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시원(柴原)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동천왕이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임금이 예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것을 금하였다. 장례일이 되어 묘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땔나무를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을 시원이라고 이름하였다. 秋九月 王薨 葬於柴原 號曰東川王 國人懷其恩德 莫不哀傷 近臣欲自殺以殉者衆 嗣王以爲非禮禁之 至葬日 至墓自死者甚多 國人伐柴以覆其屍 遂名其地曰柴原. 《삼국사기》 동천왕 22년(서기 248년)조
순장은 죽은 후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저 당시의 내세사상(죽은 후의 세상)에서 주피장자(주인)이 죽은 후에 다른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건과 인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주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과 모시던 사람들을 죽여서 같이 묻었지요! 지금의 눈으로 보면 무지목매한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지만 저 당시에는 그게 보통적인 생각이었죠! 그렇다고 고대 저당시에 모두가 주인과 같이 뭍히길 바랬다고 생각을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참고로 신라의 지증왕이 순장제도를 폐지한 이유는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노동력이 많으면 경제력이 커지고 경제력이 커지면 당연히 대규모 군사력을 만들 수 있고 유지를 할 수 있기에 순장제도를 폐지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증왕이후로는 산 사람들을 순장을 못 하니까 주인의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과 사람을 닮은 토기로 만든 인형들을 주인의 무덤에 만들어서 넣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더 심했습니다. 황제가 죽으면 궁녀들도 같이 순장하는 건 기본이고 황릉을 숨기기 위해 공사에 착출된 인부들까지 다 죽였으니까요. 특히 진시황릉은 공사에 착출된 인부가 최소 10만명이 넘는 걸로 추산되는데 이들도 다 죽었다는 거죠. 진시황릉 무덤이 무려 2000년 후에나 발견됐으니 무덤 주인은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qwerty85620 옛날이라고 멀쩡한 사람 죽인다는데 좋게 볼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냥 높은 사람들이 강제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른 거죠 옛날에도 절대 당연하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높은 사람이 하고 싶다면 하고 안 하고 싶다고 하면 안 하고 한국은 중국에 비해 순장풍습이 빨리 사라져서 중국의 순장을 비판하던 기록도 남아있지요
@@KBKim-jt6uj 무슨 자원해서 들어가요... 아무리 옛날이지만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다들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명 영락제 죽었을때 순장되는거 대기하던 궁녀들이 마지막 만찬 먹을때 다들 눈물바람되서 그거보는거 비참했다는 명나라 기록 및 조선 기록도 있어요. 청나라 초기에도 누르하치 죽었을때 도르곤 어머니도 청태종 홍타이지에 의해 순장조로 찍혔는데 도르곤이 그걸 평생에 사무치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순장을 자원해서 했다? 순장묘의 뼈들에서 발견된 상흔이 이미 아니라는걸 말해주죠.
@뺑덕어멈다롱 아닌건 아닌거죠. 예를들면 과거 남미 아즈텍 제국이 주변 부족민을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산채로 잡아와 제단에 눕혀 산채로 배를 갈라 심장을 신에 바치고 남은 신체는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자주시행했고 특별한 날에는 몇만명씩을 그렇게 희생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남미지역에서 행해진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도 단지 과거의 일이고 그때의 가치관이였으니 비판하면 안되는거고 무조건 옹호해야할까요? 현재 많은 역사가들은 당시 아즈텍제국의 만행을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합니다. 오늘날의 잣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서도 당시의 일이 보편적인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비판하고 욕을 하는게 맞는거죠.
이거요 ? 22년(서기 248) 봄 2월, 신라가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맺었다. 가을 9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원(柴原)에 장사를 지내고, 호를 동천왕이라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고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는 무리가 많았으나, 새로 즉위한 임금이 예가 아니라 하여 금지하였다. 그러나 장례일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무덤에 와서 자살한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섶을 베어다 그들의 시체를 덮어 주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곳을 시원이라고 하였다,,,삼국사기 동천왕
@@Bill_Bousquette 당대에도 다 나쁘게 봤어ㅋㅋㅋㅋ우리나라같은 경우엔 순장이 형벌이나 관료들의 충정 증명(할복)수단으로 쓰였지 일반인을 제물로 쓰는 그런 경우는 가야를 제외하면 고조선 때부터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중국은 명 때까지 이어지다가 없어졌고 청 만주족들은 17세기까지 순장했음ㅋㅋㅋ이건 그시대 시각에서도 악마같은 행위였음
@@Bill_Bousquette 그럼 현대 아니면 식인이든 순장이든 다 용서되냐? 빡대가리새끼야?? 문화 상대주의랑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랑 다르듯이. 역사를 그 시대에서 이해하는 거랑 무작정 다 받아들이는 거랑 같냐?? 나도 역사를 그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 못하고 무작정 현대랑 비교하는 건 잘못됐다 생각하고. 왜 그 당시엔 노비 데리고 살았냐 비인간적이다 빼액 거리는 애들 무식하다 생각하는데 니도 그런 애들이랑 별 다를 게 없어 ㅋㅋ 아무리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도 보편적 선은 있어야지. 유럽에서 중세 마녀사냥은 그 당시엔 그럴법했지~하면서 이해하는 새끼가 있냐? 아무리 과거라도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짓은 어떤 문화든 역사든 비판 받는 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순장 자체는 그 시대에도 비판 받던 풍습이란다 멍청아. 가야 신라에서 순장할 때도 고구려에선 야만인같다고 비판하던 풍습이야. 좀 제발 줏어들은 걸로 아는 척하면서 깨어있는 사람 코스프레하고 정신딸딸이 치지말고 모르면 가만히 입이라도 닫고 있어라
그건 순장되는 사람들은 함께 묻히는 물건들처럼 소유물로 다뤄지고, 사후세계를 믿었기에 이승에서와 동일시되어 죽은자의 사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사고에서 비룻된것이라 추측함.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시대에서 종교인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후 삶을 대비하기위해 여러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것과 동일함. 기독교인들이 사후 천국에서 안위를 위해 제물을 바치고 현재 십일조를 내는것, 그리고 불교에서 여러 방식의 공양을 하며 공덕을 쌓는것 또한 그와 같은 맥락. 생명체를 순장하는것만 변화 했을뿐 맥락은 동일. 다른종교나 컬트 역시 유사한 역사를 가졌음
