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와 고려전기이후 국제무역이 끊어진지 오래 된데다 조선후기에는 성리학의 교조화로 그나마도 실학사상을 꽃피울수 있는 학자들이 사문난적으로 찍혀서 기득권층에 의해 제대로 꽃도 못피우고 날아갔죠 그나마 청과의 사신무역과 국경지역의 밀무역을 통해 들어온 몇몇의 서양문물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실과 양반들의 흥미거리 장난감일뿐 결정적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아편전쟁당시 청에 대한 상황을 알면서도 변화하고자 하는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식민지국가들의 전철을 밟아갔던것이죠
그리고 나선정벌당시 러시아를 통해 화승총이 아닌 부싯돌을 이용해서 격발하는 플린트락 머스킷을 입수했었지만 거기에 필요한 부싯돌은 조선에서는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던데다 당시 상대했던 러시아군이 정규전투부대가 아닌 민병대에 가까운 오합지졸들이라 제대로 경험을 못하고 털렸던터라 필요성을 찾지 못한게 한편으로 아쉽긴 했죠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수준으로 조선을 생각하면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소리 듣습니다 1871.06.01 미국군 : 살다 살다 무수한 포탄이 날라다니는건 처음본다. 미군 3명 전사 / 조선 243명 사살 및 3개 진지 파괴 이후 작약섬에서 머무르다 다음 임무를 위해 중국으로 이동
그건 그냥 무인의 소양 정도였고 조선의 주력은 명실공히 조총이었다. 속오군 병적 구성의 7할이 조총병이었고 인조때는 그 조선의 자랑인 편전의 사용 방법이 조총에 밀려 실전되었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오히려 조선은 조총에 미친 국가였고 조선군이 서구의 전열보병 수준으로 화기나 교리 화포와 포술에서 발달하고 진화하는게 아닌 이상 조선판 테르시오인 삼수병체제가 기본이었는데 조총에 매몰되어 임진왜란때 조선의 문제점이었던 병과 불균형이 다시터질 정도였다. 임진왜란 전엔 활이었다면 임진왜란 이후엔 조총에만 미쳐 병과가 붕괴될 정도였음. 때문에 근접병과 부족으로 청나라한테 개털리게 되지. 명나라 돕겠다고 부차벌판으로 보낸 병력도 조총병이 주력이었고 이후 모든 조선군의 역사에서 주력은 조총이었음
자주국방이라는 말은 이름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일뿐이죠 한반도 주변 국가가 북한을 제외하더라도 압도적인 경제,군사 강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인데 자주 국방'만'으로 이런 국가들 상대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셔요? 우리는 우리대로 최고 최대 최선의 국방을 하고 주한미군이나 여러 미국과의 군사적 커넥션은 놓지않는게 맞다고 봐요 동맹이라는건 있으면 절대적으로 좋은겁니다
조총술이 아무리 강해도 후장식 강선 소총에 미 해병대의 조직적 전술이 결합되었으니까요. 이미 광성진은 함포 사격만으로도 끝장났고...또 당시 조선군의 훈련, 조직, 물자 상태도 제대로 안되어 있었구요. 그리고 사실 미국의 목표가 무력시위만 하면 바로 조선이 물러서고 일본처럼 항구 열고 강화를 맺는 건데, 그럴 기미가 없으니 알아서 빠져주었습니다. 만일 강화도에서 미군이 버티려 했으면 병인양요처럼 본토에서 건너온 제대로 조직된 조선군에게 패했겠죠.
조선 말기 고종 시대에 조총으로 훈련하는 훈련도감이 있었고 왕을 호위하는 경호 역활도 하였는데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36년 식민통치를 당하며 백성들이 억압당하는 상태로 살아냈다 부모님세대와 조부모님세대거 격어낸 새월의 시간은 가슴에 한이 많았다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일이 역사 교과서 교육을 받으면서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일본군이 사용한 조총은 아케부스 라고 하는 사냥용 머스킷입니다. 바로 개머리판이 없지요.. 유럽은 개머리판이 달린 머스킷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길이가 길어서 막대위에 세우고 사용하지요 당시 일본군은 조총은 우세했지만 화포는 조선이 유세했습니다 임진왜란이후 우리 조선군도 궁수보다는 포수를 더 양성하고 전 보병의 40%를 포수로 양성했습니다.
조선은 조총의 위력에 얼마나 뻑 갔었는지 우암 송시열은 조총이 활보다 쏘기 쉽다는 점을 이용 해서 여군 창설을 주장 하기도 했을 정도 한데 같은 조총으로 무장 한다 해도 싸우는 방식은 달랐을 거라고 봄 조선의 경우 서양이나 일본 처럼 라인전으로 쏘기 보다는 사냥을 하듯이 숨어서 저격 하는 식으로 사용 했을거임 그때문에 나선 정벌 때 플린트락을 구했고 하나 만들기는 했지만 메치락에 비해 잔고장도 많고 비싸기도 비싸고 여럿이 일열로 서서 라인 으로 서는거 보다는 저격식으로 했을 테니 그냥 계속 심지를 사용 하는 메치락을 써왔을거임 단 그렇다고 조선이 화승총 개량을 안한건 아니었고 연사력 보다는 사거리를 늘리고 명중률을 높이는 쪽으로 개량 했다고 봄 그게 바로 영조 때 개발 되어 정조때에 양산이 된 천보총인데 이총은 현제 쓰고 있는 m24보다도 사거리가 길고 대조총 보다 휴대하기도 쉽게 만들어짐
활보다 장전시간도 길고, 관리도 어렵고.. 다만, 근처 농민 데려와서 2주만 교육시켜도 바로 실전에 사용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보통 1년기간 이상의 수련기간이 긴 궁병, 창병, 검병, 기병을 2주만 교육받은 농민병이 사살할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죠. 그리고 활보다 큰 살상력.. 한번 박히면 빼기도 힘들어 안에서 녹으로 곪아 터졌습니다. 이를 알아본 오다노부나가가 아시아 최초로 조총 부대를 육성하였죠.
