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가 시작된 곳 천문령과 동모산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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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6 ก.ย. 2024
  • 이 영상은 대진국 발해의 시작점인 영주(營州)와 천문령(天門嶺), 동모산(東牟⼭)과 태백산(太白山)의 위치에 대한 탐구물입니다.
    이 영상은 김기홍 선생님의 저서 "삼국사기 바로알기"와 전우성 선생님의 "우리 고대국가 위치를 찾다"에서 많은 부분을 인용했다는 것을 알려드립니다.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56

  • @polarconeararcarkarch6618
    @polarconeararcarkarch6618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영상과 설명 감사히 잘봤습니다. 아귀가 딱맞게 간결하게 간추린 내용과 중립적인 설명톤이 참 깊은 설득력이 있습니다.

  • @user-ks4tu1xy3j
    @user-ks4tu1xy3j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좋고 귀한 영상 잘 듣고 갑니다 우리역사를 밝히는 일에 앞장서 주시님 오든부분이 감사할뿐입니다 고맙습니다

  • @davekim7777
    @davekim7777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8

    모든게 씨줄 날줄이 맞아들어가고 있습니다. 문사님도 고생이 많으시고 감사합니다.
    (KCI등재) 발해, 요동(만리장성)은 하북성 남부 - 고조선 국경규명 논문소개. 라고, 유투브 검색해보세요.

  • @이기용-p6l
    @이기용-p6l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8

    발해. 이해가 쏙쏙 !
    백제땅을 신라와 발해가 나누어 가졌다.

  • @uhmmaa3
    @uhmmaa3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우리의 역사를 찾는데 큰 배움을 받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 @열려라참깨-n3h
    @열려라참깨-n3h 2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재야 사락자들은 동모산을 흑룡강쪽에서 찾는다.왕성이 나왔다고. 한심한 학자들, 태행산맥에 모산이 아직도 남아있다.

  • @열려라참깨-n3h
    @열려라참깨-n3h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석가장시 바로 위에 현재도 모산이 있다.
    발해의 초기 수도 동모산이다.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아래에 석가장시 융흥사와 관련해서 명나라 당시의 자료 2개를 게시한다. 순서대로 , 의 것으로 진정부(眞定府) __오늘날 석가장시 정정현에 해당하는 지역__ 에 있었던 용흥사 즉, 지금의 석가장시 융흥사에 대한 기록이다. 끝의 것 (3)은 청대의 로 앞의 두 자료와의 비교용으로 덧붙였다.
    아래 해설을 요약하면 명대의 용흥사는 오늘날의 융흥사로 얘기되는 청대의 용흥사보다 이른 시기의 송대에 창건된 절이고 중수 년도 역시 판이한 것을 알 수 있다. 대불상의 조성 년도 역시 훨씬 앞서고 무엇보다 용장사에 대한 언급이 일절 없다. 이러한 기록들을 근거했을 때 과연 현재의 석가장시 융흥사가 수나라때 세워진 용장사를 계승한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원래 용장사가 생길 때부터 함께 있던 용장사비가 이를 새로 계승했다는 절이 지어진 후에도 왜 더 90여년을 바깥을 떠돌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이 자료가 믿을 만하다고 생각되면 여기저기 복사해서 전파해 주셨으면 합니다. 더 이상 융흥사를 빌미로 석가장시를 영주(營州)라고 주장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래도 주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중국 위키 따위가 아닌 진짜 사료를 갖고 반론을 펼치기를 기대합니다.
    -------------------- 설 명 -----------------
    (1) 명대의 자료를 보면 용흥사(이하 명대 용흥사)는 송나라때 세워진 절로 주원장이 왕으로 있던 明 홍무(洪武, 1368-1402) 초기에 중수(重修)를 했다. 특히 환우통지(寰宇通志)를 보면 절의 창건 후 관음각, 대불상 등을 조성했는데, 모두 송나라 조광윤이 왕으로 있던 건덕 년간(乾德, 963-968)의 일로 기록하고 있다. 사찰의 창건은 건덕 이전임을 알 수 있다.
    (2 ) 청대의 자료를 보면 용흥사(이하 청대 용흥사)는 송나라 개보(開寶) 4년(971)에 중건(重建)했고 대불상 조성은 중건 이후의 일로 기록되어 있다. 또 元 대덕(大德) 5년(1301)에 중수하고 明 만력(萬曆) 4년에 대비각을 중수했다고 한다.
    -------------------- 원문 사료 -----------------
    (1) 龍興寺
    在府治東 後有觀音閣高數百尺 規模宏壯 爲一郡勝觀 內貯銅佛像一其高幾與閣等 俱宋乾德中造 國朝洪武初重修 僧綱司在焉
    -寰宇通志, 明景泰間內府刊初印本 - :: 창건 후 宋乾德(963-968) 中 관음각 및 대불상 조성, 明洪武 초기 중수
    (2) 龍興寺
    在府治東 宋建 後有大悲閣內鑄銅佛象高與閣等 本朝洪武初重修
    -寺觀, 眞定府, 卷3, 大明一統志, 天順5年刊 - :: 宋建, 明洪武 초기 중수
    (3) 龍興寺
    在府治東。隋開皇六年建,初為龍藏寺。創建之日,天降異香。恆山刺史鄂國公王孝[人+零]有碑記。宋開寶四年重建。後有大悲閣內鑄銅佛像,高與閣等。宋太祖曾幸之,繪像于閣西 元大德五年重修 明萬曆四年重修大悲閣 置都綱司于內。
    -眞定府, 寺觀, 祠祀, 卷9, 畿輔通志, 清康煕22年刊 - :: 隋開皇6年 창건, 宋開寶4年 중건, 元大德 5년 중수, 明萬曆 4年 大悲閣 중수

