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와 폭력과 비윤리적인 나쁜 곳에 종교가 흥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는 그 곳에 마지막 까지 남아있는게 종교다...라는 말씀 듣는데 예수님이 계신 그 곳.딱 그 말이 떠오르네요.. 하늘에 대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고 예수님이 계신 가장 낮은 곳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찾아갈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고 한 어느 목사님의 고백처럼.. 오늘 말씀에 제 자아가 무너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시편처럼 위선 없이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 기도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기도 응답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다 우연의 사건이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이성적인..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요. 그런데 어떤 개인적인 계기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 정말 사소한 것 부터 큰 일까지. 내가 탄식처럼 기도 해 놓고 잊은 것 까지. 다 기억하시고 주님의 때에 내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 해 주셨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다 수용 해 주시고 혹 내가 잘못구할지라도. 인간의 지혜와 이해를 뛰어넘은 방법으로 더 풍성히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
오늘도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쏙쏙 들어오는 말씀, 평소 잘 듣고 있습니다. '구하라~ 얻을것이다.' '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절실함이 아직도 부족한 걸까요? 얼마나 더 구하고 얼마나 더 두드려야 하는건지라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사순절에 더 주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오늘 말씀 주신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다시 순전하게 깨달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실 다른분 말씀을 어제 듣고는 좀 마음에서 어려웠었 답니다. 오늘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기도라는 길이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지 더 깊이 알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교수님 강의 늘 챙겨보고 있고 지루하지 않게 강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실직 6개월차를 넘어서고 있는 50대중반에 사람입니다. 20대초반부터 가장역할로 밤샘작업 마다않고 일해왔고 사실 너무지쳐 결혼이란 단계로 쉼을 가져보려했으나 착각이었던지 아이낳던날도 수술로 아이낳고 마취풀리자 아이얼굴 보러간게 아니고 거래처 분들과 병실에서 업무미팅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화려했던 프로필은 다 지워버리고 이력서에 그 어떤 내용으로도 생년월일에서 탈락되는 때가 오니 다 삭제시켜 보내는 답답하기 그지없고 잠은 안오고 신경은 쓰이고 주님은 등돌리신듯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새벽마다 성경과 기도문을 적어가며 기도드린지도 십년가까운데 이 실업6개월동안은 정말 묵묵부답이신 주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교수님 이럴땐 어떻게 저를 다스려야할까요..
저도 무척 힘든 일이 있었는데..그때 마음에 평안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했답니다. 상황이 제가 구하는 것처럼 금방 변하거나 나아지진 않았지만, 놀라운 평안이 찾아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반응(감사, 기쁨, 찬양)을 보일때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실 거에요. 힘내시고, 평안을 회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믿어질수록 제가 기도할것은 세상에서 매순간 하나님자녀답게 결정하고 선택하고 살아가게 해달라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수있게해달라는것외에는 기도할게없는데..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에힘쓰자는데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하는데 마음이 참불편하고 어렵네요 그리고 목사님이 안수기도해주신다고하시면 피하고싶습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그럼 대체 뭘 어떻게 기도해야 하죠? 제 삶은 참 괴로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친아빠의 폭력 새아빠의 폭력 그리고 부모님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의 불화와 가난 속에서 수많은 벽을 마주하며 아픔을 호소할 곳 없이 외롭게 컸습니다. 가지고 있던 열정과 큰 꿈들도 오랜 시간 동안 깎이고 깎여 몸도 마음도 망가졌고 이젠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잃어갑니다. 안 그래도 어릴 때부터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저였는데 중학교 때부턴 얼굴에 여드름도 잔뜩 나더니 그 후로 7년 동안 피부가 엉망인 상태로 지냈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오랜 시간 힘들어하며 공황증세도 보이곤 합니다. 고등학교 땐 동안 친구들과 마주하기 두려워 3년 내내 급식을 굶을 정도였고 저에게 있어 어린 시절과 청춘이란 부모님의 갈등으로 불안에 떨던 것과 뒤집힌 피부를 숨기고 다닌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어릴 때부터 도와달라 살려달라 수없이 기도하고 눈물 흘렸으나 그 어떤 기적도 회복도 도움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병도 고치시고 눈 먼자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인데 어째서 어린 아이의 눈물은 외면하신 거죠? 하다 못해 피부 때문에 7년을 고생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건가요? 고작 피부일 뿐인데. 이젠 동생이나 엄마와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지 못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얼굴이란 표정과 눈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며 소통하는 중요한 역할도 지니고 있는데 깨끗한 피부를 갖도록 회복시켜달라는 기도가 그렇게 죄스럽고 이기적인 기도인가요?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 이해가 안 되면 멀어지기 마련인데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 대상이 저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작은 도움조차 주지 않는다면 대체 뭘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 거죠? 불가능이 없으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라면서 이 기도가 그렇게 들어주기 어려운 기도인 건가요?