요약 : 조총 사거리 150미터란 건 유효 사거리(적중 50%)를 의미하네요 활의 유효 사거리의 2배 정도입니다 연사 속도가 느릴 뿐이지 관통력도 더 좋아요 연사 속도는 최대 분당 3발 = 20초당 1발 일본군 구성비 창병 : 500 (53%) - 최대 6미터까지 나옵니다(알렉산더 장창 방진 수준) 총병 : 200 (21%) - 유럽 사냥용 총 아쿼버스(판금갑은 못 뚫어요) 기병 : 150 (16%) - 기병은 별로고요 궁병 : 100 (10%) - 일본 활도 별로지요 전체 : 950 (100%)
일본군 공격 전술 1열 깃발 (지휘) 2열 조총 3열 도검+장창 사격후 (적중하면 적군 20% 전멸) 돌격 백병전 조총병 3열 방어 전술 1열 사격 2열 장전+대기 3열 장전 이렇게 하면 7초당 1발 쏘는 속도겠네요 활이 거의 2초에 1발 쏘고, 쇠뇌는 활보다 약 2배 느리다고 보면 역시 활이나 쇠뇌가 보조로 있어야 하겠네요
척계광의 기효신서 (중국 남부 보병 전술) 낭선 : 대나무 가지를 사용하는 방어용 창 장창 : 공격용 장도 : 방패(등패)와 함께 사용하는 공방 겸용 당파 : 공방 겸용 삼지창 이렇게 4명이 팀으로 1명 상대하는 전술 조선 전술 변화 살수 : 칼창 사수 : 편전 포수 : 조총 우린 여전히 멀리서 쏘겠단 것
조선성 : 넓고 낮다 (군민 공동 방어형) - 치(돌출부)가 있음 일본성 : 좁고 높다 (실전형) - 성벽 꺾기 유럽성 : 좁고 높다 근대요새 : 별 모양으로 치나 성벽 꺾기와 유사한 형태 조선 성은 사다리만 놓아도 타고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낮음 거기에 비해 넓어서 수비 병력이 많이 필요함 부자 감세하여 병력 줄면 무용지물이 되는 성임 조선의 정치가 썩을 때 털리는 이유가 됨
임진왜란 이후에야 모병제 상비군을 만들다니 ㅋㅋㅋ 그 전엔 급하게 오합지졸들 모아서 싸웠나? 월급을 지급하려면 부자 증세를 해야 가능하겠죠 부자 감세하는 나라는 망해 가는 나라죠 ㅋㅋㅋ 부자 감세하느라고 연구 개발지 지원도 줄이니 ㅋㅋㅋ 복지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군비 증강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공교육 확대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연구 개발 지원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다 같은 친일파 꼴보들의 나라 망할 논리죠
총 = 철 = 돈 탄 = 납 흑색 화약 = 초석(질산칼륨) + 흑연/숯 + 유황(촉매) 임진왜란 때 중국군이 은을 돈으로 사용하는 걸 처음 접했다면서요? 돈이 있어야 시장, 자본주의가 가능하지요 기병 : 마갑 40kg + 전신갑주 20kg = 60kg 철 조총 : 3~5kg 철 기병 : 300kg 이상 말 + 60kg 이상 사람 식량 = 6인분 식량 총병 : 60kg 이상 사람 말 값은 요즘 승용차 하나 정도 가격일 겁니다 말 값 = 노예 가격 = 쌀 가격 환산 = 승용차 가격 기병보다는 조총이 가성비가 아주 좋지요 몽골 만주에선 말 값이 싸니까 나머진 철갑에 투자할 수 있죠 전신 갑주 3겹이면 60kg + 마갑 40kg = 100kg 철 이 정도면 편전, 쇠뇌, 조총 다 막아 냅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게 아니라, 지금도 못 차린거 겠죠. 에휴. 정신좀 차려라!~ 이 정치인들아. 그런데 이런 푸념은 책 몇권 읽어만 봐도 딱 보이는 겁니다.당장 마주친 일에 급급해서 과거를 인과하는 것이, 참 아쉽니다. 이걸 보는 분들이라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시길~ 2년만에 글 남겨 보네요. 고생들 하시구요.
정치인들보다는 그런 정치인을 뽑는 국민이 더 문제..그리고 이사회의 기득권은 정치인이 아니라 검찰권력 언론권력 경제권력 사법권력 이런데가 진짜 오리지널 기득권들임 ... 변하지도 않는 조직임 정권이야 4년에 한번씩 5년에 한번씩 우리가 바꿀수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누려왔던 기득권들은 잘 안바뀜
국방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조총사거리가 150미터라니... 군인과 국방을 천시하고 전투등을 있는그대로 연구안하고 그저 국뽕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대하니 우리나라가 제대로 싸운 전쟁이 별로 없지 그 당시 활의 파괴력은 떨어져도 연사력과 사거리 등이 우세하고 대포가 강해서 시스템과 훈련만 제대로 했어도 저렇게 조총한테 밀릴 일이 없는데 오랬동안 큰 전쟁이 없어서 대비를 못해 진걸가지고 조총때문에 진 것처럼 책임전가하고 있네 그리고 3열로 나눠서 싸웠다는게 지금은 근거가 없다고 나왔고 실제로도 일제히 발사하나 3분의 1씩 발사하나 지속적인 발사가 안될뿐 오히려 시간당 전체 화력은 일제사격보다 약한데 3열로 싸운게 더 유리할 거라는 이유도 없고 또 그당시 화약무기는 연기가 많이 나서 연속발사하게 되면 앞이 전혀 안보이게 되서 조준사격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게 유리하다면 서양에서 머스킷 보병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총쏘지 않고 3열로 싸웠겠지 조총이 활보다 유리한 이유는 조총은 방패와 갑옷을 뚫을 수있기 때문이고 활로는 그만한 파괴력이 없기 때문이며 소형총통보다 조총이 유리한 이유는 방아쇠가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쏠 수있기 때문이지 활의 연사력이나 사거리, 소형총통의 파괴력은 조총의 위력을 능가할 수있는 정도임 승자총통이 사거리는 짧지만 구경이 크고 산탄을 쏘기때문에 근거리파괴력은 조총을 능가했음
고종 1852 = 1919 이완용. 네덜란드 🇳🇱 헤이그 밀사 추진 주시경 선생님은 호머 헐버트의 제자입니다 °°영어보다 한글만한 글자는 없지만 띄어쓰기 잘해라°° 호머 헐버트 1863년 미국 귀국,버몬트주 출생 선교사 육영공원의 영어교사 한글학자 🔄 4일만에 깨치다 안중근 의사는 단,하루라도 헐버트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안 바뀌었어요.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서 조총 입수합니다. 근데 활보다 별로라고 무시했을 뿐. 전쟁사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게 임진왜란이 조총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10만 중 조총병은 1만도 채 안 됐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의 최정예 병사여서 훈련 안 된 조선군이 상대가 될 리가 없었음.
