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긴 고구리 지역임.....고구리 패망후 통일신라의 변방인 시기도 있었지만....그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무덤에 신라인이 묻혀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오히려 위대한 고구리황제를 찬양하는 글이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지.....묘의 진정한 주인도 모르니 그냥 '총'이란 단어를 붙이고 추정만 하는거고
우리가 흔히 진한,변한,마한을 백제,신하,가야 라고 아시는데 그건 아니고 틀을 세개로 나뉜거뿐 그안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많았습니다. 그 지역들을 평정한게 백제,가야,신라인건데 평정도 하고 연합을 하기도 하는 연합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신라,백제,고구려 보면 귀족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지방권력을 움켜졌고 또 그들이 군사를 이르켜서 왕을 가라 치우기도 했습니다. 신라만 봐도 김씨,박씨,석씨가 있습니다.
의외로 압독국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네요 ~~ㅠㅠ 6가야가 성행했던 4세기 전후로 경산에는 압독국 청도 이서국등은 또다른 소국을형성하고 있었읍니다 고대국가로 발전하지못하고 차후 신라에병합되기까지 자료가 너무없어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ㅡ 앞으로 자랑스런 우리역사를 연구하는데 투자가 필요합니다
@@질문빌런-f5i 제가볼때 금관 자체가 백제계 유산입니다. 평안도에 발견되는 무덤 양식과 집안성 무덤양식이 공주시 무령왕릉 그 주변 양식과 많이 흡사합니다. 신라는 백제의 일개 부용국이고 백제 문화를 흡수해서 이익을 본 집단일뿐입니다. 한반도에 초기신라도 없으며 고구려는 현재 요하 동쪽을 건너지도 못했습니다.
똥 밭입니다. 개 똥밭.. 표지 푯말만 세워두고 거의 관리 안하죠..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제초작업이 전부.. 경산박물관 가시면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놀라울만한 전시물도 있으니 근처시면 아이들과 가볼 만 합니다. 고인돌 덮개석에 천문 지도가 새겨진 것도 볼 수 있고. 생각보다 고대시대가 발달되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아서 지금의 이름인 경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신라는 왕이 여러명이었던 것 같음. 진골급 이상 왕족이었을 거고.. 경주에 있는 왕은 왕중의 왕, 굳이 말하자면 황제급이었던 것 같음..그러나 외부적으론 경주에 있는 왕이 신라를 대표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경주에 있는 신라왕을 외교적으로나 역사서상으론 황제라 칭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여러왕을 두고 황제의 격식을 차렸던 것 같다...그당시 선우나 칸등 북방 아시아 역사에서는 흔한일임...
저런거는 중앙아시아에서도 많이 나왔음. 지금의 역사관는 해방 이후 우리 대한민국 국적자들의 단결력을 고취시키고자 한반도 영토안에 꾸역꾸역 구겨 넣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활동영역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땅에 널리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모두 우리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고 지금의 여러 국가들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지만 중국의 한족과는 엄연히 다른 인종이었다.
10개씩이나 넘게 나온걸로 봐서 신라 금관/금동관은 왕권을 상징하는게 아니라 다른 의미일 거 같음. 사후세계에서의 구복의 의미라던가 하는. 그리고 같은 형태의 관을 사용했다는 것으로부터 저 곳의 지배자들은 신라왕족이던지 아니면 신라왕족과 같은 기원을 가진 북방유목민족 으로 추측됨. 만일 신라금관/금동관이 신라왕/왕비 만의 전유물이라면 저 곳은 신라 속국 군장의 무덤이 아니라 신라왕들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됨. 신라왕들의 공동묘지인 것일테고 무덤 주인들은 모두 신라 왕과 왕비들. 그렇다면 저 무덤들의 주인인 신라왕/왕비들은 경주 왕릉들보다 후대일 것임. 아무래도 처음에는 도읍 근처에 매장하다가 자리가 없으니 더 멀리 묘지를 써야 하는게 일반적일테니. 그리고 압독國 이라는 명칭을 두고 6세기 경주 바로 코앞에 나라가 있냐 없냐 설왕설래가 보이는데 일본도 보면 15세기 전국시대에도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지역들을 미노국 오와리국 등등 이렇게 불렀음. ~국이란 명칭은 봉건왕국체제에서는 자연스러움. 중앙집권이라는 건 몇년몇월몇일 딱 정해두고 발효 하는게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져서 완성되가는 과정임. 중국도 진시황~후한대에 이르는 수백년간에 걸쳐 중앙집권체제가 자리잡았음. 힌반도에 지방행정구역이 생긴 건 통일신라시대 9주5소경이 최초임.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국이 번이 되었고. 6~7세기에 압독國이라는 명칭이 쓰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음.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에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다 하여 지금 이름인 경산으로 고쳤습니다.