다윗은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자 중 하나 아니였습니까? 근데 그런 다윗의 기도가 잔뜩 모여있는 시편을 보면 정말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담긴듯 때론 기뻐하며 때론 슬퍼하고 한탄하며 때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기도들이 있고 그 표현도 꽤나 과격하고 섬세하며 지독히 인간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런 기도들도 성경에 적혀 있다는 건 하나님이 그 또한 중요하기 때문 아닙니까? 정녕 하나님은 솔직한 기도와 외침보다 고상한 척 괜찮은 척 점잖게 드리는 기도를 더 값지게 받으시는 건가요? 정말 숨 막혀 죽겠습니다.
이번 의료대란에서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버는 넉넉한 직군조차도 자신의 이득과 타인의 목숨중에 자신의 이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현실만 봐도 알수있음. 윤리나 도덕은 자신의 안위, 행복, 사치를 부릴수있는생활을 우선시하는 생물의 본능앞에서 매우 쉽고 얄팍하게 무너짐.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신을 모르는 자가 말하면 그냥 대학교때 들었던 채플수업 같은거임. 점수를 위해서 억지로 혹은 그냥 해야하는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잠깐 지나가는거 무교인들은 그걸 주문같이 오래된 관습처럼 생각할수도 있고 무신론자들은 그것조차도 종교적인 낡은 관습이라고까지 말할수도있음. 그 선서는 신이라는 존재와, 신적인 이데아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했던 로마시대의 철학자들이나 진지하게 선서했을거지 무교인이 60%~70%인 한국인들에겐 아무런 의미없는 선서임. 하루정도 기분을 고양시킬순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관이 될수는없음. 절대적인 가치관이 되려면 종교처럼 진심으로 그것을 믿어야함. 종교와 사랑은 사람을 한계이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수있게 만드는 힘이 있음. 그것이 좋은의미로도 나쁜의미로도 가능하다는것이 문제지만 좋게 작용하기도함. 자기희생이 좋은 한계 중 하나임. 또한 독립운동가들중에 종교인들이 많았다는것만봐도, 종교적인 믿음이 죽음도 불사할만큼의 큰 힘을 준다는것은 틀림없음. 그렇기에 독재국가에서는 종교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함. 기독교인들이 사랑하고 따르는 존재인 예수가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아는 기독교인들은 이런상황에서 생명을 우선시 할것임. 본능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말인데 절대적일수 밖에
신앙인이라면 그런 세상의 눈과 말에 당당하고 무너지지 않아야겠죠. 성경과 예수님은 이런 일들에 대해 이미 힌트를 주었습니다. 논리와 개연성이 이데올로기와 철학 그리고 시대의 이성을 기독교에 비해 우월한 듯 교만을 부리지만, 성경은 담대하고 의연히 하나님이 보여주실 놀라운 일에 대해 믿음을 견고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그 생각마져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질병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성과 논리를 겸비하여 모든게 완벽해 보여도 죽음을 그리고 죄를 해결한 인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교리적 논쟁에서도 비난 받았죠. 옳고 그름이 상대적인 세상적 이성과 철학이 영원하다면 그 말에 신뢰를 보내겠지만, 한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뒤집히고 반대하는 새로운 싹이 나면 예전의 지지받던 이성과 논리도 개똥 보다 못한 가난함과 천대를 받아 사장되는 경우를 봅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적 유행을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으니 비교할 바 없는 독보적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는 정보죠. 진화론 전문가들도 실제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 논쟁에 있어서도 저를 이겨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로 세상의 이치를 보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말을 잘한다 해도 금새 들통납니다. 과학자들이 저보다 과학적 지식없이 감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사용할 때 꾸짖고 지적하는 것도 기독교인으로서 세울 당당함입니다.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예수가 아니라 모든 복음의 영광을 위해 망설이지 말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도 인생에겐 없고 지혜의 왕 솔로몬도 죄앞에 엎드러 졌으니 세상의 이성과 논리에 고개숙이지마라 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
성경이 사회문제를 고치라고 하는가요?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아니,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역사에서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럼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셨는가요? 예수님은 자기 멍에가 가볍다고 하셨는데, 왜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합니까? 성경은 내가 구원 받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가요? 사회문제는, 가난한 자를 돕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도, 사람이면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독교인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그런 일을 하려면, 목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때고 하라고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문제 중의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사랑하려고 너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고 여행하지 않았지만, 기독교인은 이웃을 사랑하려고 불을 켜고 돌아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인으로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급히 적느라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버림받은 유대인일 뿐이지 유대인이 아니지 않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은 혼혈인이라 짐승취급 받았던 자들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정통 유대인이라하며 신앙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들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짐승취급하는 사마리아인보다 못함을 엿볼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느라 정작 이웃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구절을 지키느라 거반 죽은 자를 내버려두고 갔죠 반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살려내심을 보여주십니다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지켜온 말씀과는 정반대로 행동하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시고, 저주받았다 여겨지는 이들과 함께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유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이단으로 보일만한 행동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거기다 기적까지 일으키시니 사단의 소행이라 모욕받으셨죠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먹이시고, 고치시며,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을 들고 시험할 때 항상 명쾌한 답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으나 할 수 있는 건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님이 말씀하시는 건 행동에 대한 지적이기 보단 구원론에 대한 지적입니다 행위구원은 잘못된 게 맞으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은혜를 입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은 은혜를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려 하는 행함, 인정받으려 하는 행함은 말씀하신대로 잘못된 것이 맞으며 이는 근본 믿고 있는 구원론이 잘못되어 야기된 문제입니다
