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도서 링크: bitly.ws/3fDMU *비즈니스 문의: iooodhie@gmail.com *인스타그램: bit.ly/3gbHgsy *시리즈 소개: 채컬릿 ‘채컬릿’은 책과 초콜릿의 합성어로, 책 한 권을 초콜릿처럼 달달하게 녹여먹는 시리즈입니다. 생활에 치이다 보면 책 한 권 읽기가 어렵잖아요. 대신 읽고 초콜릿처럼 달달하게 만들어드릴게요! 하나씩 꺼내 먹어요.
이순신이 대단했던건 철저하게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놓고 싸움에 임했다는거.... 전체 조선 수군의 규모는 왜군보다 작았을지언정, 일단 머리 맞대고 싸우는 병력은 무조건 아군 규모가 왜군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만 전투에 돌입했음. 물론 명량대첩은 예외였지만 이건 그만큼 상황과 현실이 절박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거였고, 울돌목이라는 좁고 험한 물목을 전장으로 선택함으로써 최소한 조선 수군 판옥선 13척 앞에는 왜군 전선들이 한데 뭉치지 못하게 의도했기 때문에 이순신의 전술 대원칙에 최소한으로 부합했음.
일본군은 울돌목으로 갈 수밖에 없는상황 돌아가면 맹골수도라는 곳은 물살이 너무쌔서 혼비백산이 뻔하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본군이 유리한 시간과 물때를 정해놓고 이순신도 덤으로 잡고자 진출함 불리한 악조건에서 배한척으로 33척이상의 구루지마 군함을 1시간이상 막은건 진짜 기적임
이순신은 한국에서 다시 나오지 못할 영웅이십니다.....놀라운 전공보다 저는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고문과 심문을 당하고 백의종군까지 하게되는 치욕을 받앗음에도 나라에 대한 충의를 지키는 모습이 위대하다고 느낍니다...어떻게 이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얼마나 분노가 깊었으면 적들이 달아나는 노량해전에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웟을까요....이런 분을 잃었다는 것이 슬프네요
당시 왜군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명나라와 구두합의만 하고 조선 조정에는 일제의 사과나 배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선 백성들을 노예삼아 납치하면서 퇴각하려 했고 각종 전리품을 배에 실었다고 합니다. 해전이 끝나고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노량에서 구출한 조선 백성수가 구름처럼 많아 이순신의 관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과 의지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같습니다 노량에서 적의 해군을 완전히 분쇄해 일본군의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한다면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적의 육군은 쉽게 무너질테고 그리하여 고위급 장수를 포함해 수많은 병력을 잃은 일본은 당분간 전쟁은 고사하고 당장 정국의 안녕 조차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조선을 침공하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 앞으로 조선을 침공할 의지 자체를 꺽을 수 있겠죠 반대로 이순신의 노량 없이 저들 상당수가 무사히 고귝으로 돌아갔다면 이미 한 번 갔던 길인 만큼 일본은 적게는 수년 혹은 몇세대 뒤에라도 다시 조선을 노릴 수 있습니다 국토가 멀정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국토 대부분이 황페화 되었고 이미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이순신은 그때에 높은 확률로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즉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시간은 일본의 편에 있다는 거죠 이렇기에 임진왜란은 어찌 끝내도 저들이 다시 침공한다면 조선은 막을 길이 없어 유일하게 상대적 우위를 지닌 조선군을 이끄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그자리에서 일본군을 끝장내는 것이 피폐해진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한거죠 정리하자면 이순신도 노량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을 것을 알았지만 이미 전쟁이 끝나가는 상황이라 어느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단기적으로나 전술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조선에게 유리한 선택울 한거죠 자신의 후손들에게 이런 금찍한 전쟁울 돠물림하지 않기 위해서요 또 노량해전의 전개룰 보면 이순신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핬고 전쟁이 끝난후 일본이 오히려 이순신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18세기까지 일본이 조선을 넘보지 못한걸 보면 노량은 어떻게 보면 이순신이 거둔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선 수군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서 싸웠습니다...! 실제로 일본 수군이 아닌 조선 수군이 돌격해서 싸운 전투도 있고, 지휘관이 조총에 맞을 정도로 가까이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60m 내의 근접전도 자주 치뤘다는 근거가 됩니다...! 조선 수군이 항상 원거리 전투만 치뤘다는 오해가 있을지 몰라서요...!
