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매소산성과 기벌포 지역을 파헤치면 창.칼.갑옷 등 무수한 전쟁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겠네요? 박물관 1개로도 부족한 유물량이 쏟아졌겠네요? 지금도 발견이 되고 있나요? 2. 거란과 말갈병의 경우 기마병이 많고 또한 기마가 3만필 이상이라 하셨는데, 어떻게 선박편으로 그 많은 기마들을 수송할 수 있었을 까요? 당시에 근대와 같은 기선과 같은 선박이 존재했나요?
백제와 고구려 멸망후 당이 곱게 양보하고 물러났다면 백제와 고구려 복국군과 신라가 어지럽게 싸웠을거고.... 아주 다이나믹한 역사가 만들어졌겠네요. 아깝습니다. 머어- 그런데로 삼국이 힘을 합쳐서 당을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고 가 된것도 나쁘지는 않군요. 이래서 신라 천년역사가 이루어지고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가 그 바톤을 이어받네요. 백제 후예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금까지도 호시탐탐 백제부흥을 노리고 있구요. 걸핏하면 터지는 우리와 일본의 싸움을 내란으로 봐야하나요? 먼 후일 그렇게 기록이 정리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끔씩 터지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유모를 적대감의 원천이 거기서부터 시작된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의 원한에다 더해 백강전투 대패로 직접 부딪히기도 했으니 그 한이 시대가 지나면서 사건은 잊혀지고 그저 막연한 감정만 남아있다가 잊을만 하면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김영규-g4z 맞네요 멋있게 죽이려다 보면 신라군인들 한테도 피해가 있을것이고 님말대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데 당나라에 병사들과 장군들이 없겠습니까? 좋은 의견 감사 합니다 역사 좋아 하시나 봐요? 유튜브임용한 tv,황현필 tv, 엠장기획 추천 합니다 엠장기획은 교수님 두분에 아나운서 셋인데 간판이 추천하기가.... 사장님이 간판을 왜이리 만든건지 그래도 정말 유쾌상쾌통쾌 하면서 재미있고 유익하더라구요
1388년 음력 7월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철령위에 대한 마지막 보고가 있은지 반년만에, 고려가 여기까지 밀림.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새로운 만주의 시작. 새로운 만주로까지 밀림.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관련없는 곳에 분봉. 2년후 한반도로 남하.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우왕이 몽진. 산해위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만주에 고립됨. 2년후 공양왕이 한반도로 남하. 2년후 조선의 시작.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고대사 굴삭기,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월등히 뛰어났던 국가였다는 것 때문에 '신라'를 고구려 아래로 보지만 실제 '신라'는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1000년 국가였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삼국지에 나오는 위(45년), 촉(42년), 오(58년)가 전부 60년도 못 갔습니다. 또 한족은 '대륙 통치 기간'이 '고작 681년' 밖에 안 되지만 '우리 국가 중 일부'였던 '신라만 해도 1000년'입니다. 진정한 대륙의 지배자는 우리와 우리의 형제인 북방 민족입니다. 고려가 고구려를, 조선이 고조선을, 청나라가 신라를 따른 건 다 이유가 있는 대목입니다. 정통성이라는 것.. 고작 몇십년 생존한 국가보단 몇백년, 몇천년 동안 이어진 국가가 더 정통성 있겠죠?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어째서 보존하지 않고 왜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경상도 사람들이여! 입으는 삼국통일을 주절대면서 지금도 나라 이름 조차 신라라고 하지 못하고 고려라고 하니 이 무슨 낯짝으로 삼국 통일을 입에 담을까? 부끄럽고 또 부끄럽구나 경상도 사람들이여! 적어도 우리가 만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찌 가랭이 벌리고 눈치나 보는 처지가 되었겠는가?
신라 김유신 장군 에게 😢
무참히💥 당나라 장수 소정방 숨은 일화 올려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왜 중국은 몇천년전에도 자기들한테 불리하거나 쪽팔린 내용 사건은 왜곡하고 역사서에 쓰지를 않을까 지금도 마찬가지고 참 머같은나라다
1. 매소산성과 기벌포 지역을 파헤치면 창.칼.갑옷 등
무수한 전쟁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겠네요?
