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제도가 대를 잇는 제도로만 볼게 아니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깨닫게 되어 참 기쁩니다.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겨 버려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궁금한 것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내 아내로 맞아 자손이 나게 되면 장자가 당연히 죽은 형제의 대를 이을 것인데. 그 이후에 출산 하는 아이들은 누구의 자식이 됩니까?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으면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는 룻기처럼 룻을 딸로 여겨 사위로 하여금 대를 잇는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마태복음을 보니 그건 또 아닌것 같고 혹시 다른 성경구절로 이것을 알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이 제도는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타나있습니다. 요지는 대가 끊어져 기업을 받을 사람이 없어지게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형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으면 의무가 다하기 때문에 그 다음번 자식은 자신의 후손으로 인정됩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딸만 있다면 민 27:7에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습니다. 친족중에 사위를 얻어 그 집안에 대를 잇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그런 제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요셉은 아버지의 이름이 마태복음과 눅가복음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함으로 이땅에 오셨는데 왜 예수님의 족보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에서 요셉까지의 족보를 (마태복음} 연결하는 걸까요? 언약백성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목사님의 설명은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으로 성경을 잘 풀어주셔서 어려운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어떤 강해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기가 쉽고 다가가기 편한거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또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좀 넉넉한지라. ㅎㅎ 답은 천천히 해 주세요. 창세기 38장은 좀 뜬금포 같이 느껴집니다. 위치가 좀 애매해요. 요셉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끼어 들어와서요. 그리고 이건 좀 나누고 싶은 이야긴데 38장 15절에 나오는 창녀와 21절에 나오는 창녀가 같은 원어가 아니죠. 관주를 보고 알았습니다. 즉 앞에 나오는 창녀는 몸 파는 여인 뒤에 나오는 창녀는 성소의 신탁녀 크데샤 제가 들은 바로는 유다가 창녀와 잔 것이 부끄러워 친구에게 차마 바로 말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한 것이라고 하던데, 딱 위기에 처하면 나오는 저의 모습 같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른 해석인가요? 그리고 꼭 알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고엘제도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 언급되어 관심이 많고 특히 룻기는 이 제도를 가장 잘 설명 해 주고ㅠ있다고 생각합니다.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고대근동의 몇몇 민족에게 유사한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형사취수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정식 결혼으로 봐야하나요. 아니면 대만 이어주는 것으로 봐야 하나요? 9절에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자식이 안 된다는 말은 아닌가요? 오래 전에 이런 해석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오난이 고민 끝에 동침은 하였지만 이제 잉태 되어 자식이 나면 후원인이 되고, 성장할 때까지 돌봐 주다가 성인이 되면 형의 권리를 물려 받게 되니 아버지 유다의 유산 중 오난의 몫의 일부가 다말의 아들에게로 갈 것을 생각하니 땅에 설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 25장에도 이 아이의 이름이 죽은 형을 잇게 될 것이니 사실은 자식을 낳는 것이 형을(?)낳는 결과가 아닌가요? 아내를 더 얻어 자식을 더 낳는 것이 결혼인데.... 그래서 저는 혹시 이것은 아내로 삼는다는 신명기 25장 5절의 원어가 정식결혼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어서 예를들면 아이가 성인이 되면 다시 결혼관계가 물러 지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죽어도 이것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구제하는 법도 있잖습니까?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최악의 수치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이 드니 이런 수치를 당하더라도 하기 싫은 일. 좀 저속한 표현으로 열 여자 마다 하는 남자 없다라는 말도 있고 당시에는 자식이 재산이었을텐데 왜 이렇게 까지 하며 거부할 일이었을까 해서 질문드리게 되네요. 한가지 더는 형제가 모두 죽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동침하는 일도 이 제도에는 없지만 몇몇 민족에게는 있었다고 하는데 유다와 다말의 그 일과 연관은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제 질문은 항상 왜 이리 장문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질문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려다 그런 것 같네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8장의 위치가 너무 어색하다는 주장은 몇몇 학자들이 했던 주장입니다. 그들은 창세기가 편집되는 가운데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왜 그렇지 않은지 몇가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우선 언약의 위기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위한 배치입니다. 장자권은 받은 요셉과 유다에게 언약이 성취되지 못할 위기가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려가 언약이 이루어지지 못할 위기, 그 다음에 유다의 위기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창세기의 흐름과 아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창세기의 이야기의 흐름을 언약백성이라고 본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다의 이야기는 뜬금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녀라고 번역된 창 38:15절의 단어의 어근은 "자나하"인데 음행에 헌신한, 창년가된, 이런 뜻이 있는 단어로 성경에 2번 사용됩니다. 