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전도의 뜻은 금강산 전체 그림이란 뜻 아닙니까? 근데 영상에서는 금강전도의 '전'이 완벽한 그림이라는 뜻이라고 과장을 해버리네요. 음양사상의 태극문양을 집어 넣었다는 것도 너무 과장된 해석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거면 정 중앙에 S자를 넣어야 맞겠지요. 어느 한 부분을 작게 그리면 음양사상의 진의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겸재 정선의 그림은 오늘날로 치면 보정된 인스타그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인상주의라는 궤적을 같이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이렇게 설명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항상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아 이 채널을 구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과 설명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다음에는 어떤 그림과 어떤 설명이 포함된 영상이 올라올지 기대되는 채널이에요.
@@으아아-s9b 쉽게 가지 못하는 이상적인 곳을 직접 방문해서 그리되,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각 지명도 표시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특색있게 그렸다는 의미에서 보정된 인스타그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말도 불쾌하고 보정됐다는 말에도 불쾌하셨을 수도 있어서 댓글을 다시는 건 자유인데,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을 욕하거나 말끝에 욕설을 다는 건 좋지 않은 모습 같네요. 저보다 더 공감이 가는 댓글을 다셔서 좋아요를 받는 건 어떠실까요.
그가 양반이었고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걸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금강산의 겉모습과 더불어 그 속성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력이 보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움과 깊이감, 신비감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그렸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작가의 재구성 능력의 결과이며 진경산수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서양미술사조와 비교한다면 저는 인상주의보다 입체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주의는 빛에 의한 색의 변화에 좀 더 집중했다면 입체주의는 대상의 외형을 1인의 시점이 아닌 다시점으로 바라보았고 그 이유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그 점은 금강전도가 다양한 원근법(심원볍, 평원법, 고원법)을 활용하며 그려진 이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작품에 대한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
와,진짜 천재중의 천재구나, 어떻게 그시대때 매일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하나 팔면 3대가 먹고 살다니,,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예술가가 있었나 싶네 정선.김정희도 좋지만 서민적인 김홍도의 그림을 제일 좋아합니다 백성들의 애환을 같이 하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그림을 보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화룡접묘도의 그림을 보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김홍도의 그때 감정과 정신세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어지간한 그림은 다 봤지만 제게는 김홍도가 제일 앞에 있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은 항상 인간들속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아무리 산과 강이,들판이 아름다워도 함께 해줄이가 없다면 그것 또한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김홍도는 알았을 것 같습니다 강,산은 천년만년 제자리에 있어도 인간은 채 백년도 못살고 가는 것을,그래서 인간의 삶속에서 그림을 구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시대 민화를 구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와 그림만 보니깐 정말 신비롭고 웅장해보인다 기억하기에 인상깊았던것만 과장되서 그린게 오히려 좋은거 같다 돌산은 내가 사는지역에서는 잘 없고 금강산은 말로만 듣고 사진한장 제대로 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산 이였네요 왜 지금껏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언젠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개인적 생각: 정선의 가문은 일찍이 몰락한 집안에 3대째 벼슬을 하지 못해 양반 계급을 박탈 당할 위기였죠. 본인도 양반 계급에 집착이 없었는지 몰라도 화가로 생업을 삼을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연잉군의 그림 스승을 하면서 연잉군이 왕이되자 지방관을 지내게 되면서 양반으로서의 체면은 살릴 수 있엇습니다. 그리고 정선은 왕의 후원을 받는 동시에 왕의 그림 스승이었으니 그가 어떤 화풍을 사용하던 업을 삼던 간에 함부러 비난을 쉽게 못했을 것 같습니다.
진짜 좋은 그림은 그림 앞에 서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는 그림입니다. 그만큼 역사와 스토리, 그림적 철학이 담겨져 있어 금방 발길을 떼지 않을수 없는 에너지가 풍겨지죠. 참고로 정선의 금강전도 그림의 꼭대기봉이 투박하니 둥그스러한건 정선 화가의 마지막 자신의 성격을 담은거라 말할수 있네요. 금강산의 꼭대기는 실제 그러지 않습니다.