김훈의 현의 노래 라는 소설에는 가야국의 왕이 죽으면 각각의 사람들을 착출하여 순장시켰다 합니다... 양반 노비 요리사 농부 어부 등등... 어린아이 한쌍 소년소녀 한쌍 젊은 부부 한쌍 노인 한쌍 아기를 낳은 어미와 아기 등등 각층의 사람들을 랜덤으로 다양하게 순장시켰고 혹여나 무덤에서 빠져나와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둔기로 뼈를 다 부수어서 다시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밥을 한그릇 넣어 주었다고 허네요... 수 많은 사람들이 무덤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곡 소리를 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조용해 졌다고도..... 참혹하기 짝이 없는... 물론 소설가의 상상이 더해진 서술이지만 저는 이보다 더더욱 참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세종 7년 1425년 이조판서 허조가 어전에서 말하기를 "장례(葬禮)만 하더라도 ‘허수아비로라도 순장(殉葬)하면 후손이 끊어진다. ’는 옛말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것인데, 지금 태종 황제의 장사에 궁녀 15인을 순장(殉葬)하고, 반우(反虞)하는 날에 풍악을 울려 시체를 즐겁게 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비록 중국의 일이라도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라고 했다. 명 태종(영락제) 시절에도 순장하는 풍습이 있던 짜장국
고대사회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순장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를 따르거나 모시던 사람들을 저승에 가서도 그 사람을 섬기도록 같이 묻어버리는 겁니다. 순장자는 적게는 1~2명인 경우도 있지만,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에서는 약 40명 정도를 순장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는 신분이 낮은 노비 등을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할 줄 아는 짐승 수준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만 순장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07년 경남 창녕의 송현동에서는 1500년 전의 인골이 발굴되었는데, 키가 150cm 정도되는 17세 가량의 소녀로 밝혀졌습니다. 아마도 피장자를 모시던 신분이었겠지요. 오늘의 다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끝으로 순장이 금지된 것은 가야의 경우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에서는 지증왕 3년(502)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다큐도 재미있게 보시고, 전에 정리해 놓은 글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17세 가야소녀는 왜 순장당했나 blog.naver.com/jungyoupkim/221511620449 ,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blog.naver.com/jungyoupkim/221314423156 )
뒷편인골의 DNA분석 ㅡ오래된뼈는 분석하기ㅜ힘들지만,단단한 대태골뼈 정강이뼈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높다.그럼 인골의 모계, 부계 혈연 관계를 알 수 있다.인골의 성별 인골이어떤질병을갖고있었는지...주로 먹은음식은무엇이었는지 식생활을 알 수 있다....어머니에게서만 유전 되는 미토콘트리아DNA법이 적용된다. 6세기초 순장제도를 없앤 지증왕 그의 진자이름은 김지대로혹은~ 어쨌든 그는 64세에 왕위에 올랐고 지증은 그의 시호이다. 시호는 문무관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개 내려지는것이다.7세기 순장대신 사용한 토용이 대신하기도 했다는....요즘 여기저기 트롯트대전으로 난리치지 말고 이런 역사 스페셜을 살려 국민을 지혜롭게ㅜ하는데 보탬을 주는 방송국이 됐으면 좋겠다.
@παράδ εισος 비판적인 자세가 나쁜건 아닌데 저때의 일은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게 심신에 좋아요 괜히 현대인들의 머리로 저때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건 역사를 배우는 이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에요. 우황 '역사가 이러했음으로 앞으로 이러해야한다'가 맞는 거지, '이러했어야 한다'고 종용한다면 그건 무엇도 없는 벽에다 외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음
저 당시에는 왕이 유능하고 존경받던 사람일수록 순장을 자청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됩니다. 또한 저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았기에 35세 정도가 되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처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정상수, 최봉인. 야외고고학 제22호(2015.3) 27-52쪽 에 의하면 당시 삼국시대 경산 임당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 평균 수명이 30.4세이며 예안리 고분의 사망 평균연령은 25-34라고 합니다.
이런거 보면 와..옛날에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대 싶은 것들은 과거 신분제가 더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음. 일하지 않고 어떻게든 만들지 않으면 최하층 신분이라는 이유로 맞아 죽고 뭐해서 죽는데 참 사람 쓰기 쉬웠겠다 싶다. 죽지 않고 먹고 살려면 어떻게든 일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하니 말도 안되는 건축물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지금 와서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로 포장되지만.
@@아니요뚱인데요-c7u 있다 그리고 대선에서 그걸 통해서 후보들 중 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이 사람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사라진 아빠와 집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날 정신 바짝 차리고 기자 가수 이효리가 남편 그리고 아이에게도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박희윤-t4p 고조선, 고구려, 부여도 모두 순장을 했어요. 고구려와 부여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순장을 멈춘듯해보입니다만(2~4세기 정도) 규모는 더 대규모였다는... (중국 역사에선 백여명이라고 했는데 실제 고구려 무덤을 발굴해보니 수백명이었음...)남쪽의 삼한지역(백제, 가야, 신라)은 규모는 더 작지만 더 오랫동안 순장을 한 거죠. 진짜 바보같죠. 나라의 힘을 기르거나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싸우려면 많은 인구가 필요한데...ㅡㅡ
힘든 시대여서 왕권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함을 가장 취약한 피지배자들이 죽음의 시위로 보였던 것은 또 아닐까요? 약속된 사회를 달라는 시위요. 당사자는 어려도 가장 이념적인 시기일 수 있기도 하고 식솔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중요한 마음과 소원이 속일 수 없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왜 이런 역사 프로그램이 다 사라졌는지....먼가 잘못돌아가는거 같애...정신차려라 방송국놈들아
주요 공영방송이 무지-무식한 쓰레기 xx들에게 다 장악되었습니다.
오로지 먹고 ㅆ는거 외에는 모르는 것들, 그러니 먹방만 주구장창 틀어대는거죠.
정부가...
수익이 안나면 유지가 안되서 그래요 이런거 블루레이 한새트라도 구매하면서 떠들어 봅시다~
@@감기조심하세요 그래서 KBS는 국민이 낸 수실료 운영되지만... 이덍박이 그걸...
사극도 정통사극들 다 전멸하고 요새는 퓨전사극만...
산채로 묻히면 얼마나 무서웠을까...
진짜 사람이 제일 무섭다.
요즘말로 악덕갑질이죠
귀신보다 더무서운게 산사람이지요
가을 9월에 왕이 죽었다. 시원(柴原)에 장사지내고 왕호를 동천왕이라고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며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고 하는 자가 많았으나, 새 임금이 예가 아니라고 여기고 그것을 금하였다. 장례일이 되어 묘에 와서 스스로 죽는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땔나무를 베어 그 시체를 덮었으므로, 마침내 그 땅을 시원이라고 이름하였다.
