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의 물결무늬는요 하몽(하몬)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도신을 부분열처리 하느라 생긴 겁니다. 도신을 만든 후에 열처리를 해야 하는데 통으로 열처리를 하면 전투중에 그냥 부러질 수 있어서 칼날은 단단하게 칼날을 제외한 나머지 도신은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도신에 진흙을 바릅니다. 칼날 부분만 진흙을 떠 준 후에 불에 넣고 달군후에 물에 넣으면 열에 노출된 칼날 부분은 단단해지고 진흙을 떠낸 부분에 무늬가 생기는데 그게 하몬입니다. 이렇게 하면 도신은 상대적으로 덜 단단해 지는데, 칼이 워낙 비싼거라 부러지면 당시 기술로는 용접도 할 수 없어 버려야 하니, 차라리 날은 깨져도 도신은 휘어지도록 한 겁니다. 그래서 일본도가 휘어지면 오늘날 AS신청하듯 도검장에게 맡기면 칼을 펴서 날을 다시 처리해 수리 합니다. 그리고 접쇠 방식은 모든 쇠를 다루는 문명에서는 다 하는 거에요. 쉽게 말해서 밀가루 반죽 같은 겁니다. 오늘날에야 칼을 만드는 공장에서 600달러만 주면 1090이나 T10같은 공구강 강재를 톤단위로 구입하여 옷감 재단 하듯이 칼 모양으로 재단한 후 날을 세워 만들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연에서 철가루를 모아 녹여 원강을 추출한 다음에 그걸 계속 두드리고 펴서 다시 접어 두드리고 펴는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칼 뿐만 아니라 낫도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고 하는 겁니다. 접쇠 방식이 무슨 특별한 걸로 아는데요, 그냥 철강 제조 기법으로 모든 문명에서 철로 숫가락 하나 만들때도 다들 저렇게 합니다.
오랑의 판타지 사전님이 고정함 오랑의 판타지 사전 1개월 전(수정됨) *본 영상은 시리즈 중 17번째 영상으로 이전 영상들을 먼저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본 영상부터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 1. 칼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hfEzUsx3gbc/w-d-xo.html 2. 창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KELXTgQmVqI/w-d-xo.html 3. 활/석궁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UipVIHOjxr0/w-d-xo.html [오류 수정 공지] 영상 속 오류가 발견되어 수정 공지 올립니다. 일본도의 칼날 무늬인 하몬이 다마스쿠스 강과 패턴 웰디드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지 두 무늬가 같은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아무래도 환도 영상이다보니 국내 환도 자료만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오류가 발생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음 편 편에서 정정 겸 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패턴 웰디드는 전혀다른 두가지의 철을 샌드위치공법으로 접착해 배배꼬은후 압연단조시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접쇠하여만든 두가지 철을 속심과 몸으로 분리해 셋팅하는 일본도는 표면의 강성과 내부의 탄력성을 얻기위해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겉에 바르는 피복보호재에 다라 달라집니다. 이 두가지의 냉각속도에 따라 경화되는 경향과 일본도 특유의 휨이 결정되죠! 물론 하몬 중에서도 접쇠때 생기는 층층무늬가 배경으로 어렴풋하게 보입니다만 일본도의 물결무늬는 칼등쪽에 바르는 피복 보호재로 그리는 겁니다. 칼의 겹겹으로된 은은한 무늬를 배경으로 도공의 미적 감수성에 의해 만들어진 화사한 곡선이 드러나는 겁니다.
@@reynardpark9362 //다마스쿠스강에서 패턴을 만드는것은 이미 전부터 복원된 기술입니다. 문제는 고탄소강을 사용하는 다마스쿠스강이 웬만해선 녹이 슬지 않는것이죠! 게다가 현대의 재현품은 그 무늬를 강조하기위해 산을 이용한 에칭을 하지만 과거 다마스쿠스강은 거런것 따위는 하지 않앗습니다. 즉, 재료인지,공정인지 아니면 환경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에 재현품은 아직 시간의 테스트를 거치짖 않은 것이죠!
편삼각도 라는 표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일명 일면평조도라고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장인도 있고 저도 한자루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기를 개인적은 생각으로는 일면평조도는 한쪽이 수평이라 휘두르면 반대쪽으로 반동이와서 약간 타점이 벗어나는 느낌이 이외에는 참 좋은 칼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한번베기에는 문제가 없는데 십연같은거 하면 일고여덝번째부터 평조 반대로 칼이 조금 움직인다는 느낄이라고 할까요 제가 잣밥이라 그런걸지도....
식칼의 날을 가는게 편삼각도 아닐까요? 식칼도 날을 갈때 한방향으로 날을 만들고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마다 날가는 면이 다르잖아요. 그것처럼 생각해 봤을때 날을 세운 방향으로 하는 베기는 높은 절삭력을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하는 베기의 경우 칼이 미끄러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Orang_Fantasy 편각날의 경우 식도에서는 식재료가 칼에 덜 붙게 하기 위해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용으로 연마합니다. 오를손잡이 날이면 칼을 들었는 때 오른쪽 날을 경사지게 만들어 실제 썰 때 재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도마에 가지런히 놓이게 유도하는 거죠. 이게 도검으로가면 앞서 말한 장점이 없어 집니다. (물론 연마에 편리함은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오히려 베는 행동을 할 경우 (우측날을 연마한 편날 이라면) 좌에서 우로 벨때는 아래로 우에서 좌로 벨때는 위로 칼이 밀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 베어야 하는 면적이 커질 뿐만 아니라 날에 비틀리는 힘이 가해져 내구성에 불리함이 생기며 사용자의 손목과 팔꿈치에도 부담이 커집니다.
.환도가 일본도를 제작 방식을 도입하다가 결국 장식 부분만 가지고 간 이유중에 하나는 .....사용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무기는 단순히 사용법 말고도 그에 해당하는 무예도 필요합니다. 근대..조선은 칼에 대한 무예 자체에 관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없었어요. (...돈되는 기술이나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보니..) .... 뭐 조선에 검객집단이 아예 없었던건 아닌데...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무인이라고 할수 있는 무관들은 검술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관시험은 활이 알파고 체력과 말타기가 오메가..) 우리도 딱히 수능에 안 나오는 과목에는 큰 관심이 없듯이 당시에 똑같아서. .환도는 진짜 딱 사용법 정도만 익혔고 사실상 장식품이 되었죠.
산이 많다는건 위쪽에서 쏘고, 상대가 반응할쯤에 산타고 공격 방향 반대로 넘어가면, 상대가 바로 못 따라오죠. 아마 이런거 때문에 활이나 총 같은 원거리 무기를 많이 썼지, 근접을 많이 안 썼을겁니다. 밥 먹을쯤에 한차례 쏘고, 상대가 경계하게 한 후에 쉬다가 다시 깨작하고 튀고 반복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죠. 그렇다고 잡자고 우르르 가자니 함정일 가능성도 있고. 이런식이 가능해서 근접을 쓸일이 거의 없었겠지요. 성 위에서 방어할때나 근접이 좀 필요했겠지만요.
와 좋은 의견입니다. 과연 그랬을 것 같네요. 무기란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되는데 조선은 지나치게 원거리 무기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죠. 아무래도 원정 전쟁을 하지 않은 터라 수성전만 벌이다보니 생긴 문제인 것 같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본국 검법도 듣기론 명맥이 끊겨 일본것을 많이 가져다 썼다죠. 에휴. 예나 지금이나...
말씀처럼 양질의 철로 인해 보다 일찍 철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 칼은 접전시 충격을 칼 전체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쨍쨍 하는건 아님) 칼집에 옻칠할 때 삼베 등을 배접해서 하는것도 전통 옻칠 기법을 그대로 사용해서일겁니다.
일본도의 하몬은 백색 강화 라는 열처리 공법에 의해 나타나는 무늬 입니다. 물결 모양으로 진흙을 바르게 되면 진흙을 바른 부위와 바르지 않은 부위가 열에 노출되는 온도가 달라져서 나타나는 것으로 중국 한나라 시대에 개발되었고 당나라 때에 눈내린 모양을 닮았다 해서 눈조각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딱히 복합 소제 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점토에 의한 강화 열처리 공법의 흔적입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사장 되었는데 담금질 용매의 확대와 기술의 발달(철제 자체의 품질 향상) 등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장식적인 미가 있어서 예식용 도검에는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명나라와 청나라 의 도검에서도 일부 발견되곤 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 저런 점토에 의한 열처리가 오래도록 남아있게 되었는데 아마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칼의 의미에 실전성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도검을 제작하는 공정이 고착화 되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일본도의 칼은 신사에 받쳐진다 거나 봉납 혹은 예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단조 접쇠는 환도를 만드는 과정 즉 불순물을 빼는 정련로 과정에서 이미 다 끝난 상태여서 없다고 하는 건데 실제로는 합니다. 조선의 경우 분업화 되어있어서 완성된 강제를 (철식鐵式 이라는 법제화 된 정련 과정을 통해 철강을 생산) 도검장은 받아서 가공 제작만 함으로 없다고 착각 하는거지요, 일본에 비해 한반도와 중국쪽이 철 자체를 다루는 기술은 상당히 위의 테크에 있었습니다. 일단 가마 자체도 조선의 경우 환원괴와 반환 원괴를 위한 송풍구조가 다를 만큼 발달해 있었고 조선중기 이후에는 환원괴(주철) 만 생산하는 석축형 제철로(완전 환원반응로) 가 개발되어 이 주철을 정련과정을 거친 연철과 섞는 방식의 테크닉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 위와 같은 송풍구조의 차이도 알지 못했고 완전 환원반응로 의 개발도 없었으니 그만큼 철제 테크 자체는 많이 뒤쳐져 있었고 이를 장인이 커버치기 위해 복합재질 구조의 칼 즉 우리가 아는 카타나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군용 환도는 예외 없이 대부분 단일 재질 강철검이고 민간에서 쓰는 장도粧刀 의 경우 위와같은 법제화된 고정련 철제가 없었기 때문에 복합 제질의 칼이 나오기도 합니다. 장인의 솜씨로 원재료 의 저품질을 만회하는거지요 조선의 강철제 기술에 관한한 철식鐵式 만 읽어도 괴장히 분업화가 잘 되어있고 행정적으로 품질을 관리 했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철식鐵式 의 강철제품 품질은 정련 횟수로 분류하는데 고정련일 경우 불순물이 적은 고순도의 철이 나오게 됩니다 추조, 정조, 정정조, 극종조 의 순입니다.(정련할수록 철의 무게는 불순물이 떨어져 나감으로서 가벼워 지고 노동력은 많이 들어갑니다.) 환도는 군용품목으로 정정조 이상의 고품질의 철제를 이용했고 이보다 더한 극히 고정련 과정을 거친 극종조의 경우 철제 가공 도구와 궁궐의 못이나 철에 사용 됩니다.
@@생선까시-z7e 보통 혈조가 깊고 여러개 일수록 구조강도를 많이 확보 할수 있습니다 구조강도의 확보는 칼의 길이와 연관이 있으며 칼이 길어질수록 혈조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는데 제철기술의 발달로 재료강도가 늘어나게 되면서 베기저항 등에 악영향을 주는 혈조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갔습니다. 청동기시대 칼의 경우 구조강도의 확보를 위해 풀러(혈조)를 많이 넣는 경향이 있었고 점차 시대가 지나가며 없어지다가 기능적인 이유(무게감소 나 높은 곡률이 있는 칼의 일부) 로 넣는 선택지가 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 해봐도 우리의 칼 재조기술이 허졉할리가 없습니다 그 수만은 세월은 우린 이겨 내고 버텨와고 현재에 이르러 살고 있지요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것을 알수가 있게 대는 것임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사용하는 농업 기술 그리고 공구 어업기술 공구 노젓는 기술 배 제작기술 도기 재작 기술 지도 재작 기술 그림 시 의복 상투 온돌 집신 건설 허다 못해 묘지도 말이지요 모든 분야를 조사 하고 그시대적 다른나라의 것과 비교해 보세요 가희 모든것이 천재적이다는것을 알수가 있지요
중간에 일본 사무라이들이 화려하게 입던 이유는 처음엔 전투후 논공행상때문. 전투중 난전이라도 이름 있어 보이는 적장이 보이면 서로 이름 묻고 (예의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전투후 보고용). 난전 중 정신 없는 상황에서 그냥 벤경우나 화살로 멀리서 죽였을때 본인이 죽인것을 증명 할때 본인의 갑옷 특징을 본 주위 병사들 증언이 증거중 하나가 됨
왼손에 활, 방패를 들고 있거나 장병기 사용 도중에 검을 꺼낼 때는 그냥 오른손을 뒤로 돌려서 빼는게 훨씬 편합니다. 이게 익숙해지다보면 아예 검을 단독으로 사용할때도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뒤로 가지요. 걸어가면서 검을 뺄 때 앞으로 빼면 어째 자꾸 걸음걸이가 꼬이는 느낌이...