신분도 그렇고, 지원도 빵빵했던걸 보면, 30대에 본 금강산을 기억만으로 50대에 그렸다고 볼수있을지 궁금하네요.. 다른 화가들이나, 지도등으로 자료가 있어서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당시 사진기술같은게 없다고 해도, 지도나, 다른 화가들이 금강산에서 그린 그림을 볼 기회는 많지않았을까요?
한(汉)나라 때 청두(成都)는 동남쪽 모퉁이에 담을 두르고 실크 공장을 지었으며, ‘금관(錦官)’이라는 관리를 파견해 감독하게 했는데, 이곳을 ‘금관성(錦官城)’이라 칭했다. 촉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은 청두에 있었는데, 현재 청두에 흐르는 금강(錦江)도 이런 연유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로써 당시 실크산업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다. 장자계가 금강산이다
양인, 양인이 아닌 사람들이 쓰던 기법 등 가리지 않으며 양인 신분만이 쓸 수 있는 격식을 양인으로써 차리지않으면서도 온갖 기법을 총동원 한 그림도 인상적이고, 신분을 넘나들어 기법을 다양하게 쓰고 가리지 않은 결과가 바로 명작과 국보를 만들어 빚어냈다는 것도 느끼게하는 영상..
인상주의라 하더라도 실제 모습이 바탕이 되어야겠죠..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입니다..금강산 관광시 다녀 오셨나요..현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 될까요..팔만구암자가 있었을까요..인상주의가 아닌 다른 장소의 실제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왕이 가서 보고 그려온나 했는 데 내 색깔대로 그려 가니..아이 좋아라는..
지난 주에 겸재 미술관을 다녀왔는데, 이 설명을 들으니 다시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같은 그림을 보고도 이렇게 깊이 이해하고 쉽게 설명할 수 있다니, 그걸 무료로 이렇게 대중에게 널리 알려주시다니.. 너무 고맙습니다..
금강전도의 뜻은 금강산 전체 그림이란 뜻 아닙니까? 근데 영상에서는 금강전도의 '전'이 완벽한 그림이라는 뜻이라고 과장을 해버리네요. 음양사상의 태극문양을 집어 넣었다는 것도 너무 과장된 해석 아닌가 싶습니다. 그럴거면 정 중앙에 S자를 넣어야 맞겠지요. 어느 한 부분을 작게 그리면 음양사상의 진의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겨울이-t7q 딱히 과장은 아닌거같은데요? 산줄기로 그렇게 보이는것도 팩트인데
잘그린 그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죠 겸재정선의 화첩은 독일수도원에서 보관되다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아주 극진하게 관리되어서 보관상태가 좋은걸로 압니다
확실히 대단하네요. 상상, 사상, 이상이 한 작품에서 보이는게. 웅장합니다.
요즘 화가들은 사진이라도 찍어와서 그리지만...옛날에는 어찌 그리 실감나게 그리는지 대단하다
고려 불화도 이쁘던데 이 그림도 참 이쁘네요. 또 여태까지는 의식 안했는데 음양의 조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난 뒤 그림을 다시 보니 눈에 보입니다. 잘 보고 갑ㄴ니다
빨리 통일되어서 금강산구경 한번 가봤으면 좋겠네요😢
저도요ㆍ
살아생전 가볼수있으려나싶네요 ㅠㅠ
난 금강산 가봄.
금강산관광있었잖아.
통일전에도.
대중이 무현이가 범죄국가에 범죄자금만 안보냈어도 진작에 망해서 흡수통일되어 갈수있었을텐데...아쉽네요
저두요.. 너무 아름답네요ㅠㅠㅠ
저도 가봤는데 날씨 좋을때 그림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제로 눈앞에 펼쳐지면 입이 안다물어지죠
설명을 들으니 그림이 다시 보입니다. 감사합니다.
