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원-h1n내 생각에 고구려 출신보단 이민족이 더많아서 이게 융합력이 고구려보다 약했던 것 같음.. 중앙의 힘이 지방에까지 못간거지 다른 유목국가들처럼 그렇게 변해버린것 같음.. 발해가 고려 만큼만이라도 통솔력 없더라도 체계 잘 정비해서 체제만 어캐 유지되었어도 그렇게 쉽게망해서 와해되진 않았을듯
맨날 저 영토크기가지고 저러는데, 고대국가에서 정작 중요한건 인구임.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제압하지 못하고, 결국 밀린것도 결국은 고구려 땅 자체가 인구부양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지역이었지...,유목민도 아니고 농경민족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임. 발해 영토가 고구려보다 크다해서 고구려나 통일신라보다 강햇다? 절대 아님
방송에서 앞장서서 지도의 함정을 얘기하면 우째... 그냥 면적만 넓은건지 아니면 넓은만큼 경제성이 있는 땅인지 설명을 해야지 그냥 고구려보다 넓었다~ 그래서 위대하다? 왜 그럼 경제성 떨어지는 동쪽으로만 가지말고 중국 본토쪽인 서쪽으로 안갔을까? 동쪽으로만 뻗어나간건 그만큼 경제성이 없어서 더 수월했던거지
전쟁은 과학기술 무기 기술로 하는거니깐요 ㅋ 영토가 이래된건 우리조상들이 과학에 무지하고 천대해서 그런거예욤 ㅋ 고구려때는 말타는기술과 말안장 그외 철무기 기술이 뛰어나면 되는 시대였지만 일본 식민지 시대때는 윤봉길 도시락 폭탄 만들때 미국은 핵폭탄을 만들었거든요 차이가 크져?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활이고 일본은 조총이니 게임이 되겠어요? ㅋ
@@CHG104 고려가 이성계의 반역 좋게 말하면 위화도(우리가 알고 있는 위치는 아님) 회군으로 고려 땅에 명과 조선이 일어난 후 명은 화하족화 되고 조선은 금 청에 의해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후 부터는 겨우 명맥만 유지. 그러다 국제정세 때문에 일본에 망했고 지금은 분단되어 있죠 최악을 지나 우리민족이 일어서고 있는데 통일되고 옛 고려의 영토였던 하북성 산동성 안후이성(양쯔강 하류 옛 절강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쉽지 않겠죠
@@Silla_Gates5 발해는 만주 지방에서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며,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고,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하였다. 발해는 일본에 처음 사신을 보내면서 자신들을 ‘고려(高麗)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扶餘)의 풍속을 가진’ 나라라고 소개하였다. 또 발해의 왕을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곧 ‘고구려’를 뜻하므로, 발해가 스스로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발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일본은 발해에 국서(國書)를 보내며 고구려에 관한 책인 『고려구기(高麗舊記)』를 근거로 일본을 대할 때 고구려의 선례(先例)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아예 고구려와 발해를 직접적으로 연장선상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당시 일본이 발해왕에게 보낸 국서 서두에 “고려국왕에게 문안을 드린다.”는 표현을 썼으며, 발해의 사신 고남신(高南申)을 발해사(渤海使)라고 불렀다가 또 고려사(高麗使)라고도 하였던 사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illa_Gates5 오늘날 중국의 헤이룽장성의 닝안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해의 온돌 터가 발견되어서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온돌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바닥인 구들을 데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에요. 김치의 영문 표기 방식인 ‘kimchi’와 함께 세계 유명 사전에 ‘ondol’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올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자랑하지요. 온돌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개발한 것이에요. 온돌은 점차 남쪽 지역으로 퍼져 나가 고려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돼요. 고구려와 발해의 여러 건물 유적에서 발견되는 온돌 장치는 방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ㄱ’자나 ‘ㄷ’자, ‘一’자 모양으로 온돌을 놓은 것들이에요. 이 방식이 개선되어 조선 시대에는 방 전체에 온돌을 깔았지요. 이러한 온돌 문화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솔개의 꼬리 모양을 딴 치미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장식물로, 망새라고도 해요. 발해 상경성터에서 발견된 치미는 높이가 87센티미터이고 표면에 연한 초록빛이 나는 유약이 칠해져 있어요. 고구려 치미가 발해 치미보다 두 배 남짓 크고 형태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선의 흐름 등을 볼 때, 발해 치미는 고구려 치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관심을 가진다. 이 말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가장 부합한 중국의 여러 왕조와 이를 이용하여 역사를 자국의 입맛에 맞춰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행태를 보면 역시 중국은 어찌할 수 없는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만 드는군요! 기록은 주관적인 것이지 펙트는 아닙니다. 진정 자신 있으면 유물을 공개하고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지 통제하며 감추는 것은 그들의 과거 행태와 같은 역사 날조와 다를바 없지요. 일본도 이와 다를 바 없지요. 천왕가의 고분 발굴을 금하는 행태가 그것이지요 또한 유물을 날조하여 세계적 망신을 사는 나라이죠.
8~9세기는 소빙기 시대라서 지금보다 만주, 연해주 지역은 훨씬 더 추웠는데 똥땅 많이 가지고 있는다고 뭐가 대단할까? 당시 오죽했으면 신라가 대동강 이북을 넘어가려고도 않았어. 평양일대는 거대한 황무지였고.. 심지어 청말까지 만주지역 인구가 100만을 넘겨 본지가 거의 없었는데 고구려니 발해니 단순히 면적만 보고 국뽕 치솟는사람들 보면 너무 한심해 보임.. 지금 몽골, 카자흐나 북아프리카 알제리, 리비아 땅 보면서 딸치는거랑 뭐가 다름
@@Silla_Gates5 발해는 인안(仁安),대흥(大興)을 비롯한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선왕에 대한 시호를 스스로 올리고 문왕은 스스로 대왕,성인,황상(皇上)이라 칭했다. 당나라가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빈공과에서 발해인도 응시해 급제할 수 있었다.일본에게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천손이라 하고 주변의 말갈을 번국(藩國)으로 여겼다.
