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이 얼마나 쩌는 인재였냐면 저당시 키 185, 한국어 제외 6개국어(영,프,독,러,중,일어)에 능통했음(유학할때 영어전공-교수들과 프리토킹, 2학년때 프랑스어수업-나중에 번역작업, 3학년때 러시아어수업-번역및 조만식선생 통역, 독일어 능통-정식수업으로 독어를 들었고 독어교수가 아꼈음, 중국어-만주기거및번역작업, 일본어-유학간곳) 또 한가지 사실은 영상에서 제대로 설명을 안하고 있는데 두번째 부인은 북한에서 유명 변호사의 딸이자 레닌그란드 음악원 출신인 북한 최초의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음...인물하나 보고 가난한 집으로 시집왔는데 유산 후 고부갈등때문에 이혼했음
백석은 조만식의 로시아어 통역도 한 것으로 보아 공산당과는 거리를 둡니다. 1996년 개마고원 농장에서 사망..평생 죽은듯이 산 분입니다. 소련파도 1956년 전후 거의 숙청을 당합니다. 북한의 소련파가 다 스탈린을 지지한 것은 아니기에 김일성을 숙청하려다가 모두 제거됨.
@@황가네고양이 거짓말이면 1000억원 짜리 거짓말인데 그정도면 뭐. 과장이 심하지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동순 영남대교수가 그나마 가장 진실의 근처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은데 백석과 김영한의 기사가 대부분 조작되고 윤색되었다고 하면서도 평소에 “진향은 시인 백석과의 사랑을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며 살아왔다고 입버릇처럼 술회"했다는 것 자체는 이야기합니다. 즉 100% 구라는 아님....
김영한 여사가 전 재산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오늘날 길상사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평소 무소유를 주장하며 청빈을 자랑으로 삼던 스님이라 너무 엄청난 기부에 몇번이나 고사했지만 김영한 여사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말년에 입적할때 병원비를 낼 돈이 없었기에 밀린 병원비를 홍라희 여사가 대납해 주셨습니다.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 ..... 북으로 가서 축출되어 농장응로 보내지고 그때에 쓴 수필집들 전집 통해서 읽어보니 .. 하아... ㅠㅠㅠㅠㅠ 첫사랑인 통영의 여성을 절친에게 빼앗기고 .... 지금도 통영 충렬사에 백석이 주저앉아서 시를 쓴 돌계단 남아있어요. 시가 유명하지만 수필도 정말 정말 좋습니다. 한국의 보석같은 존재죠.
음... 아무런 신격화가 없고 그냥 천재성 앞에 평범한 범인의 풍모가 보여서 좋네요 여자도 여럿 만났고, 부끄러운 성격에 비해 여자 만나는것에 거침이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항일운동하는 시인들에 비해서 끝까지 버티면서 하지 않고 나중에는 창씨개명도 하고 그냥 고생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도 들어나고 북한에서도 한번씩 현타와서 잘못된 점을 말하다보니 가세가 기울어져서 어쩔 수 없이 북한 찬양하는 시도 쓰고 그게 부끄러워서 다 태워버리라고 얘기까지 한 정말 일반적인 그 시대의 모습이 보여지네요.
김영한에 대해 공격적인데, 과거일은 정확한 년월일을 기억하기 쉽지 않고, 성북동 건물 시주한 뒷이야기라고 한것도 노인이 지인에게 자기가 좋은일 하겠다고 시주하련다 하지않고 세금이니 뭐니 힘들어서 처분하련다 라고 말하는게 오히려 주위에서 보는 흔한 노인들 행동 아닌가. 시골의 늙은 모친이 굳이 자녀집에 반찬 바리바리 싸서 들고와 놓고 니가 걱정되 싸왔다고 하던가? 할애비가 손주들에게 사탕이나 용돈을 니 생각나서 굳이 챙겨왔다고 하던가? 김영한이 말한대로 영업이 힘들고 세금 많이 나가는 건물 들고있는 노인들은 세상에 많을텐데, 그녀처럼 수천억을 기부하는 사람은 왜 적은건지를 이동순인가 뭔가 하는 자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길상사가 한정식 대원각으로 운영할때 참 많이 갔었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가장 모시기에 좋은 한정식 집이었는데요....삼청각보다는 외국인에게 대접하기에는 대원각이 정말 좋았습니다. 산 속에 조그만 오두막집들이 있었던 대원각에 대한 추억은 길상사로 변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씨가 죽을때까지 평생 흠모하고 기다렸던 월북 시인이 백석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오늘 백석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를 들어보니....아! 백석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편안도의 깊은 금절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을 때리며 겨울처럼 차갑게 울었다 캬~~~ 예술은 이념을 넘나드는거지 북한으로 가든 심지어 친일파 시도 보고 감동받는데 국화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아직까지 회자되는 시인인데.. 그 귀한 원고를.. 불쏘시개로 썼다는게 북한현실 반영한거 같아 너무 마음 아프네
회자 혜자 김혜자!! (전원일기)
@@ohmalub ???????
