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리웃 영화 써머스비와 많이 유사합니다. 전쟁 후에 돌아온 남편이 얼굴과 행동 말투는 닮았는데 키와 발크기가 차이 납니다. 남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전과 다르게 가정에 충실한 그에게 끌리고 지내는데 실제 남편과 같이 있었고 지금 남편 행세를 하는 이가 나타나며 문제가 생기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조상이 노비라고 해도 조선 이전 고려나 신라 혹은 더 이전에는 귀족 가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또 노비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한 사람중에 귀족 양반도 꽤 있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노비는 영원한 노비, 귀족은 영원한 귀족이란 건 없습니다. 우리들 모두 조상들은 다수의 양인과 소수의 노비와 극소수의 귀족의 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인구 800만에 30퍼 300만 가까이 노비여서 다수이고 노비는 성이 없었으므로 철저히 신분 구분이 되었기 때문에 피가 섞여 있다는 허황된 망언이고 일제시대 접어들어 노비제도 사라지면서 노비들이 성씨를 가졌고 족보를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머슴이 있었다는게 사실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인구의 50퍼 이상은 조상이 노비일 확율이 높다는것이 팩트
@@양정옥-h6t 노비도 종류에 따라 외거노비, 솔거노비, 공노비, 사노비 다 따로따로라서 재산을 축적할 수는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수천수억 모으는 노비도 있었구요. 전쟁 때 힘들어하던 왕을 위해 자기 전재산 풀어서 모신 노비를 왕이 면천(노비신분에서 해방)시켜준 기록도 있고, 이 이후 면천을 위해 왕실에 기부넣어도 면천을 위한 사심으로는 면천 안시켜준다고 한 기록도 남아 있어요 양반도 귀족과는 다르게 대대손손 공시에 합격해 공무원 자격을 유지해야 지킬 수 있는 신분인데다 체면때문에 밭갈고 땀흘리는 노동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배 곯으면서도 마누라 삯바느질 돌려 글공부하는 가난한 선비얘기도 허구언날 나오는거구요. 가난한 양반이면 천민만도 못하게 살기 힘드니까 돈주고서라도 족보를 바꾸려고 한거구요. 천민입장에선 아무리 돈이 많아봐야 고작 천민이라고 무시당하고 손가락질당하고 인권침해당해도 아무 말 못하니 기를 쓰고 족보를 사려한거구요.
들으면서 백씨일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진실을 꼭 이야기하진 않으니깐 알수없지만 시대상 백씨를 심문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여자 다모가 있었다면 가서 이야기는 들어봤을거고 추론으로 나온 이야기처럼 속 이야기를하니 감추려고 그 이후 심문자체를 못하게 아닌가 추론합니다.
딴따라들 모아놓고 엉터리 국뽕 역사 가르치고 있는데? 성을 일반인이 쓰게 된게 조선? 그 때 백성의 극히 일부 양반가문만 사용했고 일제시대와서 일본인들이 신분해방하고 성을 등록하라고 해서 일반국민들이 성이 생긴건데 꼭 조선시대에 대부분 성이 있었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네. 그리고 일부 노비들만 힘들었다? ㅋㅋ 대다수가 힘들고 극히 일부가 예외겠지
심온이 명나라에서 돌아와서 압송되고 집안이 절단다는것으로 시작되는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거기에서 장혁이 심온 집안의 노비로 나오고 글을 몰랐기때문에 세종의 밀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심온의 집안이 절단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가족들도 다 죽게 되죠.. 결국 어린 장혁만 세종이 목숨걸고 살리게 되고 동북면 지방으로 쫒겨나게 됩니다. 거기에서 이방지를 만나 검술을 배우고 나중에 세종을 죽이려고 하죠..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많네요. 교수님은 노비 제도가 로마나 유럽의 노예 제도와 다르고 더 인간적이였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또 자기 백성을 노예로 삼아 대를 이어 착취한 경우는 다른 국가나 문화에는 거의 없습니다. 로마의 경우도 채무 관계로 노예가 되고 돈을 벌어 노예에서 해방되는 식이였죠. 아니면 전쟁 과정에서 적의 백성을 노예로 삼는 식이였죠. 조선의 노비 제도는 같은 백성을 노예로 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잔혹한 제도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흑인 노예도 주인 잘만나면 나름 인간적인 대우 받으면서 잘 살 수 있었죠. 그렇게 일부 케이스를 갖고 조선의 노비 제도는 다른 국가나 문화의 노예제도 보다 낫다고 하는 건 다른 나라나 문화의 노예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편협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부연하자면 조선의 노예 제도가 잔혹한 이유는 노비의 후손들이 노비 신분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 후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며 자연스럽게 노비들이 양반들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초기 중기는 그렇지 못했죠. 이는 무엇보다 조선의 현물화폐 중심의 원시적 경제 시스템 때문에 노비를 비롯한 사회 하층민들이 경제적 부를 축적하여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편을 든 것도 그 때문이죠. 전란 중 명나라 군대가 들고온 은전이 전후 조선에 유통되면서 조선의 경제가 살아나고 상실된 노동력 부족으로 조선의 신분 시스템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으나 명나라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조정은 은전 도입을 거부 다시 원시 경제 시스템으로 복귀를 선택 했습니다. 조선의 조정이 그렇게 한 진짜 이유는 은전의 도입이 생산과 유통을 활성화시켜 사회 생산,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하층민들의 경제적 부를 촉진하고 그것이 결국 유교적 신분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은 끊임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기근, 그리고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되죠. 양반들이 유교 신분제도로 인한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온 백성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선택을 하게 된거죠. 물론 조선 후기에 와서 일부 선각자들이 선진적인 금속 화폐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원시적 현물화폐 시스템으로 인해 생산력 자체가 너무나 낮았고 화폐의 교환을 중심으로 한 유통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발적인 근대화가 쉽지 않았죠. 조선 후기 화폐 개혁 또한 왕가와 관리들의 비리로 인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박살, 결국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게 먹히고 봉건 신분 제도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교수님 찐 팬임니다 그래도 국사 만점 맞은 84학번 ㅎㅎ 고조선 역사는 고고학 이외에는 그래도 무언가 무서운 역사가 반드시 있었다에 1000% 목숨겁니다 프랑스 국보1호 고인돌 우린 지천에 깔려있고...서양에는 돌로 지어진 수만은(콜로세움) 유적들 나는 어린 딸에게 동양의 왕들은 그래도 서양보다 덜 잔있했다 피라미드 등등 지을때 월급도 주었다 그러면 나는 농사는 누가 지었을까? 동양의 용은 극히 선하게 나오고 서양의 드래곤은 인간을 해치고....그러면서 용도 선과 악이 있단다 악의 용은 이무기라 표현하지...그게 신으로 나타나 인신공양 습성...여기까지만 말하고 맙니다 누군가는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봅니다 교수님의 아주 중용의 역사강좌 재밋게 보고있습니다 오늘은 80분 노비강좌 보면서 쏘주 한잔 먹습니다 감사합니다 방대한 지식을 80분에 가져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찐≠➡眞[진]·참 | 임니다≠➡이[다]+-ㅂ니다⁰「맺음끝」=입니다 | 잔있≠➡殘忍[잔인] | 재밌·재밋≠➡滋味[자미] 있=자미 있≒재미있 | Миру мир! 燒酒[소주soju] is introduced by Mongol[Монгол]ian soldiers during the Mogolian invasion in the 高麗[Goryeo] dynasty.
