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코의 책 - 📖 2023~2024 신간 「가장 사적인 관계를 위한 다정한 철학책」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727769 📖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 인스타그램: chungco_phil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마세요 우리는 여기 나그네로 와있고 우리에 본 고향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기위해 태어났습니다. 죽은사람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영혼은 고통과 슬픔이없는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완벽한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대신 형벌을 받고 죽고 다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죄가 용서받았습니다. 그비밀이 성경에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이해가능한 쉬운말성경 요한복음부터 읽어보시길..세상이 주지못하는 평안을 줍니다. . 10분 20분걸립니다 하나님은 신은 본인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책을 읽기까지 사탄이 못읽게 합니다. 착한일한다고 천국에 가는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꼭 천국에서 만나서 고통과 슬픔없는 세상에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히 자살로 내몰린다는 말을 하죠. 상당수의 자살, 자유죽음은 사실상 내몰린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심각한 빈곤, 감당할 수 없는 채무, 불치의 질환 내지는 고통 등으로 수반되는 '우울감'이겠죠. 단지 불쌍하다 왜그랬을까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채무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해서 한번 정도의 기회를 더 부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설계할 수도 있을거고, 불치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이 사회가 노력을 하는게 정말 중요할거 같습니다. 자살을 수치화하고, 뭉뚱그려 해석하려는 사회적인 시선에 평소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좋은 컨텐츠 감사드립니다~
22 ‘자유죽음’ 이라는 추상적 개념, 표현도 결국 아메리가 만들어낸것에 불과하고 이역시 삶의 관점에서 만들어 낸것 결국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삶의 관점에서 모든 행동 사고 감정을 느끼고 살아감 지극히 개인의, 구체적 입장에서 보자면 자유죽음(자살)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므로 어떠한 가치판단도 할 필요도 없는것은 맞음. 그러나 그 선택을 한 개인도 결국 사회관계속에서 그러한 선택에 내몰린것
애 낳으면 죄짓는 거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meinlet5103 맞음. 행복일 수도 고통일 수 도 있는데 문제는 아이의 동의 없이 낳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거임. 내가 지나가는 여성의 가슴을 강제로 만지면 그 여성이 싫어할 확률이 높겠지만 좋아할 확률도 있음. 좋아할 확률이 있다고 그 강제적인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전혀 없이 아무런 죄없는 아이를 만들어 그 존재에게 수많은 고통과 생로병사라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억지로 지우게 만드는 출산이라는 행위가 과연 합당한 일인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출산이라는 행위는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살인 이상으로 악한 행위라고도 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user-zr6nk3g3w9z1 우선, 동의할 필요가 없어서 동의 않는게 아니고 동의 안한단 얘기에요 제 말씀은 님과 같이 삶에 부정적 또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2세를 만들어서 안되겠죠 그러나 자식을 낳아 그 아이가 좋은 인생을 살도록 가르치는 일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확신이 있는 부모는 자식을 낳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끔찍했던 2차대전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배제된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있는 것조차 얼마나 고통이었기에 아메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걸지 감히 상상이 안 되네요. 솔직히 상식적이나 심정적으로 확 와닿는 철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죽으면 "부모님들이 슬퍼할거야 친구들이 슬퍼할거야" 도 존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거고 죽는순간 모든 인간관계 연결고리 가족 우정 사랑들이 무효화하기때문에 상관없지 않나? 라고 생각해본적이 있네요 존재의 차원에서 무존재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니깐요.. 충코님 영상 볼때마다 마음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유튜브도 이슈 정치 가십 단순한 게임,예능 다 구독해지하고 자연,철학,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유튜브만 구독하고있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배 안굶고 물질적으로 풍부한데 정신은 피폐해진 지금 이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참 궁금합니다.
저는 우울했던 시절에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무상, 무아, 열반, 불생불멸을 상기하면서 이 세상은 꿈과 다를바 없는 가상의 세계이고, 괴로운 상황이 영원하지 않기에 언젠가 곧 끝나게 되니까 자살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되었는데.. 자살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간의 논리를 대입해서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것보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중립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것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무의미해보이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나가는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ㅎㅎ
자식은 부모의 성욕에 의한 유전적 부산물입니다. 자식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모가 이 고통스런 세상에 아이를 강제로 만들어 던진 것에 대해 미안해하여도 부족합니다. 이 세상에 낳아준것에 대해 고마워해야된다는 어떤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식입장에서 부모를 원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정말 많죠. 나쁘게 얘기하면 부모는 무책임한 살인자입니다. 왜냐? 자식에게 고통과 죽음을 강제로 양도했으니까요.
9:17 죽음 뒤를 구역질도 뭐도 없는 무 그 자체라고 말하는 그 관점조차도 삶,존재의 입장에서 보는 것 아닌가.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삶을 존재,유 라고 말하고 죽음을 비존재,무 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선택하는게 무를 선택한다고 말하는건 나름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잘못된듯. 정확히는 합리적으로 무를 선택한다기 보다는 현실이 끔찍한 나머지 미지의 상태로 몸을 던지는 판단을 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듯
삶의 다른 말은 인식이지. 우리는 하루에서 수도 없이 인식했다 못했다를 반복함. 즉 삶과 죽음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저 어떤 현상의 인식 단절일 뿐이지. 우리의 살면서 늘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데 실감할 수가 없지. 그런 연장선에서 자살해봤자 잠깐의 인식 단절 후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살게 된다.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함으로써 알 수 있는 허상. 자아라는 게 없다는 걸 이해하면 모든 게 설명이 됨.
어짜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다 각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아직 스스로 그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에 죽고싶은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언제가는 죽잖아요? 꼭 지금 죽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언제든 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그게 지금 당장일 필요도 없어요 같이 미뤄요 우리
근데..그냥 다 제쳐두고 그냥 죽을 용기가 없는 것이 크다 왜 살아야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너무 모르겠어서 고통인데 사라지고 싶지만 또 죽음이 너무 거대하고 사실 스스로 떠나는 것도 용기.. 아니면 어떤 신경약이나 다른 무엇에 취해 떠밀리듯 그리들 간 걸까.. 죽고싶다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그냥 내 생명이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벗어나고 싶은 것도 그리 읊조리게 되니까 고통스런 생각들로 가득 차다가도 한밤 중 지진으로 흔들림을 느낄 때 여지없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적도 있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 아니 살아갈 힘이 나에게 하나도 없을 때 사라지고 싶은
한창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운명처럼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인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네요. 처음에 읽을 땐 나도 자유죽음을 택하게 될까? 싶었는데 아직은 실천은 못 했고.. 다시 읽어봐야 어떤 느낌이었는지 다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죽음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알려준다는 말, 그러면서 나의 절대적 경험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최근엔 자살에 대한 생각을 덜 해서 안 읽었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충코님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또 한 권 생겨서 기쁩니다. 겸사겸사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통계학적 근거를 들어 기사화 하는 걸 축소하거나 '극단적 선택'으로 에둘러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표현이 자살률을 낮춘다는 실질적 증거를 찾을 수가 없고, 모든 진실은 숨길수록 오염이 될 뿐이며 근본적 해결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개해주신 읽어보며 저도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 오래 전에 한 번읽었는데 영상으로 다시 되씹으니 과연 읽었는지 싶네요 ㅋ. 기본적으로 숙고한 끝에 선택한 자살에 대하여 전혀 혐오감을 품고 있지 않지만 아메리의 주장과는 다르게 자살이라는 말을 '자유죽음'으로 washing 하는 데 찬성하지 않습니다. 자살은 삶의 조건과 하나된 지금 , 객관과 분리되지 않은 자신의 관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전체에 대한 부정을 드러낸 것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낱같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자살의 부정성을 '살아있을 때' 에 경험합니다. 파괴를 파괴 그대로 둔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sui-cide, '자기를 죽인다'라 그만큼 적절한 단어가 어디 있겠습니까?