첨부터 회자라고 썼는데
먼 개솔임?
@@ohmalub ?
@@lucienoon7262 사랑해 알라뷰 쪼옥~
@@ohmalub same here, gros bisous et dors bien mon coeur-
미남 천재시인이 시대를 잘못태어났다.참 말로가 가슴아프네요.
시대를 잘못태어난게 아니라 자기 잘 살고 싶어서 김일성 찬양시 쓰러 월북했다 망테크 탄건데 뭔소리임?
@@kwy7228과거 사람한테도 열등감 느끼는 인간 ㅋㅋ
@@kwy7228사상으로 넘어간게 아니라 그냥 고향이 평안도라 그리로 갔다가 분단된거지.
@@kwy7228 자기 고향으로 간거 아니에요?
옛날엔 공부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가는것도 흔했어요. 지금은 은퇴후 낙향하려하죠~ 고향은 늘 그리운곳이니까요
@@kwy7228뭐 백석이 지금 세대 사람이냐 월북하게 ㅋㅋㅋ 고향 돌아간 거지
대한민국 남한이 고향인 사람은 아니지만 한국인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교묘하게 중국이 항상 달려 들어 중국인으로 둔갑하니 그냥 한국인이라고 소개해주면 좋겠어요~
옛날에도 보는 눈은 비슷했구나. 저 콧날 봐, 요즘 같았으면 배우 할 상이네.
저 땐 다 그렇지 뭐
그정도 아님
이이경님 닮음
조선인의 피가 내 몸에 조금이라도 덜 섞이면 잘생겨짐 이 퍼센트로 승부 보는게 현 한국에서의 외모
전혀. 이이경은 떠오르지도 않구만.
고생했었는데도 인물이 좋으시네요ᆢ
백석 젊었을때ᆢ 정말 요즘 스타일의 미남이신듯
키도 185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참 좋아한 시였는데 백석의 삶에 대해 알고 나니 고뇌와 고독이 정말 시리게 느껴집니다.
오~ 저도요!전 제목이 주소인지 몰랐어요.
백석이 얼마나 쩌는 인재였냐면 저당시 키 185, 한국어 제외 6개국어(영,프,독,러,중,일어)에 능통했음(유학할때 영어전공-교수들과 프리토킹, 2학년때 프랑스어수업-나중에 번역작업, 3학년때 러시아어수업-번역및 조만식선생 통역, 독일어 능통-정식수업으로 독어를 들었고 독어교수가 아꼈음, 중국어-만주기거및번역작업, 일본어-유학간곳) 또 한가지 사실은 영상에서 제대로 설명을 안하고 있는데 두번째 부인은 북한에서 유명 변호사의 딸이자 레닌그란드 음악원 출신인 북한 최초의 여성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였음...인물하나 보고 가난한 집으로 시집왔는데 유산 후 고부갈등때문에 이혼했음
잘생겨서 여자들도 많이 따르고 여자도 많이 좋아하고 평범한 삶은 아니였구나.천재적인 시인이기도 하고.
그런대 맞는듯 해요. 얼굴은 닮을지라도 귀모양까지 닮을수는 없는대. 귀 모양도 닮았어요.
백석은 영어만이 아니라 러시아어에도 능통했다고 하지요.
외국어로서는 러시아어를 가장 좋아했었다고 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소련파에 들어가서 적극적으로 김일성 디스하다 운좋게 소련으로 망명했다면 행복한 결말을 맺었겠죠.