말갈족 중 일부는 예맥계임 ㅋ 발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발해와 말갈의 관계를 먼저 풀어야 된다. 그 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발해의 종족 구성을 설명할 때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들이었고, 피지배계층은 말갈족이었다고 했다. 즉 종족 구성을 이원화 구조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당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구당서』와 『신당서』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출자를 각기 달리 말하고 있다. 『구당서』는 대조영을 고려의 별종, 즉 고구려 별종이라고 했고, 『신당서』는 대조영을 속말 말갈인이라고 했다. 동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의 내용이 이처럼 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고구려계 말갈인이 그것이다. 당시 부여 지역이었던 속말수 지역의 말갈족인 속말 말갈은 다른 지역의 말갈과는 다르게 일찍이 고구려에 편입되어 고구려인이 되어 있었다. 당시 고구려의 영토였던 만주지역에는 광범위하게 말갈족들이 분포하고 있었고, 그러한 말갈족들은 크게 예맥계와 숙신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예맥계는 앞서 언급한 속말말갈과 백산만갈 등이 있었고, 숙신계는 대표적으로 흑수말갈이 있었다. 고조선이 붕괴되기 전 종족 구성은 크게 동호계, 숙신계, 예맥계로 분류할 수 있었고, 고조선이 붕괴되면서 여러 나라들, 즉 열국들이 등장하면서 크게 부여계와 진계로 다시 재편되게 된다. 부여계는 부여, 고구려, 백제 등이 있었고, 진계에는 옥저, 동예, 삼한, 말갈 등이 포함된다.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우면서 국호를 대진국이라고 한 것은 진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로부터 진국은 동방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조영 출자에서 언급했던 속말말갈은 부여계로 고구려와 그 계통이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구려의 별종이자 속말 말갈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말갈이라고 해서 이민족 오랑캐로 취급하면 곤란해진다. 특히 한국사로 알고 있던 발해사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발해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려면 그전에 말갈부터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대진국 발해는 한국사다] 발해는 인안(仁安),대흥(大興)을 비롯한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선왕에 대한 시호를 스스로 올리고 문왕은 스스로 대왕,성인,황상(皇上)이라 칭했다. 당나라가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빈공과에서 발해인도 응시해 급제할 수 있었다.일본에게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천손이라 하고 주변의 말갈을 번국(藩國)으로 여겼다.
@@Silla_Gates5 개성(開城)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고구려 영토였던 시절의 지명 동비홀(冬比忽)의 의미를 번역해 중국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 tɔLVpi- [도ㄹ비]는 중세 한국어 듧-에 대응되며, 현대 한국어의 뚫다로 이어집니다.뚫는다는 것은 곧 연다는 의미이으로,개성이 한화(韓化)된 것입니다. 고구려 지명에서 買(살 매)는 '물','하천'을 의미합니다.買는 고대 한국어에서 mɛr [맬]로 읽힙니다.mɛr은 서기 500년 전후로 mɔr [몰]로 변화한 뒤, 중세 한국어 [믈]을 거쳐 현대 한국어의 물로 이어집니다. 백제의 영토였던 우술군(雨述郡)은 경덕왕 때 비풍군(比豊郡)으로 개명되었는데 비풍과 우술이라는 표기는 서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흥미로운데 비풍의 比(비)는 우술의 비 우(雨)와 대응되고 우술의 述은 비풍의 豊(풍)에 대응합니다. 비는 현대어에도 그대로 쓰이지만 술의 경우 봉우리를 의미하며 봉우리라는 단어 자체가 峰과 수리의 합성어입니다.
@@Silla_Gates5 [대진국 발해는 한국사다] 발해는 만주 지방에서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며,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고,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하였다. 발해는 일본에 처음 사신을 보내면서 자신들을 ‘고려(高麗)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扶餘)의 풍속을 가진’ 나라라고 소개하였다. 또 발해의 왕을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곧 ‘고구려’를 뜻하므로, 발해가 스스로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발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일본은 발해에 국서(國書)를 보내며 고구려에 관한 책인 『고려구기(高麗舊記)』를 근거로 일본을 대할 때 고구려의 선례(先例)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아예 고구려와 발해를 직접적으로 연장선상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당시 일본이 발해왕에게 보낸 국서 서두에 “고려국왕에게 문안을 드린다.”는 표현을 썼으며, 발해의 사신 고남신(高南申)을 발해사(渤海使)라고 불렀다가 또 고려사(高麗使)라고도 하였던 사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솔개의 꼬리 모양을 딴 치미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장식물로, 망새라고도 해요. 발해 상경성터에서 발견된 치미는 높이가 87센티미터이고 표면에 연한 초록빛이 나는 유약이 칠해져 있어요. 고구려 치미가 발해 치미보다 두 배 남짓 크고 형태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선의 흐름 등을 볼 때, 발해 치미는 고구려 치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왼쪽은 발해 기와(수막새)이고, 오른쪽은 고구려 기와(수막새)인데, 이 두 기와는 원 주위에 꽃잎이 둘러싼 형태가 닮아 있어요. 이처럼 발해의 기와는 무늬가 뚜렷하고 힘 있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중국의 헤이룽장성의 닝안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해의 온돌 터가 발견되어서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온돌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바닥인 구들을 데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에요. 김치의 영문 표기 방식인 ‘kimchi’와 함께 세계 유명 사전에 ‘ondol’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올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자랑하지요. 온돌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개발한 것이에요. 온돌은 점차 남쪽 지역으로 퍼져 나가 고려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돼요. 고구려와 발해의 여러 건물 유적에서 발견되는 온돌 장치는 방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ㄱ’자나 ‘ㄷ’자, ‘一’자 모양으로 온돌을 놓은 것들이에요. 이 방식이 개선되어 조선 시대에는 방 전체에 온돌을 깔았지요. 이러한 온돌 문화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발해가 바다를 건너 등주를 공격했으나 흥광이 물리쳤다는 기록이 만주원류고에 나옵니다. 당시 등주가 신라 땅이라는 것이지요.
