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사 서결에 보면 획에 대하여 음양에 대하여 말하는데 쉽게 요약하면 가로획은 양이라 가늘고(가볍고) 세로획은 음이라 굵게(무겁게) 쓴다. 또한 완당전집을 보면 추사는 전절에서도 붓을 돌리는 위치 역시 음양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쓴다. 따라서 추사는 본인이 주장한 역학이론인 태극즉북극변에 따라 용필을 쓰고 역학의 음양 방위에 맞춰 음양대비를 강하게 준다. 그러므로 추사의 태극론에 따라 용필을 쓰면 추사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추사는 단순히 임서만 하지 않고 학문과 서예를 연결하는 점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예 이외에도 중국 대가들의 서법론을 보면 임서만으로 서예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태극론, 신유학적 이론, 불교이론이 붓의 용필법, 결구법, 장법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고로 글씨의 외형만 보고 평가하면 소동파 말을 빌려 어린아이와 같은 평이다. 요약하면 추사가 주장한 학문적 바탕은 곧 중국의 유학, 주역, 선종 등의 중국 학문이며 이를 통한 서예 즉 문자향, 서권기가 들어있는 서예를 높이 산 이유다. 추사의 학문적 기준에서 이광사, 이삼만는 당시 조선에 최고의 필력에 가까운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임서한 글씨은 중국 글씨의 진품이 아니라 번각본이고 동국진체라는 개념도 중국적 학문 원리에 벗어난 것이다. 철저한 중국 학문의 엘리트인 추사가 보기엔 이런 조선의 글씨들은 서권기가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즉, 추사에게 서법이란 곧 중국의 원류이기 때문에 중국의 학문, 중국 이왕의 글씨, 이왕 전 중국 비문 글씨, 이왕의 따라 발전시킨 당나라 글씨, 남종파의 문인화 기본이다. 그러므로 이광사처럼 쓰면 중국 법식에 멀어지기 때문에 그냥 막쓴 글씨가 된다. 마치 현대의 서법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현대의 캘리그라피와 같다. 결론적으로 법을 지키면서 발전 시키는 법고창신이냐 법을 깨고 스스로 자라나는 파격이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감상론, 추상적인 평가들로 서예를 논하면 밑도 끝도 없다. 사기꾼들이 대가 취급을 받는다. 그 때문에 실질적 증명 가능한 학문의 입장에서 추사는 이러한 자들에게 신란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말년에 유가족이 죽고 유배지를 통한 어려운 생활 속에 불교의 불이법을 체득하며 자신의 비판을 거둔다.(사실 이건 썰에 가깝다. 유배시절 이후 에도 비판한 글이 있다.) 추사가 불이선란도에서 말한 선종의 불이법은 좋게 말하면 세속에 초탈한 것이고 기존 학문이 정한 법식을 틀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친구 권돈인은 말년 최후의 추사 판전의 글씨를 보고 어떤 일이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지 않는다.(불계공졸)이라는 말로 글씨를 평하였으니 이는 추사 말년 인생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추사 인생을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글씨는 비판하는 것, 글씨를 찬양하는 것 쉽게하면 안되는 일이다. 글씨는 추사의 말처럼 맑고 고결한 마음을 위한 수행(청고고아)이다. 글씨에 높고 낮음에 대해하여 물어본다면 말년 추사가 불이사상을 빗대어 말한대로 유마거사의 말로 침묵하는 것 어쩌면 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서 예술의 감상은 외경에서 내경으로 체험되는 것이라 결국 닶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누가 명필일까 영상과 말씀을 보고 듣지 않고 말씀드립니다 비판하지 않는 자,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자이니 열등감도 시기심이 없어야 스스로 온전해 집니다 추사보다는 이광사라는 분이 훌륭한 듯 합니다 다양한 서체에 능하네요 물론 추사는 창작성에서는 가장 훌륭합니다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인격이 먼저라고 봅니다 예술 세계에서는 좀 다를까요 그래야 상생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자세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원교와 추사는 개성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예서를 잘 썼고 누가 행서를 잘 썼다는 개인적인 평가를 영상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좀 어색하네요. 신필이니 하는 용어 사용도 삼가하고 각자 조용히 겸손하게 감상하는 것이 어떨까요? 두분 다 우리가 평가 할 수 없는 명필이니까요. 그렇지만 후세에서 많은 서예가들이 추사를 좀 더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추사 김정희가 한양에서 제주도로 귀양을 갈 때는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양에서 출발해서 12일 안으로 제주도에 반드시 도착을 해야지.. 만약 하루라도 늦게되면 죄인을 압송하는 관리가 문책을 받았다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와 함께 같은 역모에 관련된 죄명으로 곤장 40여대를 맞은 사람은 다음날 사망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심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는데... 곤장을 30여대 맞은 추사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를 들렸다가 갈 정도로 그렇게 시간적 여유와 몸 상태가 좋았을까요? 그 당시 제주도를 가는 배를 진도에서 승선을 한다고는 하지만 한가하게 해남 대흥사를 들려서 친구 초의 선사를 보고 갔다? 더구나 요즘처럼 차를 타고 더니는 세상도 아니었는데....
