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에 종사... 하는 건 아직 아니지만 20살의 한 만화가 지망생으로서 영상을 보며 느낀게 많이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피터슨 교수님께서는 강연을 하거나 지적 토론을 하실때 "자신의 지적 수준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말을 이어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있긴 하지만, 마치 혼자 작업실에서 펜을 들고 생각에 잠겨 골몰히 연구하고 사색하는 학자의 태도로 말이죠. 즉 교수님께서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를 이끌어내어 최대한 명확하면서도 의미있는 단어를 선택해 말해주겠다"라는 태도로 강연&토론에 임하시고 그것을 듣는 것은 오로지 저희의 '능동적인 경청 자세'에 맡기신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태도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는 "젊은 청년들의 멘토들의 특징은 1. 하나의 분야에 깊고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2. 그것에 '열정적으로 헌신'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교님께서 성인이 되셨을때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도망가는것이 두려워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려 최대한 눈높이를 낮춰 겉핥기식의 교리만 전파하는데 열중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제 생각에는 앞의 세 이야기 모두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흐름이 현대 문화예술산업의 기저에도 동일하게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렵고 심오한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즉,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나, 적어도 진정으로 깊은 의미를 주는 것에 능동적인 태도를 갖추지 않기에) 사람들이 떠나가는게 두려워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마케팅", "고객지향적 마케팅"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더 이상 예술이 진정으로 해야할 일인, 예술의 본래 목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감동이나, 좋은 에너지, 가치있는 메세지를 주는 것"(혹은 자신이 '느끼는' 진리를 가능한 최고 해상도로 표현해보려 애쓰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상업화된 문화예술과 미디어는 마치 실험 쥐에게 도파민 주사를 주입하는 것처럼, 오로지 자극적이기만한, 최대한 자극적이게 되도록 노력하여 만든 달달한 콘텐츠쓰레기들만을 공급하죠. 그래놓고 좋다고 그런 콘텐츠들을 mindless하게 소비해놓고는 내 시간 어디로 갔냐며 한탄하는 소비자들도 문제긴 하지만요. 그래도 물론 필요하긴 합니다. 왜, 요새 '스낵 콘텐츠(snack contents)' 라는 말이 있잖아요?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소소한 간식 역할을 해주는 데, 고맙긴 고맙겠죠. 하지만 간식은 어디까지나 간식일 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 안찹니다. 우리의 뼈를 단단하게 해주지도, 머리가 잘 굴러가게 해주지도 않죠. 오히려 우리 건강을 악화시키는데다, 맛은 또 달콤해 우리를 계속 중독시키려할 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라고 하는데, 그보다 못한 간식은 웬 말입니까. 대신, 저는 진정 예술가라면, 본디 '예술가'라는 말이 주는 그 보편적인 인상, 그 고독한 이미지처럼 작업실에서 자신의 내적인 예술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내는데에 열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피터슨 교수님의 강연태도처럼 말이죠. 물론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것"이고,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이를 고려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는 것은 자신들의 그 엄청나게 가치있는 뿌리깊은 전통적 지성을 온전히 전파하는 책무를 잊고 한낱 콜라주나 풍선놀이에 그친 활동만을 보여주었던 주교님께서 비판하신 가톨릭 교회의 한심한(pathetic)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보았습니다. 자신은 더 깊고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럼 사람들이 다 도망가니까 안하려는거죠. 어쩌면 '진리를 그려내보려 애쓰는 창작'(본래 예술이 해야할 일이죠.)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마치 예술가에겐 삶의 소명처럼 다가오는 이 책무(진리를 그려내려 애쓰는 것)를 현대사회의 예술인들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자극적 콘텐츠를 그리는 것이 창작의 고통이 훨씬 덜 하니 책임감도 회피할 수 있고 또 상업성을 추구하는 미디어와 동조하니까 돈도 잘 벌리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물론 그게 과연 본질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없겠죠. 예술가로 태어나서 저 소명을 등지고 달아나려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좀먹는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저 같은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20살의 한 청소년으로서도 느끼고 배운게 정말 많았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좋은 말씀 주시는 피터슨 교수님과 피터슨 팀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디오티마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전문성과 심오함을 무기로 대중을 그저 계몽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본다"라.. 피터슨 교수님도 강연 중 예술에 대해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정치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th-cam.com/video/yCJztARBNiI/w-d-xo.html.) 진정한 예술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영원히, 영원히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의미의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창작은 (마치 철학자가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파고들듯이) 예술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인 것이고, 그 작품 즉 결과물은 그 부산물로서 나오는 것이다... 예술 작품이란 결국, 그것을 두고 "충분한 시간을 소모하여" 감상하고 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그 본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죠. 밤새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철학하는 이유도 결국 의미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상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그 작품이 탄생하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를 기다려주지 않죠. 이미 만들어진 틀을 기반으로, 이미 다른 현자들에 의해 "개척된 지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언어로 풀어낸 후,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내서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작품을 최대한 많이 팔아치우길 원합니다. 그러니 현대 상업 예술에는 '탐험'이, '모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가 모르는, 과거의 현인들이 미처 그 생이 다할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뜻 깊은 지혜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진리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개척 되지 않은 채, 그 가능성만을 내포한 채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혼돈의 영역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전혀 그런 시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탐험가들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우리는 계속 울타리를 치려고만 합니다. 그 좁아터진 울타리 안에서, 자기 잇속만을 챙기며 바깥 영역은 아무래도 좋다며 현실에 안주하고 살려고 합니다. (혹시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피터슨 교수님이 말한,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무엇이 채워질까요. 상업적 미디어.., 거기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겠죠... 나아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점철된 작품들이 들어오려 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상에 조금 알고 있는 바가 있다고, 그것을 무기로 대중들에게 이미 의도가 있는 계몽적 메시지를 전하려한다." 그럴거면 뭐하러 굳이 예술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뉴스기사를 쓰는게 낫지 않을까요. 만화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비유해보자면, 예전 만화들은 (특히 제가 좋아했던 일본만화들은) 그림체이든 연출이든 어디 하나씩은 꼭 서투르고 어색한 법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작품에선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화와 저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품에 말 그대로 '혼'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일 뿐입니다. 피터슨 교수님의 언어를 빌리자면, 현대 문화예술계는 '질서'의 영역에 두 발을 모두 담근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기만 할 뿐, 그 곳엔 생명력과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생기가 흐르지 않는 땅엔 가뭄이 들겠죠. 점점 더 말라 비틀어져만 갑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모든 생명이 꺼진 땅에 남게 될 것은 겉모습만 예쁘게 치장된 밀랍인형과 잘 포장된 시체뿐일 것입니다.... 'Art is never finished, only abandoned' - Leonardo Da Vinci C.S 루이스.. 마침 읽어보려던 작가였는데 더 관심이 가네요. 다시 한번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danply 와 미국 생활을 오래 해보셨다니... 저로썬 꽤 부러운 경험이네요. 아무래도 진로 특성상(만화,영화,스토리,연출..) 한국에서는 몇몇 디지털 웹툰 플랫폼을 제외하곤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영역, 일해볼 수 있는 스튜디오가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일단 이쪽 분야에 들어온 이상, 제 작품도 작품이지만, 나름 '세계 최고'급 사람들과도 언젠간 꼭 일해보고 싶은 야망이 있어서요 ㅎ... '세계적인 스튜디오' 하면 떠오르는 디즈니, 유니버셜, 패러마운트 등등... 거의 다 미국에 있죠. 그런가하면 또 만화와 같은 분야에선 일본이 아직까지도 강세하구요. 그래서 저 역시 기반만 된다면(실력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이민 갈 결심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좋긴 하지만, 저로선 조금 더 큰 물에서도 제 안의 세계를 펼쳐보고픈 마음이 있어서... 이 또한 젊은 지금만 가질 수 있는 패기겠죠..?ㅎㅎ..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부딪혀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꿈이란 태양에 눈이 멀어서 지금은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름의 이유와 방향이 있고.. 마냥 도피성 이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특히나 미국같은 서구권의 경우엔 그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나름 동경해왔기도 합니다. 제가 피터슨 교수님 영상 항상 찾아보는 것처럼요. 사실 그 전에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조금 진지하게 "아, 이러다가 미래에 정말 이민을 갈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조금 실감나게끔 다가와서, 요즘들어 좀 심적으로 혼란스런 시기를 겪고 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이 때를 적어도 후회 하지는 말아야 하니, 이럴 때 일수록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지금 제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time span 안에서 계획하고 공부해 나가야겠습니다.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그저 예술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서 님께서 어떠한 질문들을 갖고 있는지, 작금의 시대에 대한 분노, 고통, 안타까움 등이 저와 매우 비슷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되는 한 편, 젊은 예술가가 날개 한 번 펼쳐보지 못할까하는 마음입니다. 쓰신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아마 아시는 내용일거라 예상합니다만 주절여보겠습니다. 예술은 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때, 예술의 고유적 가치와 기능을 알아줄 때 꽃피우는 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조건인데 그렇다면 한국의 소비자는 풍요로운가?에 대한 답변은 "물질적으론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론 빈곤합니다." 이고 다른 답변으로는 "예술의 가치와 기능을 알아보지 못하며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입니다. 정신적으로 빈곤하기에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고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면 취향이나 개성 또한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괜히 유행만 따라가는 몰개성의 시대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다양성과 의외성이 좁은 사회여서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성과 취향이 없는 자는 사유하지 않으며 사유하지 않는 자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대중들의 수준이 낮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문사철이 예로부터 엘리트들의 무기가 되어왔던 것처럼 예술 또한 늘 그래왔고 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점점 더 도시화 되어갈 수록 심화되어가고 있고 앞으로 더 쇠퇴할 것은 자명합니다. 미디어로 인한 텍스트의 죽음이 예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텍스트의 죽음이 문해력을 낮춰왔고 문해력이 낮다는건 사유하는 힘이 낮다는걸 뜻하고 사유함이 낮은 사람은 예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어려우니까요. 예술은 인간에게 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밥과 물만 있으면 사는대에는 지장이 없죠 그러나 술이 있어야 사람 사는 것처럼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술가도 사람이기에 술만 마시고는 살 수 죠는 밥과 물을 위해 예술가가 예술을 팔아 생존만을 도모하는 것을 보고 비난받아야 마땅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딱 잘라서 비난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희망 같은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언어이지만 언어마저도 언어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완전 표현수단이고 언어보다 더욱 강력하고 아름다운 표현수단은 예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두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시대가 도래하건 예술가와 예술을 찾는 이는 존재할 것입니다. 이는 배움이 짧은 제가 드리는 위로이자 용기입니다.