12:05 놀란 일본군이 부산 일대로 후퇴했다고 하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영상 속 내용만 보면 조선 수군이 울돌목을 성공적으로 지켜내고 일본수군이 그 이상 갈 수 없게 저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영상을 보는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명량해전 직후 오히려 조선수군이 남해를 포기했습니다. 조선수군은 싸움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중과부적 상태였고, 명량해전 같은 기적적인 승리가 한 번 더 일어나리라고 생각할 순 없었기에 이순신 장군은 전략적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명량해전 직후 일본수군은 멀쩡히 울돌목을 통과했고, 전라 우수영을 점령했으며 당초 계획대로 서해로 진출했습니다. 조선수군은 닷새에 걸쳐 고군산군도 선유도까지 후퇴했는데 이는 7년간의 전쟁 중 가장 후방으로 퇴각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일본군은 진도, 무안, 영광 등 전라도 해안을 아무런 위협 없이 마음껏 약탈하고 살육했습니다.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배에 태워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간양록 저자 강항도 이 때 피랍). 영화 에 나온 백성들을 기억하시나요? 명량해전 직후 그들이 모두 살해 당했거나 일본으로 납치되었다는 겁니다. 자취를 감추고 함대 복구에 힘쓴 조선수군이 다시 전면에 나타나는 건 명량 해전으로부터 10개월 후인 절이도 해전 때입니다. 요약 : 명량해전 직후 조선 수군은 남해를 이탈. 일본 수군 남해 제해권 장악 및 서해 진출 성공. 한양 공략을 꾀하던 일본군의 남해안 철수는 명량 해전 이전에 결정됨. 명량해전의 여파라고 볼 수 없음
손자병법 안에 단 한 번도 백전백승의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심지어 나오는 곳도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표현이 나오는 3장 모공 편으로 동일합니다. 다만 "백전백승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좋다"하고 다른 구절에서 얘기한 것이지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잘못 안 표현이지만, 관용적 표현으로서 백전백승의 유래에 손자병법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으므로 "손자병법에 단 한 번도 백전백승이라 한 적 없다"하는 것 또한 매우 큰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오십에 읽는 손자병법》 도서 링크: bitly.ws/3fDMU
*비즈니스 문의: iooodhie@gmail.com
*인스타그램: bit.ly/3gbHgsy
*시리즈 소개: 채컬릿
‘채컬릿’은 책과 초콜릿의 합성어로, 책 한 권을 초콜릿처럼 달달하게 녹여먹는 시리즈입니다. 생활에 치이다 보면 책 한 권 읽기가 어렵잖아요. 대신 읽고 초콜릿처럼 달달하게 만들어드릴게요! 하나씩 꺼내 먹어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네요... !!
이순신이 대단했던건 철저하게 "이길 수밖에 없는 상황"을 A부터 Z까지 완벽하게 세팅해놓고 싸움에 임했다는거.... 전체 조선 수군의 규모는 왜군보다 작았을지언정, 일단 머리 맞대고 싸우는 병력은 무조건 아군 규모가 왜군을 압도하는 상황에서만 전투에 돌입했음. 물론 명량대첩은 예외였지만 이건 그만큼 상황과 현실이 절박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던거였고, 울돌목이라는 좁고 험한 물목을 전장으로 선택함으로써 최소한 조선 수군 판옥선 13척 앞에는 왜군 전선들이 한데 뭉치지 못하게 의도했기 때문에 이순신의 전술 대원칙에 최소한으로 부합했음.
