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대학다닐때 중앙선 열차에서 이웅평님을 만난적이 있습니다.그때 기억에는 덩치도 있고 핸섬한 분이었습니다.어디 가시냐고 여쭈어 보니 강연가신다고 하셨는데.표정이 어두웠습니다.그 이후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의 어두웠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다시 한번 이웅평님의 명복을 빕니다.
다시 봐도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성남 공항에서 근무했었는데 기지 전체가 비상이 걸려서 비상대기 중이었던 F-5가 이륙하고 조종사들이 활주로를 뛰어 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전쟁 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 총을 받아 대기 했다가 해피 엔딩으로 마쳤었지요.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하긴 내가 십년뒤 군대있을때도 뻬치카에 석탄비비고 있었으니... 뻬치카탄당번 그립네..ㅡㅡ 구타 지금은 없겠지만 한대 맞는게 더 속편함. 진짜 힘든건 갈굼이겠지..뭐랄까..자존감을 건드는 인간이하의 호칭 등등 이런건 지금도 회사들어가면 아주 널림..그래서 그런놈들을 꼰대라 부르고 엠지세대들은 어렵게 들어온 회사도 그냥 잘하슈 하고 나가지.. 이게 2024년 현실임.. 조폭이라도 되는냥 편가르기..이 편가르기가 죽이는거지.. 어휴..이 숫놈들아 너네 언제까지 애짓할래... 150억 보로금에서 90프로가 정보보상금이라고. 지금 40년전보다 열배라고 하면 1500억정도 가치지 않을까..
@@조웅-k9z 수송부, 수송대.. 유명하죠. 아들이나 조카가 운전병이나 정비병으로 간다고 하면 다들 말렸구. 저두 운전병으로 간다고 하니 아버지부터 작은아버지들이 다 말렸어요. 결국 들어가서 후회했죠. 참 ㅈ같았더군요. 다행히 병들 사이에 구타, 가혹행위 있는 거, 게거품 물 정도로 싫어하는 지휘관이 부대장으로 와서 그 지휘관이 국통사로 갈 때까진 구타 많이 줄었지요. 또 그 때쯤엔 병장 달 때가 가까워진 때라 다행이었구요. 그 뒤론 도로 극심해졌을 거예요. 민족성이 어디 가나요. ㅎㅎ 운전병 군기는 때려서 잡는 거구 그래야 사고 안 난다는 게 전통적인 이유니까..
몇개월전 고 이웅평님 다큐멘터리를 필리핀인 아내와 함께 보다가 전쟁이 나면 어떡하겠냐는 질문에 1초의 고민도 없이 자원하여 싸우러 가겠다고 대답했더니 이해를 못하더군요 당연히 가족들 곁에서 지켜줄거라는 대답을 기대했나봐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필리핀의 문화때문이겠죠 그래서 건강한 남성들이 싸워쥐야만 여성과 아이, 노약자들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을 할 수 있다 나혼자 가족을 지키는 것 보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 라고 설명해줬습니다
시대가 낳은 아픔입니다. 여러 가지 고민스러운 일이 많았을터인데 어려운 결단을 하셨고 또, 힘들지만 한국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다가신 이웅평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북한의 님핌준비를 알리려 결행하셨다지요... 이웅평님이 아니어쓰면 정말 남침 했을지도 몰라요. 아웅산에서 대통령을 테러하고 김현희를 통하여 비행기 통째로 날려 버렸던 시대인데... 남침 못했을까.... 이웅평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이때 저는 결혼한지 1년이 채 안된 신혼이었으나 실제 상황이라는 긴급 방송에 예비군복 착용 후 동대로 황급히 나간 때 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전쟁이 아닌 귀순이라는 소식 듣고 안도하며 집로 향했으며 그당시 제 아내는 절 보고 국가 위기시 즉각 출동 준비하는 절 보고 칭찬 했었음. 그것이 벌써 40년전 이네요. 세월 참 빠르네 내나이 지금 66세 그래도 젊은 그때가 그리워 지고 무책임 하다는 원망 보다 칭찬하던 사별한 아내 생각이 나네요! ^^
미그기에 207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에스코트 나갔던 대한민국 전투비행대대 중 하나가 207대대입니다. 다른 대대는 청주 F-4D 이었습니다. 조종사 중 한 분은 박보X 대위님. 1985년에 207에 작전병으로 배속받아 가보니 소령이 되셨더군요. 비행 잘하시고 사격잘하시고 족구 잘 차시고... 멋진 분 이셨습니다. 수원은 15R(33L), 15L(33R) 두 개의 활주로를 갖고 있지요.
귀순하고 대령까지 진급해서 남측에서의 삶이 좋았었다면 좋겠지만 북쪽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가족들 모두 정치범 교화소로 끌려가 부모님은 끝내 처형 당했다고 함.) 언제 북한 간첩들이 나타나 자신을 암살 할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해 결국 술에 절여져 살다가 간기능 부전증으로 인해 사망함.
