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황금띠고리'의 주인은 '낙랑인 '...그는 중국인인가 한국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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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1 ม.ค. 2025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41만여점 가운데 이른바 낙랑 유물이 1만7000여점에 달한다. 낙랑 관련 유리건판 사진도 4000여장에 이른다. 모두 일제강점기에 일본학자들이 평양 인근 지역에서 파헤친 결과물이다. 그 중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황금 띠고리(금제교구)’는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두가지 궁금증이 생긴다. 일제는 왜 이렇게 한때 낙랑 유적 발굴에 혈안이 되었을까. 또 대한민국의 국보인 ‘황금 띠고리’가 중국제라면 왜 대한민국의 국보 대접을 받고 있을까.
#낙랑 #평양 #석암리
한나라때 낙랑은 위만조선의 땅이었고 당시 요수의 동쪽에 있었습니다.. 지금의 진황도시죠.. 한무제에 의해 위만조선이 항복하여 낙랑이 한나라의 낙랑군이 되면서 그 땅에 살던 유민들이 한반도로 이동하였고 그들중 일부가 대동강 유역에 낙랑국을 세웠다고 봅니다.. 그래서 평양의 낙랑국 유적에 한나라의 흔적이 나타나는 것이죠.. 낙랑은 위만조선에서 한나라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던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석하는게 합리적이고 모든것이 맞춰지게 됩니다.. 진황도시의 낙랑군과 대동강의 낙랑국은 모두 낙랑의 유민들에 의해 위만조선과 한나라의 문화적 색채가 중첩되어서 나타나던 지역이었습니다.. 결론은 한반도의 낙랑국은 한사군이 아니었다는 것이죠.. 낙랑군과 낙랑국에 대해서 그들이 서로 다른 집단이면서 동질성을 가지는 집단이라는 양쪽 측면을 이해 못하는 학자들이 아직도 있네요.. 여러 중국 사료와 한국 사료 모두 한사군은 한반도에 있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제시대 식민사학자들에 의해 억지스럽게 해석된 왜곡된 학설을 언제까지 끌고갈려고 하는가요.. 아직도 이해 안되나요..
한나라 공식 문서가 발견됐다니까요?
평양의 낙랑군 관리의 무덤에서 한나라 법류에 의해 1년에 한번씩 인구 변화를 조사하는
낙랑군 호구부가 발견됐어요.
이 호구부에 중국인과 토인(토착인 = 조선 사람)을 구분하여 조사한 내용까지 있어요.
끝이에요 끝...
이게 1990년에 발견됐고
2009년에 북한이 발표했어요.
아직도 낙랑군이 어디 다른데 있다고 하는 사람은 사기꾼이에요.
지금 재야 사학게에서 연구 조명되는 낙랑은 중국에 위치하기에 펴먕 유물과 유적을 낙랑이라 규정하는 일본학자들의 연구는 오래전의 일로서 역사는 이제 더 많은 자료에 의해 밝혀지는 역사로 다시 써야 합니다
최씨낙랑국은 전기진국의 주도세력인 진한의 이칭이거나 그 후신이고 국제적으로는 진국으로 불리웠던 세력인 것이다.
선생님 일반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인터넷 발달로 이제 낙랑군 평양설 같은 학설 믿는 국민들 별로 없습니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중국의 25사 누구나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언제까지 일제시대 일본인들의 학설 광복 80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야기 하고 있나요? 이제 낙랑군 평양설 같은 학설 그만 둘 때도 되지 않았나요?
이미 끝났어요 .평양에서 낙랑군 호구부가 나왔는데.. 뭘 더이상 연구해야 할까요?
낙랑군 관리가 한나라 율번에 따라 1년에 한번씩 인구조사하는 문서가 나왔어요.
논어 죽간과 함께..
대륙 삼국 이런거 다 뻥인게...
이게 밝혀진게 몇십년전이에요.
발굴은 북한이 했어요.
우와 영상 수준의 깊이가 틀리네요 잘봤습니다 👍👍👍👍👍👍
이미 오래 전에 북경지역에서 낙랑군의 유적이 발견됐는데, 뭘 아직도 한반도에 한사군을 찾음? 중국 여러 고대 사서에도 한사군이 북경지역에 있었다고 수도 없이 나오는데, 한서에는 '낙랑군이 유주에 있었다.'고 나오고, 후한서에는 '낙랑군은 옛 조선국으로 요동에 있다.', '장잠현은 낙랑군에 속해 있는데 그 땅은 요동에 있다.' 고 나오고, 사기에는 '낙랑군 수성현에는 갈석산이 있고 만리장성이 시작된 지점이다.'고 나왔는데, 낙랑군이 한반도 평양에 있었으면, 고대 유주, 요동, 갈석산, 만리장성이 전부 한반도에 있었음? 말이 되는 소릴 좀 해야지. 평양에서 발견됐다는 점제현신사비의 화강암 성분도 평양지역에 나올수 없는 돌이라는데 언제까지 한반도에 한사군이 있었니 없었니를 따질 거임.
