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해, 최초의 중원침공 | 당을 정벌하라 무왕 대무예

แชร์
ฝัง
  • เผยแพร่เมื่อ 18 ก.ย. 2024
  • 발해의 숨겨진 역사, 알고 계셨나요? 이번 영상에서는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가 당나라를 상대로 어떻게 대담한 해외 원정을 감행했는지, 그리고 동아시아 최강국 '해동성국'으로 불리기까지의 흥미로운 여정을 소개합니다. 발해가 동아시아의 판도를 어떻게 바꾸었는지, 그 진짜 이야기를 파헤칩니다.
    발해의 건국부터 세계 최강 당나라와의 전쟁, 그리고 발해가 누렸던 영광의 시대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역사를 담았습니다. 발해가 정말 당나라를 무너뜨렸을까요? 그 비밀을 지금 확인하세요!
    영상이 흥미로웠다면 구독과 좋아요, 그리고 알림 설정 부탁드립니다. 발해의 위대한 역사를 널리 알리고 싶으신가요? 지금 바로 이 영상을 시청하세요!

ความคิดเห็น • 476

  • @bangbang-if3ey
    @bangbang-if3ey 20 วันที่ผ่านมา +71

    1. 발해가 정식국호라는 건 알 수 없습니다. 원래 당나라는 대진국을 발해말갈이라고 부르다 최초로 그 세력을 인정하고 대조영을 발해군왕으로 책봉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하지만 이건 그냥 형식일 뿐이죠. 실질적 지배력과 관계 없이 원래 중원을 차지한 황제는 주변의 세력에 이런 식의 외교형태를 취합니다. 하지만 발해가 독자 연호를 쓰고 칭제한 것으로 보아 실질적으로 제후였던 것은 아니라 당과 대립하는 제국이었음이 확인됩니다. 또한 고구려, 백제, 신라도 중국에선 책봉 형식을 취합니다. 실질적 지배력과 관계없이 중국은 삼국의 왕들을 낙랑군왕, 대방군왕 등의 칭호를 부여했던 것이죠.
    2. 당이 거란과 다투었던 영주와 대진국을 건국한 동모산, 흑수말갈의 위치는 만주가 아닙니다. 동북공정과 일제 식민사학으로 왜곡된 내용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교과서는 동북공정과 식민사학의 조합입니다.) 실제 사서의 내용으로 추정하면 발해말갈은 대야택(당시 발해, 지금의 하북성)북쪽이고 그래서 발해라고 부른 것입니다. 흑수말갈의 위치는 지금의 산서성 북쪽에서 내몽골 자치주까지입니다. 지금도 흑수라는 지명이 남아있죠. 흑수말갈을 흑룡강성쪽으로 보는 건 동북공정입니다. 교과서도 마찬가지로 중국의 주장을 의심 없이 받아드린 겁니다.
    3. 통일신라는 한반도 남부에 머무른 소국이 아닙니다. 적어도 지금의 요동반도는 확실히 통일신라의 강역이었습니다. 이것도 식민사학을 그대로 의심없이 받아드린 우리 대학교수들이 만든 결과.
    4. 중국의 동북공정은 나태하고 게으르며 비양심적인 우리 학계가 완성했다고 봐야 합니다. 결과적으로 우리 역사학자들이 만리장성을 한반도 까지 끌어온 것이죠. 이건 상식으로도 반박 가능한데도 우리 역사학자들은 이런 거짓말을 만들고 합리화 시키는데 매진하고 있습니다. 통일된 진나라는 불과 15년 밖에 유지가 되지 않았는데 그 동안 장성을 그렇게 쌓을 순 없는 겁니다. 당시의 인력과 도로망, 건축기술로 불가능 합니다.
    이외에도 너무도 상식적으로 반박할 수 있는 내용이 우리 국사교과서에 많이 있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0 วันที่ผ่านมา +5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역사에 대해 깊이 있게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구독자님의 질문과 반응에서 다양한 역사적 관점을 엿볼 수 있어 흥미로웠습니다. 몇 가지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설명을 드리고자 해요.
      1. 발해의 국호와 국제적 지위: 발해가 자주적 연호를 사용하고 칭제한 것은 분명히 독립국으로서의 위상을 갖추고 있었음을 의미합니다. 당나라의 책봉은 외교적 형식에 불과하며, 이는 발해를 실제로 당나라의 제후국으로 간주한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발해는 당과 군사적, 외교적 대립을 통해 독자적인 지위를 유지하려 했고, 이는 당시의 국제 질서에서 흔한 일이었습니다. 참고로, 박용운 교수의 논문 ‘발해의 대외정책과 대당관계’(1985)는 이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습니다.
      2. 발해와 흑수말갈의 위치: 발해의 중심지와 흑수말갈의 위치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학계에서는 발해의 중심지를 지금의 하얼빈 또는 길림성 부근으로 보고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구독자님께서 말씀하신 이론도 존재합니다. 다만, 동북공정과 관련된 주제는 매우 복잡하고 정치적인 면도 있어, 역사적 사실과 해석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실제 위치에 대한 고증은 고고학적 자료와 사서 분석을 통해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습니다.
      3. 통일신라의 강역: 통일신라가 요동반도까지 지배권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학계에서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증거가 명확하지 않아 논란의 여지가 많습니다. 이는 역사적 자료가 부족하거나 모호하기 때문인데요, 다양한 시각에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영재 교수의 논문 '통일신라의 영토 확장과 외교 전략'(2002)은 통일신라의 대외정책을 분석하고 있습니다.
      4. 동북공정과 만리장성: 동북공정은 중국의 역사 인식과 영토적 야망이 결합된 정치적 프로젝트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들에게도 민감한 문제입니다. 만리장성이 한반도까지 연결되었다는 주장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부정되었으며, 이는 고고학적, 건축학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됩니다. 한양대학교 이기동 교수의 '중국 동북공정의 역사적 배경과 문제점'(2010)은 이 주제를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역사는 다양한 시각과 해석이 공존할 수 있는 학문입니다. 구독자님의 의견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궁금한 점이나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함께 역사에 대해 더 깊이 있게 탐구해 나가길 기대합니다! 😊📚

    • @martin.k.conank7172
      @martin.k.conank7172 13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역사시점 신라제국 태종무열왕 김춘추와 가야계 신라제국 대장군 김유신의 묘비에 "소호금천의 후예다."라고 새겨져 있음.
      소호금천은 삼황 황제 헌원의 아들로 오제에 포함되기도 함. 이 소호금천의 릉은 산동성 곡부에 있음.
      한국에 있는 김씨중 왕에게 하사받은 김씨, 스스로 김씨로 칭하거나 민적법으로 김씨성을 가진 집안을 제외한 모든 김씨들의 고시조는 소호금천임. 중시조는 가야계 김해 김씨 김수로, 신라계 경주 김씨 김알지...
      실제 양자강 중하류 안휘성에 김씨 집성촌이 있음. 중국내 성씨 인구순위 60위권대...
      그런데 소호금천은 한반도에 살지않았음. 역대 한반도의 지배자. 낙랑국ㅡ고구려ㅡ신라ㅡ고려ㅡ조선ㅡ대한제국ㅡ일본ㅡ북조선/한국

    • @user-zx8dm2xs8r
      @user-zx8dm2xs8r 11 วันที่ผ่านมา +4

      @@전지적역사시점 흉노 거란, 몽골 모두 중국에서 막대한 보호비(조공, .. 명칭을 부르기 어렵다)을받으면서 책봉을 받았지. 책봉이란 국제적 으로 구가의 인정 이지 피지배인정은 아닌 것이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이런분들이 많으니 대한민국이 더 발전하는거겠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역사적 통찰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이 배우겠습니다!

  • @khans0
    @khans0 15 วันที่ผ่านมา +30

    여진족의 나라 금과 청은 왕과 지배층이 신라의 후예라는 점에서 우리 역사로 편입하고 중공 전체의 영유권을 주장할 권리와 근거를 가집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4

      안녕하세요! 먼저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저희 채널을 통해 역사 공부를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구독자님께서 말씀해주신 "금"과 "청"에 대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역사적으로 여진족(주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이 세운 금(1115-1234)과 청(1616-1912) 왕조는 분명 한반도와 교류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조의 기원이나 정체성을 한국사로 완전히 편입하기에는 여러 복잡한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요인들이 작용합니다.
      먼저, 금과 청의 지배층이 신라의 후예라는 주장에 대해선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일부 역사적 기록에서 여진족과 고구려, 발해의 후손들이 혼재했을 가능성은 언급되지만, 이는 곧바로 그들의 왕조가 한국사의 일부로 규정되는 근거로 보기 어렵습니다. 특히, 금과 청은 중국 역사에서 주로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 한 정복 왕조로 기록되어 있으며, 한국과는 별개의 정치적, 문화적 정체성을 지녔습니다.
      또한, 국제법적인 관점에서 오늘날의 영토 문제나 영유권 주장은 근대 이후의 국가 형성 과정과 국제 조약에 따라 결정된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사건만을 바탕으로 현대적 영유권을 주장하기는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여러 학술 논문에서도 다루고 있는데요, 다음 논문이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현숙, "여진족과 발해의 관계에 대한 고찰", 동아시아 역사 연구, 2021.
      조경철, "청나라와 한국의 관계사", 동북아시아 왕조사 연구, 2018.
      역사는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는 만큼, 여러 관점을 존중하며 공부해보는 것도 매우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질문과 토론 부탁드려요! 😄
      감사합니다! 🙏

    • @user-lf1xt5wo8d
      @user-lf1xt5wo8d 14 วันที่ผ่านมา +2

      중공땅 내륙 서쪽 절반은 빼구요

    • @user-qm3fn2dh2h
      @user-qm3fn2dh2h 13 วันที่ผ่านมา +1

      금나라는 흑수 말갈로 우리와 피가다릅니다. 청나라는 발해 후손들이 시운 나라가 맞습니다. 이유는 건주여진의 선조거 속말말갈입니다. 속말말갈은 발해의 주체세력이죠

    • @심재섭-c4u
      @심재섭-c4u 9 วันที่ผ่านมา +2

      그럼요. 신라도 단일민족국가가 아니였고 진나라를 세웠던 여진족 역시신라의 일원이 맞지요. 그것 우리 역사이고 지금 동북삼성에 있는 약 1천만명의 만주족 즉 여진족을 우리와 합치도록 헤야 합니다. 스스로 단일민족 단일민족이라는 멍청한 소리 그만하고요,

    • @princ2024
      @princ2024 7 วันที่ผ่านมา +1

      南朝鲜人改不了乱认爹的毛病,你们应该认美国人为爹,毕竟现在美国是世界第一强国

  • @user-to2xu9lq8b
    @user-to2xu9lq8b 21 วันที่ผ่านมา +9

    오랜만에 올라온영상 정말 궁금했던 발해의 내용이라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10대 선왕부터 대조영의 후손이 아니라는게 흥미로웠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1 วันที่ผ่านมา +1

      와!! 댓글 기다리고있었습니다~! 이번에도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결국 핏줄보다 중요한것은 능력~!