@@dennythedavinchi3832 그러니까. 왜 굳이 그 이데올로기를 우리 주류역사로 만드냐는 거죠? 님 같으면 한강이남을 갖는걸 삼국통일이라고 쓴 역사서가 제대로 된 국사로 보이나요? 이건 정말 모지리 들이 쓴 한반도 한민족 역사이지 않나요? 결국 뻔히 보이는 지역주의 조장을 왜 이건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는 절대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느냐는거죠. 아직도 식민지인가요?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에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다 하여 지금 이름인 경산으로 고쳤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일본 과는 다른 외형을 가진것이 다 이유가 있다. 우리 할아버지 1898년생인데 허리가 굽은 상테에서 175인 작은형보다 더 큰키였다 외가집이 작아서 180이하였지만 우리큰집 가면 집성촌인데 동양인으로 보기힘든 외모와.큰키였다 눈썹도 아랍인 처럼 길고 시커멌자
역시 황금의나라 천년의나라 신라 개멋있어🌟
거긴 고구리 지역임.....고구리 패망후 통일신라의 변방인 시기도 있었지만....그 지역의 통일신라 이전의 무덤에 신라인이 묻혀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지...오히려 위대한 고구리황제를 찬양하는 글이 있는 유물이 발견되었지.....묘의 진정한 주인도 모르니 그냥 '총'이란 단어를 붙이고 추정만 하는거고
@@bokbokjun9767 그럼 두나라 섞인건가
금관은 신라꺼 라는데
저시대 최고 유물
@@bokbokjun9767 신라인인지 백제인인지 고구려인인지 알게 뭐여 ㅋㅋ 뭐 뼈다구 유전자검사라도 하면 어느나라 사람이라고 나오나?
저긴 압독국이에요
와 이게 도굴안되고 버티고 있었네..대단하다
신라쪽 무덤은 돌무지가 많아서 도굴이 힘든 형태
개소리냐 그건 월성북고분군처럼 적석목곽묘만 해당되는거야;;;;
순금관과 금동관은 급이 다릅니다. 금관은 오로지 경주에서만 나오고, 형태는 똑같아도 금동관은 경주 외 지역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와 너무 신기해 몇천년전 유물들을 우리가 밟고 다닌다 생각하니 .. 옛 조상님들 특히 백제 신라시대때 세공 기술력이 진짜 .. 전세계 견주어도 넘사벽일만큼 경이롭습니다 경주는 진짜 함부로 건물 올리면 안돼겠네요
압독국은 제 지식이 짧아서 ^^;; 처음 듣네요 소중한 우리 유물 문화재들 잘 보전해 주시고 많은 연구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진한의 소국이죠, 신라가 6세기 초에 왕을 세우고 신라가 되어서 신라였지 6세기초 이전에는 압독국 같은 사로국으로 진한의 작은 소국에 하나. 사로국이 6세기초에 신라가 됨.
그냥 정해 놓고 뭐가 나왔다고 하면 멋대로 이름 붙이는게 한국고고학 현실입니다.