걍 조총병이 약한ㄱ 아니라 후금군이 압도적으로 쌨던거임 게네들은 야인여진 해서여진 몽골 차하르들 명나라등등 전쟁이 일상인 민족인데 전쟁을 거의안하는 조선이 어케버팀 게다가 병자호란때 후금기병들 진격속도 보면 말이안나옴 진짜 벽제관까지4일안에 도착함 그런상황이니 제대로 명령불가능해서 왕은 남한산성에 갇히고 남한산성으로 집결하는 병력은 각개격파당하지...
그냥 훈련안한 일반 백성이 몇일만 다루다보면, 꽤나 능숙하게 사용할수있는게 저 조총 게다가, 파괴력이 어마무시함 활이나 칼 창등은 훈련받은 병사의 근육에서 나오는 위력이지만, 저 조총은 화약의 힘이라서, 사용자를 가리지 않는다는거 . 참고로 저 조총은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다 팔았던 아케부스라는 사냥총 . 기존, 군사용인 매치락 이라는 화승총은 단가도 훨씬 비쌌고, 상인이 몇개 가져오지도 않았다고함 . 그 시절엔 유럽에서도 그게 최신 무기였는데, 대량보급된 상태도 아니었기땜에 본인들 무장하기도 바빴다고함 그대신 비교적 아주 흔하게 보급이된 사냥총 아케부스를 일본으로 가져와서 거래함 . 정당 10억씩에 2자루를 사고, 또다시 10억을 주고, 상인에게 조총 만드는 방법을 배움 . 그렇게해서 일본의 그당시 수공업으로 몇만자루 정도 생산한뒤에, 조종부대만 따로 편성함 . 대대마다 1개중대의 숫자만큼 조총부대를 편성 . 대량생산을 못했기에, 왜군 전원에게 보급을 못함 . 그렇게 조총부대로 , 3 ~5 열씩 교대사격하는 방식을 훈련함으로써 , 연사력을 키움. 파괴력은 이미 입증이 되었으니 연사속도를 키우기위해 교대사격 방식으로 훈련함 . 조총부대는 주력부대가 아니었고 전투 보조부대였는데, 그러한 교대사격방식으로 임진왜란때 육지전에서 조선군을 압도함 . 당시 육상 왜군은 크게 3부대였음 . 기마병 , 보병, 조총부대
이번 무기편 너무 재밌었어요
평화를 원하는자 전쟁에 대비하라...
거안사위 居安思危~
역사는 힘있어야
평화가-----
최근 몇년간 우리가
제대로 안하고있죠
문재인이 이 말을 잘 들어야할텐데 말이죠
임진왜란.
병자호란.
경술국치...
힘이 없으니 당하구
17세기에 전래되는 홍이포가 조선 화기술 발전의 마지막이었다는게... 항상 외침 당하고 나서 각성한다고 하는데 꼭 몇 박자씩 늦어 다시 외침 당할때는 외세의 더 강한 무기에 쓸려나가는게 일상...
지리적으로 공격 갈때는 없고 가끔 쳐들어올일만 있으니까 그런것 같음.
유럽이나 중동, 중국보면 사방에서 쳐들어오고 침략나가고
신라와 고려전기이후 국제무역이 끊어진지 오래 된데다 조선후기에는 성리학의 교조화로 그나마도 실학사상을 꽃피울수 있는 학자들이 사문난적으로 찍혀서 기득권층에 의해 제대로 꽃도 못피우고 날아갔죠 그나마 청과의 사신무역과 국경지역의 밀무역을 통해 들어온 몇몇의 서양문물이 있긴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왕실과 양반들의 흥미거리 장난감일뿐 결정적으로 국제정세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아편전쟁당시 청에 대한 상황을 알면서도 변화하고자 하는 생각조차 없었기 때문에 결국 다른 식민지국가들의 전철을 밟아갔던것이죠
그리고 나선정벌당시 러시아를 통해 화승총이 아닌 부싯돌을 이용해서 격발하는 플린트락 머스킷을 입수했었지만 거기에 필요한 부싯돌은 조선에서는 쉽게 구하기는 어려웠던데다 당시 상대했던 러시아군이 정규전투부대가 아닌 민병대에 가까운 오합지졸들이라 제대로 경험을 못하고 털렸던터라 필요성을 찾지 못한게 한편으로 아쉽긴 했죠
그당시 신무기개발에 대신들의 반발도 심했음 명에게 사대하고 조공바치면서 평화롭게 지내는데 괜히 명니라의 조정에 의심받는다는 명분이었음
멸망때까지 홍이포도 제대로 복제 못해서 자체생산 못함
조상님들 전투력 쩌네요.....
[희대의 아이러니]
큰 전쟁은 후손을 강하게 만들고
큰 평화는 후손을 나태하게 만든다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고도 성리학에만 더욱더 깊이 빠져든 조선후기야말로 아이러니
강력한 국방력만이 살길이다. 살고싶으면 강한 군대를 만들어야 한다.
자랑스러워야 하는데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조선은 세종, 정조만ㅋㅈㅋ
조선의 상황을 그래프로 보면 M자죠
첫 번째 굴곡은 세종, 두 번째는 정조
아 가슴에 자랑이 차 오른드아.하하하하하.
아... 진짜 이건 이미 강선 소총이 나올시기에도 우린 저런 불을 붙여쓰는 조총을 사용하였어요. 그 조총으로 미군 프랑스군 일본군 을 상대했고요 결과는 역사책에 쓰여 있더군요.
@춘몽 볼트액션식 소총이 1870년대에 존재했던 것은 사실이나
미군이 볼트액션을 제식으로 도입한건 1880~90년대 즈음이라 신미양요 당시에는 트랩도어식의 단발후장식소총을 사용했을겁니다
신미양요 때 털린 이유로는 전장식 후장식 차이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우리는 활강총이었는데 적들은 라이플이었다는 점이 더 컸을 듯
@김보라 플린트락 알았지만 부싯돌 없어서 못 만듬
@이은호 압도요...?
강선은 조총도 팠음ㅋ그래봤자지만요
임진왜란 끝나고 60년 만에 이렇듯 조총병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항왜의 역할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항왜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항복한 일본군을 말합니다.
