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점수에 맞춰서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갔다가 후회, 방황하지 말고 먼저 소신 껏 공부하고 싶은 대학, 전공을 정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야 합격하면 공부 열심히 하게 되고 다른 대학, 전공을 위한 반수생 없어진다고 물론 고등학생이 대학과 대학전공을 아는 게 없으니 이것도 큰 의미가 없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말 맞는 말임. 정상적인 학교수업을 받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스카이 간다. 그럼 나머진 제대로 수업 안 받았냐? 그렇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해서 수업 들었다고 생각하냐? 그냥 시험 다가오면 문제 풀이만 냅다해서 요령만 터득했겠지. 그리고 시험을 치니깐 많이 풀어본 문제는 아는데 그렇지 않은 문제는 손도 못대지. 그러나 수업도 제대로 들으면서 교과서도 제대로 읽은 학생이라면 어떤식의 문제가 나와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기에 답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내용 전체를 알고 있는 학생과 문제의 유형에 훈련이 되어 있는 학생의 차이지.
@@최해수-b2f 엄밀히 말하면 맞는말임. 그런데 수능을 풀려면 교과서 속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공교육 센세 대부분은 그걸 설명해내지 못함. 오히려 강남대성 재수학원 수학 1타강사가 교과서로 수업하면서 재해석해주는데 이게 진짜 교과서 공부인가 했음. 근데 솔직히 이걸 학생들보고 스스로 하라는건 난 가혹해보임. 선생이 잘 가르쳐줘야지. 경험해보니까 딱 이생각나더라.
이런 귀한 영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91년도에 학력고사 쳤는데 올해 우리 아들이 대입치뤘네요~ 학부모가 되고 보니 저 때 부모님 심정이 이랬구나 싶었어요... 우리 아들은 수능을 안쳐서 수능장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 영상 보고 감회가 새롭네요. 귀한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공부만 잘한다고 대학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녔음ㅠ 울 엄마아빠 둘 다 어렸을 때부터 넘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셨어요ㅠ 본인보다 공부 못했던 애들이 명문대 가는 거 보고 부러우셨대요ㅠ 평범한 사람들이나 학력고사 보고 대학 갔지.. 스무살 되자마자 돈부터 벌어야 했던 분들도 많았을 것.. 근데 더 어이없는 건 난 대학도 갔는데 취업을 못 함
이제 저기 나온 수험생들이 다들 50대가 되었겠네요. 어떤 분은 또 수험생의 부모님이 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자신을 뒤에서 응원하던 부모님처럼 몸에 나이가 표시되기 시작했겠어요. 혹시나 예전 화면 속에서 부모님이 자신이 시험 치는 동안 열심히 기도 올리던 영상을 확인한다면 또 얼마나 마음이 미어질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때는 몰랐던,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의 헌신. 비록 수능 세대지만 똑같이 젊음을 넘어 중년이 되 가는 시절에 그 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저때에도 대중교통은 갖춰져 있었지만 지금보다 수송량이 낮아 출퇴근은 항상 대중교통이 만원이었음. 그런데 한번에 백만명에 가까운 수험생이 단 하루에 시험을 봤기 때문에 당일 대중교통 이용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 늦지 않을거라고 판단하고 버스타러 나왔다가 오는 버스마다 전부 만원이라 한 시간씩 기다렸다는 일화들이 수두룩함. 지금처럼 마을버스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정류장에서 고사장이 멀어 한참 걸어야 하는 일도 많았음.
5명중에 4명이 떨어졌다면, 20%만 대학 갔다는 소리고, 지금은 80%가 대학을 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좋은 사람 비율은 바뀌지 않았다. 옛날엔 상고, 공고 도 못갈 머리 가지고, 지잡대 억지로 나오고, 그것도 모잘라 지잡 대학원 나와서 석박사 학위 있다고 인재가 되나? 그런데 꼴에 학위가 있으니 기술배우긴 싫고, 힘든일 궂은일 하기 싫고, 지잡 대학원 나오면 벌써 30이 낼모래니 그 나이에 기술 배우긴 늦었고. 모든게 기득권탓, 사회탓, 부모탓, 남탓, 부자탓 이지.
저때 시험봤던 사람들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많은 신생아가 태어났던 때 사람들이라.. 어딜가나 경쟁률이 쎘었지. 71년도가 신생아 최고기록을 세운 해임. 대신 졸업후 취직은 잘되던 시절이라 어느정도 괜찮은 대학만 가면 취직은 보장되던 시절임. 근데 71년생으로 군대 현역 갔다오고 1년 휴학하고 졸업했으면 지옥의 IMF가 기다리던 때.
85학번이다...당시 학력고사를 100만명이 시험을 쳤는데...전국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 포함 대학 입학 정원이 25만명이였던 시절....수험생의 1/4만이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던 때...기억이 맞다면 4년제 대학은 15~6만명이 입학 정원이였다....그때는 대학을 가고 싶어도 75만명은 그냥 고졸....지금 50대 중에 3/4는 대학을 졸업하고 싶어도 못했던 시절....그런 때도 있었다....
저때는 대학을 못가면 사회낙오라는 분위기가 너무 강했음... 무쓰,웰라만 발라도 동네 이슈가 되기고 하고 대학이라는 곳은 한반에 20%도 못갔었으니.. 공무원은 정말 취업도 어려운 친구들이 조용히 입사하던 직장. 그래서 지금도 저 연배에 고졸들이 많은것.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일에 온 국민이 저러고 살았네... 내 주변에 명문대 나와서 장사하는 친구 ,.. 고졸인데 구청 고위공무원... 인생은 정말 끝까지 가봐야 알수 있음.
90입니다. 그땐 지원한 대학에 예비소집 때 가 보고 자기가 갈 과 강의실에서 시험 봤으니까 헤맬 일은 없었죠. 지원대학 근처에 사는 게 아닌 대부분 수험생은 여관에서 자고 시험치러 갔으니까요. 떨어지면 끝. 점수 맞춰 눈치 지원 원천봉쇄였으니까요. 89년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으로 어려워서 욕 엄청 먹고 90들이 쫄아서 하향지원 많이 했는데 90수학도 만만찮게 어려워서 재수 삼수생 양산됐죠. 암튼 동갑내기가 110만 명이던 시절에 하던 경쟁이니 동갑이 30만 명인 요즘과는 많이 달랐겠지요. 그래도 사교육 금지시절 마지막 세대라 금수저 논란은 없이 단순무식하게 노력만으로 경쟁했던 '요즘 세대가 원하는 공정'한 정글이었기도 하고.
펭돌이님 여기도 오셨다 가셨네요...ㅋㅋ 마지막 학력고사는 떨어지는게 이득임...94년 수능은 사상 처음수능으로 자리가 안잡혀서 어수선 할때이고 전무후무하게 수능을 2번봐서 8월수능이 비교적 쉽게 나오기도하고 학력고사식으로 무조건 때려외우는데 익숙한 재수생이 강세를 보였죠... 93학번 현역으로 붙은사람보다 떨어진사람이 오히려 몇단계 위의 대학을 가서 전화위복이 되었죠...ㅋㅋ 93 물학력고사 수석은 1개틀려서 339점
@@S몰슈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건 수능형 문제가 체질에 맞는 사람이었던 거죠 저는 수능 2번째 세대고 현직 입시학원 강사입니다 다 때려 외우는 건 학력고사에 맞았지 수능엔 전혀 안 통했습니다 지금이야 수능이 오래 되어 유형이나 패턴을 외울 수 있다지만 그 땐 생전 처음 보는 문제라 다음 모고엔 뭐가 나올지 학생도 선생도 입시학원 일타 강사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항상 수능형 문제를 접하지만 저 세대들은 고1 때 모의고사에서 학력고사형 문제 풀다가 (심지어 중간기말은 4지선다형이었음) 학교에서 예고도 없이 수능 실험평가를 접한 세대입니다 저는 95학번인데 고1 3월에 학력모의고사를 봤는데 갑자기 5월에 2학년 푸는 문제 너네도 풀어보라 해서 난생 처음 수능문제를 봤죠 당시 저는 내신 중하위라 전문대 각이었는데 수능문제가 의외로 잘 맞아 갑자기 전교 20등을 합니다 전 수능으로 바뀌어서 인서울 간 케이스죠 하지만 대부분은 수능으로 바뀌어서 적응을 못 해 재수를 포기했습니다 바보라서 재수를 포기한 게 아니죠 그 분들은 꿀을 빤게 아니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겁니다 그 분들이 대학을 잘 간 건 수능이 쉬워서가 아니고 전형이 바뀌어서 여러 군데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저희 학교 전교 1등은 내신은 3년 내내 1등인데 서울대 바라보고 있다가 수능 모의만 보면 망해서 성신여대를 갔죠 개충격 재수해서도 본고사로 이대 감 그 때 교과전형이 있었다면 서울대 갔겠지만 그 땐 내신만 보는 전형이 없었습니다 불쌍한 전교 1등ㅠㅠㅠ 문과에서 서울대 3명 갔는데 전부 전교 10위권 밖이었던 애들이라 학교가 뒤집어짐
@@jelee2065 제가 아는 어떤 전설적인 형님도 모의고사때 50%는 전국수석을 항상해서 전국수석감이다 했었는데 학력고사만가면 떨려서 실력이 안나오는 스타일이라 서울대법대 매번떨어지고 3수해서 후기로 성대 갔다는....하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문과에서 당시에는 후기대중엔 성대가 제일 높았죠...물론 좋은학교고요...ㅋ 반면 85학번 이미령님처럼 모의고사때도 항상 전국수석 해서 학력고사도 당시 여자로는 처음으로 전국수석 한 경우도 있고요~~~
!! 저게 공평해요? 그리워요?? 수험생입장은 하나도 배려안한 선지원후시험!! 성적잘나와도 잘못지원하면 재수, 삼수,, 저때 자살율이 어마어마했죠!! 제도간단히 바꾸면 수험생들 부담이 확줄어드는데 그걸 안해서 아이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줬던.. 그때의 아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뿌리깊은 불만이 쌓여서 지금 좌빨이 되었죠
저는 그것보다도 좋은것이 뭐냐면요. 물론 저같은 사람은 따지고 보면 우러러만 봐야하지만 진짜로 대학생다운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을 대학생으로 뽑는 것이 좋기는 좋더라고요. 저는 수능의 경계에 접어든 세대지만(76년생) 나중에 아파가지고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제일 수준이 낮은 전문대에 가기는 갔지만, 그곳에서 중고교시절에 뵈기싫은 것들을 또 만나야하고 또 기초적인 지식도 제대로 안갖춘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내심 답답하기 그지 없더라고요.