압독국은 생각보다 일찍 신라로 병합되었던 것으로 알고는 있는데, 완전히 신라화는 6세기 초였나봐요. 그래서 저렇게 묘사한 것 같네요
우리가 흔히 진한,변한,마한을
백제,신하,가야 라고 아시는데 그건 아니고
틀을 세개로 나뉜거뿐 그안에는 수많은 소국들이 많았습니다.
그 지역들을 평정한게 백제,가야,신라인건데
평정도 하고 연합을 하기도 하는 연합국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래서 신라,백제,고구려 보면 귀족들이 사병을 거느리고 지방권력을 움켜졌고
또 그들이 군사를 이르켜서 왕을 가라 치우기도 했습니다.
신라만 봐도 김씨,박씨,석씨가 있습니다.
@@dennythedavinchi3832 전공은 커녕 석박사도 아닌 것들 주제에 어디서 소수 의견이나 위키 의견 받아먹고서 소신있는 비운의 재야학자인 척 하는 것도 반도 역덕들 현실이죠.
맨나천나 조선만 찾지 말고 이제는 고려~고조선의 고대 문화 연구에도 강력한 지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여기 우리집앞인데 걸어서 1분..지금 가볼까?
@@콘칩-y2k 빨리 고고 들고 튀져 저랑 반띵 ㄱ
집 빨리팔아요 유적지 근처 개발제한 걸린다던데
@@sssill 여긴 유적지 바로 옆 주변으로 그린벨트 개발제한 다 풀려서 아파트 짓는다고 난리네유 ㅎㅎ
99.999%금덩어리
고향사람인가? 임당동? 조영동?
압독국에 대한 지식이 없었는데 흥미롭네요
선조들의 아름다운 유산들을 볼 때마다 존경스러움.
대박
압독국은 삼국시대 초기 망했고, 7세기라면 걍 신라 최상류층이 점령했으니까 유물도 비슷. 경산이 경주 코 앞인데.
삼한시대이고 압독국과 사로국등이 공존하던 시대임...사로국이 6세기초에 왕을 세우고 신라국으로 됨.
@jkim949 방송은 6~7세기 말하는데 통일신라 시대에 경주 코앞에 독립왕국이 있었을 리가 없고 김유신 같은 외래 특수집단이 일제시대 이왕가처럼 허락받고 모여 살았을 즛
삼국사기 지리들하고 현재 지리하고 다릅니다. 예를 들어 상주가 경주 동북쪽에 있어야하는데 현재는 서남쪽에 있죠. 그냥 다 어거지를 끌고가는겁니다.
@@dennythedavinchi3832 현재 경주 서남쪽에 상주가 있어요? ㄷㄷ
몇 번 지구에서 오셨나요?
와 소름 ㄷㄷㄷㄷㄷ
압독국은 처음 들어봅니다
고조선 유민들이 진한 땅 곳곳에 사로국 압독국 등등 여러 나라를 세웠구나?
경산의 역사가 깊죠. 2천년이상. 금호강,남천,오목천이 합쳐지는 지역이라 땅이 비옥해서 농사짓기에 좋은곳이고 대구랑 비슷하게 사방이 산으로 둘러싼 분지형이라. 방어에도 유리함. 신라군대 주둔지 유적도 있죠.
저때의 저 금동관을쓴 힘있는 권력자도 시간이 지나니 허망하구나
통일 신라시대는 아마 중국과 맘먹을정도로 대국이였을것이다...금관이 7개가 출도된 나라는 신라가 유일하다..!! 역사학자들은 이걸 발굴해야 한다..
@@ssss-ou4bn 압독국은 신라가 아니야
그냥 금이 많은 거 아닐까… 금을 꼭 사와야 된다는 법은 아니잖아?
그런 근거없이 소설쓰는 개오바하는 피해의식의 발로. 있는 그대로도 소중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역사다.
8세기 이후 신라가 어떻게 중국과 비등하냐?? 소설로 역사 배움??
