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누구의 것이냐?" 이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글자 한자의 발생시기도 위 문화와 문명의 연대와 비슷합니다. 한자(글자)가 중국 것이 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뿌리와 진실은 언제가는 밝혀집니다. 事必歸正 사필귀정 처음에는 是非(시비)를 가리지 못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正理(정리)로 돌아간다.
요즘은 이렇게 인터넷에서 배우는게 더 나아요. 역사학자라는 분들 아무것도 안 하거든. 요하지역에 홍산, 백두산의 다른 이름 불함산. 중국의 만리장성 바깥은 오랑캐의 지역으로 여겨졌는데 거기서 중화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있었는데, 그걸 홍산문화라고 지칭했고 중국보다 우리와 더 연관성이 있다.
@@郭小梦 중국분이 관심도 다 가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북한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문화를 논할 처지가 안될테니 중국에서 좀 도와주시면 좋아하겠죠.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측 기록이 없는게 문제죠. 처음에 발견했을때도 관련 기록이 없어서 중국측에서는 "신비의 왕국"이라고 했으니 할말없죠? 물론, 지금이야 중국땅이니 '전부 중국꺼'라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거죠. 공부좀 해 보세요 ; )
진흙으로 도자기 세라믹 타일을 만들고 밀로 흰빵을 만들어 먹고 풍요의신 다산의신을 둘 정도로 풍요로운게 문명입니다 티그리스 이집트만 봐도 그 수준이 상상하기 힘들진데 농경이 그것도 문화 수준도 의심 받는 지역을 너무 띄우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명하신 시기에 동이는 요동 요서가 아니라 제땅입니다
개인적으로 환단고기는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역사서들을 짜집기한거라고 봅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과거 한반도 요하 산동반도 중간에 고대문명이 존재했을거라고 봅니다 소하서문명보다 더 오래된...소하서 바로전인 지금부터 10000년전에는 서해, 발해만은 육지였었죠. 이쪽으로 요하 한강 황하 모든 거대한 강들의 물줄기가 흘렀고 강 상류의 모든 영양소가 모이는 엄청나게 비옥한 땅이었을겁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등의 문명은 소하서보다 거의 3~4000년후의 문명입니다.
제의 동북지역이 요하지역임. 전혀 연관이 없는 곳.중국 역사의 출발인 춘추전국시대의 무대도 제에 국한됨.그 동북쪽은 그들이 말하는 오랑캐 지역. 문명의 발생과 거대, 선진 문명의 발달과는 다른 이야기임. 현대적 관점으로 봐서 요서지역은 황하지역이나 양장강 지역과는 다른 핸디캡이 있음. 요서지역은 비가 오면 물줄기가 바뀌는 등 항시 경작이 어려웠고(생산력이 낮음), 그 동북지역은 초원지대라 농경이 불가능하여 유목생활을 하던 지역이었음(인구 밀집이 불가능). 이러한 이유로 문명의 발생은 빨랐지만 거대 문명으로의 발달이 안 됐으며, 높아지는 농업생산력에 따른 인구의 증가 등이 이루어졌던 황하문명 세력에 밀리게 된 것이라 생각됨. 참고로 중국 역사책은 전부 날조, 창작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옳은 역사 연구 이해 방법이라고 생각함. 집권 세력의 통치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개인적으로 편찬한 것이라도 권력 유지에 유리했으므로 살아남은 것임. 예로, 중국 문명은 황하지역에서 태생됐다고 하지만 사천성의 사천분지 지역이라는 학설도 나옴. 뿐만 아니라 황화유역만이 아니라 양자강 유역에서도 오래된 문명이 발견되고 있음. 황하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이고 중국 문명의 근원이라는 것은 소설임. 역사는 오직 발굴과 고증에 그 바탕을 둬야 함.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기존의 이론은 얼마든지 뒤집혀야 된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 홍산문화, 요하문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됐다고 봄. 개인적 사견이지만, 역사 연구는 학문적으로 보아 과학보다도 늦은 분야라고 생각됨. 학문으로서의 대상이 아닌 기록과 통치 목적의 필요성에 의한 편찬의 분야였다고 생각됨. 고고학과 발굴 및 복권 기술, 기록 기술(컴퓨터) 등의 발달과 함께, 출토 발견된 유물에 대한 해석과 정치적 관점을 제거한 것이 올바른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됨. 학문엔 민족, 정치 이런 거 다 빠져야 함. 오직 진실
진정한 우리의 역사를 널리 알려야할 우리 시대의 의무이자 숙명입니다.
오늘도 뜻깊은 역사 강의 아주 잘 시청했습니다. 강추합니다.
쏙쏙쏙 머리에 들어 옵니다
감사합니다~~
잘 정리된 내용
"과거에 누구의 것이냐?"
이 문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알고 있어야 어떤 일이든 할 수 있습니다.
글자 한자의 발생시기도 위 문화와 문명의 연대와 비슷합니다.
한자(글자)가 중국 것이 된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뿌리와 진실은 언제가는 밝혀집니다.
事必歸正 사필귀정
처음에는 是非(시비)를 가리지 못하더라도
모든 일은 결국에 가서는 正理(정리)로 돌아간다.
현재의 기술로는 발굴할 수 없다. 미래세대에게 맡기자? 이 말은 진시황릉 발굴에서도 중국이 한 말인데, 고로 이 유적들은 한족과는 관계가 없다는걸 알았기 때문이다.