박물관 1개로도 부족한 유물량이 쏟아졌겠네요?
지금도 발견이 되고 있나요?
2. 거란과 말갈병의 경우 기마병이 많고 또한 기마가
3만필 이상이라 하셨는데, 어떻게 선박편으로 그 많은
기마들을 수송할 수 있었을 까요?
당시에 근대와 같은 기선과 같은 선박이 존재했나요?
더 빠른 시대에 적벽대전도 일어났는데 선박이 없을리가..
이렇게 중요한 사적지를 도로 확장으로 묻어 버리다니 소정방사당도 폐허로 방치하고, 더나아가 삼국,통일신라시대의 많은 역사서들은 다 어디로 사라젔을까?
백제와 고구려 멸망후 당이 곱게 양보하고 물러났다면 백제와 고구려 복국군과 신라가 어지럽게 싸웠을거고.... 아주 다이나믹한 역사가 만들어졌겠네요. 아깝습니다. 머어- 그런데로 삼국이 힘을 합쳐서 당을 공동의 적으로 인식하고 가 된것도 나쁘지는 않군요. 이래서 신라 천년역사가 이루어지고 고구려의 후예인 고려가 그 바톤을 이어받네요. 백제 후예 상당수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지금까지도 호시탐탐 백제부흥을 노리고 있구요. 걸핏하면 터지는 우리와 일본의 싸움을 내란으로 봐야하나요? 먼 후일 그렇게 기록이 정리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가끔씩 터지는 일본의 한국에 대한 이유모를 적대감의 원천이 거기서부터 시작된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열도로 건너간 백제 유민들의 원한에다 더해 백강전투 대패로 직접 부딪히기도 했으니 그 한이 시대가 지나면서 사건은 잊혀지고 그저 막연한 감정만 남아있다가 잊을만 하면 무의식중에 튀어나오는 것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당나라가 괘씸한게 통일신라때에도 신라왕보고 낙랑왕이라고 격하해서 얘기함.
빈주,등주,래주,제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
와 저 유적을 묻어버리고 공사를해?
진짜 어이가 없네요... 더군다나 몇십년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지방 소멸한다 어쩐다 하는데... 남겨두고 유적지로 관광 프로그램이라도 만들지 참 한심..
외할아버지 급이 있지 고구려 연개소문처럼 군대 사열식이나 고수들 검무 파티 하다가 칼로 죽이셔야지 독살은 제가 봐도 아닌것 같습니다.
전체군대 을 그리한다면 죽이는게 아닌전쟁 아닐까요?
신라 모두을 함락하려는것을 미리알고
독을 써서 모두 죽인것 입니다.
@김영규-g4z 맞네요 멋있게 죽이려다 보면 신라군인들 한테도 피해가 있을것이고 님말대로 전투를 치러야 하는데 당나라에 병사들과 장군들이 없겠습니까? 좋은 의견 감사 합니다 역사 좋아 하시나 봐요? 유튜브임용한 tv,황현필 tv, 엠장기획 추천 합니다 엠장기획은 교수님 두분에 아나운서 셋인데 간판이 추천하기가.... 사장님이 간판을 왜이리 만든건지 그래도 정말 유쾌상쾌통쾌 하면서 재미있고 유익하더라구요
신라와 김유신은 정보전, 간첩전의 끝판왕같은 스타일이었음은 일본기록으로 짐작가능.
신라는 중국에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1388년 음력 7월12일 명이 북평에 행도를 설치 (비로소 도착하였음을 알림). 철령위에 대한 마지막 보고가 있은지 반년만에, 고려가 여기까지 밀림.
음력 7월 22일 명이 산해위를 설치 (새로운 요서 요동의 시작) 새로운 만주의 시작. 새로운 만주로까지 밀림.
음력 9월 15일 8개 점령지에 대한 분봉 (秦王,晉王,周王,楚王,齊王,湘王,魯王,潭王,) ~관련없는 곳에 분봉. 2년후 한반도로 남하.