@@PrettyT-rex 그당시 중국인들은 선비족들에게 지배당해서 선비족 발밑에서 빌밸거리던 시절인데 또 깝대는꼴봐라 ㅋㅋㅋ
오랜 세월 도굴 피해 없이 발견 감사 하네요.
와 ㅁㅊ
의외로 압독국을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네요 ~~ㅠㅠ
6가야가 성행했던 4세기 전후로
경산에는 압독국 청도 이서국등은
또다른 소국을형성하고 있었읍니다
고대국가로 발전하지못하고
차후 신라에병합되기까지
자료가 너무없어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ㅡ
앞으로
자랑스런 우리역사를 연구하는데
투자가 필요합니다
아직도 저런 유물이 나온다는 게 신기하네요. 선조들의 위대함
역시 신라 왕실이나 압독국도 사슴뿔 순록뿔 형태의 장식이 나온걸로 봐서 북방 흉노나 스키타이 영향인것이 확실하다.
신라하고 관련없는 유물입니다. 이때까지 금관들이 신라거라는 추정만 있지, 평안도까지 금관이 다 나옵니다.
@@dennythedavinchi3832 한반도 전역이 신라였다고 보면 됨. 백제는 어디 있냐면 산동성에 있고 장강 이남에 삼국사기에 나오는 신라가 있고 이러면 역사 해석이 깔끔해짐
@@질문빌런-f5i 신라 보다는 고구려가 맞음
@@질문빌런-f5i 제가볼때 금관 자체가 백제계 유산입니다. 평안도에 발견되는 무덤 양식과 집안성 무덤양식이 공주시 무령왕릉 그 주변 양식과 많이 흡사합니다. 신라는 백제의 일개 부용국이고 백제 문화를 흡수해서 이익을 본 집단일뿐입니다. 한반도에 초기신라도 없으며 고구려는 현재 요하 동쪽을 건너지도 못했습니다.
@@fantafilmfactory고구려 수도는 남한에 내려온적이 없는데 뭔 고구려?
4단장식이면 9000세계를 의미하는것으로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는 지도자이네요.
경산 연관없다고 했더니,귀한거 나타나셔줬네
저놈의 추정추정 ㅉㅉ
대체 본인들이 뭘 안다고 저렇게 얘기하는거지?? 확실한 증거나 기록도 없이 뭔 신라가 다운그레이드 해서 금관을 내려줘??? 어처구니가 없다 상상은 자유지만 제발 맘대로 어거지로 단정 좀 짓지마라~
압독국 유물인지도 확실치 않은데 이제 발굴하면서 뭘 벌써부터 어거지로 꿰어 맞추고 있냐~
신라는 대륙신라와 한반도신라 두개인데
압독국은 그 신라이전의 나라인가
@@리치-u8s 중국 전한과 후한 사이에 외척 왕망이 세운 신나라 즉 신라가 잠깐 존재했고 이때 한무제때 투항한 흉노 왕자 김일제 후손들이 신나라에 협력하다 신나라 멸망후 집단적으로 서라벌로 이주 신라 김씨 왕족이 되었다고 한다.
응? 저기 발굴완료된거 아니었냐 ㄷㄷㄷㄷ 예전엔 울타리도 없어서 사람들이 저기에 강아지 데리고 산책시키고 초저녁이면 자리깔고 맥주마시곤 했었는데 ㄷㄷㄷㄷ
@@ssangmadam 지금도 옛날이랑 똑같아 지금은 왕릉주변으로 땅파서 조금씩 확인하는 중인데 이번에 왕관 나온데는 왕릉 입구 주차장이였는데 거기 파보니 저게 나온거
똥 밭입니다. 개 똥밭.. 표지 푯말만 세워두고 거의 관리 안하죠.. 일 년에 한 두번 정도 제초작업이 전부.. 경산박물관 가시면 관련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놀라울만한 전시물도 있으니 근처시면 아이들과 가볼 만 합니다. 고인돌 덮개석에 천문 지도가 새겨진 것도 볼 수 있고. 생각보다 고대시대가 발달되었음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sunnyan151 아무리 발달되어도 전기도 안들어오던 시절임
유물들 서울못가게 지역에서 보존해라. 개인적으로 신라유물이 왜 서울 박물관에 보관되어야하는지 이해가 안됨
사서를 뒷받침 되거나 기존 해석 불가능한 해결 가능한 글이 있어야지 저런건 의미없다.