저희 사촌동생 한명이 그랬어요.^^ 그애는 정말 집이 가난했는데요. 그애는 항상 외가댁식구들끼리 만날 때마다 보면 공부할 책을 가져와서 항상 공부를 하더라고요. 그리고,이모댁에 갔는데 벽에 학력장이 다음에 올 때는 또 두서너개가 또 걸려져있어요. 그애 서울대학교 갔잖아요. 이모가 사는 댁이 좀 가난한 동네였고 이모랑 이숙이랑 공장에 다니셨어요. 한번 저한테 조카라고 용돈을 주시는데 탄을 만지고 받은 지폐인지 조금 검은것이 묻은 지폐를 주시더라고요.
6,70년대 중반까지는 돈이 없어 대학 못갔고 80년대 부터는 정말 어려운 집안 애들 빼고 다 인문계 갔다, 서울중학교 기준으로 고등학교도 고입 연합고사로 하위 25프로 거르고 시험봐서 들어가고 실업계중에 서울 인문계 보다 커트라인 높은 학교는 선린하고 덕수상고 밖에 없었음.그것도 10점 정도 약간 높았다. 88년도엔 80만명이 응시해서 18만명이 입학정원이였음. 90년대 말 부터 지방국립대 지명도 하락으로 인서울 중상위권은 지금이 더 들어가기 어렵지만 지금 본인 내신이 상위 25%이하라면 지금 대학가는게 다행인 줄 알아야 함.
저 시절에는 자식 한 명이 대학에 들어가면 마을잔치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제가 아는 이모님은 남편분과 한동네 친구였는데,남편분이 서울대학교 합격했다고 가문의 영광이자 마을의 자랑이라며 동네 입구에 현수막 걸고,이장님 운전하시는 경운기 타고 아예 읍내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였대요.
@@jaes2181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 당시 그만큼 대학들어가기가 힘들었다는 거에요.경운기 퍼레이드를 하건말건 그건 그 마을사람들 자유니까요!!그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청소년이 서울에서 날고 뛴다는 애들도 들어가기 힘든 서울대를 나왔으니 마을의 자긍심이 높을 수 밖에요.
@@captainjerry3098 뭐 자유이지요^^ 고등학생이 다른 친구들과의 입시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카퍼레이드?.그때 낙방한 대다수의 학생들의 박탈감을 생각하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학벌만능주의와 자기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 대한 반감?들이 느껴자는것이 사실이네요, 미국에서는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면 카퍼레이드하는것 같던데.. 카퍼레이드는 그 학생이 미래에 인류에 공헌을 하게되면 그때 하는것이 좋아보이는데요,그게 맞는 모습 모습아닐까요?
아빠가 84학번 영훈고 출신 중학교 다닐 적엔 본고사가 남아있다가, 사교육 조장이라 말이 많아서 전국통일 학력고사로 고1부로 바뀐 뒤에 갑작스럽게 학력고사 준비하셨어요. 고등학교 다닐 적엔 계속해서 전교 1등하시다, 한양대 의예과 가셨습니다. 전교 2등이 고려대 화공을 갔었습니다. 몇 점 부족한 탓에 종로학원 장학금 받으며 가지 못한게 지금도 아쉽다고 하세요. 집에 돈만 있었다면 재수해서 더 높은 학교 의대 가고 싶었다고 말하십니다. 이 때 당시에는 지금만큼 문항의 난이도가 낮은데 비해 과목의 수가 많고, 문이과 구별없이 사탐 과탐의 점수가 입시에 반영했기에 주먹구구식이였던 시험이였죠. 동일 학교에서 인턴, 레지던트 마치시고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현재는 신사에 있는 병원에서 성형외과 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Written by Seongho ] 선지원 후시험의 첫해라 담임샘은 한 명이라도 더 대학에 보낼려고 커트라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평균점수로 대학을 보내더군요. 부산대도 커트라인과 평균점수간의 갭이 십오점에서 많게는 이십점이 차이가 나더군요. 그래서 부산대 커트라인과 비슷한 점수대를 가진 애들이 동아대로 많이 하향지원했던 시기였죠. 이때가 동아대 전성기 시절임.... 선지원 후시험대 인 시절이.. 서울의 삼국대가 안부러웠던 시기인데..... 지금은 ㅠㅠㅠㅠㅠㅠ
저희 아버지가 전설의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이십니다 아빠말로는 지금이야 수학 가형 나형 선택 가능하고 제2외국어 선택하고 이과문과 가려서 쳤지만 그땐 걍 그런거 없이 봤다고..(74년생,93학번인... 고인물 아니 화석오브 화석 취급당하는 아빠를 둔 예비 25학번인 딸내미..
1993년에 대학교를 입학한 93학번이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고 94학번 부터 수능 시험으로 바꼈음; 제가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 ㅎㅎㅎ 당시에 반에서 1~5등 사이면 인서울대 갔었음;10~20등 이내는 전문대를 갔었고, 10등~20등 사이에 애들은 바로 공무원 시험 공부해서 바로 9급 합겼했음. 내 친구도 대학교 다 떨어지고 시험봐서 철도 공무원 9급에 20살에 바로 되는 바람에 공무원 됐음. ㅎㅎㅎ 대학교 다 떨어진 애들이 간 곳이 9급 공무원..지금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엔 그랬음
하... 저 때는 대학 선지원 후시험이라서... 전기대 한곳 지원해서 떨어지면 일부 후기대 가고, 나머지는 걍 재수하든, 대학 포기하든 했음. 지금 수시, 정시는 일단 여러 대학 동시지원 가능하니 어찌보면 옛날 보다는 기회 측면에서 훨씬 좋은 제도임. 지금 생각해보면 저때 선지원 후시험 대입은 너무 잔인했음.
아니 없었어 61년~72년도 연 100만명 태어나던 시절이라 80년대는 인구 포화상태였음 아르바이트 자리도 경쟁 치열했다 연 대학졸업 예정자가 15만명이였는데 대기업.중소기업 350여개업체 신규 체용자가 2~3만명 수준이였다 공장?사람 맨날 구했지 초.중졸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연장 야간해도 수당 없이 일부려먹었고 기본 저녁 8~10시 풀 연장시키고 월 15만원줬다
88년 . 쌍팔년 학력고사에 처음으로 주관식 출제되었지. 게다가 전.후기 직접 지원한 학교에서 또는 지정 근교 대학에서 시험을 봐야했고. 말 그대로 5명중 1명만 붙던 시절. 지금처럼 개나 소나 다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곧 인구 절벽이 오면 지방대 전문대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벗꽃 피는 순서대로 죽어 나간다던데...경쟁력 확보 또는 통 폐합이 답인데 얼마나 살아남을런지...
평가원은 30년 넘게 똑같네 말하는게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으면 평이하게 이해할 수 있는" ㅋㅋㅋㅋㅋ
우리나라 교육이 발전이없는이유ㅋㅋ
그래도 수능이 나음ㅋㅋㅋ 수시로 넘어가면 ㄹㅇ 개판 5분전임
@@junkim2018 왜?? 요??
@@즤산이 평가원이 하고 있는 수능 출제의 기준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수시보다는 훨씬 공정하고 공평하게 이루어지는게 정시임
@@즤산이 지방 똥통고 1등급 vs 서울 대원외고 6등급 누가 더 공부잘할거 같음?
당구를 300점이나 치니까 300점을 못받지 ㅅㅂ ㅋㅋㅋㅋ
ㄹㅇㅋㅋ
ㄹㅇ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6:12
저분 고3 아님ㅋ ㅋ ㅋ ㅋ ㅋ ㅋ ㅋㅋ ㅋ ㅋ ㅋ ㅋ ㅋ ㅋ 그 정도면 고1 때부터 살았다는 거 아님?
당구 300 ㅅㅂㅋㅋㅋㅋㅋㅋ
진짜 시험 치기 전에 원서 미리 넣는게 개 헬 ㅋㅋ 아니 어떻게 칠 줄 알고 미리 원서를 넣냐고.. 심지어 원서도 한개..
내신포함 전교등수로 갈대학을정해
원서사서 지원하고 학력고사를 봄
저땐 전기대1번 후기대1번
두번밖에 기회가없어서 내신도
체력장도진짜 중요했음
고등학교까지 학력고사 준비하다
수능으로바뀌어 난감했던기억이 ~^^
그건 점수에 맞춰서 원하지도 않는 대학에 갔다가 후회, 방황하지 말고 먼저 소신 껏 공부하고 싶은 대학, 전공을 정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야 합격하면 공부 열심히 하게 되고 다른 대학, 전공을 위한 반수생 없어진다고
물론 고등학생이 대학과 대학전공을 아는 게 없으니 이것도 큰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서 상남자들의 시대임 ㅋㅋㅋ 자신감이 넘치거나 아니면 도박을 하거나
저땐 원서비다 인지비다 해서 돈낭비 안할때지 만원도 안하던 원서랑 인지비가 어느순간 오만원 넘어간거 보고 뜨억했던...
지금의 6모9모처럼 학력고사 한달전쯤 모의고사 2번 보고 나온 점수로 대학 줄 쫙 그어서 거기썼음
"당구도 300점 치는데 300점 못 받겠냐"
ㅁㅊ 개 명언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llllllllllllllllllll6176 저때는 그랬나요? 요즘은 300점이면 그냥 개망한거 같은데
@@y_sou1 300점이면 수능 만점인데? ㅋㅋㅋ
작년에 딱 한 명 있었음
@@stella-n2k 국영수만 만점으로 보는건가요
국영수한국사 탐구2 해서 450만점인줄 알았는데
@@y_sou1 국수탐이요 영어는 절대평가라 점수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학교별로 다른 환산점수를 기준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300점 만점을 기준으로 말할땐 항상 국수탐입니다
진짜 수능 때 지원 여러 개로 할 수 있는 걸로 바뀐 게 신의 한수임
진짜 헬은 선지원, 후시험제도..