  • @user-lf1xt5wo8d
    @user-lf1xt5wo8d 14 วันที่ผ่านมา +11

    책보고님의 유튜브를 보고 공부를 하신 후 내용을 보완하시면 퍼즐이 맞아 들어갈겁니다. 통일신라가 한반도 안에만 존재했다면 당나라나 발해와 견줄 세력이 되겠습니까?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3 วันที่ผ่านมา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게 많습니다 ㅜㅜ

  • @산림수
    @산림수 9 วันที่ผ่านมา +12

    안동 도호부는 중국의 안동입니다 새롭게 발견한 역사입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วันที่ผ่านมา

      새로운 역사 견해 제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user-fd7nb4rs4c
    @user-fd7nb4rs4c 5 วันที่ผ่านมา +8

    정리를 딱딱 시원하게 영상으로 보니 귀에 잘들어오네요 이런영상 자주올려주세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와 칭찬!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악플이 많아 힘들었는데 참 감사합니다 ㅜㅜ

    • @이상현-h3s
      @이상현-h3s วันที่ผ่านมา +1

      H ​@@전지적역사시점

  • @goindol-eu1yo
    @goindol-eu1yo 8 วันที่ผ่านมา +8

    1980년대까지 중국의 역사관은
    중국 동부지역과 만주, 한반도를 동이문화권.
    중국 서쪽지역을 한족문화권
    중국 남부지역을 남만문화권.
    이렇게 3개의 문화권으로 나뉘서 역사를 인식하고 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부터 동북공정이 시작되면서 중국 동부지역을 지배했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백제, 발해 역사를
    중국역사로 편입해서 가르치고 있고,
    전 세계의 주요도서관에 책을 배포해서 홍보하고 있습니다.
    즉 중국 사학계는 알고있습니다.
    고구려,백제,신라의 주활동 무대는 중국 동부지역이고,
    한반도는 고구려와 왕망의 신라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
    고구려는 중국 황하이북, 산서성, 요동지역(황하 이북지역)의 지배자였습니다.
    역사기록을 보도록하겠습니다.
    , 의 기록에 고구려는 사방 2천리이며 국토 가운데 요산(遼山)이 있어 요수가 그곳에서 흘러나오며 도읍지는 환도산의 꼬리부분에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요산은 산서성 지역입니다.
    에 "고구려 모본왕때 북평,어양,상곡,태원을 점령했다"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곳이 어디냐? 중국 태행산맥 즉 산서성 전체에 해당하는 지역입니다. !!!
    ...................................................
    또한 2개의 신라 기록이 삼국유사등 몇몇 기록이 등장합니다.
    는 후한시대 왕망이 세운 신나라가 망하고, 이 세력이 고구려에 투항하여 한반도 남부로 이주하여 신라가 세워졌고, 고구려의 제후국으로 왕의 호칭을 마립간이라 했으며,
    는 진나라 유민이 동쪽으로 이주하여 백제에 의탁하니, 백제(초기 백제의 위치 : 낙양, 숭산, 태산 일대)가 동쪽 땅(산동반도 일대, 양자강 안휘성 일대)을 할해하여 내줘서 그곳에 세워진 대륙신라.(왕 칭호)
    이 두개의 신라가 있었는데, 김부식이 삼국사를 짜집기하면서 2개의 신라기록을 하나로 합치면서 엉망이 된것입니다.
    ""부여는 대동시(북경 서북쪽)인근에,
    고구려는 하북지역,산서성까지
    백제는 산동과 요서지역
    신라는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즉 대륙에는 대동시(북경 서북쪽) 인근에 있었던 졸본부여.
    졸본부여에서 남하하여 산서성, 황하이북 지역을 주 활동무대로 삼고, 만주 한반도 북부지역까지 다스렸던 고구려.
    졸존부여에서 남쪽으로 이주하여 황하인근의 하북지역, 하남지역으로 이주한 소서노 세력의 백제.
    신라는 진나라 유민이 백제땅으로 이주하여, 백제의 동쪽땅. 즉 양자강 안휘성 유역, 우산국, 산동반도까지 다스렸습니다.
    양자강 이남지역에 있었던 대륙가라와 왜국.
    (신당서,구당서,남제서,송서 기록 참고)
    ............................................................
    한반도에는 삼국시대 고구려,백제,신라 왕들의 묘지석이 단 한개도 없습니다.~!!!! ...왜일까요??
    충남 공주가 웅진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부여가 사비였다는 기록이 단 한개라도 있나요?
    충남 금강이 백마강이었다는 기록이 단 한번이라도 있나요?
    없습니다. 조선 초기, 일제강점기때 붙여진 것들입니다.
    그리고 소정방은 서해를 타고 부여에 오지 않았습니다.
    중국 서안에서 황하를 군수물자 땟목을 타고 황하 하류, 황산(황하 옆에 있는산 황산) 인근에 덕물도(가탐도리기 참고)라는 섬에 집결하여,
    황산벌(황하 강가옆)에서 전투를 한것입니다.
    그당시 사서기록을 보면 황하를 海라 기록했습니다.
    중국 산동지역에는 지금도 백마강, 황하옆 황산(벌), 웅진성, 사비, 탄현, 제녕, 제남
    그리고 양자강 안휘성 인근에 경주, 팔공산, 함산, 낭산, 계림, 9층목탑, 박혁거세 묘와 후손들이 사는 마을 등등
    고구려,백제,신라의 지명과 유물들이 너무 많습니다.
    당연히 한반도 신라무덤은 왕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몰라 전부 "총"입니다.
    공주의 무령왕릉은 기회되면 직접가서 보세요.
    사마왕의 지석은 후대에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것처럼 지석에 구멍이 나있고, 글씨체도 부인 지석과 다르게 조잡하게 씌여있으며, 왕릉의 위치는 옆의 고분들 사이에 끼여있는 형세로서
    왕의 무덤이라 할수 없습니다.
    이미 누군가에 의해 도굴되어 되메어진것을 1971년 다시 발굴했던 것이며, 발굴당시 이미 내부는 어지럽게 훼손된 상태였습니다.
    부인의 관 밑에서 발견된 반지에는 왕비가 아니고 다리작 부인이라는 글씨가 씌여있으며,
    다리작은 고구려계 대부인이 쓰는 호칭이었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기록에 부여와 정림사는 등장하지 않으며, 사비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소정방이 썼다는 석탑의 대당평백제비는 사서 기록과 다르며, 후대에 조작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구당서 기록에는 탑이 아니고 비석에 승전내용을 기록한것으로 되어 있으며, 위치 또한 다릅니다.
    .........................................................
    은(상)나라 시대에 동이족의 거주지는 산서성(태행산맥 지역), 하북지역(황하 이북), 산동지역, 절강성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동이족이라 하였으며,
    고조선, 은나라, 고죽국도 동이족 국가였습니다.
    후대에 당나라때 "구당서 기록"과 많은 중국의 정사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백제,신라,왜국,일본은 동이족이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주활동 무대는 하북지역, 산동지역 있었습니다.
    중국측 사서기록에 산동에 "구이"(아홉개의 동이국가)가 있어 단군을 임금으로 추대하였다.라고 기록
    산동의 구이가 조선이다. 공자가 살고 싶어했던 조상의 나라, 동이.
    그곳이 바로 산동지역을 주무대로 했던 고조선이다.
    동이 9족이 곧 "우이"이고, 우이가 곧 "조선"이다.
    구이는 현토, 낙랑, 구려를 말한다.
    당나라와 신라가 백제를 공격할때, 김춘추를
    "우이도" 행군총관 으로 임명합니다.
    그 "우이도"가 바로 백제가 있었던지역이고, 과거 산동지역 우이의 땅입니다.
    또한 발해는 북경을 중심으로 나라를 건국했습니다.
    산동지역의 백제와 하북지역의 고구려가 망한후,
    북경유역에 자리잡은 발해는
    통일신라와 당의 공습으로 북경 유역을 빼앗기고 만주지역으로 이주하였다가 거란에 망하게 됩니다.
    참고로 거란은 지금의 중국 산서성지역에 있던 나라입니다. 북경 서쪽 태행산맥에 자리잡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거란이 고구려가 차지했었던 산서성 지역에서 일어났기때문에 스스로를 고구려의 후예라고 자칭했던 것입니다.(서희 담판)
    발해가 망한이후 북경유역은 고려의 땅이 되었고,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가 바로 하북성과 산서성에서 벌어졌던 것입니다.
    (전투지역: 안문관, 흥화진, 통주 등등 전부 하북성, 산서성 지역임)
    참고로 사서기록을 보면 나당연합군이 고구려를 공격할때도 그랬고, 발해를 공격할때도 태행산맥 동쪽 석문(석가장) 인근에서 전투가 벌어집니다.
    바로 북경 서쪽, 즉 황하이북에 있는 지역입니다.
    이후 중국 동부지역은 후삼국 시기가 도래하고,
    절강성, 양자강 유역에서 왕건이 견훤을 수군으로 대파한 이후, 안휘성 인근 경주에 있던 신라는 왕건에 복속하게 되고,
    중국 동부지역은 왕건의 고려가 시작하게 된것입니다.
    최근 TV에서 방영된 "고려-거란 전쟁"의 무대는 한반도가 아니고,
    서경(북경), 그 오른쪽에(개주, 개경), 태행산맥 인근의 흥화진, 안문관, 석문(석가장), 통주(북경 바로 아래)에서 치러진 전투입니다.
    지금도, 그리고, 고지도에 그 지명들이 하북지역(황하이북)을 중심으로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안나오죠!
    이후 신라인 김함보가 건국했던 김(금)나라는 중원에 진출했다가 원나라에 패배하고,
    원나라의 중원 침략, 원이 고려에게 중국 중부지역의 황건적 토벌요청, 산동지역의 제주 삼별초 전쟁, 산동반도 아래 강화도 천도, 원의 북송점령, 다시 원나라의 퇴각, 농민반란으로 고려의 남경(양가강 유역)에서 일어선 명나라의 북경유역 점령 등으로
    고려 후기에 중국동부를 지배했던 고려는 심양, 만주, 한반도로 대거 이주하게 된것이고,
    동북면(만주,한반도)에 기반을 두고 관할했던 이성계에게 쿠데타로 나라가 망하게 된것입니다.
    그리고 조선초기 고대 역사서 마저 불태우고, 삼국사마저 편집되어 원본이 소실된것입니다.
    진짜역사는 많은 중국측 사서와 고려사, 삼국사 원문을 해석해서 확인해야 합니다.
    현재 삼국사 해석은 오류 투성이 입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7 วันที่ผ่านมา

      멋진 역사적 견해 감사합니다~!