'신라가 가야로 부터 영향을 받았다'가
옳은 해석이 아닐까
"가야" 한국 에서는 잊혀지고 일본에서 는 숨겨진 일본을 세운 나라 "가야" 입니다 원래 가야의 국기 히노마루 (해의 (산)마루) 즉 일장기 욱일승천기 는 9개의 산봉우리 에 비친 햇빛 을 그려 놓은것 입니다.
수서에 둘다 백제 부용국입니다.
@@fantafilmfactory 가야가 고구려랑 한 핏줄이라고요?
금동관에서 금관으로 변한게 아닌가? 동은 금성 샛별을 상징 금관은 태양을 상징. 별 숭배 세력과 태양 숭배세력의 차이.압독국이 더 빨리 이 지역에 자리잡은 북방계일수도~ 그러다 신라에 흡수되었을수도.
경산도 신라왕릉이거나 신라가 아닌 다른 국가(가야 혹은 제3의 세력)로 봐야지 어떻게 왕이랑 제후 국이 같은 왕관을 씁니까.. 첫단추를 잘못 꿰니 제대로 해석되는게 하나도 없잖습니까. 역사 해석좀 제대로 하시죠. 유물이 발견될수록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될 것을..
@@oz1h3 장례의식 금관임.
@@oz1h3 금동관이라고 하잖나. 금관이 아님..
@@oz1h3 한국에 역사학자가 이리 많았군. 훌륭합니다.
신라역사를 4-5세기부터라고 주장을 하니 그 이전 유물이 나오면 압독국이라고 우기는 것이지요 ㅋ
@Hyuchan1002 어떤놈이 그래요.. ㅋ
압독국 (???)
@@seonkyukim5935 임라일본부 ㅋ
@@내가니형이다 ㅉㅉ 일본이 왜 나와. 여기서
0:56 이 좁은 땅에서 우리 문화가 참 대단하다. 파도 파도 끝도 없고 저렇게 위대한 유산이 출토되고
삼국시대 유물들은 일본 중국 몽골지역에 더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
몽골에서도 저런 신라왕관이 발견되었습니다.
압독국은 첨 들어보네
그냥 같은급이고.. 귀족인이 왕인지 불문명함. 그냥 자기들 멋대로해석들임. 압독국은 확실함?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아서 지금의 이름인 경산으로 바뀌었습니다.
진짜 일본과 중국의 기나긴 침략의 세월 속에 저 유물들이 남아 있다는게 정말 신기하네.....
아파트형 복층구조?
영암 옥야리 고분군하고 비슷한것 같다
우와 귀걸이 정말 정밀하게 만들었다 근데 신라왕족 장신구의 다운그래이드 판이라고??
신라는 왕이 여러명이었던 것 같음. 진골급 이상 왕족이었을 거고.. 경주에 있는 왕은 왕중의 왕, 굳이 말하자면 황제급이었던 것 같음..그러나 외부적으론 경주에 있는 왕이 신라를 대표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경주에 있는 신라왕을 외교적으로나 역사서상으론 황제라 칭하지 않았지만 내부적으론 여러왕을 두고 황제의 격식을 차렸던 것 같다...그당시 선우나 칸등 북방 아시아 역사에서는 흔한일임...
힘차게
[청정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한국은 주위국들만 방해안해도 (중국 일본) 잘살수밖에없다 대대로 전해지는 유전자가 머리가 좋음
잘 보존했으면 좋겠다.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불법 반출되는거 조심!!