어찌보면 모든 인간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다 살아가다보면 스스로를 해하는 자해(자신을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괴롭힘)와 살해(험난한 환경속에서 살면서 병리적 기전이 발동하고 심화됨)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이해 속에서 살아지게(사라지게)되어 있는 죽음 연기 중인 존재자인 것이죠 이와중에 '자살'이란 결국 이해를 끝내버린 형국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유, 즉 연기를 급히 마무리함으로서 '자유 죽음' 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사유 과정과 처한 사정상 이해를 끝내버릴 수밖에 없는 자유 죽음으로 죽음 연기를 마무리한다는 것(자살)은 결론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고갈로 인해 차마 더이상은 고단한 삶을 견뎌낼 힘 즉 사랑할 수 없게 됨을 감지하고 반응한 본능에 충실한 행위라고 봐주고 싶습니다 다만 인간들이 다 본능으로 살지 않고 본질적 삶을 추구하며 살기도 하기에 이해를 끝내버리기보단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이해까진 못하더라도 차라리 오해라도 하면서 시간을 벌고 여건이 달라지길 기다리는 사변적 내지는 사기적 사유라도 하며 죽음 연기에 더 치중하기도 하기에 다행인 면도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모습이 천차만별인 인간들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살건, 오해라도 살만하게 하든, 이제는 그만 이해 끝내버리든, 다 인간 군상이 내놓은 한편의 사연 많은 이야기이겠죠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현재 인류의 자원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지구가 2개 더 필요하다고 하죠 정치인들은 탈탄소를 외치고, 경제인들은 ESG를 외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구가 1/3로 줄면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지구와 인류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목적없이 맹목적으로 주변의 원소들을 끌어모아 생존과 번식을 반복하는 생명체라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보면 죽음은 엔트로피에 따른 자연스러운 원소 재배치 과정일 뿐입니다 만약 삶을 소중히하는 목적론적 도덕 논리를 존중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자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인 비난을 멈추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훗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랍비-r1p 만약 2050년까지 지금 인구의 1/2이 되어야만 지구의 환경 오염 회복력이 지속가능한 수준이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로 인해 계속 살고싶은 다른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여건에 도달하기 더 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명이 탄 뗏목이 가라앉고 있는데 3명이 내려야 나머지 7명이 살 수 있다면, 3명이 선뜻 내렸을 때 갈등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비슷한거죠.
삶과 죽음이라는 의미의 경계조차 희미한 느낌이.. 죽음이 아주 단순하고 감각적인 논리로 지나치게 혐오받고 천대 받고 억압받고 있는 시대인건 맞는 것 같다 느껴지긴 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과 여러 문화들이 죽음이라는 사건과 경험에 대해 시간을 들여 죽음과 관련된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것에 인색해지것 같구요.. 자유 죽음.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단어를 들으면 습관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있지 않을까 싶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된지도 모르는 채로.. 고통과 잔인함을 먼저 떠올리겠죠. 죽음에 대해 많은 이해를 쌓아낸 문화에선 자유 죽음이라는 말이 평온과 행복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죠..
제 생각은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 도구를 버리는 거라 생각합니다 . 왜냐면 의식 즉 영혼이라 불리는 그 생각 자체는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미래에는 내 의식 생각을 육체를 버리고 업로드 하여 로봇이나 다른 물체에 다운로드 하여 살수 있다고 예측 하지요. 그렇다면 단지 육체를 버리는 게 되겠지요. 그럼 그 의식은 육체를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 의식만이 뭉쳐서 지내는 곳이 있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그 의식이 뭉쳐서 사는 곳은 대신 의식의 레벨별로 그 레벨에 맞는 곳에 머물거라고 생각이 되며, 본인이 원하면 우주를 돌아다니든, 지구에서 돌아 다니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거 같아요. 지구에서 돌아 다닌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령? 귀신? 일 수도 있겠네요.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살은 비극적인 것이군요. 왜냐하면 결코 알 수 없는 죽음이라는 차원과 그 죽음이라는 표현의 '무'의 입장에서 죽음의 차원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결국 존재하며 삶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과 비난으로 인해 택하는 자살이란 진정한 자유 죽음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없겠죠. 그것은 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를 깨닫고, 그럼에도 내가 저 무의 차원으로 뛰어드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가 3차원을 넘어 고차원을 볼 수 없듯이, 하지만 그것이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아메리도 자살과 죽음을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해석으로서 제시한 것뿐이지 그 또한 죽음을 알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자살은 신이 인간에게 준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누군가 자살을 한다면 그 인생은 너무나 안타까운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최소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 만큼은 사용할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충코 이충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 소재의 모 기독교 신학교에서 아메리의 사상과 신학 개념을 연결짓는 연구로 신학 석사 학위 논문을 쓰는 사람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 하나 여쭙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작한 본 영상의 내용이 선생님의 저서인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에도 기술되어 있나요?? 혹, 후에 논문 레퍼런스로 참조할까 하여 이렇게 여쭙습니다. 이 영상을 비롯해 다른 영상들까지, 선생님의 모든 유익한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가능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자유죽음이라? 처음엔 그게 자유가 될수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그게 유행하게 되고 사회학적 흐름이 되면 더이상 자유가 될수 있을까? 늙으면 스스로 죽어야지 하는 흐름이 마련되면 더이상 자유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몰려 죽음을 강요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음. 어리석게도 공동체나 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만, 그리고 개인만 생각한 무책임한 주장임.
극단적인 생각이겠지만 죽고 싶다면 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다가올 종말을 조금 앞당기는 것뿐인데, 종말을 스스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기 선택의 최대 실현으로도 보이네요. 어떻게 보면 종말을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 부럽기도 합니다. 이것도 삶의 논리겠지만요.