사회문제를 고치라고는 안하시지만, 문제속에 있는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복지사각지대, 사회적 소외계층에 속해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이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뻔히 보이는데 모른척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성경은 내가 구원받는 과정이 기록된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깨달은 바로는 진정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경전이라고 봅니다. ㅎㅎ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된 인간, 참다운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며 말씀안에 거하는 존재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구원을 이뤄간다는 말과 상통하는 의미인데, 한국 기독교가 정해놓은 좁은 의미의 구원과 구분하고자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너의눈망울에사르르 1. 저는 “내가 기독교인이니까, 혹은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라 의무이고 자기 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고, 이웃은 단지 내가 사랑을 베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고 대상에 불과하지요.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이웃을 사랑하리라. 강도 만난 자를 보면 도우리라” 하면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볼일 보러 떠났다가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났고,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했습니다. 갔다가 오는 길에 돈을 주겠다고 한 것도 분에 넘치게 한 것이 아니고,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내가 길을 가다가 목마른 사람을 만났는데 마침 나에게 물이 있으면 주면 되고, 없으면 안 주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거기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억지로 우물을 파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억지로 하게 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런 접근법으로 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비유에서 작은 소자에게 행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했던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기들이 사랑을 베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접근부터 그걸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야!” 이게 바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또 예수님은 너희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한 후에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자기가 자기 의지로 무엇을 한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홍수 후에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고 하셨습니다. 밤에 찾아온 이웃에게 빵이 있으면 주면 되는 것인데, 자고 있는 이웃을 찾아가서 빵이 필요 없느냐? 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오히려 정작 필요할 때는 우리 아이가 자고 있다고 하는 것처럼 교회에 가야 한다, 기도하러 가야 한다고 하지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접근하는 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라고 적으셨는데, 이렇게 결국엔 전도를 생각하는 것 자체도 포기 하셔야 할 겁니다. 이웃사랑은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아닌가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 숨을 쉬어야지 하면서 숨을 쉬는가요? 그냥 숨을 쉬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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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철 교수님이 꺼내시는 주제는 항상 제가 하나님께 다시 돌아오기 전까지 되물어봤던 것들이라 항상 챙겨보게 됩니다. 방송 만들어주시는 제작진분들과 김학철 교수님 항상 감사드립니다.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 :)
교수님,감사합니다..!💚
좋아요 누르려다가 이름 보고 놀라 돌아섭니다
하나님 나이만 먹었지. 어른다운 성숙함이 부족한 저입니다. 기도로 성장할수 있는 제가 될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멘
듣는 동안 여러 시달리는 문제로 강퍅해져 있던 제 눈에 눈물이 흐르고 마음 한 켠이 씻겨진 것 같아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제작하시는 모든 분들 감사드립니다
자막을 달아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시끄러운 지하철에서도 볼수있이요
좋으신 아버지 착하고 좋은딸이 되지못하고 속을 썩여서 회개합니다 좋은딸로 아버지께 아버지의뜻에 살기 원합니다길이요 진리이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멘..
저는 이제야 주님을 만난 초심자입니다. 말씀을 찾다 교수님 방송을 보고 이해가 되는 것이 참 많고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나무위키에 안 좋은 말이 있는지 너무 마음이 안 좋네요. 잘잘법 감사합니다
그러니까요 ㅠ
동감입니다 ❤
하지만...진짜 믿는자는
진실과 허구.허상.가짜를
구별하는 지혜로운눈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저도 나이가들어가면서
말씀을 되새김길하면서
주님께서는 지혜를주시더
군요 🙏 참 감사드립니다
보아도 보지못하는자들이
많으니까요 안타깝워요
무지와 폭력과 비윤리적인 나쁜 곳에 종교가 흥왕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이 있는 그 곳에 마지막 까지 남아있는게 종교다...라는 말씀 듣는데
예수님이 계신 그 곳.딱 그 말이 떠오르네요..
하늘에 대고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고 예수님이 계신 가장 낮은 곳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찾아갈때 비로소 만날 수 있었다고 한 어느 목사님의 고백처럼..
오늘 말씀에 제 자아가 무너집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들을 수 있어서
너무 깊이 있고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새힘 주시니 감사합니다. 한말씀 한말씀이 생명의 씨앗이되어 제 맘속에 싹트게 하시고 자라게 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시편처럼 위선 없이 솔직한 감정을 토로한 기도를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기도 응답이라는 게 믿어지지가 않았고 다 우연의 사건이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름 이성적인.. 배운 사람이라고 자부하면서요.
그런데 어떤 개인적인 계기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지 ..
정말 사소한 것 부터 큰 일까지.
내가 탄식처럼 기도 해 놓고 잊은 것 까지.