정말 훌륭하고 사고를 하게 하는 멋진 두분의 대화를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기독교인으로써 논리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독교의 모습에 요즘 허무감을 느끼며 더욱 공감했습니다. 조던피터슨 박사님은 사회와 자료를 보고 본인이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면에, 목사님은 누군가의 생각을 인용하며 근거로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부분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한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의 하나님을 전하기를 너무 조심스러워 하고, 누군가의 말 또는 권위있는 목사님과 성인의 말에서 멈쳐버린 기독교... 그런 점이 더이상 소통하고 공감하기 어려워진 오늘의 기독교가 된것이 아닐까요.
사랑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하나씩 더 인식해 나가는 것, 거기에 길들이 있네요. 공산주의의 어둠 속에서 사라져갔던 크리스마스 그리고 사라지는 전통 뒤에 대안이 없음을 느낀 후에야 느끼는 사랑없는 창백함. 러시아 수용소에서 bland한 자세로 그러나 상상조차 힘든 환경과 조건에서의 헌신적인 사랑. 진수성찬이 있다한들 부의 무한한 축적이 있다한들 사랑없는 풍족은 길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존재를 잃는 것 뿐이군요.
@@socialphilo3557 어디에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숨쉬고 살아가고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의견을 남기는 것 모두 사랑의 언어 위에서 짜여져서 작동합니다. 영상에서 말하듯 있던 것들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단계의 대안은 없이 허무만이 남아서 모험의 길이 닫힌 상태가 사랑의 결핍이지요. 그 어떤 곳에서도 사랑과 사랑의 결핍 이 있을 뿐, 사랑이 0에 수렴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정곡을 찌르네요. 저에게 있어, 모험은.. 뒤로한채 자기합리화와 핑계하며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늘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기를 바랬고, 돌아가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감사로 받았기에 버릴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결국 타이탄의 도구들을 모으는 나날들이고, 언젠가(내년이 되기를) 진정한 모험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저는 목혜자가 아니기에 현재 교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그것의 수준을 낮추기보다 그것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으로 보이게, 진정성 있어 보이게 해야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저는 군입대를 하며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된 데에는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특히 질서 너머의 프롤로그를 보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결심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하냐고, 왜 이런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하냐고 울부짖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터슨 교수님께서는 질서 너머의 12번째 법칙에서 말하듯 "고통스러워도 감사하라"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정신에 감동했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후회와 원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고통스러워도 감사하라"라는 말은 제게 큰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교회에서 주는 햄버거, 열정 넘치는 설교 등의 사역이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지성이 담긴 책이, 유튜브 영상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길 기도합니다. 목사님들, 종교 활동가분들이 조던 피터슨 교수님처럼 미디어 앞에 서서 토론하고 소신들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기존의 전교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 혹은 사적이지만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같이 이겨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으로 감동을 주며 이성과 논리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을 감싸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러한 행동에 앞장 서겠습니다. 제 위치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머리로 둔 하나님의 지체가 되어,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는 '한국 천주교가 어떻게 시작했는가'입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의 파견 없이 스스로 믿음을 받아들여, 성직자도 없이 신자 공동체가 먼저 생겨난 교회였고, 또 백 년도 더 되는 박해 속에서도 수만 명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 키워낸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처절하고 감동적일 수가 없습니다. 양반이 반상의 질서를 꺾고 양민과 노비를 형제 자매로 맞아들인 이야기, 글 한번 배운 적 없는 이가 당당히 관장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 박해를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이어가려 했던 교우촌 이야기 등등. 그 밖에도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있었기에 그 숱한 박해 속에 교회가 위축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겠죠.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자신의 삶과 죽음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정말 충실했던 분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신앙에 몰입하고 구현해내려는 노력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것을 자주 잊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교회가 온전히 뛰어들고 있지 않은듯하다고 하셨는데,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없는 얘기가 아니니 말이죠.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신부님의 이야기를 봐도 참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금 성직자로서의 저의 삶은 저렇게 뜨겁고 처절하지 못하니까요. 부유하지는 않으나 결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늘 매너리즘과 싸우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면 스스로 한심할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상도 저를 깨우는 영상이군요.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안녕하세요, 저는 성경의 내용과 복음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본질의 뒤틀림이 크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Bishop Barron 뿐만 아니라 Peter Kreeft 같은 카톨릭철학자나 조던 피터슨, 벤 사피로 같은 활동가들의 말을 영어로 듣는 것은 쉽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일어나면 큰 지식적 leap 을 거쳐야 하고,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mrknowmyself 말씀하신대로 번역이 되다보면 아무래도 원래 메시지가 조금 흐려지는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죠.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표현과 우리말이 온전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고, 쓰이는 표현이나 묘사되는 상황 자체도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번역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성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에서 성경을 번역할 때 원칙 중 하나가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그나마 의미가 가까우면서 대중에게 익숙한 표현들을 찾았던 겁니다. 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말씀하신 의미의 간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해서 그것을 보충하는 것이 바로 강론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서학과 성서신학, 설교학 등을 배우는 것도 이를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성경에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가? 그건 누구라도 완전히 다가가기는 힘들겁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해도 그 모든 메시지를 다 알고 실천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동체인거죠. 단순히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메시지를 실제 살았던 선조들까지 포함입니다.
@@백상렬스테파노 답변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간극 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고봅니다 일반인에게 오히려 반감을 줄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어떠하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교회,성당건축과 성경인데. 이것은 잘못된 오정보를 알려주는 꼴이 되고 이런것들이 누적되어서 현재 한국 개신교의 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없는것보단 낫겠죠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그렇게라도 징검다리를 건너 진짜 복음, 나중에 진짜 진리에 다가갈수 있다면 좋겠네요. 제생각에 한국화가 되면 모든 측면에서 이상한 뒤틀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건축들만 봐도 그렇죠...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건축들중 정말 세계의 건축적 기준으로 봤을때 제대로 지어진 비율이 제가보기엔 5% 도 안됩니다... 여기저기 플라스틱으로 덧대고, 말도 안되는 곳에 징크처리하고... Proportion 즉 비율 측면에서 거의 파국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건축물들도 많은거같습니다. 한국의 교회나 성당이 계속 진화해야 하는데 후퇴하고 있는것같습니다.
이 순간의 내 모험은 지속가능한 문명 개혁의 한 축이 되어 이바지 하는 삶이다. 유대적인 사회를 소중히 하며 유대적 동력으로 사회의 한 축으로서 사랑을 짊어지며 이바지 한다. 각오를 가지고 선택과 책임끝에 지혜로운 삶이 매 시간 속에서 신성한 소명의 양심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다.