요동에 있다는데, 왜 북경에서 찾아요? 북경이 요동? 장난하는거 아니죠?
@@TV-DOCJON 야 고대 요동이 지금의 북경지역이란다. 제발 공부 좀 해라.
@@rainbow3383 ㅋㅋㅋ 근거는?
뭘 공부해야 하는지 알려줘? 뭐 우주인이라도 그런걸 기록해 놨어야 공부를 허지. 넌 도대체 뭘 보고 공부했다는 거냐? 니가 공부 1도 안했다는거에 니 부ㄹ 두쪽을 건다
@@TV-DOCJON 진한시대의 요동과 명청 시대의 요동이 다르다. 애초에 요동이 무슨 뜻인지는 아니? 요동의 요는 '뭘' 요자를 쓴 것으로, 지나인들이 지네 영토에서 먼 지역 변방의 요수를 경계로 서쪽을 요서, 동쪽을 요동으로 나눴단다. 지네들 영토가 팽창 축소 할 때 마다 요동 요서의 위치가 달라졌다고. 진한시대에는 고조선의 영토가 서쪽으로 적어도 지금의 하북성, 산서성 일부 까지 뻗어 있었다는건 아니? 중국 고대사서 '산해경'에 '동해의 안쪽과 북해의 모퉁이에 조선이 있다.'고 기록돼 있단다. 그럼 지나인들 기준으로 동해의 안쪽과 북해의 모퉁이가 어디겠니? 바로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요녕성이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요동의 위치는 명청시대에 굳어진 것으로, 우리 조상이 하북성 산서성 산동성 요녕성 일대의 영토을 지나인들한테 뺏겼으니 요동이 고대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밀려나 현재 위치로 알려진거다. 한서에, 기원전 128년에 흉노가 요서를 침입하여 태수를 죽이고 어양 안문 일대를 공격했다고 나온다. 근데 요서에 있거나 그 근처인 안문이 지금의 산서성 대현시에 아직도 존재한단다. 그럼 요하를 기준으로 그 동쪽을 요동으로 부르는데, 요동의 서쪽경계도 대략 산서성 지역 근처에 있는건 당연하겠지?
@@TV-DOCJON 그리고 한가지 덧붙이자면, 역사를 연구할 때 가장 먼저 조사를 하는게 고대의 기록이란다. 그 이후에 고고학적으로 유적 발굴을 통해서 그 기록을 증명하는 것이고. 특정 고대 자료가 잘못됐다면 그걸 부정할 증거를 가져오면 될터, 무조건 잘못됐다고 아니라고 우기는 건 대체 어느나라 역사학이냐?
BC195년 서립 낙랑국 고구려 밑 신라 금주옆에 세운 강국 고구려 밑에 지역은 마지막왕 최리가 고구려에 항복 신라 금주 우측에 나아있던 잔존 낙랑국 세력은 대방국과더불어 신라에 투항 여기서 대방국은 대방군이 아니라 대방국이라 합니다.
디테일 하고 훌륭한 역사 해설 감사합니다!
중립적인 관점의 유익한 영상이었습니다.감사합니다.재야사학,강단사학 다 무시할 수 없다고 봅니다..특히 낙랑군 문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보입니다.금제버클만 해도 흉노계에서만 보이는 유물이고요..평양에 정말 낙랑군이 있었다면 그것도 역사의 일부인데,낙랑군 유물은 다소 의아한 점들이 있어요..
가령 천 년 뒤에 우주베키스탄에서 다량의 bts관련 유물이 나오면 우주베키스탄이 한국의 식민지였던 것이 아니듯이
평양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발굴하고 조선 고적 도보에 한나라 유물이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한 것으로 봐야죠. 북한 학자들에게 의해서 발굴된 유물들은 한나라 유물이 아니고 대부분 고조선 시대의 유물만 발굴됐죠. 세형동검, 청동 거울 고조선식 마차 부품들로 구성된 전형적인 고조선의 유물입니다.
잘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흥미롭고 재밌는 해설 잘 듣고 갑니다 ^^~
시나리오에 따라 중국서 유물 구해다 발굴했다고 뻥침.
감사합니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대표 오천도 입니다. 김충선 장군
고택은 20대에 갔습니다.
하나하나 세밀하게 역사를 가르쳐
주셨서 감사합니다.울분은 나지만
정답은 낙랑인이죠. 잘해야 한나라계 낙랑인인지 고구려계 낙랑인.
