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전을 그저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하면 그 고지 딱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고지가 감제하는 해당 반경 수km~수십km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해야 합니다.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김일성이가 6.25때 이 백마고지를 빼앗기고 3일 밤낮을 울었다고 합니다. 이 백마고지가 중요한 가장큰 이유는 철원 평야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98군번 3사단 수색대대 출신입니다. 군생활 시절 꼭 한번 백마고지쪽 DMZ로 파견되서 가보고 싶었는데 5사단쪽이라 못갔습니다. (6사단쪽은 몇번 가 봤습니다)
그곳에서 이십대 청춘을 보낸지도 어너듯 40 년이 흘렀음니다 자나깨나 항상 그곳에 맘이 같이 함니다 그리운 시절 그리운 전우 ㆍ청춘 푸른제복 그립고 영상 감사 함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 도 추위와 싸우며 철통 경계근무 서고 있을 열쇠부대 후배들 및 전 육군 군인분들 감사 함니다 단 ~~ 결 !!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는 (Iron triangle: 남서쪽의 철원, 남동쪽의 김화, 북쪽의 평강)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자 교통결절점입니다 2.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3. 경원선이 관통하여 서울-원산의 중간 지점이며 내금강으로 가는 금강산선이 분기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맛있는 쌀이 나 농업에 유리하고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입지입니다 6. 서울로 향하는 남북축 주요 통로 3개와 (3번 국도, 43번 국도, 47번 국도)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내륙 통로가 동시에 갈라집니다 7.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토산, 금천, 신계, 평산)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오가는 통로의 관문이자 길목입니다. 8.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추가령 구조곡= 철원-원산 축선) 황해도 방면으로 (곡산 회랑 = 방원령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분단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철원 지역은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백마고지(395고지), 화살머리고지는 모두 철원읍, 철원평야 중부의 북서쪽에 위치해 철원평야를 감제합니다. 두 고지의 오른쪽으로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 및 추가령구조곡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두 고지의 바로 아래에는 철원읍에서 안협(북한 철원군 철원읍)을 거쳐 토산 시변리로 가는 통로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로는 안협에서 평강으로 가는 좁은 계곡길 (구룡강을 따라 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두 고지를 먹냐 뺏기냐는 고지 주변을 지나는 여러 통로들을 감제하고 지키느냐의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았죠
어마어마한 열쇠부대 선배님들이 계시네요! 정말 기분 좋네요. 저는 89년 2월 입대해서, (당연히) 5사단 포병 988대대 B포대에서 근무했습니다. FDC였고요. 머리가 나빠서 엄청 고생했죠~^^ 많이들 보고 싶네요. 결코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싫지만~ 이 무슨 모순일까요?ㅎㅎ
우리가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게 됨으로서 얻는 이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철원평야 중부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2. 철원-김화 간 동서 통로를 안전히 이용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3. 토산(시변리)-안협-철원 간 동서 통로를 북한이 이용하지 못하게 차단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이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4. 안협-평강 간 통로를 북한이 방어하고 유지하지만 전선에 가깝고 두 고지에서 움직임을 감시하므로 북한이 이 통로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5. 북한의 감제고지를 고암산(김일성고지)으로 후퇴시킵니다
76-79년도 34개월 6사단 2연대 겨울에는 영하 32도 까지 내려간적 있었음ㆍ문혜리.하지리. 훈련도 엄청나게 빡세고 그당시는 군대는 남자들의 지옥이라고 생각 했드랬는데, 어느덧 70줄에 들어서고보니 그시절이 그립네요ㆍ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같이 고생했던 전우들의 모습은 새록새록 기억에 남아있음ㆍ
@@전인표-n6z 아이고!!! 반갑습니다. 비슷하네요 74. 4월 ~ 77. 2월 입니다. 27연대 1대대 3중대 소총수.... 여주 대신면 장풍리.... 어제 일 같이 새록새록 하네요. 개군 상자포리, 하자포리를 완전군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용문산 유격장, 공수훈련장으로 고생스럽게 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훈련도 빡샜고 배도 고팠고... 그렇게 삭막했는데도 제대때 후배들과 인사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그때 고생이 자양분이 되어서 사회에서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연금생활자로 편안한 노후.... 무망하지만 님을 우연히 만나서 대포라도 한잔하는 꿈을 꿔 봅니다. 인표님 건강하십시오!!!
자기들이 승리한 전투들을 강조하는 중공도 백마고지 전투만큼은 철저히 패배한 것을 인정할 정도로 국군이 힘들고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낸 고지입니다 ㅋ 백마고지가 왜 이렇게 양쪽 다 사활을 걸고 얻으려 했는지는 군사지리적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은 고지이기 때문이며 왜 그런지 관련 지식들은 매우매우 많답니다 ㅋ
내가 이곳에 근무했던 기억이 어느덧 사십년이 넘었네 당시 사단장이었던 김복동장군은 훈련은 전투와같이 전투는 훈련과같은 구호로 제대할때에 태권도 유단자의 자격을 받았고 사격은 95%사격명중 했다 이렇게 훈련통해강한 사단이 되었다 지금도 과거를 돌아본다 특히 김복동장군은 신뢰를 받는 장군이었다 아마 12.12시 에도 개입하지않은 장군으로도 유명했고 노태우와친구며 처남매부로 군인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 장군이었다
5사단 전차대대 94년 1월 군번입니다. 여기 5사단 전우분들 많으시네요. 연천, 전곡, 포천, 철원 등등 훈련하러 무지하게 다녔는데 그때는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했던거 같습니다. 논산에서 후반기 교육 못받고 바로 자대배치 받았는데 3월 초인가 사단 보충대에 도착 했을때 바로 붙어있는 35연대인지 36연대인지 GOP 교대들어가고 나오는지 연병장이 무슨 전쟁터 같더라구요. 머리 위는 헬기가 무슨 진짜 전쟁난것처럼 날라 다니고.. 30년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자식같은 우리 후배님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하시기 바랍니다.