4:26 교회(기독교 통칭)가 양심적인 모습, 즉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젊은 층은 실망했고 이에 당연한 결과로써 젊은 층의 무신론 비율이 증가했다 라고 피터슨은 꼬집었는데 저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로고스-논리-와 파토스-대중들에게 감정적 호소, 즉 양심을 다하는 행동-을 다하면 종교는 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신의 말씀을 따를 것이다 라는 주장) 저분이 속한 교단의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일부러 다른 얘기를 하시는 듯한 늬앙스네요. 피터슨의 주장에 저 신부님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했던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잘못된 점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이야기 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카톨릭만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저 자리에 개신교 목사가 있었다면, 개신교가 그간 행한 잘못들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얘기 했어야겠죠. 종교는 진실성과 양심, 도덕, 윤리 등 그것들을 통칭하는 신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교이자 토론 장소가 본질적으론 맞는 곳인데 지금의 종교들은 카르텔을 형성하여 권력이 저런 근원적 가치들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듯한 행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피터슨 교수도 이 토론을 통해서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카톨릭 교회를 비난하려고 할 의도는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목사가, 어떻게 말하자면 교묘하게, 주제를 살짝 비틀면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네요. 저런 부분이 일반적인 종교가 없는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텐데 말이죠.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유는 교회에서 주는 가르침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 아니라는걸 아마 저번 피터슨 교수 영상에서도 똑같이 올라왔던 것 같은데 또 지식의 깊이와 전달에 대해서 조던 피터슨 교수가 언급한 부분은 아마 교회라는 조직이 가진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인데 안타까운 부분은 목사가 단지 저 부분에 대해서만 답변을 하고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도 카톨릭도 아니지만 그들이 현재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종교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텐데 ( 이미 조던 피터슨 교수의 강연이나 책 두권을 통해서 종교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만) 이상하게 가면 갈수록 '성경'에 대해서는 흥미가 생기지만 '인간들의 조직'인 교회에는 당최 관심이 가질 않네요.
가시적 공동체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본질적인건 비가시적인 기독인의 영적인 연합이 바로 생명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만이 지닌 영생.구원.심판교리가 자연인에게 지성의.짜증이고 걸림돌인것이죠. 그렇기에 보편교회(카톨릭)입장에선 표준을 낮춰버린것이죠. 착하게 살면 천국간다는 식으로 치환해버린게 근본 문제입니다. 정통 기독교의 독트린 자체를 무너트린 근본 이유이기도 하지요.
@@mnzi0000 비난으로 규정하는 부분은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한다는 폐쇄적인 조직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종교를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거만하고 뻔뻔한 짓이지만 사람의 집합체로 본다면 결속력이 부족하고, 수뇌부의 리더십이 결손된 것이겠지요. 안타까운 일이며 항상 개선해나가야할 과제일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종교와 종교 단체에 대해서 의미적으로 오해하지 않고 유념해야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도래하면서 현대사회에는 종교를 하나의 제도나 체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하나의 집단으로 받아들이듯 종교 역시 관용적으로 천주교=천주교 단체, 개신교=개신교 단체 등과 같은 하나의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하더라도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의 집단이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듯 종교와 그 종교집단이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주었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나 지금으로나 종교는 실존적 진리로서 대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천주교는 초대교황이신 베드로께서 그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곁에 있었음에도 그리스도의 임종까지 그 어떤 제자보다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였던 것과 같이. 종교가 아닌 그것을 믿는 신자들의 무지와 부덕함에서 죄를 범하게 되니 그것을 부끄러워 하며 속죄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저희 신부님은 우스갯소리로 성서의 구절을 읊고 그것을 설파하는 과정은 신도들의 속죄와 기도보다 중요하지 않기에 오래전의 "나 때는 말이야"로 생각하더라도 불경하게 보지는 않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가합니다 교회는 성경을 기본으로 잘 가르쳐야 하는데 성경을 해석한다하고 인간의 생각들(목사 또는 주교)을 집어넣다보니 조금씩 어긋나더니 결국은 겉잡을수없는 각도가 성경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몇몇의 순교자처럼 지금도 성경의길을 고집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것이고 많던 적던 그분들이 신앙은 이어나가게 될것입니다 누구던지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자는 아무리 따르는자가 많을지라도 본인은 양심이 있어 알게 되어있습니다.깨달으면 그만둬여지요 그래도 계속한다면 불지옥 심판을 받겠지요. 누가 이래서 저래서 교회 안간다 예수안믿는다도 거짓이지요 .죄인인 인간이 또 거짓말하며 거부하는것이지요. 교회는 1차적으로 믿음가진 한인격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읽고 알아가세요~ 누굴의지하나요 사람의지말고 우리믿음의 대상인 예수를 하나님을 알아거기에 힘쓰쎄요 그리고믿음을 가지세요 저는 정동수목사의 설교를 그리고 훔정역 성경을 추천합니다~ 오늘도 좋은유툽 에서 지성있으신 여러분과함께 글을 공유하게되어 감사합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청년들이 찾는 멘토의 원형'과 '사랑의 실천'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제 생각과 철학을 쌓아나가며 한 명의 멘토가 되어 가는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 나름에는 모든 종교, 철학, 이념을 조합해 큰 권력과 선순환을 일으킬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 싶습니다. 또는 이를 활용해 투자왕이 되고 싶네요. 대중 매체에서 공유되는 '사랑'과 카톨릭의 철학적 '사랑'은 다른 것 같습니다. '고통이 있는 곳'은 개념적으로 애매하고요. 주교님께서 카톨릭적 세계관에 푹 빠지셔서 대중의 관점으로 풀어내시지 못하는 것일수도 ㅎㅎ.. 제 생각엔 아니미즘도 인본주의도 아닌, '이상적 신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으로 현대의 세계/자아/상호작용을 서술하고 논쟁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인간 사회는 전근대적 종교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어쩌면 버릴 부분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힘이 지배적인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뼈 빠지게 달려야 합니다. 이 법칙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꾼이 대중의 숭배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통찰해서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리의 서적, 불변의 철학, 무한한 사랑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칼은 날카롭지만 벨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찌를 수도 있지만 결국 혼돈을 가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는 살아 남는 서사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던 피터슨의 공식계정을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 한국공식계정 관리자는 결과적으로 조던피터슨 교수님께 민폐를 끼치고 있다. 조던피터슨 교수님 공식 계정에 가면 의 동영상이 업로드 되고 있는데, 여기는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몇달전 "한참 지난 오래된 영상"을 "단 몇분 가량" 올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공식 계정이 생기고 난 후 다른 유뷰버들이 피터슨 교수님 영상을 번역해서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공식 유튜버 계정에 조회수 몰아주기나 혹은 공식계정에 눈치가 보여서 혹은 공식계정이 번역본을 올려줄거라고 믿고라든가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이 공식계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서 좀 더 다양한 번역된 영상들을 접하고 싶어하는 팬들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후원금을 받는 것은 조던피터슨 교수님의 생각일지 모르나 한국공식계정을 낼때는 교수님은 최소한 한국 공식계정이 한참 철지난 오래된 영상을, (그것도 오래되어 영어자말이 제공되는) 2시간 넘는 분량을 고작 몇분으로 중요내용다빼고 심하게 압축해서, 고작 일주일에 딸랑 한번 업로드하는 "무성의한 계정으로 관리되기를 기대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접하고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계정 생기고 다른 유튜버들이 다양한 영상 번역본을 올리지 않으니 팬들에게도 피해고, 조던피터슨 교수님에게도 피해고, 이 계정 관리자는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여권 신장으로 여성이 얻은 가장 큰 자유가 강제 결혼(사회적&종교적&경제적 거의 모든 방면) 및 강제 조혼(이슬람, 아프리카는 아직X)에서의 탈피였는데 조던 피터슨보면 여권 흐름을 살펴보지도 않고 걍 백인 남자교수 머리에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협소한 생각만 한다는게 여실히 드러남
조던 피터슨 정말 언피씨하다. 여자에겐 결혼 출산 양육이 삶의 행복일 것이고 임출육 하지 않으면 행복 어려울 것이라 확정적으로 말하는거. 백인 서양 남성 하버드교수 밀어줄 수 있는 경제력있는 집안 운빨을 아주 당연히 가진 나이브 스피커답다. 철학자도 사상가도 아닌 그냥 안티페미 셀럽이지.
조던 피터슨 상상 속 여자는 결혼 후 임출육하는게 삶이 목표라 생각하는 조신한 여성상이겠지만, 그 상상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걸 너무 모름. 철부지 백인그남다움. 아프리카까지 안 가도 결혼 후 성관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 나라 몇국 안됨. 즉 결혼 임출육은 여성에게 간단해피한 일이 아님.