넌 그럼 똑같은걸 또 만들어야되냐? ㅋㅋ 제작비가 썩어났나보네 ㅋ
회복되야 할 우리의 역사며 우리의 고토로 생각된다
발해만이라고 들어보셧죠.. 당나라 역시 이곳을 발해만이라고 불렀습니다.. 그주변이 발해 영토 였기 때문에 발해만이죠... 하북성이 발해 영토 인거죠. 당나라가 자기땅을 왜 발해만이라고 부루겠어죠?>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여자=내시, 야요이
발해의 영토는 썸네일에서 거란이라고 표기돼있는 지역이다. 그 밑이 발해만으로 상식적인 해석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20년 전 영상을 보면서 회고 해야 합니까? 지금 당장이라도 역사스페셜을 부활시키세요.
동감입니다. 새로이 연구된 자료도 있으니 제대로 다시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 여자=내시, 야요이, Yayoi=o1b2-m176=일본 성=고대 한국 성
중국 러시아 대륙을 아우르던 우리 조상들이었는데. 지금 우리는 손바닥만한 한반도도 둘로 쪼개져 있으니ᆢ😢😢
솔직히 죄없는 자국민을 정치범 수용소나 아오지탄광에 보내는 그딴나라랑 어떻게 통일하냐 ㅋㅋ 북한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독재자들을 모두 제거하고 공산화를 밀어버리지 않는한 우린 통일 절대불가능함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여자=내시, 야요이
女眞을 여진어로 읽으면 Jursen
으로 발음한다 러시아 애들도 그렇게 발음. 고조선의 후예 호랑이 토템 예맥족으로 우리와 같은 민족이며 하바로스크까지 발해땅이였다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여자=내시, 야요이
내레이션분들이 다 잘 어울립니다..표영준님..원호섭님 ..권영운님....역사 스페셜의 세분 목소리가 이런 프로의 격을 높여주시네요...
@@Silla_Gates5몽골도 니들역사라며? ㅋㅋㅋ 이참에 이집트도 니들역사라 하지 그러냐?? ㅋㅋㅋㅋㅋ
매금이또 출몰했네...다들 조심하세요
@@Silla_Gates5 인류 기원은 아프리카다
중국사라는 말은 동북아 공정이고
중원 한족 수천년의 역사속에서 이민족에게 지배당한 민족이 독재국가 건립하면서
모든역사을 지배했다고 떨들어봐야
다수의 민족들에게 웃음꺼리일뿐 ㅋㅋ
발해 -> 대씨 고(구)리(나라이름: 리)로 정정 바랍니다.
지랄하네 고구리가 뭐냐 ㅎㅎ
가수 이선희 노래 아 옛날이여 지나간 과거 역사 지금은 🇨🇳 중국 땅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땅은 거대했지만.. 인구는 적었나봄.
고구려가 수당과 싸울때 병사30만이라고 말했고
발해는 10만뿐이라고 했으니.'.
발해 멸망요인중에 인구가 적은것도 있다네요~ 고구려 인구의 10 분의 1
거란은 뭐 안그랬나 40만대군으로 고려 정복실패한뒤론 겨우 6만이랑 마지막 전쟁이 10만병력투입하고 망했는데
그 기록이 2대왕 무왕때 동생 대문예가 전쟁에 반대하면서 한 말인데. 2대왕때 복구해봐야 얼마나 했겠습니까 전성기때는 고구려랑 비슷한 인구수까진 갔다고 생각함
@@김기원-h1n내 생각에 고구려 출신보단 이민족이 더많아서 이게 융합력이 고구려보다 약했던 것 같음.. 중앙의 힘이 지방에까지 못간거지 다른 유목국가들처럼 그렇게 변해버린것 같음.. 발해가 고려 만큼만이라도 통솔력 없더라도 체계 잘 정비해서 체제만 어캐 유지되었어도 그렇게 쉽게망해서 와해되진 않았을듯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 여자=내시, 야요이, Yayoi=o1b2-m176=일본 성=고대 한국 성
고구려나 발해나 저 당시 영토는 면이 아니라 점이었을 가능성이 높음 만주 땅이 산이 많고 평지가 적어 사람 살만한 장소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점과 점 사이는 거의 사람이 안 사는 무주지 였을 것임
만주가 산이 많다니요? 한반도랑 비슷함.
그리고 아직도 임라를 믿는 멍청이가 있네. 당시 일본은 통일국가도 아니고만 ㅋㅋ 그냥 해적집단이 먼 국가타령
멈멍이소리는너희나라에가서하렴
@@Silla_Gates5느금이 ㅎㅇ
@@Silla_Gates5 중국은 1948년도에 모택동에 의해 처음건국되는데 무슨개소리를 쳐짖기노?
@@Silla_Gates5응 중국은 한국의 속국임ㅋ
현시국에관심을갖고현시국을나아갈길을더논해주엇으면좋겠다
고토 회복할 방법은 없나요
발해 역사를 적극적
으로 해야함.
그건 힘들죠. 발해는 속말말갈이 새운국가입니다. 한마디로 만주족의 역사이죠.
일본과 발해의 관계를 속일본기에서 확인하면
일본이 뭔가를 원할때는 [고려高麗]라고 국호를 높여주고, 원하는 것을 주지 않을 때는 [발해]라고 비하했다.
서쪽 거란의 임황이 발해의 서경압록부였다. 당시 요동은 조백하 동쪽이었는데 중국의 역사서들이 서쪽으로 지리지명을 옮겨 현 요하 동쪽이 요동이 된것이다. 이를 거란이 강해지면서 이를 수용해서 생긴 현상이다.ㅡ
맨날 저 영토크기가지고 저러는데, 고대국가에서 정작 중요한건 인구임. 고구려가 백제와 신라를 제압하지 못하고, 결국 밀린것도 결국은 고구려 땅 자체가 인구부양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지역이었지...,유목민도 아니고 농경민족에게는 치명적인 단점임. 발해 영토가 고구려보다 크다해서 고구려나 통일신라보다 강햇다? 절대 아님
애초에 발해가 고구려멸망후 남은 무리들이 세우고 운영된 나라인데 당연히 약하지
발해는 속말말갈이 세운 국가입니다. 그러다 보니 여러 멀갈부족의 내분이 엄청났죠 발해는 힘을 한데 모으면 엄청난 국력을 자랑하지만 거란족이 쳐들어오는데도 단합하기는 커녕 지들끼리 싸워 무너집니다.
