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같은내용을 들어도 다 각각 이해를 하는것이 신기합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이영상의 핵심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것이라는 촛점으로 보니 그동안 아리송한게 풀렸는데. 그리고 성경 곳곳이 한국어로 번역된부분에 오류들이 많은데 좀더 원서와 영어버젼도 함께보며 연구해보는것도 좋을듯해요 댓글 다시는분들이 좀더 생각을 하고 댓글도다심 좋겠어요 뭐든 좀더 명확함을 향해 연구해가는과정이니 서로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논쟁도 했으면 합니다. 좋은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수깨서 이청지기를 칭찬하신것은 칭찬이라기보단 당시에 제자들과 그밖에 모든 유대인들에게 비꼰것아닌가 생각 됩니다. 구절에 하물며 이 불의한 청지기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데 너희들은 미래에 천국을 대비하지않느냐 라고..제자들과 유댜인들에게 질타와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느꼈습니다.
8절의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비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친구 참 영악하네..." 라고 보면, 9절도 이해가 갑니다. 9절: "불의한 청지기 같이 불의한 돈으로 친구사궈봐라,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대로, 자기를 그들의 집에 들여서 죽을때까지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것은 다시한번 비꼬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해봐(그런식으로 친구 사궈보라), 그러나 절대 그런 일 (불의한 청지기의 새 친구가 청지기를 자기 집으로 한두번은 영접해 대접하겠지만, 끝까지 먹여주는 일은)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10절부터13절까지가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10-13절을 설명하기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라는 메세지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바로 앞의 돌아온 탕자같이 불의한 청지기도 회개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14절에 비웃었다고 나옵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성령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를 통해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말씀은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에게 적용하고 한 말씀이라도 살아내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목적은 성공이 아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이것이 나는 항상 궁금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작든지 크든지 내 모습을 보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기적인 청지기의 태도와 후에 태도를 바꾼 청지기의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돌이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며 살때 하나님은 또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은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를 갈망하며 말씀을 읽을때 언제나 주님은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신 분 이심을 깨닫습니다 사실 목사님 말씀속에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 이시구나 ~ 를 느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씀하시는 분이 계심이 너무나 기쁩니다! 말씀은 정말 즐겁습니다 내 영혼을 살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랑의 아들의 나라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삶의 자리에서 세워가는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큰 힘이 됩니다! 목사님을 통해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소서! 주님께 감사 찬송 올려 드립니다! 물질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마음의 해방을 얻고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려 삶의 자리에 감사가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김득중.예레미야즈 이 분들의 책을 봤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즈의 해석에 맘ㆍ이 다가갑니다, 주인은 하나님 청지기는 성도 채무자들은 불신자영혼ᆢ 성도가 본질을 망각하고 영적침체에서 노닥거릴 때 주인은 삶을 회계ㅡ하라 하시네요 재빨리 나의 그간의 삶의 장부를 재점검■각성하고 돌이켜야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자신을 청지기로 믿는 한 집사선교사님의 일을 도와주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해외의 밤, 그분이 돈 앞에 철저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본받을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두달 일하고 알게된 그의 모습은 자신의 기준과 다르면 지나치게 엄하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서슴치 않아, 과연 돈 위에 하나님이 있는가,..의아해 하고 있고 아무리 큰 돈을 번다해도 이 분과는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마음이 아팠는데, 오늘 영상으로 제 갈등에 답변을 들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책도 소개해주시고,..오늘 떠나며 무거운 맘의 짐을 내려놓고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 찬양~ 구독합니다. ~~~!!
가장 복음적인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메시지안에는 보화가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말씀을 연구할때 참된 진리를 접하게 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저는 불의한 청지기 말씀에 관심있어 여러분들에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목사님을 통해 복음적인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종말적인 신앙관을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고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글을 올리고 싶지만. 목사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안개꽃-b9f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들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식당, 커피숍, 버스, 전철등등 옆좌석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외국(저에게는 미국)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동네나 동창들 카톡방에서도... 한번은 "친구들은 우리조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했더니 몇몇은 나가버리고 나머지는 조용~~~ 교회에서 조차도 생각을 좀 해야할때는 조용~~~ 주입식교육의 결과인지? 어쨋든 슬픈 현상 입니다.
제가 알기로 저 시대의 청지기는 일반 노예하고는 달리 주인의 재산을 관리할수 있는 권한도 있고 주인집 자녀들의 교육까지 맡아서 하는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지적능력이 있는 집사(Butler)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약을 중요시하는 유대사회 특성상 일개 집사가 주인의 계약서를 임의적으로 수정했다라는게 가능할것 같지는 않아보이고 내용중에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라는 소리를 주인이 외부로 부터 들었다라는 구절과 여기서 사용된 낭비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에 해당하는 단어는 "디아스코르피조"라는 단어로 낭비하다라는 뜻이긴 한데 능동태로써 자기것도 아닌데 자기것처럼 마구 쓴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청지기가 계약서를 다시 썼다라는 내용으로 봤을때 청지기는 주인몰래 주인의 재산을 자기 재산으로 속이고 하나님께서도 금지한 이자놀이를 한 계약의 당사자로 보이며, 이자놀이 때문에 빚진자들의 고발하는 소리가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부정이 드러나 짤리게 되자 청지기는 빚쟁이들을 불러서 주인의 재산에는 손해가 안가는 범위내에서 자기가 받을 이자만큼 탕감해주는 수준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그렇게 빚진자들은 빚을 탕감 받았으니 의도했던 안했던 주인의 대외적인 평판을 올라간것으로 보이며 주인이 봤을때 자신의 재산은 손실이 없고 주인에 대한 평판이 올라가는 등 청지기로써의 직분에 맞게 일을 잘 처리하자 이것때문에 칭찬을 했다라고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바리새인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뭘까 고민을 해봤는데 이후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한다라는 누가의 디스하는 내용과 이전장 다음장의 내용으로 판단을 했을 때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것을 이용하여 맘몬-돈을 숭배하고 자기 사욕과 불의한일에 동참하는 모습들에 대하여 비판함과 동시에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재산을 관리할 청지기로써의 모습을 회복할것을 촉구하시는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가 맘몬-물질숭배와 불의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일 즉 가난해서 고통받거나 불의한 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을 한다라면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책망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재산을 관리할 청지기 직분을 다른 합당한 자들에게 주실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의함으로 부터 돌이킬것을 촉구 하시는 내용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따라서 이전장에 나오는 탕자비유가 하나님을 떠난 둘째 아들 같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이번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하나님의 재산을 이어받을 첫째 아들과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믿는다 하면서도 청지기로써 살지 못하고 세상사람보다 더 악랄하게 살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불의로 부터 돌이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비유이지 않나 싶습니다.