백석은 조만식의 로시아어 통역도 한 것으로 보아 공산당과는 거리를 둡니다. 1996년 개마고원 농장에서 사망..평생 죽은듯이 산 분입니다. 소련파도 1956년 전후 거의 숙청을 당합니다. 북한의 소련파가 다 스탈린을 지지한 것은 아니기에 김일성을 숙청하려다가 모두 제거됨.
일본만 아니었어도 우리 민족이 이런 고통을 안겪을텐데.. 친일파를 처단못해서 기금도 나라꼴이
@@파이란-p8z민족의 배신자 김일성 때문입니다
@@파이란-p8z그럼 천재를 저리만든 공산당은 안무섭나요?
역사는 바로알고 새기는게 맞지만 뭐만하면 친일파 처단이래 참 무섭네
국적 의심안가게 맞춤법이라도 바로 쓰던가ㅉㅉ
백석 시인 모습에서 현빈 배우 얼굴이 보이네요. 참 잘 생기셨었네요. 백석님의 시도 찾아 읽어봐야겠어요.
진짜 현빈이 많이 닮았죠
현빈하고 비교하다니요..ㅜㅜ😢
젊을 때 모습이
현빈 보다 공유와 비슷하다는 느낌!
키도 매우 크셨다고 합니다.
저는 박해진 배우님과 닮은 것 같아요ㅎㅎ
정말 미남이시네요😊
백석 시인의 수라- 지금도 그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립니다.
아까운 시인님, 영면에 드셨군요. ㅠㅜ 평안한 잠 되시길 바랍니다.
시간은 흐르며 순간은 남으며 사랑은 기억되구나...
되는구나..
김영한과 관계는 김씨의 일방적 주장으로 팩트가 아니라는 말이 많은데..
김영한이 꾸며낸 거짓말이죠
제가 아는 분이 벡석으로 박사논뮨 쓰셨는데 김영한은 본인 자작이라고 하심요
@@황가네고양이 거짓말이면 1000억원 짜리 거짓말인데 그정도면 뭐. 과장이 심하지 아예 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 같습니다. 이동순 영남대교수가 그나마 가장 진실의 근처에 있었던 사람인 것 같은데 백석과 김영한의 기사가 대부분 조작되고 윤색되었다고 하면서도 평소에 “진향은 시인 백석과의 사랑을 몽매간에도 잊지 못하며 살아왔다고 입버릇처럼 술회"했다는 것 자체는 이야기합니다. 즉 100% 구라는 아님....
돈으로 전설을 만들어 낸 거죠.
사람들이 진실을 헤아리길 바랄 뿐입니다.
짝사랑? 펜?
슬픈 역사 속에서 비운의 삶을 사신 분이네요.
우리 나라에서 전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한국 현대사의 모든 굴곡을 격으신 백석 시인. 가정사로 인해 사랑을 잃고 나라를 잃으니 이름도 잃었고 해방후 고향으로 돌아가니 공산 치하에서 시를 잃으시고. 하늘에서는 좋은 글 많이 쓰고 계시겠지요.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가 기생이죠? 바람피우던 여자
러시아 인인가요?
ㅋ 감성 찐이죠..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시입니다.
@@kongshouse7554 본마누라 버리고 바람피우던 기생입니다
@@user-1kljsh28l9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취해가는
백석 시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영상이 몰입도가 장난아니네요.
영상 몇 개를 연이어 보고 있는데, 내용도 내용이지만 편집이 위트있어서 좋아요!
김영한 여사가 전 재산을 법정스님께 시주하여 오늘날 길상사가 만들어지게 되었죠.
평소 무소유를 주장하며 청빈을 자랑으로 삼던 스님이라 너무 엄청난 기부에 몇번이나 고사했지만 김영한 여사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말년에 입적할때 병원비를 낼 돈이 없었기에 밀린 병원비를 홍라희 여사가 대납해 주셨습니다.
전라도끼리 밀고당겨주고ㅋㅋ
그런 숨은사연이 있었군요...
그러게요. 홍라희 여사가 불교라 들었는데 도와줬군요.