@@문레니 아니 발해국왕이 일본에 보낸 국서에 나는 버젓이 "고려국왕"이라고 쓴 증거가 있는데
무슨 말갈하고 자꾸엮어
정확히 표현하면 고구려인과 말갈인의 연합정권이지
중국인입니까??
@@TV-wm9uz 발해국왕이 말갈인 백성도 말갈인 귀족계층 일부에 고구려인이 있으면 그게 연합정권인가요?
@@문레니 아니 발해왕 스스로 내가 고려국왕이라는데 뭐가 더 필요해유?
그리고 언제부터 중국놈들이 말갈 고구려를 자기네민족이라고 생각했다고 ㅋㅋㅋ
임플란트 광고 좀 하지마라
ㅋ ㅋ ㅋ ㅋ ㅋ ㅋ~~~~~~
왜
코웰메디
ㅋㅋㅋㅋㅋ
발해 나라명도 정확한건지...산둥지방 그쪽을 가리켜 발해쪽이라고 불렀음
특히 삼국지 좋아하시는 분들은 잘 아실꺼임 !!!
제 3대 문왕 사신단이 일본에 파견되었을 때도
고려국왕이라고 밝혔음 ~~ ㅎ이거 우리가 실수하는게 아닌강? 이런 생각이 드네요
고구려, 발해는 동서 6천리
고려는 동서 1만리
고려는 사방1만리 동서 2천리 입니다 .
머리 아프네 ㅋㅋ
저 당시 현재 만주와 러시아, 몽고는 영토의 경계라는게 큰 의미가 있었을까?
아마 살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이 어떤 나라 소속인지 모르고 평생을 살았을 듯.
전체 인구도 얼마되지 않았으니 실효적 지배 가능한 땅의 면적이 더 의미가 있겠지.
현재 발해만이 버젓이 중국천진 앞바다에 존재합니다 그말은 그기가 발해의 중심였다는 방증입니다. 고구려 평양이 지금의 북경임을 보더라도 북경은 발해의 수도나 최소 5경중 하나임이 분명합니다.
최소 거기까지가 다 발해땅이었으니 그 옆 바다가 발해가 되는 것이겠죠 ~ 물론 발해가 바다에 있는 해가 아니라 내해여서 산동반도 부근이 발해였다고도 하는데
그래도 최소한 북경까지 발해땅이어야 그 옆 바다가 발해겠죠 ~
진짜 의미없는 내용이다
삼국지 영토만보면 오나라가 위랑 국력이 대등했어야죠ㅋㅋ
저런 땅 대부분은 인구밀도가 형편없었을꺼에요 거기서 걷어들이는 조세는 미미했을꺼고
김해
우리나라 사투리를 보면 고대국가가 몇개였는지 대충 나오죠~~~
발해와 거란 그리고 통일신라 그리고 이정기국이 고구려와 백제땅을 나눠 가졌는데 뭔 발해가 고구려 보다 더 크냐 ???
그리고 신라가 산동반도에 있는 이정기국을 쳐서 이겼고 때때로 발해가 산동을 노리는 것을 견제했는데 도대체 그럼 신라가 어디에 있었다는 얘기냐 ???
신라?? ㅋㄱ 장보고 세력이 견제한건데?
그당시 산동은 하북성 지역이 아니었지..
💥책보고 채널보면 삼국시대, 고려 모두 중국 양쯔강에 이르렀더군요
💥일제 식민사관이 쪼그라진 왜곡, 축소된 역사를 가르친겁니다. 지금이라도 제대로된 역사 배우려면 우리가 깨어있어야 합니다⚡️⚡️
고구려 영토을 줄이고 대진(발해)가 컸다 식민사관에 의한 참 고구려 영토 고구려는 산동 반도에서 낙양 북경 티벳까지 지배한 거대 나라였다
방송에서 앞장서서 지도의 함정을 얘기하면 우째... 그냥 면적만 넓은건지 아니면 넓은만큼 경제성이 있는 땅인지 설명을 해야지 그냥 고구려보다 넓었다~ 그래서 위대하다? 왜 그럼 경제성 떨어지는 동쪽으로만 가지말고 중국 본토쪽인 서쪽으로 안갔을까? 동쪽으로만 뻗어나간건 그만큼 경제성이 없어서 더 수월했던거지
3대왕 문왕인가..일본에 사신보내면서 보낸 칙서에는 고려왕이라 써있음..이거 고대사 다시 검토해봐야함
구구려 영토는 내몽골까지 이다 거기에 고구려성이 있고 돌절구가 발견되며 몽고인들은 고려성이라고 민요도 부른다
신라방있다고 중국이 신라땅인가?? 미국에 한인타운있으니 미국도 한국땅??
흔히 말하잔아...
저 애는 절대 남은 아니다..그럼 가족입니까? 그게 아니고..엄마가 낳긴 햇는데..그날 나는 외지에 장사 간것 갓은데...엄마가 아니라고 하더라..이때 태어난게 발해다..
별개똥도몰면가만있어일자무식
참담? 웬 적성국 치가 보고 갔나보다.