도날드닭님께서 해석하시는 것은 보편적으로 많이들 하시는 해석입니다. 제가 그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영상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돈을 잘 사용하자는 생활률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종말론적으로 살자는 취지의 영상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도날드닭님께서 설명하신 종은 로마인들이 고용했던 헬라의 지식인 종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 종들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들 청지기는 종이 아니라 신하라고 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자놀이에 대한 부분은 잘못 아신 듯 합니다. 이자놀이를 인정한 것은 칼빈이 제네바 시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므로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을 통해서 칼빈주의가 자본주의를 발흥하고 부흥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자 놀이는 매우 악한 행동으로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눅6:34-35)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이자에 대한 인정과 이자놀이는 종교 개혁 이후에 보편화되고 그 전에는 아주 악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 일을 했고, 그러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고대 사회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이 비유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 난 또 하나의 비유가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곡해하였기에 주님께서는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4-26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비록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아는 그의 지혜를 칭찬하십니다.
불의한 청지기가 맡은것은 돈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돈으로 요약 표현한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나님은 일생을 악하게 허비한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죄 값을 대신 심판 받으시고 깨끗하고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사역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전도한 일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의하고 더러운 인간인데, 예수님만 참 진리되신 신이요 인간의 대표자시니 더러운 나를 짓밟아 버리고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얼마나 더러운줄 안다면 나로 살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16:1~13) 청지기는 평소에도 주인을 속였고 해고 당할때도 자기 유익을 위해 채무자들의 빚을 조작했다. (8절) 그럼에도 주인은 오히려 그가 슬기롭다고 칭찬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 청지기같은 사람들이 진짜 지혜롭다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권세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구원받은 의로운자)보다 더 잔꾀를 부린다는 비꼬는 비유임. (쉬운성경은 “[자기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자녀보다 더 슬기롭다” 인데, 자기 욕심 추구를 위해 온갖 술수를 내는 것이 묵묵히 정직한 의로운자보다 꾀가 많다는 의미임)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거짓된 재물(부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사귀면 결국 멸망으로 가게됨을 설명함.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말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는 말과 비슷한 분위기이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됨. ‘그들이’는 불의의 재물로 사귄 친구들을 말하는데, 그 인간들이 구원할 능력은 없으므로 결국 나쁜돈으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옮다고 여겨짐. - 부자/나사로 이야기도 부자는 영원히 죽지않는 멸망의 처소에서 영주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그렇게 술만 먹어봐라!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는 방식의 표현임) (11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으로 (바르게)가 빠져있음. 즉 (이미 설명한) ‘불의한 재물’ 사건의 경우에도 이 청지기처럼 살지 말고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무것도 맞겨지지 않을 것임을 말함. (풀어서 표현하면 “불의한 재물의 경우에도 욕심을 위해 꾀부리지 말고, 바르게 충실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절) “너희가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일꾼이 남의 것(주인의 것)에 충성해야 너희의 것(급여)를 받지 않겠느냐!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두 주인은 안되듯이 하나님도 다른 것과 함께 섬기는 것은 안됨. (청지기처럼 속이면서 자기 인생을 추구하지 말고, 피조물인 인간은 오직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분만 바로 섬겨야 함)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 대한 욕망(욕심)으로 하나님께 돈/건강/명예/출세 등을 요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섬기는 것이므로, 오직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고 자신을 이끄심을 믿고 주시는 현재상황에 순종하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시기를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따라 의의길을 인내하며 가고,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깨닫게 됨)
말씀의 모순, 기록당시에도 같은 말씀이었다면 그들도 주석보고 다른 서적을 뒤적여서 연구를 해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나. 그렇게 다 신학자가 되어야 믿음이 생기나. 성경은 영적이다. 영적인 것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렸나. 그때도 비유 아니었나. 그 때는 죄가 없어 잘 이해했고 지금은 아닌가?
아무튼 어떤 설교도 100% 공감은 없고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인쳐져 조각되어져 돌판으로 다듬어져야 주께서 친히 말씀으로 기록하여 새기신다. 말씀이시니까 인쳐지고 할례되고 새겨진 흔적이 곧 기념책이요 생명책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만하지 말고 주를 품고 그 마음과 성품으로 화해야 한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이 단어를 모르면 해석이 불가합니다. 맘몬....윌리엄 틴데일이 이미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오래전에 내놓았죠. 영어권은 이 자료를 대부분 읽어봤기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이 없을 듯 하네요. 불의의 재물은 불의의 맘몬으로도 불리웁니다. 맘몬은 히브리어로 필요이상의 여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재산은 모두 하나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청지기는 세상 판단으로 즉 법률적으로는 자기의 소유 재산을 증식하면서 관리했던 것입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긴 재산에 불과한 것이죠.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윌리엄 틴데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불의했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다. 다만 맘몬 즉 자신의 필요 이상의 재산 그 자체가 불의하기에 "불의의 재산(맘몬)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기의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탕감해 준 것입니다. 세상 표현으로는 기부천사인 것이죠.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건강, 지식, 물질, 재능... 그 모든게 주인되신 하나님의 것임을 안다면 청지기비유는 이해가 됩니다 주인의 돈을 그렇게 사용하는게 정당한가? 질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임을 안다면 비유내용은 전혀 이상한게 아닙니다
현실에서는 배임죄를 저지른 청지기를 하나님은 칭찬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소유이고 우리는 청지기라고 말하지만 의식 깊은 곳에 마귀는 각자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심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에 불의한 청지기라고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것이 위치만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청지기는 빚진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도움을 준 것이므로 약자편에 서신 하나님께서 칭찬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청지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경의 난제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인의 심판앞에 빚진자들을 탕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빚진자를 탕감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이지만 빚진자를 탕감해야 칭찬 받습니다 말씀의 본질은 불의한 청지기지만 주인에게 빚진자를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닐까요~ 다른 내용이 들어가면 이해하기 어려워 집니다 순종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급박한 시대입니다
