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2 유비가 제갈량을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가 잘 나오네요. 촉 정벌 5년 남짓 아직 완전히 유비의 신하들이 아닌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유비가 제갈량과 관우 복수전을 간다는 것은 조조가 순욱과 함께 허창을 비우고 전쟁 가는 것이고, 조비, 조예가 사마의랑 같이 제갈량과 싸우러 가는 것이죠. 이건 바로 반대세력에게는 기회이고 반란입니다.
애초에 유비가 오를 친 이유에는 손권의 거듭된 도발과 정치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중왕에 올라 한나라의 왕이 된 유비는 형주세력과 익주세력이 뒤섞여 있었는데, 관우의 죽음과 형주의 소실로 정치적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손권은 뒤통수를 쳐서 형주를 뺏은 것은 물론이고 익주에서 쫒겨나 형주로 옮겨진 유장을 익주목에 임명하면서 유비의 익주 통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왕의 권위를 깎아내렸으며 익주 내의 친유장파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이런 손권의 뒷공작 때문에 유비는 오를 반드시 쳐야만 했고 제갈량을 남겨두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죠. 또 제갈량 자체가 내정을 돌보는 데에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전쟁터로 나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방대한 내용을 정말 잘 요약했네요. 초반 부분 조금 덧붙이자면 원소는 얼자출신으로 명문가지만 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원씨 집안 아버지와 노비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나왔고 (친)아버지가 일찍 죽으면서 작은아버지(원술 아버지) 호적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양아버지가 죽고 3년상을 치룹니다. 당시 상을 치루는건 굉장히 고된 일이었으나 원소는 자처해서 3년상을 치룹니다. 이후 양어머니(원술 어머니) 상 또한 대신 치룹니다. 그래서 3+3 총 6년상을 치루면서 청류계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찍게되고 이것으로 원소는 정치적 기반을 쌓게 됩니다. (당시 6년상을 치루면서 생긴 지병이 원소가 일찍 죽은 원인이라는 썰도 있습니다.) 중국 역사는 내전과 외환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데 후한말기에는 오환과 선비족이 북쪽을 장악하고 있었죠. 당시 동탁과 공손찬이 중앙으로 콜을 받았던 이유는, 동탁은 병주자사 그리고 공손찬은 유주(요동 부근)에서 외적을 상대로 크게 활약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나 강원도 최전방지역의 사단장을 서울로 부른것과 비슷합니다. +수정내용 원소의 친부/양부에 관한 언급이 엇갈려서 따로 글 남깁니다. 진수의 삼국지 정사에서는 원소의 친부/양부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이후 역사가들의 주석에서 관련 사항이 남아있습니다. 1. 원성(2남)의 아들이었으나 일찍 요절하여 동생인 원봉(3남)이 길렀다. 2. 원봉(3남)의 아들이었으나 일찍요절한 형님의 대를 잇기위해 원성(2남)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둘 중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얼자 출신+6년상 까지는 팩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얼자로 태어나면 가문에서 후한 상황에선 그대로 노비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위청 장군도 그 탓에 성인이 될때까지 양이나 치고 잇던 게 그 이유고요. 근데 원소 친아버지 경우는 그래도 자기 자식인지라 신분 세탁을 해준답씨고 저렇게 호적에 입적시킨거니까 원소 친아빠는 그래도 나름 자식 챙겻다고 봐야합니다.
@@이주표-g2z 여러가지 썰이 있지만 원소의 아버지 형제들이 일찍 요절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소의 친부가 형님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서 호적에 이름이 올렸다라는 썰도 있고 원소의 친부가 일찍 요절하면서 동생들이 거둬키우며 본인의 호적에 이름이 올렸다라는 썰도 있습니다. 당시 얼자 출신들은 취급이 안좋았던것은 사실이지만(노비 취급) 원소가 첫 3년상을 치르기전에도 관직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는걸 봐서는 비록 얼자 출신이라도 원씨 가문의 힘이 대단했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원소의 친모가 원래는 천민 출신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첩인것은 확실하나 그 출신 자체는 애매모호다라는거죠. 천민 출신이라고 여겨졌던 이유는 원술을 비롯한 기존 종가 세력들이 종취급을 했다라는 기록에서 나왔기에 정확한 신분은 모릅니다. 결국 뭐가되었던 얼자출신치고는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라는 사실이겠죠.
@@Namki- 공손찬도 엄마가 평민이라서 저런 차별을 원소보단 덜 받아도 받은지라 그래도 대우가 안좋은건 아닙니다. 공손찬도 그 탓에 낮은 직분의 일만하다가 당시 태수가 공손찬을 좋게봐줘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줫고(애당초 향거리선제에서 관리 추천권이 태수가 1년마다 1,2명 정도 할 수 잇는 권한이 잇으니까) 그래서 출세길이 열리던거다보니까 원소도 가문 빨을 받긴햇지만 그렇게 편햇던건 아니니까요. 조조만해도 효렴으로 16살에 관직얻고 그래도 아무래도 할배가 환관이라서 이미지가 영 그렇다보니 명사들에게 추천장 그거 하나 받을려고 별 노렷을 다하고 그 중에서 다들 거부햇는데 교현하고 허소에게 추천장 하나씩 주니까 그리 기뻐한거 아니겟습니다?(뭐 서류가 아니라 말이긴한데 당시엔 이런 명사의 호평을 받을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태사자 경우도 허소의 평이 좋지 않아서 유요가 잘 안쓸려고 햇던 둥 이런 명사들 평가가 중요하니까요. 그 원소도 당시 명사 였다는 하옹의 호평을 받기도 햇고요) 그러니 원소도 더 높은 야심을 달성할려면 6년상 퍼포먼스를 이용해서 스스로 남은 이미지 세탁과 청류파 아이돌이 됫어야 햇으니까요. 즉 공손찬이나 원소나 신분적 약점이 잇어서 가문빨을 받긴 햇는데 그래도 하급에만 머물 수 밖에 없엇다고 봐야합니다. 그대로 잇엇다면 말이죠. [매년 각 주(州)에서 수재(秀才) 1명, 각 군국(郡國)에서 효렴(孝廉) 1명씩을 추천해 관리로 삼았다.] 일단 매년 향촌의 여론(뭐 정확히는 호족이나 전직관리 뭐 전직관리도 대부분은 호족이고)를 듣고 하는 형태긴한데 결국 결제 서류를 작성하고 그 받은 인수 즉 도장찍고 올리는건 태수나 자사나 현령같은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공손찬이나 원소 경우는 신분은 어쨋든 간에 상당히 일을 잘하고 잘 생겻다는 평을 젊을때는 받긴 햇지만요.
