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유에 대한 검색을 하다 이렇게 귀한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야생마가 경주마가 되는 것이 온유라는 말씀에......너무 많은 것이 뇌에 입력되어 있어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이 복음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일단 주욱 전체를 듣고 다시 차근차근 들으려는데 마음만 급하네요. 고맙습니다.
좋은 격려의 말씀으로 힘이 납니다. 성경적인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리고 싶어서 요한복음 강해를 했습니다. 이단들이 판을쳐서 계시록을 강해 했습니다. 또 언약과 하나님을 알리고 싶어서 창세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기는 없지만 나름 충실하게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생각해서 벌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지나버려서.. 참 깊이 있는 설명 감사드립니다. 역시 야곱도 그당신에 장자권의 권리에 대해서 알앗고 축복을 알았기에 어떤 방법으로던 그 장자권을 빼앗아 달아나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장자권은 니가 빼앗아 달아난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고 내가 축복하고 해야 하는것이다 .. 라고 야곱의 인생 전반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은 어떻게 할수 없다고.. 아마 자기가 도망온 사연을 설명했을 것입니다. 라헬한테 아마 사랑했으니 오만가지를 다 이야기 했겠죠.. 그리고 자기 집에서 많은 재산을 늘리고 하는것을 보면서 그도 그지방에서의 축복의 근거지를 가지고 가려고 했던것 같네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알지 못했는데 야곱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야곱때문에 궂이 그것을 문제 삼아서 라반이 야곱을 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라쿰이라고 봐야 하나요.. .... 이것을 보면서 모세도 자기 힘으로 출애굽을 할려고 할때 하나님은 그것을 들통나게 해서 피신하게 하고 그기서 40년을 보내면서 ... 이제 그떄가 되었는데/// 야곱도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직도 인간은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의 축복을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대조 해주시는것 같아서.. .. 목사님 말씀을 은혜롭게 잘 들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위하여 목숨을 건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내려고 지금도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는 저버리고 자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세는 그 이야기를 해주는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모든 자격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귀족집안, 좋은 교육,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 여러가지 자격이 있었지만 모세는 결국 광야로 동망가야 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말도 못하고, 자격도 없는 양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라쿰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축복과 은혜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 말씀 들으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상쾌한 아침 뭇새들의 주님을 향한 찬양소리 들으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라헬의 드라빔. 야곱의 저주로 베냐민 낳고 죽음. 여러 목사님 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리가 안돼요. 성서속이나 지금이나 손으로 만든 하찮은 물건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 일본은 말할것도 없고 . 온세상모두가 온통 우상숭배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스스로를 파멸로 깊은 무저갱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네요. 저도 나무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집에 걸어놓고 있는데 눈으로 바라보면 폴터가이스현상. 이 나타납니다. 응답해주십니다. 화초들.물건도 영적체험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주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왜 ? 저승사자.냐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지금은 대답하기 싫다고 하면서 .. 눈:영적인 분별력. 눈빛: 영적인 암시. 전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 복을달라고 축복해달라고 하는 기도가아닌. 전세계를. 이스라엘을 비롯해 하늘 땅 바닷속 깊은곳까지. 이세상 모든사람들 을 위해 무릎끓고 두손모으며 하늘 본향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는 피조물 벌레만도 못한 죄인입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죄인입니다. 날마다 감사가 끊이지 않으며 길을걸을때에도 좌우. 오가는 사람들모두 축복하면서. 목사님 ! 혹시. 제칠일 안식일 교회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간략하게라도. 관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괜히 귀찮게 해드려서요. 어느 목사님 께서. 이단리라고 하시길래 정확하게 알고 말씀 하시는지 알고싶어요 오늘도 기쁨과 행복넘치시고 축복임하시옵소서.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멘입니다.
안식교는 이단으로보는 견해와 개신교의 교파중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서구권에서는 이단 시비는 많지 않습니다. 이단으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안식일과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있다. 그리고 성경 일부를 부정하거나 지옥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안식교의 교리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실제로 없고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 것에서 율법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째든 이단이건 아니건 안식교가 강조하고 중요시하는 교리는 일반 개신교에서 강조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안식교의 시작이 이단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야곱처럼 훔쳐서 달아나고, 지명이 생긴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축.복을 훔쳐 달아났다는 표현은 영 이해가 안되네요. 남편 몰래, 들고나오면 안될 걸 들고나와 도리어 라헬에게 화가되었으니까요.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암것도 모르고 아내를 저주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두번 들었는데 어렵습니다. 일단은 모르겠어요. 어려워서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설득력이 부족했나봅니다. 라헬도 야곱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곱도 축복을 훔쳐 달아났는데 라헬도 축복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우상을 훔쳐 달아납니다.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인간은 이렇게 축복을 찾이하려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라헬도 자신의 노력으로 축복 받지 못한다는 것을 라헬의 사건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라헬이 가져온 드라빔은 우상이고 그녀가 낙타안장에 깔아 뭉개서 앉았고, 또 그날이어서 부정하게 되는 점을 혹시 나타내려 한건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거기 우상을 다 박살내시잖아요. 그리고 가나안으로 돌아갔듯이요. 옛날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 이집트 대표 새미라는 분이 이집트사람들 종교관이 어떠냐고 하니까. 이집트는 형상이 있는건 절대 안섬긴다고 하네요. 하나님 아니면 알라만 믿는다고하고, 스핑크스 피라미드 이런거 그냥 관광자원에 불과하다 하네요. 혹시 애굽의 우상이 박살나는 것에대한 예표로 보는건 좀 무리겠지요. 여튼 아버지의 것을 훔치는 공통점까지는 알겠고요. 드라빔을 깔아뭉갰기에 그것을 숭배하는 맘으로 들고온건 아닌 것 같아요.
