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DA 753.2 박성원 목사님은 이 부분을 생각해보도록 좋은 의견을 주신 것 같습니다.
네 맞습니다. 시대의 소망과 생애의 빛에 이러한 개념들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완전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영적 투쟁이 그분의 심장을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hopejb5317 님의 댓글에 동의합니다..저도 들으면서 그 부분이 이상하게 말씀하신다 하셨는데.. 요2.19절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했는데.. 예수님이 모르셨다는 확신은 뭔가 목사님이 잘못 묵상하고 계신 듯싶습니다 .. 다행히 정수희 목사님께서도 좀 황당하신듯 수정을 해 주셨지만요.. 이런걸 보면서 같은 목사님들도 이런 이해차이가 있으신데 성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
안녕하세요^^ 이번 11과 진행자 박성원입니다. 이곳에 이런 의미 있는 토론이 있는지 몰랐네요. 우선, 정해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다루다보니 더 자세하게 하지 못하고 대략적으로만 설명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청취자 분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시면서 인류의 죄를 홀로 짊어지게 되면서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둘째 사망이란 아시는대로 영원한 소멸이고, 가장 무서운 최종 심판입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첫째 죽음 그리고 첫째 부활에 대한 소망과는 다른 차원이지요. 만약 예수님께서 신성의 능력으로 미래에 일어날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면 그것은 신성을 사용한 것이기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고 사단에게 공격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신성을 내려놓고 인성을 쓰신 상태로 죽으셨기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예언의 약속을 믿는 확신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 될 수 있으며, 완전한 소멸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죄인이 느끼는 동일한 두려움과 고통 그 이상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시고,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신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고뇌가 필요 없었겠지요. 아래의 영감의 글이 더 선명한 답을 우리에게 준다고 봅니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 (시대의 소망 753)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르시는 시점에 부활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희생이 가납되었다는 일말의 언급도 듣지 못한 상황 속에 오로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가 더 가치있고, 더 위대한 희생인 것입니다. 여하튼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도 없고 느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고뇌였기 때문에, 우리가 지식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다 정의내릴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만 그 고통을 아시겠죠. 제자들도 몰랐으니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끼신 고뇌는 우리가 지금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당하신 고통을 더 깊이 느끼고 함께 그 구원의 감격 속에서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진행하시는 목사님이 뭔가 오해를 하신듯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리라는것은 당연히 예수님 본인도 알고 계셨겠죠.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십자가와 부활인데 왜 모르시겠읍니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3일후의 부활을 알려주신분이 예수님이기도 하구요. 부활할줄 알고 죽으셨다고 전혀 쇼가 아니라, 구약에서 주신 예언과 약속을 하나하나 다 이루어나가시는거죠. 항상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예수님의 상황 속으로 가본다면,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뇌를 하셨습니다. 시대의 소망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우리에게 영감의 글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강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셨죠 그 만큼 그분이 마신 고난의 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단순히 약속했기 때문에 그 믿음만 가지고 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신성을 버리고 인성을 쓰셨으며, 심지어 그분은 십자가에서 죄 그 자체가 되셨다고 언급합니다. 미래가 보장되거나 안전장치가 있는 상태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늘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 외면 받으셨습니다. 철저하게 둘째사망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분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서 충돌이 된 것이기에 우리는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니까요. 짧은 시간 제가 한쪽면을 강조를 해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TV-ip1xp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셨다는 말씀은 이해가 갑니다. 제가 몰랐던 내용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하늘과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나요? 신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건 모르겠는데, 만약 사탄에게서 받은 시험에 이기지못하셨다면, 만약 지상에서의 삶동안 죄를 지으셨다면,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과 분리가 되고 외면을 받으실수 있었겠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셨읍니다. 아무 죄없이 우리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왜 부활을 걱정하고 외면을 받아야할까요? 창조전부터 계획하셨던 모든일들을 다 이루셨는데, 그 계획안에있던 가장 중요한 부활의 확신이 없었다는건 이해가 않갑니다. 신학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건 원치 않는데 제가 몰랐던 부분이라 이외이네요. 항상 많이 배우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공부 잘 하고 있습니다~두분 목사님께 배우면서요~~주안에서 늘 건강하세요
공부 시작부터 마치는 시간 이후까지 눈물이 앞을가렸습니다. 예수님과 눈 마주침을 늘 하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DA 753.2
박성원 목사님은 이 부분을 생각해보도록 좋은 의견을 주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네 맞습니다. 시대의 소망과 생애의 빛에 이러한 개념들이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예수님께서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인성을 취하신 분으로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완전한 소멸에 대한 두려움도 가지셨습니다.
그 예수님의 영적 투쟁이 그분의 심장을 터지게 만들었습니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
감사합니다 두분 목사님들 🙏 😊
@hopejb5317 님의 댓글에 동의합니다..저도 들으면서 그 부분이 이상하게 말씀하신다 하셨는데.. 요2.19절에도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했는데.. 예수님이 모르셨다는 확신은 뭔가 목사님이 잘못 묵상하고 계신 듯싶습니다 .. 다행히 정수희 목사님께서도 좀 황당하신듯 수정을 해 주셨지만요.. 이런걸 보면서 같은 목사님들도 이런 이해차이가 있으신데 성도들이야 오죽하겠습니까.. 😅
같은 동전인데 동전의 앞면을 보는 사람과 뒷면을 보고 말하는 사람의 차이는 있을 수 있을거에요... 아무튼 너그러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jjungradio3850항상 응원하고 시청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11과 진행자 박성원입니다.