@@yhy2025 네!저 보다 1년 6개월 선배^이시군요,고생많았습니다, 그 시절 그 청춘!다 가고 이제 노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덕현리 기억이 새롭게 떠 오릅니다,우리 중대는 구보 중대로 뽑혀 중대 정문에서~용문사 까지 왕복 매일 같이 구보,특히 저희 소대는 화기소대^이고 저는 57미리 무반동총^반장 겸 내무반장^을 했었는데 중대 제일 앞에 우리 화기소대 60미리 박격포와 무반동총을 메고 뛰어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5사단36연대 3중대에서 100으로 근무하다 78년도 사단 교체시 바로g0p에서 6개월 근무하고 전역하였는데,양평에서의 근무가 고되었어도 더 기억에 남는군요. 김. 복동 사단장님, 대단하신 분이지요. 무자비한 교육훈련이 지휘지침이. 첫 번째 아니던가요? 아무튼 5사단 뿐 아니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모든 제복의 군인들이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대대장 월북으로 5사단과 교체한 20사단 시절 신망리 ,대광리에서" 75년에서 77년말"까지 근무를 했습니다 사단사령부는 전곡에 있었고 60연대 정훈과에서 군복무를 하다 제대를 하였습니다 대대장 월북은 내가 병장 달고 제대 1달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월북한 대대장 유윤학 중령 이름도 안 잊혀집니다 연대 작전주임으로 근무하다 1대대장으로 가서는 사고를 쳐서 제대말년에 고달펐습니다 ㅎ 신망리 대광리를 가본다하면서도 못가고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반갑습니다 73년도에 20사단60연대 근무했습니다 처음 근무한곳이 신탄리역 옆2중대 근무했는데 그때는 역에서 노동당사 가는길쪽에 철마는달리고싶다 펫말이 있었는데 그리고 당시에는 고대산에 벙커작업 정말 많이 했습니다 모래 시멘트 엄청나게 지고 올라갔습니다 GOP근무때는 백마고지가 보이는곳에 6사단과 합동관망대가 있었는데 또한 철원대마리쪽에 12초소가있었고 민통선 주민들농사하러 들어올때 검색하는 태양초소가 있었는데 주민분들 들어오시면서 얼음띄운 막걸리에 꿀을타서 주고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태양초소 근무할때 육영수여사님 서거하셨어 비상걸려 정말 심각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때의 전우들 건강하신지 같은소대까지 배속받은 동기가있는데 제대하고 결혼해서 같은아파트에 살았는데 뭐가 그렇게도 바쁜지60도 못살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아들결혼시키고는 얼마되지않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80년대 회바에서 지오피 이동하니 부대 내에 이십사단 마크 비석등 흔적들이 있더군요 후에 대대장 월북사건 으로 ~~~ 친구삼촌 분이 이십사단 수색대 나오셨다 해서 이야기 하다보니 우리시절 지오피 첫통문 백마고지 가는길 화랑고개 옆 좌측에 전초 부대가 있었는데 그기가 삼촌이 근무했던 곳이더 군요 저희들 시대보다 더 힘들게 고생 하셨음니다 선배님 건강 하십시요 ㆍ 단 결 !
가평 3 하교 77년 7월에 입교. 6 개월 교육 수료후 78년 1월에 양평으로 배치돠 몇달뒤 부대 교체로 신망리로 배치 되었던 27연대 2 대대 8중대 중화기 중대 박격포 포반장근무하다가 79년에 36 연대 철책부대와 교체 대마리로 들어가, 관측 하사 근무시는 052 op근무를 했지요. . 79년 1026 사태때가 참, 기억이 떠 오르고 당시 사단장이신 (고)김 복동 장군님의 1212 사태때 전방은 누가 지키냐며 진지 고수 의지를 피력하시다 .전투군단 군단장이 못 되시고 육사 교장으로 좌천 아닌 좌천 되신 자랑 스런 사단장님이 계서서 전역 후에도 자랑거리로 삼고 뿌듯하였던 군 생활얘입니더 신망리 , 대광리, 신탄리 많이 그리운 모습이 나오네요 .
5사단 36연대 1대대 1중대... 36연대 출신 댓글이 별로 없네요. 86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9월 30일에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해서 대광리 신교대에 떨어지던 그 시절... 연천읍 아래 입구인 차탄리 반대쪽 계곡 초입에 1대대가 있었는데, 그 안으로 계곡이 매우 깊고 길었던 기억이 있음. 골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영상 지도를 다시 돌려봐야 할 듯. 거 골안으로 행군도 많이 했는데. 87년 6월항쟁 시절에 휴가 나오고, 차탄천 초소에 근무하기도 하고, GOP 철책에서 경계 근무하면서 대북방송으로 88올림픽 라디오 중계 듣고 1년 마치고 나와서 신탄리에서 몇달 복무하고 89년 1월 13일에 27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
고지전을 그저 고지 하나 먹기 위해 인명과 물자를 소비했다고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은데 잘못된 겁니다. 고지 먹기 싫다고 포기하면 그 고지 딱 하나만 잃는 게 아니라 고지가 감제하는 해당 반경 수km~수십km의 영토를 방어하지 못해 같이 포기해야 합니다. 괜히 휴전 직전까지 조상님들이 수없이 고지쟁탈전을 치른 게 아닙니다.
