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성공해서 국가재건최고의장으로 일단 권력을 잡았습니다. 전두환은 12.12에 대통령암살에 한쪽 발을 집어넣고 양다리를 탄 정승화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한 겁니다. 다만 정승화가 수경사령관에 꽂아 준 장태완이 정승화를 구하겠다고 무력저항을 해서 좀 시끄럽게 된 것일 뿐입니다. 국무총리는 신현확 대통령은 최규하가 눈 시퍼렇게 살아있었고~ 다만 전두환소장이 스트롱맨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들 개 눈치보고 있는 상황에 그렇게 임펙트있게 수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있는 재주가 아니잖아요.
이것도 방송이라고.... 광주 사태를 입맛에 맞게 조각 조각을 덧붙여 만드느라 고생은 했소. 하나만 물어 봅시다.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 당시 도청 지하에 설치된, 주변을 완전히 날려버릴 엄청난 폭약의 신관을 제거하다가 전사한 군인에게 죄송하다는 말한마디는 하는게,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냐 말이네.
틀딱님, 지금도 도청지하실 8톤 폭약썰을 무한 되풀이 하네. 한번만 검색해봐도 조작된 저잣거리 풍문임이 명확이 밝혀져 있는데. (참조: 월간조선 2020/05 5.18특집, 5.18민주화운동 왜곡) 5.21일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하자 도청 마당에는 시민들이 자진반납한 각종 총기류와 실탄, 심지어 폭탄과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등 위험천만한 무기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인터넷 사진들 참조).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하자 시민들이 자진하여 무기를 반납한 것이다. “무기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어요. 사람들이 총기류와 실탄을 밟고 다니며 만지고…. 너무 위험하다 싶어 한곳에 모아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어요. 주변을 보니 도청 본관 옆 민원실 지하(식당)가 가까워 그곳에다 무기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죠 (김영복, 당시 시민군 무기.폭약관리)” 문용동 전도사.예비역 김영복, 도청에 있던 시민군 몇몇이 돕게 되었고, 도청 마당에 흩어진 무기와 폭약을 민원실 지하(식당)로 옮겨놓은 것. 군에서 전문적으로 폭약을 취급한 공병대 하사관 출신인 예비역 김영복씨와 문용동 전도사는 전투교육사령부(계엄군 전교사)를 찾아가 수류탄 공이와 다이너마이트 뇌관 분리 작업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배승일 (전교사 병기근무대 탄약검사사) 군무원이 24일 밤 9시 도청 지하실로 몰래 들어와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의 뇌관을 제거하게 된 것. 김영복씨는 도청 내 TNT 설치·조립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한다. 단지 도청 마당에 흩어진 무기와 폭약을 민원실 지하(식당)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광주항쟁이 진압된 후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계엄일지에는 “계엄군은 27일 도청 지하실에서 TNT 11상자, 도화선 2무더기, LMG 7정, 카빈 5정, M1 19정, 최루탄 4백 개, 실탄 10상자, 가스탄 2백개 등 회수” 라고 상세하게 보고 됨.
틀딱님,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올리시길. 계엄군 사망자 총 23명중 상당수는 계엄군간의 상호 오인사격으로 13명 사망 (1980년 5월24일 송암동 일대에서 11공수와 7공수, 전투교육사령부 병력이 책임 지역 인계 뒤 광주 비행장으로 철수하다 매복 중이던 보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으로 10명이 사망했고, 같은 날 광주 나들목(IC) 일대에서도 31사단 병사 3명이 매복 중이던 기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을 받아 숨졌다.) 시위대와 교전하다 숨진 계엄군은 5명입니다. (1980년 5월 22일 조선대에서 주남마을로 철수하던 장교와 운전병 2명, 국군통합병원 확보 작전 중 군인 1명, 방위병 1명은 출근 도중 계엄군과 무장시위대의 교전 와중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 광주공원 진압 작전을 하던 군인 1명 등이다.) 5.18 민주화운동 민간인 피해 내역 (나무위키 발췌) 직접 사망:193명, 후유증 사망자: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임.
그러면, 신군부 쿠테타반란군은 사망한 군인들을 순직자로 취급했나? "5.18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 사망자는 총 23명, 그중 상당수인 13명은 계엄군간의 상호 오인사격으로 사망함. 이분들은 최근에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위원회 등 5·18관련 단체와 광주광역시 남구의회가 국방부에 5·18 계엄군 전사자에 대한 사망 구분 재심사를 요청함으로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5·18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 구분을 전사자에서 순직(‘순직-Ⅱ’형)으로 변경" 5.18 민주화운동 민간인 피해 내역 (나무위키 발췌) 직접 사망:193명, 후유증 사망자: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임.
