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구, 은평구는 거의 대규모 공동묘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북가좌, 남가좌동, 모래내 일대에 빌라촌들 빌라, 다가구 짓기 전에 국민주택이었고, 그거 짓기 전에 대규모 공동묘지였다고 합니다. 연희중, 연가초등학교, 명지대학교 신축공사할때에도 터파기하면 관뚜껑 나오는 경우가 많았음. 1960~70년대 얘깁니다
서오릉에서 대성중고교, 박석고개까지 능선 이어지는 산인가보네요. 저 동네 살았고 선일초 나와서 많이 올라다녔는데 무덤이 저렇게 많았네요. 저기에 약수터도 있어서 국민학교 1학년때 어머니가 아프셨는데 약수물 드시면 나으실 줄 알고, 밤에 랜턴들고 노오란 양은 주전자에 물 가득 받아오는데 보리차 끓이던 큰 주전자라 너무 무겁고 흔들리니까 넘쳐서 반은 흘렸고, 이거 다 드셔야 엄마가 병이 낫는데~하고 엉엉 울면서 집에까지 온 기억이 ㅋㅋ 오랜만에 어릴시절 살던 곳, 뒷산 봐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잘 봤습니다 저도 여기 가까이 있어서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이말산의 한문이름이 李末山300년전 영조때 세운 무덤의 비석글씨를 찾아서 은평구청 문화관광과랑 몇번 통화했는데, 지금 현재의 한문이름을 못 바꾼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문이름은 이말이라는 외래종 풀에서 유래된것인데,300년전에 기록을 찾았으면 바꾸는게 맞는거 아니냐고 했더니,학술적으로 합의가 안되기 때문에 못 바꾼다해서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보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계속 좋은 내용 보여주세요
궁녀들이 마치 군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진짜 정확했다.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를 빼면 완전히 궁녀와 동일한 구조였는데 일반궁녀 - 병사, 상궁 - 부사관, 후궁 - 영관급, 중전 - 장성 딱 이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10세 전후여야만 했다. 이유는 궁녀가 단순히 일만 하러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왕이나 세자에게 승은을 받으려면 15살 이하가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상궁 랭킹 최강자는 제조상궁이 아닌 승은상궁이었는데 승은상궁은 숫제 상궁이 아닌 후궁으로 분류되었으며 왕이나 세자의 아이를 낳으면 정식으로 후궁이 되었다. 세자후궁의 경우는, 중전이 아닌 세자빈이 직속상관이었다. 세자후궁은 그 세자가 즉위를 해야 거기에 해당되는 품계가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밑바닥 궁녀에서 승은상궁을 거쳐 중전까지 올라간 전설을 찍은 옥산부대진 장씨(장희빈)가 있다.
비참한건 아니죠 동시대 살아갔던 일반 농민들 상민들 노비들 중 묘 남아있는게 얼마나 될까요 당시로선 문인석도 세워주고 관리가 잘되었겠죠. 직급 높은 궁녀들은 봉급도 주요 관직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았구요 다만 자손을 남길 수 없으니 묘를 꾸준히 관리해주고 하는게 없다 보니 어쩔수 없는거 같습니다. 이건 궁녀 무덤 뿐만이 아니라 초안산 곳곳에 묻혀있는 내시들 무덤도 마찬가지입니다,
궁녀들은 뭐 의식주가 해결되긴 하는데... 이게 궁녀가 된 여성 입장에서는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하면 평생 홀로 늙어가야 하니... 그리고 승은을 입었다 해도 후사를 보지 못하면 궁궐 한 구석에서 조용히 늙어가야 할 처지였구요. 여하튼 그렇게 살다가 환갑즈음 되면 궁녀도 내보내 줬다 하더군요. 다만 젊은시절 궁궐에 들어갔던 궁녀가 나이들어 나오게 되면, 가족들도 대부분 이 세상 사람 아닌 경우가 많고, 친척들이 있다 해도, 얼굴 거의 못본 사람인지라... 때문에 나이 들어 은퇴하게 된 궁녀들이 모여 사는 뭐 그런 곳도 있다 들었습니다.