1~4번 해석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 바라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기에 해석도 다양한 것 같습니다. 5번 해석은 인간과 하나님 관계 측면에서 바라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경적 해석관점(하나님과 나)이겠죠?) 야곱은 야훼의 하나님이지만, 라헬은 이방신이죠. 끝이 다르지만, 섬기는 신을 향한 욕망과 열정의 원리는 동일한 측면인 것 같습니다. 야곱은 딸 디나 사건 이후로 상수리나무(엘라나무)밑에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를 묻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정신적 지주였던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벧엘 밑에 있는 상수리나무(알론나무) 아래에 장사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도중 라헬이 죽고 길 가에 묻어주죠. 끝으로 장자 르우벤이 라헬의 몸종, 아버지의 첩을 취하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거하는 순간, 야곱의 양손이 다 짤려나가고 야곱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조차 갈갈이 찢겨 나간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 딸 디나가 세겜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야곱은 오히려 주변 민족들과 관계가 나빠질까봐 소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재산,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자기 힘으로 지키려는 모습이였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죄가 장성할수록, 다시 벧엘과 가까워지고, 야곱의 비열함이 극에 달하고 자기능력을 의지할수록, 하나님께서 그 집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라헬이 아버지의 우상을 훔치는 대역죄를 담대하게 범하는 마음가짐은 언약의 장자권을 담대하게 훔치는 야곱의 마음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라헬의 아버지가 섬기는 신이 이방신이기 때문에, 밧줄을 잘못 잡은 것 뿐이죠. 그래서 막벨라 굴은 라헬이 아닌 레아가 들어가고 레아의 6명의 아들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시흐름이 담겨있습니다. 야곱은 죽기까지 레아보다 라헬을 레아가 낳은 자식보다 라헬이 낳은 자식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상실하는 마음을 위로 하기위하여 베냐민을 주셨고 요셉을 통하여 가족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구원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레아의 아들인 유다지파에서 계보를 연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6번째 아들 '스불론' 이름은 '거하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값을 지불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을 치셨지만,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왕되신 그 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날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오물과 죄들이 나의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죄인됨을 인정) 바리세인들처럼 모세의 율법을 주장하며 우리도 예수처럼 의롭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벧엘에 거하지 못하고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BibleTV 선생님, 묵상이 연결되서 댓글 또 남깁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엘벧엘'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처럼 모세도 '떨기나무'에서 '시내산'으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주권'을 의심하다가 인정한 성경인물들 : 다윗의 감람산, 바벨론 느부갓네살왕, 돌아온 탕자 등 ) '벧엘', '엘벧엘', '떨기나무', '시내산' 모두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차이점은 모세가 떨기나무에 접근하기 전에 신발을 벗었고 나머지 사건에서는 신을 벗으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분열되었을 때, 벧엘은 우상숭배 지역이 되고 시내산은 엘리야 선지자의 피난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은 벧엘에 다시 오르기전, 시내산에 오르기 전에 옷을 빨아 입습니다. 아마도 요한계시록의 거룩한 세마포(계19:8)를 예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제단을 세웠던 가나안 루스(아몬드나무)지역은 우상숭배 지역이 되고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않아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치고 달아났다면, 야곱과 모세처럼 라헬도 아버지 라반의 집에 또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창세기35장에서 라헬은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가에서 베냐민을 출산하자마자 죽게 되죠. '라합'이나 '기브온 주민들'이나 '룻'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이 야곱과 모세 대신 천국에 먼저 들어가겠네요. (로마서 11:25~27) 이스라엘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먼저 천국에 입성해야 합니다.
야곱이 과연 일찍부터 교활했을까요? 그 마음의 저변에는 하나님의 믿음이 깔려있었다고 봅니다 찐믿음은 아니지만....사람은 저변에 깔려있는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않을까요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야곱은 어려서부터 이미 저변에 있었어요 ... 우린 몰랐어도 하나님은 알고 있으셨죠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저변에는 선하고 싶은 갈급함이 있기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믿습니다 나의 저변엔 과연 선하게 살고 싶은 갈급함이 있는가?
우리의 삶이 매일 돌아온 탕자와 같은 삶이죠. 누구나 집을 나가지만 돌아올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콩나물 시루에 물 빠져도 콩나물이 자라듯 말씀과 함께하시면 됩니다. 콩나물처럼 계속 자라고 있으니 말씀만 놓치 마시고 주 안에서 이기는 자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축복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목사나 다른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창 1:28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 즉, 축복이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쓰였습니다. 또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을 축복하셨고 (창 2:3)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셨고(창 9:1)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이렇게 계속해서 축복하신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2-3절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니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빌어 축복해 주는 일도 성경에 나타납니다. 때문에 목사님들이 축도를 하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성도들에게 빌어주는 것입니다.
@@정대훈-n1s 아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군요. 한자어로 축복은 복을 빌어 준다는 뜻이 맞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은 엄밀하게 틀린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복과 축복을 혼합하여 같은 뜻으로 쓰기 때문에 앞에서와 같이 설명드렸습니다. 영어로 축복도 blessing 이고 복도 blessing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축복은 "『기독교』 하나님이 복을 내림."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복을 빌다는 뜻이지만 기독교에서 복이라는 개념으로 그대로 받아져 뜻이 굳어졌습니다. 때문에 복과 축복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드라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한다라니! 우상숭배적 발언 인데요! 저는 라헬의 드라빔이 곧 인질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비인 라반이 마치 짐승을 팔듯 사촌 야곱에게 자신들을 팔앗으되, 레아와 라헬모두 야곱을 자신의 남편으로 인정햇으며 야곱의 사랑을 더 받기위해 그렇게 출산경쟁까지 벌엿던 것입니다. 한데 이런와중에 아곱은 라반의 사위이자 쓸만한 일꾼인데도 불구하고 정당한 댓가 지급하기를 거부했고 , 그 임금 깍기를 열번이나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인데 라반스스로 야곱덕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의 재산이 불엇음을 알고 있었고, 라반이 지불하는 품삯이 바로 자기 딸들인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 자식들인 외손주를 먹여살리는 돈인것도 알고 잇엇고, 야곱이 두 딸을 위해 14년을 일해서 신부의 값을 치뤗으면 장인으로서 책임지고 사위의 독립을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독립할 기회를 없애고 거의 종살이들 시킨 것입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야곱이 제기하자 간교하게도 스스로의 책임으로 품삯을 결정해야 함에도 그 책임을 야곱에게 물러 스스로 품삯을 정하라하고 야곱의 독립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독이 든 잔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과 꾀로서 앞으로 얻을 것을 라반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야곱은 얼룩무늬,점박이,검은 양과 점박이 얼룩무늬 염소를 요구하지만 라반은 그러한 염소들을 가려서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넘겨줌으로서 다시금 불의한 탐욕을 드러 냅니다. 야곱이 열심히 그 힘을 다해 길러내는 염소와 양은 모두 흰것으로서 라반이 가로채고자 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문에 야곱의 술수가 나타나는데 놀라운점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거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지식과 기술로 최선을 다하였지만 솔직히 그 얄팍한 재주가 통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 하겠습니까! 하지만 라반의 불의와 야곱의 고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술수에 동의하시고 그가 바란대로 튼튼한 양과 염소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상태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라반의 아들들이자 야곱의 처남들이 야곱을 비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이가 바로 레아와 라헬 입니다. 레아는 성경상에서 순둥이로 묘사 됩니다. 안그리도 외모가 뛰어나지않고 눈이 흐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앗을 테지요. 하지만 아버지에게 순종적인 딸이었고 비록 동생에게 밀리지만 야곱의 정처였던 겁니다. 하지만 레헬은 오로지 야곱 바라기였습니다. 야곱이 7년을 일하는동안 라헬도 7년을 기다렸으며, 야곱이 또다시 7년을 일하는 동안 라헬도 또다른 7년 도합 14년을 야곱이 자신의 신붓값을 치르는 동안 함게 고생햇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문에 야곱바라기 라헬은 아버지 라반을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얻기위해 또 자신의 집을 일으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누구보다 잘 보아왔습니다. 야곱의 능력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으로 라반의 부가 성장 햇는데도 오히려 비난하기 바쁜 자신의 오빠들...... 야곱이 귀향을 선택했을때 레아와 라헬은 두 말 없이 동의하고 전가산을 정리하여 야곱을 따릅니다. 하지만 라헬은 하란여인이기도 합니다. 하란사람이 집안의 드라빔의 힘을 모를리 없습니다. 만약 라반과 그 아들들이 야곱의 분가를 불허하고 해를 가하려 한다면 드라빔 만큼 강력한 인질은 없을 터입니다. 드라빔은 가신상입니다. 수호신으로서 가장의 권위와 가문자체의 힘을 표상 합니다. 집안의 가신상을 물려준다면 가장으로서의 권리도 물려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한집안에 속하였다면 그 집안의 드라빔의 권위에 도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헬의 라반집안 남자들의 손발을 묶기위해 드라빔을 훔쳤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아버지 라반이 바로 그 드라빔 때문에라도 야곱을 추적할 것을 간과 했습니다.만약 그것까지 생각했었더라면 라헬은 미리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낸것을 남편 야곱과 상의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라헬은 최후의 담보물로서 생각했기에 그리고 자존심 강한 야곱이라면 그것 용납햇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던지 나기 남편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서 야곱은 그 범인이 자신이 그리도 금찍하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인지도 모르고 신원미상의 드라빔 도적에게 끔찍한 저주를 선고했던 것입니다. 이까지 나오니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안장 밑에 감출 밖에 없습니다. 만약 드러나면 라헬의 남편 야곱의 저주로 죽거나, 아니면 아버지 라반에게 도로 끌려가게 될 판국이엇으니까! 그리고 야곱이 벧엘에 세운 돌과 갈르엣에 세운 돌은 모양은 같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같이 나무에 매달리지만 놋뱀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듯 말이죠! 벧엘에 세운 돌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이 함게 합니다. 하지만 갈르엣에 세워진 돌은 서로 저주를 피하자는 즉, 화합이 아닌 분리를 뜻하는 돌이기 때문 입니다. 여갈사하두다와 갈르엣이란 두개의 이름은 이 분열을 상징 합니다.