분봉된 8개 지역을 점령하기 1년전의 요서 요동이 그 당시의 요서 요동.
우왕이 몽진. 산해위가 설치되면서 새로운 만주에 고립됨. 2년후 공양왕이 한반도로 남하. 2년후 조선의 시작.
근데 13만이 배를 타고 오는게 가능한가요?
배가 존나많으면 가능하죠
배를 꾸준히 보내면 가능해지잖아
열등한 조선인아 ㅡㅡ 당나라 신라 인구 비교좀 ㅡㅡ 능지처참아. 산동이랑 반도 거리 졸라 가까움 ㅡㅡ 작년 보트타고 산동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중국인 불체자 있음 그리고 당나라 배척수 좀 알아봐 ㅋㅋ 능지처참한 노예조선인 ㅋㅋ
신라는 중국에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흠 그럼 그 시대에 뱅기 타고 왔을까? ㅋㅋㅋㅋㅋ
13만명이 산둥반도에서 배타고 이동~?? 이건좀 아닌거같습니다~~?
배를 꾸준히 보내면 가능해지잖아
열등한 조선인아 ㅡㅡ 당나라 신라 인구 비교좀 ㅡㅡ 능지처참아. 산동이랑 반도 거리 졸라 가까움 ㅡㅡ 작년 보트타고 산동에서 한국으로 넘어온 중국인 불체자 있음 그리고 당나라 배척수 좀 알아봐 ㅋㅋ 능지처참한 노예조선인 ㅋㅋ
김유신, 김춘추 정말 역대급 지략가이자 대단한 인물들이었을듯…
우리 민족 역사를 절름발이로 만든 장본인. 외세를 끌어와 결국엔 ㆍㆍ사대주의자 대갈 수준이지
김춘추가 아닌 김유신 덕분에 삼국 통일 했지만 결국 발해국과의 2국 시대였다.
북평(大都)의 도착
(대명여지도 초기본,초중본,중초본) 북방지역의 상실.
上都의 도착 (초중본) (원나라의 과거가 기형적으로 비대해짐)
중국 대륙 중동부에 존재하고 있었던 고구려 백제 신라를 좁디좁은 한반도에 꾸겨 넣은 가짜 역사를 보고있자니 기가 찬다 기가 차 어이가 터지네ㅋㅋㅋㅋㅋ
@@텐버거-w4l 허구와 사실은 구분못하다니 기가찬다 기기차 어이가 터지네ㅋㅋ
@ 세뇌당한채로 평생 그렇게 살거라
@@lionkim5413 평생 세뇌당한채로 살거라 ㅉㅉ
신라는 중국에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소정방은 김유신장군에게 패하여 사망함
이후 당나라는 대륙의 동쪽을 신라의 병합을 인정하고 내륙으로 후퇴하고
신라를 황제국으로 인정함
신라는 중국에 있었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방이 나대다가 모가지 따였누
계림은...저기 중한지역 근처인데...?
졸!
김유신이 진짜 기발한 작전을 펼쳤던 진짜 대단했던 영웅이었던거 같다.
@@hyun-changshin7811 영웅??
저 두놈때문에.고구려가.중국땅이된거지 영웅은 무슨
김유신이 영웅같은 소리하네. 저놈 아니었으면 만주도 우리땅이다.
@@ley766 왜 그걸 김유신 탓하세요ㅋㅋㅋ 김춘추가 당 태종과 손 잡은 때문이지 김유신은 왕명대로 한 거 뿐이죠
@@ley766 그리고 우리가 중국인일수도 있음
唐이 야욕을 드러낼 줄 정녕 몰랐던가? 고구려가 신라의 연합 제의를 거절한 것이 천추의 한이다
당이 누구 좋으라고 백제 먹고 신라먹고 고구려 먹으러 온거 아닌가 김유신 때문에 우리의 고구려땅 잃고 삼국 통일은 웃기는 망언이다
난 김춘추 김유신 불편한고 어렵다.
외할아버지....
광고드럽게마니하네😮
외세를.끌어들인것이..패착이다..
