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좋은 답글입니다 왜의 토성인 학성 뿐만 아니라 서생포왜성 또한 원형 그대로 보존, 미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바로 옆의 서생만호진성은 성곽이 무너져 자빠져도 복구의 의지가 없는게 현실이죠 서생포 왜성 망루는 대마도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대미도에서 봉화를 올리면 바로 보이게 설계 되었죠 성 하단 포구에서 회야강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남창과 연결되어 동천들녘의 우수한 곡창을 그대로 군용미로 활용 할 수 있게
짧은 지식으로 현재의 지형만으로 추측해 보자면 지금의 학성은(학성공원) 사이즈가 너무 작고. 고로 약간 내륙쪽에 위치한 현 MBC가 위치한 야산과 일대를 포함하여 크게 축성한 것이 당시의 학성 규모로 보여짐(병영성을 허물어 그 성벽의 돌을 가져다 학성을 만듬) 학성은 바다와 바로 연결되는 태화강과 맞닿은 지점에 위치했고 병영성은 태화강 지류 정도의 내륙쪽 동천강에 위치함. 그래서 왜넘들은 치고 빠지기 좋은 학성 위치에 거점을 만들었고 결국 여러 번의 공성전 끝에 학성을 포기하고 바다로 도망감. 만약 동천강에 위치한 병영성에 거점을 만들었다면 바다로의 퇴로가 막혀 진작에 전멸 했을 것임.
결국 이 부분은 어떤 정치 집단이 이주할 때는 나라 전체가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일부는 남고, 일부는 이주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신라가 대륙에서 출발해서 일부는 경상도쪽으로 이주를 했고, 일부는 대륙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기록에 “옛날 한나라 때 낙랑 땅에 있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JjaKkong-e2v 독립한지도 80년이 다되가는데 아직도 기승전 식민사관 드립입니까. 아니 지 맘에 안들면 다 식민사관이에요? 학문 다룰때 근거를 들고 와야지 신뢰도 보장 못하는 책 1권이나 쳐 들고오거나 뇌피셜이나 하면 그게 학문입니까? 그런식으로 하면 뭐 성경에 나왔다고 태양이 멈췄다고 해도 되겠어요 아주? 그쪽 환빠들이나 "아무튼 우리 조상은 100프로 우월하고 다른 민족들 상대로 승률 100프로여야해!" 이딴 마인드에 갇혀사는데 마음을 누가 열어야겠습니까? 그리고 대륙백제 신라 고려 했는데 그거 다 한족에게 따잇당하면 조상님들 병신새끼로 만드는게 환빠가 아니면 뭐에요? 어휴 또 또 또 김춘추랑 이성계 잘못이라고 하세요 또또 또
당시 해군도 없었다..수군의 시대였다..수군의 의미가 강을 거슬러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방어하는 개념이었다..경주가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될려면 실의 최대 생산지가 되어야..실크가 실이다..그 실은 비단 즉 견사로 누에고치에서 뽑아낸다..그러면 누에의 먹을거리가 많아야 한다..뽕밭이 광활해야..지금 경주 주변의 토지론 뽕밭이 광활하지도 못하고 전세계의 수요도 맞출 수가 없다고 봐야..그리고 경주의 당시 세대수가 18만호 정도고 인구수로는 약 100만의 도시다..지금 경주 인구가 얼마냐..인근 울산이 100만 정도다..그리고 실크로드도 낙타나 말을 이용 한 것이 아니라 물길을 이용 한 걸로 봐야..현 로마까지 간다 하면 당시의 지형은 군데 군데 내해가 있었다봐야..현재 사막이 되어 있는 그런 곳이 내바다로 보면 된다..소금끼가 있으면 식물이 살기 어렵다..그런고로 내해의 지류로 흐르는 강을 연결해서 배를 이용 물자를 날랐다 보면 됨..그래서 운하를 건설 해서 물길이 끊기는 곳은 연결 한 것임..선원들이 바닥이 닿는 곳이 있으면 배를 끌고 올라감..중국가면 그런 곳이 있슴..지금도 요트가 좋은 데도 돛을 이용 해서 바다를 건널려면 어려운데 당시 배가 아무리 울산서 잘 만들었다 해도 큰 바다를 건너는 것은 어려웠을 것..해안선을 따라가고 강을 이용 한 것은 가능 했을 것..그래서 개가 있는 곳에 포구가 만들어져 있었고 울나라에 부산포 구포식으로 이름이 전국에 분포함..울산도 염포가 있고 경주도 감포가 있지..항구는 근대의 명칭..반구항도 못 들어 봤고 반구포도 못 들어 봤슴..개운포는 처용전설에 나오는 곳이고..처용의 얼굴은 과거 울산 정치인 최형우의 얼굴을 보면 어딘지 닮아 보입디다..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한겨레의 말과 글과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반구동 25년 살아가면서 삼산이 뻘밭이고 바다였다는건 알았는데 반구동에 항이 있었다니 그런데 저걸 좀 더 살리지못하고 그냥 아파트를 지었다니 너무 아쉽네요
@@손장호-x2j 삼호에 염전도 있었어요...