억지 해석입니다. 청지기가 그런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면 자신의 돈으로 선행을 베풀었어야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럴듯해보이지만 참으로 위험천만한 해석입니다. "주인이 선하고 자비하시니 주인의 채권을 주인의 허락없이 탕감해주는 것에 대해 그분은 기뻐하실거야!"라는거 아닙니까? 주인은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하였으나 해고를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의 재빠른 임기응변입니다. 정말 선생님의 논리대로 청지기가 주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았더라면 회개하고 그분께 용서를 구했어야지요... 자비하심을 알기는 했으나 청지기가 결국 기댄것은 세상사람들의 품이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점은 그가 그의 세대에서 지혜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빛의 자녀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는 빛의 자녀들이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 뭔가 교훈을 얻기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청지기가 퇴출후 자신과 공범이 된 채무자들과 범죄 공동체가 되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운명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빛의 자녀라 자칭하면서 정작 운명공동체 만드는 데는 소홀합니다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의 죄를 마음대로 탕감해 줄 수 있는 하나님께 권한 받은 빛의 청지기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즉 그가 퇴출후 먹고 살 길을 만들기 위해 물론 불의한 방법이긴 하나 그는 원래 불의한 자였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불의한 방법으로 채무자들과 범죄한 운명공동체를 조직하여 살 길을 대비한 점을 칭찬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방법과 불의한 공동체 자체를 칭찬한 것과 다릅니다 칭찬한 것은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하게 친구를 만들어 자기 앞 길을 대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빛의 세계에서 빛의 자녀들에게는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니지만 한가지 칭찬할 수 있는 포인트는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한 친구를 삼았다는 점이기에 의의 세계에서 의의 청지기는 의로은 방법으로 친구를 삼으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불의한 청지기에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마치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한 친구를 삼은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기 때문에 제2독자인 사람들은 혼동이 되는 것입니다만 제1독자들은 바로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빛의 공동체 의의 공동체를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기서 먹고 사는 것은 비단 현세만을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세에서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누가 강도맞은 자의 이웃이 되는가의 비유와 상통하며 작은 소자에게 물 한그릇 주는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비유 등과 연결해서 풀이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포도원 주인의 비유까지 연장하면 바로 지혜로운 청지기는 적은 시간 노동을 한 자에게도 똑같이 임금을 지붏한 주인의 뜻을 따라 모든 하나님께 빚진 자에게 죄의 빚을 탕감 시키는 복음을 전해 먼저 믿은 자나 늦게 믿은 자나 동일한 주인의 은혜를 맛보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행위는 분명 불법적인고 비윤리적인 범죄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세계에서는 그게 정상적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 가지면 서로 이웃이 됩니다 공동체가 됩니다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칭찬한 것은 불의한 공동체 조직을 만들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가 퇴출후 살 길을 도모하기 위해 주인의 것을 경감시켰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분명 윤리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된 범죄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소유를 빛의 자녀들이 마음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의 빚을 탕감해 준다면 하나님은 이를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의 세계에서도 의의 법칙에 따라 죄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의 세계의 주인인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불의한 청지기와 달리 의의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 죄인이었던 불신자들과 자신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운명공동체가 됩니다 우리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인 복음을 전함으로 이웃을 만들고 친구를 삼아 의의 운명공동체를 만드는 지혜로운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대한 미천한 저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추가하면 여기서 불의한 청지기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고 현대로 적용하면 사제들과 목회자들이 되겠네요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서 청지기로 일하면서 자신의 배만 불리는 불의한 청지기들니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범죄 공동체를 만들었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으로 친구와 이웃을 구제하고 그들의 진정한 친구와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청지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빚진 자들에게 인색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너무 억지 해석처럼 보입니다. 본문을 보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축내다가 해고통보를 받는 것이고 그 후 그의 행동은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주인의 재산을 더욱 축내는 행동을 합니다. 아무리 그렇듯하게 말을 해도 그의 불의함을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창세기 3장 에덴동산의 청지기가 선악과 먹고 해고당하는 장면을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임을 성경은 폭로하고 있고, 자신이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그 불의에서 건져줄 친구(예수)가 필요함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본문은 이걸 지혜롭다고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논문쓰듯이 풋노트를 다 달아서 학자들의 의견을 첨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시다니 아마 성경과 신학을 상당히 깊게 공부하셨나 봅니다. 자기 주장이 아니라 공인된 학자들의 주장을 올려주시면 제가 일일이 찾아보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LogosCommunity 저 역시도 이런말을 하면 신학자들의 논문을 내미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봤습니다. 그럼 공인된 논문을 쓴 학자들의 의견은 다 맞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드려야 합니까? 혹시 국어시간에 배우셨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가르켜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적 오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인된 논문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위에 있을 수 없기에 어떠한 논문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인된 학자들을 올려 달라고 하셨은데, 저는 공인된 학자들이 쓴 글을 읽고 제 나름대로 정립한 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올렸습니다. 저는 공인된 신학자들의 글들을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근거로 삼을 뿐입니다. 그래서 본몬 비유을 해석하면서 창세기 3장을 언급한 것이구요,,,,, 공인된 학자들의 논문을 의지하지 마시고, 성경말씀만을 의지하세요,,, 만약 성경말씀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면 어쩔 수 없구요!~ 참고로 청지기가 주인의 성품까지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서 칭찬받았다식으로 말하시는데 성경적 근거도 전혀 없는내용을 논문을 바탕으로 추론해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가르켜 성경의 대표적 오류인 알레고리 해석, 즉 풍유적 해석라고 합니다. 그런식이면 인간의 행위로 얼마든지 주인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인간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르켜 행위구원이며,,,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된 교회라고까지 했습니다.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인간들을 어떻게 일방적 은혜로 건져 올리는지,,,,, 아니 본인의 모습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을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청지기인지, 아니면 오늘도 내 생존에만 몰두하느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횡령하며 살고 있는지., 오죽하면 예수께서 인간의 배가 신이라고 했겠습니까!~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습니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설령 주인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찾아와 주신 일방적인 은혜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밑에 어떤 분이 올바르게 말씀을 하셨네요. 불의한 청지기는 평소에도 불의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도 주인의 재물을 자기 마음대로 허비해버리는 불의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런데도 주인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여기서의 칭찬은 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한게 아닙니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의 미래(해고 이후의 삶)를 대비한 그의 지혜(약삭빠름)에 감탄을 한겁니다. 하물며 이 불의한 청지기도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의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데, 너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 미래에 대한 어떤 준비를 하고 사느냐.. ? 이것이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의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입니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물질, 내 시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인데, 이것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친구를 사귀는게 맞지 않느냐. 이렇게 교훈을 받아야죠. (고린도전서 4:7)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불의한 재물의 정의 : 내 것이 아닌데 내것처럼 쓰고 있는 모든 것. 유튜브 똑바로 합시다.