秋九月 王薨 葬於柴原 號曰東川王 國人懷其恩德 莫不哀傷 近臣欲自殺以殉者衆 嗣王以爲非禮禁之 至葬日 至墓自死者甚多 國人伐柴以覆其屍 遂名其地曰柴原.
《삼국사기》 동천왕 22년(서기 248년)조
좋아요가 444개라서 못누름.ㅋ
그래서 사람처럼 생긴 인형을 대신 묻는 방식으로 하다가 이것도 결국 금지됐죠
대가야에서 발견된 무덤에 부녀가 순장된 경우가 있더라구요.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미어지던지... 어느 무덤은 주인이 가운데 묻혀있고 그 주위를 빙 둘러 하나씩 매장된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은 죽음조차도 오로지 주인을 조명하기 위해 쓰여진 장치에 불과하단 거지요.
ㅜㅜ
@aven He ?
순장은 죽은 후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저 당시의 내세사상(죽은 후의 세상)에서 주피장자(주인)이 죽은 후에 다른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물건과 인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주인이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과 모시던 사람들을 죽여서 같이 묻었지요! 지금의 눈으로 보면 무지목매한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지만 저 당시에는 그게 보통적인 생각이었죠! 그렇다고 고대 저당시에 모두가 주인과 같이 뭍히길 바랬다고 생각을 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참고로 신라의 지증왕이 순장제도를 폐지한 이유는 국가의 성장을 위해서는 많은 노동력이 필요했고 노동력이 많으면 경제력이 커지고 경제력이 커지면 당연히 대규모 군사력을 만들 수 있고 유지를 할 수 있기에 순장제도를 폐지를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증왕이후로는 산 사람들을 순장을 못 하니까 주인의 생전에 사용하던 물건들과 사람을 닮은 토기로 만든 인형들을 주인의 무덤에 만들어서 넣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중국은 더 심했습니다. 황제가 죽으면 궁녀들도 같이 순장하는 건 기본이고 황릉을 숨기기 위해 공사에 착출된 인부들까지 다 죽였으니까요. 특히 진시황릉은 공사에 착출된 인부가 최소 10만명이 넘는 걸로 추산되는데 이들도 다 죽었다는 거죠. 진시황릉 무덤이 무려 2000년 후에나 발견됐으니 무덤 주인은 목적을 달성하긴 했지만
안그런 나라가 드물었지.. 세계사 공부하다보면 저것보다 더한 사례도 즐비했단다..
그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다행이다.진짜 저항해도 소용이 없었을듯.예나 지금이나 인간이 가장 무섭다.
ㅠㅠ
@@김시후-r8i 대깨왜 어서오고~~
@@takakimasao5442 ㅡ
@@김시후-r8i 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기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ㅣ👍👍👍👍👍👍👍
대구겅북린민공화국 국민의짐 공산당 수령 바큰애 까이니 순장조들 ㅂㄷㅂㄷ
무슨이유겠어?
지 혼자 죽고 지 아랫것이 살아가는 것이 배아픈거지
아주 잔인하다
@@qqrubylife5585 먼 개소리야 앵간치 해라 그런식으로 여론조작 하는거 역겹다
@@검은콩나무 뭐라했는디?
@@melbabarian 맞는말인디?
@@user-Allahu-Akbar. 정부얘기 함
ㅋㅋ놀라운발상
가야는 순장때문에 망했다더니....저건 풍습이 아니라 악습이지
@@qwerty85620 옛날이라고 멀쩡한 사람 죽인다는데 좋게 볼 사람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냥 높은 사람들이 강제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따른 거죠
옛날에도 절대 당연하게 보지는 않았습니다 높은 사람이 하고 싶다면 하고 안 하고 싶다고 하면 안 하고
한국은 중국에 비해 순장풍습이 빨리 사라져서 중국의 순장을 비판하던 기록도 남아있지요
@@qwerty85620 그런 믿음이 과학은 아니지 신앙이지 과학은 무슨 과학이야
@@정은혁-n8w 기우제 지내는게 그때당시의 과학입니다. 믿음이 과학이란말은 그런뜻입니다
@@하태림 제 생각엔 과학이란 개념이 없던것같은데요
@@하태림 무슨 말씀을 하시는건지는 저도 알고 동의하지만 오늘날의 개념을 과거에 대입시키면 오해의 소지가 생길 것 같습니다 그냥 믿음 신앙 정도로만 하는게 낫지 않을까싶네요 아니면 그 '당시대의 합리적인 사고'라던지요
순장을 금지한 신라 지증왕님 기억하겠습니다.
노동력을 위해 금지한 것 뿐 절대로 잔인하다해서 금지한게 아닙니다
순장이 강제성을 지닌것이 절대 아님... 다들 자원해서 들어간 것이었음... 절대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 당시 사람들을 이해하면 안됨..
@@KBKim-jt6uj 설마 좋아서 갔겠어요.댓가가 있었겠죠.집이 가난해서 팔려가는것처럼요..
@@KBKim-jt6uj 무슨 자원해서 들어가요... 아무리 옛날이지만 죽음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은 다들 가지고 있는데.
하물며 명 영락제 죽었을때 순장되는거 대기하던 궁녀들이 마지막 만찬 먹을때 다들 눈물바람되서 그거보는거 비참했다는 명나라 기록 및 조선 기록도 있어요. 청나라 초기에도 누르하치 죽었을때 도르곤 어머니도 청태종 홍타이지에 의해 순장조로 찍혔는데 도르곤이 그걸 평생에 사무치며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순장을 자원해서 했다? 순장묘의 뼈들에서 발견된 상흔이 이미 아니라는걸 말해주죠.
@뺑덕어멈다롱 아닌건 아닌거죠. 예를들면 과거 남미 아즈텍 제국이 주변 부족민을 주기적으로 전쟁을 일으켜 산채로 잡아와 제단에 눕혀 산채로 배를 갈라 심장을 신에 바치고 남은 신체는 요리해서 먹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자주시행했고 특별한 날에는 몇만명씩을 그렇게 희생시켰습니다. 그렇다면 과거 남미지역에서 행해진 이런 비정상적인 행태도 단지 과거의 일이고 그때의 가치관이였으니 비판하면 안되는거고 무조건 옹호해야할까요? 현재 많은 역사가들은 당시 아즈텍제국의 만행을 옹호하지 않고 오히려 비판합니다. 오늘날의 잣대만으로 평가해서는 안되겠지만서도 당시의 일이 보편적인 도를 넘어섰다고 판단되면 비판하고 욕을 하는게 맞는거죠.