새로운 사실들이 잘 고증된 새로운 내용의 백석 일대기 유익했습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엄마 얼굴이 엄청 예뻣겠구나.그러니 그런 소문이 나지
머리숱이 엄청 많네
제가 좋아하는 시의 작가이자 기생과의 사랑이야기만 알고 있었는데…
이런 삶이 있었군요 안타깝네요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노인인 지금도 미남이네! 모태미남 백석시인
백석 너무 좋아했는데
겨울이면 백석을 더욱 좋아하죠.
감사합니다.
180 넘는 키에 지금봐도 존잘인 (그땐 화장도 없고 젤도 없고 성형도 없고 뭐 있는게 없음) 얼굴에 시인까지 ㅋㅋ 여자가 뻑이 안갈수가 없음
있었다
저 시대에 저 외모 진짜 천상계네.. 현 시대에서도 완전 미남형인데..
이 시절 참 아름다운 사랑이 많았네요. 멋진 해석 잘 보고 갑니다.
내용이 너무 좋네요 노천명의 사슴..반전에 대연각 까지 이어지는 인생사....
대연각 -> 대원각
노천명은 최악의 삶을 살다간 사람으로 지탄받고 있습니다. 근래에 밝혀진 사실까지 찾아보세요. 시와 인간이 너무 다른 사람입니다.
사진 속 늙고 노쇠한 백석의 모습이 충격이라기 보다는 누구나 다 청년의 사진과 노인 때의 사진을 비교해 보면 다 저렇습니다. 아니, 오히려 백석은 잘 늙어가셨달까.
진실은 그 분들만 아시겠죠. 살아 보니 진실보다 자기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데로 각색된 것이 많지요. 아름다운 길상사의 단풍으로 인해 백석에 대한 시인을 더 잘 알게 되었네요.
현빈이 살짝 보임
저 시대에 엄청 세련된 외모였을듯
당시 헤어스타일이 너무나도 세련되있다 ㄷㄷ
박식한 시인 백석
윤동주 시인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짝짝짝 ❤🎉
참 잘생기셨습니다
고등학교때 배우던 국어ㆍ국문학
시간이 되돌아 배우던때가 생각
나기도 하고 그립기도 합니다
그때는 시를보아도.
소설을보아도 전후라서 그런지
아프고 아리고 가슴에 묻고 지냈
습니다 지금은 할미가되어
오랜기억을 떠올리는 늙은이되었네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 ..... 북으로 가서 축출되어 농장응로 보내지고 그때에 쓴 수필집들 전집 통해서 읽어보니 .. 하아... ㅠㅠㅠㅠㅠ
첫사랑인 통영의 여성을 절친에게 빼앗기고 .... 지금도 통영 충렬사에 백석이 주저앉아서 시를 쓴 돌계단 남아있어요.
시가 유명하지만 수필도 정말 정말 좋습니다. 한국의 보석같은 존재죠.
일제말기에창씨개명한 경우는 친일파라기보다는 민족주의자로 보는게 옳은것이 말기에는
강제로 일괄적으로 창씨개명을 한것이고 창씨개명을 했다는건 그전까지 한국이름을썻다는것이기에 일제말에창씨개명을한걸 친일의 증거로 보는건 잘못된 판단입니다.
지금 그거 욕하는 사람들 조부님들 거진 다함
창시개명 안했다는건 당시에 공직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는거임... 이걸 친일의 기준으로 삼긴 힘들죠.
@@mensa2030 반대로 이야기하면 당시 공직에서 근무했다는 건 일본제국에 헌신했다는 거고 친일이라는 소리죠.
@@chrisst.simmonkang2942 하.. 공직에 들어가면 일본제국에 헌신하는거예요?
국내 외국계 회사에 취직하면 외국에 헌신하는거네요?
좀 생각없는 애들이 하는 말좀 믿지 마세요.
@@mensa2030 일본제국은 지금과 같은 국가가 아닙니다. 태생부터가 군국주의국가였고 특히 일제강점기 때는 전체주의국가였습니다. 일본 공무원시험 찾아보길 바랍니다. 당시 교육제도도 찾아보고요. 국가에 대한 헌신을 강요하던 국가였습니다.
참 재능이 아까운 백석시인ㅠㅠ
1912년생인데 당연히 죽었겠죠 정말 아까운 천재인 건 팩트입니다. 남한으로 넘어가서 문학 교수 하고 김정권아부성 시가 아니라 진짜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시를 계속 만들었더라면
평안북도 정주 출신들중 유명한 분들이 많았네.