저기 예전에 울집포도밭이 있었지. 아버지 할부지랑 포도농사지으러갔던기억이.
0:55 이거 방송 나가는 거예요?
이쑤시게가 유물로 발견된건 이번이 처음이랍니다.
와~~대단하다.
저런거는 중앙아시아에서도 많이 나왔음. 지금의 역사관는 해방 이후 우리 대한민국 국적자들의 단결력을 고취시키고자 한반도 영토안에 꾸역꾸역 구겨 넣었지만 우리 조상들의 활동영역은 중앙아시아와 중국 땅에 널리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는 모두 우리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고 지금의 여러 국가들과 공유되는 부분이 있지만 중국의 한족과는 엄연히 다른 인종이었다.
그것보다는 최근에 와서 좌익사학자들이 중국을 올려치기위해 일부러 신라를 굉장히 한정적으로 축소시키려는게 많이 보임. 신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훨씬 대국이었고 광활성을 가진 계통의 국가였음.
네 망상
그땅은 원래 고조선부터 계속 코리안 땅이기도했죠 ㅎㅎㅎ
@@Itttae 근거 없음. 마음대로 영토 색칠놀이하면 곤란함
@@PrettyT-rex 뭔 잡소리냐 몽골과 산동반도 요하 한반도에 고조선 유물들이 발견된게 로또인줄 아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슨 근거로 내려줬다니 ㅋㅋ 되도않는 추정 강단식민사학에 갇혀있는 주제에
10개씩이나 넘게 나온걸로 봐서 신라 금관/금동관은 왕권을 상징하는게 아니라 다른 의미일 거 같음. 사후세계에서의 구복의 의미라던가 하는. 그리고 같은 형태의 관을 사용했다는 것으로부터 저 곳의 지배자들은 신라왕족이던지 아니면 신라왕족과 같은 기원을 가진 북방유목민족 으로 추측됨.
만일 신라금관/금동관이 신라왕/왕비 만의 전유물이라면 저 곳은 신라 속국 군장의 무덤이 아니라 신라왕들의 무덤이 아닌가 생각됨. 신라왕들의 공동묘지인 것일테고 무덤 주인들은 모두 신라 왕과 왕비들. 그렇다면 저 무덤들의 주인인 신라왕/왕비들은 경주 왕릉들보다 후대일 것임. 아무래도 처음에는 도읍 근처에 매장하다가 자리가 없으니 더 멀리 묘지를 써야 하는게 일반적일테니.
그리고 압독國 이라는 명칭을 두고 6세기 경주 바로 코앞에 나라가 있냐 없냐 설왕설래가 보이는데 일본도 보면 15세기 전국시대에도 다이묘들이 다스리는 지역들을 미노국 오와리국 등등 이렇게 불렀음. ~국이란 명칭은 봉건왕국체제에서는 자연스러움. 중앙집권이라는 건 몇년몇월몇일 딱 정해두고 발효 하는게 아니라 수세기에 걸쳐져서 완성되가는 과정임. 중국도 진시황~후한대에 이르는 수백년간에 걸쳐 중앙집권체제가 자리잡았음. 힌반도에 지방행정구역이 생긴 건 통일신라시대 9주5소경이 최초임. 일본은 도쿠가와 막부시대에 국이 번이 되었고. 6~7세기에 압독國이라는 명칭이 쓰였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음.
이게 다 고대 프리메이슨 흔적이라고 생각하면 믿어지겠냐
과거 대구 비산동에도 큰고분 많았는데 근대화로 인하여 전부 없어지고 지금은 사람들만 산다. 그곳도 지금까지 보존하고 발굴잘했다면 뭐가 나왔을지도 모르는데. 참으로 안타깝네
과거에는 집짓기 바빴으니까요
일제가 없애고 북괴가 없애더니 우리 손으로 숨통까지 끊어버렸구나
@@정인성-k2u 강원도에서 선사시대 유물을 레고랜드로 갈아엎은건 큰 죄악이죠. 이건 외부에서 자신들이 부리는 간첩들 손을 빌려 우리의 뿌리를 불태운 것입니다.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을 두려워하는 세력들이 누굴까요? 누구에게 제일 위협이 될까요?