낙랑 같은 소리하고 있네~
중국 황제가 이러한 고급진 허리띠를 왜 차지 않고 점령지 낙랑군 태수 가 허리에 휘 감있을까요 궁금한네요?
한사군은 중국본토에 있었다..😅😅😅
미천왕14년에 낙랑군에 쳐들어가
남녀2000명을 포로로 잡아 왔다고
하던데 그중 일부 아닐까요?
일단 알아야 하는 것이
기자조선 - 위만 조선 - 한사군은 중국사입니다.
이게 빼도 박도 못하는 것인 중국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심지어 한족의 역사입니다.
기자조선 이전에 단군 조선이 있었다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 아니에요.
기자는 조선이랑 땅에 봉해졌다고 합니다.
조선이라는 지역이에요.
우리 민족의 나라는 중국의 지방에서
독립적으로 나라를 일구어 이땅은 민족의 터전으로 만든 것이에요.
창피할것도 없고 그냥 역사적 사실이에요.
제국을 이룬 흉노나 다른 민족에 비해 기록도 남아 있지 않고
기원 전후에 이야기가 나옵니다.
중국의 한족은 몇천년간 지네 민족으로 단일 왕조를 세운게 딸랑 몇백년 안됩니다.
그대로 스스로 합리화 하면서 잘 살잖아요
로마옆에 게르만이 살았는데
로마는 로마고 게르만은 게르만이지
게르만 누구도 로마의 역사를 자기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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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서와 만주 한반도의 청동기는 수주이 다릅니다.
요서의 청동기는 일정정도 수준이 나오지만
만주는 한참 뒤떨어지고
한반도는 더 늦습니다.
청동기 시대에 세지역은 같은 나라가 아닙니다.
이런 고고학적 발굴을 무시하고 뇌피셜로 역사를 논하는 것은 이상합니다.
흉노의 누금기법으로 제작된 황금띠고리 네요. 흉노의 지배를 받던 지역 ?
강의 잘 들었습니다. 일부 댓글들 중에 좀 이해가 안가는 분들이 있어서 좀 써봅니다만...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건 요동에 있었건 지금의 관점에서 과거를 해석하려고 하는 비과학적인 학문은 누구라도 추구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다면 한족 계열 낙랑인들이 우리 민족의 피에 섞여 이미 식구가 된 것이고, 요동에 낙랑군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지금 그들의 후손은 그들을 스스로 중국인이라 생각하는 중국인 일 뿐입니다. 우리는 왜 과거 역사에 대하여 대 중국 컴플렉스가 그리 큰지요? 케사르가 그의 갈리아 전기에서 골족(현 프랑스인의 조상)과 게르만 족을 야만인으로 정복 대상으로 묘사 했었죠. 근데 그럼 그 후손인 현재의 독일인이나 프랑스인이 로마의 후손인 지금의 이태리인에게 열등감을 느낄 거라 생각하시는지요? 환빠식의 논리, 우리 민족의 주제성을 강조한답시고 너무 과도한 논리 전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분도 진실을 모르시는구나 전부 중국에서 가져온 겁니다 최근에 밝혀졋습니다 하하하 재밋네여
그 당시 중국의 정치행정관행으로 보면 설사 중국의 군현이었다 할지라도 태수와 측근등 소수 그리고 호위병력정도로 임지에 부임을 하지 주민까지 데리고 가지는 않는 다는걸 감안하면 소수의 중국인 지배층이 와서 다수의 고조선계 주민을 통치한게 맞겠지요
안가고 그냥 거기 주민을 짱으로 임명할 수도 있어요. 공손도도 그런거였죠.
그당시는 소수만이 와서 통치할수가 없음 총과 칼은 상대할 수 있는 인원수가 틀림 그렇므로 소수로 다수를 통치 할수는 없는 것임 특히 우리 민족은 아래로 내려갈 수록 단합이 잘되어 타민족에게 지배된것은 일제시대가 유일함
@@soksong4726 고조선이후의 시대를 민족국가가 형성된 삼국시대 이후와 같이 보는 것은 무리입니다 그 이전은 정치체계가 잡히질 않았고 그래서 소수의 이주민이 다수의 원주민을 통치했지요 그걸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고구려의 건국신화와 백제의 건국신화입니다. 그러니 낙랑시대의 역사를 현대의 관점으로 재단하는 것은 자의식 과잉입니다.