통일되면 영변 약산은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끝자락에 나오는 시인 정지용, 임화 두분도 모두 잘생기셨네요
지금봐도 존나 잘생기긴했네
눈이 진심 개잘생김
전 콧대와 인중 입술쪽이 잘생긴 것 같아요 ㅋㅋㅋ
성형없던 시절 저정도 외모면 진짜 미남~~~👍👍👍👍
진짜 잘생김
맞음..요즘 같은 시대에도 지하철 타보면 진짜 남자들 하나같이 개빻은 얼굴 ㅈㄹ 많음 ㅋㅋㅋㅋㅋ
인생은 너무 짧지만 사랑은 영원하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네요 애석합니다ㅜㅜ
넘넘 재밌습니다
자주 찾아올께요
유익했습니다ㅡ감사합니다ㅡ
힘든 여정에도 행복했기를...
절대
결국 김일성에 이용만 당하고.....에휴, 삶 자체가 곡절많은 역사네요. 북한을 아직도 따르는 자들의 무지몽매함을 깨우쳐 주는 백석의 리얼한 삶!!!!!!!
알고보면 북한정치범수용소 1기생이었네요?
그에게 마지막 기회는 6.25때 모시기를 틈타 잠적하거나 중국이나 소련에 붙다 추방되거나 망명하는 것 이었습니다.
김일성에게 이용 당한게 아니고 김일성 등에 업고 한 자리 하려고 했던건데 자랑은 아니지요
순진하지않은 자가 순진한 자를 이용하지않나 ???
현재 북한을 따르는 자는 북한 엘리트들 밖에 없을 텐데? ㅋㅋㅋ
이상한 결론. 친일파가 정권 잡고 민족주의자들을 처단하는 나라에 살 수는 없어서 많은 지식인들이 월북함.딱히 이념이 문제가 아니었음. 남이나 북이나 지식인들이 선택할 여지는 없어서, 광장의 이명준이 나왔던 것
안도현 시인의 책을 바탕으로 만들었군요.
백석을 잘 정리해서 공부 잘 헀습니다.
참 잘생겼다.
천억 기부가 본인이 감당하기가 힘들어서라니.... 그거 대신 해줄 사람 돈 주면 얼마든 고용 가능할텐데 아무나 못하는 걸 하신 일을 저렇게 비꼬다니 ..
그러게요. 10여년간 각별히 친하게 지냈다더니 사실은 그동안 배가 많이 아팠나봅니다ㅋㅋㅋ 남 잘 되는 꼴은 못보는 성품인가봄..
백석/윤동주/ 그리고 김수영. 둘은 소박하고 정갈한 시를, 김수영은 날카롭고 거침없고 내숭을 떨지 않았다. 우리 문학에 이 세 명의 시인이 없었더라면...
북에 남고, 감옥에서 옥사하고, 교통사고로 죽고..시인의 운명은 시처럼 아름답지 못했다. 못내 슬픈 사연들.
음... 아무런 신격화가 없고 그냥 천재성 앞에 평범한 범인의 풍모가 보여서 좋네요
여자도 여럿 만났고, 부끄러운 성격에 비해 여자 만나는것에 거침이 없었고, 그렇다고 다른 항일운동하는 시인들에 비해서 끝까지 버티면서 하지 않고 나중에는 창씨개명도 하고 그냥 고생을 하기 싫어하는 성격도 들어나고 북한에서도 한번씩 현타와서 잘못된 점을 말하다보니 가세가 기울어져서 어쩔 수 없이 북한 찬양하는 시도 쓰고 그게 부끄러워서 다 태워버리라고 얘기까지 한
정말 일반적인 그 시대의 모습이 보여지네요.