별개 다 안타깝다.그 이전에 살던 원숭이 똥도 고이 모시지 그러냐
@@classictutor 피해망상을 기반으로 소설을 쓰면 곤란함. 언제 선사시대 유적지를 갈아엎음?? 이미 지표조사까지 마친 곳인데
만리장성 건설의 고역을 피해 망명한 진나라 유민들이 한왕의 허락을 얻어 거주한 곳이 진한이라고 했던, '후한서 동이열전'의 기록이 사실이었네 ㄷㄷㄷㄷ
베이징, 요서 인근에 살던 스키타이 문화를 가진 부족이 강제노역 피해서 대거 동남쪽으로 이동한 듯.
압독국? 완전 첨 들어보는데;;
압독국 사람들 상다수 도 일본으로 도망 쳤지요.
신라에 밀려서 가야국 유민들 상당수가 일본으로 도망 갔고요.
신고 안한다.저런거 나오면
신라의 제후국 정도라고 봐야겠네.
한국 고고학의 현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막 가져다 붙이기
천년 신라의 문화겠지. 한반도 삼국시대중 천년역사가 있나? 지금이야 신라묻을려고 학계나 역사계서 난리를 치니 글치. 태권도 봐라
태권도는 가라데인데요.
추정된다로 해야지 , 엿장수 맘대로? 압독이래
그리스로 말하면 폴리스
압독국인지 어떻게 압니까?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에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다 하여 지금 이름인 경산으로 고쳤습니다.
경주에서 왕들의 왕관이라고 못박아 놨는데 다른데서 나오니깐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경주는 순금관, 저건 금동관이니까요.
문상훈님 오늘는 진지하네요
어릴때 영대 압량 한창 원룸 올라올때 저런거 개 많이 나와서 공사중지되고 함ㅋㅋ
같은 시베리아 스키타이 문명권이니 신라에서 준거라기 보다 독자적 제작 전통이 있을 수도
결국 신라금관은 왕의 관의 아닌 지방호족인 성주급이엿다는거군.
결국 삼국사기는 사기. 신라가 나라면 삼국사기가 아니고 오국 육국시대가 되버리는 거지.
삼국이란 개념이 신라의 삼한주의를 통일 이후 끌고온 이데올로기니 당연하지.
@@dennythedavinchi3832 그러니까. 왜 굳이 그 이데올로기를 우리 주류역사로 만드냐는 거죠?
님 같으면 한강이남을 갖는걸 삼국통일이라고 쓴 역사서가 제대로 된 국사로 보이나요?
이건 정말 모지리 들이 쓴 한반도 한민족 역사이지 않나요? 결국 뻔히 보이는 지역주의 조장을 왜
이건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는 절대 아니다 라고 말하지 않느냐는거죠. 아직도 식민지인가요?
@@utuv7879 그래서 진짜 역사가 뭐라고 생각하심
맞습니다 상국은 일본이었음 ㅋ 한국은 죽어라 부정하는데 유적유물보면 일본서기 내용이랑 똑 들어맞음 ㅋ 저 당시에는 백제고 신라고 나발이고 전부 일본 속국이었죠 ㅋ
우리나라는 이렇게 찬란한 고대문화가 있는데도 역사를 제대로 안 알리고 조선시대 경복궁이나 다듬는 게 참
이 정도면 국보급인가요??
7세기까지도 신라는 중앙집권적인 영토국가가 아니라 김씨왕이 다스리는 서라벌과, 서라벌에 복속된 각 지방의 정치체들의 연합이였음.