    • @댓글선동질단속반
      @댓글선동질단속반 3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적극공감합니다 하루빨리 식민사관 중국사관에서 벗어나 바른역사를 인지해야 합니다.

  • @okiok-zt3dd
    @okiok-zt3dd 12 วันที่ผ่านมา +13

    역사공부을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쳐야 할듯 이웃나라가 역사을 왜곡하고 있으니 우리나라사람이 역사을 모른다면 당할수밖에 없지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 @발렌타인나에
      @발렌타인나에 8 วันที่ผ่านมา +4

      새상의 중심이라 스스로 생각한 나라는 중국인민공화국 때 였습니다
      오히려 중국인들은 오랜 옛날부터 동이족의 우리 나라가 중천축국(중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일제가 왜곡한 역사에 빨리 벗어나야 합니다

    • @Mountman-826
      @Mountman-826 7 วันที่ผ่านมา

      ㅡ 1:12 😮😅 1:12 😊😊

  • @하종송
    @하종송 11 วันที่ผ่านมา +5

    목소리가 활기차네요. 좋은 영상 잘 봤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วันที่ผ่านมา

      칭찬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힘든 하루였는데 덕분에 힘이 납니다!

  • @께비튜브
    @께비튜브 13 วันที่ผ่านมา +7

    발해건국과 함께 남북국 시대인데 통일신라라는 이름은 바꿔야 맞는듯. 그냥 신라

  • @맥가이버-l9z
    @맥가이버-l9z 22 วันที่ผ่านมา +12

    어설프게 알고 짧게 지식으로 알고있었던 발해 ᆢ 오늘 영상으로 한층더 알게 되었네요 ᆢ치밀하고 짜임새있는 영상과 설명에. 깊은 감사 ᆢ꾸벅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2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저또한 발해가 이런 나라인지 이번에 제대로 공부하면서 더 배웠습니다!! 그리고 칭찬 너무 감사합니다! 더욱 힘내서 하겠습니다~! 혹시 듣고 싶은 다른 역사 주제가 있으실까요?!

    • @맥가이버-l9z
      @맥가이버-l9z 22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전지적역사시점 아 ᆢ 연산군 ᆢ 폐비 윤씨 ᆢ ᆢ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1 วันที่ผ่านมา +1

      와 이거 준비를 해뒀는데 ㅜㅜ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까봐 묵혀두고있습니다!! 폐비윤씨 (성종) 이야기는 채널에 있습니다~!!

    • @맥가이버-l9z
      @맥가이버-l9z 21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전지적역사시점 아 ᆢ네 역시 감사

  • @ryu870149
    @ryu870149 3 วันที่ผ่านมา +3

    발해의 지명이 서쪽으로는 태행산맥 서쪽와 북경과 아무르강까지 입니다.
    해동 성국으로 불렀던 이유가 지금의 동해가 아니라 중국의 동쪽 바다 서해 입니다.
    발해만이라고 불리우는 이유가 산둥 반도 북쪽에 발해가 있었습니다.

  • @사랑한죄-q5g
    @사랑한죄-q5g 15 วันที่ผ่านมา +3

    당시의발해 지도와 지도로 설명해 주신다면은 이동경로까지 발해의영토까지 한눈에 들어와서 이얘하는대 한결도움 될탠대 조금아쉽구요 우리가 살고있는 대한민국 사라져버린역사 잘못배우고있는 역사교과서 갈팡질팡 역사에대한 자료도부족하고 일반인이 알고있는 역사지식 학교에서 잘못배운거로 그렇게 인식되어있죠 무엇보다 중요한거 역사는 흐르고 세월도흐른다는거 지금이야 여러문제로 힘들지만 세상은바뀌어 진다는게진실이죠 우리나라 통일되고 강대국 된다면 우리의땅 빼앗긴땅 다시찿아오리라 믿어요 훗날강대국 대한민국의 옛영토지도가 지도에표기 되다고 생각하니 ㅠㅠㅠㅠㅠ 눈물이 앞을가립니다 발해의대해 몰랐던 일부를 알려주어서 감사합니다 👍👍👍🇰🇷🇰🇷🇰🇷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4 วันที่ผ่านมา

      크으.. 이런 역사적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말씀해주신 부분 반영하여 다음에는 더 좋은 영상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ryu870149
    @ryu870149 3 วันที่ผ่านมา +3

    당나라군대가 얼마나 싸움을 못했으면 속담에 당나라군대냐? 라고 했을까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3 วันที่ผ่านมา

      못살아 ㅋㅋㅋㅋㅋ 그래도 만만치 않은 적이긴 했을겁니다~!

  • @JGShin-ns6mc
    @JGShin-ns6mc 22 วันที่ผ่านมา +4

    캬 잘봤습니다 ~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2 วันที่ผ่านมา

      시원한 칭찬 댓글감사합니다!! 덕분에 힘이 납니다 ㅎㅎ!! 혹시 듣고 싶은 다음 역사 주제가 있으실까요?!?!

    • @JGShin-ns6mc
      @JGShin-ns6mc 2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역사시점
      영상과 같이 단군조선이나 치우천왕기의 고대시대의 시작과 끝도 흥미로울듯 합니다~
      고조선에 대한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1 วันที่ผ่านมา

      크으!!!!!! 이것도 제가 진짜 좋아하는 주제입니다.그런데 문헌 찾기가 참힘들어서!! ㅜㅜ 그래도 한번 힘써서 조사해보겠습니다

  • @holicsoo4431
    @holicsoo4431 10 วันที่ผ่านมา +4

    중국25사는 1910년이후에쓴 신간소설입니다..
    중국한족 화하족역사라는것은 없읍니다..

  • @세계사전공자
    @세계사전공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9

    아시아 최강대국 거란제국이 발해를 정복하기 전까지, 발해는 군사력이 진짜 막강했던 군사제국이었죠.
    물론 당시 고대 중국 당제국(당나라)은 세계패권제국이었기에 발해의 공세가 계속되지는 못했지만 발해의 선제 공격은 당제국이 고구려를 정복하고 식민지배한 것에 대한 복수를 강하게 한 것으로 본다면 진짜 통쾌하긴 합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1

      구독자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보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발해와 거란, 그리고 당나라와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깊이 생각해주셔서 기쁩니다.
      발해는 확실히 군사력과 외교에서 상당한 강국이었죠. 고구려 멸망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발해는 자신만의 고유한 문화를 발전시키면서도, 강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주도했어요. 발해가 당나라와 대립할 때, 초반에는 선제 공격을 감행하는 등 그들의 군사적 힘을 과시했지만, 당나라도 당시 세계적인 제국이었기 때문에 발해가 장기적으로 대립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발해가 고구려의 후계자로서 당나라에 대해 반격을 시도한 것은 분명히 그들 나름의 자부심과 힘을 보여준 사건이었죠.
      참고로, 발해는 이후에도 당나라와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상호 외교 관계도 수립하게 되며,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계속 이어갔답니다. 발해의 이러한 외교술은 그들의 군사력뿐만 아니라 외교적 능력도 대단했음을 보여주죠.
      이 주제와 관련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면, 김철수 교수님의 “발해의 대외 관계와 군사 전략” 논문을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 논문에서는 발해의 군사력과 외교적 전략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답니다!📚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 남겨주세요! 😊

    • @에밀레
      @에밀레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이봐 ,발해국멸망에대한 역사기록이없는데 자넨 어떻게 알앗나 ? ㅋ

  • @chriskim7762
    @chriskim7762 12 วันที่ผ่านมา +7

    통일신라가 한반도에 있었다고요?
    미치것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2 วันที่ผ่านมา

      아이고 미치지마세요 ㅠㅠㅠ 조언해주시면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 @sfrsftxctevhh
      @sfrsftxctevhh 7 วันที่ผ่านมา +1

      풉. 근거도 없이 날조하네. 이러니 국뽕이 욕을 먹는거.ㅋ

    • @upuppower4245
      @upuppower4245 2 วันที่ผ่านมา

      ㄷㅐㄷㅐ손손 나라구해도 ㅋㅏ더라 통신에 속아 나쁜지역되는 나라!!!
      ㄷ ㅐ ㄷ ㅐ손손 강대국에 나라 넘긴 사대주의 ㅁㅐ국노 두ㅣ통수족속을 보수라하고
      진짜보수는 뒤통수라 매도하는 멍청한 국민성
      휴.ㅇ노가 중국에 넘겨준 우리땅 검색 신ㅇㅣ사는땅 신땅 스탄 우리말입니다!!
      역ㅅㅏ는 반복됨!!!
      1) 신ㄹㅏ가 당나라에 만주벌판 내주고 ㅁㅐ국통일후 흉노 골품제로 한민족을 노예화 600여년간 한민족을 유린한휴.ㅇ노
      당나라,신라 휴ㅇ노연합에 맞서 황산벌에서 목슴받쳐싸운 호남 사람들
      2)임진왜란 왜군 보다 앞장서서 조선군 죽여 1주일만에 수원성까지 뺏기게한 휴ㅇ노
      스스로 군자금 걷어 거북선 만들어 목슴받처싸워 나라구한호남사람들 //
      3)견ㅁㅏ지로 충성혈서쓰고 독립군사냥한 다까ㄲㅣ 마사오등경상도 일본장교들 호남의 의병수는 4만4000
      여명 전국의병의 60.1%일본군과 전국의병교전횟수의 절반 47.6 만주 독립군가는 동학군가
      4)일본에 대마도 넘겨준 휴ㅇ노 제주도 지킨 호남사람들
      5) 6.25때지리산에서 호남사람 죽창으로찔러죽인 남로당 간부들거의 대구경북출신임 전쟁나면 뉴라이트들에의해 국민들 빨갱이로 선동해서 죽일것임 역사는 반복됩니다
      ★ 고려때 후ㄴ요십조 조작 전라도충신들 몰아내고 부패고려만들고 지금은 뉴ㄹㅏ이트가 전라도역사왜곡 일베는 비하질 여론몰이
      ((『고려사』권98 최제안 열전= 기록을 근거로,
      거란침략때 불에타없어진 훈요십조가 100년후 경주 최항의 집에서 발견된 훈요십조는 최항의 작품이라 했다)
      노론 300년 권력의 비밀 검색해보십시요 노론벽파수장 심환지 경상도 창녕출신
      백성들한태 등쳐먹고 강대국에 나라 넘긴 사대주의 노론벽파
      조선시대때도 "무호남 무국가"라고 했는데 지금세계에서 제일 많이 배운 한국인들은 카더라에 속아
      호남 사람들을 뒤통수 족속이라 한다 생각없는 인간된한민족
      대대손손 나라구한 전라도를 왜곡하는 김정민
      th-cam.com/video/MRJ2xiEldik/w-d-xo.html 전라도 친일과학?
      흉노 매국질이 과학이겟지!!
      암울한 미래 TK가 군대도 장악...'사단장 진출자 절반이 TK'

