금의 여느 제3세계 도시의 모습보다 초라했던 시절이네요. 그래도 가난속에서도 청결을 유지하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에서 훗날 선진국의 싹이 보이네요.
70년대생입니다. 선배님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네요. 다 같이 못 살았던 시절, 그러나 인정이 넘치는 시절이었죠. 한국인들이 정말 대단한 민족임을 실감해요. 이렇게 천지개벽할정도로 발전한 대한민국
그때도 인정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약간 미화된 것 같아요.. 저때는 신분제 없어진지 70년 정도 지난 때라 돈 없고 걸인이면 무시하는 사람들 많았어요.. 그리고 한국이 일어선건 한국인이 손과 발이 된건 맞지만 미국의 원조가 없으면 불가능했죠.. 그리고 초기 1대 기업인들과 박정희 대통령 등...
@@t89.7musd7skejf-딸뻘되는 여대생끼고 술쳐먹다 총맞아 죽은놈 얘기는 꺼내지말자...
김승옥 작가의 소설 "서울 1964년 겨울" 의 실제배경 이네요. 소설 읽을때 머리로 상상만 했는데 이렇게 귀한자료 제공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금의 60대 70대 부모님들 너무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초등2학년때네요
그때 미군들이 찝차타고다니면서 주머니에있던 껌쵸코렛을 주던것을기억합니다
헬프미 쵸코렛~하면웃으면서주던미군아저씨들
감사합니다
요즘 북한 거리 영상 같은데, 다른 점은 대부분 사람들이나 거리에서 그래도 긍정 기운이 느껴진다는 거.
어려운 환경 안에서도 미소 품은 어린 모습, 뭉클 합니다.
우리 나라 역사의 한편, 주인공 못지 않은 엑스트라도 많으시겠지요.
모든 분들 건강하시고 무고하게 잘 지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진짜 지금 북한이 60년대 한국과 같은 상황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현재 북한과 다른것은 아이들의 활짝웃는 표정과 북한 사람들처럼 삐쩍 마른 사람들은 보이지가 않다는 것이네요.
무슨 북한에 비교 합니까.
북한이 우리와 비교 상대인 나라인가요?
이거 보면 정말 우리나라 기적
기적은 맞지 , 근데 너무 성공에만 집착한 나머지 이제는 오로지 돈이면 다 된다는 야박한 세상이 되었다, 사기꾼이 득실한,,,,,,,,,,,,,,,,
저시절이 그립고 어쩌구 하지만 실제로 돌아가서 살라면 단 몇일도 살기 힘들죠 지나간거 그리워 말고 지금 즐기고 삽시다. 이또한 지나가면 그리워질테니
7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으로, 70년대까지 저 영상의 느낌이 남아있었다. 서울 곳곳에 판자촌, 비포장 도로, 누런 코 흘리며 노는 아이들. 아련하다.......
백년전님, 더위에 수고많으세요.
오늘도 귀한 영상, 감사히 잘 볼게요.^^
연이은 무더위(열대야)에 늘 건강조심 하시고, 편안한 밤되세요~ 🥰👍
항상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영상 만들겠습니다.
이런 귀한 영상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신기합니다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야~~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와 좋은 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발전시켰군요~~
국민이 부지런해서 그런 겁니다.
아프리카는 대통이 아무리 유학을 다녀온 사람이래도 국민이 그러니 지금 나라들 꼴을 봐요.
국민이 똑똑하고 대단한 우리나라 입니다.
@@Yout-hggg55 국민이 아무리 똑똑해도 자본이 없으면 이 정도로 빠르게 현재의 모습으로 발전되는 건 불가능. 미국과 일본의 유/무상 원조가 아니었으면 불가능. 이건 인정해야 함.
1:10 남산야외음악당입니다. 어릴적 남산에 올라가면 저 야외음악당이 웅장한 최신시설이었는데, 지금 보니 참 볼품 없이 초라하네요.
그래도 잊혀졌던 추억의 장소를 다시 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롭네요.
그러네요. 70년도에 국민학교 수학여행가서 남산야외음악당, 남산식물원, 어린이회관 등을 구경했지요.
창경원에도 가고 그랬는데 참 세월이 많이도 흘렀습니다..
아 전차는 직전에 없어져서 못봐서 아쉬웠지요..
건강하십시오..
그러게요. 저도 70년대 즈음에 가봤던 장소인데 그때는 커보였는데 지금보니 되게 초라해보이네요.
