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철학을 하면 당연히 증명이라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진리는 증명할수 없고 경험으로만 알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학이 될수는 없고 종교의 차원일수 밖에 없겟죠 예를들어 노란색을 모르는 맹인에게 노란색을 증명하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눈을 떠서 보는것 외에는 말이나 어떤 수단으로도 이를 알려줄 방법이 없을겁니다. 눈을 뜨게하는 훈련 그것이 수행이라고 봐야하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 노란색이라는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고 수행하면 눈을 떠서 볼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겠죠, 철학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강연 취지에는 공감이 가지만, 불교 교학적으로는 약간 미진한 감이 없잖아 있네요.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깨침의 딜레마에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인식되면 그 대상은 반드시 자성을 갖는다는 전제는 옳지 않습니다. 조건에 의존하여 인식되어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일단 철학공부를 해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논리를 모르고는 현대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현대과학문명도 모두 논리에 기초한 것입니다. 아비달마, 중관, 유식, 인명 등 전통적인 주요 불교 사상들 또한 논리적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철학이든 과학이든 불교든 다 해당되지 않는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후 다시 사마디에서 나오셨다.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나오신 세존께서는 무짤린다 나무로 다가가 그 아래에서 가부좌 한 자세로 7일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셨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때아닌 큰 구름이 발생해 7일동안 비를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흐린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자 뱀의 왕 무짤린다가 자신의 궁전에서 나와 이렇게 사유했다. '차가운 한기가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뜨거운 열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등에, 모기, 바람, 더위, 뱀이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그 후 뱀의 왕 무짤린다는 세존에게 다가가 스스로 또아리를 튼 뒤에 세존의 육체를 7번 감싸올리고 머리 위로 크나큰 후드를 펼쳤다. 이렇게 7일이 지난 후 비가 그치고 날씨가 청명해지자 뱀의 왕 무짤린다는 또아리를 푼 후 세존의 육체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을 버리고 어린 브라만의 모습으로 세존의 앞에서 세존을 공경하며 합장하고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 같은 의미를 꿰뚫어 아시면서 다음과 같은 감흥어를 읊으셨다. '가르침을 듣고 보고 만족하는 이에게 은둔은 행복이라네. 생명이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자제하고 세상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이 또한 행복이라네. 욕망속에서 욕망을 극복하고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는 행위, 이 또한 행복이라네. 하지만 실로 최고의 행복은 고정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사견을 파괴하는 것이라네.' (마하박가 : 율장대품).
한국불교에 불교논리학의 폭넓은 보급과 흥행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철학과 졸업생입니다.. 현재라는 시점에서 불교 철학은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공부하는게 좋을까 싶던 와중에 우연히 알고리즘을 타고 이 강연을 보게 됐습니다. 가뭄에 단비같은 영상이네요..!!!
엿장수도 맛보기는 먹으라고 줍니다. 불교 철학의 한 자락이라도 보여주셨으면 좋았겠습니다.철학 개론 강의를 100번을 들어도 철학이 무엇인지 모릅니다.모든 인문학 강연자는 청중이 박사 과정 학생이라고 여기고 강연하기를 기대합니다.
서양철학과 논리학 그리고 수학에 관한 옳은 말씀,
유불도도
철학이려면 서양의 철학의 방법적 전통을
따라야 산다.
감사합니다.
깨달음 !
인간의 두뇌로 만든 거짓의 걸작
교수님 과거 사생활은 다음에 강의해 주시고요..😊
강의 주제에 더 힘을 주셨으면 합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불교철학을 하면 당연히 증명이라는 절차가 필요하지만 진리는 증명할수 없고 경험으로만 알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학이 될수는 없고 종교의 차원일수 밖에 없겟죠 예를들어 노란색을 모르는 맹인에게 노란색을 증명하라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요? 눈을 떠서 보는것 외에는 말이나 어떤 수단으로도 이를 알려줄 방법이 없을겁니다. 눈을 뜨게하는 훈련 그것이 수행이라고 봐야하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 노란색이라는 것이 있다는 믿음이 있고 수행하면 눈을 떠서 볼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겠죠, 철학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강연 취지에는 공감이 가지만, 불교 교학적으로는 약간 미진한 감이 없잖아 있네요.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깨침의 딜레마에서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인식되면 그 대상은 반드시 자성을 갖는다는 전제는 옳지 않습니다. 조건에 의존하여 인식되어도 동일하게 인식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우리 시대의 철학적 문제에 대하여 현대 철학이 솔직히 무슨 가르침을 주나요? 길도 모르고 계속 헤매고 있는데. 논리로 치달은 현대서양철학의 결론을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나요?
일단 철학공부를 해보시고 그런 말씀을 하셔야합니다. 그리고 논리를 모르고는 현대학문을 할 수 없습니다. 현대과학문명도 모두 논리에 기초한 것입니다. 아비달마, 중관, 유식, 인명 등 전통적인 주요 불교 사상들 또한 논리적 체계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철학이든 과학이든 불교든 다 해당되지 않는 근거없는 주장입니다.
아비담마
@@윤영남-x1n산스크리트어로는 아비달마/아비다르마이고 빨리어로는 아비담마입니다.
@@바다-p1l저도 알고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7일이 지난 후 다시 사마디에서 나오셨다.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에서 나오신 세존께서는 무짤린다 나무로 다가가 그 아래에서 가부좌 한 자세로 7일동안 해탈의 지복을 누리셨다. 그런데 마침 그 때 때아닌 큰 구름이 발생해 7일동안 비를 내리고 찬 바람이 부는 흐린 날이 계속 되었다. 그러자 뱀의 왕 무짤린다가 자신의 궁전에서 나와 이렇게 사유했다. '차가운 한기가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뜨거운 열기도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등에, 모기, 바람, 더위, 뱀이 세존을 해쳐서는 안된다.' 그 후 뱀의 왕 무짤린다는 세존에게 다가가 스스로 또아리를 튼 뒤에 세존의 육체를 7번 감싸올리고 머리 위로 크나큰 후드를 펼쳤다. 이렇게 7일이 지난 후 비가 그치고 날씨가 청명해지자 뱀의 왕 무짤린다는 또아리를 푼 후 세존의 육체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자신의 본모습을 버리고 어린 브라만의 모습으로 세존의 앞에서 세존을 공경하며 합장하고 서 있었다. 세존께서는 이 같은 의미를 꿰뚫어 아시면서 다음과 같은 감흥어를 읊으셨다. '가르침을 듣고 보고 만족하는 이에게 은둔은 행복이라네. 생명이 있는 존재들 사이에서 자제하고 세상에 폭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 이 또한 행복이라네. 욕망속에서 욕망을 극복하고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는 행위, 이 또한 행복이라네. 하지만 실로 최고의 행복은 고정불변하는 자아가 있다는 사견을 파괴하는 것이라네.' (마하박가 : 율장대품).
커여운 동물찡
정말 짜증나네~~ 강의 듣는게 왜 이리 힘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