지금의 여성들도 가뜩이나 야망없는데 유리 천장 이 걍 강철 천장이었던 시절 여자들이 뭔 커리어를 쌓고 싶었겠냐고 어차피 가부장제 아래 종속되어 살아갈꺼면 이왕에 잘 꾸며서 최대한 돈많은 남자 한놈 물어서 살고싶지. 그 시절은 그랬다쳐도 오늘날 여성까지 싸잡아서 여성본성을 논하면 안되지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남자 본성 누가 몰라. 어린 여자, 낯선 여자랑 섹수 많이 하고 싶다. 임신 책임지기 싫다. 뻔하지. 반면에 여자 혼자 일하고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에 일 안 하고 꾸미기만 하고 돈많은 남자랑 결혼하고싶지? 질문하고 얻은 답변들이 여자의 진정한 본성이라 생각하는건 진짜 노답
성관계 거부가 어렵다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결혼하고 임출육하느라 생기는 경력 공백을 해결해주는 사회 복지 제도가 탄탄한 국가도 몇 안됨. 이런 상황에서 여자는 임신가능 나이 생각해서 결혼빨리 하는게 커리어하이보다는 나을껄요 짓껄이는짓, 그만 좀 해. 철딱서니없는 백인 남성 교수 아저씨.
원래 우파쪽 사상가들은 여성이 출산 후 사회적 지위가 생기는걸 별로 반기지 않아요 그만큼 남성들의 파이가 작아지고 배려해줘야 하니까요 대신 그들이 주장하는건 내가 남자로써 생계를 책임 질 테니 여자도 집안에서 책임을 다하라 이런 주장인거죠......저도 여자고 반대성향 인 사람인데 몇몇 조언들은 제 인생 살아가는데 들어도 괜찮을 말들도 있어서 그런 영상들만 찾아봐요
문화예술에 종사... 하는 건 아직 아니지만
20살의 한 만화가 지망생으로서 영상을 보며 느낀게 많이 있었습니다.
영상에서 피터슨 교수님께서는 강연을 하거나 지적 토론을 하실때 "자신의 지적 수준의 한계를 넘어서는 방향으로" 말을 이어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상대방을 앞에 두고 있긴 하지만, 마치 혼자 작업실에서 펜을 들고 생각에 잠겨 골몰히 연구하고 사색하는 학자의 태도로 말이죠.
즉 교수님께서는 "내가 당신들에게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지혜를 이끌어내어 최대한 명확하면서도 의미있는 단어를 선택해 말해주겠다"라는 태도로 강연&토론에 임하시고 그것을 듣는 것은
오로지 저희의 '능동적인 경청 자세'에 맡기신다고 저는 이해했습니다.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이 잃어버린 태도임이 너무나 분명합니다.)
그리고 또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것 중에는
"젊은 청년들의 멘토들의 특징은
1. 하나의 분야에 깊고 방대한 지식과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2. 그것에 '열정적으로 헌신'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주교님께서 성인이 되셨을때 가톨릭 교회는 사람들이 도망가는것이 두려워 자신들의 존재감을 어필하려 최대한 눈높이를 낮춰 겉핥기식의 교리만 전파하는데 열중했던 것 같다고 말씀하셨죠.
제 생각에는 앞의 세 이야기 모두에 공통적으로 흐르는 흐름이 현대 문화예술산업의 기저에도 동일하게 흐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어렵고 심오한 것을 "좋아하지 않기에"(즉, 사람들은 더 이상 진리나, 적어도 진정으로 깊은 의미를 주는 것에 능동적인 태도를 갖추지 않기에)
사람들이 떠나가는게 두려워 "소비자의 니즈에 맞춘 마케팅", "고객지향적 마케팅"이라는 허울좋은 명분을 앞세워
더 이상 예술이 진정으로 해야할 일인, 예술의 본래 목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감동이나, 좋은 에너지, 가치있는 메세지를 주는 것"(혹은 자신이 '느끼는' 진리를 가능한 최고 해상도로 표현해보려 애쓰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상업화된 문화예술과 미디어는 마치 실험 쥐에게 도파민 주사를 주입하는 것처럼, 오로지 자극적이기만한, 최대한 자극적이게 되도록 노력하여 만든 달달한 콘텐츠쓰레기들만을 공급하죠.
그래놓고 좋다고 그런 콘텐츠들을 mindless하게 소비해놓고는 내 시간 어디로 갔냐며 한탄하는 소비자들도 문제긴 하지만요.
그래도 물론 필요하긴 합니다.
왜, 요새 '스낵 콘텐츠(snack contents)' 라는 말이 있잖아요?
바쁘디 바쁜 현대인들의 생활 속에
소소한 간식 역할을 해주는 데, 고맙긴 고맙겠죠.
하지만 간식은 어디까지나 간식일 뿐입니다.
먹어도 먹어도 배 안찹니다.
우리의 뼈를 단단하게 해주지도, 머리가 잘 굴러가게 해주지도 않죠.
오히려 우리 건강을 악화시키는데다, 맛은 또 달콤해 우리를 계속 중독시키려할 뿐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라고 하는데, 그보다 못한 간식은 웬 말입니까.
대신, 저는 진정 예술가라면,
본디 '예술가'라는 말이 주는 그 보편적인 인상, 그 고독한 이미지처럼
작업실에서 자신의 내적인 예술 세계관의 한계를 넘어내는데에 열중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마치 피터슨 교수님의 강연태도처럼 말이죠.
물론 자신이 만들어낸 작품이 "다른 사람들에게 도달하는 것"이고, 그래서 작업을 할 때 이를 고려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해서 너무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추려 하는 것은 자신들의 그 엄청나게 가치있는 뿌리깊은 전통적 지성을 온전히 전파하는 책무를 잊고 한낱 콜라주나 풍선놀이에 그친 활동만을 보여주었던 주교님께서 비판하신 가톨릭 교회의 한심한(pathetic) 태도와 다를 바가 없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보았습니다.
자신은 더 깊고 의미있는 것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만, 그럼 사람들이 다 도망가니까 안하려는거죠.
어쩌면 '진리를 그려내보려 애쓰는 창작'(본래 예술이 해야할 일이죠.)은 너무나 고통스럽기에, 마치 예술가에겐 삶의 소명처럼 다가오는 이 책무(진리를 그려내려 애쓰는 것)를 현대사회의 예술인들은 피하고 싶어하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대중들의 눈높이에 맞춘 자극적 콘텐츠를 그리는 것이 창작의 고통이 훨씬 덜 하니 책임감도 회피할 수 있고 또 상업성을 추구하는 미디어와 동조하니까 돈도 잘 벌리고 일석이조 아닙니까.
물론 그게 과연 본질적으로 옳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이란 없겠죠. 예술가로 태어나서 저 소명을 등지고 달아나려는 것이 자신의 영혼을 얼마나 좀먹는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게 뭘 의미하는지, 저 같은 사람들이라면 다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밖에도 20살의 한 청소년으로서도 느끼고 배운게 정말 많았습니다.
항상 좋은 영상 좋은 말씀 주시는 피터슨
교수님과 피터슨 팀 여러분들께 항상 감사합니다.😄😄
@@디오티마 좋은 댓글 남겨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전문성과 심오함을 무기로 대중을 그저 계몽해야할 대상으로 바라본다"라.. 피터슨 교수님도 강연 중 예술에 대해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 있습니다. "진정한 예술가는 정치적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 않다." (th-cam.com/video/yCJztARBNiI/w-d-xo.html.)
진정한 예술 작품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영원히, 영원히 토론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는 "의미의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창작은 (마치 철학자가 사물과 현상에 대해 끊임없이 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파고들듯이) 예술가가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과정'인 것이고, 그 작품 즉 결과물은 그 부산물로서 나오는 것이다...
예술 작품이란 결국, 그것을 두고 "충분한 시간을 소모하여" 감상하고 논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 그 본질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학문이 다 그렇죠. 밤새 머리를 쥐어 뜯으면서 철학하는 이유도 결국 의미를 찾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감상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깊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 되려면, 그 작품이 탄생하는 데는 시간이 꽤나 걸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21세기 비즈니스의 세계는 이를 기다려주지 않죠. 이미 만들어진 틀을 기반으로, 이미 다른 현자들에 의해 "개척된 지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언어로 풀어낸 후, 시각적으로 매력적인 그림을 그려내서 최대한 많은 이윤을 낼 수 있는 작품을 최대한 많이 팔아치우길 원합니다.
그러니 현대 상업 예술에는 '탐험'이, '모험'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 인류가 모르는, 과거의 현인들이 미처 그 생이 다할 때까지 발견하지 못했던 뜻 깊은 지혜가, 우리가 도달해야 할 진리가 아직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데, 아직도 개척 되지 않은 채, 그 가능성만을 내포한 채 재능을 가진 예술가들이 자신을 발견해주길 기다리는 혼돈의 영역이 있을 터인데, 우리는 전혀 그런 시도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탐험가들은 점점 사라져만 갑니다.
우리는 계속 울타리를 치려고만 합니다.