늘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들어보니 고지 하나 위한 것이라는 내용은 없는 것 같습니다. 고지의 중요성은 다 알고 있는 것이지요.
김일성이가 6.25때 이 백마고지를 빼앗기고 3일 밤낮을 울었다고
합니다.
이 백마고지가 중요한 가장큰 이유는
철원 평야가 있기 때문이죠!!
저는 98군번 3사단 수색대대 출신입니다.
군생활 시절 꼭 한번 백마고지쪽
DMZ로
파견되서 가보고 싶었는데
5사단쪽이라 못갔습니다.
(6사단쪽은 몇번 가 봤습니다)
04군번 5사단27연대 나왔는데 고대산 aop근무 3달했는데
철원평야 한눈에 들어오더라고여
김일성고지에서 김일성 울만하더라고여
그곳에서 이십대 청춘을 보낸지도
어너듯 40 년이 흘렀음니다
자나깨나 항상 그곳에 맘이 같이 함니다
그리운 시절 그리운 전우 ㆍ청춘
푸른제복 그립고 영상 감사 함니다
그리고 지금 이시간에 도 추위와 싸우며
철통 경계근무 서고 있을 열쇠부대 후배들 및 전 육군 군인분들 감사 함니다
단 ~~ 결 !!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비슷한 시기에 화천 27사단에서 복무 했습니다
@@davidchoi2576 애착과 아쉬움 과 미안함이 평생 따라 다님니다
고생사단 !👍
강원도 화천 이기자 부대에서 정말
고생 하셨음니다 !!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6연대 2대대..2소대일원으로 46년전에 Gop근무를 했었는데...
11기 김복동.이범천 장군.
@@LeslieScooter 선배님 저희들 보다힘든 시기에 정말 고생 하셨음니다 !!
철원을 포함한 철의 삼각지대는 (Iron triangle: 남서쪽의 철원, 남동쪽의 김화, 북쪽의 평강) 아래와 같은 특성들이 있습니다
1. 여러 통로가 모이고 여러 통로가 갈라지는 곳이라 교통의 요지이자 교통결절점입니다
2. 서울, 경기와 관북을 잇는 남북 방향의 통로와 영서와 해서, 관서를 잇는 남동-북서 방향의 통로가 서로 교차합니다
3. 경원선이 관통하여 서울-원산의 중간 지점이며 내금강으로 가는 금강산선이 분기합니다.
4. 드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어서 맛있는 쌀이 나 농업에 유리하고 병력과 군사 물자의 대규모 집결에 적절합니다
5. 주변이 높고 험한 고지로 둘러싸여 있어서 공격과 방어에 모두 유리한 입지입니다
6. 서울로 향하는 남북축 주요 통로 3개와 (3번 국도, 43번 국도, 47번 국도) 춘천, 원주로 남하하는 영서내륙 통로가 동시에 갈라집니다
7. 강원도 내륙에서 황해도 동부를 (토산, 금천, 신계, 평산) 거쳐 사리원과 평양으로 오가는 통로의 관문이자 길목입니다.
8. 우리가 여기를 가지게 되면 중부전선에서 북한의 남침을 한 곳에 모아 막을 수 있는 엄청난 장점이 있으며 유사시 북진할 경우 동시에 원산 방면과 (추가령 구조곡= 철원-원산 축선) 황해도 방면으로 (곡산 회랑 = 방원령로) 진출할 수 있습니다
9. 따라서 북한 입장에서 여러 경로를 동시에 활용할 수 있던 38도선 분단 시절과 달리 지금은 중부지역에서 남침할 수 있는 방법은 철의 삼각지대를 뚫는 것이 유일합니다
실제로 철원 지역은 강원도에 속하면서도 경기도, 강원도, 함경도, 황해도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유일한 도시입니다.
늘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84년도에 5사단에서 제대 하였습니다..대광리 신병교육대, 전곡리 자대배치 후 철책근무를 하다가 제대 하였습니다...
세월이 지나도 그당시의 기억이 또렸하게 남아 있습니다...그립네요 연천,대광리...언젠가는 꼭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저도 같은해 35년대 제대하였읍니다 같은지역 새록새록 기억나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연천군 주민의 일원으로서 연천군을 소개 해주심에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홍수환-g4u 반갑음니다
내산리및 옛 대광리 신병 교육대 ㆍ 신탄리 도신리 전곡~~
작년에 여행 다녀 왔음니다
40년 세월 흘렀지만
이십대 청춘을보낸
연천은 항상 제 고향임니다
추운 지역이니
건강 잘 챙기 십시요 ㆍ
단 결 !!
연천 주민께서 직접! 제가 더 감사합니다.^^
백마고지(395고지), 화살머리고지는 모두 철원읍, 철원평야 중부의 북서쪽에 위치해 철원평야를 감제합니다. 두 고지의 오른쪽으로는 서울과 원산을 연결하는 경원선 및 추가령구조곡이 남북으로 달리고 있고 두 고지의 바로 아래에는 철원읍에서 안협(북한 철원군 철원읍)을 거쳐 토산 시변리로 가는 통로가 위치합니다. 그리고 바로 위로는 안협에서 평강으로 가는 좁은 계곡길 (구룡강을 따라 형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즉 이 두 고지를 먹냐 뺏기냐는 고지 주변을 지나는 여러 통로들을 감제하고 지키느냐의 여부와 직결되기 때문에 중요도가 매우 높았죠
와 신기하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_ _) 꾸벅
늘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1988년에 군대생활 했는데 옛기억이 소록소록 나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고노에 감사드립니다.