일본군은 울돌목으로 갈 수밖에 없는상황 돌아가면 맹골수도라는 곳은 물살이 너무쌔서 혼비백산이 뻔하기때문에 어쩔수 없이 일본군이 유리한 시간과 물때를 정해놓고 이순신도 덤으로 잡고자 진출함 불리한 악조건에서 배한척으로 33척이상의 구루지마 군함을 1시간이상 막은건 진짜 기적임
대가끼리는 통하는게 있다고 접전지에는 항상 수가 많게 유지하게 하는건 나폴레옹이랑도 놀랍도록 비슷함
오늘도 언제나처럼 어김없이 정말 유익하고 도움되는 영상 진심 넘 감사합니다 ㅋㅋㅋ
이 시리즈 진짜 좋네요 진짜,,,, 항상 꾸준히 양질의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너무나 좋은 영상입니다. 다시 한번 이순신 장군님이 저희 곁에 계셨다는 것이 너무나도 자랑스럽습니다.
젠장 또 충무공이야. 충무공 영상을 본 순간 영상을 클릭할 수 밖에 없었어.
이놈아 그렴 니놈은 뭐가 중헌데 ㅁ친새ㄲ
@@허태형-g8c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이고 아재요 오히려 저 댓이 극찬이에요~ 이순신 장군 칭송하는겁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GOAT 이순신 그저 빛..
이순신은 한국에서 다시 나오지 못할 영웅이십니다.....놀라운 전공보다 저는 억울하게 모함을 받고 고문과 심문을 당하고 백의종군까지 하게되는 치욕을 받앗음에도 나라에 대한 충의를 지키는 모습이 위대하다고 느낍니다...어떻게 이런 인간이 존재할 수 있을까요....얼마나 분노가 깊었으면 적들이 달아나는 노량해전에서까지 목숨을 걸고 싸웟을까요....이런 분을 잃었다는 것이 슬프네요
손자병법에 고향으로 가는 적을 막지말라... 이런 내용이 있는 줄 몰랐군요.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반드시 적들을 섬멸케 하소서
최고의 영상이었습니다
이오의 해석은 늘 경청하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
늘 드는 생각이지만 진짜 구독자 수에 비해 영상 퀄리티가 너무 좋네요
불과 2주 전에 업로드하셨는데 몇 달 못 본 것처럼 아득하게 느껴졌습니다. 노량해전을 저렇게까지 치른 건 그동안 당한 것에 대한 한풀이를 병사들에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문일까요?
당시 왜군이 도망치는 와중에도 명나라와 구두합의만 하고 조선 조정에는 일제의 사과나 배상도 없었습니다. 심지어 조선 백성들을 노예삼아 납치하면서 퇴각하려 했고 각종 전리품을 배에 실었다고 합니다. 해전이 끝나고 시신을 옮기는 과정에서 노량에서 구출한 조선 백성수가 구름처럼 많아 이순신의 관이 앞으로 나아가질 못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아마 일본의 전쟁 수행능력과 의지를 분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클 것같습니다
노량에서 적의 해군을 완전히 분쇄해 일본군의 퇴로와 보급로를 차단한다면 상대적으로 기반이 취약한 적의 육군은 쉽게 무너질테고
그리하여 고위급 장수를 포함해 수많은 병력을 잃은 일본은 당분간 전쟁은 고사하고 당장 정국의 안녕 조차 기대하기 힘들 것입니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조선을 침공하면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인식을 만들어
앞으로 조선을 침공할 의지 자체를 꺽을 수 있겠죠
반대로 이순신의 노량 없이 저들 상당수가 무사히 고귝으로 돌아갔다면
이미 한 번 갔던 길인 만큼 일본은 적게는 수년 혹은 몇세대 뒤에라도 다시 조선을 노릴 수 있습니다
국토가 멀정한 일본과 달리 조선은 국토 대부분이 황페화 되었고 이미 여러 질환에 시달리는 이순신은 그때에 높은 확률로 자리에 없을 것입니다
즉 당장은 몰라도 앞으로 시간은 일본의 편에 있다는 거죠
이렇기에 임진왜란은 어찌 끝내도 저들이 다시 침공한다면 조선은 막을 길이 없어
유일하게 상대적 우위를 지닌 조선군을 이끄는 자신이 책임을 지고 그자리에서 일본군을 끝장내는 것이
피폐해진 조선을 일본으로부터 지킬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판단한거죠
정리하자면 이순신도 노량해전에서 큰 피해를 입을 것을 알았지만
이미 전쟁이 끝나가는 상황이라 어느정도의 피해를 감수하고
단기적으로나 전술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나 전략적으로 조선에게 유리한 선택울 한거죠
자신의 후손들에게 이런 금찍한 전쟁울 돠물림하지 않기 위해서요
또 노량해전의 전개룰 보면 이순신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준비를 핬고
전쟁이 끝난후 일본이 오히려 이순신의 침공을 두려워하고 18세기까지 일본이 조선을 넘보지 못한걸 보면
노량은 어떻게 보면 이순신이 거둔 최고의 성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싸워죽기는 쉬우나 길을열기는 어렵다.. 0:32
송상현 광장이 있는 이유..