그 좁아터진 울타리 안에서, 자기 잇속만을 챙기며 바깥 영역은 아무래도 좋다며 현실에 안주하고 살려고 합니다.
(혹시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을 보셨는지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피터슨 교수님이 말한,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진정한 예술'이 사라지고 남은 자리엔 무엇이 채워질까요.
상업적 미디어.., 거기서 멈추면 그나마 다행이겠죠...
나아가 정치적 프로파간다로 점철된 작품들이 들어오려 하기 마련입니다.
"자신이 어떤 사상에 조금 알고 있는 바가 있다고, 그것을 무기로 대중들에게 이미 의도가 있는 계몽적 메시지를 전하려한다."
그럴거면 뭐하러 굳이 예술을 하겠습니까. 차라리 뉴스기사를 쓰는게 낫지 않을까요.
만화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비유해보자면, 예전 만화들은 (특히 제가 좋아했던 일본만화들은) 그림체이든 연출이든 어디 하나씩은 꼭 서투르고 어색한 법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들의 작품에선 "생명력"이 느껴졌습니다. 그런 만화와 저는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작품에 말 그대로 '혼'을 담았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전혀 느낄 수 없는 그리운 추억일 뿐입니다.
피터슨 교수님의 언어를 빌리자면, 현대 문화예술계는 '질서'의 영역에 두 발을 모두 담근 상태인 것 같습니다.
안정적이기만 할 뿐, 그 곳엔 생명력과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중장기적 관점에서 보았을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국 시간은 흐르고, 생기가 흐르지 않는 땅엔 가뭄이 들겠죠. 점점 더 말라 비틀어져만 갑니다. 그리고 더 시간이 지나, 모든 생명이 꺼진 땅에 남게 될 것은 겉모습만 예쁘게 치장된 밀랍인형과 잘 포장된 시체뿐일 것입니다....
'Art is never finished, only abandoned' - Leonardo Da Vinci
C.S 루이스.. 마침 읽어보려던 작가였는데 더 관심이 가네요. 다시 한번 좋은 댓글 감사드립니다.
@@디오티마 감사합니다. 제게 주어진 젊음의 불씨가 꺼질 때까지, 감사한 마음으로 삶에 헌신해보겠습니다!
@@jmjm2120 지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남기고 갑니다.
나는 미래의 작가들은 더 멀리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예술 혁명의 토대가 되는 '충격의 새로운 가치'가 빛을 보게 해야 하기 때문이다.
- 마르셀 뒤샹
@@danply
와 미국 생활을 오래 해보셨다니... 저로썬 꽤 부러운 경험이네요. 아무래도 진로 특성상(만화,영화,스토리,연출..) 한국에서는 몇몇 디지털 웹툰 플랫폼을 제외하곤 제 작품을 선보일 수 있는 영역, 일해볼 수 있는 스튜디오가 생각보다는 그리 많지는 않아서 말입니다... 일단 이쪽 분야에 들어온 이상, 제 작품도 작품이지만, 나름 '세계 최고'급 사람들과도 언젠간 꼭 일해보고 싶은 야망이 있어서요 ㅎ... '세계적인 스튜디오' 하면 떠오르는 디즈니, 유니버셜, 패러마운트 등등... 거의 다 미국에 있죠. 그런가하면 또 만화와 같은 분야에선 일본이 아직까지도 강세하구요. 그래서 저 역시 기반만 된다면(실력적으로든.. 금전적으로든..) 이민 갈 결심도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좋긴 하지만, 저로선 조금 더 큰 물에서도 제 안의 세계를 펼쳐보고픈 마음이 있어서... 이 또한 젊은 지금만 가질 수 있는 패기겠죠..?ㅎㅎ.. 어리석고 무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역시 부딪혀보려고 합니다. 어쩌면 꿈이란 태양에 눈이 멀어서 지금은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름의 이유와 방향이 있고.. 마냥 도피성 이민은 아니라고 생각해서요. 특히나 미국같은 서구권의 경우엔 그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나름 동경해왔기도 합니다. 제가 피터슨 교수님 영상 항상 찾아보는 것처럼요.
사실 그 전에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조금 진지하게 "아, 이러다가 미래에 정말 이민을 갈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조금 실감나게끔 다가와서, 요즘들어 좀 심적으로 혼란스런 시기를 겪고 있는데,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이 때를 적어도 후회 하지는 말아야 하니, 이럴 때 일수록 먼 미래를 걱정하기보단 지금 제가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time span 안에서 계획하고 공부해 나가야겠습니다. 좋은 답글 감사합니다.
그저 예술을 동경하고 사랑하는 한 개인으로서 님께서 어떠한 질문들을 갖고 있는지, 작금의 시대에 대한 분노, 고통, 안타까움 등이 저와 매우 비슷해서 아이러니하게도 위로가 되는 한 편, 젊은 예술가가 날개 한 번 펼쳐보지 못할까하는 마음입니다. 쓰신 글의 내용으로 볼 때 지금부터 제가 드리는 말씀은 아마 아시는 내용일거라 예상합니다만 주절여보겠습니다.
예술은 한 사회가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때, 예술의 고유적 가치와 기능을 알아줄 때 꽃피우는 것이 기본적으로 갖춰야할 조건인데 그렇다면 한국의 소비자는 풍요로운가?에 대한 답변은 "물질적으론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론 빈곤합니다." 이고 다른 답변으로는 "예술의 가치와 기능을 알아보지 못하며 필요로 하지 않는다." 입니다. 정신적으로 빈곤하기에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고 자아가 단단하지 못하면 취향이나 개성 또한 발전하기가 어렵습니다. 괜히 유행만 따라가는 몰개성의 시대가 아닙니다. 더군다나 다양성과 의외성이 좁은 사회여서 바뀌기가 쉽지 않습니다. 개성과 취향이 없는 자는 사유하지 않으며 사유하지 않는 자는 예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대중들의 수준이 낮느냐라고 물으신다면 그렇습니다.
문사철이 예로부터 엘리트들의 무기가 되어왔던 것처럼 예술 또한 늘 그래왔고 현대사회로 진입하면서, 점점 더 도시화 되어갈 수록 심화되어가고 있고 앞으로 더 쇠퇴할 것은 자명합니다. 미디어로 인한 텍스트의 죽음이 예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텍스트의 죽음이 문해력을 낮춰왔고 문해력이 낮다는건 사유하는 힘이 낮다는걸 뜻하고 사유함이 낮은 사람은 예술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왜냐구요? 어려우니까요.
예술은 인간에게 술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밥과 물만 있으면 사는대에는 지장이 없죠 그러나 술이 있어야 사람 사는 것처럼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술가도 사람이기에 술만 마시고는 살 수 죠는 밥과 물을 위해 예술가가 예술을 팔아 생존만을 도모하는 것을 보고 비난받아야 마땅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딱 잘라서 비난할 자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을 희망 같은 것은 불완전한 인간이 가진 가장 날카로운 칼날은 언어이지만 언어마저도 언어를 거치는 과정에서 불완전 표현수단이고 언어보다 더욱 강력하고 아름다운 표현수단은 예술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모두 예술가입니다. 우리는 모두 예술가였습니다. 그러니 그 어떤 시대가 도래하건 예술가와 예술을 찾는 이는 존재할 것입니다. 이는 배움이 짧은 제가 드리는 위로이자 용기입니다.
정말 훌륭하고 사고를 하게 하는 멋진 두분의 대화를 공유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도 기독교인으로써 논리적으로 나아가지 않는 기독교의 모습에 요즘 허무감을 느끼며 더욱 공감했습니다. 조던피터슨 박사님은 사회와 자료를 보고 본인이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면에, 목사님은 누군가의 생각을 인용하며 근거로 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부분이 오늘날의 기독교의 한계가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며 오늘의 하나님을 전하기를 너무 조심스러워 하고, 누군가의 말 또는 권위있는 목사님과 성인의 말에서 멈쳐버린 기독교... 그런 점이 더이상 소통하고 공감하기 어려워진 오늘의 기독교가 된것이 아닐까요.
근데 진짜 수준 높은 대화다... 와... 나도 저런 대화를 해보고 싶다...
사랑의 스펙트럼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범위의 그것보다 훨씬 넓다는 것을 하나씩 더 인식해 나가는 것, 거기에 길들이 있네요.
공산주의의 어둠 속에서 사라져갔던 크리스마스 그리고 사라지는 전통 뒤에 대안이 없음을 느낀 후에야 느끼는 사랑없는 창백함.
러시아 수용소에서 bland한 자세로 그러나 상상조차 힘든 환경과 조건에서의 헌신적인 사랑.
진수성찬이 있다한들 부의 무한한 축적이 있다한들 사랑없는 풍족은 길이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존재를 잃는 것 뿐이군요.