그래서 삼국사기와 삼국지 (삼국지연의)의 연별 구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역이 자꾸 대륙의 북경 연경에 가까워지는데 그리고 유비가 죽기 직전 머문 곳이 백제 성인데 백제는 당시에 어디까지 진출한건지, 고구려와 위가 싸우는 접점이공손찬을 제거하는 것인데 그 전쟁터가 어디인지 ? 갈석산의 위치가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동이의 갈래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가 후한 시대에 어디까지 인지 궁금해집니다.
주유가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갈량, 순욱 등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지자일 수 있었다는 건 맞습니다. 다른 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면 주유는 문무겸비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일까요... 대신 요절했기에 '커리어로 증명하는' 부분에서 약하다는게 단점이 되겠군요.
역사 돋보기님 한가지 아쉬운것이 있습니다. 딴지는 아니니깐 혹시나 마음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약 5분 12초경 나오는 영상에서 중국이 잘쓰는 역사 왜곡의 화면이 그대로 나왔다는 점을 말씀 드려요 뒷 배경에 시녀로 나오는 여자들의 복장이 저고리와 치마(한복)라는점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가뜩이나 동북공정, 한복 공정등으로 말들이 많은 영상을 그대로 쓰셨다는점이 조금 아쉽네요~
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저희도 인지하고 수정하였으나 통합본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 해당 내용 수정 요청하였으니 마음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역사돋보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팩트 삼국지 이걸 보면, 인간들의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 계속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네. 승리하고, 패하고 망하고, 충신땜에 살고 간신땜에 죽고, 이게 무한반복이네요. 지금도 똑같아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아무리 주위 환경이 바뀌고 해도,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니.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욕망, 탐욕, 이기심.
애초에 촉한이 너무 불리했던 상황이었죠. 얼핏보면 영토 크기는 비슷해보이나 저때 강남이나 서촉은 사실상 미개발지역이었고 강북에 주요 도시들이 몰려 있었기에.. 우리나라로 치면 위나라가 서울경기권이고 촉나라 오나라는 나머지 지방이란 말..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음
형주를 잃지 않았다면 해볼만 했을 겁니다. 유비가 조조보다 젊었기 때문이고.. 형주 자체도 과거 초나라였던 강국이고, 관중으로 가는 길목이기에 형주에서 관중으로 올라갔으면.. 한고조 유방루트로 해볼만 했을 거에요. 형주가 나가리 되는 순간 천하재패가 물건너가는 거라.. 유비가 무리하게 이릉대전을 일으킨 것이라고 봐야죠.
일생을 자기가 섬기던 왕의 아들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죽음을 맞은 제갈양. 일생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참고 버티면서 결국 자신을 키워준 위나라를 멸망시켜 버린 사마의... 당시의 승자는 사마의였지만, 역사의 사람들 속의 승자는 제갈양일듯... 하긴, 대학때 교수님이 사마의와 제갈양을 비교하면서...'입장이 바뀌었으면 사마의가 과연 제갈양 만큼 했을지도 의문이다.' 라는 말을 했는데...그만큼 제갈양을 크게 보셨던것 같았네요.
진수가 쓴 책 뿐만 아니라 후한서라던가 지금은 사라졋지만 배송지가 예전에 잇엇다면서 주석에 종종 인용한 영웅기(이건 유표의 외교서류 작성 담당이던 왕찬이라는 사람이 직접 썻다고 함) 같은 책도 잇던거보면 관련 서적은 꽤 많앗던거 같음. 전쟁으로 소실된 것들도 잇긴 하지만요.
검각은 지금도 육지전으로 전쟁하자고 하면 뚫을수 없는 요충지임... 그나저나 강유도 참 대단했다라고 생각됨... 인재풀이 없는 촉에... 장완,비위 다 떠나고 가만히 있어도 멸망하는 촉을 그 없는 인재풀에 9번의 북벌... 코에이는 이래서 강유한테 엄청난 스텟을 항상 안겨줬던가 싶음
강유의 북벌은 촉의 멸망을 앞당겼으며, 결정적으로 한중 작계시스템의 변경으로 촉의 멸망을 초래하였습니다. 소국이 대국을 칠때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노려야 하는 것이고, 장완 비위 모두 그것을 알았기에 강유의 군사활동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실제로 강유는 여러차례 군을 일으켰으나 제한된 성과를 얻거나 실패했고, 큰 승리를 얻기도 했으나 역으로 큰 패배도 했습니다. 거듭된 북벌 실패로 강유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대장군 직위가 박탈당할 위기에 빠지자, 성도로 귀환하지 않고 군을 이끌고 답중이란 곳에 머물기까지 했습니다. 위나라가 촉을 대침공할때 강유는 답중에 있었기 때문에 성도에서 출발한 원군이 한중을 바로 구원하지 못하고 강유의 퇴로 확보에 쓰였고, 한중의 작계 시스템을 강유가 바꿔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한중이 위나라 손에 떨어졌습니다.