자살에 대하여 자주 고찰해 본 저로서는 참 흥미로운 내용입니다(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논리를 부정한다는 부분이 참 재미있네요. 전 개인의 권리측면에서 많이 생각해 보는데, 스스로의 생사여탈권을 자신이 갖는게 문제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자유죽음으로 가는것은(사회제도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개인으로만 보았을때) 부정적이고 막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미 안락사에 대한 (소극적인 자유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적극적인 안락사(몸이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 원해서 이행하는 자유죽음)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않는선에서 그 무엇보다 존중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죽음을 선택할 자유 역시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야해요. 다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은사람에게 폐를 끼치지않는선에서 행해져야해요. 진 빚이 있다면 그걸 다 갚고나서 죽음을 선택하던가 더 살던가 해야지. 그렇지않은상태로 가면 도피밖에 되지않는다라는 생각입니다.
@@사수탐-s8x 전적으로 제 의견이고 가치관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개인 혼자만의 이유가 아니라 주변, 사회에서 기인하기때문에 적어도 자살하는 인간은 사회와 떨어져있지 않죠 주변환경이나 여러가지 요소들이 그 사람을 만드는데 상당한 지분이 있으므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호의를 제공할땐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거죠 지분이 생긴겁니다 다만 무언가 강요하는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자살로 내몬것도 그 지분들이니까요
인생은 고통이다. 태어나지 않음이 진정한 축복이다. abgrund 를 향해 abspring 심연을 향해 뛰어내리자. 이 길이 유일한 고통의 탈출구이자 안식의 마침표 이다. 모든 인간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타고난 영역 위에 인간은 빛과 어둠의 비율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댓글 쓰고 있는 사람들은 씼을 수 없는 각자의 고통을 뚫고 어두운 면을 키우고 있는게 아닐지? 의식의 재료로 자유와 죽음을 연결시키고 있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올라간다. Améry가 스스로 죽음의 문을 열고 abspring 했듯이.
죽기 전에 죽어라, 라는 말이 있죠. 무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아의 죽음, 이라는 것도 가능합니다. 죽기 전에 당겨서 죽는 것. 불행, 고통, 괴로움 이런 것들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요? 그게 싫어 목숨을 끊는 것은 유아적인 나약함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충코님의 문제의식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롭지가 않네요. 이건 다른 영상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거에요.
알콜중독 아버지가 맨날 죽고싶다길래 하루는 내가 죽으라고했다 죽을용기도 없으면서 술만먹고 옆에 사람 좀 그만 괴롭히라고 당신때문에 내가 죽을판이라고 의식이 깨인 순간부터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나? 싶다 내 의지없이 태어났는데 친부모도 엉망 양부모도엉망 심지어 남편도 그랬다 ㅡ40이후 잘못했다고 돌아오지만 뭐 그러려니한다 더도말고 딱 평범한삶이 최고의 선이라고 본다 젊은이들이 결혼ㆍ출산을 신중히 생각해서 비혼ㆍ저출산된게 굉장히 높은 고차원의 사회가 된것같다 태어날자손들을 생각해서 일순간의 감정으로 연애ㆍ결혼ㆍ출산은 신중합시다
과연 자유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사실상 실제로 존재하는 건 좋게 봐도 자유죽음을 빙자한 자살뿐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습니다. 자유죽음을 본연의 의미로 실천한 사람을 세간으로 볼 땐 그저 정신병 있던 망자로 여겨질 것이고, 그 외엔 그저 자살한 사람들이죠. 자유죽음이라는 개념은 워낙 심연 같은 것이라 아직 살아있는 제 입장에선 감히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 자체로도 꽤 흥미로운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약간의 조바심을 표현하자면 이로인해 스스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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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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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 「어떤 생각들은 나의 세계가 된다」
www.yes24.com/Product/Goods/119577626
** 매주 수요일 저녁 8시 30분~10시 30분 라이브 방송 진행합니다. (방송 진행 못하게 되면 커뮤니티에 사전 공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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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치고 졸려서 자고 싶은데 또 깨어나기 싫었을 뿐이다.
잔다는것도 잠을 행함으로써 깨고나서 편안함을 느끼는 즉 삶의 논리를 기반으로 하는 개념아닐까요?
@@tkdkkkk 맞습니다. 영상 내용과 제 경험에 비추어 자살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실행을 앞두기 직전까지 가장 솔직히 무슨 심정으로 있었을지를 표현해 보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죽음을 두려워하지마세요 우리는 여기 나그네로 와있고 우리에 본 고향은 천국입니다.
우리가 태어난 이유는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을 상속받기위해 태어났습니다.
죽은사람은 행위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믿는 영혼은 고통과 슬픔이없는 천국에 갑니다
예수님은 죄없는 완벽한삶을 사시고 십자가에서 우리대신 형벌을 받고 죽고 다이루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십니다. 우리죄가 용서받았습니다. 그비밀이 성경에 있습니다. 초등학생도 이해가능한 쉬운말성경 요한복음부터 읽어보시길..세상이 주지못하는 평안을 줍니다. . 10분 20분걸립니다 하나님은 신은 본인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성경책을 읽기까지 사탄이 못읽게 합니다. 착한일한다고 천국에 가는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 꼭 천국에서 만나서 고통과 슬픔없는 세상에서 만나기를 소망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흔히 자살로 내몰린다는 말을 하죠.
상당수의 자살, 자유죽음은 사실상 내몰린 선택일 수 있습니다.
심각한 빈곤, 감당할 수 없는 채무, 불치의 질환 내지는 고통 등으로 수반되는 '우울감'이겠죠.
단지 불쌍하다 왜그랬을까 정도로 끝날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빈곤과 채무는 어떻게든 해결책을 제시해서 한번 정도의 기회를 더 부여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더 촘촘하게 설계할 수도 있을거고, 불치의 질환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조금이라도 그 고통을 덜어줄 수 있도록 이 사회가 노력을 하는게 정말 중요할거 같습니다.
자살을 수치화하고, 뭉뚱그려 해석하려는 사회적인 시선에 평소 거부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좋은 컨텐츠 감사드립니다~
22 ‘자유죽음’ 이라는 추상적 개념, 표현도 결국 아메리가 만들어낸것에 불과하고 이역시 삶의 관점에서 만들어 낸것
결국 살아있는 인간은 모두 삶의 관점에서 모든 행동 사고 감정을 느끼고 살아감
지극히 개인의, 구체적 입장에서 보자면 자유죽음(자살)은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이므로 어떠한 가치판단도 할 필요도 없는것은 맞음. 그러나 그 선택을 한 개인도 결국 사회관계속에서 그러한 선택에 내몰린것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모든 선택은 내몰린 선택이겠죠
애 낳으면 죄짓는 거죠.
낳지 않는 것만 해도 부작위로 선한 일을 하는 겁니다.
어차피 시간 지나면 모든 생명은 늙어 죽는데 굳이 서로 잡아 먹고 먹히는 살육의 현장으로 만들어진 이 세상이 잔혹하지 않나요?