사랑은 원래 없습니다
@@socialphilo3557 어디에나 있는 것이 사랑입니다.
숨쉬고 살아가고 이야기 나누고 이렇게 의견을 남기는 것 모두 사랑의 언어 위에서 짜여져서 작동합니다.
영상에서 말하듯 있던 것들을 무너뜨리고, 그 다음 단계의 대안은 없이 허무만이 남아서 모험의 길이 닫힌 상태가 사랑의 결핍이지요.
그 어떤 곳에서도 사랑과 사랑의 결핍 이 있을 뿐, 사랑이 0에 수렴하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멋진 정리
우연히 왔다 맨 마지막 진수성찬으로 시작하는 문장을 캡쳐해도 될까요? 좋은 문장이네요 인생 명언으로 둬둬 좋을듯 하고 소설 문구로 나와도 좋을듯 하네요
@@나귀욥찌 네, 상업적인 용도면 출처만 밝혀주시면 되시고 자유롭게 쓰셔도 됩니다.
여전히 나에게는 이런 영상들이 어렵게 느껴진다.
솔직히 못 알아들을 때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발전하기 위해 보고 또 본다.
저도 ㅋㅋ 못 이해해도 계속 보게됨
이런유툽 보시는 자체가 발전하시고 계십니다
저도 이번 대담 시리즈 첫영상땐 진짜 대체 무슨말을 하고싶은거지 혼란스러웠는데 계속보다보니 이해가기시작해요! 화이팅입니다
와닿는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높은 지성 & 이를 실천하는 신념 이것을 타렵하지 않는 것이 진정성을 회복하는 것
정곡을 찌르네요. 저에게 있어, 모험은.. 뒤로한채 자기합리화와 핑계하며 시간을 보내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무의식의 영역에서는 늘 하루하루 의미있게 살기를 바랬고, 돌아가고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이 감사로 받았기에 버릴 것이 없음을 믿습니다. 결국 타이탄의 도구들을 모으는 나날들이고, 언젠가(내년이 되기를) 진정한 모험을 할 수 있기를 고대해봅니다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영상이었습니다. 저는 목혜자가 아니기에 현재 교회에 대해 섣불리 판단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말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복음,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그것의 수준을 낮추기보다 그것을 최고의 수준으로 높여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매력적으로 보이게, 진정성 있어 보이게 해야한다는 것에 동의합니다.
저는 군입대를 하며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제가 기독교에 관심을 갖게된 데에는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있었습니다. 특히 질서 너머의 프롤로그를 보며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결심하였습니다. 교수님께서는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세상 모든 것을 원망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 상황에 있었다면 내가 왜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하냐고, 왜 이런 고통을 견디며 살아야하냐고 울부짖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피터슨 교수님께서는 질서 너머의 12번째 법칙에서 말하듯 "고통스러워도 감사하라"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 정신에 감동했습니다. 저도 그 당시에는 너무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후회와 원망으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런 저에게 "고통스러워도 감사하라"라는 말은 제게 큰 감동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또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이끌어주었습니다. 교회에서 주는 햄버거, 열정 넘치는 설교 등의 사역이 제 마음을 움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지성이 담긴 책이, 유튜브 영상이 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저는 젊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이길 기도합니다. 목사님들, 종교 활동가분들이 조던 피터슨 교수님처럼 미디어 앞에 서서 토론하고 소신들을 밝혔으면 좋겠습니다. 이성과 논리를 중요시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기존의 전교 방식은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사회 문제 혹은 사적이지만 보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힘으로 같이 이겨내 나가는 모습을 보여야한다고 생각합니다. 행동으로 감동을 주며 이성과 논리에 지쳐있는 젊은이들을 감싸 안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이러한 행동에 앞장 서겠습니다. 제 위치에서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머리로 둔 하나님의 지체가 되어,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한국의 기독교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기도하겠습니다.
저분은 개신교 목사가 아니라 천주교회의 주교님이십니다.
한국 천주교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는 '한국 천주교가 어떻게 시작했는가'입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선교사의 파견 없이 스스로 믿음을 받아들여, 성직자도 없이 신자 공동체가 먼저 생겨난 교회였고, 또 백 년도 더 되는 박해 속에서도 수만 명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 키워낸 교회라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렇게 처절하고 감동적일 수가 없습니다. 양반이 반상의 질서를 꺾고 양민과 노비를 형제 자매로 맞아들인 이야기, 글 한번 배운 적 없는 이가 당당히 관장 앞에서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 박해를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산중으로 들어가 옹기를 구우며 신앙을 이어가려 했던 교우촌 이야기 등등. 그 밖에도 전해지는 이야기들을 보면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많았습니다. 이런 모습들이 있었기에 그 숱한 박해 속에 교회가 위축될지언정 사라지지는 않았던 것이겠죠. 영상에 나왔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에 자신의 삶과 죽음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노력에 정말 충실했던 분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신앙에 몰입하고 구현해내려는 노력이 사람들을 감동시킨다는 것을 자주 잊게 됩니다.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교회가 그리스도의 메시지에 교회가 온전히 뛰어들고 있지 않은듯하다고 하셨는데, 참 가슴 아픈 이야기입니다. 없는 얘기가 아니니 말이죠. 주교님께서 말씀하신 신부님의 이야기를 봐도 참 스스로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지금 성직자로서의 저의 삶은 저렇게 뜨겁고 처절하지 못하니까요. 부유하지는 않으나 결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고 있고, 늘 매너리즘과 싸우는 것조차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면 스스로 한심할 따름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영상도 저를 깨우는 영상이군요.
늘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조던 피터슨 교수님의 영상을 신부님과 함께하니 더욱 좋습니다.
한국 교회의 자랑스러운 일원으로써 저도 미약하지만 십자가를 지는 삶을 함께 행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멘 찬미예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성경의 내용과 복음이 한국어로 번역되면서 그 본질의 뒤틀림이 크게 발생한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Bishop Barron 뿐만 아니라 Peter Kreeft 같은 카톨릭철학자나 조던 피터슨, 벤 사피로 같은 활동가들의 말을 영어로 듣는 것은 쉽지만, 한국어로 번역이 일어나면 큰 지식적 leap 을 거쳐야 하고, 이것을 잘 이해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mrknowmyself 말씀하신대로 번역이 되다보면 아무래도 원래 메시지가 조금 흐려지는 현상이 생길 수 밖에 없죠. 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표현과 우리말이 온전히 맞아 떨어지지 않는 것도 있고, 쓰이는 표현이나 묘사되는 상황 자체도 우리나라 사람의 정서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것도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번역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사람들이 성경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한국 가톨릭에서 성경을 번역할 때 원칙 중 하나가 어려운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해서 그나마 의미가 가까우면서 대중에게 익숙한 표현들을 찾았던 겁니다. 이러다보니 어쩔 수 없이 말씀하신 의미의 간극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해서 그것을 보충하는 것이 바로 강론입니다. 신학교에 다니는 동안 성서학과 성서신학, 설교학 등을 배우는 것도 이를 위해서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완전히 성경에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가? 그건 누구라도 완전히 다가가기는 힘들겁니다. 한 사람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해도 그 모든 메시지를 다 알고 실천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필요한 것이 공동체인거죠. 단순히 지금 함께 있는 사람들 뿐 아니라 그 메시지를 실제 살았던 선조들까지 포함입니다.
@@백상렬스테파노 답변감사합니다. 제 생각에는 그 간극 이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고봅니다 일반인에게 오히려 반감을 줄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하느님의 나라는 어떠하다 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게 교회,성당건축과 성경인데. 이것은 잘못된 오정보를 알려주는 꼴이 되고 이런것들이 누적되어서 현재 한국 개신교의 위기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없는것보단 낫겠죠
잘 모르는 일반인들이 그렇게라도 징검다리를 건너 진짜 복음, 나중에 진짜 진리에 다가갈수 있다면 좋겠네요.
제생각에 한국화가 되면 모든 측면에서 이상한 뒤틀림이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건축들만 봐도 그렇죠... 우리나라에 있는 교회건축들중 정말 세계의 건축적 기준으로 봤을때 제대로 지어진 비율이 제가보기엔 5% 도 안됩니다... 여기저기 플라스틱으로 덧대고, 말도 안되는 곳에 징크처리하고...
Proportion 즉 비율 측면에서 거의 파국이라고 말해도 될 정도의 건축물들도 많은거같습니다.
한국의 교회나 성당이 계속 진화해야 하는데 후퇴하고 있는것같습니다.