서대문구, 은평구는 거의 대규모 공동묘지라고 보시면 됩니다. 북가좌, 남가좌동, 모래내 일대에 빌라촌들
빌라, 다가구 짓기 전에 국민주택이었고, 그거 짓기 전에 대규모 공동묘지였다고 합니다.
연희중, 연가초등학교, 명지대학교 신축공사할때에도 터파기하면 관뚜껑 나오는 경우가 많았음.
1960~70년대 얘깁니다
명당자리니 딱 묘자리였나보네요
성동구도 대규모 공동묘지였습니다😊😊
돌아가신분들이 많으니..전쟁도 많이 했으니 그럴 수 있는것같네요ㅠ
자유가 없었다해서 불행했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 사는거 보면 궁녀랑 비슷함. 궁녀들은 연봉이라도 많이 받고 먹고살걱정은 안했다며
궁녀는 기숙사에서 사는 도비지 교대근무하는
@@냥웅-x7m 도비 ㅋㅋㅋㅋㅋ도비는 자유에용~
궁에서 한평생을 살아야 되는데 과연 행복했을까요?
심지어 궁녀나이 20살 정도
나인이 되면 따로 무수리(하녀)들도 붙어서 케어해주는 시스템 ㄷ
서오릉에서 대성중고교, 박석고개까지 능선 이어지는 산인가보네요. 저 동네 살았고 선일초 나와서 많이 올라다녔는데 무덤이 저렇게 많았네요. 저기에 약수터도 있어서 국민학교 1학년때 어머니가 아프셨는데 약수물 드시면 나으실 줄 알고, 밤에 랜턴들고 노오란 양은 주전자에 물 가득 받아오는데 보리차 끓이던 큰 주전자라 너무 무겁고 흔들리니까 넘쳐서 반은 흘렸고, 이거 다 드셔야 엄마가 병이 낫는데~하고 엉엉 울면서 집에까지 온 기억이 ㅋㅋ 오랜만에 어릴시절 살던 곳, 뒷산 봐서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 😊
지금은 등산다니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ㅎㅎ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뭔지 감흥이요.저는 응암동출신 서오능소풍 많이갔네요
효자
어릴적 효자이셨네요
존경합니다
노원구의 초안산도 한 번 가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등산로 곳곳에 조선시대 내시들의 무덤이 가득합니다
신혼때 월계2동에 거주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야밤에 랜턴들고 올라갔다 으잉?? 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은 공원조성도 하고 많이 좋아졌더군요
잘 봤습니다
저도 여기 가까이 있어서 자주 들르는 곳입니다
이말산의 한문이름이 李末山300년전 영조때 세운 무덤의 비석글씨를 찾아서 은평구청 문화관광과랑 몇번 통화했는데, 지금 현재의 한문이름을 못 바꾼다고 합니다. 지금의 한문이름은 이말이라는 외래종 풀에서 유래된것인데,300년전에 기록을 찾았으면 바꾸는게 맞는거 아니냐고 했더니,학술적으로 합의가 안되기 때문에 못 바꾼다해서 설왕설래가 있었습니다
여기서 또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보는것 같아 씁쓸합니다
계속 좋은 내용 보여주세요
좋은정보 감사드립니다^^
최근 이말산을 넘어갈 일이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무덤들이 많은지 궁금했었는데 궁금증을 해결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모르고있었는데 덕분에 알게되었네요. 영상제작 감사합니다
거의 일반적으로 묘지..무덤은 3대가 지나면 그 어느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장소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넵ㅜㅜ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것 같습니다
@@parksharkhistory 자연스러운 흐름 아닐까요? 한반도만 한정해서 삼국-조선까지 수천만명이 살았으나 일반백성의 묘는 어딘가 묻혔으나 다 사라지고 잊혀지는듯 합니다
덕분에 단순히 영화로만 보던걸 체감했어요.