이때 똑똑한 사람들 지원 잘 못해서 와장창 탈락..
차피 3개임
연대랑 고대를 같이 못 쓰는데. 수시 6개가 한수지
ㅔ
학력고사 보기 이틀전에 얼굴도 모르는 동네 어떤 아주머니가 주신 합격 찹살떡이 생각나네. .
시험에 예민해 있어서 싸가지 없게 고맙다는 말도 안하고. . .
그 때는 동네 인심이 좋았는데. .
저도 찹쌀떡 동네에서 10개 이상 받았는데ㅎ 저희 오빤 재수해서 두 번 받는 바람에 엄마가 엄청 면목없어 하심 그래도 재수해서 붙어서 다행
이정환님 혹시 현직 수학교사신가요?
싸가지 없으셨네요
@@하이용-f8v
아닙니다
@@이정환-o6k 혹시 확통 가르치시나요?
학력고사 진짜 에바더라;울 엄마도 학력고사 치룬 시댄데 대학 원서 한군데만 넣을 수 있고 아무리 공부잘해도 그 한군데 떨어져서 전문대로 가는 애들도 많았다고;
그때는 재수라는게 없었나요?
@@NOGAMENOLlFE 있었겠죠 근데 집에서 지원 안하면 못가죠
전기대 후기대 전문대 3번 기회 있었어요. ㅋㅋ 근데 목표 하는대가 대충 있으니 대부분 재수했는데 좋은 학원가려면 또 시험 ㅋㅋㅋ
마즘.공부잘해도 그냥떨어지고 집안사정상 재수할자신없음 전문대가구 그랬더라구요.
재수는 죄수라는 관념이 지배하던 시대. 재수는 마지막까지 해봐도 안될 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절대적인 세대가 학력고사세대입니다.
5명중 1명이지만
인생 별거 없네
작은것에도 만족하고
건강하게 사는게 최고야
지금도 5명중 1명이예요
대학 안 가는 사람의 비율이요
@@서고동저 5명중 1명만 대학 갈 수 있다는 말인데요
80여만명 중에 전문대 포함해서
20만 정도 대학진학 했다는
@@whereishappiness 제가 대학 입학하는 년도에 대학 진학률이 85%
@@yousin-rf2el 지금도 대학다운 대학은 20%만 들어감 지잡이 개 많아서 그렇지
@@YO-1117 ㅇㅈ 수도권(서울 경기) + 지거국 아닌 이상 이상한 대학 개많음
0:53 예나 지금이나 멘트는 똑같네 ㅋㅋ
시이밬ㅋㅋㅋㅋㅋㅋㅋ
교육 공무원들 하나도 안 변함. 기가 차서
지나고 보니 그말 맞는 말임. 정상적인 학교수업을 받은 학생이라면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다. 그런데 정상적인 학교 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스카이 간다. 그럼 나머진 제대로 수업 안 받았냐? 그렇다. 중학교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제대로 집중해서 수업 들었다고 생각하냐? 그냥 시험 다가오면 문제 풀이만 냅다해서 요령만 터득했겠지. 그리고 시험을 치니깐 많이 풀어본 문제는 아는데 그렇지 않은 문제는 손도 못대지. 그러나 수업도 제대로 들으면서 교과서도 제대로 읽은 학생이라면 어떤식의 문제가 나와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기에 답을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내용 전체를 알고 있는 학생과 문제의 유형에 훈련이 되어 있는 학생의 차이지.
@@최해수-b2f 엄밀히 말하면 맞는말임.
그런데 수능을 풀려면 교과서 속의 깊은 의미를 알아야 하는데
공교육 센세 대부분은 그걸 설명해내지 못함.
오히려 강남대성 재수학원 수학 1타강사가 교과서로 수업하면서 재해석해주는데
이게 진짜 교과서 공부인가 했음.
근데 솔직히 이걸 학생들보고 스스로 하라는건 난 가혹해보임. 선생이 잘 가르쳐줘야지.
경험해보니까 딱 이생각나더라.
@@최해수-b2fㅋㅋㅋㅋㅋ 나이드신 쌤들 중에
수능 문제 못 푸는 쌤들이 훨씬 많아요
00:08 목소리 ㄹㅇ성우급이네
전형적인 서울사투리인듯
@@성이름-w2z9z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약간 로보트 태권브이 여주인공 목소리같음ㅋㅋㅋㅋㅋ
ㄹㅇ깜짝 놀랐음 혼자서 음질이라고 해야하나 소리울림이 다름ㅋㅋㅋㅋ
저도 80년대까지는 서울사투리 썼습니다
행길(찻길) 댕겨오다(다녀오다) 챙피하다 댄추(단추) 그지같다 그랬는데여~ 저랬는데여~ 다 어릴때 쓰던 말이었죠 근데 언제부터 그런 말을 안쓰게됬는지 모르겠네요
저때는 저게 서울말이라 생각하고 쓴거고 지금 서울말도 나중에들으면 서울사투리다 할것임 나는 지방사투리쓰는데 서울오래살면서 느낀건 옛날서울말에 지방사투리들이 조금씩 섞인게 지금말투 같아요 넣었어를 늫써~하는것도 글코
영상에 나온 세대가 이제는 수능을 보는 수험생 부모세대라니...
수능세대인 수험생 부모들도 이제 많음
나 올해 수험생인데 우리 엄마아빠 세대가 수능세대였음
아냐 군대 다녀오고 대학졸업시키고 장가보낼시기야
아 늦둥이 막내 혹은 37살 넘어 늦장가간 사람은 해당되겠다
아빠 학력고사 세대, 34에 결혼해서 나 고1임....
@@user-bb5lh5wm9j 굿 님은 연세대가야겠네
생판 모르는 수험생을 시험장에 데려다 준다... 지금보다는 여유로웠구만...
눈이 쳐높아진거지
지금도 저런 사람들 간혹있지 않나. 경찰들도 많이 도와주고 택시기사들도 간혹 도와주기도 함
그건 좋은알이자만 그럼 뭐 힘나서 성적 오른데요? 본질은...
@@jaes2181 수험생들 도와주잔 차원에서 그러는거지 뭐가 그리 베베꼬임 ㅋㅅㅋ
@@TrainXP 본질은 아이들이 받는 고통이죠 ... 어차피 5명중 2명만 붙는건데....차라리 그렇게 늦는애가 떨어지면 시간잘지킨 누군가는 대신 합격하겠죠....
학력고사= 교과서 내에서 나오기 때문에 공부만 열심히 하면 됨. 암기 잘하라는게 여기서 나옴.
수능시험= 정부에서 사교육 줄인다고 자꾸 내용이 줄어듬. 교과서에서 안 냄. 내용은 줄었는데, 문제는 내야할게 많음. 자연스레 난이도가 올라감.
수능이 나음
좁은 범위에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하니 난이도가 자꾸 올라가는 게 참... 어느 정도는 늘릴 필요도 있다 생각함
@@rtdks8359 취지만 그렇지, 실제 교육현장 가보세요. 수능 수학 4점짜리가 대학 가서 사고력 증진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말만 그렇지 현실과 동떨어졌습니다. 이미 대한민국 공교육이 무너진지 오래입니다. 수능 수학은 사교육 없이 이제 절대 못 풀어요.
@@반포별빛지기 ㄹㅇ 맞는 말이네용,,,
@@반포별빛지기 순진하게 공교육인 학교만 믿다가 좌절했던 학생들도 많이 봄... 공교육이 개판이니 사교육이 더 활성화될 수 밖에 ㅠㅠ
그냥 학교샘한테 수학문제 모고4점짜리 하나 물어봐도 답변이 하루종일 걸림,;
이걸 이시간이 올리는걸 보면 유튜브가 밤늦게까지 데이터베이스가 일을 한다는 뜻이겠짘ㅋㅋㅋ
@@그라우스가상국가 개소리야 ㅋㅋ 허경영이냐
@@그라우스가상국가 왕국ㅋㅋ
@@그라우스가상국가ㅅㅂㅋㅋㅋㅋㅋㅋㅋㅋ 왕국 ㅇㅈㄹ
이런 귀한 영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91년도에 학력고사 쳤는데 올해 우리 아들이 대입치뤘네요~ 학부모가 되고 보니 저 때 부모님 심정이 이랬구나 싶었어요... 우리 아들은 수능을 안쳐서 수능장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지만 이 영상 보고 감회가 새롭네요. 귀한 영상 정말 감사합니다.
너거아들은왜??
@@암행어사출두여 수시로 대학을 합격했나 봅니다
저 분 아들이 님 버릇 고쳐줄 예정임
80년대만의 특유 말투가 너무 좋음..
저때 당시 서울에서 쓰던 말투가 진짜 서울말투라고 서울에서만60년넘게 사신 할머니가 말씀하셨음.
@@jk-tl3ph ㄴㄴ 우리집이 한양 경성 서울 토박이인데 저거보다 더 나긋하고 북한말같음
@Soothing Rain Sounds
냐~로 끝나는 말투는 다 전라도 사투리임
@@팝송용계정-d4g 진짜냐?
2:54 와 고려대 정문뒤에 대운동장있던 시절이다
와 고려대구나 ㅋㅋㅋㅋㅋㅋ 대박
저건 저 뒤로도 한참 더 있었어요. 2000년대 들어 없어졌습니다.
2000년에 중앙광장 공사 시작하며 없앴을 겁니다
중앙광장 2002년도에 생겼어요
항상 느끼지만 부모가 똑똑해야 정보등이 빠르고 자식도 공부를 잘함
머리가 나쁘면 어거지로 지잡대 보내고, 지잡대학원 보내고, 유학(이라고 쓰고 어학연수라고 읽는다) 했다고 고급 인력이 되는게 아니다.
고등 교육도 머라가 좋은 애들 한테나 시켜야 하는거지.
한국인들의 착각은 아무나 고등교육 받으면 인재가 된다고 생각하는것이지.