자기의 원형은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융의 집단 무의식 차원에서의 접근과 신학적인 접근이 맞닿는 지점이네요
단 하나 동의가 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복음은 설득이 아니라는 것 뿐이네요
기독교를 이유없이 증오하는 사람은 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오늘 하나 더 배우고 갑니다
래디컬 세속주의자들은 의심과 쾌락에 찌들어 자기 우물을 파더군요. 중국놈들이 대표적인 예시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날때 삶을 비로소 성찰 할수 있읍니다 겸손과 사랑을 배움으로서 역설적으로 진리에 기반한 이성의 영역을 넓혀 나갈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사물의 의미가 새로워 집니다 두분의 의미 있는 대화 잘 들었습니다
2:50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머릿속에 뭐가 얼마나 많이 들어있길래 Which라는 말이 나오지ㅋㅋㅋㅋㅋㅋ대단하다...나였으면 그냥 닥치고 Who is 라고 할텐데
정말 훌륭한 대화입니다. 행복하네요. 감사합니다^^
물질은 이야기의 반쪽이다. 나머지 반쪽의 부재는 재앙이다.
소련의 강제수용소와 같은 지구상의 지옥에서 버틸 수 있게 해주는 힘..
이 순간의 내 모험은 지속가능한 문명 개혁의 한 축이 되어 이바지 하는 삶이다. 유대적인 사회를 소중히 하며 유대적 동력으로 사회의 한 축으로서 사랑을 짊어지며 이바지 한다. 각오를 가지고 선택과 책임끝에 지혜로운 삶이 매 시간 속에서 신성한 소명의 양심으로 나아가게 해줄 것이다.
감사합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영상 편집 퀄리티도 굉장히 깔끔하고 전체적으로 다 자연스러운데 왜 유독 썸네일만 번역기 돌린 것처럼 이상하게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고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4:26
교회(기독교 통칭)가 양심적인 모습, 즉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젊은 층은 실망했고
이에 당연한 결과로써 젊은 층의 무신론 비율이 증가했다 라고 피터슨은 꼬집었는데
저 신부님이 말씀하시는 것들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로고스-논리-와 파토스-대중들에게 감정적 호소, 즉 양심을 다하는 행동-을 다하면 종교는 제 역할을 하는 것이고 사회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신의 존재에 대해서 고민해보고 신의 말씀을 따를 것이다 라는 주장)
저분이 속한 교단의 모순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일부러 다른 얘기를 하시는 듯한 늬앙스네요.
피터슨의 주장에 저 신부님은 자신이 속한 집단이 잘못했던 행위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잘못된 점들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이야기 했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저는 카톨릭만을 비판하는게 아닙니다.
저 자리에 개신교 목사가 있었다면, 개신교가 그간 행한 잘못들도 인정하고 그에 따른 대책을 얘기 했어야겠죠.
종교는 진실성과 양심, 도덕, 윤리 등 그것들을 통칭하는 신의 가르침을 연구하는 학교이자 토론 장소가 본질적으론 맞는 곳인데
지금의 종교들은 카르텔을 형성하여 권력이 저런 근원적 가치들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하는 듯한 행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물론 저러한 토론이 상대를 질책하고 판단하려는 자리는 아닙니다만,
저러한 주제에 대해 언급하는걸 비난으로 규정하는건 너무 성역시되는 느낌입니다.
물론 피터슨 교수도 이 토론을 통해서 상대방을 질책하거나 카톨릭 교회를 비난하려고 할 의도는 없던 것으로 보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목사가, 어떻게 말하자면 교묘하게, 주제를 살짝 비틀면서 주어진 질문에 대한 명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불편하게 생각하네요.
저런 부분이 일반적인 종교가 없는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텐데 말이죠. 수많은 젊은 사람들이 종교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이유는 교회에서 주는 가르침의 깊이가 얕기 때문이 아니라는걸 아마 저번 피터슨 교수 영상에서도 똑같이 올라왔던 것 같은데
또 지식의 깊이와 전달에 대해서 조던 피터슨 교수가 언급한 부분은 아마 교회라는 조직이 가진 수많은 문제점 중 하나이기 때문에 언급한 것인데 안타까운 부분은 목사가 단지 저 부분에 대해서만 답변을 하고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개신교도 카톨릭도 아니지만 그들이 현재 가진 문제점에 대해서 명확히 인지하고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다면 오히려 종교에 좀 더 관심을 가지는 계기가 되었을텐데 ( 이미 조던 피터슨 교수의 강연이나 책 두권을 통해서 종교에 대해 다른 시선을 갖게 되었습니다만) 이상하게 가면 갈수록 '성경'에 대해서는 흥미가 생기지만 '인간들의 조직'인 교회에는 당최 관심이 가질 않네요.
@@jun_park13 동감합니다.
가시적 공동체의 한계입니다. 그럼에도 본질적인건 비가시적인 기독인의 영적인 연합이 바로 생명이라 생각합니다. 기독교만이 지닌 영생.구원.심판교리가 자연인에게 지성의.짜증이고 걸림돌인것이죠. 그렇기에 보편교회(카톨릭)입장에선 표준을 낮춰버린것이죠. 착하게 살면 천국간다는 식으로 치환해버린게 근본 문제입니다. 정통 기독교의 독트린 자체를 무너트린 근본 이유이기도 하지요.
@@mnzi0000 비난으로 규정하는 부분은 내부의 문제는 내부에서 해결해야한다는 폐쇄적인 조직의 성질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종교를 하나의 인격체로 본다면 거만하고 뻔뻔한 짓이지만 사람의 집합체로 본다면 결속력이 부족하고, 수뇌부의 리더십이 결손된 것이겠지요.
안타까운 일이며 항상 개선해나가야할 과제일 것입니다.
다만 사람들이 종교와 종교 단체에 대해서 의미적으로 오해하지 않고 유념해야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데올로기가 도래하면서 현대사회에는 종교를 하나의 제도나 체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공산주의, 자본주의 등과 같은 이데올로기를 동시에 하나의 집단으로 받아들이듯
종교 역시 관용적으로 천주교=천주교 단체, 개신교=개신교 단체 등과 같은 하나의 집단이라는 의미로 사용하곤 하더라도
이데올로기와 그 이데올로기의 집단이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듯
종교와 그 종교집단이 결코 동일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주었으면 합니다.
역사적으로나 지금으로나 종교는 실존적 진리로서 대해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천주교는 초대교황이신 베드로께서 그 누구보다 그리스도의 곁에 있었음에도 그리스도의 임종까지 그 어떤 제자보다 그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였던 것과 같이.
종교가 아닌 그것을 믿는 신자들의 무지와 부덕함에서 죄를 범하게 되니 그것을 부끄러워 하며 속죄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정진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저희 신부님은 우스갯소리로 성서의 구절을 읊고 그것을 설파하는 과정은 신도들의 속죄와 기도보다 중요하지 않기에 오래전의 "나 때는 말이야"로 생각하더라도 불경하게 보지는 않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썸네일이 이상하게 나온듯
저는 이렇게 생가합니다 교회는 성경을 기본으로 잘 가르쳐야 하는데 성경을 해석한다하고 인간의 생각들(목사 또는 주교)을 집어넣다보니 조금씩 어긋나더니 결국은 겉잡을수없는 각도가 성경에서 멀어져 버렸습니다 하지만 몇몇의 순교자처럼 지금도 성경의길을 고집하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을것이고 많던 적던 그분들이 신앙은 이어나가게 될것입니다 누구던지 성경을 잘못 가르치고 있는자는 아무리 따르는자가 많을지라도 본인은 양심이 있어 알게 되어있습니다.깨달으면 그만둬여지요 그래도 계속한다면 불지옥 심판을 받겠지요. 누가 이래서 저래서 교회 안간다 예수안믿는다도 거짓이지요 .죄인인 인간이 또 거짓말하며 거부하는것이지요. 교회는 1차적으로 믿음가진 한인격체가 교회입니다. 그리고 성경책을 읽고 알아가세요~ 누굴의지하나요 사람의지말고 우리믿음의 대상인 예수를 하나님을 알아거기에 힘쓰쎄요 그리고믿음을 가지세요 저는 정동수목사의 설교를 그리고 훔정역 성경을 추천합니다~ 오늘도 좋은유툽 에서 지성있으신 여러분과함께 글을 공유하게되어 감사합니다
한국어로 번역을 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본질의 뒤틀림이 발생한다고 생각합니다…
용어들도 제가 보기에는 마음에 다 안들어요… 한국어로 풀어가다 보니깐 뭔가 큰 논리적 leap 가 발생하고 거기서 갸우뚱 거려야 할때가 한두번이 아녜요
th-cam.com/video/6DKlg3THaM8/w-d-xo.html
이 영상에서 예수를 역사로 믿는가? 아니면 실존적으로 믿는가?의 질문에 둘 다라고 답하는 부분이 나오는데요..
주교님과 나눈 대화와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는 영상 둘 중에 어느 것이 먼저인가요?