정말 감동적인 유튜브영상을 올리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날 전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서울에 살던 나는 긴박한 순간이었던 당시 상황을 오늘 다시새삼 떠올렸습니다. 나는 이산가족으로서 이날 이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족간에 약속을 해 둔 게 있었지요. 만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가족은 어디어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는 그런 약속을 했지요. 그랬던 일이 지금 또한 생각나게 하는군요.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우 시뮬레이션인데도 보니까 심장이 벌렁벌렁 하네요. 이웅평님이 지금까지 살아있으셨다면 좋았을텐데 ㅡ안타깝다. 난 당시 서울강남에서 살았는데 싸이렌 소리듣고 혼비백산 애기업고 이리뛰고 저리뛰고ㅡ아파트 주민들이 다 나오고 난리법석이었지요. 훌륭한 분이 십니다.그후 이철수 대령? 그분이 왔을땐 싸이렌 소리 못들었어요. 오래전 일이지만, 모두 참 훌륭하십니다
흥미진진하네요.. 체제불신에 남쪽이 더 좋아보여서 왔다는 말은..너무 달달한 로맨틱 멘트일테고ㅎㅎ 뭔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왔겠지요. 더는 남북한이 미워하고거나 전쟁하지 말고 통일해서 같이 부강한 대한민국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일본, 중국도 함부로 못덤비는 엄청난 강대국이 되어 있겠지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당사자가 생전에 한 인터뷰나 남한에서 만난 친한 탈북자 동료에게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북한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비행이 아닐 때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에 장착된 무선 통신기를 이용해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남한 라디오를 듣고 동료들에게 그 내용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관련 사실이 정치보위부에 흘러들어 갔나 봅니다. 귀순하던 날 비행을 앞두고 있던 이웅평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보위부원인지 정치지도원인지가 너 남한 라디오 듣고 그 내용을 말하고 다닌다며 이 번 비행이 마지막 비행이 될거라고 비행 직전에 말했답니다. 아마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훈련을 취소하거나 조종사를 교체했을 것이 예상되는데 그러질 못한 걸 보면 그들도 이웅평이 남한에 귀순할 걸로 예측할 수 없기도 했겠지만 훈련이 임박한 시점에서야 남한 방송 청취 관련 사실을 파악한 걸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훈련은 일단 진행하고 비행을 마치고 조사 진행하는 걸로 통보를 했겠죠. 북한에서 조종사가 아무리 잘나가는 특권층이라고 해도 1990년대 중반이후 경제가 무너져 탈북자가 급증하던 시절도 아니고 훨씬 통제가 심하던 1980년대 초반에 남한 라디오를 듣고 그 내용을 발설했다는 건 중요 사건으로 취급되어 큰 처벌이 따른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웅평 입장에서는 모든 경력이 날아가고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기에 급하게 결정하고 실행한 걸로 보입니다. 평소 남한 라디오를 들으면서 전파를 따라가면 남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10비 무장대 출신 530대기수 입니다 이웅평대위 귀순했던 그날 사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었지요.. 지금도 가끔 그 옆을 지날때면 생활관은 아직 잘있는지 유도미사일 탄약고는 잘있는지 대리바리하던 이글루는 잘 있는지 보곤 합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0비 무장대 동편탄약고 옆 생활관에서 생활했던 분들 잘 지내고 있습니까??
당시 성남에 살던 때인데...시내에 싸이렌 소리와 함께 여기는 민방위 본부 실제상황 실제상황 적기출현 공습경보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다급하게 외치던 여기는 민방위본부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의 확성기방송 그리고 흥분된 그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당시 중학생의 신분으로 스치듯 생각나는건 당시 전쟁터지는구나 였는데... 몇분지나 이유도모르고 공습경보해제 공습경보해제와 하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던걸생각하면 아찔함과 그날 저녁 석간 중앙일보 머릿기사에는 사진과 함께 이웅평대위귀순이란 문구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나오는게.....촌각의 시간에 크게 걱정되었던건 성남에 공군비행장이 있어 성남이 초토화 되는건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고 어린나이였지만 가족부터가 걱정이되는게... 가끔 성남을 찾으면 희망대 공원을 올라가 서울공항을 내려다보았지만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여있어 뜨고내리는 전투기를 못본다는것이 무척이나 아쉬움....
이웅평씨하면 귀순하고 몇 달 뒤 비 쫄딱 맞으면서 여의도 광장에서 고딩때 궐기대회 했던 것밖에 기억 안나네요.. 그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서 114에 전화걸어 학교 전화번호 문의하니까 114 안내원이 오늘 궐기대회 한다구요~~ 빼액해서 뻘쭘하기도 했었죠.
저는 대학다닐때 중앙선 열차에서 이웅평님을 만난적이 있습니다.그때 기억에는 덩치도 있고 핸섬한 분이었습니다.어디 가시냐고 여쭈어 보니 강연가신다고 하셨는데.표정이 어두웠습니다.그 이후 세상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의 어두웠던 모습이 생각나서 마음이 편치 못했습니다.다시 한번 이웅평님의 명복을 빕니다.
고향에 두고온 가족분들 때문에 가슴앓이 하시다 일찍 세상을 떠나신듯 합니다. 그곳에서 부모님 만나셨겠지요...
1983년8월7일 낮11시~13시 쯤 방송 나옴 싸이렌. 소리도 요란했고 실제상황 이라고 말했다..
내가 다음날 즉 8월8일날 싱가폴 첫번째 해외에 나가는 날이라. 잊을수없는. 날이다...😊😊😊
저 박소좌는 아오지행되었겠군
영상속의 인물은 이웅평대위가 아닙니다.