편삼각도(일면평조도)는 내구성+제작 용이성 때문에 만들어진 형태죠. 칼의 양면을 모두 갈아서 날을 만들면 양쪽을 동일하게 연마하기 어렵습니다. 육각도가 내구성이 좋고 베는 맛이 뛰어나지만 양쪽이 다르게 연마되어 날이 칼의 정중앙이 아니면 베는 느낌이 일정하지 않게 됩니다. 차라리 한쪽면만 갈아서 날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버리면 베는 맛은 나빠질지언정 베는 느낌은 일관되게 됩니다.
다른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유익하고 좋은 내용이지만 한가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네요. 일본도를 만들때 접쇠기법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일본도의 무늬는 접세기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칼날을 만들때 칼날을 경화시키는 과정인 열처리라는 매우중요한 과정을 거치는데 일본도 외의 다른 검들은 칼날전체에 열처리를 하지만 일본도의 칼날은 열처리를 할때 칼등쪽에 진흙을 발라 칼로 무언가를 배었을때 그부분만 열처리가 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칼날에 물결무늬가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가이는 머리빗이 아닙니다. 머리 긁는데 잘 사용하긴 했지만..... 코가이가 달린 이유는 일본도는 평상시 유지 보수를 위해 모두 분해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손잡이의 슴베경우에는 우리는 아예 철을 녹이거나 땜질해붙여서 손잡이에 고정시켰지만 일본도는 그냥 나무못 하나만으로 슬쩍 고정시켜 손잡이를 감은 가죽끈만 풀고 코가이등으로 메쿠기(나무못)를 제거하기만하면 분해되어 언제라도 칼날과 손잡이를 바꾸어다는 모듈형 이엇습니다. 칼날 하나만드는데 품이 엄청나게 들고 단순한 도구일 뿐만아니라 미적 기준을 가진 공예품으로 인식되니 부품을 호환하여 쓰는게 무척이나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칼을 손질하기위해 분해 조립하는데나 급할 경우 그자리에서 부속품(메쿠기,손잡이끈, 검집 가죽세공)등 여러방면에 사용된 겁니다. 영화 '오니노츠메'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번듯한 무사가 암살용으로 이 코가이를 사용 하지요. 워낙에 작은 지라 손바닥 안데 숨겼다가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킨후 쓱싹입니다. 이게 가능한것은 코가이는 우치가타나의 정식부품이고 칼의 몸체에 원래 배비된것이고,워낙에 작아 인지가 힘들고, 또한 몸체와 손잡이를 구별하는 테가 안달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칼자체를 스스로 수리한다거나 하는 경향이 없는 조선에서는 그냥 망가지면 버렸기에 이런 귀찮은 소품은 달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칼단면에 대해 이견이있는데 삼각도는 임진왜란때까지도 흔히 쓰이던 칼입니다. 그때문에 일본도를 입수햇어도 손에 맞지 않아 일본도의 칼면을 갈아내 썼다고 합니다. 이경우 육각도의 칼면을 갈아니면 삼각도 내지는 부득 사각도가 됩니다만.....
@@Orang_Fantasy 우리나라도 있기는 했었죠. 일본이 강점기 때 다 파괴해거나 훔쳐가서 그렇지. 예전에 고종의 갑옷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보관만하다가 실수로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왕의 칼과 갑옷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한스럽네요. 그리고 제대로 사료를 뒤져 연구하는 학자가 없다는 것도. 일본이나 중국학자의 의견을 베끼는 수준의 연구라니...답답할 따름.
1,별 생각이 없었는데 칼도 양식과 사용법이 매우 다양하네요. 2.조선시대에도 보고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배웠으니 현대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3.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감이 있습니다. 고객님들, 주부님들 등등 무조건 경칭을 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없어도 되는 단어는 불필요한 사용례입니다. 여기 영상에서 사용하는 "조상님들"이라는 호칭도 그냥 "조상들"이라고 써서 이상이 없다면 그냥 "조상"이라고 쓰는 것이 맞는 표기법입니다. 내 생각입니다.
@@ggict77 그런데 일제시대가 되면서 일본의 검도가 들어 와서 검을 가지고 하는 무술의 주류가 되었죠. 우리나라 고유의 검술이 있었겠지만 전수가 안되었습니다. 일본의 검도가 실전성이 더 좋으니 전통 검술을 제끼고 한국에 자리를 잡은 건 아닐지. 굳이 일본,일제를 무시할 필요 없다고 봐요. 활은 우리가 압도적이니.
@@레이루-i3d ㄴㄴ 일본 무시하는게 아님.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요. 검도라고 해봐야 평화시대인 에도시대때 만들어진거고, 일본에서 조차 본격적인 대규모 집단전에선 일본도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소규모 전투에서 사용하던 일본도도 노타치나 나기나타 나가마키 이런것들로 우리가 아는 검도의 카나타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것들이에요. 그런데 고려시대 이후 부터 전쟁이면 대규모 전쟁을 상정하는 한반도에서 일본도 같은 어정쩡한 크기의 양손검이라는게 쓰일 곳이 있었따면 그게 더 이상한거죠.
@@레이루-i3d 일단 왜구들은 확실히 썼었습니다. 일본전국시대 초반까지도 소규모 전쟁이다 보니 썼을테구요. 유럽에서도 쯔바이핸터 같은 걸 쓰긴 했는데, 그 정확한 쓰임새가 뭔지를 놓고 논쟁 있었을 정도로 애매하긴 했죠. 확실한건 말씀하신 방패+한손검이나 장창에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쥬류이긴 했죠.
맞습니다. 파는것뿐만 아니라 한국 사극에서도 딱봐도 일본도인 칼들을 쓰죠. 칼손잡이(칼자루)를 가죽을 이용해서 x자 모양으로 감싸는것도 일본칼의 특징이죠. 그리고 환도(조선칼)도 그 영향을 받기도 했죠. 그걸 핑계로 한국 사극에 나오는 환도의 손잡이 디자인들이 거의 모두다 일본칼 디자인을 따라했죠. 거기다 그 칼들에 물결무늬인 하몬까지 만들어놨고 어떤건 혈조까지 만들어놨죠. 문제는 이런 칼들이 임진왜란 전의 조선시대 초기 배경인데도 나온다는거죠. 화려한 무늬의 코등이와 칼날 길이도 긴 환도들이요. 칼손잡이 디자인부터 칼날 디자인까지 그냥 일본칼들이죠. 딱봐도 그냥 일본칼들이거나 일본칼에서 아주 살짝 수정한 칼들이죠. 또 조선 후기 배경의 사극인데도 이런 환도들이(이것도 그냥 일본칼들) 나오죠. 까놓고 말해서 전쟁이 아니면 칼을 휘두를 일도 거의 없는 조선시대 사극에 뜬금없이 칼 쓰는 병사나 무사들을 다수 출연시켜서 액션씬을 찍자니 자기들이 봐도 일본칼이 멋있었겠죠.
조선은 이상할 정도로 칼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듯 했는지, 적의 칼의 노획해 개조해 쓰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는 조총이 크게 발달해 나중에는 일본에 역으로 수출까지 하는 정도(그리고 장터에서 팔기까지 하는)로 발달하게 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후 대검을 장착하는 형태로 발달 할 법도 한데, 거기까지는 전혀 가질 못했더군요.
30년 전쟁 이후로 유럽 전역이 불길에 휩싸이는 대전쟁을 시도때도없이 겪은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일본이 전국 시대가 종식되고 중국도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딱히 무기를 발전시킬 사유를 가져올만한 대전쟁이 없어 정체된데다 조선은 내부의 평화 분위기도 그렇고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했기에 무기를 발전시킬 동력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부울경에이스 청나라 일본에 수출했다고함 청나라는 한족이 총기 사용하면 안되니 규제를 했고 일본은 에도막부가 다른 번들이 반란 일으킬 우려도 있고 전국시대 때는 댓뽀가 주요 무기였는데 에도막부 시대 되니 무사도 뽕 맞고 총보다 칼에 미쳐서 총기를 많이 생산안해서 총기만들든 기술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변경했다고함 한편 조선은 처음에는 항왜들에게 철판을 가지고 단조로 총열을 만들다가 아마 박연이나 하멜일행에게 배운걸로 추정되는데 쇠봉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바꾸고 질이나 생산력이 좋아 져서 가격이 다운되고 시장에서 규제없이 조총이 팔렸다고 함
사실 일본이 재료탓 하기도 뭐한게 경주 달천일대의 광산에서 생산됨 철을 최고로 쳐줬는데 이 일대의 재료가 토철과 사철입니다. 경주일대의 광산은 석축형재철로의 개발 본거지라서 조선시대 최신 재철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기술력으로 재료 문제를 해결한거죠 ㅎㅎ
근데 지금도 전통 환도 제조과정을 접쇠 방식으로 하는거 같더군요 우연히 대구관 이라는 전통환도제작소 영상을 봤는데 사철을 이용해서 접쇠방식으로 만들더이다. 왜 강철을 놔두고 사철로 만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세종실록지리지에 철광석을 생산 하는 광산이 34곳이였고 그중 사철이 나는곳이 21곳이였다고 합니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채굴이 힘드는데 굴착장비가 없던 조선시절에는 그나마 사철이 구하기 쉬웠다고 봅니다. 그리고 칼의 길이가 줄어든데 에는 15세기 이후로 는 총이든 활이든 원거리전 위주로 넘어가니 칼의 길이가 길면 오히려 불편 했었을거라고 봅니다. 현대전에서도 원딜 위주 인지라 군용칼 치고 기다란 장검은 드문 편 이더군요 그 15세기 때 에 롱소드마스터로 유명했었던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라는 검술사범이 있었는데 롱소드검술을 직접 창시 한것은 아니고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터득했었던 기술들을 집대성 했는데 그게 리히테나워 롱소드검술 이라고 합니다. 근데 리히테나워 검술의 특징이 갑주검술이 아닌 평복 검술이라는 점입니다. 리히테나워의 예감이었는지는 몰라도 핸드캐논이나 아케부스 머스킷의 등장 거기다 기다란 장창을 이용한 테르시오전술의 등장으로 인해 양손용 장검은 전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보편적으로 쓰이던 한손검 역시 주무기에서 보조무기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화승총의 등장하기 전 까지는 검이 기사의 상징이었으나 등장 이후로는 딸랑 검한자루만 차고 다니는건 그야말로 몰락한 귀족 집안 기사 라고 광고 하는거나 다름없었기에 효율은 떨어지고 비싸기만 한 피스톨 을 구해서 차고 다닐정도 였으니 양손용검이든 한손용검이든 전장에서 쓸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해서 평상시에 위급상황에 쳐했을때나 다른 귀족과 시비가 붙어서 결투를 한다거나 할때를 상정 해서 만든것이 리히테나워 검술이었다고 봅니다. 왜그런고 하면은 평상시에는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지도 않기도 하거니와 막대기만 있어도 검술을 사용할수 있기 때문이죠
일본은 무기를 돈주고 사야 하는데 문제는 칼은 집한채 값이고 조총은 훨씬 더 비쌈. 문제는 개전 초기에는 귀를 갖다주면 돈을 쳐줬는데 코로 바꾸고 문제는 갈수록 전쟁이 힘들어지니 나중에는 나도 대출갚아야 한다고 팀킬까지 해버리는거지. 칼이 있어야 전쟁을 하지. 포졸은 칼 지급도 못했는데
@@AHNKUK그래요. 냉정하게 봅시다. 일본도가 처음부터 완성되어 개발되었나요? 일본도의 출발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환두대도예요. 점차 대륙의 영향을 받아 곡도로 진화한거아닌가요? 근본적으로 환도나 일본도나 그 뿌리는 환두대도에서 곡도로 진화하고 쓰임세에 따라 변형된거 아닌가요? 임진난 이후 필요에 따라 길이가 늘어난게 왜검을 베낀겁니까? 환도의 기본적 형태가 유지되며 살짝 변형된걸 베낀다고 표현해도 되는거예요?
@@AHNKUK전해오는 환도 유물을 보시죠? 왜검을 베낀게 몇자루나 남아있는지? 내가 본거중 왜검과 닮은건 극소수에 불과하던데요? 왜검은 다들 비슷하게 생겨먹었지만 남아있는 환도는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검을 대하는 양국의 차이가 나타난게죠. 다양한 종류의 환도 중에 몇자루 일본검 모습이 있다고 베낀거라 주장하는게 정상입니까? 그거 보다 웃긴건 한국검도 하는 양반들 도복이 일본도복을 입고 한국검도라 우기는게 웃길뿐이지.
접쇠는 쇠를 꺽어서 접는것이고 강한쇠와 연한쇠를 섞는것은 다른 용어가 있을겁니다 그리구 삼각도는 딱딱하지않은 물체를 잘베고 육각도는 육각도는 딱딱한 물체를 벨때 좋다고 들었어요 일면평조도는 육각도와 삼각도의 장점을 섞어놓은 형태라고 어디서 본기억이있습니다 아참 그리구 일본에 철기를 전파한 나라가 우리아닌가요?