@@davidjacobs8558 그런경우도 있겠지만 드물죠
진짜요.. 확실히 전교권에서 노는 애들 보면 부모님 직업이 의사시거나 교수이신 분들이 많음
유전자때문이다 뭐다 이런게 아니라 애초에 공부 잘하는 부모님은 어떤 지원과 과정이 있어야 공부를 잘할수있는지 본인이 겪어봐서아니깐 다른부모들보다 자식교육에 보다 효율적으로 할수있는거같음 물론 당연히 예외는항상잇고
그리고 노력하는것도 타고나는것임
머리 좋아도 노력 안하는 아니 못하는거임
7:28 7:28 이때부터 OMR 자동화처리 시스템이 있었다는게 놀랍네요!! 헐..
0:04 무싸트(특별과정)
ㅋㅋㅋ
ㅌㅌㅋㅋㅋ
무쏴트!!!!! 임마예~~
ㅋㅋㅋ
신기하네 80년대 하면 엄청 옛날처럼 느껴지는데 막상 저 시절 수험생들 보니 지금이랑 다를 거 없구나
12:30 *30년이지나도 바뀌지않는구나*
6:31 미남이시네...
저분도 이제 애아빠 되셨겠지?
어디가?
잘생긴 강성태
@@원-i7m 거의 40년 전인데 환갑 아닐까?
“많이 먹어요~” 하는사람 목소리 광희같음
제가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습니다. 고사장으로 가는 그 추운 겨울만큼 시험에 대한 두려움으로 더 춥게 느껴졌던 그때가 생각납니다.
그날 엄청 추웠어요.
이제는 이분들 자식들이 수능을 보겠네
그게 접니다.. 현역 고3 ㅠ
벌써 봤음 대학생임ㅋ
벌써보고 서른살..
그게나다
93학번인 제가 학력고사 마지막 이었습니다.
94학번부터 완전 바뀌어 다들 하향지원 하는 분위기였더랬죠.
중고등학교 동안 스트레스 최고로 받으며 공부 밖에 안했지만
살아보니.....그저 대학은 일부이더이다...성적=행복이 절대 아닌데..
저희 엄마가 74년생이라 아마 마지막세대일거에요ㅎㅎ 엄마는 고1부터 그동안 놀던거 치우고 공부해서 교대가서 지금 교사하고 있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성적표는 성적순대로 나옴ㅋ
그리고 당시에 영화 주인공이던 이미연도 합격했고~
당시 유행어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잖아요!"답변은"그래 전부는 아니고 단 99%를 차지할뿐이다."ㅋㅋ
전부는 아니지만 애티튜드는 배워 두는게
동갑이라 반갑네요 ㅎ
75년생이 수능 1세대 입니다
수능세대라 잘은 모르는 학력고사인데
이랬군요 ㅎㅎ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저는 수능세대의 경계를 넘은 세대입니다.(92년도에 고교입학)
그리고,우리 1년선배들이 수능을 처음 봤어요. 첫해는 상반기와 하반기
두번 봤어요. 그리고,우리형이 학력고사 마지막세대입니다.(74년생)
4지 선다형이고 주관식도 있었고 ᆢ 풀이과정 도 제출하래네요
수험생이 120만명 사립대는 지금의 반수준 대학정원 35만명시절 ㅋㅋㅋㅋ 이때는 대학만가도 성공한다하긴 했음
어떻게 보면 저게 맞는거지... 명문대 빼면 지금은 개나소나 대학가고있고
@@내가누굴까나 그러게 공부랑 안맞는애들 괜히 잡아서 학비 뜯기고 시간 낭비하고 짠하다 짠해
어차피 저출산으로 부실대학 정리됨
와 이름만 봐도 연세가 있으신거 같다
@@더워덥다-i8s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금은 고등학교나 중학교에서 같은 지역끼리 모여 보지만, 학력고사때는 지원한 대학에서 시험봄.
일본의 센터시험이랑 비슷하네요
그럼 한 대학만 지원하는 거에요.? 와우..
와 ㅋㅋㅋ ㄹㅇ ㅎㄷㄷ이네
그건 후시험으로 바뀐 88이후 그전 중고에서 치름
87까지는 중고등에서 치뤘음. 88학번부터 지원한 대학에 가서 쳤고.
마지막 학력고사 시대 수험표 붙히고 시험보러 간생각이 난다 전날 근처에서 숙식하고 다음날 시험보고 부모님이사주신 짜장면먹었던 아련한 추억.
음74년 범띠구나 ,
공부만 잘한다고 대학 갈 수 있는 시대가 아녔음ㅠ 울 엄마아빠 둘 다 어렸을 때부터 넘 가난해서 어쩔 수 없이 졸업하고 바로 취직하셨어요ㅠ 본인보다 공부 못했던 애들이 명문대 가는 거 보고 부러우셨대요ㅠ 평범한 사람들이나 학력고사 보고 대학 갔지.. 스무살 되자마자 돈부터 벌어야 했던 분들도 많았을 것.. 근데 더 어이없는 건 난 대학도 갔는데 취업을 못 함
저당시에는 수시같은것도 없어서 더욱더 긴장되는 날이었겠네요 ㅎㄷㄷ
게다가 저 당시에는 원서를 한곳만 쓸수있었다고 하죠 ㅋㅋ
@@양명준-k8q 심지어 선 지원, 후 시험
그래가지구 공부잘하는 학생들이 대학 떨어질까봐 낮은데 써가지고 공부 좀 못하는 학생이 명문대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죠.
@@ddggj1889 그렇다고 하염없이 하향지원하지는 않고 10월달에 배치고사를 6~7차례 본후 평균내서 지원했죠. 내신 등급당 2점차여서 내신은 안좋은데 배치점수가 높은 경우는 하향해야만 했죠
저당시는 진짜단하루 단판승부였죠
6:32 그와중에 잘생기셨군요...🤔
지금은 못해도 50대 중반......
근데 저 분은 80년대 외모가 아닌데 현재 모습은 어떨지 몰라도 저 모습 그대로 2021 수능장 들어가도 그닥 촌스럽지 않음
@양다여잉 하지만 그 한명은 이미 여친이 있는게 현실
가뭄에 홍수나듯 있는 여자랑 사귀지ㅋㅋㅋㅋㅋㅋㅋㅠ
ㄹㅇ 나만 돌려본게 아니구나...
울아빠가 이렇게 봤겠구나...
2021학년도 수험생: 코로나로 교문앞에서 후배들 배웅 못받으며..수험실 도착.....
점심시간:혼자서 고독하게 먹음
앞에서 북치고 시끄럽게 하는것보다 훨씬 낫던데
ㅆㅇㅈ
오히려 응원 안해주는게 더 낫지않나요 ㅋㅋㅋㅋㅋ 괜히 더긴장되던데
@@박세희-h4y 맞아요ㅋㅋ 전 오히려 중요한 시험일수록 감정이입하는건 악영향이 있다고 봅니다ㅋ
원래 수능 때 점심은 혼자 먹는 게 더 낫지 않나
옛날 영상을 보니 시대를 아울러 미우나 고우나 자식을 향한 걱정과 사랑은 매한가지네요 참 그 어느때보다 불편하고 어려운 시대였을 저 시간을 견뎌낸 세대들이 대단하기만 합니다
80년대가 왜 불편하고 어려워?
@@davidjacobs8558 니들은 전두환을 모른다ㅎ
그래도 열심히 저축함 집한채는 살수있었을 때.
@@ytigerswan 저때도 집 비싸다고 월급 몇십년을 모아아 살수 있다고 늘 그랬어요
은행이자가 좋았던거지 집이 싼게 아녔음
89학번입니다. 당시 대입입시는 선지원 후시험이라, 본인이 지망했던 대학교에서 시험을 봤었죠. 당시 수학이 예년보다 유독 어려웠던 기억이 나네요.
엊그제같이 생생한데 벌써 33년 전이네요 ^^;
저랑 동갑이네요 ㅎㅎㅎㅎ ..전 89년도 시험에 떨어지고 다음해 합격
@TH-cam TH-cam 오히려 90년도 수학이 더 어려웠어요..이제는 중년입니다 ㅎㅎㅎ
88년도는 주관식이 처음 도입되었고 89학번은 수학이 어려웠고 90학번도 수학이 어려웠죠. 제가 88학번이라서 대충 그렇게 알고있습니다
수학 올림피아드에서 북한이 남한보다 성적이 좋자 89~91 3년 수학 난이도가 지옥으로 갔죠.
@@유성상-d1p그랬구나 모의고사 보다 너무어러위서
깜짝 놀랐었습니다
교과서 수준으로 어림없었지
국사나 사회에서도 듣도보도 못한
대학수준 문제나왔는데
방송 앞대가리 교수
무슨 말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나
이제 저기 나온 수험생들이 다들 50대가 되었겠네요. 어떤 분은 또 수험생의 부모님이 되어 있을 것이고, 어떤 분은 자신을 뒤에서 응원하던 부모님처럼 몸에 나이가 표시되기 시작했겠어요. 혹시나 예전 화면 속에서 부모님이 자신이 시험 치는 동안 열심히 기도 올리던 영상을 확인한다면 또 얼마나 마음이 미어질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때는 몰랐던, 어쩌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부모님의 헌신. 비록 수능 세대지만 똑같이 젊음을 넘어 중년이 되 가는 시절에 그 때는 몰랐던 부모님의 마음과 사랑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영상 감사합니다.
네, 50대 중반이 되어버렸네요ㅠㅠ
저때에도 대중교통은 갖춰져 있었지만 지금보다 수송량이 낮아 출퇴근은 항상 대중교통이 만원이었음. 그런데 한번에 백만명에 가까운 수험생이 단 하루에 시험을 봤기 때문에 당일 대중교통 이용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음. 늦지 않을거라고 판단하고 버스타러 나왔다가 오는 버스마다 전부 만원이라 한 시간씩 기다렸다는 일화들이 수두룩함. 지금처럼 마을버스가 있던 것도 아니어서 정류장에서 고사장이 멀어 한참 걸어야 하는 일도 많았음.
지금은 다 대학 붙어도, 훗날 학위증이 제 가치를 못하는 곳만 5곳 중에 4곳이라 변한 거 없는 게 현실.