김충선.
나선정벌 당시 조선군의 놀라운 사격술에 러시아군 사이에서 '머리통 큰 놈들을 조심해라'라는 말이 돌았다고 함. 조선군들이 갓을 쓰고 있어서 머리가 커 보인 모양임
@@Mongbae 벙거지나 전립을 말한 겁니다. 그냥 퉁쳐서 갓이라고 해서 오해의 소지가 있을수도 있겠군요
터무니없는 주장임....왜냐면 만주여진족역시 우리한민족과 똑같은 인종이기때문...청나라놈들 우리처럼 대가리큼......ㅇ.ㅇ
지금도 한국사람 대갈 큼 구란말 사진들은 진짜 대두구요
걍 플린트락라이플로 매치락 라이플한테 처발린 전투임 저당시 조선도 플린트락을 입수하긴했는데 단가가 안맞아 생산을 안함
갓이 아니라 첨주형 투구임;
9:53 은 박격포 인줄
대충 바렛에다 철구슬 담아서 쐈다고 생각하면됨...
박격포 보단 RPG나 맨패즈에 가깝죠
유탄발사기(M203)라 보셔도 되요.
왜군이었지만 조선군으로 전향해서 싸운 인물들.. 자기나라를 버리고 조선을 위해서 목숨바친 그들...
좋은교훈 을 얻고 갑니다.
핵은. 쓰여서는 안돼지만 가지고 는 있어야 한다는...
역사적으로 이나라 정치인,왕,세도가들에게 유린 당하고 국가에 몰락으로 끌고 갔다. 과거나 현재나 항상 정치인이 문제다.
왕조특임
다큐멘터리극장 경제비화시리즈 1부와2부도올려주세요 꼭좀올려주세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해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해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해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해요 부탁드립니다 부탁해요 부탁드립니다다큐멘터리극장경제비화시리즈1부와2부도올려주세요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수준으로 조선을 생각하면 어디가서 무식하다는 소리 듣습니다
1871.06.01
미국군 : 살다 살다 무수한 포탄이 날라다니는건 처음본다.
미군 3명 전사 / 조선 243명 사살 및 3개 진지 파괴 이후 작약섬에서 머무르다 다음 임무를 위해 중국으로 이동
그러나 이런식으로 주욱 대원군때까지 갔으니 문제죠.. 대구경 화력은 차처하더라도 프랑스 미니에나 미군 롤링블락에 조총으로 대항했다는것 자체가 참 웃픈일이죠.
총의 무서움은 간단한 훈련으로 누구나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점이지...
임진왜란때 조총의 무서움을 보았는데도 조선 멸망의 순간까지도 무과시험은 활쏘기와 기마술 이였음..
왜냐하면 조총에 들어가는 화약이 비용이 높았습니다.
그건 그냥 무인의 소양 정도였고 조선의 주력은 명실공히 조총이었다. 속오군 병적 구성의 7할이 조총병이었고 인조때는 그 조선의 자랑인 편전의 사용 방법이 조총에 밀려 실전되었다는 기록까지 나온다. 오히려 조선은 조총에 미친 국가였고 조선군이 서구의 전열보병 수준으로 화기나 교리 화포와 포술에서 발달하고 진화하는게 아닌 이상 조선판 테르시오인 삼수병체제가 기본이었는데 조총에 매몰되어 임진왜란때 조선의 문제점이었던 병과 불균형이 다시터질 정도였다. 임진왜란 전엔 활이었다면 임진왜란 이후엔 조총에만 미쳐 병과가 붕괴될 정도였음. 때문에 근접병과 부족으로 청나라한테 개털리게 되지. 명나라 돕겠다고 부차벌판으로 보낸 병력도 조총병이 주력이었고 이후 모든 조선군의 역사에서 주력은 조총이었음
조총때문이 아니고 이미 준비되지 못한 군사력 때문이죠. 그리고도 반성하지 못하고 400년 뒤에 또다시 침략당함.
지금도 중국 북한 일본의 위협에 노출되어있는 대한민국
그나마 국방력이 아니러니 하게도 같은 민족인 북한 때문에 경쟁하듯이 발전하고 있으니..
이걸 좋아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미군의 힘이 아니라
반드시 자주국방이 필요하다
자주국방이라는 말은 이름만 좋은 빛 좋은 개살구일뿐이죠
한반도 주변 국가가 북한을 제외하더라도 압도적인 경제,군사 강국인 중국 일본 러시아인데 자주 국방'만'으로 이런 국가들 상대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셔요?
우리는 우리대로 최고 최대 최선의 국방을 하고 주한미군이나 여러 미국과의 군사적 커넥션은 놓지않는게 맞다고 봐요
동맹이라는건 있으면 절대적으로 좋은겁니다
병자호란때 김화전투 말고도 광교산, 동교산, 토산, 동선령 전투에서도 승리했는데??
이렇게 조총술이 강햇는데 왜 신미양요때 그렇게 허무하게 털린것인가요?
조총술이 아무리 강해도 후장식 강선 소총에 미 해병대의 조직적 전술이 결합되었으니까요. 이미 광성진은 함포 사격만으로도 끝장났고...또 당시 조선군의 훈련, 조직, 물자 상태도 제대로 안되어 있었구요. 그리고 사실 미국의 목표가 무력시위만 하면 바로 조선이 물러서고 일본처럼 항구 열고 강화를 맺는 건데, 그럴 기미가 없으니 알아서 빠져주었습니다. 만일 강화도에서 미군이 버티려 했으면 병인양요처럼 본토에서 건너온 제대로 조직된 조선군에게 패했겠죠.
1866년인데 250년 후임...
조선 말기 고종 시대에 조총으로 훈련하는 훈련도감이 있었고 왕을 호위하는 경호 역활도 하였는데 총 한방 쏘지 못하고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겨 36년 식민통치를 당하며 백성들이 억압당하는 상태로 살아냈다
부모님세대와 조부모님세대거 격어낸 새월의 시간은 가슴에 한이 많았다
총 한방 쏘지 못하고 나라를 빼앗긴 일이 역사 교과서 교육을 받으면서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사정거리50~100미터인데 150이 가능함? 16세기에?
사정거리와 유효사거리는 차이가 있습죠
45:19 ?? 화살을 쏴라? ???????
강선총이 없었던게 아쉽다
솔직히 전쟁은 역사중에서 무기와 전술은 결정적인 원인이라고 말을할 수 있습니다!