참고도서
Dawn Marva, A Royal “Waste” of Time( 고귀한 시간 낭비 예배), 김병국, 전의우 옮김, 도서출판 이레서원, 2004
Bonhoeffer Detrich, Nachfolge(나를 따르라), 허혁 옮김, 대한기독교서회, 1989
Thielicke Helmut, The Waiting Father: Sermons on the Parables of Jesus(기다리는 아버지), 이계준 옮김, 컨콜디아사, 1989
Bailey E. Kenneth, Poet & Peasant (중동의 눈으로 본 예수님의 비유), 오광만 옮김, 이레서원, 2017
Jeremias Joachim, Die Gleichnisse Jesu(예수의 비유), 허혁 옮김, 분도출판사, 1988
김득중, 복음서의 비유들, 컨콜디아사, 1990
성경 읽다 이 구절에서 막혀서 3일정도를 보낸것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깊고 깊은 뜻을 다 헤아릴수 없지만 조금씩 더 알아가는 은혜를 허락하셔서 이 영상을 접하게 된것 같습니다. 조금더 묵상하며 주님을 붙잡고 나아가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와 같은내용을 들어도 다 각각 이해를 하는것이 신기합니다.
저는 이 영상을 보고
이영상의 핵심은 주인의 마음을 아는것이라는 촛점으로 보니 그동안 아리송한게 풀렸는데.
그리고 성경 곳곳이 한국어로 번역된부분에 오류들이 많은데
좀더 원서와 영어버젼도 함께보며 연구해보는것도 좋을듯해요
댓글 다시는분들이 좀더 생각을 하고 댓글도다심 좋겠어요
뭐든 좀더 명확함을 향해 연구해가는과정이니
서로 사랑과 너그러움으로 논쟁도 했으면 합니다.
좋은영상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응원합니다 응원합니다 ❤❤
감사합니다
예수깨서 이청지기를 칭찬하신것은 칭찬이라기보단 당시에 제자들과 그밖에 모든 유대인들에게 비꼰것아닌가 생각 됩니다. 구절에 하물며 이 불의한 청지기도 자신의 미래가 어떻게 전개될지 알고 미래를 대비하는데 너희들은 미래에 천국을 대비하지않느냐 라고..제자들과 유댜인들에게 질타와 경고의 메시지가 아닌가라고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느꼈습니다.
예 그렇게 느끼고 해석할 수도 있지요
저도 그렇게 알고 있어요. 예수님께서 천국의 비유라고 하신 이유가 있겠지요. 열처녀의 비유처럼 대비해야 한다..
8절의 칭찬은 칭찬이 아니라 비꼰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친구 참 영악하네..." 라고 보면, 9절도 이해가 갑니다.
9절: "불의한 청지기 같이 불의한 돈으로 친구사궈봐라, 그러나 불의한 청지기가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대로, 자기를 그들의 집에 들여서 죽을때까지 먹여 살려주지 않는다" 라고 이해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한 것은 다시한번 비꼬는 투로 이야기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렇게 해봐(그런식으로 친구 사궈보라), 그러나 절대 그런 일 (불의한 청지기의 새 친구가 청지기를 자기 집으로 한두번은 영접해 대접하겠지만, 끝까지 먹여주는 일은)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10절부터13절까지가 예수님이 비유를 통해 하시고 싶은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10-13절을 설명하기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미래를 대비하라는 메세지는 아니라 생각됩니다. 바로 앞의 돌아온 탕자같이 불의한 청지기도 회개하고 주인에게 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바리새인은 이 이야기를 듣고, 14절에 비웃었다고 나옵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 들으라고 하신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당 주님 아멘
감사합니다
목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이해할수 있는
능력을 주신 성령님께
먼저 감사드립니다
불의한 청지기 이야기를
통해 많은 깨달음이 있습니다
말씀은 나에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에게 적용하고
한 말씀이라도 살아내는 것이 올바른 것이라 생각 합니다
성경 말씀을 읽는
목적은 성공이 아닌
나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신가 이것이 나는
항상 궁금합니다
그러나 살면서 작든지
크든지 내 모습을 보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이기적인
청지기의 태도와
후에 태도를 바꾼 청지기의 모습을 통해
내 모습을 돌이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선택하며 살때
하나님은 또 용서하시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발견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돌이키는 사람은
희망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 드립니다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기를
갈망하며 말씀을 읽을때
언제나 주님은 친절하시고 자비로우신
분 이심을 깨닫습니다
사실 목사님 말씀속에
목사님께서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분 이시구나 ~ 를 느꼈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말씀하시는 분이 계심이
너무나 기쁩니다!
말씀은 정말 즐겁습니다 내 영혼을 살아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사랑의 아들의 나라의
통치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삶의 자리에서
세워가는 주님 보시기에
기뻐하는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목사님의 설교 말씀에
큰 힘이 됩니다!
목사님을 통해 살아계신
우리 하나님 홀로 영광받으소서!
주님께
감사 찬송 올려
드립니다!
물질적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교제를 통해 마음의 해방을 얻고 마음의
시온의 대로가 열려
삶의 자리에 감사가
넘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긴 격려의 글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짧지만 진심의 감사를 드립니다.
@@LogosCommunity 저도 더 깊은 묵상을
할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ㅎ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김득중.예레미야즈
이 분들의 책을 봤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즈의 해석에
맘ㆍ이 다가갑니다,
주인은 하나님
청지기는 성도
채무자들은 불신자영혼ᆢ
성도가 본질을 망각하고
영적침체에서 노닥거릴 때
주인은
삶을 회계ㅡ하라 하시네요
재빨리
나의 그간의 삶의 장부를
재점검■각성하고
돌이켜야겠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하나님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자신을 청지기로 믿는 한 집사선교사님의 일을 도와주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해외의 밤, 그분이 돈 앞에 철저하며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본받을 모습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두달 일하고 알게된 그의 모습은 자신의 기준과 다르면 지나치게 엄하고 저주에 가까운 말을 서슴치 않아, 과연 돈 위에 하나님이 있는가,..의아해 하고 있고 아무리 큰 돈을 번다해도 이 분과는 다시 일하고 싶지 않다 느끼고 있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가 없어 마음이 아팠는데, 오늘 영상으로 제 갈등에 답변을 들은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책도 소개해주시고,..오늘 떠나며 무거운 맘의 짐을 내려놓고 가게 되었습니다. 주님 찬양~ 구독합니다. ~~~!!
구독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장 복음적인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합니다.
메시지안에는 보화가 숨겨져 있는데 우리는 말씀을 연구할때 참된 진리를 접하게 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저는 불의한 청지기 말씀에 관심있어 여러분들에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목사님을 통해 복음적인것에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종말적인 신앙관을 날마다 준비해야 한다고 다시한번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많은 글을 올리고 싶지만. 목사님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주 뵙겠습니다.
쉽게 받아들여지는 해석이라 느껴집니다ᆢ
불의한 청지기는 성도들이다 라는 시각으로 보니까 전도를 통해 채무자(불신자)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한다는 것ᆢ
감사합니다.