대학 진학률 1위 든든하네요
@@천지운-s1g k-대학
@@천지운-s1g ㅋㅋ
5명중에 4명이 떨어졌다면, 20%만 대학 갔다는 소리고, 지금은 80%가 대학을 간다.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좋은 사람 비율은 바뀌지 않았다.
옛날엔 상고, 공고 도 못갈 머리 가지고, 지잡대 억지로 나오고, 그것도 모잘라 지잡 대학원 나와서 석박사 학위 있다고 인재가 되나?
그런데 꼴에 학위가 있으니 기술배우긴 싫고, 힘든일 궂은일 하기 싫고, 지잡 대학원 나오면 벌써 30이 낼모래니 그 나이에 기술 배우긴 늦었고. 모든게 기득권탓, 사회탓, 부모탓, 남탓, 부자탓 이지.
친구 본거 같음 ㅋㅋㅋ 30년이 넘었는데도 이런 영상보면 떨리네 ㅋㅋ진짜 너무 너무 경쟁이 치열했던 88,89,90학번 베이비붐 세대 ㅠㅠ
70년생들도 베이비붐세대인가요?
60년생들이 베이비붐세대아닌가요?
@@인디-y8z 원래 전후세대가 베이비붐 세대인데 저희때 애들이 너무 많아 베이비붐이라했어요. ㅋ 지금도 젤 많대요. 저 나잇대가..ㅠ 참고로 저 영상에 나온사람 제 친구라네요 ㅋㅋㅋㅋ
@@인디-y8z 70년 71년에 신생아수가 제일 많을거에요
50년대중후반~60년대 중반생 1차 베이비붐세대
60년대후반~70년대초중반생 2차 베이비붐세대
이 2차베이비붐 세대들이 경쟁률 제일 심할때 입시한 세대에요
@@인디-y8z 71년생 까지 베이비붐 세대입니다. 71년생이 100만명 애들이 넘 많다고 그후론 정부가 하나만 낳자고 산아제한 해서 출생아 수가 줄어들었슴 오늘날은 넘 줄어서 지방대들은 미달
@@sanglee7877 맞습니다. 88~91학번인 69~71년 생이 제일 많죠. 중학교 한반에 80명 였던 시절
진짜 대박이였던건 아빠랑 엄마랑 4살 차이가 나는데 아빠는 학력고사 세대고 엄마는 수능 세대다... 뭐여.....
아버지가 50대고 어머니가 40대면 가능
74까지가 학력고사 75부터 수능세대임
즉 48세까지가 학력 46세이하로 수능
우리집도 이럼
그건 한 살 차이만 나도 가능하죠 심지어 하루 차이도 가능함 나이 똑같아도 한 분이 빠른 생일이면 가능 (당시엔 빠른 생일이 1월생부터 3월 4일까지였음) 75년 3월 4일생이면 학력고사 세대 75년 3월 5일 이후면 수능세대임
어머님이 젊으시네요
94학번이시면 어떤 학교 나오셨는지 모르겠지만 수능 두번에 본고사도 보셨을 수도 있어요. 상위권 대학일수록 본고사에서 당락이 갈렸죠.
선시험 후지원 시절이라 학력고사 치고나면 12 월달부터 완전 자유였죠! ㅎㅎ 그때 두어달이 재일 재밌었던 시절 같음!
선지원 후시험 아닌가요
@@꽃처자 선 시험 후 지원(1982~1987학년도)
선 지원 후 시험(1988~1993학년도) 로 변동 된 바 있습니다
전기대 후기대
학력고사는 선지원 후시험이며 시험날이 보통 12월 중순경 이었죠, 수능으로 잘못 알고 계시네요~
87학번이라 시험치고 받은 점수로 지원했습니당
80년대 대학진학률이 35%남짓이라지만 N수생, 전문대 제외하면 현역으로 4년제 가는건 지금으로선 모의평가 2등급 이상의 능력을 지녀야 가능한 일
ㅇㅈ
그러니까요 전 학원강산데 입시생 100만이었다면 안 믿는 애들ㅋㅋㅋ
울 아빠가 공부잘했구나
ㄹㅇ??? 난 밥벌어먹기 힘든 세대라 대학 다 안가는줄 알았는데
@@GEORGES-ROSSI 10프로 인서울 못 했는데요 당시 인서울은 5만이고 전국 4년제 15만 응시새은 재수생 포함 100만이었습니다 5프로 안에 들어야 인서울이었습니다
80년대 초반 학번들은 2년제 전문대 포함해서 60명 중 15~16명 진학했었습니다.
체력장 20점 합쳐 340만점 이었는데... 268점 맞고 부산대 국문과 갔었죠... 저땐 만점은 거의 안나왔고 300 넘으면 서울대 갔었죠
아니 근데 궁금한게 문제 평가원들이 지금까지 이번시험 어려워용~~ 이랬던적 있음? 맨날 평이하게 냈다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받은 사람은 이해하는데 크게 문제 없을것 뭐 맨날 이러지 않나
제작년 수능 평가원장 사과했잖음 어렵게 내서 죄송하다고
립서비스로 걸러듣는게 좋아요
2009년에 한 번 그랬음. 그때 재수생들이 워낙 몰려가지고 평가원장이 수능 전 날에 인터뷰에서 수능난이도 높혀서 최상위권 변별하겠다고 직접 밝힌적 있음
@@twice768 그때도 언론들은 국어 쉽다고했음ㅋㅋㅋ
정상적으로 받은 사람이면 이해하는게 정상인게 맞는데?
저때는 5명중 4명이 낙방.....지금은 5명중 4명이 대학생
저때 시험봤던 사람들이 한반도 역사상 가장 많은 신생아가 태어났던 때 사람들이라..
어딜가나 경쟁률이 쎘었지. 71년도가 신생아 최고기록을 세운 해임.
대신 졸업후 취직은 잘되던 시절이라 어느정도 괜찮은 대학만 가면 취직은 보장되던 시절임.
근데 71년생으로 군대 현역 갔다오고 1년 휴학하고 졸업했으면 지옥의 IMF가 기다리던 때.
글쵸 91학번 IMF 학번 대학은 제일 힘들게 들어왔는데 졸업후 IMF 와서 취업 힘들었슴
요즘 젊은 사람들이 보는 수준 보다는 훨씬 쉬웠지만 정말로 어떻게 공부 하는지 방법을 몰라서 무조건 사당오락을 외치며 엉덩이 싸움 하던 시절.. 그래도 낭만 있었어..
으이그, 낭만이라고요 .어떻게 공부하는지 안알려주고 고생만 시킨 기성세대들이 , 뭐 좋은가요? 암튼 우리나람 사람들 참 감성적이네요,
사당오락이 네시간 자면 합격이고 다섯시간 자면 불합격인가요?
@@평가원장과탭댄스 ㅇㅇ
@@jaes2181 거,,,, 낭만이 없으시네..... 씨잇팔...
추억이 미화된거임
저 당시 반에서 60명중에 20등 안에 못들면 대학 갈 생각하지 말라던 선생님 말씀 생각나네요. 저땐 지원자 대비 대학정원이 엄청 적었던 때
그건 서울등 대도시 야기고 시골 학교선 한반서 잘해야 2~3명 사년제 갔습니다.
저때 하향지원도 많이 했죠... 선생님이 합격률 높이려고 그렇게 강권도 했고... 성균관대학이 후기였나 그랬어요...
황교안 박병석 성대
서울대 떨어지면 성대가야했고 연고대낮은 과 지원해서 떨어지면 성대도 불안했고 외대가야했음.
성대가 후기 명문
애들 수능치는걸 옆에서 찍고있네ㅋㅋㅋ
학생인권이 바닥이던 시절이죠…
지금이었으면 인권 문제로 털릴텐데 시대가 많이 좋아짐 저 당시엔 진짜 급 성장하고 미개한 사람들이 많아서 저게 당연시 되었었지만
차라리 이때가 더 공정했지... 지금 처럼 부모가 스펙을 만들어주는 시대에 비하면
아빠 엄마!! 수고했어!!
학력고사로 서울대가신 우리아빠 존경합니다.....
89학번인데, 당시 우리 반 학생 숫자가 60명. 이 중에 4년제 대학교 진학한 숫자가 15명 정도. 2년제 전문대까지 포함해도 30명이 채 안 되었죠.
85학번이다...당시 학력고사를 100만명이 시험을 쳤는데...전국 4년제 대학과 2년제 전문대학 포함 대학 입학 정원이 25만명이였던 시절....수험생의 1/4만이 대학에 들어 갈 수 있었던 때...기억이 맞다면 4년제 대학은 15~6만명이 입학 정원이였다....그때는 대학을 가고 싶어도 75만명은 그냥 고졸....지금 50대 중에 3/4는 대학을 졸업하고 싶어도 못했던 시절....그런 때도 있었다....
헉....ㄷㄷ
저희아빠 동년배시네요
이때 대학졸업자가 입학생보다 적었죠 들어가고도 졸업하기 힘든..
그 사년제 대학중 알아주는 전기대는 얼마 않되었죠. 재수 않고 명문 전기대 한번에 합격하면 집안의 경사 였슴.
85는 백만까지는 안 갔어요....
그리고 졸업 정원제로 정원이 늘어서 88~92보단 쉬웠죠.
100만명이 시험 보던 때가 90학번
거의 100만에 가까웠던 89학번
여튼 89~91학번 이 3년이 역대 가장 수험생이 많았던 시기였음.
그리고 학력고사에서 수학이 정말 어려웠던 특징이 있었음.
으허헝 후기대 셤 ㆍ전문대 셤이 있었죠
@@candykrith1232 저땐 전문대도 몾들어간 애들 있어죠?
@@sjwon 4년제 전문대 다 합쳐서 들어가는게 전체에서 30% 입니다.
진정 그대들이 고삐리란 말이오?
공무원 시험보는 분들인줄
옛날 30대들 영상에 옛날엔 썬크림 안 발라서 노안이다 그랬는데 그건아니군요
그냥 학생들부터..