저도 30년을 살았는데… 아파트 지어진지 10년 밖에 안되었는대 아쉽네요
우리본가를 재계발해서 아파트가 들어섰지요
그때당시도 유물이 너무많은 유물이 나왔는대 그것마져 냅다 둘러엎고 아파트지었죠
이런 다큐 다시 해줬으면 좋겠어요
너무즐겁게봤습니다^^
어릴적 동천강에서 많이 놀았어요. 강 모래쪽에는 깨진 도자기 조각 그릇조각도 많이 나와서 주워서 모으기도 했었고 조개껍데기들도 있었어요. 어릴때라 비싼 도자기유물들은 아닐까라고 생각도하고 가짜라서 다른사람들이 그냥 버렸겠지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유적지였다니 ㅎㅎ
저도요 ㅎㅎ
아이구~ㅎ
개운포에 함 가봐야겟어요
동천강에 제첩 숭어 꼬시래기도 다있었음 지금도 내황정수장은 건재함
상당히 중요한 유적으로 보이는데 네이버지도 찾아보니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아파트 들어서 있네요 ㅋㅋ
일본은 비슷한 헤이조쿄 유적 복원해놨는데 ㅋㅋ 레고랜드의 나라 답게 조선엔딩 됐네
그 아파트 안 놀이터 옆에 조그맣게 유적공원이라고 만들어져 있습니다.
@@galgume 저도 보았습니다! 원래 전시관도 만든다고 했던것 같은데 제대로 못살려놓았더라고요.. 어차피 위치성이 훼손됐으면 거기서 나온 유구들 타 지역 박물관들이 이전하지 ㅠㅠ
아파트 신축 과정에서 들어난 유적이고 문화재청에서 아파트 부지에 유적 모형을 세운 공원 조성하는걸로 조건부 승인을 하였다네요.
당시 해당 유적들은 울산박물관으로
울산 반구동 E편안 apt
저곳 지명이 내황인데 저기서 부터 학성까지 조선시대까지 바다였으며 배가 입항 할 수 있었다죠 그리고 인근 병영성 아래까지도 포구였였어요(동천강)
덧붙이면 학성은 임진왜란때 가토기요마사가 주둔했었고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입니다 예전에 가토기요마사의 동상을 세우려다(?) 욕처먹고 중단한 곳이 바로 울산 중구청입니다 유적 따위는 바로 묻어 버리죠ㅠㅠ
@ 좋은 답글입니다 왜의 토성인 학성 뿐만 아니라 서생포왜성 또한 원형 그대로 보존, 미친 문화재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놓고 바로 옆의 서생만호진성은 성곽이 무너져 자빠져도 복구의 의지가 없는게 현실이죠 서생포 왜성 망루는 대마도와 직통으로 연결되어 대미도에서 봉화를 올리면 바로 보이게 설계 되었죠 성 하단 포구에서 회야강을 따라 올라가면 바로 남창과 연결되어 동천들녘의 우수한 곡창을 그대로 군용미로 활용 할 수 있게
내황의 의미가 거기서 부터 온거였군요~내황교 생기면 울산 교통은 또 다른 생활권이 되리라 봅니다
무거동 지역이 신라시대에 육지화된 지역임을 생각하면 반구대 암각화의 위치도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gigoongiga5536 내황교 지금 있는거 말고 또 생기나요?
저기 사는 사람인데 반구 이편한세상 씨유 가는길에 항상 저 유적지가 아파트 단지 초입 옆에 그냥 조그맣게 보전해놓은거 보임.. 어쨌든 지금 사는 사람들이 더 중요한건 맞지만 저렇게 역사적 사료가 깊은 유적지가 그렇게 초라하게 방치돼있는게 아쉬울 따름
우리 집에서 1분거리가 동천강이랑 태화강 만나는 지점인데 이런 역사가 있는 반구동이라니 놀랍네~
경주와 연결되는 동천강은 태화강과 만나며 태화강은 학성과 연결되며 이전 포구였습니다
반구동 인프라 개선좀요
아직 병영엔 병영성이 뜨문뜨문 남아있음이요...