전곡 BBQ1호점이 우리 옆집 이었습니다^^ 그때는 햄버거 세트도 팔았었어요ㅎㅎ 맨날 보는 동네안데 요래 유튜브로 보니 또 새롭네요^^
그러시군요. 시청 감사드립니다.^^
어마어마한 열쇠부대 선배님들이 계시네요! 정말 기분 좋네요. 저는 89년 2월 입대해서, (당연히) 5사단 포병 988대대 B포대에서 근무했습니다. FDC였고요. 머리가 나빠서 엄청 고생했죠~^^ 많이들 보고 싶네요. 결코 그 시절로 돌아가기는 싫지만~ 이 무슨 모순일까요?ㅎㅎ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155미리 사격지휘에 근무하셨군요 74년 양평5사단 개군면 105미리 측지반에 근무했습니다
78년5월부터 33개월을 군 생활 했던 우리부대를 영상으로 보게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시 김복동 사단장님을 모시고 야월산 고지에서 근무했었네요..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옛 추억이 깃든 곳이군요. 오사단 삼오연대 이대대와 사대대! 35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경기도 일대를 누비던 전우들 생각납니다. 어디에 있든 건강하시길 빕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5연대2대대 연천 옛생각많이 나네요 신망리 83년도 입대할대 눈이엄청 많이 온기억도~
저는 78년 6월에 5사단에서 복무를 시작하여 뱍마고지에서 81년 1월에 제대한 사람인데 가끔 추억 삼아 한번 가보고 싶은 곳이었는데 소개 됨을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제가 더 감사합니다.
79년-81년도 5사단36연대 출신으로 월북대대장이 근무했던 백마고지가 보이는 GOP Line에 파견나가서 발칸포대, 식당, 막사등 7동 건물을 짓느라고 3-4개월 보냈기에 기억이 생생합니다. 영상 감사드립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사단 당시 매주 사단본부에서 열병과 분열하러갔던 생각이 저절로 나고 한탄강변에 있어 날씨가 추워 군생활 힘들었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백마고지와 화살머리고지를 사수하게 됨으로서 얻는 이익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철원평야 중부를 안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2. 철원-김화 간 동서 통로를 안전히 이용하고 지킬 수 있습니다
3. 토산(시변리)-안협-철원 간 동서 통로를 북한이 이용하지 못하게 차단합니다. 이로 인해 북한이 평양원산선 이남에서 황해도와 강원도 간 동서 연결을 하기가 많이 어려워집니다
4. 안협-평강 간 통로를 북한이 방어하고 유지하지만 전선에 가깝고 두 고지에서 움직임을 감시하므로 북한이 이 통로를 군사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습니다.
5. 북한의 감제고지를 고암산(김일성고지)으로 후퇴시킵니다
늘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5사단 36연대 전투지원중대 GOP 에서 복무 했습니다
전곡, 대광리 너무 익숙한 이름들이 나와서 반갑네요 풍경도 익숙해서 웃음이 나네요
영상 감사드립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시청 잘하였습니다
70이된 제가 양평에서 근무타가 부대교체로 5사단 수색대 2중대근무 지피에서 근무하여 군생활 추억을 찾으려고 가보고싶은 곳인데 설명해 주어
옛추억이 납니다ㆍ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반갑네여저도 36연대1대대근무했는데
반갑습니다 , 저도 양평 배치후 얼마 안 있어 보대 교체로 저는 신망리에서 근무 하였다가 연대 전선 배치로 철책 근무 서다 박 통 시해 사건나고 3 달 후 전역 하였지요 반갑습니다
79,5월 35연대1대대에서 전역하였는데 반갑네요.
76-79년도 34개월 6사단
2연대 겨울에는 영하 32도 까지 내려간적 있었음ㆍ문혜리.하지리.
훈련도 엄청나게 빡세고
그당시는 군대는 남자들의
지옥이라고 생각 했드랬는데,
어느덧 70줄에 들어서고보니 그시절이 그립네요ㆍ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같이 고생했던 전우들의 모습은 새록새록 기억에 남아있음ㆍ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반갑습니다 74년7월부터 77년 1월 까지 만 34개월동안 양평 개군면 205포병부대에서 근무했습니다
님도 고생많이 하셨네요 78년도에 지금자리로 부대 이동도 하셨을테고 정말로 고생 많았습니다
남은세월 우리 건강하게 지냅시다 늘 건강하세요
@@전인표-n6z
아이고!!! 반갑습니다. 비슷하네요 74. 4월 ~ 77. 2월 입니다. 27연대 1대대 3중대 소총수.... 여주 대신면 장풍리.... 어제 일 같이 새록새록 하네요.
개군 상자포리, 하자포리를 완전군장으로 터벅터벅 걸어 용문산 유격장, 공수훈련장으로 고생스럽게 가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훈련도 빡샜고 배도 고팠고... 그렇게 삭막했는데도 제대때 후배들과 인사하고 나오는데 눈물이 쏟아져서....
그때 고생이 자양분이 되어서 사회에서 분발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제 연금생활자로 편안한 노후....
무망하지만 님을 우연히 만나서 대포라도 한잔하는 꿈을 꿔 봅니다.
인표님 건강하십시오!!!
@@카르페디엠-v2j 정말 방가워요 정말이지 같은시기에 같은 고생을 함께한 전우군요
늘 건강하세요..
캬 망향비빔국수 또 먹고싶어지네요
전역하기 직전에 먹어봤는데 그때가 기억나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09년도 막내아들이 5사단에 배속되어 2년동안 내가 근무하던 경남 함안에서 천리길을 면회갔던기억이 오래 남는 열쇠부대입니다. 엇그제 댑사리 축제 를 한다기에 돌아보고 오는길에 아들이 근무했던 부대도 돌아보고 왔답니다. 추억이 남는 연천이었답니다.