저거 지금도 있나요?
백년전tv님...
언제나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건강 유의하세요...너무 👏👍👏
66년식입니다..어릴 때 부산집에서 고무신,병들을 모아서 드리고 엿바꿔 먹었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엿치기,구슬치기,딱지치기,다망구,오징어,구멍치기,술래잡기..아침에 나가서 어둑어둑 해질무렵 집에 오면 밥도 안묵고 댕긴다고 꾸중들었네요..초등학교 들어가서도 글자를 몰라서 손바닥도 많이 맞아봤네요.. 그러다가 친구들따라 만화방에 갔다가 너무 재밌어서 겨우 한글을 뗏네요 ㅎㅎ...겨울에는 줄마타기도 재밌었고, 동전치기, 짤짤이,팽이치기,축구,야구 등등.. 어릴 적 친구들이 그립네요..😅
네 맞아요
말띠시네
태어나기 전인데 왜이리 마음이 아련할까요
저는 지금 필리핀에 지내고있습니다 이영상을보고 60~70년대 마닐라 영상을보니 비교가 안될만큼 필리핀이 잘살더군요 참으로 대한민국이 어떻게 선진국이 되었는지 다시한번 대단하고 자랑스럽게 우리 대한민국이란걸 느끼게됩니다
저당시는 필리핀이 아시아 2위 경제대국 아니었나요?
↿⏫
@@류원호-s5cㅇㅇ 아니야
1인당 국민소득은 필리핀이 아시아에선 높았던적 있었지만,
국가 전체 gdp는 언제나 일본, 중국, 인도가 아시아에서 탑이였음.
ㅎㅎㅎㅎㅎ
필리핀이 한국보다 잘 살던 시절은 1950.60년대초였구요 박정희 정권의 경제개발5개년 계획 성공으로 경제가 1960년대 후반 비약적으로 성장하여 74년도 아시안게임을 개최할려고 하였지만 유류파동과 재정문제로 포기하였고 1974년도 이란 테헤란에서 열리죠 1969년대부터 북한경제를 앞서기 시작하고 이제 자신감을 얻은 박정희정권은 1970년대 초 주도적으로 남북통일문제등을 북한에 제의하던 시기이도 합니다 1971.2.3년도에 경제발전으로 중산층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1975년도에는 백색가전( 흑백tv.선풍기.냉장고)이 대중화 됩니다 그리고 1977년도 수출100억달러 국민소득1000달러를 달성홤으로써 중진국 상위권으로 도약합니다 이미 필리핀하고는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76년도에 뉴스위크지에 한국과 한국인이 몰려온다 제목으로 표지에 실렸습니다 75년도에는 아시아 4마리용(호랑이)불렸고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으로 전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박정희정권은 60년대말 포기했던 아시안 게임과 올리픽개최권을 얻기위해 79년도 올림픽개최권 경쟁에 뛰어듭니다 81년 바덴의 기적으로 선진국으로 뛰어드는 마지막 열차에 탑승하는 계기를 만듭니다 1970년대 후반 80년대중반의 한국의 나라별 gdp규모는 22위에서 16위정도였습니다 경제적 기반이 되었기에 올림픽개최할 역량이 되었던 것입니다 팩트 필리핀은 한국보다 잘 살았던것은 1960년초였고 그 차이는 없었다 70년대부터 필리핀하고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한국은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류원호-s5c 잘못 알고 계시는 겁니다 필리핀이 한국보다 잘 살았던 시기는 50.60년초였구요 국민소득도 별차이 없었습니다
영상속에 나오는 해맑은 아이들이 지금은 누군가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어 손주를 보고있겠네요..
60년 전..ㅎ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엿장수 멋있다 포스가장난아니네 ㅎㅎㅎㅎ
우리 엄마 아빠 할머니 삼촌들이 저렇게 지내왔다고 생각하니 제 어렸을적과 별차이 없는거 같기도 하고 많이 차이나는거 같기도 하고 ㅎㅎ 저시대를 살아오신 선배님들 존경스럽습니다
베리 굿!
정말 값진 영상
너무 감사해요
빈곤해도 표정들이
너무너무 평안해 보이네요 정겨운
인간미가 있어 행복
합니다 고맙습니다
이때는 동대문근처에서 벽돌도 손으로 만들고,청계천옆에는 매일 시골에서상경해서 천막집짖는수가 폭발할때,큰비내리후엔 천막집이밤새 엄청떠내려감. 그러나 지금의한국은위대하다.
