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명 조식의 상소문에서 '명종을 지칭하는 단어인 전하'를 '회장'이나 '도련님, 아가씨'로 바꾸면 요즘 시대에도 걸맞은 상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지들 얼굴을 까고 활동하니까 욕 쳐먹을 짓을 하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지 '소가 여물먹고 되새김질을 하듯이' 욕을 쳐먹을 수가 있는데, 재계는 상대적으로 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요. 반박 시 '지 얘기.'
중종 명종 문정왕후 윤원형 과부에 고아라 칭하고 스승없는 처사 남명조식과 화담 서경덕 퇴계도 그리하고 싶었으나 그리는 못함 남명의 경자와 퇴계 이황의 경자 남명은 마음밝힐 경 퇴계쪽은 공경할 경 나는 삼갈 경 병법도 가르쳤다 그래서 그의 여러 제자들이 임진년에 의병으로 많이 활동 함
뭘 모르고하는 어리석은 소리이십니다. 조식선생사후에 수제자인 내암 정인홍선생이 조식선생 학파인 북인들을 이끌고 광해군 밑에서 개혁정치를 펼쳤지만, 개혁군주 광해군조차도 한계가 명확한 군주였고 대명 사대주의에 찌든 서인과 당시 주류세력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그후에 철저히 짓밟히고 숙청당했습니다. 임진왜란때 의병장 전쟁영웅이라는 압도적 입지와 여론을 가지고도 현실정치에선 결국 주류세력 눈엣가시가 되어 실패했는데, 남명선생 생전에는 더더욱 불가능했고 상대세력을 다 죽이는게 아닌이상 가능한일이 아닙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해야만가능한 일이었죠.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봐도 의병장활동부터해서 조식선생과 그후계자들이 얼마나 철저히 실천적이고 동시에 현실을 잘 파악했는지 알텐데... 오히려 섣불리 현실정치에나간 내암 정인홍 선생의 선택때문에 학파전체가 탄압받은걸 생각하면 님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겁니다.
아무 노력없이 이렇게 쉽게 이런 것을 접하는 세상이 새삼 놀랍네요.
선생님의 지식나눔 감사합니다.
너무 잘 봤네요.
제가 추구하는 삶과 맞아서 순식간에 시간이 가버렸습니다.
전에 산청에서 남명 조식 선생님의 후손에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반가웠네요.
감사합니다.
궁금한 내용을 덕분에 알게 되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훌륭한 선비정신
본받고 싶네요 ~
경남 서부를 중심으로 한 남명학파(조식) + 전라도를 중심으로 한 노사학파(기정진)는 서로 의와 실천을 가르친 학파들답게 임진왜란 의병 + 구한말 의병에 가장 많이 참전했다죠.
간결하고 재밌어요!🤓굿굿굿
고맙습니다
남명 조식이 과거1차 시험인 초시에 두번 씩이나 합격은 했군요. 그의 사상적 라이벌 퇴계 이황이 젊은 시절 초시에만 3번 떨어진 일과 비교해보면 재미있네요.
남명 조식의 경의검(敬義劍) 멋지군요.
조식 같은 인물을 놔두고 송시열을 문묘에 배향하다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송시열이 그래도 남명팬임
저분이 정말대단하신게 임진왜란당시 산하 제자들이 다 들고일어나셨죠 제 조상중 한분도 남명학파셨는데 전쟁참여하고 정유재란발발로 다시 전쟁에 뛰어들다가 돌아가셨음
창녕조씨의 조상님이신 조식 선생님!!!
그 후손이 조국?
조국은 창녕조씨는맞는데 남명선생 후손은 아닙니다. @@frisebichon1519
@@frisebichon1519조국은 조식선생후손이 아닙니다
남명과 비슷한 학문관 교육관을 가졌던 명말청초 안원이 있다
탁월한 선지자였지만 후학이 계승되 못하고 19세기 후반되서야
그 진가가 인정되고 부활되었다
영국의 베이컨 , 새뮤엘 하틀립이 남명 안원과 유사한데
왕립학회가 생겨 후학이 계승되어 대영제국을 구가했다
남명은 왜 문묘에 배향되지 않았을까? 조선시대를 통틀어 학문과 실천에 뒤지지 않았는데, 문묘에 배향되지 않은 것이 의아스러운 인물.
남명 조식의 상소문에서 '명종을 지칭하는 단어인 전하'를 '회장'이나 '도련님, 아가씨'로 바꾸면 요즘 시대에도 걸맞은 상소문입니다.
정치인들은 지들 얼굴을 까고 활동하니까 욕 쳐먹을 짓을 하면 시간이 얼마나 흐르던지 '소가 여물먹고 되새김질을 하듯이' 욕을 쳐먹을 수가 있는데, 재계는 상대적으로 좀..... 그렇지가 못한 것 같아요. 반박 시 '지 얘기.'