원교 이광사 같은 사람들은 국내에서만 공부를 했지만....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를 따라서 중국에 갔다가 중국에서 서예 공부를 했다는 자부심으로 인해서... 국내서 서예 공부를 한 사람들을 모두다 무시하고 자신의 글씨보다 수준이 낮다고 폄하를 했던 지극히 오만한 인물 입니다..
정말 좋은 강의입니다. 가마합니다. 원교 선생의 필체와 존재를 알게 되었네요.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준높은 해설 감사합니다.
더욱 많은 해설 부탁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풍부한 배경 설명에 탄복하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고난을 겪어야 보배가 되나 봅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귀를 즐겁게 해 이번 여름이 시원할꺼 같습니다~~~늘상 느낌받지만 감사드리고 고맙습니다 유투브를 통해서라도 배울수있다는게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반가워요 ㅎ
오늘도 너무 감동적인 영상 감사합니다
보는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서예의 세계입니다.
감사합니다 ^^
은미님 반갑고 또 감사합니다.^^
품격있는 해석
감사드립니다.
해설로 듣는 한 편의 다큐같은 느낌, 나 뿐일까요!
감사!
와우! 칭찬에 힘이 솟아납니다. 고맙습니다.
탁월한 설명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 _()_
감사합니다. 장미가 피어나기 시작하네요.
잘 보았습니다.
아주 수준이 높은 내용입니다.
人生到處有上手라는 말이 명불허전인 모양입니다.
원교와 추사와 같은 천재들의 창끝같은 심미안과 결기가 있었기에 그와 같은 높은 경지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이렇게 당대의 절정고수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을 수 있음이 행복이기도 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중한 내용이네요
감사합니다
관심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세한설명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강의를 통해 새로운 시작을 하려 합니다 나이들어 한문서예를 2 년 쓰다가 몇년 흘려보냈는데 다시 써 볼까 합니다 물론 대가들을 흉내도 못 내겠지만 제 마음대로 하려고요
강의 재미있었어요
네, 다시 서예를 하신다니 반갑습니다.
서예에 대한 좋은 정보 내용 잘보았습니다. 원교에 대한 작품과 실력을 다시한번 잘감상하였고 대단한 분인것을 알게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감과 격려 감사 드립니다.^^
감동의 강의. 주인공들에 대해 잘 알게 되었고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공감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시원한 날 되세요.
공부가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에 깊이 공감합니다. 글씨는 시대의 반영이라 원교의 시대는 추사 같은 파격적인 시도는 더 힘든 시대였겠지요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가잘되였읍닞다지리산천은사 글최감명받읍니다
Thanks!
고맙습니다. 감동이 느껴지네요.
문외한의눈에는 원교의글씨가
균형있고 보기즐겁습니다
네! 의견 감사합니다.^^
잘 배우고 감사드립니다 🙏
저도 감사드립니다^^
아주 깊은감상이었습니다 고생과 인욕 무시감이 여웅
보아주시고 공감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이광사 초서 대단하지. 한번 보면
푹 빠진다.
감사합니다.
20분이 어떻게 갔는지 모르게 잘 들었고 덕분에 약속에 늦겠어요^^
아무튼 글씨는 모르는데, 원교선생님의 지리산 천은사 현판은 보자마자 와, 좋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제 영상 때문에 약속에 늦으실지도 모르다니...ㅎ 영광입니다.