96년 5월에 미그19를 몰고 귀순한 북한공군 이철수대위 영상입니다.
어쩐지 영상속 인물이 이웅평대위가 아닌데... 이상하다 생각했었는데 맞군요
아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올려
그러게요
한심해 그게 중요 하냐
내려오면서도 얼마나 두렵고 낯설고 슬펐을까
저 날 갑자기 부대에 비상이 걸려서 비상대기 하고 있었는데 귀순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공군본부에서 저분과 마주쳐서 경례 했더니 북한식 경례로 받더군요.
에미나리례 이러던가요 ㅋㅋ ^^
@@ycryoon 무의식이죠.습관처럼 나온거겠죠
다시 봐도 감격적이고 감동적인 사건입니다. 당시 성남 공항에서 근무했었는데 기지 전체가 비상이 걸려서 비상대기 중이었던 F-5가 이륙하고 조종사들이 활주로를 뛰어 다니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전쟁 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면서 총을 받아 대기 했다가 해피 엔딩으로 마쳤었지요. 훌륭한 사람이었지요.
기수가 어떻게 되십니까?
본인 병329기 저때 상병말 서울
훌륭한 사람....
자기 혼자 잘 살겠다고
부모를 처형 당하게하고 형제자매를 비참하게 죽게 만든 패륜아.
우리아 굴러온 복이 었지만 그렇다고 훌륭하다???
😅 1:10 1:10 1:11 @@ROKA.F329보라매
형제자매를 비참하게 살해한 것은 북한 공산당이죠. 구분을 잘 하셔야 합니다
@@tenedorlee7281
그렇게 됐줄 알고 넘어온거를 말하는거지. 참 답답한 사람이네.
자유를 위한 용기있는 비행ㅡ이ㆍ웅ㆍ평 님의 의지에 깊은 존경과 감사드립니다.
당일 서울 은평구 상공을 지나갔죠. 제트기 소리가 들려 하늘을 보니 앞머리가 잘려있는 미그기 특징을 그대로 볼 수 있었죠. 그로부터 10여분이 지나서 사이렌 소리 들려왔고요.
군시절 가끔 부대에서 만나 테니스도 같이 쳤던 이웅평 소령을 보니 감회가 새롭네요. 정말 목숨걸고 내려온 분이고. 마음씨도 부드러운 분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마지막 얼굴은 이웅평 씨 얼굴이 아니네요. 이웅평 씨는 당시에 가죽항공점퍼를 입었던 걸로 기억.
이철수
몇년도 군번이신가요
이철수가 맞습니다.
공군사관학교 근무 하셨어요?
귀순후라도 출신자와 테니스 치실 정도면 혹시 보안사?
귀순 뒤 남한군에서 구타가 만연한 현실을 보고 개탄하며 신랄하게 비판했다 하더라! 24년전 군북무할 때 정신교육자료에 나오더라..
@@김선생-y2r 나도 그당시 전방부대에서 근무 하였는데 갑자기 싸이렌소리가나 전쟁난줄 알았습 그당시에는 구타가 심했어요
특히 수송부대는 심했던것 같아요
하긴 내가 십년뒤 군대있을때도 뻬치카에 석탄비비고 있었으니... 뻬치카탄당번 그립네..ㅡㅡ 구타 지금은 없겠지만 한대 맞는게 더 속편함.
진짜 힘든건 갈굼이겠지..뭐랄까..자존감을 건드는 인간이하의 호칭 등등
이런건 지금도 회사들어가면 아주 널림..그래서 그런놈들을 꼰대라 부르고 엠지세대들은 어렵게 들어온 회사도 그냥 잘하슈 하고 나가지..
이게 2024년 현실임.. 조폭이라도 되는냥 편가르기..이 편가르기가 죽이는거지..
어휴..이 숫놈들아 너네 언제까지 애짓할래...
150억 보로금에서 90프로가 정보보상금이라고. 지금 40년전보다 열배라고 하면
1500억정도 가치지 않을까..
@@조웅-k9z 수송부, 수송대.. 유명하죠. 아들이나 조카가 운전병이나 정비병으로 간다고 하면 다들 말렸구. 저두 운전병으로 간다고 하니 아버지부터 작은아버지들이 다 말렸어요. 결국 들어가서 후회했죠. 참 ㅈ같았더군요. 다행히 병들 사이에 구타, 가혹행위 있는 거, 게거품 물 정도로 싫어하는 지휘관이 부대장으로 와서 그 지휘관이 국통사로 갈 때까진 구타 많이 줄었지요. 또 그 때쯤엔 병장 달 때가 가까워진 때라 다행이었구요. 그 뒤론 도로 극심해졌을 거예요. 민족성이 어디 가나요. ㅎㅎ 운전병 군기는 때려서 잡는 거구 그래야 사고 안 난다는 게 전통적인 이유니까..