@@안녕-d6e7m 어렸을때부터 전혀 피부관리를 안했을테니 ㅋㅋ
요즘은 신체나이가 예전에 비해 젊어졌다 그러더라고요
ㅋㅋㅋㅋ
씨그라운드 왕국공식채널 Seaground Kingdom 아무도 관심 안 주는 거 개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때는 대학을 못가면 사회낙오라는 분위기가 너무 강했음... 무쓰,웰라만 발라도 동네 이슈가 되기고 하고
대학이라는 곳은 한반에 20%도 못갔었으니.. 공무원은 정말 취업도 어려운 친구들이 조용히 입사하던 직장.
그래서 지금도 저 연배에 고졸들이 많은것.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일에 온 국민이 저러고 살았네...
내 주변에 명문대 나와서 장사하는 친구 ,.. 고졸인데 구청 고위공무원...
인생은 정말 끝까지 가봐야 알수 있음.
약간 지금으로 따지면 지방대가면 사회 낙오자 된다는거랑 비슷하갰네요.
글쵸, 님말대로 저때 취업도 못한 애들이 들어갔던 공무원 지금 인생의 승자. 명문대 갔던 애들중 상당수는 IMF 때 짤려서 장사하다가 망해서 기초수급자로 사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거보면 인생은 불공평 운이 좋아야 함.
@@__sizeof__ 대학 떨어지면 전문대 갔죠.
정말 그때 공무원은 낙오자나 가는곳이었는데
그때 사람들이 지금 고졸로 시청 도청 국장하고 있고, 더 시골가면 말도 못함 ㅋㅋ
거의 전쟁수준이었던걸로 기억남
지금이야 어디든?.갈수있지만
저땐 떨어지면 기약이..우리언니90학번이었는데 합격자발표하는날 끙끙앓던기억이17대1이었던가.근데 그게쎈게아니었어,.100 만이봤던..
진짜 그때대학갔던사람들이나 떨어진사람들 다너무 빡쎈시대
88학번들은 믿기지 않겠지만 선지원, 후시험이고 공식 점수도 안 알려줬어요, 저때 못살아도 과외없이 부모에게 부담안주고 공부 잘했던 애들이 너무 많았는데 지금 계급이동이 거의 불가능하고 좋은 직업, 학벌은 세습되는데 민주화는 무슨 개뿔...
옜날 군사정권 욕하다가도 과외불법정책은 고마워하신 어른들 많으신데, 사실은 그때도 고관대작의 자녀들은 다 몰래과외 했었고 잡히지만 않았던것. 그냥 일반인들끼리 과외비용 들이지 않았기에 대체적으로 호응받았을 뿐입니다.
@@JuanGarcia-bz8zx 팩트는 당시에는 개천에서 용나는게 가능했었던 시절이죠.. 2000년 초반까지만 해도 그게 가능했는데 이젠 불가능이죠 거의
흙수저들은 천자문 외우기식 공부하는 학력고사가 수능보다 할만함
과외했는데...초등학교때 과외 금지였는데 학교 담임 선생님이 과외했었어
4명 선생님 자취방에서
우리반만 그런줄알았는데
아니더만..
@@dxdy1903 ㅇㅇ 노무현때부터 사다리없앴지
90입니다. 그땐 지원한 대학에 예비소집 때 가 보고 자기가 갈 과 강의실에서 시험 봤으니까 헤맬 일은 없었죠. 지원대학 근처에 사는 게 아닌 대부분 수험생은 여관에서 자고 시험치러 갔으니까요. 떨어지면 끝. 점수 맞춰 눈치 지원 원천봉쇄였으니까요. 89년 수학 올림피아드 수준으로 어려워서 욕 엄청 먹고 90들이 쫄아서 하향지원 많이 했는데 90수학도 만만찮게 어려워서 재수 삼수생 양산됐죠. 암튼 동갑내기가 110만 명이던 시절에 하던 경쟁이니 동갑이 30만 명인 요즘과는 많이 달랐겠지요. 그래도 사교육 금지시절 마지막 세대라 금수저 논란은 없이 단순무식하게 노력만으로 경쟁했던 '요즘 세대가 원하는 공정'한 정글이었기도 하고.
이모가 80년대에 대학입학셤쳤는데
전문대합격했어요 근데 형편이 안되서
못가구 결혼후 딴 전문대 다니고 졸업햇어요
외가가 잘살앗으나 식구가 많았구
(엄마동생들중 학생이 둘,엄마할머니도 계심/총5식구) 시골에는 현금이 귀햇던시절이라 공부잘해도 대학접은분 꽤되십니다 인간극장에도 어느 주부분도 결혼후 통신대졸업하신거 방송나왓구요
맞습니다. 사촌누님도 워낙 가난해서 시험만 보고싶다 했는데 그시절에 경북대 붙었지만
돈이 없어 못갔지요. ㅜ ㅜ
@@쇠돌이-p5h 사촌누님께서 맘고생
많으셨겠어요 ㅜ 경대합격정도면 취직은 잘하셨는지 제가 고3때(2002) 경대갈 실력되면 대학안가고 은행에 입사하는 경우도 종종있었거덩요(낮은 취업률시작으로요 ㅠ)
수능 본지도 꽤 오래 전인데 이거 보고 괜히 울컥하네요 마지막에 대학이 전부는 아니란 말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는 말도..
88년도 입시는 교통 대란으로 난 구기터널에서부터 한시간정도 뛰었던거 같다. 1교시 시작 한참후에 도착.. 후기대학에 다시 시험보고 들어갔던... 대학이 뭐라고..
마지막 학력고사 본 사람입니다. 문제가 너무 쉬워사 망한. ㅠㅠ 전 오히려 문제가 어려워야 등수가 오르는 타입이었거든요.
물수능보단 불수능이 나은 것과 같네요...
펭돌이님 여기도 오셨다 가셨네요...ㅋㅋ 마지막 학력고사는 떨어지는게 이득임...94년 수능은 사상 처음수능으로 자리가 안잡혀서 어수선 할때이고 전무후무하게 수능을 2번봐서 8월수능이 비교적 쉽게 나오기도하고 학력고사식으로 무조건 때려외우는데 익숙한 재수생이 강세를 보였죠... 93학번 현역으로 붙은사람보다 떨어진사람이 오히려 몇단계 위의 대학을 가서 전화위복이 되었죠...ㅋㅋ 93 물학력고사 수석은 1개틀려서 339점
@@S몰슈 그런 사람도 있지만 그건 수능형 문제가 체질에 맞는 사람이었던 거죠 저는 수능 2번째 세대고 현직 입시학원 강사입니다 다 때려 외우는 건 학력고사에 맞았지 수능엔 전혀 안 통했습니다 지금이야 수능이 오래 되어 유형이나 패턴을 외울 수 있다지만 그 땐 생전 처음 보는 문제라 다음 모고엔 뭐가 나올지 학생도 선생도 입시학원 일타 강사도 몰랐습니다 지금은 항상 수능형 문제를 접하지만 저 세대들은 고1 때 모의고사에서 학력고사형 문제 풀다가 (심지어 중간기말은 4지선다형이었음) 학교에서 예고도 없이 수능 실험평가를 접한 세대입니다 저는 95학번인데 고1 3월에 학력모의고사를 봤는데 갑자기 5월에 2학년 푸는 문제 너네도 풀어보라 해서 난생 처음 수능문제를 봤죠 당시 저는 내신 중하위라 전문대 각이었는데 수능문제가 의외로 잘 맞아 갑자기 전교 20등을 합니다 전 수능으로 바뀌어서 인서울 간 케이스죠 하지만 대부분은 수능으로 바뀌어서 적응을 못 해 재수를 포기했습니다 바보라서 재수를 포기한 게 아니죠 그 분들은 꿀을 빤게 아니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겁니다 그 분들이 대학을 잘 간 건 수능이 쉬워서가 아니고 전형이 바뀌어서 여러 군데 지원이 가능했기 때문이죠 저희 학교 전교 1등은 내신은 3년 내내 1등인데 서울대 바라보고 있다가 수능 모의만 보면 망해서 성신여대를 갔죠 개충격 재수해서도 본고사로 이대 감 그 때 교과전형이
있었다면 서울대 갔겠지만 그 땐 내신만 보는 전형이 없었습니다 불쌍한 전교 1등ㅠㅠㅠ 문과에서 서울대 3명 갔는데 전부 전교 10위권 밖이었던 애들이라 학교가 뒤집어짐
@@jelee2065 예 저보다야 JE LEE님이 수능에 대해 잘알테니 JE LEE님말이 맞겠죠... 저야 몇몇 케이스로 일반화시킬수 없지만 기억나는친구중에 고대 토목환경공 떨어지고 서울대 금속공붙고, 요즘말로 건동홍 수준이던 친구들이 고대기계공,한양대 공대 특차로 붙고...호서대떨어진친구도 광운대가고 등등 재수학원다니는 애들 말로 "야 공부안해도 다맞어..모의지원 서울대써서 붙었어 " 이말했던 친구는 전문대 갔구나....ㅋㅋ 하여튼 저야 수능을 모르지만 대부분친구가 그렇게 갔고 93에서 94로 넘어가는 첫수능은 그이후의 수능과는 또다른 뭔가가있어서 그친구들이 피나는 노력했을수도있지만 그런케이스만 많이보다보니 제가 지나가는말로 한것임..ㅋㅋㅋ
@@jelee2065 제가 아는 어떤 전설적인 형님도 모의고사때 50%는 전국수석을 항상해서 전국수석감이다 했었는데 학력고사만가면 떨려서 실력이 안나오는 스타일이라 서울대법대 매번떨어지고 3수해서 후기로 성대 갔다는....하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문과에서 당시에는 후기대중엔 성대가 제일 높았죠...물론 좋은학교고요...ㅋ 반면 85학번 이미령님처럼 모의고사때도 항상 전국수석 해서 학력고사도 당시 여자로는 처음으로 전국수석 한 경우도 있고요~~~
지금보다 낭만과 멋 그리고 정이 있어보인다
강한자만이 살아남았던 80년대 감성이 좋음
학력고사가 공평했다.... 가난한 집 아이도 서울대를 갈 수 있던 시절이었다...