"보자마자 와-"라는 표현에 탄복합니다! me too!
다시 공부한것 같네요 대학시절에 배웠던 추사와원교ᆢ동국진체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교가 있어 글씨가 봉황에 올라탄들 뭔 소용이겠습니까
자기 만족밖에 더하겠습니까?
영상이 정말 좋습니다
고맙습니다. 날이 개이고 있네요.
오~!너무 감사합니다. 중요한 영상입니다.
도움이 되셨다니 다행입니다. 호두님 ^^
유홍준 전문화재청장보다 디테일한 설명 잘들었습니다. 모방창조 완전체 조선은 삼천리금수강산에 인재부국입니다. 모두를 빛나게 하는 관점이 돋보입니다
빛나는 댓글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깊이 있는 식견을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따스한 주말 되세요.
저는 원교편입니다.뭔가 인간적으로 짠해요.완당은 그런 원교한테 너무 잔인하구요.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네! 저도 팬입니다. 고맙습니다.^^
54세의 추사와 9년간의유배를 마친 63세의 추사의 내면을
글씨를 통해 비춰볼수 있어 무척 흥미롭네요 ~
해남 대흥사 에 꼭들러 두 현판 모두 보는것도 작은 바램으로 추가 되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대흥사를 가볼 생각입니다.^^
서예를 배우고 있는 중인데, 잘 몰랐던 서예가 분을 알게 되었네요. 두 서예가의 글씨를 비교하여 보여주시니 이해가 쏙쏙되네요! 좋은 영상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자주 뵙게 되기를!
천은사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조만간 가서 보고 싶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가히,
이 분 스스로가 절대고수의 경지에 이르르셨구나!
부럽습니다.
존경스럽습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추사 서결에 보면 획에 대하여 음양에 대하여 말하는데 쉽게 요약하면 가로획은 양이라 가늘고(가볍고) 세로획은 음이라 굵게(무겁게) 쓴다. 또한 완당전집을 보면 추사는 전절에서도 붓을 돌리는 위치 역시 음양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쓴다. 따라서 추사는 본인이 주장한 역학이론인 태극즉북극변에 따라 용필을 쓰고 역학의 음양 방위에 맞춰 음양대비를 강하게 준다. 그러므로 추사의 태극론에 따라 용필을 쓰면 추사체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추사는 단순히 임서만 하지 않고 학문과 서예를 연결하는 점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이러한 예 이외에도 중국 대가들의 서법론을 보면 임서만으로 서예를 완벽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태극론, 신유학적 이론, 불교이론이 붓의 용필법, 결구법, 장법과 연결되어있기 때문이다. 고로 글씨의 외형만 보고 평가하면 소동파 말을 빌려 어린아이와 같은 평이다. 요약하면 추사가 주장한 학문적 바탕은 곧 중국의 유학, 주역, 선종 등의 중국 학문이며 이를 통한 서예 즉 문자향, 서권기가 들어있는 서예를 높이 산 이유다. 추사의 학문적 기준에서 이광사, 이삼만는 당시 조선에 최고의 필력에 가까운 자들이었으나 그들의 임서한 글씨은 중국 글씨의 진품이 아니라 번각본이고 동국진체라는 개념도 중국적 학문 원리에 벗어난 것이다. 철저한 중국 학문의 엘리트인 추사가 보기엔 이런 조선의 글씨들은 서권기가 부족해 보였을 것이다. 즉, 추사에게 서법이란 곧 중국의 원류이기 때문에 중국의 학문, 중국 이왕의 글씨, 이왕 전 중국 비문 글씨, 이왕의 따라 발전시킨 당나라 글씨, 남종파의 문인화 기본이다. 그러므로 이광사처럼 쓰면 중국 법식에 멀어지기 때문에 그냥 막쓴 글씨가 된다. 마치 현대의 서법을 따르지 않고 자유롭게 쓰는 현대의 캘리그라피와 같다. 결론적으로 법을 지키면서 발전 시키는 법고창신이냐 법을 깨고 스스로 자라나는 파격이냐?