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시절 내 부모님은 30대의 젊은 부부셨고, 아버지께서 장남이셨던 이유로 큰집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형제들과 그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책임감으로 온갖 궂은 일과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하시며 생계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셨다. 이땅의 수많은 가장들과 어머니들의 희생과 피눈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내 부모님을 비롯한 그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I guess Im asking randomly but does anybody know a way to log back into an Instagram account?? I was dumb lost my account password. I appreciate any help you can give me
저건 SBS가 실수 하는 겁니다. 청계천 어딘지 몰라도 청계천 옆 31빌딩을 찾아보세요. 1970년에 준공된 31빌딩이 당시 최고층이고 북한 방문단에게 자랑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에 청계천은 복개가 되어 사라지고 그 위에 31고가도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1968년에 세운 상가가 완공 되었지요. 제가 그 시절에 세운상가를 지나서 남산에 걸어서 놀러 가곤 했었습니다.
@@teddybear-g4k 아니요 60년도 에서 70년도 사이입니다 저때가 제가 초등하교 다니던시절입니다 61년 은 제가 태어나던 시절이고 그때사진 맞아요 제가 청량리 에서 전차가 마포 까지 다니던 시절이었고 마포종점 노래가 전차 끝 종점이 이었어요 전차다닐때 였고 11때니깐70년대 초 이죠 그때 마장동(검정다리) 두고 삼일고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 때 없어진것까지 봤고 내나이 60초반 이니 산 증인 인가요? 그때 마장동 개천 마주보고 용두동 판자집 까만 기름종이 일명 루핑 지붕이죠 다리하나 두고 한밤중 하늘이 벌개져서 놀라깨어보니( 마장동 우시 장)이그때도 있었음 강건너 불이 났는데 용두동까지 후끈했던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울할머니 그이튿날 불때서 쌀과 김치넣고 가마솥에 끓여 빨간 고무다라 이고 우리 깨워 막내이모 그릇들고 난수저들고 따라갔었고 할머니 는그들에게 나눠주셨죠 우리도 용두동 판자에서 형편은 나은편도 아니지만 그레도나눠살줄 알았던 울 할머니 인심은 6.25 겪으신 분들이라 나눠주시던인정도 있었고 울엄마도한겨울에도 거지 아이 들오면 손씻어 따듯한 밥멕여 보내던 그시절 그땐참 거지아이들도 많았고 그레도 세월좋게 태어나 전쟁 겪지 않은걸 다행이라고 산교육 도 시켜주시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 살면서 참교육 이셨네요~~ 좋은세월 못보고 가신 우리 할머니 어머니 생각나게 하는 청계천추억 입니다 물지게 지고 물길던 울엄마 아버지 기억나네요 그당시 줄지어 서 한지개 얼마 동전내던것 또 줄설때 엄마가 대신 저보고 줄서기다리게 하던 기억납니다 용두동서 전농동 그당시 사근동 한양대까지청계천 따라 판자집 즐비했었죠~저때가 60년도 사진 맞아요~
진짜 그 당시 박 정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국민이 잘 살아보세 노래를 부르며 살던 시절 법 자체두 거의 없구, 아사자,걸인,상이용사, 거의 대부분 실업자..그걸 살릴려구 긴급하게 기업설립을 관 주도로,그때 어디서 올라온 사람들이 민주화 한다구 이제는 역으로.....진짜 대한민국의 문제는 원료가 없다는 긴장감으로 살아야..좋은머리 좋은데 사용해서 수출로 살아야 하는
0:04 전농천 사진(현재 성동구청 청소차량 차고지 위치. 청계천은 왼쪽에 숨어 있음). 1974년 사진 (72년에는 전농천이 우측에 있었다가 73년에 공사해서 흑으로 덮여 왼쪽으로 밀림. 무허가주택분들 더 힘들어짐.) 0:18 청계천 산책길 부분. 길 바닥 콘크리트가 하수도 라인. 0:34 현재 성동구 청소차량 차고지 자리. 움막집 부분은 현재 빗물펌프 관련 건물이 있음.75년에 철거. 서울시가 땅을 구입. 0:56 천농천 앞. (청계천 아님.) 0:46 멀리 보이는 학교가 군자초등학교. 사진 자리는 현재 중랑하수도처리장(송정동- 용답동) 1:32 사진찍으신 활빈교회 설립자 노무라 목사님. 1:51 갈라지는 장소 용답초등학교 와 공원 부지(흐리게 보인 공간자리). 오른쪽 천이 전농천 왼쪽 천 청계천. 2호선 지하철 기지국 공사중 (용답역이 과거 기지역이었음)
말은 바로합시다 70년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로 규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아시아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와 현시기 중국 북괴 등 전체주의 독재와는 근본이 다른 자유민주주의 정부였죠. 전체주의 독재정권은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처럼 일당독재 개인숭배 야당말살 언론말살 거주이전의제한 정치범수용소 등 시민의 정치적 자유권이 완전히 박탈된 나라를 일컸습니다. 반면 이승만 박정희 체제는 강력한 야당존재 의원면책특권 불체포특권 비판적언론기능 주권재민 선거제도 거주이전의자유 법치주의 국민의정치적권리 보장 등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체계는 유지되었습니다. 그 자유권이 지금처럼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독재정권이라 칭하죠. 엄혹한 냉전시대에 자유진영 선봉장 대한민국은 자유권을 일정정도 유보하고 일심으로 단결하여 대륙전체주의 독재에 맞서 싸워 끝내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단 한번도 전체주의독재에 맞서싸운 사실이 없죠. 오히려 문재인은 교과서와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존경하는 형제의 나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만 그 역사는 우리와 똑같네요... 진짜 우리나라의 옛날을 본 기분이네요... 물론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있지만요... 이상한(슬프고 또한 괴로운 기분?!) 감정으로 봅니다. 항상 잘 되시길 바랍니다. 노트: 터키인이라서 혹시나 틀린 말을 적었으면 민망하고 죄송합니다. 이해심을 부탁드립니다.