너무 안타까워요. 문화적 보존가치가 분명히 있다고생각하는데... 이 영상이 계기가되어 문화재가치가 인정되는 날이 오길기다려봅니다.❤
넵 저도 그렇게 바라고 있습니다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궁녀들이 마치 군대와 비슷한 느낌이 드는 것은 진짜 정확했다. 군대에서 위관급 장교를 빼면 완전히 궁녀와 동일한 구조였는데 일반궁녀 - 병사, 상궁 - 부사관, 후궁 - 영관급, 중전 - 장성 딱 이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10세 전후여야만 했다. 이유는 궁녀가 단순히 일만 하러 들어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왕이나 세자에게 승은을 받으려면 15살 이하가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상궁 랭킹 최강자는 제조상궁이 아닌 승은상궁이었는데 승은상궁은 숫제 상궁이 아닌 후궁으로 분류되었으며 왕이나 세자의 아이를 낳으면 정식으로 후궁이 되었다. 세자후궁의 경우는, 중전이 아닌 세자빈이 직속상관이었다. 세자후궁은 그 세자가 즉위를 해야 거기에 해당되는 품계가 정식으로 승인되었다. 밑바닥 궁녀에서 승은상궁을 거쳐 중전까지 올라간 전설을 찍은 옥산부대진 장씨(장희빈)가 있다.
이말산 뿐만아니라 앞쪽 북한산 진관동 진관사 주변~북한산성 주변에 내시묘가 지천에 널려있습니다. 백화사 옆에 있는 개인 사유지안에 수십기의 내시묘가 보존되 있죠...
정보 감사합니다^^
도봉구 창동에 있는 야산인 초안산도 대부분 내시묘 입니다. 궁에서 멀지 않은 야산에 이런식으로 둔 듯 합니다.
비참한건 아니죠 동시대 살아갔던 일반 농민들 상민들 노비들 중 묘 남아있는게 얼마나 될까요
당시로선 문인석도 세워주고 관리가 잘되었겠죠. 직급 높은 궁녀들은 봉급도 주요 관직과 비교해서 뒤지지 않았구요
다만 자손을 남길 수 없으니 묘를 꾸준히 관리해주고 하는게 없다 보니 어쩔수 없는거 같습니다.
이건 궁녀 무덤 뿐만이 아니라 초안산 곳곳에 묻혀있는 내시들 무덤도 마찬가지입니다,
돌판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상석이라고 합니다. 바로 묘지가 있는 곳이죠. 묘소 앞엔 상석을 놓았답니다.
정보 감사합니다^^
좋은방송입니다...수고하셨습니다
와엄청많네요.가련한궁녀분들.잘봐습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리포팅과 내레이션으로 구성한 영상이 요즘 유튜브 답지 않게 보기 편안하네요!
갑자기 산스장 나와서 좀 그랬지만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앞으로 더 깊이 있는 내용 기대합니다~
내시들의 무덤은 반대편인 노원구쪽 초안산에 있네요. 내시와 궁녀는 죽어서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인가 ~
초안산도 이말산이랑 비슷하죠ㅎㅎ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영상 공유해 주셔서 감사히 풀시청합니다
평생 독신으로 살았으니 무덤을 돌 볼 후손이 없지요.
그런 것 같습니다..ㅜㅜ
아~그렇구나..왜 아무도 안돌보나 했는데 그럴 수 밖에 없겠네요 😢
잘 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잘 정비된 묘지 였는데 후에 나무들이 자라서 방치된 것으로 보이네요
아쉽네요 서울에서 어찌 저렇게 방치를시대를 연 분들인데 잘보앗어요🎉🎉🎉
비지정문화재는 국가, 광역으로 지정받지 못해서 비지정이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자체 단위에서 지정한 문화유산을 뜻합니다. 따라서 요즘엔 향토유산이나 xx시군구 문화유산이라고 많이합니다.
역사 좋아하다 보니 알고리즘에 떴나본데 드립치시는 게 제 스타일이시네요 구독 누르고 갑니다 ㅋㅋ
이말산요?
낮에는 꽨찮을것 같은데 밤에 혼자가면 약간 무서울듯 싶네요.
넵 동네사람들은 무서우실거 같아요..
옛날에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에도 내시들 무덤이 많았죠... 실제로 도봉산과 가까운 월계동쪽에 내시들이 만들었다는 녹천마을이 10년전까지만해도 존재했었구요... 지금은 개발한다고 다 없어졌다고하는데 아직도 남아있는데가 있는지 모르겠네요
궁에서 살다 나가면 비밀 발설할까봐 죽기 바로 전에야 나갈 수 있던..