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감상론, 추상적인 평가들로 서예를 논하면 밑도 끝도 없다. 사기꾼들이 대가 취급을 받는다. 그 때문에 실질적 증명 가능한 학문의 입장에서 추사는 이러한 자들에게 신란하게 비판한다. 그러나 말년에 유가족이 죽고 유배지를 통한 어려운 생활 속에 불교의 불이법을 체득하며 자신의 비판을 거둔다.(사실 이건 썰에 가깝다. 유배시절 이후 에도 비판한 글이 있다.) 추사가 불이선란도에서 말한 선종의 불이법은 좋게 말하면 세속에 초탈한 것이고 기존 학문이 정한 법식을 틀의 경계를 넘어선 것이다. 그래서 그의 친구 권돈인은 말년 최후의 추사 판전의 글씨를 보고 어떤 일이 잘되고 못되고를 따지지지 않는다.(불계공졸)이라는 말로 글씨를 평하였으니 이는 추사 말년 인생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다. 이러한 추사 인생을 생각했을 때 다른 사람의 글씨는 비판하는 것, 글씨를 찬양하는 것 쉽게하면 안되는 일이다. 글씨는 추사의 말처럼 맑고 고결한 마음을 위한 수행(청고고아)이다. 글씨에 높고 낮음에 대해하여 물어본다면 말년 추사가 불이사상을 빗대어 말한대로 유마거사의 말로 침묵하는 것 어쩌면 바른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 예술은 마치 거울을 보는 것과 같아서 예술의 감상은 외경에서 내경으로 체험되는 것이라 결국 닶은 각자 개인의 몫이다.
이토록 심도깊은 의견 주시니 놀랍고 감사합니다.^^
원교와 추사를 두고 풀어낸 이 영상 또한 명강이네요. 귀가 트이고 눈이 빛을 얻고 마음에 묘가 더해지고 이후로 붓을 잡으면 오른손이 보다 예리하게 꿈틀댈 것만 같습니다.
와아~! 이렇게 아름답고 영양가 넘치는 댓글은 저를 뛰어오르게 합니다.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신라시대 명필 김생에 대해서도 부탁드립니다.
누군가 김생을 추천해주실것이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타타오님의 해설과 덕담이 추사의 이상한 부분 글씨보다도 명품이십니다.
하이고~그렇게 봐주시니 고맙습니다.^^
문외한의 눈으로 느낌으로 글씨를 보니 엉뚱하게도 마치 피카소 입체파 그림같은 느낌이네요. 글씨를 보며 온갖 상상을 할수있어요.나만의 착각인가요?
그것 또 한 님의 특별함이라고 생각됩니다.^^
잘보고 갑니다.비록 서예는 잘 모르지만 너무 쉽고 귀에 속속 박힙니다
반갑습니다. 자주 뵈요 ^^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소중한 지식을 얻었습니다. 아트님의 역할이야말로 우리 미술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비춰 주는 빛입니다.
우리 서예계의 두 별을 모시고 현재의 서예인들을 두루 모시어 이런 자릴 만든 것 자체가 제가 영광입니다. 고맙습니다.
원교 이광사
절대 글씨쟁이가 아닙니다
추사의 학문이 상상초월을 초월한
경지라 글씨가 더욱 돋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이광사 글씨의 경지는 오랜시간 서예를
써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깊이가 느껴
집니다
네! 이런 번득이는 의견 참 감사합니다.
원교라는 분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참 고맙습니다. ^^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TataoCalliArt 👍👍👍
유홍준의 완당 평전을 읽으며 그의 오만 하고,
적게 배운 사람을 업수이 여기는 서운함이 있어 아쉬윘습니다.
세한도 국보가 되었어도
서운함이 쉽게 가시질 않네요.
네, 추사는 그 면이 있지요. 천재가 원만하기만 하지는 않은 면이 있습니다.^^
잘배웠읍니다~
고맙습니다 집중하자님! 반가워요.^^
진흙속의 보물을
발굴해 주셔
귀가 호강 했습니다.
원교 이광사
격려 감사합니다. 청신한 날 되세요.
우리나라도 중국 못지 않게 역사속 명필들이 참 많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동영상 감사합니다 선생님!