예수님은, 주인은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긍휼과 너그러움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정확한 해석이십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들은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습니다.
저도 큐티가 자기중심으로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한국와서 보니,
학벌은 높아도 시시껍절한 얘기는 잘하면서
막상 생각이 필요한 얘기가 나오면 조용해지는 것을 볼때
참으로 슬퍼요.
가슴 아픈 이야기로군요 ㅠㅠ
모든사람이
그렇지는않지요~^^
@@안개꽃-b9f 대부분이 그렇습니다. 들으려고 해서가 아니라 식당, 커피숍, 버스, 전철등등 옆좌석에 있는 사람들의 대화는 외국(저에게는 미국)과 너무 차이가 납니다. 동네나 동창들 카톡방에서도...
한번은 "친구들은 우리조국 대한민국에 대하여 어떤 꿈을 가지고 있나요?"했더니 몇몇은 나가버리고 나머지는 조용~~~
교회에서 조차도 생각을 좀 해야할때는 조용~~~
주입식교육의 결과인지? 어쨋든 슬픈 현상 입니다.
그렇지요?
제가 알기로 저 시대의 청지기는 일반 노예하고는 달리 주인의 재산을 관리할수 있는 권한도 있고 주인집 자녀들의 교육까지 맡아서 하는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제대로 교육을 받은 지적능력이 있는 집사(Butler) 같은 사람으로 알고 있습니다.
계약을 중요시하는 유대사회 특성상 일개 집사가 주인의 계약서를 임의적으로 수정했다라는게 가능할것 같지는 않아보이고 내용중에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라는 소리를 주인이 외부로 부터 들었다라는 구절과 여기서 사용된 낭비라는 단어의 헬라어 원어에 해당하는 단어는 "디아스코르피조"라는 단어로 낭비하다라는 뜻이긴 한데 능동태로써 자기것도 아닌데 자기것처럼 마구 쓴다라는 뜻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하튼 이러한 잘못을 저지른 청지기가 계약서를 다시 썼다라는 내용으로 봤을때 청지기는 주인몰래 주인의 재산을 자기 재산으로 속이고 하나님께서도 금지한 이자놀이를 한 계약의 당사자로 보이며, 이자놀이 때문에 빚진자들의 고발하는 소리가 주인의 귀에까지 들어가서 부정이 드러나 짤리게 되자 청지기는 빚쟁이들을 불러서 주인의 재산에는 손해가 안가는 범위내에서 자기가 받을 이자만큼 탕감해주는 수준으로 계약서를 다시 쓰고 그렇게 빚진자들은 빚을 탕감 받았으니 의도했던 안했던 주인의 대외적인 평판을 올라간것으로 보이며 주인이 봤을때 자신의 재산은 손실이 없고 주인에 대한 평판이 올라가는 등 청지기로써의 직분에 맞게 일을 잘 처리하자 이것때문에 칭찬을 했다라고 하신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 일화를 통해 바리새인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까지 말씀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뭘까 고민을 해봤는데 이후 나오는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한다라는 누가의 디스하는 내용과 이전장 다음장의 내용으로 판단을 했을 때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것을 이용하여 맘몬-돈을 숭배하고 자기 사욕과 불의한일에 동참하는 모습들에 대하여 비판함과 동시에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 나라의 재산을 관리할 청지기로써의 모습을 회복할것을 촉구하시는 내용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교회와 성도가 맘몬-물질숭배와 불의에 동참함으로 하나님의 일 즉 가난해서 고통받거나 불의한 일로 인하여 고통받는 자들을 외면을 한다라면 하나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책망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재산을 관리할 청지기 직분을 다른 합당한 자들에게 주실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불의함으로 부터 돌이킬것을 촉구 하시는 내용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따라서 이전장에 나오는 탕자비유가 하나님을 떠난 둘째 아들 같은 자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라면 이번장의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하나님의 재산을 이어받을 첫째 아들과 같은 하나님의 성도들이 믿는다 하면서도 청지기로써 살지 못하고 세상사람보다 더 악랄하게 살고 있는 교회와 성도들이 불의로 부터 돌이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비유이지 않나 싶습니다.
도날드닭님께서 해석하시는 것은 보편적으로 많이들 하시는 해석입니다. 제가 그 해석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 영상을 통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돈을 잘 사용하자는 생활률로 해석하기보다는 하나님의 성품을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종말론적으로 살자는 취지의 영상입니다.
그리고 앞에서 도날드닭님께서 설명하신 종은 로마인들이 고용했던 헬라의 지식인 종을 말씀하시는 듯 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리스 종들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들 청지기는 종이 아니라 신하라고 하는 게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자놀이에 대한 부분은 잘못 아신 듯 합니다. 이자놀이를 인정한 것은 칼빈이 제네바 시에서 처음으로 공식 인정하므로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됩니다. 그래서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책을 통해서 칼빈주의가 자본주의를 발흥하고 부흥시키는 큰 역할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이자 놀이는 매우 악한 행동으로 일반적으로는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역시도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주라(눅6:34-35)고 말씀하실 정도입니다. 이자에 대한 인정과 이자놀이는 종교 개혁 이후에 보편화되고 그 전에는 아주 악한 사람들 중 일부가 그 일을 했고, 그러한 행위는 사회적으로 큰 지탄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현대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고대 사회를 오해하기 쉽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자 탕감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청지기는 원금 자체를 싹뚝 잘라줍니다.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이해안됐던것이 다소나마 풀어지는 느낌입니다
감사합니다
솔직히 정답을 아는 자ㅡ 있나요. 자기 생각을 말하는 선에서 나누는 것이 더 풍성할 것 같은데. 다양한 측면 각기 처한 출발점이 다르니까. 설교자의 강요에 책임질 자 없잖아요. 과연 그러한가 상고하는 수고도 씨뿌림이겠죠.
이 비유의 설명을 들으면서, 생각 난 또 하나의 비유가 있습니다. “달란트의 비유”입니다.
그 비유에서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주인을 굳은 사람으로 곡해하였기에
주님께서는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 24-26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온전히 의지하는 자를 용서하시고,
비록 죄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아는 그의 지혜를 칭찬하십니다.
th-cam.com/video/eMDl_Exh9SU/w-d-xo.html
불의한 청지기가 맡은것은 돈 뿐만이 아니라 사람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돈으로 요약 표현한 것이라 사료됩니다
하나님은 일생을 악하게 허비한 사람이, 자신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죄 값을 대신 심판 받으시고 깨끗하고 의롭고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게 사역하신 구세주 예수님을 전도한 일을 칭찬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불의하고 더러운 인간인데, 예수님만 참 진리되신 신이요 인간의 대표자시니 더러운 나를 짓밟아 버리고 진리이신 예수님으로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내가 얼마나 더러운줄 안다면 나로 살 수 없습니다😮
와 왜 이게 지금 깨달아지네요.