@@Orang_Fantasy 저는 띠돈이 적용된 환도가 2자루 있습니다 그 업체에서 듣기를 대전에있는 업체인데 그업체 사장님의 아들이 일본의 도검장의 문하생으로 유학을했다더라구요 그런데 일본은 칼을 만드는일을 돈을받고 일반에 공개하는 일이있대요 거기서 일본인이 한국인이 있는걸보고 왜 우리기술을 한국인에게 가르처주냐고 항의했는데 그 도검장이 이 기술이 원래는 한국에서 넘어온것이다 나는 우리의것을 주는것이 아니라 받았던것을 돌려주는것이다 라고하면서 입장료를 돌려줄테니 보기싫으면 나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들었습니다 일본도를 백제가 알려준건 아니갰으나 그런 도검장이 있다니 기분이 좋네요 우리도 맥이 끓어지지않고 계속이어졌다면 좋았을것을요
한반도 숲속 전투, 시가전에서는 칼이 발군의 무기이니, 조선전기 까지는 조선 검술도 칼도 굉장했을듯 합니다. 조선건국하면서 사병을 폐지하게 되고 무예의 민간전승이 끊어지게되고 이는 곧 칼의 수요가 감소하게 되겠지요. 국가의 주문으로 제작되고 납기일을 맞춰야 하니, 화려한 장식은 시간이 오래걸리고, 단가도 올라가는데다 어디까지나 보조무장장식에국가가 큰 예산을 쓸리도 만무하고.
일본도 하몬 부분은 좀 아쉽군요.. 정정한다니 다행입니다. 환도도 칼날 연마과정을 거치면 일본도 비슷하게 칼날무늬를 만들 수 있지만.. 칼의 성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죠.. 다만 미학상으로는 의미가 있고, 일본도의 시퍼런 칼날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위협적인 요소는 확실합니다. 단지 환도장인들이 칼날에 무늬넣는 중노동을 생략한거죠(공정 하나만 줄여도 생산성이 높아지니) 한가지 환도부분에서 칼집은 아쉽네요.. 우리조상님들은 칼집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속이 비치도록 할 정도로 예술성도 뛰어나셨습니다. th-cam.com/video/BNlClLiRhrk/w-d-xo.html 14분26초 해당 동영상은 옛날 영상이라 오류가 좀 많지만 어피로 감싼 칼집은 유물이니.. 칼집 속에 칼날이 보일겁니다. 나머지 정보들은 환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정보들이네요
잘보고갑니다. 근데 학계연구에 따르면 오각,육각이 많은걸로 알고있는데 제가 잘못알고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철같은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많이 쓰였습니다. 철광지 생산지가 2/3가 사철이였던걸로 기억해요. 참고로 하몬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에서도 쓰였습니다. 다만 일본은 예술적으로 노려서 더 사용했고 한국같은경우는 열처리 방법으로만 사용해서 특정 명칭이없어서 얇거하 희미하거나 제각각 다르게 보일뿐이에요. 논문도있으니깐 찾아보시면 더 좋을듯합니다.
아니 칼을 언제 뽑을지 모르는 상황은 전국시대가 끝나기 전이고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가 틀을 잡은 이후로는 사무라이들은 에도성내에서 이유불문 허가없이 칼을 뽑으면 할복인데 실수로라도 안뽑으려면잠금 장치가 있어야 하지않을까... 내 칼은 잠겨있다... 칼은 칼인데 못뽑는거다...라고 하기위해서라도
초4 막내아들이 귀멸의칼날을 보고 즈그누나를 졸라 만화속 노랑머리가(이름이 기억안나서.. ^^;;) 들고다니는 칼을 사달라 보채 크리스마스선물로 사준 칼.. 잘 갖고 놀다가(제 컨디션이 좋은 날엔 제가 칼집을 갖고 아이가 칼을 들고 검술 대련도 하고 놀았다는.. 아빠가 없어 엄마인 제가 맞서 놀아주기엔 장난감 칼이라도 검술은 체력소모가 커요 역시 우리조상님들 대단하시다는..) 그러다 오늘 영상보고는 그칼 갖다버린다고 난리네요 그러고는 저보고 환도 사달라고.. 히익... 아가야 아직 환도를 장난감으로 만든건 없단다.. 라고 달래 좀더 클때까지 기다리라 했다는..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이 어떤것인지 알고 한국인은 한국칼을 들고 놀아야 한다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스나이퍼가 꿈이라 한다는.. 크헉...
띠돈매기상태서 뒤로 칼을 뽑는게 불가한건 아니나,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띠돈매기는 근접전이 예상될시 생각보다 빠르게 칼자루를 전방으로 전환하여 칼을 뽑을수있습니다. 애초에 띠돈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고리장치입니다. 더구나 환도엔 비녀장등 잠금장치가있는 경우가 많아 뒤로 한손을이용해 칼을 뽑는게 일반적인게 아닌 정황을 뒷받침해줍니다. 발검 속도를 중시하는 경향은 전쟁상황보단 에도시대에 1대1대련, 호신용 으로 빠른 대처를 위한 것으로 압니다.
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 훈련되지 않은 현대인이 당시 무구를 입고 고증을 한 영상을 봤는데요. 확실히 칼이 길면 발검에 영향을 주더군요. 그리고 활을 쏠 때 뒤로 해놔도 칼이 길면 거추장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고요. 다만 훈련되지 않은 현대인이기에 신빙성은 낮습니다.
일본도 사실 카타나가 메인장비가 아니었죠.... 저쪽도 창 활 총이 메인 무장이었는데,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칼이 사무라이 신분의 상징이나 예술품같은 역할을 하게 되서 발달한거고, 이거 때문에 칼에 대한 환상이 생겨난거죠.... 카타나나 노다치같은 것을 안쓴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났는데 병사들이 죄다 칼뽑고 돌격해서 칼싸움으로 난전을 벌이진 않았죠. 대형 갖춰서 활 총 쏘고 창을 들고 싸웠죠. 한국은 워낙에 칼 자체가 그냥 지휘용이나 부무장의 성격이고 딱히 양반이라는 지위를 상징하는 역할도 아니라서, 칼에대한 환상도 별로 없고, 그냥 칼은 칼일 뿐이었을뿐이지요. 오히려 문치의 나라에서 칼?? 나중에 일본에 의해서 사무라이 카타나같은 문화가 알려지면서 우리도 우리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거지, 원래부터 칼이 그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음.
이게 진짜 답임.. 나도 사무라이 환상때문에 사무라이 책 .. 미야모토무사시 소설하고 사무라이도해 책을 유심히 읽었는데... 전국시대때 칼을 대량생산도 할수없을 뿐더러(생산기간문제) 비싸고 해서 전체 군인80-90비중의 아쉬가루(농민.평민)가 칼로 무장시킬수가 없음.. 다루는데 훈련기간도 오래걸림.그래서 사무라이(귀족)신분만이 칼.검술을 기본으로 구입하고 배울수가 있음... 대체로 절반넘게 무기의 주류는 창이고 영화처럼 칼.창 맞댈일 보다 돌팔매.활에 사망.부상이 제일많고 그다음이 창상임.. 칼과 칼이 맞댈일은 거진 없고 사무라이무사에게 칼이 무난한 이유는 휴대가 쉽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임.. 글고 영화처럼 사무라이 검이 갑옷을 뚫질 못해서 갑옷무사대 갑옷무사끼리 싸울땐 갑옷의 틈새 목.겨드랑이.손 이런곳을 노리고 실제로는 발차기나 유술로 쓰러뜨린 뒤 이런틈새를 찔러서 죽임... 칼싸움은 전쟁보다 영화 자토이치 처럼 갑옷없고 칼만있는 야쿠자 갱단 같은 놈들끼리 싸울때 검술이 최고인거지.. 사실 검술실력으론 전투에서 승진해봐야 특공대나 선봉대 부사관정도가 한계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검술실력으로 성공했나?? 전략과 전술.통솔력으로 최고자리 오른거지...
왜란때 조명연합군이 일본군 검수들에게 명나라 장창병과 조선군 기병을 전면전에서 그대로 격파해버린 기록 보시면 까무러치시겠네. 탄금대에서 조선군 궁기병들이 일본군 검수들에게 당한 공식 기록만 전사 3000에 포로 100임. 병종에 따라 엄연히 메인 장비로 쓰였던 게 검이었음. 왜란도 전국시대 직후이니 검을 포함한 다양한 장비가 야전에서 용도에 맞게 쓰였고.
@@user-mx6js5er4y 그건 검길이가 사람 키만한 길이의 노다치 라는 칼인데.. 그검술 유파가 몇없을 뿐더러... 훈련기간이 아주 오래걸려 양성이 쉽지가 않음..칼이 길어서 기병용으로 쓸수도 있긴하나.. 주로 말다리를 노리거나 그렇게 쓰는칼로 알고있음... 그거 조선.명나라에나 먹히지.. 말성능좋고 말잘타고 활잘쏘고 정면전안하고 게릴라 특화 여진족한테는 절대 안먹힘... 애초에 보병최고봉 일본정규군에게 평야 전면전 벌인 전술자체가 자살행위였음... 글고 그검술유파가 전투에서 불리한게 칼이 길고 무거워서 장시간 휘드루면 금방 지치고 서로 아군끼리 가깝게 부대끼면 휘두르기도 힘듬..
칼날의 물결무늬는요 하몽(하몬)이라고 하는데요, 그건 도신을 부분열처리 하느라 생긴 겁니다. 도신을 만든 후에 열처리를 해야 하는데 통으로 열처리를 하면 전투중에 그냥 부러질 수 있어서 칼날은 단단하게 칼날을 제외한 나머지 도신은 부드럽게 하기 위해서 도신에 진흙을 바릅니다. 칼날 부분만 진흙을 떠 준 후에 불에 넣고 달군후에 물에 넣으면 열에 노출된 칼날 부분은 단단해지고 진흙을 떠낸 부분에 무늬가 생기는데 그게 하몬입니다. 이렇게 하면 도신은 상대적으로 덜 단단해 지는데, 칼이 워낙 비싼거라 부러지면 당시 기술로는 용접도 할 수 없어 버려야 하니, 차라리 날은 깨져도 도신은 휘어지도록 한 겁니다. 그래서 일본도가 휘어지면 오늘날 AS신청하듯 도검장에게 맡기면 칼을 펴서 날을 다시 처리해 수리 합니다. 그리고 접쇠 방식은 모든 쇠를 다루는 문명에서는 다 하는 거에요. 쉽게 말해서 밀가루 반죽 같은 겁니다. 오늘날에야 칼을 만드는 공장에서 600달러만 주면 1090이나 T10같은 공구강 강재를 톤단위로 구입하여 옷감 재단 하듯이 칼 모양으로 재단한 후 날을 세워 만들수 있지만 옛날에는 자연에서 철가루를 모아 녹여 원강을 추출한 다음에 그걸 계속 두드리고 펴서 다시 접어 두드리고 펴는 과정을 거쳐 불순물을 제거하여 칼 뿐만 아니라 낫도 만들고 농기구도 만들고 하는 겁니다. 접쇠 방식이 무슨 특별한 걸로 아는데요, 그냥 철강 제조 기법으로 모든 문명에서 철로 숫가락 하나 만들때도 다들 저렇게 합니다.
흠... 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분들도 지적해 주셔서 일본 측 다큐 다시 보고 오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영상은 환도가 주인공이다 보니 한국 다큐만 보고 만든 부분이 크거든요.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틀린 부분이 확인되면 고정 댓글에 공지 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접쇠는 그냥 철의 탄소가 부족해서 숯에서 나오는 탄소를 철에 넣어야하는데 그 탄소가 철의 표면에만 있기 때문에 탄소 분포를 고르게 하기 위해서 접은 것이죠. 요세는 철의 워낙 좋아서 필요 없는 과정. 아 그리고 불순물 빼는 것도 맞죠.
이상 일본도 한번도 만들어본적없는 방구석 대장장이의 말씀이었습니다.
@@히익-f3d 오 현직에 계신 분이신가요?
접쇠란
짭새를 반으로 접는 기술
아닌가 🙄🙄🙄🙄🙄🙄🙄🙄🙄
오랑의 판타지 사전님이 고정함
오랑의 판타지 사전
1개월 전(수정됨)
*본 영상은 시리즈 중 17번째 영상으로 이전 영상들을 먼저 보시면 더욱 좋습니다.
(본 영상부터 보셔도 상관은 없습니다)
.
1. 칼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hfEzUsx3gbc/w-d-xo.html
2. 창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KELXTgQmVqI/w-d-xo.html
3. 활/석궁 시리즈 보기: th-cam.com/video/UipVIHOjxr0/w-d-xo.html
[오류 수정 공지]
영상 속 오류가 발견되어 수정 공지 올립니다.