우상 숭배적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제 강해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가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드라빔이 인질이라는 입장은 몇몇 주석에서도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에 반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셔도 됩니다. 다만 저는 성경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해석하는 입장입니다. 창세기 31장을 해석하시고 이해하는 입장에 몇가지 다른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라반이 교활하게 야곱을 속이고 불의하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동의합니다. 레아가 순둥이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고 눈이 흐렸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눈이 흐렸다는 것도 해석상 논쟁이 있습니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넘어가도 외모나 성격이 순둥이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성경적 근거는 매우 부족합니다. 또 라헬이 7년을 기다리고 다시 7년을 기다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7년을 기다렸다 속아 레아를 아내로 맞이 합니다. 창 29:27-29절을 보면 야곱이 속아 레아와 결혼한 후 7일 후에 다시 라헬과 결혼합니다. 단, 다시 7년을 더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7년동안 기다려 속아 레아와 결혼하고 이에 대한 항의를 하자 7일 후에 다시 야곱이 원했던 라헬과 결혼하고 라헬의 지참금으로 7년을 더 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헬은 14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7년을 기다렸습니다. 드라빔이 수호신이고 가장의 권위와 가문자체의 힘을 표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근거는 약하고 추정입니다. 드라빔이 권위를 가졌고 그 권위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는 근거를 밝혀 주시면 저도 찾아 보겠습니다. 고대 점토판에서는 상속권을 주장할 수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런 권위가 있다는 말은 생소합니다. 드라빔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복을 주는 신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야곱과 장인이 서로 속이고 라헬은 아버지가 생각하는 축복을 훔쳐 숨겼습니다. 라헿은 드라빔으로 어떤 복도 빌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보호도 빌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있는 복을 빼앗아 버렸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BibleTV //레아를 숭둥이라 한것은 그녀가 눈이 흐렷다는 뜻에서 나온게 아닙니다.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한후 두 자매는 치열한 출산 경쟁을 벌입니다. 특히 라헬은 자신이 불임이자 자지 종을 야곱의 침대에 밀어넣어 낳은 자식을 빼앗아 자기것이라 우기는 무리수 까지 둡니다. 한데 저는 이 아이들의 이름 짓는 방식에서 둘의 성격을 뽑아 냈습니다. 레아 쪽에는 4명의 나이많은 아이와 그시녀 실바가 낳은 2명,중간에 넣은 2명의 총 8명이 있습니다. 라헬 쪽에는 그 시녀 빌하가 낳은 2명 스스로 낳은 2명이 있습니다. 레아쪽의 첫째는 (하나님이 보신) 르우벤, 둘째는 (하나님이 들어주신) 시므온,셋째는 (남편과 연합하리라는)레위,넷째는 (하나님께 찬양하라)유다 입니다. 레아의 다섯째이자 실바의 첫째인 (행운)갓, 여섯째인 (행복이라 부르는)아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아의 일곱째인 (값을 치룬)잇사갈과 (남편이 자기와 거하리라는) 스불론 입니다. 이에 라헬의 첫째이자 시녀 빌하의 첫번째인 (하나님의 판결을 내려주시리라는)단과 (경쟁에서 이겼다는)납달리,그리고 라헬쪽의 셋째이자 라헬의 첫번째인 (하나님께서 치욕을 없애주셨다 혹은 하나님게서 더하여 주시리라) 요셉과 마지막 넷째이자 라헬릐 마지막 아이 (비탄의 아들)벤노니 (이후 야곱은 (오른손의 아들)벤야민이래 개명함.)이 있습니다. 레아는 자기쪽 아이 대부분의 이름을 도전적이 아닌 수동적인 이름으로 짓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자기 가녀를 언니와의 전쟁의 도구로 인식해 도전적인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 싸움은 마침내 라헬이 막내를 낳다 죽으며 끝이나고 자신의 패배를 보며 비탄의 자식이라 이름 합니다. 라헬은 레아와는 달리 자기 자식이 장성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 결혼해서 자기 손주를 안겨 주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둥이라는 표현이 거칠다면 권위에 순종적이라 할까요? 성경에서 저는 단 한번도 레아가 자기보다 위인 아버지 라반이나 남편인 야곱에게 거슬러 대선 모습을 본적 없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떠나려 햇을때 동의한 것은 야곱이 자신의 남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경의 모든 손아래가 그러하듯 라헬은 매사에 도전적이었습니다. 즉, 제가 레아를 순둥이라 한것은 반대인 라헬에 대해 대척점에 섰음을 누타내고 싶었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인 것입니다. 물론 수종적인것과 수동적인것은 다르긴 하죠! 그리고 드라빔에 대해서는 복잡하더군요. 심지어는 '미이라화 한 죽은 사람의 머리'라고 까지 해석하는 쪽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착안한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가신상및 우상의 역할과 로마제국에서 가부장의 권위와 연관된 가신 라레스(라르)의 관습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물의 신 에아가 마법의 관장자로서 특히 치유마법의 주인이었으며 이 힘을 얻기위해 바닷속의 점토를 긁어모아 신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에아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증조 할아버지이자 염수의 신 압주(엔키)를 타도하고 바빌로니아 신의 왕이 된 존재 입니다. 홍수 이후 무엇보다 인간의 출발점이되었던 이 메소포타미아의 우상숭배를 멀리 ㄸ러어지짖 않앗던 하란에서 받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고대 일상 생활에서 우상인 일반 가장생활과 얻너 관곌르 가지는지는 로마의 라레스를 보면 잘 압니다. 로마에서 집을 지으면 집의 중심이 되는 아트리움에 조그만 라레스의 신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출입하는 모두의 시선안에 라레스가 보이고 자나가도록 했습니다. 또한 이 라레스에게 빵,포도주등을 봉헌물로 바치거나 초를 키고, 로마의 오래된 집안 제사가 지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후에는 다만 이 라레스의 표식만을 하거나 아니면 특정 자리를 비우는 방식으로 병질되엤고 소위 '기독교 공인'이후에도 5세기에 이르도록 이 라레스 신앙은 존재했다 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여신의 젖'을 먹은것으로 왕권을 과시했다고 하며 이것의 변형이 헤라의 젖을 먹은 헤라클레스와 은하수(Milky way) 신화 입니다. 즉, 신과의 연관성은 그에게 특정한 권위와 힘을 부여한다는 것은 우주 오래된 주술신앙인 것입니다. 라헬은 이 드라빔에게 어떤 복도 빌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오로지 드라빔이 아버지 라반에게서 야곱으로 옮겻다는것 만으로도 이미 야곱은 드라빔의 영향력 하에 잇다고 믿은 겁니다. 라헬은 분명히 남편의 신 야훼를 존중 햇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신이 어떤 신인지 몰랐을 터입니다. 아니 야곱조차도 자기의 처소를 멀리벗어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놀라와 했습니다. 당시의 신은 그 신도들이 잇는 지역에서만 힘을 쓰는 지역신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좀 센 드라빔에 불과했던 것이죠! 하지만 야곱이 광야에서 만난 신은 무소부재의 신 지역에 영향 받지 않은 신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관야에 돌한 개를 세우고 거기에 거의 유일한 재산이엇을 기름을 부어 축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라헬에게 이런 경험은 없습니다. 그녀가 아는 신은 아버지 라반이 애지중지 싸고도는 드라빔 이었을 뿐이죠. 그러니까 라헬은 드라빔을 훔침으로서 하나님의 축복도 훔쳐내었다고 생각 했을거라 여깁니다. 라반에게도 라헬에게도 레아에게도 성숙한 하나님관은 없었습니다. 아니 주인공 야곱도 그저 그런 도토리 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듣고 자기가 겪은 경험이 조금 도움이 될 뿐!