귀한 아드님 나라 지키시게 하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 사단 시절 옛 추억이 새롭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군대시절이 생각이 나네요~ 대단히 감사합니다
시청 감사드립니다.^^
여름에 제가 답사한 곳을 안내해 주셨군요. 이 영상을 보고 새로운 사실도 알고 한 수 배워갑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
그랬군요. 시청 감사드립ㄴ다.^^
86년도에~내산리에서 복무한...전우경,박종명,유흥선 동기야~보고싶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내산리엔 195하고 205그리고 군단359가 있었는데!
@@장현창-n2x 내산리마지막에~민간인통제구역 고대산아래195본부포대,,,우경,종명,흥선이 아시는분 연락바랍니다^^
@@황용-c5j 저도 알파에서 90년에 제대했습니다 195포대분 처음 보내요 제대한 후로
대광리 .신탄리 .고대산 푸른제복시절이
생각나네요 함께했던 전우들은지금
60대중반이 되어있을텐데 어디서든 건
강하게 잘살고 있겠지 하고 그리움을
대신해봅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의정부역에서 꽃마차 타고 전곡역에 내리면 허기진 배 부여잡고 전곡 시장에 들려 저녁먹고 순대 사서 복귀하던 기억이 나네요....
벌써 20년 전 이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7~89년까지 6포병여단 고문리 재인폭포 근처에서 근무했는데 감회가 새롭네요 다시갈수 있다면 재입대 하겠습니다 😊😊😊😊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어이쿠 칭찬까지 감사합니다 ^^
백마고지 유명한
슬프그 용맹한
백마고지,전투 지
영상 감사합니다
❤❤❤❤❤
시청 감사합니다.^^
자기들이 승리한 전투들을 강조하는 중공도 백마고지 전투만큼은 철저히 패배한 것을 인정할 정도로 국군이 힘들고 처절하게 싸워서 얻어낸 고지입니다 ㅋ 백마고지가 왜 이렇게 양쪽 다 사활을 걸고 얻으려 했는지는 군사지리적으로 중요도가 매우 높은 고지이기 때문이며 왜 그런지 관련 지식들은 매우매우 많답니다 ㅋ
늘 귀한 정보 감사드립니다. 참고하겠습니다.^^
1969ㅡ71년 까지 연천 대광리 ㅡ신망리에서 통신병으로 근무 근무하고 40여년후에 가보았는데 너무
많이 변해 있었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제대한지 36년 되었는데 세월이 야속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고생하섰습니다 ! 35 연대 전역한지 50년이 되어가는군요 반갑습니다.
@yhy2025 35연대 89년2월 제대 했습니다
89년도 2월23일 제대
205전역한지50년되갑니닫.
용문산 입구 근무하다,
20사단과 교체로 대광리 35연대1대대 고대산에서 근무했는데,
대광리 시내가 선하네요.
청대문집.대광리역도 기억이 나는데 추억을 되술려 주어서 감사합니다.
전우들 보고 싶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5연대 1대대 4중대 1소대
용문 00리 근무 75. 5 월 전역. 후배 님 반갑습니다.
부대 이동하시느라 고생하섰습니다 .
저의 직계고참이시군요. 그해10월에 대광리 36년대 2대대2소대 소속으로 GOP에서 이등병을 시작했습니다.
눈앞에 그 대대 통문과백마고지가 있었지요.
그땨까지도 미군이 백마고지 아래쪽에 있었던걸로 기억되네요.
10월말 진눈깨비가 흩날리던날 서울 사당동출신 왕고 오상용병장하고 역곡천변우로 약간 경계경비을 나갔던던 기억이.... 첫배속으로 오느라 수고했다고 열외시키고 밥먹고 자고 하기를 1주일간 시켜주더군요. 실내2층 간이 막사에서...
야월산고지 퍄견대에서 제대.
그때 3대대 4중에서
근무했습니다
지제역에서 열차타고
대광리역 내려 20사단과
부대교체했지요.
옛날생각나네요
46년전 연천에서 군생활이😮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46전. 36연대 2대대 .... 78년말 백의리로 전출.
비슷한 시기네요 78년 4월에 백의리서 한달 머물다 철책투입되었죠
사단교체후 아마 첫투입 ᆢ
77년도 8월에 20사단 신병교육대 입교 하던 생각이 나내 , 전주에서 1차 교육을 마치고 기차타고 상경하면서 젤 마지막에 내렷던 그 기분. 아찔했다 ㅎ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7년 11월 논산 군번입니다.
27연대 3대대.4대대 근무 했습니다.
20년 전에 근무 했었는데 전곡이 번화한 곳이었죠
다시 보니 한산해졌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내가 이곳에 근무했던 기억이 어느덧 사십년이 넘었네 당시 사단장이었던 김복동장군은 훈련은 전투와같이 전투는 훈련과같은 구호로 제대할때에 태권도 유단자의 자격을 받았고 사격은 95%사격명중 했다 이렇게 훈련통해강한 사단이 되었다 지금도 과거를 돌아본다 특히 김복동장군은 신뢰를 받는 장군이었다 아마 12.12시 에도 개입하지않은 장군으로도 유명했고 노태우와친구며 처남매부로 군인은 명예를 소중하게 생각한 장군이었다
김복동 장군이 그런 장군이었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랑 동년배 이십니다,
김복동 장군 참 군인이셨습니다.
후임에 이범천 장군이지요.
반갑습니다.저도 그때시절 생각나는구요 이제는 70이 낼모레니
세월 참. 그때 전우들은 잘 지내겠죠...