낳아지는 아이는 피로 점철된 경쟁의 땅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던져지게 됩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부모의 결정으로 생로병사를 양도받게 되는 꼴입니다.
이 때문에 죽을 사람을 낳는 선택을 행한 부모는 살인자나 마찬가지라는 철학적 비유도 존재하죠.
생로병사의 굴레 속 권태와 욕구가 끊임없이 찾아오는 삶, 그 자체가 원래 고통입니다. 태어났기 때문에 불행하고 고통스런 것입니다.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괴롭고, 가지게 되더라도 그것을 잃게 될까 두려워집니다. 생활 수준이 올라가면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자그마한 고통도 익숙해 지기는 쉽지 않지요. 인간으로 태어 났기에 겪어야 할 숙명입니다.
다만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다음 세대를 태어나게 하여 고통을 물려줄 것인가, 내 세대에서 고통을 끊을 것인가에 대한 판단입니다
삶을 이어갈수록 욕구와 권태를 오가고 고통에는 결코 익숙해지지 못한다는건 생물학적 사실로써 동의하는데 삶 자체의 net 행복이 -, 즉 삶 자체가 불행한지의 여부는 가치 판단의 영역인듯
삶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 사람은 자연스레 반출생주의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Onlyson108 저도 그전까진 아무생각 없다가 한번 씨게 데이니 정신번쩍들고 애낳는건 비윤리적이라는 생각이 그제서야 들더라고요.
나름 생각이란걸 하며 산다고 생각했었는데 유전자가 만든 독단의 잠이 무섭다라는걸 그때 딱 느낌..
@@meinlet5103 맞음. 행복일 수도 고통일 수 도 있는데 문제는 아이의 동의 없이 낳는다는 것 자체가 문제라는거임. 내가 지나가는 여성의 가슴을 강제로 만지면 그 여성이 싫어할 확률이 높겠지만 좋아할 확률도 있음. 좋아할 확률이 있다고 그 강제적인 행위가 정당화되는 건 아님.
의사를 물어보는 것은 전혀 없이 아무런 죄없는 아이를 만들어 그 존재에게 수많은 고통과 생로병사라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억지로 지우게 만드는 출산이라는 행위가
과연 합당한 일인지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출산이라는 행위는 고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살인 이상으로 악한 행위라고도 볼 수 있을 듯 싶습니다.
이미 태어난 사람은 삶의 유익을 찾고 즐기는 것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태도를 지향합니다.
다만 자식이란 타인의 생명을 이 세상에 내놓는 결정은 보수적이여야 한다고 봐요.
미래 세대는 철저히 현재 세대의 욕구 때문에 태어납니다. 아이들 또한 나처럼 행복할 것이기에 그 행복을 뺏을 권리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미래 세대를 위해 낳는다는 것은 가증스러운 위선입니다.
저는 업무 특성 상 50구의 시체와 죽어감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생로병사라는 수순 자체가 고통이고 시일의 문제일 뿐 힘든 상황은 외면하고 싶어도 찾아온다는 것을
언젠가 막대한 고통을 지불해야하는 도박을 당장 내가 행복하다는 이유 하나로 시작하시겠습니까?
심지어 도박의 리스크는 순전히 자식이 감당하는 부조리한 구조입니다.
비가역적인 인생의 특성상 확실한 안락이 보장된 미래는 없고, 그 책임지지 못 할 타인의 생명(자식)을 두고서 행해지는 도박의 특성이 있는게 출산이라면 그것은 덮어두고 잘했다고 말할수 있는 문제는 아닐겁니다.
오히려 혹독하게 '출생이 태어나는 그 자녀를 위한 행위'가 아님을 상기시키며 강한 책임감을 요구하는게 이성을 가진 도덕적 존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요?
👍🏻👍🏻👍🏻👍🏻👍🏻
동의하지 않습니다
인생이 살만하고 행복하고 가치있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은 새로운 생명을 만든는 일에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들도 나와 같이 잘 살테니까요
@@user-zr6nk3g3w9z1 우선, 동의할 필요가 없어서 동의 않는게 아니고 동의 안한단 얘기에요
제 말씀은 님과 같이 삶에 부정적 또는 확신이 없는 사람은 2세를 만들어서 안되겠죠
그러나 자식을 낳아 그 아이가 좋은 인생을 살도록 가르치는 일은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 확신이 있는 부모는 자식을 낳아도 된다는 뜻입니다
@@user-zr6nk3g3w9z1 아 네, 딱 그 말만 보면 그럴 수 있네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 라는 책을 참조하면 좋겠군요
끔찍했던 2차대전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배제된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있는 것조차 얼마나 고통이었기에 아메리는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깊은 고민을 하게 된 걸지 감히 상상이 안 되네요. 솔직히 상식적이나 심정적으로 확 와닿는 철학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죽으면 "부모님들이 슬퍼할거야 친구들이 슬퍼할거야" 도 존재의 시각에서 바라보는거고 죽는순간 모든 인간관계 연결고리 가족 우정 사랑들이 무효화하기때문에 상관없지 않나? 라고 생각해본적이 있네요 존재의 차원에서 무존재는 표현할 수 없는 영역이니깐요.. 충코님 영상 볼때마다 마음이 트이는 기분입니다. 유튜브도 이슈 정치 가십 단순한 게임,예능 다 구독해지하고 자연,철학,다양한 시각에서 생각해보는 유튜브만 구독하고있네요 영상 감사합니다... 배 안굶고 물질적으로 풍부한데 정신은 피폐해진 지금 이 시대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지 참 궁금합니다.
죽은 사람과 살아 남아있는 사람,
역지사지
저도 그런생각 많이 했었음 ㅋㅋ
죽으면 어차피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없는데 누가 슬퍼하는 고통스러워하든 어차피 죽으면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못느낄텐데 알빠노?
이런식으로요 ㅋㅋ
나의 세계가 파괴되어 나 자체가 사라져 다른 슬픔이 나의 파괴된 세계에 아무 상관 없다해도 슬픔은 다른 세계 어딘가에 남아있겠죠
그 슬픔이 다른세계에 남아있다는것도 존재하에서만 가정 가능하니 무존재에서 그런거조차 무의미하죠... 딱히 그러한 선택 옹호는 아닙니다.@@누들로드
공감 심하게 되는 댓글
아파서 무로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가족들이 저만큼 아플걸 생각하며 단념합니다.
저는 우울했던 시절에 불교 철학을 공부하고 무상, 무아, 열반, 불생불멸을 상기하면서 이 세상은 꿈과 다를바 없는 가상의 세계이고, 괴로운 상황이 영원하지 않기에 언젠가 곧 끝나게 되니까 자살에 대해 집착하지 않게 되었는데.. 자살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간의 논리를 대입해서 틀에 박힌 사고를 하는것보다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중립적인 느낌을 들게 하는것도 괜찮다고 생각이 들어요. 개인적으로 카뮈의 시지프 신화에서 무의미해보이는 일상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해나가는게 중요하다고 느낍니다 ㅎㅎ
👍🏻
👍️
자식은 부모의 성욕에 의한 유전적 부산물입니다.