명화들을 들여다 볼수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겸재 정선의 그림은 오늘날로 치면 보정된 인스타그램이라고 볼 수도 있겠네요. 인상주의라는 궤적을 같이 하는 걸 보면 참 신기합니다. 학교 미술 시간에 이렇게 설명을 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항상 도슨트의 친절한 설명을 듣는 것 같아 이 채널을 구독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좋은 영상과 설명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다음에는 어떤 그림과 어떤 설명이 포함된 영상이 올라올지 기대되는 채널이에요.
6:27 서양에 인상파랑 똑같다고 찬양을 하는데 서양에 인상파가 일본 그림 우키요에와 때문이라는 비슷할수밖에
@@으아아-s9b 쉽게 가지 못하는 이상적인 곳을 직접 방문해서 그리되, 아주 사실적이지는 않지만, 각 지명도 표시하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특색있게 그렸다는 의미에서 보정된 인스타그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스타그램이라는 말도 불쾌하고 보정됐다는 말에도 불쾌하셨을 수도 있어서 댓글을 다시는 건 자유인데, 좋아요 눌러주신 분들을 욕하거나 말끝에 욕설을 다는 건 좋지 않은 모습 같네요. 저보다 더 공감이 가는 댓글을 다셔서 좋아요를 받는 건 어떠실까요.
@@으아아-s9b 저걸 비하한걸로 생각하다니 정말 무식하다 인상주의가 뭔지 몰라?
마치 보정을 한것처럼 특이한 구도나 분위기가 인상파의 특징과 비슷할 정도로 그림을 잘그렸다는거잖아 이 문맹아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ZENITH-- 그 저기 니 말이 맞긴 한데 말투 조금만 유해질순 없을까
@@ttabual 이건 머여? 니 나알아? 없는데? C bal아
금강산 여행하면서 본걸 다 기억하고 그걸 재조합해서 전체 모습을 저렇게 그려내다니 진짜 굉장하네요.
선의 힘만으로 금강산의 웅장함을 표현했다는 것이 , 감탄 또 감탄 할 뿐이다.
그가 양반이었고 성리학을 공부했다는 걸 알고 그림을 다시 보니 금강산의 겉모습과 더불어 그 속성을 담아내고자 노력한 작가의 노력이 보입니다. 그리고 전체적인 구성에서 느껴지는 다채로움과 깊이감, 신비감은 대상을 있는 그대로 사진처럼 그렸다면 나올 수 없는 결과라 생각합니다. 지극히 작가의 재구성 능력의 결과이며 진경산수화에서 느낄 수 있는 작품의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서양미술사조와 비교한다면 저는 인상주의보다 입체주의에 더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인상주의는 빛에 의한 색의 변화에 좀 더 집중했다면 입체주의는 대상의 외형을 1인의 시점이 아닌 다시점으로 바라보았고 그 이유는 대상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한 시도였는데 그 점은 금강전도가 다양한 원근법(심원볍, 평원법, 고원법)을 활용하며 그려진 이유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작품에 대한 좋은 영상 많이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
와~ 오늘 도서관에서 조선시대 화가들에 대한 책을 대출해왔는데.. 넘넘 감솨!!
40여년전 호암미술관에서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이 채널이 있었더라면 더 감탄하며 봤을텐데
제거 군생활때 금강산을 보면서 군생활을 보냈는데 정선의 작품을보니 제가 봐왔던 금강산 모습과 비슷한 모습이 많이 보이네요
일 없습네까?
양구쪽이신가보네요
@@hsh6036 양구쪽에서 보이나요?ㄷㄷ
니레 니북에서 왔네?
오늘도 여기서 많은것들 배우고 영감이 떠올라서 작곡하러 갑니다ㅎㅎㅎㅎ 저번 영상도 이번 영상도 넘나 감사합니다
그림이 너무 멋져서 들어왔는데 자세한 설명과 해설에 한번 더 감탄하고갑니다. 직접 보러가고싶어져요.
영상 잘 봤습니다. 감사해요 정말!