몇개월전 고 이웅평님 다큐멘터리를 필리핀인 아내와 함께 보다가 전쟁이 나면 어떡하겠냐는 질문에 1초의 고민도 없이 자원하여 싸우러 가겠다고 대답했더니 이해를 못하더군요 당연히 가족들 곁에서 지켜줄거라는 대답을 기대했나봐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필리핀의 문화때문이겠죠 그래서 건강한 남성들이 싸워쥐야만 여성과 아이, 노약자들을 보호해주는 국가의 시스템이 작동을 할 수 있다 나혼자 가족을 지키는 것 보다 국가의 보호를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 라고 설명해줬습니다
문화가 달라서 그런거고 충분히 아내분도 이해하실 겁니다
@@volcof1 네 필리핀 사람들은 조국, 자신의 직장을 비롯한 세상 어떤것 보다 가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더라구요 그래서 집안에 사소한 행사에도 직장을 당연하단 듯이 결근하기도 하죠
멋진 당신 행복하세요!~♡
감동적인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유태인
보는 내내 내가 다 떨리고 두근두근하네요..당신의 대단한 용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오. 정말 한 편의 영화 보다 더 실감 나는 대박 영상. 기획하신 분들 천재다.
와 그냥 바로 편대 이탈 해서 온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진짜 긴박하게 오셨네 ㄷㄷㄷㄷ 귀순시간 1시간도 안되지만 진짜 심장 쫄리셨을듯. 그 와중에 가족생각 나시면서 먹먹 하셨을듯..
거의 탑건 수준... 협곡을 가로질러 레이더망에 걸리지 않게 초저고도 비행을하며
레이더 피하려고 고도 낮추는거 보면서 탑건 매버릭 생각남 ㄷㄷ
귀순시간 한시간도 안되듯 진짜 인생 1시간 안에 끝날수도 있었던 비행..
북한 미사일 기지를 요리조리 피해서 저공비행으로 왔다고 하더군요
레이더가 없는 기종이기에 KBS 주파수로 맞추고 거기를 따라서 왔다고 합니다
아는 척 씹 오지네 ㅋㅋㅋ
이대령님 하늘 나라에서 좋은분들과 행복하게 지내시길 기원합니다ㆍ
이대령님에 용기에 대한박수도
당연하죠ㆍ
북괴 땅에 남겨놓고온 가족분들 은
엄청난 고쳐를 겪었겠죠ㄴ
생각 하면 눈물이 나네요ㆍ
하늘 나라에서 편안 하시길ㆍ
어렸을때 대방동 관사에 살았는데 이웅평 아저씨 집에 놀러갔던게 기억납니다 귀순한지 얼마 안되셨었는데 보좌해주시는 사병분들 여러분과 관사 다동에 사셨었지요 어린마음에 북한에서 온 아저씨 신기해 했던 기억이 납니다
비행경로 등 너무도 사실적인 훌륭한 영상입니다. 한 편의 영화 같군요. 자유를 찾아 귀순했던 고 이웅평 대령의 명복을 빕니다.
늦었지만 이웅평 대령, 삼가고인의명복을빕니다.
근심 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시길..
안죽었는데?
@@형-s8z 이웅평 대령님은 돌아가신거 맞구요 이철수 대령님은 살아계십니다 두부다 엘리트 비행기 기장이셨고 탈북하셨어요
수원 10전투비행단에서 복무중이었는데 긴박했던 저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미그19기 특유의 엔진소리와 함께 활주로에 내려앉던 그 모습 아직도 기억합니다.
이웅평님 좀 더 오래 행복하게 사셨으면 좋았을텐데 안타깝습니다.
미그기 실제모습
엔진소음은
한국공군의 전투기체와
많이다른가요
애기시군요
기수가 어떻게 되십니까?
본인 329기 서울 91전대
@@신현훈후니TV너 빨갱이지??
@@신현훈후니TV 평생을 암살을 당할지 모른다는 압박감에 시달려 술을 끊지 못해 병으로 별세했는데 처자식을 버린 비정한 사람으로 만드시네요
백분쇼 재방송이 방영되고 있었는데 가수 이용이 노래부르던 장면에서 갑자기 음소거 모드가 되더니 싸이렌이 울리고 민방위본부에서 실제 공습경보를 울리고 나는 아버지 찾으러 논밭으로 뛰어다니던 생각이 나네요.
시대가 낳은 아픔입니다. 여러 가지 고민스러운 일이 많았을터인데 어려운 결단을 하셨고 또, 힘들지만 한국에서 나름대로 역할을 하다가신 이웅평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북한의 님핌준비를 알리려 결행하셨다지요... 이웅평님이 아니어쓰면 정말 남침 했을지도 몰라요. 아웅산에서 대통령을 테러하고 김현희를 통하여 비행기 통째로 날려 버렸던 시대인데... 남침 못했을까.... 이웅평의 아픔은 우리 모두의 아픔입니다.
군복무 중이었는데 그날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순식간에 완전무장을 마치고 대기...귀순 소식에 같이 누구를 위한 박수인지 모른체 마냥 짝짝짝!
저도….
전쟁이 아니어서 안도하는 박수….아니였을까요?
저도 군복무중
아직도 잊혀지지 않네요
사격장에서 apc 오는것 대기 히고 있었던..