요즘은 이렇게 인터넷에서 배우는게 더 나아요. 역사학자라는 분들 아무것도 안 하거든. 요하지역에 홍산, 백두산의 다른 이름 불함산. 중국의 만리장성 바깥은 오랑캐의 지역으로 여겨졌는데 거기서 중화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있었는데, 그걸 홍산문화라고 지칭했고 중국보다 우리와 더 연관성이 있다.
红山文化都没到朝鲜呢😂
@@郭小梦 중국분이 관심도 다 가져 주시니 감사합니다. 북한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문화를 논할 처지가 안될테니 중국에서 좀 도와주시면 좋아하겠죠. 홍산문화에 대한 중국측 기록이 없는게 문제죠. 처음에 발견했을때도 관련 기록이 없어서 중국측에서는 "신비의 왕국"이라고 했으니 할말없죠? 물론, 지금이야 중국땅이니 '전부 중국꺼'라고 해도 상관없겠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거죠. 공부좀 해 보세요 ; )
@@0591john那中国古籍中还没记载贾湖文化,仰韶文化,河姆渡文化,半坡文化,石家河文化,良渚文化呢,你怎么不说这些也不是中国的?😂
@@0591john那跟你们韩国又有什么关系呢?🧐
@@0591john你们不会连东夷指的是什么都不清楚吧?😂
고대에 엄청난 역사를 가진 한민족이ᆢ그 누구도 아닌 한민족 자신들이 그 역사를 지워버렸으니ᆢ이런 민족이 세계사적으로도 있는지?ᆢ의문이?ᆢ
이미 우리땅이 아니지않는가??우리가 자유로이 갈수있을때까지 함구하고있는게 나을듯~~
환단고기가 역사서로 인정돼었나?
진흙으로 도자기 세라믹 타일을 만들고
밀로 흰빵을 만들어 먹고 풍요의신 다산의신을 둘 정도로 풍요로운게 문명입니다 티그리스 이집트만 봐도 그 수준이 상상하기 힘들진데 농경이 그것도 문화 수준도 의심 받는 지역을 너무 띄우는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명하신 시기에 동이는 요동 요서가 아니라 제땅입니다
개인적으로 환단고기는 기존에 존재하던 여러 역사서들을 짜집기한거라고 봅니다만 그것과는 별개로 과거 한반도 요하 산동반도 중간에 고대문명이 존재했을거라고 봅니다 소하서문명보다 더 오래된...소하서 바로전인 지금부터 10000년전에는 서해, 발해만은 육지였었죠. 이쪽으로 요하 한강 황하 모든 거대한 강들의 물줄기가 흘렀고 강 상류의 모든 영양소가 모이는 엄청나게 비옥한 땅이었을겁니다. 메소포타미아 이집트등의 문명은 소하서보다 거의 3~4000년후의 문명입니다.
제의 동북지역이 요하지역임. 전혀 연관이 없는 곳.중국 역사의 출발인 춘추전국시대의 무대도 제에 국한됨.그 동북쪽은 그들이 말하는 오랑캐 지역.
문명의 발생과 거대, 선진 문명의 발달과는 다른 이야기임.
현대적 관점으로 봐서 요서지역은 황하지역이나 양장강 지역과는 다른 핸디캡이 있음.
요서지역은 비가 오면 물줄기가 바뀌는 등 항시 경작이 어려웠고(생산력이 낮음), 그 동북지역은 초원지대라 농경이 불가능하여 유목생활을 하던 지역이었음(인구 밀집이 불가능).
이러한 이유로 문명의 발생은 빨랐지만 거대 문명으로의 발달이 안 됐으며, 높아지는 농업생산력에 따른 인구의 증가 등이 이루어졌던 황하문명 세력에 밀리게 된 것이라 생각됨.
참고로 중국 역사책은 전부 날조, 창작물이라고 생각하고 접근하는 것이 옳은 역사 연구 이해 방법이라고 생각함.
집권 세력의 통치 목적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고, 개인적으로 편찬한 것이라도 권력 유지에 유리했으므로 살아남은 것임.
예로, 중국 문명은 황하지역에서 태생됐다고 하지만 사천성의 사천분지 지역이라는 학설도 나옴. 뿐만 아니라 황화유역만이 아니라 양자강 유역에서도 오래된 문명이 발견되고 있음. 황하문명이 세계 4대 문명의 발생지이고 중국 문명의 근원이라는 것은 소설임.
역사는 오직 발굴과 고증에 그 바탕을 둬야 함.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면 기존의 이론은 얼마든지 뒤집혀야 된다는 열린 마음이 필요.
홍산문화, 요하문화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됐다고 봄.
개인적 사견이지만, 역사 연구는 학문적으로 보아 과학보다도 늦은 분야라고 생각됨. 학문으로서의 대상이 아닌 기록과 통치 목적의 필요성에 의한 편찬의 분야였다고 생각됨.
고고학과 발굴 및 복권 기술, 기록 기술(컴퓨터) 등의 발달과 함께, 출토 발견된 유물에 대한 해석과 정치적 관점을 제거한 것이 올바른 역사의 출발점이라고 생각됨.
학문엔 민족, 정치 이런 거 다 빠져야 함. 오직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