힘을 주는 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예술은 서바이벌 처럼 우위를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교 서결을 보면 얼마나 서예를 사랑하는지 추사와는 다른 면모를 봅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열을 넘어선 자리에서도 빛날 수 있다면.....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전남일대의 사찰을 다니다가 원교 이광사의 글씨를 알게 되었고, 점차 매료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원교에 대해 재평가를 해 주신 글, 감명깊게 잘 읽었습니다.
그러셨군요 반갑습니다.^^
누가 명필일까 영상과 말씀을 보고 듣지 않고 말씀드립니다
비판하지 않는 자, 상대방을
존중할 줄 아는 자이니 열등감도 시기심이 없어야
스스로 온전해 집니다
추사보다는 이광사라는 분이
훌륭한 듯 합니다
다양한 서체에 능하네요
물론 추사는 창작성에서는 가장 훌륭합니다
아무리 훌륭하다해도 타인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인격이 먼저라고 봅니다
예술 세계에서는 좀 다를까요
그래야 상생과 공존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깊이있는 댓글 감사합니다.
상대를 존중해야 자신이 존중 받습니다.
추사는 건방지고 상대를 깔아 뭉게는 심성의 소유자 입니다.
네 그런 성격에도 불구하고 천고에 이름을 남긴걸 보면 예술성은 가히 독보적이었던 거로 판단됩니다. 고맙습니다.^^
원교 이광사란분 대단하네요
네! 동감입니다. 굉장한 서예보물입니다.
전주에 살으셨다는 왕족출신 창암 이삼만선생을 소개해주세요
네, 창암샘 소개 예정입니다. 감사합니다.^^
@@TataoCalliArt 설화인가 전설에서는 추사선생님과 창암선생님하고 만나셨다는 전설인가 설화인가 내려오고있는데 그것도 좀 소개해주세요
전주 이씨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청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나의 안목으로는 알수없는 경지네요..🤪
🤭저도 빵은 잘 모릅니다.^^
고맙습니다. 새롭게 배웠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교의 글씨가 더 인간적이고 저에게 와닿네요.
추사는 원교의 비평을 많이 했군요
좀 자격지심이 있었을듯..,
의견 댓글 감사합니다.^^
예서는 추사요 행서는 원교라 했지요. 글자의 실용성이라면 행서겠지요.
실제로 추사가 원교를 조선글씨를 망친 원흉이라고 평했다면 김정희라는 인간의 저열함이 .......
어찌 학자라는 분이 선인에 대한 예의가 그정도 인가요.
원교의 글씨에 큰 감명을 받습니다.
감사합니다. 원교선생을 세상에 좀 더 드러내게 된 것 같아 보람있습니다.
원래 악플은 열등감에서 오는데
원교의 글씨가 너무 품격이 뛰어나니
추사가 악플을 달고 다녔던 게 아닐까요 ㅋㅋ
ㅎㅎㅎ그 말씀 일리가 있네요. 역대급 악플러 추사 ㅎㅎㅎ
@@TataoCalliArt 타타오님
추사선생께서 열등감에 악플을 달았다고 조롱하는 것은 고인을 욕되게 하는 것이지요.
모르는 사람들은 제멋대로 떠든다지만
글을 쓰는 우리는 그러면 안될거 같습니다.
학문과 예술은 각각 비판과 도전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건데 열등감 드립은....
진품명품 심사관으로 추천합니다.
하이고 ^^ 고맙습니다.
자세한 설명을 잘 들었습니다. 원교와 추사는 개성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예서를 잘 썼고 누가 행서를 잘 썼다는 개인적인 평가를 영상에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은 좀 어색하네요. 신필이니 하는 용어 사용도 삼가하고 각자 조용히 겸손하게 감상하는 것이 어떨까요? 두분 다 우리가 평가 할 수 없는 명필이니까요. 그렇지만 후세에서 많은 서예가들이 추사를 좀 더 평가를 하는 것은 사실이지요.
조용한 컨탠츠를 좋아하는 분도 계시지만 공영방송과는 다른 튀는 맛을 애호하는 분들도 계시기에 그런 측면도 있게 되네요. 의견 감사합니다.
개인 유튜브 채널에 와서 개인적인 평가를 한 것에 대해 배놔라 감놔라 하는게 ...... .. 더 우습네.......