  • @kakao5416
    @kakao5416 10 วันที่ผ่านมา +8

    백두산 폭발로 인한 발해 멸망설은 이미 끝난 이론입니다. 발해 멸망이후에 폭발한걸로 결론 났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วันที่ผ่านมา

      오!! 맞습니다 이런 학계의 견해도 있는걸로 알고있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소민파파-l6p
    @소민파파-l6p 21 วันที่ผ่านมา +10

    발해는 그냥 원래 땅을 되찾은것 뿐.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1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표현이 정말 멋집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땅을 되찾으면 참 좋을텐데요

  • @이관희-e1c
    @이관희-e1c 12 วันที่ผ่านมา +4

    이거. 영화제작해도 대박날듯 합니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2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여러댓글들중 유독 제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댓글입니다 ㅠㅠ 감사합니다

    • @환근정
      @환근정 3 วันที่ผ่านมา

      티비에 대조영 햇어요

  • @악마사신
    @악마사신 16 วันที่ผ่านมา +4

    등주라는 지역은 지금의 펑라이시 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의 형태가 완벽히 보존되어 있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산책지옥
    @산책지옥 16 วันที่ผ่านมา +6

    발해는중국이말하는나라명칭이고 그대로 고구려라고 하는게 맞음 대조영이 아니라 대조영아버지가 대씨집안에서 고구려를 계속 이어옴 말갈족은 엄연히 다름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6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적 조언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user-qm3fn2dh2h
      @user-qm3fn2dh2h 13 วันที่ผ่านมา +2

      이미 학계에서는 대조영이 속말말갈이라고 인정하는 분위기입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วันที่ผ่านมา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10 วันที่ผ่านมา +4

    등주와 래주가
    산동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
    요서와 요주가
    산서에 도착 (대명여지도 초중본) 출발지는 중초본에서 삭제.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9 วันที่ผ่านมา

      이렇게 역사에 관심있는 분들이 많으셔야 할터인데

  • @Yanglee156
    @Yanglee156 17 วันที่ผ่านมา +5

    개인적인 생각인데 발해는 왕이 나오는 방식이 다를수도 있겠네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오!! 정말 흥미로운 견해입니다. 발해가 원체 기록이 없다보니 이랬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 @데스룬나이트
    @데스룬나이트 15 วันที่ผ่านมา +4

    지도를포함해서 이동 점령한거까지 보이면 더편하게 시정가능하겠네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제가 생각을 못한부분입니다. 조언감사합니다.

  • @패미박멸
    @패미박멸 19 วันที่ผ่านมา +9

    발해만이 중원에 있어요. 천진만이나 산동만으로 불려야하는데 왜 오늘날 모두 그곳을 발해만이라 할까요. 발해 라는 지명이 그 근처에 있어왔고 당나라가 발해라 칭했던 나라가 거기에 있어야 겠지요. 다시 말해, 발해의 중심 영역이 지금의 발해만을 감싸고 있는 지역이며 옛기억의 흔적이 현대까지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 나라는 대씨가 다스린 고려였고 (외교문서에 발해왕을 고려왕이라 했음) 최소 하북지역과 동북3성, 만주와 연해주를 넘어서는영역을 차지하고 있었다고 봐야합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9 วันที่ผ่านมา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발해만에 대한 질문을 주셔서 정말 기쁩니다. 먼저, 발해만이라는 지명은 오늘날에도 역사적 맥락에서 사용되고 있는 이름입니다. 이 명칭은 당나라 시기에 발해(渤海)라는 나라와 연관이 깊습니다. 발해는 오늘날의 하북성, 동북 3성, 그리고 만주 일대에 걸쳐 있던 나라였는데, 이 나라가 번성하던 시기에, 그 해역을 중심으로 ‘발해만(渤海灣)’이라는 이름이 널리 쓰이게 되었죠.
      천진만이나 산동만이라는 명칭도 지역적으로 맞지만, 발해만이라는 이름은 역사적 연원을 중시하여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발해가 차지했던 영토와 영향력 덕분에 그 이름이 오늘날까지도 이어진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싶으시다면, "발해와 당나라의 외교와 해양활동"이라는 주제로 연구된 논문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 논문에서는 발해와 당나라 간의 관계가 해양 지명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자세히 다루고 있답니다 📚.
      궁금증이 해결되셨기를 바라며, 더 많은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

    • @user-vq6qc9cv4d
      @user-vq6qc9cv4d 18 วันที่ผ่านมา +1

      말갈 발해 여진(금)은 동북만주, 남서 만주는 통일 신라, 고려 영토.

  • @BLGJeongIlSu
    @BLGJeongIlSu 20 วันที่ผ่านมา +3

    발해의 영향력은 멸망후에도 지속되었죠.. 금나라 황후들도 발해인들이 많았으니 다만 발해 말기 쯤을 시기로하는 북만주쪽 퉁구스계열 민족들의 전설이나 설화를 들어보면 발해군의 엄청난 패악질?이 계속해서 발견되는데 그만큼 내부에서 많은 혼란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0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발해의 영향력이 멸망 후에도 지속되었다는 점은 굉장히 흥미로운 부분이에요. 특히 금나라 시기에 발해인 출신의 황후들이 많았다는 사실은 발해의 귀족 계층이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보여줍니다.
      발해 말기의 내부 혼란과 관련된 설화나 전설 역시 주목할 만해요. 이런 전설들은 당시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으며, 발해 내부에서의 갈등과 긴장 상태를 암시하고 있죠. 발해가 멸망 직전에 정치적 혼란과 군사적 약화가 있었던 것은 역사적 기록에서도 확인됩니다. 특히 당나라와의 관계, 내부 귀족들 간의 권력 다툼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해의 쇠퇴를 가속화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발해 군의 행동에 대한 전설들이 후대 퉁구스계 민족들 사이에서 남아있는 것은, 그 당시 발해가 이들 지역에 미쳤던 영향력과 그 결과에 대한 기억이 오래도록 지속되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발해와 관련된 논문이나 자료를 더 읽어보고 싶다면 "발해사 연구"와 같은 학술 자료들을 추천드립니다. 예를 들어, 김종복 교수님의 논문 '발해의 정치 구조와 멸망의 원인'은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있는 분석을 제공해줍니다.
      추가 질문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 남겨주세요! 😊

  • @최지환-c3y
    @최지환-c3y 5 วันที่ผ่านมา +2

    최초의 중원침입이 아니다
    고조선시대부터 중국을 지배했고
    고구려,백제, 신라도 중국에 있었고
    고구려멸망 후 신라와 당나라와 전쟁을 했다.

  • @gssohn6830
    @gssohn6830 15 วันที่ผ่านมา +1

    감사합니다

  • @arcyoon
    @arcyoon 18 วันที่ผ่านมา +9

    나당전쟁에서 신하가 승리한 것으로 삼국사기는 물론 중국사서 쪽에도 기록되어 있는데....등주에 당나라가 있었을까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วันที่ผ่านมา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나당전쟁에서 신라가 승리한 이후, 당나라가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확장하려 했던 것은 맞습니다. 당나라가 백제와 고구려의 옛 땅에 설치한 웅진도독부와 안동도호부 같은 통치 기구가 그 예입니다. 그러나, 당나라가 등주에 주둔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등주는 지금의 중국 산둥성에 위치해 있는데, 이 지역은 당나라의 직접적인 통제 아래 있었습니다.
      이 시기, 당나라는 동아시아의 강국으로 군사력과 외교력을 통해 영향력을 넓히고자 했으나, 신라가 나당전쟁에서 승리하며 한반도에서의 당나라의 세력을 제어하게 된 것입니다. 신라는 이후에도 당나라와의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자주성을 지키려는 노력을 지속했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세요! 😊 참고로, 나당전쟁과 관련된 자세한 내용은 이 논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항상 구독자님의 관심에 감사드리며,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

  • @유우진-g6z
    @유우진-g6z 8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정확히는 요동반도의 건주여진 및 백두산 인근의 여진족(고구려 때는 백산말갈과 속말말갈로 불림) 은 본래 말갈인일지라도 고구려에 일찍 동화된 고구려 지방민이고 금나라를 세운 해서여진은 만주 북쪽의 흑룡강성에 뿌리를 두었기 때문에 고구려인이라기 보다는 만주에 거주하는 다른 종족의 비칭이라고 볼 수 있음.. 혈통적 문화적으로만 본다면 해서여진의 금나라 보다는 훗날 청나라를 건국한 요동땅의 건주여진이 더 고구려계통이라고 볼 수도 있음.. 근데 조선은 건주여진을 이민족 취급하고 멸시했지

  • @jstar287
    @jstar287 21 วันที่ผ่านมา +47

    발해 멸망후 발해를 계승한건 금 나라라고 봅니다 물론 금나라 유적에서도 온돌이 나오고 초창기 왕족들도 발해 사람들이 있었고 발해와 같은 똑같은 민족구성인데 왜 우리 역사로는 인정 하지않는지 이해가안가네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1 วันที่ผ่านมา +17