ㅎ
이때 저는 결혼한지 1년이 채 안된 신혼이었으나 실제 상황이라는 긴급 방송에 예비군복 착용 후 동대로 황급히 나간 때 였지요. 그런데 그곳에서 전쟁이 아닌 귀순이라는 소식 듣고 안도하며 집로 향했으며 그당시 제 아내는 절 보고 국가 위기시 즉각 출동 준비하는 절 보고 칭찬 했었음. 그것이 벌써 40년전 이네요. 세월 참 빠르네 내나이 지금 66세 그래도 젊은 그때가 그리워 지고 무책임 하다는 원망 보다 칭찬하던 사별한 아내 생각이 나네요! ^^
@@김선일-t5t 결혼을 26에 하셨네요 그때만해도 결혼 정년기가 지금과는 많이 다른듯요 ㅋ
엘리트이웅평대위
명복을빕니다
어제 KBS 그날을 찾아서 봤는데 오늘 떴네요!
너무 잘 만들어서 손에 땀이 다 나네요.
아쉬운 건 마지막 인물은 이웅평 대위가 아니고 96년 귀순한 이철수 대위네요.
정말 너무 잘 만들었어요.
이철수 대위
수원공군기지에 착륙하는 순간 어떤 기분이었을까...나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북한에 두고온 가족과 친구들 고향...그 모든것을 포기하고 찾은 자유..새로운 삶에 대한 두려움과 기대...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여기서 생활은 어떻게 하게 될까 등등
조종사의 시야와 판단 긴장감까지. 너무 리얼하게 제작하신듯.
감사합니다. 궁금했던 사건이었는데 그어떤 영상이나 설명보다 이거하나로 모든게 해결되네요.
멋진 영상이었습니다. 그날의 긴장과 생생함이 그대로 살아있네요. 이제는 고인이 된 이웅평 대령의 용기와 명복을 빕니다.
미그기에 207이 표시되어 있는데,
그때 공교롭게도 에스코트 나갔던 대한민국 전투비행대대 중 하나가 207대대입니다.
다른 대대는 청주 F-4D 이었습니다.
조종사 중 한 분은 박보X 대위님.
1985년에 207에 작전병으로 배속받아 가보니 소령이 되셨더군요.
비행 잘하시고 사격잘하시고 족구 잘 차시고...
멋진 분 이셨습니다.
수원은 15R(33L), 15L(33R) 두 개의 활주로를 갖고 있지요.
감사합니다. 진정한 애국자이십니다.
스토리를 풀어나가시는 능력이 유튜브계의 스필버그십니다~ 글씨체 하나하나도 다 마음에 드네요^^
괜히 눈물이 난다. 목슴을 걸고 내려와서, 마음 고생도 심했던것으로 안다. 그래도 자유를 누리며 민족과 국가를 평생 생각하며 살아온 것으로 알고 있다. 그때라도 봤었으면...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와아 !~ 한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 멋있습니다..행복하게 잘 사시길...
영상에 오류가 있네요! 맨 마지막 만세! 라고 외친 북한 조종사는 1983년 귀순한 이웅평씨가 아니라 뒤에 1996년 미그19기를 몰고 귀순한 이철수대위 입니다.
이웅평 대령님,,조국애로 큰 결단을 하셨죠.존경합니다.북쪽 가족 생각하면 쉽게 결단하기 어려웠을텐데 ㅡㅡ감사합니다.님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꼭 통일이 되길 기원합니다. 명복을 빕니다.
이철수 대위에요!
영상에서 잘못 쓰신거예요!
감사합니다 감동적입니다 이웅평님!
이웅평대령님 진심 존경 합니다ㅜㅜ고생많으셨을텐데 하늘에서는 가족분들과 행복하시길 기도합니다ㅜ
저때의 심정은 말로 할수없지... 진짜 목숨걸고 들었던 남한의 방송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고 가다가 격추당할수도 있으므로.......
대단한 영상 잘 보았습니다..감사합니다..멸공!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옛날 생각이 새롭네... 이당시 F5조종사는 10전비 소속으로 귀순유독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화랑무공훈자받고 훗날 공군참모총장 이 된다..(공사 24기 박종헌)
잘보았습니다. 저도 이때 기억이 나네요. 마지막 만세하는 모습이 이웅평님이 아닌것 같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철순이라는 분이시네요.
감사 합니다. 훌륭 하십니다.
뭉클하네요.
영화 보는듯 숨죽여 봤습니다.
자유대한민국 사랑합니다.
귀순하고 대령까지 진급해서 남측에서의 삶이 좋았었다면 좋겠지만 북쪽에 두고온 가족들에 대한 죄책감과(가족들 모두 정치범 교화소로 끌려가 부모님은 끝내 처형 당했다고 함.) 언제 북한 간첩들이 나타나 자신을 암살 할지 모른다는 심리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해 결국 술에 절여져 살다가 간기능 부전증으로 인해 사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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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간이식 수술 후 어느 인터뷰를 보니 한국으로 온 것에 후회는 없다고 하셨어요...부모와 조국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음으로 인해 생긴 안타까움이죠. ...비행기와 군인이라는 신분으로 오셨기에 이한영암살후 본인도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는게 쉽지 않았을듯요...
그래도 후에 귀순하신 김철수 대위는 잘살고계시죠
그니가 가족을버리믄안댄다
@@panzer8672이철수 대위 !성을 맘대로 바꾸지 마쇼 ?