저게 만약에 지금 까지 우리나라 땅 이 였다면 지도 를 보니 일본 보다 상당히 크네 ㄷ ㄷ
그날인지 먼날인지 모르겠지만 발해국은 한반도 땅에 한발짝도 넘어오지 못했다
나라가 왜 이리 작은땅, 이모양이 됐는지 누가좀 알려주세요
전쟁은 과학기술 무기 기술로 하는거니깐요 ㅋ 영토가 이래된건 우리조상들이 과학에 무지하고 천대해서 그런거예욤 ㅋ 고구려때는 말타는기술과 말안장 그외 철무기 기술이 뛰어나면 되는 시대였지만 일본 식민지 시대때는 윤봉길 도시락 폭탄 만들때 미국은 핵폭탄을 만들었거든요 차이가 크져? 임진왜란 당시 조선은 활이고 일본은 조총이니 게임이 되겠어요? ㅋ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CHG104 고려가 이성계의 반역 좋게 말하면 위화도(우리가 알고 있는 위치는 아님) 회군으로 고려 땅에 명과 조선이 일어난 후 명은 화하족화 되고 조선은 금 청에 의해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후 부터는 겨우 명맥만 유지. 그러다 국제정세 때문에 일본에 망했고 지금은 분단되어 있죠
최악을 지나 우리민족이 일어서고 있는데 통일되고 옛 고려의 영토였던 하북성 산동성 안후이성(양쯔강 하류 옛 절강성)을 되찾아야 합니다
쉽지 않겠죠
발해가 아니라 고려라고 불러야 맞다
발해는 당에서 낮춰 부르던 국가명이다
부디 역사 교육이 바로 서서 발해가 아닌 고려로 가르쳐야 한다
@@Silla_Gates5
발해는 만주 지방에서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며,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고,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하였다.
발해는 일본에 처음 사신을 보내면서 자신들을 ‘고려(高麗)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扶餘)의 풍속을 가진’ 나라라고 소개하였다. 또 발해의 왕을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곧 ‘고구려’를 뜻하므로, 발해가 스스로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발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일본은 발해에 국서(國書)를 보내며 고구려에 관한 책인 『고려구기(高麗舊記)』를 근거로 일본을 대할 때 고구려의 선례(先例)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아예 고구려와 발해를 직접적으로 연장선상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당시 일본이 발해왕에게 보낸 국서 서두에 “고려국왕에게 문안을 드린다.”는 표현을 썼으며, 발해의 사신 고남신(高南申)을 발해사(渤海使)라고 불렀다가 또 고려사(高麗使)라고도 하였던 사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Silla_Gates5
오늘날 중국의 헤이룽장성의 닝안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해의 온돌 터가 발견되어서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온돌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바닥인 구들을 데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에요. 김치의 영문 표기 방식인 ‘kimchi’와 함께 세계 유명 사전에 ‘ondol’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올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자랑하지요.
온돌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개발한 것이에요. 온돌은 점차 남쪽 지역으로 퍼져 나가 고려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돼요. 고구려와 발해의 여러 건물 유적에서 발견되는 온돌 장치는 방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ㄱ’자나 ‘ㄷ’자, ‘一’자 모양으로 온돌을 놓은 것들이에요. 이 방식이 개선되어 조선 시대에는 방 전체에 온돌을 깔았지요. 이러한 온돌 문화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솔개의 꼬리 모양을 딴 치미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장식물로, 망새라고도 해요. 발해 상경성터에서 발견된 치미는 높이가 87센티미터이고 표면에 연한 초록빛이 나는 유약이 칠해져 있어요. 고구려 치미가 발해 치미보다 두 배 남짓 크고 형태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선의 흐름 등을 볼 때, 발해 치미는 고구려 치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그것도 역사 기획이라고 하고 있으니.
화가나내요.
고종순종최수종의 발해
발해만이 왜 북경쪽 앞바다일까? 백제가 멸망하고 그 땅을 신라와 발해가 나눠가졌다는데 역사책은 헛소리하는건가? 한반도안에 갖혀 역사를 바라보면 방향, 거리, 크기가 전혀 안맞다.
정신차리소
'갇혀'다 무식아 우리말이나 제대로 써라
거대하면 뭐하노. 지금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는걸.
댓글조작부대 심하네 ㅋㅋ
반듯이 되찾아야 할
우리의 옛땅이다
역사는 공소시효가 없다 국력은 곧🇰🇷 땅을 말한다
우리나라 역사가 아닌데 뭘찾아 ㅋㅋㅋ 히틀러같은 ㅅ.ㅋ
'발해'라니,
'발해'라니,
'발해'라니~~~~~~🥵🥵🥵
방송도 식민사관을 그대로
방송하는 대한민국의 현실!!!
'후고구려' 가 정명입니다!!!!
네~ 맞아요 스스로도 고구려 라 했다는데.. 좀더 탐구하고 방송을 제작 해야지.. 일반인들 만도 못한 상식으로?
그러면 궁예 후고구려는 뭔가요 ㄷㄷㄷ
@@entp9671 고구려도 장수태왕가면서
국호를 고려로 고쳤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entp9671 기록도 없는 좆뽕질 때려치우고 기술이나 처배워
고구려 발해의 후예 말갈족 여진족
영토가 거대한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옥토를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제...
고려사에 적혀있는 고려의 영토에 관해서 정정도 못하는데 발해가 고구려보다 넓었다 하면 뭐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과장이 아니고 너무작은거지 .
너무작고 작게 표현을 한것이다.
중국을 의식하고 일본을 의식하고
우리나라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것이
방송사나 정권의 현실이다.
발해를 중국과협상을해서 찿아야 한다 협상이 않되면 전쟁을 해야지
o1b2-m176 야요이족, 하하 천한민족 야요이족 문화 보러가기, 수염없는 환관, 환관들
수염없는 내시 종족=o1b2-m176
야요이 = o1b2-m176, 일본 성 = 한국 고대 성
야요이 and korea NO beard o1b2-m176, Eunuch=o1b2-m176,o1b2-m176= women,NO beard≠ MAN
야요이
고구려 진짜 영토의 경계는 다 알고?? 고구려 영토의 경계는 명확히 알려져 있는가?
고구려도 커는데 중국의3분에1에. 러시아의4분의1정도 가 고구려땅
우리민족을 찾아라 말로만 않된다 미얀마 태국 등지에 흩어진 고구려 후손들 이제 찾아야 할때가 아닌가? 중국인이라는 조선족이 아니라 우리민족이라는 고구려후손들 찾기운동
인간은 자신에게 가장 관심을 가진다.
이 말은 인간은 이기적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에 가장 부합한 중국의 여러 왕조와 이를 이용하여 역사를 자국의 입맛에 맞춰 동북공정으로 역사를 왜곡하거나 날조하는 행태를 보면 역시 중국은 어찌할 수 없는 나라로구나 하는 생각만 드는군요!