구독 했습니다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를 볼수있어서 뜻깊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멋쟁이아저씨그시절엿파실분이아니듯.새록새록합니다.영상감사합니다😊😊🫡🎶
제가 생후 6개월 전후 사진이군요. 서대문 홍제동이 고향인데...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64년 용띠 서대문 연희동 입니다😊
64년생으로 홍제동 안산국민학교 졸업 하고
서대문 중학교 졸업 했는데
혹시 우리 동창생 아닌가?
꿀꿀이 운동장에서 자전거 빌려
타면서 놀거나 사직공원에서 롤러 스케이트 탔으면 우린 친구야 ㅋㅋ
귀한영상감사합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1:18 남산 야외음악당건물(구조물) 무대위에서 연주나 노래를 하면 소리가 메가폰처럼 앞쪽으로 크게 들리는 구조물 비슷한 형태의 야외음악당이 1973년 개장한 어린이대공원에도 있었죠.
8:56 실제의 거리는 저렇게 어둡지 않았겠죠. 네온사인이나 형광등 조도가 상당히 높은데 쇼윈도우 형광등 바로 옆에 있는 물건도 잘안보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 영상을 촬영한 카메라의 렌즈가 어두운 렌즈(아마도 F값이 높은)였을 것이고 사용한 필름도 감도가 주간용 ASA100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야간용(저조도용 고감도 필름) ASA200이상을 사용했다면 저 보다는 밝게 나왔겠죠. 사진전공이나 입문해 보신분들은 금방 알아차리셨을 듯. 요즘 디지털SLR이나 미러리스 카메라의 이미지센서(필름에 해당) 감도를 수동으로 ISO를 100 - 18000 원하는 데로 조정할 수 있지만 저시절 필름 촬영기는 미리 필름감도를 선택해 카메라에 장착해야 했고 그나마 ASA100 - 400범위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ASA100이상은 일반인들이 구하기도 힘들었죠. 낮(DAYLIGHT)에 ASA100으로 거리를 찍다가 남겨진 필름으로 밤에 찍어서 저런 실제보다 많이 어두운 영상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네온사인의 광고로 미루어 서울역에서 남대문으로 가는길 왼편에 있던 큰 네온사인이었던것 같고 나머지는 명동 충무로 일대로 보입니다.
저정도까지일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실제로 지금보다 훨씬 어둡긴했죠 ㅜ
@@qodjwmdjakdkwk2192 실제 옛날 가로등이 좀 더 밝은 느낌이 있긴 합니다. LED 등의 특성때문인지 요즘 가로등은 밝긴 한데 주변 광량은 오히려 좀 어두운 듯한 느낌이 있더군요. 아마 필름 감도랑 렌즈 조리개 값 등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어둡게 찍힌 걸 겁니다.
@@hangap2118 가로등보단 네온사인이 훨씬적어서 전체적인 길거리가 어두운 느낌이 강했던거같습니다 .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실제보다 어둡게 찍혔을거같네요 저정도면 야맹증인 사람들은 거의 맹인수준으로 다녔어야할거같아서 ㅋㅋ
살아보지 않음에도 아련한 감동 이
요즘 살기 힘들다는 젊은세대는 저기가서 20년 정도 살고 오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부모님 세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그건 꼰대 마인드지.. 당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젊은이들이 늙은 사람들 안 좋아함.
@@레이키-p4i 안늙었는데 뭔소리?
요즘 덥다고 하시는 분들은 아프리카가서 20년정도 살고 오세요.
너는 천년만년 청춘일거라 생각하는건 아니것지~~썩
을 왜 ~급발진함@@레이키-p4i
무슨 뚯인지 이해 됩니다 님아
1963년에 삼성에서 비료 공장을 만들면서 비로소 배고픔이 해결됐고요
비료가 생산되기 전에는 곡식 수확량이 너무 적어서 굶는게 일상이었데요
맞습니다.
그땐 마을에 비료 몇 포대를 면사무소에서 주면 주민들이 다 모여서 작은 바가지로 나누었던 기억이 납니다.
삼성이 사카린 밀수 해오다 잡혀서 삼성의 한국비료 정부에 헌납하고 그 이후에 비료가 좀 흔해졌지요.