전승절 열병식할때 현무5로 한방에 끝내버리는 뭐 그런 영상 국민들이 보고 시원해하는 그런 영상 말이죠!! ㅎㅎ 볼때마다 영상이 너무 멋있고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조국을 사랑하는 애국심이 넘쳐 나옵니다. 화이팅!!
@@김광선-e7p 먼저 공격하면
안돼요
정말 감동적인 유튜브영상을 올리셨습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이날 전국에 공습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서울에 살던 나는 긴박한 순간이었던 당시 상황을 오늘 다시새삼 떠올렸습니다. 나는 이산가족으로서 이날 이후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가족간에 약속을 해 둔 게 있었지요. 만일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우리 가족은 어디어디에서 다시 만나기로 한다는 그런 약속을 했지요. 그랬던 일이 지금 또한 생각나게 하는군요. 좋은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웅평대위이북에처자식아들두명잇고넘슬프다
얼마나삶이힘들어귀순용기가참위대하지요
보상도많이받앗지요
남은 가족들이. 당했을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네요
이 웅평 대령도 얼마나 그것때문에 괴로워 하였을까요?
귀한 영상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만세 🥳
보면서 많이 울었네요. 빨리 통일이되어 이런 비극적인 아픔은 없어야합니다. 나이도 어린데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을까 마음이 아프네요. 잘 오셨는데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을텐데 너무 일찍 돌아가셔서 마음이 아프네요.
와... 영화네....
인천광역시 덕적도 이거나올때 울컥하네ㅠㅠ
이때 현역 복무시절 이었는데~
실제 상황으로 완전군장 다 꾸리고
고향을 향해 부모님께 묵념 드리고 출동 준비 했던 기억이~~
와ㄷㄷ ㅜㅠ
우리 부대두 군장 꾸리구 탄약 수류탄 분배 ....각자 역활분담 중 해제~~
고향을 향해 부모님께 묵념 드리고 국가를 위해 나가는 마음가짐을 어떻게 형언할 수 있을까요.대한민국 군인들께 정말 고맙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간절하고 막다른 길이라도 목숨을 걸고 한다는건 도박이란걸 알기에 하지 못한다고 본다. 얼마나 내가 하는 이 판단으로 모든걸 이룰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과 대단한 스스로의 능력을 믿었기에 가능한거지. 너무 감동스럽고 마음 한편 슬픈마음이 공존한다.
잘받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수원비행장 활주로에 있는 공군병사중 한명입니다 ㅎㅎ 좋은 다큐 한편이네요
날씨 많이 더워졌던데 항상 고생하시네요..
안다치고 군생활 마무리 하세요...!
군인이시군요 제가.항상 존경하고있습니다.제가 아니 우리가.바로 여러분덕분에 편히살고있습니다.항상.감사합니다!!
받 ㄴㄴ 봤
이웅평씨가 귀순 최고 보상금을 받았죠,, 13억 5천인가?
그당시 은마아파트 4천만원,,, 거의 34채 값
천투기 + 당시 최고급정보값... 지금은 어떠한
최신기종을 몰고 넘어와 고급정보를 전해도 최고 보상액은
10억으로 정해두었음
공군 이셨다구요 ?
반갑습니당
감사합니다
고퀄리티, 희귀 주제 영상
항상 감사합니다❤
저날 대구기지에 있었어요.
Fㅡ4 펜텀이 비상출격하고, 전쟁이나는구나 생각에 어머니가 제일먼저 생각 나더군요.
벌써 아련한 옛날이네요.
당시 근무 했으면
기수가 어떻게 되십니까?
본인은 329기 서울근무 중....^^
와 이거 진짜 손에 땀이 나네요 막상 귀순하는 조종사 입장에서 영상을 보니 결코 쉬운일이 아니네요
개천비행장에서 수원공군기지까지 결코 적지 않은 거리 엄습해오는 긴장감과 두려움 잘 이겨내셨습니다.
제가 이웅평 소령 넘어올대 우리 사이트에서 근무 햇던 사람입니다 영상보니 새롭네요 오전 11시 몇분이엿더라
역사저널 그날 본방 보면서 '어? 완전 JJ플라이트네?' 했는데 진짜였네요. 정말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매번 좋은 영상 고맙습니다. *^.^*
언제나 감사합니다
영상속 인물은 이철수대위 입니다
주요부대에서 일병으로 근무중. 깜짝 놀랐던 그사건. 1983년도에 사건이 무척 많았었지요.
민항기,
중공군 공군 손대위,.
아웅산사태,,
KAL기폭파,
얼마나 가슴 졸였을까요. 좋은곳으로 가시길 바랍니다. 영상 멋지게 잘 봤습니다.
뉴스화면은 이웅평이 아니라 이철수인데요.
감동의 드라마네요
행복하셨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고요
잘 만든 자료 영상이네요. 당시 상황 탓인지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로 카메라도 적절하고.
감사합니다.