27:30 60살 산 사람과 15세를 같이.. 끔찍하네 계급 사회에선 노비들을 그저 물품으로 생각했나바
그러게요.. 노비를 그냥재산으로 봤다고 교과서에 나와있으니.....
그 시대때 (물론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지만)
노비는 귀족들의 사유 재산으로 여겨져서
매매나 상속 증여등이 가능했던걸로 알고있습니다
@@winni6520 우리나라 노비도 흑인 노예보다 나은 거 없었음
흑인은 민족이라도 다른데 조선 노비는 민족도 같았으니 더 끔찍
노비생활중에 니가낫니 내가낫니가 어딧어...
@@juliotancredi7468 울나라는 인종이 같으니 튀어서 20년만 숨어지내면 자유인이었음 근데 인종이 다르면 못튐
아무리 그시대 때 사상이 그랬어도....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었겠어요...
젊은 나이게 순장이라니...참 잔인한 역사입니다.
ㅠㅠ
그 시대에 풍슾안에서 한짖에 비해 현대에서도 일어나는 부모가 지들만 자살하지않고 이유모를 애들까지 데리고 가는것보다는덜 잔인하지않나...생각든다
@παράδ εισος 그냥...돈때문..인거같은데;; 주인이죽었는데 죽고나서 재산을 노비한테 나눠줘야하는지?; 뭔가애매해지는... 그런이유가큰거같은데 북방에서 내려온문화라해도 이런이유때문에받아들엿을거같은데 그리고 기록...유물남기듯이;;
@παράδ εισος 둘다 이유 인것같은데요.
@@앱프쥐 몇살이니ㅋㅋㅋ 영상 잘 보면 답이 나와 ^^ 그냥 예전 사회풍습이야 ㅋㅋ
순장은 고구려에도 있었어요, 동천왕시대 주인이죽으면 따라 산채로 묻는 풍습이었습니다! 동천왕이 그걸보고 어찌 저 젊은 노예남자청년을 죽이냐고 물었더니 풍습이라고 왕도 바꿀수 없는 풍습이라고 신하가 말했습니다, 동천왕은 이세상에 바꿀수 없는것은 없다면서 젊은 노예를 살려주었습니다
5ㄴ7ㅂ2$
존나멋있다
그런게 어디 나와요 ? 금시초문
@@이일강-l8s 삼국사기지 어디야;
이거요 ?
22년(서기 248) 봄 2월, 신라가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맺었다.
가을 9월, 임금이 돌아가셨다. 시원(柴原)에 장사를 지내고, 호를 동천왕이라 하였다. 나라 사람들이 그 은덕을 생각하고 슬퍼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가까운 신하 중에 자살하여 따라 죽으려는 무리가 많았으나, 새로 즉위한 임금이 예가 아니라 하여 금지하였다. 그러나 장례일에 이르러서는 임금의 무덤에 와서 자살한 자가 매우 많았다. 나라 사람들이 섶을 베어다 그들의 시체를 덮어 주었기 때문에 마침내 그곳을 시원이라고 하였다,,,삼국사기 동천왕
저런 뼈들이 인격체였던 걸 자꾸 잊어버리는데 연구자분들이 저 분들을 존칭해줘서 참 좋음.
더 끔찍한게 저게 전 세계 고대사에서 전체적으로 다 나타난다는것..
헐
그건 좀... 카르타고,그리스,로마같은 국가가 그랬다고요?
미개해서
@@심쿵두루 미개해서 ㅇㅈㄹ
@@니머리중세수도사 미개한거 맞지
같은곳으로 안갔을듯.순장당한사람은 천국가고 순장시킨 사람은 지옥갔을듯..17살 애를 데려가다니...
역사 스페셜 다시 부활했으면!!!!10년도 더 된걸 이렇게들 많이 보구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ㅅㅂ 찍지말라고 해서 중단됨.
@@yamsandpotatoes4243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성질뻗친다고도 같이 말했죠ㅋㅋ
맞아요 부활했으면 좋겠어요
@@yamsandpotatoes4243 누가요?
@@태리는사랑 김 모시기 있습니다
요즘들어 이런 역사 프로그램들 넘 재밌는것 같아요! 이런 프로그램들이 다시 나와줬으면....
ㅂ
아
이프로그램 다시 해주심 안돼나요? 너무 유익하고 잘봤습니다!감사합니다!
그래서 미술사에서…. 인간 조각상의 시작이 이런 순장의 악습을 막았다고 하더라구요. 진시황릉의 군인 조각들처럼 산 사람 대신 인간 모습의 조각상을 같이 묻어서요. 미술이 목숨을 살린거나 다름없죠…
순장했다는걸 어릴적에 들었을때 충격먹었다는 그당시 당했던 사람은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ㅡㅡ+
죽음 이후 세계가 무서운데.. 혼자 가기 싫으니까 그따위 짓을 했겠지.
추억돋네 역사스페셜 .. 같은 느낌
너무 그립네요 기억나요 그땐 방바닥누어서 식구들이랑 귤까먹으면서 편하게 봤는데 ... 어느덧 곧 마흔.. 세월이 빠르네요
잘보겠습니다^^
원시적이고 혐오스런 풍습
근데 실제로 존경받는 사람이면 자발적으로 따라서 죽는 사람도 많았음
@@KBKim-jt6uj 하긴 그런 경우도 있겠네요
@khan Jeong 예리해 ㅋㅋ
근데 고대의 사고방식이라는 것도 있으니 뭐
이런분들이 공부도 못하드라
@@corrupttroubadour7812 글쎄요 자의성 여부에 따라서 달라질 문제이지 않을까요..
역사스페셜 다시 시작했음좋겠습니다
역사를 보고 배우는것이 참좋았습니다
잘배독하고 갑니다
고려장은 날조고 순장은 팩트인데 참 잣같은 풍습임.
씨발 고대역사를 현대의 시각으로 보는새끼들때문에 중국에서 문화대폭동이 일어나서 수많은 문화재와 역사가 사라졌지ㅋㅋㅋㅋ
이런새끼들하고 같이 숨쉬고 사는게 부끄럽다
@@Bill_Bousquette 당대에도 다 나쁘게 봤어ㅋㅋㅋㅋ우리나라같은 경우엔 순장이 형벌이나 관료들의 충정 증명(할복)수단으로 쓰였지 일반인을 제물로 쓰는 그런 경우는 가야를 제외하면 고조선 때부터 없어지다시피 했는데 중국은 명 때까지 이어지다가 없어졌고 청 만주족들은 17세기까지 순장했음ㅋㅋㅋ이건 그시대 시각에서도 악마같은 행위였음
@@Bill_Bousquette약 먹을 시간 대~따~
@@unitedaccountsofme9297 17세기가 현대냐 병신아? ㅋㅋㅋ 미친놈이네
@@Bill_Bousquette 그럼 현대 아니면 식인이든 순장이든 다 용서되냐? 빡대가리새끼야??