그냥 어느정도 나이되서 진급 못하거나 능력이 안되면 궁밖으로 내보내서 시집도 가게하고 그랬으면 좋으련만..
3종셋트누르고가요😂🎉😂🎉
제가 살고있는 쌍문동에도 야산에 묘 비석이 산 곳곳에 있습니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도 남아있어요.
서오능을 둘러싼 갈현동 구산동 야산에 3~40년 전에는 내시들의 묘가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지금은 개발이 진행되어 찾아보기 힘들다.
정보 감사합니다^^
측은지심이 드는건 당연하지만 차별은 아님 당시 시대상과 관습을 봐야죠. 역사를 현재 관점에서 해석하면 어떡합니까?
우리가 드라마속에서 본 역사을 알게되네요~
조선이 얼마나 말종 사회였나면 밥만주면 궁으로 들어가던지 양반댁 노비로 가든지 기생이되든지 첩이 되기도 했지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가 그래도 천민이든 하인이든 인간적인 대우가 있었음
그때 밥만줘도 값어치가 월 천만원임
지금은 노비되려고 해도 능력없으면 걍 굶어뒤져야되는 사회임..
Good
아무리 주인이없어도 그래도 문화재인데 나라에서 돈들여서 관리 좀 잘해주지. 이제 한국 경제력이 그정돈되지 않나.
예
우리조상할머니들 한많은 시절을 살다이름도 없이 떠나섰으니 우리가살고있는이시대는인테넷이라는 괴물때문에 과거가 지워지고있습니다
나라에 도둑놈 이 나라를 망쳐놓고 나가고 한께
니가 관리해봐 벌초 좀 해주고
사학과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과제가 될 것 같네요
여의도에 후궁들 묘지가 있었다고 하죠 그래서 음기가 강하다고
오 저런 곳이 있다니!! 재밌어요
젊으신분이 참 부지런도하셔라 ㅎ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샥님 이말산 궁녀무덤 설명 잘 듣고
배우게 되었습니다 ^^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묘장을 하면 그렇지 돌봄을 받지 못하면 저렇게 되는데.... 궁녀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렇지... 후손이 짱짱해서 묘 관리가 잘 되는 것도 있긴 한데 그것은 극히 일부분이지... 그래서 묘장 보다는 화장이 더 좋은 것 같네....
그논리면 저 시절 살았던 사람중에 무덤 아직도 있는거만으로도 대단한거다 ㅋㅋㅋㅋㅋㅋㅋ
역사란 흔적이라도 남지 않으면 잊히기 너무 쉬운것같다..
내시, 궁녀분들이 요즘으로 보면 대통령실 비서관, 행정관 같은 분들? 잘 보존하고 보살펴 드렸으면 합니다.
형 아차산 가다보면 산책로 밖으로 석상이 그냥 방치된거 있어요. 그거 뭔지 너무 궁금함.
조선시대 80살 넘게 산 양반들은 노비, 농민들을 얼마나 부려먹었을 까..
같은 민족을 노예와 노비로 악랄하게 부려먹은 고려와 조선시대(남자는 노,,,여자는 비,,합처서 노비) 고려 조선조 이외의 여러 나라는 이민족을 노예로 삼았으며,,,
그당시 80살 넘게 사는 사람들 극소수 였겠지요
술이라도 한잔 드리고오시지 ,,,,,
삼국때부터 이어져 오고
한글 한문..등 을 가르쳐 입궁시키고..
그랬었군요
여하튼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인데
나라에서 잘 관리해주면 좋겠어요!
그 산 근처 원룸이나 거주지에 사는 분들이 밤에 그렇게 가위에 자주 눌린다네요. 집들도 괜히 음산한 기운도 돌고. 그만큼 한맺힌 궁녀들과 내시들의 원혼이 많이 떠도는거겠죠
ㄹㅇ 저기근처 부대에서 군생활했는데 가위엄청눌림 ㅋㅋ 전역하고사라짐
52?
@@깡총거미 맞음 52
지금 살고 있는 사람의 수보다 먼저 살다 죽어간 사람들이 비교가 안될만큼 많았으니 굳이 무덤을 찾지 않더라도 우리가 밟고 다니는 모든 흙 한줌 한줌이 다 그 남은 흔적이니 무서워 하지 마세요.