좀 어렵네요... 드라빔을 모티브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드라빔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네요. 사사기 17장에도 미가가 드라빔을 만들었는데, 이런 우상을 왜 여호와의 신당에 갖다 놓았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양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맙습니다
귀에 쏙 들어옵니다
@@clarachoi3585 좋게 평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멘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
@@금년황-t7x 감사합니다.
목사님 강해 통독과
함께 들을수 있어 행복 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결한것 같지만 핵심을 묵상케하시니 감사합니다ᆢ 하나하나 말씀이 연결되어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게 쉽게 이해되네요ᆢ
좋게 평가해주시고 잘 들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길라잡이가 되는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성경통독 하다 합환채가 궁금했는데 바이블 티비를 만나 잘들었습니다 여러가지 궁금증 이 해소 될것같아 감사 드립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됩니다. 감사합니다.
알기쉽게 강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교훈적 강해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목사님 너무나 🙏 🙏 감사합나다 말씀만이 꼬집어 짚어주시니 알아듣기 쉽고 은혜가 됩니다 아멘
도움이 되셨다니 보람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더욱 가까워지시고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시길 기도합니다.
목사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하나님의 영광을 알고 찬양드리기 위해 우리에겐 영원이란 시간이 필요한 가봐요. 저에게는 희망이 없지만, 하나님을 묵상할 수록 생명이 넘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또 궁금해서 제 강해도 들으시니 하나님이 정말 기뻐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인생의 벧엘을 향하여 하나님께 함께 격려하며 같이 갔으면 합니다.
온유에 대한 검색을 하다 이렇게 귀한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야생마가 경주마가 되는 것이 온유라는 말씀에......너무 많은 것이 뇌에 입력되어 있어 선입견 또는 고정관념이 복음을 가리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에 두렵습니다. 일단 주욱 전체를 듣고 다시 차근차근 들으려는데 마음만 급하네요. 고맙습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보람됩니다. 천천히 묵상하세요.
God bless you 🙏 Jesus ❤️ you!!Only
감사합니다
할레루야!
예수보혈구원!
성령지혜믿음충만이십니다
라헬의 드라빔이 늘 궁굼했는데 이제 제대로 알게되어 감사드립니다
도움이 되어 보람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 우리가 알기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가 가장 중요하고 본질이라 생각했는데, 목사님 강해를 듣게 되어 감사합니다~우연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나님을 찾는 분들을 연결해 주시나 봅니다. 다음주에 있을 화상모임에 참여해주셔서 인사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벧엘의 하나님! 할렐루야 !아멘
요즘 뉴스보면 ,계시록이 떠올라서 찾다가,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의 강해를 지금 이 때에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진짜와 가짜를 구분할 선택권은 있어야죠.
목사님의 귀한사역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좋은 격려의 말씀으로 힘이 납니다. 성경적인 말씀을 전하고 싶어서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잘 알리고 싶어서 요한복음 강해를 했습니다. 이단들이 판을쳐서 계시록을 강해 했습니다. 또 언약과 하나님을 알리고 싶어서 창세기를 하고 있습니다. 인기는 없지만 나름 충실하게 강해를 하고 있습니다. 지켜봐 주시고 기도해주십시오. 감사합니다.
구독❤ 오늘 성경통독 중 뇌리에 맴도는 게 풀립니다.
도움이 되어 보람됩니다. 감사합니다.
창 31장 드라빔 검색하다 여기왔습니다. 모든 사건 사고 뒤에서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란 말씀이시죠? 벧엘의 하나님을 생각나게 하는 모티브! 저에겐 은혜가 됩니다^^
언약과 복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면서 풀어 보았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축복, 그리고 그 축복을 치열하게 찾이하려던 야곱까지 창세기는 이 축복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견해 감사합니다. ^^
😊
아멘 입니다ㅡ
감사합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훔치고 일찍 죽었죠 야곱이 저주를 하기도 했고 그만큼 우상을 섬기는 것이 무서운겁니다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더욱....
늘 궁금했습니다. 우상숭배라고 생각해서 벌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지나버려서.. 참 깊이 있는 설명 감사드립니다. 역시 야곱도 그당신에 장자권의 권리에 대해서 알앗고 축복을 알았기에 어떤 방법으로던 그 장자권을 빼앗아 달아나는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장자권은 니가 빼앗아 달아난다고 해서 되는것이 아니고 내가 축복하고 해야 하는것이다 .. 라고 야곱의 인생 전반을 통해서 알게 하시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성향은 어떻게 할수 없다고.. 아마 자기가 도망온 사연을 설명했을 것입니다. 라헬한테 아마 사랑했으니 오만가지를 다 이야기 했겠죠.. 그리고 자기 집에서 많은 재산을 늘리고 하는것을 보면서 그도 그지방에서의 축복의 근거지를 가지고 가려고 했던것 같네요..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알지 못했는데 야곱이.. 우리 독자들에게는 야곱때문에 궂이 그것을 문제 삼아서 라반이 야곱을 치지 못하게 하는 하나님의 일방적인 라쿰이라고 봐야 하나요.. .... 이것을 보면서 모세도 자기 힘으로 출애굽을 할려고 할때 하나님은 그것을 들통나게 해서 피신하게 하고 그기서 40년을 보내면서 ... 이제 그떄가 되었는데/// 야곱도
이제 하나님의 때가 되어서 돌아오는 과정에서 아직도 인간은 계속해서 인간적인 방법의 축복을 하나님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축복을 대조 해주시는것 같아서.. .. 목사님 말씀을 은혜롭게 잘 들었습니다.