일본도의 칼날 무늬인 하몬이 다마스쿠스 강과 패턴 웰디드에도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지 두 무늬가 같은 것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아무래도 환도 영상이다보니 국내 환도 자료만 가지고 영상을 만들어 오류가 발생한 점 사과드립니다.
다음 편 편에서 정정 겸 좀 더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류를 지적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패턴 웰디드는 전혀다른 두가지의 철을 샌드위치공법으로 접착해 배배꼬은후 압연단조시 보이게 됩니다.
하지만 접쇠하여만든 두가지 철을 속심과 몸으로 분리해 셋팅하는 일본도는 표면의 강성과 내부의 탄력성을 얻기위해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겉에 바르는 피복보호재에 다라 달라집니다.
이 두가지의 냉각속도에 따라 경화되는 경향과 일본도 특유의 휨이 결정되죠!
물론 하몬 중에서도 접쇠때 생기는 층층무늬가 배경으로 어렴풋하게 보입니다만 일본도의 물결무늬는
칼등쪽에 바르는 피복 보호재로 그리는 겁니다.
칼의 겹겹으로된 은은한 무늬를 배경으로 도공의 미적 감수성에 의해 만들어진 화사한 곡선이 드러나는 겁니다.
YTN 사이언스 조선의검 편을 참고해주세요~
제가 듣기로는 다마스커스 강/패턴은 잃어버린 기술이라 들었고, 지금 쓰고있는 다마스커스 강/패턴은 복원까지는 아니고 "과거에는 이랬을 것이다"하고 최대한 살려본 기술이라고 합니다.
@@reynardpark9362 //다마스쿠스강에서 패턴을 만드는것은 이미 전부터 복원된 기술입니다. 문제는 고탄소강을 사용하는 다마스쿠스강이 웬만해선 녹이 슬지 않는것이죠! 게다가 현대의 재현품은 그 무늬를 강조하기위해 산을 이용한 에칭을 하지만 과거 다마스쿠스강은 거런것 따위는 하지 않앗습니다.
즉, 재료인지,공정인지 아니면 환경인지는 모르지만 현대에 재현품은 아직 시간의 테스트를 거치짖 않은 것이죠!
@@reynardpark9362 제 영상 중 중동의 칼 편을 보면 자세히 다뤘으니 한번 확인해 보세요! ㅎㅎ 도움이 될 거에요.
편삼각도 라는 표현은 정말 오랜만에 보는데 일명 일면평조도라고 많이 제작되고 있습니다. 장인도 있고 저도 한자루 가지고 있습니다. 한번 찾아보시기를 개인적은 생각으로는 일면평조도는 한쪽이 수평이라 휘두르면 반대쪽으로 반동이와서 약간 타점이 벗어나는 느낌이 이외에는 참 좋은 칼이라는 생각이 들지요 한번베기에는 문제가 없는데 십연같은거 하면 일고여덝번째부터 평조 반대로 칼이 조금 움직인다는 느낄이라고 할까요 제가 잣밥이라 그런걸지도....
와 명검을 가지고 계시군요! 부럽습니다…
식칼의 날을 가는게 편삼각도 아닐까요? 식칼도 날을 갈때 한방향으로 날을 만들고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마다 날가는 면이 다르잖아요. 그것처럼 생각해 봤을때 날을 세운 방향으로 하는 베기는 높은 절삭력을 가지고 반대 방향으로하는 베기의 경우 칼이 미끄러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cdba207 맞습니다. 다만 전쟁터에서 과연 한쪽면으로만 벨 수 있는 칼이 얼마나 유용할진 모르겠군요.ㅠㅠ
@@Orang_Fantasy 편각날의 경우 식도에서는 식재료가 칼에 덜 붙게 하기 위해 오른손잡이 왼손잡이 용으로 연마합니다. 오를손잡이 날이면 칼을 들었는 때 오른쪽 날을 경사지게 만들어 실제 썰 때 재료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도마에 가지런히 놓이게 유도하는 거죠.
이게 도검으로가면 앞서 말한 장점이 없어 집니다. (물론 연마에 편리함은 공통적으로 존재합니다) 오히려 베는 행동을 할 경우 (우측날을 연마한 편날 이라면) 좌에서 우로 벨때는 아래로 우에서 좌로 벨때는 위로 칼이 밀리는 현상이 일어나고 결국 베어야 하는 면적이 커질 뿐만 아니라 날에 비틀리는 힘이 가해져 내구성에 불리함이 생기며 사용자의 손목과 팔꿈치에도 부담이 커집니다.
매 편 유익했는데 담 편은 기대치까지 올리셨네요! 현기증나니 빨리 올려주세요~
월도월도월도! 대박 재밌을테니 기대해 주십쇼!
.환도가 일본도를 제작 방식을 도입하다가 결국 장식 부분만 가지고 간 이유중에 하나는 .....사용자가 없었기 때문이죠. 무기는 단순히 사용법 말고도 그에 해당하는 무예도 필요합니다. 근대..조선은 칼에 대한 무예 자체에 관심이 다른 나라에 비해 현저히 없었어요. (...돈되는 기술이나 생산에 필요한 기술이 아니다 보니..) .... 뭐 조선에 검객집단이 아예 없었던건 아닌데...극소수에 불과했고.. 그나마 무인이라고 할수 있는 무관들은 검술에 큰 관심이 없었습니다. (..무관시험은 활이 알파고 체력과 말타기가 오메가..) 우리도 딱히 수능에 안 나오는 과목에는 큰 관심이 없듯이 당시에 똑같아서. .환도는 진짜 딱 사용법 정도만 익혔고 사실상 장식품이 되었죠.
애초에 냉병기의 수련은 몇십년해야하니... 조선 중기 오면서 칼의 수련보다는 조총이나 활을 쏘는게 더 효용성이 있는건 어 쩔 수 없다고 봅니다. 살상력이나 편의성면에서 칼로 한두명 베어내는것 보다는 활로 십수명 불구로, 조총으로 한두명 사살 하는것보다는 효율이 떨어지니
산이 많다는건 위쪽에서 쏘고, 상대가 반응할쯤에 산타고 공격 방향 반대로 넘어가면, 상대가 바로 못 따라오죠. 아마 이런거 때문에 활이나 총 같은 원거리 무기를 많이 썼지, 근접을 많이 안 썼을겁니다. 밥 먹을쯤에 한차례 쏘고, 상대가 경계하게 한 후에 쉬다가 다시 깨작하고 튀고 반복하면, 밥 먹을 시간도 없죠. 그렇다고 잡자고 우르르 가자니 함정일 가능성도 있고. 이런식이 가능해서 근접을 쓸일이 거의 없었겠지요.
성 위에서 방어할때나 근접이 좀 필요했겠지만요.
와 좋은 의견입니다. 과연 그랬을 것 같네요. 무기란게 한쪽으로만 치우치면 안되는데 조선은 지나치게 원거리 무기에만 치우친 경향이 있죠. 아무래도 원정 전쟁을 하지 않은 터라 수성전만 벌이다보니 생긴 문제인 것 같네요. 참 안타깝습니다. 현재 한국에 존재하는 본국 검법도 듣기론 명맥이 끊겨 일본것을 많이 가져다 썼다죠. 에휴. 예나 지금이나...
북방 오랑캐 상대하는게 제일 중요한데 뭔 검술타령? 몽골 여진족 같은 애들 상대로 칼로 덤빌거임? ㅋㅋㅋ
말씀처럼 양질의 철로 인해 보다 일찍 철기술이 발달했습니다.
고려시대 이후 중국과 우리나라 칼은 접전시 충격을 칼 전체로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쨍쨍 하는건 아님)
칼집에 옻칠할 때 삼베 등을 배접해서 하는것도 전통 옻칠 기법을
그대로 사용해서일겁니다.
오 잘 알고 계시네요! 멋집니다.
하몬무늬는 접쇠방식에서 오기보다 열처리과정에서 진흙을 발라 바른부분과 그렇지 읺은부분에서 오는 무늬아닌가요?
진흙은 조선 환도도 바르더군요.
@@Orang_Fantasy 그 환도는 접쇠 공정을 모방한 것으로 보입니다. 환도 관련 유튜브 영상 하나를 보니 전통 환도를 만들다면서 제작 공정이 접쇠였습니다.
@@Orang_Fantasy 환도도 진흙을 발라 하몬무늬를 드물게 표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지만 제가 말쓴드리고 싶은것은 하몬무늬가 접쇠과정에서 오는것이 아니라 열처리과정에서 오는것이라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제가 알던 지식과는 달라 여쭤봅니다.
추가로 일본의 접쇠는 품질이 낮은 철의 불순물을 거르기위해 하는 것으로 성질이 다른 두철을 섞는 접쇠와는 다른것으로 생각됩니다.
@@김기범-b7c 일본 칼 다큐 저장해 놓은 것이 있는데 다시 한번 보고 와야겠군요. 흠...
일본도의 하몬은 백색 강화 라는 열처리 공법에 의해 나타나는 무늬 입니다. 물결 모양으로 진흙을 바르게 되면 진흙을 바른 부위와 바르지 않은 부위가 열에 노출되는 온도가 달라져서 나타나는 것으로 중국 한나라 시대에 개발되었고 당나라 때에 눈내린 모양을 닮았다 해서 눈조각 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딱히 복합 소제 칼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고 점토에 의한 강화 열처리 공법의 흔적입니다. 다만 중국에서는 사장 되었는데 담금질 용매의 확대와 기술의 발달(철제 자체의 품질 향상) 등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없어졌지만 장식적인 미가 있어서 예식용 도검에는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명나라와 청나라 의 도검에서도 일부 발견되곤 합니다.) 일본 같은 경우 저런 점토에 의한 열처리가 오래도록 남아있게 되었는데 아마 가마쿠라 막부와 무로마치 막부를 거치면서 칼의 의미에 실전성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면서 도검을 제작하는 공정이 고착화 되었기 때문 아닌가 싶습니다. 실제로 일본도의 칼은 신사에 받쳐진다 거나 봉납 혹은 예물이 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단조 접쇠는 환도를 만드는 과정 즉 불순물을 빼는 정련로 과정에서 이미 다 끝난 상태여서 없다고 하는 건데 실제로는 합니다. 조선의 경우 분업화 되어있어서 완성된 강제를 (철식鐵式 이라는 법제화 된 정련 과정을 통해 철강을 생산) 도검장은 받아서 가공 제작만 함으로 없다고 착각 하는거지요, 일본에 비해 한반도와 중국쪽이 철 자체를 다루는 기술은 상당히 위의 테크에 있었습니다. 일단 가마 자체도 조선의 경우 환원괴와 반환 원괴를 위한 송풍구조가 다를 만큼 발달해 있었고 조선중기 이후에는 환원괴(주철) 만 생산하는 석축형 제철로(완전 환원반응로) 가 개발되어 이 주철을 정련과정을 거친 연철과 섞는 방식의 테크닉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일본 같은 경우 위와 같은 송풍구조의 차이도 알지 못했고 완전 환원반응로 의 개발도 없었으니 그만큼 철제 테크 자체는 많이 뒤쳐져 있었고 이를 장인이 커버치기 위해 복합재질 구조의 칼 즉 우리가 아는 카타나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군용 환도는 예외 없이 대부분 단일 재질 강철검이고 민간에서 쓰는 장도粧刀 의 경우 위와같은 법제화된 고정련 철제가 없었기 때문에 복합 제질의 칼이 나오기도 합니다. 장인의 솜씨로 원재료 의 저품질을 만회하는거지요 조선의 강철제 기술에 관한한 철식鐵式 만 읽어도 괴장히 분업화가 잘 되어있고 행정적으로 품질을 관리 했다는 걸 알수 있습니다.
철식鐵式 의 강철제품 품질은 정련 횟수로 분류하는데 고정련일 경우 불순물이 적은 고순도의 철이 나오게 됩니다 추조, 정조, 정정조, 극종조 의 순입니다.(정련할수록 철의 무게는 불순물이 떨어져 나감으로서 가벼워 지고 노동력은 많이 들어갑니다.) 환도는 군용품목으로 정정조 이상의 고품질의 철제를 이용했고 이보다 더한 극히 고정련 과정을 거친 극종조의 경우 철제 가공 도구와 궁궐의 못이나 철에 사용 됩니다.
선생님 혹시 풀러의 구조강도에 대해서도 잘 아십니까?