감사합니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물질 이야기가 아닙니다
물질로 비유한 탕감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죄사함 을 설명하기 위한 비유입니다
예수가 죄인된 우리와 연합함으로 불의하다고 고발당하고 결국 십자가 처형 받으셨으나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살리신 비유입니다
그것이 예수의 지혜입니다
누가복음(16:1~13)
청지기는 평소에도 주인을 속였고 해고 당할때도 자기 유익을 위해 채무자들의 빚을 조작했다.
(8절) 그럼에도 주인은 오히려 그가 슬기롭다고 칭찬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 청지기같은 사람들이 진짜 지혜롭다는 것이 아니고, (사탄이 권세잡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구원받은 의로운자)보다 더 잔꾀를 부린다는 비꼬는 비유임.
(쉬운성경은 “[자기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빛의 자녀보다 더 슬기롭다” 인데, 자기 욕심 추구를 위해 온갖 술수를 내는 것이 묵묵히 정직한 의로운자보다 꾀가 많다는 의미임)
(9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러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 거짓된 재물(부정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사귀면 결국 멸망으로 가게됨을 설명함.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는 말을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을 얻으리라”는 말과 비슷한 분위기이므로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안됨. ‘그들이’는 불의의 재물로 사귄 친구들을 말하는데, 그 인간들이 구원할 능력은 없으므로 결국 나쁜돈으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멸망의 심판을 받는다고 보는 것이 옮다고 여겨짐. - 부자/나사로 이야기도 부자는 영원히 죽지않는 멸망의 처소에서 영주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표현으로 하면 “그렇게 술만 먹어봐라! 결국 병에 걸려 죽는다”는 방식의 표현임)
(11절)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 “~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으로 (바르게)가 빠져있음. 즉 (이미 설명한) ‘불의한 재물’ 사건의 경우에도 이 청지기처럼 살지 말고 바르게 충성하지 않으면 누구도 아무것도 맞겨지지 않을 것임을 말함.
(풀어서 표현하면 “불의한 재물의 경우에도 욕심을 위해 꾀부리지 말고, 바르게 충실하지 않으면 누가 참된 것을 맡기겠느냐!”)
(12절) “너희가 남의 것에 충성하지 않으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 일꾼이 남의 것(주인의 것)에 충성해야 너희의 것(급여)를 받지 않겠느냐!
(13절)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 두 주인은 안되듯이 하나님도 다른 것과 함께 섬기는 것은 안됨. (청지기처럼 속이면서 자기 인생을 추구하지 말고, 피조물인 인간은 오직 인간의 주인이신 하나님 한분만 바로 섬겨야 함)
(잠깐 지나가는 세상에 대한 욕망(욕심)으로 하나님께 돈/건강/명예/출세 등을 요구하는 기도를 한다면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섬기는 것이므로, 오직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서 더 잘 아시고 자신을 이끄심을 믿고 주시는 현재상황에 순종하며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가시기를 기도하며 진리의 말씀따라 의의길을 인내하며 가고, 세상이 아닌 하늘에 소망을 두고 거룩하게 사는 것을 주께서 기뻐하시고 구원해 주심을 깨닫게 됨)
형제 여러분 염전 피해자들을 구원의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의 모순, 기록당시에도 같은 말씀이었다면 그들도 주석보고 다른 서적을 뒤적여서 연구를 해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나. 그렇게 다 신학자가 되어야 믿음이 생기나. 성경은 영적이다. 영적인 것이 손에 잡히고 눈에 보이고 귀에 들렸나. 그때도 비유 아니었나. 그 때는 죄가 없어 잘 이해했고 지금은 아닌가?
지금 불의한 청지기 해석을 여기저기 다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그런데...이곳도 와닿지 않습니다..ㅠㅠ
꼭 입맛에 맞는 해석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LogosCommunity'입맛에 맞는'이란 표현에서 비꼬는 게 느껴집니다
아무튼 어떤 설교도 100% 공감은 없고 있다손치더라도 그것이 자기에게 인쳐져 조각되어져 돌판으로 다듬어져야 주께서 친히 말씀으로 기록하여 새기신다. 말씀이시니까 인쳐지고 할례되고 새겨진 흔적이 곧 기념책이요 생명책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만하지 말고 주를 품고 그 마음과 성품으로 화해야 한다.
불의한 청지기 비유는 이 단어를 모르면 해석이 불가합니다. 맘몬....윌리엄 틴데일이 이미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을 오래전에 내놓았죠.
영어권은 이 자료를 대부분 읽어봤기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이 없을 듯 하네요.
불의의 재물은 불의의 맘몬으로도 불리웁니다. 맘몬은 히브리어로 필요이상의 여분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의 재산은 모두 하나님이 내려주신 것입니다. 청지기는 세상 판단으로 즉 법률적으로는 자기의 소유 재산을 증식하면서 관리했던 것입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맡긴 재산에 불과한 것이죠. 이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윌리엄 틴데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 사람이 불의했거나 잘못된 방식으로 돈을 번 것도 아니다. 다만 맘몬 즉 자신의 필요 이상의 재산 그 자체가 불의하기에 "불의의 재산(맘몬)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이 사람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자기의 재산을 불우한 이웃에게 탕감해 준 것입니다. 세상 표현으로는 기부천사인 것이죠.
주인의 이문에 붙인 자기 몫을 포기한 것 아닐까요.
댓글들 보고 느끼는건데 멋대로 생각하고 해석 다 할거면 왜 공부해?
감사합니다.
기꺼이 그시대에 다가가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시대의 문화와 인간의 전통도 사용하시지 않나요?
맞습니다.
내용은 좋은데 왜 시청자들을 낚시하는 워딩을 쓰시는지... 뭘 그렇게 오해를 많이 할까요?? 워딩이 아쉽네요.