      안녕하세요!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시고, 이렇게 깊이 있는 질문을 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정말 역사적 식견이 뛰어나신것이 느껴집니다!
      발해와 금나라의 관계에 대해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진행해왔는데요, 발해 멸망 후 발해의 유민들이 금나라 초기 형성에 일정 부분 기여했을 가능성은 일부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금나라의 온돌과 같은 문화 요소들이 발해와 유사하다는 점이나, 금나라 초기 왕족들 중에 발해계 인물이 포함되었다는 주장은 이러한 가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종종 언급됩니다.
      하지만, 금나라는 발해와는 달리 여진족이 주도한 나라로, 발해와는 다른 정치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어요. 따라서 금나라를 발해의 직계 후계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 대다수 학자들의 입장입니다. 발해는 고구려 계승 의식을 가지고 있던 국가였고, 문화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고구려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금나라는 고구려와는 다른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었죠.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서영수 교수의 논문인 "발해사와 금나라의 관계"가 있습니다. 이 논문에서는 발해와 금나라의 관계를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있어, 한 번 참고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역사적 사실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니, 이런 점들을 함께 생각해보면 더 흥미로울 것 같아요! 앞으로도 더 많은 질문과 의견 나눠주세요. 감사합니다! 📚✨

    • @하트호야-d5h
      @하트호야-d5h 20 วันที่ผ่านมา +1

      너무 병신이라 할 말이 없다 대가리에 뽕 좀 그만 처맞아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0 วันที่ผ่านมา +3

      욕은 삼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jstar287
      @jstar287 20 วันที่ผ่านมา +6

      @@전지적역사시점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같은 문화권 같은민족 같은 지역 심지어 우리와 언어도 통하는 여진족도 있고 200년동안 끈질기게 한부흥 운동도 금의 등장으로 부흥운동도 없어지게 됩니다 즉 같은 민족으로 받아 들였다고 봅니다 여진 족을 우리 민족이 아니라고 한다면 발해 고구려 또한 우리 역사에서 멀어지지 않나 그렇게 생각 합니다

    • @sangnamja313
      @sangnamja313 18 วันที่ผ่านมา +5

      금나라를 우리역사로 편입하면 여진족이 우리 민족이 되고 이후 후금, 청이 되어 중국을 집어삼겼으니 중국은 우리 역사인가ㅋㅋㅋ

  • @변화무상
    @변화무상 10 วันที่ผ่านมา +3

    통일 신라는 당나라 보다 더 크지 않았냐?
    멍청한 역사관이다.대륙신라도 모르냐?

  • @김종현-u1x
    @김종현-u1x 18 วันที่ผ่านมา +9

    삼국통일한 신라가 한반도 반쪽이라는게 상식적으로 말이됩니까?

    • @jwk5077
      @jwk5077 18 วันที่ผ่านมา +1

      그게바로 자주적통일이 아닌 외세의 힘을 빌려서 통일한 한계적인 부분이죠....... 물론 신라입장에선 그당시 당나라 힘 빌린거 아녔으면 백제 고구려 연합공격으로 가장먼저 망했을것임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วันที่ผ่านมา +1

      안녕하세요, 소중한 질문을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삼국통일에 대해선 많은 분들이 궁금해하시는 부분이죠. '삼국통일'이라는 용어는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한반도를 통일한 사건을 가리키는데요, 이 과정에서 신라가 당나라와 협력하여 전쟁을 치르고, 이후엔 당나라와의 갈등을 통해 한반도에서 당의 세력을 물리쳤습니다.
      하지만, 당시 신라가 통일한 지역은 오늘날의 북한 지역 일부(대동강 이남과 원산만 이남)에 해당하며, 현재의 한반도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반쪽"이라는 표현이 나온 것 같아요. 신라는 대동강 이남을 지배하며, 이후 발해가 고구려의 옛 영토에서 건국되었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신라는 한반도의 남부를 통일한 셈이죠.
      이와 관련된 연구로는 이기동 교수의 논문에서 삼국통일의 성격을 분석한 자료가 있습니다. 더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해 이 논문을 참고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구독자님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혹시 더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질문 남겨주세요!

    • @user-lf1xt5wo8d
      @user-lf1xt5wo8d 14 วันที่ผ่านมา +3

      @@jwk5077 책보고 유튜버 영상 좀 보고 반박할 수 있으면 근거를 갖고 한번 해보세요

    • @jkim949
      @jkim949 3 วันที่ผ่านมา

      @@jwk5077 신라는 고구려와 같은 민족이 된적이 없는데 어떻게 외세를 끌여들였다고 함?ㅋㅋ
      설사 그렇다고해도 조선은 외세를 끌여들여 왜군의 침략을 막아내었고 한국은 외세인 미국을 끌여들여 동족 북한은 물리친건 어떻게 생각함?ㅋ

  • @user-wy9lp7ld7o
    @user-wy9lp7ld7o 18 วันที่ผ่านมา +3

    발해 멸망시 많은수의 발해 지배층이복수심에 불타 거란에 대한 복수심 금이 거란을 멸망시키는데 큰 활약
    반대로 많은수의 거란 지배층이 또 다른 복수에 이를갈면서 몽골이 금나라를 멸망시킬때 활약 역사는 돌고 도는듯 여진 거란 고구려의 후손들의 물고 물리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วันที่ผ่านมา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역사에 대해 이렇게 깊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내용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발해와 거란, 금나라와 몽골 사이의 복수의 역사는 정말로 복잡하고도 흥미로운 주제입니다. 하지만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하여 몇 가지 사항을 조금 정리해드리고자 해요.
      먼저, 발해 멸망 이후 발해의 지배층이 거란에 대한 복수심을 품고 금나라를 도운 것은 역사적 기록에서는 명확히 확인되지는 않습니다. 발해가 멸망한 이후 발해의 유민들이 금나라와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부 기록이 있지만, 그들이 거란 멸망에 직접적인 큰 역할을 했다는 증거는 부족합니다. 다만, 발해의 유민들이 금나라에 흡수되거나, 여러 방식으로 재편되었을 가능성은 존재해요.
      거란 지배층이 몽골의 금나라 정복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복잡한 문제인데요. 몽골 제국이 금나라를 정복할 때 다양한 부족들이 참여했지만, 이 과정에서 거란의 후손들이 특별히 두드러진 역할을 했다는 기록은 명확하지 않습니다. 역사 속에서 복수심이 동기가 되어 연이은 전쟁과 정복이 이루어졌다는 해석은 흥미롭지만, 실제 역사적 사건들은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아요.
      역사는 정말 돌고 도는 것처럼 느껴지죠? 특정 민족이나 국가가 시간이 지나면서 다시 다른 형태로 등장하는 경우도 많고, 이런 점이 역사 연구의 매력 중 하나인 것 같아요. 😊
      더 깊이 있는 연구를 원하시면, 발해, 거란, 금나라, 몽골 제국의 관계를 다룬 학술 자료들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예를 들어, 《발해사 연구》나 《거란사 연구》와 같은 학술서적을 참고하시면 더 많은 정보를 얻으실 수 있을 거예요.
      다시 한 번 역사에 대한 관심에 감사드리며,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 질문해주세요! 👍

  • @동이강-t5k
    @동이강-t5k 18 วันที่ผ่านมา +3

    고리는(고구려=맥고리+몽고리=몽골)백제+신라+대진=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이들은 뿌리와, 근본
    같은!! 한민족.우리 선조들(숙신.부여.선비.말갈.여진)말과.풍습.의복 .예절.근본과 조상이 같다!
    우리민족! 우리역사! 직계 선조! 이룬 거대한 동방 문명의 고대사!진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2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역사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말씀해주신 내용에서 우리 한민족의 뿌리와 고대사에 대해 많은 자부심을 느끼시는 것 같아 정말 반갑습니다. 구독자님이 언급하신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고려 등이 모두 한민족의 역사적 연속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국가들이죠.
      다만, 말씀하신 내용 중에 고구려의 기원을 "맥고리"와 "몽고리"로 설명하셨는데, 이는 역사적 논의에서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설입니다.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경에 부여계 유민과 예맥족의 결합으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며, 몽골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은 학계에서 명확히 증명되지 않았습니다.
      구독자님께서 언급하신 대로, 고구려를 비롯한 우리 역사 속 여러 민족들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해 왔습니다. 특히, 숙신, 부여, 선비, 말갈, 여진 등 다양한 민족들이 우리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들은 동아시아의 거대한 문명의 일부로서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공유하고 발전시켰습니다.
      더욱 정확한 정보를 원하신다면, 관련 연구로는 이기동 교수님의 *"한국 고대사의 기원과 형성"*이라는 논문이나, 이상희 교수님의 *"동북아시아의 고대 민족과 문화"*를 참고해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언제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또 댓글 남겨주세요! 함께 역사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이 정말 즐겁습니다. 😊📚
      늘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 @동이강-t5k
      @동이강-t5k 17 วันที่ผ่านมา +2

      @@전지적역사시점 몽골의 저명한 민족학자외
      대학의 역사학 교수님들
      상당수가 몽고리와=
      우리의 맥고리!!는 하나의 국가에서. 하나의 조상을 가진. 동방 민족 구성의 핵심이다! 또한 몽골인의
      상당수가. 왕건 고려에서 함께 살아왔으며. 훗날 대제국 몽골 대칸의 시조가!! 왕건의 후고려~
      사람이다!!라는 기록도 몽골내 존재합니다..
      몽골 학자.교수님들이
      저를 볼때마다.. 지금의 우리 한민족과 몽골.. 그외
      수많은 이족집단 국가와
      민족들 이야기를 하시면서
      "코리아~너희는 말 그대로 고대의 고리.코리족으로..
      너희 민족사는 수천년이 아닌 만년 이상의 고대 민족중 고유 유전자를 간직한..극소수의 집단이.
      바로 한국인이다.. 이는 즉
      고대사의 비밀과 민족의 대이동..각 고대 왕국들의
      뿌리와 시조를 찾는대 핵심 키를 가진게 바로.. "코리아~너희다! 그러면서 천산!,단군왕검,바이칼,
      맥+몽고리의 시조,기원!!
      등등 아주 신이나 끝없는 이야기 보따리를 풀죠!
      그들은 하나같이 자신들과 한국인은 근본이 같다! 즉!! 하나의 조상! 하나의 민족!
      지금의 "몽골과 코리아다!"
      라고들 술만 드시면 귀떼기 피나도록 이야기를
      한답니다.. 못뵌지도 3년이 됐군요.. 그분들이 지금의 한국을 보면 경제.국방.첨단기술.산업등~!! 모든게 뛰어나고.. 불가사의 성공 스토리를 가진 한국이 이상하리도 역사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큰 실망을 거듭
      준다라고!! 말씀을 하셨죠.
      주변 국가들은 없는것도~ 넘의땅.역사.문화.하물며
      넘의 조상조차 서로 지들꺼라 거짓.왜곡을 일삼는 상황에... 조금만
      신경쓰고.. 달려들면 한국의 고대사와 선조들이
      이룬 민족역사의 뿌리와..
      그 시조가 누구인지 가장
      진실에 가깝게 알수있고.
      수천년 이상! 민족 고대사
      정립이 가능한 세계 유일한 국가와 민족이 될수 있는것을.. 솑놓고
      다 빼앗기고 있는게.. 너무
      답답하다.. 늘~핏대를 보이는. 한 국가의 그분야 최고의 전문가!,학자!,교수!
      분들의 말씀이니 뭐 어느정도 신빙성.. 믿음을
      가져도 될까나? 싶습니다!!