일단 고구려부터 손권이 같이 위나라 쌈싸먹게 공격해달라는데 안가고 요동의 공손씨를 공략할 정도로 아직 요동도 못 먹은 상태임 유목쪽도 세력 모아서 내려오려는걸 공손찬이 족족 눌러왔고, 조조가 눌러왔고, 사마의가 또 누르고 저 삼국시대 버텨온건데 삼국지의 주 무대가 아니라서 비교적 적게 접하신겁니다 진나라도 만리장성 지을 정도였고, 한나라 초기 땐 흉노에게 털린 과거가 있어 껄끄럽다보니 그걸 교훈삼아서 최대한 못 크도록 별의 별 짓을 다해놨던것도 있죠 사실 유목민족이 중국을 점령하기 전에 지들끼리 싸우던걸 통합하는게 여간 쉽지가 않은게 더 큽니다만 ㅋㅋ
일단 삼국지는 관도대전으로 사실상 위나라가 삼국 통일 한거나 마찬가지임... 그당시 중원이라고 불린 지역에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돼 있어서 관도 대전 승리로 사실상 위나라가 삼국 통일한거나 마찬가지에 형주 접수로 쐐기를 박은거죠... 또한 제갈량 1차 출사표의 주된 목적은 옹주 지역 -한나라 땅중에 서쪽에 꼬리같이 길게 나온 부분- 을 먹어서 장기전을 준비 하려고 했고 옹주 지역 입구가 가정였음. 가정은 계곡이 아니고 완만한 구릉 지대라 길막이 안되는 지형임. 제길량이 군사를 잘모르거나 지형을 꼼꼼하게 안봤다는 증거로 유투버들이 가정에 직접 다녀와서 올린 영상들이 있음.. 완만한 구릉이라 차라리 산언덕에 배치하는게 차라리 나은지형임.. 1차 출사표는 위나라가 전혀 대비를 안하고 있어서 유일하게 가능성이 높았는데 어이없는 가정 전투 패배로 위나라 영토를 뺏을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거고 1차 출사표에 이겼서도 가정을 틀어막고 옹주을 합병해서 국력을 키워서 장기적으로 도전할 계획였음.. 옹주 지역이 유목민들하고 접하고 있어서 강력한 기병이 많아서 위나라가 혼란이 오면 뒤집을 가능성이 있긴 했음..
전쟁기본은 적국의 수도를 공격하는거 아닌가요? 이 영상의 지도보면.. 위나라가 건업을공격해서 무너트리고 오왕을 잡으면 게임 아웃아닌가요? 낙양에서 건업으로 바로 공격하러 가면 되지.. 왜 적벽을 감? 왜 그런가면 진짜역사는 적벽 부근에 오나라 수도 건업(무한시)이 있었기 때문이죠..
오나라의 수도가 건업이 남경이라면.. 사서 내용이랑 너무 다름..건업 동서남북에 뭐가 있었다라고 사서에 적혀있는거랑 남경의 동서남북 비교하면 너무다름...결과로는 건업이 남경이 될수없고.. 오나라의 왕들묘지가 너무 많이도시.. 무한시가 건업이 될수밖에없죠. 위와오 영토는 현재 한반도보다 조금 큰정도...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어요.
너무 좋은 영상이네요. 대부분 정사 요약이라면서 제갈량 사후는 연의마냥 대충 다루는데 ㅋ 이건 제갈량 사후까지 알차네요. 추천누릅니다
우와 진짜 삼국지를 처음부터 다 읽은거 같아요 최고네요
방대한 삼국지를 이렇게 간략히 잘 요약했다니..이런 건 구독이 답이다.
제갈량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주유로 갈아탔어요~~~~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시니 넘 감사드려요 ^^
최고입니다~👍
더이상의 극찬은 삼가하겠습니다~💯👏👏👏👏👏🙋♂️
삼국지 새로 한편 본거같은 느낌 대단한 양반이네 이걸 이렇게 자세하게 함축하다니❤
맨날 연의만 접하다가 실제 역사 속 삼국지를 요약잘해주셨네요!!! 굳!!
정리를 너무 깔끔하게 잘하셨네요. 삼국지의 전체적인 윤곽을 잡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1:02:02 유비가 제갈량을 데리고 가지 않은 이유가 잘 나오네요. 촉 정벌 5년 남짓 아직 완전히 유비의 신하들이 아닌 경우도 있었던 것입니다.
유비가 제갈량과 관우 복수전을 간다는 것은 조조가 순욱과 함께 허창을 비우고 전쟁 가는 것이고, 조비, 조예가 사마의랑 같이 제갈량과 싸우러 가는 것이죠.
이건 바로 반대세력에게는 기회이고 반란입니다.
그것도 그렇지만 평생을 함께한 미축의 동생 미방이
배신을 한것에 대해서 큰 충격을 받았기에 그런 행동을 할 확률이 높죠
어찌보면 이 모든게 미방 스노우볼이..ㅜ
애초에 유비가 오를 친 이유에는 손권의 거듭된 도발과 정치적 압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중왕에 올라 한나라의 왕이 된 유비는 형주세력과 익주세력이 뒤섞여 있었는데, 관우의 죽음과 형주의 소실로 정치적 기반이 흔들렸습니다.
그런데 손권은 뒤통수를 쳐서 형주를 뺏은 것은 물론이고 익주에서 쫒겨나 형주로 옮겨진 유장을 익주목에 임명하면서 유비의 익주 통치를 정면으로 부정하고 왕의 권위를 깎아내렸으며 익주 내의 친유장파들을 자극하였습니다.
이런 손권의 뒷공작 때문에 유비는 오를 반드시 쳐야만 했고 제갈량을 남겨두는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죠. 또 제갈량 자체가 내정을 돌보는 데에 누구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 전쟁터로 나갈 필요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한화솔루션-p6p미방은 관우가 갈궈서.... 관우입장에선 낙하산이라고 생각하고 막대한거같습니다
@@개망함-t1p
뭔 개소리야?