노비를 왜 자국민에서 뽑았는가를 이해하려면 조선의 전쟁과 노비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전쟁을 하면 포로를 잡게 되고, 그 중 일부는 공로에 따라 참여자들에게 포상으로 나눠줍니다. 그런데 조선이 주도한 해외정벌은 횟수가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변방을 침탈하는 여진족 부락이나 대마도를 정벌하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것도 만만찮은 국가재정과 국력을 쏟아야 합니다. 왜나면 해외정벌을 나가려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군량미와 잘 훈련된 정예병력이 필요합니다. 왜 이런 지출을 해야하는지 알려면 왜적과 여진족에 대해서도 알아야합니다. 여진족은 농경민족이나 유목을 일부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농경민족의 전술과 유목민족의 장기인 기병전술이 동시에 녹아있습니다. 때문에 군대편제가 균형있고 기병은 평소에 유목생활을 하며 말타고 사냥까지 하니 일상생활 중에 기본적 훈련은 하게 되는 것이죠. 여진족이 이런 이유로 조선이 출병을 할려면 전국애서 군대를 뽑아 잘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이 여진족의 특성을 잘 알듯이 여진족도 조선의 사정을 잘 압니다. 때문에 전면전이 펼쳐지면 조선군 약 1만여명이 진격해오면 여진족은 부락을 떠나 산속애 숨습니다. 왜냐? 어차피 조선이 몇년간 모은 군량미로는 1만이 넘는 대군이 여진족 땅에서 장기전을 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 여진족은 조선 정벌군이 오면 산에 숨어서 돌아가길 기다리는거죠. 그렇다면 조선군이 산기슭에 쫒아들어가서 작전을 할 수 았을까요? 조선 정예군이 아니라 몽골 정예기병, 알렉산더 정예 장창병이 와도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방어와 매복은 뚫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선군이 할 수 있는건 동물을 납치하거나 일부 여진족이 있으면 포로로 잡고 몇은 목을 쳐버리는 정도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세종대왕 때, 이순몽과 최윤덕이 정벌을 나갔다가 정벌을 대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정찰에는 도가 튼 여진족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군대를 나눠 여러 여진족부락을 동시에 덮차고, 부락은 태우고 여진족을 대거 죽이거나 포로 잡는 대전공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이후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정예병 키우는게 정말 어렵다는 것이죠. 그리고 일본 대마도 역시 머찬가지 입니다. 일본 해적은 대마도에서만 생기지 않고 대마도와 고토 섬 두곳은 해적의 전초기지, 털러 가기 전 집결하고 장물 처리하는 곳 정도입니다. 때문에 대마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해서 일본 해안 전역에서 오는 해적을 대마도에서 오지 못하게 할까요? 그리고 초기에는 대마도와 조선 사이 통상이 자유롭지 못해서 대마도 사정이 어려웟습니다. 대마도는 정말 평야가 없다시피 하고 생선을 주로 팔아 먹고 사는데 일본 보다 가까운 조선에 못 팔아먹습니다. 거가다 일본에 팔려면 대마도랑 본토 사아 이키인가 아키인가 섬 하나가 있어 경쟁에서 불리합니다. 때문에 조선과 교역을 안 하면 생활이 여의치 않습니다. 조선도 후손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 없는 바보들이 아니기에 압니다. 대마도에 정예병을 휘몰고 가봐야 대마도민들을 산 속에 숨을 것이고 마을을 태우고 도망 못 간 주민을 잡거나 죽인다해도 결국 다른 일본지역 해적과 합세해 털러온다는 것을요. 그러면 누구는 그러겠죠. 침탈하는 왜구나 여진족 말고 명나라나 일본에 쳐들어가서 정복하면 되지 않느냐? 조선이 돈 들여서 정예병 촤대로 카워본게 1.2만 입니다. 1만 2만 가지고 뭘 정복합니까. 조선은 국방비를 5명이 부담하는 것 보다 한명이 나와서 몸으로 때우고 나머지가 군포를 군대 간 애 한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이나 활 갑옷은 자비로 구매하게 하고요. 이러니 군대 정예병에 모집되는 사람부터 재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무역을 안하기에 해외정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오늘날 미군 함대가 지구상에 없는 곳이 없습니다. 거기다 미국은 페르시아만 또는 걸프만이라 불리는 좁은 해역에 단일 함대를 박아둡니다. 왜 일까요? 글로벌경제는 누가 뭐래두 미국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고 이는 미국의 교역이 세계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면 미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어디서 석유분쟁이 터지거나 무역로가 막하면 미리 배치해둔 함대가 즉각 반응합니다. 이렇듯 무역을 안하는 나라가 뭐하러 막대한 돈 쓰면서 주변국 쳐들어갈까요? 내가 시장을 열고 물산이 돌고 해야 외국애서 땅을 뺏고 그 지역에 물건 팔거나 또는 정복지의 토산물을 대내외 무역에 이용하는 것이죠. 따라서 농사가 근본인 조선은 해외원정을 할 직접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가면 조선이 해외정벌을 안하면 국내에서 노비를 뽑아 써야합니다. 그런데 노비를 자국민을 썻다고 비난하는데 다른 나라는 안 그럴까요. 봉건제 국가이던 일본은 어떨까요 전국시대처럼 영주들 간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는 항복하지 않았던 정복지에 대햐 가차없이 포로를 죽이고 주민은 노예로 삼습니다. 거기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죠.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까요? 중국은 말할 것도 없죠. 역시 정치가 혼란했던 시기가 많았던 만큼 민생이 불안했고 조선처럼 먹기 살기 함들어서 자진해서 노비가 되는 경우나 쌀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노비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기다 전쟁이 잦았던 많큼 포로로 잡힌 경우에는 노비로서 공신들에게 나눠지기도 합니다. 거기다 난 중에 장원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왕조에 등용이 못 된 경우에는 삼국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문벌귀족이라 할지라도 그 날로 하층민으로 추락하고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부잣집에 몸까지 팔아야 하죠. 글 잘쓰는 선비야 문객으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가족이 먹고 살 수는 없죠. 그리고 숙청에 휘말리면 재수좋으면 그 가족은 목숨이라도 건져 노비라도 되죠. 그라고 유럽은 어떨까요?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처럼 영주간 경쟁이 치열하니 잡으면 죽이고 노예로 만드니 교회가 들어가서 "우리 크리스찬끼리 왜 이러느냐 다 같은 허나님의 자식 아니냐" 간신히 말리는 정도입니다. 하도 혼란스러우니 교회애서 기사도를 만들어 보급했죠. 유럽 사람들이 다른 나라보면 야만이라 하는데 유럽 내에 내전일어나는 거 보면 살벌합니다. 자국민이라서 봐준다 그런거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러겠죠 "그거는 귀족이나 왕이 있는 계급제 사회니깐 그런거지 18.19세기랑 비교해야 하는거 아니냐 그 시기에 영국은 노예제를 폐지했는데 조선은 있었다" 맞죠 조선은 농경사회이고 경제는 유럽 근대이전에 머물러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가본방식은 대규모 농장인데 어떻게 조선이 노비제를 폐지할까요? 노비는 생산수단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산업혁명을 하면서 사람 손으로 샹산하던 것을 기계가 하게 됬고 그 기계를 다루는 숙련공이 필요하게 돤거죠. 그 임금이 정말 하루 벌어 먹고 하루 살 정도의 임금이간 했지만 기계를 다루는 시대가 된 만큼 옛날처럼 단순무식하게 노예로 운영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과학기술이 성장할수록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 역시 교육 수준이 올라가야합니다. 여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대중화가 단순히 민주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경제와 과학기술이 성장함에 따라 직업군이 바뀌었고 사회에 부가 늘어남에 따라 그 영향이 하충민에게도 영향울 미친겁니다. 옛날에는 글자하나 몰라도 지주가 농사일 시키면 할 수 있었지만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내게 팔요한 교육은 늘어나고 거기에 맞춰 역량도 성장하게 되죠. 민중이 성장해 부르주아가 돠고 성공을 이룸에 따라 "나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얼마인데 그걸로 귀족과 왕이 먹고 살지 않느냐"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거죠.