이걸 남한테 서술할려니 정리가 잘 안되네여 ㅜㅜ
@@생선까시-z7e 보통 혈조가 깊고 여러개 일수록 구조강도를 많이 확보 할수 있습니다 구조강도의 확보는 칼의 길이와 연관이 있으며 칼이 길어질수록 혈조가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는데 제철기술의 발달로 재료강도가 늘어나게 되면서 베기저항 등에 악영향을 주는 혈조가 없어지는 방향으로 개선되어 갔습니다. 청동기시대 칼의 경우 구조강도의 확보를 위해 풀러(혈조)를 많이 넣는 경향이 있었고 점차 시대가 지나가며 없어지다가 기능적인 이유(무게감소 나 높은 곡률이 있는 칼의 일부) 로 넣는 선택지가 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sms1012 오옹 감사함다
정말 유용하네요 이렇게 전문적인 분석은 박물관에서도 못본듯 합니다
그니까요! 이런 걸 박물관에서 해야지 저같은 일반인이 하고 있으니…ㅠ
@@Orang_Fantasy 솔직히 정말 제가 전통무기관련 배우던때보다 오랑님께 더 많이 배웁니다 20대에 배웠음 좋았을것을 반백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배우니 안타깝네요 ㅎㅎ
@@k76106 아이구 미천하지만 도움이 되었다니 기분이 좋네요. 앞으로도 더 좋은 컨텐츠 만들어보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생각 해봐도 우리의 칼 재조기술이 허졉할리가 없습니다 그 수만은 세월은 우린 이겨 내고 버텨와고 현재에 이르러 살고 있지요 그것은 우리의 선조들의 능력이 뛰어나다는것을 알수가 있게 대는 것임니다 그리고 선조들이 사용하는 농업 기술 그리고 공구 어업기술 공구 노젓는 기술 배 제작기술 도기 재작 기술 지도 재작 기술 그림 시 의복 상투 온돌 집신 건설 허다 못해 묘지도 말이지요 모든 분야를 조사 하고 그시대적 다른나라의 것과 비교해 보세요 가희 모든것이 천재적이다는것을 알수가 있지요
중간에 일본 사무라이들이 화려하게 입던 이유는 처음엔 전투후 논공행상때문. 전투중 난전이라도 이름 있어 보이는 적장이 보이면 서로 이름 묻고 (예의라고는 하지만 실제론 전투후 보고용). 난전 중 정신 없는 상황에서 그냥 벤경우나 화살로 멀리서 죽였을때 본인이 죽인것을 증명 할때 본인의 갑옷 특징을 본 주위 병사들 증언이 증거중 하나가 됨
왼손에 활, 방패를 들고 있거나 장병기 사용 도중에 검을 꺼낼 때는 그냥 오른손을 뒤로 돌려서 빼는게 훨씬 편합니다. 이게 익숙해지다보면 아예 검을 단독으로 사용할때도 자연스럽게 오른손이 뒤로 가지요. 걸어가면서 검을 뺄 때 앞으로 빼면 어째 자꾸 걸음걸이가 꼬이는 느낌이...
실제로 저렇게 치렁치렁 무구를 달고 무기를 어떻게 썼을지 참 궁금하긴 하네요. 저걸 사극에서 고증을 안 해주니 일반인들은 알 수가 없어 너무 궁금합니다.
애초에 조선에선 은장도 라는 단검이 있었으니 별 의미가 없었죠. 은장도에 젓가락을 끼고 다녔으니 그런것 까지 할 필요가 있나하고 코가이와 코즈카를 넣지 않았죠.
편삼각도(일면평조도)는 내구성+제작 용이성 때문에 만들어진 형태죠. 칼의 양면을 모두 갈아서 날을 만들면 양쪽을 동일하게 연마하기 어렵습니다. 육각도가 내구성이 좋고 베는 맛이 뛰어나지만 양쪽이 다르게 연마되어 날이 칼의 정중앙이 아니면 베는 느낌이 일정하지 않게 됩니다. 차라리 한쪽면만 갈아서 날을 한쪽으로 치우치게 만들어버리면 베는 맛은 나빠질지언정 베는 느낌은 일관되게 됩니다.
오 그렇군요.
환도 라는명칭 자체가 처음 등장한건 고려시대 충렬왕 시기. 이전까지는 직도 형태의 환두대도를 쓰다가 여몽전쟁을 거치면서 몽골의 곡도형식을 받아들여 환두대도와 접목시키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환도의 형태가 되었다 라는설이 유력합니다.
맞습니다. 시리즈물이라 이전 영상에서 자세히 설명했으니 보시면 좋겠습니다.
7:59 코등이를 화려하게 장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실용적이지 않은 부분인데... 아마도.... 후손들이... 행여나... 자신들이 쓰던 칼을 주웠을 경우... 팔아서... 살림 살이에 보태 쓰라...는...크흑...조상님!!!!!!!!!!!! ㅠㅠㅠㅠㅠㅠ
일본도와 장창의 영향으로 팽배수(방패병)가 사라진 것이 맞나요? 아니면 정확한 답변 부탁드립니다.
그 반대입니다. 북방 여진족만 상대하다 팽배수의 역할이 적다가 일본도와 장창 때문에 다시 부활했죠. 물론 임란 이후 또다시 줄게 됩니다ㅠ
@@Orang_Fantasy 그렇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1. 북방이 한창 시끄럽던 시절에도 팽배수의 수요는 있었습니다. 여진분쟁지역이 생각보다 산지지형이 꽤나 되어 산지의 거점수비나 수성전에서 팽배수는 탱커로서 깨나 가치있었습니다.
해당병과 쇠퇴는 도리어 북방이 크게 안정된 이후 본격화됩니다.
물론 사유는 다양하여 사회적으론 군역의 제도가 갈수록 문란해져감과
본래 백병전이라는게 활이나 포보다 더 실전경험이 중요한 점, 어느순간 원딜만능주의 풍조가 만연한점 , 무과시험자체에 마술, 궁술 등만을 숭상한것 등등 뭐 수백가지 입조
2. 사족입니다만, 조선전기 팽배수와 임난이후 들여온 등패수는 같은 방패병이긴 하지만, 조선전기 오위진법이라는 (총통, 장창, 사수, 검병, 팽배) 틀 안에서 운영되던 팽배수와 원앙진(등패, 장창, 낭선, 기창, 당파, 곤방 등)이란 틀안에서 운영되던 등패수는 그 운영과 성격은 꽤나 상이했다고 봅니다.
전자가 육중한 방패로스크럽을 짜는 탱커이라면 후자는 가벼운 등패를 활용하여 좀더 유연한 딜탱의 느낌?
@@닥치통조림 그렇군요 좋은 답변 감사합니다.
3:18 실측해 본분의 말에 따르면 배형구조는 사실상 없었고 오히려 십중팔구는 육각도이고 나머지는 삼각도 아니면 편삼각도였다고 합니다
다른 내용들은 전체적으로 유익하고 좋은 내용이지만 한가지 제가 알고 있는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네요. 일본도를 만들때 접쇠기법을 사용한 것은 맞지만 일본도의 무늬는 접세기법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칼날을 만들때 칼날을 경화시키는 과정인 열처리라는 매우중요한 과정을 거치는데 일본도 외의 다른 검들은 칼날전체에 열처리를 하지만 일본도의 칼날은 열처리를 할때 칼등쪽에 진흙을 발라 칼로 무언가를 배었을때 그부분만 열처리가 되게 합니다. 그 과정에서 칼날에 물결무늬가 생기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코가이는 머리빗이 아닙니다. 머리 긁는데 잘 사용하긴 했지만.....
코가이가 달린 이유는 일본도는 평상시 유지 보수를 위해 모두 분해 가능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손잡이의 슴베경우에는 우리는 아예 철을 녹이거나 땜질해붙여서 손잡이에 고정시켰지만
일본도는 그냥 나무못 하나만으로 슬쩍 고정시켜 손잡이를 감은 가죽끈만 풀고 코가이등으로 메쿠기(나무못)를
제거하기만하면 분해되어 언제라도 칼날과 손잡이를 바꾸어다는 모듈형 이엇습니다.
칼날 하나만드는데 품이 엄청나게 들고 단순한 도구일 뿐만아니라 미적 기준을 가진 공예품으로 인식되니
부품을 호환하여 쓰는게 무척이나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래서 칼을 손질하기위해 분해 조립하는데나 급할 경우 그자리에서 부속품(메쿠기,손잡이끈, 검집 가죽세공)등
여러방면에 사용된 겁니다. 영화 '오니노츠메'의 경우는 엉뚱하게도 번듯한 무사가 암살용으로 이 코가이를 사용
하지요. 워낙에 작은 지라 손바닥 안데 숨겼다가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킨후 쓱싹입니다.
이게 가능한것은 코가이는 우치가타나의 정식부품이고 칼의 몸체에 원래 배비된것이고,워낙에 작아 인지가 힘들고,
또한 몸체와 손잡이를 구별하는 테가 안달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칼자체를 스스로 수리한다거나 하는 경향이 없는 조선에서는 그냥 망가지면 버렸기에 이런 귀찮은 소품은
달리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칼단면에 대해 이견이있는데 삼각도는 임진왜란때까지도 흔히 쓰이던 칼입니다.
그때문에 일본도를 입수햇어도 손에 맞지 않아 일본도의 칼면을 갈아내 썼다고 합니다. 이경우 육각도의 칼면을
갈아니면 삼각도 내지는 부득 사각도가 됩니다만.....
결국 머리 긁긴 했다는게 웃김 ㅋㅋㅋㅋㅋㅋ
하기야 그 시대때 빗은 중요한 물건이었으니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저도 그 부분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에도 시대가 되면서 머리 장신구로 더 쓰이더라고요. 영어 설명에도 머리빗으로 나와서 더 자주 접한 내용을 담은 점 이해해 주세요.
@@Orang_Fantasy //머리 장신구로 쓰이는 코가이는 비녀(뒤꽂이)로 쓰이기에 날이 없지요. 하지만 카타나에 일속으로 붙은 코가이는 분명히 날이 있습니다. 이는 도구로 쓰이는 것이겠지요.
@@청솔향-g9u 정확하십니다. 사실 용도가 다양하고 후기로 갈수록 본래 목적보단 장식용으로도 많이 쓰여서 서술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어디 근첩에서 본적이 있는데
일본도가 패셔너블한 맛이 있다면
환도는 텍티컬한 맛이 있다고
제가 한국인이라 그런건진 몰라도,
전 텍티컬..
택틱컬이라... 글쎄요... 택틸컬...
일본도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들어선 GHQ 막부가 내린 폐도령에도 많은 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칼자루 부분에서 이야기한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요소 덕분에 무기가 아닌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하죠.
맞습니다. 우리나라도 뭔가 이런 분야가 있었으면 하는데… 없네요ㅠ
@@Orang_Fantasy 우리나라도 있기는 했었죠. 일본이 강점기 때 다 파괴해거나 훔쳐가서 그렇지.
예전에 고종의 갑옷을 야스쿠니신사에서 보관만하다가 실수로 공개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왕의 칼과 갑옷이 한 점도 없다는 것이 한스럽네요.
그리고 제대로 사료를 뒤져 연구하는 학자가 없다는 것도.
일본이나 중국학자의 의견을 베끼는 수준의 연구라니...답답할 따름.
@@승강기기사-w4p 맞습니다. 그러니 저희같은 일반인들이 접근할 수 있는 전문성에 한계가 크지요. 저도 영상 만들 때마다 자료 찾느라 힘들어 죽겠습니다ㅠ
@@승강기기사-w4p / 그놈의 일본탓 ㅋㅋㅋ,,,, 아니 해방된지 70년이나 지낫는데 왜? 한마리도 복원을 하지않냐?
그렇게 자랑스러운 한국 검을 왜? 일본도처럼 상품화 안시키냐?
그건 니가 생각 한만큼 함국거밍 좋은게 아니라 좟같아서 그런거야 ㅄ아
인류최;고의 검인데,,,일제때문에 일제가, 일제만 없엇어도~
아가리만 나불 거리겟냐?
주딩이롷만 식민사학 나불거리는 개도해지새끼
아가리만 나불거리지말고 니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 한평생 바쳐봐라 ㅂㅅ아
그런데 너도 조선 역사가 역겨워서,그럴생각은 없고 아가리만 나불거리잔아 아
주딩이로는 일제 욕하고
아가리로는 친일파 아들 문재인 존경하고
친일파아들 정동영을 국회의원 만들어준 김대중 이재명 존경하고
쪽바리유전자 23%인 조민은 우뤙한 유전자 물려받앗다면서,,
조국집안을 위해 조센징 유전자 없애버리자면서 죽창가를 부르는 개돼지새끼
주딩이로는 일제잔재청산
아가리로는 일제잔재 목포 적산가옥을 문화재지정해서 수백ㄱ억원 투자해 영원히 보존해주고
일제잔재인 오뎅,우동,짬뽕,돈까스,팥빙수,붕어빵,계란말이,초밥,김밥,삼겹살 등등은
뒈질대까지 처묵처묵하고 영원히 보존해주는 버러지새끼
아가리만 일제일제 나불거리면 애국이라는 ㅄ새끼,,
너그거아냐?ㅂ ㅅ아?