미방은 미축의 동생이고 평생을 따라다닌
충신중의 충신인데
그리고 전쟁앞두고 물자 다태워먹는데
목잘라버리는걸 미방이라고 어느정도
봐준건데 뭔 개씹소리를 함?
@@개망함-t1p
개소리도 적당히좀 합시다.
미방이 어떻게 관우입장에서 낙하산이겠냐
방대한 내용을 정말 잘 요약했네요.
초반 부분 조금 덧붙이자면 원소는 얼자출신으로 명문가지만 권력과 거리가 먼 사람이었죠.
원씨 집안 아버지와 노비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나왔고 (친)아버지가 일찍 죽으면서 작은아버지(원술 아버지) 호적에 이름을 올렸고, 이후 양아버지가 죽고 3년상을 치룹니다. 당시 상을 치루는건 굉장히 고된 일이었으나 원소는 자처해서 3년상을 치룹니다. 이후 양어머니(원술 어머니) 상 또한 대신 치룹니다. 그래서 3+3 총 6년상을 치루면서 청류계 인사들에게 눈도장을 찍게되고 이것으로 원소는 정치적 기반을 쌓게 됩니다. (당시 6년상을 치루면서 생긴 지병이 원소가 일찍 죽은 원인이라는 썰도 있습니다.)
중국 역사는 내전과 외환이 끊임 없이 반복되는데 후한말기에는 오환과 선비족이 북쪽을 장악하고 있었죠.
당시 동탁과 공손찬이 중앙으로 콜을 받았던 이유는, 동탁은 병주자사 그리고 공손찬은 유주(요동 부근)에서 외적을 상대로 크게 활약하고 있던 시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경기도나 강원도 최전방지역의 사단장을 서울로 부른것과 비슷합니다.
+수정내용
원소의 친부/양부에 관한 언급이 엇갈려서 따로 글 남깁니다.
진수의 삼국지 정사에서는 원소의 친부/양부에 대한 언급은 없고 이후 역사가들의 주석에서 관련 사항이 남아있습니다.
1. 원성(2남)의 아들이었으나 일찍 요절하여 동생인 원봉(3남)이 길렀다.
2. 원봉(3남)의 아들이었으나 일찍요절한 형님의 대를 잇기위해 원성(2남)의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둘 중 무엇이 사실인지는 정확히 모르나 얼자 출신+6년상 까지는 팩트라고 보시면 됩니다.
박식하시군요
조은글감사
ㅣㅗ
얼자로 태어나면 가문에서 후한 상황에선 그대로 노비 취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실제 위청 장군도 그 탓에 성인이 될때까지 양이나 치고 잇던 게 그 이유고요. 근데 원소 친아버지 경우는 그래도 자기 자식인지라 신분 세탁을 해준답씨고 저렇게 호적에 입적시킨거니까 원소 친아빠는 그래도 나름 자식 챙겻다고 봐야합니다.
@@이주표-g2z 여러가지 썰이 있지만 원소의 아버지 형제들이 일찍 요절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소의 친부가 형님의 대를 이어주기 위해서 호적에 이름이 올렸다라는 썰도 있고 원소의 친부가 일찍 요절하면서 동생들이 거둬키우며 본인의 호적에 이름이 올렸다라는 썰도 있습니다.
당시 얼자 출신들은 취급이 안좋았던것은 사실이지만(노비 취급) 원소가 첫 3년상을 치르기전에도 관직이 있었다라는 기록이 있는걸 봐서는 비록 얼자 출신이라도 원씨 가문의 힘이 대단했다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가설로는 원소의 친모가 원래는 천민 출신이 아니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첩인것은 확실하나 그 출신 자체는 애매모호다라는거죠. 천민 출신이라고 여겨졌던 이유는 원술을 비롯한 기존 종가 세력들이 종취급을 했다라는 기록에서 나왔기에 정확한 신분은 모릅니다.
결국 뭐가되었던 얼자출신치고는 대우가 나쁘지 않았다라는 사실이겠죠.
@@Namki- 공손찬도 엄마가 평민이라서 저런 차별을 원소보단 덜 받아도 받은지라 그래도 대우가 안좋은건 아닙니다. 공손찬도 그 탓에 낮은 직분의 일만하다가 당시 태수가 공손찬을 좋게봐줘서 이런저런 편의를 봐줫고(애당초 향거리선제에서 관리 추천권이 태수가 1년마다 1,2명 정도 할 수 잇는 권한이 잇으니까) 그래서 출세길이 열리던거다보니까 원소도 가문 빨을 받긴햇지만 그렇게 편햇던건 아니니까요.
조조만해도 효렴으로 16살에 관직얻고 그래도 아무래도 할배가 환관이라서 이미지가 영 그렇다보니 명사들에게 추천장 그거 하나 받을려고 별 노렷을 다하고 그 중에서 다들 거부햇는데 교현하고 허소에게 추천장 하나씩 주니까 그리 기뻐한거 아니겟습니다?(뭐 서류가 아니라 말이긴한데 당시엔 이런 명사의 호평을 받을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태사자 경우도 허소의 평이 좋지 않아서 유요가 잘 안쓸려고 햇던 둥 이런 명사들 평가가 중요하니까요. 그 원소도 당시 명사 였다는 하옹의 호평을 받기도 햇고요) 그러니 원소도 더 높은 야심을 달성할려면 6년상 퍼포먼스를 이용해서 스스로 남은 이미지 세탁과 청류파 아이돌이 됫어야 햇으니까요.
즉 공손찬이나 원소나 신분적 약점이 잇어서 가문빨을 받긴 햇는데 그래도 하급에만 머물 수 밖에 없엇다고 봐야합니다. 그대로 잇엇다면 말이죠.