붓을 펼침은 원교가 완당보다 낫고, 붓을 그음은 완당이 원교를 넘어선다고 봅니다. 다만 원교는 우리의 필치를 세우려 했고, 완당은 의도치 않게 우리의 필치를 이뤘다고 봅니다. 서예를 가지고 우열을 가리는 것은 아빠가 좋냐 엄마가 좋냐 하는 우문입니다.
네! 심도깊은 의견 고맙습니다. ^^
원교님 엄청난 경지의 댄서의 춤사위가 느껴 집니다.
멋진 표현이십니다.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어쩌면 부질 없기도 하다
붓질이 원래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명필이면 명필이지 진정한 명필이라니..
난 평필인데 .. 누가 내 진정한 평필을 알아주노...ㅋ
저 두 분이 눈물 흘리고 가실 꺼
오~~ 진정한 평필이구나.. 내가 궁극으로 추구하던...ㅎ
댓글 감사합니다.^^
보지않은 책 정리해드립니다.
서울 관악구 낙성대역부근
0일공 오공구일 이팔공공
수고하십니다.
설명을 듣고 또 원교의 엄청 멋진 글씨를 보니 추사의 인격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의견 감사합니다.^^
유홍준은 쓴 소설입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그 소설 읽진 않았지만 소설도 가치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소설이 역사로 인식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TataoCalliArt 대흥사의 괴담은 유홍준의 소설입니다. 학자는 소설을 쓰면 안됩니다.
중국의.서예가들과 우리 서예가들도 비교 부탁드립니다. 구양순은 어떤지..
좋은 의견이십니다. 고려해 보겠습니다.
추사는 50이 되어서야 남을 인정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선배의 학문관이 아닌 서예기풍에 대해 비평을 한다는 건 자기오만과 인성문제가있었음 아닐까 싶다. 더구나 명성에 대한 시기심도... 있는대로 보고 느끼고 감상하고 자기글씨를 쓰면 될것을...
네, 추사선생님 참 인간적인 면이 있죠. 장단점 고루 있어보입니다.
내가 짜장면을 좋아 한다고 짬뽕이 맛없다 평하면 편향적인 것 짜장은 자장대로의 맛, 짬뽕은 그대로의 맛이 있거늘~~
맛있는 의견 감사합니다.^^
세한연후에....
그렇죠? 향기가 비강을 때리게 되죠.
추사 귀향길 일화는 유홍준이 지어낸 소설같은 이야기인데 마치 진짜인것 처럼 역사적 일화로 다루게 되니 안타깝네요.
😌😅
원교선생의 글씨도 좋지만 추사선생의 글씨는 한 자 한 자가 그림 같습니다. 전 추사 선생의 손을 들어줍니다만...원교선생에 대한 비평이 너무 차갑고 날카롭네요.
네 동감입니다. 천재성은 추사가 윗길이라고 봅니다.
이름은 정희 자는 추사 호는 완당이라고 자기 스스로 밝힌 필담 자료가 발견됐는데 아직 모르시는 분들이 많네요..
자와 호,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고 저는 봅니다.
@@TataoCalliArt명, 자, 호의 차이를 알고 하시는 말씀인가요?? 알고 말씀하시는거면 정말...
공제가 이서보다 선대인데요
옥동 1662 윤두서 1668 생년이 그렇게 나오는데요.
추사가 대흥사에가서 초희를 봤다는것은 그냥 속설일뿐입니다.
네, 그럴지도 모르지요. 진실일지도 모르고요.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두분이 이미 교분이 있었답니다.
그래서 왕래했던 서신이 그걸 증명합니다.
추사 완승!!!!👍
의견 감사합니다.^^
@@TataoCalliArt 추사의 글씨는 예술인것 같습니다👍
극찬합니다.
원교 이광사 명필
의견 감사합니다.^^
글씨를 보는 안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틀림이 아닌 다름이라는 시각으로 보아야 할 일이지요. 추사가 원교의 글씨를 보고 한 말들은 틀렸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원교의 글씨를 보고 석전 황욱님의 글씨를 생각합니다
석전샘의 작품과 스토리가 충분하면 준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TataoCalliArt 감사합니다 항상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하응은요
🙂😆
영상이 교과서 입니다
학생들이 교재로 사용해야 될 것 같습니다
너무 고마운 말씀입니다. 감사합니다.