고등학교때 사진보고 반했었는데 그때부터 쭉~ 좋아합니다^^
고등학교때 백석시인 시 참 좋아했는데 이런 이야기들이 있었다니. 흥미롭게 잘봤습니다
김영한에 대해 공격적인데, 과거일은 정확한 년월일을 기억하기 쉽지 않고, 성북동 건물 시주한 뒷이야기라고 한것도 노인이 지인에게 자기가 좋은일 하겠다고 시주하련다 하지않고 세금이니 뭐니 힘들어서 처분하련다 라고 말하는게 오히려 주위에서 보는 흔한 노인들 행동 아닌가. 시골의 늙은 모친이 굳이 자녀집에 반찬 바리바리 싸서 들고와 놓고 니가 걱정되 싸왔다고 하던가? 할애비가 손주들에게 사탕이나 용돈을 니 생각나서 굳이 챙겨왔다고 하던가? 김영한이 말한대로 영업이 힘들고 세금 많이 나가는 건물 들고있는 노인들은 세상에 많을텐데, 그녀처럼 수천억을 기부하는 사람은 왜 적은건지를 이동순인가 뭔가 하는 자는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일확천금 같은 일이 실제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받아들이는 것이... 이동순 교수... 김영한이 자신을 사랑했었노라고 말하고 싶은 거지...
길상사가 한정식 대원각으로 운영할때 참 많이 갔었죠. 외국에서 손님이 오면 가장 모시기에 좋은 한정식 집이었는데요....삼청각보다는 외국인에게 대접하기에는 대원각이 정말 좋았습니다. 산 속에 조그만 오두막집들이 있었던 대원각에 대한 추억은 길상사로 변하면서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대원각의 주인 김영한씨가 죽을때까지 평생 흠모하고 기다렸던 월북 시인이 백석이라고 듣기는 했는데, 오늘 백석에 대한 자세한 스토리를 들어보니....아! 백석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MrBiotron 아이고 이래서 역사는 믿을게 모른다고 하는거예요. ㅡ 새빨간 거짓말 ㅡ 요사스러운 기생 김영한의 뻥에 감동 받고 거참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시인
너무 미화된게 많은 시인임....
신성록 닮은꼴로 유명했지만,다른 사진에선 현빈 삘도 났네요.기생출신 모친이 미인 이었나봐유.당시 기생은 현대의 연예인 이잖아유
시인이나 소설가도 지금의 연예인과 마찬가지로 인기가 많았던걸로
갠적으로 러시아어 하는데 백석이 러시아어를 했었죠. 진짜 어케 배웠나 놀라울정도 ㅎㅎㅎㅎㅎㅎㅎㅎ 진짜 현지에서 현지인한테 안 배우면 못할 언어인데 ㅎㄷㄷㄷ
현지에서 배우셨나요?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여승,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참 많은 걸작들을 남겼지요.
백석을 연기 할때는 닮은 꼴로 원빈이 적절했을것 같다.
대학원때 백석의 시로 소논문 많이 썼었지 ..
서늘하다못해 쩡한 북방의정서와 평범한 단어를 유니크한 문장으로 구성할수 있었던 세련과 낭만의 시인.
백석 시에 가슴 떨리지 않은 문학전공자가 있었을까 싶을많큼 매력적이였는데
오타있음
그렇군요 👌 백석 시인에 대해 처음 알았네요.
솜씨있는 시인. 독재국가에서 고생하셨구나. 아ㅜ언제쯤 북한동포와 같이 한민족으로 살게 될지.
북한동포 (X)
2600만명의 빨갱이 (O)
한국에 있었으면 문화부 장관에 임명됬을건데 어지러운 세상이 사람조차도 그렇게만드네요
역시 사람은 예쁘고 잘생기고 봐야..
편안도의 깊은 금절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 옥수수를 샀다
여인은 나어린 딸을 때리며
겨울처럼 차갑게 울었다
캬~~~
예술은 이념을 넘나드는거지
북한으로 가든
심지어 친일파 시도 보고 감동받는데
국화꽃 한송이를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그렇게 울었나 보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앞에선
작가의 행태와 작품의 평가는 별개로 봐야 하냐 창작물의 평가에 작가의 행태가 반영되어야 하는가는아주결론내기 어려운 화두가 있긴하죠 전 후자라생각하지만은.
@@박광현-u2s 내재적 평가
외재적 평가
말씀하시는건가요?
@@박광현-u2s백석은 이념을 노래하지 않았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연민만을 말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한국이 가진 공동체의식만이
극복하는 방법이라고 해법을 내놓았죠
@@박광현-u2s 서정주도 친일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시는 따로있고 배우지 않습니다
서정주는 인간의지를 많이 노래했죠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겠다는 그 의지는
친일행각하고는 관계가 없으니깐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 이거 무슨시인가요? 글귀가 대단하네요
안맞는것같은게 하나 있어요. 일본 시인에게 영감을 얻어 石이라는 글자를 필명으로 썼다던데 일본 가기 전 18살때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이미 石이라는 필명을 쓰고있는데
우리 아버지 중학교 시절 교감선생님이 신현중 선생이라 하셨음 항상 하시던 말이 "독수리처럼 높은 기상으로 세상을 바라보라"였다하심.