문화 상대주의랑 극단적 문화상대주의랑 다르듯이. 역사를 그 시대에서 이해하는 거랑 무작정 다 받아들이는 거랑 같냐??
나도 역사를 그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 못하고 무작정 현대랑 비교하는 건 잘못됐다 생각하고.
왜 그 당시엔 노비 데리고 살았냐 비인간적이다 빼액 거리는 애들 무식하다 생각하는데 니도 그런 애들이랑 별 다를 게 없어 ㅋㅋ 아무리 시대적 맥락에서 이해해도 보편적 선은 있어야지.
유럽에서 중세 마녀사냥은 그 당시엔 그럴법했지~하면서 이해하는 새끼가 있냐? 아무리 과거라도 인간의 존엄성에 반하는 짓은 어떤 문화든 역사든 비판 받는 게 당연한 거야.
그리고 순장 자체는 그 시대에도 비판 받던 풍습이란다 멍청아.
가야 신라에서 순장할 때도 고구려에선 야만인같다고 비판하던 풍습이야. 좀 제발 줏어들은 걸로 아는 척하면서 깨어있는 사람 코스프레하고 정신딸딸이 치지말고 모르면 가만히 입이라도 닫고 있어라
인간보다 더 잔인한 생명체가 있을까?
@patty Smith 왜 갑자기 시비임 ;
@patty Smith ??
@@WriterNakwanjong 7ㅍ1
아직 자발적인지 비자발적인지 밝혀지지 않았음.. 잔인하다고 결론내릴수없음
@patty Smith 너희부모님이 너 그러라고 너 낳고 미역국 드신거 아니다. 부모님생각해서 바르게 자라라
고대는 정말 잔인하고 야만적인 시대였군요. 어린애를 순장;; 저 시절에 안 태어난 것만으로 극강의 행운입니다. ㅠㅠ 인도의 사티가 떠오르네요. 남편 죽으면 살아있는 아내도 함께 화장하는
헐..산 채로는 아니겠죠..? 산채 화장이 아니어도 너무 잔인하고 끔찍하다..ㄸ
인도에서 그런일이 있었다는건 처음 아네요 아라비아쪽에서 아내를 돌무덤안에 죽은배우자와 가둬놓고 죽게 하는 풍습은 알았는데..
@@yelli_930 순장이 산 사람을 그대로 묻는다는거임....
@@yelli_930 산채로 화장합니다. 나중엔 신경이 다 타서 자기 몸이 활활 타도 느낌이 없다더군요
산채로...? 너무 빡센디....
도굴꾼들 대대손손 저주받고 평생 고통스럽게 살길 기도한다
@ADOLF HITLER ㅋㅋㅇㅈ
도굴꾼 죽으면 그 무덤에 있는 시체 꺼내서 난도질 해놓고 인체신비전에 전시하고싶다
이 나레이션들으면 할머니 집에서 밤늦게 보면서 잠들었던 기억있어서 엄청 졸려진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옛날의 끔찍하고도 잔혹한 사회제도에 경악을 금치못하겠습니다. 어떻게 멀쩡한 사람들을 주인을 따라 묻을 수가 있는지... 참 불쌍하고 안타깝네요...
소녀가 얼마나 무섭고 살고 싶었을까 ㅜㅜ
산사람이 죽은자 옆에 누워서 같이 생매장 되면 얼마나 공포스럽고 무서울까요
이런 미친 순장풍습이 믿을수가 없네요
그러게요 씨발것들 지들이순장당하기싫음면서
신라지 가야지 임금이죽으면
후궁도같이 순장하는 그런나라도있었는데 어느 나라였는지 기억이
현대에는 후세가 남아 건강히 잘 지내길 바라는 사회로 과거 순장 풍습과는 대조된다는 점
순장은 생매장이 아니에요. 훼손되면 안되기에 온전한 모습으로 죽여서 묻어요
@@유리리-i2h어쨋던 순장은 죄없는 사람을 죽여서 같이 묻히는 풍습이 아주 나쁜거죠. 가야는 순장 이라는 지랄같은 풍습 때문에 망햇다지요
이런 역사다큐는 도대체 어디가고 동북공정하는 중국 작가놈 작품 끌고와서 드라마화를 하냐?? 저번에 유튜브로 경주 유적지에 있는 무덤 언박싱하던데 그런거나 좀 추진해라 보니까 재밌던데
무덤 언박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무덤 언박싱 ㅈㄴ 신박하다ㅋㅋㅋㅋ
아닠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도랏냐곸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덤언박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ㄱ
무덤 언박싱이 뭐예요..?
@@도시락속치킨-x5y 언박싱은 말 그대로 상자를 연다는 뜻이에요 구매한 상품 상자를 개봉한다는 뜻이죵. 무덤 언박싱은 ㅋㅋㅋㅋ 발굴한다는 뜻으로 알면 될듯
남편이죽으면 같이순장되던 인도와 왕이죽으면 후궁모두 순장한 중국도있고 예전에는 정말 이해못할 풍습이 너무많네요
ㅕ6
그건 순장되는 사람들은 함께 묻히는 물건들처럼 소유물로 다뤄지고, 사후세계를 믿었기에 이승에서와 동일시되어 죽은자의 사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사고에서 비룻된것이라 추측함.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시대에서 종교인들이 다른 방식으로 사후 삶을 대비하기위해 여러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는것과 동일함.
기독교인들이 사후 천국에서 안위를 위해 제물을 바치고 현재 십일조를 내는것, 그리고 불교에서 여러 방식의 공양을 하며 공덕을 쌓는것 또한 그와 같은 맥락. 생명체를 순장하는것만 변화 했을뿐 맥락은 동일. 다른종교나 컬트 역시 유사한 역사를 가졌음
누가 자발적으로 죽을까
왕이 죽을때 따라죽었다는 것도 기록일뿐
김훈의 현의 노래 라는 소설에는 가야국의 왕이 죽으면 각각의 사람들을 착출하여 순장시켰다 합니다...
양반 노비 요리사 농부 어부 등등... 어린아이 한쌍 소년소녀 한쌍 젊은 부부 한쌍 노인 한쌍 아기를 낳은 어미와 아기 등등 각층의 사람들을 랜덤으로 다양하게 순장시켰고 혹여나 무덤에서 빠져나와 발버둥 치는 사람들은 둔기로 뼈를 다 부수어서 다시 집어 넣었다고 합니다...