학교,학생,선생,담임,교사,교무실,교장실,선배,후배,친구,입학,졸업 등등등 수십만가지 언어가 일제잔재다
일제잔재 스지말라고하면 너는 뒈질대까지 입닥치고 살다가,
밥 쳐먹을대만 아가리벌려야되 ㅄ새끼야
우리말로 학교,학생,교사,담임,교장 등등이 뭔지는 아냐?
모르지?
순 우리말이 좟같냐?ㅂ ㅅ아? 왜 몰라?
순우리말 쓰지않고 일제잔재를 뒈질깨까지 보존해주는 그ㅜ 아가리가 자랑스럽냐? 버러지새끼야?
@@승강기기사-w4p걍 쳐약해서 문화마저도 빼앗긴
4:40 저도 항상공감하는부분이네여
ㅎㅎ
다음편은 아마도 월도에 관한영상
이 올라갈거같네여 일본 중국 한국중
유일하게 즐겨사용한무기져
11:41 그림보시면 전투에서뿐만아니라
법을 집행하는 신성한용도로 많이
사용하기도했네여^^
ㅋㅋㅋㅋ 월도가 짱이긴 하죠. 다음편 내용이니 기대하세요!
1,별 생각이 없었는데 칼도 양식과 사용법이 매우 다양하네요.
2.조선시대에도 보고 좋은 것은 적극적으로 배웠으니 현대의 우리들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3.우리나라 사람들이 경어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감이 있습니다. 고객님들, 주부님들 등등 무조건 경칭을 붙이는 경향이 있습니다. 없어도 되는 단어는 불필요한 사용례입니다. 여기 영상에서 사용하는 "조상님들"이라는 호칭도 그냥 "조상들"이라고 써서 이상이 없다면 그냥 "조상"이라고 쓰는 것이 맞는 표기법입니다. 내 생각입니다.
사실 일본도에서 배운건 크기 밖에 없음. 그 크기도 양손검의 용도한계로 인해 다시 작아짐. 코등이 이런거 따라한건 그냥 장식용.
@@ggict77 그런데 일제시대가 되면서 일본의 검도가 들어 와서 검을 가지고 하는 무술의 주류가 되었죠. 우리나라 고유의 검술이 있었겠지만 전수가 안되었습니다. 일본의 검도가 실전성이 더 좋으니 전통 검술을 제끼고 한국에 자리를 잡은 건 아닐지.
굳이 일본,일제를 무시할 필요 없다고 봐요. 활은 우리가 압도적이니.
@@레이루-i3d ㄴㄴ 일본 무시하는게 아님. 사실이 그렇다는 거지요. 검도라고 해봐야 평화시대인 에도시대때 만들어진거고, 일본에서 조차 본격적인 대규모 집단전에선 일본도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소규모 전투에서 사용하던 일본도도 노타치나 나기나타 나가마키 이런것들로 우리가 아는 검도의 카나타와는 거리가 한참 먼 것들이에요. 그런데 고려시대 이후 부터 전쟁이면 대규모 전쟁을 상정하는 한반도에서 일본도 같은 어정쩡한 크기의 양손검이라는게 쓰일 곳이 있었따면 그게 더 이상한거죠.
@@ggict77 저는 아는 바가 없어서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근데 전쟁에서 양손검이 안쓰였어요? 개인의 수련용 내지는 폼 잡기 용인가요? 사실 양손검보다 로마군처럼 방패+한손검이 더 실전적이지 싶기는 한데.
@@레이루-i3d 일단 왜구들은 확실히 썼었습니다. 일본전국시대 초반까지도 소규모 전쟁이다 보니 썼을테구요. 유럽에서도 쯔바이핸터 같은 걸 쓰긴 했는데, 그 정확한 쓰임새가 뭔지를 놓고 논쟁 있었을 정도로 애매하긴 했죠. 확실한건 말씀하신 방패+한손검이나 장창에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비쥬류이긴 했죠.
우리나라 환도라고 하는 칼중에 딱봐도 일본도 같은데 환도라며 파는 칼들이 있더라고요ㅠㅠ
칼끝이나 단면,자루등등 일본도랑 똑같도록 만들어놓고...
그럴 때마다 이 임진왜란을 구실로 들더군요 ㅋ
맞습니다. 파는것뿐만 아니라 한국 사극에서도 딱봐도 일본도인 칼들을 쓰죠. 칼손잡이(칼자루)를 가죽을 이용해서 x자 모양으로 감싸는것도 일본칼의 특징이죠. 그리고 환도(조선칼)도 그 영향을 받기도 했죠. 그걸 핑계로 한국 사극에 나오는 환도의 손잡이 디자인들이 거의 모두다 일본칼 디자인을 따라했죠. 거기다 그 칼들에 물결무늬인 하몬까지 만들어놨고 어떤건 혈조까지 만들어놨죠. 문제는 이런 칼들이 임진왜란 전의 조선시대 초기 배경인데도 나온다는거죠. 화려한 무늬의 코등이와 칼날 길이도 긴 환도들이요. 칼손잡이 디자인부터 칼날 디자인까지 그냥 일본칼들이죠. 딱봐도 그냥 일본칼들이거나 일본칼에서 아주 살짝 수정한 칼들이죠. 또 조선 후기 배경의 사극인데도 이런 환도들이(이것도 그냥 일본칼들) 나오죠. 까놓고 말해서 전쟁이 아니면 칼을 휘두를 일도 거의 없는 조선시대 사극에 뜬금없이 칼 쓰는 병사나 무사들을 다수 출연시켜서 액션씬을 찍자니 자기들이 봐도 일본칼이 멋있었겠죠.
하몬?빼곤 정말 좋은 자료입니다..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시원하게 풀어줘어 감사합니다...그냥 대봏고 베낀건 아니라는것을 알았습니다.
매번 한 두 군데 틀린 곳이 나오니 부끄럽습니다ㅠ 자료 조사를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편집 과정에서 항상 실수를...;;;
강도 높고 비교적 짧은 환도가 모험할때 들고다니기 적절하겠군.
정답~!
칼을 뒤로 차는 띠돈매기는 사실 전세계적으로 행해지던 패용법이었죠. 근대시대 유럽에서도 대부분 조선처럼 칼을 뒤로차는 띠돈매기를 했었죠.
오 그런가요? 신기하네요. 그런 유물은 유럽쪽에선 본 적이 없는데ㅠ 혹시 예로 들만한 게 있나요?
비녀장은 무장들의 시험과목이 마장술 활쏘기 등이 더 중요하기때문에 격한 움직임에 칼이 떨어지는것을 방지하기 위함도 있습니다
오랑님 질문드려요 영화보면 서양이든 동양이든 칼이 부러지면 대장간에서 고치던데 그게 가능한가요? 이런 내용을 주제로 한 콘텐츠는 어떠신지요???
음... 좋은 아이디어 같은데... 과연 자료가 있을까요? 매번 자료 조사가 너무 힘들어서요ㅠㅠ 만약 조사해 보고 있으면 만들게요!
기병환도의 특징은 칼길이 보다 칼집의 길이가 아~~~주 길더라구요. 기마를 독려하기 위해 엉덩이 때리는 용도, 둔기로써의 용도, 등이 있었고, 날은 짧아도 두꺼워서 무겁더군요. 친구내 가보를 본적 있습니다.
와 가보가 환도? 와… 부럽다.
일면평조형도신은 단단한것과 부드러운것 두가지에 모두 대응할수 있게 만들어져서 그런거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편수검으로 쓰기 편한 조건이기도 하지요
환도 역사 재밌네요 자주 영상보러
올께요 10만 여름오기전에 달성할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 되도록 노력할게요!
물결무늬는 진흙을 붙이고 구워서 연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
네. 많은 분들이 오류를 지적해 주셔서 고정 댓글에 오류 수정 달아 놨습니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조선은 이상할 정도로 칼에는 크게 집착하지 않는 듯 했는지, 적의 칼의 노획해 개조해 쓰거나 하는 일도 잦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임진왜란 이후는 조총이 크게 발달해 나중에는 일본에 역으로 수출까지 하는 정도(그리고 장터에서 팔기까지 하는)로 발달하게 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이후 대검을 장착하는 형태로 발달 할 법도 한데, 거기까지는 전혀 가질 못했더군요.
30년 전쟁 이후로 유럽 전역이 불길에 휩싸이는 대전쟁을 시도때도없이 겪은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는 일본이 전국 시대가 종식되고 중국도 청나라가 들어선 이후에는 딱히 무기를 발전시킬 사유를 가져올만한 대전쟁이 없어 정체된데다 조선은 내부의 평화 분위기도 그렇고 청나라의 눈치도 봐야 했기에 무기를 발전시킬 동력이 나올 수 없었습니다.
조선조총을 일본에 수출햇다고요
? 자료 사이트좀부탁합니다
@@부울경에이스 th-cam.com/video/22Fj9O2aWOE/w-d-xo.htmlsi=QHsjbwlHrIT9VOe1
@@부울경에이스 바쁘면 13:55 로
@@부울경에이스 청나라 일본에 수출했다고함 청나라는 한족이 총기 사용하면 안되니 규제를 했고 일본은 에도막부가 다른 번들이 반란 일으킬 우려도 있고 전국시대 때는 댓뽀가 주요 무기였는데 에도막부 시대 되니 무사도 뽕 맞고 총보다 칼에 미쳐서 총기를 많이 생산안해서 총기만들든 기술자들이 다른 업종으로 변경했다고함 한편 조선은 처음에는 항왜들에게 철판을 가지고 단조로 총열을 만들다가 아마 박연이나 하멜일행에게 배운걸로 추정되는데 쇠봉에 구멍을 뚫는 방식으로 바꾸고 질이나 생산력이 좋아 져서 가격이 다운되고 시장에서 규제없이 조총이 팔렸다고 함
앞으로 무기 역사 영상을 만들 때 참고자료를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냥 국내에 있는 해당 주제의 서적 전부라고 하면 되겠습니다.
매번 그렇게 조사를 해서 올리거든요.
내가 알기로 환도의 고리칼이란 뜻은 칼자루 구녕에 고리를 만들어 댕긴다보다
칼집에있는 고리때문으로 알고있음
님영상에 있는 패용방식도 보면 죄다 고리가 있고 그 고리에 끈으로다 드리어 차고댕겨서 환도라 한는거임
일러에 나온 임진왜란 수채화 작가님은 누구인가요?
자세히 기억은 안 나네요ㅠ
세종시절 이미 일본에서 왜검만드는 법 배워온 조선장인이 있었음 세종대왕에게 일본도를 만들어 바침 이순신 장군 칼도 일본에 잡혀간건지 자발적으로 간건지 는 모르지만 왜검을 만드는 법을 배운 조선인이 만들었죠
16:44 어디에서 많이본 사진이...😅😅😅
헐 죄송합니다. 저번에 말씀해 주셨을 때 다 지운줄 알았는데 여기도 있네요. 지금 바로 조치 했습니다. 반영되는데 하루 정도 걸릴 수 도 있습니다ㅠ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ㅠㅠ 다음 번 컨텐츠들에서는 좀더 면밀히 확인 후 문제 없도록 하겠습니다ㅠ
@Orang_Fantasy 아닙니다. 그냥 사진속에 모델 누구라고 작성만부탁드려요^^
@@KAMProject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ㅠ
사철이나 접쇠가 주류가 아니였던거지 조선에서도 오래오래 썼습니다. 당시엔 재료보다 중요했던건 대장장이의 기술력과 그 제자에게 전승되는 방식이였으니까요
맞습니다. 조선 내 대장간만 해도 수 백 군데얐으니까요. 영상에서 다루지 못한 부분 집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일본이 재료탓 하기도 뭐한게 경주 달천일대의 광산에서 생산됨 철을 최고로 쳐줬는데 이 일대의 재료가 토철과 사철입니다. 경주일대의 광산은 석축형재철로의 개발 본거지라서 조선시대 최신 재철기술이 많이 들어가 있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기술력으로 재료 문제를 해결한거죠 ㅎㅎ
@@sms1012 와... 도대체 이런 해박한 지식은 어디서 얻으신 거죠? 대단하십니다. 저도 좀 알려주세요ㅠㅠ
일본도는 어디의 영향을 받았는지도 알려주세요.
환도는 몽골의 영향을 받아 시작된 곡도아닌가요?
일본은 언제부터 곡도를 사용했는지 환두대도 말고 직도가 있기는 한지 궁금합니다.
일본의 칼 편에서 다루어주시면 좋을 듯 하네요.
일본의 칼 편 업로드 했습니다!
근데 지금도 전통 환도 제조과정을 접쇠 방식으로 하는거 같더군요
우연히 대구관 이라는 전통환도제작소 영상을 봤는데 사철을 이용해서 접쇠방식으로 만들더이다.
왜 강철을 놔두고 사철로 만드나 해서
검색을 해보니 세종실록지리지에 철광석을 생산 하는 광산이 34곳이였고
그중 사철이 나는곳이 21곳이였다고 합니다.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채굴이 힘드는데
굴착장비가 없던 조선시절에는 그나마
사철이 구하기 쉬웠다고 봅니다.