6.25남침때 총을 든 학도병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북괴 김일성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4.19의거때 총을든 학생.시민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이승만.이기붕 자유당 추종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하겠지 5.18항쟁때 총을 든 학생.시민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12.12, 5.17 쿠테타내란군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민주화의 아버지 5.18 영웅들.
그대들이 있어
한국의 인주는 자랐고,
님들의 희생을 늘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5월의 광주.
인주의 또 다른 이름.
가슴이 아픕니다
시민의희생이컸어요ㆍ고인의명복을ㆍ빕니다
할말이 없네요
.,..,,,ㅜㅜㅜㅜ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없이 역사의 한 페이지는 끝났다 광주시민 어쩌지? 한은? 남겨진자들의 짐은?
빛고을 광주여!
대한민국의 십자가여!
우리 조국의 역사는,
"님"들의 투쟁을 영원히 기억할것입니다.
광 주 민 중 봉 기. 만세!!
남에 눈에 피눈물나게하면 더한 배로 큰죄를 물것이다
이런것은 매일
방송 하여 전국민이 다 알때까지 방송 해야 됨니다.
저 군인들 편을 든사람도 있읍디다
전두환은 쿠테타를 안일으켰다는데에서
할말을 잃어버렸네요...
집이 대구라는데 그지역은 정말 그리 믿는지
달리보이더군요
씁쓸합니다
박정희는 5.16 쿠데타를 성공해서 국가재건최고의장으로 일단 권력을 잡았습니다. 전두환은 12.12에 대통령암살에 한쪽 발을 집어넣고 양다리를 탄 정승화를 조사하기 위해 연행한 겁니다. 다만 정승화가 수경사령관에 꽂아 준 장태완이 정승화를 구하겠다고 무력저항을 해서 좀 시끄럽게 된 것일 뿐입니다. 국무총리는 신현확 대통령은 최규하가 눈 시퍼렇게 살아있었고~ 다만 전두환소장이 스트롱맨으로 부상한 것은 사실입니다. 다들 개 눈치보고 있는 상황에 그렇게 임펙트있게 수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있는 재주가 아니잖아요.
아마도 역사이래... 우리 한반도에서 일어난 가장 슬프고도 비극적인 일이 아닐까 합니다.
제주4.3과 여순사건도 마찬가지같습니다
왜 광주 5,18입니까? 27릴까지 열흘도안의 혼동
역사는 퇴보하고 있다
5.18당시 시민군들이 카빈총으로 광주시민을 학살시켰다는결론!
이것이 민주화운동이라면 미친짓이다.
이걸 믿으라고 올린건가!
경고방송에도 철수 안한 자들은 뭐냐!
이것도 방송이라고....
광주 사태를 입맛에 맞게 조각 조각을 덧붙여 만드느라 고생은 했소.
하나만 물어 봅시다.
당신들을 살리기 위해 당시 도청 지하에 설치된, 주변을 완전히 날려버릴 엄청난 폭약의 신관을 제거하다가 전사한 군인에게 죄송하다는 말한마디는 하는게, 인간으로서의 도리가 아니냐 말이네.
틀딱님, 지금도 도청지하실 8톤 폭약썰을 무한 되풀이 하네. 한번만 검색해봐도 조작된 저잣거리 풍문임이 명확이 밝혀져 있는데.
(참조: 월간조선 2020/05 5.18특집, 5.18민주화운동 왜곡) 5.21일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하자 도청 마당에는 시민들이 자진반납한 각종 총기류와 실탄, 심지어 폭탄과 다이너마이트, 수류탄 등 위험천만한 무기들이 아무렇게나 널려 있었다 (인터넷 사진들 참조). 계엄군이 도청에서 철수하자 시민들이 자진하여 무기를 반납한 것이다. “무기가 무질서하게 쌓여 있었어요. 사람들이 총기류와 실탄을 밟고 다니며 만지고…. 너무 위험하다 싶어 한곳에 모아야 하는데 마땅한 장소가 없었어요. 주변을 보니 도청 본관 옆 민원실 지하(식당)가 가까워 그곳에다 무기를 옮기기 시작한 것이죠 (김영복, 당시 시민군 무기.폭약관리)” 문용동 전도사.예비역 김영복, 도청에 있던 시민군 몇몇이 돕게 되었고, 도청 마당에 흩어진 무기와 폭약을 민원실 지하(식당)로 옮겨놓은 것.