위에 글이 길고 다듬어지지 않아 읽기 힘들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선은 계급사회이고 노비는 생산수단이라는 것, 조선은 무역을 하지 않기에 해외원정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 주변에 있던 왜구와 여진족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대규모 원정은 정말 수년간 국가가 총채적으로 함을 모아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로 결국 조선은 자국 내에서 노비를 뽑아 쓰는 구조인 겁니다. 결코 조선 사대부가 악독해서 그런게 아니라 환경이 그렇다는 것, 또 이는 중국 알본 유럽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18.19세기 유럽과 조선을 비교한다고 해도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산업이 변하고 생산도구가 바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유럽은 기계가 대량생산을 하고 그 기계를 숙련공이 다루는 것이고, 조선은 아직 산업혁명의 여파가 전해지지 못해 사람의 힘에 의해 농경을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인간적 이었다? 아니었다? 가 뭐 그리 중요하지! 서양이든 조선이든 그 차이는 미묘하고 의미도 없고 중요치 않다! 본질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는 거 생사여탈권을 주인이 가지고 있는데 노비 한 놈 죽인다고 주인이 처벌 받는 것도 아니고 서양이든 조선이든 노비는 파리 목숨 이었다 라는게 중요하지.
조말생 스캔들이라 당시 엄청 유명한 사건으로 이건때문에 조말생이 이후에도 공적이 많아도 삼정승까지 못오르게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대법에 따라 사형위기에 처했으나 세종이 조말생 능력 자체는 높게 사서 온갖 사형요구 여론에도 살려주었고 이후 복직은 시켰으나 저때 사건으로 이미지 큰타격을 입어 삼정승은 못되었습니다
오히려 재산이라 두들겨맞아주는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흑인노예도 그렇고 우리나라노비도 그렇고 운반과정에 문제가 있을수있어도 일단 주인에게 예속 되면 사이코패스가 아닌이상은 돈주고 사오거나 돈받고 팔수있어서 몸에 탈나게는 잘 안할걸로 알고 있어요 놔두면 값어치오르는 금덩이 함부로 하는거 봤습니까 되려 양반들에게 피해당하고 산건 농민들이 더 많았어요 양반들이 다른 계급 건드려도 아무도 이의제기 못하는 그런법이 조선에 있었는데 양반들은 자기네 노비들은 재산이라 함부로 못했지만 농민들은 자기와 상관없어서 농민들밭에들어가 농작물 훔치고 힘없는 농민들 패도 농민들이 죽어나가는경우 아니면 아무말도 못했어요. 대감집에는 노비가 더큰소리친다는 말도 노비가 생각보다는 그리 박하지않았고 흑인노예도 생각보다 박하지않았답니다. 흑인노예에 대한 실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읽어보면 제대로 고증되어 나옵니다. 딴데로 샜는데 미국은 흑인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인디오차별이 더문제 되는 나라입니다. 생각보다 조선의 노비와 흑인노예들은 재산이란 이유로 가혹하게 다뤄지진 않았습니다. 물론 만나는 주인이 사이코패스라면 답이 없지만
교수님 조선역사상 노비가 가장 많은 시기는 세종때입니다 그리고 부모중 모가 노비일때 노비로 하는것으로 확정한것이 세종이죠 왜 그걸 피하면서 강연를 하는지요 노비입장에서 가장 안좋은 시기이죠 그리고 내용중 노비는 상전을 고발할수 없습니다 법이 멀고 주먹이 가까워 고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죠
재미있는 우리의 옛이야기 같이 말씀하시면서도 듣다보니,,
매우 깊은 내용을 전해주시네요
새롭게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방금 tv 보고 진짜 너무 설명 잘하셔서.. 이런 강연이나 강의하는 분이 많아져야지요.. 그냥 말하고 넘어 가는 게 아닌 알기 쉽게 용어 까지 풀어서 설명. 미국 실리콘 밸리에서 강조하는 배움입니다.
백씨 이야기는 진짜 넷플릭스에서 드라마로 만들면 대박 날 듯!!! 와!!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네요!! 대박!!!
현대판으로 해도 잘 맞을 것 같음
헐리웃 영화 써머스비와 많이 유사합니다. 전쟁 후에 돌아온 남편이 얼굴과 행동 말투는 닮았는데 키와 발크기가 차이 납니다. 남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이전과 다르게 가정에 충실한 그에게 끌리고 지내는데 실제 남편과 같이 있었고 지금 남편 행세를 하는 이가 나타나며 문제가 생기는 내용입니다
한 시간이 넘는 역사 이야기가 휘리릭 지나갔네요ㅎㅎ 넘 재밌게 잘 봤습니다😊
재미있는 사건이네요. 보통은 실제로 대화하는 투의 강의가 좀 더 집중이 잘 되는데, 그런 어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딕션이 워낙 좋으시고 깔끔하고 명료한 문장들이라 귀에 쏙쏙 들어오는듯 합니다. 명강의 잘 듣고 갑니다.
강의 마스터
정말 옛날 이야기처럼 맛깔나게 얘기 하시는 이야기꾼이시네요
딕션이 참으로 좋으십니다 😊
이익주는 역사천재,
끝까지 안들을수가 없어요,감사!
푹 빠지게 강의하시네요.
엿날에도 이런일이
엣날의 역사가 이렇게 재밌게 쉽게 이해할수있었던적은 처음이요 ! 사람들의 편견과 편력이 얼마나 무서운지 많은걸느끼게 해준 영상이었네요
재밌·재밋≠➡滋味[자미] 있=자미 있≒재미있 | Cầu nguyện cho Үкраїна và hòa bình.
강의를 너무 잘해주셔서 내용이 귀에 쏙쏙 너무 잘들어오네요^^
그리고 조상이 노비라고 해도 조선 이전 고려나 신라 혹은 더 이전에는 귀족 가문이었을 수 있습니다. 또 노비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한 사람중에 귀족 양반도 꽤 있습니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노비는 영원한 노비, 귀족은 영원한 귀족이란 건 없습니다. 우리들 모두 조상들은 다수의 양인과 소수의 노비와 극소수의 귀족의 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선인구 800만에 30퍼 300만 가까이 노비여서 다수이고 노비는 성이 없었으므로 철저히
신분 구분이 되었기 때문에 피가
섞여 있다는 허황된 망언이고
일제시대 접어들어 노비제도 사라지면서 노비들이 성씨를
가졌고 족보를 사들이기 시작했으며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에 머슴이 있었다는게
사실이고 따라서 우리나라 인구의 50퍼 이상은 조상이 노비일 확율이 높다는것이 팩트
@@아침햇살-l3r 노비가 무슨 돈이 있어서 족보를 사들임 돈 많은 중인들 상인들이 가난한 양반의 족보를 사들인거지
신분을 샀는지는 모르겠으나 재산이 있는 노비도 있긴 합니다
성균관 노비는 국가소유의 노비지만 나름 월급이 지급되어 재산을 모을 수 있었고
가난한 양인은 먹고살려고 월급받는 출퇴근 노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양정옥-h6t 노비도 종류에 따라 외거노비, 솔거노비, 공노비, 사노비 다 따로따로라서 재산을 축적할 수는 있었습니다.