재밌게 보고 갑니다. 여전히 퀄리티 높네요! 개인적으로 후퇴하는 적들을 그냥 보내지 않는 게 여요전쟁의 양규 장군과 강감찬 장군님이 생각나는 군요
영상 내용 퀄 진짜 미쳤다..
뭉클합니다... 소중한 채널 운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순신이 1597년 명량에서 바랐던 행운과 적의 방심이 1905년 쓰시마에서는 똑같은 방식으로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에게 미소를 지었다는게 역사의 아이러니...
실제로 이순신을 참고했다고 하죠
너무 좋은 영상이네요. 눈물이 납니다 ㅜㅜ....
완전 칭찬합니다.
지도 해설 시리즈 계속 부탁해요~~
사랑합니다.👍👍👍🙆♂🙆♂🙆🙆
100만 기원합니다 ㅠㅠ
건강보다 영상이 우선입니다
기가막히네!
이오 님… 망각에 대한 철학적 고찰.. 영상 어디 갔을까요 ㅠㅠ 정말 보고 싶어요 😭
감사합니다.
노량해전과 손자병법의 관계는 처음 알게됐네요. 재밌게 봤습니다!
구국의 성웅
해전사 디테일은 많이 덜어냈지만 요약내용도 깔끔하고 영상퀄 너무 좋네요
4:36 굳이 오류를 잡자면.. 거북선은 이순신이 제작하지 않았습니다. 조선초기부터 이미 수군이 보유하고 있던 기록이 있습니다.
이순신은 거북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거죠.
정말로 광화문에 서 계실만한 남북 사학계가 공통적으로 꼽는 2명의위인이십니다 성웅입니다
오늘도 양질의 영상 감사합니다.
17대1의 전설
조선 수군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가까이서 싸웠습니다...! 실제로 일본 수군이 아닌 조선 수군이 돌격해서 싸운 전투도 있고, 지휘관이 조총에 맞을 정도로 가까이 싸웠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60m 내의 근접전도 자주 치뤘다는 근거가 됩니다...! 조선 수군이 항상 원거리 전투만 치뤘다는 오해가 있을지 몰라서요...!
그리고 노량 해전에서 고니시의 퇴로를 차단하려 했던것은 맞지만 진린의 실책으로 남해의 소 요시토시와 사천의 시마즈 요시히로의 수군이 고니시에게 지원군을 파견해서 그들에게 선제 공격을 하던 중 전사하였습니다...!
이런 대단한 사람이 고작 이재x라니... 역사강사는 평생 역사에 사죄를 해야할 것.....
8:24 정확히 1557년인가요?