5사단이 예전에는 포천 이동연곡리에 주둔하다 양평으로 이전했지요
그당시 군 복지센타인 위문공연 보러 5사단 연병장에 자주가곤 했는데
시청 감사드립니다.^^
75년 백마고지 바로 밑 대마리 철책선 근무했던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는 20사단 이었지요.
제대한지 48년, 대광리와 고대산을 한번이라도 가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고대산 2번 올랐는데, 오르기 만만치 않았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korea333 76년 제대하기 전 고대산OP에 두달정도 근무 했었습니다. 그때는 거의 매일 신탄리를 내려갔다 왔지요
반갑네유 78년도 사단교체 멤버유
옛생각나네유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연천 겨울에 너무 추움.
군생활할때 -27도 까지 떨어졌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5연대 본부에서 근무한 내게 참 흐믓한 내용…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96년도 신서면 대광리 27연대 4대대에 있었는데 그땐 기차소리만 들어도 집에 가고 싶었는데 그땐 35연대 27연대가GOp 들어갔는데 그때가 그립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4년도에 대광리 신병교육대에서 훈련마치고 백마고지앞 gop에서 1년 근무하고 다시 대광리 로나와 87년도에 제대 하였습니다
이영상보니 옛날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릅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0년전 5사단 수색중대 출신으로 대마리 DMZ내 백마고지 2개의 GP에서 근무했었습니다.
추억돋는 영상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1989.10.01. 국군의 날
연천군 백의리 사단사령부에서 강 건너편 706 특공연대 병력으로
창설한 정찰대
사단에서 유일하게 특전사 교육단 낙하산 기구강하 훈련 받고
가슴 모자에 wing 마크 달았던 자부심
아직도 모임 하고 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01년 1월 306보충대로 입대해서 5사단 36연대 1대대 3중대 3소대에서 열쇠전망대쪽 GOP에서 1년 근무하고 내려와서 03년에 제대했었네요 대광리보니 기억이 왔다갔다 합니다 어느 시기였든 5사단에서 군복무 하셨던분들 고생하셨습니다 😊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94군번 백전백승 열쇠부대!! 너무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전차대대 94년 1월 군번입니다.
여기 5사단 전우분들 많으시네요. 연천, 전곡, 포천, 철원 등등 훈련하러 무지하게 다녔는데 그때는 어디가 어딘지도 잘 모르고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했던거 같습니다. 논산에서 후반기 교육 못받고 바로 자대배치 받았는데 3월 초인가 사단 보충대에 도착 했을때 바로 붙어있는 35연대인지 36연대인지 GOP 교대들어가고 나오는지 연병장이 무슨 전쟁터 같더라구요. 머리 위는 헬기가 무슨 진짜 전쟁난것처럼 날라 다니고.. 30년 지난 지금도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제는 자식같은 우리 후배님들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전역하시기 바랍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너무좋은프로내요
칭찬과 시청 감사합니다.^^
78년 35연대 9중대에서 선임하사였던 손중사님 뵙고 싶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자랑스럽읍니다.우리가족.제대한부대❤😊
가족 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17사단 나왔지만 전방을 체험해 보고싶어 고대산 금학산 대광리 내산리임도 여러번 가봤어요. 전방에서 고생 합니다. 5사단 화이팅!!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고노에 감사드립니다.
1983년 ~1985년 육군 5사단 열쇠부태 27연대 4대대 15중대 3소대에서 근무하다 전역했습니다
감회가 새롭네요 ㅎ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4년6월경91포대C포대 근무 그때 가 생각나22년도에 갔다왔지만 부대위치는 그대로 있어요 큰게변한건 없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0년~82 GOP 발칸포 근무 . 대광리에 포대본부 있었는데 대광리역에서 기차 타고 휴가갈 때 너무 좋았는데.
대광리 가보고 싶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6사.155미리포대가있었죠.?
내 큰아버님이 5사단에 소속하시다 625 한국전쟁때 백마고지 전투서 전사하셨고 난 전곡읍 양원리 28사 소속 포병 연대 2대대 구 268 현 818 본부서 의무병으로 복무하다 97년 2월에 전역..군개혁 2.0 으로 사라질 28사..한번 쯤은 찾아 보고픈..
가족 중에 백마고지에서 전사하신 분이 계셨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1976년도
20사단 62연대 3대대 10중대
정현찬교 앞에서
근무 했습니다.
"초전박살"😂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 구독합니다
시청에 구독까지! 감사합니다.^^
988부대 브라보포대 포반에서 82년도전역 반갑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86년10월2일 전역자입니다
좋은영상 감사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들 선배님들이시네요
07군번 5사단 포병연대 195FA에서 근무했습니다
영상보니 한겨울에 야간근무시에 영하30도에 온도계가 깨지는일이 빈번했는데 추억이^^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좋은정보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00년 6월 입대
02년 8월 제대한
5사단 27연대 3대대 9중대 1소대
GOP와 겨울에 고대산 정상에서 근무하던 시절이 떠오르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35연대 2대대 5종대 2소대
89년 2월전역 그때 그전우들 그립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열쇠부대! 화이팅입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열쇠 부대 5사단 35연대 2중대,양평군 용문면 소재,이 몸^76년 11월 전역 그 때가 그립습니다,
험지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5 연대 1 대대 4 중대 1 소대 72. 7 ~ 75.5 전역 용문 덕현리.
바로 옆 막사에서 근무하섰네요 반갑습니다.