사람에 따라서 수천수억 모으는 노비도 있었구요.
전쟁 때 힘들어하던 왕을 위해 자기 전재산 풀어서 모신 노비를 왕이 면천(노비신분에서 해방)시켜준 기록도 있고, 이 이후 면천을 위해 왕실에 기부넣어도 면천을 위한 사심으로는 면천 안시켜준다고 한 기록도 남아 있어요
양반도 귀족과는 다르게 대대손손 공시에 합격해 공무원 자격을 유지해야 지킬 수 있는 신분인데다 체면때문에 밭갈고 땀흘리는 노동을 할 수 없었어요.
그러다보니 배 곯으면서도 마누라 삯바느질 돌려 글공부하는 가난한 선비얘기도 허구언날 나오는거구요.
가난한 양반이면 천민만도 못하게 살기 힘드니까 돈주고서라도 족보를 바꾸려고 한거구요.
천민입장에선 아무리 돈이 많아봐야 고작 천민이라고 무시당하고 손가락질당하고 인권침해당해도 아무 말 못하니 기를 쓰고 족보를 사려한거구요.
비ㅡ😊❤
이렇게 인생을 오래살았는데 처음 아는 사실이 정말 많네요 역시 죽을때까지 배우는게 맞나봐요
빨리 들으면 어려운 단어와 문장들을 항상 천천히 또박또박 말씀해주셔서 귀에, 머리에 쏙쏙 들어와서 너무 좋아요~~^^
말씀 참 재밌고 집중되게 잘하심.
ㅛ
프사 ㅅ발아
세종이 답답할 정도의 효자가 아니라 조선 그 시절에는 왕이여도 부모가 아무리 잘못이 있어도 효를 벗어나면 주변 사람들 조차 왕을 매도하고 옳지 못하다 했음. 광해군의 마지막도 그래서 끝났고.
너무 귀여워요!
그리도 솔직함이 너무 예뻐요!
그대 목소리... 감동 감동!!
홀로 처녀처럼 늙어가는 형수가 그렇게라도 재가 하겠다는데 모르는척 했다면 그 사달이 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백씨부인의 생존방식이 소름 끼치도록 독하네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들으면서 백씨일거라고 생각했어요.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자신의 이익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진실을 꼭 이야기하진 않으니깐 알수없지만 시대상 백씨를 심문하지 않을수도 있지만 여자 다모가 있었다면 가서 이야기는 들어봤을거고 추론으로 나온 이야기처럼 속 이야기를하니 감추려고 그 이후 심문자체를 못하게 아닌가 추론합니다.
교수님의 강의는 집중력이 장난아니게 만드네요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역사를 하나하나 정리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딴따라들 모아놓고 엉터리 국뽕 역사 가르치고 있는데? 성을 일반인이 쓰게 된게 조선? 그 때 백성의 극히 일부 양반가문만 사용했고 일제시대와서 일본인들이 신분해방하고 성을 등록하라고 해서 일반국민들이 성이 생긴건데 꼭 조선시대에 대부분 성이 있었던 것처럼 거짓말을 하네. 그리고 일부 노비들만 힘들었다? ㅋㅋ 대다수가 힘들고 극히 일부가 예외겠지
귀에쏙쏙 강의 넘 멎지세여 최고!!
귀에 속속 들어와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춘수는 자식이 양자로 있으니 백씨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증언을 했지 싶네요 서로의 입장을 이용해서 줄타기 물타기 백씨 보통이 아니네
진짜 악녀중의 악녀.. 백씨부인 처벌이 끝까지 없는걸보면 권선징악이 아니네요
덕분에 역사를 참 재밌게 듣고갑니다. 옛날에도 지금과 비슷하게 교묘한 사기꾼들이 존재 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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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랬더라 하루의 절반 이상을 자기 의지대로 쓸 수 없으면 노예라고... 사실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는 월급쟁이들 모두가 사실은 노비랑 다를게 없지요. 자유롭게 퇴사하고 이직하면 되긴 하는데 그게 쉽지도 않고, '굶어죽을 자유'밖에 없는 이 시대에는 말입니다.
😊😊😊😊
그건 노비입장에서 하는 생각이구요 양반생각은 다르지요 ㅋㅋㅋㅋㅋ
월급쟁이는 돈받고 일하던 머슴과같지,,뭔 노비냐?
아무리 섷명해줘도 이해를 못하니까 조선시대에 개돼지만도 못한 노비가 30%엿다는말이 맞어
유전자가 거짓말하나? ㅋㅋ
정말 재미있게 잘 들었습니다~~😊
KBS 역사스페셜에서 정초부 시인님의 영상을 본 뒤
그의 시를 더 찾아 읽어봤습니다.
다시 들으니 여춘영과 정초부의 아름다운 인연이 새삼 부럽습니다.
엄청난 사건이자 작품이네요..... 리플리, 재심, 반전에 반전.... 영화로 만들어도 성공할 듯
개부리가 너무 강렬해서..
십분 쉬었다가 봤습니다.교수님 정말 집중해서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친구처럼 지냈다지만 끝까지 노비 문서는 파기안했나보네요
양민으로 만들어서 친구했다면 더욱 좋았을텐데....
그만해도 고맙지요
노예가 고통스러운만큼 주인은 편리할테니까요
…ㄹ텐데≠➡…ㄹ 터+이[다]+-ㄴ데⁰「이·맺음끝」=…ㄹ [터인데=텐데] | Пeрeмога Үкраїнi!
양인이 되면 각종 노역에 동원되거나 했을테니 노비로서 두고 보호한건 아닐까요?
유연
너무 불쌍 ~~
유연전 이야기는 제발 드라마화나 영화화 하자
세종의 양면성 ??
노비종모법을 만들어서 노비를 대량 생산하게 하는 시발점인데요...
본인 은 정초부 대한 역사를 알고있었지만 .. 새로운 지식을 얻는 느낌이다. 감사 함니다.
하ᐟ⁰²[다]+-ㅂ니다⁰「맺음끝」=합니다 | Пусть наш Бог хранит Үкраїну.
김복준교수님 멋짐 !!!!
재미있게잘들었습니다.감사합니다
흥미진진한 추리소설 한 편을 읽은 느낌이네요
심온이 명나라에서 돌아와서 압송되고 집안이 절단다는것으로 시작되는 드라마가 뿌리깊은 나무입니다.
거기에서 장혁이 심온 집안의 노비로 나오고 글을 몰랐기때문에 세종의 밀서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 심온의 집안이 절단나고 그 과정에서 자기 가족들도 다 죽게 되죠.. 결국 어린 장혁만 세종이 목숨걸고 살리게 되고 동북면 지방으로 쫒겨나게 됩니다.
거기에서 이방지를 만나 검술을 배우고 나중에 세종을 죽이려고 하죠..