기록은 주관적인 것이지 펙트는 아닙니다. 진정 자신 있으면 유물을 공개하고 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지 통제하며 감추는 것은 그들의 과거 행태와 같은 역사 날조와 다를바 없지요.
일본도 이와 다를 바 없지요. 천왕가의 고분 발굴을 금하는 행태가 그것이지요
또한 유물을 날조하여 세계적 망신을 사는 나라이죠.
8~9세기는 소빙기 시대라서 지금보다 만주, 연해주 지역은 훨씬 더 추웠는데 똥땅 많이 가지고 있는다고 뭐가 대단할까? 당시 오죽했으면 신라가 대동강 이북을 넘어가려고도 않았어. 평양일대는 거대한 황무지였고.. 심지어 청말까지 만주지역 인구가 100만을 넘겨 본지가 거의 없었는데 고구려니 발해니 단순히 면적만 보고 국뽕 치솟는사람들 보면 너무 한심해 보임.. 지금 몽골, 카자흐나 북아프리카 알제리, 리비아 땅 보면서 딸치는거랑 뭐가 다름
업로드 된지 몇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박터지게 싸우네
발해는 속말말갈이 주체가 되어 세운 국가입니다. 한마디로 말갈의 국가죠. 속말말갈은 지금도 우리가 이민족 야만인으로 보기 때문에 발해를 우리 민족의 국가로 보는건 어불성설입니다. 결론은 발해는 만주족의 국가입니다
니 하오마?
@@polyglotk5931 중국 사람인가요?
어이구 전부 박사님들이내 다 좋은데 반박 근거를 가지고 와서 말하길ᆢ
식민사관에 처막혀서 개소리하는것들은 그냥 일본으로 가라.. 진심 우리나라 고대사는 1부터 다시 시작해야한다
@@Silla_Gates5
발해는 인안(仁安),대흥(大興)을 비롯한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선왕에 대한 시호를 스스로 올리고 문왕은 스스로 대왕,성인,황상(皇上)이라 칭했다.
당나라가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빈공과에서 발해인도 응시해 급제할 수 있었다.일본에게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천손이라 하고 주변의 말갈을 번국(藩國)으로 여겼다.
고구려 영토 어디까진지 모르면서....그리고 발해는 당나라 애들이 붙인거고...스스로 고려왕이라고 했음
야요이족=o1b2-m176=수염 없음 여자=내시, D1a2는 진짜 남자
야요이족 =o1b2-m176=No beard women=Eunuch, D1a2 is real man
중국인이 발해를 중국 역사라 하면 남경 남해부가 북청에 있어서 한국 역사도 되고 우수리크성 즉 솔빈이 있어서 러시아 역사도 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한국 역사다 고구려 후손이 세웠기 때문이다.
게이비에스는들어주시오 역사를우리가수성전만하는 고려거란전쟁 또는 불멸의이순신 이런역사극많이보여주지말고 우리가정복전쟁을하는
발해무왕의이야기나 미천왕의정복전쟁 영양태왕의수나라 선제타격고수전쟁 이밖에호전적인 우리의여러태왕들이야기를 방영하라광개토말할것도없고
틀
발해영토가 고구리보다 넓었다고 믿는자들은 고구리를 몰라서 하는 것임. 그것도 잘못 배운 삼국 때문임. 발해는 고구리의 반도 못차지했음. 그것도 다행임
반도 차지못했다는 이유는 어디감?
ㅁㅊ 환빠 ㅅㄲ가 왔노
@@saywhat7군사력이 약함요 고구려보다 반은 모르겠고 고구려는 지두우 까지 미쳣으니 말다했죠
국뽕 tv냐 그럼 다른나라들도 역사 다 해보면 이미 우리나라는 없는 나라야 ㅋㅋ 조회수빨려고 애쓴다 애써 차단박는다
육갑을 떨어요.
고구려(고구리) 영토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발해의 영토를 알까?
고구려 영토을 제대로 알고 계시는지???
우리나러남북통일
우리나라는왜통일이안되는원인무엇때문인가요...?
유인촌 보기시름
왜 신라 고려 조선은 만주를 포기 했을까??
만주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지배 했어야 했는데.
만주를 포기 했기 때문에
한국은 약소국에서 벗어나질 못함.
구라방송
최고는 고려영토임
바보
발해는 우리나라 역사임 ㅋ
말갈족 중 일부는 예맥계임 ㅋ
발해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발해와 말갈의 관계를 먼저 풀어야 된다. 그 동안 우리 학계에서는 발해의 종족 구성을 설명할 때 지배층은 고구려 유민들이었고, 피지배계층은 말갈족이었다고 했다. 즉 종족 구성을 이원화 구조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당대의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구당서』와 『신당서』는 발해를 세운 대조영의 출자를 각기 달리 말하고 있다. 『구당서』는 대조영을 고려의 별종, 즉 고구려 별종이라고 했고, 『신당서』는 대조영을 속말 말갈인이라고 했다. 동 시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역사서의 내용이 이처럼 다를 수 있을까? 어쩌면 이것은 둘 다 맞는 말일 것이다. 고구려계 말갈인이 그것이다. 당시 부여 지역이었던 속말수 지역의 말갈족인 속말 말갈은 다른 지역의 말갈과는 다르게 일찍이 고구려에 편입되어 고구려인이 되어 있었다. 당시 고구려의 영토였던 만주지역에는 광범위하게 말갈족들이 분포하고 있었고, 그러한 말갈족들은 크게 예맥계와 숙신계로 나뉘어져 있었다. 예맥계는 앞서 언급한 속말말갈과 백산만갈 등이 있었고, 숙신계는 대표적으로 흑수말갈이 있었다.