[매년 각 주(州)에서 수재(秀才) 1명, 각 군국(郡國)에서 효렴(孝廉) 1명씩을 추천해 관리로 삼았다.]
일단 매년 향촌의 여론(뭐 정확히는 호족이나 전직관리 뭐 전직관리도 대부분은 호족이고)를 듣고 하는 형태긴한데 결국 결제 서류를 작성하고 그 받은 인수 즉 도장찍고 올리는건 태수나 자사나 현령같은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공손찬이나 원소 경우는 신분은 어쨋든 간에 상당히 일을 잘하고 잘 생겻다는 평을 젊을때는 받긴 햇지만요.
주유가 생각한 전략은
익주 - 주유 / 형주 -유비 / 양주(오) - 손권이 아니라
형주 점령 후 익주의 유장도 정복, 장강~익주의 험한 산맥 정도를 기준으로 남북국으로 만드는 것이 1차였습니다…
형주를 애시당초 오가 유비한테 줄라가 없었고, 서로 차자하려고 했죠..
목소리가 너무 좋네요...역사관련 유튜브는 임용한 박사님과 역사돋보기, 퍄퍄킴 이3개 채널이 개인적으로는 최애 트로이카 입니다...
감사합니다 수면에도 도움이되는군요 ㅎㅎㅎ 👍👍👍👍
잘 봤습니다
1:07:17
오나라 초대 승상은 육손이 아니라 고옹 입니다. 고옹 사후 육손이 승상이 됩니다.
고옹이 19년한듯요 고옹은 걍 손권말대로 가만있어서 오래해먹었지만 육손은 후계문제에 개입하면서 팽당함..
촉한멸망 이후는 다루는곳이 잘없는데 덕분에 잘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이나 ❤나 오늘 ❤
재미있고 간단명료
아쉬움은 어록이 없다는것
어록의 가치를 높이 보기에
역사를 중립적이고 논리적으로 잘 설명해주시는 돋보기님!!
최고입니다
Xㅂ♘😊♘♘♘x😅 1:20:10 ;😊; 1:20:14 1:20:21 😊 1:20:22 😅 1:20:26 1:20:29 1:20:35 1:20:39 1:20:41 😢 1:20:55 1:20:56 🏆🏆 1:21:00 1:21:00 1:21:00 1:21:04 1:21:08 1:21:12 1:21:12 😊 1:21:16 1:21:22 1:21:26 1:21:28 1:21:29
ㅡ듣ㄷ ㅡㅡㄷㄷㄷ ㄷ😅 1:21:42 1:21:43 1:21:45 1:21:51 😮 1:21:56 1:21:56 1:21:56 1:22:01 1:22:01 1:22:03 1:22:07 😊
감사합니다 삼국지연의 소설을 간단하게 설명 비교해주어 감사합니다
좋은 재주를 가지셨네요. ^-^
1:24:30 촉한 마지막 불꽃 강유.
구독 쾅쾅 누르고 갑니다 ㅎ
삼국지를 열 번 이상 읽었는데
제가 잘 모르는 사실도 있네요.
아주 즐겁게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한 국가가 멸방하는 건 대부분 내분 혹은
지도자의 무능이나 패악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은
역사가 말해 주는군요.
어릴적에 봤지만 기억이 안나서
3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다시읽고 드라마도 정주행 하고 삼국지에 빠져있는 일인 입니다
유튜부로 너무 유익한정보 알고갑니다!
다시읽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투표할때 진짜 신중하게 해야 한다는것을!
무능한 정치인 뽑으면 나라가 망합니다
그래서 삼국사기와 삼국지 (삼국지연의)의 연별 구별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즉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역이 자꾸 대륙의 북경 연경에 가까워지는데
그리고 유비가 죽기 직전 머문 곳이 백제 성인데 백제는 당시에 어디까지 진출한건지,
고구려와 위가 싸우는 접점이공손찬을 제거하는 것인데 그 전쟁터가 어디인지 ?
갈석산의 위치가 점점 더 명확해지면서 동이의 갈래인 고구려 백제 신라의 영토가 후한 시대에 어디까지 인지 궁금해집니다.
가장 깔끔한 삼국지 리뷰
내가 가장 원하던 내용이네요 솔직히 정사삼국지를 읽는게 쉽진 않죠 ....😅
대단이 감사 드립니다❤
적벽대전이 실제로 있던 전투인지..
삼국지연의는 유비,관우를 존경하는 나관중이 유비 입장에서 쓴 소설이라, 과장이 많이 들오갔다 하네요.
요즘 케이불티비에서 삼국지를 보고있는데 너무 재밌써여
알고보는데도 재밋게봄
조등이란 환관 사진이 왠지 익숙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사마천 사진 입니다~~ 사마천의 사기~~ 왜 사기치니~~
감사합니다.
설명이 연의에요 정사에요??
왔다갔다해서 조금 아쉽지만
재밌게 잘 들었습니다
소설 빼니 시원하네... 굿!!!
적벽대전은 풍토병대전이었고..... 주유가 삼국지에서 가장 뛰어난 전략가 였다는건 소설에서 안나와서 몰랐네요 ....
주유 잘나가다가 빨리죽어서 아쉽소..
조인과 치고박고 계속했으면 형주 다 먹었을라나...
주유가 가장 뛰어난 전략가였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제갈량, 순욱 등과 더불어 가장 뛰어난 지자일 수 있었다는 건 맞습니다. 다른 둘보다 뛰어난 부분이 있다면 주유는 문무겸비라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할 수 있었다는 점 정도일까요... 대신 요절했기에 '커리어로 증명하는' 부분에서 약하다는게 단점이 되겠군요.