창 38:15, 사 1:21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뜻도 이방신의 헌신한 신탁녀를 말합니다. 또 창 38:21절에 나타난 창녀라는 단어는 "퀘데쉬아"라는 단어로 창녀 또는 신탁녀를 말합니다. 성경에 38:21절에서 두번, 그리고 신23:17절에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둘다 같은 뜻으로보아도 무난할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다른 단어를 써서 유다가 어떤 생각과 의도였는지를 자세히 밝혀주는 의도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부끄러웠다는 의미는 현대인의 입장으로 해석한 것같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특히 유다가 살고 있는 이방 지역에서는 그리 흠이되거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사회적으로 동성애나, 이성애 또는 성적 타락은 타락이 아닌 일상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고엘 제도는 3가지가 있습니다. 상속된 땅, 계대, 그리고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유다의 경우는 계대에 해당하는 자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의 주요 목적은 자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유다의 아들 오난이 아들을 낳아도 호적상 형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룻기의 기준으로보면 오난은 자원해야 합니다. (룻 3:13)그러니까 오난은 충분히 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관계만 갖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난은 범죄한 것이죠. 고엘 제도는 정식으로 아내가 되는 제도입니다. 과부를 보호하고 대를 보하는 제도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족보상으로 형의 아들이 되지만 그때 아내를 버리거나 결혼을 물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동침은 동서양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입니다. 가끔씩 역사적으로 그런 사실들이 있지만 부끄러운 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성경은 이러한 것을 율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의 아들이 이러한 짓을하여 사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모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큰 범죄이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성경을 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흐름입니다. 다말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자연인 다말은 이방여인이었지만 유다의 가문에 시집온 후부터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종교적 행위나, 오고가는 말들 속에 그들의 신앙이 다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의 아들을 지키려고 다말을 친정, 이방으로 보냅니다. 자식도 없이 저주받은 여인으로 유다는 다말을 밀어넣고 있는 겁니다. 다말은 이것에 저항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탈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것이 시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는 겁니다. 계대결혼을 행하지 못하게 막는 유다에게 계대결혼을 요구하는 다말의 요구는 정당하니까요. 즉 다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남겠다, 살겠다는 믿음의 행위인 겁니다. 유교의 도덕관으로 보면 안 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성경을 볼때 세상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수있는 눈이 열리는것같습니다ᆢ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됩니다. 감사합니다.
와우 이본문 좀이해힘들었는 하나님의언약으로해석되네요 이제 구약읽을때는 하나님언야으로 큐티와묵상해야하네요 감사감사 축복해요 목사님
성경의 핵심주제가 언약관계 안에서의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 언약관계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말의 이야기가 나타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꾸준히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불편한 내용이기도 했고 매번 흘려읽던 38장인데, 덕분에 많은 것을 알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됩니다.
대박이네요
창세기읽으면서 왜 다말이 ....
이래저래 한글은 읽지만 이해는 잘못했고
그다말의자손 다윗 또 예수님으로 이어지는
것이 .....이런뜻이 있었군요
감사 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보람됩니다.
종합적인 맥락 가운데, 창세기를 바라보기! 다말이 오히려 유다를 구해준 거군요. 목숨걸고 그 복에 접붙임을 받으려는 그녀의 용기군요. 그걸 또 깨닫고, 인정하고 회개할 줄 아는 유다구요.
잘보셨습니다. 그래서 다말은 믿음의 여인이고 우리의 은혜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게해주는 여인입니다. 우리는 다말처럼 목숨걸고 구원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찌보면 다윗처럼 하나님에 합한자가 다말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알았던 여자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요.하나님의 언약을 분명히 알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죠.
정말감사합니다
깊이있는 성경해석
너무나쉽게 설명해주시니
이해가잘되네요
혼자듣기 너무아쉽네요
많은분들이 들었으면
좋겠네요~
다음장도 기대됩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변에도 추천해주시고 나누어 주십시오.
아....이 제도가 대를 잇는 제도로만 볼게 아니라 고아 과부 나그네를 돌보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심을 깨닫게 되어 참 기쁩니다.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겨 버려 다시 질문을 드립니다.
중요한 건 아니지만 궁금한 것이 죽은 형제의 아내를 내 아내로 맞아 자손이 나게 되면 장자가 당연히 죽은 형제의 대를 이을 것인데. 그 이후에 출산 하는 아이들은 누구의 자식이 됩니까?