그럼 돌아가신 저분들은 서소문으로 나갔을가요?? 그냥 궁금해집니다.
안양 관양동 주변에도 엄청나게 있으며의왕시 오전동도 마찬가지임.
? 사대부는 자기네 선산이 있을텐데 왜 저기에??
박샥님 고마워요 덕분에 숨겨진 역사두 알게되구요., 더위에 건강 잘 챙기시구요!
감사합니다 무더운 여름인데 건강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비참한 정도 까진 아닌듯... 전용 구역에 묘자리를 써주고 묘비,석물까지 다 갖췄구만... 너무 왕릉만 많이 보신거 아닌가요??
일자산에서도 널부러진 석상도있고 무덤흔적도있는데 여기처럼 그런 경우일수도
저걸 누가 관리를 하나요~~
계속 이대로 방치되지 않을까요..??ㅜㅜ
직급이 있는 궁녀들도 여기에
무덤이 있는건가요.?
살아서도
죽어서도
대접받지 못한
가련한 인생ㅠ
1:54 총기자율화해서 아주 작은. 무단횡단같은것만해도 현상수배범으로 카톡이나 재난문자에 신원뿌려지고.
범죄자 사살하거나 신고만 해도 일자리 걱정 없을텐데말이죠.
이말산
가끔 멧돼지도 출몰하여
엽사가 사냥에 나서기도
삑사리날때는 창피해도 세월이 지나면 웃기지요
나무아미타불 !
궁녀들은 뭐 의식주가 해결되긴 하는데... 이게 궁녀가 된 여성 입장에서는 왕의 승은을 입지 못하면 평생 홀로 늙어가야 하니... 그리고 승은을 입었다 해도 후사를 보지 못하면 궁궐 한 구석에서 조용히 늙어가야 할 처지였구요. 여하튼 그렇게 살다가 환갑즈음 되면 궁녀도 내보내 줬다 하더군요. 다만 젊은시절 궁궐에 들어갔던 궁녀가 나이들어 나오게 되면, 가족들도 대부분 이 세상 사람 아닌 경우가 많고, 친척들이 있다 해도, 얼굴 거의 못본 사람인지라... 때문에 나이 들어 은퇴하게 된 궁녀들이 모여 사는 뭐 그런 곳도 있다 들었습니다.
은평뉴타운이 큰 공동묘지 자리였지
내시.궁녀들
낮이어도 사람이 없어 무서운 느낌이 드는 산이네요
연애한도 못하고 끝나는인생 슬프다
위치상 납득이 가는군요. 아차산이 서울의 동쪽에 있는데 시신이 많이 거쳐간 광희문을 통해서 갔겠네요
도봉구 뒷동산에도 왠지 사연있을 거 같은 석상이 있슴
예산 때문에 버려진 듯 해 안타까움
심지어 섬뜻함 😢
신기하네요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 밤에 가면 뭐가 보여도 보이겠다
이거 진짜 문화재인데요!! ㅠ 보존이 아예 안 되고 있다니…
영상잘보고갑니다. 그나마 무덤이라도 있는분은 행운같아 보이네요. 왕조역사 500년동안 수천~수만명의 궁녀들은 병들면 쫒겨나거나 또는 어디에서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르는~~~ 매장이 아닌 그냥 아무산이나 버려져서 동물들 먹이감으로 되지않았는지 생각해 봅니다.~~~~
네, 영조의어머니 숙빈최씨의묘는 보존을 더 잘해야될것같네요
죽으면 한평땅도안되는곳에 한줌흙으로 돌아가거늘 뭘위해서 서로헐뜯고 너죽고 나살자는 이기주의와 욕심으로 꽉찬세상,,,, 인생 넘허무하다 ~~~
시청해주셔셔 감사합니다^^
관리좀 나라에서 해주면좋을거같다
이런채널도있네 굿썃 나이샷
우리의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어로 난 음식을 먹고 흙어로 돌아가는것이
우리의 인생사 입니다
어지간 하면 예우는 해줘야 되지 목숨 받쳐 주인을 섬기고 했는데 모든분께 합동 위령제는 지내주는게 인지 상지상정 무덤이야 뭬가 필요 하겠나
이것도 역사의큰흔적인데
문화재차원으로
보존관리를 해줬음 하는바램입니다
불쌍한 분들인듯요
물론후손들의 무관심도 있지만
국가차원서 관리가
필요한듯요
국가에서 관리해야 하는거 아닌가 다 고증자료인데 저렇게 버려두다니
비석이 있다면 비석글씨가 보이도록 영상을 제작하면 좋았을 듯.