감사합니다! 삼국지가 꼬아고 또꼬이니, 알아는 듣는데..반은 머리뒤로 흘러나가고 설명과 말이 빠르니 화면에 이삼각 관계들을 쓴 가계도 그림을 삽입해주시면 아주 도움이되겠녜요.
1:34:53
목소리 딕션 좋다.
역사 돋보기님 한가지 아쉬운것이 있습니다.
딴지는 아니니깐 혹시나 마음이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약 5분 12초경 나오는 영상에서
중국이 잘쓰는 역사 왜곡의 화면이 그대로 나왔다는 점을 말씀 드려요
뒷 배경에 시녀로 나오는 여자들의 복장이 저고리와 치마(한복)라는점을 알아 주셨으면 합니다
가뜩이나 동북공정, 한복 공정등으로 말들이 많은 영상을 그대로 쓰셨다는점이 조금 아쉽네요~
안녕하세요. 역사돋보기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저희도 인지하고 수정하였으나
통합본으로 편집하는 과정에서 누락된 것으로 파악됩니다.
현재 해당 내용 수정 요청하였으니 마음 상하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로도 저희 역사돋보기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istorycreator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좋은 영상 부탁 드려요
팩트 삼국지 이걸 보면, 인간들의 본성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 계속 반복에 반복을 거듭하네. 승리하고, 패하고 망하고, 충신땜에 살고 간신땜에 죽고, 이게 무한반복이네요. 지금도 똑같아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아무리 주위 환경이 바뀌고 해도,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니. 인간의 속성은 변하지 않는다. 욕망, 탐욕, 이기심.
역시 사람 보는눈은 똑같음 .
정말 꽉꽉 압축한 영상 숨쉴틈없이 잘봤습니다.
한시간에 압축한거 풀면 1년도 모자라겠네요.
정승이 아니라 사세삼공.. 즉 4대 5명이 삼공의 지위였던 로열패밀리.. 삼공은 승상(국무총리)보다 높은 사도, 사공, 태위 최고의 명예직
31:30 원소의 대표적인 성격이 우유부단
사마소 이야기 나올때부터 나오는 영상 출처 kbs에서 헸던 삼국지가 아니라 중화티비에서 했던 사마의 미완의책사랑 최후의승자 같은데
1. 조등 사진은 사마천같습니다.
2. 원인은 좀 더 파고 들어야합니다. 한무제가 유목민과 싸울 자금을 모으기 위해 소금과 철을 국가만 거래하게 해서, 모든 돈이 대토지 수요로 몰렸음.
정말 잼있게 잘봤습니다 ㅎㅎ
1시간반 다봤다..
삼국지 보면서 확실히 배우는게... 나라가 망하는건 외력에 공격이 아닌 내부 간신들 때문입니다.
애초에 촉한이 너무 불리했던 상황이었죠. 얼핏보면 영토 크기는 비슷해보이나 저때 강남이나 서촉은 사실상 미개발지역이었고 강북에 주요 도시들이 몰려 있었기에.. 우리나라로 치면 위나라가 서울경기권이고 촉나라 오나라는 나머지 지방이란 말.. 애초에 이길 수가 없는 싸움이었음
형주를 잃지 않았다면 해볼만 했을 겁니다. 유비가 조조보다 젊었기 때문이고.. 형주 자체도 과거 초나라였던 강국이고, 관중으로 가는 길목이기에 형주에서 관중으로 올라갔으면.. 한고조 유방루트로 해볼만 했을 거에요. 형주가 나가리 되는 순간 천하재패가 물건너가는 거라.. 유비가 무리하게 이릉대전을 일으킨 것이라고 봐야죠.
우리나라로 치면 조조가 전라도 경상도 자리고. 손권이 강원도 유비가 서울이죠. 저시대땐 곡창지대가 중요하기때문에.. 서울은 풍족하진않아요.
후금은 만주만 가지고도 그 수십배 인구와 생산력의 명나라에 밀리지 않았죠.
정리를 참 잘하셨네요. 다만,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 짝짝짝 ~~
와........ 삼국지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환장하는 내용 꽉꽉찼네요
동탁 화폐개혁이야기라던가 각종 사건의 깊이있는 배경설명ㄷㄷ
아무리 책을 읽어도 얽히고 설킨 내막을 알수 없었는데 덕분에 제대로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일생을 자기가 섬기던 왕의 아들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 하고 죽음을 맞은 제갈양.
일생을 자기가 살아남기 위해서 참고 버티면서 결국 자신을 키워준 위나라를 멸망시켜 버린 사마의...
당시의 승자는 사마의였지만, 역사의 사람들 속의 승자는 제갈양일듯...
하긴, 대학때 교수님이 사마의와 제갈양을 비교하면서...'입장이 바뀌었으면 사마의가 과연 제갈양 만큼 했을지도 의문이다.'
라는 말을 했는데...그만큼 제갈양을 크게 보셨던것 같았네요.
다좋은데.광고가 웨케 많이나와.집중안되게..
선생님, bgm 소리 좀 줄여 주시던가 없애면 안될까요. ㅠㅠㅠㅠ 내용이 너무 좋아 계속 듣고 싶은데 시끄러워서 토할 것 같아요. ㅠㅠㅠ
소설 과 역사는 차이가 큽니다
좋은 프로를 제작해 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허나 여포의 화살로 전쟁을 휴전시킨건 정사에도 있는 사실ᆢ
허풍 삼국지의 실제영토
th-cam.com/video/vY0kjxBe8Ho/w-d-xo.htmlsi=qQUlHsNBBEmWP0cz
장비는 시서화에 능하고 그 장합을 개박살낼정도의 군사적 전술재능을 가지고 있었죠
여러번 읽어도 잘 모르던 부분이 순식간에 정리되네요
저 기록이 삼국지연의나 삼국지 말고 기록이 있는건가요??