그리고 칼의 길이가 줄어든데 에는 15세기 이후로 는 총이든 활이든
원거리전 위주로 넘어가니
칼의 길이가 길면 오히려 불편 했었을거라고 봅니다.
현대전에서도 원딜 위주 인지라 군용칼 치고 기다란 장검은 드문 편 이더군요
그 15세기 때 에 롱소드마스터로 유명했었던 요하네스 리히테나워 라는
검술사범이 있었는데
롱소드검술을 직접 창시 한것은 아니고
각국을 돌아다니면서 터득했었던
기술들을 집대성 했는데 그게 리히테나워
롱소드검술 이라고 합니다.
근데 리히테나워 검술의 특징이 갑주검술이 아닌 평복 검술이라는 점입니다.
리히테나워의 예감이었는지는 몰라도
핸드캐논이나 아케부스 머스킷의 등장
거기다 기다란 장창을 이용한
테르시오전술의 등장으로 인해
양손용 장검은 전장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었고 보편적으로 쓰이던 한손검 역시
주무기에서 보조무기로 바뀌었다고 봅니다.
화승총의 등장하기 전 까지는 검이 기사의 상징이었으나
등장 이후로는 딸랑 검한자루만 차고 다니는건 그야말로 몰락한 귀족 집안 기사 라고 광고 하는거나 다름없었기에
효율은 떨어지고 비싸기만 한 피스톨 을
구해서 차고 다닐정도 였으니
양손용검이든 한손용검이든 전장에서 쓸일이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고 봅니다.
해서 평상시에 위급상황에 쳐했을때나
다른 귀족과 시비가 붙어서 결투를
한다거나 할때를 상정 해서 만든것이
리히테나워 검술이었다고 봅니다.
왜그런고 하면은 평상시에는 갑옷을 입고
돌아다니지도 않기도 하거니와
막대기만 있어도 검술을 사용할수 있기 때문이죠
조선인이 일본도를 모방 했다는 얘기가 굉장히 흥미로운데 어떤 사료에서 보셨는지 궁금합니다.
좋은정보가 많은곳이긴한데 전편에서도 그렇고 조금씩 사실과 다른부분들이 있네요
그래도 재미있게 보고갑니다
더 좋은정보 부탁드려요
틀린 점이 있으면 말해주세요. 다음 편에 수정하겠습니다.
사람은 소중한 무언가를 지킬때 진정으로 강해지는 법 이랍니다.....
죽일수도 있는 것은 살릴수도 있다 입니다.....
저 비녀장 개념은 20세기 들어서 일본군의 군도에서 활용됩니다.
차이가 있다면, 환도의 비녀장은 칼집에 달려있는데, 일본군의 군도의 것은 칼에 달려있다는 차이점이랄까요...^-^a;;;
일본은 무기를 돈주고 사야 하는데 문제는 칼은 집한채 값이고 조총은 훨씬 더 비쌈.
문제는 개전 초기에는 귀를 갖다주면 돈을 쳐줬는데 코로 바꾸고 문제는 갈수록 전쟁이 힘들어지니 나중에는
나도 대출갚아야 한다고 팀킬까지 해버리는거지. 칼이 있어야 전쟁을 하지. 포졸은 칼 지급도 못했는데
베끼다니 ㅎㅎ. 서로 다 영향을 주고 받는거 아닌가요? 일본도도 갑자기 일본에서 혼자 자연발생한게 아닌데? ㅎ
영향을 주고 받았다고 하면, 일본도에도 환도의 영향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고 오로지 환도를 최대한 일본도 처럼 만드려고 노력했죠. 임진왜란 이전과 이후의 환도는 모두 환도라 불리고 있지만 사실상 다른 도검입니다. 베낀 게 맞죠 냉정하게.
@@AHNKUK그래요. 냉정하게 봅시다. 일본도가 처음부터 완성되어 개발되었나요? 일본도의 출발도 한반도에서 건너간 환두대도예요. 점차 대륙의 영향을 받아 곡도로 진화한거아닌가요? 근본적으로 환도나 일본도나 그 뿌리는 환두대도에서 곡도로 진화하고 쓰임세에 따라 변형된거 아닌가요? 임진난 이후 필요에 따라 길이가 늘어난게 왜검을 베낀겁니까? 환도의 기본적 형태가 유지되며 살짝 변형된걸 베낀다고 표현해도 되는거예요?
@@AHNKUK전해오는 환도 유물을 보시죠? 왜검을 베낀게 몇자루나 남아있는지? 내가 본거중 왜검과 닮은건 극소수에 불과하던데요? 왜검은 다들 비슷하게 생겨먹었지만 남아있는 환도는 다양한 모습들입니다. 검을 대하는 양국의 차이가 나타난게죠. 다양한 종류의 환도 중에 몇자루 일본검 모습이 있다고 베낀거라 주장하는게 정상입니까? 그거 보다 웃긴건 한국검도 하는 양반들 도복이 일본도복을 입고 한국검도라 우기는게 웃길뿐이지.
현대의 군대 총검도 비교 컨텐츠 만들어주세요 중국,한국,일본 의 총검
한국이나 일본은 나토 규격에 맞게 대부분 미국제 나이프를 라이센스 생산하여 사용합니다. 한국은 m7나이프구여
하몬(물결무늬)를 좀 오해하신거 같네요. 뭐 열처리를 하는 과정에서 하몬을 만들지만 여기엔 일본 특유의 실용보다 형식이나 치장을 중시하는 버릇이 칼에도 나타난것으로 보입니다.
참고사항 :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군이 어느 미군을 있는 힘껏 일본도로 내려친 적 있는데 방탄모에 튕겨져 나가며 역으로 미군에게 제압됐다 (해당 일본도와 철모는 박물관에 전시됨)
진짜 온힘을 짜내서 내려쳤는지 사진 보니까 철모 중앙 부위가 좀 파였더라
애초에 방탄모는 적의 포탄이나 총알도 방어할수 있을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다.
재질, 조립법, 구성을 보면 환도가 일본도보다 좋은 무기 같은데, 운용 소프트웨어(매기, 훈련, 길이)가 잘못되어서 환도가 일본도에 비해 활약을 못한것 같습니다.
애초에 조선군에서 검은 보조용 무기고 조선군 전술이 원거리 무기를 통한 화력 사격과 기병전술임
조선은 일반인들도 활을 쏘는 문화와
돌팔매질이 취미였던 원딜의 민족이죠
조선에서검은 권총같은부무장 위치고 일본은 소총같은 주무장 위치여서 인식자체가다름
세계사 적으로도 양손검이 전장에 주역이였떤 적은 없음. 일본조차도 전국시대 후기 대규모집단전이 본격화 되는 시점에서 일본도는 무기로 안쳐줍니다.
와 우리 모험가님들 너무 멋져요. 답변들이 다 해박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한 것들이네요!
영상에서 우리나라 띠돈이 360도 돌려서 칼 뽑는 장면이 봤는데 꽤 빨랐습니다.
사시미가 편삼각도 아닌가요? 절삭력은 뛰어난거같은데.. 단지 왼손 오른손 구분해야하고 사용할때 한쪽으로 쏠려서 그거 감안해서 써야하는거는 좀 그렇죠
접쇠는 쇠를 꺽어서 접는것이고 강한쇠와 연한쇠를 섞는것은 다른 용어가 있을겁니다 그리구 삼각도는 딱딱하지않은 물체를 잘베고 육각도는 육각도는 딱딱한 물체를 벨때 좋다고 들었어요 일면평조도는 육각도와 삼각도의 장점을 섞어놓은 형태라고 어디서 본기억이있습니다 아참 그리구 일본에 철기를 전파한 나라가 우리아닌가요?
맞습니다. 일본에 철기를 전파한게 우리나라죠. 다만 철기를 전파한 것과 일본도를 모방한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니 동일 선상에서 보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Orang_Fantasy 저는 띠돈이 적용된 환도가 2자루 있습니다 그 업체에서 듣기를 대전에있는 업체인데 그업체 사장님의 아들이 일본의 도검장의 문하생으로 유학을했다더라구요 그런데 일본은 칼을 만드는일을 돈을받고 일반에 공개하는 일이있대요 거기서 일본인이 한국인이 있는걸보고 왜 우리기술을 한국인에게 가르처주냐고 항의했는데 그 도검장이 이 기술이 원래는 한국에서 넘어온것이다 나는 우리의것을 주는것이 아니라 받았던것을 돌려주는것이다 라고하면서 입장료를 돌려줄테니 보기싫으면 나가라고 했다는 일화도 들었습니다 일본도를 백제가 알려준건 아니갰으나 그런 도검장이 있다니 기분이 좋네요 우리도 맥이 끓어지지않고 계속이어졌다면 좋았을것을요
한반도 숲속 전투, 시가전에서는 칼이 발군의 무기이니, 조선전기 까지는 조선 검술도 칼도 굉장했을듯 합니다. 조선건국하면서 사병을 폐지하게 되고 무예의 민간전승이 끊어지게되고 이는 곧 칼의 수요가 감소하게 되겠지요. 국가의 주문으로 제작되고 납기일을 맞춰야 하니, 화려한 장식은 시간이 오래걸리고, 단가도 올라가는데다 어디까지나 보조무장장식에국가가 큰 예산을 쓸리도 만무하고.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 갑옷과 우리가 흔히 '일본갑옷' 하면 떠오르는 갑옷엔 차이가 좀 있는데 그것도 다루면 좋겠어요
나중에 갑옷편을 따로 만들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10만 가면 편삼각도 만들기 고고 !!! 어떠신가요
하앍! 돈이 얼마나 들려나요!
일본도 하몬 부분은 좀 아쉽군요.. 정정한다니 다행입니다.
환도도 칼날 연마과정을 거치면 일본도 비슷하게 칼날무늬를 만들 수 있지만.. 칼의 성능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죠.. 다만 미학상으로는 의미가 있고, 일본도의 시퍼런 칼날이라는 표현이 있듯이 시각적으로 상당히 위협적인 요소는 확실합니다.
단지 환도장인들이 칼날에 무늬넣는 중노동을 생략한거죠(공정 하나만 줄여도 생산성이 높아지니)
한가지 환도부분에서 칼집은 아쉽네요.. 우리조상님들은 칼집을 투명하게 만들어서 속이 비치도록 할 정도로 예술성도 뛰어나셨습니다.
th-cam.com/video/BNlClLiRhrk/w-d-xo.html
14분26초
해당 동영상은 옛날 영상이라 오류가 좀 많지만 어피로 감싼 칼집은 유물이니..
칼집 속에 칼날이 보일겁니다.
나머지 정보들은 환도를 이해하는데 좋은 정보들이네요
이 영상을 자료 조사 때 보긴 했지만 분량 상 빼게 됐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다큐 제작자가 아니라 재미도 추구해야 하거든요.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 할 것 같은 부분은 아쉽지만 뺄 수 밖에 없어서요ㅠㅠ 이 점 이해해 주세요.
오오 드디어!! ㄱㅅㄱㅅ
환도 개량형이 카타나(일본도) 외도라고 날이하나만 있다고 하는거 같은데 환도가 "펄션"과도 같을꺼야
조리용 식칼도 외도이네 뾰족한 부분 짤라 버리고 베기 좋게 만든 식칼이 사각형 환도 아니던가
주방에서 사용하는
와....
몽골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으니, 그 여파가 크겠지요. 그덕도 있었겠네요.
영상 잘 보고 갑니다.
일본은 유목민과 거리가 먼데 일본도는 어떻게 유목민의 곡도처럼 휘었어요??
야마토 부족이 에미시 부족을 정벌하고 통일하는 과정에서 그들의 기마전술을 받아들이면서 영향을 받은걸루 압니다.
아마도 다음 영상에서도 다뤄주실듯
뭐 무기란게 워낙 서로 영향을 많이 끼치기도 하고 교류도 많은만큼 굳이 베꼈다고 하기보단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게 어떨까요 우리나라 도가 왜란이후 일본도의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긴 했지만 일본 역시 원류를 살펴보면 거의 모두 중국에서 가져온 무기니까요
일본 당수도 가라데 그대로 배껴와서 태권도라 이름만 바꿔 달고 자기들꺼라 박박 우겨대는 민족이 뭔들 안 배꼈겠습니까? 조선시대에 형태와 색까지 일일히 명나라가 지정해준 복색입고서 이제와서 한복 자기들거다 하는 판에.
유목민의 후예!
자전거와 오도방구와 차에 진심인!!
지갑은 안 훔쳐도 자전거는 훔치는 나라!
잘보고갑니다. 근데 학계연구에 따르면 오각,육각이 많은걸로 알고있는데 제가 잘못알고있는 건지 모르겠네요. 사철같은경우는 조선시대에도 많이 쓰였습니다. 철광지 생산지가 2/3가 사철이였던걸로 기억해요. 참고로 하몬은 삼국시대부터 한국에서도 쓰였습니다. 다만 일본은 예술적으로 노려서 더 사용했고 한국같은경우는 열처리 방법으로만 사용해서 특정 명칭이없어서 얇거하 희미하거나 제각각 다르게 보일뿐이에요. 논문도있으니깐 찾아보시면 더 좋을듯합니다.