재밌네 최근에 본 컨텐츠중에 제일 재밌다
사실과 다른 부분들이 많네요. 교수님은 노비 제도가 로마나 유럽의 노예 제도와 다르고 더 인간적이였다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지만 그렇지 않았던 경우가 훨씬 더 많았습니다. 또 자기 백성을 노예로 삼아 대를 이어 착취한 경우는 다른 국가나 문화에는 거의 없습니다. 로마의 경우도 채무 관계로 노예가 되고 돈을 벌어 노예에서 해방되는 식이였죠. 아니면 전쟁 과정에서 적의 백성을 노예로 삼는 식이였죠. 조선의 노비 제도는 같은 백성을 노예로 삼는 역사상 유례가 없는 잔혹한 제도였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흑인 노예도 주인 잘만나면 나름 인간적인 대우 받으면서 잘 살 수 있었죠. 그렇게 일부 케이스를 갖고 조선의 노비 제도는 다른 국가나 문화의 노예제도 보다 낫다고 하는 건 다른 나라나 문화의 노예 제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나오는 편협한 주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 듣고보니 맞는 말씀이네요.
노비들이 인간적인 대접을 받았던 때는 세종 때 이후는 없는 듯 해요.
세종이 노비들에 대한 처우 규정을 마련한 것은 맞지만 사실상 그 후대 왕때 제대로 지켜지진 않았던 듯
다른 나라의 노예제도를 다 알지 못해서 그런데 님의 말이 맞다면 우리의 노비 제도는 진짜 잔혹하네요. 부모가 노비면 자식도 자동으로 노비로 살아야했으니..
이 놈의 나라는 진짜 제대로 된 게 없는듯.
좀 더 부연하자면 조선의 노예 제도가 잔혹한 이유는 노비의 후손들이 노비 신분을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 후기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사회 시스템이 붕괴되며 자연스럽게 노비들이 양반들의 억압에서 벗어나기 시작했지만 초기 중기는 그렇지 못했죠. 이는 무엇보다 조선의 현물화폐 중심의 원시적 경제 시스템 때문에 노비를 비롯한 사회 하층민들이 경제적 부를 축적하여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킬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수많은 조선인들이 일본군의 편을 든 것도 그 때문이죠. 전란 중 명나라 군대가 들고온 은전이 전후 조선에 유통되면서 조선의 경제가 살아나고 상실된 노동력 부족으로 조선의 신분 시스템에 변화의 조짐이 보였으나 명나라의 강력한 권유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조정은 은전 도입을 거부 다시 원시 경제 시스템으로 복귀를 선택 했습니다. 조선의 조정이 그렇게 한 진짜 이유는 은전의 도입이 생산과 유통을 활성화시켜 사회 생산, 유통을 담당하고 있는 하층민들의 경제적 부를 촉진하고 그것이 결국 유교적 신분제도의 붕괴로 이어질 것을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조선은 끊임없는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기근, 그리고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되죠. 양반들이 유교 신분제도로 인한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고자 온 백성이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선택을 하게 된거죠.
물론 조선 후기에 와서 일부 선각자들이 선진적인 금속 화폐 도입의 필요성을 인식했으나 원시적 현물화폐 시스템으로 인해 생산력 자체가 너무나 낮았고 화폐의 교환을 중심으로 한 유통 시스템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자발적인 근대화가 쉽지 않았죠. 조선 후기 화폐 개혁 또한 왕가와 관리들의 비리로 인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경제가 박살, 결국 먼저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에게 먹히고 봉건 신분 제도도 막을 내리게 됩니다.
읭 노비 생사를 보호해주는 법이 사실은 없는거임??
유연 너무 불쌍해 ㅠㅠ
노비로 만드는 악질 사건 -- 고려말 조선초 -- 영상 8분 정도 부터
그때 등장한 악덕 관료들 -- 임견미(고려사에도 나오는 악당) 그리고 조말생 즉 임씨 그리고 조씨
조말생도 유명합니다!
웃긴 게 고문해서 자백을 해도 범인이 되고 끝까지 자백을 하지 않고 고문을 당하다가 죽어도 범인이 된다면 그게 무슨 재판이냐!
한마디로 의금부에 끌려간다는 건 그냥 죄인 확정이며 죽은 목숨이라는 말이네. 죄인 만들기 졸라 싶네. ㅋㅋㅋ
penile erection [勃起]=ㅈㄴ·jon·jonnage·jotnage·jonna·jol·졸라·junna | Миру мир!
한 이야기를 계속 반복해서 이야기 하셔서 ...저는 두번 재생한줄 알았어요ㅠ
開富理..눈빛이 촉촉했다.
넘 재미지게 말하심. 재미있당
부정부패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같네🔥
언제나 극소수의 엘리트는 있죠 ^^ 계층을 불사하고
인간의 심연 고뇌 탐욕 비애 모든게 얽히고 섞여있는 소설 입니다
지금같으면 DNA검사로 간단히 해결할문제를...억울하게 몇사람이 죽은겨
교수님 찐 팬임니다 그래도 국사 만점 맞은 84학번 ㅎㅎ 고조선 역사는 고고학 이외에는 그래도 무언가 무서운 역사가 반드시 있었다에 1000% 목숨겁니다 프랑스 국보1호 고인돌 우린 지천에 깔려있고...서양에는 돌로 지어진 수만은(콜로세움) 유적들 나는 어린 딸에게 동양의 왕들은 그래도 서양보다 덜 잔있했다 피라미드 등등 지을때 월급도 주었다 그러면 나는 농사는 누가 지었을까? 동양의 용은 극히 선하게 나오고 서양의 드래곤은 인간을 해치고....그러면서 용도 선과 악이 있단다 악의 용은 이무기라 표현하지...그게 신으로 나타나 인신공양 습성...여기까지만 말하고 맙니다 누군가는 고조선을 신화가 아닌 실체적인 접근이 필요한 시기라봅니다 교수님의 아주 중용의 역사강좌 재밋게 보고있습니다 오늘은 80분 노비강좌 보면서 쏘주 한잔 먹습니다 감사합니다 방대한 지식을 80분에 가져갈 수 있어서 행복합니다
찐≠➡眞[진]·참 | 임니다≠➡이[다]+-ㅂ니다⁰「맺음끝」=입니다 | 잔있≠➡殘忍[잔인] | 재밌·재밋≠➡滋味[자미] 있=자미 있≒재미있 | Миру мир! 燒酒[소주soju] is introduced by Mongol[Монгол]ian soldiers during the Mogolian invasion in the 高麗[Goryeo] dynasty.
고인돌 = 7천년전문화
고조선 = 4500면전 문화
그런데 한민족의뿌리는 단군
이러니까 조선시대인구 30%이상이 개돼지보다도 못한 취급받은 노비엿다는게 증명되는거지
역시 세종이다 세종대왕님 만만세❤
세종대왕님 때문에 조선 내내 노비가 평균 40%정도 유지됐어요 나라가 망한 원인중 하나입니다😢😢
@@백두준-j6z저강의에서 교수는 최대많았을때가 30%라고하는데 40%라는것은 어디서 알수있을까요?