Don't mind me, just an English comment passing through.
다음편 예고는?
답변을든고싶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니 뭐니
잘했어요 잘했어 다만
너무 구닥다리것만 쓰고
신형 무기들을 천것이라고 여기는게 문제죠
저따구니까 타국에게 침략 당할수밖에
그리고 매치락 말고 플린트락이라도
받아왔으면 ㅡ ㅡ
납탄이라고 하니 총에 맞으면 납중독으로 인한 피해도 많았겠네요
당시 조선은 조총을 이미 받아들였는데도 이 정도 수준으로 전쟁한거 보면 진짜 조선은 답 없다
일본군이 사용한 조총은 아케부스 라고 하는 사냥용 머스킷입니다. 바로 개머리판이 없지요.. 유럽은 개머리판이 달린 머스킷을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길이가 길어서 막대위에 세우고 사용하지요
당시 일본군은 조총은 우세했지만 화포는 조선이 유세했습니다 임진왜란이후 우리 조선군도 궁수보다는 포수를 더 양성하고 전 보병의 40%를 포수로 양성했습니다.
숙종 때 천보총 실 사거리 800m 개발했죠
뭐야 왜 썸내일 머스켓이 왜 퍼커션방식이냐
앵커분 아주 오래전 스타크래프트 중계도 했던분이네 ㅎㅎ
조총이 좀 빨리 왔으면 좋았는데 아쉽군요 ㅠㅠ
9:35 80mm ?? 뭐 거의 2차 대전급 전차포 구경인데
플린트락 머스킷을 제식화 했어야
부싯돌이 문제임.
조선은 조총의 위력에 얼마나 뻑 갔었는지 우암 송시열은 조총이 활보다 쏘기 쉽다는 점을 이용 해서 여군 창설을 주장 하기도 했을 정도
한데 같은 조총으로 무장 한다 해도 싸우는 방식은 달랐을 거라고 봄
조선의 경우 서양이나 일본 처럼 라인전으로 쏘기 보다는 사냥을 하듯이 숨어서 저격 하는 식으로 사용 했을거임
그때문에 나선 정벌 때 플린트락을 구했고 하나 만들기는 했지만 메치락에 비해 잔고장도 많고 비싸기도 비싸고
여럿이 일열로 서서 라인 으로 서는거 보다는 저격식으로 했을 테니
그냥 계속 심지를 사용 하는 메치락을 써왔을거임
단 그렇다고 조선이 화승총 개량을 안한건 아니었고 연사력 보다는 사거리를 늘리고 명중률을 높이는 쪽으로 개량 했다고 봄
그게 바로 영조 때 개발 되어 정조때에
양산이 된 천보총인데 이총은 현제 쓰고 있는 m24보다도 사거리가 길고
대조총 보다 휴대하기도 쉽게 만들어짐
썸네일에 조총(화승총)이 아니라 퍼커션 락 머스킷
지나온 역사를 보고 앞으로 그런 일들이 다시는 없도록 해야 하는데...그래야 되는데...조선이 옆나라 일본조차 알지 못해 당했던 것처럼 고작 100년도 채 안 된 가까운 과거에 전쟁을 겪고도 그 상대에게 쌀을 퍼주고 지원을 해주니....암담하기 짝이 없네요
러시아랑 싸울때 얻은 플린트락 머스킷을 예산같은 정치적 문제로 우리것으로 발전 안시킨게 너무 아쉬웠음. 당장에 비싸기만 하고 쓸모 없어보여도 , 발전만 시킨다면 나중에 서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일은 없었을텐데. 신미양요 교전비 300대 1이 뭐야.....
조선말 대원군의 쇄국정치가 조선에 운명을 갈랐다고 합니다.
48:37
27:40 난 저런 멘트가 참 싫은게, 대전략에서 지고 소전투에서 승리해서 그 전술이 기가맥히면 뭐하냐.......
조선은 성리학으로 인해 뿌리부터 꼰대 국가이오...
ㅎㅎ 정신승리죠 병자호란 자체가 굴욕적인 전쟁인데 그냥 한두번 이긴전투로 정신승리하면 무슨의미가 있는지 .. 이라크가 미군한테 점령당하고 나 미군 몇명죽였다 이렇게 무용담 늘어놓는거랑 똑같은거죠
지우고 싶은 역사 조선왕조500년
활보다 장전시간도 길고, 관리도 어렵고.. 다만, 근처 농민 데려와서 2주만 교육시켜도 바로 실전에 사용할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고 보통 1년기간 이상의 수련기간이 긴 궁병, 창병, 검병, 기병을 2주만 교육받은 농민병이 사살할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죠. 그리고 활보다 큰 살상력.. 한번 박히면 빼기도 힘들어 안에서 녹으로 곪아 터졌습니다. 이를 알아본 오다노부나가가 아시아 최초로 조총 부대를 육성하였죠.
요약 :
조총 사거리 150미터란 건 유효 사거리(적중 50%)를 의미하네요
활의 유효 사거리의 2배 정도입니다
연사 속도가 느릴 뿐이지 관통력도 더 좋아요
연사 속도는 최대 분당 3발 = 20초당 1발
일본군 구성비
창병 : 500 (53%) - 최대 6미터까지 나옵니다(알렉산더 장창 방진 수준)
총병 : 200 (21%) - 유럽 사냥용 총 아쿼버스(판금갑은 못 뚫어요)
기병 : 150 (16%) - 기병은 별로고요
궁병 : 100 (10%) - 일본 활도 별로지요
전체 : 950 (100%)
일본군 공격 전술
1열 깃발 (지휘)
2열 조총
3열 도검+장창
사격후 (적중하면 적군 20% 전멸) 돌격 백병전
조총병 3열 방어 전술
1열 사격
2열 장전+대기
3열 장전
이렇게 하면 7초당 1발 쏘는 속도겠네요
활이 거의 2초에 1발 쏘고, 쇠뇌는 활보다 약 2배 느리다고 보면
역시 활이나 쇠뇌가 보조로 있어야 하겠네요
척계광의 기효신서 (중국 남부 보병 전술)
낭선 : 대나무 가지를 사용하는 방어용 창
장창 : 공격용
장도 : 방패(등패)와 함께 사용하는 공방 겸용
당파 : 공방 겸용 삼지창
이렇게 4명이 팀으로 1명 상대하는 전술
조선 전술 변화
살수 : 칼창
사수 : 편전
포수 : 조총
우린 여전히 멀리서 쏘겠단 것
조선성 : 넓고 낮다 (군민 공동 방어형) - 치(돌출부)가 있음
일본성 : 좁고 높다 (실전형) - 성벽 꺾기
유럽성 : 좁고 높다
근대요새 : 별 모양으로 치나 성벽 꺾기와 유사한 형태
조선 성은 사다리만 놓아도 타고 넘을 수 있는 수준으로 낮음
거기에 비해 넓어서 수비 병력이 많이 필요함
부자 감세하여 병력 줄면 무용지물이 되는 성임
조선의 정치가 썩을 때 털리는 이유가 됨
임진왜란 이후에야 모병제 상비군을 만들다니 ㅋㅋㅋ
그 전엔 급하게 오합지졸들 모아서 싸웠나?