진수가 쓴 정사 삼국지가 따로 있습니다
진수가 쓴 책 뿐만 아니라 후한서라던가 지금은 사라졋지만 배송지가 예전에 잇엇다면서 주석에 종종 인용한 영웅기(이건 유표의 외교서류 작성 담당이던 왕찬이라는 사람이 직접 썻다고 함) 같은 책도 잇던거보면 관련 서적은 꽤 많앗던거 같음. 전쟁으로 소실된 것들도 잇긴 하지만요.
삼국지 정사 뿐만이 아니라 후한서, 한진춘추, 자치통감 등 많은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화양국지도 있겠군요
지도가 영 잘못된 것을 가져다쓰는건 좋은가요?
좋은지도 찾아보고 공부하셔야 할듯합니다
1:32:11 ? 촉나라 침공당하는 시점에 오나라 지원군도 촉 도와주러 이동중이였는데
조조의 아버지가 조등의 양자로 들어간것입니다 ..
조조의 원래 성은 하후씨로 알고 있습니다만..
16:00 서영 재평가 시급.
서영 >> 손견 >> 여포 >> 조조 네ㅋㅋ
서영,국의,고순 극초반 그래도 제법 괜찮았던 장수들 셋다 어이없이 죽음...
서영은 알다시피 여포보다 전공이 좋았으며, 국의는 공손찬을 계교전투에서 박살내버려서 공손찬이 끝장나는 계기가됨. 고순은 뭐 여포휘하 최고장수수준 ㅋㅋ 장료보다 그때 이름있었음
53분 _55분 조조65세 여몽42세 손권 39살 육손37살 황충 72세 관우 58세 장비53세 유비 59살 조비33세
대박이네요
아 재밌다...... 깊어진다 잼국지
🎉🎉🎉🎉
고려와 신라 삼국과 발해 그리고 원조선 배달국에는 지나를 중국이라고 불러주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서양에서도 차이나라 불렀습니다.
🇨🇳 🇭🇰 🇲🇴
청 명 원 송 금 요 송 당 오대십국 요 수 오호십육국 등 등 🇨🇳 21:39 중공 🐼 판다국 🇨🇳
😂😂
참고로 적벽대전 당시 배를 묶어둔건 배가 떠내려가는걸 방지하기위한 당연한일입니다
그나저나 방통이 안죽었으면 어찌되었을지 궁금하네요
검각은 지금도 육지전으로 전쟁하자고 하면 뚫을수 없는 요충지임...
그나저나 강유도 참 대단했다라고 생각됨...
인재풀이 없는 촉에... 장완,비위 다 떠나고 가만히 있어도 멸망하는 촉을 그 없는 인재풀에 9번의 북벌...
코에이는 이래서 강유한테 엄청난 스텟을 항상 안겨줬던가 싶음
오죽하면 촉한의 원로 장수 요화.장익등 실속없는 북벌에 국력을 소비하지 말구 우선 내정을 돌보자고 말을했지만 강유는 오로지 북벌올인... 이게 대단해 보이시나요?
강유의 스텟은 그냥 요화급 장수임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닌 나관중의 버프를 엄청받은 장수중 한명
지금은 폭격기라도 뛰울 엄두라도 내겟지만 육상병력만 가지곤 꽤나 애로사항이 많긴하죠. 근데 검각 방어는 정상이엿는데 역시 마막이 그냥 열어준 게 더 크죠.
촉에 나중에들어와서 권력이약해서 전쟁으로 공을 세웟어야햇음 공적으로보면 고평가해도될인물같은데
강유의 북벌은 촉의 멸망을 앞당겼으며, 결정적으로 한중 작계시스템의 변경으로 촉의 멸망을 초래하였습니다.
소국이 대국을 칠때는 천재일우의 기회를 노려야 하는 것이고, 장완 비위 모두 그것을 알았기에 강유의 군사활동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실제로 강유는 여러차례 군을 일으켰으나 제한된 성과를 얻거나 실패했고, 큰 승리를 얻기도 했으나 역으로 큰 패배도 했습니다. 거듭된 북벌 실패로 강유는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대장군 직위가 박탈당할 위기에 빠지자, 성도로 귀환하지 않고 군을 이끌고 답중이란 곳에 머물기까지 했습니다.
위나라가 촉을 대침공할때 강유는 답중에 있었기 때문에 성도에서 출발한 원군이 한중을 바로 구원하지 못하고 강유의 퇴로 확보에 쓰였고, 한중의 작계 시스템을 강유가 바꿔버리는 바람에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한중이 위나라 손에 떨어졌습니다.
여기서 궁금한게 중국 말고 나머지 근처 나라들은 뭐하고 있었을지가 궁금합니다 지구를 삼국으로 만든 것도 아니라서 삼국가를 칠 생각을 안 했는지 의문..
일단 고구려부터 손권이 같이 위나라 쌈싸먹게 공격해달라는데 안가고 요동의 공손씨를 공략할 정도로 아직 요동도 못 먹은 상태임
유목쪽도 세력 모아서 내려오려는걸 공손찬이 족족 눌러왔고, 조조가 눌러왔고, 사마의가 또 누르고 저 삼국시대 버텨온건데 삼국지의 주 무대가 아니라서 비교적 적게 접하신겁니다
진나라도 만리장성 지을 정도였고, 한나라 초기 땐 흉노에게 털린 과거가 있어 껄끄럽다보니 그걸 교훈삼아서 최대한 못 크도록 별의 별 짓을 다해놨던것도 있죠
사실 유목민족이 중국을 점령하기 전에 지들끼리 싸우던걸 통합하는게 여간 쉽지가 않은게 더 큽니다만 ㅋㅋ
중국 삼국 위,촉,오 일때, 우리나라도 삼국시대로 고구려, 백제, 신라로 전쟁중이였다거. 서양도 서로 전쟁중이였다는 거. 전세계가 영토전쟁 전쟁으로, 다들 유사한 역사가 진행 중이였다는게 참 아이러니 하다는거.