어우 시뮬레이션인데도 보니까 심장이 벌렁벌렁 하네요. 이웅평님이 지금까지 살아있으셨다면 좋았을텐데 ㅡ안타깝다. 난 당시 서울강남에서 살았는데 싸이렌 소리듣고 혼비백산 애기업고 이리뛰고 저리뛰고ㅡ아파트 주민들이 다 나오고 난리법석이었지요. 훌륭한 분이 십니다.그후 이철수 대령? 그분이 왔을땐 싸이렌 소리 못들었어요. 오래전 일이지만, 모두 참 훌륭하십니다
미그19 지금은 보기 힘든 기체죠 거의 한정판으로 생산된 기체라 철덕이자 항덕인 저도 이걸 보면 침을 질질 흘릴것같네요 우리나라에서 미그기는 단 2대 정도 있고 1992년 귀순한 이철수 대위 의 미그기는 제주도 항공박물관에 전시되었있습니다
이철수대위는96년
항상응원 합니다. 화이팅 ❤❤
항상 대박나시고 기원합니다 사랑합니다❤❤❤❤❤
그때는 어렸어서 그냥 넘어왔구나 정도로 생각했는데 정말 대단한 일을 해녔네요. 그런데 안타까운건 이웅평 대위의 남은 가족들이 많이 고초를 겪었겠네요. 아쉽게도 세상을 2002년에 너무 빨리 뜨셨네요…..
북한의 가족들은 다 처형되었습니다
그 괴로움으로 이웅평 대령은 매일 술을 마셔 간경화로 죽은걸으로 압니다
1989년 공군비행군의관 교육때 바로앞에서 이대령앞에서 교육받은적 있습니다 체구가 엄청 컸습니다
@@제갈공명-d1j 그랬군요.... 너무나 안타깝네요....
보는 내내 두근두근 어찌나 떨리던지! 보는 이도 이러한데
고 이웅평 대령께서 느꼈던 긴장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겁니다!
북에서 온갖고초를 격다 돌아가신
대령님의 가족분들과 이웅평 대령님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소서!
비디오 정말 잘만드셨어요. 박수!
흥미진진하네요..
체제불신에 남쪽이 더 좋아보여서 왔다는 말은..너무 달달한 로맨틱 멘트일테고ㅎㅎ
뭔가 피치못할 사정이 있어 왔겠지요.
더는 남북한이 미워하고거나 전쟁하지 말고 통일해서 같이 부강한 대한민국으로 가면 좋겠습니다.
그때의 대한민국은 일본, 중국도 함부로 못덤비는 엄청난 강대국이 되어 있겠지요.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당사자가 생전에 한 인터뷰나 남한에서 만난 친한 탈북자 동료에게 밝힌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시 북한 조종사들 사이에서는 비행이 아닐 때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비행기에 장착된 무선 통신기를 이용해 남한의 라디오 방송을 듣는 것이 유행했다고 합니다. 남한 라디오를 듣고 동료들에게 그 내용을 얘기한 적이 있는데 관련 사실이 정치보위부에 흘러들어 갔나 봅니다. 귀순하던 날 비행을 앞두고 있던 이웅평에게 평소 알고 지내던 보위부원인지 정치지도원인지가 너 남한 라디오 듣고 그 내용을 말하고 다닌다며 이 번 비행이 마지막 비행이 될거라고 비행 직전에 말했답니다. 아마 시간적인 여유가 조금 더 있었다면 훈련을 취소하거나 조종사를 교체했을 것이 예상되는데 그러질 못한 걸 보면 그들도 이웅평이 남한에 귀순할 걸로 예측할 수 없기도 했겠지만 훈련이 임박한 시점에서야 남한 방송 청취 관련 사실을 파악한 걸로 추정됩니다. 그러니 훈련은 일단 진행하고 비행을 마치고 조사 진행하는 걸로 통보를 했겠죠.
북한에서 조종사가 아무리 잘나가는 특권층이라고 해도 1990년대 중반이후 경제가 무너져 탈북자가 급증하던 시절도 아니고 훨씬 통제가 심하던 1980년대 초반에 남한 라디오를 듣고 그 내용을 발설했다는 건 중요 사건으로 취급되어 큰 처벌이 따른다는 건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이웅평 입장에서는 모든 경력이 날아가고 처벌을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회를 놓치면 다시 잡을 수 없기에 급하게 결정하고 실행한 걸로 보입니다. 평소 남한 라디오를 들으면서 전파를 따라가면 남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좋은 자료를 만들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영상 잘보았습니다 마지막 귀순자 분은 이웅평 대위가 아닌듯 합니다 확인 부탁드립니다
가수김보배누님 안녕하세요 전 미쿡시카고사는 찐팬이여요 응원합니다 누님 신청곡 가능한가요 임영웅 보금자리 듣고싶습돠 기회가되면 불러주세요 김보배누님❤️🍀🤞🤗😅
마지막 만세 하신분은 이웅평 대위가 아니네요
이웅평대위가 맞네요.^^
기억이 나네요!
방송에서 전쟁이라고. 남침 시작 국민여러분 침착하게..그때 나는 23살 비장한 마음으로 예비군 중대본부로 달려가 대기 했던 해프닝 있었네요! 이대령 입장에서 보니 목숨걸고 탈출 비행 보니 나도 맥박이 빨라지고 두근거리네요 😂
대단한 시물레이션이었습니다. 북한의 지형을 간접적으로나마 비행하며 내려다본듯 먼가 뭉클하네요..
자유대한민국에 살기위해 목숨을건 용기는 대단하신겁니다.
철원에서 부사관으로 군복무중이다보니 더 와닿는군요 잘봤습니다
@@원선담민 백골입니다ㅎ
KBS 역사저널에서 사용된 영상이 이 영상이었군요..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들어왔어요.