고조선이 붕괴되기 전 종족 구성은 크게 동호계, 숙신계, 예맥계로 분류할 수 있었고, 고조선이 붕괴되면서 여러 나라들, 즉 열국들이 등장하면서 크게 부여계와 진계로 다시 재편되게 된다. 부여계는 부여, 고구려, 백제 등이 있었고, 진계에는 옥저, 동예, 삼한, 말갈 등이 포함된다. 대조영이 처음 나라를 세우면서 국호를 대진국이라고 한 것은 진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예로부터 진국은 동방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대조영 출자에서 언급했던 속말말갈은 부여계로 고구려와 그 계통이 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고구려의 별종이자 속말 말갈인이라고 했던 것이다. 이제 말갈이라고 해서 이민족 오랑캐로 취급하면 곤란해진다. 특히 한국사로 알고 있던 발해사가 이상해지는 것이다. 발해사를 온전하게 한국사로 편입하려면 그전에 말갈부터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Silla_Gates5 말갈족 중 속말말갈,백산말갈등은 예맥계이고 흑수말갈등은 발해에 대항한 숙신계임ㅋ
@@Silla_Gates5동이족은 중국에서 자신들 기준으로 동쪽에 있는 모든 이민족을 칭하는 거임ㅋ 조선족 티내지 마셈 ㅋ
@@Silla_Gates5
현도군이 있던 땅은 원래 고조선의 영토였으나 한나라가 침략하여 설치한 것이기에 한민족의 영토에 세워진 것입니다.물론 님은 고조선도 중국사라고 하지만;;;
야요이족 =o1b2-m176=수염없는여자=내시, 야요이
우리 조상국가 고조선. 동부여.북부여.고구려.발해.정안국.고려.조선.시대 나라가 멸망하지 않고..그리고.,한반도에서 북한이 6.25전쟁만 일으키지 않고 한반도가 하나의 국가로 잘 유지 되었다고 하면..지금 엄청 거대한 국가가 됐을거다...
[대진국 발해는 한국사다]
발해는 인안(仁安),대흥(大興)을 비롯한 독자 연호를 사용했다.
선왕에 대한 시호를 스스로 올리고 문왕은 스스로 대왕,성인,황상(皇上)이라 칭했다.
당나라가 외국인을 위해 실시한 빈공과에서 발해인도 응시해 급제할 수 있었다.일본에게 보낸 국서에서 스스로 천손이라 하고 주변의 말갈을 번국(藩國)으로 여겼다.
발해 부랴 부여 부리야트
발해가 우리 역사라는 객관적인 사료도 없으면서 몇 가지 단서만 갖고 우리 역사라고 단정하는 것은 역사왜곡에 해당된다.
발해의 만주 고토는 고려가 흡수함.
@@Silla_Gates5 또 ㄲ치네
@@Silla_Gates5 고구려 백제 신라 전부 현재 중국땅에서 넘어왔으니 전부 중국사임? 조선도 한국도 중국사네?
@@Silla_Gates5 현재 튀크키예 역사는 투르크민족 역사인데 중앙아시아에서 넘어갔으니 전부 몽골 중국역사임?
@@Silla_Gates5 영국은 앵글로 색슨족이라 덴마크랑 노르웨이에서 넘어갔는데. 덴마크역사임?ㅋㅋ 선민족인 켈트족은 어디역사임? 브리타니아 로마령이던 시절도 있었으니 로마제국도 영국역사임? 아니면 영국이 이탈리아 역사임?ㅋㅋ
@@Silla_Gates5미국 호주 캐나다 전부 덴마크역사임?ㅋㅋㅋㅋ
죽은자식 부랄 잡는격이네 옛날은 옛날이고 현재는 현재가 중요하다 내가 옛날에 금송아지 있었으면 뭐해 지금은 입에풀칠하기도 힘든 세상이 오는데 ...
@@4YOU7575 너의 후손들을 위해 금송아지 다시 찾아야지
대 발해 제국 만만세
웃기지 말자효
한반도는....
더 넓어질 필요도 없고
더 좁아질 이유도 없는 땅
지구가
가장 원하는 땅
휴....
바다가 다시. 한번더 삼킬때 라도
한반도는
남겨 주고픈 땅
작은영토
😔
발해 .고구려 역사는 북한의 역사지 남한의 역사가 아님
발해라 저긴솔직히 여러민족이석인나라아니냐 우리민족이라고는하는데 신라백제빼고는솔직히좀그래 고구려도 잡종들이너무석여있어
지도상으로는 한반도보다약간 크게 해 놓고 광대하는 표현은 뭔고
중국 소수민족 중 말갈족의 역사
응 한국사야 ㅋ
한국과는 무관한 역사임 중국의 소수민족중 하나인 말갈족의 역사
@@xiluyun 발해를 말갈족 단독의 역사라고만 보기는 좀;;;
충분히 발해는 고구려의 후예라는 기록도 있고 고구려의 문화,풍습도 물려 받았는데 말갈족이라는 기록만 받아드리고 고구려인이라는 기록은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건 안됨 그렇기 때문에 한민족의 역사이기도 하고 말갈족의 역사이기도 함
@@Silla_Gates5당연히 중국사지 계속 중국역사라고 말하고 있는데 ㅋ
발해영토 되찾는거보다도
통일이나 먼저하고 간도 부터찾자
발해 금방망한 나라잔아😊😅
발해는 우리땅 찾아야한다 찾을것이다 반드시 반드시
발해는 속말말갈이 세운 국가인데 과연 가능할까요?
@@문레니개소리하네
KBS가 앞장서서 발해의 역사와 영역을 왜곡하고 있으니 참담하다
환단고기 믿으세요?
@@bigkorea그럼 뭘보고 KBS가 역사왜곡을 한다는거임?
환단고기를 증명할 고고학적 증거가 없는데도 믿는게 역사왜곡입니다. 이상한 유튜브 영상에서 선동되지 말고 폭 넓게 사고해 보세요.
@@user-hb9fr5em6t 무지성 국뽕 역사채널 보고 저러는거니 그냥 무시하시면 됩니다
@@user-hb9fr5em6t 삼국사기 고려사 중국25사
발해는 만주족 역사임...가야 영토가 어디까지인지도 모르면서...ㅋ
보하이 bo hai
궁금한 게 있는데 매금tv는 신라도 중국한테 책봉 받고 다 했는데 왜 신라는 중국사라고 안 하는 거임? 자기 고향이 경상도라서 그런가?