0:02 자리는 1973년 사진이며, 72년 아닙니다. 현재 성동구 청계천 우측인 전농천. 이 사진 찍는 자리는 사람 출입불가된 빗물펌프 건물자리. 봐라 보는 방향은 지하철 2호선 기지국 선로 설치 자리입니다. 청계천은 이 부분 사진 좌측에 숨어 있고 이 천 자리는 성동구 청소차량 기지 자리. 무허가 주택 자리는 선로. 천 멀리 우측으로 펼쳐진 무허가 주택 자리가 용답 초등학교 앞 그린 공원. 좌측 3m 넘는 깃발은 무허가 주택 안보이기 위한 깃발. 전기 안들어와 밤은 암흑 세상. 물 안들어옴. 하수도 없음. 집앞에서 배설. 쓰레기 집앞에서 투기. 변색 렌즈 낀 남자분이 사진촬영한 노무라 목사님. 도쿄 주택 팔고 이 무허가주택 사이에 교회 짓고 식사 나눠주고 유치원 만듬. 75년에 철거시작. 72년까지는 전농천 자리는 좀더 우측에 있었음. 이 사진은 흑으로 좌측으로 옮긴 티가 나는것 보니 73년 사진. (항공사진에 똑같이 나옴) 집안에서 병나서 죽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함.
오죽하면 예전에 남진의 님과 함께 라는 곡에다가 가사를 바꿔 불렀을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가 아니라 청계천 다리밑에 거지같은 집을 짓고...웃을 수 없는 뼈저린 가난을 빗댄 눈물나는 가사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지금은 선진국의 경제국의 모습이라...
세계 어느 나라도 동시대에 제 3세계에서 태어난 사람, 개발 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 선진국 국민으로 태어난 각 세대의 사람들이 가족으로 공존하며 함께 어우려져 사는 곳이 없음. 그러니 세대간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차이날 수 밖에 없지. 옛 세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해주고 또 과거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인프라를 누리는 만큼 존중하며 살아가면 좋겠네.
@@서성주-l9b ㅎㅎ 그런 구성원이 한 가족으로 어우러 사는 보편적인 나라가 어디인지 너의 넓은 식견으로 얘기 좀 해봐라 그럼 ㅎㅎ 난 586세대도 아니지만 너의 그런 편견어린 눈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시각 자체가 세대가 어디인지를 붋문하고 대한민국을 망치는 거임. 니가 주범이라고 ㅉㅉ
@@bluesky-of5br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당시 북한엔 일제 무기 공장이 즐비했고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인 수풍 발전소도 북한에 잇었고등등 그러나 남한엔 산업화 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다 수풍발전소에서 오던 전기마저 북한이 끊어 버리는등, 여기에 6,25로 국토가 완전 초토화 되었는데 저런 지경은 어쩌면 당연한 거지요!
우리 부모님세대.. 동생 학교보내려고 학업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시고.. 건빵 10개를 불려서 하루3끼를 나누어 먹었고.. 점심에 도시락이 없어 다이어트 한다고 거짓말하고 옥상에 줄넘기를 하셨다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60, 62년생이신데...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정말 편하게 공부했습니다..! 받은 사랑만큼 드디어 태어날 제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삶을 선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늘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진짜 불과 사오십년만에 이렇게 국력도 경재력도 비교할수 없는 수준으로 변한게 너무 자랑스럽다 정말 열심히 사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세계 1등민족, 반만년 유구하고도 찬란한 역사의 우리 자랑스런 대한민국!
.
전세계가 한류로 들썩이고, 한국 특유의 정 문화에 놀래 자빠지는 중이다
.
올챔퀸 김연아 사랑해요♥
.
범내려온다. 독도는 우리땅!
아직도후진데가많다멍청아
@@현규김-f6b 니 정신이 후졌겠지
그러니까 이제 그만 쉬시고 나라일은 젊은이들한테 넘기시길.. 21세기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데 아직도 20세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나라가 발전을 못합니다.
미국덕
짧은시간 발전을 이뤄낸건 저 시대를 온몸으로 부서져라 일한 세대입니다
천대받을게아니라 존경받아 마땅한데
지금 세태는 눈뜨고 볼 수 없을지경입니다
하수구같은곳에서 더럽게 살아도 마음은 깨끗했던 저 때가 잊혀지는게 두렵네요
지금30대후반부터 50대초반 까지 문제의 세대임
글쎄요. 특정계층에 문제가 있다라고 몰아가는건 유기적으로 연결된 사회라는 구조의 특성상 착각같아 보입니다.
@문재인 시대가 사람을 만드는것이지 나이가 사람을 규정하지 못하는겁니다 현4050나이의 어른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것도 그분들의 시대환경탓이지 나이가 문제가 아닌것잊
잘은 모르겠지만.. 그냥 감사합니다.
저는40대입니다 어르신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젊은시절 나라와 가족들 위해 쉼없이 달려오신 부분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존경합니다
잘살던 나라가 가난해지는 경우는 부지기수이고 그 반대는 정말 드문데 대한민국은 경이로운 나라가 아닐 수없습니다. 절대 산에 나무가 알아서 자라듯이 저절로 잘 사는 나라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절대 불가능했죠.....
@깊은명상 6.25때 우리나라 국민들 빨갱이로 몰아서 살육했던 그 개승만 말인가요?
@@jinjinllee9252 그래서 승만이 몰아내고 정권잡은 민주당은 빨갱이몰이 안했어? 그리구 왜 느그덜이 욕하는 남로당원 대통령 만들어준게 누구신데? 자랑스런 친일파 장면이랑 두환이 빠돌이 윤보선님이시다 ㅋㅋ
말 좀 순화해서 하면 안 됌? 좌빨이니 토왜니 헐뜯는게 뭐가 자랑이라고..