행위구원이라는걸 비판으로 듣기만 했지 뭔지 몰랐는데, 저런 인간행위에 대한 영웅심리를 말하는거군요. 모든 피조물은 신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무슨 말인지 격하게 이해하고싶다 ㅠㅠ
이번 영상에서는 '청년들이 찾는 멘토의 원형'과 '사랑의 실천'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직 어리지만 여러 분야에 걸쳐 제 생각과 철학을 쌓아나가며 한 명의 멘토가 되어 가는 제 모습이 그려집니다.
제 나름에는 모든 종교, 철학, 이념을 조합해 큰 권력과 선순환을 일으킬 새로운 종교를 창시하고 싶습니다.
또는 이를 활용해 투자왕이 되고 싶네요.
대중 매체에서 공유되는 '사랑'과 카톨릭의 철학적 '사랑'은 다른 것 같습니다.
'고통이 있는 곳'은 개념적으로 애매하고요.
주교님께서 카톨릭적 세계관에 푹 빠지셔서 대중의 관점으로 풀어내시지 못하는 것일수도 ㅎㅎ..
제 생각엔 아니미즘도 인본주의도 아닌, '이상적 신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으로 현대의 세계/자아/상호작용을 서술하고 논쟁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현재의 인간 사회는 전근대적 종교로부터 이미 너무 멀리 왔습니다.
어쩌면 버릴 부분은 버리고, 취할 것만 취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술의 힘이 지배적인 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두가 뼈 빠지게 달려야 합니다.
이 법칙에는 종교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꾼이 대중의 숭배를 받기 위해서는, 그들이 처한 현실을 그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통찰해서 풀어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진리의 서적, 불변의 철학, 무한한 사랑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보입니다.
칼은 날카롭지만 벨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찌를 수도 있지만 결국 혼돈을 가르기 위해 존재합니다.
저는 살아 남는 서사란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도 아니고 무신론자도 아니지만 이 대화가 흥미롭고 좋네요.
낙관적 허무주의의 결함이라고도 볼수 있을것 같네요. 자신, 주변 세상,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것들을 초월하는 개념에 대한 더이상의 모험이 결여된 삶은 허무할 뿐입니다.
'질서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너머' 가 무슨 뜻인가요?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의 앞과 뒤에 질서 너머를 잘라 넣으신거 같습니다
ㅋㅋㅋㅋ 같은 내용으로 고민하는 사람.. +1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돜ㅋㅋ 썸네일 읭? 하고 클릭햇네요...
썸네일 어그로일지도요... 저도 못참고 클릭했어요 ㅋㅋㅋㅋ
저 자아 창조에 대한 반론이 니체의 초인사상에 대한 반론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오늘 건 좀 이해하기 쉽네요 다행히 ㅎㅎㅎ 나중에 팀 켈러 목사하고 만나시는 모습도 기대해봅니다
매번 좋은 영상 감사드립니다 🤗
Who could we be?!!
질서너머 교회는 어떻게 변해야하는가 오타인듯
칼 융
C.S 루이스
썸넬 무슨일이야...
신부님. 잆이. 조던피터슨 교수님. 강연만으로. 원형적. 신화. 듣고싶어요. 중간에. 끼어들고. 핵심을. 흐리고.!!!!! 제발. 가만이나. 있어요
9:54
12:17
결국 같은 곳을 보고 있지만 과정은 다르군요 다들 홧팅
질서교회가 아니라 ‘카톨릭 교회’를 쓰시려고 한 거 같고요 ‘카톨릭’ 이 ‘우주적’ 이란 표현이다 보니…그런듯
질서 너머인데 바뀐 듯해영
이름이 원형이라서 놀란 1인 ㄷㄷ
비공식 채널에 비해 조회수가 낮은 걸 보니 아쉽네요 ㅠㅠ
썸네일과 영상 제목들을 조금만 바꿔도 조회수가 잘 나오지 않을까요..?
조던 피터슨의 공식계정을 조던 피터슨 교수님이 직접 관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 한국공식계정 관리자는 결과적으로 조던피터슨 교수님께 민폐를 끼치고 있다. 조던피터슨 교수님 공식 계정에 가면 의 동영상이 업로드 되고 있는데, 여기는 "일주일에 한번", 그것도 몇달전 "한참 지난 오래된 영상"을 "단 몇분 가량" 올린다는 것이다. 문제는 한국 공식 계정이 생기고 난 후 다른 유뷰버들이 피터슨 교수님 영상을 번역해서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도 한국공식 유튜버 계정에 조회수 몰아주기나 혹은 공식계정에 눈치가 보여서 혹은 공식계정이 번역본을 올려줄거라고 믿고라든가 이런 이유들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 이 공식계정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므로서 좀 더 다양한 번역된 영상들을 접하고 싶어하는 팬들에게 결과적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후원금을 받는 것은 조던피터슨 교수님의 생각일지 모르나 한국공식계정을 낼때는 교수님은 최소한 한국 공식계정이 한참 철지난 오래된 영상을, (그것도 오래되어 영어자말이 제공되는) 2시간 넘는 분량을 고작 몇분으로 중요내용다빼고 심하게 압축해서, 고작 일주일에 딸랑 한번 업로드하는 "무성의한 계정으로 관리되기를 기대하고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유튜브를 접하고 책을 구매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계정 생기고 다른 유튜버들이 다양한 영상 번역본을 올리지 않으니 팬들에게도 피해고, 조던피터슨 교수님에게도 피해고, 이 계정 관리자는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미국도 예체능 과목은 비주류구나 ㅋㅋㅋㅋ
ㅇ
여권 신장으로 여성이 얻은 가장 큰 자유가 강제 결혼(사회적&종교적&경제적 거의 모든 방면) 및 강제 조혼(이슬람, 아프리카는 아직X)에서의 탈피였는데 조던 피터슨보면 여권 흐름을 살펴보지도 않고 걍 백인 남자교수 머리에 나올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이고 협소한 생각만 한다는게 여실히 드러남
조던 피터슨 정말 언피씨하다. 여자에겐 결혼 출산 양육이 삶의 행복일 것이고 임출육 하지 않으면 행복 어려울 것이라 확정적으로 말하는거.
백인 서양 남성 하버드교수 밀어줄 수 있는 경제력있는 집안 운빨을 아주 당연히 가진 나이브 스피커답다. 철학자도 사상가도 아닌 그냥 안티페미 셀럽이지.
조던 피터슨 상상 속 여자는 결혼 후 임출육하는게 삶이 목표라 생각하는 조신한 여성상이겠지만, 그 상상도 폭력이 될 수 있다는걸 너무 모름. 철부지 백인그남다움. 아프리카까지 안 가도 결혼 후 성관계 자유롭게 거부할 수 있는 나라 몇국 안됨. 즉 결혼 임출육은 여성에게 간단해피한 일이 아님.
지금의 여성들도 가뜩이나 야망없는데 유리 천장
이 걍 강철 천장이었던 시절 여자들이 뭔 커리어를 쌓고 싶었겠냐고 어차피 가부장제 아래 종속되어 살아갈꺼면 이왕에 잘 꾸며서 최대한 돈많은 남자 한놈 물어서 살고싶지. 그 시절은 그랬다쳐도 오늘날 여성까지 싸잡아서 여성본성을 논하면 안되지
진화심리학이 말하는 남자 본성 누가 몰라. 어린 여자, 낯선 여자랑 섹수 많이 하고 싶다. 임신 책임지기 싫다. 뻔하지. 반면에 여자 혼자 일하고 먹고살기 어려운 시절에 일 안 하고 꾸미기만 하고 돈많은 남자랑 결혼하고싶지? 질문하고 얻은 답변들이 여자의 진정한 본성이라 생각하는건 진짜 노답
성관계 거부가 어렵다는 문제 뿐만이 아니라 결혼하고 임출육하느라 생기는 경력 공백을 해결해주는 사회 복지 제도가 탄탄한 국가도 몇 안됨. 이런 상황에서 여자는 임신가능 나이 생각해서 결혼빨리 하는게 커리어하이보다는 나을껄요 짓껄이는짓, 그만 좀 해. 철딱서니없는 백인 남성 교수 아저씨.
원래 우파쪽 사상가들은 여성이 출산 후 사회적 지위가 생기는걸 별로 반기지 않아요 그만큼 남성들의 파이가 작아지고 배려해줘야 하니까요 대신 그들이 주장하는건 내가 남자로써 생계를 책임 질 테니 여자도 집안에서 책임을 다하라 이런 주장인거죠......저도 여자고 반대성향 인 사람인데 몇몇 조언들은 제 인생 살아가는데 들어도 괜찮을 말들도 있어서 그런 영상들만 찾아봐요
영상 어디에서 그런 부분이 나오나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