와 올라오자 마자 봤다!! 겸재 정선 좋아하는데 다뤄주셔서 감사합니다 ㅠㅠ
인왕산을 보면 머릿속에 인왕산 자체의 모습보다 겸재 정선의 아름다운 인왕제색도가 먼저 떠오름....
겸재정선의 작품과 작가에 대한 설명 잘 보았습니다
와.. 정말 너무나 아름답네요
동양화는 자연이 가지고있는 기운을 담아내는 것같습니다...살아있는모습을 담아내는것이죠
겨울은 너무추우나까 봄에만가서 그럈구만요 지금은겨울에 캠핑장비를 따스하니 가서그립시다 겨울
비구상의 시초네요.산의 돌들은 멀리서 보면 사람같아 보이기도 하고.정말 멋지네요
와,진짜 천재중의 천재구나, 어떻게 그시대때 매일 그림을 그리는데 그림하나 팔면 3대가 먹고 살다니,,동서고금을 통틀어 이런 예술가가 있었나 싶네
정선.김정희도 좋지만 서민적인 김홍도의 그림을 제일 좋아합니다 백성들의 애환을 같이 하며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였는지그림을 보면 잘 드러나 있습니다 화룡접묘도의 그림을 보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김홍도의 그때 감정과 정신세계를 잘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세계 어지간한 그림은 다 봤지만 제게는 김홍도가 제일 앞에 있습니다
김홍도의 그림은 항상 인간들속에 있었습니다 이제는 알것 같습니다,아무리 산과 강이,들판이 아름다워도 함께 해줄이가 없다면 그것 또한 무의미 하다는 것을 김홍도는 알았을 것 같습니다 강,산은 천년만년 제자리에 있어도 인간은 채 백년도 못살고 가는 것을,그래서 인간의 삶속에서
그림을 구현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시대 민화를 구할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
설명을 듣고 보니 더 새롭습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유익한 지식 고맙습니다.
진하게 겸재 정선 그림을 감상하고 상세한 설명에 감사드립니다. 직접 눈으로 봐야겠다.
와 그림만 보니깐 정말 신비롭고 웅장해보인다 기억하기에 인상깊았던것만 과장되서 그린게 오히려 좋은거 같다 돌산은 내가 사는지역에서는 잘 없고 금강산은 말로만 듣고 사진한장 제대로 본 적도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굉장히 아름다운 산 이였네요 왜 지금껏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싶네요 언젠가 갈 수 있으려나 모르겠네
감각이라는 큰 봉우리
만학천봉 답래후라는 생각
흙산과 돌산이
마치 태극을 이루어
현상과 본질이
하나의 원으로 어울려 들어가있는 작품
좋은 설명 잘들었습니다
이렇게 들으니
그 그림의 의미
깊이가 다르게 다가옵니다
그림에 철학을 담아냈네요
정말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상을 보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르게 보이네요
해설이 너무 좋네요
오... 에너지가 느껴지는 그림이네요...
설명을 들으니 많이 다른 느낌이네요. 웅장하네요.^^
감동입니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화가 네요
천재셨구나.
멋지긴 멋지네요 금강산
조선시대에 80살이라 엄청 오래 살았구나
정선이 모든걸 기억한게 아니라 금강산의 핫스팟을 따로 스케치하거나 전체적인 풍경을 본인만 알아볼 수 있게 스케치했던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어요!
학교 다닐 때 미술시간에 이런걸 배웠으면 좋았을 것을 ㅠㅠ
국립춘천박물관 실감영상에서 금강산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었는데요. 빼어난 화가들이 있었기에 그 시절 그 아름다움을 지금도 느껴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몰랐던 사실에 대한 유용함과 한지혜님의 명료한 나래이션 모두 정말 좋습니다.