영상 잘 봤습니다.
근데 정작 귀순조종사화면은 1996년에 귀순한 이철수 당시 대위네요
그렇네요. 이웅평 대령이 아닌 이철수 대위 사진이어서 '왜지?' 했어요.
넘어올때까지 아무도 모르노 안보바라 ㅋㅋ
대한민국 에서 행복 하개 사새요
@@skyred985 이것은 그냥 시뮬레이션.이웅평 대위 넘어올때 38선 넘어올때 전국적으로 싸이렌 뜨고 한국에서 바로 대응전투기뜨고 꽤 난리엿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옛날 생각나네요, 활주로 뚸어서 다니던 청춘시절
확실히 기억합니다~
비상출격 전투기 정비기장으로서 표창을 받은 기억이 잇습니다
다시한번 느끼는 k방위력..38선넘는순간 파악해서 따라붙어야지 안양까지 올때까지 몰랐다는게 대단하다.더중요한건 지금도 크게다르지않다는것.북한미사일쏴도 일본은 발사순간부터 대피경보울리는데 우리나라는 이미 대한민국하늘위에있을때 문자 띠ㅡ어이없음
영상 감사합니다. 이상하게 몇 번씩 보게되네요. TV에 연결해 볼까해요
진짜대단한영웅이네
목숨가가족까지위협느끼면서지금사망하고없지요
내가 인천에서 군대생활 할 때 전쟁경보와 함께 단독군장으로 참호에 갔던 기억이 난다. ㅎㅎ
10비 무장대 출신 530대기수 입니다 이웅평대위 귀순했던 그날 사진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딘가에 전시되어 있었지요.. 지금도 가끔 그 옆을 지날때면 생활관은 아직 잘있는지 유도미사일 탄약고는 잘있는지 대리바리하던 이글루는 잘 있는지 보곤 합니다..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가끔은 그때가 그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10비 무장대 동편탄약고 옆 생활관에서 생활했던 분들 잘 지내고 있습니까??
9:16 나홀로 한국 상공을 날고 있을 때 해방감과 함께 외로움도 얼마나 느꼈을까... 북한 군인은 저 사회에 자기 한명뿐인데.
이웅평님 귀순 경로가 이랬군요, 보는 내내 초조하고 조마 조마 했는데 드디어 남한에 착륙 성공, 참 잘 오셨습니다.
저는 목회자로 평화통일이 오는 그날까지 기도합니다.
너무 재밌게 봤어요...실제로 내가 타고온것처럼 실감 나네요...이런 영상 아주 좋아
와 멋진 드라마틱한
영상 한편을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짜릿합니다
잘 만드셨네요 실감나요
내가 이웅평인듯 ㅎㅎ
역시!!!
실력자는 방송사에서도 알아봤군요.
저도 여러번 얘기했지만 JJ Flight님은 영상 제작 능력이 보통 실력이 아니라고 했는데.
축하합니다! KBS에서 돈도 쏠쏠히 받으셨겠죠?!!! ^^
참 잘했습니다. 한국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부디, 다른 맘 먹지 말고 대한민국에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와 진짜 잘만드렀다 실감난다 저케왔구나 시간가는줄모르고봤는데*
맨뒤에 나오는 인터뷰 장면은 고 이웅평대위가 아니라 이철수대위 귀순 장면 입니다.
당시 성남에 살던 때인데...시내에 싸이렌 소리와 함께 여기는 민방위 본부 실제상황 실제상황 적기출현 공습경보 공습경보를 발령합니다..다급하게 외치던 여기는 민방위본부 아나운서의 흥분된 목소리의 확성기방송 그리고 흥분된 그의 목소리가 생각납니다.. 당시 중학생의 신분으로 스치듯 생각나는건 당시 전쟁터지는구나 였는데... 몇분지나 이유도모르고 공습경보해제 공습경보해제와 하는 확성기 소리와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던걸생각하면 아찔함과 그날 저녁 석간 중앙일보 머릿기사에는 사진과 함께 이웅평대위귀순이란 문구와
손을 흔드는 모습이 나오는게.....촌각의 시간에 크게 걱정되었던건 성남에 공군비행장이 있어 성남이 초토화 되는건 시간문제란 생각이 들었고 어린나이였지만 가족부터가 걱정이되는게...
가끔 성남을 찾으면 희망대 공원을 올라가 서울공항을 내려다보았지만 지금은 초고층 아파트단지로 둘러싸여있어 뜨고내리는 전투기를 못본다는것이 무척이나 아쉬움....
이웅평씨하면 귀순하고 몇 달 뒤 비 쫄딱 맞으면서 여의도 광장에서 고딩때 궐기대회 했던 것밖에 기억 안나네요.. 그 당시는 반공 이데올로기가 우선이었던 시대였으니까요.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서 114에 전화걸어 학교 전화번호 문의하니까 114 안내원이 오늘 궐기대회 한다구요~~ 빼액해서 뻘쭘하기도 했었죠.
웅장해지네 귀순의사가날개를 양옆으로 파닥이는거에 한국공군이 에스코트까지 심쿵,,
자유로운곳에서 편히쉬세요.
고생많으셨습니다
마음이 아픔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