다 기억하시고
주님의 때에
내가 구한 것 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방식으로 해결 해 주셨음을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나의 악하고 부정적인 감정도 다 수용 해 주시고
혹 내가 잘못구할지라도.
인간의 지혜와 이해를 뛰어넘은 방법으로 더 풍성히 응답해 주시는 주님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
아멘 거듭거듭 아멘을 합니다
갑자기 내 가슴이 펑 뚫리는 걸 경험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 제기도를 들어주세요...이번엔 꼭 합격하게해주세요..
오늘도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과하지 않으면서도 쏙쏙 들어오는 말씀, 평소 잘 듣고 있습니다. '구하라~ 얻을것이다.' '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절실함이 아직도 부족한 걸까요? 얼마나 더 구하고 얼마나 더 두드려야 하는건지라는 마음이 들어왔습니다. 이 사순절에 더 주님과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김학철 교수님의 말씀을 들은 시간들이 너무 은혜롭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학철 교수님의 통찰력이 깨달음을 주시네요
오늘도 내게 주신 사명을 감당할수있도록 건강과 지혜와 살리는 입술 주시길 간구합니다
매일아침 멀~~~~~리서 시편이 날아와있는 이시대를 누리게하시니 감사 행복합니다❤❤❤
교수님의 말씀듣고 늘 은혜받고 있습니다 말씀을 들은지는 오래됐지만 댓글은 첨 써보네요 교수님 존경합니다 오래오래 진리의 말씀 바른말씀 들려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멘 적재적소에 이 말씀 듣게해주시니 감사드립니다 🩷
목사님에 귀한 말씀이 살아서 영혼을 살리고 있습니다
하루 안빼먹고 듣고 있습니다
목사님 들의 이 방송이 지구끝날까지 변질되지 않고 지속되기를 소원하며 살아계신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구하라 문을두드리면 반드시 열리깃이니라
말씀 감사합니다
새싹 믿음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수님 영상 볼때마다 심오한 진리 많이 배웁니다.항상 감사합니다. 건강하세요
늘 감사합니다 ❤
깨우침을 주신 말씀 감사드립니다♥♥♥
안경 잘 어울리시네요
이 아침에 감사합니다. 김학철목사님의 하느님은 찬미영광 받으소서
하나님이 어떤 아버지인지 점점 더 알아가는 복이 너무 귀하고 귀합니다 ㅜㅜ 깨달은대로 행할 수 있는 열매 맺는 삶을 살 수 있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
오늘도 정말 너무 좋아요 ❤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기도하고 싶어집니다. 하나님깨 저는 누가되고자 합니까..
교수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가끔씩 교수님 영상 볼때마다, 항상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오늘도 감사합니다~♡
처음시작부터 1분까지 예전에 내모습이 보여 다시한번 반성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 감사드립니다!! 아멘~~
오늘 골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고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얻어내기 전 하나님이 누구시고 나는 누구인지 정체성을 알고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구하겠습니다.
목사님들이 이 정도의 신앙의 학식을 갖추고 성도들을 대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집 앞 식당 요리사들이 유명 쉐프들처럼 요리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도 우리에게 적절하고 충분한 음식을 내어주십니다.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JGL-k5c
정말 마음이 힘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씀이네요
숙성된 김치 같은
깊은 맛 ,,,
잔잔하게 스며드는
강론
감사합니다~♡
김기철교수님 말씀이 믿음생활에 큰힘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늦게나마 영상을 보게 해주심을 감사합니다.
교수님 말씀 아멘입니다
하나님 말씀이 있는데
왜 걱정하는지....
오늘 하루를 살아갈수있는 힘이 생기네요
지금 이순간에도
저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잘잘법 감사합니다
말씀 듣고 힘을 얻었습니다
교수님!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
너무너무 부끄러워졌습니다. 정확히 제가 하던 생각을 꾸짖어주셨습니다. 깨우침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수하는 날에 얼음냉수와 같다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것 같은 목사님의 변주... 신앙의 지평을 넓혀 보여 주셨어요❤ 고결한나눔 감사합니다.
아멘!!!
목사님 말씀은 우아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품격이 느껴지고 깊은 위로가 됩니다.
항상 강건하시길...이대로 더 많은 사람들을 말씀으로 회복시키는 통로가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 주신 주님께 드리는 기도의 의미를 다시 순전하게 깨달을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사실 다른분 말씀을 어제 듣고는 좀 마음에서 어려웠었 답니다. 오늘 하나님께 드릴수 있는 기도라는 길이 있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잘못된 기도가 무엇인지 더 깊이 알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아멘 아멘
하나님께 아바아버지 라고 부를수 있다는건, 저에게는 살아가는 힘에 뿌리 입니다
밥 먹다가도 또는 일을 하다가도 그 생각만 하면..하늘을 날아갈 듯한 기쁨 이 있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
사순절 끝나도 김학철목교수님 매일 영상올려주셨으면 좋겠어요~~
큰 위로의 말씀 감사합니다
교수님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예정론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강의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오늘 목사님을 통해 저에게 주시는 말씀이네요.