야곱은 이렇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위하여 목숨을 건 치열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얻어 내려고 지금도 이렇게 억지를 부리고 있습니다. 훔치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는 저버리고 자시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어쩌면 모세는 그 이야기를 해주는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모든 자격 조건을 갖추었습니다. 귀족집안, 좋은 교육,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등 여러가지 자격이 있었지만 모세는 결국 광야로 동망가야 했습니다. 이 광야에서 말도 못하고, 자격도 없는 양치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모세를 들어 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라쿰이 아니라면 가능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축복과 은혜는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목사님 !
말씀 들으며 하루를
맞이합니다.
상쾌한 아침 뭇새들의
주님을 향한 찬양소리
들으며 머리가 복잡해집니다.
라헬의 드라빔.
야곱의 저주로 베냐민
낳고 죽음.
여러 목사님 들마다
다르기 때문에 정리가
안돼요.
성서속이나 지금이나
손으로 만든 하찮은
물건을 신이라고 믿는
사람들 일본은 말할것도
없고 . 온세상모두가
온통 우상숭배에
빠져 허우적 거리고
스스로를 파멸로 깊은
무저갱으로 치닫고 있는
작금의 현실이 안타깝네요.
저도 나무로 된 십자가
목걸이를 집에 걸어놓고
있는데 눈으로 바라보면
폴터가이스현상.
이 나타납니다.
응답해주십니다.
화초들.물건도
영적체험이 너무 많았습니다.
자주 질문을 던지시는
분들이 왜 ?
저승사자.냐고.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다고 말하고
지금은 대답하기 싫다고
하면서 ..
눈:영적인 분별력.
눈빛: 영적인 암시.
전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
복을달라고 축복해달라고
하는 기도가아닌.
전세계를. 이스라엘을
비롯해 하늘 땅 바닷속 깊은곳까지.
이세상 모든사람들 을
위해 무릎끓고 두손모으며
하늘 본향을 바라보면서
기도하고 있는 피조물
벌레만도 못한 죄인입니다.
살아있다는 자체가
죄인입니다.
날마다 감사가
끊이지 않으며
길을걸을때에도
좌우. 오가는 사람들모두
축복하면서.
목사님 !
혹시.
제칠일 안식일 교회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간략하게라도.
관심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죄송합니다.
괜히 귀찮게 해드려서요.
어느 목사님 께서.
이단리라고 하시길래
정확하게 알고 말씀 하시는지 알고싶어요
오늘도 기쁨과 행복넘치시고
축복임하시옵소서.
말씀 감사드립니다.
아멘입니다.
안식교는 이단으로보는 견해와 개신교의 교파중 하나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대부분 이단으로 취급하고 있으나 서구권에서는 이단 시비는 많지 않습니다.
이단으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는 안식일과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가 있다. 그리고 성경 일부를 부정하거나 지옥을 부정한다는 이유로 이단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안식교의 교리에는 안식일을 지켜야 구원받는다는 교리는 실제로 없고 성화의 삶을 강조하는 것에서 율법이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째든 이단이건 아니건 안식교가 강조하고 중요시하는 교리는 일반 개신교에서 강조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처음 안식교의 시작이 이단으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야곱처럼 훔쳐서 달아나고, 지명이 생긴다는 공통점은 있지만... 축.복을 훔쳐 달아났다는 표현은 영 이해가 안되네요. 남편 몰래, 들고나오면 안될 걸 들고나와 도리어 라헬에게 화가되었으니까요. 가장 사랑하는 남편이 암것도 모르고 아내를 저주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두번 들었는데 어렵습니다. 일단은 모르겠어요. 어려워서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제 설득력이 부족했나봅니다. 라헬도 야곱의 인생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야곱도 축복을 훔쳐 달아났는데 라헬도 축복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우상을 훔쳐 달아납니다. 축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인간은 이렇게 축복을 찾이하려고 치열하게 투쟁하고 있습니다. 야곱도 라헬도 자신의 노력으로 축복 받지 못한다는 것을 라헬의 사건을 통하여 보여줍니다.
라헬이 가져온 드라빔은 우상이고 그녀가 낙타안장에 깔아 뭉개서 앉았고, 또 그날이어서 부정하게 되는 점을 혹시 나타내려 한건 아닐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오면서 하나님께서 거기 우상을 다 박살내시잖아요. 그리고 가나안으로 돌아갔듯이요. 옛날 비정상회담이라는 프로그램에 이집트 대표 새미라는 분이 이집트사람들 종교관이 어떠냐고 하니까. 이집트는 형상이 있는건 절대 안섬긴다고 하네요. 하나님 아니면 알라만 믿는다고하고, 스핑크스 피라미드 이런거 그냥 관광자원에 불과하다 하네요. 혹시 애굽의 우상이 박살나는 것에대한 예표로 보는건 좀 무리겠지요. 여튼 아버지의 것을 훔치는 공통점까지는 알겠고요. 드라빔을 깔아뭉갰기에 그것을 숭배하는 맘으로 들고온건 아닌 것 같아요.
아참 그리고 밤에 라반의 꿈에 나타나서 선악간에 따지지 말라고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대조해서 아무것도 못하고 무력하게 밟히는 우상의 모습을 대조해서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네요. 좀더 생각해보면 언젠가는 이해할 날이 올 것 같아요.
@@조정현-q4p 좋은 관찰력이십니다. 성경이 의도하는 것도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복은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우상의 권위도 하나님께 순종할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1~4번 해석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측면에서 바라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다양하기에 해석도 다양한 것 같습니다.
5번 해석은 인간과 하나님 관계 측면에서 바라본 해석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성경적 해석관점(하나님과 나)이겠죠?)
야곱은 야훼의 하나님이지만, 라헬은 이방신이죠. 끝이 다르지만, 섬기는 신을 향한 욕망과 열정의 원리는 동일한 측면인 것 같습니다.
야곱은 딸 디나 사건 이후로 상수리나무(엘라나무)밑에 모든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를 묻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정신적 지주였던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벧엘 밑에 있는 상수리나무(알론나무) 아래에 장사됩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집으로 가는 도중 라헬이 죽고 길 가에 묻어주죠.
끝으로 장자 르우벤이 라헬의 몸종, 아버지의 첩을 취하는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의 집에 하나님이 거하는 순간,
야곱의 양손이 다 짤려나가고 야곱의 마음속에 있는 중심조차 갈갈이 찢겨 나간다고 생각해보았습니다.
특히, 딸 디나가 세겜에게 몸을 빼앗겼을 때, 야곱은 오히려 주변 민족들과 관계가 나빠질까봐
소극적으로 대처하려고 했습니다. 자신의 재산, 자신의 가족, 그리고 자신의 영광을 자기 힘으로 지키려는 모습이였습니다.
