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왔나이다(Here I am) 히 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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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31 ธ.ค. 2024
  • 현대인들은 “군중 속에 고독”에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은 미국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만이 1950년에 쓴 저서 『the Lonely Crowd』, 『고독한 군중』에서 나왔습니다.
    분명 고독은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고독과, 부정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첫째, 긍정적인 고독은 인간에게, 인격, 지혜, 능력 등을 성장하게 만드는 기제입니다.
    “외로움이란 홀로 있는 고통을 표현하는 말이고, 고독이란 홀로 있는 즐거움을 표현하는 말이다”(폴 틸리히목사)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인간은 고독 속에서 혼자 서는 인간이다”(입센)
    “고독함 속에서 당신은 지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조용함 속에서 당신은 마음의 평화를 찾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고독 속에서 당신은 당신 자신에 대해서 기억할 수 있게 될 것이다”(로빈 샤르마)
    “최악의 외로움은 자기 자신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마크 트웨인)
    “고독 없이는 무엇을 성취할 수 없다. 나는 일찍이 나를 위해 일종의 고독을 만들었다”(피카소)
    “재능은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며 인격은 세파 속에서 이루어진다”(괴테)
    “고독 속에서 비로소 자신의 진정한 감정과 마주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에게 가장 큰 행복을 안겨준다”(장 자크 루소)
    그러나 이 고독은 무엇인가 이루어 가기 위한 시간입니다. 스스로가 고독을 즐기고, 고독 속에서 진리를 발견하는 긍정적인 고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고독이 있습니다.
    둘째, 부정적인 고독은 고통이며, 외로움이며, 피하고 싶은 삶입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상호작용을 하며 사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지으시고, 홀로 있음을 좋지 못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와를 지으셔서 한 짝을 주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서로 사랑하는 존재, 인격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녀를 나으면서 가족이라는 구성원이 되고, 함께 사랑하며, 떠들썩하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은 이제 새로운 사랑하는 사람들을 만나 가족을 이루고,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루어 삽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회적 존재”라고 합니다.
    인간은 함께 살아갈 때, 행복을 누립니다. 함께 살아갈 때, 능력을 발휘합니다. 함께 살아갈 때 누군가의 지지를 받으며 힘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항상 함께 하지 못하는 단절을 경험하게 됩니다. 친구 사이에서 “왕따”가 됩니다.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대화를 하지 못하고, 교류하지 못하는 고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을 출애굽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광야 40년 간, 이스라엘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막으로, 성전으로, 하나님은 함께 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의 별칭은 “임마누엘”입니다. 이름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입니다. 오늘 히브리서는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히 10:9)
    예수님은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죄에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가 죽어야 할 죄를 대신 십자가에 짊어지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입니다.
    구원의 가장 중요한 것은 “단절”에서 “하나됨”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죄는 고독을 낳게 합니다. 죄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갈라 놓습니다. 죄의 병폐가 바로 인간을 고독하게 만듭니다. 외롭게 만듭니다. 죄는 마음을 파괴합니다. 하나됨을 파괴합니다. 죄는 사랑을 끊어버립니다. 탐욕을 만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은 하나가 아니라 둘 이상의 공동체로, 서로 사랑하기 위해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죄는 모든 것을 단절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고독이 생깁니다. 외로움이 생깁니다. 고독과 외로움은 스스로가 만듭니다. 또한 고독과 외로움은 타인이, 타 공동체가 한 사람을, 여러 사람을 고독과 외로움으로 밀어넣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해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여기에 계십니다. 본문을 영어로 하면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Here I am’ 여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헬라어 단어는 “ἥκω”는 시제는 “현재형”입니다. “지금 여기에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항상 현재형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십니다. 예수님은 3년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으시고, 부활하시면서도 영원히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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