이젠 다 끝났습니다
불과 50여년전인데... 정말 대단한 나라.. 근데 얼굴들이 다들 이쁘다....때가 꼬질하지만 밝고 이쁘다
예전의 추억이 떠오르시나봐요 청계천쪽 사시나요???
박정희가 경부고속도로 깔고 전두환은 88올림픽 유치해와 대한민국의 부활을 전세계에 알리고
내가 어릴 때인데, 저 때를 떠올리면 뭔가 밝았다는 느낌입니다. 하늘도 햇살이 밝았고, 사람들의 목소리도 맑고 뚜렷했다는 기억입니다. 아무래도 공기가 맑고 주위 소음이 없어서 그랬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다들 마음속은 괴롭고 구질구질했을겁니다. 본능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제3자의 눈에는 순수해 보일 뿐이지요
@@aoyama3chome518 박정희 전두환 업적이 왜 나옴? 부활을 무슨 또 부활? 우리가 뭔 이스라엘처럼 1000년 2000년 건너 뛰고 삼국시대에서 부활했나 보쇼?
저 시절 내 부모님은 30대의 젊은 부부셨고, 아버지께서 장남이셨던 이유로 큰집이라는 허울좋은 미명아래 형제들과 그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하는 책임감으로 온갖 궂은 일과 하루 12시간이 넘는 고된 노동을 하시며 생계를 위해 자신들을 희생하셨다. 이땅의 수많은 가장들과 어머니들의 희생과 피눈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내 부모님을 비롯한 그 모든 분들께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청계천옆 마장동 홀어머니 고생으로 4남매 대학다보내고 돌아가신지4년...어머니 감사합니다.덕분에 잘살고있어요.어린시절 청계천판지촌에 불이나서 뚝방에서 구경하던 기억이나네요...이젠 추억입니다.
그때 우리식구들이 이 동네에서 살았습니다. 1972년도에 저는 5살이었고 여동생은 우리집 (개미굴)에서 태어났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이웃사람들이 정이 많았습니다.
72년도에도 서울에 저렇게 가난한 동네가 있었군요.
서울 문화촌에서 살다가 양천구 신월동 으로 다 이주하라고 했는데 말그대로 판자촌이라 가마니로 바닥에깔고, 까만루삥 으로지붕덮어 살던때가생각나네~
@@youngpak8662 72년도는 다 가난했을 걸요
@@yellow_mon헐.. 가마니 바닥이라... 그 정도로 살기 어려웠군요. 거의 거지나 다름없는 거 아닌가요. 요즘엔 아무리 못살아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어렵게 사셨네요.
@@hyunwoo_yi 대부분 가난하기는 했지요. 잘사는 사람은 별로 없었던듯...
젠장 진짜 어쨌든 잘살고 봐야 해 ㅠㅠ 우리 어른들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시는 저런 때로 돌아가지 맙시다.
이 선배님들이 계셨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된 것 같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함을 표합니다
오! 찐이다
박 대통령도 그렇고 우리 노동자분들도 그렇고 모두 감사합니다
아 옛날이여
I guess Im asking randomly but does anybody know a way to log back into an Instagram account??
I was dumb lost my account password. I appreciate any help you can give me
@Maxwell Onyx instablaster :)
저렇게 고생해서 키워주시고 나라 발전의 기반을 마려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내 눈을 의심했다...
이런 역사를 모르고 지나치면 안되지
훈훈한 영상 잘 보고갑니다
요즘 젊은 것들 살기 힘들다고 징징대는데 저 시절로 가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겠냐? 21세기 한국에 태어난 걸 감사해라
@@jammanbo0908 ㅈㄹㅋㅋㅋㅋ
@@jammanbo0908 젊은새키. 혀를 뽑아버릴라. 나도 40대 초반이지만 내 부모와 조부모의 고생을 잊지 않는다.
@@김-o1h3t 경제에 비해서 사람들 인식이 너무 올라가서 그런것 같네요. TV 같은데서 미국이나 유럽같은 우리나라 보다 잘 사는 나라만 보여주다 보니 저렇게 사는게 당연하다 인식해 버리는것 같네요.
@@김-o1h3t 살기 힘든걸 살기 힘들다 하는게 무슨 죄요? 저 시절이 더 힘들었으니 징징대지말고 닥치라는건 무슨 논리죠?
선대들의 피와 땀 열정으로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
완전동감입니다. 많은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를 욕하지만 그분들이 있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
근데 그렇게 고생하여 우리나라를 이렇게 잘살게 만든 어르신들을 꼰대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많지요
@@강도사-x6j 꼰대가 꼰대지 꼰대가 어디가냐
지금 청계천으로 바꿔주신 노무현대통령께 감사합시다. 2003년이면 노통시절임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고생 많이해서 공부도 가르치고 해서 지금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거다!
그래요.
저는 60년생인데 저의 부모님들
고생 많이 하셨죠.
변변한 일자리 없던시절
자식들 공부 시키느라 늘 힘들어하시는걸 옆에서 지켜보았죠.
지금, 아버님은 하늘에계시고,
어머님도 불편하시고,
참 세월 빠르게 흘러가네요~
🤗코로나로 다들 힘든데 다들 힘냅시다!
👏👍👏👍한국 파이팅!
근데 은혜 모르고 틀딱 거리지
주사파민주당 조상
@@jetli2604 어르신과 틀딱은 다르지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신분들... 존경합니다.
박정희전두환 독재가 고마우신가요?
@@sml2347박정희 시절에 안살아봐서 모르겠는데 지금같이 무능한 정부가 5년씩 할 바에 박정희가 독재하는게 나을듯
지들이 잘난줄아는 40,50대깨들ㅋㅋ 꿀이란꿀은다빨고 실상 스펙은 20대 발톱도못따라오면서 고나리질
@@sml2347 네 박정희 전두환 독재가 고맙습니다. 전두환 각하께서 조금 더 독하게 독재하셔서 문재인 조국 같은것들 다 죽여버리셨으면 너같은 빨갱이들은 지금 존재하지도 않을텐데 참 아쉬워요 ㅠㅠㅠㅠㅠㅠㅠㅠ
@@kim-ec8bl
박정희 때는 필립핀과 북한보다 인당 국민소득이 적었다. 박정희 사망 직후 1,000달러였다.