자식이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부모가 이
고통스런 세상에 아이를 강제로 만들어 던진 것에
대해 미안해하여도 부족합니다.
이 세상에 낳아준것에 대해 고마워해야된다는
어떤 객관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오히려
자식입장에서 부모를 원망할 수 있는 객관적 증거는
정말 많죠. 나쁘게 얘기하면 부모는 무책임한
살인자입니다. 왜냐? 자식에게 고통과 죽음을 강제로
양도했으니까요.
👌
9:17 죽음 뒤를 구역질도 뭐도 없는 무 그 자체라고 말하는 그 관점조차도 삶,존재의 입장에서 보는 것 아닌가. 인간은 죽음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데 삶을 존재,유 라고 말하고 죽음을 비존재,무 라고 말하면서 죽음을 선택하는게 무를 선택한다고 말하는건 나름의 논리가 아니라 논리적으로 잘못된듯. 정확히는 합리적으로 무를 선택한다기 보다는 현실이 끔찍한 나머지 미지의 상태로 몸을 던지는 판단을 한다고 말하는 게 맞을듯
삶의 다른 말은 인식이지.
우리는 하루에서 수도 없이 인식했다 못했다를 반복함.
즉 삶과 죽음은 하루에도 수도 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
죽음은 끝이 아니라 그저 어떤 현상의 인식 단절일 뿐이지.
우리의 살면서 늘 죽음을 체험하고 있는데 실감할 수가 없지.
그런 연장선에서 자살해봤자 잠깐의 인식 단절 후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살게 된다.
존재하지 않음은 존재함으로써 알 수 있는 허상.
자아라는 게 없다는 걸 이해하면 모든 게 설명이 됨.
캬....
요즘 뉴스를 뷸때마다 삶을 긍정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평범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묻지마 칼부림이나 악마들의 괴롭힘으로 살해당하고 , 자살당하고
이 세상에 선량한 사람은 거의없음.. 대부분 자신의 맹목적인 욕구충족의 대가로 다른 존재들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괴롭히면서 살아감.. 삶은 그 자체로 미친 고문현장임
피아노를 즐기는 사람으로써 영상 도입부의 녹턴 15번 선곡이 너무나 마음에 듭니다
저는 싫어요. 싸구려처럼 아무곳에서나 싸게 쓸수 있는 쇼팽의 싸구려 맬로디가 자주 듣기 짜증나네요.
어짜피 살아야 하는 이유는 다 각자가 만들어 나가는 것인데 아직 스스로 그 이유를 못 찾았기 때문에 죽고싶은 것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모두가 언제가는 죽잖아요? 꼭 지금 죽을 필요는 없어요 당신이 스스로 선택해서 언제든 죽을 수 있어요 그러니까 역설적으로 그게 지금 당장일 필요도 없어요 같이 미뤄요 우리
근데..그냥 다 제쳐두고
그냥 죽을 용기가 없는 것이 크다
왜 살아야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서
너무 모르겠어서 고통인데
사라지고 싶지만
또 죽음이 너무 거대하고
사실 스스로 떠나는 것도 용기..
아니면 어떤 신경약이나 다른 무엇에
취해 떠밀리듯 그리들 간 걸까..
죽고싶다는 여러 의미가 있었다
그냥 내 생명이 끝나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나에게 벗어나고 싶은 것도
그리 읊조리게 되니까
고통스런 생각들로 가득 차다가도
한밤 중 지진으로 흔들림을 느낄 때
여지없이
죽음의 공포를 경험한 적도 있으니까
살아야 할 이유 아니
살아갈 힘이 나에게 하나도 없을 때
사라지고 싶은
한창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운명처럼 서점에서 발견했던 책인데 이렇게 보게 되니 반갑네요. 처음에 읽을 땐 나도 자유죽음을 택하게 될까? 싶었는데 아직은 실천은 못 했고.. 다시 읽어봐야 어떤 느낌이었는지 다시 느껴볼 수 있을 것 같긴 합니다만, 죽음에 대한 타인의 시선을 알려준다는 말, 그러면서 나의 절대적 경험을 다르게 생각해볼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합니다. 최근엔 자살에 대한 생각을 덜 해서 안 읽었었는데 지금 시점에서 다시 읽으면 어떨지 궁금하네요. 항상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평생을 죽음을 삶의 도구로 여기며 살았던 사람으로서 흥미로운 영상이네요. 이게 철학의 맛이지..
의미가 없다 버티고 몰입 나 자체를 없애고 살아갈뿐이다 . 고통 아픔 후회로 나를 밀어버릴수록 나를 찾게되고 내가 없어야 나는 산다.
우울증 허리디스크 통풍 당뇨 이런병때문에 가족에 짐 이댈것같아서 하루 하루고통 입니다 삶이 너무나도 힘듬니다 내하나 살아지면 가족들이 남은 돈으로 살아가야댄다 생각합니다
그러시군요.
가족에 짐이 될 까 걱정하는 마음이 이해됩니다.
그러나 가족이란 서로 짐을 져 주고 짐을 나누기에 힘든 만큼 의미있는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감사하며 사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선영-x9t 이제 자신이 없습니다
삶에 대해 생각하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에 대해 자유죽음에 대해 다루어주셔서 유익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십시오 ^~^
죽지않고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도 살아있어서 하는것. 살아야할 이유를 묻는 것은 이성의 영역으로만 볼 수 없을것 같습니다.
충코님 덕분에 읽어보고 싶은 책이
또 한 권 생겨서 기쁩니다. 겸사겸사
관련해서 드리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유명인들의 자살이
일반인들에게 영향을 준다는
통계학적 근거를 들어
기사화 하는 걸 축소하거나
'극단적 선택'으로
에둘러 표현을 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표현이
자살률을 낮춘다는 실질적 증거를
찾을 수가 없고, 모든 진실은 숨길수록 오염이 될 뿐이며 근본적 해결 또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소개해주신 읽어보며
저도 생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삶과 죽음을 완전히 다른 공리계로 바라보는 시각이 흥미롭네요
관심 있던 주제라 영상 보기 전부터 기대되네요!
자유죽음 이라…. 추상적인 관념적인 언어의 정의가 또 그것에 따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자유죽음도 어렵더군요 지치고 힘들어서 눈 뜨고 싶진 않은데 무의 세계로 간다는것도 얼마나 무서운지
반출생주의랑 닿아있는 부분이 있는 거 같네요. 혹시 충코님이라면 데이비드 베너타의 논리를 어떤 식으로 비판하실지 궁금합니다.