한20년만에 어무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집터를보니 마음이 먹먹....하다...
실크로드를 통해 신라를 찾아 갈때 사용한 기구가 나침반인데 이름의 유래는 신라를 가르키는 침에서 왔다고 하는데
@@mississippi7948실크로드는 초원길 사막길 바닷길 3가지입니다
@@이찬규-x2m 육지에서도 나침반을 쓰지요~
헉...저기 옆에 형집이라서 공사잘하다가 공사 중단되어서 여기도 부도났네 하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이렇게 이유를 알게 되었네요 ㅋ
공사중 유적지라 그때당시 말도많고 탈도많았음 바로 내집밑에 미나리깡 그주위로 어마무시했음요 반구동 옛날 방앗간자리뒤 그큰기와집은 털어서 빌라가 엄청스레 들어서버렸고 유적지는 아파트가 들어섰음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걸 조사하고 했던 사람들이 당신네들보다 똑똑하지 않을까 싶은데?
울산,경주,대구 미녀/미남들이 많죠~~생김새가, 눈이크고,피부도 희고, 체격들도 크고~~세월이 흘러도~~^^
대구출신인데 서울 5년 살면서, 동성로 편의점 알바보다 잘생기고 예쁜 사람 못 봤네요 자부심 ❤️😊
대구 여자분들 털털하죠.
@@궁즉통-y6r 아메리카 대조선이 맞는듯. 1900전후로 배로 엄청실어나름. 이나라 곳곳의 해안가로. 역사조작에서 깨어나야함.
울산 여자들이 이쁜애들은 인물이 출중함.
김태희가 그냥 나온게 아님.
울산살다가 대학땜에 서울갔지만, 서울여자는 인공적인 느낌이지만 ,울산 여자는 작은 인구에비해 출중한 자연미인들 꽤있음
@@아카데미-e7t 김태희 부모님은 전라도 출신인데요 울산 동향인 오상진도 마찬가지고
해방이후만 따져도 경상도에 외지인이 대거 몰려온 사례가 몇인데 이런 헛소리를 하시나요
우리집터가 항구였다니 ㅎㅎ 지금은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음
이제 아파트단지가 되어버렸죠… 아쉽습니다
전세계 무역상이 무동력선을 타고 해류를 거슬러 울산으로 왔다는데 참 기가차서 말이 안나온다.
반구동에 학성공원이 있는데 지금은 동내 한복판에 있지만
과거에 주변이 바다였다고 들었다.
경주~울산이 신라의 중심지
반구동 신울산시장 쪽에서 20년 넘게 살았었는데 항이 있었다는게 진짜 놀랍다ㄷㄷㄷ
신울산시장은 아니고 반구1동 만
사기아님 반구1동 화산이 빈발해서 학성공원도 생기고 반구동뒷산은 화산포구지로 지금은 한라현대가 들어서있음 원래는 병영이 유명한곳임 반구동은 화산으로인해 매립되어 주택지가 조성되어 집집이 바위로인해 주택마당에 돌들이 집집이 연결된곳이였음!!
병영성, 학성,특히 학성의 위치가 너무 이상합니다. 조명연합군이 미나리깡 늪지에서 말을 타고 성을 공격했단 소린데, 바로 코앞엔 경상 우수영이었고 판옥선까지 만들던 병영성을 놔두고 미나리깡 늪지에다가 일본군이 학성을 지었다는게 상식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됩니다.
동천강 타고 올라와서 산전 정도에서 뱃길 더 유지 못하고 내려서 병영으로 오르다 보니 그랬지 않을까요? 학성은 내황으로 오르다 보니 성이 지어진 것 같고
짧은 지식으로 현재의 지형만으로 추측해 보자면 지금의 학성은(학성공원) 사이즈가 너무 작고. 고로 약간 내륙쪽에 위치한 현 MBC가 위치한 야산과 일대를 포함하여 크게 축성한 것이 당시의 학성 규모로 보여짐(병영성을 허물어 그 성벽의 돌을 가져다 학성을 만듬) 학성은 바다와 바로 연결되는 태화강과 맞닿은 지점에 위치했고 병영성은 태화강 지류 정도의 내륙쪽 동천강에 위치함. 그래서 왜넘들은 치고 빠지기 좋은 학성 위치에 거점을 만들었고 결국 여러 번의 공성전 끝에 학성을 포기하고 바다로 도망감. 만약 동천강에 위치한 병영성에 거점을 만들었다면 바다로의 퇴로가 막혀 진작에 전멸 했을 것임.