그리고 아들을 낳지 못하고 딸만 낳으면 어떻게 되나요? 처음에는 룻기처럼 룻을 딸로 여겨 사위로 하여금 대를 잇는다고 가볍게 생각했는데 마태복음을 보니 그건 또 아닌것 같고 혹시 다른 성경구절로 이것을 알 수 있는 곳이 있나요?
이 제도는 신명기 25장 5-10절에 나타나있습니다. 요지는 대가 끊어져 기업을 받을 사람이 없어지게 하지 말하는 것입니다.
형의 이름으로 자식을 낳으면 의무가 다하기 때문에 그 다음번 자식은 자신의 후손으로 인정됩니다.
아들을 낳지 못하거나 딸만 있다면 민 27:7에는 데릴사위제도가 있습니다. 친족중에 사위를 얻어 그 집안에 대를 잇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그런 제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족보에 요셉은 아버지의 이름이 마태복음과 눅가복음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BibleTV 아 하.... 이리 딱 집어 주시니 한 번 더 살펴보고 정리해 두겠습니다. ^^
예수님은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함으로 이땅에 오셨는데 왜 예수님의 족보에 아브라함, 이삭, 야곱, 유다에서 요셉까지의 족보를 (마태복음} 연결하는 걸까요? 언약백성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 해야 하는지 설명 부탁 드립니다.
목사님의 설명은 하나님의 시선과 관점으로 성경을 잘 풀어주셔서 어려운 성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 받고 있습니다. 어떤 강해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가기가 쉽고 다가가기 편한거 같아요.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또 질문이 있습니다. 오늘은 시간이 좀 넉넉한지라. ㅎㅎ 답은 천천히 해 주세요.
창세기 38장은 좀 뜬금포 같이 느껴집니다. 위치가 좀 애매해요. 요셉의 이야기가 이어지다가 끼어 들어와서요.
그리고 이건 좀 나누고 싶은 이야긴데 38장 15절에 나오는 창녀와 21절에 나오는 창녀가 같은 원어가 아니죠. 관주를 보고 알았습니다. 즉 앞에 나오는 창녀는 몸 파는 여인 뒤에 나오는 창녀는 성소의 신탁녀 크데샤 제가 들은 바로는 유다가 창녀와 잔 것이 부끄러워 친구에게 차마 바로 말 못하고 빙빙 돌려 말한 것이라고 하던데, 딱 위기에 처하면 나오는 저의 모습 같다라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바른 해석인가요?
그리고 꼭 알고 싶은 것 중 하나가 고엘제도에 관한 것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 언급되어 관심이 많고 특히 룻기는 이 제도를 가장 잘 설명 해 주고ㅠ있다고 생각합니다.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고대근동의 몇몇 민족에게 유사한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 형사취수법에 대한 질문입니다.
이것을 정식 결혼으로 봐야하나요. 아니면 대만 이어주는 것으로 봐야 하나요? 9절에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자신의 자식이 안 된다는 말은 아닌가요? 오래 전에 이런 해석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오난이 고민 끝에 동침은 하였지만 이제 잉태 되어 자식이 나면 후원인이 되고, 성장할 때까지 돌봐 주다가 성인이 되면 형의 권리를 물려 받게 되니 아버지 유다의 유산 중 오난의 몫의 일부가 다말의 아들에게로 갈 것을 생각하니 땅에 설정을 한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 25장에도 이 아이의 이름이 죽은 형을 잇게 될 것이니 사실은 자식을 낳는 것이 형을(?)낳는 결과가 아닌가요? 아내를 더 얻어 자식을 더 낳는 것이 결혼인데....
그래서 저는 혹시 이것은 아내로 삼는다는 신명기 25장 5절의 원어가 정식결혼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어서 예를들면 아이가 성인이 되면 다시 결혼관계가 물러 지는 것인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죽어도 이것을 받아들이기 싫으면 구제하는 법도 있잖습니까?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최악의 수치를 받아야 하는데 이것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이 드니 이런 수치를 당하더라도 하기 싫은 일. 좀 저속한 표현으로 열 여자 마다 하는 남자 없다라는 말도 있고 당시에는 자식이 재산이었을텐데 왜 이렇게 까지 하며 거부할 일이었을까 해서 질문드리게 되네요.
한가지 더는 형제가 모두 죽어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동침하는 일도 이 제도에는 없지만 몇몇 민족에게는 있었다고 하는데 유다와 다말의 그 일과 연관은 있었는지도 궁금하네요.