추사는 엘리트 의식이 강한
사람이지요ㆍ
네, 의견 감사합니다.
유배 9+3년 vs. 유배 23년
그러네요 감사합니다.^^
김정희의 글씨는 시중잣배나 쓰던 글씨다
다만 대중성을 가졌다는
하나의 이유만으로 높이
평가 되었다
마치 연예인들이 잘 난 인물로 잠시 우상이 되는 것 처럼
30년 이상 글쓴 사람이라면 이건 상식이다
의견 감사합니다.^^
원교와 추사에 대한 이야기는 후학 사짜들이 지어낸 구라에 불과하죠ㆍ
감사합니다.^^
무지랭이가 장난치듯 그린 그림같은 추사의 글씨 너무 과찬이 아닌가요?
의견 감사합니다.
눈을 조금만 더 크게 뜨고 보십시요
추사 김정희가 한양에서 제주도로 귀양을 갈 때는
역사의 기록에 의하면..
한양에서 출발해서 12일 안으로 제주도에 반드시 도착을 해야지..
만약 하루라도 늦게되면 죄인을 압송하는 관리가 문책을 받았다고 하는데...
추사 김정희와 함께 같은 역모에 관련된 죄명으로 곤장 40여대를 맞은 사람은
다음날 사망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심한 문초와 형벌을 받았는데...
곤장을 30여대 맞은 추사 김정희는 해남 대흥사를 들렸다가 갈 정도로
그렇게 시간적 여유와 몸 상태가 좋았을까요?
그 당시 제주도를 가는 배를 진도에서 승선을 한다고는 하지만
한가하게 해남 대흥사를 들려서 친구 초의 선사를 보고 갔다?
더구나 요즘처럼 차를 타고 더니는 세상도 아니었는데....
네, 생각해볼 여지가 있네요.^^
공제는 선조 옥동은 인조시 인물입니다
저는 생년과 기록을 중시했습니다.
피카소 같다
😆
조맹부 왕희지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당시에도 추사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은 많았을 것이다
단지 추사보다 쇼맨쉽에서 뒤쳐졌을뿐
솔직히 예술이라는게
제멋아닌가
피카소도 그렇고 달리도 그렇고 🙄🙄🙄🙄
😂
추사 인성 더럽네..
9년의 참교육은 효과가 있었군요~
의견 감사합니다.
원교 이광사 같은 사람들은 국내에서만 공부를 했지만....
추사 김정희는 아버지를 따라서 중국에 갔다가
중국에서 서예 공부를 했다는 자부심으로 인해서...
국내서 서예 공부를 한 사람들을 모두다 무시하고
자신의 글씨보다 수준이 낮다고 폄하를 했던
지극히 오만한 인물 입니다..
네, 그렇군요!
타인의 것을 혹독하게 비판한 추사는 속좁은 소인배
🤣
개인적으로 추사같은 인간을 젤 싫어함
자기만의 줏대로 세상을 평가하려는 사람
오직 자신이 세상의 중심인척 하는 사람
재주라 해봤자 글 쓰는 재주밖에 없는 ~
인격과 소양이 글씨의 본질이라면
퇴계 이황의 글씨가 첫번째가 아닐까
~~🤔🤔🤔🤔🤔
😌
해설이 미려하다ㅡ
댓글도 우아합니다.^^
@@TataoCalliArt 답변 감사함다. 깊이있고 섬세한 표현솜씨가 대가들의 서체를 능가하십니다. 부럽슴다.
대흥사 초의, 대웅보전 현판 이야기는 기록이 없고 유배길 죄인에게 있을 수 없는 행적이라고 합니다.
네, 그런 상상을 곁들여 한 분이 있고 그럴 수 없다고 공격한 분도 있지요. 여기는 그 디테일을 밝히는 법정은 아닙니다.^^
@@TataoCalliArt
법정은 아니라고 하시지만 박종인의 주장에 의하면 유홍준이 만들어 낸 픽션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아무데도 없다고 하는 말을 자꾸 옮기는 것도 옳지 못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서예를 좋아하는 사람의 눈으로 볼때 추사글씬 …..그냥 이름있는 사람이 쓴거라니 …..과대평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