군에서 전문적으로 폭약을 취급한 공병대 하사관 출신인 예비역 김영복씨와 문용동 전도사는 전투교육사령부(계엄군 전교사)를 찾아가 수류탄 공이와 다이너마이트 뇌관 분리 작업의 도움을 요청하였고, 배승일 (전교사 병기근무대 탄약검사사) 군무원이 24일 밤 9시 도청 지하실로 몰래 들어와 수류탄과 다이너마이트의 뇌관을 제거하게 된 것. 김영복씨는 도청 내 TNT 설치·조립 주장을 가짜뉴스라고 일축한다. 단지 도청 마당에 흩어진 무기와 폭약을 민원실 지하(식당)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하다.
광주항쟁이 진압된 후 주영복 국방장관에게 보고한 계엄일지에는 “계엄군은 27일 도청 지하실에서 TNT 11상자, 도화선 2무더기, LMG 7정, 카빈 5정, M1 19정, 최루탄 4백 개, 실탄 10상자, 가스탄 2백개 등 회수” 라고 상세하게 보고 됨.
그들이 민주화를 위해 일어선 동기는 정말 존경스럽다. 하지만, 방화하고, 투석하고. 마지막엔 민간인이 군인에게 총격한것이 뭐 잘한일이라고 이렇게 영웅대접하냐. 22명의 군인 경찰이 민간인의 총에 맞아 순직했다.
틀딱님, 사실을 확인하고 글을 올리시길.
계엄군 사망자 총 23명중 상당수는 계엄군간의 상호 오인사격으로 13명 사망 (1980년 5월24일 송암동 일대에서 11공수와 7공수, 전투교육사령부 병력이 책임 지역 인계 뒤 광주 비행장으로 철수하다 매복 중이던 보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으로 10명이 사망했고, 같은 날 광주 나들목(IC) 일대에서도 31사단 병사 3명이 매복 중이던 기갑학교 교도대의 오인사격을 받아 숨졌다.)
시위대와 교전하다 숨진 계엄군은 5명입니다. (1980년 5월 22일 조선대에서 주남마을로 철수하던 장교와 운전병 2명, 국군통합병원 확보 작전 중 군인 1명, 방위병 1명은 출근 도중 계엄군과 무장시위대의 교전 와중에 총상을 입어 사망했다, 광주공원 진압 작전을 하던 군인 1명 등이다.)
5.18 민주화운동 민간인 피해 내역 (나무위키 발췌) 직접 사망:193명, 후유증 사망자: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임.
그러면, 신군부 쿠테타반란군은 사망한 군인들을 순직자로 취급했나?
"5.18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 사망자는 총 23명, 그중 상당수인 13명은 계엄군간의 상호 오인사격으로 사망함. 이분들은 최근에 5·18기념재단, 5·18진상규명위원회 등 5·18관련 단체와 광주광역시 남구의회가 국방부에 5·18 계엄군 전사자에 대한 사망 구분 재심사를 요청함으로 국방부는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어 “5·18계엄군 전사자 22명의 사망 구분을 전사자에서 순직(‘순직-Ⅱ’형)으로 변경"
5.18 민주화운동 민간인 피해 내역 (나무위키 발췌) 직접 사망:193명, 후유증 사망자:376명, 행방불명자 65명, 부상 3,139명, 구속 및 고문 피해자 1,589명임.
kbs도 그렇지만 전라도에서 만든 방송은 얼마나 객관적일까?
니네가 당한것만 얘기말고 피해입힌것좀 생각해라.
굉주사태 진압해서 나라가 편안해졌다.
문어대가리 밑에서 머리를 조아리면서 단꿀 좀 빨았나? 그 달콤함이 많이 그립나?
미친 해설 !
고등햑생이 총을들고 뭘한다는건가 !
총을 들었으면 반란이지.
6.25남침때 총을 든 학도병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북괴 김일성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4.19의거때 총을든 학생.시민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이승만.이기붕 자유당 추종자들은 그렇다고 주장하겠지
5.18항쟁때 총을 든 학생.시민들은 반란군인가? 허긴 12.12, 5.17 쿠테타내란군은 그렇게 주장하겠지
고마해라 6월이다 언제까지 518부대 홍보하냐 지겹다
광주랑깽
넌생쥐처럼 영상마다 도배질이냐 ㅈ두환이 꼬봉이지 ?
흉노아니가! 우리는 외국아니이가! ㅋㅋㅋㅋㅋㅋ 토나오는 외국새끼들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