밥을 한그릇 넣어 주었다고 허네요...
수 많은 사람들이 무덤속에서 비명을 지르고 곡 소리를 내다가 밤이 되어서야 조용해 졌다고도.....
참혹하기 짝이 없는...
물론 소설가의 상상이 더해진 서술이지만 저는 이보다 더더욱 참혹했으리라 생각합니다....
@παράδ εισος 그때 그시절 그런식으로 살생한자들이 분명코 불교에선 윤회 예수에선 부활이라 했듯이 내생에새로 태워났다면 뭔가 고초를 받았을것이라 예측해봅니다~
일종의 종교 신앙심과 같은 것이었겠죠 반항하는 이도 간혹 있었을테고 싫어도 사회분위기에 어쩔수 없이 죽기도했을테고..
지근에 있는 사람들이 수장을 배신하지 않고 섬기도록 수장이 죽으면 함께 죽게 했던 것 아닐까 수장의 죽음은 곧 자신의 죽음이니까 함부로 독살 같은 것에 가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내가 내는 시청료로 이런 프로그램 만들땐 너무 감사하고 감동했었는데....지금의 kbs는...
ㅋㅋㅋㅋㅋㅋㅋㅋ ㅠㅠ
@@dddkbs 미니미!
자발적인 것을 가장한 사회적 위압이 있었겠지. 자신이 순장당함으로서 자신의 집안이 얻게 될 이득 때문에ㅠ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딨겠어
불쌍해ㅠㅠ
얼마나 무섭고 받아 들이기 싫었을까
가야가 고대국가로 가지못하고 멸망한 이유중에 하나가 순장이라고 함.
세종 7년 1425년 이조판서 허조가 어전에서 말하기를 "장례(葬禮)만 하더라도 ‘허수아비로라도 순장(殉葬)하면 후손이 끊어진다. ’는 옛말은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것인데, 지금 태종 황제의 장사에 궁녀 15인을 순장(殉葬)하고, 반우(反虞)하는 날에 풍악을 울려 시체를 즐겁게 했다고 하니, 이와 같은 것은 비록 중국의 일이라도 본받을 만한 것이 못됩니다."라고 했다.
명 태종(영락제) 시절에도 순장하는 풍습이 있던 짜장국
고대사회에는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순장이라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높은 사람이 죽으면 그를 따르거나 모시던 사람들을 저승에 가서도 그 사람을 섬기도록 같이 묻어버리는 겁니다. 순장자는 적게는 1~2명인 경우도 있지만, 경북 고령의 지산동 고분에서는 약 40명 정도를 순장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지만, 당시는 신분이 낮은 노비 등을 사람이 아니라 말을 할 줄 아는 짐승 수준으로 생각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물론 그렇다고 낮은 신분의 사람들만 순장된 것은 아닙니다. 지난 2007년 경남 창녕의 송현동에서는 1500년 전의 인골이 발굴되었는데, 키가 150cm 정도되는 17세 가량의 소녀로 밝혀졌습니다. 아마도 피장자를 모시던 신분이었겠지요. 오늘의 다큐는 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끝으로 순장이 금지된 것은 가야의 경우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에서는 지증왕 3년(502)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의 다큐도 재미있게 보시고, 전에 정리해 놓은 글도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17세 가야소녀는 왜 순장당했나 blog.naver.com/jungyoupkim/221511620449 , 순장, 과연 생매장이었나 blog.naver.com/jungyoupkim/221314423156 )
역사 저널의 다른 동영상을 보니까 비단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에도 노비를 가축 취급하는게 보이더군요. 참으로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입니다.
@영하팔도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우리나라궁녀가;중국인가;명나라인가 어딘가에 끌려갔다가 순장당했다죠.....ㅠㅠ
@@이슬나-p7y
중국의 진시황시대보다도 1500년전인 고대 이집트에서조차 순장이 비인륜적이라고 사람대신 샤브티라는 인형을 대신 묻는 문화가 있었는데 현대에서 1500년전인 가야에서는 순장 풍습이 있었다라..
한반도는 일제시대전까지 고대이집트보다 단한번도 미개하지않은적이 없음
@@강인하-c5v 조선은 미개했지만 신라 지증왕때부터 고려까지는 아님ㅋㅋ
그리고 저 시대에 전세계적으로 순장이 얼마나 많았는데ㅋㅋ 인터넷에 좀만 검색해봐도 다나옴
진짜 지옥에서 살꺼다 산 사람을 댈꼬갈 생각을 하다니
오락프로에 식상하던찰나 이프로 나올때 넘 유익하고 신기하고 역사공부도 돼고 지적인거에 넘 좋았는데
넘 유익한 영상입니다 순장에 대한 많은 정보를 알게됐네요
내고향 창녕이네요 송현고분군은 창녕읍 톨게이트에서 멀지 않은곳에 있습니다.
150년도 아닌 1500년전 그런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아주 까마득한 오랜 옛날이네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현재도 언제가 1500년전이 될 때가 오겠지요 물론 뼈도 안 남겠지만 억울하게 고통받고 죽은 순장된 사람들 참 안타깝습니다
순장은 너무 잔혹하네요. 죽은이를 위해 산사람을 묻다니...
역사저널 업그레이드해서 방송하면 좋을 것 같아요~
신기해 1500년전 해골이 아직 발견되다니
ㅇㅈ
옛날이 더무자비하다 ~~ 진짜 저시대안태어난게감사
조선시대 까지만해도 누가 죽는다는게 아무일 아닐정도로 생각됐었음 그런데 그당시 백정이나 머슴이었으면 상상도 하기싫네
@@autoleaderexpo6405 고려시대 때 남녀 권리 준평등에 노비 인구3% 조선에서는 노비 인구 40%
역사프로그램은 늘려야한다
모든 시험에서 역사비중은 가장크게 둬야한다
슬프다. ㅠㅠ
어릴때 는 해골 무서웟는데
지금 50대인데 덤덤하게 본다
저두요 ㅎㅎㅎ
앞으로 나아갈 인생이니까요????