우와,,,팬됐어요,,,똑똑하시네
항상 좋은 내용에 감사드립니다.^^
이 책 오래 전에 한 번읽었는데 영상으로 다시 되씹으니 과연 읽었는지 싶네요 ㅋ.
기본적으로 숙고한 끝에 선택한 자살에 대하여 전혀 혐오감을 품고 있지 않지만
아메리의 주장과는 다르게 자살이라는 말을 '자유죽음'으로 washing 하는 데 찬성하지 않습니다. 자살은 삶의 조건과 하나된 지금 , 객관과 분리되지 않은 자신의 관점에서
돌이킬 수 없는 가장 격렬한 방식으로 전체에 대한 부정을 드러낸 것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낱같은 목숨이 끊어지지 않은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자살의 부정성을 '살아있을 때' 에 경험합니다.
파괴를 파괴 그대로 둔탁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sui-cide, '자기를 죽인다'라 그만큼 적절한 단어가 어디 있겠습니까?
오늘 바로 구매하고 1장까지 읽어봤습니다 다 읽고 영상을 다시 봐야겠네요
자살이 사회(생물학적)적으로 이득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게되네요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지 않으면 초식동물이 오히려 멸종하듯이..
동물의 폐사랑 차이가 뭔지도 꿍금하네요
생각 육체의 관계부터 고민해보자
생각이 육체를 만든것이 아니잖아
육체가 원하는 만큼만 해주면서 살다가면 되지 생각 지혼자 미쳐 날뛰다가 육체까지 죽여버리는 생각
생각이란놈을 스스로 알고나서 자유 평등 권리를 이야기 하자
자살ㅡ 의지로 되는거 아님
자살도 인연이 되야 이루어짐
어찌보면 모든 인간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다 살아가다보면 스스로를 해하는 자해(자신을 심적으로 육체적으로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괴롭힘)와 살해(험난한 환경속에서 살면서 병리적 기전이 발동하고 심화됨)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은 이해 속에서 살아지게(사라지게)되어 있는 죽음 연기 중인 존재자인 것이죠
이와중에 '자살'이란 결국 이해를 끝내버린 형국으로 사유할 수 있는 자유, 즉 연기를 급히 마무리함으로서 '자유 죽음' 에 이르게 되는 겁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사유 과정과 처한 사정상 이해를 끝내버릴 수밖에 없는 자유 죽음으로 죽음 연기를 마무리한다는 것(자살)은 결론적으로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고갈로 인해 차마 더이상은 고단한 삶을 견뎌낼 힘 즉 사랑할 수 없게 됨을 감지하고 반응한 본능에 충실한 행위라고 봐주고 싶습니다
다만 인간들이 다 본능으로 살지 않고 본질적 삶을 추구하며 살기도 하기에 이해를 끝내버리기보단 현재 자신의 처지를 이해까진 못하더라도 차라리 오해라도 하면서 시간을 벌고 여건이 달라지길 기다리는 사변적 내지는 사기적 사유라도 하며 죽음 연기에 더 치중하기도 하기에 다행인 면도 있습니다
이렇게 삶의 모습이 천차만별인 인간들이기에, 이해할 수 있는 능력으로 살건, 오해라도 살만하게 하든, 이제는 그만 이해 끝내버리든, 다 인간 군상이 내놓은 한편의 사연 많은 이야기이겠죠
평소에 별로 생각해보지않는 주제인데, 굉장히 신선한 시각이네여😮
인구가 급속히 증가하면서 현재 인류의 자원소비량을 감당하려면 지구가 2개 더 필요하다고 하죠
정치인들은 탈탄소를 외치고, 경제인들은 ESG를 외치지만,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인구가 1/3로 줄면 지속가능한 수준에서 지구와 인류가 공존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주어진 목적없이 맹목적으로 주변의 원소들을 끌어모아 생존과 번식을 반복하는 생명체라는 유물론적 관점으로 보면 죽음은 엔트로피에 따른 자연스러운 원소 재배치 과정일 뿐입니다
만약 삶을 소중히하는 목적론적 도덕 논리를 존중하고 싶다면, 역설적으로 자유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도덕적인 비난을 멈추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훗날 평가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어째서 목적론적 도덕논리와 개인의 자살이 궤를 같이 하는건가요
@@랍비-r1p 만약 2050년까지 지금 인구의 1/2이 되어야만 지구의 환경 오염 회복력이 지속가능한 수준이라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로 인해 계속 살고싶은 다른 사람들이 지속가능한 환경에서 살 수 있는 여건에 도달하기 더 쉬워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명이 탄 뗏목이 가라앉고 있는데 3명이 내려야 나머지 7명이 살 수 있다면, 3명이 선뜻 내렸을 때 갈등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과 비슷한거죠.
삶과 죽음이라는 의미의 경계조차 희미한 느낌이.. 죽음이 아주 단순하고 감각적인 논리로 지나치게 혐오받고 천대 받고 억압받고 있는 시대인건 맞는 것 같다 느껴지긴 했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과 여러 문화들이 죽음이라는 사건과 경험에 대해 시간을 들여 죽음과 관련된 생각의 지도를 만들어 가는 것에 인색해지것 같구요.. 자유 죽음. 아마 많은 분들이 이 단어를 들으면 습관적으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되어있지 않을까 싶네요. 왜 그렇게 생각하게 된지도 모르는 채로.. 고통과 잔인함을 먼저 떠올리겠죠. 죽음에 대해 많은 이해를 쌓아낸 문화에선 자유 죽음이라는 말이 평온과 행복을 의미할 지도 모르겠죠..
제 생각은 죽음은 단지 생물학적 도구를 버리는 거라 생각합니다 . 왜냐면 의식 즉 영혼이라 불리는 그 생각 자체는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미래에는 내 의식 생각을 육체를 버리고 업로드 하여 로봇이나 다른 물체에 다운로드 하여 살수 있다고 예측 하지요. 그렇다면 단지 육체를 버리는 게 되겠지요. 그럼 그 의식은 육체를 버리고 어디로 가느냐? 의식만이 뭉쳐서 지내는 곳이 있지 않을가 생각합니다. 그 의식이 뭉쳐서 사는 곳은 대신 의식의 레벨별로 그 레벨에 맞는 곳에 머물거라고 생각이 되며, 본인이 원하면 우주를 돌아다니든, 지구에서 돌아 다니든 자유롭게 할 수 있는거 같아요. 지구에서 돌아 다닌다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유령? 귀신? 일 수도 있겠네요.