@@김병진-q2n 아! 그렇군요.
답글 감사합니다.
반구동 바다가 없는데?
울산 달동 삼산동 아파트올리기전에 땅에 조개 나왔음 반구동도 원래 바다였는데 동해에 땅이 솟아오르면서 땅이된것임 울산은 땅파면 조개나옴
@user-dz8fp7kw5p 오호
저기옆 학성교 명촌교사이 바다에서 올라오는고기랑 민물에서 내려오는고기랑 엄청많음 할아버지들 놀이터지ㅋ
육지가 융기된것인가? 해수가 불어 해수면 상승인가? 지난 1000년간 해수면 상승으로 오히려 반구동은 현재 바다이어야 하지 않나?
@@waterbird-p4r 강하류는 원래 퇴적지 많이 생기고 사람들이 간척도 많이함
👋울산하면~"김태희"🤗
결국 이 부분은 어떤 정치 집단이 이주할 때는 나라 전체가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정치적 필요성에 의해서 일부는 남고, 일부는 이주하기 때문에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신라가 대륙에서 출발해서 일부는 경상도쪽으로 이주를 했고, 일부는 대륙에 그대로 남아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중국의 기록에 “옛날 한나라 때 낙랑 땅에 있었다”는 기록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는게 타당하다.
위그루인이 아니고 완전히 페르시아인 이다
팩트로 증명된 대륙 백제,신라,고려에 대한 역사다큐가 공영방송에서 다뤄줬으면 합니다.
제발 논문 써서 학계 정설로 인정이나 받으시고 다뤄달라 하세요
뇌피셜을 책으로 썼다고 다 팩트는 아닙니다
@마속산악회 한국사 학회와 국사 편찬위는 일제 식민지 때 일본인학자의 제자들로 구성되어 또 제자를 양성했고 전국민이 잘못된 국사교육을 받았습니다.
마음을 열고 알아보시죠?
ㅋㅋㅋㅋㅋㅋㅋㅋ 기승전 식민사관 ㅅㅂ
@@JjaKkong-e2v 독립한지도 80년이 다되가는데 아직도 기승전 식민사관 드립입니까. 아니 지 맘에 안들면 다 식민사관이에요? 학문 다룰때 근거를 들고 와야지 신뢰도 보장 못하는 책 1권이나 쳐 들고오거나 뇌피셜이나 하면 그게 학문입니까? 그런식으로 하면 뭐 성경에 나왔다고 태양이 멈췄다고 해도 되겠어요 아주?
그쪽 환빠들이나 "아무튼 우리 조상은 100프로 우월하고 다른 민족들 상대로 승률 100프로여야해!" 이딴 마인드에 갇혀사는데 마음을 누가 열어야겠습니까?
그리고 대륙백제 신라 고려 했는데 그거 다 한족에게 따잇당하면 조상님들 병신새끼로 만드는게 환빠가 아니면 뭐에요?
어휴 또 또 또 김춘추랑 이성계 잘못이라고 하세요 또또 또
대륙백제신라고구려가 중국에 있어서 증명해내지 못하면 한나라 당나라 수나라가 오호십육국이 한반도에 있었음을 증명해라ㅋㅋㅋ
골드로드 입니다
서울산이름파주
반구동 주민인데 이 사실이 매우 신기하고 흥미로워요..
저도 울산시민으로서 이상아릇하네요 😁
헐……..