!! 저게 공평해요? 그리워요?? 수험생입장은 하나도 배려안한 선지원후시험!! 성적잘나와도 잘못지원하면 재수, 삼수,, 저때 자살율이 어마어마했죠!! 제도간단히 바꾸면 수험생들 부담이 확줄어드는데 그걸 안해서 아이들에게 일부러 고통을 줬던.. 그때의 아이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뿌리깊은 불만이 쌓여서 지금 좌빨이 되었죠
ㄴㄴ수능이 젤 공평하고 좋은 시험임 학력고사는 당연히 수시 학종보다야 공평하긴한데 시험 수준이 시대에 걸맞지 않음 최근 수능이 진짜 좋은 시험
저는 그것보다도 좋은것이 뭐냐면요. 물론 저같은 사람은 따지고 보면 우러러만 봐야하지만
진짜로 대학생다운 지식과 교양을 갖춘 사람을 대학생으로 뽑는 것이 좋기는 좋더라고요.
저는 수능의 경계에 접어든 세대지만(76년생)
나중에 아파가지고 공부를 제대로 못해서 제일 수준이 낮은 전문대에 가기는 갔지만,
그곳에서 중고교시절에 뵈기싫은 것들을 또 만나야하고 또 기초적인 지식도 제대로
안갖춘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정말 내심 답답하기 그지 없더라고요.
저희 사촌동생 한명이 그랬어요.^^ 그애는 정말 집이 가난했는데요.
그애는 항상 외가댁식구들끼리 만날 때마다 보면 공부할 책을 가져와서
항상 공부를 하더라고요. 그리고,이모댁에 갔는데 벽에 학력장이 다음에
올 때는 또 두서너개가 또 걸려져있어요. 그애 서울대학교 갔잖아요.
이모가 사는 댁이 좀 가난한 동네였고 이모랑 이숙이랑 공장에 다니셨어요.
한번 저한테 조카라고 용돈을 주시는데 탄을 만지고 받은 지폐인지 조금
검은것이 묻은 지폐를 주시더라고요.
@@나요-t3g 수능 과학탐구 꼬라지 보면 상대적으로 좋긴하지만 절대적으로 아주 좋진 않은듯..
6,70년대 중반까지는 돈이 없어 대학 못갔고 80년대 부터는 정말 어려운 집안 애들 빼고 다 인문계 갔다, 서울중학교 기준으로 고등학교도 고입 연합고사로 하위 25프로 거르고 시험봐서 들어가고 실업계중에 서울 인문계 보다 커트라인 높은 학교는 선린하고 덕수상고 밖에 없었음.그것도 10점 정도 약간 높았다. 88년도엔 80만명이 응시해서 18만명이 입학정원이였음. 90년대 말 부터 지방국립대 지명도 하락으로 인서울 중상위권은 지금이 더 들어가기 어렵지만 지금 본인 내신이 상위 25%이하라면 지금 대학가는게 다행인 줄 알아야 함.
91년도 응시생 재수, 삼수 포함 100만명. 4년재 입학정원 145,000명, 2년재포함 18만 이었음.
93년 마지막 학력고사... 응시인원 98만명 4년제대학 입학생수 20만명
근데 당시 학력고사에는 출제 범위가 교과서였다는 것. 전국에서 같은 교과서(국정 교과서)로 공부하고 그걸 바탕으로 시험을 쳤다는 게 지금 수능이랑 되게 큰 차이같음
88년도에는 교과서에서 출제한다고했지만 교과서에 없는 내용도 나왔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학력고사 마지막 세대들은 교과서 외 지문출제로 상당한 혼란을 격었던 시절이었습니다.
잘못된 정보를 알고 있음.
100만명 시험보는데 교과서에서만 내면 변별력이 떨어짐.
EBS에서 출제한다고 해놓고, 모의고사도 본고사도 다른곳에서 문제가 많이 나왔음.
그래서 교과외의 책들은 줄거리와 저자, 저자의 다른책이 뭐가 있나를 암기했음
교과어에서만 내면 다맞출수 있음?ㅋㅋ 어차피 최상위권은 응용력싸움인데요. 공부안해본 티 너무 나네요~
교과서를 응용한 문제들 나왔습니다. 그래서 문제집 많이 풀었습니다. 근데 시중 문제집과 비슷한 문제가 출제되면 않되니 출제의원들이 호텔에 외부와 단절된체 오랜시간 시중 문제집들 다 보고 다른 문제들은 만들었죠. 출제의원들 고생
90학번입니다. 아직도 우리나라 인구중 71년생이 잴 많네요.
당시 경쟁율은 높았지만, 과외도 금지였어서 요즘처럼 힘들게 경쟁하면서 공부하진 않았던것 같네요
라기엔 님 영상이 . . 타임루프 하셨나요
ㅋㅋㅋㅋㅋ
과외금지였긴했지만 할 사람은 다 했어요
고속도로 같은데에서 몰래 하던데요
과외금지시대이지만 할 사람은 다했어요..언니가90학번인데 담임이 소개시켜주기도 하고 했던 기억이 있네요..저도 마찬가지였고 전 초중고 모두 강남대치동에서 다녔는데 그때 주변친구들도 모두 과외했죠..국어는 밑줄쫙으로 유명한 서한샘한테 했었죠
저 시절에는 자식 한 명이 대학에 들어가면 마을잔치를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제가 아는 이모님은 남편분과 한동네 친구였는데,남편분이 서울대학교 합격했다고 가문의 영광이자 마을의 자랑이라며 동네 입구에 현수막 걸고,이장님 운전하시는 경운기 타고 아예 읍내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였대요.
@@beautiful-love 당연히 아드님께서는 서울대 입학하실겁니다.
난 미개해보이는데요, 대다수의 학생들과의 입시경쟁에서 이겼다고.. 대다수학생들은 서울대 못갔을텐데 다른 학생들은 기분 나쁘겠죠, 뭐 노벨상을 타거나 인류에 큰 공헌을 했을때, 우리나라의 자긍심을 높엿을때에, 승전하고 왔을때에 카퍼레이드하는것이 올바른 모습 아닐까요?
@@jaes2181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실 필요 없어요.^^
그 당시 그만큼 대학들어가기가 힘들었다는 거에요.경운기 퍼레이드를 하건말건 그건 그 마을사람들 자유니까요!!그 마을에서 태어나서 성장한 청소년이 서울에서 날고 뛴다는 애들도 들어가기 힘든 서울대를 나왔으니 마을의 자긍심이 높을 수 밖에요.
@@captainjerry3098 뭐 자유이지요^^ 고등학생이 다른 친구들과의 입시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카퍼레이드?.그때 낙방한 대다수의 학생들의 박탈감을 생각하면 별로 좋아 보이진 않습니다 우리나라 어르신들의 학벌만능주의와 자기자식밖에 모르는 이기심과 경제적으로 풍족한 가정에 대한 반감?들이 느껴자는것이 사실이네요, 미국에서는 전쟁터에서 살아돌아오면 카퍼레이드하는것 같던데.. 카퍼레이드는 그 학생이 미래에 인류에 공헌을 하게되면 그때 하는것이 좋아보이는데요,그게 맞는 모습 모습아닐까요?
@@jaes2181 님 생각에 동의해요.지금 사회의 주축이신 세대분들이 다 저렇게 교육받았죠.
그래서 제가 학교만 졸업하면 절대로 학교 근처에는 한 발자국도 안 들인다고 했죠.
졸업 후,모교방문 단 한번도 안하고,동창들이나 선생님들 안 만나요.다 수신거부에요.
아빠가 84학번 영훈고 출신
중학교 다닐 적엔 본고사가 남아있다가, 사교육 조장이라 말이 많아서 전국통일 학력고사로 고1부로 바뀐 뒤에 갑작스럽게 학력고사 준비하셨어요. 고등학교 다닐 적엔 계속해서 전교 1등하시다, 한양대 의예과 가셨습니다. 전교 2등이 고려대 화공을 갔었습니다. 몇 점 부족한 탓에 종로학원 장학금 받으며 가지 못한게 지금도 아쉽다고 하세요. 집에 돈만 있었다면 재수해서 더 높은 학교 의대 가고 싶었다고 말하십니다. 이 때 당시에는 지금만큼 문항의 난이도가 낮은데 비해 과목의 수가 많고, 문이과 구별없이 사탐 과탐의 점수가 입시에 반영했기에 주먹구구식이였던 시험이였죠. 동일 학교에서 인턴, 레지던트 마치시고 군의관으로 복무한 뒤 현재는 신사에 있는 병원에서 성형외과 원장으로 근무하고 계십니다.
영상을 보면 80년대엔 대학학력고사는 인재를 뽑는 조선시대 과거시험과 비슷 대학가기가 아주 힘든 시절였고 전기 명문대학나오면 취업보장 엘리트 취급 받았습니다. 학력고사일은 국가의 큰 행사일 였었죠.
맞아요.80년대 전기대는 대형 사립 종합 대학교, 지방 국립대들 였었고 후기대는 작은 단과 대학들 였었죠. 명문 전기대 들어 갈라면 상위 10프로 그당시 학력고사는 국가의 큰행사 였었슴.
고득점 노리려면 수학의 경우 일본대학 사립대 국공립대 본고사 서서 풀어야 했습니다. 교육방송 수학문제는 필수이고 한국일보에서 매주 일요일에 국영수 문제 실렸는데 이게 까다롭지만 공부에 도움이 됐었고요.
일본고사 문제까지,,일어도 따로 배우던가 보조받아야 하고,, 재수이상 안하곤 정보알아도 못할 넘사 레벨을 하신듯 하네요..
당시 학교 수학선생님들은 별로,,,
여담인데 수학선생님이 걍 찍는방법도 갈쳤는데, 85학번 학력고사 수2 정답 전부 1번여서, 같은시간 영어50문항 치중하고 수2에서 2,3번 찍은 0점자들 부지기수
@@까시-l8r 부친이 서울대 수학-한양대 석사라서 수학자료는 집에 많았습니다. 그리고 일본 국공립대 입시문제는 번역해서 책으로 나왔어요 도서출판 골드에서
94수능때도 본고사땜에 그 골드 일본 문제집 있었음. 진짜 어려웠고. 막상 시험치러가니 사울대카이스트빼고는 그냥 정석정도만 해도 충분
84학번으로 이세대 학력고사 시대였죠.
그당시 학력고사 시험칠때 모습이 선합니다..