적벽대전 패배 원인이 전염병이었다니 ㄷㄷ
전염병+ 고육지책 + 병사들 피로도
사마천 사진을 조등으로 쓰셨네요
너무 노이즈가 심하네요.. 그래서 20시간째 집중이 안 돼요.. 아네요.. 가정법이.. 진짜로 20시간을 넘겼답니다.. 크~
확실히 1세대 영웅들 다 죽었을 때 부터 노잼의 연속이네요 ㅋㅋㅋㅋ
익숙한 그 맛이 역시 좋은 맛이군요
유튜브 최고의 삼국지 해설!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놓치지 않고.... 재미까지....❤!
13:31
솔직히 삼국지의 극대화를 위해 올려치지 한거 같고 실제론 그렇게 장엄하진 않았을것 같음
강유가 하드캐리 하고 있었단말도 논란이 많죠~ 오히려 무리한 북벌을 계속 시도해서 촉의 국력을 낭비시켜 멸망을 앞당겼다는 평도 많아요
지도상으로 보면 땅 넓이는 비슷해 보이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경기충청도=위나라
강원도=촉
전라경상도=오
이정도? ㅋㅋㅋㅋㅋ
침착맨 삼국지 5시간 풀영상 10회 이상 정주행 하고 넘어왔습니다
익주 형주 까지 먹었던 유비가 여기서 좀 잘 했다면 다 먹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
좀 집중해서 볼만하면 광고뜨고, 실제 역사기록이랑 다른게 여러개보인다
한나라 말기가 마치 작금의 대한민국같군
일단 삼국지는 관도대전으로 사실상 위나라가 삼국 통일 한거나 마찬가지임...
그당시 중원이라고 불린 지역에 인적 물적 자원이 집중돼 있어서 관도 대전 승리로 사실상 위나라가 삼국 통일한거나 마찬가지에 형주 접수로 쐐기를 박은거죠...
또한 제갈량 1차 출사표의 주된 목적은 옹주 지역 -한나라 땅중에 서쪽에 꼬리같이 길게 나온 부분- 을 먹어서 장기전을 준비 하려고 했고 옹주 지역 입구가 가정였음.
가정은 계곡이 아니고 완만한 구릉 지대라 길막이 안되는 지형임.
제길량이 군사를 잘모르거나 지형을 꼼꼼하게 안봤다는 증거로 유투버들이 가정에 직접 다녀와서 올린 영상들이 있음..
완만한 구릉이라 차라리 산언덕에 배치하는게 차라리 나은지형임..
1차 출사표는 위나라가 전혀 대비를 안하고 있어서 유일하게 가능성이 높았는데 어이없는 가정 전투 패배로 위나라 영토를 뺏을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거고 1차 출사표에 이겼서도 가정을 틀어막고 옹주을 합병해서 국력을 키워서 장기적으로 도전할 계획였음.. 옹주 지역이 유목민들하고 접하고 있어서 강력한 기병이 많아서 위나라가 혼란이 오면 뒤집을 가능성이 있긴 했음..
개재밌당
원소가문이 지금으로치면 증조할아버지-총리
할아버지-장관 아버지-장관 이런느낌인가?
총리를 4대가 했다보면 되죠. 정치적으로 입지전적인 사람들
원술이 진퉁인데 능력은 원소가 조금 나았던거 같네요 원소가 곽도말 안듣고 전풍 저수말만 들었어도 통일가능했을듯
혹시 나중에 일본 전국시대를 할 예정인가요??
삼국지 소설영화에서 제갈량사마의왜케 오버해서띄우는지 실제 주유와 조진의능력은 엄청났다
정사로 삼국지 만든 드라마가 없다는게 안타까움
전쟁기본은 적국의 수도를 공격하는거 아닌가요? 이 영상의 지도보면.. 위나라가 건업을공격해서 무너트리고 오왕을 잡으면 게임 아웃아닌가요? 낙양에서 건업으로 바로 공격하러 가면 되지.. 왜 적벽을 감? 왜 그런가면 진짜역사는 적벽 부근에 오나라 수도 건업(무한시)이 있었기 때문이죠..
실제 위치를 잘 살펴 보세요! 그들이 어디서 싸웟는지! 한중이라는 위치가 어딘지? 적벽이라는 위치가 어딘지? 그걸알면 처음 나오는 지도 그것을 올릴수 없지요!
진짜 삼국지라고 되어 있지만, 중간중간에 소설인 연의의 내용을 기반으로 한 내용들이 많은거 같습니다.
유비- 역병, 손권- 쥐색희, 조조-서주 대효도
조비 사패 , 원술 꿀물좌 국룰
오나라의 수도가 건업이 남경이라면.. 사서 내용이랑 너무 다름..건업 동서남북에 뭐가 있었다라고 사서에 적혀있는거랑 남경의 동서남북 비교하면 너무다름...결과로는 건업이 남경이 될수없고.. 오나라의 왕들묘지가 너무 많이도시.. 무한시가 건업이 될수밖에없죠. 위와오 영토는 현재 한반도보다 조금 큰정도... 너무 과대 포장되어 있어요.
진나라 이후 중국의 가장 찬란했던 시기 5호 16국!
중국이 다시 찬란해지려면 5호16국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고구려계 북위를 비롯해 모든 북방민족들이 나눠먹으며 축제를 벌인 시기네요
이민족시대? ㅋㅋ 중국은 땅이크니 20개국으로 찢어져야됨
@@skipperenterprise2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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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원소 가문은 탁류가 아니라 청류입니다
가정전투는 마속이 공땜에싸우려는게아니라 싸울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더구체적상황을요약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