감사합니다
공성무기 편도 만들어주세요~
원래철로칼을만드는기술은우리나라가먼저인데일제강점기시대에일본에서기술을가져갔고한국은대대로칼만드는기술이큰기고이제몇분남아있다고알고있습니다그러나일본은한국에서가져간 칼만드는기술을대대로물려받아 현제는 일본도를더선호하는건아닐까생각합니다. 철또한우리나라철이칼을만드는대조건이 일본철보다 더 좋은것같습니다
유익하고 재미있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컨텐츠로 보답하겠습니다.
다마스쿠스 무늬와 하몽은 다른거지
맞습니다. 비슷한 무늬인데ㅜ서술을 제가 잘못 했네요ㅠ 고정 댓글에 오류 수정 공지했습니다. 언제나 좋은 지적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갑옷도 하나요?
네. 나중에 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배형도가 배모양이여서라고 하셨는데 조선의 배는 평평한거로 아는데요 조선기준이 아닌가요?
판옥선이 평저선이지 일반 배들은 저런 모양도 많았을 거에요.
유물들의 비교를 위해 현대에 만들어진 용어일검다.
만들었던 당대에는 딱히 있던 용어는 아니공
넷플릭스 킹덤 때 칼을 앞으로 맸다고 고증오류라고해서 칼을 뒤로 매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는데, 이제서야 궁금증을 해결했습니다.
잘보고가염
아니 칼을 언제 뽑을지 모르는 상황은 전국시대가 끝나기 전이고
전국시대가 끝나고 도쿠가와 막부가 틀을 잡은 이후로는 사무라이들은 에도성내에서 이유불문 허가없이 칼을 뽑으면 할복인데
실수로라도 안뽑으려면잠금 장치가 있어야 하지않을까...
내 칼은 잠겨있다... 칼은 칼인데 못뽑는거다...라고 하기위해서라도
무기에 달린 장식도 반드시 필요한 목적이 있었구나..
뭐라도 하나 더하는 순간 공정은 느려지고 단가는 올라가고 무기는 거추장스러워지니까요. 참고로 창에 달린 술 장식도 기능적으로는 적의 피가 자루로 흐리지 않게 하기 위함이래요. 피가 자루에 흐르면 손이 미끄러진다네요.
켄신의 검은 설마 환도 였나? ㅋㅋㅋㅋㅋ 13:15
쌍룡섬이 환도검집을 사용한것일수도,...
내용은 이해하지만 제목은 매우 거북하네요... 베꼈다는 표현이 어느정도 수준의 디자인, 기술도입이 아니라 거의 전부를 모방했다는
표현으로 들리네요...
화약이 얼마나 비싼데 조총을 주력으로 햇을까? 웬만하면 칼을 쓰지 조총을 한발 쏠때마다 몇십만원씩 나가는데
과연 당시에 조총을 얼마나 썼을까? 사극에서나 맘대로 쓰지. 실전에는 확실하지 않으면 안쏘지.
디자인은 카타나가 좀 더 멋지긴해요 😛
환도도 이쁜거 존나 많은데 뭔 개소리노
@@rkfjfjdnxnzjajk 근
@NAL DAWSON 근데 외국애들 사무라이 거리는 거 보면 알잖아요.. 칼 디자인도 어느정도 있을 수도 있지만.. 미리 문화적으로 선점한 영향이 크다고 생각함.. 외국애들 사무라이 닌자 그러는 거 봄 웃김
얘들아 취항존중하는걸로 끝내자
@@rkfjfjdnxnzjajk 취향이 다를수도 있지 왜 윽박질러 ㅋㅋㅋㅋㅋㅋㅋ
자주성이 있은 것이 아니고 닮을 능력이 없었지...
활을 이용한 원거리전투나 수성전투를 중시한 조선이기에 창이나 칼이 중국이나 일본만큼 발달하지도 못한건 아쉬운부분이네요.....
대신 총 나오기 전까진 마상 전투는 우리가 훨씬 좋았으니 이거로라도 위로를...
총의 탄생은 기사의 몰락을 의미했죠..
저 조선검술은 호랑이처럼싸우고 일본검술은
여우처럼 싸운다는 이야기들었는데 나중에
검술편 다뤄주세요
중.한.일 셋다 기본적인 틀은 비슷한데 어느정도로 화려하게 싸우느냐가 가장 눈에띄는 특징이라 검술편을 다룰게 있을지
와 솔직히 환도 얘기할때마다 조선의 환도가 일본도보다 우월하네, 환도랑 일본도는 전혀 관련없는 칼이다 이런사람 정말많은데 이런 영상이 도움되겠네요 ㅠㅠ
아... 지갑형 핸드폰 케이스. 우리나라에선 부모님의 전유물 같은데 일본에선 엄청 유행하고 있다 하죠. 진짜 적절한 비유네요ㅋㅋㅋ
의미가 다른거 같은데 ㅋㅋㅋ
월도vs나기나타?
다음편에서 공개될 예정!
좀 심하게 비유하자면 총검 같은 위치였나...
얼추 비슷하네요!
ㅇㅇ 보조임
일본도 칼 쓰는건 군인 사무라아뿐야
사무라이는 호위무사쯤 되는거고
비슷한거
초4 막내아들이 귀멸의칼날을 보고 즈그누나를 졸라 만화속 노랑머리가(이름이 기억안나서.. ^^;;) 들고다니는 칼을 사달라 보채 크리스마스선물로 사준 칼.. 잘 갖고 놀다가(제 컨디션이 좋은 날엔 제가 칼집을 갖고 아이가 칼을 들고 검술 대련도 하고 놀았다는.. 아빠가 없어 엄마인 제가 맞서 놀아주기엔 장난감 칼이라도 검술은 체력소모가 커요 역시 우리조상님들 대단하시다는..)
그러다 오늘 영상보고는 그칼 갖다버린다고 난리네요 그러고는 저보고 환도 사달라고.. 히익...
아가야 아직 환도를 장난감으로 만든건 없단다.. 라고 달래 좀더 클때까지 기다리라 했다는..
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이 어떤것인지 알고 한국인은 한국칼을 들고 놀아야 한다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스나이퍼가 꿈이라 한다는.. 크헉...
예전영상에 환도가 짧아진것과 연계해서 생각하면 대표적으로 많이했다던 띠돈메기역시 환도가 짧아진것에 영향을 주지않았나 싶기도하네여
뒤로칼을뽑아야하니 칼이너무길면 뽑기가힘들어질테고 애초에 발검을 할상황까지왔다는건 적이 근접했다는것인데
그상황에서 칼이길어서 발검이 늦어서 칼맞고죽을바에여 칼이좀 짧더라도 일단 발검을해서 살확률을 조금이라도 높이는게 낫지않았나 싶기도하네여
띠돈매기상태서 뒤로 칼을 뽑는게 불가한건 아니나, 일반적인 상황은 아닙니다. 띠돈매기는 근접전이 예상될시 생각보다 빠르게 칼자루를 전방으로 전환하여 칼을 뽑을수있습니다. 애초에 띠돈이 360도 회전이 가능한 고리장치입니다.
더구나 환도엔 비녀장등 잠금장치가있는 경우가 많아 뒤로 한손을이용해 칼을 뽑는게 일반적인게 아닌 정황을 뒷받침해줍니다.
발검 속도를 중시하는 경향은 전쟁상황보단 에도시대에 1대1대련, 호신용 으로 빠른 대처를 위한 것으로 압니다.
음...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 훈련되지 않은 현대인이 당시 무구를 입고 고증을 한 영상을 봤는데요. 확실히 칼이 길면 발검에 영향을 주더군요. 그리고 활을 쏠 때 뒤로 해놔도 칼이 길면 거추장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고요. 다만 훈련되지 않은 현대인이기에 신빙성은 낮습니다.
일본도 사실 카타나가 메인장비가 아니었죠.... 저쪽도 창 활 총이 메인 무장이었는데, 전국시대가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찾아오자 칼이 사무라이 신분의 상징이나 예술품같은 역할을 하게 되서 발달한거고, 이거 때문에 칼에 대한 환상이 생겨난거죠....
카타나나 노다치같은 것을 안쓴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쟁났는데 병사들이 죄다 칼뽑고 돌격해서 칼싸움으로 난전을 벌이진 않았죠. 대형 갖춰서 활 총 쏘고 창을 들고 싸웠죠.
한국은 워낙에 칼 자체가 그냥 지휘용이나 부무장의 성격이고 딱히 양반이라는 지위를 상징하는 역할도 아니라서, 칼에대한 환상도 별로 없고, 그냥 칼은 칼일 뿐이었을뿐이지요. 오히려 문치의 나라에서 칼??
나중에 일본에 의해서 사무라이 카타나같은 문화가 알려지면서 우리도 우리칼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거지, 원래부터 칼이 그닥 중요한 의미를 가진 나라가 아니었음.
@Endure everything 일본도 환상은 일본 만화 영향이 크다고 봄 사무라이 나오면 카타나 들고 총알 치고 다니니
비하도 과장도 없는
있던 그대로의 정보군요
이게 진짜 답임.. 나도 사무라이 환상때문에 사무라이 책 .. 미야모토무사시 소설하고 사무라이도해 책을 유심히 읽었는데... 전국시대때
칼을 대량생산도 할수없을 뿐더러(생산기간문제) 비싸고 해서 전체 군인80-90비중의 아쉬가루(농민.평민)가 칼로 무장시킬수가 없음..
다루는데 훈련기간도 오래걸림.그래서 사무라이(귀족)신분만이 칼.검술을 기본으로 구입하고 배울수가 있음... 대체로 절반넘게 무기의 주류는 창이고 영화처럼 칼.창 맞댈일 보다
돌팔매.활에 사망.부상이 제일많고 그다음이 창상임.. 칼과 칼이 맞댈일은 거진 없고 사무라이무사에게 칼이 무난한 이유는 휴대가 쉽고 다양한 상황에 대처가 가능하기 때문임..
글고 영화처럼 사무라이 검이 갑옷을 뚫질 못해서 갑옷무사대 갑옷무사끼리 싸울땐 갑옷의 틈새 목.겨드랑이.손 이런곳을 노리고 실제로는 발차기나 유술로 쓰러뜨린 뒤 이런틈새를 찔러서
죽임... 칼싸움은 전쟁보다 영화 자토이치 처럼 갑옷없고 칼만있는 야쿠자 갱단 같은 놈들끼리 싸울때 검술이 최고인거지.. 사실 검술실력으론 전투에서 승진해봐야 특공대나 선봉대 부사관정도가 한계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검술실력으로 성공했나?? 전략과 전술.통솔력으로 최고자리 오른거지...
왜란때 조명연합군이 일본군 검수들에게 명나라 장창병과 조선군 기병을 전면전에서 그대로 격파해버린 기록 보시면 까무러치시겠네. 탄금대에서 조선군 궁기병들이 일본군 검수들에게 당한 공식 기록만 전사 3000에 포로 100임. 병종에 따라 엄연히 메인 장비로 쓰였던 게 검이었음. 왜란도 전국시대 직후이니 검을 포함한 다양한 장비가 야전에서 용도에 맞게 쓰였고.
@@user-mx6js5er4y 그건 검길이가 사람 키만한 길이의 노다치 라는 칼인데.. 그검술 유파가 몇없을 뿐더러... 훈련기간이 아주 오래걸려 양성이 쉽지가 않음..칼이 길어서 기병용으로 쓸수도 있긴하나.. 주로 말다리를 노리거나 그렇게 쓰는칼로 알고있음... 그거 조선.명나라에나 먹히지.. 말성능좋고 말잘타고 활잘쏘고 정면전안하고 게릴라 특화 여진족한테는 절대 안먹힘... 애초에 보병최고봉 일본정규군에게 평야 전면전 벌인 전술자체가 자살행위였음... 글고 그검술유파가 전투에서 불리한게 칼이 길고 무거워서 장시간 휘드루면 금방 지치고 서로 아군끼리 가깝게 부대끼면 휘두르기도 힘듬..
😮육각도 더 무겁지 않나요 ??
편삼각도는 대패날을 생각해 보시면 될듯..
일본도 제작 장인은
삼국시대의 백의를 입고 만든다는...
가문마다 지역마다 다름
베끼든 뭐든
세계인은 그냥 일본칼로 생각하고 있다
where's the SUB?!?!
Not yet... sorry...
임란에서 갈려나간 팽배수와 살수. 조선의 모루는 한 국가와 맞서기엔 너무 약했다..
일본도 와 환도 가장 큰 차이는 만든 방식 그리고 재질 가장 큰 차이네요
조선시대 환도는 사철입니다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