@@Silla_Gates5
님 말대로 고구려,백제말이 중국어면 신라말도 중국어 아님? ㅋㅋ
@@Silla_Gates5
개성(開城)이라는 지명은 이곳이 고구려 영토였던 시절의 지명 동비홀(冬比忽)의 의미를 번역해 중국식으로 바꾼 것입니다. 고대 한국어 tɔLVpi- [도ㄹ비]는 중세 한국어 듧-에 대응되며, 현대 한국어의 뚫다로 이어집니다.뚫는다는 것은 곧 연다는 의미이으로,개성이 한화(韓化)된 것입니다.
고구려 지명에서 買(살 매)는 '물','하천'을 의미합니다.買는 고대 한국어에서 mɛr [맬]로 읽힙니다.mɛr은 서기 500년 전후로 mɔr [몰]로 변화한 뒤, 중세 한국어 [믈]을 거쳐 현대 한국어의 물로 이어집니다.
백제의 영토였던 우술군(雨述郡)은 경덕왕 때 비풍군(比豊郡)으로 개명되었는데 비풍과 우술이라는 표기는 서로 상호보완적이기 때문에 흥미로운데 비풍의 比(비)는 우술의 비 우(雨)와 대응되고 우술의 述은 비풍의 豊(풍)에 대응합니다.
비는 현대어에도 그대로 쓰이지만 술의 경우 봉우리를 의미하며 봉우리라는 단어 자체가 峰과 수리의 합성어입니다.
서로 인정해 주는 외교관계지 책봉해뮈가 상하종속관계가 아니다.
성 이름이 러시아 언어니깐 이상하다.
@@Silla_Gates5
[대진국 발해는 한국사다]
발해는 만주 지방에서 대조영을 중심으로 고구려 유민들에 의하여 건국되었으며, 지배층은 고구려인이었고, 고구려 계승 의식이 뚜렷하였다.
발해는 일본에 처음 사신을 보내면서 자신들을 ‘고려(高麗)의 옛 땅을 회복하고 부여(扶餘)의 풍속을 가진’ 나라라고 소개하였다. 또 발해의 왕을 ‘고려국왕(高麗國王)’이라고 소개하고 있는 것도 확인된다. 여기서 말하는 ‘고려’는 곧 ‘고구려’를 뜻하므로, 발해가 스스로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소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발해 혼자만의 주장이 아니었다. 일본은 발해에 국서(國書)를 보내며 고구려에 관한 책인 『고려구기(高麗舊記)』를 근거로 일본을 대할 때 고구려의 선례(先例)를 따를 것을 요구하고 있다. 또 아예 고구려와 발해를 직접적으로 연장선상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당시 일본이 발해왕에게 보낸 국서 서두에 “고려국왕에게 문안을 드린다.”는 표현을 썼으며, 발해의 사신 고남신(高南申)을 발해사(渤海使)라고 불렀다가 또 고려사(高麗使)라고도 하였던 사실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솔개의 꼬리 모양을 딴 치미는 지붕 꼭대기에 올려놓은 장식물로, 망새라고도 해요. 발해 상경성터에서 발견된 치미는 높이가 87센티미터이고 표면에 연한 초록빛이 나는 유약이 칠해져 있어요. 고구려 치미가 발해 치미보다 두 배 남짓 크고 형태도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인 구조와 선의 흐름 등을 볼 때, 발해 치미는 고구려 치미의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어요.
왼쪽은 발해 기와(수막새)이고, 오른쪽은 고구려 기와(수막새)인데, 이 두 기와는 원 주위에 꽃잎이 둘러싼 형태가 닮아 있어요. 이처럼 발해의 기와는 무늬가 뚜렷하고 힘 있는 고구려 양식을 계승했다고 할 수 있어요.
오늘날 중국의 헤이룽장성의 닝안은 발해의 수도 상경성이 있던 곳이에요. 이곳에서 발해의 온돌 터가 발견되어서 발해가 고구려의 생활 문화를 계승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어요.
온돌이란 아궁이에 불을 때서 그 열기로 방바닥인 구들을 데우는 우리나라 고유의 난방 방식이에요. 김치의 영문 표기 방식인 ‘kimchi’와 함께 세계 유명 사전에 ‘ondol’이라는 명칭이 그대로 올라가 있을 정도로 우리 문화의 독창성을 자랑하지요.
온돌은 일찍부터 우리 민족이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의 매서운 추위를 이겨 내기 위해 개발한 것이에요. 온돌은 점차 남쪽 지역으로 퍼져 나가 고려 시대에는 전국적으로 사용된 것으로 짐작돼요. 고구려와 발해의 여러 건물 유적에서 발견되는 온돌 장치는 방 전체가 아닌 일부에만 ‘ㄱ’자나 ‘ㄷ’자, ‘一’자 모양으로 온돌을 놓은 것들이에요. 이 방식이 개선되어 조선 시대에는 방 전체에 온돌을 깔았지요. 이러한 온돌 문화는 우리 민족의 고유한 풍속으로 오늘날에도 이어지고 있답니다.😂😂😂
발해중국역사아님?솔직히
발해는 한국어사용
조작된 역사를 이렇게 세뇌 교육 시킴
발해의 땅이 심양에서 하바로프스크 까지라면 고구려는 얼마나 작았다는 말인지? 이정도의 땅을 우리는 광대했다히는건가? 중국의 그 어떤 왕조보다 작지않나? 광개토라는 수식어가 중국 입장에서는 웃겼을듯한데?
이런게 뭐가 중요한가? 중국은 우리나라의 현재의 문화들도 모두 뺏어가려고 난리인데 제발 울나라도 중국에게 과거 우리나라 땅이라고 내놓으라고 우겨봐라
별로 크지도 않더만.. ㅋㅋ 몽골 징기즈칸의 영토에 비하면 그냥 코딱지 수준인데.. ㅋㅋ
발해는 말갈 ㆍ숙신족의 역사임.
응 한국사야 ㅋ
응 한국사야 ㅋ
@@yun-geonho 발해가 무슨 얼어죽을 한국사야...미친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