천년신라죠, 잊혀진 왕국
삼한시대 진한의 일부 부족 이였다가
후에 신라에 병합된 국가인가??
이걸 보면 신라백제가 한반도남부에? 는 아니다!👀💦💥
압독국? 글자한자 안나오는 고분? ㅎㅎㅎ 문맹들이었어? 왜 압독국이라 하지?
장산군(獐山郡)은 지미왕(祗味王) 때에 압량(押督으로도 쓴다.)소국(押梁小國)을 쳐서 취하고 군을 두었다. 경덕왕(景德王) 때 이름을 고쳤다. 지금의 장산군(章山郡)이다. 거느리는 현[領縣]은 셋이다.
-삼국사기 지리지
이후에 장산의 장 자가 충선왕의 이름과 같다 하여 지금 이름인 경산으로 고쳤습니다.
경산은 잣됬네
이러면 앞으로 발전을못한 ㅋㅋㅋ
압독국이 무슨 나라인가요?
동네 유지겠지
압독국은 역사가 210년은 되었고.. 신라에 복속되면서 모든 기록이 소실되었기에.. 신라측 기록에 한두줄 적힌게 다인.. 미지의 국가죠.
신라 유적이네.
내려준거 인지.. 알수가 없지
근거도 없는 유물이 왜 신라 유뮬이지? 추정이 신라 유물인거야? 그러니까 교통 차선도 추정으로 선을 그어 놓지
미국도로엔 그런 차선이 어딧노? 등등 ㅎㅎㅎ
신라 땅에서 나온 신라시대 거니까 신라 유물이죠...
응? 문쌤이 왜 저기 계시지?
잘 못 들어온건가요?? : )
땅주인 불쌍하네
전국이 세계적인 문화의 보고... 왜 중국인의 시샘과 왜의 침탈이 반복되었는지 ... 침략을 않으면 거란 여진 몽골 등처럼 보복 차원에서 중국을 지배할 필요가 없었다.
뭔...세계사 공부는 하고 말하는거냐?? 지나친 국뽕이네 ㅋㅋ
근데 설명하는 남자분 AI임? ㅋㅋㅋ
금동은 남자가 쓰는 금동관인데 죽을때 쓰는 것으로 스키타이도 이런 관을 씀.
금동관을 내려주었다. ㅋㅋㅋㅋ
지금 금값 한돈 50만원이고 계속 오를텐데
저 금관 몇돈 될랑가?
저게 진짜 쓰던게 아니고 얼굴을 덮던.... 장례용품
대한민국은 대신라국의 후예들 만세
신대부적,압독,전부다 고대 묘지터 영남대학교 와 진량 사이 그 전체터.
댓글보니 기가차네.. 음모론자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평양성에서 고구려시대
문화유물은 발굴 못하는데 뭐
스키타이 맞다니깐..!!
@@honjasanda 어째서 스키타이란 거죠??? 스키타이에 금동관이 있나요? 철기는 다 히타이트?
쉿!!
느그는 흑수부 말갈이냐? ㅋ
그런데 스키타이가 신라보다 한참 선대지요.
신라 전.. 나라면 모지? 진한? 변한?
관심없음.
뭐먹고살지 ...
오 한국사 문제 하나 생기는건가
신라무덤은 왕의 무덤이 아니었네
신라가 아닐수도 있는거 같은데...
기존의 세력이 있었고 그 나라의 문화 같습니다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일본
과는 다른 외형을 가진것이
다 이유가 있다.
우리 할아버지 1898년생인데 허리가 굽은 상테에서 175인 작은형보다 더 큰키였다
외가집이 작아서 180이하였지만
우리큰집 가면 집성촌인데 동양인으로 보기힘든 외모와.큰키였다
눈썹도 아랍인 처럼 길고 시커멌자
중국 일본과 크게 다를거 없는 외형인디?? 당신 가족이 큰게 무슨 의미가 있음?? 평균키가 의미있지ㅉㅉ
중국과 일본 보다 더 큰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