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강좌 _바울과 선물(사도 바울의 은혜 개념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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ความคิดเห็น • 14

  • @김용만-s3h
    @김용만-s3h 3 ปีที่แล้ว

    목사님 강의 잘 들었습니다

  • @woonsikjung3795
    @woonsikjung3795 4 ปีที่แล้ว +1

    어쩜 복잡하고 어려운 논의를 알아듣기 쉽고 흥미롭게 잘 설명해 주시는지요! 감사합니다.
    목사님의 책 주문했습니다.

  • @도시인1
    @도시인1 4 ปีที่แล้ว

    두 번을 읽고도 잘 정리가 안 됐는데 목사님 강의 듣고 선명해졌어요 감사합니다~

  • @김범석-t2j
    @김범석-t2j 4 ปีที่แล้ว +7

    은혜의 6가지 측면
    1. 초 충만성 23:19
    2. 단일성 24:15
    3. 우선성 26:15
    4. 비상응성 27:40
    5. 효과성 29:46
    6. 비순환성 31:36
    순수한 '서구식' 선물의 개념 53:29
    바클레이 책의 두 가지 의의 1:02:42
    ㄱ. 값싼 은혜는 근거가 없다
    ㄴ. 제 2성전 시대의 유대교에 대해 새로운 이해
    를 가능하게 해 주었다

  • @안성신-y1w
    @안성신-y1w ปีที่แล้ว

    주로 바울의 서신서에 나오는 선물 은혜 복 구원 영생 진리 생명 성령 사랑 긍휼 구제(하나님의 의) 이런 단어들은 가난한 심령안에 우리의 일생일대의 한 사건이죠(그리스도로부터 우리가 받을수 있는 계시의 사건)
    "고난은 앞으로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이것이 위에 나열한 사건들로 인하여 받은 사람은 세상을 다 준다 해도 바꿀수 없다라고 고백 하지요 바울의 은혜가 하나님께 보답해야 한다는 일은 "너희몸이 성전이요, 성령의 전이면 하나님의 전으로서 그 분이 우리안에 살고 계시다는 의미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오셨으니 그리스도를 낳고 낳고 하는 진리를 전하는일이 보답이지 않겠어요.
    하나님은 영이시고 모양과 형체가 없으시므로 모양과 형체가 있는 우리 또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본질인 성령이 오시면(위에 나열한 단어들, 다른소리 같은뜻으로 말함) 하나가 되어야 본질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교수님은 율법의 행위로 끌고 가지 않으시니 숨이 막히는 일이 덜 하시네요 성경에 구원 받은 자들이 거의 없다라고 하면서 인간을 지은것을 한탄 하셨습니다. 그 만큼 인간의 의가 강해서 힘들다는 것이겠죠 죽고 새 생명 얻는 일이 일어나야 하는데 말이죠. @
    (갈5:4) "율법 안에서 의롭다함을 얻으려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아멘

  • @ma-uh2ow
    @ma-uh2ow 2 ปีที่แล้ว

    현세랑 종말의 도식으로 구분한 에즈라4서도 결국 비상응성을 ㅇㅈ한거 아닌가요? 현세에서는 은혜가 우선시하지만 종말때는 공의가 우선시된다는건 기독교의 관점이랑도 비슷한거 같은데요.

  • @aphilosophizingsquid
    @aphilosophizingsquid 4 ปีที่แล้ว +4

    유익하게 잘 보았습니다. 그런데 바클레이의 갈라디아서 해석은 논리적 선후관계가 역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리스도-선물을 통해 우리가 그 선물을 받기에 합당한 자가 된다."라는 말은 "선물을 받으면 선물을 받기 위한 조건이 갖추어진다." 혹은 "선물을 받기 위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선물을 받아야 한다."라는 다소 의아한 주장을 함의하니까요. 책을 꼼꼼하게 읽어봐야겠지만, 아무래도 바울서신에 대한 해석 부분은 잘 납득이 되지가 않네요.

  • @jeonghyeonchoi3530
    @jeonghyeonchoi3530 2 ปีที่แล้ว

    잘 들었습니다. 바울의 글은 아브라함이 받은 언약과 율법과 복음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주로 약속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언약의 표징은 할례입니다. 이 언약과 율법과의 관계에서 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됩니다. 그러니 이 언약에서 제외됩니다. 이것은 신명기와 일치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이 율법을 범하면 언약의 땅 가나안에서 만민 중에 흩어집니다. 이것이 율법의 언약입니다. 그러면 율법의 언약이 아브라함의 언약을 폐하는 것인가?
    아브라함의 언약은 변치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맹세로 보증하신 것으로 율법이 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셔야 하는 것으로 율법의 저주는 끝이 있고 그 저주가 끝나는 날에 고토로 돌아옵니다. 이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원이 그리스도에 의합니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에게는 민족적으로는 첫 언약 곧 율법의 언약을 범한 죄에서 구원하는 제물이 되시어 새 언약의 중보자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이 새 언약에 의거 만민 중에 흩어진 이스라엘은 고토로 돌아와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복음을 주신 것입니다. 이 복음은 믿음의 법입니다. 이 믿음의 법은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그 믿음의 법입니다. 그러니 복음은 언약을 얻는 방편입니다. 율법을 범해 할례가 무할례가 된 유대인은 복음에 의하여 다시 할례자가 되는 것은 언약을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래 무할례자인 이방인은 복음을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언약에 참여하여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어 곧 유대이에게 접붙임되어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이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을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새 언약의 제물이 되신 것도 율법의 요구에 응하신 것으로 폐하신 것이 아닙니다. 폐하였다면 제물이 될 필요도 없고 복음으로 구원할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율법을 폐하면 정죄되지 않는데 왜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할 필요가 있는가? 다만 구원의 방편이 율법이 아니라 복음이라는 것일뿐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완성이라는 것은 율법의 요구를 들어 주어 율법을 범하지 않은 것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이란 율법을 범하지 않은 상태로의 회복으로 언약에 머물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믿음에 있지 아니하고 율법을 범하면 정죄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주시어 거듭나게 하심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원은 믿음에 의하나 천국은 성령을 따라 행함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가나안으로 가는 길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성령님의 인도에 의합니다. 그러니 바울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설명했고 율법의 저주에서의 구원하여 언약 안에 거함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한 것과 성령을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생하는 천국에 간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mwkim9034
    @mwkim9034 3 ปีที่แล้ว

    광고 넘 많음 ^^