당을 끌어들이지 않았어도 당은 침략했음 신라는 당을 이용한것 당은 얻은것이 없음..대동강 이북은 바로 발해가 세워짐
그때 신라로 봐선 백제 고구려도 다 외세 였단단다
외세? ㅋ 미군도 외세지? 철수하라고?
신라가 뒤치기 안했으면 허무하게 털러 멸먕하진 않았겠지
누가 뭐라해도 외세 끌어다 백제 고구려 멸망시킨거는 사실이지 ㅋ ㅋ 결국 신라도 망하잖아 ㅋ ㅋ 후 백제한테 좁밥마냥 ㅋ ㅋ ㅋ ㅋ 탈탈
소정방 장군은 대조영 이 이세민 후퇴중 계곡에서 1대 1 검대림 으로 죽은 것이다
당교가 아닌것 같다
유인촌 아니 유장관이 최고여🎉
신라=당
훈족의 후예답게 신라는 자주적이었다.. 당나라 하고는 전략적 관계였을 뿐이다 사대주의로 썩어빠진 조선과는 근본이 다름
붙어먹은거지 전략적은 무신 ㅋㅋ 나중에 둘이 싸웠으니까 전략이다? 서로 통수친거지 깡패들이 그짓 잘하잖아
@@좋뎃구알 그런 걸 바로 이라 말 한 단다 무식아
@@좋뎃구알 그게 바로 국제외교전략이란다....능지하고는 ㅉㅉ
@njsjifhfsf ㅋㄱㅋㅋ 니하오~! 외교전략 ㄱㅋㄱㄲㅋㅋ
@@좋뎃구알 니하오 같은소리 하고있네 조선족이냐???
아
짐새의 독....
진짜 역사 모르시는 분들이 많아서 댓글 남깁니다.
의문투성이인 한민족의 역사..
진짜 한민족의 역사에 다가가시고 싶으신 분들은 고대사 굴삭기, 책보고님 영상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천문학으로 당시 고대 수도의 위치 기록을 보면
고구려 - 몽골 일대
백제 - 북경 일대
신라(초기) - 중국 동부 양자강 일대
신라(후기) - 한반도 일대로 나옵니다.
-백제의 중심은 북경과 산동 반도입니다.
백제 귀족 성씨 8개 중 대다수가 현 산동 반도에 있습니다.
백제는 패망 후 열도로 건너가 신라+가야+빙하기 전 건너온 고대 한반도인을 통합해 '일본'을 만듭니다.
당시 일본 열도의 가장 강했던 세력이 신라, 가야의 '철기병'이었는데 여기에 건너온 백제인들이 추가로 '철기마병'까지 운용해 지배 세력이 됐습니다.
교토 쪽에 있는 '나라'현도 우연이 아닙니다.
이 나라 현은 신라-가야 세력이 지배하다 열도로 온 백제가 지배하게 됩니다.
또한 일본어의 뿌리는 백제어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구려'가 월등히 뛰어났던 국가였다는 것 때문에 '신라'를 고구려 아래로 보지만 실제 '신라'는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1000년 국가였습니다.
남자들이 좋아하는 삼국지에 나오는 위(45년), 촉(42년), 오(58년)가 전부 60년도 못 갔습니다.
또 한족은 '대륙 통치 기간'이 '고작 681년' 밖에 안 되지만 '우리 국가 중 일부'였던 '신라만 해도 1000년'입니다.
진정한 대륙의 지배자는 우리와 우리의 형제인 북방 민족입니다.
고려가 고구려를, 조선이 고조선을, 청나라가 신라를 따른 건 다 이유가 있는 대목입니다.
정통성이라는 것.. 고작 몇십년 생존한 국가보단 몇백년, 몇천년 동안 이어진 국가가 더 정통성 있겠죠?
-역사서인 '고려사'에서는 '고려는 동서가 2000리 남북은 1500리'로 '동서가 남북보다 길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교과서에선 남북이 더 길다고 가르칩니다.
고려 역시 진짜 강역은 한반도와 만주는 말할 것도 없고 북경과 산동 반도 이남까지입니다.