무덤이 확실히 밝혀진 형조판서 묘나 내시들의 묘 정도만 조사를 했고 다른 묘들은 정확히 알 수 없어 그냥 넘어갔었습니다 다음엔 좀 더 자세히 조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말산에 푸른색 펜스를 쳐 놓은 남곡공파 영천李씨 묘역이 있습니다
선조때 판서를 지내신 어른과 동생인 경주부윤의 가족묘이지요
나 어린시절 매년 이말산에서 영천李가 종중에서 시제를 지내곤 하셨는데
지금은 산책코스로 변했네요 ㅠㅠ
조선시대 비석 동상 같은건 다 국가에서 문화재 가치로써 보존을 하고 시신은 모두 화장해서 한곳에 모시는게 좋을거같습니다.
아니 근데 저런것도 다 보존하고 해야하지않나..?
반대로 초안산은 내시산이어요
진짜 평생을 궁에서 왕의여자로 살다가 선택받으면 후궁이라도 되지 이거는 그냥결혼도 못하구 살다가 결국ㅜ
세수간 개꿀이네ㅋㅋㅋ
무덤 진짜 무서워
그냥 최근에 만든것같은데?
조선시대 석공들 진짜 대단하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관세음보살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 우리에 조상님들 입니다.
모두 영면하시길 빕니다.
지금이라면 국립묘지구먼
왕들의 뒤끝이 안 좋은 이유가??!!!
죽어서 비석이 뭐가 필요할까?
생각해봅니다
요즘시대는 자식도 하나 아님 둘인데 시대따라 살아야 되지않을까요?
죽으면 납골당 무덤 비석이런거 다필요없고 그냥 흔적도잆이 나무밑에 묻어 찾지도말고 사후에는 흔적도없이 지워버리는게 맞을듯...
그래서 문화유산이 없는것 같아요. 한국에 그런 사고방식 가진 사람들 유난히 많은것 같아요. 그래서 자기관점에서 조금만 필요없으면 말살하는 이벤트가 자주 일어나고 625전쟁때 엄청난 문화재가 소실된것도 있는것 같아요. 한국인 특유의 통제성향과 낮춰보는 습성이 합쳐진듯요.
@@sunhojung6803
지금시대는 부모 자식도 소용없고 오로지 돈세상 뿐
그리고 전쟁때 소실된 문화유산은 누구라도 어쩔수없는 일이고
한국의 문화유산 뭐 얼마나 됩니까?
있는거마저 일본이나 중국에 빼앗기고
아님 도굴해서까지 팔아먹은 국민들인데요
온세상이 침착맨이야
겁나 무섭다 어휴
인생한방이면 그 한방에 무너지는겁니다 ㅎㅎㅎ 그리고 옛날에는 노비 궁녀 내시 천민들은 인간취급 못받았죠
잘보존이됬었으면
우리가족,친척들은 궁녀같은 사람들이 없어서 이시대에 감사한일이지만,그 시대엔 힘든 암투가 눈에 안보이게 많았을듯.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휴! 불쌍한 궁녀들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시대에서는 불쌍한 사람들은 아니었을듯요
불쌍한 사람들은 천민 종 으로 평생 살아온 사람들
궁녀들 월급 지금 기준으로는 대략 700정도로 볼수있다고 하더라구요
뭐 그돈대부분이 가족들에게 가니 불쌍하기도 하고 야망있는 여자들이 출세할수있는 몇안되는 길이니 아닌거 같기도 하네요
뭔 불쌍 ㅇㅈㄹ ㅋㅋ
영혼결혼식 해줘요
외롭고 더러운 세상
양반가에 비교하여 그런거지 대다수의 백성들에 비하면 ...대우가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