이처럼 야곱의 죄가 장성할수록, 다시 벧엘과 가까워지고,
야곱의 비열함이 극에 달하고 자기능력을 의지할수록,
하나님께서 그 집에 점점 가까이 다가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라헬이 아버지의 우상을 훔치는 대역죄를 담대하게 범하는 마음가짐은
언약의 장자권을 담대하게 훔치는 야곱의 마음과 유사합니다.
하지만 라헬의 아버지가 섬기는 신이 이방신이기 때문에, 밧줄을 잘못 잡은 것 뿐이죠.
그래서 막벨라 굴은 라헬이 아닌 레아가 들어가고
레아의 6명의 아들들의 이름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시흐름이 담겨있습니다.
야곱은 죽기까지 레아보다 라헬을
레아가 낳은 자식보다 라헬이 낳은 자식을 더 의지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상실하는 마음을 위로 하기위하여 베냐민을 주셨고
요셉을 통하여 가족구원을 이루어주셨습니다. (구원은 침노하는 자들의 것이라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레아의 아들인 유다지파에서 계보를 연결하셨습니다.
그리고 레아의 6번째 아들 '스불론' 이름은 '거하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피값을 지불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성령을 보내주셔서 인을 치셨지만,
예수님이 다시 재림하셔서 왕되신 그 날 우리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날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도 야곱처럼 우리 안에 있는 오물과 죄들이 나의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와야 합니다. (죄인됨을 인정)
바리세인들처럼 모세의 율법을 주장하며 우리도 예수처럼 의롭다고 고백하는 자들은
벧엘에 거하지 못하고 꺼지지 않는 유황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자세한 의견 감사합니다.
@@BibleTV
선생님, 묵상이 연결되서 댓글 또 남깁니다.
야곱은 '벧엘'에서 '엘벧엘'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처럼
모세도 '떨기나무'에서 '시내산'으로 신앙이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주권'을 의심하다가 인정한 성경인물들
: 다윗의 감람산, 바벨론 느부갓네살왕, 돌아온 탕자 등 )
'벧엘', '엘벧엘', '떨기나무', '시내산'
모두 '하나님의 집'을 의미합니다.
차이점은
모세가 떨기나무에 접근하기 전에 신발을 벗었고
나머지 사건에서는 신을 벗으라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분열되었을 때, 벧엘은 우상숭배 지역이 되고 시내산은 엘리야 선지자의 피난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공통점은
벧엘에 다시 오르기전,
시내산에 오르기 전에 옷을 빨아 입습니다.
아마도 요한계시록의 거룩한 세마포(계19:8)를 예표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제단을 세웠던 가나안 루스(아몬드나무)지역은 우상숭배 지역이 되고
모세는 하나님의 거룩을 나타내지 않아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치고 달아났다면,
야곱과 모세처럼
라헬도 아버지 라반의 집에 또 다시 돌아와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창세기35장에서 라헬은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는 길가에서
베냐민을 출산하자마자 죽게 되죠.
'라합'이나 '기브온 주민들'이나 '룻'이나 '수로보니게 여인'이
야곱과 모세 대신 천국에 먼저 들어가겠네요. (로마서 11:25~27)
이스라엘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이방인들이 먼저 천국에 입성해야 합니다.
야곱이 과연 일찍부터 교활했을까요? 그 마음의 저변에는 하나님의 믿음이 깔려있었다고 봅니다 찐믿음은 아니지만....사람은 저변에 깔려있는 진심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지않을까요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야곱은 어려서부터 이미 저변에 있었어요 ... 우린 몰랐어도 하나님은 알고 있으셨죠 아무리 악인이라 해도 저변에는 선하고 싶은 갈급함이 있기에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구원하신다고 믿습니다 나의 저변엔 과연 선하게 살고 싶은 갈급함이 있는가?
심적인 가출을 자주하는 40대 남성입니다
집나가면 고생인걸 알면서도...
후회를 반복하며 살고있습니다
힘들면 돌아와서 성경말씀 듣습니다
너무 이중적인 삶을 사는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경말씀 전해주시는 반가운 목소리
감사합니다
우리의 삶이 매일 돌아온 탕자와 같은 삶이죠. 누구나 집을 나가지만 돌아올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중요합니다. 가랑비에 옷 젖듯, 콩나물 시루에 물 빠져도 콩나물이 자라듯 말씀과 함께하시면 됩니다. 콩나물처럼 계속 자라고 있으니 말씀만 놓치 마시고 주 안에서 이기는 자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목사님 좋은 말씀 좋은데 하나님이 축복
을 주신다 하시는데
목사님이 축복한다면
맞지만
하나님의 축복이라는것이 있을수
있나요
하나님의 위상을 격하
즉 하나님이 복을 비는
존재로 오해 할수
있지 않을까요
축복은 하나님께로 오는 것입니다. 목사나 다른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것이죠.
하나님께서는 천지와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축복하셨습니다. 창 1:28절에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복 즉, 축복이라는 같은 의미의 단어가 쓰였습니다. 또 일곱 번째 날 안식일을 축복하셨고 (창 2:3) 노아와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셨고(창 9:1)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이렇게 계속해서 축복하신 일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2:2-3절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빌어 주는 것이 아니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복을 빌어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에게 축복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축복을 대신 빌어 축복해 주는 일도 성경에 나타납니다. 때문에 목사님들이 축도를 하거나 하나님의 축복을 성도들에게 빌어주는 것입니다.
답글에서와 같이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지 축복을 하신것이 아니네요
단어는 중요한것입니다
(빌축 복복 ) 하나님이 축복하신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복 주신 것이
성경의 기록입니다 아닌가요
하나님이 복 을주시는것과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것은 다른 것이아닌가요
복주시는 하나님
이라는 표현이 성경의
기록을 따름이
@@정대훈-n1s 아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군요. 한자어로 축복은 복을 빌어 준다는 뜻이 맞습니다. 때문에 당연히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는 말은 엄밀하게 틀린 말이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복과 축복을 혼합하여 같은 뜻으로 쓰기 때문에 앞에서와 같이 설명드렸습니다. 영어로 축복도 blessing 이고 복도 blessing이기 때문에 이렇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도 축복은 "『기독교』 하나님이 복을 내림." 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엄밀하게 말하면 하나님께 복을 빌다는 뜻이지만 기독교에서 복이라는 개념으로 그대로 받아져 뜻이 굳어졌습니다. 때문에 복과 축복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해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는 귀한 말씀이었습니다
호흡과도 같이 늘 나와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 드립니다
은혜롭게 강해를 잘 듣고 있습니다^^
드라빔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한다라니! 우상숭배적 발언 인데요!
저는 라헬의 드라빔이 곧 인질이라고 생각 합니다. 아비인 라반이 마치 짐승을 팔듯 사촌 야곱에게 자신들을 팔앗으되,
레아와 라헬모두 야곱을 자신의 남편으로 인정햇으며 야곱의 사랑을 더 받기위해 그렇게 출산경쟁까지 벌엿던 것입니다.