  • @이세진-q5o
    @이세진-q5o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영주와 평주 추가 설치, 평로 절도사, 노(로)룡, 어양, 상곡, 임유관, 탁군, 요동, 요서, 연주, 안평, 서안평.....결국 현재 석가장시 북쪽 호타하 주변에서 형북 형남을 가르는 안문관 주변, 진양이라고도 했던 태원과 북쪽의 대동시 부근의 선비 거란 중심지와 그 동쪽의 고구려 사이의 관계를 잘 보야야겠네요.....

  • @user-gz8su1fp1e
    @user-gz8su1fp1e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요즘 댓글이 만주 사관자분들
    반발이 좀 있군여😅
    전엔 만주사관 논리도 영상으로 다루다
    요즘엔 대륙사관 으로 쭉가니...
    저는 대륙사관 이지만ㅎ

  •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ancient-history.youtubecreator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6

    수고 많으셨습니다 ^-^

  • @happyhan608
    @happyhan608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4

    😅❤

  • @lyongduc9361
    @lyongduc9361 28 วันที่ผ่านมา

    고구려는 북경일대 ( 하북성) 과 산동성 산서성 일대가지엿다는게 잘혀진곳이다 연개소문과이세민은 전투기록도 산동성에 가장많다

  • @badapic
    @badapic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 대진국(세칭 발해)의 건국지에 대한 의견이므로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초기에는 작은 나라이다가 금방 나라가 커지는 스토리를 고구리와 백제에서 충분히 알 수 있으니까요.

    • @badapic
      @badapic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 처음부터 큰 나라(차이나동해안+홍산문명지역+몽골대초원+만주+한반도)였던 것은 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것은 단군왕검의 아버지 거불단환웅(번조선+진조선 영역 확보)과 웅국의 여왕(웅녀군, 막조선 영역 확보, 만주+한반도)의 혼인 동맹으로 물려받은 땅이니까 가능했던 것이죠.

    • @badapic
      @badapic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 대진국이 단기간에 급성장한 이유도 고구리와 백제와 마찬가지로 을 통해서 입니다. 대진국이 건국했다고 문사님이 주장하는 지역은 흔히 Y벨트라고 부르는 오르도스 동부의 통로를 장악할 수 있는 지역입니다. 유목지역과 중원의 농경지역을 연결하는 지역이지요.

    • @badapic
      @badapic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하지만 영토는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뺏고 빼앗기는 것이 가능하죠. 문사님의 의견대로 산서성 북부에서 대진국이 시작하지만 이 지역을 상실했다가 당이 으로 저물어가는 시점에 회복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는 에서 학자들이 라고 부르는 국가가 이 시기에 자립한 기록이 나옵니다.

    • @badapic
      @badapic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 《삼국사-김부식》 『흥덕왕 2년(CE 827), 고구려의 중 구덕이 당나라에 갔다가 불경을 가지고 오자 왕이 여러 절의 중을 소집해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이 는 CE 9세기에 에 흡수됩니다. 이때에 은 까지 진출한 것으로 차이나 방면으로 진출한 최대국경선인 것입니다.

  • @황야의개마무사
    @황야의개마무사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8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으로 불러주세요!!

  • @붉은노을-y7v
    @붉은노을-y7v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7

    문사 채널을 누구에게 넘기셨는지 명확히 밝혀주시는 것이 도리 입니다.

    • @kimjeonghuun8665
      @kimjeonghuun8665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동감입니다.

    • @이병정-q2w
      @이병정-q2w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채널을 넘겼다구요?

  • @이기용-p6l
    @이기용-p6l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신라 고기?
    처음 듣습니다.

  • @rock1564_naver_
    @rock1564_naver_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항상 감사합니다.