제 질문은 항상 왜 이리 장문이 되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질문을 하게 된 계기를 설명하려다 그런 것 같네요.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38장의 위치가 너무 어색하다는 주장은 몇몇 학자들이 했던 주장입니다. 그들은 창세기가 편집되는 가운데 들어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영상에서 왜 그렇지 않은지 몇가지 이유를 밝혔습니다.
우선 언약의 위기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나타내기위한 배치입니다. 장자권은 받은 요셉과 유다에게 언약이 성취되지 못할 위기가 찾아 왔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팔려가 언약이 이루어지지 못할 위기, 그 다음에 유다의 위기라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창세기의 흐름과 아주 자연스럽게 배치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창세기의 이야기의 흐름을 언약백성이라고 본다면 아주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기 때문에 지금까지 유다의 이야기는 뜬금없어 보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창녀라고 번역된 창 38:15절의 단어의 어근은 "자나하"인데 음행에 헌신한, 창년가된, 이런 뜻이 있는 단어로 성경에 2번 사용됩니다. 창 38:15, 사 1:21 이렇게 사용되었습니다. 이 뜻도 이방신의 헌신한 신탁녀를 말합니다.
또 창 38:21절에 나타난 창녀라는 단어는 "퀘데쉬아"라는 단어로 창녀 또는 신탁녀를 말합니다. 성경에 38:21절에서 두번, 그리고 신23:17절에 사용되었습니다.
결국 둘다 같은 뜻으로보아도 무난할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다른 단어를 써서 유다가 어떤 생각과 의도였는지를 자세히 밝혀주는 의도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부끄러웠다는 의미는 현대인의 입장으로 해석한 것같습니다.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특히 유다가 살고 있는 이방 지역에서는 그리 흠이되거나 부끄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로마 시대에도 사회적으로 동성애나, 이성애 또는 성적 타락은 타락이 아닌 일상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고엘 제도는 3가지가 있습니다. 상속된 땅, 계대, 그리고 원수를 갚는 것입니다. 유다의 경우는 계대에 해당하는 자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이것의 주요 목적은 자손을 이어주는 것입니다. 유다의 아들 오난이 아들을 낳아도 호적상 형의 아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룻기의 기준으로보면 오난은 자원해야 합니다. (룻 3:13)그러니까 오난은 충분히 이를 거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관계만 갖고 의무를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난은 범죄한 것이죠.
고엘 제도는 정식으로 아내가 되는 제도입니다. 과부를 보호하고 대를 보하는 제도입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족보상으로 형의 아들이 되지만 그때 아내를 버리거나 결혼을 물리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동침은 동서양 보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화입니다. 가끔씩 역사적으로 그런 사실들이 있지만 부끄러운 흠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성경은 이러한 것을 율법으로 금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의 아들이 이러한 짓을하여 사악한 자가 되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는 모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큰 범죄이고 부끄러운 일입니다.
@@BibleTV 너무 감사합니다. 죄송하게도 제가 운전하다가 들어서 앞부분을 제대로 못들었는데 아침에 보니 상세히 설명을 해 주셨네요. 저는 7일을 일해서 요즘 주일 예배를 못드립니다. 아침에 이 말씀 묵상하며 예배드릴께요. 감사합니다.
@@rush1938 일하시냐 고생이 많으십니다 늦은 시간까지 일하시고 매일 일하시니 힘드시겠습니다. 힘내시고 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하시길 기도하겠습니다. 건강도 잘 챙기세요.
그래서 성경은 무언가 난잡하다는 제 좁은 지식은 그런생각도 듭니다 헷갈린답니다 어떤 목적을 위해 하는 나쁜짓은 인정해도 된다는건지
성경을 보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믿음의 흐름입니다. 다말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자연인 다말은 이방여인이었지만 유다의 가문에 시집온 후부터는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곳에서 행해지는 종교적 행위나, 오고가는 말들 속에 그들의 신앙이 다말에게 영향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자기의 아들을 지키려고 다말을 친정, 이방으로 보냅니다. 자식도 없이 저주받은 여인으로 유다는 다말을 밀어넣고 있는 겁니다. 다말은 이것에 저항한 것이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탈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냅니다. 그것이 시아버지의 아이를 임신하는 겁니다. 계대결혼을 행하지 못하게 막는 유다에게 계대결혼을 요구하는 다말의 요구는 정당하니까요.
즉 다말은 하나님의 자녀로 남겠다, 살겠다는 믿음의 행위인 겁니다. 유교의 도덕관으로 보면 안 됩니다.
계대결혼은 정당한 겁니다. 룻과 보아스도 계대결혼으로 예수님의 육신적인 조상을 낳기도 했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