그동안 주님께 일방적이었던 제 기도를 회개합니다. 바른믿음과 거룩한 기도의 영을 주소서 아멘
말씀
정말 감사드립니다
하나님 💐 이 되어 내 자신
늘 좋은 감사합니다
구하고 원합니다 하나님❤
아멘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을 우리때문에 죽게하셨는데. 뭘 달라고 하겠어요. 이제껏 건강하고 안전하게 지켜주신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
목사님말씀을 듣고있으면 눈물이 납니다 일하다들어도 그래요
과거의 일화들을 느껴지지않고
현재의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아가게 해주시거든요
잘잘법 으로부터 예수님의
대한 궁금증을 알수있어요! 감사합니다!❤❤❤❤
나에게도 빛이 들기를....
살아계신 주님 제 음성ㆍ절규 ㆍ응답 ❤감사드립니다 ㆍ믿습니다 ㆍ
감사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교수님 기도를 잘 할수 있도록 말씀으로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주와동행하시는 날되시고 강건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목사님~❤~
와 역시.김학철 교수님 ㅠㅜㅜ
인사이트 넘치는 감동입니다
교수님 강의 늘 챙겨보고 있고 지루하지 않게 강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는 실직 6개월차를 넘어서고 있는 50대중반에 사람입니다. 20대초반부터 가장역할로 밤샘작업 마다않고 일해왔고 사실 너무지쳐 결혼이란 단계로 쉼을 가져보려했으나 착각이었던지 아이낳던날도 수술로 아이낳고 마취풀리자 아이얼굴 보러간게 아니고 거래처 분들과 병실에서 업무미팅했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화려했던 프로필은 다 지워버리고 이력서에 그 어떤 내용으로도 생년월일에서 탈락되는 때가 오니 다 삭제시켜 보내는 답답하기 그지없고 잠은 안오고 신경은 쓰이고 주님은 등돌리신듯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새벽마다 성경과 기도문을 적어가며 기도드린지도 십년가까운데 이 실업6개월동안은 정말 묵묵부답이신 주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교수님 이럴땐 어떻게 저를 다스려야할까요..
저도 무척 힘든 일이 있었는데..그때 마음에 평안을 지켜주시기를 간구했답니다.
상황이 제가 구하는 것처럼 금방 변하거나 나아지진 않았지만, 놀라운 평안이 찾아오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십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심을 믿고, 힘든 상황에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른 반응(감사, 기쁨, 찬양)을 보일때 놀라운 방법으로 응답해주실 거에요. 힘내시고, 평안을 회복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 있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아버지가 저를 사랑하신 다는 것을 믿기시작 했으니까요 🎉
통찰에 감사 드립니다
남편만 쳐다본 저 이제는 정말로 하나님만을 쳐다보게 해 주세요
남편에게 의존하고 남편에 비위나 맞추고 싫어하면서도 좋아하는척 속였던 제 마음을 고백합니다
하나님~ 저는 아버지앞에 누가되기를 원하시나요?
교수님 이런방송많이 해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해주세요.전도할때 영상 주면서 전도하는데 도움이 많이 되요. 많이 많이 영상 찍어주세요
The ❤❤ 😊😊
오늘도 화가 납니다 남편에게 화가 나는 것같은데 풀리질 않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해야할까요?남편에게 화가 나지 않게 해 주세요 남편을 사랑하게 해 주세요 그리고 아버지 제가 아버지와 가까운 사이가 되게 하여주세요 그리고 기도 할 줄 알게 해주세요 🙏
감사합니다🤍
아멘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고집부리는 나쁜딸이어서 회개합니다.그런데 너무 지쳤버렸어요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답지 살아가지 못해서 저의 죄를 뉘우칩니다..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요..예수님을 온전히 바라볼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감사합니다
네~말씀 감사합니다 목사님~ 그런데 무슨 의자 삐걱거리는 소리가 계속 나 집중이 힘들었는데요ㅜ
딸이 교수님 같은 분 만나길 기도해요 🙏😄
16:44 단독자로 하나님께 할 수 있는 기도
너무 감사합니다.
서두에 배경음악으로 나오는 곡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갑니다’ 라는 ccm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습니다.
집이 욕심이 나서 💰 을 편하게 얻으려고 아부하고 화가 나도 화를 안내고 참는 비겁한 저를 봅니다 세상적 남편에게 아부 그만하고
비위 그만 맞추고 내친부 하나님께 의지하게 해 주세요 필요한 거
아버지께 달라고 기도하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믿어질수록 제가 기도할것은 세상에서 매순간 하나님자녀답게 결정하고 선택하고 살아가게 해달라는것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살수있게해달라는것외에는 기도할게없는데.. 그래서 교회에서 기도에힘쓰자는데 그리고 기도제목을 나누자고 하는데 마음이 참불편하고 어렵네요 그리고 목사님이 안수기도해주신다고하시면 피하고싶습니다 제가 이상한가요?