ㅋㅋㅋㅋ
빵 터짐 ㅋㅋㅋㅋ
님 귀여우심 ㅋㅋㅋ
니가 곧 해골이 될테니 ㅋㅋ
이 댓글 왤케 귀엽지ㅋㅋㅋㅋ
뒷편인골의 DNA분석 ㅡ오래된뼈는 분석하기ㅜ힘들지만,단단한 대태골뼈 정강이뼈가 남아 있을 가능성이높다.그럼 인골의 모계, 부계 혈연 관계를 알 수 있다.인골의 성별 인골이어떤질병을갖고있었는지...주로 먹은음식은무엇이었는지 식생활을 알 수 있다....어머니에게서만 유전 되는 미토콘트리아DNA법이 적용된다.
6세기초 순장제도를 없앤 지증왕 그의 진자이름은 김지대로혹은~ 어쨌든 그는 64세에 왕위에 올랐고 지증은 그의 시호이다. 시호는 문무관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에개 내려지는것이다.7세기 순장대신 사용한 토용이 대신하기도 했다는....요즘 여기저기 트롯트대전으로 난리치지 말고 이런 역사 스페셜을 살려 국민을 지혜롭게ㅜ하는데 보탬을 주는 방송국이 됐으면 좋겠다.
이렇게 좋은 역사드라마가 없어졌는지 역사를 알아야 나라가 발전하지 않나요??
죽어 가면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딕션 오졌습니다..크으으으으!!
시체가 반듯하게 누워져 있었다면
죽여서 뭍은듯
그랬겠죠
밥그릇 있는거
보면 산 채로 ㅡㅡ
자살약을 주었을 것 같네요.
@παράδ εισος 그걸 모를 것 같아서 계속 쓰는 거야?
@παράδ εισος 비판적인 자세가 나쁜건 아닌데 저때의 일은 '아 그렇구나' 하고 넘기는 게 심신에 좋아요
괜히 현대인들의 머리로 저때의 도덕성을 재단하는 건 역사를 배우는 이로서 좋은 자세는 아니에요. 우황 '역사가 이러했음으로 앞으로 이러해야한다'가 맞는 거지, '이러했어야 한다'고 종용한다면 그건 무엇도 없는 벽에다 외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음
도굴꾼들은 역사를
훔친 대역죄인인다
꼭찾아서 엄벌해야한다
그리고
순장자들은 결코
자진해서 주인을따라
죽지는 않았겠지
그럴수밖에없는 현실에
원망하고
원망하며 따라가겠지~
끔찍한 순장풍습이다ㅜ
성우님 지금도 활동하시나요.? 와 간만에 들으니 넘 편안하구 친숙하네요 ㅠㅠ
어릴때 할머니방에서 어른들이 보는거 같이보다가 까무룩 잠든거 생각나서 잠 솔솔 옴 … 비록 순장내용이지만; 잠 ㄹㅇ잘옴 잔잔한게
@@dddkbs 저두요 저두요! 저희 같은 세대를 보냈나보네요!🍀
@@손찐빵-h4v 94임당^^
어떤책에서 보았는데 가야고분 순장에 대한글을보고 경악하고 너무 가슴아팠어요.
어째 왕한사람의 죽음에 그 많은 사람들을 산채로 끌어 묻어버릴수있었나 우리역사에서
그런 잔인하고 미개인의 세월이 있었다니
가슴아프다.
칼에 노래. 현의 노래에 보면 공부할수있었죠.
.
ㅣ
순장되실분들은 왕의 양자 양녀 로들어와서 고기도먹고
그들의가문에는 벼슬을 내리고 지정되어서 궁에들어옵니다
누워서 다리부터 흙을덮고 맨나중 얼굴에 흙을 묻기에 유골이 반듯합니다
인구도 얼마 안되는 것들이 순장이나 해되니 그꼴로 망하지
@뺑덕어멈다롱 신라나 백제에 비해 가야가 유난히 오랫동안 순장제도를 유지했다고 해요! 다른 역사학자분들도 가야가 힘이 약해진 이유로 순장제도를 하나로 꼽습니다. 댓글이 아주 틀린 말은 아닙니다
생각만해도 끔찍하고 공포스럽네요
부여 고구려는 더 대규모로 했음(수백명대...)
우리나라 초기 국가들의 국력이 그다지 강하지 못했던 것은 그놈의 순장풍습이랑 노비세습제 때문이라고 봄...
@παράδ εισος 신라는 흉노족이 모태인데 수입은 쫌..ㅋㅋ
한반도의 인구는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많은편인데... 일본과 중국이 비정상적으로 많은것 뿐임.
미련한 사람들
현대인의 문화적 기준으로 판단하면 안됨
헐 넘 불쌍하다 얼마나 무섭고 고통스러웠을까
저 당시에는 왕이 유능하고 존경받던 사람일수록 순장을 자청하던 사람들이 많았다고 기록됩니다. 또한 저 당시 사람들의 평균 수명이 짧았기에 35세 정도가 되면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자처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정상수, 최봉인. 야외고고학 제22호(2015.3) 27-52쪽 에 의하면 당시 삼국시대 경산 임당지역 고분에서 출토된 인골 평균 수명이 30.4세이며 예안리 고분의 사망 평균연령은 25-34라고 합니다.
잔인한 놈들, 본인은 순장당하고 싶은가?
마자. ㅆ
요즘 KBS 역사저널
예능하듯이 출연진들 나와서 떠들어 대는데 진짜
어이가 없어요.
발로 안뛰고 입으로 다큐를 찍네요.
이런거 보면 와..옛날에 대체 이걸 어떻게 만들었대 싶은 것들은 과거 신분제가 더 한 몫을 하지 않았나 싶음. 일하지 않고 어떻게든 만들지 않으면 최하층 신분이라는 이유로 맞아 죽고 뭐해서 죽는데 참 사람 쓰기 쉬웠겠다 싶다. 죽지 않고 먹고 살려면 어떻게든 일해서 불가능을 가능케 해야 하니 말도 안되는 건축물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게 지금 와서는 아름다운 문화를 꽃피웠다~로 포장되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발굴은 존나 조심하게하더니 화물 하역할떄는 리프트도아니고 사람이 도수운반하네 ㅋㅋㅋㅋㅋㅋ 존나골떄린다
타임머신 타고 가서 구해주고 싶다. ㅠㅠ
갔다가 못 돌아올까봐 무섭네요ㅠㅠ
생각만 해도....
살은 사람을 순장하다니 잔인하다
인권이 없든 저 시대 사람들이
불쌍하다ㅠ
살은 사람은 뭐냐... 조선족이세요?
😂 살은 사람,조선족 같아
저는이제2학년이돼는사람입니다유튜브보다가이거받는데정말신했습니다!
남의 수명을 일부러 줄인다니.....그러니 가야가 신라에 복속돼는 천벌을받은것이다
..??