    • @kaelayondrasen
      @kaelayondrasen 17 วันที่ผ่านมา +2

      국뽕들 팩트로 가르쳐주시는 참된 유튜버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10 วันที่ผ่านมา +1

    ~ 공민왕 중반기 까지의 대동강
    大河가 흘러서 同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6600리 ). ~ 대명여지도 초중본까지는 大河, 이후부터 황하로 표기.
    ~ 공민왕 후반기 '우왕대의 大同江
    大江이 흘러서 洞에서 모였다가 다시 흐름. (5500리 ). ~ 대명여지도 중중초본까지는 大江, 이후부터 양자강,장강으로 표기.

  • @악.동
    @악.동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목소리가 매력적 입니다....공영방송 급......
    구독완료....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3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정말 감사합니다! 안그래도 악플때문에 힘들었는데 ㅜㅜ 덕분에 계속 영상만들 힘을 얻습니다.

  • @김상돈-b4x
    @김상돈-b4x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는 당이 붙인 국호일뿐 자신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진국으로만 호칭했고 또 대진국도 황제라고 칭하여 당과 같은 황제국이었음(당이 군왕으로 승인했다는건 당의 입장일뿐)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의 깊은 역사적 견해 감사합니다!

  • @user-et4iq4hf5d
    @user-et4iq4hf5d 18 วันที่ผ่านมา +3

    티베트가 장안을 정벌하였던것을
    모르낭ᆢ3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크으~! 역사적 고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립니다.

  • @만수화이팅
    @만수화이팅 9 วันที่ผ่านมา +1

    진국과 발해라는 당나라에서 붙인 국호입니다. 일본에 보낸 국서를 보면 고려 국왕이 보낸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스스로 고려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씨 고려나 2기 고려가 맞는 표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질책하거나 선생님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저도 한국사 시간 때 발해라고 배웠고 이 부분이 항상 의문점이었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8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정말 이런 역사적 조언 정말 감사합니다!! 아무래도 역사 유튜브다 보니 일반적으로 많은 분들이 아는 명칭들을 사용해야해서 ㅜㅜ

  • @user-mo6nh5zk4y
    @user-mo6nh5zk4y 16 วันที่ผ่านมา +3

    발해의 동모산은 카자흐스탄에 있고 그곳에 발해가 있다
    지금만주는 지명이동된 것이고 발해역사는 후고구려로 고려였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Dr_Sunshine91
      @Dr_Sunshine91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판타지 소설로 떠드는 대조선파가 아직도 설치네 ㅉㅉㅉ
      니가 말한 내용이 어느 사서에서 가져왔는지 근거를 가져와라.

  • @user-ni9vo7pk1r
    @user-ni9vo7pk1r 19 วันที่ผ่านมา +3

    전지적님 최근 통일 신라 하지 않고 지금 남북시대 라고 합니다 전지적님 은 어떤 생각 이세요 😊😊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9 วันที่ผ่านมา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영상에도 언급되어있습니다!! ㅎㅎ

    • @user-ni9vo7pk1r
      @user-ni9vo7pk1r 18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님 다음편 신라 마지막 태자 마의태자 편 만들어주세요 😊😊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오!! 마의태자 메모 해두겠습니다!!

  • @poeunmr.6808
    @poeunmr.6808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멋져..

  • @곰발바닥-h6u
    @곰발바닥-h6u 10 วันที่ผ่านมา +1

    13-7
    남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지 않고 도착.(대명여지도 초중본)
    북송의 수도~ 출발지를 삭제하고 도착. (중기본)
    명나라 수도~ 1388년까지의 수도 지명 삭제.(중중기본)
    웅진~ 과 주변의 관련 지명을 모두 삭제.(중초본)

  • @관심법-f5p
    @관심법-f5p 12 วันที่ผ่านมา +3

    과연 저때 사람들은 남북극 시대라 했을까요.... 그냥 서로 적대국 또는 동맹국이였을텐댜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1 วันที่ผ่านมา

      맞습니다. 지금 우리 상황처럼 서로가 서로를 주적이라고 표현했겠죠

  • @김종준-g1g
    @김종준-g1g 17 วันที่ผ่านมา +16

    대동강 위치도 모르면서 이상한 소리하네요 북한의 대동강이 아니고 요서지방에 대동강을 말합니다 식민사학의 뿌리가 깊네요ㅡ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 감사드려요! 😊
      대동강이라는 지명이 주는 혼란스러움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대동강은 일반적으로 평양을 흐르는 북한의 강으로 알려져 있지만, 역사적으로 '대동강'이라는 명칭이 다른 지역이나 강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적 자료와 학계에서는 북한의 평양을 흐르는 대동강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역사 연구는 다양한 관점을 반영할 수 있으며, 특히 지역이나 지명에 따른 혼란은 학계에서도 종종 다루는 주제입니다. 만약 더 깊이 있는 논문이나 학술자료를 참조하고 싶으시다면, **"평양 대동강의 역사적 의미와 변화"**에 대한 논문을 참고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구독자님의 의견도 중요한 부분이니, 함께 다양한 자료를 통해 더 많은 것을 알아가면 좋겠습니다. 언제든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질문해 주세요! 🌟

    • @user-dv4dt1eb9q
      @user-dv4dt1eb9q 16 วันที่ผ่านมา +4

      다퉁. 일명 대동 대동에서 북경좌측으로 흐르는 대동강

    • @zokar
      @zokar 14 วันที่ผ่านมา +2

      그저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 모두 옳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이런 사람에겐 그저 웃지요. 근거도 없이 그저 상대를 비하하는 이런 사람에겐 그저 웃지요.

    • @hongpund
      @hongpund 12 วันที่ผ่านมา +2

      ​@@zokar사서 읽어봐 그게 증거다

    • @하늘노을-s7v
      @하늘노을-s7v 11 วันที่ผ่านมา +3

      맞습니다..우리국보 삼국사기만 제대로 해석해도 이런 무지한 영상은 못만들겠죠

  • @부엉이셋째동생
    @부엉이셋째동생 11 วันที่ผ่านมา +14

    고구려 유목민 이 아니고 유민 이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วันที่ผ่านมา +5

      네! 조언감사합니다 !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따끔하게 지도 편달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 @오즈-h3p
      @오즈-h3p 7 วันที่ผ่านมา +6

      이건 부족함이 아니라 무식한거임,
      ​@@전지적역사시점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2

      네 무식함을 보강하기 위해 앞으로도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 @asdf1234.2
      @asdf1234.2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유목민 이×
      유목민이ㅇ
      유민 이죠×
      유민이죠ㅇ
      띄어쓰기나 제대로 하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오 ! 좋은지적 감사합니다~! 다들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습니다 !

  • @user-ni1gr9ox1t
    @user-ni1gr9ox1t 16 วันที่ผ่านมา +4

    등주는신라땅이다당나라의7년전쟁의승리로신라의신하국이됐다황하의패강유역의등주이다 명나라때산동바닷가로옴겨놨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myhaha239
    @myhaha239 15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는 역사에서 잊혀지지 않고 영원할 겁니다. 반면 신라는 역사속으로 영원히 잊혀질 것입니다. 앞으로 50년후...

  • @user-zx8dm2xs8r
    @user-zx8dm2xs8r 17 วันที่ผ่านมา +3

    이정기가 다망한 당을끝냇어여하는데. ...

  • @donbersystem3.037
    @donbersystem3.037 19 วันที่ผ่านมา +9

    해외 원정 아닌데.. 그땅 원래 백제땅이엇엉..... 그래서 제나라 .. 백제가 이미 접수하였떤 땅이엇엉.... 한민족의 땅을 찾을러가는데 뭔 해외 원정이야... 그 지역이 한국인 유전자랑 비슷해... 원래 그땅 우리땅이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9 วันที่ผ่านมา

      멋진 역사적 고견 감사합니다~!

    • @유우진-g6z
      @유우진-g6z 18 วันที่ผ่านมา

      가오리빵즈에 이어 산동빵즈라는 별명이 산동성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중국 내에서도 산동성 사람은 좀 유별났던 거죠.. 실제로 동북 3성 및 산동성 사람들이 한국인들과 유전적으로 가장 흡사합니다

  • @user-mo6nh5zk4y
    @user-mo6nh5zk4y 16 วันที่ผ่านมา +3

    중국당나라는 지금 중국땅에 없었다 당나라는 조대명이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goindol-eu1yo
    @goindol-eu1yo 8 วันที่ผ่านมา +3

    산동의 등주는 당초 서안 인근에 있었습니다.
    고로 산동지역, 하북지역은 발해의 땅이었으며, 과거 고구려의 땅이었습니다.
    고구려. 산서성, 하북성의 지배자 입니다.