오타 + 실수인 듯 😂
금융의 역사 탐구해주세오
이순신은 신이지
그저goat
부산 등 과거 지리를 반영한 지도였으면 더 좋았을 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훌륭한 작품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분이 이순신이시다
?? : 조선 수군은 단 열세척이야!! 삼배척 함대가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래서 선조와 원균이 까이고 까이는구나. 역시 알고 까야지
있다가 자기 전에 봐야징
08:33
1597년을 1957년으로 잘못 녹음 하셨습니다 ㅠㅠ
ㅎㅎ..그렇네요..
한 나라의 수군 총사령관이 13척의 배를 가지고 싸운다.. 진짜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순신은 모든 것을 극복했다.
8:34 1957년 ㄷㄷ
캬 졸라 위대하다...
What was scary in medieval East Asia
Chinese with spear
Japanese with katana
Korean with bow
중간에 1957이라 그래서 살짝 놀랬음여 ㅋㅋㅋㅋ
진짜 존나 재밌다
광개토대왕 세종대왕 이순신 강감찬 안중근 현종(고려) 김홍일 김종오 을지문덕 장수왕 유금필
어준규 쌤이 읽으셨던 책이노ㄷㄷ
12:05 놀란 일본군이 부산 일대로 후퇴했다고 하긴 좀 어렵지 않을까요. 영상 속 내용만 보면 조선 수군이 울돌목을 성공적으로 지켜내고 일본수군이 그 이상 갈 수 없게 저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부분은 영상을 보는 분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명량해전 직후 오히려 조선수군이 남해를 포기했습니다. 조선수군은 싸움에서 이겼지만 여전히 중과부적 상태였고, 명량해전 같은 기적적인 승리가 한 번 더 일어나리라고 생각할 순 없었기에 이순신 장군은 전략적 철수를 결정했습니다. 명량해전 직후 일본수군은 멀쩡히 울돌목을 통과했고, 전라 우수영을 점령했으며 당초 계획대로 서해로 진출했습니다. 조선수군은 닷새에 걸쳐 고군산군도 선유도까지 후퇴했는데 이는 7년간의 전쟁 중 가장 후방으로 퇴각한 일이었습니다. 이후 일본군은 진도, 무안, 영광 등 전라도 해안을 아무런 위협 없이 마음껏 약탈하고 살육했습니다. 수많은 조선 사람들을 배에 태워 일본으로 끌고 갔습니다. (간양록 저자 강항도 이 때 피랍). 영화 에 나온 백성들을 기억하시나요? 명량해전 직후 그들이 모두 살해 당했거나 일본으로 납치되었다는 겁니다. 자취를 감추고 함대 복구에 힘쓴 조선수군이 다시 전면에 나타나는 건 명량 해전으로부터 10개월 후인 절이도 해전 때입니다.
요약 : 명량해전 직후 조선 수군은 남해를 이탈. 일본 수군 남해 제해권 장악 및 서해 진출 성공. 한양 공략을 꾀하던 일본군의 남해안 철수는 명량 해전 이전에 결정됨. 명량해전의 여파라고 볼 수 없음
만약 이순신장군이 전쟁후에 다시 북송되어 토사구팽을 걱정해 죽은것처럼 포장했다면..? 죽지않고 어느 한적한 마을에서 남은여생을 보냈다면? 까지 개소리였습니다
다시봐도 선조는 무능그자체
일본을 막은 건 좋으나 조선이 유지된건 슬픈 일이다
뒤에서 지켜보는거 킹받네. 롤에서 꼭 뒤에서 쳐다보고있는 브실골 4명같네
선조 때에 조선이 망하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다른 나라 같으면 새왕조 까지는 아니라도 선조는 폐위 됐을텐데 씹선비국 조선이라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을 가능성보다 일본한테 함락될 가능성이 더 크죠
그러면 일본이나 명한테 식민지배 당했을듯
진짜 선조는 언제 봐도 후...ㅋㅋ
그런거아님. 그냥 이순신 전법임.