@@yhy2025 네!저 보다 1년 6개월 선배^이시군요,고생많았습니다,
그 시절 그 청춘!다 가고
이제 노년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덕현리 기억이 새롭게 떠 오릅니다,우리 중대는 구보 중대로 뽑혀
중대 정문에서~용문사 까지 왕복 매일 같이 구보,특히 저희 소대는 화기소대^이고 저는 57미리 무반동총^반장 겸 내무반장^을 했었는데 중대 제일 앞에 우리 화기소대 60미리 박격포와 무반동총을 메고 뛰어야 하니 정말 죽을 맛이었습니다,
어머 세상에 5분49초
...오작교 분식이 아직 있네요......순대국 철철 넘치도록 담아주시던 사모님...... 서울의원에서 말년들 고래잡았죠..
1992년 5월 전역한 5사단 직할 수색대대 예비역 입니다......감개무량
6분5초 우리 수색대대 위치 바로앞 망향슈퍼 부엌에서 만들어주신 비빔국수는 5사단 수색대대원들만의 별미였죠.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고노에 감사드립니다.
80년도988.브라보 포대 근무 반갑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부대앞 한양상회를 기억하는 이들이여 연락하고 삽시다. 78년도.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3년도에 도신리 911FA에 복무했는데
같이근무했던동기들이
생각이나네요
지금은건강하게 잘들있는지 궁금하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36연대 3중대에서 100으로 근무하다 78년도 사단 교체시 바로g0p에서 6개월 근무하고 전역하였는데,양평에서의 근무가 고되었어도 더 기억에 남는군요. 김. 복동 사단장님, 대단하신 분이지요. 무자비한 교육훈련이 지휘지침이. 첫 번째 아니던가요? 아무튼 5사단 뿐 아니고 대한민국을 지키는 모든 제복의 군인들이 모두 건강하시길 빕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두 그때 36연대1중대근무했소이다
5사단 출신으로 감회가 새롭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대대장 월북으로 5사단과 교체한 20사단 시절 신망리 ,대광리에서" 75년에서 77년말"까지 근무를 했습니다
사단사령부는 전곡에 있었고 60연대 정훈과에서 군복무를 하다 제대를 하였습니다 대대장 월북은 내가 병장 달고 제대 1달 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월북한 대대장 유윤학 중령 이름도 안 잊혀집니다 연대 작전주임으로 근무하다 1대대장으로 가서는 사고를 쳐서 제대말년에 고달펐습니다 ㅎ
신망리 대광리를 가본다하면서도 못가고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5사단
1985년 입대해서 1988년 제대^^
GP 및 수색 매복
백마고지 수색및 매복
172GP 근무 1통문근처 에서 수색
한번 가보고 싶넹~~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백마고지에는 GP가 2개 있어요. 그만큼 중요하지요. 30여년 전에는 GP번호 709와 710로 기억합니다. 전곡 청산과 연천 마거리는 한번 다시 가보고 싶다~~^^ 모두 건강하기를.....
그랬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보병 20사단..... 78년 4월1일 양평으로 왔다..... 그때 내나이 23살~~~~ 전곡역,대광리,신탄리, 고대산, 재인폭포.....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6년도 20사단 62연대 10중대 GOP 정현찬교 앞에서 근무 했슴다.
@@오복석-w9c
20사단분을 만나니 반갑습니다 저는 60연대였습니다
제가 60연대에서 제대 한 것이 77년 12월이였습니다
@@오복석-w9c 76년도 62연대
반갑습니다 73년도에 20사단60연대 근무했습니다 처음 근무한곳이 신탄리역 옆2중대 근무했는데 그때는 역에서 노동당사 가는길쪽에 철마는달리고싶다 펫말이 있었는데 그리고 당시에는 고대산에 벙커작업 정말 많이 했습니다 모래 시멘트 엄청나게 지고 올라갔습니다 GOP근무때는 백마고지가 보이는곳에 6사단과 합동관망대가 있었는데 또한 철원대마리쪽에 12초소가있었고 민통선 주민들농사하러 들어올때 검색하는 태양초소가 있었는데 주민분들 들어오시면서 얼음띄운 막걸리에 꿀을타서 주고했는데 정말 맛있었어요 태양초소 근무할때 육영수여사님 서거하셨어 비상걸려 정말 심각했는데 5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보니 추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그때의 전우들 건강하신지 같은소대까지 배속받은 동기가있는데 제대하고 결혼해서 같은아파트에 살았는데 뭐가 그렇게도 바쁜지60도 못살고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아들과 딸이 있었는데 아들결혼시키고는 얼마되지않아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80년대 회바에서 지오피 이동하니
부대 내에 이십사단 마크 비석등
흔적들이 있더군요
후에 대대장 월북사건 으로 ~~~
친구삼촌 분이 이십사단 수색대 나오셨다 해서 이야기 하다보니
우리시절 지오피 첫통문 백마고지 가는길 화랑고개 옆 좌측에 전초 부대가 있었는데 그기가
삼촌이 근무했던 곳이더 군요
저희들 시대보다 더 힘들게 고생 하셨음니다
선배님 건강 하십시요 ㆍ
단 결 !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1977년도경 여름, 일당 받고 고대산 시멘트 지고 올라가다 힘들어서 포기한 기억이 ㅠ.ㅠ.
고대산 정상 부근 벙커에 오석으로 된 명판 있는 되 5사단장 이장흠 연대장,대대장 이름 있는 돼 언제쯤 만들어 진건지?
한탄강 변 능선 산에 벙커 만들어진 것이 있는 돼 콘크리트 벽에 홈파서 만들어진 명판이 인돼?