@@fiftyfr / 백정들도 포함 시켜야지,,그리고 양반들은 보비,백정들을 버러지만도 못한 종자로봐서 여자들 따먹을때빼고는 눈도 안마주쳣어,,,,버러지하고는 대화를 하는게 아니거든,,, 그ㅐ서 천민들에게 뭘 시킬게잇으면
남자양반은 행랑아범,, 여자양반은 행랑어멉에게 지시를내렷고
행랑아범,행랑어멈이 남자여자 노비를 관리했지,,,도망가면 행랑아범 행랑어범이 책임이가장크고
그래서 노비들이 못도망가게
남자는남자들끼리, 여자는여자들끼리 남자아이는 행랑아범 수발들며살고, 여자아이는 행랑어멈수발들고 살았슴
드라마나 영화에서 양반집안에 노비 가족이 같이사는것 + 양반이 직접 노비를 괴롭히는것은 역사왜곡임,,
노비를 진짜괴롭힌건 행랑아범,행랑어멈 + 양민들이고,, 그노비들은 백정들을 개무시했지
또한 행랑아범,행랑어멈처럼 충성도가 좋은 노비들은 가족들끼리따로모여서 밖에서 살수있었고
그걸 외거노비라인데,,, 조선시대 노비들의꿈은 양민될 생각은 못하고,, 외거 노비라도 되려고 양반들 명령을 잘 들엇던 것임
지금도 서민을 괴롭히는건 대부분 같이 어울려사는 서민이지 강남부자, 대기업 사장,회장들이아님,,,
살면서 수백억, 수천억 가진사람을 만나보기는 했나?
대기업회장이 편으점 강도짓하고, 알바생 강간하고, 서민들 빈집 도둑질하던가?
부자를 증오한다면 입진보들에게 선동당한 개돼지라는것임,,
개부리, 거시기, 곱단이, 빗자리, 큰노미, 이월이....ㅍㅎㅎ홓ㅎㅎㅎㅎㅎㅎㅎ
유씨네 사건은 정말 말로 표현 못할 정도로 답답하고 억울한 일이네요.
이런 강의 너누 감사합사합이다.
강의에서 교수님께서 설명하시는 노비는 소수의 노비였고...흔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려지는 노비도 소수의 노비였고...중간쯤에 있는 지위의 노비가 대다수의 노비였습니다. 결국 노비는 노예보다 조금 나은 노예 신분.
맞아요. 우리나라 역사의 노비들이 외국의 노예와 달리 법적으로 보호를 받았다고 기록으로는 전해지고 있지만 그런 사례는 극히 일부이고 신분제 사회의 모든 하층민들이 다 그렇듯 끔찍한 삶을 살았던 것이 역사의 진실입니다.
奴婢 신분이나 노예나
주인의재산. 상속 생사여탈권이없는개 인간이니?
와....
유유 사건은 완전히 조선 현실판 미스테리 스릴러물 같네.
주인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 가 아니라 조선 시대 유교 사상으로 정절을 지켜야한다는 것에 더 초점이 맞았던 건 아닐까..
강의가 잼나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들었네요~
참고로 제 조상은 양반은 아니었을거 같고 양민? 노비? 몹시 궁금하네요 ㅎㅎ
잼=jam[dʒæm잼] 滋味[자미]≠➡재미👌잼❌ | Cầu nguyện cho Үкраїна và hòa bình.
유연이 죽어도 재산은 백씨에게 돌아가지 않는다. 고문하면 백퍼 자백하는데 그게 효과적인 심문방법 이었다니. 나중에 억울함이 밝혀지면 관리도 처벌해야되는거 아녀?
퍼·프로≠➡percent | 아니[다]+-야¹¹ᐟ¹¹ᐟ⁰³「맺음끝」=아니야=아냐 | Пусть наш Бог хранит Үкраїну.
멀쩡한 양반집도 역적으로 몰아서 노비가 된 찐 양반도 엄청 많을듯
지금에도 군대 학교에서 폭력이 난무 하는데 그 시절 노비들은 어떠 했을가요? 노비들은 아마 훨신 더 심한 구타를 시도때도 없이 주인들로 부터 당했겠지요.
손이 잘려도 않죽어요?... 그당시대에는 어떻게 ...피를 많이 흘렸을텐데.....그런데 , 패널들 어느 누구도 물어 보지 않는?.....
않≠➡아니=안 | …ㄹ텐데≠➡…ㄹ 터+이[다]+-ㄴ데⁰「이·맺음끝」=…ㄹ [터인데=텐데] | Пусть наш Бог хранит Үкраїну.
흥!칫!뿡~! 삼강오륜의 죄로 말할것 같으면 태종이방원, 수양대군 다~~능지처첨 되야하는데...권력이란게 예나 지금이나 그렇군요 한낮 새벽이슬같은 건데 말이죠.
陵遲處斬[능지처참] | Пeрeмога Үкраїнi!
7:25에 황스미스형님 개불알(개부리)에서 표정보고 웃어서 妻가 뭐보고 웃냐녜요 허헛
나라의 법을 무시하면 나라가 망한다 법을 완고히 철저히 해야
노비 얘기 들으러 클릭했는데....
41:59 부터는 노비의 '노'자도 안나오네 ;;;;; ㅋㅋㅋㅋ
교수님이 조선시대 노비 이야기 너무 미화시키는 것은 아닌지요.
그렇게 존경하는 세종대왕 때 종모법을 만들어서 엄마의 자식은 다 노비로 만들어서 자국민의 많은 배성을 노비로 전락시킨 왕이 세종대왕 이라더군요.
진실을 알면 잔인하고 가슴 아픈 일 입니다.
노비를 왜 자국민에서 뽑았는가를 이해하려면 조선의 전쟁과 노비가 어떤 존재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전쟁을 하면 포로를 잡게 되고, 그 중 일부는 공로에 따라 참여자들에게 포상으로 나눠줍니다.
그런데 조선이 주도한 해외정벌은 횟수가 많지 않습니다. 대체로 변방을 침탈하는 여진족 부락이나 대마도를 정벌하는 정도입니다. 문제는 이것도 만만찮은 국가재정과 국력을 쏟아야 합니다. 왜나면 해외정벌을 나가려면 우리의 상상 이상으로 군량미와 잘 훈련된 정예병력이 필요합니다. 왜 이런 지출을 해야하는지 알려면 왜적과 여진족에 대해서도 알아야합니다.
여진족은 농경민족이나 유목을 일부 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농경민족의 전술과 유목민족의 장기인 기병전술이 동시에 녹아있습니다. 때문에 군대편제가 균형있고 기병은 평소에 유목생활을 하며 말타고 사냥까지 하니 일상생활 중에 기본적 훈련은 하게 되는 것이죠.
여진족이 이런 이유로 조선이 출병을 할려면 전국애서 군대를 뽑아 잘 훈련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조선이 여진족의 특성을 잘 알듯이 여진족도 조선의 사정을 잘 압니다. 때문에 전면전이 펼쳐지면 조선군 약 1만여명이 진격해오면 여진족은 부락을 떠나 산속애 숨습니다. 왜냐? 어차피 조선이 몇년간 모은 군량미로는 1만이 넘는 대군이 여진족 땅에서 장기전을 할 수 없다는 걸 압니다. 그러니 여진족은 조선 정벌군이 오면 산에 숨어서 돌아가길 기다리는거죠. 그렇다면 조선군이 산기슭에 쫒아들어가서 작전을 할 수 았을까요? 조선 정예군이 아니라 몽골 정예기병, 알렉산더 정예 장창병이 와도 험준한 산세를 이용한 방어와 매복은 뚫지 못합니다. 그러니 조선군이 할 수 있는건 동물을 납치하거나 일부 여진족이 있으면 포로로 잡고 몇은 목을 쳐버리는 정도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세종대왕 때, 이순몽과 최윤덕이 정벌을 나갔다가 정벌을 대성공한 사례가 있습니다. 정찰에는 도가 튼 여진족이 알아차리기도 전에 군대를 나눠 여러 여진족부락을 동시에 덮차고, 부락은 태우고 여진족을 대거 죽이거나 포로 잡는 대전공을 세웠습니다. 문제는 이런 사례가 이후에 등장하지 않는데, 이 말을 다시 말하면 정예병 키우는게 정말 어렵다는 것이죠.