월급을 지급하려면 부자 증세를 해야 가능하겠죠
부자 감세하는 나라는 망해 가는 나라죠 ㅋㅋㅋ
부자 감세하느라고 연구 개발지 지원도 줄이니 ㅋㅋㅋ
복지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군비 증강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공교육 확대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연구 개발 지원 하면 부자가 세금 많이 내니 나라 망한다
다 같은 친일파 꼴보들의 나라 망할 논리죠
총 = 철 = 돈
탄 = 납
흑색 화약 = 초석(질산칼륨) + 흑연/숯 + 유황(촉매)
임진왜란 때 중국군이 은을 돈으로 사용하는 걸 처음 접했다면서요?
돈이 있어야 시장, 자본주의가 가능하지요
기병 : 마갑 40kg + 전신갑주 20kg = 60kg 철
조총 : 3~5kg 철
기병 : 300kg 이상 말 + 60kg 이상 사람 식량 = 6인분 식량
총병 : 60kg 이상 사람
말 값은 요즘 승용차 하나 정도 가격일 겁니다
말 값 = 노예 가격 = 쌀 가격 환산 = 승용차 가격
기병보다는 조총이 가성비가 아주 좋지요
몽골 만주에선 말 값이 싸니까 나머진 철갑에 투자할 수 있죠
전신 갑주 3겹이면 60kg + 마갑 40kg = 100kg 철
이 정도면 편전, 쇠뇌, 조총 다 막아 냅니다
썸네일에 나오는건 조총이 아닌데....
6:56 준비하는데 발사된 거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케 웃겨
전장식총의 단점으로는 연기가 심합니다 따라서 모여서 쏘면 앞의 적 식별이 일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위치가 쉽게 노출될수있고요
전장총의 단점이 아니라 전장총에서 주로 쓰는 유연화약의 단점임
정조시대 이후 x 김씨를 비롯 몇몇 외척들이 조선을 망국의길로 가게 했죠.. 그런거나 좀 다큐로 만들어 주세요
개쌍도인들이 나라 많이 말아먹었죠
도롱 심리하고 민씨가 조선을 멸망햇어
@@키스를날려쓰러뜨리자 그걸 지역감정으로 몰아세우다니... 참 미개하네.
@@키스를날려쓰러뜨리자 노론이 그렇게 망국으로 이끌엇죠...물론 노론의 중심은 경북괴가 맞지만.....ㅇ.ㅇ
왜놈 간첩들이 국론 분열 조장한다더니 여기도 왜놈들 득실하네
전쟁은 비극이지만 호란이후 250년간 큰 전쟁이 없던 조선이라 병장기 개선에 손을 놓치게 됬음.. 나선정벌때 러시아제 머스켓 소총을 입수하고 네덜란드인이 도래해서 신형 조총기술이 도입되었을 수도 있었지만 전쟁을 두려워한 조선이기에 개량을 시도 조차 않아게 됨
북한산 노적봉 밑에 있는 노적사의 옆에 있는 언덕을 넘어가면 훈련장소가 있다
어차피 화승총이나 부싯돌총은 비오고비람불면 막대기 ㅋㅋ
거 내부 장전화약 습기 먹으면 개노답...
대포를 보다가 조총 보니
새나 잡겠지?
그런데 조선 완전히 새 됏어
됐
@@못구는짱말려 수정 완료 ^^
@@junepark7887 됏이 아니라 됐
문제는 조총이 더이상 발전을 하지못함 ㅋㅋㅋㅋㅋㅋㅋㅋ
조총 사격술은 대단했죠
신미양요때 미군 부상 2명
조선군 전멸의 역사를 쓰기도하고
동학폭동때도 일본군에게 조총으로
덤비다 싹 쓸려나가기도 했습니다
진짜 조선것들 싸움 못하는건
알아줘야됩니다
저때 러시아배는 뭐였는지 궁금하네 ㅋㅋㅋㅋㅋㅋ
초반엔 조총의 문제가 아니라 평화가 계속되니 조선군은 개을렀고 지금처럼 훈련도 많이 안했을뿐더러 임진왜란이 발발하기전 황윤길이 전쟁난다고 했는데 김성일 말듣고 전쟁안난다고 준비 안한게 문제임
아직 정신을 못 차린게 아니라, 지금도 못 차린거 겠죠.
에휴. 정신좀 차려라!~ 이 정치인들아.
그런데 이런 푸념은 책 몇권 읽어만 봐도 딱 보이는 겁니다.당장 마주친 일에 급급해서 과거를 인과하는 것이, 참 아쉽니다.
이걸 보는 분들이라도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주시길~
2년만에 글 남겨 보네요. 고생들 하시구요.
정치인들보다는 그런 정치인을 뽑는 국민이 더 문제..그리고 이사회의 기득권은 정치인이 아니라 검찰권력 언론권력 경제권력 사법권력 이런데가 진짜 오리지널 기득권들임 ... 변하지도 않는 조직임 정권이야 4년에 한번씩 5년에 한번씩 우리가 바꿀수 있지만 우리사회에서 오랫동안 누려왔던 기득권들은 잘 안바뀜
임진왜란때 왜군이 사용한 조총의 사거리가 50보라고 하던데 여기는 150보라고 나오네요. 150보는 최대사거리고 50보는 유효사거리인가요?
유럽에 소장되어있는 같은 포루투갈제 조총(아퀴부스)에 최대사거리는 약 800m 유효사거리는 120m 가 현재 최신학설입니다. 조선시대기록이... 정확한 단위도없고 죄다 개인눈대중이라..