56년 생입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가물가물한 기억속에 남산 야외 음악당 그 시절엔 멋진 공연무대였었어요^^
항상 건강하세요.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 15살때,
북에서 업혀 피난나와 어머니 여의고 소년가장 되신지 2년차때..
찢어지게 가난해 새벽에 신문 우유배달 하고 낮에는 공부하느라 살려고 몸부림 치시던 시절..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버지..
와 지금 우리나라 발전한 거 보면
진짜 우리나라 사람들 대단하다!
자랑스럽네요!
잘 보고갑니다.
감사합니다.
와 정말 귀하고 오래된 영상이네요. 아스팔트 개념이 자체가 별로 업던 시절 흙바닥을 걷고 겨울에는 연탄재 바닥에서 걷던 시절.
내가 태어난 64년입니다..
고마운 마음 전합니다..
갑장 방가^^ 63년 생입니다.그리운 어린시절이 생각나는
어잌후 건강하세유~
같은 용띠
반갑습니다 건강하세요 😊
와 저 88년생인데 저희 엄마랑 친구시네요
아따 청춘이시고마~
나의 어린시절이 생각납니다. 영상보니 눈물 남니다.
검정고무신 실사 보는것 같네요 귀한영상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때 아이들은 하나같이 코찔찔이들,,요즘은 없는걸보면 영양이 부족해서 그랬을거같네..그시절 어른들은고생이 심하셨고 덕분에 요즘은 배부르게 살게 되었네요 이 좋은세상에 태어난 요즘 아이들이 좀 더 씩씩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부정적인 부분에만 몰입애서 좋은것을 알까 ,,고마워할까싶네요
감사합니다~^^
중학교 1학년때... 생각하기 싫을만큼 못살았지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대부분 사진이던데 영상이라니 귀하네요
제가 태어나기 십년전 서울모습이 신기하고 짠하네요. 우리부모님 학창시절이셨겠구나 생각하니..😢
국민학교 6학년때군요. 아침에는 쌀보리밥을 겨우 먹고 점심은 감자 쪄먹고 저녁은 칼국수 콩나물죽으로 밤에는 옥수수 고구마로 허기를 때우던 시절, 사무치게 그립습니다.
51년생이시군요.ㅜ
내가64년생인데 서울이고향인데 감동을 주는 영상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나도 오십대 후반이지만 우리내 아버님 새대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못 살았어도 웃는모습을 보니 맘이 여려오네요
1964년이군요. 우리 아버지가 태어 난 날 돌아가신지 얼마 안되었지만 정말 보고싶습니다. 우리 아버지... 항상 자식으로 태어나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입니다. 크면 알게된다 돌아가시고 나면 알게된다. 이 말이 뭔지 알겠더군요...
제가 7세때의 아련한 추억의 영상 잘 봤습니다.
영상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58개띠 신가요?
감사합니다
와 이런 영상은 어디서 구하나요 ㅎㅎ
영상속 어른들은 대부분 돌아가셨겠네요
우리도 언젠간 저 영상속의 인물이 되겠구나 생각하니 좀 씁슬하기도 합니다^^
아~~~~ 옛날이여😊😊😊
와우 희귀자료 감사합니다.
저 태어나기 이전 과거 영상을 이리 볼수있다니 최고
감사합니다!!❤
남산야외음악당 공연,유명한 탈렌트,배우,가수들 나와서 시민 위안잔치 벌이던 쉘 구조.남산 안중근기념관 옆
끝없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아주 잠깐 왔다 떠난다. 삶이 힘들때도, 포기하고 싶을때도 있지만 세상을 살고 떠난 모든 이들이 겪었던 것이고 나 역시 그럴것이기에 너무 괴로워하지 말자. 그냥 나에게 다가오는 순간순간의 행복을 즐기다가 떠나자. 그러면 될것 같다.
이 영상을 보는 내 나이 64년 용띠 금년 만 59세...우리 부모님 젊은 시절에 귀한 영상 이군욥...뭐 지금은 두분 다 돌아 가셨지만...즐감 했읍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고맙습니다.화질도 너무 좋네요 .보물입니다
아련히 떠오르는 1960년대 ...
와 화질 장난 아니네요ㅎㅎ 옛날 영상을 고화질로 보니까 참 가깝게 느껴집니다.
희귀 영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십시요
난1947,생인대 어제같내요. 감사합니다.
56년 생인데 용산구 한강로 3가 40번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요.