  • @user-qm3fn2dh2h
    @user-qm3fn2dh2h 13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는 속말말갈이 주체가 되어 세운 나라죠 이후 발해 귀족의 후손들이 청나라를 세웁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3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 발해에 대해 흥미로운 질문을 해주셨네요.
      발해는 대조영이 주도하여 세운 나라로, 속말말갈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은 맞습니다. 그러나 발해는 고구려 유민들이 주축이 되었고, 말갈계 사람들도 포함되었어요. 발해의 고위층은 주로 고구려계 출신들이 많았고, 대조영 또한 고구려 유민 출신으로 알려져 있죠. 발해와 청나라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데,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이 발해와 직접적인 혈연적 연관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만주 지역에서 발해와 청나라가 모두 세워졌기 때문에 지리적인 연관성은 있지만, 두 나라의 성립 과정이나 민족적 기반은 다소 차이가 있답니다.
      혹시 더 궁금한 점 있으시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

    • @batuu2601
      @batuu2601 1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청나라는 신라 사람
      발해인과 상관없음

  • @송곳-v4o
    @송곳-v4o 8 วันที่ผ่านมา +1

    재위 기간이 길면 반듯이 후사에 혼란이 온다 재위 기간중 건강한 아들을 즉위 시키고 상왕으로 물러나는게 현명한거다

  • @양병철-z8r
    @양병철-z8r 15 วันที่ผ่านมา +2

    그때 그땅이 우리땅이면 대박인데

  • @l740230
    @l740230 วันที่ผ่านมา +1

    당시 백두산이 안터졌으면
    이땅 대륙 전체 역사가 바꼈따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크으.. 상상만해도 기분이 좋습니다

  • @Hg-i6w
    @Hg-i6w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요나라 기록에도 막상 가보니 아무것도 없었다는 기록이 있지 않나

  • @user-qw3mk2rv5y
    @user-qw3mk2rv5y 17 วันที่ผ่านมา +3

    발해아닙니다 제발 발해라고하지맙시다
    대씨들이 스스로 발해라하지않았는데 왜 발해라고 부르는지 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6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적 조언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라엘이-c3j
    @라엘이-c3j 16 วันที่ผ่านมา +8

    반도사관.대륙동으로.위치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6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적 조언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user-rx3ws7ep8k
    @user-rx3ws7ep8k 12 วันที่ผ่านมา +3

    요하 동쪽은 신라영토이다.
    무슨 청천강 이남으로 말하는 그대는 식민사학자인가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2 วันที่ผ่านมา

      아닙니다~! 조언감사합니다! 더 배우고 익히겠습니다

  • @lp5375
    @lp5375 18 วันที่ผ่านมา +3

    뭐야 영토개념은 일제식민사관이네... 발해가 아니고 대진국.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วันที่ผ่านมา +1

      크으!! 구독자님 멋진 역사적 고견 감사합니다!! 저도 식민사관은 정말 동감하는바입니다!ㅜㅜ 하지만 현재가 이러니, 대진국에 대한 부분도 영상에 있습니다. 영상 다시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user-by1hs1ez9y
    @user-by1hs1ez9y 16 วันที่ผ่านมา +9

    통일신라,고려는 한반도가 아니다,자꾸 그런식으로 선동하지 마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5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user-rx3ws7ep8k
      @user-rx3ws7ep8k 1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지도편달하니까 배우시고 따르세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วันที่ผ่านมา

      네~!! 많이 배우고 따르겠습니다!

  • @dejosun
    @dejosun 5 วันที่ผ่านมา +2

    발해라는 국가는 없었음 정식 국명은 대진국임
    고구려 건국후 해씨에서 고씨로 성을 바꾼겄처럼
    대진국을 건국하고 대씨로 버꾼거임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영상을 혹시 보셨을까요?! ㅜㅜ 해당 내용이 들어가있습니다~!

  • @martin.k.conank7172
    @martin.k.conank7172 17 วันที่ผ่านมา +4

    뭔 최초의 침공이냐 대륙의 동부는 이미 백제, 고구려때 영토였는데 쯔쯔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7 วันที่ผ่านมา

      멋진 역사적 조언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 @user-gm6qo7dg6n
    @user-gm6qo7dg6n 2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발해도 못잡은 말갈족을 유금필이 잡았으니 유금필의 위대함을 알수있지

  • @임컴이
    @임컴이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란 단어는 당나라가 대진국을 격하시키기위해 쓴 단어. 대진국이 맞습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혹시 영상을 보셨을까요 ? ㅜㅜ 해당 내용이 영상에 있습니다.

    • @임컴이
      @임컴이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역사시점 네 다시보겠 습니다. 죄송

  • @noname-vs4uy
    @noname-vs4uy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여기 채널 주인장은 "삼국사기" 정도는 읽고 채널 영상을 만들어라.
    식민사학 교과서에서 본거 올리지 좀 말고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3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멋진 역사전 견해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skyy1368
    @skyy1368 13 วันที่ผ่านมา +1

    영주가 어딜까
    한반도는 아닐거 같고

  • @user-up9vm8nu9u
    @user-up9vm8nu9u 12 วันที่ผ่านมา +2

    발해멸망 으로 우리민족 고구려인들이 중국사람 러시아사람 중국땅으로 다 편입되어버렸네요 세월이 지나 그러나 저러나 안타깝게 이제는 중국땅 러시아 땅으로편입 러시아 중국사람으로 변함 중국분립 북한붕괴되고 통일되어서 옛고구려땅 베이징 러시아 시베리아땅을 찿읍시다

  • @pansoriman3974
    @pansoriman3974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내용은 좋은데, 글이 너무 이리저리 왔다갔다해서 어지럽네요. 즉 영상 편집이 너무 어지럽습니다. 5분 보는건 괜찮은데...그 이상의 영상은 보기 힘들어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와!! 피드백 감사합니다! 제가 아무래도 영상편집이 서투르다보니 이런일이 발생한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 @youknowchoi8758
    @youknowchoi8758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사실 통일 신라보다 삼국시대 다음에 남북국시대...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3 วันที่ผ่านมา

      맞습니다~! 구독자님! 앞으로도 많은 조언 부탁드립니다.

  • @홍옥-r4w
    @홍옥-r4w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걸사비우 흑수돌이 생각나네

  • @롤로토마시-n7e
    @롤로토마시-n7e 9 วันที่ผ่านมา +1

    감사합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8 วันที่ผ่านมา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 @강승찬-o3h
    @강승찬-o3h 15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에 대해서는 자료가 너무 부족하고 대부분 중국과 러시아 영토인데 중국애들이 동북공정 한답시고 한국 학자들의 현장에서의 연구도 못하게 한다고 하더군요. 대조영은 고구려의 '별종'이다 에서 이 '별종'이 의미하는게 무슨뜻인건지 서로 주장들이 다르니....해동성국으로 불렸던 나라가 상대적으로 짧은 역사만 남기고 거란에게 당하고 사라진게 참 미스테리이긴 합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4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견 감사합니다! 이런 분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이 성장합니다~!

    • @user-qm3fn2dh2h
      @user-qm3fn2dh2h 13 วันที่ผ่านมา +1

      고구려의 별종이란 말갈족을 뜻합니다

  • @seahawk7893
    @seahawk7893 21 วันที่ผ่านมา +3

    하지만 중국의 요나라에게 속수무책으로 망했죠

  • @kaelayondrasen
    @kaelayondrasen 17 วันที่ผ่านมา +1

    유목민족들은 체크메이트를 참 좋아한듯. 운이 좋았던거지 잘못하면 고려때처럼 사방으로 포위되서 잡아먹힘. 정찰이랑 교란이 중요한이유

  • @정용일-j3m
    @정용일-j3m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궁금한것이 왜 발해역사는 배우지않을까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많은 기록이 유실되었습니다 ㅜㅜ 안타까운일이지요

  • @pes9867-6
    @pes9867-6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는 당이 하사한 이름 진국은 당이 칭한 이름
    대중상이 칭하고 표한 이름은
    고려 장수왕때부터 고려 였기에 대조영은 대중상 아들
    발해 대진국 진국을 버리고
    북고려라 칭해야

  • @MC-wb4ns
    @MC-wb4ns 11 วันที่ผ่านมา +2

    이양반이 40분을 거져 먹어버리넹. 이거 왜 집중있게 보게 되는거야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0 วันที่ผ่านมา +1

      와 ㅋㅋㅋㅋㅋㅋㅋㅋ 구독자님 이거 칭찬맞죠?!! 월요일 아침부터 정말 힘이 나네요. 발해에 대해 우리나라에서 홀대받는 부분이 있어서 마음이 아파 열심히 제작했습니다. 40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길어 줄일까도 고민했지만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면 좋을것 같아 무리했는데 이렇게 하길 잘했네요 !

  • @borntobe_1232
    @borntobe_1232 2 วันที่ผ่านมา +1

    대중상이 실제 인물이었던가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วันที่ผ่านมา

      역사적 의문 감사합니다! 함께 공부해보시죠!

  • @user-xh2or7bv9m
    @user-xh2or7bv9m 22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1

    고구려 땅도 없이
    무슨 삼국통일인가
    역사를 제대로 압시다.
    .

  • @이완수-c7q
    @이완수-c7q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장문휴가 당나라 정벌했잖아
    알사람은 다아는데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에 관심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
      장문휴가 당나라를 정벌한 사건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사실 이 이야기는 신라와 발해 사이의 외교적, 군사적 갈등과 관련이 깊습니다. 장문휴는 발해의 무장이었으며, 732년에 발해가 당나라를 공격한 사건이 가장 유명합니다. 발해의 왕, 문왕은 당과의 외교적 긴장 속에서 군사를 파견해 산둥반도에 있는 덩저우(등주)를 공격했어요. 이 사건은 발해가 당과의 긴장 속에서 독립적인 세력으로 자리 잡으려 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죠.
      이러한 사건은 발해와 당나라의 복잡한 외교 관계 속에서 발생한 일이었지만, 발해가 스스로의 힘을 키우며 대외적으로 강대국임을 보여주려 했던 중요한 사건이기도 해요.
      더 궁금한 점이 있으면 언제든지 물어봐 주세요! 🤗
      (참고: 고선지, “발해의 대당 전쟁 연구,” 『한국사 연구』, 2010)

  • @여심용광로
    @여심용광로 8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는 존나 잘나가는데 하루 아침에 사라졌지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7 วันที่ผ่านมา

      그때 당시 기록이 온전하지 않은게 참 ㅜㅜ

  • @문디대구
    @문디대구 17 วันที่ผ่านมา +5

    당나라가 세계 최강? 역사외곡 최강!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6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적 조언감사합니다. 제가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sfrsftxctevhh
      @sfrsftxctevhh 7 วันที่ผ่านมา +1

      풉.ㅋ

  • @SeonghuanCynn
    @SeonghuanCynn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고구려의 유목민이 아니고 유민이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3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 역사적 고견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도 편달 부탁드립니다~!