@@sml2347 답글 감사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었어요.
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4769
오스트리아 슈타이어마르크 병기연구소에서 1571~1750년까지의 총기와 현대총기3정을 과학적으로 비교시험한 결과입니다 .ㅎ
조총(아퀴부스)는 소형머스킷이며 같은모델이 800m가 약간 넘는다고 나오네요 ㅎ
@@ariellerusty8251아시다시피 머스킷은 화약량을 줄이거나 늘려서 파괴력을 조정할수있엇습니다. 현대의 흑색화약이 정확도가 어떤연관이 있는지 모르겟습니다.
파괴력이라면 모를까.
그렇기에 위 실험처럼 흑색화약은 정확도와 상관없으며 50미터에선 대부분적중하고
100미터에선 50프로 적중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활 머스킷 석궁의 정확도 테스트입니다
th-cam.com/video/WeGtPxLwkuk/w-d-xo.html
머스킷만이 56미터거리에서 계속해서 적중시킵니다.
정조시대 수조규식에 의하면 조총은 120m거리에서 활은 108m에서 쏘라고나온게 이를 뒷받침한다고 봅니다.
화약의 낭비를 최대한 줄이려고 한다면 50m 이내에서 쏘는게 맞겟고. 나선정벌때 조준사격을했다는데 , 이처럼 산간지방에서 싸울땐 50m가 훨씬넘는거리서도 싸우겟지요.
그러고 보니 병자호란이 끝나고 나서 조.명.왜 3국의 총병들 중 청나라는 조선총병을 제일로 쳐주는 바람에 나선정벌때 파병을 가게 됨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명나라나 왜국의 총병들 보다 명사수들이었기 때문이라고 봄
아마 그 조선총병들 착호갑사였을거 같다는 생각이 듬
썸네일에 조총이 퍼커션캡락인거같은데 ㅋㅋ
멀리도 아니고 바로 옆에 있는 나라가 무얼 하는지 관심도 없었기에 처참하게 당한겁니다.
@동해안오징어 조선통신사는 뭐임? 교류아닌가
좋은건 받아들이고 나쁜악습은 버려라...그것이 부국강병의 첫걸음이지....
임진왜란에서 왜군이 강한건 비단 조총의 사용뿐만이 아니라 내전을 거치면서 쌓아온 실전경험이지.....
군대란 실전...그리고 훈련.....그것중에 하나는해야 강군이 되는법......
저때부터 우리 한민족이 러시아한테 빚을졋군 러시아 쏘리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제가 공부한것으론 왜군이 실전경험이 매우풍부해서 단병접전벌이면 하급 사무라이가 훈련 덜된 조선군 10명을 상대했다고 하더라구요
@@vlrtbisu6704 맞아요.....
임진왜란때 히데요시에게 반기를 든 왜군들이 우리한테 투항햇죠....그들을 여진족과 싸움을 시켯더니.....저렇게 용맹하고 잘싸우는
사람들은 첨봣다 라고 조선군이 말햇다더군요.....ㅇ.ㅇ
조총 갖고싶다. 현대총은 필요없으니까 조총이라도 갖고 싶다...
우리나라에서는 총 못가져요.
운명바뀐게아닌대요
조총으로털여잖아요
병자호란때도요
저렇게 보병체제로 바꾸니
그담은 여진의 기병 ㅎ
답이없지
옛날부터 우리나라는 화기의 나라
삼단사격술도 조총만 아니였지 이미 삼국시대때 부터 궁병이 쓰던 전술이구요.
그 좋은 실력으로 남싸움에만..
활도 그렇고 총도 그렇고 손에 잡기만 하면 동아시아 최고수준...ㄷㄷ
원거리무기에 특화된 민족인가봅니다
950회정도
외침을받은
이유중에
그당시 왕과
권력자들이
침략자보다
더욱악랄한
자들이많아서
전쟁빌미를준경우도
많았다
임진왜란이 화약병기를 사용한 최초의 전투라는 주장은 허위 아닌지... 조선군에 화약병기가 없던 것이 아니고 니탕개의 난을 진압할 때 총통이 사용된 기록이 있슴돠.
국방대학 교수라는 사람이 조총사거리가 150미터라니... 군인과 국방을 천시하고 전투등을 있는그대로 연구안하고 그저 국뽕으로 주먹구구식으로 대하니 우리나라가 제대로 싸운 전쟁이 별로 없지 그 당시 활의 파괴력은 떨어져도 연사력과 사거리 등이 우세하고 대포가 강해서 시스템과 훈련만 제대로 했어도 저렇게 조총한테 밀릴 일이 없는데 오랬동안 큰 전쟁이 없어서 대비를 못해 진걸가지고 조총때문에 진 것처럼 책임전가하고 있네 그리고 3열로 나눠서 싸웠다는게 지금은 근거가 없다고 나왔고 실제로도 일제히 발사하나 3분의 1씩 발사하나 지속적인 발사가 안될뿐 오히려 시간당 전체 화력은 일제사격보다 약한데 3열로 싸운게 더 유리할 거라는 이유도 없고 또 그당시 화약무기는 연기가 많이 나서 연속발사하게 되면 앞이 전혀 안보이게 되서 조준사격이 불가능하게 된다 그게 유리하다면 서양에서 머스킷 보병들이 일렬로 늘어서서 총쏘지 않고 3열로 싸웠겠지 조총이 활보다 유리한 이유는 조총은 방패와 갑옷을 뚫을 수있기 때문이고 활로는 그만한 파괴력이 없기 때문이며 소형총통보다 조총이 유리한 이유는 방아쇠가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시간에 쏠 수있기 때문이지 활의 연사력이나 사거리, 소형총통의 파괴력은 조총의 위력을 능가할 수있는 정도임 승자총통이 사거리는 짧지만 구경이 크고 산탄을 쏘기때문에 근거리파괴력은 조총을 능가했음
조총이 뭐야 머스켓? 돌격 소총을 만들어야지 강선 넣어서
조선의 운명을 바꿔?? 그래서 동학군이 조선군한테 이겼냐??
에이 그때는 19세기인데 조총이 처음 등장하던 16세기와 많이 다르죠
끝부분이 지금의 쥴리 공화국이네.