얼마전에 가보았던
옛집은 이제 커다란 건물이 들어섰고 매일 뛰놀던 동네의 넓은 터는 이제는 작게 보이네요.
우리의 부모님세대 어른들의 어린시절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
저 가난했던 시절의 아이들도 포동포동 살이 쪄 있는데 2024년 북녁의 아이들은 비쩍 말라 있으니 이런 비극이 어디있겠나. 가난했지만 균형잡힌 도시의 모습이나 밝고 자유로운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보기 좋네요.
북한 애들을 우리나라에 비교하는게 좋나요?
영상 감사합니다!
100년 뒤 사람들 2024년 시대 동영상 보면서 저 시대 어떻게 저렇게 살았을까 할듯 합니다
남산야외 음악당 대학재학시 시간나면 돈은 없고 돈이 없으니 갈곳이 없지 음악당 가서 돌아다니다가 서울역 남대눈쪽 으로 돌다가 밤에 서울역 건너에 노상에 카바이트불켜놓고 길에 죽늘어놓고 파는 책들 구경하다가 늦게 하숙집 들어왔던 생각이 새삼 나네요 그땐 형편이 어려운 집집이 많았으니까요 그래도 그땐 고생인줄 몰랐지요
와 디테일한 컬러와 자연스런 움직임까지... 실감 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
귀한 자료네요.
64년 영상이지만 시골엔 늦게 전파되서 74년에도 비슷한 상황이었죠.
멋쟁이 엿장수이네요~
검정고무신 실제모습이군요 60년전 영상이 이렇게나 선명하다니
기술이 좋아진거겠죠 과거는 환상 현재는 현실 미래는 상상 나는 아직도 환상속 과거에 머물고 있는가봅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64년 7월 生인데 ᆢ그때 이랬었군요
소중한 영상과 자료감사드립니다~^^
청계천변 하꼬방(판잣집)도 있고 등짐진 양은 냄비장수도 있고 남대문시장 주변
저때는..잘살아보세.
4H클럽.새마을운동이.한창이고..희망이보였던.때.그립네요..초딩시절이였는데.
아름다운영사ㅡ가마
세계 최 빈국에서 지금이니 얼만나 죽어라 일했겠나~~
그래서 지금이 있지만~~
뭐 ~~
그시대에 자란 자식들은 어찌보면 부모님과 대화하면서 자란 자식들이 별로 없을것이다~~
돈벌기 바빠서 아침일찍 출근 저녁 늦게 퇴근~~
일만 하다간 인생들이 얼마나 많은가~~
가난해도 그래도 그 때는 정말 정이 있었는데~~~
제가 태어나기전 세상 참 신기하고 저때도 내가 살았었던것 같은 느낌입니다😊
66년생 입니다. 그때 국민학교가 3킬로 거리였는는데
겨울이면 춥다고 버스기사분이 공짜로 태워주셨는데. 그땐정말 고마웠습니다. 지금도 살아계실지 ㅠㅠㅠ
시온카라멜.......ㅠㅠㅠㅠ 눈물이 나네......얼마만에 보는것인지....
청계천 고가 생기기전 청계천 시궁창에 빠지면서 물수제비 뜨던 시절이 엊그제 같으네요
대단하다 정말 북한보다 못살았다는말이 확 와닿네. 지금 처럼 만들어 놓은
박.. 그는 진정 goat
국민들이 잘한거지 무슨 ㅈㅅㅈㄱ가 잘했다고 그러시나
경제발전은 박정희가 했다는 분들 -, 경제가 어려운 건 노조탓, 나라가 힘든 것 뺠갱이 민주당 탓, 교육이 무너진 건 전교조 탓...으로 이어짐. ㅋㅋㅋ
아이들 표정이 참 해맑아 좋네~~~
52년생입니다.장춘동 동북중다니다 어려워 대구로 내려간 생각나네요.
와,,, 화질이 너무 좋아서 마치 스마트폰 들고 시간여행가서 찍어온것 같아요.. 복원이 잘 됐어요..
누가 저 시절에 이렇게 카메라를 들고 찍었을까요? 많은게 신기하기만 합니다.
영화필름으로 촬영한 것입니다 과거의 필름의 화질은 현재의 기준으로 보면 2k-4k정도 됩니다 화질이 좋으니 영화관에서 큰화면으로 봐도 볼만한 거죠
그래서 저 시대엔 한 열살 밑으로는 가슴팍에 손수건 꽂고 콧물 흐르면 슥 닦고 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