그리고 일본 대마도 역시 머찬가지 입니다. 일본 해적은 대마도에서만 생기지 않고 대마도와 고토 섬 두곳은 해적의 전초기지, 털러 가기 전 집결하고 장물 처리하는 곳 정도입니다. 때문에 대마도를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해서 일본 해안 전역에서 오는 해적을 대마도에서 오지 못하게 할까요? 그리고 초기에는 대마도와 조선 사이 통상이 자유롭지 못해서 대마도 사정이 어려웟습니다. 대마도는 정말 평야가 없다시피 하고 생선을 주로 팔아 먹고 사는데 일본 보다 가까운 조선에 못 팔아먹습니다. 거가다 일본에 팔려면 대마도랑 본토 사아 이키인가 아키인가 섬 하나가 있어 경쟁에서 불리합니다. 때문에 조선과 교역을 안 하면 생활이 여의치 않습니다.
조선도 후손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 없는 바보들이 아니기에 압니다. 대마도에 정예병을 휘몰고 가봐야 대마도민들을 산 속에 숨을 것이고 마을을 태우고 도망 못 간 주민을 잡거나 죽인다해도 결국 다른 일본지역 해적과 합세해 털러온다는 것을요.
그러면 누구는 그러겠죠. 침탈하는 왜구나 여진족 말고 명나라나 일본에 쳐들어가서 정복하면 되지 않느냐?
조선이 돈 들여서 정예병 촤대로 카워본게 1.2만 입니다. 1만 2만 가지고 뭘 정복합니까. 조선은 국방비를 5명이 부담하는 것 보다 한명이 나와서 몸으로 때우고 나머지가 군포를 군대 간 애 한테 주는 게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말이나 활 갑옷은 자비로 구매하게 하고요.
이러니 군대 정예병에 모집되는 사람부터 재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조선은 무역을 안하기에 해외정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미국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빠를겁니다. 오늘날 미군 함대가 지구상에 없는 곳이 없습니다. 거기다 미국은 페르시아만 또는 걸프만이라 불리는 좁은 해역에 단일 함대를 박아둡니다. 왜 일까요? 글로벌경제는 누가 뭐래두 미국경제에 영향을 많이 받고 이는 미국의 교역이 세계경제에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하면 미국은 무역으로 먹고 사는 나라이고 어디서 석유분쟁이 터지거나 무역로가 막하면 미리 배치해둔 함대가 즉각 반응합니다.
이렇듯 무역을 안하는 나라가 뭐하러 막대한 돈 쓰면서 주변국 쳐들어갈까요?
내가 시장을 열고 물산이 돌고 해야 외국애서 땅을 뺏고 그 지역에 물건 팔거나 또는 정복지의 토산물을 대내외 무역에 이용하는 것이죠. 따라서 농사가 근본인 조선은 해외원정을 할 직접적인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가면 조선이 해외정벌을 안하면 국내에서 노비를 뽑아 써야합니다. 그런데 노비를 자국민을 썻다고 비난하는데 다른 나라는 안 그럴까요. 봉건제 국가이던 일본은 어떨까요 전국시대처럼 영주들 간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에는 항복하지 않았던 정복지에 대햐 가차없이 포로를 죽이고 주민은 노예로 삼습니다. 거기다 전쟁이 격화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심화되죠.
그렇다면 중국은 어떻까요? 중국은 말할 것도 없죠. 역시 정치가 혼란했던 시기가 많았던 만큼 민생이 불안했고 조선처럼 먹기 살기 함들어서 자진해서 노비가 되는 경우나 쌀을 빌렸다가 갚지 못해 노비가 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거기다 전쟁이 잦았던 많큼 포로로 잡힌 경우에는 노비로서 공신들에게 나눠지기도 합니다. 거기다 난 중에 장원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왕조에 등용이 못 된 경우에는 삼국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문벌귀족이라 할지라도 그 날로 하층민으로 추락하고 생활이 여의치 않으면 부잣집에 몸까지 팔아야 하죠. 글 잘쓰는 선비야 문객으로 있을 수도 있겠지만 대가족이 먹고 살 수는 없죠.
그리고 숙청에 휘말리면 재수좋으면 그 가족은 목숨이라도 건져 노비라도 되죠.
그라고 유럽은 어떨까요?
유럽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처럼 영주간 경쟁이 치열하니 잡으면 죽이고 노예로 만드니 교회가 들어가서 "우리 크리스찬끼리 왜 이러느냐 다 같은 허나님의 자식 아니냐" 간신히 말리는 정도입니다. 하도 혼란스러우니 교회애서 기사도를 만들어 보급했죠.
유럽 사람들이 다른 나라보면 야만이라 하는데 유럽 내에 내전일어나는 거 보면 살벌합니다. 자국민이라서 봐준다 그런거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러겠죠 "그거는 귀족이나 왕이 있는 계급제 사회니깐 그런거지 18.19세기랑 비교해야 하는거 아니냐 그 시기에 영국은 노예제를 폐지했는데 조선은 있었다"
맞죠 조선은 농경사회이고 경제는 유럽 근대이전에 머물러있습니다. 부를 축적하는 가본방식은 대규모 농장인데 어떻게 조선이 노비제를 폐지할까요?
노비는 생산수단입니다. 그런데 영국은 산업혁명을 하면서 사람 손으로 샹산하던 것을 기계가 하게 됬고 그 기계를 다루는 숙련공이 필요하게 돤거죠. 그 임금이 정말 하루 벌어 먹고 하루 살 정도의 임금이간 했지만 기계를 다루는 시대가 된 만큼 옛날처럼 단순무식하게 노예로 운영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닙니다. 과학기술이 성장할수록 기계를 다루는 노동자 역시 교육 수준이 올라가야합니다. 여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대중화가 단순히 민주화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아닙니다. 경제와 과학기술이 성장함에 따라 직업군이 바뀌었고 사회에 부가 늘어남에 따라 그 영향이 하충민에게도 영향울 미친겁니다. 옛날에는 글자하나 몰라도 지주가 농사일 시키면 할 수 있었지만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내게 팔요한 교육은 늘어나고 거기에 맞춰 역량도 성장하게 되죠. 민중이 성장해 부르주아가 돠고 성공을 이룸에 따라 "나도 정치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 내가 내는 세금으로 얼마인데 그걸로 귀족과 왕이 먹고 살지 않느냐"라는 주장을 할 수 있게 된거죠.
위에 글이 길고 다듬어지지 않아 읽기 힘들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조선은 계급사회이고 노비는 생산수단이라는 것, 조선은 무역을 하지 않기에 해외원정을 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선 주변에 있던 왜구와 여진족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과 대규모 원정은 정말 수년간 국가가 총채적으로 함을 모아야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요소들로 결국 조선은 자국 내에서 노비를 뽑아 쓰는 구조인 겁니다. 결코 조선 사대부가 악독해서 그런게 아니라 환경이 그렇다는 것, 또 이는 중국 알본 유럽도 마찬가지였다는 것입니다.