말이 서울이지.... 판자촌(일명 달동네) 의외로 많았습니다.
서울이지만 논,밭이 있었고, 겨울이면
논에서 썰매타던 추억이 생각나네요
내가72년에 서울로 상경했는대 그랬지요
@@대주독-l3r 72년에는 초등학생이 버스비 10원. 어른이 20원 했습니다.
@@농어촌경운기 중량교 새서울 극장이 15원정도 기억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함니다
@@대주독-l3r 맞아요. 극장에 따라 조금 차이있지만 15원 ~20원 했어요.
어릴때라 잘 기억은 없지만 부모님 손에 이끌려 극장가고 했죠.
동시상영하는 변두리 3류극장이 73년도에 31원이었는데. 그땐 노는날에도 갈 곳이 없었고 영화관 가는 게 낙이었음.
버스에서 어른들에게 자리를 양보한다는 것은 젊은세대가 표하는 존경입니다!고맙습니다 대한민국을 발전시켜주셔서ᆢ
그리고 젊은 사람들이 지하철 무임승차 가지고 뭐라 안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도시 빈민은 다 고시원으로 갔습니다...
달방같은거 다사라진건가요?
명언이네 ㅋㅋㅋ
맞네.....ㅎ
원룸과 고시원....ㅋㅋ
ㅠㅠ
우리나라의 모든 걸 사랑하고 싶다
힘든 시절 견뎌내고 돌아가신 분들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저건 SBS가 실수 하는 겁니다.
청계천 어딘지 몰라도 청계천 옆 31빌딩을 찾아보세요.
1970년에 준공된 31빌딩이 당시 최고층이고 북한 방문단에게 자랑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1961년에 청계천은 복개가 되어 사라지고 그 위에 31고가도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1968년에 세운 상가가 완공 되었지요.
제가 그 시절에 세운상가를 지나서 남산에 걸어서 놀러 가곤 했었습니다.
맞아요. 지금의 청계천은 70년대에도 가장 번화가였어요. 저 사진은 어디인지 모르겠네요. 혹시 연도가 50년대 전쟁 직후 아닐까요?
그전 사진입니다 내가72년도에 태능쪽 담터에 살았는대
72년쯤 맞아요 6가까지만 복개 되었고 몇년후 마장동 까지 복개 되었다가 76년쯤 완전 철거 하였죠 영상은 당시 청계천 하류쯤 될겁니다
@@teddybear-g4k 아니요 60년도 에서 70년도 사이입니다 저때가 제가 초등하교 다니던시절입니다 61년 은 제가 태어나던 시절이고 그때사진 맞아요 제가 청량리 에서 전차가 마포 까지 다니던 시절이었고 마포종점 노래가 전차 끝 종점이 이었어요 전차다닐때 였고 11때니깐70년대 초 이죠 그때 마장동(검정다리) 두고 삼일고가 생기더라구요 그리고 최근 이명박 서울시장 때 없어진것까지 봤고 내나이 60초반 이니 산 증인 인가요? 그때 마장동 개천 마주보고 용두동 판자집 까만 기름종이 일명 루핑 지붕이죠 다리하나 두고 한밤중 하늘이 벌개져서 놀라깨어보니( 마장동 우시 장)이그때도 있었음
강건너 불이 났는데 용두동까지 후끈했던기억이 지금도 선합니다
울할머니 그이튿날 불때서 쌀과 김치넣고 가마솥에 끓여 빨간 고무다라 이고 우리 깨워 막내이모 그릇들고 난수저들고 따라갔었고 할머니 는그들에게 나눠주셨죠
우리도 용두동 판자에서 형편은 나은편도 아니지만
그레도나눠살줄 알았던 울 할머니 인심은 6.25
겪으신 분들이라 나눠주시던인정도 있었고 울엄마도한겨울에도 거지 아이 들오면 손씻어 따듯한 밥멕여 보내던 그시절 그땐참 거지아이들도 많았고 그레도 세월좋게 태어나 전쟁 겪지 않은걸 다행이라고 산교육 도 시켜주시던 우리 할머니 어머니
살면서 참교육 이셨네요~~
좋은세월 못보고 가신 우리 할머니
어머니 생각나게 하는 청계천추억 입니다 물지게 지고 물길던 울엄마 아버지 기억나네요 그당시 줄지어 서 한지개 얼마 동전내던것 또 줄설때 엄마가 대신 저보고
줄서기다리게 하던 기억납니다
용두동서 전농동 그당시 사근동 한양대까지청계천 따라 판자집
즐비했었죠~저때가 60년도 사진 맞아요~
세상 참 좋아졌죠.
대한민국의 빠른 발전
고인이 되신 박정희 대통령님 덕분이죠.
고 박정희 대통령님의 애국 정신이 지금을 만들어냈죠.
지금은 죄인이 되어 교도소에 있지만 청계천 복원사업은 이명박의 치적중 최고다 일부사람 들은 자연 그대로의 하천복원을 원했지만 인공하천이 아니면 청계천 복원사업은 실패로 끝났을것 이다 지금도 진정한 생태하천 으로 복원할려고 노력을 많이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을것이다
그쵸.... 인정할건 인정해야합니다.
40년전아니고 50년전입니다. 그곳에서 그당시에 살았었는데 1960년대모습이지 결코 1970년대 모습이 아닙니다.그당시에도 20대중반이었기에 기억오류도 없습니다.
197@년도라 해도 197@년도 초반은 사실 196@년도 연장판이죠.
맞습니다.
1960년도말입니다.
근처에서 회사다녔는데 저런광경 못봤습니다.
이걸 보니 정말 한국이 폭풍성장을 하였구나......그런디 개울가에서 다시 개울가로 돌아왔네.....이래서 세상은 돌고 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구나.......