역으로 말씀 하시는 종교가 그 역활을 해 주었다면 지금은 천국 비슷한 세상이 될 수도 . . 😢
현 상황의 선교 장소는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곳 이네요.(아프리카 아시아 후진국 독재국 한국은 뭔가 썸씽 )
교수님 성경책에 나온 모세가 하나님을 증거할때 바로는 하나님이 하시는일인줄 알거든요 근데 왜 강팍함을 하나님이 그마음을 갖게 했다고 했죠? 바로의 입장에서 보면 부정적이고 모세입장에서 보면 영웅을 만들기위함인데 누구를 입장의 일인가요? 너무 궁금해요
개신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불교 이슬람 힌두교와 같이 비교할수 없는 진리 입니다
완고한 발언 을...
님 생각
뭐든 가치와 합리적 사고로 양심을 지키며 믿으면 됩니다
온전함을 말씀 하셨습니다.
종교가 아님 입니다.
여호와 아버지 하나님, 그리스도 예수님, 보혜사 진리의 성령님은 각 사람에게 죽음에서 온전한 생명을 회복 하길 원 하십니다
기도의 의미도 모르고 있음 입니다.
😮w
주예수그리스도여 내게 자비를 베푸소서를 만보기 같은계수기를 써서 되풀이하라고 김진홍목사님 설교서 들었는데 아닌가요?
반복하는. 기도가 잘못됐다가 아니고
영혼없이 주문을 외우듯 입으로만 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이해했어요 저는😊
괘변 김학철!
그럼 대체 뭘 어떻게 기도해야 하죠? 제 삶은 참 괴로운 날들이 많았습니다. 친아빠의 폭력 새아빠의 폭력 그리고 부모님의 갈등으로 인한 가정의 불화와 가난 속에서 수많은 벽을 마주하며 아픔을 호소할 곳 없이 외롭게 컸습니다. 가지고 있던 열정과 큰 꿈들도 오랜 시간 동안 깎이고 깎여 몸도 마음도 망가졌고 이젠 살고자 하는 의지도 잃어갑니다. 안 그래도 어릴 때부터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저였는데 중학교 때부턴 얼굴에 여드름도 잔뜩 나더니 그 후로 7년 동안 피부가 엉망인 상태로 지냈고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으로 오랜 시간 힘들어하며 공황증세도 보이곤 합니다. 고등학교 땐 동안 친구들과 마주하기 두려워 3년 내내 급식을 굶을 정도였고 저에게 있어 어린 시절과 청춘이란 부모님의 갈등으로 불안에 떨던 것과 뒤집힌 피부를 숨기고 다닌 기억들로 가득합니다. 어릴 때부터 도와달라 살려달라 수없이 기도하고 눈물 흘렸으나 그 어떤 기적도 회복도 도움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병도 고치시고 눈 먼자도 고치시고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인데 어째서 어린 아이의 눈물은 외면하신 거죠? 하다 못해 피부 때문에 7년을 고생하게 만들 필요가 있는 건가요? 고작 피부일 뿐인데. 이젠 동생이나 엄마와도 눈을 마주치고 대화하지 못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얼굴이란 표정과 눈을 통해 감정을 드러내며 소통하는 중요한 역할도 지니고 있는데 깨끗한 피부를 갖도록 회복시켜달라는 기도가 그렇게 죄스럽고 이기적인 기도인가요? 같은 인간끼리도 서로 이해가 안 되면 멀어지기 마련인데 눈으로 본 적도 없고 느껴지지도 않는 대상이 저를 사랑한다면서 정작 작은 도움조차 주지 않는다면 대체 뭘 어떻게 믿을 수가 있는 거죠? 불가능이 없으며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분이라면서 이 기도가 그렇게 들어주기 어려운 기도인 건가요?
다윗은 하나님이 정말 사랑하는 자 중 하나 아니였습니까? 근데 그런 다윗의 기도가 잔뜩 모여있는 시편을 보면 정말 인간의 희노애락이 다 담긴듯 때론 기뻐하며 때론 슬퍼하고 한탄하며 때론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는 기도들이 있고 그 표현도 꽤나 과격하고 섬세하며 지독히 인간적인 느낌이 듭니다. 그런 기도들도 성경에 적혀 있다는 건 하나님이 그 또한 중요하기 때문 아닙니까? 정녕 하나님은 솔직한 기도와 외침보다 고상한 척 괜찮은 척 점잖게 드리는 기도를 더 값지게 받으시는 건가요? 정말 숨 막혀 죽겠습니다.
이번 의료대란에서
이미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버는 넉넉한 직군조차도 자신의 이득과 타인의 목숨중에 자신의 이득을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현실만 봐도 알수있음.
윤리나 도덕은 자신의 안위, 행복, 사치를 부릴수있는생활을 우선시하는 생물의 본능앞에서 매우 쉽고 얄팍하게 무너짐.