20사단과 5사단이 바꼈습니다 20기계화 사단은 없어졌구요 결전 선배님 고생하셨습니다. 00년군번
전곡 cp라는 곳에서 영자에게 21년간직한 동정을 받쳤습니다
2분도 안되 사정하자 조금 있다 다시 하라더군요
너무 적나라..ㅋ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나랑. 동서네요
ㅎ ㅎㅎ😅
이놈들 ㅎㅎㅎㅎ 전곡cp
78년도 연천으로 부대리동 해지요
감회 스럽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1년 1월 중대에서 삼청교육대 모포에서 이가드글드글. 그시절 고대산에서 훈련받던시절이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8년 7월군번
5사단 35연대 1대대
수색소대.. 대광리..고대산 ..
엊그제 같은데 ..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대학교 2년 마치고 연천에서 군생활ㆍ84년 입대했네요ㆍ세월이
이렇게 빠를줄이야ㆍ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92년도 전역했고
젊음, 아픔, 그리움이 머무른 시간과 공간 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도 92년3월 전역했습니다
36연대 85년 제대..연천 대광리 신병교육대..그립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병교육대가 백의리본부 2km옆에 있었어요 .사단본부 법당 지울때 작업나가곤 했지요. 김복동장군 시절.
@@LeslieScooter단결~한참 고참이시군요. 건강하십시요!!
@@korea333 따듯한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건승을 빕니다~^^
서울의원 김한선 원장님 존경합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가평 3 하교 77년 7월에 입교. 6 개월 교육 수료후 78년 1월에 양평으로 배치돠 몇달뒤 부대 교체로 신망리로 배치 되었던 27연대 2 대대 8중대 중화기 중대 박격포 포반장근무하다가 79년에 36 연대 철책부대와 교체 대마리로 들어가, 관측 하사 근무시는 052 op근무를 했지요. . 79년 1026 사태때가 참, 기억이 떠 오르고 당시 사단장이신 (고)김 복동 장군님의 1212 사태때 전방은 누가 지키냐며 진지 고수 의지를 피력하시다 .전투군단 군단장이 못 되시고 육사 교장으로 좌천 아닌 좌천 되신 자랑 스런 사단장님이 계서서 전역 후에도 자랑거리로 삼고 뿌듯하였던 군 생활얘입니더 신망리 , 대광리, 신탄리 많이 그리운 모습이 나오네요 .
김복동 장군은 참 군인이었군요.
당시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27연대 4대대 15중대 2소대 86년도 아~ 그때가 그리워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6,25때 동막리가 인민군 전자주둔지 인줄 알고 있습니다 38선
그랬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다신분들 다들 추억 어린곳 이군요
77년 양평근무 78년부터 79년 12월 33개월 근무 전역 5사단 수색대가 그립군요 ㆍ추억 찾아 가보려 합니다ㆍ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주 좋아요
시청과 칭찬 감사합니다.^^
우리 아들 은15사단 승리부대에서 근무했는데 ~
귀한 아들 나라 지키게 하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내가있던곳이굼ᆢㄴ
ㅇ려돴지79 81년도니
20사단 그립습니다 대광리 신망리 전곡 너무그립습니다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포천이동에있다가.양평.용문동.옥천리로이동했지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78년 3월군번인데 논산훈련당시 사단교체되어 수용연대에서는 수경사로 배속받았는데 사단가보니 교체된 5사단이었음 백의리서 좀 머물다 투입된 곳이 철책 그곳도 월북유운학섹터 오른쪽은 백마고지 바로앞은 역곡천 지금도 유유히 흐르고 있겠지
공수교육대낙타워.훈련.생각나네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당시 5사단은 공수사단 작대기 하나 달고 11사단 사단 수색대와 같이 공수 교육 받은 기억이 나네요
양평 옥천면에 있는 막타워가 생각납니다 지금은 냉면으로 유명하다는 옥천쪽으로 쳐다 보지도 안습니다..
❤❤❤
시청 감사드립니다.^^
5사단 36연대 1대대 1중대... 36연대 출신 댓글이 별로 없네요.
86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9월 30일에 의정부 306 보충대에 입대해서
대광리 신교대에 떨어지던 그 시절...
연천읍 아래 입구인 차탄리 반대쪽 계곡 초입에 1대대가 있었는데,
그 안으로 계곡이 매우 깊고 길었던 기억이 있음.
골 이름이 기억 안 나네... 영상 지도를 다시 돌려봐야 할 듯.
거 골안으로 행군도 많이 했는데.
87년 6월항쟁 시절에 휴가 나오고, 차탄천 초소에 근무하기도 하고,
GOP 철책에서 경계 근무하면서 대북방송으로 88올림픽 라디오 중계 듣고
1년 마치고 나와서 신탄리에서 몇달 복무하고 89년 1월 13일에
27개월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제대...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36연대.출신이요
2대대5중대
73년.전역
89년11월 입대자 입니다
동막리 대대가 즤가 있을때 27연대 4대대였습니다
차탄천 초소에서도 근무해봤고 내무실이 사단휴양소 옆에 있어서 식사는 휴양소 에서 가져다 먹은 기억이 납니다.
79년12월~33개월 대광리부대 포병전역 열쇠회관 자동화사격장 유격장 연천 포사격장 45년전 이야기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83~86년까지 근무했는데 40년이 넘어가네
이봉걸 유래현 최병은 양승수 박수근 박승구
김성태
박영철 소오열 안대성
하재수 임금빈 김진근
박원동 이현행 한완석
유병환 이순구 정성경
윤현중 이래환 김동석
김병갑 이창열 김남진
고필환 최진식 고의범
박근수 이익희 박갑영
김종곤 박군준
생각이 더 안난다
다들 잘 지내고 있겠지?
험지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저는1968~1971년도까지28사단82연대에서근무하였습니다근무하던곳이전곡또는대광리였습니다사진으로전곡시가지를보니옛생각이새록새록나는군요
힘든 곳에서 나라 지키신 노고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