진짜 그 당시 박 정희 대통령을 중심으로 전국민이 잘 살아보세 노래를 부르며 살던 시절 법 자체두 거의 없구, 아사자,걸인,상이용사, 거의 대부분 실업자..그걸 살릴려구 긴급하게 기업설립을 관 주도로,그때 어디서 올라온 사람들이 민주화 한다구 이제는 역으로.....진짜 대한민국의 문제는 원료가 없다는 긴장감으로 살아야..좋은머리 좋은데 사용해서 수출로 살아야 하는
와 진짜 신기하다.... 저런곳에 사람이 살다니.. 정말 진심으로 지금 시대에 살고있음에 감사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0:04 전농천 사진(현재 성동구청 청소차량 차고지 위치. 청계천은 왼쪽에 숨어 있음). 1974년 사진 (72년에는 전농천이 우측에 있었다가 73년에 공사해서 흑으로 덮여 왼쪽으로 밀림. 무허가주택분들 더 힘들어짐.)
0:18 청계천 산책길 부분. 길 바닥 콘크리트가 하수도 라인.
0:34 현재 성동구 청소차량 차고지 자리. 움막집 부분은 현재 빗물펌프 관련 건물이 있음.75년에 철거. 서울시가 땅을 구입.
0:56 천농천 앞. (청계천 아님.)
0:46 멀리 보이는 학교가 군자초등학교. 사진 자리는 현재 중랑하수도처리장(송정동- 용답동)
1:32 사진찍으신 활빈교회 설립자 노무라 목사님.
1:51 갈라지는 장소 용답초등학교 와 공원 부지(흐리게 보인 공간자리). 오른쪽 천이 전농천 왼쪽 천 청계천. 2호선 지하철 기지국 공사중 (용답역이 과거 기지역이었음)
이곳에 살던분들이 경기도 광주 성남 일대로
이주하여 살았죠
박정희대통령님이 경제개발을 하셨고 우리나라의 부흥을 이루셨지^^^ 감사합니다!!!
빈민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처럼 잘보이지 않을뿐ㅡㅡㅠㅠ
어디에 있나요?
빈민은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빈민만 있을 뿐이죠.
,,,,,
지금의 필리핀 뒷골목보다 못한ㅈ곳에서 눈부시게 발전했네요.
저땐 다같이 가난해서 상대적 박탈감 없이
다함께 성공하자고 함께 으쌰으쌰 힘을 모았죠
지금은 상대적 박탈감이 어마어마 합니다
노력한다고 올라갈수 없습니다
함께 성공하자고 뭉치면 함께 망합니다
@@candleproducer 많아요.당신눈에만 보이지 않을 뿐이죠.
@@볼빨간갱년기-l8f ㅋㅋㅋㅋㅋㅋㅋ 님 문재인 뽑았죠?
@@이정훈-q1g3f 갑자기?
제정구의원님 저희 아버지와 중고등친구이셨고 같이 서울유학와서 하숙하시고 빈민운동으로 고생 엄청하셨는데 암으로 돌아가셔서 참 안타까웠습니다.
그럼 진주고 32회 졸업 하셨곘군요.
어떤 정부가 통치하느냐에 따라 국민의 삶의 질이
바뀐다.
갓정희
노무현대통령이 경제대국 만들어주심
@@lllklkkkk 노무현이 공장하나라도 만들었냐 ? ㅋㅋㅋ
5천년역사상 광개토대제이후 가장 부당한 대한민국건설한..박정희 전두환대통령의 경제성공과 자주국방에 감사합니다...
@@저거저거홍어다 공장? 70년대인가요?
71년도 국민학교 4학년 때부터 방과후 신설동 종로에서 신문 팔던 때가 그래도 그립습니다.
세월은 모든것을 변하게 하였군요 앞으로도 세월에 장사는 없답니다 세상이 변하듯이 사람도 늙어가고요 젊음은 짧고 노년은 길고 길다~~~~~
길고 긴가요???
우리도 언젠가 저들처럼.... 잊혀진 날의 기억속에서 누군가가 꺼내보겠지요...
@@이주형-u4i 그런거 생각하면 슬퍼요..
역사의. 무대에서는. 서로 맞섰지만,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든. 산업화와 민주화의. 선배님들,
감사합니다. 자유.민주.풍요의. G7 대한민국. 후손에게 물 려줍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똑똑해서 한다면 다 해내는구나...
말은 바로합시다
70년대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서방 선진국 관점에서 보면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자로 규정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대 아시아아프리카 제3세계 국가와 현시기 중국 북괴 등 전체주의 독재와는 근본이 다른 자유민주주의 정부였죠.
전체주의 독재정권은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처럼 일당독재 개인숭배 야당말살 언론말살 거주이전의제한 정치범수용소 등 시민의 정치적 자유권이 완전히 박탈된 나라를 일컸습니다.
반면 이승만 박정희 체제는
강력한 야당존재 의원면책특권 불체포특권 비판적언론기능 주권재민 선거제도 거주이전의자유 법치주의 국민의정치적권리 보장 등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체계는 유지되었습니다.
그 자유권이 지금처럼 완전히 보장되지는 않았기 때문에 독재정권이라 칭하죠.
엄혹한 냉전시대에 자유진영 선봉장 대한민국은 자유권을 일정정도 유보하고 일심으로 단결하여 대륙전체주의 독재에 맞서 싸워 끝내 자유를 지켜냈습니다.
반면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은 단 한번도 전체주의독재에 맞서싸운 사실이 없죠. 오히려 문재인은 교과서와 헌법에서 자유를 삭제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Kim-ig3qq 지랄을 한다 전체주의 독재에 평생을 저항해 오시분들을 니가 글몇자로 폄훼해? 한심한 놈
@@jasonkim6015 김대중이 스딸린 모택동 김일성 등 극악무도한 전체주의독재에 저항한 증거를 대보세요.
독재의 종늠질 했죠.