한데 이런와중에 아곱은 라반의 사위이자 쓸만한 일꾼인데도 불구하고 정당한 댓가 지급하기를 거부했고 , 그 임금 깍기를
열번이나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불공평하고 불의한 일인데 라반스스로 야곱덕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그의 재산이
불엇음을 알고 있었고, 라반이 지불하는 품삯이 바로 자기 딸들인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 자식들인 외손주를 먹여살리는
돈인것도 알고 잇엇고, 야곱이 두 딸을 위해 14년을 일해서 신부의 값을 치뤗으면 장인으로서 책임지고 사위의 독립을
지원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독립할 기회를 없애고 거의 종살이들 시킨 것입니다.
게다가 이 문제를 야곱이 제기하자 간교하게도 스스로의 책임으로 품삯을 결정해야 함에도 그 책임을 야곱에게 물러
스스로 품삯을 정하라하고 야곱의 독립을 막아섭니다.
하지만 야곱은 이 독이 든 잔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과 꾀로서 앞으로 얻을 것을 라반에게 요구한 것입니다.
야곱은 얼룩무늬,점박이,검은 양과 점박이 얼룩무늬 염소를 요구하지만 라반은 그러한 염소들을 가려서 자신들의
아들들에게 넘겨줌으로서 다시금 불의한 탐욕을 드러 냅니다. 야곱이 열심히 그 힘을 다해 길러내는 염소와 양은 모두
흰것으로서 라반이 가로채고자 한 것입니다.
바로 이때문에 야곱의 술수가 나타나는데 놀라운점은 하나님께서 이것을 거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지식과 기술로 최선을 다하였지만 솔직히 그 얄팍한 재주가 통할 것이라고 누가 장담 하겠습니까!
하지만 라반의 불의와 야곱의 고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술수에 동의하시고 그가 바란대로 튼튼한 양과 염소를
주셨던 것입니다.
바로 이상태에서 다른 누구도 아닌 라반의 아들들이자 야곱의 처남들이 야곱을 비난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이 사태를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이가 바로 레아와 라헬 입니다. 레아는 성경상에서 순둥이로 묘사 됩니다.
안그리도 외모가 뛰어나지않고 눈이 흐려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앗을 테지요. 하지만 아버지에게 순종적인 딸이었고
비록 동생에게 밀리지만 야곱의 정처였던 겁니다.
하지만 레헬은 오로지 야곱 바라기였습니다. 야곱이 7년을 일하는동안 라헬도 7년을 기다렸으며, 야곱이 또다시 7년을
일하는 동안 라헬도 또다른 7년 도합 14년을 야곱이 자신의 신붓값을 치르는 동안 함게 고생햇던 것입니다.
바로 이때문에 야곱바라기 라헬은 아버지 라반을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야곱이 자신을 얻기위해 또 자신의 집을 일으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던지 누구보다 잘 보아왔습니다. 야곱의 능력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복으로 라반의 부가 성장 햇는데도
오히려 비난하기 바쁜 자신의 오빠들......
야곱이 귀향을 선택했을때 레아와 라헬은 두 말 없이 동의하고 전가산을 정리하여 야곱을 따릅니다.
하지만 라헬은 하란여인이기도 합니다. 하란사람이 집안의 드라빔의 힘을 모를리 없습니다.
만약 라반과 그 아들들이 야곱의 분가를 불허하고 해를 가하려 한다면 드라빔 만큼 강력한 인질은 없을 터입니다.
드라빔은 가신상입니다. 수호신으로서 가장의 권위와 가문자체의 힘을 표상 합니다. 집안의 가신상을 물려준다면
가장으로서의 권리도 물려주는 것입니다. 누구도 한집안에 속하였다면 그 집안의 드라빔의 권위에 도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라헬의 라반집안 남자들의 손발을 묶기위해 드라빔을 훔쳤다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라헬은 아버지 라반이 바로 그 드라빔 때문에라도 야곱을 추적할 것을 간과 했습니다.만약 그것까지 생각했었더라면
라헬은 미리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쳐낸것을 남편 야곱과 상의했을 터입니다. 하지만 라헬은 최후의 담보물로서
생각했기에 그리고 자존심 강한 야곱이라면 그것 용납햇을리가 없다고 생각했던지 나기 남편에게 알리지 않습니다.
그 결과로서 야곱은 그 범인이 자신이 그리도 금찍하게 사랑하는 아내 라헬인지도 모르고 신원미상의 드라빔 도적에게
끔찍한 저주를 선고했던 것입니다. 이까지 나오니 라헬은 드라빔을 낙타안장 밑에 감출 밖에 없습니다.
만약 드러나면 라헬의 남편 야곱의 저주로 죽거나, 아니면 아버지 라반에게 도로 끌려가게 될 판국이엇으니까!
그리고 야곱이 벧엘에 세운 돌과 갈르엣에 세운 돌은 모양은 같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릅니다.
같이 나무에 매달리지만 놋뱀과 예수 그리스도가 다르듯 말이죠!
벧엘에 세운 돌에는 하나님의 언약과 축복이 함게 합니다. 하지만 갈르엣에 세워진 돌은 서로 저주를 피하자는 즉, 화합이
아닌 분리를 뜻하는 돌이기 때문 입니다. 여갈사하두다와 갈르엣이란 두개의 이름은 이 분열을 상징 합니다.
우상 숭배적이라는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면 제 강해를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제가 설명이 부족했나 봅니다.
드라빔이 인질이라는 입장은 몇몇 주석에서도 다루는 주제이기 때문에 반론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해석하셔도 됩니다. 다만 저는 성경 전체적인 흐름 안에서 해석하는 입장입니다.
창세기 31장을 해석하시고 이해하는 입장에 몇가지 다른 의견을 드리겠습니다. 라반이 교활하게 야곱을 속이고 불의하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것은 동의합니다.
레아가 순둥이고 외모가 뛰어나지 않고 눈이 흐렸다는 말에는 동의하기가 힘듭니다. 눈이 흐렸다는 것도 해석상 논쟁이 있습니다. 정답은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넘어가도 외모나 성격이 순둥이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입니다. 성경적 근거는 매우 부족합니다.
또 라헬이 7년을 기다리고 다시 7년을 기다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7년을 기다렸다 속아 레아를 아내로 맞이 합니다. 창 29:27-29절을 보면 야곱이 속아 레아와 결혼한 후 7일 후에 다시 라헬과 결혼합니다. 단, 다시 7년을 더 섬겨야 했습니다. 그러니까 7년동안 기다려 속아 레아와 결혼하고 이에 대한 항의를 하자 7일 후에 다시 야곱이 원했던 라헬과 결혼하고 라헬의 지참금으로 7년을 더 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헬은 14년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7년을 기다렸습니다.
드라빔이 수호신이고 가장의 권위와 가문자체의 힘을 표상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근거는 약하고 추정입니다. 드라빔이 권위를 가졌고 그 권위에 누구도 도전할 수 없다는 근거를 밝혀 주시면 저도 찾아 보겠습니다. 고대 점토판에서는 상속권을 주장할 수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런 권위가 있다는 말은 생소합니다.
드라빔은 집을 지키는 수호신이고 복을 주는 신이라는 것은 인정합니다. 때문에 성경은 야곱과 장인이 서로 속이고 라헬은 아버지가 생각하는 축복을 훔쳐 숨겼습니다. 라헿은 드라빔으로 어떤 복도 빌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보호도 빌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에게 있는 복을 빼앗아 버렸다는 상징적인 표현이기도 합니다.