동아시아 최고에서 국제적으로까지 아주 우수하고 수준실력이 드높았다. 정말 너무나도 대단하죠?^^!~/ㅋㅎ
임란은 조총 때문에 밀린건 아니죠. 본질은 아시가루들인데
저조총은 외국에서 사냥용으로 사용됐죠
10:10 건담이다
임진왜란때 쓰인조총사정거리를 50m입니다
고종 1852 = 1919 이완용. 네덜란드 🇳🇱 헤이그 밀사 추진
주시경 선생님은 호머 헐버트의 제자입니다
°°영어보다 한글만한 글자는 없지만 띄어쓰기 잘해라°°
호머 헐버트 1863년 미국 귀국,버몬트주 출생 선교사
육영공원의 영어교사 한글학자 🔄 4일만에 깨치다
안중근 의사는 단,하루라도 헐버트를 잊어서는 안됩니다
ㅋㅋㅋ 이거 국방tv에서 저격했던데 ㅋ
다들 머스킷소총을 쓸때 조선은 당시 최고의 조총을 가졌다나 ㅋㅋ
Musket 을 동양에서 조총이라고 부릅니다. 종류가 다를수는있지만요.
한국 일본이 쓴 아르케부스임 초창기 메치락방식 조선도 러시아와 전쟁에서 플린트락 머스킷을 얻게 되는데 양산하는데 비싸다고 관심 끄게됨.. 여기서부터 조선의 망조가 나옴...
@@유정덕-u4x 플린트락에 무관심했던 건 동북아시아 공통입니다. 가격은 더 비싼데 불발률도 높았거든요. 불씨 관리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서구와는 달리 대규모 전면전이 드물었던 동아시아에서는 굳이 막대한 자원을 쏟아부을 필요성을 느끼디 못했습니다.
조선은 조총을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해서 500년동안 변화 발전없이 간직해옴
그리고 일본 30식 소총에 개 발리죠
@@nang-in 메치락 머스킷이 당연히 발리는게 당연한데 뭔 소리지
원래 플린트락 머스킷을 만들수 있는기회가 왔는데 비용문제로 안만듬
@@hanakiriko 그게 발전 안 한 거임. 비용 절감 연구는 필수인데.
@@앤드류존슨 좋은 기회를 걷어 찬거
조총이 일본보다 우리나라에 먼저 들어왔다면 판도가 어떻게 바뀌었었을까
안 바뀌었어요. 임진왜란 전에 조선에서 조총 입수합니다. 근데 활보다 별로라고 무시했을 뿐. 전쟁사에 별로 관심없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게 임진왜란이 조총 때문에 졌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10만 중 조총병은 1만도 채 안 됐습니다. 당시 일본은 전국시대의 최정예 병사여서 훈련 안 된 조선군이 상대가 될 리가 없었음.
@@앤드류존슨그렇군요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조총으로 털렸다는건 개뻥임...나중에 왜군이 의병들한테 털린것만 봐도...의병이 조총이 있었나?
오죽하면 총의 등장이전에 싸운 무기의 역사보다 총이 등장하면서 죽인 사람 숫자가 더 많을까..
총은 인류에게 최악의 무기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그 조총병들 임진왜란 끝나고 병자호란때 청나라 기마병들한테 완전히 발렸잖아 영화 남한산성 보니깐 처참하던데
걍 조총병이 약한ㄱ 아니라 후금군이 압도적으로 쌨던거임 게네들은 야인여진 해서여진 몽골 차하르들 명나라등등 전쟁이 일상인 민족인데 전쟁을 거의안하는 조선이 어케버팀 게다가 병자호란때 후금기병들 진격속도 보면 말이안나옴 진짜 벽제관까지4일안에 도착함 그런상황이니 제대로 명령불가능해서 왕은 남한산성에 갇히고 남한산성으로 집결하는 병력은 각개격파당하지...
하멜 표류기를 보면 조선은 조총과 대포를 갖출 기회 그리고 최무선의 화약기술이 있었음에도 결국에는 일본에 개털리죠?
자주국방..아직도 이루지 못한 꿈...삼국시대 이후로 꿈을 잃어버린 나라...ㅠㅠ
그냥 훈련안한 일반 백성이 몇일만 다루다보면, 꽤나 능숙하게 사용할수있는게 저 조총
게다가, 파괴력이 어마무시함
활이나 칼 창등은 훈련받은 병사의 근육에서 나오는 위력이지만,
저 조총은 화약의 힘이라서, 사용자를 가리지 않는다는거 .
참고로 저 조총은 포르투갈 상인이 일본에다 팔았던 아케부스라는 사냥총 .
기존, 군사용인 매치락 이라는 화승총은 단가도 훨씬 비쌌고, 상인이 몇개 가져오지도 않았다고함 .
그 시절엔 유럽에서도 그게 최신 무기였는데, 대량보급된 상태도 아니었기땜에 본인들 무장하기도 바빴다고함
그대신 비교적 아주 흔하게 보급이된 사냥총 아케부스를 일본으로 가져와서 거래함 .
정당 10억씩에 2자루를 사고, 또다시 10억을 주고, 상인에게 조총 만드는 방법을 배움 .
그렇게해서 일본의 그당시 수공업으로 몇만자루 정도 생산한뒤에, 조종부대만 따로 편성함 .
대대마다 1개중대의 숫자만큼 조총부대를 편성 .
대량생산을 못했기에, 왜군 전원에게 보급을 못함 .
그렇게 조총부대로 , 3 ~5 열씩 교대사격하는 방식을 훈련함으로써 , 연사력을 키움.
파괴력은 이미 입증이 되었으니 연사속도를 키우기위해 교대사격 방식으로 훈련함 .
조총부대는 주력부대가 아니었고 전투 보조부대였는데,
그러한 교대사격방식으로 임진왜란때 육지전에서 조선군을 압도함 .
당시 육상 왜군은 크게 3부대였음 . 기마병 , 보병, 조총부대
다필요 없고 보급이죠 아무리강한 군대도 보급이 없으면 소용없지요
농업과 달리 상업과 공업을 천시하고 방치한것이 500년간 조선사회를 지배한 사농공상 유교사상이였습니다.
정조대에이르러 학문의 다양성을 포용하고 그 실체에대한 연구를 중시하던 실학자들이 태동되었지만 정조사후 모든것은 폐기처분되고 극단적 유교이념에 집착하게되었지요.
암튼 뭐 쏘고 맞추는건 참 잘해 옛날부터
기관총과 대포 앞에는 못 당하지. 늦으면 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