김대중 이희호 부부는 100여년을 살다가면서 북괴 독재자 인간백정 김일성 왕조에 독재의 독자도 인권의 인자도 벙긋하지 못했는데 무슨 늠의 평생을 저항해!??
정신차리소 이 양반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위대한 분이라는걸 다시 깨닫게 된다.
저런 가난한 나라를 gdp 3만불대로 만든건 박정희의
리더쉽이 없으면 불가능했다.
지금부터 40년 전 우리 생활이 암울했던 시대를 실감나게 하는 귀중한 영상입니다^
잊어서는 절대로 안되는 매우 귀중한 영상을 감명 깊게 시청하였습니다^
4년전 영상인데 지금에서야 ...
정말 찢어지게 가난했었네요 ㅜㅜ
대한민국 정말 대단한나라입니다
불과 50년만에 이렇게 선진국이 되다니 ...
박정희 대통령님 그립습니다
사진만 보면 얼마나 행복이 가득한지 많이 쥐어서 행복한게 아니라 가족과 함께여서 행복함을 배웁니다.
존경하는 형제의 나라...
지금의 모습이 다르지만 그 역사는 우리와 똑같네요... 진짜 우리나라의 옛날을 본 기분이네요... 물론 아직도 그렇게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 있지만요...
이상한(슬프고 또한 괴로운 기분?!) 감정으로 봅니다.
항상 잘 되시길 바랍니다.
노트: 터키인이라서 혹시나 틀린 말을 적었으면 민망하고 죄송합니다. 이해심을 부탁드립니다.
터키의 국민들이 우리나라가 힘들때 도와주셔서 가능했던거같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사람도 존재가능한것이구요! 감사합니다
@@또다른세계 ^^… 아마도 이 대답이 저와 저같은 터키인들이 왜 계속 한국을 사랑하게 되는지에 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jroad7370 💗💞💖…^^
터키는 한국전쟁 때 5천명이 넘는 군인들을 파병해 우리의 자유를 지켜준 것으로 압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하의 아이디클릭하고 구독 눌렀습니다 하시는일 다잘되시고 늘 건강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빈민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을뿐...
먼 훗날 돌이켜 보면.. 그땐 그랬지로 기억 될 우리 사회의 아픈 상처
0:02 자리는 1973년 사진이며, 72년 아닙니다.
현재 성동구 청계천 우측인 전농천. 이 사진 찍는 자리는 사람 출입불가된 빗물펌프 건물자리. 봐라 보는 방향은 지하철 2호선 기지국 선로 설치 자리입니다.
청계천은 이 부분 사진 좌측에 숨어 있고 이 천 자리는 성동구 청소차량 기지 자리. 무허가 주택 자리는 선로. 천 멀리 우측으로 펼쳐진 무허가 주택 자리가 용답 초등학교 앞
그린 공원.
좌측 3m 넘는 깃발은 무허가 주택 안보이기 위한 깃발.
전기 안들어와 밤은 암흑 세상. 물 안들어옴. 하수도 없음.
집앞에서 배설.
쓰레기 집앞에서 투기. 변색 렌즈 낀 남자분이 사진촬영한 노무라 목사님. 도쿄 주택 팔고 이 무허가주택 사이에 교회 짓고 식사 나눠주고
유치원 만듬.
75년에 철거시작. 72년까지는 전농천 자리는 좀더 우측에 있었음.
이 사진은 흑으로 좌측으로 옮긴 티가 나는것 보니 73년 사진. (항공사진에 똑같이 나옴)
집안에서 병나서 죽는 학생들이 많았다고 함.
내어릴적풍경이 그대로 비춰지는영상 저때는 가난해도 없어도 사람사는세상다웠습니다 다만 조금불편할뿐 행복의지수는 지금과 비교가안될만큼 높았네요 고무신으로 엿사먹고 뒤지게혼나던 저시절이 꿈이었나싶네요 저때가 많이그립습니다 눈물날정도로 인정많고 청념한 시대였죠 아 그옛날이여 ~ 😭
오죽하면 예전에 남진의 님과 함께 라는 곡에다가 가사를 바꿔 불렀을까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같은 집을 짓고...가 아니라 청계천 다리밑에 거지같은 집을 짓고...웃을 수 없는 뼈저린 가난을 빗댄 눈물나는 가사의 모습이 바로 엊그제 같았는데 지금은 선진국의 경제국의 모습이라...
당시에는 청계천 뿐이 아니라, 서울 시내 대부분의 개천 주변이 다 그랬죠...
이시대 청계천은 화려했어요 ㅋㅋ
저거 잘못된 사진임 ㅎㅎ
저때 당시 어린아이들이 지금은 50대가 되었겠지요...제가 68년생이니 저랑 비슷하실듯 합니다...60-70년대는 고난의 시절이였습니다...그 당시를 살아오신 분들의 노고와 고생에 감사를 드려야겠지요.
지금 노원구 당현천에도 판자집이 있었죠 2000년대 중반까지도 점집, 판자촌으로 어지러웠던게 눈에 선하네요 지금은 청계천처럼 정비가 잘 되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 되어서 좋네요 :)
내가 이래서 독재자 박정희를 욕을 못한다니까 ~~,솔직히 저 시절에 민주화는 일반국민들 한테는 그저 사치일뿐이고
먹고 사는 문제가 제일 일때니까...아무튼 부모님세대 존경합니다.