열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차이는 없지만 아련한 추억이 되었네요..
0:35 양식은 몇년째 우려먹고 있는걸까...? 진짜 비슷하넽ㅋㅋㅋ
저시절에는 대학이 인생의 전부였음
지방 대표 사립대만 다녀도 그지방에서는 자부심이 대단했던 시절이었음
지금은 대학의 가치가 거의 없다고 보면 됨
글쵸, 저당시는 지방 명문사립인 동아, 영남대 나와도 지역 회사에 최업이 잘되었습니다.
@@seojongwon7567 현 동아대 입학생으로서 그저 눈물 ㅠㅜㅜ
@@왜가리-b6g 그당시엔 지방서는 돈좀있은 집안이나 서울로 유학 보냈지. 보통 가정들은 지역 국립대나 사립대 갔습니다.제가 90년대 지방 대기업 다녔을때 동아대,조선대 출신분들 많았었죠.
[Written by Seongho ] 선지원 후시험의 첫해라 담임샘은 한 명이라도 더 대학에 보낼려고 커트라인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평균점수로 대학을 보내더군요. 부산대도 커트라인과 평균점수간의 갭이 십오점에서 많게는 이십점이 차이가 나더군요. 그래서 부산대 커트라인과 비슷한 점수대를 가진 애들이 동아대로 많이 하향지원했던 시기였죠. 이때가 동아대 전성기 시절임.... 선지원 후시험대 인 시절이.. 서울의 삼국대가 안부러웠던 시기인데..... 지금은 ㅠㅠㅠㅠㅠㅠ
저희 아버지가 전설의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이십니다 아빠말로는 지금이야 수학 가형 나형 선택 가능하고 제2외국어 선택하고 이과문과 가려서 쳤지만 그땐 걍 그런거 없이 봤다고..(74년생,93학번인... 고인물 아니 화석오브 화석 취급당하는 아빠를 둔 예비 25학번인 딸내미..
난 26학번 ㅋㅋㅋ
어머니가 학력고사 마지막세대시라 ㅋㅋ
사범대 가는거 힘드셨다던데
@@yoonseo_ji 죄송한데 저희 초면인데 반말 사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그러니 존댓말로 적어주세요
@@이유림-k8r 댓글쓰는게 귀여우세요 ㅋㅋ
@@김원일-u6t 아악.. 제 나이먹고 귀엽다는 건.. 좀 아닌거 같아요.. 이제 곧있음 중3이 되는 징글징글 나이에 귀엽다뇨..🤔 칭찬으로 받아드릴게요 하핫😂
정상적인 학교수업..... ㅜㅜ
이래파토리는 예나 지금이나......
1993년에 대학교를 입학한 93학번이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고 94학번 부터 수능 시험으로 바꼈음; 제가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 ㅎㅎㅎ 당시에 반에서 1~5등 사이면 인서울대 갔었음;10~20등 이내는 전문대를 갔었고, 10등~20등 사이에 애들은 바로 공무원 시험 공부해서 바로 9급 합겼했음.
내 친구도 대학교 다 떨어지고 시험봐서 철도 공무원 9급에 20살에 바로 되는 바람에 공무원 됐음. ㅎㅎㅎ 대학교 다 떨어진 애들이 간 곳이 9급 공무원..지금은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 당시엔 그랬음
맞음. ㅋㅋ 나도 93학번.
저무렵 대학 가기 쉽지 않았죠..경쟁률과 수험생 수도 어마어마했고요
명문대 가려면 재수가 필수고 삼수는 선택였던 시절 노량진 가면 재수생들 상대하는 학원들이 넘쳐났었죠.
개나 소나 다 대학가던 시절이였지, 졸업정원제 때문에 입학정원 늘어서.
@ijunpark1647 그렇게요. N수생 포함해서 대입 수험생 100만 일 때 4년제 입학 정원이 20만 내외였고 나 들어갈 때 졸정제 110%였으니 무려 2만 명 더 혜택 봤네요. 개나 소나 다 대학가던 시절에 ㅋㅋ
하... 저 때는 대학 선지원 후시험이라서... 전기대 한곳 지원해서 떨어지면 일부 후기대 가고, 나머지는 걍 재수하든, 대학 포기하든 했음. 지금 수시, 정시는 일단 여러 대학 동시지원 가능하니 어찌보면 옛날 보다는 기회 측면에서 훨씬 좋은 제도임. 지금 생각해보면 저때 선지원 후시험 대입은 너무 잔인했음.
본인이 학창시절에 공부좀 했고 지금도 공부로 먹고사는 직종에 종사합니다만 지금은 공부가 인생의 왕도이자 치트키라고 볼 수 없습니다.
현재 스카이 나와도 취업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비해 지잡대 중퇴했는데도 떼돈버는 사람이 너무 많더군요.
명문대에 입학만 하면 인생 성공하는 시기는 90년대까지였죠
아니 공부가 왜 성공의 열쇠가 되어야하나요? 사회에 나와서 이룬 성취가 중요한것이지 이제는 경력사항이 중요한것이죠 일자리 넘칠때나 학력보지 이제는 경력에 따른 능력이죠. 요즘은 전문대나와서 좋은기술경력 가진 사람이 인서울의 문과 졸업생보다 더 안정적인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의대 법대등 전문직은 다르지
@민노트 그런 사람들이 일찍 사업에 눈떠서 떼돈 버는경우가 많아요 ㅋ
지잡대 중퇴 떼돈은 적폐
대학수가 지금보다 적었던 시절... 대졸 아니어도 할수있는 생산직 서비스직 하위직 공무원 일자리 많았던 시절...
지방에 있는 대학들 싸그리 정리했으면 좋겠어요
@@서고동저 ㅇㅈㅇㅈ 너무 근본없는 곳이 많아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듯 학생수가 없어서
아니 없었어
61년~72년도 연 100만명 태어나던 시절이라
80년대는 인구 포화상태였음
아르바이트 자리도 경쟁 치열했다
연 대학졸업 예정자가 15만명이였는데
대기업.중소기업 350여개업체 신규 체용자가 2~3만명 수준이였다
공장?사람 맨날 구했지 초.중졸들이 많았던 시절이라 연장 야간해도 수당 없이 일부려먹었고 기본 저녁 8~10시 풀 연장시키고 월 15만원줬다
@@유늬-z4k ㅈ팔육 ㅈㄴ꿀빨고 산거맞는데?ㅋㅋㅋㅋㅋㅋ
지금과 달리 원서넣고 시험보는 구조라 막판 눈치 작전 치열했고 기회는 단한번이라 대학가기 정말 힘들었던 시절
95학번이고 수능 2세대인데 우리때도 인문계 한 반 50명중 4년제 갈려면 반에서 20등 안에는 들어야 갈 수 있었음.
정확히 15등정도 ... 20등은 전문대죠 5등까지 인서울 10등안이 캠퍼스 11등부터 15등까지 지방대 ㅜㅜ 15등부터 20등 서울에 있는 전문대 ... 20등부터 25등 지방전문대 거의 100%는 아니었지만 대략
80년 서울은 한반에 65명
94. 우린 한반 50명 좀 넘었나.. 최소35명이상 갔음...지방
저 시대 수험생들 =현 50대 초반. 저 시대 학부모님들 = 사망 혹은 최소 은퇴해서 집에서만 있을듯. ㅠㅠ
50초반 아니라 60대십니다
@@bjkingy9644 84학번이어도 올해 57세이실텐데.
아 눈물난다. '3당4락'(3시간 자면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고 하던시기 ...
저 시대에 고려대 법대 가신 우리 아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새삼 대단하시게 느껴진다.
어머 ㅋ 딱 88학번이었는데 영상보니 너무 반갑네요 ㅜ ㅜ
젊은이의 양지'의 인범이(이종원씨)와 석주(배용준씨)의 세대이시네요.^^
88올림픽때 대학들어가셨군요
저도 88학번이에요 시립대 ㅎㅎ
반갑네요
전 88년생인데 저도 반갑네요
저는 88살인데 반가워요~ ㅋ
90년 초의 학력고사가....학생들 숫자가 가장 많았었고 ...경쟁율리 가장 치열햇던 학력고사였음...그때는 선지원 후시험 단판승부였습니다....전체 4년제 대학 수용인원 20만이 조금넘었고...지원자는 90만명이 넘었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수험생보다 대학정원이 더 많은걸 생각해보면..
@@바나나우유-e6q 하지만 다들 생각하는대학은 여전히 치열하죠
전설의 단발승부!! 👽
솔직히 상위 20%는 누구나 가능. 1%정도부터는 진짜 머리빨 운빨임.
ㅇㅈ 나도 수학같은 과목이어도 1등급 4%는 가능하다 생각
높은 1등급인 1%는..진짜 머리있어야됨
이 친구들 뭐를 몰라도 한참 모르네
@@장혁계정 그게 뭘까.. ㅇㄷ
1%부터는 다 ㅈㄴ열심히하고 다 머리 어느정도 좋아서 재능 딸리거나 노력 좀 덜하거나 하면 힘든듯..
@@장혁계정 넌 아는게 뭐냐
88년 . 쌍팔년 학력고사에 처음으로 주관식 출제되었지. 게다가 전.후기 직접 지원한 학교에서 또는 지정 근교 대학에서 시험을 봐야했고. 말 그대로 5명중 1명만 붙던 시절. 지금처럼 개나 소나 다 가는 수준이 아니었다. 곧 인구 절벽이 오면 지방대 전문대는 살아남기 힘들겠지. 벗꽃 피는 순서대로 죽어 나간다던데...경쟁력 확보 또는 통 폐합이 답인데 얼마나 살아남을런지...
뉴스앵커님 진짜 진심 걱정해주시는게 보이시네요.
지금은 나이가 많이드셨을텐데요ㅠㅠ
이때는 의대보다 물리학과가 최고였다고 들었어요~~
네 설대 물리학과가 설대 의대보다 높았어요
83학번인데..
시험 마치고 나올때..
엄청 내리던 눈이 아직도..
생각난다..
일차때 그냥 하향지원해서 갈껄..
서울로 지원해서 미역국 먹고
하면 안될 재수로..나의 젊음도
사그러지고..
이젠..반백의 나이가 되었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