@@BibleTV //레아를 숭둥이라 한것은 그녀가 눈이 흐렷다는 뜻에서 나온게 아닙니다.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한후 두 자매는 치열한 출산 경쟁을 벌입니다. 특히 라헬은 자신이 불임이자 자지 종을 야곱의 침대에 밀어넣어 낳은 자식을 빼앗아 자기것이라 우기는 무리수 까지 둡니다.
한데 저는 이 아이들의 이름 짓는 방식에서 둘의 성격을 뽑아 냈습니다.
레아 쪽에는 4명의 나이많은 아이와 그시녀 실바가 낳은 2명,중간에 넣은 2명의 총 8명이 있습니다.
라헬 쪽에는 그 시녀 빌하가 낳은 2명 스스로 낳은 2명이 있습니다.
레아쪽의 첫째는 (하나님이 보신) 르우벤, 둘째는 (하나님이 들어주신) 시므온,셋째는 (남편과 연합하리라는)레위,넷째는 (하나님께 찬양하라)유다 입니다.
레아의 다섯째이자 실바의 첫째인 (행운)갓, 여섯째인 (행복이라 부르는)아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레아의 일곱째인 (값을 치룬)잇사갈과 (남편이 자기와 거하리라는) 스불론 입니다.
이에 라헬의 첫째이자 시녀 빌하의 첫번째인 (하나님의 판결을 내려주시리라는)단과 (경쟁에서 이겼다는)납달리,그리고 라헬쪽의 셋째이자 라헬의 첫번째인 (하나님께서 치욕을 없애주셨다 혹은 하나님게서 더하여 주시리라) 요셉과 마지막 넷째이자 라헬릐 마지막 아이 (비탄의 아들)벤노니 (이후 야곱은 (오른손의 아들)벤야민이래 개명함.)이 있습니다.
레아는 자기쪽 아이 대부분의 이름을 도전적이 아닌 수동적인 이름으로 짓습니다.
하지만 라헬은 자기 가녀를 언니와의 전쟁의 도구로 인식해 도전적인 이름을 붙인 것입니다.
이 싸움은 마침내 라헬이 막내를 낳다 죽으며 끝이나고 자신의 패배를 보며 비탄의 자식이라 이름 합니다. 라헬은 레아와는 달리 자기 자식이 장성하는 모습도 보지 못하고 그 아이들이 자라 결혼해서 자기 손주를 안겨 주지도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순둥이라는 표현이 거칠다면 권위에 순종적이라 할까요?
성경에서 저는 단 한번도 레아가 자기보다 위인 아버지 라반이나 남편인 야곱에게 거슬러 대선 모습을 본적 없습니다. 야곱이 라반의 집에서 떠나려 햇을때 동의한 것은 야곱이 자신의 남편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성경의 모든 손아래가 그러하듯 라헬은 매사에 도전적이었습니다.
즉, 제가 레아를 순둥이라 한것은 반대인 라헬에 대해 대척점에 섰음을 누타내고 싶었다는 의도에서 나온 표현인 것입니다. 물론 수종적인것과 수동적인것은 다르긴 하죠!
그리고 드라빔에 대해서는 복잡하더군요. 심지어는 '미이라화 한 죽은 사람의 머리'라고 까지 해석하는 쪽도 있습니다. 사실 제가 착안한것은 메소포타미아에서의 가신상및 우상의 역할과 로마제국에서 가부장의 권위와 연관된 가신 라레스(라르)의 관습입니다.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물의 신 에아가 마법의 관장자로서 특히 치유마법의 주인이었으며 이 힘을 얻기위해 바닷속의 점토를 긁어모아 신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 에아는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증조 할아버지이자 염수의 신 압주(엔키)를 타도하고 바빌로니아 신의 왕이 된 존재 입니다.
홍수 이후 무엇보다 인간의 출발점이되었던 이 메소포타미아의 우상숭배를 멀리 ㄸ러어지짖 않앗던 하란에서 받지 않을 리 없습니다.
그리고 고대 일상 생활에서 우상인 일반 가장생활과 얻너 관곌르 가지는지는 로마의 라레스를 보면 잘 압니다. 로마에서 집을 지으면 집의 중심이 되는 아트리움에 조그만 라레스의 신상을 올렸습니다.
그리고 집안에 출입하는 모두의 시선안에 라레스가 보이고 자나가도록 했습니다.
또한 이 라레스에게 빵,포도주등을 봉헌물로 바치거나 초를 키고, 로마의 오래된 집안 제사가 지내지곤 했습니다. 하지만 후에는 다만 이 라레스의 표식만을 하거나 아니면 특정 자리를 비우는 방식으로 병질되엤고 소위 '기독교 공인'이후에도 5세기에 이르도록 이 라레스 신앙은 존재했다 합니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왕들은 '여신의 젖'을 먹은것으로 왕권을 과시했다고 하며 이것의 변형이 헤라의 젖을 먹은 헤라클레스와 은하수(Milky way) 신화 입니다. 즉, 신과의 연관성은 그에게 특정한 권위와 힘을 부여한다는 것은 우주 오래된 주술신앙인 것입니다.
라헬은 이 드라빔에게 어떤 복도 빌지 않았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으니까. 오로지 드라빔이 아버지 라반에게서 야곱으로 옮겻다는것 만으로도 이미 야곱은 드라빔의 영향력 하에 잇다고 믿은 겁니다.
라헬은 분명히 남편의 신 야훼를 존중 햇을 것입니다. 하지만 라헬은 그신이 어떤 신인지 몰랐을 터입니다. 아니 야곱조차도 자기의 처소를 멀리벗어난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놀라와 했습니다.
당시의 신은 그 신도들이 잇는 지역에서만 힘을 쓰는 지역신 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힘이 좀 센 드라빔에 불과했던 것이죠!
하지만 야곱이 광야에서 만난 신은 무소부재의 신 지역에 영향 받지 않은 신 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관야에 돌한 개를 세우고 거기에 거의 유일한 재산이엇을 기름을 부어
축복한 것입니다.
하지만 라헬에게 이런 경험은 없습니다. 그녀가 아는 신은 아버지 라반이 애지중지 싸고도는 드라빔 이었을 뿐이죠. 그러니까 라헬은 드라빔을 훔침으로서 하나님의 축복도 훔쳐내었다고 생각 했을거라 여깁니다. 라반에게도 라헬에게도 레아에게도 성숙한 하나님관은 없었습니다. 아니 주인공 야곱도 그저 그런 도토리 입니다.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듣고 자기가 겪은 경험이 조금 도움이 될 뿐!
우리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아니 일부러 무시하면서 심지어 저주까지 하면서 남의 나라 역사를 팔아서 먹고사는 한심한 교회를 나는 완전 미친x 취급한다.
좀 어렵네요... 드라빔을 모티브로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게 된다는 말은 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이 드라빔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네요. 사사기 17장에도 미가가 드라빔을 만들었는데, 이런 우상을 왜 여호와의 신당에 갖다 놓았고, 그것을 마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양 생각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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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미-n5h 4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