저 시대를 거쳐 지금의 한국을 만든. 어르신들 꼰대라고 무시하는 현실
유년시절을 광명시하안동 판자촌에서 살았는데 푸세식공중화장실에 공중수도에 샤워시설도없고 좁은단칸방에온가족이잠자도 그때는 사진속아이들미소처럼 불편한거없이 같이놀 친구들이있어 마냥신났던기억이납니다
선배님들..고생많았습니다 그리고 잘 버텨줘서 고맙습니다
전땐 북보다 못살던 시절 ;;
전 68인데 시골 선속 에서 자란게 축복
박정희가 평가는 갈려도 진짜 위인은 위인임... 남들 수백년 걸릴걸 몇십년만에 ㅋㅋㅋ진짜 능력은 대단하긴함 과정에서 욕먹을 일도 많았지만 그건 그 당시 시대배경을 생각해야 될 일이고, 지금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되지 지금기준으로 생각하면 세종대왕도 존경 못받음
이곳이 현제. 장안동. 이죠! 내가살던곳. 입니다 건너가면 면목동 인데. 면목극장. 맢에서. 뻐스타고. 청량리 나. 을지로 종로로. 일보러 다녔읍니다
왜 단어마다 뒤에 마침표를 찍으시나요? 마침표는 문장 끝에 찍습니다.(딴지는 아닙니다)
60대 중반의 할배에요
참열심히 살았어요 애국심도 엄청 강했고요
그런데 얼마전 지금은 살날이 얼마 안남은 늙은이는
투표하지 말람니다 ㅎㅎㅎ
좀 서럽더라구요 ㅎㅎ
박정희 대통령님, 이명박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내 고향 서울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시대 국민들한테 더 감사해야할듯
세계 어느 나라도 동시대에 제 3세계에서 태어난 사람, 개발 도상국에서 태어난 사람, 선진국 국민으로 태어난 각 세대의 사람들이 가족으로 공존하며 함께 어우려져 사는 곳이 없음.
그러니 세대간의 가치관이 극명하게 차이날 수 밖에 없지. 옛 세대는 시대의 변화를 인정해주고 또 과거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인프라를 누리는 만큼 존중하며 살아가면 좋겠네.
@@서성주-l9b ㅎㅎ 그런 구성원이 한 가족으로 어우러 사는 보편적인 나라가 어디인지 너의 넓은 식견으로 얘기 좀 해봐라 그럼 ㅎㅎ 난 586세대도 아니지만 너의 그런 편견어린 눈으로 싸잡아 매도하는 시각 자체가 세대가 어디인지를 붋문하고 대한민국을 망치는 거임. 니가 주범이라고 ㅉㅉ
왜 못살아 ㅋㅋ 저 시대 살아가면 다 저렇게 살아갈 수 있다. 지금 2020년 현대인들은 지금 인프라에 익숙하니까 어케 사냐고 호돌갑이지, 1970년대 저 청계천 사람들에게 조선시대 산속움막에서 사는 빈민들 보여주면 똑같이 어케 사냐고 한다.
ㅇㅇ맞말 저땐 저게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
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게 자연스러워? 너네한테나 자연스러운게 아니고?
@@태훈-n7n 븅신 ㅋㅋㅋ
@@태훈-n7n 니도별수없다카이!~
난 아이러니 하게도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시절이 젤 좋앗던것 같음! 이런애기 어떻게 들릴지, 그땐 길거리 아가씨 같은 순박한 여자들과 저렴하게 긴밤을 잘수 잇엇으니! 또는 길거리 헌팅도 좋았고! 지금은 매춘금지에다 자칫 미투에 걸리면 인생 쫑~!
70년대 빈민들 집은 벽지살 돈이 없어서 신문지로 진흙벽을 도배 했었습니다.
그런 빈민들은 일본.미국에도 있죠 저게 한국인 일반적인 모습이라 하니 문제가 되죠
겨울에 많이 추웠지요?
@@bluesky-of5br 그래도 요즘은 없어서 다행이죠
화장실 휴지는 신문지였지요
@@bluesky-of5br 남북으로 갈라지면서 당시 북한엔 일제 무기 공장이 즐비했고 동양 최대의 다목적댐인 수풍 발전소도 북한에 잇었고등등 그러나 남한엔 산업화 시설이 거의 전무한 상태에다 수풍발전소에서 오던 전기마저 북한이 끊어 버리는등, 여기에 6,25로 국토가 완전 초토화 되었는데 저런 지경은 어쩌면 당연한 거지요!
이런거 보면 진짜 한국인은 매우 강하다 ㅈㄴ 빠르고 ㅎㅎ
지금에 애들보다 저때 애들이 행복해 보이네요
일하며 살아가려는 의지와 웃는 얼굴. 그게 너무 아름답다.
판자촌...내가 저렇게 살았었지 정말 열심히 앞만보고 살았는데 이젠 우리를 틀딱이라고 하더라 시끄러운 정치현실도 싫다. 남은시간들 조용히 여유를 느끼며 살고싶다.
@하나We are the 잼민아 넷상이라고 깝치지좀마라
참빠른 성장이였네요 대한민국 그들이 있어서 지금내가 있는것같습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살던 곳이군요..70년생이고 75년까지 판자집에서 살았었습니다...
지금은 서울에 아파트 한채 정도는 가지고 계십니까?
빌딩1채
아역 청소년배우 출신 송 승환씨.... 거런 곳에서 살셧대요....
저와 나이가 같으시군요. ㅎ
저는 금호동 산동네에서 자랐네요.
박정희 덕분에 대한 민국의 오늘이 있는것에 감사 합니다
우리 부모님세대.. 동생 학교보내려고 학업 포기하고 공장에서 일하시고.. 건빵 10개를 불려서 하루3끼를 나누어 먹었고.. 점심에 도시락이 없어 다이어트 한다고 거짓말하고 옥상에 줄넘기를 하셨다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 60, 62년생이신데... 어머니 아버지 덕분에 정말 편하게 공부했습니다..! 받은 사랑만큼 드디어 태어날 제 아이들에게도 더 좋은 삶을 선물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분들~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늘 건강하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01:39 오른쪽 녀자 바지 무릎이 다 닳어져 구멍 난 듯 보이네요. 저 시절에는 바지 하나 사기도 어려웠나 봅니다.
지금은 느낄 수 없는 순수한 행복함이 느껴진다
정감있어보이네요
그럼 한강에 텐트하나 가져가서 사시면서 공용화장실 쓰면 될듯
구파발에서 연신내 넘어가는 박석고개에는 90년대에도 판자집 엄청났었는데 ㅋㅋㅋ
기자촌?