30대에 본것을50대에 그린다라니ㆍㆍ천재만할수있는 ㆍ구도도 멋지네요
넘 재밌네요
이거 리움에서 본 그건가? 리움에 진짜 큰 전통화? 보고 진짜 우왓 싶었는데
정선 그림중 박연폭포는 북한 개성시의 박연폭포가 아니고 충북영동 옥계리의 박연폭포를 그린듯 싶습니다
개인적 생각:
정선의 가문은 일찍이 몰락한 집안에 3대째 벼슬을 하지 못해 양반 계급을 박탈 당할 위기였죠.
본인도 양반 계급에 집착이 없었는지 몰라도 화가로 생업을 삼을 길을 걸었던 것 같습니다.
그 와중에 연잉군의 그림 스승을 하면서 연잉군이 왕이되자 지방관을 지내게 되면서 양반으로서의 체면은 살릴 수 있엇습니다.
그리고 정선은 왕의 후원을 받는 동시에 왕의 그림 스승이었으니 그가 어떤 화풍을 사용하던 업을 삼던 간에 함부러 비난을 쉽게 못했을 것 같습니다.
영조를 말하시는거라면 영양군이 아니라 연잉군입니다
너무 유익하고 재밌어요.잘 봤습니다.
영상은 짧지만 그안에 담은 노력은 겸재정선 급 입니다
영상 한편 한편 볼때마다 그 시대에서 관람 하는 듯 하구요
모두 제작자님 탓이네요 감솨 .
3:26 김하중이 아니라 김하종입니다
이야... 간만에 유튜브로 좋은 거 보고 갑니다.
꼭 떡상해서 플랙스한 삶 사세요.
안녕하세요 과제할때 참고해도 될까요?
과거의 유투브 엿네요 그림이요 정말 아름다운 그림입니다.
겸재 정선!
웅장하다.
진짜 좋은 그림은 그림 앞에 서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보는 그림입니다. 그만큼 역사와 스토리, 그림적 철학이 담겨져 있어 금방 발길을 떼지 않을수 없는 에너지가 풍겨지죠. 참고로 정선의 금강전도 그림의 꼭대기봉이 투박하니 둥그스러한건 정선 화가의 마지막 자신의 성격을 담은거라 말할수 있네요. 금강산의 꼭대기는 실제 그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국악은 그다지 흥미가 없는데 그림만큼은 서양화보다 한국화가 훨씬 흥미와 감성이 더 크게 느껴진다는 거.
실물크기의 모작앞에서도 그 위용과 에너지에 압도될것 같아요
신분도 그렇고, 지원도 빵빵했던걸 보면, 30대에 본 금강산을 기억만으로 50대에 그렸다고 볼수있을지 궁금하네요.. 다른 화가들이나, 지도등으로 자료가 있어서 참고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당시 사진기술같은게 없다고 해도, 지도나, 다른 화가들이 금강산에서 그린 그림을 볼 기회는 많지않았을까요?
조선 3재 - 겸재 정선, 공재 윤두서, 현재 심사정
조선 3원 -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 오원 장승업
헐, 인상파 사랑하네!
선구독, 후감상;;
후대에 금강산을 직접가서 보고 올 후손들이 부럽네요
진짜 국보네..
글고 보니 난 한국미술이 취향인거 같음...
정선: 그냥 그린건데 해석은 마음에 드네요.. 해석이 곧 예술의 기품이여라.
ㅋㅋㅋ
굉장히 흥미롭네요. 혹시 이 동영상 제작 바탕이 된 자료가 어떤 게 있는지 알 수 있을까요?
이런방송 좋아요
여태까지 금강전도가 금강산전체 그림인줄
알았네요 ㅋ
인왕제색도는 봤지만 금강전도 꼭 보고싶다
우리조상님때부터 핫플도장깨기의 DNA가~😂
2:07 세자때부터? 영조는 연잉군이었습니다.
세자였던 적은 없지만, 형인 경종의 후계자로 지목되면서 왕세제를 지내긴 했었죠.
@@MNMNM1111 그러니 정확히 그는 결코 세자가 아니였다는 겁니다. 왕세제가 뭔 소린지 많은 사람이 단번에 이해 못할거라 생각해서 세자라고 쓴 거라면 이런 종류 채널은 정확한 정보가 필수라고 말하고 싶네요.