이곳에 이런 의미 있는 토론이 있는지 몰랐네요.
우선, 정해진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을 다루다보니 더 자세하게 하지 못하고 대략적으로만 설명하다보니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습니다.
청취자 분들께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오르시면서 인류의 죄를 홀로 짊어지게 되면서 둘째 사망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둘째 사망이란 아시는대로 영원한 소멸이고, 가장 무서운 최종 심판입니다.
우리 인간이 당하는 첫째 죽음 그리고 첫째 부활에 대한 소망과는 다른 차원이지요.
만약 예수님께서 신성의 능력으로 미래에 일어날 부활을 미리 내다보고,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면 그것은 신성을 사용한 것이기에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하고 사단에게 공격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는 그 순간까지 신성을 내려놓고 인성을 쓰신 상태로 죽으셨기에,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속에서 죽으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예언의 약속을 믿는 확신도 갖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 될 수 있으며, 완전한 소멸도 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도 갖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죄인이 느끼는 동일한 두려움과 고통 그 이상을 겪으셨을 것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뇌하시고, 피땀을 흘려가며 기도하신 이유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그런 고뇌가 필요 없었겠지요. 아래의 영감의 글이 더 선명한 답을 우리에게 준다고 봅니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자기의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자기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 (시대의 소망 753)
예수님이 십자가에 오르시는 시점에 부활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주어지지 않았다고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자신의 희생이 가납되었다는 일말의 언급도 듣지 못한 상황 속에 오로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스스로 버리신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분의 십자가가 더 가치있고, 더 위대한 희생인 것입니다.
여하튼 예수님이 당하신 고통은 우리가 결코 이해할 수도 없고 느낄 수 없는 형용할 수 없는 고뇌였기 때문에, 우리가 지식적으로나 이론적으로는 다 정의내릴 수 없다고 봅니다. 예수님만 그 고통을 아시겠죠. 제자들도 몰랐으니까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 겟세마네 동산에서 느끼신 고뇌는 우리가 지금 언급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분이 당하신 고통을 더 깊이 느끼고 함께 그 구원의 감격 속에서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TV-ip1xp 강사 목사님의 충분한 답변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우리 성도님들께서 충분히 오해없이 이해하셨으리라 생각됩니다.
@@TV-ip1xp자세한 설명이 첨부가 되니 더 이해가 잘되고 은혜가 되네요 감사합니다
이전에 맷었던 언약은 폐기되고 새로운 언약이 엎그래이드 된것이 아니고 먼저의 언약은그대로 있고 새로운. 언약이 주어진 것이 아닌가요?
진행하시는 목사님이 뭔가 오해를 하신듯 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시리라는것은 당연히 예수님 본인도 알고 계셨겠죠. 창세전부터 계획하신 십자가와 부활인데 왜 모르시겠읍니까? 제자들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3일후의 부활을 알려주신분이 예수님이기도 하구요. 부활할줄 알고 죽으셨다고 전혀 쇼가 아니라, 구약에서 주신 예언과 약속을 하나하나 다 이루어나가시는거죠.
항상 감사합니다
네... 오해한게 아니라, 혹시 모를 청취자분들을 위해 다시한번 상기시켜드린 것이라 이해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ㅠ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러나 당시의 예수님의 상황 속으로 가본다면, 우리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뇌를 하셨습니다.
시대의 소망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분명하게 언급합니다.
"구주께서는 무덤의 문을 꿰뚫어 보실 수 없었다. 그분이 정복자로서 무덤에서 나오리라는 희망이 주어지지 않았고, 아버지께서 그 희생을 가납하셨다는 말도 그분에게 들려오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심히 미워하시기 때문에 그분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우리에게 영감의 글이 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강한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셨죠
그 만큼 그분이 마신 고난의 잔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단순히 약속했기 때문에 그 믿음만 가지고 나가신 것이 아닙니다.
신성을 버리고 인성을 쓰셨으며,
심지어 그분은 십자가에서 죄 그 자체가 되셨다고 언급합니다.
미래가 보장되거나 안전장치가 있는 상태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하늘로부터 버림받고, 아버지로부터 외면 받으셨습니다.
철저하게 둘째사망의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믿음이 없는 분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다양하고 복잡한 감정과 생각들이 예수님 안에서 충돌이 된 것이기에 우리는 정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이 아니니까요.
짧은 시간 제가 한쪽면을 강조를 해서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TV-ip1xp 하나님과 분리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셨다는 말씀은 이해가 갑니다. 제가 몰랐던 내용입니다. 근데 예수님께서 하늘과 아버지에게 철저하게 버림을 받았나요? 신학적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건 모르겠는데, 만약 사탄에게서 받은 시험에 이기지못하셨다면, 만약 지상에서의 삶동안 죄를 지으셨다면,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과 분리가 되고 외면을 받으실수 있었겠지만, 우리 예수님께서는 모든 시험을 이기고 세상을 이기셨읍니다. 아무 죄없이 우리의 죄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는데 왜 부활을 걱정하고 외면을 받아야할까요?
창조전부터 계획하셨던 모든일들을 다 이루셨는데, 그 계획안에있던 가장 중요한 부활의 확신이 없었다는건 이해가 않갑니다. 신학적으로 너무 깊이 들어가는건 원치 않는데 제가 몰랐던 부분이라 이외이네요.
항상 많이 배우고 있읍니다
@@hopejb5317 네 저도 동감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의 확신이 없으셨다면 어떻게 지금 우리가 부활의 확신을 가질수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