신라도 순장 인신공양 개많았는디 뭔 헛소리고
이런것 보면 넘힘들어요
개꿀잼인데 밤에 보면 스르르 잠까지 오는 최고의 영상임
오 실시간
@@아니요뚱인데요-c7u 있다 그리고 대선에서 그걸 통해서 후보들 중 한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물론 이 사람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사라진 아빠와 집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날 정신 바짝 차리고 기자 가수 이효리가 남편 그리고 아이에게도 훨씬 더 좋아져야 한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하게 되었습니다 수 있는 것이다 고 말했다 이렇게 두개
중국의 고대에는 우리나라의 신라나 가야때의 몇배는 더 심했을것같아요 진시황제때 토우들을보면 규모가 어마어마하던데 그 이전의 왕들때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장이 됐을까요?
토우가 순장보다 훨씬 인간적이지 뭔 개소리를하냐
@@강인하-c5v 글을 잘못 이해하신것 같네요 중국에서 진시황 이전에는 순장 풍습이 있었던걸로 알고있어서 진시황때는 순장을 안하고 토우로 대신했는데 그 전에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순장됐겠냐는 의미였어요
신라는 초기에 하다가 지증왕이 금지시켰지 않나?
지금은 제대로된세상인가..
인간이 젤 잔혹하고 더럽고
사악함
내친구도황영심인데~^^
그나저나 어쩜 저렇게 온전하게 뼈 모양 그대로 남아있을까..
성장판도 안닫힌 어린것을ㅠㅠㅠㅠ 얼마나 끔찍하고 한이 맺혀있었을까ㅠㅠ 그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뼈도 안썩고ㅠ 치아도 그대로고ㅠㅠㅠㅠ 너무 슬프다😭 순장자들의 가족들은 얼마나 슬펐을까ㅠㅠㅠㅠ
지금이야 평등사상이 기본이지만 저 당시엔 '천하다'라는 것이 지금 느끼는 어감이 아니라.. 진짜 천민을 인격체로 보지도 않는.. 고기로 먹을수 있는 가축 정도의 인식이었을듯.
얼마나억울햇을까
이런거 진짜 재밌음.
어렸을때부터 애늙은이 같이 이런거만 봄ㅋ
.
순장.. 이 얼마나 인간이 어리석고 무쉭한 존재인가, , ㅉㅉㅉ
신라시대에도 순장있었는데 지증왕이 금지했지
지증왕 사실 그렇게 했다면 역사에 확실한
일 하고 가셨넵
알고보니
신라와 가야는 야만족들 이었네요,끔찍했던 야만족.
6세기까지 신라도 순장했으니 금지했지...고구려도 부여도 다 순장했음...
@@박희윤-t4p 고조선, 고구려, 부여도 모두 순장을 했어요. 고구려와 부여는 조금 더 이른 시기에 순장을 멈춘듯해보입니다만(2~4세기 정도) 규모는 더 대규모였다는... (중국 역사에선 백여명이라고 했는데 실제 고구려 무덤을 발굴해보니 수백명이었음...)남쪽의 삼한지역(백제, 가야, 신라)은 규모는 더 작지만 더 오랫동안 순장을 한 거죠.
진짜 바보같죠. 나라의 힘을 기르거나 이민족과의 전투에서 싸우려면 많은 인구가 필요한데...ㅡㅡ
@@싱글맘2한검능이나 공시 한국사 시험에도 지증왕때 순장 금지했다고 잘 나옵니다
인간을 가축같이 사육해 인신제사를 지내던 아즈텍 문명. 가야문명 . 유목민족 다 지구상에서 처참히 멸망했다.
근데 신라도 순장이 있었는데 망했다고 봐야 할지 말아야 할지..
로마도 한때 인신공양함
@@WriterNakwanjong 신라도 처음엔 있었지만 가야보다 먼저 지증왕 때 금지했죠. 가야는 멸망할 때까지 순장을 했고..
돈없고 빽없으면 옛날도 지금도 같은거 아님 느거같은 기득권에 의해서
10년이 지난 영상을
@@user-whan 지금도 같은데 없는 사람은 앉아서 밟히고 욕도 못해요 욕했더니 공권력이 가해자 욕했다고 수갑 채우던데 문재인 치하에서
저 시절은 인권이라도 없었지 문재인 인권 변호사 출신이 인권을 무자비하게 밟더만
신라 순장풍속하고 근친상간 전통이 현대까지 내려오는데
그지역 대구탕북상도는 박근네나 전문대갈장군 사후에 순장하고푼 자발적 순장조가있어 "박사모" "전사모" 라고.
일베는 둘다 해당된다.
@@takakimasao5442 아침부테 웬개소리
제목 오타 있습니다. 17세기면 조선인데요. 7세기로 고쳐야 할 듯.
32:45 와중에 리본 너무 귀여우시다ㅋㅋㅋ
인신공양 ㅡ
ㅡ
심청이도
인신 공양 😑
영상이 중간에 짤린건가요? 이건 시간이 너무 짧네요
역사는 반복되고, 현재와 이어져 있다.
❤
ㅋㅋ강제로 성폭행 해놓고 합의하에 이루어졌다고 하는 놈들과 뭐가 다를까
주병진 서정범 매도하고 뒤로 빼면서 여가부는 여자만 호응 옹호 밤낮 피해자지
티비 빙영때ㅜ못보던게..유트브에서 알고리즘으로 뜨니까 가끔 보네요
인간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의식수준으로 대변된다.
순장............ 참 인간이 너무하네.
인간들이 젤 사악하고 저질임
불쌍하다. ㅠㅠ 청소년기 성장기에 있는 사람을 데려가다니
궁금한게 있어요.
이렇게 옛 역사의 흔적이라고 하지만 .. 사람의 유골이다보니까
현대의 유골인지 옛날의 유골인지 먼저 시대측정하고 발굴작업을 하는건가요?
아니면 측정은 측정대로 검사하면서 발굴도 같이 동시작업이 되는건가요?
주로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발굴 후 검사할 대상은 연구소에 보내져 검사하고 결과가 나옵니다
유익합니다.
너무 끔찍 하네요 정말 나쁜 풍습 이네요! 나쁜놈들 도굴꾼 도둑들!
힘든 시대여서 왕권이 어떤 방향으로 가야함을 가장 취약한 피지배자들이 죽음의 시위로 보였던 것은 또 아닐까요? 약속된 사회를 달라는 시위요. 당사자는 어려도 가장 이념적인 시기일 수 있기도 하고 식솔들과 가까운 사람들의 중요한 마음과 소원이 속일 수 없이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