아니면 적어도 왕위에 오르기 전부터 라고 하던가.
@@jessicapark53 공감합니다. 이런 부분 대충 넘어가면 잘못된 정보를 전달 할 수 있죠..
어혐
'아름다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물론 객관적인 비율 등이 있지만, 전체적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은 모든 이에게 다르게 다가온다.
한(汉)나라 때 청두(成都)는 동남쪽 모퉁이에 담을 두르고 실크 공장을 지었으며, ‘금관(錦官)’이라는 관리를 파견해 감독하게 했는데, 이곳을 ‘금관성(錦官城)’이라 칭했다. 촉나라 실크산업의 중심은 청두에 있었는데, 현재 청두에 흐르는 금강(錦江)도 이런 연유로 이름을 얻게 된 것이다. 이로써 당시 실크산업이 얼마나 성행했는지 알 수 있다. 장자계가 금강산이다
현 시대에서도 미술로 성공하기 어려운데 저 옛날에 글로벌 셀럽 ㄷㄷ..
양인, 양인이 아닌 사람들이 쓰던 기법 등 가리지 않으며 양인 신분만이 쓸 수 있는 격식을 양인으로써 차리지않으면서도 온갖 기법을 총동원 한 그림도 인상적이고, 신분을 넘나들어 기법을 다양하게 쓰고 가리지 않은 결과가 바로 명작과 국보를 만들어 빚어냈다는 것도 느끼게하는 영상..
정선은 진짜지..
헐 태극문양 ㅎ
피카소도 본인이 생각한대로 그린다고 했는데 ㅎㅎ 재밌네요
인상주의라 하더라도 실제 모습이 바탕이 되어야겠죠..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입니다..금강산 관광시 다녀 오셨나요..현 금강산이 일만이천봉이 될까요..팔만구암자가 있었을까요..인상주의가 아닌 다른 장소의 실제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왕이 가서 보고 그려온나 했는 데 내 색깔대로 그려 가니..아이 좋아라는..
현대에 와서는 겸재나 단원같은 화가가 안나오나요
국뽕은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구나
포항에서 7번국도 타고 금강산 가신듯 ㅋㅋㅋㅋㅋ
참 대한민국은 정말 대단한 사람들 많습니다
요즘은 이상한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문제고 ~
또 이상하게 공산 국가도 아닌데 수평 문화 원하는 인간들 많음
꼭 일 못하고 자존심 강하고 고집 센 것들이 그런 것 원함 ~
그림 그리다 삐끗만 해도 다시 그려야 할만큼 수정이 안된다고 전제하고..금강전도는 경이로울 지경이다.
겸재 정선은 포항 청하의 현감으로 있으면서
청하의 내연산도 많이 그렸어요....
영.정조시대문화가 꽃피울수있던건 숙종대의 경제적 성장이 큰역할을했다는것
얼마면 내집에 걸어놓고 볼수 잇남유?
와우
인상파 화가랑 비교하는 건 어불성설 같다. 인상파는 색채 위주로 느낌을 살렸다만, 정선의 수묵화는 그런게 아니고,.. 본 것+상상화야.
동북아 그림이 같은 시기 서구에 비해 퀄리티가 떨어지긴 해도, 역시 그 나름의 멋이 있네요
예술의 이유만 기다려용🥺💗💗💗💗
전도가 전체를 그린 그림이란 뜻이 아니라 완벽한 그림이란 뜻인가요?
이런 그림전은 외국에서 전시회 자주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중국인에게 보여 주지마. 중국이 또 자기들꺼라고 우긴다
c8세기 1700년도이후 겨우 300년전 우리니라가 먼저 공장을시직하도 비행기도만들고 했을수있었는데
역시 중국을 충격에 빠뜨릴만하네요
크으~ 겸재 선생의 그림을 보자면
우키요에는 비견할 바가 안된다지요~!
항공샷이네
동양화도 재미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