저기서 물자 받고 경주 즉 수도로 오가는 터가 있음
울산 반구동? 절대 아니다
역사의 진실은 역시 유튜브 책보고 채널
당시 해군도 없었다..수군의 시대였다..수군의 의미가 강을 거슬러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방어하는 개념이었다..경주가 실크로드의 종착지가 될려면 실의 최대 생산지가 되어야..실크가 실이다..그 실은 비단 즉 견사로 누에고치에서 뽑아낸다..그러면 누에의 먹을거리가 많아야 한다..뽕밭이 광활해야..지금 경주 주변의 토지론 뽕밭이 광활하지도 못하고 전세계의 수요도 맞출 수가 없다고 봐야..그리고 경주의 당시 세대수가 18만호 정도고 인구수로는 약 100만의 도시다..지금 경주 인구가 얼마냐..인근 울산이 100만 정도다..그리고 실크로드도 낙타나 말을 이용 한 것이 아니라 물길을 이용 한 걸로 봐야..현 로마까지 간다 하면 당시의 지형은 군데 군데 내해가 있었다봐야..현재 사막이 되어 있는 그런 곳이 내바다로 보면 된다..소금끼가 있으면 식물이 살기 어렵다..그런고로 내해의 지류로 흐르는 강을 연결해서 배를 이용 물자를 날랐다 보면 됨..그래서 운하를 건설 해서 물길이 끊기는 곳은 연결 한 것임..선원들이 바닥이 닿는 곳이 있으면 배를 끌고 올라감..중국가면 그런 곳이 있슴..지금도 요트가 좋은 데도 돛을 이용 해서 바다를 건널려면 어려운데 당시 배가 아무리 울산서 잘 만들었다 해도 큰 바다를 건너는 것은 어려웠을 것..해안선을 따라가고 강을 이용 한 것은 가능 했을 것..그래서 개가 있는 곳에 포구가 만들어져 있었고 울나라에 부산포 구포식으로 이름이 전국에 분포함..울산도 염포가 있고 경주도 감포가 있지..항구는 근대의 명칭..반구항도 못 들어 봤고 반구포도 못 들어 봤슴..개운포는 처용전설에 나오는 곳이고..처용의 얼굴은 과거 울산 정치인 최형우의 얼굴을 보면 어딘지 닮아 보입디다..
대륙 신라를 반도 구석에서 찿는거요? 지나가는 소가 웃소 😂
그럼 머해요
아파트지을때
우물터는 아파트지어
묻혔고
나무 방책은 엄청컷는데 파손하고 시맨트로 모형만 남기고
건물터
실제 형태는 파괴시킨걸 이렇게 방송하는걸 보니
한심하네요,
신라에서 금을 채취하는곳이 어디지,좀 가르쳐주라 응
바다와 육지의 경계는 사학자가 아니라 고고학자나 지질학자가 설명하는게 더 설득력 있지 않나 ?
사기... 역사조작.
당신이 증명해봐.
발굴되면 뭐하노 그냥 없어지는대 쓸대없이 조사하지말고 앞으로 그냥 다 부시세요
답답하네 ㅋㅋㅋㅋㅋㅋ
실크로드 지도만봐도 지금의 중국 동남부지역을 신라라고 표기했는데
아이고.....환단고기 오셨습니까? ㅋㅋㅋㅋ
[청정심(평기허심) 박치우]
"한겨레역사힘차게"
: 자주적 한겨레 역사관 , 한겨레의 역사 외 세계사 포함 , 국수주의 배격 ,
동서양 사상과 문화
역사는 겨레의 정신이다
바른 정신을 가져야 사람이 바르게 살아가는 것처럼 바른 역사를 가져야 겨레가 바르게 살아간다
한겨레의 말과 글과 역사는 반드시 공부해야 하고 평생 공부해야 한다
그럼 땅파면 유물 많이 나오겠어요.물이 많으니 음기가 강하다는 뜻이겠구만
역사저널 유인초니 나오는면 안본다
인초니 안나오는것만 본다
@@체인똥빵꾸패치 안보면 니만 손해 ㅋㅋㅋ 니가 안봐도 아무도 불이익 없음
제발 보세요
류근 나오는 것만 볼듯 ㅋㅋㅋㅋㅋㅋ
이미 유인촌 나온채로 찍은거 다시 찍을돈 내줄거 아니면 걍 조용히 나가면 됨
유인촌 나도 싫지만 이미 찍은거 유인촌 나왔다고 빼면 역사스페셜 과거본 상당수가 없음
역사에도 정치 좌파우파때문에 걸러야되나요? 님손해인듯~
네 신라 실크로드는 서경 상하이지 ㅋㅋㅋㅋ동경 울산이아닙니다 ㅋㅋㅋ
경주 감포 하고 인천 제물포 하고 1924년 읍으로. 승격됐다 감포는 바닷가 조그만 어촌마을 적산가옥 가득했던 ㅁㅏ을 다 허물고 없다
반구대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중요한곳은 맞으나 신라의 경주는 대륙에있으니까 사기치지마라
반구대랑 반구동이랑 같냐?ㅡㅡ
윤석렬이때메 이 좋은 프로그램이 없어지다니.. 시바 욕나오네.. 울산 살아요 알고는 있었는데 ㅎㅎ 너무 반갑고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