  • @hae-meo-sum
    @hae-meo-sum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영상 잘 봤습니다. 여기서 만주 일대에 자리잡은 정효공주묘와 연해주 크라스키노 염주성 유적과 같은 역사의 흔적은 어떻게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륙 사관이 자칫 차이나 한족이 깔아둔 데서 역사 공정 당하는 자리에 서게 되니까요. 물론 고구려연구재단이 동북아역사연구재단으로 기구가 정비되며 미리 가있던 일본사 전공자에 의해 좌지우지 된 사례도 잊어서 안되지만 말이죠. 역사 분쟁 첨예하다 봅니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현재 볼 수 있는 고지도에는 만주와 한반도는 나타나지도 않죠… 그때 중공인들은 몰랐거나 관심도 두지 않던 땅이라고 추측가능하죠… 그러니 스스로 사료를 찾아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님의 질문이 하늘을 가리치며 하늘이 어딘지 묻는 것과 같다는 것을…

    • @hae-meo-sum
      @hae-meo-sum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중공인은 현대 21세기 기준으로 정치 이념에 혼탁된 개념으로 차이나 사람을 부르는 건데, 현대사 개념을 고대사 영역으로 끌고 오는 의도가 뭔가요?

    • @유유자적-h7o
      @유유자적-h7o 3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현재중원에 주인은 역사적으로 북방민족이 번갈아가며 이룬역사이고 남방민족은 그때마다 피지배층이였음
      최근100년전 청나라가 망하면서 거대한땅을 물려받은 노비인겁니다
      노비가 갑자기주인이 되었는데 눈을씻고찿아봐도 모든역사가 자신을 너는노비다라고 말하고있는상태입니다
      동북공정을 하는이유지요
      왕릉을발굴하다 다시덮는이유를 생각해보세요 자기역사면 발굴해서 홍보해야지 왜 덮습니까? 문화혁명때 고서는 왜다불태워버립니까? 자기들에 역사가 아니라고 쓰여있기때문입니다

  • @AlexLee-ob5uf
    @AlexLee-ob5uf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발勃,渤의 본 뜻은 물이 샘솟는 곳으로 고서에는 감숙성과 섬서성에서 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 @user-nf1pg6zk4i
    @user-nf1pg6zk4i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중국의동북공정이글을쓴사람들은아시아공정인가역사를이야기하려면진장성에기하여야논리에맞지안을가요

  • @user-bh8mk5hy7y
    @user-bh8mk5hy7y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8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인데 이런 분석이 왜 필요할까요? 역사는 속지주의가 아니라 속인주의로 볼 때 제대로 보입니다

  • @nocentman
    @nocentman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발해는 카스피해입니다.

  • @김무헌-c2y
    @김무헌-c2y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

    고구려 .발해가 .....지금의 중국 하북성과 산서성에 있었다면 ....... 같은 시기에 만주에는 어떤나라가 있었습니까 ???
    만약에 ..... 문사에서 말하는 고구려.발해가 ..... 중국땅에 있었다면 ...... 이 역사가 우리의 역사일까요 ???

    • @user-pt6un2vf2v
      @user-pt6un2vf2v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7

      만주에는 동신라의 영역이었죠

    • @Gogury
      @Gogury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10

      우리역사죠 그동안 왜곡됀 역사를 배워온게 맞읍니다

    • @user-dv4dt1eb9q
      @user-dv4dt1eb9q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미친.

    • @동이강-t5k
      @동이강-t5k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5

      대진의 유민이 여-진으로 진의 후손/유민 민족이란 뜻인! 중화 본인들이 이리 지정했고. 사서에 지들이 기록했고. 여진은 옛 조선 고리 후손의 맥고리.신라. 백제.고려.몽골.선비 말갈.부여.예와맥이 뿌리가 같아. 서로 언어.문화.예절.음식.
      의복.조상이 통한다.

    • @undaunted3202
      @undaunted3202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하하하 웃고 갑니다.

  • @youseungzo1880
    @youseungzo1880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여자분 같은데 엄청나게 현명한 여신이시네요

  • @2f5lofbread57
    @2f5lofbread57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3등

  • @user-pt6un2vf2v
    @user-pt6un2vf2v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안록산이 산서성 태원에서 내몽골 지역까지 갔다는건 말이 안되지요.... 하북성 석가장시 정정현의 융흥사는 요서군을 방증하는 유물이구요..

  • @youseungzo1880
    @youseungzo1880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3

    원래 국명이 대진국입니다

    • @로렌-q1t
      @로렌-q1t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2

      고리 입니다. 좀 알고 쓰세요 일본왕에게 보낸 국서에도 고리 왕 흠무가 말한다. 라고 명백히 나와 있습니다. 좀 알고 이런거 써요 ㅉㅉㅉ

    • @ytsyso
      @ytsyso 4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일본이백재이고백재가일본이다

  • @youseungzo1880
    @youseungzo1880 5 หลายเดือนก่อน

    www.youtube.com/@booksbogo 책보고 홍보 아니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