히포크라테스 선서도 신을 모르는 자가 말하면 그냥 대학교때 들었던 채플수업 같은거임. 점수를 위해서 억지로 혹은 그냥 해야하는거, 의사가 되기 위해서 잠깐 지나가는거 무교인들은 그걸 주문같이 오래된 관습처럼 생각할수도 있고 무신론자들은 그것조차도 종교적인 낡은 관습이라고까지 말할수도있음. 그 선서는 신이라는 존재와, 신적인 이데아에 대해서 진지하게 탐구했던 로마시대의 철학자들이나 진지하게 선서했을거지 무교인이 60%~70%인 한국인들에겐 아무런 의미없는 선서임. 하루정도 기분을 고양시킬순있겠지만 그것이 절대적인 가치관이 될수는없음. 절대적인 가치관이 되려면 종교처럼 진심으로 그것을 믿어야함.
종교와 사랑은 사람을 한계이상으로 생각하고 움직일수있게 만드는 힘이 있음. 그것이 좋은의미로도 나쁜의미로도 가능하다는것이 문제지만 좋게 작용하기도함. 자기희생이 좋은 한계 중 하나임. 또한 독립운동가들중에 종교인들이 많았다는것만봐도, 종교적인 믿음이 죽음도 불사할만큼의 큰 힘을 준다는것은 틀림없음. 그렇기에 독재국가에서는 종교인들을 철저하게 탄압함.
기독교인들이 사랑하고 따르는 존재인 예수가 사람의 생명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하는지 아는 기독교인들은 이런상황에서 생명을 우선시 할것임.
본능보다도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의 말인데 절대적일수 밖에
하나님 한국교회의 구함이 구함의 내용이 어린아이 수준을 벗어나게 해주세요.
신앙인이라면 그런 세상의 눈과 말에 당당하고 무너지지 않아야겠죠.
성경과 예수님은 이런 일들에 대해 이미 힌트를 주었습니다.
논리와 개연성이 이데올로기와 철학 그리고 시대의 이성을 기독교에 비해 우월한 듯 교만을 부리지만, 성경은 담대하고 의연히 하나님이 보여주실 놀라운 일에 대해 믿음을 견고히 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나약하고 그 생각마져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질병으로 하나님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죠.
이성과 논리를 겸비하여 모든게 완벽해 보여도 죽음을 그리고 죄를 해결한 인생을 보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교리적 논쟁에서도 비난 받았죠.
옳고 그름이 상대적인 세상적 이성과 철학이 영원하다면 그 말에 신뢰를 보내겠지만, 한세대가 지나기도 전에 뒤집히고 반대하는 새로운 싹이 나면 예전의 지지받던 이성과 논리도 개똥 보다 못한 가난함과 천대를 받아 사장되는 경우를 봅니다.
성경은 그런 세상적 유행을 초월한 하나님의 진리를 말해주고 있으니 비교할 바 없는 독보적 당당함과 자부심이 있는 정보죠.
진화론 전문가들도 실제 신앙이 아니라 과학적 논쟁에 있어서도 저를 이겨본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로 세상의 이치를 보면 거짓말하는 사람이 말을 잘한다 해도 금새 들통납니다.
과학자들이 저보다 과학적 지식없이 감정적이고 왜곡된 정보를 사용할 때 꾸짖고 지적하는 것도 기독교인으로서 세울 당당함입니다.
의기소침하고 침울한 예수가 아니라 모든 복음의 영광을 위해 망설이지 말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연마할 수 있는 시간과 역량도 인생에겐 없고 지혜의 왕 솔로몬도 죄앞에 엎드러 졌으니 세상의 이성과 논리에 고개숙이지마라 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
문명이 발달 할수록 인간이 점점 퇴화됨.
기독교는 종교가 아닙니다 다만 가독교 입니다
성경이 사회문제를 고치라고 하는가요? 만일 정말로 그렇다면, 인류 역사에서 아니, 유대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역사에서 그런 사회가 만들어졌던 적이 단 한 번이라도 있었습니까? 없었지요? 그럼 하나님은 불가능한 일을 하라고 하셨는가요? 예수님은 자기 멍에가 가볍다고 하셨는데, 왜 기독교의 일부에서는 또 더 무거운 짐을 지우게 합니까?
성경은 내가 구원 받는 과정을 그린 것이 아닌가요?
사회문제는, 가난한 자를 돕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아니라도, 사람이면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독교인만 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종교인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기독교가 그런 일을 하려면, 목사라는 타이틀을 떼고, 기독교인이라는 타이틀을 때고 하라고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유대인도 아니고 기독교인도 아니었습니다.
기독교의 문제 중의 문제는,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니까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사랑하려고 너무 애를 쓴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힘들고, 도와달라고 기도하지요.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하고는 그냥 갔습니다. 이웃을 사랑해야지 하고 여행하지 않았지만, 기독교인은 이웃을 사랑하려고 불을 켜고 돌아다닙니다.
왜냐하면, 그래야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 그리스인으로서 인정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사람을 위해서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퇴근시간이라 급히 적느라 두서 없이 적었습니다.