일본 유교를 대표하는 이토 진사이, 오규 소라이도 부탁드립니다.
조식이나 이황은 풍수지리, 사주팔자, 관상, 천리 명리학인데 한의학 명리학,문무를 겸하는게 맥이 단절
와 신명사도
중종 명종 문정왕후 윤원형
과부에 고아라 칭하고
스승없는 처사 남명조식과
화담 서경덕 퇴계도 그리하고 싶었으나 그리는 못함
남명의 경자와 퇴계 이황의 경자 남명은 마음밝힐 경 퇴계쪽은 공경할 경 나는 삼갈 경 병법도 가르쳤다 그래서 그의 여러 제자들이 임진년에 의병으로 많이 활동 함
남명선생의 정신은 실학으로 발전합니다
임란시기 과재우공은
장제자이자 조카사위이셨지요
조선시대 선비들 일화 보면 굉장히 소신있고 법률 논리학에 뛰어난 사람들인데 조선말기에 망한건 무엇때문인지 아직도 궁금함
조식선생은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나 봅니다
반야[검], 적적[성성]은 불교용어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위해서라면 삽이나 곡갱이 경운기같은 농기구를 만들어 생산량을 늘리던가 했었어야죠.
답답하기는 이황이나 마찬가지 ~
0:09 네명은 자연히 경을 칠 것이야
이주일,나보다
더웃겨?
이주일,나보다
더웃겨?껄껄껄
합천?합첫군
아!조치원 출생지
주자성리학에 미친 조식
무식한 새끼네 남명 호부터가 장자 소요유 구절에서 따온것다가 노장사상, 불가에 심취했다고 퇴계학파에 비판받을정도인데 무슨ㅋㅋ
주자성리학에 미친건 인조반정으로 조식후계자들 몰아낸 서인들이지
조식 이후에 중식과 석식이 있었다
석식에는 반주가 꼭 필요하다 😊😊😊
행동하는 지식인.. 조선 사대부의 주류가 이분 같았으면 조선이 안 망했을거라..
북인의 수장 남명 조식 선생
남씨?조씨?
껄껄껄
벼슬 좋고무섭고?
실천을 중시하는 사상이 매력적이나 결국 벼슬을 하여 백성을 위한 노력을 전혀 실천하지 못한 아이러니가 있군요. 제자를 키워서 좋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뜻도 좋지만 더러운 정치판에 본인도 떼가 묻을지언정 본인의 뜻을 펼쳤으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지 않았을지...
당시 벼슬길에 나갔다면 단명하셨거나 변질되셨겠죠.
배경도 없으신분으로 벼슬길이 아주순탄하지 못할걸 아시고 나가지 않으신걸로 봅니다
그래도 후학분들이 왜란에 많은 의병활동을 하셔서 가르침이 헛되지 않은걸로 보여집니다
벼슬을 내리려면 조정에서 불러들어 삼정승에 직책맡겼으면 나아갔을겁니다 면장 직책으론. 뭘한다고... 기분나빳던건 조식이죠 ㅋ
뭘 모르고하는 어리석은 소리이십니다.
조식선생사후에 수제자인 내암 정인홍선생이 조식선생 학파인 북인들을 이끌고 광해군 밑에서 개혁정치를 펼쳤지만,
개혁군주 광해군조차도 한계가 명확한 군주였고
대명 사대주의에 찌든 서인과 당시 주류세력이 인조반정을 일으켜
그후에 철저히 짓밟히고 숙청당했습니다.
임진왜란때 의병장 전쟁영웅이라는 압도적 입지와 여론을 가지고도 현실정치에선 결국 주류세력 눈엣가시가 되어 실패했는데,
남명선생 생전에는 더더욱 불가능했고
상대세력을 다 죽이는게 아닌이상 가능한일이 아닙니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망해야만가능한 일이었죠.
역사를 조금만 공부해봐도 의병장활동부터해서 조식선생과 그후계자들이 얼마나 철저히 실천적이고 동시에 현실을 잘 파악했는지 알텐데...
오히려 섣불리 현실정치에나간 내암 정인홍 선생의 선택때문에 학파전체가 탄압받은걸 생각하면 님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겁니다.
굿영상 페이미 판검사 신숙희대법관 아웃 찬성
조국장관의 조상❤
아닙니다. 어디서그런 말이나왔는지 몰라도 조국은 후손이 아닙니다.
같은 조씨는 맞지만요
조식이 실천을 중시한 유학자이므로 대부분의 씹선비와는 다르네!
남명조식의 경.의사상은 아직도 이어오고 있습니다.경상우도에서는 예로 전두환 전대통령분
재밌는건 남명학파 사상이 가장 전파가 많이 된 지역이 본진인 경남 서부와 옆동네 전라도였죠.
전라도의 노사학파(기정진)과 경남 서부의 남명학파(조식) 둘 다 공통점이 아주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