72년이면 내가 중2땐데 청계천쪽에 대한 기억이 없네. 광화문 종로쪽은 기억나는데 청계천쪽으론 가보질 않은 듯. 나중에 청계천에 저런 판자촌들이 즐비했단 사진이나 영상을 보고 사실 나도 놀랐음.ㅎ
대한민국의역사다 힘들게대한민국을 이끌어주신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조상님들,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
조상이라기엔 정말 가까운 시대라 참 기분이 묘하네요 ㅠㅠ
아버지세대지 조상은ㅋㅋ
요즘 학생들한테는 조상처럼 느껴질 수도 있음
@@hong007ms 제가 요즘학생인데..ㅋㅋㅋ 좀있으면 고3 입니다
@@엑스맨-m2i 저도,, 요즘학생인,,항년 27歲,,입니다@@
박정희는 최선을다했다.
천계천이.철거되면서.그곳에살던.사람들이.지금의
상계동에.살게된것입니다
그당시에.상계동에는.아무
것도없는.그야말로.벌판과
개천.그리고산..한마디로
막막그자체..
도시 빈민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그때만큼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누가 쓴건지 참 잘 썼네. 짧지만 정말 좋은 영상이다.
와 필리핀 슬럼가 영상 보고왔는데 우리나라가 심하면 더 심했구나 진짜 대단한 발전이다 세대간의 차이가 우리나라는 심할 수 밖에 없다 당연히 난 어느정도 이해한다 고로
너무 소중한 자료네요 ㅠㅠ
저시절 내가 고등학교때인데(1972년).내방에 라디오가없어서 청계천4가 세운상가가서 부속사와.TR4석 라디오.만들어 들었다~~~ 52년이 흘러갔구나 내나이.7호선으로 환승한다
박정희 대통령님 진짜 감사드립니다..
워낙 열악한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많다보니 심성이 거친 사람들도 많았지요. 좀도둑, 소매치기같은 생계형 범죄도 많았고 깡패도 많았고..
이영상보고 난 지금 행복한거구나 느끼게되었따 열심히 살아야지
근데 지금보니깐
애안낳고
독신으로 산다는 내가
왜이리 한심하게 느껴지지...
저시대에도 가난했지만 애낳고 키우는걸 보니...
내가 너무 배가 부른건가...
지금보다는 많이 열약하지만 사람들은 매우 행복해 보인다.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피 땀 흘려 배고프고 어려웠던 대한민국을 폭풍성장 시킨거는 맞습니다 그 열정과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 어렸을적에도 아버지가 밥 남기면 뭐라고 하시고 그랬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시절이 가끔 그립습니다
86년생 올림
내가 아는한 서울대 운동권 출신들 중 진정 빈민을 위했던 사람은 고 제정구 의원이 유일했다
지금 사람들 특히 운동권 사람들 대부분 돈 돈 돈^^
빈민을 잘살게한 사람은 운동권이 아님.
일하면 빈민 안될수 있음
@@비신2 오 정답입니다 더해서 저축하구요%%^^
전태일이도 ㅡ
그때는 진짜 빈민 그러나 지금은 100%는 아니지만 게으른놈들과 허영심에 눈먼 놈들이 많치 그때는 진짜 불쌍한사람 많았지만 지금은 불쌍한 놈들 꼭 미운데가 많아
70년대의 서울도 너무나 황량합니다
정말 빈민촌 같은 청계천의 화려한 변신이네요
정말 대한민국 많이 성장 했습니다
모두 우리 윗대의 희생으로 이뤄낸 성과라고 생각 합니다
박정희대통령님 감사합니다
아프리카 보다 못살았던 나라, 상하수도 시설은 고사하고 🚻 화장실 조차 ,ㅠㅠㅡㅠ 찢어지게 가난했던 나라에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과 산업근대화의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을 보내주신 것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에 빛과 소금이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진짜 엄청난 발전이다 ㄷㄷㄷ
뭐 옛날에 저렇게 샇았어요. 판자집에서 살기 전엔 천막집에서도 살아봤네요. 지금은 해외에서 2층집 살지만 그 시절 회상하면 아름다운 기억 많이 합니다.
이대입구도 저랬어요 신촌도 연탄 나르는 마차있었고 소인지 말 인지는 모름 새카매서
그냥 서울 중심지 빼고는 전국이 판자촌에 개미굴이었음 ㅋㅋ 이나라가 100년만에 이렇게 된게 신기할 따름
이대 입구만 그랬을까요?
서울 곳곳이 대분분 그랬죠
봉천동,답십리, 청계천은 말할것도
없구요
와!!! 그게 정말~~인가요????
@@fiercehan6791 80년대 초반에
제가 열살도 아니었는데
말수레가 연탄수레 끌었었어요.
말이 똥싸면 마부? 님이 빗자루로
말똥 치우던 기억도 납니다.
망우리였죠.
짜장면 한그릇 400원 500원
버스비 30~40원 했었죠..
@@danielkim5218 70년대 중반 아니오
❤😂🎉❤ 박정희대통령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겠네요...미국 독일 영국 일본의 굴욕을 참으면서 돈빌리고 돈받고 해서 포항제철 울산 산업단지 구미 원자력 고속도로 등을 건설했지요.
공부만 열심히하면 먹고살고 성공했지만 공정을 외치면서 정의를 외치던 사람들이 블법을 저지르고 뻔뻔스럽게 정의를 외치고 있다.
역사의 아이러니다.
없어도 함께 웃고 울었던 시절
그시절이 그립네요
가끔은 어릴때 비포장 미루나무길 생각나네요 지금은 왕복8차선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다들 그렇게 살았습니다...그래도 다시 돌아가고 싶네요
다시는 못 올 시간이 되어 버렸네요
정이있던 시대였죠???
@@fiercehan6791 네^^
진짜 존경합니다.부모님들..
왤캐 눈물이 나냐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