10분 경부터 나오는 브금 제목을 좀 알 수 있을까요? ㅜ
그래도 즉자적인 순간은 있어야 하겠죠? 자기연민이 아니라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지켜주는 시간이요 그만 고치고 헤쳐나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쉬는 시간
영상 잘 보고 있습니다. 책을 한번 자세히 읽어 보고 싶네요.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시몬 베유의 도 다뤄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단어가 갖는 의미와 사회적 맥락으로 인해 자살에 대해 완결적 가치판단을 내리게 돼 개별사건을 바라보는 시야가 차단된다는 대목이 인상깊었습니다.. 굳이 자살뿐이 아니라 여러 사회현상에도 적용될 수 있는 이야기 같아요
삶의 가치도 죽음의 가치도 없다.
충코코!!1등!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의 자살은 비극적인 것이군요. 왜냐하면 결코 알 수 없는 죽음이라는 차원과 그 죽음이라는 표현의 '무'의 입장에서 죽음의 차원으로 들어가려는 시도가 아니기 때문이니까요.
우리는 결국 존재하며 삶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실의 고통과 비난으로 인해 택하는 자살이란 진정한 자유 죽음을 실현하는 것이라 할 수 없겠죠. 그것은 영상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무를 깨닫고, 그럼에도 내가 저 무의 차원으로 뛰어드는 것일 테니까요. 우리가 3차원을 넘어 고차원을 볼 수 없듯이, 하지만 그것이 있다고 이론적으로는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아메리도 자살과 죽음을 우리가 평범하게 알고 있는 것을 넘어 새로운 해석으로서 제시한 것뿐이지 그 또한 죽음을 알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까요.
인간은 항상 고통받는 존재이다
항상 문득 생각나고 자주 생각하는 주제인데 책도 사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급진적인 주장을 접하는 것이 자유죽음으로 향하는 길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에서 큰 공감을 했습니다 재밌는 영상 감사합니다
충코님! 영상 볼때마다 항상 느꼈던건데 영상에 쓰시는 클래식 음악들이 하나같이 다 너무 좋은데 혹시 앞으로 더보기란에 제목 좀 적어주실 수 있을까요? 플리 만들어서 계속 듣고 싶어요..!🥺
네 알겠습니다
자살은 단순히 극심한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자살은 신이 인간에게 준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이다. 누군가 자살을 한다면 그 인생은 너무나 안타까운 인생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은 최소한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자살이라는 최후의 수단 만큼은 사용할 자유가 있었다는 것이 아주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대응방식에서 회피성향이 있으면 공격성향도 있다 보니까 충코님 입장에서 좀 껄끄럽더라도 한 번 집고 넘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네여 그런 사람들한테의 대처가 마냥 이렇게 잔잔하진 않을거예여
출산은 죄악
마지막 명화들 작품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까요? (커피 마시는 여인이요.) ❤
매일 내게 하는 질문
유전자가 만들어 놓은 매트릭스, 그것은 거역할 수 없어..
인상적인 댓글
유전자가 지도하는 질서, 그것은 거역할 수 없어..
예아
충코 이충녕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서울 소재의 모 기독교 신학교에서 아메리의 사상과 신학 개념을 연결짓는 연구로 신학 석사 학위 논문을 쓰는 사람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 하나 여쭙습니다. 선생님께서 제작한 본 영상의 내용이 선생님의 저서인 "철학자들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할까"에도 기술되어 있나요?? 혹, 후에 논문 레퍼런스로 참조할까 하여 이렇게 여쭙습니다. 이 영상을 비롯해 다른 영상들까지, 선생님의 모든 유익한 가르침에 감사드리며, 가능한 평안하시길 바랍니다...!
제 책에는 아메리에 대한 내용이 없습니다.
만약 논문에 쓰시고 싶다면 그냥 내용을 고찰하신 후 자신의 생각대로 풀어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문제 삼을 일은 없을 거고, 아마 그대로 말을 되풀이하는 게 아니라면 학술적으로도 크게 문제될 건 없지 않을까 싶습니다.
@@chungco_phil 답변 감사합니다! 만약 영상 내용을 인용하게 될 경우 본 영상의 인터넷 주소로 출처 표기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유죽음이라? 처음엔 그게 자유가 될수 있을지 모르지. 그런데 그게 유행하게 되고 사회학적 흐름이 되면 더이상 자유가 될수 있을까? 늙으면 스스로 죽어야지 하는 흐름이 마련되면 더이상 자유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몰려 죽음을 강요하는 세상이 될 수 있음. 어리석게도 공동체나 사회를 고려하지 않고 지금만, 그리고 개인만 생각한 무책임한 주장임.
생물학적 본능 희망 감동 나름의 의미등이 합해져 살아 가는거지만 일순 모든게 부질 없는 순간이 오거나 형용할 수 없는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모든걸 지배하는 시간들이 지속 된다면 자유죽음도 크게 나쁘지는 않은듯 .....
극단적인 생각이겠지만 죽고 싶다면 죽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다가올 종말을 조금 앞당기는 것뿐인데, 종말을 스스로 일으킨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기 선택의 최대 실현으로도 보이네요. 어떻게 보면 종말을 피할 수 없는 인간에게 있어서 부럽기도 합니다. 이것도 삶의 논리겠지만요.
선택의 자유는 누리는 셈이 될 지 모르지만 그럴 필요가 있을까요?
자유에 대한 책임이 없다는 확신이 있나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자살에 대하여 자주 고찰해 본 저로서는 참 흥미로운 내용입니다(자살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논리를 부정한다는 부분이 참 재미있네요. 전 개인의 권리측면에서 많이 생각해 보는데, 스스로의 생사여탈권을 자신이 갖는게 문제는 없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자유죽음으로 가는것은(사회제도적인 부분을 걷어내고 개인으로만 보았을때) 부정적이고 막아야만 하는 것일까요? 이미 안락사에 대한 (소극적인 자유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논의가 많이 생기고 있지만 언젠가는 적극적인 안락사(몸이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도 스스로 원해서 이행하는 자유죽음)에 대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울증이 와서 알게 된 건데 철학같은 건 의미 없다. 병원에 가자. 어차피 중증우을증은 평생 약 먹거나 죽는 것 이외에는 답이 없더라
개인의 자유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않는선에서 그 무엇보다 존중되어야한다고 봅니다. 죽음을 선택할 자유 역시 그 무엇보다 우선하여야해요. 다만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남은사람에게 폐를 끼치지않는선에서 행해져야해요. 진 빚이 있다면 그걸 다 갚고나서 죽음을 선택하던가 더 살던가 해야지. 그렇지않은상태로 가면 도피밖에 되지않는다라는 생각입니다.
영상의 내용에 의하면 그것도 살고 있는 자의 논리임.
목숨은 개인이 소유하고있는게 아닙니다.
인간의 속성을 이해한다면 죽음이라는것이 나 혼자의 죽음인지 타인에게서 나를 죽이는것인지 알수있을것입니다
결국 개인은 목숨을 쥐고있을뿐 실상은 소유하지 못했다는걸요
타인에게서 나를 죽이는것이 내 자유가 아니라면, 자살을 선택할 자유는 없는것인가요? 정말 너무 고통이 극심해서 자살을 선택하는 그런 사람들은 자살할 자유가 없는건가요?