사마리아인은 버림받은 유대인일 뿐이지 유대인이 아니지 않습니다 정통 유대인들이 인정하지 않은 혼혈인이라 짐승취급 받았던 자들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정통 유대인이라하며 신앙적 자부심을 가지고 있던 자들입니다
선한 사마리아 비유는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짐승취급하는 사마리아인보다 못함을 엿볼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정통 유대인들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느라 정작 이웃사랑을 저버렸기 때문입니다
시체를 가까이 하지 말라는 구절을 지키느라 거반 죽은 자를 내버려두고 갔죠
반대로 예수님은 죽은 자들에게 가까이 가셔서 살려내심을 보여주십니다
정통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이 지켜온 말씀과는 정반대로 행동하신 것이 예수님입니다
안식일에 일하시고, 저주받았다 여겨지는 이들과 함께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등
유대인들에게는 충분히 이단으로 보일만한 행동을 하고 다니셨습니다
거기다 기적까지 일으키시니 사단의 소행이라 모욕받으셨죠
예수님은 많은 이들을 먹이시고, 고치시며,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을 들고 시험할 때 항상 명쾌한 답을 내놓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본받는 자로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는 없으나 할 수 있는 건 해야 할 것입니다
성도님이 말씀하시는 건 행동에 대한 지적이기 보단 구원론에 대한 지적입니다
행위구원은 잘못된 게 맞으나 하나님을 올바로 믿는 사람은 은혜를 입었기에 자연스럽게 받은 은혜를 베풀게 되어 있습니다
보이려 하는 행함, 인정받으려 하는 행함은 말씀하신대로 잘못된 것이 맞으며 이는 근본 믿고 있는 구원론이 잘못되어 야기된 문제입니다
사회문제를 고치라고는 안하시지만, 문제속에 있는 그들과 함께 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복지사각지대, 사회적 소외계층에 속해 있는 분들에게 하나님의 가족으로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가족이기에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뻔히 보이는데 모른척 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를 빠져 나가는 것만큼 어려울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성경은 내가 구원받는 과정이 기록된 것이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는데
제가 깨달은 바로는 진정한 인간이 되도록 만들어 주는 경전이라고 봅니다.
ㅎㅎ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참된 인간, 참다운 나를 만드는 것이라고 여기며 말씀안에 거하는 존재로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님이 말씀하신 구원을 이뤄간다는 말과 상통하는 의미인데, 한국 기독교가 정해놓은 좁은 의미의 구원과 구분하고자 이렇게 적어 보았습니다.
눈에 불을 켜고 찾으러 다니고, 내가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만, 나의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님의 마음를 닮게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주신 마음대로, 허락하신 만큼 사랑하길 원합니다.
@@너의눈망울에사르르 1. 저는 “내가 기독교인이니까, 혹은 예수님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 이웃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것을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라 의무이고 자기 의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렇게 하려고 한다면 그건 이웃사랑이 아니고, 이웃은 단지 내가 사랑을 베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게 됩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인임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이고 대상에 불과하지요.
선한 사마리아인은 “내가 이웃을 사랑하리라. 강도 만난 자를 보면 도우리라” 하면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자기 볼일 보러 떠났다가 우연히 그런 사람을 만났고, 거기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만 했습니다. 갔다가 오는 길에 돈을 주겠다고 한 것도 분에 넘치게 한 것이 아니고, 딱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지요. 내가 길을 가다가 목마른 사람을 만났는데 마침 나에게 물이 있으면 주면 되고, 없으면 안 주면 됩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거기서 이웃을 사랑하려고 억지로 우물을 파려고 합니다. 그래서 힘든 것입니다. 처음엔 사랑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엔 억지로 하게 됩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런 접근법으로 하면 힘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비유에서 작은 소자에게 행했던 사람들은 자기들이 했던 일을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자기들이 사랑을 베푼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접근부터 그걸 목적으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나는 이웃을 사랑하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이야!” 이게 바로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니겠습니까?
또 예수님은 너희는 자기가 할 일을 다 한 후에 “저는 무익한 종입니다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 또한 자기가 자기 의지로 무엇을 한 것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 아닐까요?
이웃을 사랑하려고 하는 생각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홍수 후에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창8:21)”고 하셨습니다.
밤에 찾아온 이웃에게 빵이 있으면 주면 되는 것인데, 자고 있는 이웃을 찾아가서 빵이 필요 없느냐? 하는 것이 기독교인입니다. 오히려 정작 필요할 때는 우리 아이가 자고 있다고 하는 것처럼 교회에 가야 한다, 기도하러 가야 한다고 하지요.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접근하는 길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내가 할 수 있는 한도안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들에게 굳이 복음을 전하지 않더라도, 굳이 예수님에 대해 언급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렇기에 소리없이 복음의 은혜의 파장이 퍼져 나가겠지요”. 라고 적으셨는데, 이렇게 결국엔 전도를 생각하는 것 자체도 포기 하셔야 할 겁니다. 이웃사랑은 목적이나 수단이 아니라 그냥 하는 것 아닌가요?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말입니다. 누가 숨을 쉬어야지 하면서 숨을 쉬는가요? 그냥 숨을 쉬는 것입니다. 이게 가장 자연스럽고, 오래 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