조언감사합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건강, 지식, 물질, 재능... 그 모든게 주인되신 하나님의 것임을 안다면 청지기비유는 이해가 됩니다 주인의 돈을 그렇게 사용하는게 정당한가? 질문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가진 모든 게 내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임을 안다면 비유내용은 전혀 이상한게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현실에서는 배임죄를 저지른 청지기를 하나님은 칭찬하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소유이고 우리는 청지기라고 말하지만 의식 깊은 곳에 마귀는 각자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심어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에 불의한 청지기라고 제목을 달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것이 위치만 이동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청지기는 빚진 가난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것으로 도움을 준 것이므로 약자편에 서신 하나님께서 칭찬한 것입니다. 진정으로 청지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의 난제입니다
우리는 불의한 청지기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주인의 심판앞에 빚진자들을 탕감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빚진자를 탕감해야 합니다
불의한 자이지만 빚진자를 탕감해야 칭찬
받습니다
말씀의 본질은 불의한 청지기지만 주인에게 빚진자를 탕감해야 한다는 내용이 아닐까요~
다른 내용이 들어가면 이해하기 어려워 집니다
순종하는데 집중해야 하는 급박한 시대입니다
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억지 해석입니다. 청지기가 그런 선한 의도를 가졌더라면 자신의 돈으로 선행을 베풀었어야합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은 그럴듯해보이지만 참으로 위험천만한 해석입니다. "주인이 선하고 자비하시니 주인의 채권을 주인의 허락없이 탕감해주는 것에 대해 그분은 기뻐하실거야!"라는거 아닙니까? 주인은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하였으나 해고를 철회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칭찬한 것은 그의 재빠른 임기응변입니다. 정말 선생님의 논리대로 청지기가 주님의 자비하심을 깨달았더라면 회개하고 그분께 용서를 구했어야지요... 자비하심을 알기는 했으나 청지기가 결국 기댄것은 세상사람들의 품이었습니다.
임기응변을 칭찬하신다면, 그리스도인은 기회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뜻으로 보이네요
주인의 선한의도를 이해한 행동이라는 논거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억지해석이고 위험천만하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주인의 뜻이 선하기 때문에 종이 주인의 선한행동을 따라 하는 것이 바르다는 것은 좀 과장된 논리가됩니다.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준것은 주인의
너그러움을 깨닫기보다는 그저 빚진 사람들에게 잘보이기 위함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예수님이 왜 그런 비유의 말씀을 하셨을까? 천국의ㅇ비유라고까지 하셨는데 청지기의 행동을 잘하셨다고 했지만 참뜻을 알기가 어렵네요
청지기의 임기응변을 주인이 칭찬했다구요?
웃고갑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독자에게
그러나 그 형상을 회복해야하는 독자에게 그분의 성품을 본받자는 말씀이 억지고 위험천만한 해석이라구요?
어떻게 그런 생각을하셨는지 묻고싶습니다.
우크라이나를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뉴스를 보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신 점은 그가 그의 세대에서 지혜롭게 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빛의 자녀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이는 빛의 자녀들이 불의한 청지기를 통해 뭔가 교훈을 얻기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불의한 청지기가 퇴출후 자신과 공범이 된 채무자들과 범죄 공동체가 되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운명공동체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빛의 자녀들을 보십시오 그들은 빛의 자녀라 자칭하면서 정작 운명공동체 만드는 데는 소홀합니다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의 죄를 마음대로 탕감해 줄 수 있는 하나님께 권한 받은 빛의 청지기임에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인은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즉 그가 퇴출후 먹고 살 길을 만들기 위해 물론 불의한 방법이긴 하나 그는 원래 불의한 자였기 때문에 전혀 이상하지 않은 불의한 방법으로 채무자들과 범죄한 운명공동체를 조직하여 살 길을 대비한 점을 칭찬한 것입니다 이것은 불의한 방법과 불의한 공동체 자체를 칭찬한 것과 다릅니다 칭찬한 것은 불의한 세상에서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하게 친구를 만들어 자기 앞 길을 대비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빛의 세계에서 빛의 자녀들에게는 전혀 칭찬받을 일이 아니지만 한가지 칭찬할 수 있는 포인트는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한 친구를 삼았다는 점이기에 의의 세계에서 의의 청지기는 의로은 방법으로 친구를 삼으라는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다만 불의한 청지기에서 충분한 설명이 이뤄지지 않고 마치 불의한 방법으로 불의한 친구를 삼은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했기 때문에 제2독자인 사람들은 혼동이 되는 것입니다만 제1독자들은 바로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빛의 자녀들은 이 세상에 있는 동안 빛의 공동체 의의 공동체를 만들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건설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의 자녀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여기서 먹고 사는 것은 비단 현세만을 말하는 행위가 아니라 내세에서도 포함하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해석은 누가 강도맞은 자의 이웃이 되는가의 비유와 상통하며 작은 소자에게 물 한그릇 주는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라는 비유 등과 연결해서 풀이가 됩니다 궁극적으로 포도원 주인의 비유까지 연장하면 바로 지혜로운 청지기는 적은 시간 노동을 한 자에게도 똑같이 임금을 지붏한 주인의 뜻을 따라 모든 하나님께 빚진 자에게 죄의 빚을 탕감 시키는 복음을 전해 먼저 믿은 자나 늦게 믿은 자나 동일한 주인의 은혜를 맛보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행위는 분명 불법적인고 비윤리적인 범죄입니다
그러나 불의한 세계에서는 그게 정상적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눠 가지면 서로 이웃이 됩니다 공동체가 됩니다 친구가 됩니다
그러나 주인이 칭찬한 것은 불의한 공동체 조직을 만들었다는데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한 청지기가 주인의 것을 도적질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가 퇴출후 살 길을 도모하기 위해 주인의 것을 경감시켰다는 것인데 이 부분은 분명 윤리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잘못된 범죄입니다
그러나 복음이라는 하나님의 소유를 빛의 자녀들이 마음대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빚진 죄인들의 빚을 탕감해 준다면 하나님은 이를 분명 기뻐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바로 그것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의의 세계에서도 의의 법칙에 따라 죄의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의의 세계의 주인인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십니다 따라서 불의한 청지기와 달리 의의 청지기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해서 죄인이었던 불신자들과 자신이 이웃이 되고 친구가 되고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운명공동체가 됩니다
우리는 내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인 복음을 전함으로 이웃을 만들고 친구를 삼아 의의 운명공동체를 만드는 지혜로운 칭찬받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에 대한 미천한 저의 견해입니다
그리고 한가지 추가하면 여기서 불의한 청지기는 유대인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가능성이 큽니다 유대인 중에서도 바리새인과 서기관들 제사장과 레위인들이고 현대로 적용하면 사제들과 목회자들이 되겠네요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나라에서 청지기로 일하면서 자신의 배만 불리는 불의한 청지기들니까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범죄 공동체를 만들었다는데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것으로 친구와 이웃을 구제하고 그들의 진정한 친구와 이웃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복음의 주인이신 하나님은 바로 그러한 청지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은 빚진 자들에게 인색한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만 해석이 좀 억지스럽네요. 불의한 공동체는 안 민드는 게 더 낫습니다. 범죄 단체 조직을 옹호해선 안 됩니다.