김규식 선생 수행하며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했던 당시 기준으로 상당히 견문이 넓은 엘리트였다 하셨음
유익해용ㅎ😊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시를 읽다보면 그의 감수성이 얼마나 아름답게 섬세한지..감탄 그 자체이다
박서준+윤현민+신성록+현빈+공유+이무진(?)+엄기영 앵커님 ㅋㅋㅋ
조금씩 섞이긴 했는데 잘생긴거로는 솔까 백석님이 젤로 잘생기심 그것도 저시대에..ㄷㄷ 머리숱도 개많으심
이민기도 섞인듯 존잘..
평범하지 못하신게 슬프네요 ㅜㅜ
대한민국 사람은 맞아요.😅
수원영생고등학교 졸업생인데 함흥영생고등학교(그당시 여고)출신 할머니들이 모여만든 사립학교임 학교다닐때 아무도 백석이 영생고등학교 영어선생이었다고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음 졸라 킹받네
백석은 지금같으면. 얼굴뜯어먹고 살았을텐데
참 낭만적인 시절이 있었네요
김영한씨와의 스토리는 김영한씨의 일방적인 주장이라 사실 여부에 대해서는 많은 애기가 있더군요 시기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애기도 있습니다
김영한 꾸며낸 거짓말이죠
자야딸(서씨) 대원각소송 재판에서 조계종상대로 50억 승소함
사족 달면 백석은 만나거나 어울린 모든 여성들이 당시 기준으로 명문학교를 졸업한 고학력 신여성들이였습니다 북한에서 결혼한 백석의 2번쨰 부인은 레닌그라드 음악원을 졸업한 인텔리 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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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한이 지적 갈망으로 뒤늦게 공부하러 쫓아다니다 알게 된 시인을, 만나 볼 일도 없이 가슴에 품은 거 같습니다. 더 이상 진실이 호도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김영한씨 주장이 일방적이라는건 편협한 시각 입니다. 그저 내가 아는 분은 그럴리 없다는 한쪽으로 치우친 편견이죠~
눈매나 입매는 나이가 들면 달라질수 있는데, 백석의 특징이 양 귀가 달라요. 한쪽근 귓볼이 없고 한쪽은 늘러진게 특징인데, 나이가 달라도 똑같네요.
와 결벽증까지 완벽하다
젊을때는 배우 지승현이랑 비슷한 느낌이 있네요
미남천재 백석!
백석 뿐만이 아님 당시에 거의 대부분의 석학들이 사회주의를 지지했기 때문에
서울대학교 수리교육과/과학동 건물에 있던 모든 교수들이 한번에 북으로 넘어가서 텅텅 빈 사건도 있고 한국 특유의 폐쇄적인 역사관 때문인지 대단한 업적을 남기고도 알려지지 않은 문학,예술인도 많음
좋은 시절에 태어났더라면... 안타까운 시인😢
천재지 천재
천재라서 월북했나?
슬프네요.. 백석시 예전에 참 좋게 읽었는데..
멋진분이 ㅡㅜ
윤현민 닮았다
늙으면 다 외모가 늙어요
생각보다 곱게 늙은 외모같아요
북에서 고생하고 늙었는데도 이목구비는 그 나이에도 그대로네요
근데 진짜 잘생기기는 했다...
너무 안타까운 천재…
오ㅜ백석 잘생겼다
너무 잘생겼다 내 이상형이네
공유도닮은듯
저도 그생각했어요
이렇게 그 명성이 묻힌 사람들이 많을것 같애요. 책 한권 본것 같아요...
늙어서 저정도면 곱상이다
지금도 가끔 백석시집을 읽어봅니다 백석. 사슴. 나와나타샤와 흰당나귀 백석일대기를보면 가슴시리죠
뛰어난 작가들이 왜 죄다 북한으로 가서 험한 꼴을 당하셨는지 참 안타깝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