-예맥(우리)
동호(선비[수, 당]-거란[요]-몽고족[원])
숙신(말갈-여진[금]-만주족[후금,청])은
모두 한민족의 갈래이며, 원나라(동호)와 금-청나라(숙신)가 들어서면서 형, 동생의 관계가 역전됩니다.
당시 세계 최강국이던 몽골이 다 쓸어버리던 와중에 괜히 고려만 남겨둔 게 아닙니다.
또 훗날 후금(훗날 청)이 '뿌리를 잊고 이민족에게 사대하는' 조선을 정신 차리게 한 것도 절대 굴욕이 아닙니다.
-'여진'이 아니라 '주션Jurchen'이란 발음이 맞습니다.
한문을 그대로 읽다보니 여진이라고 잘못 읽게 된 겁니다.
Jucrchen과 Josun이 발음이 비슷한 이유는 (고)조선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여진족은 대한민국(조선)을 여진족 파벌 중 하나로 인식했습니다.
때문에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 할 때 도와줬습니다.
청 건국자 누르하치의 조상인 먼터무는 이성계의 부하 이지란과 6촌 사이이고, 먼터무는 스스로 이성계를 섬겼다고 밝혔습니다.
-중국은 129기의 고분군(후한 묘 7기, 북조 묘 2기, 당 묘 33기, 요 묘 33기)에 아파트를 지어 역사를 지우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역사 유물인데 어째서 보존하지 않고 왜 그 위에 콘크리트 붓기 바쁠까요? "상식적으로 다가가면 답이 나옵니다."
또 '낙랑군 조선현 사람 무덤'이 '북경'에서 나왔습니다.
식민사학자+일본+한족은 낙랑군이 현 '평양'에 있었다는데.. 무덤은 어째서 '북경'에서 나오나요?
한족, 일본은 과장이나 왜곡이어도 '좋은 건 다 자기네 거'라는데, 대한민국 주류 사학계는 '환단고기와 한민족의 대륙 고대 국가는 환빠'랍니다.
우리나라 역사학계 주류가 되는 사람들의 실태입니다.
-일찍이 우리 한민족(동이족:동쪽의 큰 활을 든 민족)은 뛰어난 역사(홍산 문화)를 지닌 민족입니다.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도 됩니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또 대한민국 사람으로 태어날진 모르겠지만 진짜 역사를 알고 있는 이상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는 노력은 해봅니다.
대한민국 만세.
사실한반도최고의명장이누구냐한다면.김유신이나이순신아닐까?ㅡ대등한인물로이성계도꼽을수있겠지만.ㅡ누구는척준경이다.뭐다하는데.가장성공한한평생의인생전체를보면김유신만한인물이없는것같아.
삼국통일은 무슨 개뼉따귀같은 삼국통일
같은 민족을 뙤놈 끌여들여서 망하게하고 통일했다고 표현 하는건 뭐냐
삼국통일후 부터 같은 민족..이전엔 서로가 외세.
김유신이 전형적인 숫내가 나는 경상도 남자다.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경상도 사람들이여! 입으는 삼국통일을 주절대면서 지금도 나라 이름 조차 신라라고 하지 못하고 고려라고 하니 이 무슨 낯짝으로 삼국 통일을 입에 담을까? 부끄럽고 또 부끄럽구나 경상도 사람들이여! 적어도 우리가 만주를 가지고 있었다면 어찌 가랭이 벌리고 눈치나 보는 처지가 되었겠는가?
한반도 최고 인물 김유신
약을 먹여 죽였구나. 칼로 죽이지. 당시 김유신은 나이가 70세가 넘었었다지.
하.. 경상도..
삼국유사만이. 바른 역사서 니까 다른 역사 서는. 사이비. 역사 서
소정방이. 좀더. 세심했으면. 죽이지. 못했을것. 자만 했다가. 독살당한것. 같음. 어리석다
마침표는 도대체 왜 이렇게 찍는 거임?
술먹여서. 죽여버린것 신라가. 살기 위해서. 약속 위반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