히브리 뿌리에서 히브리 관점으로 말씀을 보는 방향으로,
대체신학에서 가르침을 받아 시작한 한국교회는 세상의
발전?에 따라 계속 그 대체신학을 키워가는 길에서 ,
방향을 바꿀때가 벌써 되었습니다.
저는 메시아닉 쥬 사상을 따르지 않습니다. 정통 기독교의 신학을 대체신학이라 보지 않습니다.
너무 억지 해석처럼 보입니다. 본문을 보면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을 축내다가 해고통보를 받는 것이고 그 후 그의 행동은 오로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주인의 재산을 더욱 축내는 행동을 합니다. 아무리 그렇듯하게 말을 해도 그의 불의함을 합리화 시킬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창세기 3장 에덴동산의 청지기가 선악과 먹고 해고당하는 장면을 연결해서 해석해야 한다고 봅니다. 즉 모든 인간들은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임을 성경은 폭로하고 있고, 자신이 해고당한 불의한 청지기라는 사실을 깨달은 자만이 그 불의에서 건져줄 친구(예수)가 필요함을 알게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본문은 이걸 지혜롭다고 하는 것이지요
제가 이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있을까봐, 논문쓰듯이 풋노트를 다 달아서 학자들의 의견을 첨부했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주장을 하시다니 아마 성경과 신학을 상당히 깊게 공부하셨나 봅니다. 자기 주장이 아니라 공인된 학자들의 주장을 올려주시면 제가 일일이 찾아보고 공부하도록 하겠습니다.
@@LogosCommunity 저 역시도 이런말을 하면 신학자들의 논문을 내미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봤습니다. 그럼 공인된 논문을 쓴 학자들의 의견은 다 맞기 때문에 무조건 받아드려야 합니까? 혹시 국어시간에 배우셨는지 모르겠는데 그걸 가르켜 "권위에 호소하는 논증적 오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노력을 폄하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공인된 논문이라고 할지라도 성경위에 있을 수 없기에 어떠한 논문이라도 틀릴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공인된 학자들을 올려 달라고 하셨은데, 저는 공인된 학자들이 쓴 글을 읽고 제 나름대로 정립한 신학을 바탕으로 성경을 해석해서 올렸습니다. 저는 공인된 신학자들의 글들을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경말씀을 근거로 삼을 뿐입니다. 그래서 본몬 비유을 해석하면서 창세기 3장을 언급한 것이구요,,,,, 공인된 학자들의 논문을 의지하지 마시고, 성경말씀만을 의지하세요,,, 만약 성경말씀을 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면 어쩔 수 없구요!~
참고로 청지기가 주인의 성품까지 이해하고 그에 맞게 행동해서 칭찬받았다식으로 말하시는데 성경적 근거도 전혀 없는내용을 논문을 바탕으로 추론해서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을 가르켜 성경의 대표적 오류인 알레고리 해석, 즉 풍유적 해석라고 합니다. 그런식이면 인간의 행위로 얼마든지 주인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요? 인간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가르켜 행위구원이며,,, 바울은 십자가의 원수된 교회라고까지 했습니다. 성경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창세기를 시작하면서부터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시작되고 있는지,,, 그리고 그 불가능한 인간들을 어떻게 일방적 은혜로 건져 올리는지,,,,, 아니 본인의 모습을 먼저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을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청지기인지, 아니면 오늘도 내 생존에만 몰두하느라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횡령하며 살고 있는지., 오죽하면 예수께서 인간의 배가 신이라고 했겠습니까!~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습니다. 심히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설령 주인의 마음을 깨달았다고 해도 그것은 그 사람의 실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찾아와 주신 일방적인 은혜에 의해 그렇게 된 것입니다.
@@morming94 창세기 3장과 연계는 나가도 너무 나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행위구원과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어떤 근거로 너무 나갔다는 생각하시는지 설명을 구체적으로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의 가능성에 대해 님께서는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계시는지요?
@@morming94 창세기 3장 자체가 구세주 탄생 예언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그냥 인간과 뱀의 관계가 험악 일변도로 간다는 의미이지요
도데체 이 비유에 자본주의와 물질만능주의라는 개념이 왜
개입되는지 이해되지가 않습니다
좁은 이념의 틀로 성경말씀을 해석하는 것보다 더 심대한 위험은
없을 것입니다
이런식으로 성경을 해석한다는 것이 참 안타깝고 슬픕니다.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밑에 어떤 분이 올바르게 말씀을 하셨네요.
불의한 청지기는 평소에도 불의했고, 그리고 마지막에도 주인의 재물을 자기 마음대로 허비해버리는 불의를 저지르고 맙니다.
그런데도 주인에게 칭찬을 받습니다.
여기서의 칭찬은 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한게 아닙니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의 미래(해고 이후의 삶)를 대비한 그의 지혜(약삭빠름)에 감탄을 한겁니다.
하물며 이 불의한 청지기도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의 미래를 대비할 줄 아는데, 너희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을 누리고 살면서 미래에 대한 어떤 준비를 하고 사느냐.. ? 이것이 이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의 말씀이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입니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물질, 내 시간.. 내가 가진 모든 것이 주님이 나에게 맡기신 것인데,
이것으로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친구를 사귀는게 맞지 않느냐. 이렇게 교훈을 받아야죠.
(고린도전서 4:7)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불의한 재물의 정의 : 내 것이 아닌데 내것처럼 쓰고 있는 모든 것.
유튜브 똑바로 합시다.
불의한 재물로 자기의 미래를 대비하자는 해석이 저는 어의없어 보입니다.
그 어리석어 보이는 해석이 맞는 해석이에요. 다른 많은 분들이 그렇게 댓글을 달았네요. 빨리 이거 영상 내리세요
한번 이 본문 앞뒤 문맥 잘 살피면서 다시 묵상 바래요. 선생님..
하나님이 주신 모든 것. 내 건강 내 물질 내 시간 이런것들을 잘 사용해서 복음을 전하면 나중에 그 사람들이 천국에서 너에게 얼마나 고마워 하겠냐..? 이렇게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의 모든 말씀은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해서 해석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사는 방법을 얘기 하고 있는게 아닙니다.
헌물은 돈이 아닌 비유로 하나님 자녀입니다.
알레고리칼한 해석을 좋아하시는군요
이해할 수 없음
어떤 점을 이해할 수 없으신지요?
솔직히 들어도 잘 모르겠어요. 여러 해석이 다분해 보이는 비유입니다.
솔직한 반응 감사합니다. 영상 만들때 누구에게 맞추어야 하는가는 항상 고민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