18.19세기 유럽과 조선을 비교한다고 해도 산업혁명이 터지면서 산업이 변하고 생산도구가 바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겁니다. 유럽은 기계가 대량생산을 하고 그 기계를 숙련공이 다루는 것이고, 조선은 아직 산업혁명의 여파가 전해지지 못해 사람의 힘에 의해 농경을 하는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겁니다.
노비재판을 왕까지 관여했다니 대단하네
그때나..지금이나..
세종이 노비제도 만들고 거기다가 종모법으로 아버지는 주인대감이고 엄마는 노비면 자식도 노비!
세종은 백성을 거의 반을 노비로 만듬
역사짱 재밌게해주심~^^
재밌·재밋≠➡滋味[자미] 있=자미 있≒재미있 | Cầu nguyện cho Үкраїна và hòa bình.
세상에서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하고 존귀한 것은없다 모든 것은 인간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욕심으로 이루어진 것들이 다 인간들아 태어난 육신은 잠깐이지만 선과 악의 영혼은 영원하며 아름다운 영혼은 영원하다 잊지마라
개불이가 머야😂😂😂❤❤
누가 너한테 노비같은 이미지라고 하면 넌 좋겠냐
어떻게 저렇게 무례할 수있는지
인간적 이었다? 아니었다? 가 뭐 그리 중요하지! 서양이든 조선이든 그 차이는 미묘하고 의미도 없고 중요치 않다! 본질은 주인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된다는 거 생사여탈권을 주인이 가지고 있는데 노비 한 놈 죽인다고 주인이 처벌 받는 것도 아니고 서양이든 조선이든 노비는 파리 목숨 이었다 라는게 중요하지.
여자말만 믿고 남자 둘이 죽어버렸네요.
그래서 뇌물받은 관리와 억지주장한 그 친구넘과 아들은 어떤벌을 받았음?
조말생 스캔들이라 당시 엄청 유명한 사건으로 이건때문에 조말생이 이후에도 공적이 많아도 삼정승까지 못오르게 된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대법에 따라 사형위기에 처했으나 세종이 조말생 능력 자체는 높게 사서 온갖 사형요구 여론에도 살려주었고 이후 복직은 시켰으나 저때 사건으로 이미지 큰타격을 입어 삼정승은 못되었습니다
출신은 모르지만 지금은 재벌까지는 아니어도 잘먹고 잘살고 있음 진짜진짜 간혹가다 옛날사람중에 종 파 물어보면 그게 왜 궁금해요?? 물어보고 싶음 양반이든 노비든 다같은 사람인것을..
서부영화를 보면 총잡이들이 농장이나 마을의 모든걸 빼앗고 불까지 지르고 도망가는....
섬네일 왼쪽 형벌은 능지처참이 아니고 거열형입니다. 능지처참은 죄수가 최대한 오랫동안 고통을 느끼도록 산채로 살을 천천히 발라가며 죽이는 형벌입니다.
교수님도 그렇게 설명하셨어요. 중국에서는 그렇게 잔인하게 형집행을 하기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열형으로 대신했다구요
좋은예를 이야기해준거지.. 두들겨맞아죽는 노비많았을듯
드라마를 너무 봤구만..
노비라 해도 생사 여탈권이 국가에 있다잖아요. 노비는 다른나라의 노예같은 물건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우하고요.. 아무리 음지라 해도 맞아 죽은 사람은 흔치 않다고 봄.
오히려 재산이라 두들겨맞아주는경우는 거의 없었어요 흑인노예도 그렇고 우리나라노비도 그렇고 운반과정에 문제가 있을수있어도 일단 주인에게 예속 되면 사이코패스가 아닌이상은 돈주고 사오거나 돈받고 팔수있어서 몸에 탈나게는 잘 안할걸로 알고 있어요 놔두면 값어치오르는 금덩이 함부로 하는거 봤습니까 되려 양반들에게 피해당하고 산건 농민들이 더 많았어요 양반들이 다른 계급 건드려도 아무도 이의제기 못하는 그런법이 조선에 있었는데 양반들은 자기네 노비들은 재산이라 함부로 못했지만 농민들은 자기와 상관없어서 농민들밭에들어가 농작물 훔치고 힘없는 농민들 패도 농민들이 죽어나가는경우 아니면 아무말도 못했어요. 대감집에는 노비가 더큰소리친다는 말도 노비가 생각보다는 그리 박하지않았고 흑인노예도 생각보다 박하지않았답니다. 흑인노예에 대한 실상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읽어보면 제대로 고증되어 나옵니다. 딴데로 샜는데 미국은 흑인차별이 문제가 아니라 인디오차별이 더문제 되는 나라입니다. 생각보다 조선의 노비와 흑인노예들은 재산이란 이유로 가혹하게 다뤄지진 않았습니다. 물론 만나는 주인이 사이코패스라면 답이 없지만
오매불망인거죠
조선시대 억울한죽음 엄청났을듯
교수님 조선역사상 노비가 가장 많은 시기는 세종때입니다 그리고 부모중 모가 노비일때 노비로 하는것으로 확정한것이 세종이죠 왜 그걸 피하면서 강연를 하는지요 노비입장에서 가장 안좋은 시기이죠 그리고 내용중 노비는 상전을 고발할수 없습니다 법이 멀고 주먹이 가까워 고발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죠
이 땅의 민초들은 지난 60년간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획득하고 자아를 인식하고 번영을 얻게 되었다.국가로서의 이땅에 존재했던 권력을 통한 2천년 조공과 1천년 공녀의 역사를 통해 핍박받던 역사를 탈피한 것 또한 해양세력 조우하고 산업화를 통해 떨쳐낼 수 있었다.
노비를 만들었던 인간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지가 궁금했는데...
그런 결과는 없네요
현대의 보이스 피싱이네요
너무 재미있네여 교수님 ㅎㅎ 가짜 남편만들기 대사간 박계현 / 권내현의 유유의 귀환 조선의 상속
이몽룡 다시 보이네…ㅎㅎㅎㅎㅎ
아동성폭행범 거열시킨거 이건 정말 맘에든다.
이숙번이야기는 조금 과장이라고 생각하는게
이숙번은 세종 시절이면 버려지는 공신이니까 여러대신들이 물먹였다고 생각하는게 좀 더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어릴때 우리동네에 싹부리라고 있었는데 그냥 이름인가보다 했는데ㅋㅋ
오.. 유유-백씨 부인 사건..
소설이라면 너무 흥미있지만 사실이라면 슬프네. 근데 사실임.ㅠ
그러한데〉그런데〉근데 | 그러-하²ᐟ²[다]+-ㄴ데⁰「이·맺음끝」 | Миру мир!
집안에 족보있다고 다 양반의후손이 아니고 최소한 집안에 5대조 이상 묘비있는 산소모신 선산있는 집안은 진짜 양반일 가능성이 크다
세종때의 조선이 전체 조선시대와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조선도 초기 중기 말기 다 다르고 한양과 지방은 처지가 매우 다른것 같다
😢노비가 몇%였는지 모르지만 지배층 양반이 15 %내외라 하더라도 상민이나 노비가 80%이상이라 여겨져요. 범죄나 사화에 엮여 일등공신 자손들도 노비로 전락해 신분상승 할 기회가 없었을테니 점점 점유율이 높아졌을텐데
노비중에 가장 날렵하고 강한 노비는 시노비
썸넬에 나온것은 능지처참 보단 거열형에 가까운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