@@사수탐-s8x 할순 있죠 점유하고 있으니까요 대신 관계되거나 기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살한 사람을 죽인게 된거죠
@@사수탐-s8x 전적으로 제 의견이고 가치관입니다 생각해보면 자살을 선택하는 이유가 개인 혼자만의 이유가 아니라 주변, 사회에서 기인하기때문에 적어도 자살하는 인간은 사회와 떨어져있지 않죠 주변환경이나 여러가지 요소들이 그 사람을 만드는데 상당한 지분이 있으므로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순수한 호의를 제공할땐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거죠 지분이 생긴겁니다 다만 무언가 강요하는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을 자살로 내몬것도 그 지분들이니까요
영상 잘 보겠습니다 ㅎㅎ
인생은 고통이다.
태어나지 않음이
진정한 축복이다.
abgrund 를 향해 abspring
심연을 향해 뛰어내리자.
이 길이 유일한 고통의 탈출구이자
안식의 마침표 이다.
모든 인간은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타고난 영역 위에 인간은
빛과 어둠의 비율을 스스로 선택하며
살아간다.
여기에 댓글 쓰고 있는 사람들은
씼을 수 없는 각자의 고통을 뚫고
어두운 면을 키우고 있는게 아닐지?
의식의 재료로 자유와 죽음을
연결시키고 있고,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이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을 확률이 올라간다.
Améry가 스스로 죽음의 문을
열고 abspring 했듯이.
초반 음악 뭐죠? 쇼팽 곡 맞나요
필립 마인랜더도 다뤄주세요 자기철학대로 실제로 자살한 철학자로 유명한데 국내에는 별로 정보가 없네요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에 나오는 등장인물 같네요 캐릭터 이름이 기억이 안 나네
자살에 대해서 막연히 했던 생각이었는데 오늘 쌤강의에서 언급됐네요
편안해지려고 자살하지만
죽으면 편안함을 알 수나 있을까요?
제가 늘 하던 생각입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
라는 어르신들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알아야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 논리 자체도 삶의 논리에서 오는 것
이해가 안 된다는 댓이었는데 적다보니 이해가 돼서 수정합니다.
정말 작문, 대화 능력이 뛰어나신거 같아요. 잘보고갑니다.
감사해요 정말
죽음에서는
삶의 모든 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죽음이야 말로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언어로는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비유로나마 표현해 보자면)
다른 차원이 아닐까?
물론 표현할 수 없는 것을 어떻게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역설이지만....
것
존재
사람
유생물
생명 등
구분에 대해서?
슈만의 킨더제넨을 좋아하시나봐요
죽기 전에 죽어라, 라는 말이 있죠. 무의 세계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생물학적으로 죽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아의 죽음, 이라는 것도 가능합니다. 죽기 전에 당겨서 죽는 것. 불행, 고통, 괴로움 이런 것들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요? 그게 싫어 목숨을 끊는 것은 유아적인 나약함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충코님의 문제의식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뾰족하고 날카롭지가 않네요. 이건 다른 영상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느끼는 거에요.
귀찮아~~걍 살아도 죽어ㆍ몸은 알아서 때되면 죽어
근데 삶이 힘든건 진짜 전혀 아닌데 단순히 죽음 이후가 너무 궁금해서 죽어보고싶네요. 무라고 추정만 할 뿐이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몰라서?
좀만 참으세요.
나중에 싫어도 알게 될 터이니..
지금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때이죠.
삶 - (생로병사) - 죽음 ; 이분법의 분열 또는 지양
죽음 말고는 선택지가 없기에..
저는 인간으로써 실격입니다. 이 세계와 맞지 않습니다. 운명에 따라 달라질겁니다.
쇼팽 녹턴을 좋아하시나봐요~~~
자살은 두려움을 학습한 개인이 재미없는 세상에 대한 미련없음이지. 자살은 이미 세상에 노예가 된 인간의 마지막이야. 일말의 안정된 환경을 만들고 두려움이 학습된것이라는 것을 인식해라. 자유롭게 살아라 두려움에 노예가 되지 말고.
재미없는 세상에 미련없음이라 너무 적실한 표현
획일화... 구조적으로 획일화된 사회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알콜중독 아버지가 맨날 죽고싶다길래
하루는 내가 죽으라고했다
죽을용기도 없으면서 술만먹고 옆에 사람 좀 그만 괴롭히라고
당신때문에 내가 죽을판이라고
의식이 깨인 순간부터 나는 왜 이 땅에 태어났나? 싶다
내 의지없이 태어났는데
친부모도 엉망
양부모도엉망
심지어 남편도 그랬다 ㅡ40이후 잘못했다고 돌아오지만 뭐 그러려니한다
더도말고 딱 평범한삶이 최고의 선이라고 본다
젊은이들이 결혼ㆍ출산을 신중히 생각해서 비혼ㆍ저출산된게 굉장히 높은 고차원의 사회가 된것같다
태어날자손들을 생각해서 일순간의 감정으로 연애ㆍ결혼ㆍ출산은 신중합시다
자살에는 전염성이 있어 선뜻 말하기가 어려운 이유가 있죠 자유 죽음을 고찰한 학자가 자유 죽음을 선택한 건 그만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할 소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뒤르켐의 자살론
이기적자살
이타적자살
아노미적자살
한 가지 더 있는 것 같은데 생각나지 않음.
이것도 날아가려나
우울증 겪은 사람들은 다 하는 생각들 아닌가? 그냥 다 하는 생각인줄 알았는데
혼조스즈 신작을 기대하면서 자살 충동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머가 이렇게 어려워요 대충 살래요
반문 죽어야할 이유가있을까?
살아야 할 이유보다 죽어야 할 이유가 더 많지
Sex
목소리가 성우 같으세요~~~
😮😮😮😮😮😮😊😊😊😊😊
과연 자유죽음이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사실상 실제로 존재하는 건 좋게 봐도 자유죽음을 빙자한 자살뿐 아닐까 하는 의문을 남습니다. 자유죽음을 본연의 의미로 실천한 사람을 세간으로 볼 땐 그저 정신병 있던 망자로 여겨질 것이고, 그 외엔 그저 자살한 사람들이죠.
자유죽음이라는 개념은 워낙 심연 같은 것이라 아직 살아있는 제 입장에선 감히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그 자체로도 꽤 흥미로운 주제였던 것 같습니다. 다만, 약간의 조바심을 표현하자면 이로인해 스스로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
말리지마
그저 무 그자체
자살자체가 금기시 되다 보니까. 자살한 이유를 물어보는것조차도.. 불가능한 일이에요. 언급조차 조심해야 하구요. 아무 정보가 얻어지지 않는 영역이에요.
무슨말인지 하나도 모르것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