  • @rookiepark169
    @rookiepark169 16 วันที่ผ่านมา +2

    발해를 꿈꾸며ᆢ🎵🎶

  • @cj-qk5gx
    @cj-qk5gx 5 วันที่ผ่านมา +1

    오천만역사중에 조선500년은 나라인가 중국속국인가 고려가 계속이여왔어야
    이성계는 역적아닌가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5 วันที่ผ่านมา

      조선또한 자랑스러웠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ㅜㅜ

  • @jajaguy-h4y
    @jajaguy-h4y 4 วันที่ผ่านมา +1

    고구려 인구가 300만이나 되나요

  • @SeonghuanCynn
    @SeonghuanCynn 3 วันที่ผ่านมา +1

    발해라 칭하지마라, 대진국이라 칭하자

  • @sorksldoqlek
    @sorksldoqlek 7 วันที่ผ่านมา +1

    이런 어그로성 영상이
    중국인들이 발해가 지들꺼라는거랑 뭐가 다름?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7 วัน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의 일침 달게 받겠습니다! 앞으로 주의하겠습니다!

  • @김동석-w3y3e
    @김동석-w3y3e 19 วันที่ผ่านมา +3

    1. 최초 국호는 발해가 아니라 대진국( 大震國, 大振國)이었다.
    ....여기서 진(震, 振)의 의미는 그 발음으로 표기된 이두식 국호다,
    ....그 발음은 "신" 이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วันที่ผ่านมา

      대진국 내용도 영상에 있습니다 ㅜㅜ
      구독자님,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구독자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발해의 초기 국호와 관련된 이두식 표기와 그 의미에 대한 해석, 그리고 고구려, 부여, 백제, 발해 등의 성씨 관계를 통해 각 왕조의 연결성을 설명해 주셨네요.
      우선, 발해의 초기 국호인 "대진국(大震國, 大振國)"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학계에서도 발해의 국호 변화와 당대 정치 상황, 그리고 이두식 표기법에 대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합니다. 대진국의 ‘진(震, 振)’이라는 글자가 고구려와의 연관성을 암시하며, 그 발음이 이두식으로 "신"을 나타낼 수 있다는 주장은 흥미로운 가설로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이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료나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한, 고구려의 별종으로서 대조영의 대진국을 설명하는 방식은 중국 측 사서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여기서 ‘별종’이라는 개념은 구독자님이 잘 설명해주신 것처럼, 동일한 기원을 가지지만 중간에 갈라져 나온 혈통이나 집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됩니다. 이와 관련된 성씨의 변화와 계승 관계는 고대 동아시아 역사에서 중요한 논의 중 하나입니다. 특히,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의 왕족 성씨에 대한 연구는 여전히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천손강림 신화와 백제, 고구려와의 연관성에 대한 부분도 많은 논쟁이 있는 주제입니다. 삼족오 문양과 일본 왕실의 연관성은 학계에서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를 백제와 고구려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다만, 이러한 주장들은 확고한 역사적 증거를 기반으로 논의될 필요가 있습니다.
      구독자님의 의견에 공감하며, 이 주제에 대해 더 깊이 공부하고 싶으신 분들은 관련된 논문이나 학술 자료를 참고하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발해의 국호와 그 변화에 대한 연구나, 고구려, 백제, 발해 성씨와 관련된 고대 동아시아 족보 연구 자료들을 추천드립니다.
      이러한 역사적 논의에 대한 관심을 가져주셔서 다시 한 번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부해 나가길 바랍니다. 📚
      즐거운 하루 되세요! 😊

  • @leeston7874
    @leeston7874 19 วันที่ผ่านมา

    발해가 신라어족군으로 분류 되던데. 통일신라가 발해랑 손잡고 돌궐 발해 통일신라 삼국연합으로 당나라 쳤다면 아마 중국역사는 크게 흔들렸을거 같은데. 아쉽네.

  • @김기철-r6y
    @김기철-r6y 2 วันที่ผ่านมา +1

    무슨 당나라가.
    세계최강.일때가 있냐!
    역사 다시 배워라!😢😮

  • @변화무상
    @변화무상 วันที่ผ่านมา +2

    통일신라라와 고려는 대륙에 있었는데 아는채 좀 그만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18 ชั่วโมงที่ผ่านมา

      구독자님의 역사적 견해 감사합니다~!

  • @살아가는이유-n6s
    @살아가는이유-n6s 3 วันที่ผ่านมา +2

    옛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가 현재는 이미 중국의 영토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도 중국의 역사라고 중국의 주장이 터무니 없이 잘못된 주장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와 관련성이 있기는 하지만 온전히 한국의 역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이렇게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에 대한 논쟁은 아주 중요한 주제인데요, 구독자님의 의견처럼 이들 국가의 영토가 지금은 중국의 일부라는 사실은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의 중요한 부분이라는 주장은 여러 역사적 자료와 연구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고구려는 기원전 37년에 주몽에 의해 건국되었으며, 발해는 고구려가 멸망한 후 그 유민들이 세운 나라입니다. 고구려와 발해는 한반도와 만주 일대를 중심으로 번영했지만, 그 구성원과 문화, 정치 체제는 명백히 한민족의 역사적 맥락과 연관이 깊습니다. 특히, 언어, 문화, 정치적 연속성이 한국사의 흐름 속에서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지요.
      중국의 동북공정에서는 고구려와 발해를 중국의 지방 정권으로 보고 있지만, 이는 주로 현대 영토 개념에 따른 해석입니다. 그러나 고대의 국경은 지금과 다르게 자주 변화했으며, 그 시기 사람들의 문화적, 정치적 정체성을 현대적 국가 개념으로 단순히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같은 한국의 사서와 중국의 역사 기록들은 고구려와 발해를 독립적인 국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참고 자료로는 한중 역사 논쟁에 대해 다룬 학술 논문인 "고구려사와 발해사에 대한 중국의 역사 왜곡 문제" (김호동, 2004)를 추천드립니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역사적 논쟁을 다각도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사에 포함되는 이유는 역사적 자료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 문화, 정치, 언어적 요소들이 이들 나라에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랍니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 것은 정말 고무적이고, 이런 토론을 통해 서로의 견해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 @살아가는이유-n6s
      @살아가는이유-n6s 2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역사시점
      한국 문화, 정치, 언어적 요소들이 '고구려나 발해'와 연관성이 강하다는 것에는 동감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는 현재의 한국이나 북조선까지 오는 동안 그 단절이 너무 심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가 한국사의 일부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100% 한국의 역사라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여담이지만... 역사적 단절은 남과 북이 분단됨으로서 더 심해졌습니다. 고구려나 발해와의 연관성은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북조선이 더 많다고 할 수가 있는데....
      현재 남과 북은 분단이 되어 너무이질화 되어 버린 상태에서 적대적인 관계로 지내면서 서로 포용, 융합하지 못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런 상태에서 한국이 고구려나 발해와의 연관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리감이 아주 멀게 느껴지는 이야기 같습니다.

  • @jungkyume
    @jungkyume 20 วันที่ผ่านมา +1

    무왕은 대문예 아니엇나요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20 วันที่ผ่านมา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
      발해의 무왕에 대해 질문해 주셨는데요, 정확히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발해의 무왕(武王)은 대문예(大門藝)와는 다른 인물입니다. 무왕은 대무예(大武藝)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발해의 제2대 왕입니다. 대문예는 무왕의 형제로, 무왕 시절 당나라에 반기를 들고 있던 대문예는 당나라로 망명하기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이름이 비슷해서 혼동할 수 있지만, 다른 인물임을 기억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발해의 역사에 대해 이렇게 깊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더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

  • @조태준-p2r
    @조태준-p2r วันที่ผ่านมา +1

    도도체 고구려의 영토가 어디까지 있데 발해가 우리역사상 가장 크다고 하나 고구려 영토가 일본을 비롯한 산동반도로 부터 산서성 내몽골이 고구려 영초여ㅛ다 일제가 물려준 거짓역사을 아직도 되풀리 하나 지금 연설 지나가는 개도안다

    • @전지적역사시점
      @전지적역사시점  วันที่ผ่านมา

      안녕하세요, 구독자님! 😊 먼저, 한국 역사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역사에 대한 여러분의 관심 덕분에 우리 모두가 더 깊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어요!
      고구려와 발해의 영토에 대한 질문은 정말 흥미롭고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이에요. 고구려는 기원전 1세기부터 7세기까지 존재한 동아시아의 강대국으로, 그 영토는 오늘날의 만주 지역과 한반도의 북부, 일부는 요동반도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고구려가 일본이나 내몽골, 산서성까지 영토를 확장했다는 주장은 역사적 근거가 부족해요. 산동반도에 대한 일시적인 군사적 활동이나 원정은 기록에 있지만, 이를 영토로 직접 통치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발해의 경우, 고구려의 후예로 7세기 후반부터 10세기 초까지 존재했던 국가로, 남쪽으로는 한반도 북부, 북쪽으로는 지금의 러시아 연해주, 서쪽으로는 만주와 요동까지 넓은 영토를 다스렸습니다. 발해는 실제로 우리 역사에서 매우 큰 영토를 가졌던 국가 중 하나로 평가되지만, 고구려의 영토와 비교했을 때 어느 쪽이 더 크다고 단언하기는 어려워요.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역사 왜곡을 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들이 주로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적 중요성을 축소하거나 왜곡했던 기록들이 있지만, 현재는 많은 연구자들이 이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는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적 자료를 다시 검토하고 복원하려는 시도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어요.
      학문적으로는 이기동 교수의 "고구려의 역사와 영토 확장"이라는 논문을 참고해보실 수 있어요. 이 논문에서는 고구려의 영토와 관련된 다양한 사료와 연구 결과가 잘 정리되어 있답니다.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지 질문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

    • @조태준-p2r
      @조태준-p2r วันที่ผ่านมา +1

      @@전지적역사시점 진실한 답변 감사합니다 북경 지역에 유리왕 대무신왕 능이 있고 연개소문 훈련장이 있다합니다 산서성 북경 산서성 일대에 대규모 성곽이 10개이상 있다 합니다 안시성 요동생 안문관 태흥산맥 지역에 있습니다 옛민요 이제가면 언제오냐 북망산천 노래 모르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