우리는 영예로운 충무공의 후예이다
아주 잘 만든 영상 늘 감사드립니다. 다만 연도 표시가 잘못되었네요 이순신이 파직되어 서울로 압송된 해를 1957년이라고 하셨는데 1597년이겠죠. 수정이 필요하네요
원규을 선조에 빗대서 욕을 한건 아닌지도 생각이 듭니다
0:06 나고야가 아니고 후쿠오카 일거같네요 이오님도 이런 실수를 하다니 ㅎ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 거점이었던 나고야 성이요! 후쿠오카에 있어요ㅎㅎ
원균 개트롤한것도 요것처럼 정리해줬으면 좋겠다
노량에서 관음포 유인은 정말
선조!!!!!!!
여기서 말하기 그런데 일본의 전국 시대도 다러주시면 좋겠습니다.
1등
우리민족이 게임ㅈ같이 하는데는 다 전통과 이유가 있다
??? : 남아 선호 사상이 얼마나 깊이 뿌리 박혀 있으면 손자병법만 있고 손녀병법은 없는거죠?
ㅋ 손자는 이름임
농담도 구분도 못하는 ㅎㅎ 😢
좃노잼
@@충무공의병단 그분들의 지능을 돌려까는거잖어요 ㅎ
LGBT? 只有女人能生孩子这是多么的歧视男性
선조는 지금이라도 재판을 열어 죄를 묻고싶다 ...
먼치킨 충무공.
칠천량해전이 13척의 배만 남기고 모두가 전멸한 해전은 아니에요.. 그랬다면 명량해전 이후에 조선 수군 재건 과정을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네임드에요
보급 병참 진상 징발 징집 모든걸 혼자 하셨는데 명량으로 시간벌고 재건하신거 맞습니다 물론 명나라 수군이 개입해서 지원한건 사실입니다 명량후에
당시 화포라는게 배를 한번에 없애는게 불가능 하기에 반파된 배들을 복원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 했습니다.
가용 가능한 배가 13척
1빠인가
마지막은 손자병법이 틀렸어 적들은 한번 처들오면 2번3번 처들어 오지 못할까? 그때 열도 끝까지 추격해서 항복을 받아야 일본이 결코 우리를 약보지 못하지
손자병법을 제대로 읽지도 않은 사람 같네요. 그 얕보지 못하게 하기 위한 감정적인 결정이 세를 흔들어 적의 죽음을 각오한 전투력에 의해 예상치 못한 큰 피해를 맞게된다는 겁니다.. 전쟁은 감정이 아니라 이성으로 하는 겁니다.
뜻을 잘 이해못하신거 같은데 막다른 곳에 몰리면 후퇴하는 적이라고 할지라도 위협적이다 라는 뜻인데 이해가 안되면 초한지 한신의 배수진 일화를 한번 찾아보고 공부하시길
문득든생각인데 런조 일본이랑 내통한거아니니까 원군빨리달라고 만주제후하겠다고 쇼한거아님? 진심인게아니라
뭔 개소리야 이건
일본이 아니고 왜나라
손자병법에 단 한번도 백전백승이라고 한 적이 없는데도 백전백승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더라는
백전불태지요 아마 발음이 비슷해서 그럴겁니다
아 그렇구나
손자병법 안에 단 한 번도 백전백승의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 안 것입니다. 심지어 나오는 곳도 "지피지기 백전불태"의 표현이 나오는 3장 모공 편으로 동일합니다. 다만 "백전백승이 제일 좋은 것이 아니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제일 좋다"하고 다른 구절에서 얘기한 것이지요.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잘못 안 표현이지만, 관용적 표현으로서 백전백승의 유래에 손자병법이 매우 큰 영향을 끼쳤으므로 "손자병법에 단 한 번도 백전백승이라 한 적 없다"하는 것 또한 매우 큰 잘못이라 하겠습니다.
아마 롤 리신 대사 때문에 그런 듯
백전불태 > 백전불패 > 백전백승 으로 와전된듯한
역시 이순신보다는 손자병법이 제대로된 역할을 했구만 중국을 본받아야 나라가 산다 진짜
응 지금 중국 말고 2500년전 중국
@@레노버P11이게 맞지 제자백가랑 지금은 못비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