@@allenyoo57 이렇니 무식하단 소릴 듣는거야 옛날일수록 종족개념이 강하므로 소수로 다수를 지배할 수없지 고구려는 주몽 부인이 그곳 지배계급이므로 남편에게 지배권을 넘긴거지 소수의 부여인이 지배자를 보낸게 아냐 이덕일 교수와 매림 역사에서 항상 강조하는게 여러 사실을 보라고 하는 것이지 석기에서 청동기로 바뀐이유가 뭘까? 무기 살상력이 여럿을 상대 할 수 있어서며 우리나라가 외세침입에 강력 항거한건 활의 우수성 때문이지 즉 소수로 다수를 굴복시키고 지배할 수는 없단거지
@@soksong4726 누가 무식한지 모르겠네요. 괜한 국수주의로 역사릉 망치지 마세요
역사에서 민족주의를 싹 빼고 연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얼토당토 않게 낙랑이 중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고.
중국이 그렇게 싫으면 중국식이름도 바꾸고 중국유래 단어도 다 바꿔야져.
방안퉁수들이 너무 많아요. 외교부도 외교적으론 중국에 너무 저자세고, 실제로 중국인 일본인 면전에서 역사 논쟁하는 사람 본적없음.
물론 중국,일본인들도 아전인수 역사해석을 많이 하더만요.
맞습니다. 안방에 앉아서 사료, 역사책에만 의거해서 보기때문에 삼국이 중국대륙에 있었다느니 말도 안되는 국뽕들이 넘쳐나고있습니다.....그러면서 일본서기 고서기는 왜곡이 심하다고 거들떠 보지도 않아요.....학교에서 역사 가르치는 교수들을 모조리 시민사관에 빠진 역사학자들로 매도하고(자기들이 자신있으면 논문 형태로라도 발표를 하면 될것을 그정도 실력은 또 안됨.) 이병도가 죽은지가 언제데 모든 역사교수들을 이병도 제자니 이병도 학파니......조선시대 당파 싸움보는거 같아서 한심하더군요......역사를 책 사료에만 의존해서 연구하다가 폭망한게 재일사학자 이진희씨가 주장한 광개토왕비 회칠 조작설이죠.......나중에 자유롭게 만주를 왕래하게 되면서부터 드러난 진실은 회칠을 한거는 그동네에서 청나라말부터 비문을 탁본해서 팔던 집안이 있었는데 좀더 자세하게 글자를 보이게 하기위해 이끼를 불태우고 굴곡진곳에 회칠을 한거로 밝혀졋죠. 이진희씨는 끝까지 그걸 인정을 하지 않았지만요. 사실 광개토왕비는 전통적인 한자체로 쓰여졌지만 군데군데 한국식 한자문장이 있기때문에 일개 관동군 대위가 조작을 하기에는 비문해석이 좀 난해합니다. 탁본이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일본학자들이 달려들어서 연구하고 결과를 내기까지 1년정도가 걸리 작업이었는데.....대위 나부랭이가 정보수집하기도 바빠죽겟는데 그걸 해석하고 조작하고 있었다면 직무유기로 당장 본국귀환받았을 겁니다.
@@방배동-n7c 나도 첨엔 대륙백제, 대륙신라를 국뽕으로만 어렴풋이 간주했는데. (반도에서 바다건너 거기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것이 말이 되는냐고) 한데 약간의 고려를 해본즉 고조선의 영역이 산동반도, 북중국, 한반도임이 유물로 증명되어 있잖소. 김일제(흉노의 왕자)가 문무왕의 조상으로 그이 비에 새겨져있다오. 어떤이는 모화사상으로 그를 족보조작처럼 비에 새겼다는데 너무나 얼토당투않지. 고조선이 ad1세기에 망했지만 그유민이 몽땅 이민가지는 않죠. 흉노옆에 다시 나라를 세워 신라라고 칭한듯하오 .북중국 흉노(동이족-고조선의 한갈레)가 한나라에 패해 김일제가 한고조의 마부가 되었다가 공을 세워 장군이 되엇는데 왕망의 난에 연류되어 산동반도로 쫒겨갔고 (여기까지 중국기록)거기서 다시 자손이 황해를 건너 구고조선의 영역 한반도로 건너가 신라를 다시 세운것으로 추정되오. 신라의 일식기록이 북중국땅으로 관측된다오. 백제의 중국땅 기록은 수없이 많다오.
맞아요. 안방에 앉아서, 과거 사서도 전체적으로 한번도 안 읽은 놈, 한자도 모르는 놈, 고대 한자의 의미도 모르는 놈이 박사네하면서 "학자질"하고 자빠져 있으니, 나라 꼴이 우습다. 4년제 대학교 나온 사람이 대충 읽어 봐도 이해한다. 고등학교때는 뭣도 모르고 그런가 보다 하지만, 세상 물정 다 안다음에는 개ㅅㄲ들 개구라에 속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